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청년정책 대선 요구안] 시민들은 대선 날짜를 바꿨는데 후보들은 무엇을 바꾸고 있습니까

지역

[청년정책 대선 요구안] 시민들은 대선 날짜를 바꿨는데 후보들은 무엇을 바꾸고 있습니까

익명 (미확인) | 금, 2017/04/14- 13:11
대통령 선거일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광장에 모인 촛불의 힘으로 만들어 낸 조기 대선이지만,
정작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선거에서 목소리를 높일 자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새로운 전환과 개혁의 목소리는 여전히 높지만, 이러한 목소리를 무대에서 밀려나고 있습니다.

이번 19대 대통령 선거는 단순한 ‘장미대선’이 아니라 촛불이 만들어 낸 ‘촛불대선’입니다.
촛불의 외침과 열망을 받아,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비전 경쟁, 정책 경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참여의 문턱은 낮추고 더 많은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야 합니다.

청년은 이번 ‘촛불대선’을 만들어 낸 주역입니다.
청년실업 문제는 노인빈곤 문제와 함께 우리 사회의 양대 급소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이고 전격적인 조치가 필요합니다.
생애 전반에 퍼져버린 불안을 걷어내기 위한 청년정책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2017 촛불대선 청년유권자 행동을 시작하며,
“선거다운 선거를 위한 3가지 약속”을 제안하고, 2017 청년대선정책요구안을 발표했습니다.





청년정책 대선 요구안

I. 고용

1. 구직활동지원 청년수당 전국화
-정책목표
노동시장 진입 촉진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고용 정책을 전면적으로 개혁
독자적 사회정책의 대상으로서 청년 니트에 대한 구직활동 지원 시스템 구축
청년 구직자에 대한

-정책내용
청년수당(구직활동 지원수당) 전면 도입
취업성공패키지 개혁 (진로모색, 사회참여 역량 교육 대폭 강화)

2. 고용보험 개혁
-정책목표
실업의 공포로부터 기초적인 고용안전망을 제공
현행 고용보험 가입률 제고하고 실업급여 수혜 대상을 확대함

-정책내용
수급자격을 박탈하지 않는 정당한 이직사유 규정의 실효성 확보 (입증책임과 행정절차)
자발적 이직에 대하여 일정 기간의 유예를 설정하고 실업급여 지급
30세 미만에 대한 소정급여일수 차별 폐지
프리랜서, 초단시간 노동자 등 21세기 워킹푸어의 노동현실을 포괄하는 고용보험 전면개혁

3. 청년고용할당제 확대
-정책목표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 상황에서 고용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고, 청년이 겪는 고용절벽 상황을 해소함.

-정책내용
300인 이상 대기업과 공무원, 공공기관을, 의무고용 비율 5%로 현행 제도를 확대
불이행 기업에 대한 고용부담금 부과 등 검토


II. 주거

1. 계약갱신청구권
-정책목표
세입자에게 계약 갱신의 유무를 부여해 비대칭적인 임대차관계 개선
세입자의 거주 기간 및 계약 안정성 보장
임대료 폭등 방지 및 갑작스러운 상승 억제

-정책내용
주택임대차보호법에 계약갱신청구권 조항 신설, 임대인은 임차인이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 사이에 계약갱신을 요구할 경우 이를 거절하지 못하도록 함.
동일한 조건 또는 법이 정한 임대료 상승률 5% 이내로 계약이 갱신되므로 임대료 상승이 억제됨.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 등 임대료 수준이 임차인이 부담할 수 있는 합리적인 범위에서 조정될 수 있는 기반이 됨.

2. 주거바우처
-정책목표
보증금이 없어 선택하는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 비주택 진입 차단 (디딤돌 주거바우처)
월세 보조로 주거비 경감할 수 있는(민달팽이 주거바우처)
청년들의 실질적인 소득 증가로 다양한 삶의 기회 보장

-정책내용
디딤돌 주거바우처 : 2000만원 이하 소액 보증금 대출과 동시에 이자 지원, 최저주거기준 충족하는 주택에만 지원해 정책 효과성 담보
민달팽이 주거바우처 : 월 임대료 80%까지, 최대 30만원씩 최대 1년간 지원, 최저(준)주거기준 충족 주택에만 지원하고 임대인에게 갱신 1회 약정, 거주 기간 보장 포함 정책 효과성 증대


III. 부채
※ 추후제출



IV. 노동


1. 체불임금 지급보장기구 설립

-정책목표
체불임금으로 대표되는 노동법 준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고, 근로빈곤 청년의 생계를 위협하는 임금 체불에 대한 제도적 구제를 강화함.

-정책내용
소액 임금체불 피해 사건에 대한 국선노무사 제도 도입 및 법률지원 서비스 확대
피해자의 정보접근성을 바탕으로 진정절차 접수가 이루어지는 ‘임금체불 포털사이트’ 개설
고용노동부 소속 근로감독관 증원 및 지방정부 소속 유관부서에 근로감독 권한 부여
자질 미달(집무규정 위배) 근로감독관에 대한 임금체불 피해자의 변경요청권 적극 인정
임금체불 피해자의 생활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임금지급 보장기구’ 설립 (체불임금확인원 발급시 선지급하고 구상권 청구)

2. 최저임금 1만원
-정책목표
월 평균 실태생계비를 반영하여 최저임금 인상, 최저임금 1만원 달성
최저임금 지급여력 부족 영세사업자에 대한 지원 강화

-정책내용
최저임금 인상, 최저임금 1만원 달성
29세 이하 단독가구에 대한 근로장려세제(EITC) 적용
평균 생계비 보장을 목표로 근로장려세제(EITC) 수급 소득구간 및 지급금액 인상

3. 청년의 노조할 권리
-정책목표
노동인권에 대한 인식을 제고
노동조합 결성과 활동에 대한 현실적 제약을 적극 해소
일터에서의 노동인권 보호를 위한 사회적 주체 형성

-정책내용
중․고등학교 정규교육과정에서의 노동3권 교육 의무화
5인 이상 사업장 작업장평의회(종업원평의회) 설치 제도화
노동조합 결성 부당해고 신속구제 방안 마련
비전형노동자 보호를 위한 직종별 협동조합 결성 지원


V. 교육

1. 진짜 반값등록금 및 고등교육비 인하 (교육공공성 확대)
-정책목표
고등교육의 공공성 확대라는 국가적 ‧ 장기적인 목표와 비전을 바탕으로 완전한 반값등록금 정책의 도입, 입학금 폐지 등의 고등교육비 인하, 국공립 대학 확충 및 용도가 불분명한 적립금 규제, 사학 비리 엄벌 등 사립대학에 대한 정부의 관리 ‧ 감독 ‧ 책임을 강화

-정책내용
실질적 반값등록금 정책에 필요한 정부 예산 확충 (2017년 국가장학금 예산 3조 9000억 원 → 7조까지 확대), 그 때까지 현재 시행 중인 국가장학금 제도의 선정기준 등 개선
고등교육법 개정을 통한 입학금 ‧ 졸업유예 등록금 등 폐지 또는 기타 교육비 산정 기준을 실비만 받도록 명문화
고등교육법 개정을 통한 등록금심의위원회의 실질화·권한 강화 및 학생 참여 확대
사립학교법 개정을 통한 적립금 규제 및 공익이사제도 강화 등 사립대학 관리 ‧ 책임 강화
국공립대 확충 방안 마련 및 고등교육 공공성 강화를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


VI. 정치

1.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정책목표
청년들이 성적지향, 학력, 용모, 성별 등을 이유로 사회에서 받는 차별과 혐오를 실효성 있게 예방하고 시정하기 위한 제도 마련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 보장함으로써 헌법에서 보장된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제반 영역에서의 평등 실현

-정책내용
학력, 용모, 인종, 장애,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임신, 출산 등을 포함하여 모든 차별금지사유를 명확히 명시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
간접차별 개념으로서의 '괴롭힘'포함
사회적 소수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차별 선동을 규제하는 조항 포함

2. 만 18세 투표권 보장
-정책목표
법에 의한 병역의 의무, 공무담임권, 혼인, 운전면허 취득 등의 기준 연령은 만 18세
많은 권리가 부여되는 연령 기준이 만 18세인데, 뚜렷한 이유 없이 선거권을 다른 기준으로 제한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남    
OECD 34개국 가운데 선거권 연령이 만 19세 이상인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고, 전 세계 140여 개 국 이상에서 만 18세 이하의 국민에게도 투표권을 인정하고 있음. 세계적인 추세에 맞게 참정권 확대

-정책내용
18세 국민들이 각종 공직선거 및 주민조례개정, 주민투표 등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공직선거법 및 지방자치법 등 선거연령을 하향 조정해야 함.


