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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미확인) | 화, 2015/06/30- 11:50

○민주주의국민행동 창립총회

                                

1987년 6월 항쟁이 일어났던 6월10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1층성당에서 500여명의 인사가 참여한 가운데 민주주의 국민행동 창립총회가 열렸다. 함세웅 안중근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상임대표인 민주주의 국민행동은 세대와 계층, 지역과 부문을 망라한 전국적 네트워크로서 정치개혁, 사회개혁을 통해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한 민운동체로서의 민주주의국민행동의 구체적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2017년 대통령선거를 통해 민주주의, 민생 안정, 남북의 평화공존과 통일을 지향하는 정부를 세우기 위해 여러 시민단체, 기층 민중단체, 풀뿌리조직 등과 결합하거나 연대한다.

둘째, 정당 창당을 목표로 하지는 않지만, 민주정권 수립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정치세력과 연대하거나 제휴한다.

셋째, 1960년의 4월 혁명 이래 민주. 민생. 평화를 위해 헌신해온 원로들, 박정희 유신독재정권과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시기에 갖은 고난을 무릅쓰고 반독재투쟁을 벌인 장년 세대, 지금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독선 때문에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젊은 세대를 아우르는 조직을 운영한다.민주주의 국민행동의 창립총회를 축하하며 이후 활동에 적극 지지를 보낸다.

                                   

 

416연대 탄압시도 중단 기자회견 및 촛불문화제

황교안 총리 취임 이틀째인 619일 오전 서울종로경찰서가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과 김혜진 416연대 운영위원, 인권재단,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강행하였다. 416국민연대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해, 세월호 참사 피해자와 여러 시민사회단체, 각 지역에서 기억하고 행동하는 시민들이 만든 단체다. 국민 모두가 추모하는 마음을 모으는 자리에 없었던 정부가 이제 국민연대를 불법으로 단죄하겠다고 칼날을 들었다. 이에 416연대는 기자회견과 촛불시위를 통해 정부의 이러한 행태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려는 국민의 열망을 짓밟는 공안탄압임을 명확히 하고 416연대에 대한 탄압을 강력히 규탄하며 당장 멈출 것을 경고하였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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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균동문 재심 시작하다 

                                       

1987610, 대한민국 곳곳은 군사독재 타도를 외치면서 참여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함성으로 가득 메워졌다. 당시 정당한 요구를 하는 시민들에게 대한민국 정부는 부당한 법 집행으로, 죄 없는 자국의 국민을 간첩으로 몰아 구금·고문·재판에 회부하면서 그 당사자와 가족에게 큰 고통과 상처를 입혔고, 역사에 지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그리고 후유증은 아직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87년 당시 국군보안사령부와 국가안전기획부에 의해서 조작·발표된 일본 유학생 간첩 사건이다. 이 사건의 피해자인 장의균(70 신방)동문의 간첩조작 사건에 대한 재심심문이 616일 서울고등법원에서 법무법인 지향의 재심심의 요청으로 진행되었다. 그 첫 심문이 7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었으며 다음 심의는 721240분 서울고등법원 서관 505호에서 열릴 예정이다.

장동문은 당시 37세의 나이에 간첩이라는 낙인 속에 차디찬 감옥에서 사랑했던 가족·친구들과 떨어져 8년이란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제 28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당시 받은 고문의 후유증과 간첩이라는 낙인은 장동문의 삶을 너무도 힘겹게 짓누르고 있다. 이제 정확한 사실을 입증하여 진실을 밝혀내고 다시는 이 땅에 치욕의 조작사건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간첩도 만들어지는 걸 아십니까?>

윤혜경(장의균 동문 부인)

국민 여러분! 한마디의 간첩신고가 국가 안보의 초석이 됩니다....”

부평에서 종각까지 출근하는 나는 매일 아침, 부천역과 역곡역 사이, 시청에서 종각역에 닿는 동안에 어김없이 방송되는 목소리를 새겨듣습니다.

국민 여러분! 간첩을 신고하시면 삼천만원의 상금을 드립니다....”

때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듣고 있는지 무심한 표정들을 살피기도 합니다.

당신은 간첩이 만들어 지는 것을 압니까? 나는 만들어진 간첩과 그 가족들을 알고 있습니다.” 커다랗게 외치는 마음 속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저녁 종각역과 부평역을 오가면서 방송을 들으며 새삼스레 공안정국이라 이름 붙여진 요즈음의 세상살이에 분노하기도 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나약함에 부끄러워 체념하지 않으려 열심히 사는 많은 사람들, 건강한 우리 아이들을 떠올립니다.

 

요즈음 올림픽 일주년 기념행사를 한다는 선전이 요란합니다.

지금은 까마득히 느껴지는 올림픽 공식신발’‘올림픽 공식라면’‘올림픽 공식○○온통 올림픽 홍수 속에서 살던 때였습니다.

엄마! 북한 사람들이 오면 환영해야지? 우리는 한민족인데..” 학교에서 돌아온 국민학교 4학년 여림이가 당치않다는 듯 이야기합니다.

