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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비평]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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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비평]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

익명 (미확인) | 금, 2015/07/10- 09:41

 

최근 대법원은 소송을 제기한지 10년, 대법원에 계류된 지 8년 4개월 만에 ‘대법원 최장기 미제 사건’이라 불렸던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노동조합 설립 신고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법원은 노동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헌법상 권리인 노동3권을 체류자격이 없다고 차별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이 무려 8년 동안 선고를 미루다 쓴 판결문은 고작 8장, 게다가 법관들이 치열하게 고심한 흔적을 찾아볼 수도 없다고 합니다. 아쉬움도 많지만 이주노동자의 결사의 자유와 동등한 권리 보장에 방점을 찍은 판결임은 확실합니다. 조영관 변호사의 판결비평으로 이번 판결의 의미와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과정을 되짚어 봅니다.
 


 

 

[광장에 나온 판결] 미등록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합법화 판결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

 

대법원 2015.6.25. 선고 2007두4995 전원합의체 판결 (노동조합설립신고서반려처분취소)
대법원장 양승태(재판장) 대법관 권순일(주심) 양창수 민일영 이인복 이상훈 김용덕 박보영 고영한 김창석 김 신 김소영 조희대 박상옥

 

조영관
 조영관 변호사

 

 

노동과 노동조합

 

얼마 전, 아르바이트 직원이 임금체불 사실을 고용노동부에 신고해 화가 난 사업주가 그동안 밀린 임금을 ‘10원짜리 동전’으로 지급한 사건이 있었다. 사업주는 “있는 돈 없는 돈 싹싹 긁어 줬는데 뭐가 잘못됐냐? (10원짜리 동전은) 돈이 아니냐?”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노동’을 바라보는 인식의 적나라한 단면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와 사용자는 실질적으로 대등할 수 없다. 역사를 통해 증명된 사실이다. 사용자는 임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을 수도, 체불한 월급을 10원짜리 동전으로 줄 수 있지만,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저장해두거나, 분/초단위로 나누어 제공하지 못한다. 사용자는 노동자들을 선별하여 고용할 수 있지만, 노동자는 사용자로부터 지급받는 임금을 유일한 생계수단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필연적으로 고용관계는 불평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대등한 계약의 당사자로 인식되었던 때는 저임금·장시간 노동 등의 열악한 근로조건도 ‘계약 자유’라는 이름으로 자유롭게 허용되었다. 그러나‘계약 해제의 자유’는 곧 사용자의 ‘해고의 자유’가 되었고, 노동자는 사용자의 자의에 따라 언제든지 생계수단에서 박탈되어 실업상태에 놓일 수 있게 되었다. 열악한 작업환경이나 장시간 노동으로 산업재해를 입더라도 노동자 개인의 책임으로 인식되었다. 

 

결국, 노동자들은 살기 위해 모이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단결활동은 오랫동안 금지되었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만들어 근로조건을 집단적으로 교섭하는 행위가 사업주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노동조합이 합법화 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노동자들의 파업은 노동력의 자유로운 거래를 제한하는 위법한 행위라는 이유로 형사처벌과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었다(한국은 아직도 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 노동자들의 오랜 투쟁으로 노동자들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동자의 권리로 승인되었다. 우리나라 헌법에서도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제33조 제1항)”고 규정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서도 “노동조합이라 함은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를 말한다(제2조 제4호)”고 정의하고, “근로자는 자유로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있다(제5조)”고 하여 일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음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외국인이 국내에 체류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사증(VISA)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흔히 ‘비자’라고 부르는 사증은 외국인의 입국자격이 있음을 증명하는 서류로서 각 체류목적에 따라 나누어진다. 이 중 관광이나 일시방문 등의 목적으로 단기체류(일반적으로 90일 미만)를 넘어 국내에 90일 이상 장기체류 하려는 외국인에게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관할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각 체류자격을 소명하고, 이에 따른 외국인 등록을 하도록 하고 있다. 2015년 3월 현재 우리나라의 등록외국인 숫자는 약 110만 명으로, 제주도 인구의 2배에 달한다. 

 

만약,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이 90일 이상 체류하면서 체류자격에 따른 등록을 하지 않거나, 최초 등록을 하였더라도 부여된 체류기간을 도과하여 국내에 계속 체류하는 경우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규정된 행정절차(외국인 등록절차)에 위반한 것이 되고, 이렇게 등록되지 않은 외국인들을 ‘미등록 외국인’이라고 부른다. 

