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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복지동향 221호, 2017년 3월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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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복지동향 221호, 2017년 3월 발행

익명 (미확인) | 수, 2017/03/01- 16:19

편집인의 글

 

이미진 | 건국대 사회복지전공 교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면서 우리는 대한민국이 지난 9년간 인권과 민주주의가 퇴보했고 부패와 부정의, 비정상이 만연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에 대한 피 끓는 분노와 탄식, 절망감도 컸던 지난 수개월이지만 촛불혁명은 새로운 대한민국, 정의, 평등, 평화, 민주, 복지의 꽃을 피울 공화국에 대한 열망으로 훨훨 타오르고 있다.

 

사회복지분야에서 가장 사회적으로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정책은 ‘기본소득’이다. 대선주자 중 소수를 제외하고 기본소득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고 이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 역시 뜨겁다. 사실 기본소득은 모든 개인에게 적절한 수준의 소득을 준다는 점에서 한국사회 불평등 해소에 기여할, 잠재력 있는 대안 중 하나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의 이상적인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는 제도가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아직까지 없었다는 점에서 현실가능성과 정책효과 등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부정적인 목소리 또한 존재한다.

 

2017년 3월호 복지동향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를 다각도로 조명하고 기본소득을 도입한다면 한국사회 복지국가 건설에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모색의 일환으로 이를 기획주제로 다루었다. 김영순 교수는 기본소득이 사회적 의제로 등장하게 된 사회경제적 배경과 이에 대한 좌파와 우파의 입장, 만병통치약으로 종종 인식되는 기본소득에 대한 우려를 논하였으며, 백승호 교수는 기본소득의 개념에 대해 정리하면서 기본소득 실현의 방해물로서 ‘예산제약’과 ‘우선순위’ 담론에 대해 비판하였다. 서정희 교수는 기본소득에 대한 국가별 실험의 최근 동향을 흥미롭게 정리해 주었으며, 이승윤 교수는 대선주자들의 기본소득과 관련한 공약을 정리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기본소득을 한국사회에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대안적으로 제언해 주었다.

 

특히 이승윤 교수의 제언은 기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 수당 및 연금제도를 기본소득제도로 흡수하고 한국사회 복지국가의 필수요건인 상병수당 신설 등을 제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에 대한 다각도의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백승호 교수의 비판처럼 ‘예산제약’의 틀 안에 갇혀서 ‘복지확대’를 당당하게 외치지 못하는 자세는 반드시 지양되어야 한다. 꼭 필요한 복지정책이라면 빚을 내서라도, 증세를 해서라도 실현해야 한다. 다만 현재 밝혀진 최순실 예산이 1조 4천억 원이고 4대강 예산이 5년간 22조 원이 사용되었다는 의혹이 제시되고 있는 뉴스를 접하면 예산이 부족하여 복지를 확대할 수 없다는 주장은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복지동향 이번 호에 실린 ‘국민소송법’을 통해 정부와 공공기관의 잘못된 재정행위에 대해 국민들이 감시해 나간다면 현재의 정부예산으로도 복지의 확대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제도 도입은 예산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정책의지의 문제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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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노동 증가, 보호를 필요로 하는 노동에 대한 정부정책 검토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몇 년 전과 달리 일자리 지도가 바뀌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우버나 배달앱으로 표현되는 ‘플랫폼노동’이 사회적 이슈다. ‘타다’ 드라이버, ‘요기요’ 라이더, ‘쿠팡’ 플렉스 기사, ‘대리주부’ 가사서비스 직업 등이 대표적이다. 이미 배달업 다수는 플랫폼노동으로 이동했다. 그렇다면 플랫폼노동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나.

