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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차 총회 수상자 고윤덕, 박삼성 변호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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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차 총회 수상자 고윤덕, 박삼성 변호사 인터뷰

익명 (미확인) | 수, 2015/06/1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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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오늘 인터뷰는 모범회원 인터뷰 제1탄입니다. 이번 총회에서 모범회원상과 신인모범회원상을 받으신 고윤덕, 박삼성 변호사님이세요. 일단 회원 분들에게 본인 소개부터 간략하게 해주세요.

 

고윤덕 저는 76년생이고요, 연수원 38기로 지금 7년차 변호사가 됐습니다. 법무법인 시민에서 근무하고 있고 노동위원회 소속입니다.

 

박삼성 저는 변시 3회로 올해 2년차고 지금 수원에서 개업해서 노동사건 중심으로 한 번 배워볼까 하고 있습니다. 미군위에서 활동하고 있고, 국제통상위 쪽에 관심도 있어요, 그리고 한-중FTA TF팀에서도 활동 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이번 총회에서 고윤덕 변호사님이 모범회원, 그리고 박삼성 변호사님이 신인모범회원상을 받으셨어요. 총회에서 간략하게 수상소감 얘기를 하셨지만 총회에 참석 안하신 회원들을 위해 상을 받으신 소감 좀 부탁드릴게요.

 

고윤덕 총회에서는 수상소감을 ‘열심히했고, 상을 주시니 좋다, 감사하다’ 이런 취지로 말씀을 드렸어요. 그런데 사실 그때 제 머릿속에 있던 생각은 내가 받기에는 너무 과분한데 괜찮을까 하는 거였어요. 민변 모범회원상이 되게 의미가 크잖아요. 그 전 해를 통틀어 제일 열심히 활동하고 그리고 의미 있는 활동을 하신 분들이 받아왔던 건데,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저는 별로 인상적인 활동 한 것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좀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다만 다 함께 축제분위기인데 지나치게 겸손한 소감은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서 기쁘고 감사한 마음만 전했는데, 스스로 굉장히 과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김지미 박삼성 변호사님이 받은 신인모범회원상은 일생에 1번이기 때문에 더 받기 어려운 상이다 이런 이야길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박삼성 기본적으로 그때 말씀드리긴 했는데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처음 받아보는 상이 아닌가.

 

김지미 고등학교 때는 상을 받으셨구나(웃음).

 

박삼성 저는 정말 좋았어요. 추천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 상이 되게 치열한 상이라고 들어왔었고 저보다 활동을 많이 하신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받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었는데, 제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아, 정말 좋았어요.

 

김지미 올 것이 왔구나 이런 생각?

 

박삼성 그럴 줄 알았으면 등산복을 입고 가지는 않았을 텐데. 의상에 신경을 못 썼던 것이 조금 아쉽고요. 그런데 늦게 변호사가 되었는데 이런 큰 상을 받아서 기분 좋았고요. 민변이라는 조직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여러 선배님들이 닦아놓은 터전 안에서 활동을 했었기 때문에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지미 고윤덕 변호사님에 대한 추천서를 보면 수상의 이유가 ‘노동위원회 총무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노동위원회 신입위원들을 늘 따뜻하게 챙기고 이끌어주고 위원회 활동에 큰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다. 산업재해팀의 팀장역할을 수행 하면서 활동성 강화에 기여했다.’ 라는 것 하나, 또 다른 하나는 작년 1년을 끌었었던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청구사건의 대리인으로 활동을 하셨던 것 하나인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노동위가 민변에서 가장 큰 단위의 위원회고, 또 회원 수도 가장 많고 모임도 매주 가지고 그 외에도 팀별로 팀회의까지, 시민에서 근무하면서 추가로 하는 활동이라고 하기엔 시간적으로도 그렇고 부담이 되실 텐데 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어려운 점이라든지 그런 게 있을까요?

 

고윤덕 우리 노동위원회에는 훌륭한 분들이 많습니다. 저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요. 저는 꾸준하게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일들 위주로 해왔기 때문에 특별히 과외활동으로 과부화가 된다 이런 생각은 안 들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만 활동하고 있는 건데, 열심히 하시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기도 하고 자극도 되고 그렇습니다. 저는 또 저 나름대로 주어진 역할을 하고 있고, 총무변호사로서 이런저런 자잘한 일들을 부지런히 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그럼 이 부분은 어때요? 노동위 신입위원들을 따뜻하게..(웃음) 이 부분에 대한 자평을 좀 해주시죠.

 

고윤덕 사실은 노동위가 전통적으로 후배를 잘 챙겨주고 그런 곳은 아닙니다(웃음). 알아서 혼자 살아남는..(웃음) 그렇지만 소통이라고 하죠. 좋은 생각을 가지고 가입하신 분들, 같이 활동한다고 결심을 하시고 오신 분들이 잘 할 수 있게 최소한 도와주는 역할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노동위에 정말로 사람들을 잘 챙겨주는 사람들은 따로 있고요 저는 틈틈이 그 옆에서 도와주는 것으로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누가 잘 챙기나요?

 

고윤덕 위원장님이 위원들 간의 소통과 유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시고, 2-3년차 변호사들 중에아주 인재들이 많습니다. 아, 그리고 우리 정병욱 변호사님을 빼 놓을 수는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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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인재들이 많이 들어오는 것도 복이자 위원회 자체의 능력일 수도 있죠. 박삼성 변호사님의 추천서는 되게 감동적이었어요. ‘이렇게 조용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을까요?’로 시작하는 한편의 시 같았어요. 박변호사님은 정회원이 되기 전부터 위원회 활동에 적극적이었다라고 하는데 민변에 가입하신 게 언제인가요?

 

박삼성 벌써 재작년이네요. 2013년도 겨울에 실무수습을 정평에서 했었거든요. 하면서 마침 위원회 날짜가 맞아서 sofa 공부모임에 참여하게 되면서 시간 날 때마다 몇 번씩 미군위와 인연을 맺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2013년도 1월에 특별회원으로 가입을 했었습니다,

 

김지미 부산대 로스쿨을 다니셨는데, 한 달에 1번 있었던 공부모임에 참여를 하러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셨던 거에요?

 

고윤덕 집에 가는 길에 들렀을 테지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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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정회원보다 출석률이 좋았다 라고 추천서에 되어 있는데. 이게 3학년 때이잖아요. 변시를 앞두고 있어서 바쁘고 힘들었을 땐데 먼 거리를 와서까지 내가 공부모임에 참여를 하는 동력은 뭐였을까요?

 

박삼성 제가 서울에 있다가 부산으로 내려가게 됐는데, 로스쿨 생활이 3년이다 보니까 1년 동안 거의 교류가 없었죠. 교류가 없다보니까 이런 관심에서 멀어진다는 느낌, 거리가 멀고 사람을 안 만나니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나 열심히 하신 분들을 안 만나니까 점점 자기 일에만 메이는 느낌이 있었어요. 어차피 졸업하면 서울도 와야 하고 진로를 고민하면서 보니까 계속 사람을 만나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런 면에서 워낙 좋으신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열심히 나오려고 했습니다.

 

김지미 미군위 활동 하신다고 했는데 미군위하고 여성위가 같이하는 기지촌할머니국가배상소도 관여를 하고 계시죠? 작년에는 세월호특위에도 참여를 하셨고. 추천서에 청운동 파출소장이라고 되어 있어서 이거를 보고 시상위원회에서 실제로 박삼성 변호사 경찰출신이야? 그랬었어요(웃음). 청운동 파출소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유가 뭔가요?

 

박삼성 그때 다른 단체들과 함께 인권침해감시단 활동을 했었는데, 이동의 편리성을 위해서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했었어요. 이동파출소장 이런 개념으로 해서 이름을 붙여주시더라고요.

 

김지미 사실 변시 출신들은 실무수습 기간이 있기 때문에 합격을 했다하더라도 1년차에는 변호사로서의 활동을 잘 못하고 본격적으로 변호사로서의 일은 2년차가 돼서야 시작을 하잖아요. 그런데 작년에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이 계속 되고 있던 중에 통합진보당 상근변호사로 변호사로서의 첫 발을 떼셨어요. 사실 나의 직장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는 상황에서 거기를 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결심하는 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박삼성 저는 걱정을 안했는데 주변 친구들이 걱정을 많이 했었어요(웃음). 그런데 저는 큰 걱정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경험해 볼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특히나 정당의 자문변호사면 정당이 할 수 있는 일이 되게 많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해산될 줄은 생각도 못했었죠.

