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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 연구원이 기억하는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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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 연구원이 기억하는 세월호

익명 (미확인) | 화, 2017/04/11- 13:54
4월입니다. 3년이 지났습니다. 쓰라린 그 날의 기억. 온 세상에 봄기운이 가득하지만, 우리의 마음 한 편은 아직 차가운 바다를 향해 있습니다. 그리고 진실은 여전히 깊은 물 속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잊지 않았다는, 잊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은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여전히 아프고 쓰라린 기억

•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 아이가 물었다. “아빠, 우리나라에는 울트라 파워 해군과 경찰이 많잖아요. 그런데 왜 못 구해요?” 이 질문이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 권기태 소장권한대행(부소장)

•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공포와 고통,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절망적이었던 가족들의 마음. 모든 것이 비용으로 치환되는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 옥세진 사회의제팀 팀장

• 생사가 갈리던 순간. ‘전원 구조’ 발표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나의 안일함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 김현수 사회의제팀 선임연구원

• 거짓말 같던 순간. 많은 사람에게 눈물과 가슴 속 묵직함을 던져준 상처. 그리고 여전히 진행형인 아픔. – 정창기 목민관클럽팀 팀장

• 가슴이 미어진다. 눈물이 난다. 왜 생때같은 아이들이 죽어야 하는가. 분노가 치밀고 울화통이 터진다. – 송정복 목민관클럽팀 연구위원

• 지워지지 않는 상처. 거대한 죽음을 생생히 목격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과 분노에 몸서리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들이 마지막 순간에 보낸 메시지를 보면, 지금도 눈물이 흐른다. – 이원혜 후원사업팀 팀장

• 기억해야 할 아픈 역사. – 김희경 후원사업팀 선임연구원

• 국민을 지켜줄 능력과 사명감이 없는 국가의 실체와 마주했고, 민주주의 뒤에 숨어있던 • 권력의 실체와 마주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나의 무기력과 마주했던 시간. 세월호 참사는 나를 시민으로 다시 깨어나게 했다. – 박다겸 후원사업팀 연구원

• 잊지 못할 기억, 잊지 않을 기억, 잊고 싶지 않은 기억. 여러 수식어를 붙여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세월호. – 방연주 미디어홍보팀 선임연구원

• 봄바람을 쐬어도, 꽃이 지천으로 망울을 터뜨려도 따뜻해지지 않는 마음. 그날 이후 봄은 내게 더는 ‘포근한 계절’이 아니다. – 최은영 미디어홍보팀 선임연구원

•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은 것. – 박흥석 지속가능발전팀 선임연구원

• 그날 이후 우리는 모두 아이들을 잃은 사람들이라는 회복할 수 없는 정체성을 부여받았다. – 송하진 지속가능발전팀 연구원

•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걸까? 힘들지만 그래도 살만하다고 위로해왔는데, 참사를 겪으며 ‘이건 아니잖아’라는 생각을 했다. 하루하루 무심하게 살아온 날을 뒤돌아보게 한다. – 한현숙 경영지원실 연구위원

• 먹먹한 기억. 적극적인 악(惡)에는 더 적극적인 선(善)이 필요하다. – 박정호 경영지원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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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국가, 자본의 탐욕이 불러온 비극

• 딸 아이 생일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서로 짓밟고서라도 나와 내 가족만 잘 살면 대대손손 잘 먹고 잘 살 것 같았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통해 국가의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 없이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사건을 목도하면서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내 가족, 내 자식을 위해서라도 국가와 정치, 우리가 사는 이 공동체에 더는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 황세원 사회의제팀 선임연구원

• 안전불감증과 탐욕, 이기심,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로 인해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된 날. – 임은영 지역정책팀 선임연구원

• ‘전원 구조’라는 뉴스 속보를 보고 마음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이 다시 들썩였다. 잊을 수 없는 그 날. 무능한 국가, 자본의 탐욕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는지 깨달은 날. – 안수정 지역정책팀 연구원

• 국가의 역할을 곱씹게 된 계기. 기본적 안전도 보장 못 하는 이 나라를 믿고 따를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 기점. – 이다현 지역정책팀 연구원

