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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체 인양이 끝?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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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체 인양이 끝?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익명 (미확인) | 월, 2017/04/10- 16:40
희망제작소에는 특별한 경험을 가진 연구원이 있습니다. 지속가능발전팀의 박흥석 선임연구원인데요. 박흥석 선임연구원은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활동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세월호 3주기를 맞아 박흥석 선임연구원을 만나 그간 하지 못했던, 그리고 하고 싶었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잘 보지 않던 TV를 켰다. 익숙한 얼굴에 나도 모르게 놀람의 감탄사가 나왔다. 동료 연구원이었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에서 활동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화면 속 그는 실없이 아재개그를 날리던 사무실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진지하게 세월호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의 눈동자에서 빛이 났다. 무엇 때문일까. 궁금해졌다. ‘홍보팀’이라는 명목을 내세우며 무작정 인터뷰 요청을 했다. 그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하지만 질문지를 만들며 난관에 봉착했다.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막막했다. ‘세월호’라는 사안이 무겁기도 했고, 잘못 접근하면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줄 수도 있었다. 고민 끝에, 세월호 참사를 슬퍼하고 잊지 않으려 애쓰는 시민의 관점에서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박흥석 선임연구원(이하 박흥석 연구원)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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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일상의 붕괴를 목도한 순간

“그날이 특별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을 거예요. 참사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참사 당일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질문에 그는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실시간 생중계로 배가 가라앉는 걸 보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탑승객이 400명이 넘는데, 구조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잖아요. 말도 안 되죠. 애지중지 키운 아이들이 산 채로 수장되었는데, 부모님들은 얼마나 슬플까요. 항상 곁에 있던 아이가 사라진 거잖아요. 일상이 무너진 거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게 한스러울 거예요.”

당시 박흥석 연구원은 한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었다. 자연스레 정부, 국가, 공권력에 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세월호 참사도 비슷한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와우아파트 붕괴, 서해 훼리호 침몰, 대구 지하철 화재 등에서 정부의 대처는 한결같이 미흡했어요. 사고원인을 밝히는 과정도 표면적이었죠. 세월호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를 답습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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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세월호 참사가 단순한 여객선 사고로 규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배가 침몰하기 시작했을 때 정부가 적극적으로 구조에 나섰다면,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전 사례와 비슷하게 흘러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특조위에 참여하기로 했죠. 하지만 발족 과정에서 문제가 많았어요. 세월호 특별법(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은 2015년 1월에 제정됐는데, 그해 여름이 되어서야 첫 출근을 했거든요. 그래서 지방선거 이후에 1년을 반백수로 지냈어요. 가족들이 많이 고생했죠. 저도 돈 준다고 하면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했어요.”

특조위 활동은 눈엣가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조위에서 그의 첫 역할은 이석태 위원장 보좌였다. 선체 인양이 거론되기 시작했지만, 특조위는 해양·조선·선박전공자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보통 조선·해양전문가는 고액 연봉과 좋은 대우를 받게 마련인데, 특조위 활동은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물론 처우나 급여가 좋지 않았다. 더구나 해운업계의 가장 큰 고객은 해양수산부다. 특조위 활동 경력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다. 결국 평소에 틈틈이 인양 관련 공부를 해온 박흥석 연구원에게 관련 업무가 넘어갔다.

“저는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했거든요. 선박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어요. 제대로 조사하려면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죠. 1년 정도 활동하면서 쉰 날이 20일도 안 돼요. 퇴근도 거의 밤늦게 했고요. 할 게 많았지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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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특조위의 모든 조사관이 밤낮없이 진실을 밝히는 데에 몰두했다. 정부와 기득권에는 눈엣가시였을 터다. 때문에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와 같은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조사관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박 연구원은 특조위를 ‘불나방’에 빗대어 표현했다.

