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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소식 및 최저임금 페스티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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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소식 및 최저임금 페스티벌 후기

익명 (미확인) | 금, 2015/06/26- 15:38
최저임금 법정시한은 6월 29일(월)입니다.

정부가 추천한 공익위원 9명, 노동자 대표(노동자위원) 9명, 기업대표(사용자위원) 9명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논의하여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되게 되는데요.
올해에는 노동자위원에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위원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청년 노동자위원이 함께하고 있는만큼 청년, 학생 단체들도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위한 청년학생연석회의를 통해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KYC도 청년학생연석회의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6월 25일(목) 저녁 신촌에서 최저임금 페스티벌인
최저임금 올리는 라디오 공개방송 "그래서 내년에 얼마래니?"가 열렸습니다.

원래는 신촌 연세로에서 진행을 하며 많은 청년들과 함께할 계획이었는데
하늘에서 내리는 비로 인해, 근처 신촌 아름다운 시절에서 진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엔 라디오 공개방송 형식으로 진행되어 사회를 봐주는 DJ와
랩, 노래 등의 공연, 최저임금과 관련된 청년들의 사연,
그리고 회의를 마치고 부랴부랴 달려온 김민수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이
바로 전해준 회의 내용까지 들을 수 있는! 의미있는 자리였습니다.



최저임금과 관련된 소식을 조금 더 전해드리고 싶어서
노동계의 노동자위원들의 목표, 현재의 상황 및 쟁점에 대해 조금 더 적어봅니다.

최저임금과 관련하여 노동계의 주요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최저임금 심의 근거가 되는 소득분배율 공식 기준 통계를 보다 풍부하게 활용

2. 최저임금 심의 근거가 되는 생계비 조사를 보다 풍부하게 활용

3. 최저임금위원회의 투명한 공개, 사회적 책임 강화

첫번째는 종전 중위임금만을 기준통계로 하였는데,
평균임금도 포함하고 1인 이상 사업장 및 5인 이상 사업장을 병기하자는 내용입니다.
이는 3차 전원회의때 표결을 통해 통과되었습니다.

두번째는 종전 단신가구의 생계비만을 조사했는데
2~3인 가구 생계비를 포함하자는 내용입니다.
가족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최저임금이 되도록 하기 위한 목표였는데
4차 전원회의때 논의가 급물살을 타 5차 회의때 다시 논의하기로 하였으나
현재 논의가 멈춰져있는 상태입니다.

세번째는 최저임금위원회의 회의 내용을 심의 기간 중 상시 공개하여
최저임금 당사자들이 최저임금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알아야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역시 다시 논의하기로 한 뒤 논의가 멈춘 상태입니다.



현재 최저임금위원회의 회의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6월 25일 회의때 사용자 위원들이 모두 퇴장을 하고

오늘 6월 29일 회의마저 참석 거부를 했기 때문인데요.
무슨 이유때문에 이렇게 사용자 위원들이 회의를 거부하는지 궁금하시죠?

이는 바로 최저임금의 시급 병기와 함께 월급을 병기하자는 공익위원의 작은 제안 때문입니다.
월급 병기는 말 그대로 최저임금을 월급으로 환산했을때 얼마인지를 함께 병기하자는 것입니다.
현재 최저임금 5,580원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116만원정도인것 처럼 말이죠.

그런데 이 제안이 왜 이렇게 큰 반발을 불러일으키는걸까요?
사용자측에서는 월급병기가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크게 설득력이 있어보이진 않습니다.

또 다른 이유로 제기되는 것은 바로 유급휴일입니다.
현재 주5일을 일할경우 이틀을 쉬는데 하루는 유급휴일, 하루는 무급휴일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월급으로 환산할 경우 유급휴일인 32시간(8시간x4일)이
월급에 포함되게 됩니다.
법으로 정해져있는 내용이고, 최저임금 월급을 함께 명시하자는것 뿐인데
사용자측에서 회의를 불참할만큼 반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설마 유급휴일을 주기 싫어서 그러시는건 아니겠죠? 설마요~

아무튼 6월 29일 회의마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2016년 최저임금은 아직까지 정해지지 못했습니다.
7월에 다시 최저임금에 대한 협상과 조정을 통해 2016년 최저임금이 확정될텐데요.