• 국가의 의미를 고민하고, 돈의 논리로 굴러가던 세상을 성찰하고, 슬퍼할 권리를 막고 막말만 뱉어대던 사람들을 보며 이런 어른으로는 살지 않겠다 다짐했던 시간. – 김수영 시민사업팀 연구원

• 어제보다 더 생생하게 기억나는 날. 세월호는 슬픔과 안타까움을 넘어 한국사회가 쌓아온 수많은 지속불가능성을 집약해 보여줬다. – 정환훈 지속가능발전팀 연구원

• 안전이란? 국가의 역할이란? 책임, 권한, 의무의 의미가 뿌리째 흔들린 사건. 살릴 수 있었다. 살려야 했다. 물에 잠긴 밝지만 슬픈 노란색. – 안영삼 웹팀 팀장

• 선장이 책임을 다하지 않아 무고한 학생들과 시민이 세상을 떠났고, 대통령이 책임을 다하지 않아 국민의 마음이 미어졌다. – 오승화 웹팀 연구원

•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사유하게 해 준 잊을 수 없는 사건. – 양이현경 희망기획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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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진상규명,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 피해자와 희생자 가족의 마음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침몰하는 배를 보며 얼어붙은 내 마음이 아직도 녹지 않은 것 같다. 탐욕, 권력에 대한 맹목적 복종, 부당함에 대한 무관심 등 사고 원인을 명확하게 밝히고, 이를 통해 얻는 교훈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제2의 세월호’를 막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 김지헌 지역정책팀 팀장

•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 되는, 가슴에 사무치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깨워 준 날. 무기력한 국가를 보며 시민이 행동해야 함을 깨닫게 한 사건. 아프지만, 지켜내지 못했다는 모두의 죄책감이 결국에는 변화를 이끌 희망이 될 것이다. – 오지은 지역정책팀 선임연구원

• 대한민국 국민 가슴 한편에 무겁게 자리하고 있는 세월호. 차근차근, 하나하나, 진실은 꼭 밝혀져야 한다. – 강현주 시민사업팀 팀장

• 배는 아주 천천히, 느리게 가라앉았다. 아무도 구하지 못하는 그 순간을 오랫동안 봐야 했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 까맣게 타들어 갔는데, 그게 무엇인지 몰라서 애도를 끝낼 수가 없다. 진실이 밝혀지고, 기억이 제도에 단단히 자리 잡을 때야 비로소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서로를 더 믿을 수 있게 되고 노란 리본을 떼어도 좋은 날이 어서 오길 바란다. – 백희원 시민사업팀 연구원

• 참사 이후 우리 사회에 숨겨져 있던 많은 문제가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큰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지만, 잊지 않고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움직임을 보며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박반석 시민사업팀 연구원

• 세상에 무수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 날. 이 질문으로 우리는 변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 인은숙 지속가능발전팀 팀장

• 예전에는 가만히 있어도 괜찮았다. 익숙한 것에는 무의식적으로 순응했다. 하지만 참사 이후에는 가만히 있어도 괜찮은지 의문을 품게 됐다.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지킬 것은 지키자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 조준형 지속가능발전팀 연구원

• 무수히 많은 ‘만약에’가 머물렀던 3년의 시간. 그러나 되돌릴 수 없기에 어떤 방식으로 ‘함께’ 나아갈지 ‘같이’ 고민해야 한다. – 조현진 목민관클럽팀 연구원

• 희망제작소 입사 3일째던 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데 동참해왔다고 믿어온 날들에 대한 파괴와 배반의 순간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을 인정해야 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빚을 지고 있다. 이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 – 유혜승 희망기획팀·미디어홍보팀 팀장

• 국가의 존재 이유에 관한 의문이 강하게 들었던 날. 보이는 것에만 신경쓰는 언론에 강한 불신이 생겼다. 진실은 꼭 밝혀져야 한다. 분노, 슬픔, 무력함을 넘어 새로운 대안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 정은숙 경영지원실 실장

– 정리 : 최은영 | 미디어홍보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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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7/07/1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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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이 전하는 일본, 일본 시민사회, 일본 지역의 이야기. 대중매체를 통해서는 접하기 힘든,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에 대해 일본 현지에서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안신숙의 일본통신 38
홈리스 없는 세상 꿈꾸는 24세 일본 NPO법인 대표