2017. 4. 12.
공동주최 : 민달팽이유니온, 청년유니온, 청년참여연대, 광주청년정책네트워크, 수원청미래충전소, 시흥청년아티스트, 시흥나눔자리문화공동체, 심심한청년들(전주), 작은자유(남원), 제주청년네트워크, 청년고리(대전), 천도교청년회, 청년감자(시흥), 청년광장, 청년이 바라는 복지(전주),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한국청년연합(KYC), 함께가자 청년들(전주), 흥사단 전국청년위, 경기청년유니온, 경남청년유니온, 대구청년유니온, 부산청년유니온, 인천청년유니온, 청소년유니온, 광주청년유니온 등 (4월 11일 오후 3시 기준)




*출처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Votefor2017&document_srl=149…

Creative Commons License

댓글 쓰기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지난 5월 30일(토)~31일(일) 도성길라잡이가 정기답사를 다녀왔습니다.
매년 다섯번째주가 있는 달을 정해 1박2일로 다녀옵니다.
강화산성 일주와 고려산부터 해서 해미읍성과 개심사, 수원화성과 남한산성, 공주일대와 공산성 그리고 마곡사
도성길라잡이로서 역량강화도 하고, 또 멤버쉽도 돈독히 하는 도성길라잡이 정기답사!!
올해는 작년에 이어 백제역사와 문화의 상징인 부여를 다녀왔습니다.

4월에 사전답사를 다녀오고 그 다음날 뉴스에 백제문화권 (공주,부여,익산) 세계문화유산등재 확실이라는
기사를 읽고선, 아~ 도성길라잡이와 세계문화유산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구나하면서
2017년 서울 한양도성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겠다는 알 수 없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마지막 백제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부여의 역사와 문화가 어떤 점에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지
그 근거도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부여국립문화재연구소에 계시는 양숙자 학예사님을 모시고,
부여를 샅샅히 살펴보았습니다.

첫 장소는 국립부여박물관.
백제문화의 이동경로를 알수 있는 전시물들.
혼자가면 몰라서 그냥 지나치던 청동검과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저 기와일뿐인 백제유물이
학예사님의 설명을 들으니, 생생한 백제의 역사가 되고, 살아있는 유물이 되었습니다. 


 
부여박물관의 감동은 역시 백제대향로입니다.
국사책에서 배운 세대와 못배운 세대로 나눌 만큼 최근에 발굴된 대향로 !
보는 순간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그리고 바로 박물관 바로 가까이에 있는 발굴지로 가서 기초석만 있는 모습만으로도
당시의 건축물을 상상해보았습니다.
이동하면서 보니, 파란천막이 씌여있는 곳들이 많았는데, 전부 발굴하는 현장이라고 합니다.


점심으로 연잎밥을 먹고 나니, 떨어진 당이 재충전되었습니다.  
좋은 기분 갖고 능산리 고분군으로 갔습니다. 백제 금동대향로가 나왔던 곳이기도 하고,
부소산성의 외곽성인 나성이 연결되어 있는 능산리 고분군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고분군에 대한 설명도 이어집니다. 원래 백제의 무덤은 사진으로 보는것처럼 봉분이 저렇게 거대하지 않다며,
이는 복원하면서 보기좋게 신라의 형태를 따라하게 된 모습이라는 것과
백제의 무덤형식때문에 많은 도굴을 당하게 되었다는것과 함께 능을 지키는 능사의 모습
그리고 신분에 따른 무덤의 위치등등...
박물관에서 들을수 없는 현장감넘치는 백제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아..이런 지난번 사전답사 때 정림사지는 시간과 동선때문에 이번 답사에는 넣지 않았던 장소인데,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백제의 생활문화를 엿볼수 있고,
백제의 석탑 2기중 하나가 바로 이 정림사 5층석탑이라는 말씀에, 바로 정림사로 향했습니다.

설명을 듣고 보니, 예사 석탑으로 안보입니다.
좀더 꼼꼼하게 보게 되고, 보다보니, 계측장치들도 눈에 보입니다.
한양도성에 요즘 많이 붙여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눈이 오거나 해가 질 무렵에 오면 더 멋지다고 하는데,
다음에 기회되면 다시 한번 찾고 싶은 공간이었습니다.
특히나 기와로 만들어진 기단이 눈에 띄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것은 석불좌상을 모셔놓은 그 시멘트 덧집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1970년대에 복원된 한양도성의 모습도 생각나고 그랬습니다.

오후 일정의 백미 부소산성으로 갑니다.
백제의 마지막을 함께 했던 장소이고, 도성길라잡이들에겐 포곡식 산성과 테뫼식산성을 만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사비백제의 주거형태와 한성백제의 주거형태를 비교해보고, 판축기술에 대한 강의도 듣고,
현재의 부소산성의 형태가 일제강점기때 이루어진 형태,
일본인들도 자신들 문화의 뿌리가 백제임을 인식하였고, 이 자리에 신궁을 지으려고 했던 사실도 놀랍습니다.
한양도성도 일제강점기때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는데 말이죠.

산성을 돌아 삼천궁녀의 전설이 내려오는 낙화암에도 가보고, 고란사에 가서 젊어지는 약수도 마시고,
산성에 있는 루에 올라 부여일대도 조망해보면서, 부소산성 일주라고 큰마음 먹고 왔는데,
생각보다 여유있게 걸어볼 수 있었습니다.



부소산성이 끝나는 지점에서 만난 관북리 유적.
부소산이 후원으로도 사용되었으니, 당연히 그 앞에는 왕궁이 자리했을 터,
왕국의 기단석과 흔적들, 그리고 당시의 주작대로로 추정되는 공간배치 등등.
기단석 하나에서 당시의 왕궁의 규모를 상상하고,
거리의 흔적에서 당시의 공간배치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저녁식사하는 장소에서 계속 전화가 옵니다. 도대체 언제 도착하느냐고...음식 다 식는다며
재촉전화를 3통 정도 받은 후에 끝난 첫날의 답사.
끊이지 않는 질문은 잠시 후 특강시간에 하기로 하고 해지는 백마강을 뒤로 하고 식사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저녁은 매년 늘 그렇듯 간단하게 산채 비빔밥을 먹고,
이어진 양숙자 선생님의 [우리가 만들어가는 백제왕도] 특강이 이어집니다.
백제문화권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과정에 부여의 유산에 대한 강의와 질의응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교류의 시간~!!
답사에 대한 소감도 듣고, 또 빠질수 없는 바베큐 파티
본 파티를 위해 마장동에서 30년동안 고기장사만 하신 조사장님께 직접 구매한 우주 최고의 육즙을 간직한
돼지목살을 참나무에 구워 먹는...햐~~생각만해도 군침 돕니다.
거기에 재간둥이 최원명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웃음 넘쳐나는 퀴즈와 이야기 시간
맛있는 음식과 좋은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의 열고,오늘의 이 시간을 좋은 추억으로 만들어가는 시간입니다.



