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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심판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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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심판을 돌아보며

익명 (미확인) | 월, 2017/03/27- 20:58

탄핵심판을 돌아보며

국회 탄핵소추위원 대리인단
이용구 변호사

2014년 4월 16일 침몰 후 1075일 만에 세월호가 인양되었다. “박근혜가 내려가니 세월호가 올라왔다”는 퇴진행동 권영국 변호사의 말씀은 본질을 꿰뚫고 있다. 비록 헌재의 법정의견은 세월호를 탄핵사유에서 제외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와 함께 무너지기 시작해서 결국 세월호 때문에 파면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6년 12월 말 다른 대리인들보다 늦게 국회 대리인단에 합류한 탓에 우리(나와 전종민, 탁경국 변호사)가 전담할 탄핵소추사유는 세월호와 언론의 자유 침해 부분밖에 없었다. 검찰 1기 특수본이 수사한 나머지 탄핵소추사유는 이미 검사 출신 대리인들이 나누어 맡고 있었다. 황정근 총괄팀장과 첫 인사를 하면서 무엇을 맡겠냐는 질문을 받고, 주저 없이 세월호를 선택했지만(전변호사에게 더 어려운 부분을 맡길 수는 없다는 선배의 마음?), 그 직후 나의 마음은 가라앉은 세월호 만큼이나 무거워졌다. 세월호 선원과 해경에 대한 형사기록, 감사원 감사결과 모두 말단의 잘못만을 들추고 있을 뿐 해경청장정도까지도 세월호 사고와 무관한 듯 처리되어 있었다. 세월호 특조위의 조사는 축소, 왜곡되어 있었고, 국회 청문회의 조사결과는 변죽만 올리고 말았다. 세월호 사건 당시의 국가안보실장이 주중대사로 영전되고, 위기관리센터장이 외교안보수석으로 재임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304명의 세월호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이 탄핵심판의 법정 안에 있는 듯 했다.

세월호와 언론의 자유 침해 부분이 탄핵사유로 인정될지도 중요했지만, 탄핵심판 내내 가장 중요한 우리의 임무는 ‘신속한 탄핵결정’이었다. 전변호사는 탄핵기각이 되면 혀를 깨물겠다고 확언을 했다고 하지만, 당시 압도적인 찬성표로 탄핵안이 가결되고, 식을 줄 모르는 촛불집회의 열기, 그리고 연이어 쏟아내는 언론 보도로 인해 탄핵결정은 당연한 것처럼 보였고, 남은 문제는 그 시기를 얼마나 앞당길 것인지 여부였다.

그런데 여기에는 대리인단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있었다. 하나는 탄핵안 가결을 3당 합의로 한 상황에서 탄핵심판의 속도는 곧 대통령선거일과 관련되어 있었는데, 3당의 대선 준비에는 차이가 났다. 또 다른 문제는 2월 29일 종료되는 특검보다 일찍 탄핵선고가 있게 되면, 특검이 전직 대통령을 구속 수사할 수 있는데, 헌재가 이를 감수할 것인지가 문제되었다. 마지막 문제는 헌재 소장의 퇴임과 이정미 재판관의 후임 인선이었다. 특히, 재판관의 후임 인선은 탄핵 논의의 초점을 흔들 수도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려는 대법원장의 뜻은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초기에는 1월 31일 이전 종료설도 있었지만, 탄핵심판이 2월로 넘어가면서 2월 말 변론종결, 3월 초 선고설이 유력해졌다. 어떤 경우에도 3월 11일을 넘기면 안 된다는 것이 대리인단의 지상과제가 되었고, 여기에는 어떤 이견도 없는 듯했다. 다만, 예상은 예상일뿐이었고, 실제 심판절차 속에 있었던 대리인단의 마음은 2월 27일 변론종결이나 3월 10일 선고기일이 발표되기까지 새까맣게 탈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큰 문제는 탄핵심판에 적용될 증거법칙이었고, 이것이 이번 탄핵심판에서 가장 뜨거운 논점이었다. 탄핵의 회색지대(심정적으로는 탄핵을 반대하지만, 드러내놓고 반대를 이야기하지 않는 영역)에 있었던 법조인들의 논거가 절차적 정당성이었고, 그 구체화가 형사소송법의 전문법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주장에 따르면 탄핵심판은 적어도 6월까지는 끝나지 않을 수 있었다.

이 논점에 대해 탄핵심판의 특수성 논리(우리)과 형사소송법 준용 논리(대통령 측)가 부딪혔는데, 헌재는 절묘하게 이 문제를 절충하여 탄핵심판의 증거법을 제시했고, 결과적으로 선택과 집중에 의한 증거 선택과 절차적 정당성을 구비할 수 있었다.