지난 10월 희망제작소의 도농교류 일본정책연수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사람은 역시 NPO법인 홈도어(Homedoor)의 대표 가와구치 카나(川口加奈)씨다. 부모뻘 되는 연수팀 앞에서 당당하게 그러나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녀는 불과 24세의 젊은 여성이었다. 열네 살 때부터 홈리스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해, 지난 10년 동안 홈리스의 재활과 사회 복귀를 위해 끊임없이 달려온 결과 지금 그녀는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회적기업가로 자리잡고 있다. 2013년 일본경제신문(日経) 「WOMAN of the year」청년리더부분에 선출, 2015년에는 「일본경제신문 소셜이니셔티브대상」신인상을, 그리고 「구글 임팩트 챌런지상」을 받은 경력을 갖고 있다.

 

우리가 찾은 곳은 오사카시 키타구 주택가에 자리잡은 ‘앤드하우스(&House)’. 홈도어가 올 3월 새로 시작한 홈리스들의 생활지원 거점이다. 1층에 홈도어 사무실과 내근하는 홈리스들의 작업실이 있고, 2층에는 홈리스들이 자유롭게 들러 빨래나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는 키친과 세탁실과 목욕실, 그리고 낮잠을 취하거나 동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HUB chari (자전거)」포트도 겸하고 있어 집 앞에는 멋진 스타일의 자전거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가와구치씨와 스탭들은 불쑥 찾아오는 홈리스를 옷’상'(‘아저씨’라는 일본어)이라 부르며 친숙하게 맞이한다.

중학교 2학년 겨울, 홈리스에 대한 이미지를 바꾼 자원봉사
오사카 카마가사키(釜ヶ崎) 지역은 일용노동자들이 모여드는 마을. 가와구치씨는 근처의 신이마미야역에서 전철을 갈아타고 중학교로 통학했다. 어느 날 근처에 사는 동급생이 일부러 다른 역에서 전철을 갈아타고 통학하고 있음을 알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엄마가 그 역에서 갈아타는 건 위험하다고 해서.”라고 대답했다. 궁금해서 카마가사키에 대해 조사해 보니 이 지역에는 일용노동자와 더블어 수많은 홈리스가 모인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일본처럼 풍요로운 선진국에 왜 홈리스가 있을까?’ 의문을 풀기 위해 그녀는 카마가사키의 홈리스들에게 밥을 지어 제공하는 자원봉사에 참가했다. 가벼운 호기심으로 참여했지만, 이것이 그녀의 운명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추운 겨울 아침 길게 늘어선 몇십 명의 홈리스들에게 잔뜩 움츠러든 얼굴로 삼각김밥을 건네는 그녀에게 한 ‘아저씨’가 “여기 사람들은 단지 따뜻한 삼각김밥 하나를 받기 위해 3시간을 기다렸단다. 손녀뻘인 너에게 그걸 받아드는 아저씨들의 기분을 생각하면서 전해주렴.” 집에 돌아와서도 그 말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때까진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홈리스가 되진 않았을텐데…홈리스는 열심히 살지 않은 사람들이 되는 게 아닌가? 결국 자기 책임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왔다.

그녀는 어느새 홈리스 문제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다. 부모님과 주위 어른들에게 ‘왜 홈리스가 되는지’ 물어봐도, 이유를 설명해주지는 않고 단지 ‘카마가사키는 위험하니 가까이 가지 말라’고만 할 뿐이었다. 직접 홈리스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은 어렸을 때 빈곤 가정에서 자라 공부는커녕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도 힘들었으며, 초등학교조차 제대로 다니지 못한 사람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정말 노력을 하지 않아서 홈리스가 된 걸까? 그녀는 홈리스의 현실을 통계를 들어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일본 전체에 10,890명으로 집계되고 있는 홈리스 중 49.8%는 비정규직노동자 출신이며, 25.8%는 일용노동자 출신이고, 34.1%가 일이 줄어서, 28.4%가 회사의 도산으로 인한 실업으로, 그리고 20.4%가 질병과 부상으로 인한 실업으로 홈리스가 됐다고 한다(2012년 일본 후생노동성 홈리스 실태에 대한 전국 조사). 이러한 사정은 한국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홈리스에 대한 편견을 바꾸기 위한 실천들
그 즈음 아주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수 명의 고등학생들이 홈리스를 습격한 것이다. “홈리스는 사회의 쓰레기다. 우리들은 쓰레기 청소를 한 것 뿐이다.” 라는 그들의 진술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 한다. 그녀는 ‘우연히 나는 홈리스 문제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뿐이다. 알게 된 이상 모두에게 알릴 책임이 있다. 같은 세대인 내가 알려가면 중고생의 인식도 변할 것이다’라고 생각해 행동을 시작했다.