 

김지미 해산이 안 될 것이라고 확신을 하셨군요.

 

고윤덕 언제 상근변호사로 가셨어요?

 

박삼성 2014년 10월이요. 다들 정세판단을 잘못했다고 하면서(웃음). 저는 전혀 그것에 대한 어려움을 생각 못했는데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하셨죠.

 

김지미 정당해산선고가 난 이후에 박삼성 변호사를 아는 사람들은 그 충격의 여파가 가시고 나서 박삼성 어떡해?(웃음) 그런 이야기가 나왔어요. 어찌됐건 취직을 하자마자 실직이 된 상태였었잖아요. 그런데 정당이 해산되고 나니까 그 뒤처리는 또 상근변호사로서 다 하셨어야 했었던 거죠. 되게 힘들었을 것 같고 내가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망이라든지 그런 것에 대해서 1년차 신입변호사로서도 상당히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그 이후에 지금의 전망을, 개업까지의 과정에 대해서 본인의 이야길 해주시면?

 

박삼성 작년 연말에 해산되고 나서 해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더라고요. 그런데 저의 그런 심정보다는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셨던 분들의 분노가 너무 큰 것을 보니까 제가 그렇게 직장이 없어졌다는 것은 새발의 피다. 어쨌든 2개월 안에 업무를 마쳐야 하니까 회계 관련 자문이나 잡무처리에 대해서 자문 같은 것을 하고 보냈었죠. 해산은 해야 하니까. 2월 말에 어떻게 할까 하다가 의정부 쪽에 고양으로 면접 기회가 있었는데 수원에서 활동하시는 박치현 변호사님께서 혹시 개업 생각이 있느냐, 노동 쪽 사건을 같이 해보면 어떻겠냐라는 제안을 하셨죠. 개업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고민을 했는데, 정당해산 3개월 하다보니까 법률적인 일은 어쨌든 제가 알아서 스스로 해야 하니까. 자문을 하면 제가 답변을 해야 하고. 그래서 그런 것들이 개업을 할 수 있었던 기반이 아니었나. 제 이름으로 모든 것을 처리해야 하니까. 오히려 경험했던 것이 개업을 바로 할 수 있었던 힘이 됐었고, 기본적으로 고용으로 들어가면 하고 싶은 활동을 많이 못한다는 우려를 많이 했었고요. 그래서 개업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맞지 않느냐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죠.

 

김지미 고윤덕 변호사님은 38기시잖아요. 저도 늦게 시험이 된 케이스긴 한데, 변호사님하고 저하고 거의 비슷한 것 같거든요. 그래서 그 사이에 뭐가 있었을까 사실 좀 궁금해요.

 

고윤덕 안타깝게도별 것이 없답니다. 그냥 고시공부를좀 늦게 시작했고, 오래했어요. 그래서 요즘 변호사가 되기 전에 다양한 경험을 가진 분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고 멋지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지미 민변은 변호사가 되면서부터 바로 가입을 하신 거죠? 공부를 하면서 변호사가 되면 민변에 당연히 가입을 할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고윤덕 네.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전부터 변호사가 되면 민변 같은 데 가입해서 활동을 하면 참 보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어요. 제가 예전에도 그랬지만 관심분야는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는 편이에요. 연수원에서 노동법학회 활동도 하고 1학년 때 법률 봉사활동을 금속 법률원으로 갔었어요. 관심분야가 그러다 보니까 민변에서 노동위원회가 있다더라 또 각종의 신문, 언론보도를 보면 어떤 사안에 대해서 항상 자기입장을 표명하고, 그게 공감이 되고. 특히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대해서 항상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하는 그런 부분이 마음에 들어서 나도 변호사가 된다면 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 이런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취업이 시민 사무실로 되었는데, 저희 사무실 변호사님들은 다 민변 소속이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민변에 가입하게 됐어요. 민변에서는 거의 노동위 활동만 해왔는데, 작년에 비상특위 활동을 계기로 또 훌륭한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 좋았습니다.

 

김지미 최근의 관심사는 뭐에요?

 

고윤덕 요즘엔… 노동‘인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웃음).

 

김지미 그거는 기본적으로 바탕에 깔려 있는 거 아닌가요?

 

고윤덕 제가 의외로 인권감수성이 약하다는 콤플렉스가 좀 있어요. 서울변호사회 인권위원으로 노동인권 소위원회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어떤 사업을 하면 좋을까 그 생각을 하고 있는 참입니다.

 

김지미 민변에 계신 분들은 기본적으로는 감수성이 있는 분들이니까요. 저번에 인터뷰 하신 거 보니까 장애인운동 하는 동아리, 법대 철학회, 신문도 만들고 검도하고 사진, 등산까지 정말 관심 분야가 다양하던데 최근에 특별히 관심 가는 분야는 없으세요?

 

고윤덕 작년에 통합진보당해산 사건 때문에 등산도 그만두고 거의 1년간은 거기에 올인하다시피 하다가 결론이 그렇게 났습니다.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해산결정으로 인해서 많은 고통을 받았고 또 그 여파가 상당기간 계속될 테지만, 저는 대리인이니까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사건은 끝났기 때문에 추스르고 또 일상으로 돌아가야지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패소하고 난 다음에도할 일이 많았어요. 언론에서 기사 쓰는 데 자료 좀 달라고 하면, 이게 기록이 방대하다보니까 사실은 찾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관련한 당사자들이 많다보니까 조금이라도 오류가 있으면 굉장히 부담스럽고. 언론 인터뷰도도 주요한 매체는 연차 있으신 변호사님들이 하시는데, 그밖에도 보충적인 설명이 필요한 부분도 있었고. 그러다가 좀 정리가 돼서 이제 기운을 차리고 열심히 해보자 라고 마음을 먹었을 때 갑자기 또 재심한다고(웃음). 그거 지나니까 이제 또 변론기 쓰라고 하고(웃음).

 

김지미 변론기로 딱 마침표를 찍었나요?

 

고윤덕 모르겠어요. 글쎄요 한 10년 후에.

 

박삼성 영화찍자고 하는 거 아닐까요?(웃음).

 

고윤덕 상당기간이 흐른 후에 이 사건에 대해서 재조명 할 때 그때 자료제공이라도 할 수 있을까요?

 

김지미 분명히 언젠가는 이게 재조명이 돼야 될 일이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셔야 되겠네요(웃음). 고변호사님이 시민에 뽑힌 게 산 때문에 뽑힌 것 같다(웃음). 그런 얘기도 있고, 원래 등산을 좋아했는데 작년 정당해산 때문에 등산을 거의 끊었다고 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인단의 단장님이신 김선수 변호사님은 주말마다 가셨단 말이죠.

 

고윤덕 그게 이런 게 있어요. 2-3주 간격으로 화요일날 기일이 잡혔었고, 다른 사건들도 있으니까 보통은 금, 토요일까지 서면을 쓰고 주말에 편집하거나 해서 월요일에 최종적으로 김선수 변호사님 검토하시고 제출하는 그런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김선수 변호사님은 주말에 등산을 갈 수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토요일에는 일을 하고 있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김지미 등산을 하던 사람이 안하면 굉장히 몸이 근질근질하고 안하는 게 더 힘들다고 하던데요.

 

고윤덕 살쪘잖아요(웃음). 등산이 체중감소에 도움이 되지는 않더라도 체중증가를 억지하는 효과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김지미 변호사님이 다시 날씬해지면, 산을 타고 있구나라고 알고 있으면 되는 거지요? 기대하겠습니다. (웃음)

 

박삼성 커밍순.(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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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박변호사님이야말로 늦게 변호사가 되셨어요. 변시 합격했을 때가 38살. 그러면 대학을 졸업하고 근 10년을 뭘 하셨어요?

 

박삼성 그 질문을 항상 면접 때마다 받아서(웃음). 사시공부를 좀 오래 했었고요, 사시를 접고 취직 준비를 했었죠. 하다가 때마침 로스쿨이 생기는 바람에,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을 하고 우여곡절 끝에 로스쿨에 들어가게 됐었죠.