둘째날은 조금 여유있는 일정입니다.
아침에는 상콤하게 요가와 접시돌리기로 몸도 풀어주고 궁남지로 갑니다.
선화공주와 호동왕자의 전설이 전해지는 궁남지에 가서
연꽃을 보며 우주만물을 찾아봅니다. 그리고 셀카봉 들고 추억만들기도 해보았습니다.



한결 첫날보다는 여유있는 표정들입니다.
그리고 들뜬 마음도 진정시킬겸 무량사도 이동하였습니다.
백제가람의 특징인 일탑일당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고,
매월당 김시습의 부도와 영정을 직접 확인해보면서
각자 갖고 있는 지식을 서로 나누어주는, 참여와 나눔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무량사를 마치고 유홍준교수가 늘 이곳에 오면 방문한다는 삼호식당에서
산네들네 물씬 풍기는 산채비빔밥으로 점심까지 먹고,
서울로 출발~~
이렇게 1박2일의 도성길라잡이 2015 정기답사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三國史記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은  
백제 온조왕 15년에 지은 왕궁 건출물에 대한 평으로
儉而不陋 華而不侈(검이불루 화이불치)하여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라 하였습니다.

부여에서 만난 문화유산들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백제의 미학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가장 기본이 되는
OUV (탁월한 보편성) 아닐까 합니다.

부여를 보면서 높은 건물이 없는 주변경관또한 백제의 문화를 간직할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부여를 톺아보고 나니 한양도성이 많이 생각났습니다.
한양도성의 관리보존과 도성길라잡이로서의 역할 등등 많은 숙제도 안고 온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도성길라잡이 선생님들의 후기도 잠깐 옮겨봅니다.

- 도성길라잡이 7기 유나래 선생님 후기 중 일부
토요일의 알찬 답사 덕분에 2박 3일 처럼 느껴졌던 1박 2일 부여 답사였습니다.
답사의 첫걸음. 부여 톺아보기 에서도 강조한 백제 금동 대향로가 있는 부여 박물관에서 시작했습니다.
항상 보아오던 박물관 초입의 다른 고대 유물과 비슷해 보여 슥 지나칠만도 한데,
선생님의 안내와 같이 걸으니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능산리 고분에서는 많은 유물이 있는 박물관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언제 발굴이 되었고, 지금의 묘가 왜 이러한 크기가 되었는지 능산리 고분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데,
한편으로는 수학여행으로 능에 오면 아무 설명 없이 차에서 내려 적당히 보기만 했던 그 때,
이러한 안내가 있었더라면 무덤 있는 넓디 넓은 잔디밭이 아니라 조금 더 다르게 기억했을까 싶었습니다.
정림사지도 부소산성도 유유자적했던 궁남지도 무량사도 다시 볼 기회였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고,
개인적으로 이번 답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마지막 PPT 설명이었습니다.
오늘 걸어왔던 유적을 되새겨 보기도 하고, 가지 못한 다른 백제 유적을 살펴보는데
왜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다고 하는지 자세히 보고 이야기를 들으니 알 것 같았습니다.
이제 한성백제의 흔적도, 웅진백제의 흔적도, 사비백제의 흔적도 다 찾아보았으니
다음에는 익산에 한 번 가봐야지 하며 다음 답사를 생각하게 된 부여 답사였습니다.   


-도성길라잡이 7기 박형록 선생님 후기 중 일부
이번 답사는 전문가의 해설과 함께 해서 더 유익하고 즐거웠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실감한 답사였습니다.
박물관에서도 설명을 들으면서 보니 정말 문화재들이 새롭게 다가오더군요.
청동거울은 그냥 보면 어떻게 얼굴이 보일까 싶지만 물을 묻히면 얼굴이 잘 보인다고 합니다.
청동검은 짧은 검 가운에 길게 홈이 파여 있는데 이렇게 해야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고 합니다.
피가 솟구쳐나와 그 홈으로 흘러내린다고 하네요...흐미...
수막새와 암막새 설명도 듣고...보통은 수막새이고 암막새는 여기서만 발견되었다고 했던가요?
그리고 부여를 먹여 살리고 있는 느낌이 드는 금동대향로..
그리고 백제의 무덤은 산비탈에 많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앞쪽으로만 무덤을 크게 만들면 되니 훨씬 힘이 덜 들었겠지요.
자연환경을 알차게(?) 이용해 수고로움을 던 백제인들의 현명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본 무덤의 크기는 가짜라고 합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의 규모였는지
알 수 없다고 하더군요.
신라의 무덤을 보고 대충 이 정도지 않았을까? 하고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하더군요...일본인들이-.-
그리고 백제 무덤은 문만 열면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일본인들이 참 알차게(?) 도굴을 해갔다고 합니다...
소중한 문화재는 다 어디에 있을까요?-_-
그리고 정림사지 5층석탑을 보러 갔을 때 출입구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정문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주차장을 만드는 바람에 옆 문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이런 일도 생깁니다...
정림사지는 중문, 탑, 금당, 강당이 일직선으로 되어 있습니다.
금당 안에는 은지 쌤 동생과 똑같이 생겼다는 불상이 있습니다.
정림사지박물관도 꽤 볼 만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거겠죠?^^
그리고 부소산성...
여기는 옛 유물이 널려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가져가도 된다고 하시더군요.
아래를 보고 걸어가다 보면 여기 저기서 보인다고.
정말로 여러 선생님들께서 마구마구 발견하셨습니다...그저 신기할 뿐이었지요.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무척 좋아했다고 합니다. (좋은 것은 알아가지고...-.-)
그런데 이곳에 신사를 지으려고 했다는군요.
그래서 땅을 파서 그 흙은 저 멀리...
그런데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다행스럽게도 신사는 세워지지 않았고 부소산성은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파낸 흙이 부소산성 밖으로 나가게 되면서 땅을 이루었고 그 위에 건물이 세워졌기 때문에
어떤 유적지는 꽤 많이 파야 유적지의 흔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낙화암은 3천 궁녀가 떨어져 죽었다는데 해설자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보시면 알겠지만 거기에 어떻게 3천 명이 떨어졌겠어요.
아마 나중에 떨어진 궁녀는 다 살았을 거예요. 사람 위로 떨어져서"
그래서! 확인하러 갔습니다....여기에 3천 명이 떨어져 죽기는 힘들겠죠?
그런데 우리 은지 쌤은 말합니다. "3천 명이 떨어져 죽을 수 있지 않을까요?"
흐음...은지 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고란사로 향합니다. 고란사에 있는 물을 마시면 젋어진다나요?
신윤아 선생님이 묻습니다. "선생님은 10년 전으로 돌아가면 뭐하고 싶으세요?"
제가 대답합니다. "제가 왜 10년 전으로 돌아갑니까? 어떻게 지나온 10년인데...
저는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 ㅋㅋㅋㅋㅋ"
이렇게 여기저기 다 보고 내려왔습니다. 내려온 곳이 왕궁터.
학예사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그런 터로 추정이 된다...이 정도셨습니다.
위치를 보면 과연 그런 것도 같습니다.
앞으로 가면 정림사지가 있고 더 앞으로 가면 궁남지가 있습니다. 일직선으로 쭉 늘어서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왕궁 터 앞에 건물들이 있는데 분명히 그 건물들 아래에 뭔가가 있을 거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건물들은 교회와 모텔이었던 것 같은데(제 기억이 맞는지-_-)...건물 철거가 쉬워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옛 부여박물관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쓰이고 있는데 김수근 건축가가 상까지 받은 건물이라고 하는군요..
그런데 건물 모습이 일본 사무라이가 쓰는 투구(?) 같습니다.
철거해야 하는 게 맞겠죠??
저녁에는 해설자 선생님의 프레젠이션까지 보고 질문도 이어집니다.
프레젠테이션 하기도 전부터 이것저것 질문을 해댔습니다.
선생님이 많이 피곤하셨을 거예요...-.-
제가 물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한국에서 문화가 전파된 것을 인정하나요?"
선생님이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럼요...인정합니다. 정치적으로는 뭐 아닐지 모르겠지만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학자들이 이곳에 옵니다."
역시...그렇군요...
그리고 또 묻습니다.
"부여 자체가 문화유적지으로 된 것에 대해 주민들의 불만은 없나요?"
선생님이 대답해 주십니다. "당연히 있지요...이것저것 제약이 많으니까요"
이 또한 역시...그렇군요...
그렇게 질의응답까지 마치고 답사도 거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다음 날은 궁남지로 향했는데 연꽃이 여기저기 보였습니다.
여름이 되면 훨씬 더 많은 꽃들이 필 것이고 그러면 정말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하겠지요?^^
그리고 무량사에서는...아, 어떤 보살님께서 저희를 부르시더니 사과와 수박을 주셨습니다.
"보살님, 감사합니다~성불하세요~~~"
그리고 저희는 마지막으로 무량사 앞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유홍준 교수가 추천했다는 그 맛집!
맛은! 정말 좋았습니다 ㅋㅋㅋ 맛있었어요~
그곳에서는 표고버섯도토리묵(?)도 있었는데 정말 맛있었어요~이거 사오신 선생님들도 계셨는데
많이 사신 분께는 쥔장이 선물로 막걸리도 주셨다는 ㅋㅋㅋㅋㅋ
쌤들이 여기서 폭풍 쇼핑을 하신 듯이요 ㅋㅋㅋ
우미정 쌤에게 물었습니다
"쌤, 식당 쥔장에게 커미션 얼마나 받으셨어요?ㅋㅋㅋㅋㅋ"