열 문제인 도덕 시험에서 하나 틀렸다고 했습니다. 서울 올림픽을 맞이하여 북한 공산당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문제인데 보기가 경계해야 한다.환영해야 한다 .... ....였습니다. 딸아이는 환영해야 한다 라고 했고 선생님의 정답은 번이었습니다. 선생님께 말씀드렸냐는 물음에는 고개를 흔드는 여림이에게 틀렸어도 네가 맞는 거야. 우리는 같은 민족이니까 통일이 될 거니까 환영해야지라고 했지만 감옥에 갇힌 아빠를 둔 딸아이가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과 같이 살고 있는 부모의 가르침의 차이에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며 착잡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우연히 TV에서 북한을 다녀왔다는 교수의 인터뷰를 아이들과 함께 보았습니다. “엄마! 왜 저 아저씨는 북한을 다녀왔는데 TV에도 나오고 우리 아빠는 일본에서 북한이랑 친한 사람 만났다고 감옥에 있어야 해?” 아이들은 정주영씨. 박철언씨는 구속되지 않고 문익환 목사.서경원 의원, 문정현 신부, 임수경은 구속 되어야 하는지를 그렇게 물었습니다. 아이들은 간첩이 된 서경원 씨가 독일에서 만났다는 사람 중의 하나가 그 교수였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때 TV에 나왔던 교수가 또 얼마 전에는 간첩의 동조자로 신문에 나온 것을 결코 알 수가 없었습니다.

2년 전, 198794일 내 남편은 하루 저녁 사이에 아주 유명(?)해졌습니다. 모든 신문마다 5단 이상의 기사를 채우고 덧붙여 해설기사, 사설에까지 등장하고 TV에 특집으로 방송되는 등 톱뉴스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정치권 침투 사건‘. ’재야 침투 간첩 장의균‘ ‘일본 유학 중 조총련 자진포섭’ ‘대학 재학시 좌경 사상에 물들어..’ 온갖 제목이 붙여져 신문에 난 남편의 모습은 우리가 배워 온 간첩답게 흉악범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세 아이의 아버지로 여길만한 모습은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간첩사건에 꼭 있음직한 조직표에는 나도 한 몫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엄청난 간첩가족으로서의 생활이 공표된 것입니다. 이미 두 달 전에 잡혀가 이틀 전에야 구치소에서 만난 남편으로부터 안기부 마음대로 되거나 검사 마음대로 되는 사건이 아니다. 정치적 판단에 따라 이용된다. 죄가 아닌 부분을 죄로 만들어 놓고 저항할 수 없는 서류가 되더라도. TV에 나더라도, 세상을 속이려 하지 마라. 당하기 싫어서 못하고 사는 것, 역사적으로 권리를 찾아라. 아이들에게 아빠는 통일을 원하는 사람이라고 하라’‘는 이야기를 들은 뒤의 일이었지만 붉은 전사 장의균으로 방송되는 특집에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의 행동 하나 하나는 지령을 받고,, 간첩하고..,로 계속되었습니다.

두 달 전 눈가리우고 끌려가 때론 치료해 주기도하면서 고문 받고 10일이 지나서야 2시간 재우고 보안사에 있던 한 달 간 하루에 2~3시간씩 밖에 재우지 않는 동안에 그들은 내 남편을 간첩으로 연출시킨 것입니다.

장의균씨는 1970년에 서강대학교에 입학해서 1980년에 졸업을 한 조금은 일상적이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구두닦이, 넝마주이 생활을 하며 개발되기 전의 잠실에서 개미회라고 하여 20~30명의 구두닦이, 넝마주이들의 살림을 맡아 함께 살기도 하였습니다. 결혼을 하고 학교에 복학한 후 우리말,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갖고,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 깊은 감동을 받아 주역, 상고사 공부 등을 하며 개마서원이라는 출판사를 만들어 단기고사, 진한국마한사 등을 펴내기도 하였습니다. 1985년에 나름대로의 결심을 하고 일본으로 가 교토대학에서 우에다 마사하끼 교수의 개인연구원으로 공부를 하면서 세 아이 아버지로 노동을 해서 돈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남과 북이 한데 모여 사는 일본에서 상고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 민족의 통일에 관심을 갖고 민족의 미래를 확인하고자 일본에 있는 조총련계 대학인 조선 대학을 방문하고 통일문제를 공부하고 토론한 것이 저들에게 준 빌미의 전부입니다. 박종철 사건 이후 고양된 국민들의 의식에 도움이 되고자 정치사회연구소라는 연구소 설립과정에 참여하다가 연구소 발족 5일 전 198775일부터 갇혔습니다.

6.29선언 바로 며칠 뒤의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속이구로 알게 된 5공 말에 내 남편의 간첩으로서의 역할이 정권을 지키려는 자들에 의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 백담사에 전 대통령을 가둔 우리 국민들은 얼마나 거짓된 것이 많았는가를 느끼기는 합니다. 그러나 분단된 땅에 살면서 공안의 이름으로 붙여진 일들에는 설마! 무언가 있었겠지라는 안이함으로 저들의 정권욕에 어두운 조작, 인간성을 말살하는 고문을 방기함으로 분단의 벽을 두텁게 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몸으로 겪은 진실을 큰소리로 외칩니다.

여러분! 간첩도 만들어 집니다!!!!

화, 2015/06/30-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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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민동 6월 무의도 산행-slow walking for slow life

6월 첫 번째 주 토요일, 동문들의 편안한 산행이 자그마한 아름다운 섬 무의도에서 진행되었다. 몇 대의 자가용과 지하철로 인천공항을 지나 임시역에서 하차한 후 배를 타고 무의도에 도착하여 국사봉을 거쳐 호룡곡산 정산을 돌아 내려왔다. 그리고 거짓말 살짝 보태 1미터에 육박하는 광어회와 매운탕을 폭탄주를 겻들여 먹은 후 소무의도 둘레길을 걷는 짧은 듯 긴 여정이였다.