 

김지미 박변호사님은 법대진학을 한 이유가 법조인이 꿈이었기 때문인가요?

 

박삼성 고등학교 때는 담임선생님이 진로를 정하셔서 법대에 들어가게 되고, 법대에서 그 당시에는 집회 나가는 것도 많고 했으니까. 그러다보니까 그때 법을 통해서 뭔가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려웠던 시절에 변론하시는 선배 변호사님들의 책 같은 거 보다보니까, 대학교 때 열심히 운동한 건 아니지만 법을 통해서도 많은 일을 할 수가 있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죠. 대학교 때 학생운동을 열심히 못한 데 대한 약간의 부채감이라고 해야 하나?

 

김지미 지금 열심히 하면 돼요. 학교 다닐 때 열심히 안했던 사람들은 뒤늦게 열심히 하고 학교 다닐 때 열심히 했던 사람들이 전혀 관심 없이 지내는 사람들도 있고. 총량을 따지면 같다. 그래서 ‘운동총량의 법칙’ 이라는 명언을 현 회장님께서 하신 적이 있어요.(웃음) 이번에 모범회원도 마찬가지였지만 신인모범회원은 특히나 경쟁률이 엄청 셌었어요. 그래서 시상위에서 선정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거든요. 역대 최초로 이번에 신인모범회원상을 2명을 선정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 2명 선정하고 나서도 추가로 더 줘야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치열했던, 그래서 아마 의미가 더 크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모범회원상 나 같이만 하면 된다 이런 게 있을까요?(웃음)

 

박삼성 일단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아야 되는 것 같아요. 일단 세월호 그것도 오세범 변호사님이 권유를 하셨을 때 그냥 다른 생각 안하고 한 번 해보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는 않더라도 가서 유가족분들 옆에 있는 것. 한발 내딛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정당에 들어가게 된 것도. 주변에서 걱정 많이 했지만 가도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 그렇게 추천을 해주시고 새로운 것에 제안이 들어왔을 때 선배변호사님들을 믿고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용기라고 해야 하나, 그냥 한 걸음 내딛으면 되는 것 같아요. 보니까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것이 많더라고요. 작년을 돌이켜보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김지미 기회가 왔을 때 물러서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면 된다.

 

박삼성 그냥 한 걸음 내딛으면 그 다음부터는 그냥 가게 되더라고요.

 

김지미 추천서를 보면 ‘사무처 상근자들 사이에서 박삼성 변호사님 이름은 자동 출석체크를 할 만큼 민변의 모든 활동에서 성실함이 빛나는 회원이다’. 월례회라든지, 전체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하셨잖아요. 신입변호사들이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회무에 참여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일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하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래서 다른 활동을 할 시간을 내지 못할 만큼 바쁘기 때문인데 자동 출석체크가 될 만큼 성실하게 민변 행사에 참여하신 것이 수상을 하신 주요 이유가 아닌가 싶어요.

 

박삼성 그런 자리에 가면 항상 선배 변호사님들이나 다른 분들이 오시잖아요. 그런 분들이 해주는 이야기가 너무 좋더라고요. 약간의 팁이라고 해야 하나. 이럴 때는 이런 식으로 해봐라, 이렇게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식의 조언을 듣는 것도 저는 되게 좋았거든요. 그래서 좋으신 분들 만난다는 것 그것 자체가 하나의 기쁨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참여를 하려고 했습니다.

 

김지미 고윤덕 변호사님도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고윤덕 시운을 잘 타고나야(웃음). 처음에는 열심히 하다가 여러 가지 사정상 그것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잖아요. 그래서 5년 이상만 꾸준히 하면 인정을 받을 수 있을 듯하다. 잠시 쉬어가더라도 꾸준히 함께 하시라.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김지미 고윤덕 변호사에게 이것만은 꼭 물어봐달라는 요청이 있었어요. 모씨의 제보에 의하면 노동위 전체모임을 가면 항상 다음 날 아침에 소리 없이 사라진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이번에 제주도에 갔을 때도 오후에 와서 다음 날 아침에 말도 없이 사라졌다.

 

고윤덕 먼저, 열일을 제쳐두고 노동위 전체모임과 총회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점을 높이 평가해 주시기 바라고요. 특히 이번 제주도 모임 때는 정당해산 변론기 땜에도 그랬고. 바쁜 것도 있고, 올라가서 할 일이 있으니까 그런 것도 있는데 사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다른 사람들이 일어날 때까지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그냥 집에 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김지미 일찍 일어나시나 봐요. 그러면 노동위에 전달해줄게요. 다음 번 전체모임이 있으면 시체가 될 때까지 먹여라. 그것만이 붙잡는 방법이다.(웃음) 박변호사님은 수원에 개업을 하고 최근에는 내란음모 관련 후속 사건들 변론을 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생계유지할 정도의 사건 수임은 되나요?

 

박삼성 수임은 조금씩 되고 있는데 입금을 안 해주시는 분도 있고 해서(웃음)

 

고윤덕 그러면 일을 안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김지미 선배님들한테 이런 걸 배워야 해요. 입금되면 일을 한다 이런 원칙을.(웃음) 박변호사님은 신입인 만큼 상을 받은 게 좋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앞으로 민변 활동을 이렇게 하겠다라는 포부나 다짐을 말씀해 주신다면?

 

박삼성 올해는 제가 공공비정규직이나 학교비정규직쪽 노조 분들을 많이 만나고 있거든요. 만나는 분들이 민변에서 하는 일들과 다 겹치는 것 같더라구요, 저는 작년과 같이 올해도 한걸음 나아가서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없애고 계속 새로운 분들 만나가는 한 해가 되고 싶어요.

 

김지미 개인적으로 올해 목표는 역시 결혼인가요? 열심히 선을 보고 다닌다는 첩보가 있던데요.

 

박삼성 첩보가 입수가 됐나요?(웃음) 회장님께서 아직 안 해주시네요. 회장님을 푸시를 해야겠네. 올해 개인적인 가장 큰 목표는 결혼이죠.

 

김지미 아직 여자친구는 없는 거죠?

 

박삼성 지금은 없는 걸로 해주세요.

 

김지미 지금은 없는 걸로 해주세요는 뭐죠?(웃음) 아, 이거 뉘앙스가 오묘한데. 고변호사님도 개인적으로 올해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나요?

 

고윤덕 큰 목표는 안 세우는 걸 원칙으로(웃음).

 

박삼성 아, 정말 재치가 있으세요.

 

고윤덕 아니, 나도 날 아는데 너무 컨텐츠가 없어.

 

박삼성 아니예요. 빵빵 터지는데요.(웃음)

 

고윤덕 저도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는데요, 수많은 훌륭하신 선배변호사님들 생각할 때 저는 너무 미미하고 그래서 모범회원상도 과분하고 부끄럽고 그렇습니다.노동위원회에 저처럼 5-10년차 사이인 분들이 별로 없어서 앞으로 활동 열심히 하라는 의미인 것도 같고요. 희망적인 것은 노동위원회 활동 열심히 하는 저년차 변호사들이 많이 있는데, 변호사가 되기 전부터 인권단체나 여러 사회단체에서 활동했던 경험이 있는 분들도 있고 인적네트워크도 풍부한 것 같더라고요. 선배들의 활동방식과는 다르지만 나름대로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잘 하고 있다. 그래서 굉장히 기대가 된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개인적인 목표는, 스스로 아쉽다고 생각한 부분, 생각만 있었는데 실천하지 못한 것들 그런 것을 시작해보고 싶어요. 책도 좀 읽고. 제가 세무 이런 것만 나오면 너무 위축되는 것 같다. 그래서 공부도 좀 해보고 어떤 형식으로든지 무식을 탈출하자.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을 갖자. 그런 작은 목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정당해산의 마수에 다시 걸리지만 않으면(웃음). 아 진짜 변론기 그거 오래 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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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고생 많으셨어요. 그게 줄여서 쓰기가 굉장히 어려웠을 것 같기는 했어요.

 

고윤덕 관련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기록을 찾아서 맞는지 하나하나 확인해야 하고. 게다가 기록을 볼 때마다 화가 나고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김지미 그런 노고가 있어서 수상을 하신 거잖아요.(웃음) 모범회원상에 부상(문화상품권)이 있잖아요. 그거 어디에 쓰셨어요?