 

한국정부는 미등록 외국인 대신 ‘불법체류자’라는 말을 공식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등록절차를 위반하였다는 것을 강조하는 행정의 언어다. 출입국관리법상 외국인 등록절차 위반에 따른 처벌을 받는 것은 인간으로서 외국인의 아주 일부분의 모습에 불과하다. 하지만 ‘불법체류자’라는 용어는 사람을 ‘체류’의 관점으로 한정함으로써,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통해 그 안에 살아 숨 쉬며 존재하는 구체적인 인간을 지워버린다. 유엔의 인권규약 등 관련 국제인권문헌에서도 ‘불법체류자(illegal migrant)’ 라는 표현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undocumented migrant worker)’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하고 있는 이유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

 

지난 6월 25일, 대법원은 8년간이나 심리해오던 사건의 판결을 선고했다.‘노동조합설립신고서반려처분취소소송’이라는 다소 긴 사건명을 가진 이번 대법원 판결의 요지는 한 마디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판결을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시계를 10년 전으로 돌려보자. 서울, 경기, 인천 지역에서 취업하여 일하고 있던 이주노동자(미등록 이주노동자 포함) 91명은 2005년 4월, 지역별 노동조합 형태인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같은 해 5월 3일,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제10조 제1항에 따라 노동조합 규약을 첨부한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노동부장관(현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제출했다. 

 

그러나 서울지방노동청장(현 서울고용노동청장)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반려(거부)했다.
이주노조가 2개 이상의 사업 또는 사업장의 근로자로 구성된 노동조합이므로 설립신고서와 함께 ① 조합원들이 소속된 각 사업 또는 사업장별 명칭과 조합원 수 및 대표자의 성명, ② 소속 조합원들의 취업자격 유무 확인을 위한 조합원 명부를 제출해야 하지만 이들을 제출하지 않아 절차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③ 이주노조의 임원이 현행법상 취업 및 체류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므로, 그 외 소속 조합원의 신분도 주로 불법체류자일 것으로 추정하여, 이주노조를 노동조합에 가입 자격이 없는 불법취업 외국인이 주체가 되어 조직된 단체로 보고 실체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이주노조는 2005년 6월 14일, 서울지방노동청장을 피고로 하여 노동조합설립신고서 반려(거부)처분이 법적 근거가 없고, 그 반려처분은‘불법체류’이주노동자라는 사회적 신분에 따라 단결권 등 노동기본권을 차별하는 행정처분으로서 위법․무효이므로 마땅히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10년이 걸린 소송의 시작이었다. 

 

제1심을 담당한 서울행정법원 제13행정부(재판장 이태종 판사)는 2006년 2월 7일 피고 서울지방노동청장의 주장을 전적으로 수용한 반면, 원고 이주노조의 주장을 모두 배척하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이주노조는 제1심 판결에 불복하여, 서울고등법원에 항소를 제기하였다. 서울고등법원 제11특별부(재판장 김수형 판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라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근로를 제공하고 있다면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된다고 판단하여,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 이주노조의 손을 들어주었다. 2007. 2. 23. 피고 서울지방노동청장은 서울고등법원 항소심 판결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하였고, 무려 3명(김황식-양창수-권순일)의 주심 대법관을 거치며 8년 4개 월 만에 고등법원의 판결과 동일한 내용으로 피고 서울지방노동청장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8년간 눈감은 대법원

 

대법원의 이 사건 판결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절차적 요건과 관련하여 “‘2개 이상의 사업 또는 사업장의 근로자로 구성된 노동조합이므로 조합원이 소속된 사업 또는 사업장별 명칭과 조합원수 및 대표자의 성명’에 관한 서류를 설립신고서에 첨부하여 제출하도록 보완을 요구한 것은 구 노동조합법 시행규칙 제2조 제4호에 따른 것이긴 하나, 이 조항 자체가 상위 법령의 위임 없이 규정된 것이어서, 일반 국민에 대하여 구속력을 가지는 법규명령으로서의 효력을 갖지 못하므로 이주노조가 위 보완 요구를 이행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설립신고서를 반려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여,  상위 법령의 위임 없는 시행규칙은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하며 이를 근거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할 수 없음을 명확히 했다. 