등반대장 조민재가족, 이건호, 이주섭부부를 비롯하여 네덜란드에서 온 마그릿할머니(정선임 동문집에서 홈스테이중)가 함께 참여하였다. 가장 선배인 78학번의 장근주 동문을 비롯하여 81학번의 장소자동문도 오랜만에 참석하였다. 저마다 싸온 간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중간 중간 쉬어가며 움직인 산행은 더도 덜도 아닌 편안하고 유쾌함 자체였다.

삼삼오오 그동안의 근황을 나누며 같은 시기에 수학한 동문이라는 단순한 이유만으로도 편안하게 말을 놓고, 건강한 땀을 흘리는 즐거움이 산행 내내 함께하였다. 자연과 더불어 동문, 가족과 함께 하는 즐거움은 다음 달에도 계속 진행된다. 다음 7월 첫주 일요일 산행은 김젬마, 김영수부부가 사는 괴산의 주월산 등정이다.

일요일 아침 740분 동부터미날에서 버스가 출발한다. 하루 전 가서 일박하는 동문도 있고 일요일 일박하고 월요일 오는 동문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당일코스다.

<주월산과 박달산을 이어주는 산행코스>

 

화, 2015/06/30-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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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운영위 열리다>

626일 여느달과 같이 네 번째 금요일, 위지안에서 민동 운영위원회가 열렸다. 가장 주된 논의사항은 운영위 워크샾에 관한 것이었다. 현재와 같이 아직 운영위원이 없는 학번이 많은 상황에서는 현재 출석하고 있는 운영위원들 중심으로 구심점 형성이 중요하다는 취지였다. 나아가 현재의 운영위원 조차도 민동 활동에 대한 기대와 전망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서울 근교에서 1박하며 충분히 의논할 기회를 가지려한 것이었다. 회장이 직접 발제하여 왜 민동을 해야 하는지, 내년에는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에 관해 논의하려 했다. 이에 대해 이정수위원은 잘 되는 학번에 집중하고 아직 10명도 안되는데 이르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와 같은 의견이 많아 일단 운영위원이 더 확충될 때까지 연기하기로 하고 현재의 운영위원회에서 많은 논의를 하기로 했다.

 

두 번째 사안은 우리 회원 가운데 귀농 귀촌자가 많고 유기농을 비롯해 믿고 먹을 수 있는 농산품을 많이 생산하는데 아직 농사가 오래 되지 않아 충분한 판매루트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민동에서는 이들의 생산품과 시기 등을 파악하여 도시에 사는 회원들과 연결하자는 사업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정선임사무국장은 그 계기로 정재경장학회가 구상하고 있는 11월 김장계획과 연계하여 추진하면서 장터를 펼치고 귀농자모임을 활성화하는 계기로 삼아 귀농 동문들의 상품도 소개하자고 제안했다. 아울러 김종기위원은 가을에 큰 모임을 통해 동기들끼리 모여 자유롭게 얘기할 기회를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이정수위원도 운동회를 가져서 다수 동문들이 모이는 계기를 갖자고 제안했다. 원래 집행부도 가을소풍 계획을 가지고 있던 터라 이 구상은 사무국의 구체적인 확인과 조율을 통해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가을부터 적극 추진하려던 컨셉을 가진 걷기는 동문 중 걷기대장도 찾고 내년부터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모임이 진행되고 있는 운동성을 가진 동아리도 동문모임 때 동아리모임을 제안하기로 했다.

그 외에 518재단이 제안한 서울의 518사적지 순례도 검토하기로 했고, 박승현동문(82 국문)이 감사를 맡기로 수락했다는 점, 비영리재단이 되면 동문들이 내는 회비와 기금을 연말 소득공제할 수 있다는 점 등도 정확히 확인해 추진하기로 했다. 아울러 아픈 동문이 있는 경우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여 대응하기로 했고, 소식지 편집위원장도 시급히 구하기로 했다.

화, 2015/06/30-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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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회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범국민추모제 엄수되다>

 

 

671시 보신각에 전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이하 전민동) 소속의 민주동문들과 각 대학 재학생들이 엄숙한 마음으로 집결하였다. 80년대 군부독재정권을 청산하고 민주화쟁취를 위해 희생된 학생열사 합동추모제를 계기로 현 정부와 수구세력의 반역사적 책동을 저지하는데 힘과 지혜를 모아나가기 위해서이다.

서강민주동우회에서도 오세제회장과 정선임국장이 김의기열사의 영정을 모시고 보신각에서 청계광장까지 열사거리 순례를 하였다. 이어 청계광장에서 학생열사 희생자 합동 추모 문화제를 진행하였으며 3시 노동열사 순례단과 결합하여 범국민추모제를 함께 진행하였다. 그리고 윤봉구(83 물리)동문이 서강민동 깃발을 들고 기수단으로 참가하였다.

전민동과 전대협동우회는 후배 학생운동세대와 함께 매년<민족민주 학생열사. 희생자 합동추모 문화제>를 공동으로 추진할 것을 결의하였다. 또한, 이를 통해 연대와 소통을 공고히 하여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고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역사를 만드는데 소임을 다할 것임을 결의하였다.