 

박삼성 고등학교 동기가 대구에서 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는데.

 

고윤덕 팔았어요?(웃음)

 

박삼성 팔면 대박인데, 내란음모 후속 사건을 제가 하고 있는데 그게 기사가 났었나 봐요. 친구가 우연히 봤더라고요. 그래서 자기가 학생들하고 토론회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인권과 관련한 강의를 잠깐 해 달라 그래서 거기 가서 학생들 선물을 주는 데 유용하게 썼죠.

 

일동 오오~~

 

김지미 훌륭하십니다. 고변호사님은요?

 

고윤덕 그냥 가지고 있어요, 아직까지.

 

김지미 올해 목표를 이루는 데 유용하게 쓰시면 되겠네요. 저도 회원의 한 사람으로 상을 받으신 두 분이 정말 부럽습니다. 앞으로도 두 분의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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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의 민변: 민경한 변호사를 만나다

안녕하세요, 민경한 변호사입니다. 성씨가 민씨(閔氏)이기 때문에 민변 회원이 되는 건 생래적으로 이미 정해져 있었던 셈이죠(웃음), 오랫동안 유일한 민씨 회원이었고 그래서 ‘민변의 민변’으로 불리게 되었지요.

사법시험 3차 시험 낙방과 직장에 다니다가 변호사가 되다

저는 1983년 성대 법대 졸업 후 사시공부를 시작해서 83년 1차, 84년 사시 26회 2차에 합격했는데, 당시 2차 시험이 70%, 3차 시험이 30% 반영되었어요. 3차 시험에 모교 교수가 고등학교 생활기록부같이 국가관·책임감·지도력·준법성 등 6개 항목을 수우미양가로 평가하여 위 교수평가 성적이 전체점수에 30% 반영됐어요. 당시 모교 교수가 학생운동 전력 등으로 나에 대한 교수평가 성적을 안 좋게 주어 2차 성적이 합격권에 있었는데 3차에서 떨어졌어요. 이 제도는 너무 불합리하다고 해서 26·27회 두 번 시행하고 없어졌지요. 1차 시험이라도 면제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는 3차에서 떨어지면 1차부터 다시 봐야 했어요. 다음 해 1,2차 동시 합격하려고 공부했는데 1차에서 떨어졌고, 빈농의 장남으로 공부를 계속하기 어려워 모 투자신탁 회사를 1년 정도 다녔죠. 원래는 3년 정도 직장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저축도 안 되고 공부도 안 되서 87년 2월에 그만두고 그해에 사시 29회에 1,2,3차 합격했어요.

연수원을 수료하고 광주에서 개업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미국으로 유학 가는 고교 선배 사무실을 인수하느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인천에서 90년 4월 1일, 개업을 했지요. 그때는 변호사 환경이 좋았고, 만 6년 동안 골프도 안치고, 토요일도 출근하고, 사무장한테 맡기지 않고 모든 사건을 직접 처리하면서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경제적 여유는 약간 생겼는데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더라고요. 당시 개인 사무실을 하다가 외국 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충전을 위해서 미국으로 갔지요. 96년 5월부터 97년 8월까지 시애틀 워싱턴대학교 로스쿨 객원연구원으로 15개월을 보냈어요. 귀국하면서 고향인 광주로 갔지요.

광주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쌓았지만 2006년 2월, 서울로 오게 되었는데 좀 큰 데서 놀고 싶었고, 당시 공직에 진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요. 또 제가 연극이나 공연, 스포츠 경기 관람, 외국 여행을 좋아하여 문화생활을 하고 싶었고 당시 중학생이던 자녀들 교육문제도 있었고요. 광주에서 8년 반을 하다가 서울로 올라온 지 12년 되었네요. 사업적으로는 광주보다 훨씬 못해요. 지금은 서울로 온 것이 후회가 되기도 해요.

법조인이라면 잘못된 법과 제도, 관행의 문제점에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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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2006년에 90년부터 2005년까지 15년 동안 법률관련 신문이나 일간지에 썼던 칼럼을 모아서 ‘민변호사의 조용한 외침’이라는 책을 냈어요. 2012년에는 22년간 변호사 활동하면서 법정 안팎에서 보고 들은 판사·검사·변호사들의 임상보고서 격으로 ‘동굴 속에 갇힌 법조인’이라는 책을 냈고요. 금년에는 2006년부터 최근까지 각종 잡지에 썼던 두 번째 칼럼 모음집을 낼 계획입니다. 이전에는 젊었고, 의욕과 열정이 넘쳤지만 이제 열정이나 기력이 떨어져 3번째 책을 마지막으로 책은 더 이상 내지 않을 생각이에요.

저는 잘못되거나 부당한 걸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어서 틈틈이 글도 쓰고 토론회도 나가고 언론 인터뷰도 많이 했어요. 부당하고 잘못된 법이나 제도, 관행을 시정해보려고 다양한 방법으로 많이 노력했지요. 법조인들은 법조계나 사회 문제에 대해 비판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한데 많은 법조인들이 점잖은 채 하면서 생래적으로 그런 걸 싫어하는 것 같아요. 특히 문제 있는 법조인에 대한 비판은 아주 싫어하더라고요. 저는 잘못된 것은 잘못이라고, 옳은 것은 옳다고 원칙을 지키며 소신 있게 강하게 말하다보니 ‘미스터 쓴 소리’, 원칙주의자, 용기와 소신 있는 변호사라는 평가와 함께 성격이 너무 강하다, 융통성이 없다는 말을 들어왔지요. 이런 게 바탕이 되어 2014년 민주당에서 저를 특별감찰관으로 추천하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법조인이 법으로 밥을 먹고 있고, 법과 제도가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잖아요. 민변 사법위원회는 법과 제도 특히 사법제도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연구하는 위원회입니다. 법조인이면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사법위원회에 들어와서 사법제도, 법원, 검찰, 변호사들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같이 공부하면 좋겠어요.

변호사 초년생에게 충격을 주었던 법조계의 고질적인 세 가지 병페를 접하다

제가 이렇게 사법개혁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개업 직후 한 달 만에 법조계의 여러 가지 고질적인 병폐를 목격하게 되었어요. 개업 첫날, 사무장 지인으로부터 조그만 형사사건을 수임했는데 소개비를 달라는 거예요. 많은 고민 끝에 어쩔 수 없이 소개비를 주었지요. 두 번째는 며칠 후에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 중인 고교친구의 형 사건을 변론하게 됐어요. 부동산 미등기전매(국토이용관리법 위반)로 구속 기소되었고, 법정 최고형이 6월이에요. 보석까지 청구해서 기각됐는데, 친구가 변호사를 추가 선임하겠다고 양해를 구해서 하지 말라고 했죠. 법정 최고형이 6월이고, 이미 보석도 기각됐고, 변호사가 별로 할 일이 없는 사건이었어요. 그런데 고법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내 수임료의 10배 수임료를 받으면서 사건을 수임하더라고요. 그런데 담당 판사가 전관예우를 안 해주고 1심에서 4개월 실형이 선고되었고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나갔지요. 1심 판사가 참 괜찮다 싶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이 안 되더군요.

또 하나는, 제가 검사실에 변론하러 갔는데 검사가 책상 위에 신발을 벗은 두발을 올려놓은 채 발을 내리지도 않고 나를 세워놓는 거예요. 너무 무례하게 대해서 말 한마디 않고 나와 버렸지요. 그때 검사의 무례한 행동을 강하게 질책하고 나왔어야 했는데 그냥 나온 게 몹시 후회가 돼요. 그땐 개업한지 한 달도 안 되서 검사한테 그럴 용기가 없었겠죠.