부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최저임금이 정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KYC 성명] 최저임금 '월급 병기'가 도대체 왜 문제인가?
=> http://kyc.or.kr/blog/admin/2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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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아카데미가 6월에 찾은 지역은
'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리며 진보운동에 앞장 섰던 대구입니다.

인혁당 사건을 비롯해서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 민주화 운동,
미군정에 저항했던 10월 항쟁,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의 흔적을 찾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답사는 인혁열사 계승사업회 김찬수 선생님과 함께했습니다.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인혁열사 묘역입니다.
이곳에는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 당한 여덟 분 중 네 분의 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74년, 장기 집권의 망상을 가지고 있던 박정희 정권이 유신 반대 투쟁을 억압하기 위해
학생운동 상층부를 체포한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재건위원회 사건은 민청학련 사건 배후에 북한의 지령을 받는 지하조직이 있다고 하며 관련자들을 기소,
8명에게 사형 판결을 한 다음날 새벽 집행해버리고 만 사건입니다.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될 만큼,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법살인이었습니다.



추모조차도 이적 행위로 취급되는 상황으로 인해 십수년의 세월을 숨죽여 보낸 후
인혁당 사건의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재평가 움직임은 89년에야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2007년, 재심을 통해 전원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인혁당 사건의 희생자들은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바란 활동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과제들은 아직까지 진행중입니다.

인혁열사 묘를 뒤로 하고, 10월 항쟁의 흔적을 찾아갔습니다.



미군정과 친일 세력에 저항한 10월 항쟁의 발단은 쌀 배급과 임금인상을 요구한 노동자 총파업입니다.
해방 이후 미군정 식량 정책의 실패로 민중들의 어려움은 극에 달했는데요.
미군정과 경찰은 노동자 파업을 무력으로 진압해 발포로 2명이 사망하게 됩니다.

이에 시민들이 시위에 합세하여 경찰서를 포위, 무장해제시키고 친일 지주들을 습격해
빼앗은 물건을 빈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대구는 잠시 해방구가 되지만,
곧바로 이어진 미군정과 경찰의 진압으로 10월 항쟁은 막을 내립니다.

항쟁 과정에서 살해된 사람의 수는 정확히 알 수 없고,
당시 파업을 이끌었던 전평 사무소, 운수노조 사무실이 있던 건물 등 흔적만이 남아있습니다.



대구 진골목은 대구 근대의 역사를 아직 간직하고 있는 골목길입니다.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양옥 건물을 비롯해 30년대식 개량한옥들,
1920년대 지어진 서양식 건물인 대구화교협회 건물 등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4.19 혁명의 진원지임을 알려주는 표지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3.15 마산시위 전 대구에서는 2.28 학생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자유당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에 저항한 민주운동입니다.

이외에도 식민지 수탈의 상징이었던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 자리는
대구 근대역사관으로 변모해있는데요,
이곳에서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대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대구는 삼성그룹이 출발한 지역이기도 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해서인지
이 역사관에서는 박정희를 '잠시 일본군 장교가 되었으나 광복 후 국군장교로 복무'했다고,
대구를 '박정희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곳'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근대역사관 옆에 있는 10월 항쟁 최종 집결지, 대구 중부경찰서를 거쳐
근처에 있는 희움 일본군위안부역사관도 둘러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경산 코발트 광산입니다.
이 광산은 일제의 태평양 전쟁에 사용될 코발트를 수탈하기 위해 생겨났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보도연맹원 등 약 3,500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광산을 비롯한 이 일대에서 학살되었습니다.