-도성길라잡이 7기 신윤아 선생님 후기 일부 -
설레는 마음으로 선생님들과 함께한 부여답사가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네요.
일박이일동안의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이 날아가기 전에 속닥속닥 남겨봅니다??

1)국립부여박물관과 금동대향로

: 부여에 도착해서 향한 곳은 국립부여박물관이었습니다. 드디어 "금동대향로"의 실물을 마침내 보게되었습니다.
우아하면서 아름다운 백제인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한눈에 보여준 감동적인 문화재였죠.

2)정림사지 오층석탑
:우리가 하마터면 지나칠뻔 한, 유홍준 교수님께서 극찬을 하셨다는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백제의 탑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문화재였습니다. 석탑 뒤의 불상집(?)이 NG였지만요.

3)부소산성 일대
:한양도성을 알게 된 후 변화가 있다면 그동안 지나쳤던 우리 주변에 있던 "성"에 관심이 생겼다는거죠.
부소산성에서 바닥을 두리번 거리면서 기와를 비롯한 백제의 문화재 조각조각을 찾는 즐거움과
나무가 우거져 숲을 산책하면서 즐거움을 준 힐링시간이었습니다.

4)궁남지
:백제무왕과 선화공주 지지파(?)로서 궁남지를 둘러보며 몇백년전 서동요가 울려퍼졌을때를 생각하면서
셀카봉 장인 이영란쌤과 함께 궁!남!지!를 열심히 외치면서 빙빙 돌았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5)무량사
:한적하고 조용한 무량사를 걸으면서 이곳에 있으면 절로 수행이 될 것같은 고즈넉한 사찰이었습니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면서 말이죠.

그동안 저에게 백제는 역사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멀게만 느껴지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양숙자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백제를 만나니 그동안 멀게만 느껴지던
백제를 알게 된 유익한 시간이었고, 부여 곳곳을 선생님들과 함께 산책하듯이 걸으니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일상 속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 정기답사를 준비한 준비팀 이상인, 김재훈, 이혜선, 그리고 사무국선생님

사전답사와 여러차례의 준비회의를 통해 보다 알찬 시간들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 다녀오라고 많은 후원해주신 도성길라잡이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좋은 선생님을 모실 수 있도록 섭외를 도와주신 서울시 한양도성도감과 김명옥 주무관님 도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부여를 통해 백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신 부여국립문화재 연구소의 양숙자 선생님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한양도성에 오시면 저희가 버선발로 나아가 맞이하겠습니다.








Creative Commons License

댓글 쓰기

수, 2015/06/10- 13:40
791
0

근현대사의 기억들이 얽혀있는 도시들을 방문하고 있는
서울KYC 근현대사아카데미가 7월 방문한 곳은 군산입니다.

군산은 일제강점기 전라도 지역 평야에서 수확되어 일본으로 수탈해가는 쌀이 모이는,
그야말로 쌀수탈의 전진기지라 부를 수 있는 곳입니다.
일제강점기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하기도 했던 군산에는
당시 적산가옥을 비롯해 일본식 건물들이 상당히 남아있는데요,

군산에 일제가 남긴 흔적을 살펴보며
'일본이 철도와 같은 근대 시설의 토대를 마련함으로써 조선의 근대화를 이끌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허구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답사에는 군산시 해설사 심규순 선생님과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 김재호 선생님이 함께했습니다.



군산에 도착해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경암동 철길마을입니다.
제지원료를 역까지 실어나르기 위해 사용된 철길인데요,
회사 근로자들이 철로 바로 옆에 집을 지어 살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마을입니다.
2008년까지는 기차가 운행되었으나 지금은 다니지 않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 철로는 일제강점기에 쌀을 군산항까지 실어나르기 위한
수탈의 길로 사용된 내력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을 방문해서 군산의 근대를 잠시 훑어보았습니다.
군산에는 이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집들도 많지만,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새로 적산가옥으로 개조할 예정인 곳들도 많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군산의 모습과 더불어 군산에서 일어났던 민족운동, 사회운동을 소개하고
1930년대 거리를 그대로 재현해놓은 듯한 시설을 통해 군산 근대 역사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모형으로 수탈하는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부잔교(뜬다리) 또한 수탈의 상징 중 하나입니다.
부잔교는 조수간만의 차로 인해서 큰 배들이 항구에 정박하기 힘들기 때문에
물높이에 따라 조절할 수 있도록 한 다리인데,
이 다리를 통해 쌀이 옮겨져 일본으로 반출되었습니다.
항구 주변에는 굶주린 사람들이 쌓여 있는 쌀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보초를 세웠다고 합니다.

밖으로 나가 부잔교의 모습도 직접 확인해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옛 군산세관입니다.
이곳 또한 일제가 쌀을 수탈하던 창구로 이용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908년부터 1990년대까지 세관으로 사용되었는데, 지금은 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과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도 돌아보았습니다.
조선은행 군산지점과 18은행은 일제 식민지 지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금융시설입니다.
쌀 반출 자금과 토지 강매 등 수탈한 자금이 이 은행들에서 관리되었습니다.
"이 금고가 채워지기까지 우리 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만 했다"는 문구가
이곳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나타내줍니다.



다음으로 임피역에 도착했습니다.
일제는 호남 평야의 쌀을 운반하기 위해 군산선을 건설했는데요,
군산선의 간이역인 임피역은 호남 지역에서 수확한 쌀을 군산항으로 옮기기 위한 중간 거점이었습니다.
해방 후 돌아오지 못한 가족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모습 또한 임피역이 가지고 있는 기억입니다.
이 역을 스쳐 지나갔을 많은 식민지 시대 사람들의 모습들이 떠오릅니다.



일본 본토에 낮은 가격으로 쌀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일본인 지주들은 농민들에게 높은 소작료를 요구했는데요,
1927년에는 터무니 없는 소작료를 요구한 농장주에 대항해 수 백명의 농민이 들고 일어난
옥구농민항일항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1919년 만세운동, 20~30년대 총파업투쟁 등 군산에도 저항 운동은 지속되었습니다.