이렇게 한 달 사이에 좋지 못한 세 가지 사건을 목격한 거예요. 소개비 지급, 전관예우, 검사의 갑질. 그러다 보니 ‘내가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나. 법조계가 원래 이런 곳인가. 이 사람들만의 개인적인 일탈인가’ 라는 고민과 혼돈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두 달 후인 90년 6월, 전국에서 최초로 인천 변호사회에서 변호사 자정작업을 시작한 거예요. 그때부터 앞장섰다가 지금까지 열심히 하게 되었지요. 제가 그때 두 가지를 다짐했어요. 하나는 변호사를 폐업하는 그날까지 정도를 걷는 변호사가 되자. 또 하나는 내가 평생 법조에서 생활해야 하는데, 몸담고 있는 법조계를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서 사법개혁에 일조를 하자. 지금까지 어느 정도는 나름대로 두 가지 다짐을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런 쪽에 관심이 많고 강한 글도 쓰고, 또 변협 감찰위원 5년을 하다 보니 광주와 인천에서 동료 변호사들이나 기자들이 오히려 정보를 제공해주면서 글 좀 써 달라, 감찰위원으로서 문제 삼아 달라는 일도 여러 차례 있었지요. 그래서 제가 남보다 법조계 비리는 많이 알게 되었지요.

민경한 변호사, ‘민변의 민변’이 되다

민변은 92년도 하반기에 가입했습니다. 민변이 지향하는 가치나 역할, 활동 등에 대해 적극 공감하고 내 가치관이나 성격에도 맞아서 당연히 가입했지요. 한편으론 민변 회원은 생활에서도 올바른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변호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스스로를 규율하기 위한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지요. 지리적 여건 때문에 서울에서 진행되는 월례회나 행사에 자주 참석하기가 어려웠어요. 가끔 본부에서 사건을 배당해 주면 몇 개 사건을 변론하는 정도에 그쳤지요. 가끔 월례회에 참석해도 동기나 동문이 별로 없어서 어색하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지방회원으로서는 월례회나 총회에 많이 참석한 편이었지요.

97년 9월, 미국 연수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광주에서 개업 했는데 당시 민변 회원 6명이 개별적으로 활동하다 보니 활성화되지 못했지요. 99년에 연수원을 수료한 28기 변호사 3명이 민변에 가입하더라고요. 나중에 3명 모두 지부장을 했지요. 기존 회원 6명과 28기 회원 3명에 제가 2명을 더 가입시켜서 총 11명으로 민변 광주 전남지부를 창립하고 제가 4년간 초대·2대 지부장을 했는데 최근 10대 지부장이 취임했어요. 회원이 50명이 넘고 전국에서 가장 활발한 지부가 되어 초대 지부장으로서 상당히 흐뭇해요. 2006년 2월, 서울로 오면서 2005년 가을 ‘평양 아리랑 축전’ 때 권유받은 것을 계기로 민변 활동을 열심히 하는 변호사들로 구성된 법무법인 상록에 합류했어요. 이후 사법위원장, 부회장을 하면서 민변 활동을 열심히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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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적으로 공익활동을 하는 민변 회원들과 인권 감수성이 부족한 변협 임원들

변협 인권이사, 인권위원을 하면서 변협 활동도 했는데, 공익활동에 대한 민변 회원들과 변협 위원들의 헌신성은 차이가 많지요. 민변 회원들은 자기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면서, 무보수로 헌신적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하는데 변협 임원이나 위원들은 스펙을 쌓기 위한 것으로 보이고 수당에 관심도 많고 헌신성도 많이 부족하게 느껴졌어요.

2014년, 제가 변협 인권이사 때, 변협 인권보고서를 발간하는데 집필자들이 마감 기한도 많이 넘기고 내용도 소홀했어요. 마감 후까지 3 파트나 펑크를 내서 민변의 조영관, 강문대 변호사가 세월호 부분을, 장완익 변호사가 과거사 분야를 대신 맡았어요. 평소 그 분야에 관심 있고 능력 있는 민변 회원들 아니었으면 짧은 기간에 대신 집필하는 게 불가능했지요. 결국 장애인 파트는 보고서에 싣지 못했어요.

또한 변협 임원들은 매우 보수적이고 인권 감수성이 너무 부족해서 제가 인권이사 때 집행부 회의나 단톡 방에서 자주 싸웠지요. 당시 최고 현안이었던 국정원 댓글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양심적 병역거부 토론회, 국정원법 개정, 국회의 국정원 합동신문센터 토론회 공동 개최처럼 의견이 대립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입장발표도 안하고 토론회도 못하게 했죠. 별로 의견대립이 없는 장애인, 일제피해자, 여성문제 등에 대해서는 의견을 피력하는데 공권력남용에 대한 비판이라든가 국민들 사이에 의견이 대립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회피를 해요.

2013년 국정원 댓글사건 때, 전 국민이 규탄성명을 내고 시위를 할 때, 저는 당연히 변협에서도 규탄성명을 내야 한다고 했죠. 결국 못 냈는데 반대한 사람들이 “그것은 민변이나 야당이 제기한 문제라 부적절하다, 정치적인 문제이지 인권문제가 아니다. 시기가 아니다” 정말 여러 가지 한심한 이유로 반대하는 거예요. 제가 너무 화가 치밀어 집행부 카톡방에 ‘민주주의와 법치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수많은 국민들이 규탄성명을 내고 시위를 하는데 인권단체라는 변협이 규탄성명 하나 못 내냐. 변협 집행부 임원들이 이렇게 인권의식이 없느냐’고 올리기도 했지요. 2013. 10. 경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때도 변협 집행부가 변협 명의 성명은커녕 인권위 명의의 성명이나 의견서도 못 내게 방해를 해서 강하게 논쟁을 하다가 이런 집행부와 더 이상 함께 하고 싶지 않아 인권이사 사퇴 선언을 했어요. 인권위원들이 말리고 해서 다시 하게 되었죠. 2년 동안 변협 집행부와 인권 관련 사업으로 정말 많이 싸웠고,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인지 소위 민정수석 ‘김영한 비망록’의 2014. 6. 28.자에 “변협 첫 직선제 회장→회원들에게 민감/ 내부에 민경한 민변 출신자가 인권위원장/ 내부에서 발언권 강하고/ 나이, 고향, 법인명” 등 제 이력과 성향까지 기재되었더라고요.

2014년 11월, 법원 국제인권법 연구회에서 변협에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한 토론회 공동 주최를 제안했는데 변협 집행부에서 변협은커녕 변협 인권위 명의로도 못 하게 하더라고요. 제가 하도 강하게 주장하니까 협회장이 비밀투표를 하면 반대 의견이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집행부 회의에서 처음으로 비밀투표를 했어요. 그런데 17:9로 찬성의견이 더 많았어요, 회장이 오판한 거죠. 그래서 인권위 명의로 토론회를 하게 되었지요. 당시 발제자인 K 판사가 상당히 전향적이고 강한 발제를 했어요. 그런데 변협은 법원 학술단체와 변협은커녕 인권위 명의로도 양심적 병역거부 토론회 하나 못하게 하려고 비밀투표에 부치는 것이 얼마나 한심해요. 변협에서는 의견 대립이 있고 민감한 인권 사안에 대해서는 회피하고 거의 취급을 안 해요. 저는 그런 문제일수록 오히려 변협이 최대 인권단체로서 양쪽 주장을 분석, 종합, 비판하고 적극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봐요.

민변 회원들은 자기 시간과 노력, 비용을 투자해가면서 헌신적으로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많이 보지요. 사회문제에 관심도 많고 전문성과 실력도 있고 보고서나 성명서 같은 문건도 잘 작성하고 일을 정말 잘해요.

‘민변’이라는 이름이 자랑스러울 때

저는 누구 못지않게 항상 민변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가끔 주변에서 민변을 폄하하거나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민변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또 민변이 얼마나 ‘남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일’을 도맡아 하는지 얘기해줘요. 민변 홈페이지나 민변이 발간하는 자료집을 보라, 민변 회원들이 얼마나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많이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해주지요.

또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이나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각종 간첩사건은 누군가 꼭 변론을 해야 하지만 일반 변호사들은 많은 수임료를 준대도 맡지 않을 것이다. 기록이 수만 쪽 되고, 재판도 수십 번 해야 하고, 종북으로 찍히는데, 민변 변호사 아니면 이런 사건을 누가 변론하겠어요. 민변 변호사들은 실비 정도의 수임료만 받고 많은 시간과 노력, 비용을 들여가면서 헌신적으로 변론하잖아요. ‘이석기 내란음모사건’ 때는 변호인단의 한 명인 우리 법인의 천 변호사가 수원까지 다니면서 아주 적은 수임료만 받고 1심만 1주에 3, 4회씩 50번 재판을 하고 준비도 많이 했어요. 민변 회원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되요.