학교 집회 시간을 빌려 홈리스 문제를 호소했다. “그들이 홈리스가 된 것은 결코 자업자득이 아니다”라고. 반응이 별로였다. “그렇다해도 그들이 노력했다면 홈리스가 되진 않았을 거 아니냐?”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에 실망하지 않고 신문을 만들어 교내에 붙이거나 홈리스를 위한 배식용 쌀의 기부를 모았다. 이런 노력이 열매를 맺어 협력자가 조금씩 늘어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녀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중고생들을 뽑아 표창하는 프루덴셜사의 ‘발런티어 스피릿 어워드’에 뽑혔다. 이듬해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표창식에 참가해 세계 각국에서 뽑혀온 중고생들과 며칠간 같이 생활하면서 교류하는 기회를 가졌다.

거기서 그녀는 한 동료에게 “넌 홈리스를 단지 돕고 싶을 뿐인가? 홈리스를 낳는 사회를 바꾸고 싶은 것이냐?”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자신의 활동으로 문제 해결이 된 것도 아니었으며, 홈리스의 수가 줄어드는데 일조한 것도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홈리스 문제를 새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대학도 이 문제에 밝은 오사카시립대학을 골라 진학해 노동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대학 2학년 때인 2010년 4월에 뜻을 같이하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NPO법인 홈도어(Homedoor)’를 설립했다. ‘Homedoor’라는 법인명에는, 승객들이 전철 홈으로부터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된 ‘Homedoor’처럼, 홈리스들이 인생이라는 ‘홈’에서 추락하는 것을 막는 방지책이 되어, 따뜻한 홈(가정)에 돌아갈 수 있는 입구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홈리스들의 생각과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 귀기울여 듣기
‘홈리스를 낳지 않는 사회 구조를 만들겠다’라는 비젼을 세웠으니 ‘이를 언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그래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구체적인 행동 계획이 필요했다. 회답을 얻기 위해 우선 카마가사키에서 ‘모닝 카페’를 열었다. 아침마다 찾아오는 홈리스들과 생활보호 수급자들에게 커피와 토스트를 제공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사실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누구나 일하고 싶다는 의욕은 갖고 있었지만 주거도 전화번호도 없어 구인 광고에 응모를 할 수 없었고 홈리스 생활로부터 탈출할 수 없다는 것. 생활보호를 받으면 노상생활을 탈출할 수는 있지만 ‘세금 도둑’이라는 주위 시선이 따가워 결국 ‘히키코모리’가 되곤 한다는 것. ‘행정기관’에서 빨리 일을 찾으라는 독촉을 받지만 오랜 공백으로 좀처럼 고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등. 일을 찾았으나 오랜 실업으로 몸도 정신도 적응하지 못해 다시 실업자로 전락하기 쉽고, 결국 거리에 나오는 것이 더 속 편하다는 생각에 다시 홈리스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홈리스들이 시작한 셰어사이클 HUBchari 탄생

▲디자인 스쿨에 다닌 적이 있다는 홈리스가 직접 디자인한 HUBchari 간판

▲디자인학교에 다닌 적이 있다는 홈리스가 직접 디자인한 HUBchari 간판

그런 어느 날 한 ‘아저씨’의 한 마디가 큰 전기가 됐다. “자전거 수리라면 우리들도 할 수 있지!” 홈리스들이 주로 하는 일 중에 하나가 버려진 폐품수거다. 자전거와 리어커로 하루 몇 킬로나 짐을 가득 싣고 걷기 때문에 자전거가 고장나는 일이 많아 자연히 수리기술이 손에 붙는다. 70%의 홈리스들이 자신있어 한다는 자전거 수리기술을 살려서 그들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처음엔 버려진 자전거를 회수해 판매하는 것도 생각해 봤다. 그러나 이미 기존 수리업자가 많을 뿐 아니라 ‘홈리스가 수리한 자전거’라는 명목으로 지원을 호소하며 판매한다면 그들은 언제까지나 도움의 대상에 머무를 뿐이고 진정한 자립이 힘들지 않겠는가.