“많은 분이 우려하셨죠. 그래도 조사관들 사이에는 ‘그래도 시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어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죠. 반민특위 사례만 봐도 색깔과 이념 프레임으로 숨통을 끊어놨잖아요. 특조위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어요. 특조위 내부 자료가 새누리당에 넘어간 적도 있고, 정부가 특정 단체에 활동 반대집회를 시키기도 했죠. 심지어 경찰서 정보과나 국정원이 조사관과 유가족 사찰까지 하더라고요. 심적 부담이 컸어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거잖아요.”

2016년 해양수산부는 선체조사 관련 예산을 따로 편성하지 않았다. 특조위가 먼저 선체를 정밀히 조사해야 한다며 예산 확보를 주장했다. 그러자 해수부는 인양 선체 정리 예산으로 40억 원을 편성했다. 선체조사와 선체정리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사용처가 같다며 특조위의 요구를 예산에서 삭감해버렸다. 또한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특조위의 활동을 강제종료 시켜버렸다.

“특조위가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5년 8월이에요. 그런데 정부는 특별법 시행일인 같은 해 1월부터 활동했다고 주장했어요. 1월에는 조사인력과 예산이 없었는데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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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언제나 선(善)인가… 시민의 역량으로 감시해야

조사관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꿈에 시달리다 벌떡 일어나기도 했고, 스트레스와 분함이 극도에 달했다. 특조위 활동 이전 생활로 돌아갔지만, 공간뿐이었다.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여전히 날카롭고 아픔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박흥석 연구원도 많은 변화를 맞이해야 했다. 그는 자신이 좀 더 ‘무거워졌다’고 말한다. 여러 일을 겪으면서 내면의 심연을 봤다고나 할까. 좋게 말하면 마음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이고, 나쁘게 보면 공감이 어렵다는 말이다. 요즘은 세심한 감정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구조에 직접 뛰어드신 분들의 트라우마가 가장 심할 거예요. 국가가 짊어져야 할 것을 그분들이 다 감당하셨잖아요. 깊은 바다에 들어갔다 나오면 일정 시간 감압(잠수병 방지를 위해 몸에 용해된 불활성 가스를 제거하는 것)을 해야 해요. 하지만 구조에 참여한 잠수사들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물에 다시 들어갔어요. 후유증이 생길 수밖에 없죠. 더구나 차갑게 식은 아이들을 품에 안아 뭍으로 올라와야 하는데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신체적·심리적 치료가 절실했죠. 하지만 정부는 갖은 핑계를 대가며 그분들을 외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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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故 김관홍 잠수사의 일이 안타까우면서도 그 심정이 십분 이해된다고 했다.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하지만 이내 목을 가다듬은 후,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다시 힘주어 말했다.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시민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국가라는 게 선한 것처럼 포장돼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조건 없는 믿음은 버려야 해요. 언제 위협적으로 변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시민의 역량으로 국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해요. 우리는 국가를 계속 감시해야 합니다.”

국가를 사랑하는 것을 강조한 나라보다 국가를 통제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 나라가 그나마 ‘덜 나쁜’ 나라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한 어느 헌법학자의 말이 떠올랐다. 해법은 결국 시민의 힘을 모으는 ‘연대’에 있지 않을까?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경험했듯이 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진상규명 요구 서명에 650만 명의 시민이 참여했어요. 덕분에 특조위가 만들어졌고요. 이후 416연대라는 단체도 생겼고, 유가족협의회에 시민이 재정을 지원하는 등 여러 측면에서 연대의 움직임이 보였어요. 긍정적이죠.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아쉬운 점도 있어요. 단편적인 활동이 많았거든요. 연대체 간 갈등이 생겼을 때 조율할 수 있는 역할이 없었던 것도 아쉬워요. 사실 이런 건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않는 바람에 피해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서 생기는 일이거든요. 정부가 유가족 한 분 한 분 만나 잘 다독이고 서로 상처 주지 않게 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못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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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체 인양됐지만, 여전히 풀지 못한 질문의 답 찾아야

“참사 당시에는 이민을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하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죠. 도망가면 이준석 선장과 다를 게 없잖아요. 기울어진 이 나라의 균형이 바로 잡힐 수 있도록, 많은 사람과 방법을 찾아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사회혁신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했고요.”

