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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이주노조 합법화 판결을 환영하고 대법원의 8년 직무유기를 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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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이주노조 합법화 판결을 환영하고 대법원의 8년 직무유기를 규탄한다.

익명 (미확인) | 목, 2015/06/25- 16:11

[논 평]

이주노조 합법화 판결을 환영하고 대법원의 8년 직무유기를 규탄한다.

 

대법원은 오늘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에 따른 노동조합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고용노동부의 상고를 기각하는 판결을 하였다.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제33조, 외국인의 지위를 보장한 헌법 제6조, 국적에 따른 근로조건의 차별대우를 금지한 근로기준법 제5조, 인종차별금지를 금지한 노조법 제9조 등에 비춰볼 때, 위 판결은 지극히 타당하고 상식적인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위 판결이 나오기까지 대법원에서만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시간을 10년 전으로 돌려보자. 2005년 4월 24일 서울·경기·인천지역에서 취업해 일하고 있던 이주노동자 99명은 지역별 노동조합인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를 설립하고, 같은 달 5월 설립신고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했다. 같은 해 6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은 노조 임원 및 조합원 일부가 출입국관리법상 취업 및 체류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므로 노조법상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다며 설립신고서를 반려했다.

 

이주노조는 고용노동부의 노조설립신고 반려처분이 법적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노동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헌법상 권리인 노동3권을 출입국관리법상 체류자격이 없다는 임의적 상황에 따라 차별하는 처분은 위법 · 무효이므로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2006년 2월 7일 서울행정법원 제13행정부(재판장 김태종 판사)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여 원고 청구를 기각했으나, 2007년 2월 1일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제11특별부(재판장 김수형 판사)는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설립신고서 반려처분이 법적근거가 없는 것으로 위법하므로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2007년 2월 23일 고용노동부가 상고하여 대법원에서 심리가 시작된 이 사건은 대법원의 최장기 미제사건 기록을 갱신하며 무려 8년 동안이나 계류되어 왔다. 김황식 전 대법관, 후임 양창수 전 대법관을 거쳐 권순일 현 대법관에 이르기 까지 주심 대법관만 3명을 거쳤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결과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내국인 노동자들이 형사처벌을 받았다고 하여 노동조합 가입자격이 제한되거나, 이미 가입된 노동조합의 실체가 부정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주노동자들이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체류자격이 없더라도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한, 헌법상 노동3권이 제한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올해 제323차 국제노동기구(ILO) 이사회에서 채택된 제374차 결사의자유위원회 보고서에서는 8년째 계류된 이주노조 설립신고 상고심을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체류자격에 상관없이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와 단체교섭권을 전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을 한국 대법원과 정부에 촉구하기도 했다.

 

대법원의 8년에 걸친 심리 지연으로, 이주노조는 모진 수난을 겪었다. 아노아르 후세인(방글라데시) 초대 위원장을 비롯해 미셀 카투이라(필리핀) 4대 위원장에 이르기까지 이주노조 주요 임원들은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 표적단속 되어 강제추방 당하거나, 입국이 거부되었다. 그럼에도 이주노조는 노동조합임을 포기하지 않았다. 노동자의 자주적인 단결을 통해,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이주노동자 스스로 바꿔보겠다는 창립정신으로 끈질기게 싸워왔다. 우리 모임은 이주노조의 지난 10년 동안의 헌신적인 투쟁에 경의를 표하며 깊은 연대의 마음을 표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이 사건 판결 어디에도, 대법원이 지난 8년 동안 고심한 흔적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대법원은 오히려 사회적 약자인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정당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 눈 감았다. 한국경제의 가장 밑바닥을 책임지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폭력과 비인간적인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목소리를 8년 동안 외면했다. 이는 인권의 보장과 정의의 구현이라는 사법부의 존재목적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최고법원의 권위와 존엄은 법원에 출입하려는 이주노조 조합원들의 투쟁조끼를 억지로 벗겨내려는 것이 아니라, 인권보장을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스스로의 목적에 충실할 때 비로소 인정될 수 있음을 대법원이 지금이라도 깨닫길 바란다.

 

2015. 6. 25.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한 택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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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이란 일반적으로 공동의 목적과 비전을 공유하는 구성원들의 집합체로 이해하고 있다. 조직은 구성원들이 각자 고유한 직무를 맡아 조직의 비전과 목적을 향해 서로 협력할 때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구현하게 된다.

그렇다면 각 직무는 고유한 성과를 창출할 책임(성과책임) 또는 그 업무수행과정을 대내외에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책임(설명책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을 소위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라고 하며, 어느 직무든지 사전적으로 규명되어 각 직무기술서(job description)에 명확히 기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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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insightofgscaltex.com/)

그러니까 조직에는 각 직무(job)의 성과책임이 규명되어 있고 그 직무에 적합한 사람이 선발·배치되는 것이 인사조직론의 기본이다. 

조직의 목적과 비전이 이 성과책임이라는 어카운터빌리티를 통해 각 직무로 분해되어 스며들어가게 된다. 직무담당자들은 자신의 직무에 부여된 성과책임을 인식한 후, 업무활동을 함으로써 자신에게 부여된 성과책임을 완수해 가는 것이 일반적인 조직운영과정이다. 이런 과정은 조금 복잡하긴 하지만 다음과 같은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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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여섯 개의 개념이 서로 맞물려 상호작용하면서 일어나는 경영현상을 도식화 한 것이다. 이것을 경영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인사조직론에서 플랫폼이란 조직구성원들이 자신의 재능을 맘껏 발현할 수 있는 정신적, 경제적, 물리적 토대를 의미한다.

조직의 비전과 전략에서부터 출발하라

이런 플랫폼은 조직의 비전으로부터 출발한다. 매력적인 비전(compelling vision)에 의해 구성원들의 가슴에 열정을 심어줌으로써 창의력을 발휘하게 한다. 이것이 성과창출에는 가장 강력한 촉매제이다.

