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발전소 뉴스레터 Vol.4가 발행되었습니다


조성주 정치발전소 공동대표
민주주의 좀먹는 ‘콜센터 정치’
[조성주의 생각] 민원의 정치
관료 조직과 공무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엇일까? 내 짧은 행정 경험에 의하면 그것은 ‘민원(民願)’이었다.
업무의 담당 공무원들에게 시민들이 제기하는 민원은 특이사항 없이 오로지 매뉴얼대로 일이 처리되며 돌아가기를 바라는 관료 조직에게 추가로 신경 쓰고 고민해야 할 과제들을 만든다. 특히 최근에는 개별 관료 조직이나 공무원들이 시민들을 판매자가 고객을 대하는 것처럼 친절하게 응대해야 한다는 서비스 정신까지 강조되다보니 ‘민원’을 처리하는 것은 공무원들에게 더욱더 힘들고 그만큼 귀찮은 일이 되어버렸다.
어느 행정 기관이나 공공 기관을 가더라도 1층에는 ‘민원실’이 있고 행정 기관들은 민원 서비스를 더 친절하고 간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혹자들은 그런 서비스의 친절함과 상세함을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행정이라고 칭송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민원’이라는 말만큼 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키는 단어는 없다고 생각한다.
1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각자 행정 기관에 민원을 제기한 사례가 있었다. 임금 계산이 잘못되어 체불 임금이 발생하였고 계약 기간 만료와 정규직 전환 등의 문제가 겹쳐서 복잡한 문제로 비화되었다. 담당 부서와 공무원은 100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복잡한 임금 문제와 계약 기간 문제 등을 일일이 찾아보고 응대하느라 다른 일을 전혀 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나는 문제 해결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차라리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기존에 조직되어 있는 노동조합으로 안내하여 해결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으나 오히려 화들짝 놀라며 “왜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드냐”는 항의를 받아야 했다.
결국 이 노동자들은 각자가 개별적으로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하고 거친 항의를 반복하는 ‘악성 민원인’으로 돌변했고 수개월 동안 담당 부서는 이 문제를 두고 씨름하며 노동자들과 싸우다가 문제는 조금도 해결되지 못한 채 몇몇 개인들이 알아서 행정 소송을 진행하는 형태로 정리되었다. 행정 조직도 노동자들도 어떤 성과도 얻지 못한 채 서로 극심한 감정과 비용의 손해만 입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만약 처음부터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협상을 진행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1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처한 개별적 상황들은 모두 다르지만 조직으로 통합되는 순간 이 개별적 상황들은 자연스레 정리된다. 행정 조직 역시 개인들을 상대하며 일일이 설명을 반복하고 민원 처리를 하는 것보다 노동조합과 협상을 통해 문제를 단순화하고 더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결이 가능했을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결사의 자유에 기초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인권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앞선 사례처럼 한국의 정치는 여전히 시민들이 조직화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시민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로 조직화되면 무언가 큰 일이 일어날 것처럼 걱정하지만 사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스스로 결사하고 조직함으로서 개인으로 있는 순간에 발생하는 갈등의 수와 강도를 줄이고 그 비용을 적게 만드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의 말을 빌리자면 ‘민주주의의 엔진’은 ‘갈등’이다. 한 사회의 주요한 갈등들이 확대되고 또 통합되면서 그 갈등들을 조율하고 다루는 과정에서 사회가 발전하고 또 시민성도 더 좋아진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에서는 ‘민원’이라는 말이 ‘갈등’과 비슷하게 쓰이지만 그 지향하는 바와 결과가 분명히 다르다. ‘갈등’은 비슷한 문제에 처한 시민들이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그 힘을 통해서 사회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민원’이란 철저하게 개인으로 존재하면서 권력의 공정함과 선의에 호소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봉건영주나 왕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선의를 베풀 것을 기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설사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은 시민으로서의 대등한 관계가 아닌 동정심이나 특별한 호의에 기초해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더 많은 동정심을 자아낼 수 있는 특별한 처지의 개인이나 개인으로도 충분히 유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명망이 있는 지식인, 유명인들의 목소리가 정치에 더 많이 반영되고 별다른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한 다수의 시민들은 소외된다.