‘당당하게 자립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논의를 거듭한 결과 나온 것이 ‘셰어사이클’ 사업이다. 지역에 여기 저기 자전거 렌탈 거점을 설치해, 이용자가 사용 후 어디서든 반납할 수 있는 에코 교통수단이다. 오사카에는 무단 방치되는 자전거가 이미 사회문제가 되고 있었다. 셰어사이클이,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으며, 당사자인 홈리스들은 일자리 창출로 자립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일석삼조의 사업이 될 수 있다고 확신이 들었다.

▲홈리스들이 시작한 셰어사이클

▲홈리스들이 시작한 셰어사이클

사업초기 자전거를 빌리고 반납하는 거점인 ‘포트’를 설치할 장소를 빌리기가 너무 힘들었다. ‘처마 밑을 일부만 빌려 주세요’라며 400여 개의 기업과 점포를 찾아 다녔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모두 No였다. 홈리스에 대한 편견이 그 이유였다. 작전을 바꿔 우선 1주일만 실험적으로 해보자고 설득했더니 장소를 제공해 주는 곳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막상 실험적으로 서비스를 실시해 보니 셰어사이클이 편리하다며 이용자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이에 기업과 점포들의 반응도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2011년 부터 상설 포트가 하나씩 늘기 시작했다. 현재 오사카의 상징인 스카이빌딩을 비롯해 시내 18개의 포트가 설치돼 외국인과 관광객, 기업의 영업담당자, 방문객들의 소중한 이동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포트를 제공하고 있는 기업이나 점포들 또한 ‘처마 끝 사회공헌’을 통해 많은 이득을 보고 있다며 호응이 좋다. ‘주민들의 이용문의로 점포를 알리는 기회가 되고 있다.’ ‘미디어에 자주 등장해 광고 효과를 보고 있다’ ‘다른 기업과 차별화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반응이다.

홈도어는 홈리스 탈출의 ‘문’
의 성공에 이어서 홈도어는 사업을 새로 시작했다. 연간 1억3천만 개나 버려지고 있는 비닐우산을 홈리스들이 리메이크해 빌딩이나 가게 앞에 놓아두고 판매하는 사업이다. 또한, 를 구축해 사람을 원하는 기업과 일자리를 원하는 홈리스들을 매칭해 홈리스들이 자신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찾아 사회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현재 약 60여 명의 홈리스들이 홈도어 사업을 통해 일하고 있다.

자전거 수리와 포트에서의 접객 업무, 비닐우산 수거와 수리 외에 비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일을 하면서 많게는 월 16만엔(약 16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아간다. 이를 저금해 빠르면 약 3개월 만에 집을 빌려 거리생활에서 탈출한다. 일단 주소를 확보하면 구직활동을 시작할 수 있으며 여기서의 활동이 길게는 4-5년이나 되는 이력서의 공백을 메꾸게 되어 다음 단계의 취업으로 보다 수월하게 이행할 수 있다. 이처럼 홈도어의 취업지원 사업은 홈리스들이 오랜 공백으로 생기는 문제들을 한 단계 한 단계 극복해가면서 해가면서 다음 단계의 취업으로 사회에 복귀하는, 일종의 중간 단계 취업의 성격을 갖는다. 지금까지 약 130명의 ‘아저씨’들이 이 곳에서 함께 일하고 함께 생활하면서 사회에 복귀해 나갔다고 한다. “홈리스들은 이전에 여러 직종에서 일해 왔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기술을 갖고 있다. 그들의 기술을 보다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 나갔으면 한다.”고 카와구치씨는 말한다.