 

화, 2015/06/3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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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삶은 내가 창조하는거다가르침의 삶

                                                                    장영란(77/국문)

 

정선임: 안녕하세요.장영란선배님! 3년 전 무주에 있는 선배님 댁을 방문하여 하루 밤을 보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선배님 댁에서의 1박2일은 짧은 시간이였지만 소박한 삶이란 추상적인 개념이 “아! 이런 거로구나”하며 아주 구체적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아이들이 커서 자기 둥지를 틀러 나가기 시작하니 좀 줄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안을 둘러보니 뭐가 그리 많은지요. 선배님 댁은 정말 있어야 할 것만 있는 단아하고 군더더기 없는 삶의 모습이였어요. 선배님 집이야기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장영란: 먼저 간단 소개를 해야겠지요. 77학번 장영란입니다. 96년 서울을 떠나 98년 무주에 자리 잡고 농사를 짓고 있어요. 그때 작은애가 돌도 채 되기 전이었는데 지금은 사회복무요원이랍니다. 부부는 농사를 짓고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지내니 네 식구가 하루 세끼 함께 먹으며 살았습니다. 징글징글하지요? 이렇게 4식구가 365일 24시간 붙어 지내는 우리 집은 평수로 15평. 시골집이다 보니 양 옆으로 헛간이 있긴 하지만 작은집입니다. 집이 작으니 적게 지닐 수밖에 없네요. 후배가 우리 집에 왔을 때 놀란 게 아마 안방 때문일 텐데……. 아무것도 없고 뒷벽에 대나무 활대 하나 결려 있습니다. 아궁이로 불을 때는 구들방인데 아궁이 자리 위로 반다지 벽장이 있어 옷가지와 이불을 거기다 넣어놓으니 불편할 건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방. 이건 무슨 대단한 철학이 있어 시작된 게 아니라 구들방에 종이장판이라 뭘 놓으면 그 자리에 곰팡이가 피더라고요. 그래서 아무것도 안 놓고 살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살다 보니 좋데요. 사람이 잠자는 방이 고요하고 걸리적거리는 게 없으니까요. 또 손님이 오시면 그 방에서 모여 이야기 나누기도 좋고요.

정선임: 선배님 제가 찾아뵈었을 때 명상요가를 하셨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장영란: 명상은 했지만 요가쪽 명상은 아니고요, 그냥 가만히 앉아서 하는 명상을 했어요. 명상하는 분이 동네로 이사를 오셔서 명상이 뭔가 한번 배워보자 하고 시작을 했는데……. 한동안은 열심히 했어요. 아침저녁으로. 3년 이웃들과 명상모임도 하고요. 한데 안하던 사람이 하려니까 억지일 때가 있어요. 그래서 올해는 명상모임도 쉬면서 다음 단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명상을 하면서 뭐 깨달았냐? 그럴 리가. 다만 세계관이 바뀌었지요. 죽음이 무언가? 지금 이 생, 그리고 나. 생각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공부도 한 거지요. 그러면서 전에는 이게 옳아! 이런 절대선 기준이 강했다는 걸 알았지요. 아마 그래서 운동권과 잘 맞았던 것 같네요. 명상을 시작할 무렵이었을 거예요. 어느 날 돌아보니 내가 생각하는 게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내 삶은 내가 창조하는 거다’라는 가르침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랑으로 창조하고 웃으면서 받아들이자. 이게 요즘 마음입니다. 혹시 명상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나비랑북스에서 나온 책 <옴니>를 권해 드려요.

정선임: 그리고 김광화선생님의 요즈음의 근황도 알고 싶습니다. 대학 안간 청소년들과 함께 즐거운 도모를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장영란: 우리 남편 근황은 질문자의 개인 관심사인 것 같은데요? 우리 부부는 거의 모든 삶을 함께 하니 그냥 내 이야기로 풀어가도 괜찮을까요? 우리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지 않더니 어느덧 대학도 다들 안 갔어요. 그 덕에 돈 걱정 없이 살았지요. 앞에도 산 뒤에도 산 옆에도 산. 첩첩 산에 살다 보니 사람이 아주 귀하지요. 아이들이 많이 외로울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아이들은 자연이다>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삶을 알려 동지들과 만나려고요. 삶을 쓰는 일이 그래요. 어딘가에 연재를 하고 그 연재한 걸 모아서 책이 되려면 몇 년 거기에 집중해야 하더라고요. 이 책은 우리 4식구가 몇 년을 집중해서 얻은 보석이지요. 그 덕에 유유상종. 아이들 친구들이 생겨났고, 우리 아이들이 잘 자라났습니다. 이제는 학교 안 간다고 하면 ‘아! 홈스쿨링 하는구나!’ 하고 이해하는 사회문화도 만들어졌고요. 이렇게 우리 아이들 자랐는데, 문제는 연애와 결혼이에요. 그래서 우리 부부가 다시 ‘며느릿감 사윗감 기르기’를 해야겠구나 생각했답니다. 이 사회에 젊은 청년들 가운데 시골서 농사짓고 살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을 응원해 며느릿감 사윗감 풀을 만들어야겠구나. 우리 아이들이 시골서 살고 싶어 하느냐고요? 맞습니다. 이상하지요? 저이가 복이 많구나! 이렇게 넘어가 주세요! 자식들과 동지일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하지만 당사자인 우리 아이들은 고군분투해야 할 때가 많답니다. 아직 개척기니까요. 그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지요. 큰애가 스물다섯까지 집에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는지 서울로 올라가 청년공동체 생활을 3년 했어요. 혼자서 고요히 살던 아이가 한 방에 넷씩 살고 한 집에 열 명 남짓 복작거리는 곳에서 살려니 어땠을까요? 여하튼 그 덕에 신랑감을 찾았네요. 올 5월에 어느 산골에서 친구들이 꾸려준 결혼식을 했어요. 결혼식도 젊은이들답게 1박2일을 하데요. 힘도 좋아라~~ 우리는 밤에 도망 왔지요. 지금은 전남 누구네 빈 집에 살면서 자기들의 보금자리를 만들 땅을 찾고 있답니다. 큰애 덕에 도시서 사는 청년들을 여럿 만나보았는데요, 시골서 살고 싶어 하는 젊은이가 제법 있어요. 뻔히 내다보이는 규격화된 삶이 아니라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아보고 싶은 거지요. 그러려니 자본의 간섭이 약한 시골에서 몸 움직여 살고 싶다. 또 대안교육이 십년 이십년 흘러가면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생겨나기도 하구요. 요즘 귀농학교에 19살, 스무 살 청년이 수강을 하는 것도 이런 흐름이겠지요. 어느 날 남편이 나서데요. 20대 젊은이 가운데 지금 시골서 사는 이들을 모으고 있어요. 요즘 시골에 스무 살 젊은이가 살고 있냐고요? 있긴 있어요. 다들 그리움이랄까 여하튼 마음이 통해 지금 작은 모임을 하고 있답니다. 아직까지는 주먹 안에 들어갈 작은 눈덩이지만, 앞으로 청년유랑단을 만들 예정이에요. 누군가 불러주면 달려가 ‘시골서 사는 20대 청년 이야기’를 해 주려고 하고 있답니다. 응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선임: 제가 찾아뵈었을 때는 직파법으로 논농사를 지으셨던 것 같은데 농사 이야기도 들려주시고 선배님 가족이 함께 쓴 ‘아이들은 자연이다’, ‘자연달력 제철밥상’의 책이야기도 부탁드립니다.