물론 개별의 민원으로 존재할 때 보다 큰 규모의 갈등으로 문제가 확대될 때 들어가는 비용이나 부담도 있게 마련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이라면 이 갈등 비용을 국가가 대신 해결해주었다. 그것은 대개 공권력을 동원하여 집단으로 결사하지 못하도록 억누르거나 개인들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민주화가 된 이후로는 더 이상 그런 방식으로 갈등을 다루기 힘들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 갈등을 다루는 비용은 곧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비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부분의 행정은 과거의 권위주의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방식은 도외시한다. 여전히 시민들이 ‘갈등의 당사자’가 아니라 ‘민원인’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쏟아지는 민원에 대한 대안으로 찾아낸 것은 시장의 방식이다.
언제부턴가 ‘민원’에 대한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미명 아래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것이 바로 수많은 ‘콜센터’들이다. 그것은 시민들에게 부여받은 책임의 방기이자 민주주의의 시장화와도 같은 것이다. 시민들에게 위임받은 권력이 ‘결사의 자유’를 기반으로 한 갈등의 사회적 조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콜센터 노동자들에게 친절한 서비스와 감정 노동을 강요하며 책임들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 우리 민주주의의 부끄러운 현실은 아닐까?

▲ 정부에서 운영하는 콜센터의 모습. ⓒ연합뉴스
현실의 민주주의 내지 민주정치의 핵심은 정당입니다. 그렇지만 정당에 대한 야유나 비난은 많아도 ‘민주주의에서 정당이 얼마나, 왜, 어떻게 중요한가. 또 좋은 정당, 강한 정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그리 체계적인 논의를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여당으로서의 경험이 있는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태 그런 논의가 없었기에 당내에 정치적으로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고, 좋은 정치를 하겠다는 열망을 가진 이들이 많음에도 새정치민주연합이 뿌리내리고 있는 사회적 기반이 무엇인지, 누구를 대변하고 있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다. 또 연간 160억 이상의 국고보조금을 받는 공당으로서 정책연구, 리더십 육성, 정치시민교육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이 의문들을 던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때리기’만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을 좋게 만들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당의 오래된 문제점들을 풀기 위해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사회에 기반을 둔 좋은 정당, 강한 정당, 팀으로서의 정당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그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나설 ‘준비된’ 주체가 필요합니다.
이에 정치발전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청년위 비정규직대책위원회 및 청년정치교육위원회와 함께 <좋은 정당 만들기 워크샵>을 준비해보았습니다. 이 워크샵이 새정치민주연합의 미래를 만들어갈 다음 세대들 안에서 ‘좋은 정당 만들기’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켜줄 마중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당원이 아닌 분들이 참여하셔도 괜찮습니다. ‘좋은 정당 만들기’에 관심을 가지신 많은 분들의 참여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좋은 정당 만들기 워크샵>
– 일시: 2015년 8월 9일, 일, 오후 1시 ~ 5시
– 장소: 서울시 청년허브 세미나실, 불광역 2번 출구
– 공동주최
정치발전소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청년위 비정규직대책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청년위 청년정치교육위원회
– 참가비: 1만원(입금계좌 : 762302-04-145322 국민은행 김경미(정치발전소))
– 참가신청 : http://bit.ly/좋은정당만들기_1
– 문의 : [email protected] / 010-4993-4787
[프로그램]
1부. 1시 – 3시
강의: 왜 좋은 정당이 중요한가
강사: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
교재: <정당의 발견>, 후마니타스, 2015년 7월말 발간 예정
휴식. 3시 – 3시 10분
2부. 3시 10분 – 5시
토론: 새정치민주연합 새로고침: ‘그래봤자 정당, 그래도 정당’
발제1: ‘맑스돌’보다 못한 정당 – 정당이 노동을 버렸을 때
김경미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청년위 비정규직대책위분과위원장, 정치발전소 기획실장
지정토론: 황종섭 정치발전소 실행위원, 전 노동당 언론국장
발제2: 청년정치, 사다리 다시 놓기
성치훈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청년위 청년정치교육분과위원장,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선임연구원
지정토론: 이동학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
정치발전소에서 강의와 토론이 함께하는 <정치가 평전읽기> 시즌1 참가자를 모집합니다.