이러한 매력적인 비전으로부터 전략(strategy)이 수립되며 그 전략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지원기능으로서 조직(organization)이 합리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이때 조직의 비전, 목적, 방향, 가치 등이 각 직무의 성과책임(accountability)에 적절히 배분되어 스며들어가 있어야 한다. 각 직무는 이 성과책임에 근거하여 성과목표를 스스로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직무가 설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직무가 요구하는 역량에 부합하도록 선발·배치되어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채용에서 출발하여 급여보상을 거쳐 퇴출까지의 모든 인사과정에는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여섯 개의 경영개념이 플랫폼을 형성하여 운영되는 사이클은 다음과 같은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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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중시하는 게르만, 스칸디나비아 모델에서 배우자!

이러한 경영플랫폼 운영모델의 최초의 촉발점은 리더십이다. 리더십은 타인을 이끌거나 명령하는 역할이 아니라 조직구성원들과 함께 매력적인 비전을 공유함으로써 조직에 생명력 또는 활력(vitality)을 불어넣어주는 역할과 그런 환경조건을 조성하는 역할이다.

이러한 인사조직모델이 유럽의 게르만 모델과 스칸디나비아 모델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모든 조직이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게르만 모델을 채용하고 있는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과 스칸디나비아 모델을 정착시킨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같은 국가에서는 가장 인간중심적인 인사조직체계를 갖추었다.

경쟁이 아닌 협력을 장려하는 인사조직모델은 경제적으로 거의 완전고용을 이룰 정도로 경쟁력이 있는 모델이다.

현재 취업문제뿐만 아니라 자살률과 노인빈곤율 등에서 심각한 수준에 이른 우리나라는 게르만 모델 또는 스칸디나비아 모델을 검토해볼만하다.

우리가 이런 선진모델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아래 <그림3>에서 보듯이 인류역사에서 크게 보면 조직개념이 몇 차례 극적으로 변화해왔고 우리도 이런 변화의 물결에 적응해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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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연봉제…지나친 경쟁은 오히려 ‘독’

인류는 지금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 1935~)나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1953~)과 같은 철학자들에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공동체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실제로 게르만 모델이나 스칸디나비이 모델은 이미 1970년대 이전부터 그런 사회를 지향하고 있으며 지금은 이런 국가와 조직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조직 대부분에서 구성원들 간 경쟁을 부추기는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조직 내의 커다란 갈등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조직의 효율성과 창의성을 현저히 떨어뜨릴 것으로 예상된다.

심지어 경쟁체제를 신봉하던 미국의 포천 500대 기업 중에서 약 70% 가량은 성과연봉제를 위한 상대평가제도를 이미 포기하고 있다.

당근과 채찍의 상징인 성과연봉제와 같이 경쟁을 부추기는 문화에서는 조직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조직의 경쟁력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내부경쟁은 상호 협력을 깨뜨리고 있고, 정보를 공유하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도 조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분권화되고 자율적인 네트워크 조직(DANO)

과거 관료화된 조직의 비효율 때문에 여러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는 뜨거운 가슴으로 매력적인 비전을 제시하여 함께 성취하려는 리더십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구성원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인 것은 아니었다. 원인과 결과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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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moneytop.tistory.com/)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등의 세계적인 기업들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들은 인간존중의 조직문화를 추구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경영진과 구성원들이 함께 매력적인 비전을 마련하고 이를 추구하기 위해 협동심을 가지도록 리더십을 발휘하는 게르만 모델 또는 스칸디나비아 모델과 아주 유사하다.

이런 인간존중의 사상과 철학이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인간존중의 경영모델을 심도 있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데는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서부의 신생 IT업체들과 게르만 모델을 추구하는 유럽 기업들의 인사조직 실무를 관찰해보면, 상명하복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포기한지 오래되었다.

제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들은 한결같이 분권화된 자율적인 네트워크 조직, 즉 Decentralized Autonomous Networked Organization(DANO)의 경영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국가운영방식도 바뀌어야 하며, 모든 공공기관들이 이런 분권화된 자율적인 네트워크 조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게르만 모델 또는 스칸디나비아 모델을 추구하는 기업들은 이미 1970년대 이전부터 DANO의 경영방식으로 전환하여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구현하고 있다. 독일, 스위스 등 지금 제조업 차원에서의 혁명적인 변화인 인더스트리 4.0을 이끌고 원동력도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은 단순한 구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조직운영방식을 분권화된 자율적인 네트워크 조직으로 전환해야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목, 2017/02/0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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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퀴즈 다음 중 방사능 세슘-137 농도가 가장 높게 검출된 수산물은 무엇일까요? 고등어, 다시마, 대구, 명태 정답 정답을 공개합니다. 1위 명태, 2위 대구, 3위 고등어, 4위 다시마 1위 명태 명태는 방사능 검출 빈도 11.5%, 세슘-137 농도 평균 0.76Bg/Kg 1-2 대구는 방사능 검출 빈도 13.0%, 세슘-137 농도 평균 0.54Bg/Kg 1-3 고등어는 방사능 검출 빈도 3.3%, 세슘-137 농도 평균 0.53Bg/Kg 4위 다시마 다시마는 방사능 검출 빈도 7.7%, 세슘-137 농도 평균 0.37Bg/Kg 1-5 맘 놓고 생선전을 먹기 힘든 세상. 시민방사능감시센터는 안전한 수산물 섭취 가이드라인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어요.
  • 첫째, 일본산 수산물 및 수산가공품 섭취 제한
  • 둘째, 유아 및 어린이, 임산부 등 방사능 취약계층의 경우 방사능검출빈도가 높은 수산물 섭취 유의(고등어,명태,대구,다시마)
  • 셋째, 수산물이 함유된 가공식품 선택시 원산지 및 성분 확인
  • 넷째, 학교 급식재료에 수산물 방사능 검사 및 방사능 검출 빈도 높은 수산물 재료 사용 제한 요구
꼼꼼하게 따져보고 확인하는 일, 이제부터라도 시작해요.
금, 2016/02/0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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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 유흥도 모범
임재성 변호사를 만나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7월의 어느 저녁, 약속시간을 살짝 넘겨 법무법인 해마루에 도착했다. 본격적으로 야근에 파묻힐 시간에 흔쾌히 일정을 잡아준 임재성 변호사에게 죄송하고, 감사하다. 