장영란: 하룻밤 자고 갔는데 유심히 보셨네요. 우리 남편은 논을 사랑해요! 상주 들판 사람이라 벼농사 짓던 유전자가 강한 듯해요. 논농사 지으며 한쪽에서 이런저런 실험을 여러 해 하더니 직파를 하고 있습니다. 직파가 뭐냐? 논농사를 잘 몰라도 모내기는 아시지요? 모내기는 못자리에서 벼의 싹을 길러서 그 모(벼 싹)을 논에 심는 일을 말해요. 우리는 손으로 모내기를 십년 이상 했어요. 아. 힘들어라.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허리가! 직파는 모내기 없이 볍씨를 논에다가 바로 흩뿌리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농사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몇날 며칠 새벽부터 저녁까지 할 일이, 한 시간 볍씨 훌훌 뿌려가지고 되니까요. 물론 말같이 쉬운 건 아니에요. 일단은 벼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벼만이 아니라 논에서 사는 여러 가지 풀까지도 잘 알아야 해요. 일만 쉬운 게 아니라 벼가 달라요. 벼가 활개 치며 자라는 게 눈에 보인답니다. 농사법도 농부의 세계관과 연결되어 있어요. 직파는 벼를 좀 더 자연스럽게 길러보고 싶다는 거지요. 유치원부터 대학에 유학까지 공들여 자식을 기르는 집이 있는가 하면 우리처럼 학교에도 안 보내고 그냥 놔두니 저 알아서 크는 집이 있는 것처럼요. 올해 논농사가 잘 되면 나중에 쌀을 팔까요? 논에서 활개 치고 자란 쌀을요. 논에 직파를 한다면 밭은 자연농법을 합니다. 기계로 땅을 갈지 않고요, 되도록 땅이 스스로 살아나게 하는 농사입니다. 풀은 호미로 일일이 다 매요. 유기농은 농약 비료를 안 주는 농사라면 자연농법은 기계 비닐 이런 것까지 쓰지 않는 농사에요. 온갖 기계와 기술이 발달한 지금에 맞지 않지요? 뭐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직접 해 보면 식구들 먹을거리를 이것저것 조금씩 심어 가꾸기에 좋아요. 이렇게 자연에 맞추어 자급자족하는 농사 이야기가 바로 <자연달력 제철밥상>입니다. 귀농계 베스트셀러라 ‘귀농의 정석’라는 별명이 있지요. 혹시 텃밭을 조금이라도 가꿔 볼 생각이 있는 분이라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시골 밥상에 관해서 여러 군데 글을 쓰고 책도 여러 권 냈어요. 산골서 식구들과 살면서 하기 좋은 일이 글 쓰는 일이더라고요. 돈도 들어오고, 십만 원 이십만 원 이 돈이 도시서는 푼돈일 수 있지만 시골서는 쏠쏠해요. 또 나도 이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도 생겨 농사도 더 열심히 짓게 되더라고요. 그 사이 인터넷과 디지털 카메라까지 생겨나서 글 쓰고 사진 찍어 언론사나 출판사에 보내는 게 다 집안에서 할 수 있으니까요.

지난해까지 한겨레신문에 “숨 쉬는 밥상‘ 연재를 마치고, 요즘에는 꽃 이야기를 쓰고 있답니다. 꽃은 꽃이되, 벼꽃, 콩꽃, 고추꽃, 호박꽃 이런 우리를 먹여 살리는 농작물의 꽃 이야기이지요. 남편과 둘이 공동 작업을 하고 있는데 착착 잘 되네요. <아이들은 자연이다>때 집중해서 몇 년 공동 작업할 때를 떠올리게 되네요. 그때도 참 좋았지요. 부부로 여러 해 살면서도 둘이서 정신세계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게 교감을 나눠본 적이 없었거든요. 지금은 식물 하나하나에 관해 혼자라면 살피지 못할 여러 면을 둘이기에 서로 묻고 새로운 각도에서 사진으로 남기는 일을 할 수 있어요. 우리가 살면서 늘 밥 먹고, 콩 먹고, 오이 먹고 살지만 그 식물들이 어떻게 꽃을 피워 자손을 번식시켜 가는지? 모르잖아요. 내 몸을 이루는 벼와 콩에 대해 그 생명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나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져요. 기독교에서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고 하잖아요. 그 말이 뭔 말인지 이해가 가지요. 그래서 곡식 꽃에 관한 이야기와 사진을 하나하나 모으고 있답니다. 또 이렇게 모인 사진으로 동영상(곡식 꽃 하나에 3분, 5분짜리)도 시나브로 만들고 있어요.