 

둘째, 실체적 요건과 관련하여“타인과의 사용종속관계 하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 등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하고, 노동조합법상의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한, 그러한 근로자가 외국인인지 여부나 취업자격 유무에 따라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의 범위에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볼 수는 없다.”따라서, “취업자격 없는 외국인도 노동조합 결성 및 가입이 허용되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고, 피고가 이와 다른 전제에서 단지 외국인근로자의 취업자격 유무만을 확인할 목적으로 조합원 명부의 제출을 요구하고 이에 대하여 원고가 그 보완 요구를 거절하였다는 이유로 원고의 설립신고서를 반려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한 원심의 판결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제33조, 외국인의 지위를 보장한 헌법 제5조, 노동조합의 정의 및 노조설립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 노조법 제5조, 인종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노조법 제9조 등에 비춰볼 때 지극히 타당하고 상식적인 결론이다. 노조법상 근로자의 범위에 대한 법리도 이미 수차례의 대법원 판례를 통해 인정받아왔던 내용이다 ( 대법원 2004. 2. 27. 선고 2001두8568 판결, 대법원 2014. 2. 13. 선고 2011다78804 판결, 대법원 1995. 9. 15. 선고 94누12067 판결 등 ). 

 

대법원의 8년이 넘는 심리 지연으로, 이주노조는 모진 수난을 겪었다. 아노아르 후세인(방글라데시) 초대 위원장을 비롯해 미셀 카투이라(필리핀) 제4대 위원장에 이르기까지 이주노조 주요 임원들은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 표적단속 되어 강제추방 당하거나, 입국이 거부되었다. 2015년 제323차 국제노동기구(ILO) 이사회에서 채택된 제374차 결사의자유위원회 보고서에서는 8년째 계류된 이주노조 설립신고 상고심을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체류자격에 상관없이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와 단체교섭권을 전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을 한국 대법원에 촉구하기기에 이르렀다.

 

판결문에 미처 드러나지 못한 심리가 지연된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수차례 읽어본  8장의 판결문만으로 대법원이 지난 8년 동안 이 사건을 두고 고심한 흔적을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고등법원 판결문에 언급된 법리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으며, 유일하게 반대의견을 제시한 민일영 대법관의 의견 역시 제1심 판결문 및 피고 측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원론적 내용에 그치고 있다. 오히려 대법원은 사회적 약자인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정당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눈을 감아버렸다. 

 

최고법원의 권위와 존엄

 

8년 4개월 동안 심리를 마친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던 날, 이주노조 조합원들은 대법원 정문 앞에서 짤막한 기자회견을 했다. 평일 근무까지 조퇴하고 참가한 이주노조 조합원들의 모습은 감동을 주기 충분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대법원으로 들어가려는데, 대법원 소속 경비직원들이 갑자기 평소 개방되어 있던 출입문을 모두 막고, 차량이 통과하는 정문을 약 50cm 가량 열어두고서는 메가폰으로 “재판 방청은 10명밖에 안 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게다가, 이주노조 조합원들이 입고 있는 ‘투쟁’이라 적힌 조끼를 벗으라고 요구했다. 그 근거 규정을 물으니 당당하게 “법원조직법 제55조의2 제2항”이라고 답했다.

 

법원조직법 제55조의2 제2항 어디에도 ‘투쟁’이라고 써 있는 조끼를 입고 법원에 들어올 수 없다는 규정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법정의 존엄과 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하거나 하려고 하는 경우’또는 ‘그 밖에 법원청사 내에서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행위를 하거나 하려고 하는 경우’에 이를 제지할 수 있다고만 되어있다.

 

법원보안관리대 직원은 8년 4개월 동안 대법원 판결을 기다린 이주노동자들이 판결을 선고하는 법정에‘투쟁’이라고 써 있는 조끼를 입고 들어서는 것이 ‘법정의 존엄과 질서를 해치는 행위’ 이거나, ‘법정 내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행위’로 보였던 모양이다. 