세 번째 문제는 대통령 측 대리인들의 종잡을 수 없는 변론에 대응하는 다소 세세한 문제였다. 대통령 측 대리인들의 변론은 크게 세 시기로 변화하였는데, 1기는 정호성, 안종범, 최순실 등 주요 인물을 신문하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대통령 측 대리인은 비교적 정상적인 변론을 통해 방어를 하려고 하였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 정호성의 진술과 녹취록, 안종범의 진술과 수첩은 사후에 어찌할 수 없는 많은 진실을 확인해 주었고, 돌이켜보면, 사실 이들을 신문한 시점에 이미 헌재가 인정한 탄핵소추사유의 대부분은 밝혀진 셈이었다. 1월 31일 이전에 탄핵심판을 종결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이 무렵 나는 국가가 아주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2013년 2월 대통령 취임사를 수정하면서 박근혜, 최순실, 정호성은 ‘문화융성’, ‘체육진흥’이라는 단어를 찾으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 그냥‘문화체육’이라고 하자고 하니, 서로 낄낄대고 웃으면서 ‘그러면 역풍 맞아’, ‘그것이 진짠데’라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들이 당선되기 훨씬 이전부터 문화와 체육을 이용해서 축재를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확신했다. 선거공약에는 이미‘문화 예산, 재정의 2%’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나라는 사익을 추구할 작정을 한 대통령 후보를 검증하지 못했고, 담당 공무원들은 이들이 부리기 쉬운 사람으로 채워졌다. 이들은 김종 전 차관을 ‘bell(종)’이라고 불렀다. 이들을 감시할 사법기관의 핵심도 이들을 추종했다. 탄핵소추사유에는 없었지만, 이들에 대한 부역의 흔적은 아직도 여러 곳에 남아 있었다.

2기는 헌재가 정호성, 안종범 등의 수사기록을 증거로 채택한 1월 17일 이후 대통령 측의 증인신청이 무더기로 기각된 2월 14일까지였다. 그 사이 장외에서는 탄핵각하론이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고영태 음모설이 주장되었고, 탄핵반대집회가 몸집을 키웠으며, 원로 법조인들이 탄핵각하론에 힘을 보태는 광고를 게재하기도 하였지만, 이 시기 대통령 측의 기본적인 입장은 증인신청을 통한 지연술이었다. 헌재는 답답할 정도로 대통령 측의 증인신청을 받아주면서 절차적 공정성에 공을 들였지만, 대통령 측이 신청한 증인은 그 자체로 유리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새로운 사실도 제시하지 못했다. 우리는 반대신문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할 정도로 김을 빼려고 했다.

지루한 공방을 끝낸 것은 각하론이 전면에 등장한 3기였다. 장외에서 각하론을 주장하던 김평우 변호사가 2월 16일 선임계를 내더니 그 논리를 그대로 심판정에서 주장하기 시작했고,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대부분이 각하론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최후변론 때 대통령 측 대리인단 중 3명만이 기각론에 방점을 찍었고, 나머지 대부분이 각하론을 주장했다. 우리는 이들의 변론 변화가 일응 탄핵에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음모론을 배제할 수 없었다.

당시까지 심판정에서 거의 침묵으로 일관했던 세 명의 재판관이 기각이론을 구성할 수 없으니 각하론을 취할 수 있고, 이것에 기초한 변론이라는 것이 음모론의 정체였다. 이 음모론은 여러 정보보고와 짜리시 등에서 등장했고, 선고기일을 앞두고는 ‘5:2:1설’즉, 2명의 재판관이 각하이고, 1명이 아직 입장 정리를 못했다는 것으로 구체화 되었다. 그러나 각하론은 지극히 정치적인 이야기일 뿐 헌재가 받아들일 정도의 내용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마지막 고비는 이른바 고영태 음모설이었다. 탄핵에 반대하는 몇몇 언론에서 고영태 음모설을 띄우기 시작했고, 내용을 잘 모르는 기자들이 이것을 받아쓰기 시작했다. 녹취파일을 다 들어본 결과 오히려 탄핵에 기여할 것이라는 확신을 했지만, 문제는 이것이 변론종결일을 늦출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도 헌재의 현명한 판단으로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었다.

나는 선고기일에 앞서 국회 대리인들에게 탄핵이 인용되더라도 심판정에서 절대 기뻐하면 안 된다고 문자를 남겼다. 탁변호사는 반대로 탄핵이 기각되면 크게 웃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선고기일에 이정미 재판관이 전원일치로 탄핵을 한다고 하면서, 이어서 세월호 관련 김이수, 이진성 재판관의 보충의견을 읽을 때 그만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세월호를 탄핵 심판정에서도 구하지 못한 미안함과 두 분 재판관에 대한 고마움 등 복잡한 심정의 눈물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탄핵심판은 끝을 맺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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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사람들을 기억해주세요. 이렇게라도.