특히 자부심을 느꼈던 일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때였어요.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과 국민당이 탄핵소추안을 작성해야 하는데 소추사실은 많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니까 민변으로 연락을 하더라고요. 국민당 담당 의원은 저한테 연락을 하고, 민주당 의원은 다른 민변 간부에게 연락해서 혹시 민변에 탄핵소추안에 참고할 자료가 있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때 민변에서 소추안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 그들에게 전해줬더니 그것을 토대로 탄핵소추안을 만들었어요. 밖에서 우리 모임을 그만큼 신뢰하고 있고 민변에서 준비를 잘하고 있었지요.

또 하나 개인적으로는 소송 상대방이 대기업, 국가기관 같이 힘 있는 집단일 때 ‘일반 변호사들이 그들을 상대로 제대로 싸울 수 있을까’, ‘상대측에 매수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갖는 분들이 있더군요. 그런 분들 중 몇 분이 민변 지부장, 민변 부회장이면 상대편의 권력에 굴복하거나 매수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찾아온 분들이 있었어요.

선관위원장으로서 바라보는 민변 회장이 갖춰야 할 덕목

예전과 달리 민변 회원들의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해졌어요. 민변 초기와는 달리 여러 현안에 대해 의견 합치가 어렵거나 대립되는 경우도 있고,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새로 회장이 되시는 분은 다양한 회원들의 갈등을 줄이고 화합과 소통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또한 민변 규모가 성장하면서 사무처도 커졌고, 민변이 다루는 분야도 엄청 확대됐어요. 회장이나 총장이 그런 일을 다 조율하기엔 어려움이 많겠지만 그런 일을 착오 없이 신경 써서 잘 지휘, 감독해야겠죠.

사무실 사정이 어렵더라도 열심히 민변 활동을

변호사가 열심히 변론해서 의뢰인을 위해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법률가라면 부당하고 잘못된 법, 제도나 관행, 공권력 남용 등에 대해서 비판과 감시를 하고 대안도 제시하는 역할도 필요하다고 봐요. 저는 그런 방법의 일환으로 지금까지 법률관련 잡지나 일간신문에 28년 동안 120편정도 칼럼을 썼고, 토론자나 발제자로 30번 이상 참석했고 각종 신문과 방송 인터뷰도 수없이 했죠. 법무부 감찰위원과 정책위원(3번), 변협 감찰위원(5년)도 했었고, 25명의 예비법조인들(연수생 20명, 로스쿨 5명)의 실무수습 지도를 맡아 법조인의 자세나 역할에 대해서 많이 얘기해줬지요. 저는 변호사들이 법조관련 문제나 사회문제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글 기고, 토론회 참석, 각종 위원회나 NGO 활동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개혁활동에 동참했으면 좋겠어요.

젊은 회원들이 ‘선배님들 때하고는 다르다. 지금은 사무실 사정이 어려워 민변 활동이나 공익활동을 하기 어렵다’고 말하는데 이해는 돼요. 옛날에 비해 법조환경이 너무 악화되어 사무실 유지가 어렵잖아요. 회원들이 민변활동을 하기에는 시간적, 경제적,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을 거예요. 그러나 어렵다고 사무실에 가만히 있으면 다른 뾰족한 수도 없고 더 침체되지요. 어려운 때일수록 가치 있는 일에 참여하면 보람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민변 위원회나 월례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선후배들과 함께 활동하면 변론 지식이나 경험도 쌓이고, 선후배 또는 시민단체 활동가, 그 분야 전문가들과 인적 네트워크도 형성할 수 있어요. 그렇게 인맥과 전문성이 쌓이면 그 분야에서 사건을 수임할 가능성도 높아지잖아요. 사무실이 어렵다고 너무 소극적이고 쳐진 상태로 있지 말고, 가치 있는 일에 시간, 노력을 투자하면서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면 좋겠어요. 꼭 여유가 있을 때만 공익활동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저희 때는 시절이 좋아서 특정 분야의 전문화, 특화의 필요성이 별로 없었지요. 앞으로는 변호사 수도 많고 사무실 유지도 어려운 만큼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관심 있고 자신에게 맞는 분야를 선택해 전문성을 확보해야지요. 또한 변호사 초기에는 지식과 경험을 쌓고 고객을 확보하는 의미에서 어렵고 돈 안 되는 힘든 사건도 가리지 말고 많은 변론 경험을 쌓는 것이 좋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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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에 대한 부탁 말씀은

제가 자주 지적하듯이 민변 행사에 회원들 참석이 너무 저조해요. 회원 수는 많이 늘었는데, 월례회나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 회원 수는 별로 안 늘었잖아요. 월례회에 가면 좋은 강연도 듣고, 공짜로 밥 주고, 술도 주잖아요. 총회나 월례회 등에 자주 참석해서 함께하면 좋겠는데 참석이 저조해서 아쉬워요.

개인적으로는 민변 활동이 너무 방대해서 선택과 집중이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8년 촛불 집회 이후 최근 10년 사이 활동 범위가 넓어지고 위원회도 많아졌어요. 회원 수가 많이 늘어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시간, 인력,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백화점식 활동 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활동하는 사법위원회는 현장성이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법과 제도에 대한 개선을 위해 이론적인 접근도 중요하지만 너무 거대담론에만 머물지 말고 잘못된 검찰 수사나 법원 판결 등에 대해 조사하고 사례를 수집해서 보고서를 내고 대안을 제시해야죠. 전관예우, 판검사의 일탈된 행동에 따른 징계 사례, 잘못된 수사나 재판 사례,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관대한 양형 분석자료 등 하려고 하면 많이 있지요. 그런 점은 노동위원회가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사법위원회도 현장성이 가미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민변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게 아직 쑥스럽고 변호사 생활에 애로사항이 있는 후배들은 언제든지 저를 찾아오세요. 저는 사람과 술을 좋아하고, 특히 민변 동료들과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민변의 민변’이니까요. 민변 행사에 자주 참석하고 대부분 끝까지 남아서 함께 술을 마셨지요. 작년 송년회 때도 마지막까지 남은 최후의 용사 10여 명 중 한 명입니다. 제 또래가 없어 아쉬웠지만요. 금년 회갑이 되었고, 40년간 술을 많이 마셨으니 예전만큼 체력이 안 되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민변 후배들과 점심을 먹거나 저녁에 술 마시면서 즐겁게 진솔한 얘기를 나누고 싶어요.

월, 2018/03/0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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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민변 제30차 정기총회 일정 안내 및
참가 회신 요청

– 총회 일정 : 5. 27.(토)~5. 28.(일) 경남 통영 동원리조트
– 참가신청 : https://goo.gl/eHZ66e 또는
첨부된 참가신청서를 작성하여 메일([email protected])로 회신

* 가족방은 신청이 마감되었습니다.

[양식] 30차 총회 참가신청서

30차 정기총회 웹자보

회원 여러분께

1. 민변의 1년 활동 중 가장 큰 행사이며, 전국의 회원들이 모이는 정기총회가 오는 5. 27.(토)~5. 28.(일) 경남 통영에서 개최되며, 경남지부와 본부가 함께 준비하고 있습니다.

2. 총회에 참석하실 회원께서는 구글닥스 https://goo.gl/eHZ66e 로 신청해주시거나, 첨부된 참가신청서를 작성하여 메일([email protected])로 회신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가족방은 신청이 마감되었음을 미리 안내드립니다.

3. 관련하여 문의가 있는 회원께서는 언제든 총회준비위원회 (이현아 간사/ T. 02-522-7284, 이메일:[email protected])로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회원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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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차 민변 정기총회> 일정 등 안내

총회 일정_홈피 공지

수, 2017/05/10-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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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사드체계 배치사업, 환경영향평가에 대한법적 검토 의견 제출
– 사드체계 배치사업은 전략환경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 대상 사업
– 소규모환경영향평가로 갈음할 수 없음

 

1. 민주언론을 위한 귀 언론사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 우리 모임은 수차례 사드 체계 배치 문제가 헌법과 법률의 수호 문제라는 점을 밝힌 바 있고, 새로운 정부는 사드 체계 배치 문제에 대해 민주주의와 소통의 관점에서 필요한 절차를 모색 중입니다.