정선임: 마지막으로 서강민주동우회에 하고픈 말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장영란: 멀리 살다 보니 민동 모임에 가지 못한지 오래네요. 민동 사무국이 다시 꾸려져서 반갑습니다. 멀리서나마 응원할 마음을 딱 먹었는데, 이런 인터뷰를 해 달라고 하네요. 하라는 거라도 고분고분 하기로 했는데 이런 질문이 떡 달려있네요. 제대로 참여도 안 하는 사람으로 주제넘은 이야기라 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그래도 한마디 해 볼까요? 개떡같이 이야기해도 찰떡같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전여농이라는 단체를 아세요? 전국여성농민연합회. 우리나라 농민운동이 다시 일어나면서 전농(전국농민연합회)이 생겼지요. 그때 농촌여성들의 자주적인 활동을 위해 따로 여성농민연합회를 만들었으니 전농과 커플 조직입니다. 전여농은 투쟁투쟁! 농민운동에 열심인 조직인데요, 여기서 몇 년 전 토종씨앗 운동을 시작했어요. 지금 토종씨앗 모임인 씨드림이 바로 전여농 덕에 만들어진 모임인데요, 농촌여성들이 우리 토종씨앗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걸 모으고 실험 재배하는 일을 하면서 모임이 새롭게 바뀌는 걸 지켜보았습니다. 뭔가에 대항하는 모임에서 뭔가를 창조해나가는 모임으로.

민동 역시 태생이 투쟁 투쟁이잖아요. 게다가 현직 대통령의 출신학교로서 부담도 있을 테고요. 하지만 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자고 하는 일이잖아요. 민동 회원들이라서 할 수 있는 행복한 일이 뭐가 있을까?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게 민동 식구들은 피붙이 같아요. 그냥 학교 동창이 아니라 사촌 육촌 같다고나 할까요. 다들 자기가 하고픈 대로 맘껏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 가운데 혼자라서 못한 그 하고픈 것. 투쟁을 넘어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가는 민동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화, 2015/06/3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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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노는 언니, 민양운입니다.>

민양운(83/독문)

                                                                                                                       

안녕하세요? 83학번 민양운입니다.  88년도에 대전으로 이주하여 지금껏 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산 햇수보다 대전에서 산 햇수가 더 오래되었으니, 세월이 참 많이 흘렀습니다. 왜 대전에 왔냐구요? 흠흠, 아마도 운명이 아닐까요? 하하하하! 농담이 아니고요, 대전에서 와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가족을 만들었으니 운명이 아니고서야 아무 연고도 없는 대전에 왔을까 싶네요. 당시는 조직적으로 지역에 내려가던(이런 표현도 서울을 기준으로 둔 표현이네요) 막차를 탄듯해요. 제조업비중이 10%도 안되는 곳인데, 대화동공단에서 자취하며 3교대 공장생활을 하다가 90년도 초에 해고되어 지역 노동운동단체에서 활동하다 그곳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았습니다. 큰 아이는 스물 셋, 청년유니온에서 활동하다가 군에 입대해 있고요, 둘째 아이는 스물한 살, 대부분의 청년백수와 비슷한 패턴으로 놀고 먹고 고민하며 우리 부부랑 함께 살고 있어요.

오십 인생 돌아보니 제 인생의 큰 방향을 결정지었던 사건을 치자면 스무살에 만난 학생운동, 그리고 대전으로의 이주와 서른 후반에 만난 여성운동, 40대에 시작한 풀뿌리지역운동을 꼽게 됩니다. 제가 워낙 심성이 잔뜩 꼬여있던 아이라서 청년시기 학생운동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지금쯤 심술보 잔뜩 달고 나 자신만 아니라 주위사람들 못살게 굴며 살고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운동덕분에 나 자신과 나를 둘러 싼 세계를 해석하는 언어를 가졌고, 나 자신과 세상을 바꾸려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조금은 인간이 된 거 같습니다. 진심으로 저를 돌봐줬던 모든 서강 선배들과 동기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1998년 서른 후반에 대전여민회를 통해 여성운동을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여성운동의 여러 기류 중에서도 '행복한 페미니즘'류를 만난 덕분에 내 안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나를 인정하게 되었고, 훨씬 가볍고 편해져 더 자주 더 많이 웃고 행복해 지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전여민회는 부설기관을 달며 자기 몸집을 불려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식이 아니고 분화와 연대를 통해 작지만 유연한 조직운동으로 더 다양한 지역의 여성을 만나는 방식으로 여성운동을 가꾸어왔습니다. 제가 지금 활동하고 있는 풀뿌리여성마을숲은 대전여민회 부서기관이었던 풀뿌리여성운동센터가 독립하여 만든 단체입니다. 저는 여성운동을 통해 차이는 곧 결별의 이유가 아니라 축복이라는 것을 알았고, 여성들간의 연대와 자매애도 알았고, 자기 것을 움켜쥐고 몸집을 키우는 것 대신 가진 것을 내어 주고 지원해 주어 시작을 돕는 맏언니조직운동도 알게 되었습니다. 여성운동 덕분에 저는 조금 더 성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요즘 매일 새벽 5시면 마을부엌으로 출근합니다. 이 일은 금전적 보상이 주어지는 일은 아니지만 지난 석 달 동안 저에게 가장 중요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제가 공동대표로 있는 풀뿌리여성마을숲의 공동체경제활동 단위인 마을부엌에서 저는 매일 우리밀발효종빵을 반죽하고 굽는 작업을 합니다. 마을부엌의 출발은 2007년 제가 살고 있는 대전 중구 중촌동의 여성들과 만든 마을어린이도서관짜장에 있습니다. 임신,출산,육아로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고군분투하던 동네엄마들이 마을어린이도서관을 만들었고, 마을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마을공동활동을 통해 성장한 엄마들이 경력단절여성들을 기다리고 있는 나쁜 일자리 말고 마을활동도 하면서 돈벌이도 되는 일자리를 만들어보자고 하면서 2010년에 만들었습니다. 우리밀로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마을부엌보리와밀은 1인 활동 마을기업으로 시작하여 인증사회적 기업이 되어 6인사업장까지 확장했으나 정부지원없이 자립하기에는 힘에 부쳐 지난 5월부터 공동대표 둘까지 비급여 자원노동을 보태며 회생을 꿈꾸고 있습니다. 가치있는 마을공동활동을 하면서도 먹고살 수 있는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마을부엌은 천연발효종 우리밀빵을 비롯하여 수제우리밀쿠키 등을 생산하는 제조업 공간과 금요현미밥상 나눔, 천연발효종빵동아리, 반찬봉사동아리, 요리교실, 마을강좌, 지역제철농산물 꾸러미 공동구매, 공정무역커피 판매 등을 하는 마을활동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 별명이 마을에서 노는 언니입니다.

