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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꿈강좌]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 최훈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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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꿈강좌]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 최훈 철학자

익명 (미확인) | 토, 2015/06/20- 10:29

풀꿈환경강좌 세번째 시간,

최훈 철학자의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란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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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최훈 강사님.

왜 채식주의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말씀 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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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을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 있습니다.

고기를 씹는 식감이 싫어서, 어릴 때 동물과의 트라우마가 있어서, 단순히 싫어서 등등 많은 이유가 있을텐데요.

오늘 다룬 이야기는 윤리적으로 채식을 해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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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때문에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도 많은 분들이 와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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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느끼는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소, 돼지, 개 등이 고통을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일부 사람보다 뛰어난 면도 있지요.

고기를 먹기위해서는  아프리카에서 생산되는 콩, 옥수수가 축산공장에서 사육되는 소, 돼지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돼지, 소를 키우기 위해서 아프리카에서 생산되는 콩, 옥수수가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이의 입이 아닌 동물 입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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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의 채식주의를 하는 것은 어렵지만 매주 월요일은 고기 안먹기 등의 규칙을 정해서 줄여나가는 방법은 어떨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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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강사님과 사진도 찍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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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강좌에 오신 분들에게 단오부채도 나눠 드렸습니다.

더운 여름 시원하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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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변화는 우리 관계로부터

지미
지미입니다! 이번 일기가 저의 시즌2 마지막 비건(지향)일기이지 싶어요. 돌아보니 그동안은 비건, 동물권에 관해 얹혀있던 마음을 풀어내느라 글이 길고 무거웠어요. 오늘은 정말 최근 며칠 사이 지나온 일을 일기 쓰듯 나누려고 해요. 저는 ‘해야 해서’ 움직이는 사람이에요. 활동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사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살면서 해야 하는 일이 참 많은데 제 몸은 하나고 하루는 24시간이고.. 그 당연한 한계를 잘 모르고 살았더니 근래 좀 벅찼어요.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숨쉬는 일이 좀 불편해졌고 어제는 한의원에 다녀왔어요. 의사 선생님은 제 이야기를 듣더니 의미와 재미의 균형을 찾으라고 하셨어요. 의미도 좋지만 슬며시 올라온 ‘의미와 재미가 분리될 수 있나’하는 의문은 일단 마음 한 켠에 넣어두고 제가 중요하게 여겨온 일, ‘해야 하는 일’에서 언제 재미를 느꼈나 생각해봤어요. 부정의한 세상과 나 사이 괴리를 좁히고 싶었고,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인 줄 알았던 것 같아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사람들이 죽고, 어떤 죽음은 ‘죽음’이라는 단어의 무게만큼도 상기되지 않는 세상에서, 국가는 신뢰할 수 없고 내 곁을 지키는 일도 어려워 나 하나 붙잡고 가는 세상이에요. 그럼에도 세상이 ‘모두’에게 살기 좋은 공간이 되면, 내 곁도 나도 내가 모른 척 할 수 없는 누군가들도 잘 살 수 있겠다고 믿었어요. 저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인데, 손해본 것보다 되려 받은 게 더 많았기에 이 태도를 버리지 않을 수 있었거든요. 그렇게 어디든 가야 할 곳이었고 해야 할 일이었고, 그것들을 쫓아 살았어요. 다만 필요한 일을 찾아 다니는 건, 내 몸이 동해서 한 일이지만 어쨌든 ‘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긴 운동의 시간 속에 숨이 펑 트이고 기쁨의 눈물을 나누는 순간도 있지만, 다수의 순간엔 무거웠고 그 무게만큼 몸도 굳고 긴장했어요. 비건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도 비슷한 부담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분명 내 마음이 ‘먹고 싶지 않다’고 동해서 시작했는데, 일상에서 더 자주 마주하는 건 무엇이 더 정확한 비건인지를 묻는 ‘원칙’이었어요. 그렇지만 시즌1로 풀어낸 일기에 썼듯이 혼자 먹는 일에만 집중하는 ‘비건’은 나의 해방도 타자의 해방도 될 수 없었어요. 그때는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지?를 다시 물으며 구조적으로 가려진 과정 끝에 있는 동물의 얼굴을 떠올리자고, 그의 곁에서 같이 살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자고 제안했었죠. 다른 글에서는 내 실천의 결격을 찾아 검열하는 게 아니라 실천도 고민도 동료와 같이 하자고 했고요. 비건을 하냐마냐보다 잘못된 구조에 저항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그럴 힘을 기르는 것이 우리에게 더 중요한 일이니까요. 제가 힘든 걸 알고 한 활동가 친구가 이렇게 연락해줬어요. “의미있는 일의 피로감을 줄여주는 게 그 안에서 맺고 끈끈해지는 관계인 것 같아. 저번 주 모임도 참 좋았거든” 아주 같은 문제는 아니지만, 저의 많은 이유들이 ‘해야 해서’였던 걸 다시 돌아보려고 해요. 비건(지향)일기를 마치며 이 고민을 나눈 건 외롭게 있지 말고 이야기든 행동이든 주저함이든 그냥 살아내는 일이든 같이 하자고 손 내미는 마음이에요. 어려운 일이고 무거운 고민이지만, 각자로부터 출발해 같이 하는 무언가들은 즐거울 수 있지 않을까요? 서로 기대어 가는 삶이라면 나 혼자 무겁기보다 따뜻하게 다음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요?
화, 2022/11/1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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