 

이러한 자의적 판단이 바로 ‘위법’ 이고  ‘월권’이라 생각한다.
최고법원의 권위와 존엄은 법원에 출입하려는 조합원들의 투쟁조끼를 억지로 벗겨내어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권보장과 정의의 구현의 최후의 보루라는 사법부의 본연에 목적에 충실할 때 자연스레 인정될 수 있음을 대법원이 지금이라도 깨닫길 바란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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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노동조합을 소개합니다

김진용 | 민주노총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사회복지지부 선전국장

 

 

대한민국 촛불 혁명 역사를 함께 쓴 사회복지노동자

2016년 겨울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 혁명 물결에는 사회복지 노동자들도 동참했다. 당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는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과 함께 사회복지시국회의를 구성하였다. 휘날리는 깃발은 광화문의 차가운 칼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활활 타오르는 촛불과 함께 대한민국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을 계기로 사회복지 실천현장에도 사회복지시설의 비민주적, 비윤리적, 비도덕적 운영에 항거하는 사회복지 노동자들이 생겨났다. 피고 지고 또 피고 지는 무궁화처럼 사회복지노동조합은 거센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일어서고 쓰러지는 험난한 여정을 거치며 꿋꿋이 사회복지 실천현장의 민주화와 사회복지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싸워왔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서울경인사회복지노동조합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전신이 되다

특히 수도권 지역 시설과 기관의 사회복지노동조합 대표자들이 함께 교류하며 깊은 동료애 속에서 연대의 필요성에 절감한다. 이후 사업장별 노동조합은 2003년 서울경인사회복지노동조합을 출범시켰고, 이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의 전신이 된다.

 

6월 항쟁 이후 30년이 넘은 2018년 지금, 우리는 변하지 않은 사회복지시설의 비민주적, 비윤리적, 비도덕적 행태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사회복지노동조합이 마땅히 필요한 본질이자 이유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회복지서비스 분야 종사자들이 사회복지서비스를 위한 활동이 ‘노동’에 해당함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노동자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노동조합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노동조합의 역사는 짧지 않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결코 상식적이지 않은 사회복지시설, 그리고 좌절하는 노동자 

그동안 사회복지전달체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은 사회복지법인과 시설은 직영이나 위탁의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주지하다시피 종교계가 많은 비율로 운영권을 쥐고 있지만, 부처의 자비와 예수의 사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탐욕과 부정, 비리로 얼룩진 현장은 큰 상처를 동반했다. 어김없이 사회복지노동자들에 대한 탄압과 억압, 비상식적인 행태는 뒤따르는 일이었다.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등장하는 엄석태처럼 마치 양의 탈을 쓴 듯한 시설장들이 주름잡았고, 전혀 윤리적이지 않는 관리자들이 윤리를 논하는 조직에 참여하거나 사회복지시설 또는 사회복지계를 대표하여 윤리강령을 낭독하는 웃지 못 할 상황도 연출됐다. 그리고 이들을 두둔하는 카르텔이 형성되는 가운데 그들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은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회복지노동자들에게 큰 좌절을 안겨주곤 하였다. 

 

위탁시설을 사유화하여 족벌 가족 경영체제로 운영하면서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역량이 부족한 직계혈족을 중간관리자 또는 최고관리자로 임용하거나 각종 후원금 및 종교행위가 강요되는 조직 분위기에서 사회복지노동자들은 하루하루 숨죽이며 일해야 했다. 

 

각종 직능단체들이 가진 한계와 낮은 노동조합 조직률

사회복지사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사회복지사협회 조차도 사회복지 경영자의 눈치를 보며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수수방관할 때가 많다. 누구 편에서 입김이 작용하느냐와 같은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사회복지계에 여러 직능단체들이 있고 여러 모임들이 존재하지만 앞서 말한 고질적인 문제를 주요한 화두로 거론하고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시설장 중심으로 구성된 여러 직능 단체들은 본연의 목적보다는 시설장간의 친목과 인맥형성에 몰입하거나 입신양명의 도구로 활용되곤 했다. 사회복지 운동을 전개하는 단체들도 운동의 주체가 될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한 활동에는 거리를 두고 회피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종종 보인다. 혁신과 진보를 외치는 한국의 사회복지계가 매우 보수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이다. 외부 변화를 주창하는 목소리에 비해 정작 내부의 변화를 위한 노력은 상당히 부족하다. 다양한 사회복지 그룹 또는 헤게모니 중에서도 내부 모순 해결에 앞장서는 곳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다수를 포용하지 않는 소수 리더그룹의 활동은 궁극적으로 그들만의 리그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제는 모두가 말하는 복지국가 담론에서도 한국의 사회복지는 중요한 사실을 배제하고 있다. 늘 사례로 제시되는 북유럽 모델을 보자. 노조 조직률이 월등하게 높은 나라들이다. 또한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는 산별노조의 단체협약 적용이 사회적 합의처럼 되어 있다. 이들 국가가 상대적 빈곤이 낮고 사회복지 수준이 우리와 질적으로 다른 이유가 전적으로 노동조합의 영향력 때문은 아니겠지만, 현재 한국사회와 같이 그 상관관계를 아예 외면하는 태도는 틀렸다. 복지국가의 역사를 조금만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노동조합의 기본적인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모르지 않을 것이다.