여기서 마을은 주로 중구 중촌동, 목동, 대흥동 등 대전의 원도심 마을입니다. 도심한가운데에서 옥상텃밭농사를 시작한지 햇수로 치면 5,6년되는데 작년부터는 인근 목동성당 내 수도원텃밭도 함께 하면서 밥도 같이 먹고, 텃밭음악회도 열기도 합니다. 마을어린이도서관짜장을 처음 문을 열 때 제가 사무국장이었는데, 지금은 4대 도서관 관장과 어린 아이를 둔 젊은 엄마들이 주축이 되어 그림책모임 등 소모임활동과 방학프로그램 등 엄마들이 직접 진행하고 있습니다. 마을도서관을 통해 전업주부들이 마을활동에 참여하는 만큼 성장하고 세계가 확장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마을에서 공동활동 공간이 갖는 의미일거라 생각됩니다. 중촌동에서 운영하는 또 다른 마을공간으로는 마을공방자작나무숲속 공방이 있습니다. 200912월 문을 열렸던 마을까페 자작나무숲이 올 해 마을공방으로 전환한 것인데요, 마을까페에서 정기적으로 열었던 마을 장터에 참여하던 핸드메이드 주민작가 셋이 주축이 되어 운영하는데, 핸드메이드 주민강좌와 작품전시와 판매를 하면서 마을장터를 기획하고 진행합니다.

이외에도 제가 마을에서 하는 활동 중에는 마을학교기획, 마을축제 기획, 마을역사투어가이드도 있습니다. 저에게 마을은 삶터이자 일터이자 놀이터인 셈입니다. 생활세계에서 이웃과 함께 놀고먹고 떠들고 노래하며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도시에서 늙어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 같습니다. 젊은 날 함께 한 친구들이 있어 추억을 나누고, 마을 구성원으로서 나이에 걸 맞는 또 다른 역할을 기꺼이 수행해 간다면 괜찮은 삶 같지 않나요? 부끄러우면서도 감사하게 이런 활동이 바탕이 되어 올 해 5월 저는 풀뿌리현장을 가꾸는 여성운동가에게 주어지는 제1회 박영숙살림이상을 수상했습니다. 앞으로도 별 일이 없는 한 저는 이렇게 마을에서 살아 갈 것입니다. 바람이 있다면 환갑쯤에는 마을살롱을 차려 더 늙기 전에 살롱마담이 되어보고 싶습니다. 좋은 음악과 문학과 술과 춤과 정치토론이 격렬하게 때로는 나른하게 진행되고, 혼자서 혹은 친구들과 떼로 몰려와 왁자지껄 함께하는 공간에서 예순초반 인생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 다음은? 하하하! 예순 인생이 쌓여 그 다음 삶을 만들어 가겠지요. 더 늙기 전에 제가 사는 대전 중촌동에 놀러오세요. 많은 것은 장담할 수는 없고 현미밥에 나물반찬 하나 올린 소박한 밥상은 차려드릴 수 있어요.

                                                   

 

 

화, 2015/06/30-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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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대필 조작 강기훈사건 기록 거짓말 잔치출판기념회

63일 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유서대필 조작인 강기훈사건 기록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책은 안재성 작가가 수개월간 많은 자료들을 읽고 정리한 르뽀, 다큐형식의 기록물이다. 100여명이 넘게 참여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김선택(74/경제) 동문이 강기훈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동문은 이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과 연대하여 자료집, 평가서 발간작업 및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에 대한 국정조사와 국회 청문회 등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구로지역 동문들과의 만남

정선임 사무국장은 구로디지탈역 근처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선배들과의 617일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장근주(78/국문), 정용수(81/사학), 함정식(83/물리) 동문이 참석하였으며 서강민동에 대한 생각과 이후 사업계획을 정리한 자료를 공유하였으며 서강민주동문회의 역사와 방향 등에 대하여 생생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되었다. 이 자리에서 서강민주동문회의사업이 너무 부담되지 않으나 의미있고, 식상하지 않은 푸근한 소통의 자리의 기초가 되었으면 하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수제 딸기쨈 판매