너무 궁금한 사람이었다. 연예인을 보는 기분으로 사심 가득 이것저것 많이도 물어보았다. 임재성 변호사는 성실히 대답해 주었다. ‘양심의 자유’에 대하여 거의 무지한 인터뷰어에게 해준 개인 과외는 덤.

먼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임재성 변호사입니다. 4회 변호사 시험으로 변호사가 됐고 지금은 법무법인 해마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변호사가 되기 전에는 사회학 대학원에서 평화연구를 하였구요, 평화단체에서도 활동하였습니다. 사회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로스쿨에 진학한 것인데, 변호사라는 자격이 이후 활동과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지도교수도 제 학부가 법대이고 당시 박사학위 논문을 ‘병역법’을 소재로 한국사회의 군사주의를 다루는 것으로 준비하고 있었기에 법사회학을 잘 해보라며 적극 추천해주셨습니다. 변호사가 되고 난 지금은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연구나 활동보다는 일반 송무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긴 하지만요.

로스쿨 전까지 궤적이 통상의 사람들과는 좀 달랐네요?

통상적이지 않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저 같은 사람들이 변호사가 될 수 있는 제도가 로스쿨 이 아닐까 합니다. 로스쿨에 다니면서는 로스쿨 설립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학생이 ‘나’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어요. 변호사시험 합격이 부담이긴 하였지만 문 닫고 합격해도 된다 생각에 학점이나 변호사시험 걱정에 매이기보다는 법철학, 헌법이론 등 비수험 수업을 많이 듣고, 틈틈이 논문을 쓰거나 외부 투고를 하면서 로스쿨 시절을 보냈습니다. 졸업한 이후 전형적인 변호사 업무보다는 연구나 활동을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좀 다르게 먹었던 거지요.

로스쿨은 직업학교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변호사님과 같은 이유로 진학을 결정한다는 게 좀 낯설어요.

현실은 그렇게 운영되지만 제도는 활용하기 나름 아닐까요. 물론 합격률 하락으로 현재 로스쿨의 모습은 암담한 상황이긴 합니다. 처음엔 졸업 후 바로 대학원에 돌아가서 박사 논문을 쓸 생각도 있었지만, 법학공부를 하면 할수록 송무 경험에 욕심이 났어요. 다행히 졸업 즈음에 송무를 하면서 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지금의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요. 그리고 결국 올해 박사학위 논문을 법사회학 전공으로 쓰기도 하였습니다.

그게 병행이 되셨어요?

사무실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세상에! 사무실 자랑도 같이 해서 설명을 좀 해 주셔요.

2016년 10월쯤 제 욕심과 마음을 사무실에 말씀드렸는데, 논의를 하신 후 2017년 1년간 신건 배당에서 제외해주셨어요. 글을 쓰려면 ‘덩어리’ 시간이 필요한데 그것을 얻을 수 있었지요. 사무실에서 받은 1년을 좀 넘겨서 이번 1학기까지 논문을 썼고, 이번 7월에 겨우 통과가 되었네요.

사무실 이야기를 좀 하면, 법무법인 해마루는 흔히 ‘민변 계열 펌’이라고 설명되곤 합니다. 저를 포함해서 그 이유로 입사하신 분들도 꽤 되구요. 해마루에는 민변 회원이 아니신 분들도 있으시지만, 민변이 지향하는 가치에 대한 공유는 있습니다. 민변 회원 여부를 떠나 그러한 지향성을 사무실이 지켜나가야 할 가치라고 구성원들이 인식하고 또 그렇게 노력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고용 변호사가 민변 활동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매일매일 처리해야 할 업무량이 상당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까 하는데, 해마루는 ‘지원’까지는 아니라도 ‘응원’해주신다고. 민변 활동을 응원하고 여러 배려도 해주시지만, 주어진 일은 어떻게든 해놓아야 하는. 회사에 고용된 변호사로서 당연한 것이지만, 민변 회의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와 앉아있는 새벽에 살짝 힘들 때도 있지요. 아, 민변 회비를 사무실에서 내주시니 ‘지원’은 분명히 있네요. 정정하겠습니다.

적지 않은 변호사님들이 특히 고용 변호사님들이 사무실에서는 기계적으로 주어진 일을 하고, 민변에 와서야 비로소 가치 지향적인 일을 하는,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고, 견디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요. 해마루도 회사이고, 회사의 유지를 위해서는 이익을 내야하니 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고용 변호사의 이런 심리적 고충도 사무실 내부에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나은 조건인 것은 사실이지요.

 

변호사님께 제일 먼저 여쭈어볼 건 역시 병역거부죠. 여호와의증인이 아닌 사유로 병역거부를 하는 것은 흔하지는 않지요?

거의 없죠.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90명 정도가 비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자입니다. 2002년 여호와의증인이 아닌 최초의 병역거부 선언자 오태양 이후 17년 동안의 통계이니, 일 년에 5명 정도의 병역거부자가 나왔다고 볼 수 있겠네요.

농담처럼, ‘불효자 피가 있다’라고 하는데, 변호사님은 병역거부를 어떻게 마음먹고 실행하셨는지 그 과정이 정말 궁금합니다.