사회혁신이라니! 희망제작소에서 주야장천(晝夜長川) 외치는 그 가치 아니던가. 박흥석 연구원이 희망제작소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시민의 역량을 강화하고 촉진하는 동시에 정부의 정책을 검토하고 대안을 찾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것이 여타 연구소와 비교했을 때 희망제작소만의 강점이라고도 말했다.

“저를 비롯한 희망제작소 연구원 모두가 정부, 국가, 사회의 움직임에 대한 촉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를 놓치면서 어떻게 시민을 말하고 우리 사회의 비전을 만들 수 있겠어요. 촉을 세우고 잘 살피다 보면 거대 담론뿐만 아니라 구체적 실천과제도 끌어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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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는 국가 운영방식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집중되어 있는 권력을 나누고 중간중간 견제장치를 재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아픔 속에서 공감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자신의 상황과 형편에 맞게 공감과 지지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오면 끝 아니냐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해요. 왜 인양했는지 살펴봐야 하죠. 미수습자를 찾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진상규명을 하고, 그 과정을 통해 교훈을 얻는 것이 인양의 목적이에요. 이 세 가지를 충족하지 못하면 인양은 끝난 게 아니에요. 그 과정에서 선체조사위가 확실하게 자기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시민은 잘 지켜보고 살펴야 해요. 필요할 때는 목소리도 내야 하고요.”

“국가의 범죄는 절대 권력을 지닌 소수 독재자들의 야욕과 그들에게 복종하는 다수 봉사자들의 협력에 의해 현실화 됩니다. 정신 나간 사람들 몇 명의 손으로는 이런 거대한 범죄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독재 권력의 전횡에 참여하거나 방관할 때에만 비로소 국가라고 하는 괴물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 김두식 ‘헌법의 풍경’ 중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최은영 | 미디어홍보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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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살림연구소] 2기 지방의원 재정전문가 과정〚합동연수〛

 

○ 개 요
   ▫ 일자 : 2020년 5월 26일(화) ~ 5월 27일(수) 1박 2일
   ▫ 내용 : 지방재정, 행정사무감사, 조례 제⋅개정, 예‧결산 심의기법, 재정진단
   ▫ 시간 : 총 8시간 강의 

○ 비 용 : 1인당 40만원
○ 혜 택 : 정창수 저서 『실전! 지방예산결산』 제공
○ 장 소 : 연구소 교육장 (마포구 동교로 209 용평빌딩, 4층)
○ 접 수 : ~5월 22일까지 선착순 20명까지, 메일 접수 ([email protected]) 이름, 연락처, 소속 등 기재

○ 참가신청 : www.forms.gle/AkraXTNttucjgHvu8

○ 문 의 : 02-336-0619 

 3~5기 접수는 추후 공지 예정이며, 사전 접수는 연구소로 문의 바랍니다.

 신청자가 10인 미만일 경우 폐강될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프로그램 안내

 

○ 강사진 안내

수, 2020/05/13-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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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코로나19 이후를 이야기하다’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을 대응하고 있는 지방정부의 소식을 비롯해 전문가와 현장 활동가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전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피해가 컸던 대구 지역에서 주거취약계층인 쪽방 거주민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사단법인 자원봉사능력개발원의 오현주 간사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인터뷰는 지난 5월 13일 화상회의를 통해 진행됐습니다.

