[기고] 미국 생물학 무기의 역사와 한국에서의 세균전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이준영
1952년 2월 22일 북한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미국이 한국에서 세균전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미군이1952년 1월 28일부터 세균에 감염된 곤충을 대량으로 한반도 상공에 살포하고 있다면서 유엔 측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중국의 주은래 역시 북한의 주장을 옹호하면서 미국을 비난했고, 같은 해 3월에는 미국의 비행기가 중국의 화북지역 및 동북부에서 세균전을 수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전쟁범죄와 인도주의 범죄에 대한 국제법의 기초를 닦은 1925년의 제네바 의정서에서는 질식작용제, 독성가스, 세균학적 수단을 전쟁에 이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까지도 미국은 다음 전쟁에 대비해 화학무기를 준비해야 한다며 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았다. 미국이 화학 및 생물학 무기의 포기를 선언한 것은 1969년에 와서였으며,미국의회는 1972년에야 생물학무기 금지협약(BWC)을 비준했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방어용’이라는 명목으로 생물학 무기 연구를 계속 하고 있다.
한국전쟁에서 제기된 미국의 세균전 의혹
한국전쟁 당시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무차별 폭격과 민간인 살상 문제 등으로 국제적인 비난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비인도주의적인 전쟁행위로 지탄받아 온 세균전 혐의까지 받게 되자 ‘자유의 수호자’를 자처해 온 미국의 위신은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당시 미국 극동사령관이자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던 매튜 리지웨이는 나토 사령관으로 전보한 이후까지 이런 의혹에 시달려야만 했다.
물론 유엔군과 미국 정부는 세균전에 대한 의혹을 일축했다. 미국은 세균전 의혹이 공산국가인 북한과 중국에 의해 근거 없이 날조된 것이라고 선전했다. 미국은 북한과 중국이 제기한 세균전 의혹이 휴전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공산국가의 악의적인 선전에 불과하다며 의혹 제기를 이념공세로 치부해버렸다.
그러나 1952년 3월과 6월에 이루어진 국제민주법률가협회와 국제과학자협회의 조사결과에는 미국 측의 주장과 상당히 다른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국제민주법률가협회 ‘세균전은 미국의 엄중하고 전율적인 범죄’
국제민주법률가협회는 1946년 프랑스에서 조직된 비정부기구이자 UN의 자문기구로써, 오늘날까지 인권보호와 UN헌장 준수를 위한 활동을 벌이는 권위 있는 기관이다. 국제민주법률가협회가 작성한 보고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인민군 및 중국 인민지원군 부대와 지방 항공 감시소들의 보고에 의하면 북한 169개 지역에서 여러 가지 종류의 곤충들이 발견되었다. (중략) 많은 경우에서 특별한 종류의 파리, 벼룩, 거미 딱정벌레, 빈대, 귀뚜라미, 모기와 기타 곤충들이 발견되었으며, 그 대부분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볼 수 없던 것들이었다. 곤충들은 많은 경우 인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 예컨대 눈 위와 강의 얼음 위, 그리고 풀과 돌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중략) 전문 조사 결과 곤충들이 병균에 감염되어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이 곤충들은 인공적으로 배양된 것으로 생각된다.”
“[결론] 미국 군대는 북한 인민군을 반대하며 북한의 일반에게 죽음과 질병을 만연시킬 목적으로 인공적으로 세균을 감염시킨 사례와 파리와 기타 곤충들을 고의적으로 살포함으로써 1907년 육전법규와 관습에 관한 헤이그 협약의 조문을 위반했으며 1925년 제네바 의정서에서 재확인한 세균전 금지 조항을 위반하는 가장 엄중하고 전율적인 범죄를 한국에서 범하였다.(하략)”
(박태균, <한국전쟁>, 책과함께, 2005, 339~340쪽 재인용)
니덤 보고서가 밝힌 세균전 의혹들
당시 영국의 대표적 화학자였던 조셉 니덤과 원자폭탄 개발자로 유명한 로버트 오펜하이머 등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었던 국제과학자협회 역시 1952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세계평화회의의 결정에 따라 북한과 중국에 공식조사단을 파견했다. 세계평화회의는 75개 회원국을 지닌 비정부기구로써 이들이 파견한 공식조사단의 보고서가 바로 최근에 전문이 공개되어 미국의 세균전 의혹에 다시 불을 당긴 ‘니덤 보고서’다.