대학 입학하고 학생운동을 꽤 열심히 했어요. 귀가 얇은 편인데, 선배들의 진지함에 혹 했지요.

대단한 공부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일련의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데모에 나가고, 그 과정에서 경찰이나 용역깡패들의 폭력을 보면서 국가 공권력에 대한 거부감이나 반감이 켜졌죠. 특히 집회에서 경찰의 진압모습은 지금과 사뭇 달랐어요. 경찰방패와 곤봉으로 시위대를 치고 들어와 엄청난 구타를 가하기 일쑤였죠. 철거촌에서 경찰 비호아래 이루어지는 용역깡패의 폭력은 너무 노골적이어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고요.

현역입영 대상자였기에 군인이 되어야했지만, 앞선 경험으로 국가공권력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에 적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그 적대감이 ‘거부’라는 선택항을 바로 연결되지는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당시 대부분의 대학생들처럼 그냥 “때워야지”생각했고, 학생운동 늦게까지 하면서 최대한 미루다가 갔다 와야지 정도의 계획이었습니다.

2002년 병역거부가 한국사회에서 공론화되고, 언어와 선택항이 생겼지요. 병역의 뒤에 ‘거부’가 붙는 언어, 병역을 ‘거부’할 수 있다는 선택. 그 때 참 놀랐어요.

다른 길을 발견하신 거네요.

제가 속했던 학생운동 조직이 2011년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 그리고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이 이어지는 국면에서 적극적으로 평화운동에 결합했어요. 공권력의 구성원이 되는 것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평화에 대한 확신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대적 경험을 할 수 있었지요.

질문이 왜 병역거부를 하였냐? 인데, 짧게 정리하면 운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군대 문제로 고민했던 그 시기에 병역거부라는 운동이 등장했고 제가 했던 학생운동 조직이 평화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제 선택항이 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사실 비종교적인 병역거부는 대부분 전쟁의 시기에 급격하게 증가합니다. 베트남전쟁 때 미국의 병역거부가 대표적이에요. 전쟁의 시기에 자신이 입는 군복이, 자신이 드는 총의 의미가 분명해지니까요. 저 역시 이라크로 파병되는 한국군인들을 보면서, 그것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권력자들을 보면서 평화라는 것이 신념이 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운이 좋았다고요?

양심이나 신념은 형성되는 과정이 필요하죠. 물론 그 과정이 꼭 긴 시간일 필요는 없지만요. 저 역시 어느 순간, ‘병역거부’라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라 제가 했던 활동들 속에서, 당시의 사회환경들 자연스럽게 ‘살인훈련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그렇게 살겠다’라는 마음을 키워나갔던 것 같아요. 그런 시대적 경험을 제가 대학생 시절을 갖을 수 있었던 것에는 운이 분명 있지요.

또 하나는, 현실적인 부분에서의 운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제가 이 선택을 했을 때 부모님이 쓰러지셨거나 그랬으면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실 당시 집안 분위기가 어머니가 자해를 시도하셨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분위기거든요. 저희 집 대장이 아직도 할아버지이신데 할아버지는 아직도 제가 중국에 병역 특례를 다녀왔는지 알고 있으세요. 제가 마음을 꺾지 않자 온 가족이 함께 거짓말을 하였던 것이죠. 만약 할아버지께서 이 사실을 아시고 쓰러지셔서 병원에 가셨다, 그랬다면 제 결정을 지키는 것이 참 힘들었을 거 같아요. 병역거부자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부모님의 강력한 반대로 포기하는데, 저는 그런 측면에서 운이 좋았어요.

다시 그 시기로 되돌아간다면, 같은 결정을 하셨을까요?

모르죠. 조건이 바뀌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왜냐하면 그것이 아무리 내 신념이라 하더라도.
그때로 돌아가도 절대로 총을 잡지 않고 감옥에 갈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건 너무 자신에 대한 확신인 것 같고.

(이 분 매력있다. 겸손하다. 다시 같은 선택을 하겠다, 라고 말해도 누구나 고개 끄덕일 텐데.)

질문을 좀 바꿔서 후회하지 않느라고 물어보면, 인생을 돌이켜봤을 때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답할 수는 있어요. 병역거부라는 선택과 감옥에서의 시간이 이후의 삶에서 하나의 준거점처럼 저한테 많은 의미를 가지는데 그런 무거운 추가 하나 있으니 어떤 결정이나 판단에 있어서 든든하게 기댈 곳이 있는 느낌이랄까요?

불이익을 말씀을 하시기도 하는데, 물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감옥행은 심각한 인권침해지요. 말해 무엇 할까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제가 병역거부 전에도 후에도 많은 것을 누렸다고 생각해요. 출소 이후 제가 진학하였던 사회학과 대학원도 그 결정을 높게 평가해주는 분위기였고, 병역거부로 석사논문까지 썼죠. 로스쿨에서 그랬구요. 해마루 입사에도 ‘전과자 가산점’을 제가 누린 것은 아닐까 추측도 해봅니다.

그래서 부끄럽기도 해요, 수많은 이들의 오랜 고통을, 정작 나는 상징자본처럼 누리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마음에요.

구속 생활은 어떠셨나요.

노회찬 의원이 얼마 전에 안타깝게 돌아가셨는데, 제가 서울구치소에 있을 때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이 서울구치소에 접견을 오신 적이 있어요. 노회찬 의원이 17대 국회에서 대체복무 법안을 발의하였는데, 이후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병역거부자들을 만나러 오신거죠. 그렇게 한 번 국회의원이 접견을 온 수감자들은 구치소에서 함부로 못해요. 방에서도 특별한 사람이 되죠. 쟤는 국회의원이 접견 오는 사람. 노회찬 의원 덕에 얼마나 잘난 척을 하고 살았게요.