일제 하에서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자원수탈이 이루어지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공간.
이 코발트 광산에 한국 근현대사의 지워지지 않을 한이 담겨있습니다.

아직 발굴되지 못한 유골들은 차가운 광산 안에 여전히 묻혀 있고,
광산 밖 컨테이너에는 일부 유골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대구가 가지고 있는 역사를 살펴보면서, 국가권력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너무 많은, 무고한, 해결되지 못한 죽음들이 힘겹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죽음들을 기억하고 이어갈 필요성 또한 함께 느끼게 됩니다.

근현대사아카데미는 꼭 기억해야할, 때로는 현재진행형인 역사를 계속 찾아갑니다.
7월은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전진기지였던 군산으로 가 일제강점기 자취를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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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6/06/2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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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꾸역꾸역 오던 지난 24일 금요일 오후.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는 청년참여연대 준비위원회 워크숍이 열렸습니다. 

 

지난 7월 11일. 청년참여연대 준비위원회(이하 청준위)는 청년, 임원, 상근자로 구성된 기획단에서 논의한 방향을 바탕으로 3개의 분과(운영, 기획, 교육)을 나누고 청년들의 삶과 생존을 위협하는 여러 사회문제를 청년의 목소리로 해결해보고자 발족했는데요.

 

청년참여연대의 가치, 비전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하나의 창립선언문을 작성하기 위해 32명의 준비위원분들과 7/24~25 워크숍을 진행하였습니다. 

 

20151724_청년참여연대준비위원회워크숍_ (2)

 

먼저 김주호 간사와 함께하는 서촌투어를 시작으로 이후 분과별 공동체게임을 진행했었는데요. 법인대표님의 '검색의 시대, 사유의 성찰'책과 참여연대 마이보틀, 수첩을 상품으로 내걸고  신상조사게임, 몸으로 말해요 게임, ox퀴즈, 폐활량측정게임을 진행하였습니다. 망가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게임에 열중하다보니 어색한감이 없지 않았던 자리도 금세 화기애애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151724_청년참여연대준비위원회워크숍_ (3)20151724_청년참여연대준비위원회워크숍_ (5)

 

저녁을 먹은 뒤에는 본격적인 워크숍이 진행되었는데요. 먼저 여러 형태, 여러 단체의 창립선언문을 함께 읽어보며 선언이 가진 의미가 어떠한지, 그리고 어떤 구조가 괜찮은지 곱씹어 보았습니다. 이후에는 선언에 담겼으면 하는 키워드를 적어보고 각자 돌아가며 왜 이 키워드가 중요한지에 대해 두루두루 얘기해보는 시간을 통해 우리 모두의 생각을 공유하고 다듬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151724_청년참여연대준비위원회워크숍_ (10)

 

한 번 각자 얘기했으니까 정리된 생각을 다시금 공유하는 시간을 가져야겠죠? 이번엔 색지에 3가지 키워드를 적고 비슷한 키워드끼리 묶는 단계를 거쳤는데요. 거의 100개의 의견이 나왔는데 줄이고 줄이다보니 ‘사랑, 참여, 변화, 권리, 연대, 안전, 생존과 희망, 공존’ 총 여덟가지 키워드로 좁혀졌습니다.

 

20151724_청년참여연대준비위원회워크숍_ (9)

(다들 힘내는 모습..힘들죠? 좀만 더 머리를 맞대보아요.)

 

다음으로는 키워드를 모아 3개의 문장을 작성하고 조별로 이야기를 모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청년참여연대는 청년들에게 작은 성공의 발판을 마련한다.”, “만년 ‘준비생’ 청년의 권리는 내일을 위한 것이었기에 오늘은 항상 제외되었다.” 등 총 96개의 문장이 모였습니다. 발표까지 끝마치자 시간이 새벽2시를 향해 갔는데요. 9월전까지 준비위원회 전체회의를 통해 수정과 수렴의 절차를 거치기로 하고 마무리하였습니다.