 

기술혁신의 미명하에 증가하는 플랫폼노동

플랫폼노동 대부분은 정보통신기술(ICT)과 융합되어 하나의 산업 생태계가 형성된 곳이다. 영국이나 미국은 물론 유럽연합 국가들에서 플랫폼노동 취업자는 2% 정도로 알려져 있다. 특히 기술발전으로 온라인 노동의 증가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해마다 온라인 노동은 26% 이상 성장하고 있다.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 및 크리에이티브, 멀티미디어 직업군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이를 두고 일부 학자들은 ‘디지털 부둣가’나 ‘디지털 갤리선 노예’처럼 일감 찾는 가상이민과 같은 표현도 사용한다. 유럽연합이나 미국, 영국에서 플랫폼노동 규모는 취업자의 0.5~4.0%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도 2019년 플랫폼노동 규모가 발표되었는데 취업자의 약 53만 명(1.5%∼2.3%)이다. IT나 물류유통이나 온라인 노동(크몽, 위시켓 등) 규모를 보면 이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플랫폼노동자들이 일을 선택한 이유와 노동조건은 어떤 상황이고, 플랫폼노동은 전업과 부업 중 어떤 형태가 더 많을까. 그리고 플랫폼노동자의 사회보험 적용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표 3-1> 주요 국가 및 한국 플랫폼노동자의 전체 수입 대비 플랫폼노동 통한 수입 비중

<표 3-1> 주요 국가 및 한국 플랫폼노동자의 전체 수입 대비 플랫폼노동 통한 수입 비중http://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801/679/001/8df85... style="width:964px;height:446px;" />

 

첫째, 플랫폼노동자들의 직업 선택은 일감을 찾기쉽거나 소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일거리를 구하기 쉬워서(28.9%)’와 ‘생활비 등 당장 수입이 필요해서(28%)’가 다수였다. 그러나 플랫폼노동자들은 적절한 계약을 체결하지도 않았다. 거의 대부분이 계약체결이 없거나(65.4%), 표준계약(16.4%)을 체결했다. 플랫폼노동은 일과 삶의 균형이 실현되거나 소득이 높은 것도 아니다. 일주일에 평균 5.1일 일하고 6일 이상의 비율도 56.9%나 되었고, 3일 이하는 13.7%에 불과했다.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은 36.9시간이었으나, 52시간 이상 비율도 23.5%나 되었고, 15시간 미만은 21.1% 정도였다(한국고용정보원,2019). 결국 삶에 직업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직업에 삶을 맞추고 있는 플랫폼노동의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플랫폼노동으로 얻는 소득은 주 소득이 많았지만 일부는 부업 성격도 확인된다. 플랫폼노동이 주 소득인 비율은 65.5%였다. 이들은 일을 하면서 실적급 형태의 수수료(69.9%)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플랫폼노동 수수료는 평균 1,534원(3천 원 이상 29.4%, 5백 원 이하 45.8%)이었는데, 시장경쟁으로 수수료가 낮아진 탓에 소득 불안정에 놓일 수밖에 없다. 플랫폼노동자들 대부분은 임금노동자가 아닌 이유로 사회보험 가입률이 낮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비해서도 낮았다. 특히 고용보험 적용률은 비정규직의 절반 수준이며, 음식배달, 퀵서비스 직종의 고용보험 적용률은 더 낮았다.

 

<표 3-2> 국내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회보험 적용 현황 비교(2018)

<표 3-2> 국내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회보험 적용 현황 비교(2018)http://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801/679/001/0c2df... style="width:959px;height:362px;" />

 

셋째, 플랫폼노동은 3자 혹은 4자 체계인데, 플랫폼 제공자-대행자-수요자(고객)-공급자(독립계약자) 관계로 구성된다. 다면적 시장에서 계약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에 플랫폼노동은 불법파견이나 위장도급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주로 배달이나 운송서비스 및 가사서비스 플랫폼노동에서 불법파견이 논쟁되고 있다. 플랫폼노동 특성상 대부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매개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표준적인 서비스와 매뉴얼이 중요하기 때문에 불법파견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기술혁신 속에 숨겨진 플랫폼노동의 명암

플랫폼노동이 노동시장 유연화나 자율적인 근무형태 같은 유인이 있다고 하지만 여성 일자리가 남성보다 더 많이 창출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정규직을 찾을 수 없어 더 많은 시간 동안 일하기를 원하는 ‘저고용’(under-employment) 문제가 가사서비스 플랫폼노동에서 확인된다. 게다가 정보통신기술의 젠더격차는 IT나 전문기술 플랫폼노동 분야에서도 확인된다.