군산의 대표적인 일본인 대농장주는 구마모토 리헤이입니다.
현 발산초등학교 한편에는 정원에 마구잡이로 가져다 놓았던
발산리 5층 석탑, 석등 등 여러가지 문화재가 남아 있고
귀중품을 보관했던 금고 건물도 한켠에 텅 빈 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견고한 벽, 두꺼운 철제 문과 숨겨진 가파른 계단이 이 건물의 용도를 말해줍니다.



근처에는 1920년대 구마모토에 의해 별장으로 지어진 가옥이 있습니다.  
당시 구마모토가 불러온 이영춘 박사가 해방 후에도 이곳에서 계속해서 거주하며
우리나라 보건 분야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겼기 때문에 이영춘 가옥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국사에 들렀습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입니다.
대웅전 뒷편에는 일본식 대나무숲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동국사 한 켠에는 군산 평화의 소녀상이 있습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분들을 뜻하는, 서 있는 소녀상입니다.
소녀상 뒤에는 일본 조동종의 참사문, 즉 참회와 사죄의 글이 적혀 있는데요,
메이지유신에서 태평양 전쟁에 이르는 시기
일본의 지배 야욕에 불교가 가담한 행태에 대해 아시아인들에게 사죄하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거점이었던 군산을 돌아보았습니다.
함께한 민족문제연구소 김재호 선생님은
일제에 의해 계획적으로 수탈의 도시로 만들어진 군산이
식민 유산에 대해 근대문화유산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우려한다면서,
관광객을 모으기 위해 새로운 건물조차도 일제식으로 만드는 등
식민지 근대화론의 긍정적 해석이 될 수 있는 오늘날 군산의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수탈을 위해 만들어지고 사용된 철길, 항만시설, 은행, 세관,
조선인들에게 높은 소작료를 징수하고 대농장을 가졌던 일본인 지주...
군산이 가지고 있는 유산은 대체로 일제강점기 수탈이라는 잔혹한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그대로 남아있는 건물과 시설을 보면서 역사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도시가 가지고 있는 유산을
지금 시대에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해야 할지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근현대사아카데미는 8월에도 계속됩니다.
시민들이 만든 대통령, 시민들과 많은 것을 나누고자 한 대통령이 머물던 곳,
가장 최근의 역사를 품고 있는 김해를 방문해 참여민주주의를 생각해봅니다.


참가신청하기  http://goo.gl/forms/UYIq1BxzGu
Creative Commons License

댓글 쓰기

목, 2016/07/21- 16:24
777
0

제19대 대통령선거, 소비자권리 실현을 위한 개혁과제 발표 기자회견

2017년 3월 23일(목) 오후2시, 광화문광장(세종대왕상 앞)

 

 

[기자회견문]

1,700만 촛불은 19대 대선 후보들에게 소비자, 시민권리의 실현을 명령한다. 

 

대통령 탄핵과 파면으로 조기 대선 정국이 시작되었다. 이번 제19대 대통령 선거는 우리 사회의 개혁을 이끌어 낼 중요한 계기이다. 차기정부는 잘못된 경제구조를 바로잡고, 국민주권 실현을 위한 개혁조치를 수행할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수많은 개혁과제가 있지만, 방송・통신・소비자분야의 공공정책은 국민의 삶의 질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그 어느 정책 못지않게 중요하다. 세월호 사건과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우리사회의 허술한 소비자정책을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재벌들의 독점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소비자의 건강권과 개인정보의 권리는 희생되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으로 방송의 공정성은 훼손되고, 권력에 대한 감시는 실종되어 비선실세 국정농단을 불러왔다. 인터넷・통신 공간에 대한 행정기관의 검열과 사이버 사찰로 이용자들이 사이버 망명을 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은 적폐를 해소하고, 훼손된 소비자・시민의 권리를 회복할 분명한 비젼과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 9개 소비자・시민단체는 소비자권리의 실현을 위해, 다음과 같이 <4대 소비자권리 14개 개혁과제>를 제안한다. 

 

하나, 소비자업무를 총괄하는 독립기구를 설치하여 소비자정책 거버넌스를 강화해야 한다. 
하나, 실효성 있는 소비자 피해구제를 위해 집단소송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하나, 기업의 불법행위 재발방지를 위해 징벌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하나, 기업의 불법행위로 인해 소비자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입증책임을 기업에게 전환해야 한다. 
하나, 기업의 불공정행위를 방지하고,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해야 한다. 
하나,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혁하고, 방송 자율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여 공영방송을 정상화해야 한다. 
하나, 시청자 권익보호를 위한 시청자위원회의 독립성과 권한을 강화하고, 유료방송 시청자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 
하나, 지상파 직접 수신율을 제고하고, 지상파 다채널 방송을 전면 실시하여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해야 한다. 
하나, 권력의 인터넷 검열 수단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통신 심의를 폐지하고, 민간 자율심의로 전환해야 한다. 
하나, 가입자 정보 제공시 영장주의를 적용하는 등 통신비밀보호 관련 법제를 개선하여 이용자의 통신비밀을 보호하고 사이버 사찰을 방지해야 한다. 
하나, 통신시장 경쟁활성화와 통신요금부과체계 개선을 통해 가계 통신비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 
하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비식별조치 가이드라인을 폐기하고, 빅데이터 시대에 맞게 개인정보보호 법제를 개선해야 한다. 
하나, 행정자치부의 개인정보 감독권한을 이양하여, 개인정보 감독기구로서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독립성과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하나, 주민등록번호 체계를 임의의 일련번호로 변경하는 등 주민등록번호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우리 9개 시민・소비자 단체들은 제19대 대선 후보들에게 이와 같은 차기정부 개혁과제를 제안과 함께, 이에 대한 각 후보들의 입장을 묻는 정책질의서를 발송하였다. 이를 통해 각 후보들의 정책 방향을 엄밀히 평가하고 비교하여, 우리 시민들이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공개할 예정이다.  

 

방송・통신・소비자 분야의 공공성과 소비자・시민 권리 회복을 위한 우리의 제안을 각 후보들이 진지하게 검토하고, 이를 실천할 의지를 보여줄 것을 촉구한다. 


2017년 3월 23일 

경실련, 금융소비자연맹, 서울YMCA, 소비자시민모임, 소비자와 함께
언론개혁시민연대,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함께하는 시민행동

 

* 붙임 : 4대 소비자권리, 14개 개혁과제 요약
* 별첨1 : 4대 소비자권리, 14개 개혁과제 전문
* 별첨2 : 대선 후보에게 보내는 정책질의서

목, 2017/03/23- 17:09
719
0

도성길라잡이들이 지난 5월28일~29일, 1박2일로 양동마을과 경주일대로 정기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얼마전, 한양도성과 세계문화유산에 대한 워크숍을 마친 후여서,
삶의 공간과 문화유산이 공존하는 세계문화유산-양동마을은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했고
신라인의 영원한 이상향 남산의 다양한 불상과 탑, 절터의 모습도 궁금했습니다.  

또, 지난 답사가 백제문화권에 대한 이해였다면,
올해는 양동마을과 경주남산을 통해 조선의 유교문화와 신라의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신라 최치원에 대한 연구가 전문분야이신 장일규 교수님을 모시고 다녀왔습니다.  
2014년 공주답사때 함께 하였는데, 올해도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도성길라잡이의 답사가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첫 답사지는 월성 손씨와 여주 이씨의 아름다운 경쟁이 만들어 낸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인 양동마을입니다.
서백당,무첨당의 모습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룬 건물 배치,
화려하지는 않지만, 건축물 요소요소에서 느껴지는 세련미...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았을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선물처럼 다녀온 흥덕왕릉~!!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생각도 못했던 곳이었습니다.
점심시간을 줄이고, 저녁시간을 늦추면서 결정한 흥덕왕릉입니다.