차응선(81 사학)동문이 지난해 5~6월의 보릿고개를 넘기려 제조해 판매한 딸기잼을 올해 제법 양을 늘려 판매한다. 알갱이가 살아있는 싱싱한 딸기를 무방부제,무색소로 만든 수제 딸기쨈이다. 가격은 1kg 한병에 10,000(유리병포장) 택배비는 4병까지는 3,000원이다. 5병 이상 주문시는 택배비가 없다.주문은 문자나 전화로 하면 된다. 입금계좌: 새마을금고 4108-10-013584-1 차응선(010-5231-6571) 올해 생산된 농산물로 만든 <건강꾸러미>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블로그(http://blog.daum.net/root_2014/62)<http://m.blog.daum.net/root_2014/110>를 참조하면 된다.

 

송학골 작은농장 산재배 고사리

충남 아산 송악의 산촌마을에서 농사짓고 있는 김주상(83 신방)동문이 2013년 충남도 희망산촌 만들기사업의 일환으로 고사리 재배를 시작했다. 작년 2014년에는 소량 수확에 그쳤으나 올해 2015년에는 식재 후 3년차 수확이 본격화되어 꽤 많은 양의 고사리를 수확했다. 사실상 첫 수확인데 판로를 확보하고 있지 못한 터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유기질 거름을 주었고 농약이나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기농 인증을 받지는 않았으나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재배하였다고 한다. 생고사리를 채취해 끓는 물에 삶아 햇볕에 말렸다. 1Kg의 생고사리를 삶아 말리면 약 80g의 건고사리가 나온다고 한다. 건고사리를 지퍼백에 100g 단위로 포장해 가격은 100g1만원이며 400g까지는 택배비 3천원이 추가된다. 500g 이상 주문시 택배비는 무료다.입금계좌:농협483023-52-102013김주상(010-8537-3579)

 

*서강민주동우회에서는 귀농하신 분들의 농산물을 직거래할 수 있도록 소식을 공유합니다.

서강민동은 소식을 공유하고 거래는 직거래를 원칙으로 합니다. 이야기가 있는 건강한 농산물을 동문들에게 판매하고자 하는 동문은 010-2490-7933(정선임)으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7,8월 가능하면 귀농한 분들의 현장을 방문하여 직거래 건강장터 매뉴얼을 만들어 공유하려하니 많은 연락 부탁드립니다.

 

연세대 이한열 제막식에 마구잽이 공연

69일 연세대 한열동산에서 이한열비 제막식이 있었다. 유가족과 민주인사, 서울시장 등이 참석하였고, 정일수(79 경제)동문을 비롯하여 박종부(78 화공), 임상철(80 사학), 이주섭(83 독문), 이장길(89 경제) 동문 등 마구잽이 6명의 학춤 공연이 많은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인성교육법 제정에 대한 토론회

20157월부터 전국의 초··고등학교에서 인성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게 된다. 인성교육진흥법은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을 갖춘 시민 육성'을 목적으로 하며, 이 법이 중점을 두는 가치는 예, ,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심 등이다. 그러나 인성교육이 소홀히 되는 학교 안팎의 근본적 원인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공교육의 민주시민교육 기능을 약화시킨다는 비판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민주시민교육법 제정이 여러 차례 좌절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인성교육진흥법의 제정은 이러한 논란을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618() 18시 흥사단 3층 강당에서 이에 관한 토론회가 있었다. 흥사단 사무총장을 했던 홍승구(77 철학) 동문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최원경(81/철학)동문 더불어 휴활동가 지원봉사 진료

최원경(81 철학)동문이 바쁘다. ‘더불어 휴에서 자원봉사로 활동가 치료에 나서고 태극권 배우랴 공부모임 가랴 개업했을 때보다 훨씬 바쁘다고 한다. 연락처는 010-8716-4280이다.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창립10주년 후원의 밤 초대

이강원(83/경영) 동문이 7/9() 630분 프레지던트 호텔 31층에서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창립 10주년 후원의 밤에 서강민주 동문을 초대한다고 한다. 이동문은 경실련 갈등해소센터부터 시작해서 지난 10년간 갈등과 사회발전의 선순환을 위해 노력해 왔다. 새로운 10년을 기약하는 자리에 관심 있는 동문들이 함께해주기를 바란다.

화, 2015/06/3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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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원)

지출(원)

내역

금액

비고

내역

금액

비고

5월이월금

11,290

인건비

1,000,000

사무국장

후원기금

2,000,000

김학원(81)후원

식비

84,500

100,000

이현일(83)

연회비

운영비

194,750

컴퓨터본체

무선랩,문자비용

사무용품 등

10,000

장영란6월회비

사업비

134,000

근조기

64,000

운영위회의

연대비

100,000

학생열사추모제연대비

27,000

추모제 뒷풀이

기타비용

2,500

은행수수료

172

은행이자

임차료

200,000

5~6월

전화요금

10,000

3~6월

총합

2,121,462

총합

1,816,750

통장잔고

304,712

*서강민주동우회는 동우회 활동을 위한 기금후원과 cms

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동우회여러분들이 정성으로 모아주는 후원금과 회비는

서강민주동우회의 따뜻하고 건강한 소통과 만남을 위한

비용으로 사용됩니다

후원계좌: 농협(오세제) 302-0958-9274-01

              우리(오세제:서강민주동우회) 1002-553-610205

              자세한 내용은 정선임(010-2490-7933)으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화, 2015/06/3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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