 

20151724_청년참여연대준비위원회워크숍_ (14)

 

비록 창립선언에 대한 완성된 글을 만들어내진 못했지만 30명이 넘는 인원이 서로의 생각을 공정하게 말하고 그것을 함께 공유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30명이나 되는 인원이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던 워크숍이었습니다.

 


9월 창립전까지 청년참여연대 창립회원을 모집합니다. 현재 100명에 가까운 분들이 창립회원으로 힘을 보태주시고 계십니다. 함께 하실 분들 모집합니다 >>>>>>> https://goo.gl/lQYAzd )

목, 2015/07/30-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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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6기 목민관클럽 제12차 정기포럼이 2016년 3월 24일~25일 1박 2일 동안 광주 남구에서 열렸다. 이번 포럼의 주제는 ‘청년’으로, 25명의 단체장과 150여 명의 관계 공무원들이 청년문제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지혜를 모았다.

 

문화수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청년문제를 고민하기에 앞서 참가자들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향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2004년부터 건립이 추진되었고, 지난 2015년 11월 25일 정식 개관한 곳이다. 연면적 16만1237㎡(약 4만 평) 규모로 아시아 문화예술기관 중 최대를 자랑하며, 국립중앙박물관보다 약 1.2배 크다. 총 7030억 원이 투입됐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5・18 민주항쟁의 중심지였던 구 전남도청 자리에 세워졌다. 민주・평화・인권에 관한 역사적 장소를 보전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옛 전남도청 건물을 살리면서 90%이상의 시설은 지하에 건설되었다. 하지만 중앙을 넓게 파내어 광장을 만들고 그 주변에 건물을 배치했기 때문에 지하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중앙광장에 해당하는 아시아문화광장에 서면, 옛 전남도청사 건물을 리모델링한 민주평화교류원을 시작으로 어린이문화원,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등 크게 5개의 시설이 자연스럽게 관람객을 감싼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아시아 문화 교류와, 문화자원 수집・연구, 콘텐츠의 창・제작, 전시, 공연, 아카이브, 유통이 한 곳에서 모두 이루어지는 세계적인 복합문화기관이다.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문화 수도를 꿈꾸는 광주의 꿈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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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문화 연구와 전시, 공연 공간

이후 들른 문화정보원은 아시아 문화 관련 자료를 수집, 전시하고 연구를 수행하는 공간이다. 문화정보원에는 라이브러리파크와 특별기획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 아카이브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라이브러리파크는 전시관람과 체험 등을 하나로 묶은 새로운 형태의 문화 공간이다. 도서관, 박물관, 갤러리, 극장 등의 역할을 모두 담당한다. 라이브러리파크는 아시아를 주제로 전시역사, 비디오아트, 실험영화, 사진, 퍼포먼스아트, 공연예술, 소리와 음악, 디자인, 근현대건축, 이주, 도시, 전자상가, 크리에이터 등 13개의 주제 전문관을 운영 중이다. 다양하게 수집된 아시아 문화자료들은 문화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을 돕고, 국제유통 관계망을 통해 창작 콘텐츠들이 아시아와 세계로 진출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한다.

포럼 참가자들은 방선규 전당장의 안내로 몇 곳을 둘러보았는데,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외벽 마감재로 사용된 파사드가 눈에 띈다. 옛 노래나 광고사진들을 모아 놓은 곳, 아시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간도 보인다. 앞으로 아시아 각 국가별 기획전시를 통해 문화예술 창작활동을 지원할 계획이란다. 더 넓은 공간에 펼쳐진 자료들은 문화예술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창작의 모티브를 얻을 수 있을 듯 하고, 일반인들에게도 우리의 이웃,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들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듯하다.