< (1) 시리아 난민이 말하는 게임 – ‘Bury me, my love’ 리뷰>

-조덕상 회원

코로나-19가 유행하는 힘든 시절이지만 다들 안녕하세요. 주제넘지만 글을 시작하기 전에 민변 독자 여러분께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코로나-19 사태와는 비교할 수 없는, 2011년부터 계속된 전쟁으로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 시리아 주민들과 난민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고 기억해주세요. 그들에게 뭔가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지금부터 2차례에 걸쳐 연재할 리뷰는 시리아 전쟁1) 을 다룬 미디어 작품을 접하고 쓰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는 The Pixel Hunt, Figs, ARTE France가 공동제작한 ‘Bury me, my love’ 라는 인디게임에 대해, 그 다음 편은 와드 알카팁 감독이 제작한 ‘사마에게(For Sama)’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각각의 스타일은 사뭇 다르지만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비극과 거기서 탈출한 난민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입니다. 코로나-19로 우울해진 여러분께 더 심한 무력감을 드릴까봐 안타깝기도 합니다.

몇 달 전 소위 ‘게임불감증’에 걸려 있던 시절 정말 우연히 검색 중에 ‘bury me, my love’ 라는 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날 묻어줘요. 내 사랑.’ 어찌 보면 조금 섬뜩한 느낌의 표현인데 무슨 뜻인가 검색해보니 시리아의 일상적인 인사말을 영어로 번역한 말이랍니다. 구체적으로 풀어보면 ‘조심해요, 나보다 먼저 죽는 건 생각하지도 말아요.’ (Be careful. Don’t even think of dying before I do.)라는 뜻이랍니다. 당신이 죽는 걸 보느니 내가 먼저 죽겠다는 것이겠죠. 이런 절절한 인사말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게임일까 더 궁금해졌습니다. 찾아보니 2011년부터 시작된 시리아 전쟁에서 탈출한 난민들의 이야기였습니다.

‘Bury me, my love’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게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Majd(매지드)라는 이름의 시리아인 남성이 되고, 그 신부인 Nour(노어)와 스마트폰 메신저 어플을 사용해 계속 대화하는 것이 게임 플레이의 전부입니다. 외국에서 많이 쓰는 Whatsapp Messenger 어플 이름을 따서 이런 종류의 게임을 왓츠앱 게임이라고도 합니다. 여러분이 메시지를 직접 쳐서 입력하는 것도 아니고 알아서 메시지가 입력되다가 그때그때 주어진 선택지가 나왔을 때 고르면 그 선택지에 따라서 다시 인물들의 대화가 진행되는 방식입니다. 여러분의 스마트폰 마켓에서 유료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게임(3,900원~4,600원)인데, 아쉽게도 한국어는 지원되지 않고 영어로 플레이 가능합니다. 2017년 10월 26일에 발매된 이 게임은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한국어 리뷰가 거의 검색되지 않습니다), 인디게임 쪽에서는 이미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2)


(여기서부터는 내용 누설이 조금 있습니다.)매지드와 노어는 시리아의 홈즈(Homs)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부부입니다. 시리아 전쟁이 갈수록 격화되자 노어는 터키로 건너갔다가 거기서 유럽(구체적으로는 독일)으로 망명하기 위해 홀몸으로 떠나고, 매지드는 노모가 있어 일단 노어가 유럽에서 정착에 성공하면 그때 따라가기로 합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먼저 목숨을 건 여행을 떠난 노어와 계속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으면서, 그녀가 중요한 선택을 해야 될 때마다 메시지를 보내 선택을 돕습니다. 여러분의 선택에 따라 노어는 여행을 더 안전하게 이어갈 수도 있고, 잘못 되면 노어가 사망하거나 외국에서 체포되는 비극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선택에 따른 결과가 축적되면서 노어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에 찾아왔을 때 ‘아니 무슨 난민들이 스마트폰을 쓴대?’ 했던 이들에게는 참으로 비현실적인 게임이겠습니다. 하하… 노어는 계속 여러 나라를 이동하면서 현지 유심을 사거나 와이파이를 잡아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므로 남편인 매지드와는 오로지 데이터를 사용하는 문자메시지와 사진으로만 소통한다는 게 게임의 기본 설정입니다. 이들에게 스마트폰은 사치품이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한 필수품입니다. 스마트폰에서 노어의 목소리는 여행이 끝날 때 보내는 음성메시지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영어로 매우 생생하게 말합니다. 사랑해, 고마워, 살려줘. 망했어. 체포됐어. 저는 대충 이 정도만 알아들었습니다 ㅠ).


스마트폰으로 플레이하는 게임 장면. 오른쪽 사진 배경에 난민을 적대하는 내용의 낙서가 보입니다.