 

이런 이유로 국제노동기구(ILO)는 디지털 경제시대 노동의 미래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ILO는 플랫폼노동을 온라인 작업의 ‘웹’(web) 기반 온라인 노동 형태의 일자리와 배달운송ㆍ가사서비스 작업처럼 ‘지역 장소’(local) 기반 일자리로 구분한다. 언론에 알려진 몇몇 사례만 보더라도 플랫폼노동은 전 세계 다양한 지역의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소득 수단을 제공한다. 앞으로 디지털 경제 시대의 핵심은 데이터 가치 창출인데, 제조업 못지않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퀴 달린 컴퓨터’라는 표현처럼 플랫폼노동은 기존 유해 환경에서 벗어난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다. 또한 일과 삶의 균형이 자유로운 일자리도 있다. 꼼꼼히 봐야겠지만 가사 서비스 영역처럼 비공식 부문의 일이 공식부문으로 전환된 긍정성도 있다.

 

하지만 플랫폼노동 산업은 명확한 사용자가 없어 고용 없는 성장이라고도 한다. 플랫폼노동자 다수가 근로계약이 아닌 개인사업자 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최저임금이나 휴일 휴가, 퇴직금, 사회보험 등을 적용받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에게 익숙한 플랫폼노동은 보수가 낮고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제공받고 있다. 게다가 플랫폼노동자들은 기존보다 더 심각한 정도의 시간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도 많다. 대표적으로 일감이나 콜 대기 상태의 시간 압박(being on call)이다. 일감을 찾는 시간이나 응답시간을 놓치면 소득이 상실되기에 항상 긴장 속에 놓여 있다. 재택 근무자들 중 일부는 집에서 대기시간과 노동시간을 혼재하여 지불노동과 가사노동, 일하는 시간 사이의 모호성도 확인된다.

 

특히 플랫폼기업의 고객 서비스 평점이나 리뷰 시스템이 그렇다. 고객 평가는 소득과 일자리에 직결된다. 좋은 평가는 등급 향상으로 연결되고, 본인 소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부 기업은 서비스 평가가 낮은 사람들을 회원 목록에서 탈퇴시키기도 한다. 플랫폼노동자들 스스로 ‘별점 노예’라는 표현은 이를 잘 반영한다. 게다가 작업과정의 실시간 GPS(위치 추적기)나 APP(응용 소프트웨어)을 통한 전자감시기술의 IT통제도 작동되고 있다. 결국 고객에 의한 통제가 단순 통제가 아닌 일자리 상실의 신호인 것이다.

 

 

플랫폼노동, 사회적 보호 필요

이미 플랫폼노동은 국경을 초월하기에 노동법 준수 여부를 모니터링하기 어렵다. 계약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불공정한 대우를 시정할 공식적인 제도도 없다. 일부 고숙련 일자리를 제외하면 중간 수준의 일자리들이 저숙련 플랫폼노동으로 대체될 개연성도 많다. 앞으로 플랫폼노동은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기에 최소한의 권리 보호가 필요하다. 이미 대안적 논의는 시작되고 있다. 시장에서의 표준적인 계약과 수수료 책정, 계약방식이나 고용형태와 상관없는 사회안전망 적용, 데이터 및 사생활보호, 알고리즘과 정보 비대칭성 논의까지 여러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2017) 조사자료에서는 플랫폼 소득자의 68%가 스스로를 단지 소비자 또는 고객과 연결하기 위해 플랫폼 서비스를 이용하는 독립적인 노동자로 생각하고 있는 반면, 26%는 스스로를 피고용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플랫폼노동자를 어떻게 생각할까. 서울시 조사결과(2019)를 보면 다수의 시민은 플랫폼노동자를 노동자보다 자영업자에 더 가깝다고 인식(51.3%)하고 있었다. 다만, 임금노동자나 학생은 상대적으로 자영업자나 가사ㆍ주부에 비해 플랫폼노동을 노동자에 더 가깝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런 맥락 때문일지는 모르겠지만 시민 대부분은 플랫폼노동의 사회적 보호와 가이드라인과 같은 제도적 모색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