새로움 잉태하는 문화 인큐베이터

다음으로 들른 곳은 문화창조원이다. 이곳은 창·제작 센터와 복합전시관을 갖춘 문화 창조의 산실이다. 문화·예술가들이 새롭고 실험적인 작품을 기획하고 만들 수 있도록 창·제작 센터에는 디지털 에이브이(AV), 기계조형 등 첨단장비와 시설을 갖춘 총 4천㎡ 면적의 스튜디오, 융·복합 콘텐츠 기획과 문화기술(CT)이 접목 가능한 연구·개발(R&D) 실험실 5개가 마련돼 있다. 전시관 6개가 있는 복합전시관은 축구장 1.3배 규모(9,352㎡)로 창·제작 센터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전시된다고 한다.
복합1관에 들어서니 온몸에 전해지는 강한 전자음과 함께 바닥에는 거대한 계단무늬 패턴이 어지럽게 흘러간다. 참가자들은 신발을 벗고 패턴 위를 걸어 볼 수 있는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란다.
정신없이 어디론가 흘러가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듯한 료지 이케다의 ‘테스트 패턴’을 빠져나와 복합2관으로 들어선다. 복합2관에서는 최근 문화전당 레지던시에서 제작된 작품으로 구성된 특별 전시 ‘플라스틱 신화들’이 진행된다. 3층의 톱니바퀴 모양 구조물에 마련된 방 30곳에는 아시아의 과거, 현재, 미래, 신화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 전시돼 있다. 팔만대장경의 목판을 플라스틱판에 새기는 로봇 팔 ‘피타카’의 판각 퍼포먼스와 독일 훔볼트 박물관에 소장 중인 캄보디아의 유물을 3D 스캔해 프린팅한 오브제 등 실험적인 작품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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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문화원 옥상에 올라 문화전당을 바라보니 넓은 공원이 펼쳐져 있다. 건물을 지하에 설치한 대신에 옥상은 시민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민 것이다. 지하 건물에는 자연광을 비추기 위해 만들어진 채광정이 있다. 야간에는 역으로 빛을 내뿜어 또 다른 야경을 선사한다니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보고 싶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정식개관한지 4개월 남짓 된 공간이라 아직 곳곳이 비어 있다.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잉태된 작품들은 호평을 받고 세계 곳곳에서 전시요청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아시아문화의 창작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전략과 비전을 이루길 기대한다.

근대역사문화의 본고장, 광주 양림동

근대문화거리하면 대구 중구 근대골목투어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이와 쌍벽을 이루는 곳이 있으니 바로 광주 양림동이다. 버드나무가 많은 곳이어서 양림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동네는 처마선이 고운 전통한옥과 이국적인 서양식 벽돌집이 공존한다. 목민관포럼 참가자들은 이틀째 현장방문 일정으로 100년 넘은 근대문화 유산을 간직한 양림동으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웃음이 묻어나는 펭권마을

먼저 양림동 주민센터 바로 뒤편에 위치한 펭귄마을이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예사롭지가 않다. 담벼락엔 아기자기한 작품들과 벽시계를 비롯한 20~30년 된 온갖 잡동사니들이 걸려 있다. 골목길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벽화 등의 작품들 대부분은 주민들이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펭귄시계점이다. 오래된 고장 난 벽시계부터 손목시계, 양은냄비 등 각종 잡동사니들을 모아 놓으니 그럴듯한 작품이 되었다. 펭귄마을이 탄생한 건 마을 촌장인 김동균씨의 아이디어란다. 허름한 집들이 많은 탓에 빈집들이 생기고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합심해 쓰레기를 치우고 나니 빈 공간을 가꿔보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렇게 펭권 텃밭이 만들어졌다. 이를 계기로 골목골목에 작품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펭귄마을이라는 이름은 다리가 불편한 마을주민들이 걷는 뒷모습에서 펭귄이 떠올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골목 곳곳엔 ‘유행 따라 살지 말고 형편 따라 살자’, ‘술과 밤이 있는 한 남녀 사이는 친구가 될 수 없다’ 등 재치있는 글귀들이 방문객에게 웃음을 선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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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한미통상조약 체결이후 이 땅에 선교사들이 몰려들었는데, 그 중 한 곳이 양림동이다. 당시 양림동 뒷산은 몹쓸 병에 걸려 죽은 사람의 시신을 내다버리는 풍장 터였다. 모두들 외면하던 그 땅에 선교사들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선교사들은 사재를 털고 본국에서 후원을 받아 학교를 짓고 병원을 세웠다. 그러자 배고프고 몸이 아픈 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렇게 양림동은 ‘서양촌’이라 불리며 광주의 근대문화의 전환점이 되었다.