(https://thepin.ch/knowledge/mQTgT/dilute-game-review-24) 참고

 

이런 무거운 배경에서 이루어지는 노어와 매지드의 대화는 시종일관 그렇게 어둡거나 촉박하지만은 않습니다. 노어는 때로는 여행을 하며 느끼는 여러 감정을 썰렁한 아재 개그로 표현하기도 하고, 그런 노어에게 매지드는 이모티콘을 보내 응수하기도 합니다. 여행 중에 힘들어하는 노어에게 매지드는 힘을 내라며 셀카를 찍어 보내주기도 하고요, 노어는 여행 중 인상적인 풍경이나 자신의 초췌한 모습을 셀카로 찍어 알리기도 합니다. 언어의 장벽만 넘는다면 오랜 연인이나 부부끼리 느끼는 다정함과 친근함, 때로 노어와 바로 연락이 안 될 때(게임의 흐름에 따라 1-2일씩 연락이 두절되기도 합니다.)매지드의 초조함과 불안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가 등장하기는 하나, 메신저 대화의 특성상 전체적인 내용을 따라가기에는 무리가 없습니다. 저도 해냈습니다, 여러분. 하하…

그런 대화 안에서 시리아 전쟁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의 모습, 공습에서 부상당한 사람들을 사력을 다해 치료하는 시리아 현지 의료인들, 시리아 난민들을 선의로 돕는 유니세프 활동가들과 돈을 받고 시리아 난민들의 망명을 돕는 수많은 브로커들, 시리아 난민을 체포해 그 전에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거나 장벽을 세우는 등 난민의 이동을 통제하는 각국 정부와 난민들을 돕거나 공격하는 각국의 시민들 등 시리아 전쟁을 둘러싼 다양한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나오는 [“Bury me, my love” is a fictional story inspired by real people and events.]라는 안내문은 결코 빈말이 아닙니다. 시리아의 알레포(Aleppo)와 홈즈라는 도시에서 발생했던 독재정권의 잔혹한 공격과 시민들의 탈출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도망가다 배가 뒤집혀 사망하는 보트 피플의 이야기로 흐르기도 하고, 터키에 설치된 난민 캠프에서 벌어지는 여성과 아동들에 대한 각종 성폭력과 착취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겨우 벗어나더라도 노어는 유럽에서 네오나치와 같이 난민을 배척하는 이들을 만나 위협을 받거나, 도와주는 척 하면서 사기나 성폭행을 시도하는 악당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을 메신저에서 계속 지켜봐야 하는 매지드의 심정은 어떨까요.

플레이 중 노어가 찍어 보내주는 다양한 사진들(게임 제작자가 편집, 발췌한 이미지 모음)

(출처 : https://twvideo01.ubm-us.net/o1/vault/gdc2018/presentations/Maurin_Flore...)

이 게임이 매우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개발자들이 실제 시리아 난민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시리아 전쟁 뉴스를 보고 막연히 아이디어를 떠올린 게 아니라, 2015년에 시리아 다마스쿠스(Damascus)에서 실제로 탈출하여 독일까지 망명하는 데 성공한 시리아인 Dana(다나)의 사연을 모티브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이 다나의 이야기는 프랑스 르몽드의 기자 Lucie Soullier(루시 솔리에)가 작성한 르포 기사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바 있습니다.3) Pixel Hunt사의 CEO인 Florent Maurin(플로랑 모랭)은 기자 출신 프랑스인 게임 개발자로 위 르포 기사에서 큰 감흥을 받고는 루시 솔리에를 직접 만나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었고, 독일에 살고 있는 다나와 메신저로 대화하거나 시리아 난민 캠프에 있는 시리아 난민들을 직접 만나면서 게임 속 메시지와 이야기를 구성했습니다.4) 게임에 나오는 다양한 장면들 중에는 실제 다나가 찍은 사진에서 따온 것들이 많습니다.


다나가 찍은 카페에서의 사진과 게임 속 노어의 사진 비교 예시

노어는 여행을 하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다양한 선택이 필요한 상황을 만나고, 거기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느끼는 감정을 매우 진솔하게 표현합니다. 진솔하다는 것이 늘 노어가 ‘진실’만을 이야기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나와 수많은 시리아 난민들이 그러했듯, 노어는 사실을 그대로 말할 때도 있지만, 매지드가 걱정할까봐 메시지를 치다가 지우는 등 망설이거나 소위 ‘하얀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기분이 너무 좋을 때는 매지드를 골려주려고 돈을 잃어버렸다는 황당한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노어가 어떤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 플레이어는 2개의 선택지에서 힘든 고민을 해야 합니다. 선택지들은 가끔 따뜻한 위로와 냉정한 조언 사이에 있기도 하고, 어떤 상황에서 노어가 바로 도망가야 하는가 머물러야 하는가와 같은 매우 급박하거나 어떤 걸 선택해도 그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다행(?)이라면 선택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실시간은 아니라서 충분히 고민해보실 수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에서 바로 느껴지는 아쉬운 점은 중간에 원하는 지점에서 세이브(저장)/로드(불러오기)를 할 수 있는 기능이 없고, 이미 봤던 대사를 빠르게 넘기는 스킵(Skip)기능도 없다는 특징입니다. ‘아니 무슨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에 저런 기능이 없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고, 플레이한 유저들이 많이 지적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PC 버전에서는 조금 개선되었다고 합니다). 게임을 하다가 플레이어가 원치 않는 결말(Bad Ending)을 불러오는 선택지를 고르고 말았을 때, 일반적인 어드벤처 게임에서는 미리 특정 지점을 저장해두었다가 그 지점을 다시 로드해서 시작하게 해줍니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여러 번 플레이하게 하면서 원하는 엔딩을 쉽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장치죠. 그러나 이 게임에서는 우선 엔딩을 보기 전까지 세이브는 가장 최근의 선택지점에서만 강제로 이루어지고, 한 번 엔딩을 보면 게임을 원하는 지점에서 시작할 수 없고 무조건 여행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며, 다시 시작하면 이미 봤던 대화를 스킵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다시 봐야 합니다. 이 게임의 엔딩은 19개가 있다고 하니, 그 엔딩을 다 보려면 엄청난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하며 마땅한 공략도 찾기 어렵습니다. 저도 그중에 5개 정도밖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Dana의 실제 이야기에 맞춰진 진(眞)엔딩은 독일에 도착하는 것인데, 저는 아직도 어떤 길로 가야 볼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필자가 직접 플레이하면서 마주했던 선택의 순간들. 이것 이외에도 정말 다양합니다.