몸은 갇혀 있지만 마음을 갇히지 말자, 생각했지만 좁은 방을 여러 명이 같이 쓰다 보니 무언가를 집중해서 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신문 칼럼 필사를 좀 했어요. 무언가를 쓰면 확실히 집중이 되니까요. 그 때 습관이 지금도 배어서 여전히 신문은 종이신문을 구독해서 보고, 또 스크랩도 하고 있어요.

병역거부 운동이 ‘남성’만의 운동이라고 쉽게 상상하게 됩니다. 이 부분에 관한 의견이 어떠신가요.

모든 사회운동에는 당사자도 참여하지만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도 참여하죠. 근데 병역거부는 특히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예를 들어 우리가 치매 노인들이나 장애인을 위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치매 노인이 아닌데, 장애인이 아닌데 왜 그 운동을 하냐고 묻지 않잖아요.

저는 안보영역의 특수성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병역 문제에 대해서는 여성들만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제되지요. ‘신성한 병역의 의무‘라고 흔히 이야기하는데 ’신성‘이라는 것은 세속의 모독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에요. 합리적 비판이나 문제제기가 모욕과 등치되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자격을 따져 묻게 되는 구조가 바로 병역의 신성화입니다. 지금 육군 사병 기준으로 군복무 기간을 18개월로 줄인다고 하는데, 꼭 18개월 해야 돼? 12개월 하면 안 돼? 이런 말을 못하는 거지요. 이런 말을 하면 바로 너 군대 갔다 왔어? 니가 뭘 알아? 이런 이야기가 등장하는 구조. 병역의 신성화라는 건 결국 정보와 해석의 폐쇄성이에요. 우리가 알아서 할게, 너희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

세상의 생각과는 다르게 병역거부 운동에 있어서 많은 여성활동가들이 참여하였고, 그녀들의 역할도 지대하였습니다. 병역거부운동을 넘어서 한국 평화운동이나 평화연구에 있어서도 여성활동가, 연구가들의 역할이 그러하였구요. 왜일까 생각을 해보면, 생물학적 성이라는 기준만으로 일반화하기 조심스럽지만, 군대 경험이 없고 그 이유로 발언권마저 배제 당해온 여성들이 당연시되는 군사주의에 보다 민감했던 것 아닐까, 자신이 불편하게 느끼는 군사주의를 바꾸기 위한 운동에 참여했던 것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병역거부운동은, 군대와 관련된 운동은 남성들만의 것이라고 보는 시선이 바로 신성화의 논리, 배제의 논리가 작동하는 것 아닐까요?

(질문 하고 혼나는 기분, 오늘 여러 번 느꼈다)

최근 헌법재판소 결정이 특별히 의미가 있으실 것 같아요. 소회를 여쭙겠습니다.

한편으로는 감격스럽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워요. 드디어 되었구나 싶지만, 이렇게 오랜 고통 끝에서야 되었구나 싶기도 하구요.

제가 2005년에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최후 진술을 했어요. 피고인으로서. 2018년에는 변호인으로서 최후변론을 하였지요. 같은 법원에서 저와 똑같은 병역법 88조 위반으로 기소가 된 병역거부자의 변호인으로서 말이에요. 피고인도 안 우는데 변호인이 최후 변론하면서 울었어요. 방청하던 활동가 친구가 판사가 보면 니가 감옥 가는 줄 알겠더라 하더라구요. 당사자는 담담하게 얘기를 했지만, 저는 변론을 하면서 좀 서럽더라구요. 13년 전에 했던 “무죄를 선고해주십시오”를 지금까지 이렇게 간절히 말해야 하다니.

헌재 결정이 이렇게 나올 것이라고 예상을 하셨습니까? 물론 기대야 당연히 하셨겠지만.

2015년 이후 하급심의 계속된 무죄판결을 보면서 사법부가 이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병역거부 하급심 무죄판결은 한국 사법 역사상 유례가 없는 현상이었어요. 상급법원의 판단이 없는 상황에서 하급심이 엇갈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2015년부터 무죄 판결이 나오자 2016년 대법원 소부에서 유죄를 선고하였는데, 보름도 안돼서 하급심에서 다시 무죄판결을 내렸죠.

2015년, 16년, 17년 3년 동안 80여건의 하급심 무죄판결이 나왔는데, 판사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이 사람들 감옥에 보낼 수 없다 선언을 한 것이에요.

헌법재판소의 중요 결정들에 대한 사례분석을 해보면 대부분 시대를 앞서나가는 역할을 했다기보다는 변화된 시대를 추인하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어요. 저는 이번 결정 역시 변화된 시대를 추인하는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문재인 정부도 대체복무 도입입장을 수차례 입장을 밝힌 바 있구요.

지난 총회에서 모범회원 상을 수상하셨어요. 플랜카드에 ‘유흥도 열심’ 이렇게 적혀있던데요.

유흥이라면 좀 포괄적인데, 술을 즐겨 해서 그런 거 아닐까 싶네요. 술을 좋아하고, 인생의 낙으로 삼고 있고 그러네요. 또 지금 민변 베트남전 티에프에도 술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뒷풀이를 참 성실하게 합니다. 베트남 현지 조사 가서도 일과 시간이 끝나면 불타는 밤들을 보냈는데. 그런 연유로 그런 플랑을 만들어주신 것이 아닐까 해요.

수상 소감 한 번 더 부탁드리면 피곤하실까요.

페이스북에서도 썼는데, 평화운동 하던 사람, 변호사가 되어서도 평화운동 할 수 있게 해준 민변에 감사하지요. 민변 집행국과 공익변론센터에서 시민평화법정 준비에 정말 많은 인적, 물적 지원을 해주셨어요. 티에프가 크게 지른 사업 수습하게 해주신 거죠.