▲ 쪽방촌 방역을 위해 나서는 오현주 간사의 모습.(사진 오른쪽) ⓒ오현주

집단감염 발발 당시, 불안이 가중되는 나날

Q. 코로나19로 인해 시민의 일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간사 님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나요.
평소 사무실을 버스로 출퇴근했는데요.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늘면서 불특정 다수가 타는 버스를 타지 못하겠더라고요. 남편은 평소 아이를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출근하는데, 유치원도 휴교령이 내리자 시댁에 아이를 맡기고 출퇴근 카풀을 시작했어요. 저뿐만 아니라 대구시민들 모두 일상이 뒤흔들리는 경험을 했을 거예요. 워킹맘인 저는 두 달여간 어머니께 돌봄을 부탁 드릴 수밖에 없었고, 관절 질환이 있는 시어머니는 병원 치료가 어려우셨을 거예요.

Q. 코로나19 초기 신천지 대구교회 집단감염 발발 당시 지역사회 분위기는 어땠나요.
신천지교회가 코로나19 확산지로 밝혀지면서 현장도 바빠졌어요. 저희끼리 얘기로 대구 사람들은 세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라고 할 정도인데, 대규모 확진자들이 발생했으니 불안했죠. 비슷한 시기에 대구에서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청도 대남병원에서도 확진자들이 발생했고요. 무엇보다 이때 특정 종교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인해 서로서로 불신과 불안이 계속되는 나날을 보냈던 거 같아요.

Q. 사회복지사로서 업무나 역할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원래 쪽방생활인에 관한 연구조사나 상담, 행정지원, 후원물품 관리 관련 일을 해왔어요. 사무실에서는 팀장으로서 쪽방 생활하는 어르신 대상으로 하는 자조모임(공통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경험을 나누는 모임) 사업 진행을 맡았는데 코로나19 이후로는 사무실과 모임 모두 폐쇄됐죠.


▲ 후원물품 배분 및 포장 작업을 벌이는 모습 ⓒ오현주

Q.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요.
의료동행을 했던 쪽방생활인이 다니는 대구의료원이 코로나 거점병원으로 지정되자 의료동행을 하지 못하게 됐고, 저희 진료소와 중구 사무실도 폐쇄됐어요. 직원들도 사무실에서 전화상담을 하거나 찾아오는 주민에게는 건물 밖에서 응대할 수밖에 없었죠. 당장 시중에서 KF 마스크와 체온계를 구할 수도 없었고, 재고로 갖고 있던 마스크와 덴탈마스크로 코로나 키트를 만들어 보냈어요. 상황 결정이나 판단이 빨리 이뤄져서 저희 사회복지사들은 모두 눈코뜰 새 없이 바쁘게 두 달을 보냈어요. 한 명도 재택근무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돌아가면서 돌봄 휴가를 쓰거나 특별휴가를 쓰면서 버티고 버텼어요.

Q. 코로나19 확진자가 빠른 속도로 늘어났지만, 그만큼 대구 지역을 향한 관심도 높았습니다.
기존엔 폭염이나 혹한처럼 특정 시기가 아닐 경우 물품 후원 위주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대전, 영주, 제주도, 서울 등 각지에서 대구로 보낸 후원물품이 폭풍처럼 밀려들었어요. 그중에서 주거 취약계층 지원을 하는 저희 상담소에도 하루가 다르게 많은 물량이 들어왔어요. 임시로 물류팀을 꾸릴 정도로요. 이 물품을 대구 전지역 쪽방 생활인에게 골고루 배분하려면 각 후원물품의 개수와 품목을 고려해 세트를 다시 만들어야 해서 마치 물류창고에서 일하듯이 매일 박스를 만들고, 물품 배분해 넣고, 포장하는 걸 반복하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 쪽방주거민에게 배분하는 후원물품이 한가득 쌓여있는 모습. ⓒ오현주

연구조사 및 상담 업무에서 쪽방촌 긴급 물품 지원으로

Q. 현재 대구시 쪽방 거주민의 분포는 어떻게 되나요.
쪽방은 주택은 아니지만, 주택 이하 수준의 거처 형태로 비주택거주지입니다. 현재 대구 지역에는 약 1,200개 쪽방이 있습니다. 동대구역이나 시외버스터미널, 시내 중심가 쪽에 쪽방촌이 밀집돼 있고, 거주민은 재개발로 인해 강제퇴거를 당했거나 여러 사정으로 인해 쪽방에 살고 계십니다. 지난 4월 말 기준으로 쪽방 거주민은 765명으로 나타났는데 이 중 남성 90%, 여성 1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연령대는 50~60대이고, 절반 정도의 거주민이 국민기초생활수급을 받고 있고요.