 

왜 굳이 이렇게 불편하고 게임의 재미를 반감할 수 있는 방식을 취했을까요. 플로랑 모랭은 게임의 기획 의도를 ‘Exploring Helplessness’라고 요약합니다. 다나를 비롯한 시리아 난민들이 스마트폰으로 가족, 연인, 친구들과 소통하면서 많이 느꼈던 감정은 기쁨과 행복 이상으로 ‘무기력함’이었다고 합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메시지를 주고 받으면서 혹시 걱정할까봐 자신의 처지를 모두 드러낼 수는 없는 데서 오는 미안함, 전쟁 상황에서 겪는 친지들의 고통을 알면서도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이 도망쳐온 자신의 처지에서 느껴지는 무력함 등등. 개발사는 플레이어가 이 게임을 하면서 그런 감정을 온전히 느껴보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 Dana는 운좋게 해피 엔딩을 맞았지만, 수많은 시리아 난민들은 그렇지 못했기에, 플레이어의 편의가 아닌 실제 삶에서 존재하는 불편함과 고통을 중심으로 게임이 구성되었습니다. 이 게임을 하시게 된다면 이유 있는 불편함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어떨까요. 인생은 늘 1번뿐이니까요.

플로랑 모랭은 이 게임 말고도 이집트의 민주화 운동, 아이티 대지진, 파푸아뉴기니 부정선거 등 실제 사건들을 소재로 한 게임을 제작해 언론사에 제공한 바 있습니다. ‘게임은 신뢰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 현실을 잘 묘사할 수 있다’는 그의 철학에 따른 것이지요. 그는 게임 개발 과정에서 시리아 난민들와 계속 접촉했고 그동안 난민에 대해 내가 알던 것들이 게임을 만들면서 달라졌다고 고백합니다. 미디어에서 어떤 무리, 집단으로만 흔히 묘사되는 난민이 아닌, 우리와 같이 하나하나 모두 다르고 개성적인 주체로서의 난민을 볼 수 있었던 것이죠. 스마트폰을 통해서 기쁨, 슬픔, 유머를 나누는,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그들. 예맨 난민을 갑자기 만났던 우리 사회에 정말 필요했던 건 저런 상식이 아니었을까요.

다나가 시리아에서 독일까지 이동했던 루트

플로랑 모랭은 이 게임으로 사람들의 난민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시리아 난민들의 이야기를 충실히 전달함으로써 난민들이 느꼈던 감정들을 플레이어들이 느끼고 그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다른 분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이 게임이 여러 가지로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소개해드릴 ‘사마에게’ 라는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들어주었고, 많이 부족하긴 했지만 시리아 전쟁에 대한 책들을 찾아 읽게 해주었으니까요. 프랑스의 오랜 식민지배를 받았다가 겨우 독립했지만 잇따른 군부 쿠데타로 혼란을 겪다가 하페즈 알아사드(1930-2000)와 그의 아들 바샤르 알아사드(1965-)가 무려 60년이 넘는 철권통치를 일삼은 나라, 2011년부터 시민들이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시작했지만 시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 정부, 그 내전에 개입하여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미국과 러시아, 터키, 레바논, 이스라엘과 같은 강대국들의 이야기까지… 알면 알수록 해답이 보이지 않는 참혹한 현실이 아직도 그대로인데, 이제 많은 이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시리아입니다.

코로나-19에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선거판. 우울하지 않은 게 이상한 이곳에 살아내고 있는 여러분께 감히 이 불편한 게임을 해보시길 적극 권합니다. 이 게임을 통해 여러분은 시리아에서 터키,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스웨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을 스마트폰으로 여행할 수 있습니다. 다만 목숨을 건 여행이지요. 이 게임을 통해 긴장감과 서글픔이 함께 하는 노어의 여행을 함께 하면서 우리가 충분히 지지하고 연대해주지 못했던,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깨울 수 있다면, 그리고 이 게임에서 느껴지는 그 무력감과 분노가 여러분들을 조금은 따뜻하게 해준다면 참 좋겠습니다. 지루한 글에 끝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게임에서 만났던 가장 따뜻했던 장면들과 가장 행복했던 엔딩(왜 그런지는 직접 해보세요^^)

 


1)흔히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과의 분쟁으로 시작되었기에 ‘내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나, 몇 년 전부터 단순 내전을 초월한 국제 분쟁의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김재명, ‘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하는 교양 57 – 시리아 전쟁’(2018), pp. 88-89. 참고.