 

현재 국내에서는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내에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위원회’에서 2년 동안 노사정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플랫폼노동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지난 2019년 1월 노사정 대응 방향과 협력을 위한 공동의 정책과제에 관한 기본 합의(2019. 2. 18.) 정도를 도출한 상황이며, 일자리위원회 내에 플랫폼노동TF가 꾸려져 운영되고 있다. 한편 지방정부에서는 서울시가 플랫폼노동을 2019년 시민 공론화 과정을 통해 조례제정 정책 수립 등을 제시(2019. 11.)하고 2020년 주요 정책을 준비 중이다. 그 밖에 경기도, 성남시 등에서도 플랫폼노동 관련 사업을 논의하고 있다.

 

한편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서는 플랫폼노동연대를 구성(2019)하고, 조직화와 정책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밖에도 여성노조 미디어콘텐츠창작지회(2019)와 미가맹상태인 라이더유니온(2019)이 설립되면서 플랫폼노동 조직화가 진행 중이다. 이와 맞물린 시기에 배달, 물류, 운송 등 플랫폼업체(운영, 대행사) 중심의 ‘코리아스타트업포럼’(2017)이 만들어지면서 국내 플랫폼 노사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플랫폼노동연대와 라이더유니온은 ’배달의민족‘의 우아한 형제들과 초기업형태 교섭을 신청한 상태다.

 

결국 플랫폼노동의 기존 산업의 디지털 전환이나 새로운 산업의 성장 과정에서 출현한 노동의 형태로 보아야 한다. 문제는 자본의 성장과정에서 이윤은 플랫폼기업이 향유하지만 노동자도 영세사업자도 시민도 편리함과 사업의 확장 이외에 큰 도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 플랫폼노동 관련 정책은 일부 직종에 한해 산업재해 적용만을 검토할 뿐, 종합적인 정책 수립이나 제도개선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표 3-3> 한국 플랫폼노동 제도화 및 정책 과제 방향 검토 영역들

<표 3-3> 한국 플랫폼노동 제도화 및 정책 과제 방향 검토 영역들http://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801/679/001/ca1fb... style="width:959px;height:619px;" />

 

플랫폼노동의 대안적 논의는 비고용기간의 사회적 보호 접근, 사회적 재생산을 위한 소득 안정성과 교육훈련 제공, 고용 위계구조 속 공정한 대우확보, 차별받지 않을 권리, 노동자 발언 및 대표 권리 확보 등이 보장 혹은 적용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조세와 사회보장의 통합시스템 설계와 프로그램을 모색하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디지털 플랫폼 과세’를 통해 플랫폼노동자의 소득과 실업급여, 유급휴가, 교육훈련 등의 비용에 활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프랑스와 미국 캘리포니아(법률), 덴마크와 이탈리아(단체협약), 독일과 이탈리아(사회협약)에서는 플랫폼노동자들에게도 임금노동자들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한 사례도 있다.

 

올 한 해 정부 부처, 국책연구기관이나 학계에서 플랫폼노동 연구를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작년 한 해 동안 토론회만도 10여 차례 있었다. 과잉 연구나 토론회일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변화하는 노동환경에 대응하는 사회적 현상인 것 같다. 다만, 이론적 틀에 천착한 학계, 진정성이 결여된 성과에 기반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와 관심이 아니라, 노동과 시민사회와 함께 논의하는 연구와 정책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이제는 과거 15년 전부터 시작된 특수고용노동 논의를 되풀이하지 않고 당사자들에게 보탬이 되는 연구와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화, 2020/02/11-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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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공약 불이행, 포용적 복지국가에서 가난한 이들이 죽어간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떠나간 사람들