Q. 코로나19 이후 쪽방촌에는 어떤 지원이 이뤄졌나요.
보건소에 쪽방촌 방역이 취약한데 해줄 수 있냐고 알아보니까 당장 확진 검사에도 인력이 부족해서 쪽방촌까지 신경쓰기 어렵다면서 확진자가 나오면 방역해주겠다는 답변을 듣고는 저희 기관에서 방역전문가를 데려와 직접 아저씨들과 방역복을 입고 쪽방촌을 누비며 소독을 했어요. 더불어 주1회 생계물품지원, 주3회 방역, 격주마다 도시락 및 밑반찬 지원이 계속 이뤄졌어요. 비대면 물품 지원을 위해 쪽방촌 건물 앞에 물품을 두고서 똑똑 노크하고서 바로 자리를 옮겼죠.

Q. 각지 지역사회의 물품 지원도 많았죠.
기존에는 폭염과 동절기 두 차례 후원물품을 요청했는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새로운 후원처들이 연락을 많이 주셨어요. 연예인부터 지역 마을기업이나 시민단체, 협동조합, 4·16연대, 주한모로코대사관 등 다양했죠. 대개 2~4월은 상담소 보릿고개였거든요. 평소라면 겨우내 후원 물품도 다 떨어지고 비누 하나 칫솔 하나 밖에 드릴 수 있는 게 없었을 텐데, 코로나19에 따른 후원 물품이 계속 들어왔어요. 현재까지 쌀이나 라면 6만개, 쌀 6천kg, 마스크 2만 개, 손소독제 8천 개 등을 비롯해 김치, 영양제, 빵, 도시락, 노니 등 다양한 물품의 배분이 이번 주면 끝날 것 같습니다. 물품 지원뿐 아니라 코로나19사태를 계기로 대구시민센터를 통한 후원, 독립영화협회,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등 전국각지 NGO단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Q. 후원 물품이 몰리면서 현장에서 체감한 지점이 있다면요.
후원 물품이 천 마스크처럼 한 종류로 쏠릴 땐 타 기관이나 지역의 작은 도서관에 나눔을 했어요. 즉석조리밥을 물품으로 많이 보내주셨는데, 쪽방의 특성상 대개 전자레인지가 없어서 먹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대구에 온 공중 보건의에게 컵밥과 컵라면 등을 나눴어요. 또 발달장애인분들이랑 같이 물품을 포장하면서 ‘사람들이 이렇게 연결되어 있구나’라고 많이 느꼈습니다. 혼자 사는 사회가 아니라 ‘우리가 누군가를 돌보면 남도 우리를 돌본다’라는 문구를 체감했어요. 몸으로 체감하는 부분은 육체노동의 고단함이었지만요.

코로나19, 사회적 돌봄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어

Q. 쪽방촌 거주민들은 코로나19 관련한 정보를 얻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 2G폰을 쓰시고, 데이터도 거의 쓰지 않으시거든요. 주변 지인으로부터 ‘카터라’ 소식을 접하거나 텔레비전을 통해 얻는 정보가 전부죠. 어떤 정보를 들어도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재난 긴급생계자금이 발표됐을 때, ‘중위소득 몇 퍼센트’라는 기준도 복잡했잖아요. 비수급자 쪽방촌 거주민인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건지, 온누리상품권을 받는다면 어디에서 쓸 수 있는 건지 등을 묻는 분들이 많았는데 물품 지원할 때 여러 차례 안내하고 설명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Q. 쪽방상담소 활동으로 취약계층 사각지대 모니터링을 꾸준히 해오셨는데,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발견한 점이 있나요.
노숙인이나 쪽방촌에 관한 혐오감이 높다는 걸 다시 체감했어요. 대구에 쪽방 거주하는 분들은 정말 뉴스를 잘 듣고 외출을 자제했거든요. 쪽방 거주민 250여 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와 긴급재난 관련해 전수조사했을 때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쪽으로 나타났습니다.(코로나19 빈곤층 생존권 보장 마련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내려받기)