2)①수상 내역 – Developper Choice Award at Indiecade EU 2017 / the Best Meaningful Play Award at the IMGA / the first prize at the Google Play Indie Game Contest 2018

②수상 후보 내역 – nominated at the GDC, Game Awards, BAFTAs and Webby Awards

3)르몽드 2015년 12월 18일자 기사 참고. 이 기사에는 Dana가 가족들과 스마트폰 메신저로 주고 받았던 메시지와 사진이 메신저 형태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안타깝게도 프랑스어로만 서비스되고 있음) (https://www.lemonde.fr/international/visuel/2015/12/18/dans-le-telephone...)

4)게임 개발 스토리는 아래 영상 링크에 간단하게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안드로이드 개발자 스토리 : https://www.youtube.com/watch?v=4-uQgqW09CE) 또한 플로랑 모랭은 2018년 GDC(Game Developer Conference)에서 30분 가량 게임의 제작 과정과 구성 원리를 자세하게 발표한 바 있습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yDzsSvFZhJ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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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0/03/27-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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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사람들을 기억해주세요, 이렇게라도

(2) 무엇이 정의인가(What‘s Justice?) – “사마에게(For Sama)” 리뷰

조덕상 회원

영화 한국어판 공식 포스터

여러분에게 평화가 함께 하기를. 지난 “Bury me my love” 리뷰는 잘 보셨는지요. 읽어주시는 분이 한 분이라도 있다면 참으로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하하 ㅠ 조금씩 이제 밖으로 나오시기도 하고 운동도 다시 시작하시고 할 텐데. 이 리뷰가 여러분께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경험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번 게임 리뷰를 읽어보신 분들은 마지막 장면에 한 소녀와 묘한 눈빛의 인형 사진을 기억하실 겁니다. 기왕 나간 김에 조금 더 내용 누설을 하자면, “Bury me my love”에서 Nour(노어)는 원래 의사였습니다(Majd(매지드)는 정확하지는 않은데 학생들을 가르치며 어머니의 가게를 운영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어떤 루트를 따라가보면 노어가 시리아의 알레포(Aleppo)에 머무를 때가 있는데 이 때 정부군의 무차별 공습 학살이 일어납니다. 노어는 그 때 다리를 심하게 다친 여성을 만나게 되고, 이 여성을 인근 병원에 데려갈 것이냐 무시하고 떠날 것이냐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그 소녀가 누굴지 짐작이 가시겠죠? 그 다리를 다친 여성의 딸입니다(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네요. 죄송). 노어는 제대로 된 수술실과 도구가 없는 병원에서 매지드에게 의학서적을 메시지로 읽어달라고 하고, 그걸 바탕으로 혼자 수술을 해서 여성의 다리를 절단하고 기적처럼 그의 목숨을 구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자 소녀는 자신이 갖고 있던 소중한 인형을 노어에게 선물로 주고 목발을 짚은 엄마와 함께 병원을 떠납니다. 이 게임에서 전쟁의 참상을 직접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뜬금없이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노어의 한 이야기가 바로 이번에 소개해드릴 영화 “사마에게(For Sama)”의 내용과 매우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마에게’는 포스터가 영화 내용의 대부분을 설명해주는, 시리아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한복판에 있었던 와드 알 카팁(와드) 감독 본인이 직접 찍은 5시간이 넘는 영상을 편집해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그의 남편인 함자 알 카팁(함자)은 알레포에 있는 의사로 시리아 정부군의 공습 학살이 있을 때마다 몰려오는 환자들을 치료하며, 와드는 피와 살이 튀고 생사가 갈리는 그 순간들을 때로는 흔들리는 카메라로, 때로는 바짝 굳어버린 카메라로 담아냅니다. 노어의 메시지로 상상만 할 수 있었던 수술 장면을 영화에서 계속 보게 되니 말문은 막히고 입은 쩍 벌어졌습니다.

영화는 와드가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을 잠깐 소개하고, 2011년 알레포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바샤드 알 아사르 독재정권의 횡포에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러 모로 한국의 1980년대와 닮아있는 ‘아랍의 봄’ 시대의 풍경이 나옵니다. 우리는 군부독재를 몰아냈지만, 시리아는 잘 아시는 것처럼 독재정권이 말 그대로 ‘전쟁’을 선포하며 시민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알레포는 시리아 북부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우리의 광주처럼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이들의 거점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독재정권은 알레포의 주변을 포위한 후 반군보다 우월한 공군력을 내세워 알레포 시내를 무차별 공습하기에 이릅니다.