홈리스 문제해결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한 걸음
‘홈리스를 낳지 않는 사회구조를 만들자!’ 처음 내걸었던 비전에 아직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카와구치 대표는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먼저, 홈리스 문제에 대한 계몽활동, 둘째, 홈리스로의 입구 봉쇄, 셋째, 홈리스로부터의 출구 만들기가 홈도어의 행동계획이라 설명했다. 그녀의 계획대로 홈도어는 취업지원 사업과 함께 계몽활동도 열정적으로 펼치고 있다. 두 달에 한 번씩 청년학생들을 모아 홈리스의 거리 카마가사키를 산보하고, 홈리스들에게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돌리며, 홈리스 문제에 대한 워크숍을 갖는다. 이른바 <카마(釜) Meets>다. 또 홈리스 문제에 대한 DVD를 제작하여 전국의 중고등학교에 배포하고 있으며, ‘홈리스의 아저씨’들과 함께 이들 학교와 공공집회 장소에 찾아가, 1년에 100회 이상의 강연회를 개최하고 있다.

앞으로 남은 과제가 홈리스로의 입구 봉쇄를 위한 사업이다. “현재 인터넷 카페나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밤을 보내는 노숙생활 일보 직전의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의 주거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숙박기능을 갖는 시설을 만들어 그들의 생활과 취업을 지원한다면 홈리스를 방지할 수 있다.”라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물론 여기엔 거액의 자금도 필요하고 주변 주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홈도어는 지금 그 전 단계 시설로 <앤드하우스(&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작년에 홈도어에 새로 생활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이 90명이나 됩니다. 그 중 2,30대가 24명이나 있었죠. 병에 걸리거나 부상을 입어 퇴직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 파견 근무에서 짤리고 기숙사에서 쫓겨난 사람…모두들 오직 한가지 이유로 생활 곤란자가 되고 있습니다. 청년학생들이 부디 홈리스에 대해 편견을 버리고 이 문제에 대해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주면 좋겠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사회가 바뀔 수 있는 한 걸음이 되리라 믿습니다” 라는 마지막 말로 카와구치씨는 발표를 마쳤다.

▲홈리스의 거리 카마가사키를 걸으며 홈리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카마 Meets’ 참가자들

▲홈리스의 거리 카마가사키를 걸으며 홈리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카마 Meets’ 참가자들

 

글_ 안신숙(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 / [email protected])

월, 2015/11/0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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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ocracy

얼마 전 EBS<다큐프라임>에서 ‘민주주의’를 주제로 5부작 프로그램을 방영하였습니다.

‘시민주권’, ‘갈등’, ‘민주주의의 우선성’, ‘기업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미래’라는 주제를 통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재해석한 이 프로그램은 불평등이 심화되고 정치불신이 가중되는 지금 매우 시의적절한 것이었습니다.

정치발전소 회원 여러분과 함께 ‘민주주의’ 전편을 시청하고, 프로그램을 제작한 유규오 PD님, 박상훈 학교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6월 11일(토) 낮 12시부터 한나절 내내 진행하는 ‘민주주의’를 위한 특별한 시간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일시 : 6월 11일(토) 낮 12시~5시 반
장소 : 합정역 트리펍(http://goo.gl/rXHKqX)
참가비 : 1만원(주먹밥과 병맥주 1병 제공)
참가신청 : http://bit.ly/민주주의함께보기
(원활한 행사준비를 위해 가급적 금요일 오후 1시까지 참가신청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뒤풀이는 희망자에 한해 별도로 진행합니다.

수, 2016/06/0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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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서울시당 월례의무교육 8. 장애인평등교육 


당규 제1호 당원규정 17조, 당규 제6호 장애인에 대한 차별 금지 및 평등에 관한 규정 제13조에 따라 서울시당의 장애인평등교육을 다음과 같이 실시합니다. 


● 일시: 2월 18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 장소: 영등포 노동당 당사 

● 강사: 장애인위원회가 지정하는 강사단 1인 


서울시당에서는 지난 1월 장애인평등교육을 진행한 바 있으나, 2월 중에 후보 등록 및 서울시당 대의원대회가 예정되어 있어 연속으로 장애인평등교육을 실시하려고 합니다. 

아직 장애인 평등교육을 이수하지 않은 당원분들께서는 일정을 숙지하시고 꼭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예비 당직 출마자, 공직선거를 앞둔 출마 예정자의 경우 필참 해 주십시오. 


그럼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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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6/02/1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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