정치발전소 회원모임인 ‘정치가 평전읽기’ 모임이 지난 1월 21일에 끝났습니다.
시즌 1과 2을 거쳐 긴 시간 이어졌던 모임이었습니다.
긴 모임에 함께 했던 후기 및 마지막으로 읽었던 김대중 자서전에 대한 서평을 ‘유성민’회원이 써주었습니다.
편견의 안개가 걷히자, 정치가가 보였다.
– 정치가 평전읽기 모임, ‘김대중 자서전’ 독서 후기 –
유성민
#1
정치가 평전 읽기 모임에 참여한 동기는 사소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정치적으로 뭔가를 이것저것 해봤는데 여전히 잘 되지 않았고. 하다못해 나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SNS 사진 업로드를 이유로 계약을 해지 당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으로 인해 공적-사적으로 여러 부침을 겪고 있었다. 회복이 필요하고, 위로가 필요했다.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에서 반 발짝 정도 떨어져서, 책을 읽고 사람들과 얘기를 할 수 있는 모임이 필요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무조건적인 예찬을 경계한다. 두 정치인의 행적 중 동의하지 않는 부분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평전 읽기 모임에서 ‘김대중 자서전’이란 커리큘럼은 사실 마케팅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김대중/노무현 자서전 읽기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활동이니까. 그래서 김대중 자서전에 대한 고민이나 기대보다는, 다른 해외 정치인들의 사례에서 위로를 받고 교훈을 얻고 싶었다.
사생아였던 빌리 브란트, 암살당한 올로프 팔메, 2권이라는 만만찮은 길이로 모두의 시간을 하얗게 불태운 빌 클린턴으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간적 실수와 약점, 다른 정치인과 여론의 공격에 고뇌하고 대응하는 그들에게 마음껏 감정을 이입했다. 그러한 감정이입과 공감 속에서 난 어느 정도 위로와 교훈을 얻었다. 여름의 아픔과 분노는 어느덧 가을의 차분한 안정으로 변했다.
부패한 정치인이 된 룰라, 다소 재미가 없지만 단단함을 느꼈던 메르켈을 지나 마지막으로 읽은 자서전은 드디어 김대중.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 그리고 신자유주의. 그런 정치적 평가를 뒤로 하고 그의 삶에서 배우고 얻을 것은 무엇일까. 책이 너무 두꺼워서 읽는데 오래 걸리진 않을까. 그런 기대와 우려로 겨울의 마지막 평전 읽기를 시작했다.
본격적인 감상을 말하기 전에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는 너무 작았고, 우려는 너무 컸음이 드러났다. 드라마같은 삶의 전개, 눈물이 나오고 코가 찡한 장면들, 담담히 서술된 노(老)정객의 이야기에서 나는 배움에 더해 감동도 얻었고, 읽는데 1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가장 감정이입이 잘 된 정치인이었다.
#2
이유는 간단했다. 솔직하게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면서도, 유난히 많은 실패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 실패들을 온전히 다 거치고 난 우뚝 선 정치인이었기에, 김대중 대통령은 정말 “위대한 정치가”였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청년사업가, 요새로 치면 스타트업을 하면서 주거래은행에 법인계좌 만들고 마침내 신사업에 성공해 대금을 예치했는데, 다음 날 전쟁이 나서 은행 계좌가 동결되고 알거지가 된다면 나의 정신상태는 온전할까.