소똥냄새를 지나자 거짓말처럼 나타난 소나무 숲길.
그 소나무 숲길 끝에 신라 42대 흥덕왕의 릉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앞 안강이라는 지리적 위치를 생각하며 '장보고'라는 인물과 주변국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왕릉의 문인석과 무인석의 모습을 통해 당시 신라인의 구성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장일규 교수님의 조금은 색다른 해석, 그리고 낯선 왕들의 이름들..
어렵긴 했지만, 무겁거나 지루하지 않고 배움의 즐거움을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옥산서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서원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했는데, 아쉽게도 반려됐다는 뉴스를 얼마전에 접했었습니다.
그래서 더 궁금했던 옥산서원입니다.
이곳에서는 회재 이언적을 중심으로 한 성리학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차도 한잔씩 마시고, 선비복도 직접 입어보며 체험해보기도 하고 잠시 쉬어가는 시간도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논길을 지나서 만난 독락당. 독랑당은 아쉽게도 조금 늦게 도착을 해서 내부를 보지 못햇지만,
그 주변모습만으로도 홀로 즐거움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런 멋진 곳에서 공부하면 매일 놀고 싶어서 오히려 공부가 안될것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근처에 위치한 정혜사지터를 갔습니다.
또다시 논길을 지나서 만난 정혜사지 터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형태의 13층 석탑을 만났습니다.
기단이 독특했었고, 석탑은 굉장히 간결한 모습이었습니다. 석탑이 13층이라는 것도 독특한 모습이라고 합니다.
저 석탑을 기준으로 하여 당시의 정혜사지를 상상해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루 일정을 마무리 하고, 저녁 식사 후 숙소로 이동하였습니다.
이대로 바로 자유시간을 갖기에는 우리의 시간이 너무 아쉽습니다.
그래서 저녁을 먹고 한숨 돌리고선 다시 모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추억을 바로바로 돌아볼 수 있도록 사진도 돌려보고,
다녀온 곳을 뒤돌아보는 퀴즈대회도 하였습니다.
인.의.예.지로 팀도 나누고,
팀대항으로 [기승전"도성"] 스피드 퀴즈도 하고,
어렸을 적 사진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추억을 공유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모처럼 실컷 웃는 시간이었고,
도성길라잡이라는 끈이 더욱 튼튼해 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튿날 답사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시간을 아끼기위해 아침은 김밥과 사발면으로 해결하고
신라인의 영원한 이상향 경주남산으로 향했습니다.
삼릉입구에서 시작하여 석조여래삼존불상, 머리가 없는 석조여래좌상, 그리고 마애관음보살상.....
경주남산에 불상이 많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많은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개성을 갖고 있는 모습도 신기하였습니다.

다시 미스터 불상이라고 불리워지는 멋진 아미타상이 있는 보리사를 갔습니다.
보리사는 제법 높은 곳에 위치하였는데, 부처의 시선으로 경주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그런 곳이었고,
이곳에 위치한 불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힘들지? 말하지 않아도 내가 네 마음 다 알고 있어. 그러니 여기와서 나한테 기대보렴" 이라고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를 각각의 방법으로 위로해 주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1박2일의 답사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답사를 준비하기위해 기획팀이 모였고 몇날몇일 모여서 답사지를 정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또 그 먼길 마다않고 사전답사까지 다녀왔습니다.
기획팀 선생님들 덕분에 많은 도성길라잡이 선생님들이 좋은 추억 진하게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양승수, 이순, 임영희, 정명희, 정재하 선생님...고맙습니다.



그리고 도성길라잡이 선생님들의 후기도 함께 전합니다.  

[도성길라잡이 8기 김예경 선생님]

오월은 한국의 이곳저곳을 많이 다녔고, 경주답사는 오월의 마지막 여행이었습니다.
잠시 한국을 방문중이신 부모님을 서운케 하면서도 고집했던, 꼭 오고 싶었던 곳이었어요.
여행은 혼자하는 걸 좋아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다니는 여행도 참 좋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계속 이렇게 좋은분들과 같이 답사 다니려면 꼭 수료를 해야겠구나라는 결단까지. ㅋ ㅠ

구름이 예뻤던 양동마을과, 독고당에서 석탑이 있던 곳까지 걸었던 초여름의 오후의 풍경,
탑곡에서 내려다 본 평화로웠던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볼 기회가 없었던 부처님도 많이 뵙고요.

도성 길라잡이가 되는 과정 중에 배우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도성에 관한 지식이외에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할 수 있는 것,
안타까운 역사의 현장에 직접 가서 보고 느끼고 싶은 열심도 생겼습니다. 소맥 마는 법도 배우고 ㅋ

제게 좋은 선생님들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KYC 오기 진짜 잘한 것 같아요

[도성길라잡이 8기 권혁준 선생님]

탑골 부처바위 마애불상군에 올랐을 때였습니다.
정명희 선생님이 소리칩니다.
"빨리 소원을 비세욧!"

소원이 무엇이었던가. 금방 떠오르지 않습디다. 그렇다고 빌 소원이 없을만큼 행복한 것도 아닌데
어떤 구체적인 목표의식이 없이 표류해오지 않았나 싶은 생각에, 이거 반성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했고요.
낮은 곳이지만 힘들게 땀흘리며 올랐더니 멘붕이 와서 머릿속이 백지상태가 된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무념무상의 경지인 것인지, 아니면 혈당이 떨어져 정신이 가출한 상태인지...
아니면 혹시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것일지도 모르니 저도 제 안의 부처를 찾은 것일까요. ^^
교수님이 말씀하신 팔공산 갓바위 가는 길에 만난, 아픈 아들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
매일 갓바위에 한발 한발 오르는 노파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 한가지 간절한 염원은 가지고 있어야 몸과 마음이 병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파른 산 속에 위치한 약사암같은 것들은 그 효험을 그렇게 발휘했을 것입니다.
한가지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힘들게 힘들게 올랐더니, 그 고도의 집중력과 몰아로 인해
자신이 아프다는 것 조차 잊고 산을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병이 치유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 염원은 약자의 특권입니다.

독일이야기 한토막 하겠습니다.
독일 남부의 아우구스부엌Augsburg이라는 도시에 가면 푸거라이Fuggerei라는 빌라촌이 있습니다.
빌라라기 보다는 연립주택(타운하우스)라는 표현이 맞을 듯 합니다.
그 곳은 독일의 르네상스를 이끈, 독일의 메디치 가문이라고 불리우는 야콥 푸거 Jakob Fugger와
그의 가문이 세계 최초로 조성한 사회복지 거주시설입니다.
아직까지도 푸거 은행이 존재할 정도로 막대한 부를 이룬 가문인데요,
황제를 만들어내고, 정경유착으로 소금광산등의 개발권을 따내고 다시 부를 이용해 황제를 지원했던
푸거와 그 가문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조성한 마을입니다.
이 곳에 거주하는 1년 집세는 상징적입니다.
이들은 놀랍게도 1년에 단돈 1유러(당시 1굴덴)만을 집세로 내고 2층짜리 연립주택에 거주합니다.
현재까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뽑을 때 세번째 조건이 흥미롭습니다.
그들은 당연히 가난해야 하고, 카톨릭을 믿어야 하며, 세번째로는, 매일 아침에 푸거와 그 가문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아하. 느낌이 왔습니다.
돈과 권력과 명예와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들이 마지막에 원하는 것은 결국, 자신들을 위한 기도.
그것이었습니다. 어차피 자신들도 죽을 목숨. 많은 사람들의 기도로 연옥에서 빠져나와 천국에 가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찰 수록 재벌들이나 권력자보다 작은 교회 목사를 하는 제 친구가 부럽습니다.
친구를 볼 때마다 한마디 합니다. 넌 좋겠다. 신도들이 우리 목사님 건강하게 해주세요.
천당가게 해주세요. 빌어주잖아. 그게 제일 좋은 거다. 농담처럼 얘기하곤 합니다.)