선교사와 근대문화의 흔적

현재 양림동에는 ‘양림교회’라는 이름의 교회가 3개나 된다. 교단이 분리되며 생긴 일이다. 기장, 통합, 합동 혹은 언덕 위, 정원, 계단 교회 등 수식어를 붙여야 한다고. 그 가운데 통합양림교회 옆에 있는 오웬기념관을 들렀다. 오웬은 선교와 의료봉사에 헌신하다 1909년에 급성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오웬과 그가 존경했던 할아버지를 함께 기념하기 위해 올린 건물이라고 한다. 1914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교회 행사는 물론 크고 작은 강연회와 음악회, 영화, 연극, 무용 등의 공연을 벌이며 근대 광주의 신문화 보급소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마을의 가장 높은 언덕엔 윌슨(한국명 우일선) 사택이 있다. 윌슨 선교사가 고아와 환자들과 함께 머물고자 지은 집이다. 광주에 있는 가장 오래된 서양주택이다. 그는 당시 사람들이 꺼려하던 한센병 환자들 치료에 정성을 다했다고 한다. 그 집으로는 좁아서 1912년 광주한센병원을 지었고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들자 나중엔 여수에 애양원까지 개척하게 되었다. 윌슨 사택은 현재 인근 호남신학대학교에서 기도처로 이용되고 있다. 사택 주변엔 100년 가까인 된 피칸나무와 흑호도나무들이 여럿 보이는데, 당시 어린 아이들의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선교사들이 미국에서 옮겨와 심은 나무라고 한다. 인근엔 400년 된 호랑가시나무가 있는데, 가시달린 초록잎에 빨간 열매가 열린 모습이 가시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닮았다 하여 선교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윌슨 사택과 수령 400년 된 호랑가시나무를 지나니 선교사 유진벨이 세운 수피아여학교가 나온다. 유진벨은 1907년 선교부 직원의 자녀들을 가르치다 다음해 남학생을 위한 숭일학교와 여학생을 위한 수피아여학교를 세웠다. 교정엔 3・1운동 기념 동상이 서 있는데, 동상 밑에는 3・1운동 당시 옥고를 치른 23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태극기를 들고 시위 군중의 맨 앞에 서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일본군의 칼에 왼팔이 잘리자 오른손으로 태극기를 들고 흔들었다던 윤형숙의 이름이 윤혈여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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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멋과 예향의 고장

양림동엔 전통 한옥은 아니지만 근대에 지어진 한옥이 여러 채 자리 잡고 있다. 이장우 가옥과 최승효 가옥이 대표적이다. 그 중 이장우 가옥에 들렀다. 1899년에 건축된 이장우 가옥은 당시에는 보기 힘든 솟을대문까지 갖춘 부잣집이다. 당시 상류층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다. 전통 한옥과 달리 마루에 유리문을 덧대 한기를 막았고, 일자형이 일반적인 남부지방 건축양식과 달리 ㄱ자 형태다.
전통 한옥마을을 둘러보는 사이 사람의 신명을 두드리는 소리로 창조한다는 ‘얼쑤’팀의 타악 공연이 한바탕 펼쳐진다. 전통악기를 현대적 의미로 놀이와 연주로 재해석하는 ‘얼쑤’팀의 공연은 전통 한옥과 묘하게 어울린다.
양림동엔 전통한옥뿐만 아니라 쓰러져 가던 한옥을 리모델링하여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한 한희원 갤러리도 있다. 공사장에서 발판으로 쓰였던 철재다리를 재활용한 대문이 인상적이다. 갤러리는 카페처럼 꾸며 놓았는데, 한옥이 전시공간으로 참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든다.