그런데 서울에서 노숙인일시보호시설에서 노숙인 입소를 거부하는 사태가 있었잖아요? 실제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수칙은 더더욱 잘 지키는 모습을 봤는데 오히려 이런 기사가 노숙인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조장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Q. 코로나19 사태가 현재 진행형이지만, 무엇을 남긴 것 같나요.
코로나19는 사회적 돌봄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 같아요. 쪽방 거주민이 감염됐다가 퇴원했을 땐 자가격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쪽방에서 지내는 게 정말 자가격리인지 등 돌봄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문제를 비롯해 사회 곳곳에서는 택배노동자의 사망과 같은 비정규직 문제들이 터져 나왔잖아요. 큰일이 생기면 약자가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다는 걸 다시금 보게 됐어요.

Q. 그럼에도 여전히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맞아요. 사회복지사보다 현장에서 드러나지 않으신 분들은 당사자(쪽방 거주민) 조합원분들의 힘이 컸어요. 열심히 물품을 포장해 놓으면 배달이랑 방역은 조합원분들이 도맡아 하셨거든요.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다고 해도 정말 힘든 하루하루였을 거예요. 어려운 상황은 인생에서 반드시 나쁘게만 작용하지 않잖아요. 가족들이랑 오랜만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사람들도 있고, 집에서 할 수 있는 놀이를 개발하기도 했잖아요. 활동가 분들도 세상이 암울하니까 자기 비하가 생길법한데, 코로나19로 인해 작은 변화도 생긴다는 걸 발견하는 것 같아요. 세상의 변화를 기대하며 오늘을 잘 살아내는 것이 지금 저희의 몫이 아닐까 싶습니다.

– 인터뷰 진행: 안영삼 미디어센터 센터장 [email protected]
– 인터뷰 정리: 방연주 미디어센터 연구원 [email protected]
– 사진: 오현주 간사

화, 2020/05/19-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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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는 기획연재 ‘코로나19 이후를 이야기하다’ 시리즈와 함께 시민의 목소리를 담은 에세이 공모전 ‘코로나 19,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공동체, 일상, 회복, 희망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편지, 칼럼, 수기 등 자유로운 형태로 일상을 전합니다.  에세이 공모전은 5월 31일까지 상시 진행 중이니 많은 참여 부탁 드립니다. (▶에세이 공모전 참여하기) 네 번째 시민 에세이는 김진배 님의 에세이입니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따뜻한 봄날을 기대했던 우리에게 이번 계절은 유독 가혹하다.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는 면접 연기 소식에 절망했고 다른 친구는 버스운전대를 놓아야만 했다. 소망했던 봄이 왔음에도 가슴은 시리고 손은 여전히 건조하다.

만남과 애정표현은 사회의 분위기를 거스르는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었고 외롭던 사람들은 더욱더 외롭게 되었다. 차갑고 건조한 손을 누군가의 온기로 바꿔보려는 시도조차 불가능한 계절이다.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삶은 고립을 유도하고 불안감을 강화한다.

따뜻한 빛과 사람들의 옷차림은 봄을 표현하려 애쓰지만, 눈으로 마주한 장면이 마음에 잘 전달되지 않는다. 꽃은 피고 지고 분명한 봄인데도 말이다. 위안거리를 찾아 노래를 듣기도 하고 혼자 뛰어보기도 했지만, 사랑으로 아픈 것이 아니기에 노래는 큰 효용이 없었고 바람은 걱정거리를 날리지 못했다. 내 마음은 그렇게 정지된 채로 서 있었다.