우리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티에프가 고생을 많이 했어요. 고생일 거라는 예감은 들었지만, 막상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보니, 피해자 진술부터 하나하나 다시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제대로 된 베트남어 통역, 번역자를 구하는 것도 어려웠구요. 티에프 구성원 모두가 헌신적으로 준비했는데, 모범회원 상은 거기에 대한 공동체의 평가라고 생각해서 기분이 좋았어요.

시민평화법정이 뭔지 제가 몰라서, 준비하신 변호사님께 물어봤어요 이게 도대체 뭐냐, 대본은 누가 쓰고, 대본대로 가는거냐 아니면 돌발사항이 있냐. 결론은 정해져있냐, 이게 하나의 연극이냐, 이런 질문들이요.

연극이라는 평가도 있지요. 민간법정이기에 피할 수 없는 시선이라고 봅니다. 민간법정 자체가 강제력을 가진 판결을 얻기 위한 재판이 아닌 공론화를 위한 운동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형식이 아닌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시민평화법정에서 다루어진 주장과 증거의 수준, 법정증언과 판결의 내용 등을 볼 때 저희는 실제 법정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손색이 없어야 한다는 기준을 잡고 준비하였어요. 비록 티에프 내부에서 역할을 나눴지만 원/피고 간의 공방도 사전 조율 없이 충분히 전개 하였구요. 방청 오셨던 참천군인분들도 판결에는 불만을 표시하셨지만, 재판 과정에서는 ‘나라에서 하는 것보다 잘하네’ 말씀을 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물론 누군가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어차피 결론 뻔하게 내려놓고 한 거 아니야? 시민평화법정의 재판부로 모셨던 이석태 변호사님, 양현아 교수님, 김영란 대법관님 모두 그 부분을 인식하셨습니다. 그래도 더더욱 당위가 아닌 증거로써 주장을 입증해야 함을 강조하셨어요.

한국에서 진행된 어떤 민간법정에서도 이정도의 절차를 진행했을까 싶어요. 2일 간의 법정 전에 2주, 1주 전에 각 두 번의 변론 준비 기일을 진행하였어요. 원·피고 대리인 출석해서 공개된 장소에서 말이죠. 그 공개된 변론 준비 기일에 증거 신청과 증거 검토 그리고 재판부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항에 대한 석명들이 이루어졌습니다.

민간법정은 널리 활용되는 운동의 방식이기도 해요. 연극적 요소도 있지만, 법정이라는 형식이 주는 실체규명의 과정이 매력적이고, 판결문이라는 결론까지 도출되기 때문이지요. 2000년 동경에서 열렸던 일본군‘위안부’ 관련 국제여성전범법정이었습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 총9개 국가 64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일본의 시민사회가 초대를 했죠. 그것이 저희의 롤모델이었습니다. 가해국의 시민사회가 가해국의 수도에서 자신의 책임을 묻는 법정. 2000년에 일본 시민사회가 국제적인 연대로서 이루어냈다면, 2018년에 한국 시민사회가 해보자.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것, 여기서 좀 풀어 주세요.

시작은 소박했어요.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문제가 오랜 전부터 알려졌지만 구체적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국가배상소송 통해 파열구를 내보자 의견을 모았는데, 운동이 너무 소송에 갇혀서도 안 된다는 우려도 있었지요. 그래서 소송을 준비하는 품으로 여론을 환기하는 민간법정을 해보자 생각을 한 것이에요. 리서치 과정에서 2000년 동경 법정도 확인되면서 조금 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구요.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이 너무 커졌죠. 실제 소송이라면 한 쪽 당사자의 주장만 준비만 하면 되지만, 민간법정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직접 해야 하는 것이자나요. 법정을 세우고, 절차를 담은 헌장을 공포하고, 재판부를 모시고. 베트남이라는 언어적 지리적 거리가 있는 곳에서 조사를 하고, 원고들을 모시는 작업도 상당한 비용과 공력이 드는 과정이었어요. 베트남 정부가 이 문제에 있어서 여전히 폐쇄적인 입장이었기에 언제든 초정이 무산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구요.

티에프에서 2회 현지조사를 다녀왔는데 그 자료들을 번역하는 과정도 참 고달펐습니다. 김남주, 이선경, 배광열, 오민애 변호사님이 번역 때문에 고생 참 많이 하셨어요. 지금까지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 인터뷰 자료들은 피해자 진술을 그대로 베트남어로 녹취한 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현지 인터뷰 과정에서의 통역자의 진술을 정리한 것이 피해자의 진술로 유통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소송자료로는 전혀 쓸 수 없는 자료였기에 인터뷰를 영상을 바탕으로 라인 바이 라인으로 녹취를 하고 이후 번역을 진행하기로 하였는데, 이것을 제대로 처리해줄 수 있는 인력을 구하기 어렵더라구요. 피해지역이 베트남 중부라 사투리가 심하고 피해자들이 고령이기 때문에 만만치 않다라는 설명은 들었지만, 이 문제는 아직까지 티에프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또한 시민평화법정에서 정작 피해자들이 소외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도 있었어요. 준비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베트남어를 하지 못하고, 피해자분들과의 지리적 거리도 먼 상황에서 준비의 대부분이 한국 법률가와 활동가들의 판단과 결정으로 이루어졌거든요. 물론 시민평화법정을 시작하기 전 피해자분들에게 내용을 설명하고, 원고를 해주실 수 있겠냐는 동의를 얻었고, 2차 현지조사를 통해서 다시 설명을 드렸지만 피해자들과 충분한 소통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이 원고로서 앉아 있으실 법정이 한국어로 진행되었으며, 이틀간 15시간에 달하는 과정이었죠. 절차에 익숙한 변호사들도 그 시간동안 앉아있는 게 쉽지 않잖아요. 위스퍼링 통역을 준비하였지만 60에 가까운, 태어나서 재판이라는 것은 처음 겪어보는 분들이 이 재판을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정작 원고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재판을 우리가 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 복잡했어요.