펭권마을부터 선교 유적지, 전통한옥과 한옥 갤러리까지 양림동을 한 바퀴 돌고나니, 마음 한곳이 따스하게 다가온다. 100년 전 광주 근대문화의 출발점이 되었던 양림동의 근대문화유산들은 박물관에 박제된 채 남겨진 공간이 아니라 현대인의 삶속에 적절히 녹아 있다는 느낌이다. 바쁘게 흘러가는 현대의 삶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100년 전 시간 여행을 통해 오늘의 모습을 비춰보는 공간으로 양림동을 추천하고 싶다.

글 : 송정복 | 목민관클럽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 참고자료.
“새해맞이 문화 나들이를 떠나볼까?”, 『문화포털』, 2016.1.8.
“광주에 열린 새로운 문화의 광장”, 『한국관광공사 블로그』, 2015.11.26
“광주 양림동 골목길에 살아 숨쉬는 ‘근대 100년’”, 『한국일보』, 2016.3.9.

화, 2016/04/19-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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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C는 총선을 앞두고 청년들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는

2016 총선청년네트워크 활동을 다른 청년단체들과 함께하고 있는데요,

2016 총선청년네트워크에서 청년에게 필요한 우선정책을 12가지로 정리하고 카드뉴스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이중 KYC가 제안한 정책 "선거권 만 17세, 피선거권 만 18세부터 보장"을 내용으로 하는

카드뉴스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2016총선청년네트워크 - 청년을 위한 12가지 우선정책


 (노동) 최저임금 1만원까지 대폭 인상 => 카드뉴스 보기(클릭)

 (주거) 공정임대료 제도를 통한 월세비용 인하 => 카드뉴스 보기(클릭)

 (구직) 청년 구직지원수당 도입: 50만 원 * 12개월 => 카드뉴스 보기(클릭)

 (일자리) 공공기관, 대기업 청년고용할당제: 정원 5% 청년신규채용 => 카드뉴스 보기(클릭)

 (소득) 일하는 청년통장 전국 확대 시행 => 카드뉴스 보기(클릭)

 (실업) 고용보험 실업급여 확대: 자발적 이직까지 => 카드뉴스 보기(클릭)

 (부채) 청년신용회복기금: 장기연체 채권 매입, 채무조정

 (교육1) 진짜 반값등록금, 고등교육비 인하(교육공공성 확대)

 (교육2) 대학원생 인권실태, 연구환경 개선 "인분교수방지법"

 (교육3)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를 위한 「민주시민교육지원법」

 (참여) 선거권 만 17세, 피선거권 만 18세로 확대 => 카드뉴스 보기(클릭)

 (제도) 「청년기본법」제정: 청년종합정책 추진 근거


이외에, 각 정당의 청년 정책 공약을 청년들이 직접 비교평가하는 토론회를

31일(목) 2시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개최합니다.

토론회 자세히 보기(클릭)



 N개의 목소리, N개의 움직임 "VOTEr DAY"



또한 4월 2일 토요일, 총선을 앞두고 청년이 내는 이러한 목소리들을 신촌에서 펼치게 됩니다.

VOTEr DAY 라는 이름으로 신촌 차없는 거리 곳곳에서 단체별 행사, 플래시몹 등이 이루어집니다.

KYC 체인지리더는 신촌에서 1시부터 각 정당의 청년 정책을 이야기한 뒤 합류할 예정입니다.