마음은 굳었지만, 일상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일하고 가끔 장을 보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메시지로 대신하던 인사를 목소리로 하게 된 것은 이 시절이 바꾼 행복한 변화였다.

뉴스는 불안과 공포에서 나쁘지 않다는 것들로 바뀌었다. 확진자 수는 줄었고 정부의 지침도 조금 바뀌게 되었다. 우리가 잘 이겨내고 있다는 뜻이다. 미소를 조금 잃었고 친구들을 위로해 줘야 하는 일이 늘었지만 하루는 계속되고 있다.

면접을 기다렸던 친구는 다른 회사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운전대를 놓은 친구는 더 이상 일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지만 새로운 도전을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계획과는 다른 삶이 되었지만 실패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내일을 바꾸려 노력했고 인내했다.

봄에 누릴 수 있는 몇 개의 행복이 사라지긴 했지만 디지털 언어 대신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이 늘어 행복했다. 위기에서는 도전이라는 꽃이 피었다. 버스운전을 하던 친구처럼 10년째 같은 일을 반복하던 내 삶에도 그 꽃이 피었다.

눈을 감으면 우리가 포기했던 봄의 꽃놀이가 눈 앞에 펼쳐진다. 감을수록 선명해지는 꽃은 우리가 잃은 봄과는 교환할 수 없는 것이다. 내일을 살아가게 하고 기대하게 하는 것 우리는 새로운 봄을 얻었다.

– 김진배 님

목, 2020/05/2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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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는 기획연재 ‘코로나19 이후를 이야기하다’ 시리즈와 함께 시민의 목소리를 담은 에세이 공모전 ‘코로나 19,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를 진행했습니다. 시민들이 공동체, 일상, 회복, 희망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편지, 칼럼, 수기 등 자유로운 형태로 일상을 전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글은 이승연 님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요즘이다. 올해의 거사 중 하나였던 ‘이사’는 얼렁뚱땅 진행되어버렸다. 이사하면서 아이 방도 새로 꾸며주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가구 구경 다니는 사치도 누릴 수 없었다.

첫째가 당분간 유치원에 가지 않아 아이 둘과 함께 집콕이 계속되다 보니 이사하기 전 짐 버리기, 이사 후 짐 정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찜찜한 날들이 이어졌다. 낯선 동네에 와서 집에서 아이 둘과 온종일 있으려니 머리도 지끈거리고 우울함이 밀려왔다.

해야 할 일을 다음으로 계속 미루고 그냥 하루하루를 때우는 날들, 그런 날들의 한가운데서 둘째 아이의 피부가 심상치 않아 보여 소아과를 방문했다.

“어머니, 이거 농가진이에요. 심하면 입원까지 해야 할 수도 있는 거예요. 왜 이제 오셨어요? 이렇게 심하게 돼서 오는 분은 없는데요. 제가 다 놀랬네요.”

나보다 더 호들갑을 떠는 의사의 꾸지람에 가까운 진단을 듣고 보니 그제야 둘째 목에 생긴 시뻘건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어린 게 얼마나 아팠을까. 무심한 엄마 때문에 고생하는 5개월 된 둘째가 측은해서 나도 모르게 기저귀를 갈다가도 분유를 먹이다가도 ‘에구, 미안해’하고 연거푸 사과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던 첫째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흥, 엄마는 왜 나한테는 미안하다고 안 해? 내 공책도 찾아준다고 해놓고 안 찾아주고, 나랑 놀아준다고 해놓고 있다가~있다가 하고만 말하고. 언제 내 말 들어줄 건데~~~”

그냥 미안하다고 하고 아이를 안아주면 될 걸 나도 모르게 첫째한테 화를 냈다.

“엄마가 놀고 있니? 엄마도 지금 해야 할 게 많은데 못하고 있잖아. 좀 기다려! 이제 혼자 좀 놀면 안 되니! 너 자꾸 울면 반성문 쓰라고 한다.”

