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와 민중의 재발견" 문대골 목사 강연, 예수살기 수도권모임

예수살기 수도권 모임이 2014년 10월 20일(월) 오후 7시 30분, 향린교회 어린이부실에서 10여명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이날은 기독교평화연구소 문대골 목사의 ‘세월호 참사와 민중의 재발견’이라는 주제의 강연으로 진행되었다. 문 목사의 강연을 요약한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국가라는 것이 ‘참으로 의미 없는 것이구나’ 하고 느꼈다. 함석헌 선생은 우리 민족이 나라 없는 백성이고 앞잡이나 오랑캐만 있다고 개탄했다. 함 선생은 반공적인 발언을 많이 했으나 실제로는 남과 북의 한 가운데 서 있던 인물이었고 국가라는 조직을 불쾌하게 생각했다.
국가란 민(民)의 존립기반을 지켜주는 것이 목적이다. 요즘 국가가 뭔지 고민이 많다. 민(民)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가 과연 국가일까? 국민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이보다는 인민이라는 말이 맞다. 인민이라는 말이 북에서 사용하는 말이라 오해가 많겠지만, 민(民)이 앞으로 와야 하는데 국가가 먼저 나서는 국가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300여명이 죽었으나 왜, 어쩌다 죽었고 누가 죽였는가를 물을 수 없는 국가가 지금의 현실이다.
땅 없이 나의 역사는 없다. 나의 존재는 땅과 연관이 돼있다. 그래서 국가는 물론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민(民)이 우선이 돼야 한다. 함석헌 선생은 종종 ‘나는 민(民)을 주로 모시고...’라고 하셨다. 그에게 민주주의는 종교였다. 하나님은 역사의 위임을 민(民)에게 하였다. 역사의 주인은 민중이다. 한국이라는 국가는 이 민(民)을 지켜야 하는데 그걸 하지 못한다.
함 선생이 신문을 보다가 ‘내가 이 사람의 끝을 보지!’라고 한 적이 있었다. 신문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관한 내용을 보면서 참다 참다 한 말이다. 함 선생(1901년생)은 16세에 결혼을 했으니 박정희(1917년생)는 함 선생에게 아들 뻘 된다. 박정희 사망 10일 전쯤 함 선생은 미국 워싱턴교회에서 강연을 하면서 ‘민(民)을 섬기지 않는 통치자는 하늘이 가만 놔주지 않는다. 그래서 저것도 쳤다’고 했다. 후에 이 말은 예언으로 이해되었다.
세월호 국면에서 정치적 우군도 없다는 것이 개탄스럽다. 새누리당에 끌려다니는 새정치민주연합을 보면서 유족의 마음은 어땠을까? 유족의 아픔이 우리 아픔으로 다가와야 한다. 분노해야 할 때 분노도 하지 못하고 싸움도 못하는 것이 지금 새정연의 모습이다.
함 선생은 정치에 불신이 깊었다. 그런 사람이 옥중의 장준하를 위해 입당을 하고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 당시 지인들은 울면서 함 선생의 정치관여를 말렸다. 그러나 함 선생은 참종교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철저한 종교인이자 정치인이었다. 그때는 재야의 어른도 참 많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 안타깝다. 유족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픈 사람들과 얘기를 해봐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새정연의 합의는 유족들에게 말할 수 없을 만큼 섭섭한 일이다. 대리기사 폭행사건 소식을 듣고 나라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민주주의를 위한, 역사와 신앙, 종교를 위한 싸움에서는 스캔들이 없어야 한다.
5.16 세력과 대교회를 지향하는 세력이 오늘날 한국 몰락의 책임자이다. 박정희에게도 공과가 있겠지만 70년대 후반 유신시대에 박정희의 죄를 보는 교회와 목사, 기독교 지도자가 없었다. 대교회, 성장을 지향하는 교회 지도자는 5.16 세력의 판박이이다.이들 교회 안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계획을 보면 판박이이다. 실제 박전희, 전두환은 줄기차게 국가조찬기도회 등을 통해 교회를 지원하였고 여기에서 비극이 시작된다.
민중의 재발견! 국가는 이미 무너졌고 정치권에는 동지가 없으며 우리의 실력도 미천한데, 이런 때에 우리는 무엇을 잡아야 할까? 함석헌 선생은 ‘하늘은 임무를 목사, 신부, 교사, 지식인에게 위임하지 않고 민중에 하였다’고 했다. 민중을 깨우치는 일이 예수살기의 과업이 아닐까?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민중을 재발견하는 일이야말로 예수살기의 역할이고 임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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