 

노조가입률이 10%에도 못 미치는 한국사회에서 사회복지계의 가입률은 1%가 될까 말까 하는 수준이다. 통계는 헌법에 명시된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은 경험조차 거의 전무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복지국가를 말하면서도 ‘노동조합’은 말하지 않는 셈이다. 한국사회 열악한 복지수준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견해 가운데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자’와 같은 주장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희망은 다름 아닌 노동조합

그래도 희망은 있다. 청와대가 헌법 전문에 들어있던 '근로'라는 용어를 '노동'으로 수정하기로 했다. '노동'과 '노동조합'하면 거리감을 느꼈던 사람들에게도 이제 '노동'이라는 단어는 일상으로 스며들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조금씩 사회복지현장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복지노동자들이 생기고 있고, 용기를 내어 발언하고 행동하는 이들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사회복지노동조합은 모순된 일상에 안주하지 않는 이들과 끝까지 함께 하고자 한다. 일터에서 억울하게 피해 입은 사회복지노동자를 보호하고, 기득권의 횡포에 대항하며, 기댈 곳 없는 노동자를 위로하며 함께 행동할 수 있는 곳은 현실적으로 노동조합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날 노동조합은 시설비리에 맞서 싸웠고, 정부를 대상으로 사회복지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사회복지시설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운동에 앞장섰다. 지금도 위탁시설 노동자에 대한 노동권 보장, 연장근로수당 정상 지급, 종교행위 중단, 후원 강요 철폐 등의 이슈를 지자체와 정부, 사회복지 현장에 제기하며 행동하고 있다.

 

최근 공공운수노조는 사회복지사, 보육교사, 요양보호사, 활동지원사 등 사회서비스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연대단위인 <사회서비스 공동사업단>을 구성하였는데 사회복지지부도 참여하며 활동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었던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도록 촉구하면서 그간 민간 시장에서 방치된 복지를 국가와 공공의 분명한 책임으로 전환시키고자 한다. 민간위탁 체제가 불러온 폐해를 국가적 차원에서 고발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민중에게 복지를 권리를, 사회복지 노동자에게 복지를 권리를.” 노동조합의 오랜 슬로건이다. 노동자는 행복한 일터를 꿈꿀 권리가 있다. 나아가서 상식을 되찾고 연대를 기반으로 하는 노동조합은 한국사회에서 권리로서의 복지를 재구성하기 위한 노력과 실천 또한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나쁜 역사도 반복된다. 가만히 있으면 단순한 반복에 그치게 된다. 우리는 이제 반복을 멈추고 사회복지 역사의 전환을 일으켜야 한다. 새로운 역사를 가능하게 하는 몫은 사회복지 노동자에게 달려있다. 노동조합은 그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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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 070-4393-0323

-노동조합 가입 : http://bit.ly/사회복지노동조합_가입

금, 2018/06/0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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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z join on April 30 migrant workers Mayday rally! 2pm at Jonggak square.
토, 2017/04/29-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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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어렵고 딱딱한 판결문을 시민의 눈높이에서 함께 읽고 얘기하는
<판결문 읽기 모임>을 10월부터 12월까지 격주 목요일마다 총 6회 진행합니다.

 

>> 모임 후기③ 헌법재판소의 주민등록증 발급시 열손가락 지문날인 합헌 결정,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모임 후기② 역사교과서 수정명령 적법 판결, 여러분은 공감하세요? 
>> 모임 후기① 시민의 눈높이에서 읽고 비평하는 <판결문 읽기 모임> 첫 문을 열었습니다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 청구, 허용해야 할까요? 