니덤 보고서의 정식명칭은 ‘한국과 중국에서의 세균전에 관한 국제과학위원회의 사실조사 보고서’였다. 여기에는 600여 페이지 분량의 세균전 의심 현장 사진, 세균전을 수행한 미군 포로들의 진술서, 세균 배포 경로 비행지도, 피해 의심지역 주민 인터뷰 등의 자료가 실려 있었다.
니덤 보고서 역시 국제법률가협회의 조사 결과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세균전에 대한 여러 의혹을 제기했다. 미국은 니덤 보고서를 ‘공산주의자들의 선전’이라고 치부했지만, 보고서에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보고서는 영국 왕립학회 회원인 니덤을 비롯하여 학계의 권위있는 과학자들이 두 달 동안 직접 현장에서 작성한 것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미국의 입김이 세다 하더라도 세균전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니덤 보고서에 따르면 1951년 겨울부터 북한 지역에는 세균전으로 의심되는 이상 현상들이 발견되었으며, 미군 비행기가 출현한 지역에서 난데없이 장티푸스와 페스트 등에 감염된 파리와 벼룩 등의 곤충이 수 만 마리씩 떼 지어 출현했다고 한다. 겨울에 곤충 떼가 발견된 것은 분명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또 어떤 곳에서는 산지에서 콜레라 등에 감염된 어패류 등이 다수 발견되기도 했다. 이상 현상이 발견된 곳에서는 곧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콜레라와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은 여름에 유행하는 것이지 겨울에는 거의 발병하지 않는 질병들임에도 불구하고 한겨울에 병이 유행한 것이다.
니덤 보고서 ‘미국이 731부대의 실험결과를 실전에 응용했을 것’
니덤 보고서는 미국이 일본의 세균전 부대인 ‘731부대’의 실험결과를 실전에 응용했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했다. 중국신문들도 한국전쟁 당시 731부대의 책임자였던 이시이 시로가 한반도를 방문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세균전 정보를 입수했을 것이라는 정황증거는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일본에 진주한 미국은 머레이 샌더스 중령을 비밀 특사로 파견해 731부대로부터 세균전 자료를 넘겨받았다. 미국은 소련에 731부대의 자료가 넘어가는 것을 극도로 위험하게 생각했다.
이시이 시로는 미국에게 자료를 제공하는 대신 전쟁범죄에 대한 사면을 약속해달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결국 도쿄전범재판에서 이시이 시로와 731부대를 기소하지 않았다. 반면 소련 측은 이시이 시로와 731부대 관련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며 신병인도를 요구했지만 미국은 이들을 넘겨주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은 이들을 극진하게 대접했다.
추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시이는 일본 정부로부터 엄청난 퇴직연금을 받기도 했으며 1960년 2월 콜레라균 연구를 주제로 한 박사 학위 논문에 지도교수로 이시이의 이름이 등재되는 등 전혀 심판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시이 부대 출신의 연구자들은 아예 미국 메릴랜드 주 프레데릭에 위치한 데트릭 기지에 가서 미군 측에 세균전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다. 731부대에서 반장급이었던 세균전 실무자들은 미군에게 세균전 연구성과를 설명하고, 교육을 실시했다고 한다.