2010년 10월, 서울에서 한 장애아동의 아버지가 목을 맸다. 그는 “아들이 나 때문에 못 받는 게 있다”라며, “내가 떠나고 나면 동사무소 분들께 잘 부탁드린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일용직 노동자였던 그는 아들의 장애 판정 후 재활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동주민센터를 찾았지만 근로능력이 있는 아버지가 있다는 이유로 수급신청을 거절당했다.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가족의 돌봄을 가족들에게 떠넘기고, 최종적 위기에서는 다시 가족 때문에 수급자조차 될 수 없는 제도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2010년 겨울,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을 요구하며 시민사회단체들은 조계사 앞에서 천막 농성을 진행했다. 그해 12월 마지막 날에는 강북에 살던 노부부가 함께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되었다. 그들은 이혼으로 위장한 뒤 1인 가구 수급비로 두 명이 함께 살고 있었다.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이었다. “수급비 가지고는 생활이 안 돼 죽음을 선택한다. 5개월이 넘도록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어보는 자식 있느냐”라는 물음을 유서에 남겼다.

 

2011년 4월, 78세의 김선순 할머니가 시립병원 입구에서 객사했다.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조차 받지 못했던 할머니의 사인은 폐결핵과 영양실조. 의료급여 수급자도 아니었기 때문에 적절한 치료조차 받지 못했다. 평생 가난한 삶과 씨름했을 그녀의 삶은 2평 월세 15만 원 여인숙을 마지막 보금자리로 내주었고, 치료를 구걸하기 위해 찾은 병원 입구에서 스러졌다. 2012년 7월에는 사위의 소득 때문에 수급에서 탈락한 거제에서 이씨 할머니가 사망했다. 그녀는 차례 시청을 찾아 읍소했지만 수급권은 회복되지 않았고, “법도 사람이 만드는데 법이 사람에게 이럴 수 있냐”라는 유서를 남겼다. 바로 그 법은 가난에도 불구하고 가족에게 먼저 도움을 청하라는 부양의무자기준이다.

 

1,842일의 광화문농성

수많은 죽음을 기억하며 2012년 8월 21일,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은 광화문역사 지하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우리의 농성은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고자 하는 노력인 동시에, 그저 죽음으로 들려오는 가난의 증언을 잊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전쟁 50년 만에 이룩한 성장을 자랑하는 사회에서 가난에 쫓겨 죽음에 내몰리는 삶이 공존하는데 우리 사회는 이 죽음에 너무나 무심했다.

 

미담이나 동정으로 소비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법과 제도를 바꿔야 했다. 우리의 농성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이루기 위한 곳이자 곳곳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신호이기도 했다.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되지 않은 세상이 잘못된 것이지 당신의 탓이 아니니, 죽지 말고 같이 살아서 세상을 바꿔보자는 신호를 보내는 ‘벙커’가 광화문역 지하에 마련됐다. 1,842일의 싸움 끝에 우리는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대선후보들의 공약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의 약속으로 받아냈다. 그러나 가난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너무나 아슬아슬한 것으로 만들며, 지금도 사람들은 속절없이 죽어간다.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1호 과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대통령의 약속 이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2017년 대선과 문재인 정부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진행 정도

2017년 대선에서 대부분의 후보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약속했다. 문재인후보는 2017년 3월 22일, 참여연대가 주관한 시민사회단체 공동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인 <개발국가, 재벌독식을 넘어 돌봄사회, 노동존중, 평등사회로>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겠다고 발언했다. 당시 대선에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행동>은 각 정당과 후보들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 대한 약속과 당론채택 여부, 법안 발의 계획에 대해 질문했다. 답변은 다음과 같다.