옛날에도 그랬을 것입니다. 제정일치시대에도 그랬을 겁니다.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의 권력과 돈은, 고통받는 약자들인 민초들과 교묘히 공생관계를 맺고 결탁했을 것입니다.
나는 돈을 걷어 예배당을 지을 테니 너희는 너희들을 위한 기도를 할 때 (조금씩은)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권력자가 민초들에게서 걷어간 세금과 시주가 제대로 사용되었을 경우 민초들은 권력자의 복을 기원했을 것입니다.
정도전이 지은 '경복'도 그것이었을 것입니다. 시경의 "술로써 취하게 하시고, 덕으로써 배부르게 하시니,
군자시여 만년토록 큰 복을 받으소서'라는 구절도 그래서 나왔을 것입니다.
염원이란 약자들만의 권한입니다.
가진 자는 가진 것으로 베푸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이기에 백성에게 술을 베풀고 덕을 사용하는 것이
군주의 역할이고 약자인 백성들은 다만 군주의 복을 기원할 뿐이지 않을까요.
원시수렵시대에도 그랬을 것입니다.
친구가 다쳐서 사냥을 나가지 못하면 사냥을 대신 나가는 친구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너는 그냥 내 안전을 빌어달라고. 그리고는 사냥한 노획물을 나누어 먹고자 질그릇을 빚고 함께 나누어 먹었을 것입니다.
신은 투박한 질그릇속에 있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을 것입니다.

전 불상도 모르고 불교도 모르고 천년 고도인 경주도 잘 모르지만,
금오산(남산)의 수많은 석불들을 보면서 든 생각은 그것이었습니다.
금오산의 수많은 불상들은 그 자체로 커다란 염원 덩어리였을 것입니다.
석공의 기술과 왕들의 권력과 민초들의 소원이 모여서 빚어낸 거대한 염원 덩어리.
개개인의 기복이던, 권력자를 향한 충성이던, 불국토를 향한 종교적 신념이던,
그 염원 하나하나가 모여서 찾아내고 빚어내고 응집된 소원 덩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그래서 여기 오른 사람들은 그런 거대한 덩어리에서 나온 에너지를 느꼈을 것입니다.
부처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고,
사람들은 천년동안 무한히 이곳에 오른 민초들의 고통과 소원들을 헤아리며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곳이 또 있을까요.

많은 것을 보았지만 가장 강력하게 떠오른 생각 하나만으로 두서없는 후기를 갈무리하려 합니다.

답사를 다녀온 이후. 올해가 가기 전에 소원 하나를 세워야겠습니다.
이왕이면 질그릇에 담을 수는 없지만, 혼자 꾸는 꿈만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경주에 다시 가게 된다면, 꼭 간결하고 명확하게 소원 하나 빌고 와야겠습니다.

재미있게 해설해주신 교수님, 그리고 기획해주시고 수고해주신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양승수, 이순, 임영희, 정명희, 정재하, 조인숙 선생님 감사합니다.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답사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신 장일규 교수님의 메세지도 함께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장일규입니다.
보내주신 메일과 사진, 잘 읽고 보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많은 사진을 찍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주, 참 꿈 같은 곳이지요.
지금도 1년에 몇 번씩 경주를 가지만, 막상 일정을 끝내고 떠나려고 하면, 또 오라고 속삭입니다.

이 땅, 축복받은 곳입니다.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많은 문화유산이 없어지거나 훼손되었지만,
지금 것만으로도 감동을 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동안 참 많은 곳을 다녔습니다.
보고 느끼고 담고. 그것은 제 것만은 아니지요.
해서 조심스럽지만, 저의 감상을 말씀드리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 답사지에서 꼭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여러분과 저는 도반이라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땅에 자리하고 있는 많은 문화유산을 함께 보고 느끼고 담고서는,
또 다른 도반이 될 이를 위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답사를 꿈꾸니까요.

앞으로도 그런 마음으로 함께 했으면 합니다. //


이렇게
2016년 서울KYC 도성길라잡이 정기답사 [불교와 유교의 만남, 경주야 놀자] 잘 다녀왔습니다.^^*


*사진제공 : 이순, 양승수, 정재하, 조인숙
Creative Commons License

댓글 쓰기

금, 2016/06/10- 11:53
717
0

지난 2012년 대선이 끝난 지 2년 반이 흘렀지만 당시 개표 과정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과 불신은 지금까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뉴스타파에도 대선 개표와 관련해 각종 제보와 취재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개표와 관련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논란의 근거는 무엇일까? 개표 과정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뉴스타파는 이와 같은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지난 18대 대선 때 전국 252개 개표소 중 28곳의 현장 영상을 입수해 분석했다. 영상은 개표장에 설치된 CCTV와 선관위 직원이 직접 촬영한 것이다. 이 영상은 ‘18대 대선부정 진상규명 목회자 모임’에서 활동하는 정병진 목사가 선관위로부터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았다. 영상 파일은 모두 275개로 파일 하나에 길게는 3시간이 넘는 분량이다.

뉴스파타 취재진은 이 영상들을 분석한 결과, 개표 과정 전반이 부실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검표부터, 선관위원 검열, 개표상황표 작성, 그리고 최종적인 봉인에 이르기까지 개표 과정 전반에 걸쳐 선관위의 ‘개표 매뉴얼’을 위반한 사례가 수없이 발견됐다. 선관위도 개표가 부실하게 관리됐고 실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실수가 있었을 뿐 의도적인 ‘부정’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투표지 100매 확인에 5초…형식적인 수검표

개표가 시작되면 투표지 분류기가 일차로 후보자별 투표지를 분류한다. 이렇게 분류된 후보자별 유효표와 기계가 판독하지 못 한 미분류표를 다음 단계인 심사집계부에서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확인한다. 18대 대선 개표 매뉴얼에는 투표지 분류기가 분류한 표를 심사집계부에서 “전량 육안으로 심사, 확인하고 2, 3번 번갈아가며 정확하게 재확인, 심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 경기도 군포시 대선 개표 영상

▲ 경기도 군포시 대선 개표 영상

 

위 사진은 경기도 군포시 개표소에서 심사집계부에 있는 한 개표사무원이 투표지를 수작업으로 확인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100매 묶음의 후보별 유효 투표지를 한 장씩 육안으로 확인하지 않고 ‘휘리릭’ 빠르게 넘기며 눈대중으로 훑어보고 있다. 100매를 확인하는데 5초도 채 걸리지 않는다.

 

▲ 대구시 서구 대선 개표 영상

▲ 대구시 서구 대선 개표 영상

 

대구시 서구의 개표소에서는 후보별 유효표를 심사집계부에서 수작업 확인 과정 없이 계수기(은행에서 돈을 세는 기계)로 숫자만 확인하는 화면이다. 투표지 분류기가 분류한 결과가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사실상 최종 개표 결과가 되는 셈이다.

선관위원 최종 검열, 위원장 봉인도 대리로

수검표 작업과 집계 결과가 정확한지 다시 심사하는 개표 최종 확인 과정인 선관위원들의 검열도 형식적으로 이뤄졌다. 개표 영상에서 대다수 위원들은 투표지를 재확인하기는커녕 만져보지도 않고 개표상황표에 서명을 하거나 도장을 찍었다.