생물학 무기의 유혹에 노출된 미국 군부
미국이 세균전 연구를 본격화한 것은 1941년부터였다. 2차 대전을 치르면서 세균무기는 원자폭탄, 화학무기와 함께 새롭고 강력한 무기로 주목받고 있었다. 군사적인 목적만을 두고 보면 세균무기는 건물이나 기반시설을 파괴하지 않고, 사람만을 제거함으로써 적의 거점지역을 효율적으로 장악하게 할 수 있는 무기였다. 또한 세균무기는 매우 ‘경제적인’ 무기였다. 몇 개의 공장만 가동하면 수 십 개의 도시를 수 십 일 동안 오염시킬 수는 분량의 세균무기를 손쉽게 만들 수 있다는 보고들이 올라왔다. 가공할 살상 능력을 가진 생물학 무기를 아주 적은 비용만으로도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은 군부에게 아주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비밀리에 추진된 미국에서 세균전 연구는 군과 민간 연구소의 긴밀한 협조 하에 이루어졌다. 1946년, 미군 장성출신이면서 제약회사의 총수였던 조지 W. 머크는 ‘적의 세균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세균무기를 연구해야 하지만, 보복적인 세균전도 고려해야’한다며 생물학 무기 개발에 목소리를 높였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미-소의 냉전이 시작되자 값싸고 효율적인 생물학 무기에 대한 미국의 유혹은 더욱 본격화되었다.
‘공격적인 세균전을 수행하는 데 도덕적인 판단은 치워버려도 된다’
1949년에는 화학전, 세균전, 방사능전 연구를 위해 일명 ‘스티븐슨 위원회’라고 알려진 <화학, 생물학, 방사능전에 관한 특별위원회>가 조직됐다. 이 위원회는 세균무기는 보복적인 경우에만 사용한다는 그동안의 정책을 수정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공격적인 세균전을 수행하는 데 도덕적인 판단은 치워버려도 된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회에서 제출된 스티븐슨 보고서는 한국전쟁이 터진 직후 승인되었다.
미국이 생물학 무기를 생산, 비축한 것은 1951년 경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세균전용 무기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자국에서도 실험을 감행했다. 미군은 해군함정을 동원해 샌프란시스코의 태평양 연안을 따라 패혈증 등을 유발하는 세라티아 균을 항구 근처에 살포했다. 이 실험은 각각 20km 지점과 16km지점에서 시행되었는데 거리에 따라 살포 능력을 검토하려는 목적이었다. 심지어 1977년 미 의회 청문회에서 도심의 지하철에도 세균을 살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처럼 세균 무기의 성능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했던 미국 군부는 한국전쟁을 세균전 실험실로 이용해야 한다는 강한 유혹을 느꼈을 것이다. 실제로 맥아더의 후임이었던 리지웨이 유엔군 사령관은 신의주와 함흥을 잇는 지대를 세균으로 오염시켜 중국군과 북한군을 무력화시키려고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당시 한국에서의 전황이 미국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세균무기는 미국의 군사적 입지를 강화시켜줄 강력한 무기로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다시 미군의 세균전 실험장이 된 한반도
세균전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있어서는 안 될 전쟁범죄이며 인류에 대한 도전이다. 한국전쟁에서의 세균전 의혹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역사로 남아 있지만, 역사는 잠시 덮어둘 수는 있어도 영원히 감출 수는 없는 법이다.
최근 주한미군 기지에서 벌어진 ‘탄저균 배달사고’로 인해 미군의 세균전 계획이 다시 수면위로 드러나고 있다. 주한미군은 주피터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다시 세균전 계획을 가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미제로 남은 니덤 보고서의 마지막 문구는 오늘날 다시 미군의 세균전 실험장이 된 이 땅에 커다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세계만방 인민들의 공통된 비난을 무릅쓰고 이러한 반인륜적인 죄악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우리 과학자들은 결코 믿고 싶지 않지만 본 조사단은 논리적인 절차를 하나하나 밟으면서 아래의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과 중국의 인민들은 실제로 세균이라는 무기의 표적이 되었다. 이들 세균무기는 각종의 다양한 방법이, 그 중에는 2차대전시 일본이 개발하고 사용하였던 방식도 포함하여, 동원되어 미합중국 군대에 의해 사용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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