하지만 법정에서 원고들은 단 한순간도 법정을 떠나지 않았어요. 잠깐 쉬시다가도 밖에 무슨 소리만 나면 이분들이 뛰어 나가시는 거예요. 궁금하다고. 자기들의 재판이었어요. 피고 대한민국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 베트남에서 오신 원고였어요. 혹시 재판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시는 것은 아니까 걱정되는 마음에 실제 재판이 아니다 말씀을 드리면, 안다고, 하지만 내가 죽기 전에 이런 재판을 언제 받아보겠냐고, 지금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해주시더라구요. 제가 얼마나 관념적이었는지, 마음속에서 이 분들을 운동의 주체가 아닌 증언의 도구로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지요. 뻔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피해자에서 운동가가 되는 과정이 이 분들에게는 이번 법정이 아니었을까 싶었어요.

다들 가슴 속에 하고 싶은 말들이 있으셨구나.

대본 짰냐고 물어 봤잖아요. 베트남에서 오셨던 분들의 당사자신문과 최후진술은 전혀 사전준비가 없었어요. 사실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했어요. 재판부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 최후진술. 무엇하나 읽지도 보지도 않고 마음으로 답변하셨어요.

그런데 세상에 그렇게 말씀을 잘하시는 거예요. 최후진술을 하시는데, 여기까지 차오르는 얘기를 그 300명 400명 되는 앞에서 당당하게 얘기하시더라고요. 진실을 이야기하고자 왔고, 그 진실을 이야기했다. 기억해달라며. 제가 법정이 끝나고 매체에 투고한 글이 하나 있는데 그 제목이 “눈부셨던 응우옌티탄들”이었어요(원고 2명의 이름이 응우옌티탄으로 동명이인이었다), 정말 그랬어요. 눈부셨어요.

(대본이 있었냐는 질문에 화가 나서 말이 길어진 것은 아니었다고 믿는다. 당시를 떠올리는 임재성 변호사의 표정에서 감격스러움이 묻어나온다.)

시사인에 고정칼럼을 쓰셨던데, 그 때 변호사님 설명이 ‘평화연구자’더라구요. 보통 변호사, 교수 이렇게 직함을 쓰지 않나요?

일본에서 잠깐 공부했던 시기가 있는데 그때 참 마음에 들었던 게 그런 거였어요. 우리는 보통 소속을 얘기하잖아요. 무슨 대학, 무슨 법무법인. 소속이 없으면 명함이 없는. 근데 일본에서는 ‘작가’, ‘연구자’ 이런 호칭이 많고, 자연스럽게 통용되요. 또 연구자 앞에는 그 사람이 관심 갖고 있는 주제가 붙는데, 어느 대학에 있다는 호칭보다 그 사람을 훨씬 더 많이 설명해주는 것 같더라고요. 평화연구자, 인권연구자, 이주연구자 등과 같이 말이죠.

조금 더 내심으로 들어가면, 변호사든, 박사든 그것은 자격이나 직업의 문제이고 제가 지향하는 것은 평화연구자에요.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임재성 변호사의 사무실 한편에 시민평화법정 기념사진이 걸려있다.

 

마지막으로 민변 회원들과 공유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저는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병역거부 운동과 민변이 할 일이 더 많아질 거라고 봐요. 사실 지금 민변에서는 병역거부 사건을 해보신 젊은 변호사님들이 없어요. 근래에는 여호와의증인이 아닌 병역거부자들이 변호인을 선임하여 재판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이제 대체복무제가 도입이 되면 관련된 소송들이 증가할 거예요. 대체복무심의 위원회가 불인정 결정을 하면 이를 행정소송으로 다투는 소송이지요. 위원회가 어떻게 구성될지 아직 미지수이지만, 초기에 보수적인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지요. 종교적 사유 및 많은 입증자료가 있는 비폭력-평화주의 신념 정도의 범위에서 말이죠. 초기 불인정 결정에 대한 행정소송을 통해서 나오는 사법부의 판단들이 대체복무심의위원회 방향에 중요한 기준들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봐요. 그 과정에서 민변의 변호사들이 세밀한 연구를 통해서 대응해야 겠지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곧 만들어질 대체복무심의 위원회가 병역거부자 여부를 판정하게 될 텐데, 이는 우리 사회가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한 양심 심사 기구가 될 거에요. 그 위원회가 이 사람은 양심 인정. 저 사람은 양심은 불인정, 이렇게 판단을 하겠지요.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비폭력 평화주의 신념’은 인정하지만, ‘남성성이 지배하는 군사주의적 공간은 나의 성적정체성과 배치된다’는 마음은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이 아니라는 판단이 나올 수 있어요. 그런 결정이 나왔을 때 소송을 준비해야죠. 초기에 좋은 선례를 만드는 과정에 민변 변호사들이 함께 하였으면 합니다. 또한 위원회의 심사 단계에서부터 변호사의 조력이 필요할 수도 있을 텐데 이 역시 준비할 필요가 있구요.

3시간의 긴 인터뷰를 이 지면에 다 담지 못해 아쉽다. 그의 말을 모두 이해하거나, 견해에 전부 공감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명확히 알고 이를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인간이 얼마나 멋있는지는 확실히 느꼈다.

The post [회원인터뷰] 일도 유흥도 모범 임재성 변호사를 만나다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금, 2018/08/1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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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박영순 구리시장 대법원서 당선 무효형 확정, 시장직 상실

구리친수구역개발사업 전반에 대한 감사, 조속히 실시해야

 

○ 구리친수구역개발 사업을 진두지휘해온 박영순 구리시장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2월 10일 오전 대법원에서 벌금 300만원 확정판결을 받아, 시장직을 상실했다.