 

3. 그러나 국방부는 여전히 헌법과 법률에 맞지 않는 주장을 반복하며, 국민들에게 그릇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모임에서는 논란이 되고 있는 환경영향평가와 관련한 규범적 검토의견을 아래와 같이 발표합니다. 아래 의견은 법령과 기존의 판례 및 각 부처들이 진행했던 사례들을 망라한 것입니다.

 

4. 사드 체계 배치와 관련하여 헌법과 국민주권의 차원에서 철저하게 검토되고 조사되기를 바랍니다.

 

5. 의견서 개요

 

 가. 국방부의 주장

국방부는 사드체계 배치사업 환경영향평가와 관련하여 “미측에 공여된 부지에 설치되는 사드체계 배치사업은 미측 사업으로 국내법상의 환경영향평가법 적용 대상이 아니”나 “한․미 합의를 통해서 우리 국민의 불안감 해소와 안전보장을 위하여 「환경영향평가법」의 절차를 준용하여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있으며 평가 완료 후 군사보안 사항을 제외하고 그 결과를 공개할 것입니다”라고 함. 2017. 6. 1.에는 사업면적은 10만 제곱미터이므로 ‘소규모환경영향평가’ 대상에 해당된다고도 함.
나. 그러나 사드배치사업은 전략환경영향평가와 환경영향영향평가 대상사업

  1) 사드체계 배치사업은 전략환경영향평가 실시 대상사업

사드체계 배치사업은 「국방·군사시설 사업에 관한 법률」(이하 ‘국방시설사업법’이라고 함) 제4조에 따른 사업 시행면적이 33만 제곱미터 이상인 사업으로서, 전략환경영향평가 실시 대상 사업임.

   가) 사드체계 배치사업은 토지의 취득방식과 무관하게 국방시설사업법이 적용됨.

국방부는 국방시설사업법이 ‘토지 등을 수용’하는 경우에만 적용되고, 사드부지는 ‘교환계약’을 통해 확보했기 때문에 법이 적용 안된다고 주장함.
그러나 국방시설사업법에 외국군대의 시설도 국방군사시설이라고 규정하고 있고, 법에 ‘토지 등의 수용’의 경우에만 적용한다는 말도 없음. 오히려 국방시설사업법상의 승인 절차를 설명하는 「국방․군사시설 사업에 관한 법률에 따른 승인 등에 관한 훈령」은 사업계획 승인 업무 절차에서 명확히 ‘토지 등의 수용 또는 사용’을 포함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승인 업무절차를 구분하고 있음. 환경부 역시 질의회신에서 “국방시설사업법 제4조의 사업계획의 경우 토지수용여부와 관계없이 전략환경영향평가 대상”이라고 하였음.

   나) 사드체계 배치사업은 “사업시행 면적이 33만 제곱미터 이상인 사업”에 해당함.

사업시행면적과 관련하여서 국방부는 공여된 면적이 ‘328,779 제곱미터’이기 때문에 전략환경영향평가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음. 그러나 국방부는 2017. 2. 28. 주한미군의 사드배치를 위한 목적으로만 148만 제곱미터를 확보하였고, 취득한 부지 전체에 철조망을 치고 군사기지로 조성하였으며, 이를 기초로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이하 ‘군사기지법’이라고 함)을 적용하여 경찰에 시설보호 요청을 하였음. 주한미군에게 공여하기로 한 토지의 면적이 곧 사업시행 면적은 아님. 법원 역시 ‘도창리 백골종합훈련장 피탄지조성사업계획’과 관련하여 공사면적과 무관하게 전체 사업계획 면적을 대상사업 면적이라고 보고 전체에 대해서 사전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지 않은 것이 위법하다고 판시하였음(대법원 2006. 6. 30. 선고 2005두14363 판결).

   다) 즉, 사드 배치와 관련한 사업시행 면적은 33만 이상 제곱미터라고 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사드체계 배치 여부를 결정할 때 하였어야 했음.

 다. 설령, 사업시행면적이 33만 제곱미터 미만이라고 할지라도 소규모환경영향평가가 아닌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여야 함.

환경영향평가법상의 환경영향평가에는 전략환경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 소규모환경영향평가가 있음. 설령 국방부의 주장대로 설령 사업시행면적이 33만 제곱미터 미만이라고 하더라도 소규모환경영향평가가 아닌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여야 함. 환경영향평가법 및 시행령에 의하면 군사기지법상의 군사기지 안에서 시행되는 사업면적 20만 제곱미터 이상인 사업이거나 혹은 20만 제곱미터의 군사시설 설치사업은 환경영향평가를 하여야 함. 사드배치가 군사기지에서 이루어지는 사업이 분명하고, 군사시설에 해당함은 국방부가 이미 인적하고 있으며, 그 면적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적어도 20만 제곱미터 이상임은 분명하므로 환경영향평가 실시 대상 사업임.

 라.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로 사드 배치 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갈음할 수 없음.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는 “환경보전이 필요한 지역이나 난개발(亂開發)이 우려되어 계획적 개발이 필요한 지역에서 개발사업을 시행할 때에 입지의 타당성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조사·예측·평가하여 환경보전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말하고(환경영향평가법 제2조 제3호), 사드체계 배치사업은 환경보전이 필요한 지역이나 난개발이 우려되어 계획적 개발이 필요한 지역에서 시행되는 개발사업이 아니어서 그 요건에 해당하지 않음(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 [별표4] 참조). 소규모환경영향평가는 환경영향평가서에 포함될 항목이 적고,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 대한 주민 의견 수렴 절차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사드 배치 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음.

 마. 결론

사드체계 배치와 관련하여 반드시 실시했어야 하는 적법절차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 그 과정에서 배제된 주민들과 국회, 국민들의 충분한 토론이 필요함. 이것은 헌법과 국민주권의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하고, 그 결과에 따라 사드 문제를 해결하여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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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정 연 순

월, 2017/06/0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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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실무수습 후기

 

- 민변 2015년 여름 로스쿨 실무수습생 이승훈

 

지난 7월 6일 월요일 오후, 무더위 속에서 오랜만에 단정한 복장을 하고 처음으로 민변 사무실을 찾아가는 길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사무실 규모는 크지 않더라도 자랑스러운 민변의 이름이 크게 걸려있지 않을까 했는데, 지도상의 위치에 와서도 도무지 간판이 보이지 않아 적잖이 당황한 끝에 건물안내판을 찾아 겨우 지각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의문을 뻔히 예상하셨는지, 송상교 팀장님께서 인사말에 앞서 “저희는 일부러 간판을 안 달아놨어요. 요즘 워낙 시위하러 많이 찾아오셔서, 종북세력 해체하라고 막 그러니까… 하하.” 하고 농담인 듯도 하지만 생각할수록 진담일 것만 같은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민변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를 새삼 되새기며, 2주간의 짧은 수습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긴 시간을 보냈던 곳은 17명의 수습생이 1, 2명씩 나누어 배정된 각 사무소였습니다. 저는 수륜아시아 법률사무소에 배정되어 지도변호사이신 김종우 변호사님과 한 방을 쓰며 밀착 지도를 받았습니다. 또 송기호, 노주희, 최재홍, 조선영 변호사님께서도 각자의 다양한 경험에 기초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고, 따로 기록을 주시거나 과제를 내주시기도 했습니다. 정리된 사실관계를 읽고 교과서의 쟁점을 논하면 되는 사례집에서의 문제만을 접해오다가 실제 사건에 기초한 과제를 수행하려니,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당사자를 특정하는 단계에서부터 혼란 끝에 자신감을 잃기 일쑤였습니다. 그래도 매번 큰 줄기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고, 변호사님들의 지적과 격려를 받으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에 즐겁기만 한 하루하루였습니다.