시리아 지도. 알레포는 북부의 중심 도시였고, 좀 더 아래로 내려가면 ‘Bury me My love’의 무대가 된 Homs(홈즈), 레바논의 Damascus, Beirut가 보입니다.

이러한 독재정권의 포위와 학살로 인해 고통받던 수많은 알레포 시민들은 알레포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사실 알레포를 떠나는 일 자체도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정부군은 알레포를 탈출하는 시민들에게도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와드와 함자와 그의 동료들은 알레포에 끝까지 남아 있기로 합니다. ‘떠나는건 최악의 본보기다. 그러나 남은 이들은 지옥을 견뎌야 했다’는 와드의 독백은 그 자체로 진퇴양난인 시민들의 상황을 적시해줍니다. 이 영화는 2011년부터 2016년 알레포를 정부군이 완전히 함락시켜 어쩔 수 없이 주인공 일행이 시리아를 떠날 때까지의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와드와 함자는 원래 교제했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병원에서 생사를 함께 하며 서로에 대한 사랑을 키웠고 병원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신혼 살림도 병원에 마련합니다. 사마는 그 병원에서 태어났고 그때도 폭격은 계속됩니다. 사마는 수시로 폭음과 진동을 경험하는데 그때마다 놀라거나 울기는커녕 커다란 눈을 굴리며 주변을 둘러보는 게 일상이고 아주 가끔은 웃기도 합니다. 그걸 보는 와드가 미칠 지경이지요.

그들이 얼마든지 알레포를 떠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5년을 알레포와 함께 했던 이유는 와드가 사마에게 남겨준 유언과도 같은 편지에서 드러납니다. ‘(전략)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하지만 엄마는 카메라를 놓을 수 없었어. 사마, 왜 엄마와 아빠가 여기에 남았는지, 우리가 뭘 위해 싸웠는지, 이제 그 이야기를 들려주려 해. 사마야, 이 영화를 너에게 바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함자, 사마, 와드 알 카팁 식구들

이 영화를 보면서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 사는 아동의 비참한 삶을 그렸던 영화 ‘가버나움’이 떠올랐던 건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구성된 허구의 참상이 주는 충격이 하도 극심하여 보면서 무너지는 한숨만 나올 뿐 눈물이 나오지 않았던 영화였는데, 이 영화도 비슷합니다. ‘가버나움’에서 동생과 살아남기 위해 어떤 짓이든 하다가 법정에 찾아가 부모를 고소한 주인공 자인과, 이 영화에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마다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와드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겹쳐집니다. 결국 그 두 사람이 묻는 것은 레바논과 시리아에서의 삶의 존엄이란 과연 무엇인가겠죠. 웃픈 일은 그 레바논의 헤즈볼라 세력이 시리아의 정부군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그들의 공적인 이스라엘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식민지배에서 2차대전 후 강대국들의 세력 재편이 어디까지 보통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지점입니다. 덧붙이자면 나중에 러시아의 푸틴 정부가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해 공습을 하는 사실까지 나옵니다. 시리아 전쟁의 사망자는 약 40-5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2015년에 UN이 사망자 공식 집계를 포기하고 나온 숫자이므로 실제 사망자는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시리아 국경 외부로 떠난 난민의 숫자는 590만 명, 시리아 안으로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610만 명인데 시리아 전체 인구가 약 1,800만 명이니 비극의 정도는 숫자만으로도 이미 질려버릴 지경입니다. 여기에 정부군은 생화학 무기를 사용하는 비인도적 전쟁 범죄를 버젓이 저질렀습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공습으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의 상당수는 여성이나 어린이들입니다. 의료진이 필사적으로 치료를 하지만 대부분 병원에서 사망합니다. 정신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을 계속 마주하면서도 함자와 와드는 메스와 카메라를 놓지 않습니다. 그 병원에서 잊지 못할 장면이 있는데, 바로 한 임산부가 폭탄 파편에 맞아 병원에 실려온 일이 있었습니다. 급히 제왕절개를 해서 아이를 꺼냈는데 숨을 쉬지 않아 관객들 입장에서는 이번에도 죽었구나 생각할만 했는데, CPR과 타격을 반복하자 아이의 숨길이 열리면서 아이가 울기 시작합니다. 그 때 제가 있었던 영화관에서는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런가하면 일가족이 모두 사망했을 때 와드가 ‘인정하기 싫지만 저 아이의 부모가 부럽다. 자기 아이를 묻기 전에 죽었으니까’ 라고 독백하는 장면도, 아이를 잃은 어머니가 와드에게 ‘제발 계속 찍어주세요. 이 짓을 벌인 놈들이 누구인지 다 알 수 있게!’ 라며 절규하는 장면도 눈에 선합니다.