 

지난 11월 19일, 판결문 읽기 네 번째 모임은 A조, B조 합반으로 참여연대에서 열렸습니다.
같이 읽은 판결문은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문입니다. 

 

이 사건은 세 자녀를 둔 60대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외도하여 혼외 아이가 생기자, 집을 나가 현재까지 15년 간 별거생활을 하면서 이혼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언뜻 ‘그렇게 오랫동안 별거했고 이제와 다시 혼인 생활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인데, 이혼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이 사건의 쟁점, 혼인 생활의 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이혼 청구를 하면 허용해야 하는가 문제는 오랫동안 논란거리였습니다. 그래서 대법원 전원합의체(13명의 대법관회의)에서 이 사건을 다루었고, 선고를 내리기 전에 공개변론을 열어 원고측 대리인과 피고측 대리인의 치열한 공방을 실시간 중계방송도 했습니다.

 

대법원의 판결 결과는 어땠을까요?
7 : 6으로 외도 남편의 이혼 청구를 원칙적으로 허용할 수 없다고 나왔습니다. 

 

 

 

20151119_판결문읽기

 

 

 

 

이번에 판결문을 읽으며 알게 됐는데, 혼인제도는 민법 뿐 아니라, 헌법에도 그 규정이 있답니다. 헌법 제36조 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라고 규정하여 혼인제도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혼인을 유지할 수 없을 땐, 그 이혼 사유가 무엇이 됐든 부부 사이에 이혼에 관한 진정한 합의가 이루어지면 이혼이 가능하고(민법 제834조 협의상 이혼), 부부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부부 중 누구든 민법 제840조에서 정한 재판상 이혼사유가 있는 경우, 즉 배우자의 부정행위나 학대가 있을 때, 고부관계로 인한 갈등,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가정법원에 이혼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20151119_판결문읽기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외도를 해서 결혼 생활을 파탄에 이르게 한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었습니다. 이를 유책주의라고 합니다. 조강지처를 함부로 쫓아내지 못하도록, 혼인 파탄의 책임이 없는 배우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죠. 

 

하지만,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외국에선 도저히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에 이르면, 그 책임이 있는 배우자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파탄주의). 혼인관계를 회복할 수 없는데도 법적으로만, 외형만 혼인관계로 묶어두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것이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20151119_판결문읽기

 

 

 

7명의 대법관은 혼인 파탄을 야기한 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하는 것은 신의성실에 반하고,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크게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고 이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여전한 만큼, 모든 영역에서 양성평등이 실현되었다고 보기에도 미흡한 현실이라고 봤습니다.

더구나 외국처럼 이혼 후 부양의무가 법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외국은 협의이혼이 인정되지 않지만, 우리는 진솔한 마음과 충분한 보상으로 상대방을 설득해서 협의 이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파탄주의를 꼭 도입할 필요는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예외적으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하는 사유를 확대했습니다. 

 

반대 의견을 낸 6명의 대법관은 사회적 여건이 성숙되었으며, 혼인생활을 계속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한쪽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경우는 민법에서 규정한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혼인 생활의 파탄을 초래하는 이유가 복잡미묘하여 어느 한쪽에만 있다고 보기 어렵고, 외형적으로만 혼인이 유지되면 자녀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법적으로 부양의무가 마련되어 있지 않지만, 재판상 이혼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고 있고, 재산분할청구권도 있으니 법적 제도적 보완도 상당히 이루어졌다고 봤습니다.  

 

 

판결문을 읽은 참가자들의 생각은?

 

13명 중 빨간색 종이를 든 사람이 5, 녹색 종이를 든 사람이 8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로 나왔네요. 

하지만, 참가자들은 마지막까지 어떤 색깔의 종이를 들어야 할지 고심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쿨하게 털어버려야 한다, 외형만 혼인 유지하도록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다수로 나왔지만, 이혼 사건에선 피고(부인)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 이 사건에선 병약한 할머니가 남은 여생을 이혼녀로 끝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이해된다,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는 여성 배우자들을 보호할 제도적 방안들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다른 때와 달리, 이번 사건은 법관들이 판단 내리기 참 어려웠겠다며 고충을 이해했습니다.

 


* 이 사건 대법원 판결문을 보길 원하시면, 종합법률정보 사이트에서 사건번호 2013므568 로 찾으시면 됩니다.


 

화, 2012/11/2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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