우리가 대부분 알고 있듯, 선거란 후보에게 특히 고달픈 일이다. 특히 패배는 한 순간에 그를 나락으로 빠지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국회의원은 1번만 해도 전(前) 의원이다.”란 말로 2번, 3번을 도전했다. 목포에서 1번, 인제에서 2번을 떨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4번째만에 연고지도 아닌 인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지 하루 만에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서 당선증도 못 받고 국회가 해산되었을 때, 나였다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정권으로부터 납치되어 현해탄에 수장될 위기까지 넘긴 상황에서 나는 다시 나의 정치적 신념을 유지하고, 나와 함께 하던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까. 그런 상황을 겪고 또 다시 쿠데타를 겪고 나서는, “대통령 빼고 다 줄 테니 우리에게 협력해라”라고 하는 쿠데타 세력에게 “내가 당신들한테 협력은 할 수 없으니 날 죽인다 한들 내가 어찌 하겠소.”라고 말할 용기를, 자신있게 낼 수 있을까.
한일기본협정 당시의 김대중의 모습처럼, 국민들 다수가 지지해주지 않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소신은 끝까지 지켜내고, 설득을 위해 노력할 수 있을까.
그런 그의 말들 중에서도 묘하게 먹먹한 말이 있었다.
“김 총재와 나를 라이벌로만 보지 마십시오. 나라가 잘 되려면 여러 인물이 커야 합니다. 내가 민주 회복 때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고, 김 총재가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니 제2, 제3의 김대중이와 김 총재가 필요합니다. 이래서 하나가 쓰러지고, 하나가 병들더라도 올바른 대안이 있어야 합니다. 민주 회복이 되면 이까짓 것 따질 필요 없습니다. 그때 국민 여론과 여러분 의사로 결정하면 그만입니다. 애도 낳기 전에 이름 갖고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김 총재는 오늘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장래 이 나라를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단견으로 시국을 보지 않고 10년, 20년 뒤를 내다 보고 “더 많은 사람을 키워내야 한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 자신과 파가 다른(김대중은 신파, 김영삼은 구파 출신이며 상도동/동교동 계로 계파가 다르다.) 사람도 “커야 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자신과 주변의 생존에 급급해 허우적대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사회적 옳음을 위해 정치적 상대방을 키우는 정치. (설사 그로 인해 훗날 자신의 기회가 뒤로 미뤄진다 해도 말이다.)
정말 먹먹했다. 나는 현재 내 주변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정치인을 본 지가 너무 오래 됐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멀리 내다보는, 대국적인 정치”는 그의 정치 일생 내내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가령 의석 수 67대 6의 이기택 씨와의 통합 협상에서 “통합을 하려면 상대에게 내 것을 다 준다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70%를 주고 30%를 갖는다는 마음으로 해야 가능하다.”란 말을 하고 5대 5의 비율로 협상을 한다거나, 압도적인 지지율 차이에도 내각제 개헌을 수락하고 DJP 연합을 성사시킨다거나 하는 일들은 모두 그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조화, 멀리 내다보는 혜안에서 비롯됐다.
“정치꾼”이나 “정치인”이 아니라, 그가 “정치가”로 불릴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정치가의 “가”는 집 가(家)자를 쓴다. 정치일문, 한 일가를 이룬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자서전에 있는 내용에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의 집권 때 행했던 정책 중 일부는 동의가 안됐고, 이는 자서전을 읽어도 마찬가지였다. 정리해고를 받아들였던 문제, 정부 조직구조를 민간 컨설팅회사에 조직진단을 맡긴 일, “관치”를 없애겠다며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부분은 동의할 수 없었다. 특히 자신이 추진한 정책에 대한 반대에 대해, “정치권의 반대”란 표현은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반대가 정략적이라는 것만큼 정략적인 반격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그의 인생사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입장을 동의나 수용은 못해도 이해는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는 군사독재에 항거하면서 늘 부정부패, 정경유착의 강한 “관치”를 30년간 지켜 본 사람이었다. 사실 그의 “대중경제론” 등 ‘산업민주화’ 등도 지금 관점에서 보면 민영화 정책을 포함하고 있었다. 어쨌든 정치 민주화 이후의 “경제 민주화”는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3
“돈”과 “정치”에 대한 그의 자서전 속 말도 한번쯤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제는 고인이 되었지만 정주영씨는 정치에 입문하지 말아야 했다는 생각이다. 그와는 여러 자리에서 만나 얘기를 나눴는데 정치를 너무 쉽게 보는 듯 했다. 지방에 다니며 온갖 공약들을 다 쏟아내고, 당에도 거액의 지원금을 약속했다. 그러나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돈으로 할 수 없는 것도 많았다. 결국 그는 정치인으로는 실패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 정치는 이러나 저러나 사람이 하는 것이다. 인간의 사단칠정이 다 녹아있는 행위의 예술이다. 돈은 칠정, 희로애락애오욕을 움직일 수 있을지언정, 사단, 인의예지를 차마 움직일 수 없다. 인의예지, 정치인에게 있어 이 “사단”을 움직일 수 있는 도덕과 신념, 이른바 사람을 움직이고 끌어갈 수 있는 ‘소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돈이 있어봤자 소용이 없는 것이다.