내 안에 쌓인 스트레스를 첫째한테 쏟아놓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내 휴직은 엉망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은 많은데 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답답함.

그리고 평소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삼시 세끼 아이 끼니를 챙기고 어질러진 집을 치우는 노동을 지속해서 반복해야 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휴직을 하면서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아이와 실컷 놀기’ 아니었던가! 일할 때는 할 수 없었던 소소한 것들 해보기, 이를테면 맛있는 요리 함께 만들어서 먹기, 일상 속에서 소소한 사진 찍고 그림 그리며 추억 만들기 뭐 이런 거 아니었나? 또 휴직 중이 아니었다면 불안해하며 아이를 긴급 보육으로 유치원에 보내야 할 뻔했는데 다행인 거 아닐까.

머리로는 하루하루 시간이 아깝다고 하면서 주어진 시간을 사용하기보다는 흘려보내기에 바빴다. 아이들 밥 챙기고 놀아주느라 스트레스라고 말하면서도 하루 한 끼는 꼭 빵, 인스턴트로 대신하며 평소보다 더 대충 차려주고, 실질적으로 아이와 마주 앉아 온전히 놀아준 시간은 하루 한 시간도 될까 말까 했다. 거기다 둘째는 자주 씻기고 살피지도 못해서 전염병에 걸리게까지 하고 말았다.

반성문을 써야 하는 건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언행불일치, 이중적 잣대를 들이대는 나. ‘바깥’의 상황을 탓하느라 내 ‘안’을 들여다보지 못한 어리석은 나.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소중하고 어려운 것인지 알면서 우습게 생각한 나.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날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나. 약자인 아이에게 화를 내고 설득력 없는 말로 합리화하려는 엄마라는 이름의 나.

무슨 말을 하다가 첫째가 그랬다.

“엄마 오늘 무슨 요일이야? 유치원에 안 가니까 오늘이 주말인지 언제인지 모르겠다.”

“엄마도 그래. 오늘 날짜도 모르겠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네.”

“맞아. 밖에서 놀지도 못하고 놀이터도 못 갔는데 하루가 너무 빨리 가서 싫어. 근데 엄마! 그거 알아? 하루가 하루를 만든다? 어~그러니깐 오늘이 내일을 만들고 또 하루를 만드는 거지.”

다른 생각을 하다가 아이가 하는 말에 대충 대꾸를 해줬는데 생각해보니 참 그럴싸한 말이었다. 하루가 하루를 만들다니! 도대체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거지? 7살 딸아이도 오늘 하루하루가 쌓여서 내일이 되고, 이런 일상들이 차곡차곡 모여 또 하루를 만든다는 걸 알았나 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명언 중의 하나. 헬렌 켈러는 이렇게 말했다.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힐 때, 다른 한쪽 문은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닫힌 문만 오래 바라보느라 우리에게 열린 다른 문은 보지 못한다.’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게 아닐까.

– 글: 이승연 님

* 사진은 본문과 상관없는 이미지 활용 사진입니다.

화, 2020/06/0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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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 국내 5개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연합회는 공정거래위원회와 간담회를 갖고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도농상생 선결제 캠페인’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도농상생 선결제 캠페인’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가·산지의 안정적인 운영 및 고용 유지를 위해 진행합니다. 한살림을 포함 생협들이 연합회의 운영자금이나 조합원이 조성한 별도의 기금 등을 통해 농산물 구매자금 중 일정액을 사전에 지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도농상생 선결제 캠페인
조합원이 선결제하면 생산자에게 선지급!

? 참여 기간: 6~7월 두 달간
? 참여 방법
1) 가까운 한살림 매장에서 선결제(카드, 현금 모두 가능)
2) 다음 날부터 선결제 금액으로 매장 이용
3) 소득공제 80% 혜택

목, 2020/06/11-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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