 

○ 박영순 시장은 지난해 5월 27부터 6월 4일 지방선거일까지 ‘국토부 그린벨트 해제요건 충족 완료’ 등 구리친수구역개발사업과 관련한 내용이 적힌 현수막 4개를 시내에 내걸고 전광판 광고를 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 해 12월 1심에서 벌금 80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같은 혐의로 2심에서는 당선무효형인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 박 시장은 지난 해 지방선거에서 3선에 도전하면서 ‘구리친수구역개발사업을 완성시키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밝힌 바 있고, 이 사업으로 물러나게 된 것이다.

 

○ 구리친수구역개발사업은 지난해부터 올해 말까지 열린 지방재정 중앙투융자사업 심사결과에서 5번이나 재검토 결정이 나는 등 타당성이 결여된 사업이라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 지난 3월 19일 국토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이하 중도위)는 구리친수구역 개발사업 사업대상지에 대한 개발제한구역해제를 조건부 승인했다. 그러나 이때 중도위가 제시한 선결조건은 외국인 투자신고지역 지정, 행자부 중앙투융자심사 통과 및 관보 고시, 서울시와 협의해 수질개선방안마련, 토지전매를 일정기간 제한, 외국인 투자계약은 해당사 대표와 체결 등이다. 선결조건을 해결하기 위한 구리시장의 역할은 막중하다.

 

○ 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곳곳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개발제한구역해제를 위한 사업대상지 환경성평가과정에서도 편법허위사실이 드러나 국토부가 재평가를 실시했다. 이에 따라 구리시가 주장했던 개발가능 면적 99.5%가 재평가 결과 37%로 줄어든 것이다.

 

○ 무엇보다 구리친수구역개발사업 대상지는 한강 상수원과 인접해 있어, 식수원보호를 위해 서울, 인천, 성남 등 인근지자체에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 이번 판결은 박영순 시장이 혈세를 낭비하면서 과도하게 추진해온 구리친수구역개발사업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다. 정부가 타당성이 없다고 판단했고, 인근지자체는 식수원 위협을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더군다나 구리친수구역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도 철저한 감사가 필요하다. 구리친수구역개발사업은 조속히 백지화해야 한다.

 

 2015.12. 10.

서울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최영찬 최회균

사무처장 이세걸

문의 : 김동언 생태도시팀장 (010-2526-8743, [email protected])

 

[논평] 구리친수구역개발 박영순 구리시장 시장직 상실_사업에 대한 조속한 감사 필요

목, 2015/12/1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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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와 통제를 위한 국정원의 그릇된 헌신

- 국정원의 해킹프로그램 구입 및 불법감청시도에 대한 규탄성명 -

최근 다수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국정원이 5163부대라는 이름으로 최소한 2012년부터 최근까지, 이탈리아 ‘해킹팀(Hacking Team)’으로부터 인터넷 감시프로그램 ‘RCS(Remote Control System)’을 구입하여 운영하였음을 추측케 하는 단서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유출된 ‘해킹팀’ 의 직원들이 주고받은 이메일의 내용에 따르면, 국정원이 국내에서 유통되는 특정 스마트폰에 대한 해킹 방법을 요청하고, 국내에서 주로 사용되는 모바일 메신져 및 백신 관련 해킹에 대하여 문의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대해 국정원의 고위관계자는 국정원에서 해당 프로그램을 구입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대북·해외 정보전을 위한 것이라고 변명하였다. 그러나 해킹의 대상이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스마트폰 모델과 모바일 메신져 및 백신에 집중된 경향을 살펴볼 때, 국정원의 감청대상은 우리 국민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지난 10년간 국정원이 밝힌 휴대전화 감청 건수는 ‘0건’으로, 그동안 국정원은 공식적으로 휴대전화 감청사실을 부인해왔다. 최근에는 휴대전화 감청의 기술적·절차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통신사업자들의 휴대전화 감청시설 구비를 의무화하는 법 개정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위 의혹들이 사실이라면, 국정원이 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에 이어, 다시 한 번 국민들을 속이고 국민들을 감시하려 하였음이 밝혀진 것이다.

헌법은 통신의 비밀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고,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감청가능 범죄의 특정, 수사의 보충성, 영장에 준하는 법원의 허가서 발부 등 매우 엄격한 요건 아래에서만 감청을 허용하고 있다. 이는 감청으로 인한 기본권의 침해를 최소화하고 요건을 지키지 않는 감청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법자의 결단이다. 국정원의 이번 감시프로그램 구입 및 해킹 문의는 국가기관으로서 국정원이 가져야 할 투명성, 신뢰성, 정치중립성을 다시 한 번 의심하게 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이번 사태는 국민이 피땀으로 쌓아올린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이며, 통제받지 않는 정보기관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국정원은 정보활동의 밀행성을 이유로 각종 정보공개에 소극적이며, 특히 예산은 편성부터 결산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공개되지 않는다. 국정원의 대선개입·경력판사 면접 의혹, 간첩조작 사건 등은 국정원의 비밀주의가 어떻게 절차적 민주주의를 흔들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감시당하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진의(眞意)를 입 밖으로 꺼내려 하지 않는다. 핸드폰을 훔쳐보는 것은 국민의 입을 막기 위한 더 큰 그림의 예고편에 불과할 것이다. 모임은 우선 이번 사태에 대하여 국회가 국정원의 불법사찰 여부에 대하여 사실관계를 명백하게 밝히고, 이에 따라 불법 감청을 막을 수 있는 법적 제도적 보완을 서둘러 해줄 것을 요구한다. 국정원이 자신의 오점을 끝까지 숨기고 호도하려 한다면 더 이상 한 나라의 정보기관으로서 존재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국정원이 보호하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맹목적인 헌신은 결국 국정원의 존립기반인 국민들의 신뢰를 잃는 지름길임을 국정원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15년 7월 14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 장 한 택 근

화, 2015/07/1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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