이 영화 말고도 시리아 전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작품은 많이 나왔었습니다. 저는 다 보지 못해서 함부로 비교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이 작품의 매력이라면 전쟁의 참화를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것과 더불어, 그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존엄함을 비추는 데 상당한 비중을 할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와드의 나레이션은 시리아 전쟁의 굵직굵직한 이벤트를 설명하기보다, 자신이 직접 겪었던 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자신이 다녔던 대학교에서 시작된 반정부 민주화 시위의 물결을 시작으로, 폭격을 맞은 잔해 속에서 사람들을 위한 병원을 새로 꾸미며 즐거워하는 함자와 동료들, 한 아이가 결국 사망하자 옆에서 오열하는 와드에게 함자가 화를 내며 ‘여기서 울지 말고 당장 나가’ 하더니, 나가버린 와드를 쫓아가 ‘네가 무너지는 걸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내가 널 사랑하는 걸 모르겠어? 나랑 결혼해줄래?’ 라고 프로포즈하는 장면(어우~♡), 정부군이 미국의 개입으로 일시적으로 수세에 몰렸을 때 사람들이 짧은 해방의 기분을 맛보는 순간 등등… 지옥 속에서도 사람다운 일상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걸 놓치지 않는 게 영화의 매력이라면 매력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풍경이죠.

1초라도 있고 싶지 않은 그 알레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폭격에도 놀라지 않고 잘 웃으며 노는 사마와 아이들에게서 작은 희망을 얻습니다. 또는 와드의 이웃에 살고 있는 10세 남자아이는 이곳을 떠나고 싶냐는 질문에 부모가 떠나더라도 자기는 남고 싶다며 결국 오열하기도 합니다. 영화 중반에는 폭격을 맞아 불타버린 버스에 아이들이 모여 페인트로 예쁘게 색을 칠하기도 하고 턱없이 열악하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이 수업을 듣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지요. 이런 희망도 잠시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병원이 폭격당하자 좌절했던 일행들은 다시 아이들과 함께 거처를 옮기며 새 병원을 임시로 건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2016년 겨울 정부군이 알레포를 사실상 점령하자 와드와 이웃들은 결국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해 성공합니다. 영화는 와드가 아기띠로 사마를 안은 채 페허가 된 도시를 걸어가는 장면으로 막을 내립니다. 크레딧에서 사람들과 남겼던 자잘한 일상적인 사진들이 알레포에서 사람들이 평화롭게, 자유롭게 살았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아마 40년전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군부독재에 저항해 끝까지 싸웠던 광주 시민군 여러분의 모습이 떠오른 것도 우연은 아니겠지요. 가끔은 희망이라는 단어는 저런 분들에게야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의 크레딧에서 나오는, 사마가 팻말을 들고 서 있는 장면

영화의 크레딧 화면에서 잠깐 나오는 사진 중 가장 명장면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사마가 폐허 속에서 ‘여기는 알레포입니다. 무엇이 정의인가요.’(This is Aleppo. What’s Justice?)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의실과 책에 등장했던 그 한가한 질문을 여기서 보게 되다니. 영어가 짧은 제 눈에 저 팻말은 ‘정의가 여기 어디에 있나요.’(Where is Justice here?)로, 아니 더 심하게는 ‘정의란 게 여기 대체 있긴 있나요.’(Is there on earth Justice here?)로 보였습니다. 이 영화를 본 우리는 뭐라 대답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저 굳이 찾는다면 당신들이 알레포에 그렇게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정의라는 한가로운 대답밖에 내놓을 수 없었습니다. 미안해요. 그냥 없다는 게 정답일까요.

자료를 조금 찾아보니 와드의 가족들은 현재 영국에서 정착해 새로운 삶을 살면서 여전히 시리아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와는 무척이나 거리가 있는 문제로 보이지만, 과연 와드와 같은 시리아 난민들은 각지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우리는 조선학교와 조선유치원에 대한 무상교육 지원금을 끊고 마스크 지원도 끊는 일본 정부와 지자체에 극도로 분노했으며, 최근에는 재난기본소득을 외국인에게 지급하지 않겠다는 한국 정부의 발표를 들으며 허탈했고, 코로나-19를 이유로 재외국민들을 위한 투표 업무를 하지 않겠다는 한국 정부의 발표에 또 한 번 분노해야 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시고 시리아 전쟁 그 자체를 종결시키는 일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와 함께 사는 이방인들과 우리는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를 고민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통계를 보면 한국에도 약 1,200명의 시리아 난민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평화를 찾아 여기까지 온 이들에게 차별은 곧 또다른 선전포고와 다름없지 않을까요. 우리 안의 시리아, 예맨 등의 평화를 지켜줄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바샤르 알 아사드와 그 부역자, 조력자들에게 천벌을.

시리아의 민주화를 꿈꾸는 시리아 인민들에게 평화를.

 

정우성 배우도 강력추천한 그 영화^^(출처: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2019. 6. 30. 방영)

 

** 덧붙이는 알림

천지선 변호사님을 중심으로 저와 몇몇 회원 여러분이 페미니즘을 다룬 만화, 책,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등 다양한 미디어를 함께 감상하고 편안하게 이야기 나눠보는 민변 내 소모임 ‘만감’을 만들었습니다. 좋은 미디어와 함께 공부하고 힐링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회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미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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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4/15-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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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12/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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