물론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했듯, 돈은 “주조된 자유”다. 돈은 내 마음과 본능이 욕망하는 것을 행하기 위한 ‘자유이용권’이다. 인간의 네트워크는 돈을 통해 오가는 마음과 물질을 통해 보다 더 단단해지고, 시간이 필요한 많은 것들은 돈을 통해 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가 많은 사람, 이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우러르고 따르게 된다. 그래서 돈은 힘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사람들은 착각하곤 한다. 정치는 돈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일까, 돈이 있어서 하는 것일까, 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정치는 재분배의 과정이다. 각 계층의 이익을 재분배하는 과정이고, 재분배 과정에 대한 관점들의 대결이다. 기업집단 같은 조직 내에서의 정치, 재분배는 “이익과 인센티브”가 제일 중하지만, 사람 사는 사회가 어디 그런가. 사회의 재분배는 보통 그 사회의 구성원이 믿는 신념과 가치, 문화가 물질적 이익과 함께 재분배된다. 물질적 토대를 기반으로 한 치열한 신념의 대결과 설득의 과정이 바로 정치다. 그래서 정치에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것, 내가 당신에게 돈을 줄 수 있다는 확신보다 더 중요한, “소신”(소명)이 필요한 것이다.
돈으로는 사람의 능력, 그 사람이 한 행위의 결과물을 살 수 있지만, 정치가의 소신은 사람의 마음, 사람 그 자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소신은 수시로 흔들린다. 돈을 위시하여 사람의 “칠정”을 움직이는 갖가지 변수에 의해. 그 무수한 흔들림을 이겨내는 “단단함”을 벼리는 과정이 아마 정치꾼이 정치인으로, 정치인이 정치가로 나아가는 길이 아닐까.
#4
국민의 정부 5년을 거치며 그의 인생 막바지를 통해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김대중이란 정치가의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 바로 소명이었다. 자서전에 적힌 그의 집권 5년은 순탄하지 않았다. 2000년 총선은 패배했고, 자민련과의 공조도 붕괴했다. 남북정상회담과 뒤이은 노벨평화상 수상 등 그의 소신인 “한반도 평화”를 이뤄낸 영광의 순간들도 있었지만, 북-일, 북-미 수교와 핵 폐기를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를 꿈꾼 김대중-클린턴 구상은 뒤이은 조지 W. 부시의 당선과 9.11 테러로 무너져 내린다. 2003년 정권을 물려받은 참여정부는 대북송금 특검을 통해 그의 통치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열린우리당 창당,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파동을 통해 그가 구축한 호남과 청년의 민주개혁세력을 실망시켰다. 이명박 정부의 불통은 그가 죽기 직전까지 심각했고, 급기야 그의 마음과 건강까지 앗아갔다.
그럼에도 그는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전진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참여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은 그의 뒤를 좇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행동하는 양심”을 촉구하며 대의 앞에서 뜻을 같이 하고 불의 앞에 같이 맞서려 했던 이였다.
책을 다 읽고 나자 비로소 편견의 안개가 걷히고, 민주화 이래 우리 곁을 다녀간 어떤 위대한 “정치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게 만약 정치적으로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그 꿈을 누군가가 물어봐 준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그저 “정치가”를 분골쇄신해 도울 수 있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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