 

▲ 창원시 마산 합포구 개표 영상

▲ 창원시 마산 합포구 개표 영상

 

창원시 마산 합포구 개표소 화면에서는 최종검열을 해야 할 선관위원들이 아예 자리를 비운 모습이 포착됐다. 한 여성 위원이 5-6명의 다른 위원들 도장을 들고 개표상황표에 대리 날인을 하기도 했다.

개표가 끝난 뒤 투표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도 문제점이 발견됐다. 개표가 끝나면 투표지를 상자에 넣고 봉인 작업을 하는데 개표 매뉴얼에는 위원장이 사인을 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 개표 영상에서 개표 사무원들이 위원장 도장을 대리 날인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 서산시 개표 영상

▲ 서산시 개표 영상

 

서산시 개표 영상에는 한 개표사무원이 위원장 확인이 이뤄지기 전에 도장을 미리 찍어 놓으라고 지시까지 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다른 사무원이 위원장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잠시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투표지 보관 상자에 위원장의 확인 없이 다른 사무원이 대신 도장을 찍었다.

선관위, “투표지 분류기 100% 정확”…하지만 실제 오류 발생

이렇게 수검표부터 최종 검열과 봉인까지 선관위가 스스로 정한 규정을 어긴 사례가 곳곳에서 확인됐지만 해당 선관위 관계자들은 투표지 분류기가 분류한 결과가 100% 정확하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기계가 정확하기 때문에 사람이 하는 수검표는 부실하게 이뤄져도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 선관위 관계자는 여러차례 수검표를 하도록 규정돼 있는 매뉴얼을 개표현장에서 제대로 지키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에 대해 “(투표지 분류기가) 100% 확실하기 때문에 이른바 법령이나 개표 매뉴얼을 무시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라며, “절차를 지키고 법령을 준수한다고 하는 것은 결과에 있어서 차이가 있느냐 여부를 떠나서 그 자체가 선거 결과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책”이라고 말했다.

투표지 분류기를 100% 신뢰한다고 하는 선관위도 ‘사람’이 실수할 가능성은 인정한다. 선관위는 투표지 분류 과정에서 기계에 종이가 걸리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람이 손으로 투표지를 빼서 재분류 하는 상황에서 실수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수작업 확인 과정인 ‘심사집계부’와 ‘위원 검열’을 거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실제 개표 집계가 오류가 생겨 사후에 수정한 사례도 발생했다. 서울 양천구 목3동 제4투표구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의 득표수가 실제보다 86표 많게 집계된 것으로 최종 개표 이후에 뒤늦게 확인된 것이다. 선관위는 수작업 과정에서 집계가 잘못된 것이라고 밝혔다.

납득하기 힘든 개표상황표…선관위, “실수”

18대 대선 때는 수검표와 최종 검열 등에서 벌어진 ‘부실 개표’ 외에도 ‘엉터리 개표상황표’ 때문에 수없이 많은 의혹이 제기됐다. 개표상황표를 보면 투표지 분류기 작업이 끝나기도 전에 개표 결과에 대한 위원장 공표가 이뤄지고, 심지어 분류기 작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위원장 공표가 이뤄지기도 했다. 문제의 개표상황표들은 각종 ‘의혹’과 ‘음모론’의 주된 근거가 됐다.

 

▲ 동대문구 청량리동 제5투표구 개표상황표

▲ 동대문구 청량리동 제5투표구 개표상황표

 

위 개표상황표를 보면 투표지 분류기를 통한 분류 종료 시각은 22시 04분인데 위원장이 개표 결과를 공표한 시각은 이보다 앞선 20시 21분으로 나타난다. 개표가 종료되기도 전에 위원장이 결과를 발표했다고 여겨지는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다.

 

▲ 부산시 영도구 청학2동 제4투표구

▲ 부산시 영도구 청학2동 제4투표구

 

위 개표상황표에는 투표지 분류기를 개시한 시각이 20시 49분인데 위원장이 결과를 공표한 시각은 19시 20분으로 적혀있다. 개표도 시작 안했는데 결과가 나왔다는 말이 된다.

개표상황표는 개표와 관련된 각종 시각 등을 개표사무원이 기록한 것이다. 선관위는 위원장의 개표 결과 공표 시각을 사무원이 기록하는 과정에서 생긴 착오라고 말했다. 투표지 분류기 제어용 PC 시각이 현재 시각으로 설정되어 있지 않아서 개표상황표에 잘못된 시각이 출력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실수는 있었지만 집계된 표의 수와는 관련이 없다는 게 선관위의 입장이다.

개표가 종료 전에 언론과 포털로 개표 결과 전송

중앙선관위는 전국 개표소로부터 보고받은 투표구별 개표자료를 언론사와 포털사에 1분 단위로 제공한다. 그런데 대선 이후 선관위가 공개한 1분 단위 개표자료와 실제 개표소에서 작성된 개표상황표를 비교해 보면, 개표소 위원장이 개표 결과를 공표하기 전에 개표 결과를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 모순된 상황이 발견됐다.

 

▲ 서울 영등포구 대림3동 제7투표구 개표상황표와 1분 데이터 비교

▲ 서울 영등포구 대림3동 제7투표구 개표상황표와 1분 데이터 비교

 

위 개표상황표를 보면 위원장이 개표 결과를 공표한 시각이 밤 12시 16분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1분 데이터를 보면 해당 투표구의 개표 결과가 언론사와 포털에 제공된 시각은 밤 10시 35분으로 나타난다. 개표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결과가 언론사에 제공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선관위가 개표 결과를 미리 만들어 놨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선관위는 이 역시 개표소에서 위원장이 개표 결과를 공표한 뒤 보조사무원이 시각을 기록하도록 되어 있는데 실수로 기록을 누락한 경우라고 해명했다. 위원장이 공표를 마친 개표 결과를 중앙선관위로 실시간으로 보고한 뒤 시각 기록이 누락된 걸 발견하고 뒤늦게 입력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착오라는 것이다.

유령표와 실종표

각 투표구에서 교부한 투표용지보다 개표 때 표가 더 나오는 ‘유령표’ 현상과 표가 덜 나오는 ‘실종표’ 현상도 전국적으로 수백에서 수천 표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어떤 투표구에서는 유령표 현상이 벌어지고 어떤 투표구에서는 실종표 현상이 벌어진다. 전국적으로 집계하면 교부된 투표용지보다 2,456표가 적게 개표됐다.

선관위는 대선 뿐 아니라 매 선거 때마다 투표용지 교부수보다 개표할 때 투표수가 더 많거나 적은 경우는 늘 발생 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선관위는 ‘유령표’의 경우 투표소에서 투표관리관이 투표용지 교부수를 기재할 때 계산 착오로 잘못된 교부수를 적는 경우들이 종종 생긴다고 주장했다. 또 교부수보다 개표 때 표가 적게 나오는 ‘실종표’는 유권자들이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지 않고 갖고 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소모적인 개표 논란….선관위가 자초

지난 18대 대선 개표 영상을 통해 끊임없이 제기되는 개표 논란의 가장 큰 원인은 선관위의 부실한 개표 관리인 것으로 드러났다. 수검표부터 최종 검열과 봉인까지 매뉴얼대로 이뤄지는 것은 없었다. 선관위가 이른바 ‘대선 부정 음모론’에 단초를 스스로 제공한 셈이다. 다만 ‘기획된 부정 선거’라고 규정하기에는 근거가 미약한 것도 사실이다.

정태호 경희대 교수는 “(선거의) 마지막 단계인 개표가 정확하고 신뢰성 있게 이뤄지는 것 굉장히 중요하다”며,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앞의 선행 과정에서 아무리 공정하게 선거 과정이 진행됐다 하더라도 선거는 본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선관위가 스스로 정한 개표 규정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부실을 반복한다면 개표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매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소모전을 끝내기 위해서 선관위의 책임감 있는 자세가 요구된다.

화, 2015/09/22- 18:41
71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