 

한편 민변의 속살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위원회 참석을 통해서였습니다. 2주간 여러 위원회들에 자유롭게 참석해 보면서 각 위원회마다의 확연한 개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먼저 노동위 수요모임은 짧은 시간동안 점심식사와 함께 그야말로 치열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각종 성명서, 기자회견, 현장조사, 사건변론 등 한주간의 활동보고와 주요 노동사건 정리, 판례동향까지 두툼한 인쇄물에 담긴 내용을 빠르게 짚으며 논의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민생경제위원회 조세재정팀에서는 조세 현안에 대한 활발한 정책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른바 명예세 도입에 관하여 치열하게 찬반토론하고, 우리나라 조세정책상의 과세사각지대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을 들으며 마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민생경제위원회 월례회에서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관하여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고, 재벌그룹의 세습경영 문제에 대한 토론을 통해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민생경제위원회에서는 전문화된 네 개의 팀이 은근한 경쟁을 통해 긍정적인 시너지효과를 내는듯하여 앞으로의 성과가 기대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습 일정이 모두 끝난 금요일 저녁에는 사법위원회에 참석할 수 있었는데, 다른 위원회에 비해 많은 원로급 변호사님들과 그래서인지 더 젊게 보이는 청년 변호사님들이 잘 조화되어 각자의 역할을 맡고 계셨습니다. 특히 토론에 있어서는 경력과 나이를 접어두고 오직 지식과 논리를 무기로, 각을 세우되 모두가 경청하는 자세로 임하는 모습이 참 ‘민변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면법, 사형폐지법, 변호사시험 성적 공개, 일부 범죄 공소시효 적용 배제 등 하나같이 묵직한 주제들을 다루었지만 오히려 가장 센스와 유머 넘치는 발언들이 많았던 유쾌한 회의시간이었습니다.

 

또 권영국 변호사님 기소사건의 공판기일을 다함께 방청한 것도 의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검사측의 최종의견을 들으며 뭔지 모를 거부감이 느껴졌지만 법리적인 문제점을 콕 집어내지 못해 답답해하고 있다가, 변호사님들의 ppt를 적절히 활용한 날카로운 변론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었습니다. 특히 검사측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한 강문대 변호사님의 호통과 같은 변론에 와서는 크게 박수를 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야 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차례의 특강이 있었고, 공통과제를 수행하고 송기호 변호사님의 초대로 평등사회 전환포럼의 창립총회에 참석하는 등 정말 알찬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그저 짧은 기간이 아쉬울 뿐, 단순한 사무실에서의 실무수습만이 아니라 많은 분들을 만나고 여러 가지를 경험하며 감사한 배움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단순히 생계를 위한 직업을 갖기보다 좀 더 의미있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로스쿨에 진학하였습니다. 학업부담과 과도한 경쟁, 로스쿨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전망들, 또 희망을 찾기 어려운 갑갑한 뉴스들에 조금씩 지쳐만 가던 2학년 여름에 이렇게 민변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민변의 여러 변호사님들을 만나면서, 변호사라는 직업의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조화롭게 병행시킬 수 있다‘는 장점을 저도 충분히 살릴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2년 후에 꼭 수습 동기들과 함께 정회원이 되어 다시 뵙겠습니다. 여러 간사님들, 변호사님들, 모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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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07/2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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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인권여행!
‘인권이 숨 쉬는 세상’을 찾아 전 세계를 여행해볼까요?

어린이들이 놀이를 통해 인권의 의미와 탄생, 인권 보호를 위한 나의 역할을 고민할 수 있는 활동자료입니다. <인권여행>을 통해 어린이들은 <세계인권선언>에 나와 있는 권리에 대해 배우고, 자유, 평등, 존엄의 가치와 전 세계의 인권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할 수 있습니다.

1948년, 전 세계 사람들의 인권과 평화를 향한 열망을 담은 인류의 약속 <세계인권선언>이 탄생하지만 <세계인권선언>에서 약속한 미래와 지금의 현실은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인권여행> 인권교육 패키지를 통해 우리가 어떤 약속을 했는지, 하지만 지금의 인권 현실은 어떤지, 그리고 인권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인지 알아봅니다.

<인권여행> 인권교육 패키지란?
<인권여행> 인권교육 패키지는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목적의 놀이자료입니다. 패키지는 부루마블이나 모노폴리와 같이 4~6명이 한 모둠이 되어 주사위를 굴려 나온 숫자만큼 게임판 위의 말을 움직이고, 그 칸에 해당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어린이들이 인권을 알고, 행동하며, ‘인권이 숨 쉬는 세상’을 꿈꿀 수 있도록 지금 바로 신청하세요!

※ 액션패키지를 신청하시면 우편으로 아래의 자료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신청부수는 학생 수가 아니라 모둠 갯수로 신청해주세요.
※ 2015 인권친화교실 학급은 9월 첫째주에 배포되니 따로 신청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인권여행> 인권교육 패키지에는 무엇이 들어있나요?
인권여행 액션패키지는 모두 3개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료1-1) <인권여행> 액션보드 (*1모둠 1장) PDF 보기다운로드
자료1-2) <인권여행> 액션카드 (*1모둠 1장) PDF 보기다운로드
자료2) <세계인권선언> 포스터 (*1사람 1장) PDF 보기다운로드
※ 각 자료를 클릭하시면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인권여행> 인권교육 패키지는 수업에 어떻게 활용하나요?
초등학교 6학년 사회 1-4단원 <행복한 삶과 인권> 수업과 연계하면 좋습니다. <인권여행> 인권교육 패키지는 어린이들이 <세계인권선언>을 쉽게 이해하고 인권을 위한 활동에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수업시간에 액션패키지를 진행하실 때 아래의 자료를 활용하세요!

인권여행 인권교육 패키지 자료

● 활동해설집(활동방법, 교수-학습지도안) ㅣ PDF 보기 PDF 다운로드
● 프리젠테이션 자료   PDF 보기 PDF 다운로드 PPT 다운로드
● 인권교육 참고 교재 [나, 너, 우리모두] | PDF보기  | PDF다운로드

<인권여행> 인권교육 패키지 어떻게 참여할 수 있나요?
step 1. 아래에 있는 액션패키지 신청폼을 작성해주세요.
step 2. 액션패키지를 신청하신 모든 분들께 우편으로 액션패키지를 보내드립니다
※모둠별(4명 모둠) 1패키지씩 배포될 예정입니다.(예 20명/5모둠 → 5패키지 배포) 단, 포스터는 1명에 1부씩 배포됩니다. / 9월 3일 발송 예정/ 배송까지 평일 3~4일 소요
step 3. 4~6명이 한 모둠이 되어 액션보드와 액션카드를 활용해 <인권여행> 게임을 진행합니다.
step 4. 인권여행 게임이 끝난 후 <세계인권선언>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두고 인권에 대한 생각과 행동을 실천합니다.
step 5. <인권여행> 활동 인증샷을 찍어 act4rights.tumblr.com에 업로드합니다.
step 7. 친구들, 지인들에게 액션패키지를 추천해주세요.

● <인권여행> 관련 문의: 캠페인/인권교육팀 박서연(070-8672-3394 / [email protected])

※ 패키지는 모둠별(4명 모둠) 1패키지씩 신청해주세요.(예 20명/5모둠→5패키지 배포) 단, 포스터는 1명에 1부씩 배포됩니다.
※ 2015 인권친화교실 학급은 9월 첫째주에 배포되니 따로 신청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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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필수) 패키지를 받을 주소를 입력해주세요. (선생님께서는 학교 주소를 기재해주세요.)
신청 수: 학생수(명) / 모둠 갯수(모둠) (필수) 예) 학생수 25명, 5개 모둠(5명당 1모둠)일 경우: 25명/5모둠
국제앰네스티 인권교육 패키지에 참여한 적이 있나요? (필수) 2012 '집, 인권을 만나다', 2013 '인권여행', 2014 인권친화교실 또는 '빈곤과 인권'
신청 이유와 알게된 경로 (필수) 예) 초등학교 6학년 사회과 수업에 활용, 창의적 체험활동 활용 등
개인정보 활용 동의 (필수) [수집목적]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에서 실시하는 <인권여행> 인권교육 패키지의 준비와 진행을 위하여 신청자의 정보를 수집합니다. 본 정보는 앰네스티 활동 소개 및 회원 가입을 권유하는 전화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
(필수) [수집항목] 이름, 이메일, 휴대전화번호, 주소
(필수) [보유기간] 2016년 12월 이후 지체 없이 파기합니다. 위 사항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단, 동의를 거부할 시 행사의 원활한 진행을 이유로 신청이 어려워질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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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5/08/28-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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