VOTEr DAY 참여하기: http://bit.ly/보터데이

KYC 체인지리더 모임 함께하기: 신청 바로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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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6/03/30-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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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최저임금위원회에서는 2017년 적용될 최저임금을 논의하고 있다. 그런데 사용자 위원들은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21개 업종 중 7개 업종(도소매업, 운수업, 숙박음식점업, 부동산임대업, 사업지원서비스업, 예술스포츠여가서비스업, 기타개인서비스업)에 대해 최저임금보다 더 낮은 임금 지급을 허용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 업종들은 다른 산업에 비해 ▲사업체의 지불능력이 낮고 ▲해당 산업에는 단시간 근로자가 많다. 생계에 종사하기보다는 용돈벌이와 같은 보조소득이라는 이유로 차등지급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업종은 백화점, 대형마트, 콘도, 호텔, 대형음식점, 유흥주점, 인력공급, 항공운수업 등 대형 사업자가 줄줄이 포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접고용 등 비정규직을 채용하여 저임금을 지급하고 있는 업종들이다. 또한 영세사업자의 지불능력에 영향을 주는 것은 임금보다 다른 요인들이다. 나날이 높아져만 가는 부동산 임대료, 프랜차이즈 본사의 수수료, 원·하청의 불공정 거래와 연동하여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지 사업체 지불능력의 문제를 임금을 낮추는 것으로만 해결하려해선 안 된다.

단시간 노동자가 많은 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업주가 정규직 채용을 회피하기 위해, 시간제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기 때문이다. 고용형태를 노동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 노동자가 그 임금으로 용돈을 쓰던, 보조소득으로 쓰던 그것은 노동자가 생활하기 위해 쓰는 돈이다. 모든 노동자는 조금 더 여유로운 생활을 꿈꾸며 노동을 한다. 이 돈이 밥을 먹기 위해 쓰는 돈이건, 커피를 마시기 위해 쓰는 돈이건 모든 것은 노동자의 생활인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 이유만일까? 사용자 위원들은 진짜 속내를 감추고 있다.

 

출처 :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2016년 3월

출처 :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2016년 3월

 

한국여성노동자회는 2016년 3월 통계를 이용해 이 업종에서 일하고 있는 최저임금 노동자들을 살펴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최저임금 수혜범위(최저임금 90-110%) 노동자들은 184만 6천명이다. 이들은 최저임금의 등락에 따라 당장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이다. 그런데 사용자위원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줄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7개 업종의 노동자는 115만 8천명. 전체의 62.7%이다. 사실상 사용자위원이 지목한 7개 업종은 저임금노동자 집중 업종이다. 21개 업종 중 단 7개 업종 차등지급만으로 62.7% 노동자의 임금이 낮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전체 업종 중 사용자 위원들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공공행정사회보장행정 ▲교육서비스업 ▲농립어업 ▲가구내고용활동등의 업종을 제외하면 최저임금 수혜노동자는 150만 6천명으로 줄어든다. 이 중 7개 업종 노동자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76.9%에 달한다. 21개 업종 중 단 7개 업종의 최저임금을 낮추는 것만으로 최저임금의 수준을 전반적으로 낮출 수 있다. 이것이 사용자 위원들이 감춘 진짜 속내이다.

이런 결과는 여성노동자들에게 더욱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최저임금 수혜노동자 중 여성의 비중은 64%이다. 저임금 노동자들 중 여성의 비중이 높은 것은 여성노동의 가치를 저평가하고 있으며 비정규직을 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수혜범위 여성노동자 중 7개 업종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노동자의 비중은 61.8%, 공공부문 등 사용자 위원과 직접적인 이해 관계가 없는 업종을 제외하면 여성노동자 중 7개 업종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 비중은 79.9%까지 치솟는다.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한다면 여성노동자들은 원래 가해지던 차별에 덧대어 최저임금마저 차등 지급받는 이중차별의 굴레를 짊어지는 것이다.

최저임금 차등지급은 지독한 노동자 분할 정책이다. 나노단위의 미립자로 노동자들을 쪼개어 분할 통치하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23일 내일, 최저임금위원회는 본 사안을 다룰 예정이다. 사용자 위원들의 꼼수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수용된다면 여성노동자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수, 2016/06/2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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