 

<표1-1>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 대한 2017년 대선 당시 각 후보들의 입장https://lh3.googleusercontent.com/Up9qD780cO3BoUBt5Rw-whuGf2B2CR1O8Jq0tp... />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 이후 100대 국정과제에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2018년 주거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생계 의료급여는 소득하위 70% 이하 노인, 중증가구에 대해서 적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시민사회단체는 단계별로 수행할 수 있으되, 완전 폐지를 전제로 한 급여별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의 순서를 밟을 것을 요구했다. 다시 인구학적 기준으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의 순서를 정한다면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이룩한 근로능력 여부와 관계없이 수급권을 보장한 법 제정의 취지에서 후퇴하며, 사각지대 해소 효과 역시 적기 때문이다. 더불어 임기 내 완전 폐지에 대한 계획을 요구했다. 당시 국가기획위원회(대통령 인수위원회)는 <부양의무자기준 폐지행동>과의 면담에서 100대 국정과제는 당면한 계획만을 담은 것이며, 이후 추가 계획을 제출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후퇴

2017년 8월, 보건복지부는 기초생활보장제도 1차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이 계획을 후퇴시켰다. 2018년 폐지한다는 주거급여 부양의무자기준은 2018년 10월로 시행시기를 미뤘고, 2019년 중증장애인과 노인이 부양의무자인 경우 소득하위 70%로 기준을 완화한다는 계획은 각각 2019년과 2022년으로 미뤄졌다. 2017년 8월 25일,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이 광화문 농성장에 방문해 농성장 영정들에 조의를 표하고,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를 약속했다. 박장관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가 ‘우리 사회 복지가 가야 할 길’이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조속히 폐지를 이행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인 계획으로는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민관협의체’를 만들 것, 그리고 제2차 기초생활보장제도 종합계획에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위한 로드맵을 넣을 것을 약속했다.

 

<표1-2> 맞춤형 급여로의 개편 이후 부양의무자기준 완화 과정 및 계획https://lh4.googleusercontent.com/PZjwrUWFr3520MstbskrYiBmsK66f035jOVO5F... /> 

 

주거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생계 의료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기준 일부 완화가 꾸준히 진행되어 왔지만,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 된 주거급여를 제외하고 기초생활수급자수의 획기적인 변화는 없었다. 2022년까지 계획되어 있던 부양의무자 가구에 노인이 포함된 경우 생계급여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을 미적용하는 완화안은 3년을 당겨 2019년 시행되었지만 수급자 숫자에 큰 차이는 없다.

 

현재 국민기초생활수급자는 187만 명이다. 지난해 주거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전 수급자 숫자가 158만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마치 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 된 주거급여와, 일부 완화에 그친 생계의료급여의 수급자 증감 차이를 보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완화의 서로 다른 효과에 대해서 볼 수 있다. 부양의무자가 중증장애인이나 노인인 경우 생계급여 부양의무자기준을, 중증장애인인 경우 의료급여까지 부양의무자기준을 완화했다지만 그 증감은 거의 의미가 없는 수준에 불과하거나 도리어 하락했다.

 

<표1-3> 주거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전(2018년 9월)과 후(2019년 11월) 급여별 수급자 수https://lh5.googleusercontent.com/MGpWBxMuWdK0e-SNppA76egOH1RUoy0GV5appi... />

 

부양의무자기준 완화, 왜 효과가 없는가?

왜 부양의무자기준 완화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가? 우선 현재 정부의 완화안은 극히 일부 인구집단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중증장애인 가구가 수급을 신청할 때 부양의무자기준을 완화하는 2020년의 완화안은 1만 8천 가구만을 대상으로 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 개선을 위한 여러 가지 모델 중 가장 적은 인구를 수급으로 진입시키는 방식이다.

 

더불어 언뜻 합리적으로 보이는 부양의무자기준 완화안은 상당히 여러 사람들을 제외하고 있다. 중증장애가 아닌 경증의 장애로 판정받은 모든 사람은 여기에서 제안하는 완화안에 포함되지 않는다. 소득중단과 노인성 질환으로 65세 이상의 노인과 별로 다르지 않은 신체, 생활을 가진 장년 빈곤층 역시 해당하지 않는다. ‘만 30세 미만 한부모가구와 보호종료아동’의 경우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한다지만 30세 이후에는 다시 부양의무자기준이 생긴다는 기상천외함을 가질 뿐 아니라, 보호종료아동 본인이 수급을 신청할 때는 해당하지만, 부양의무자가 될 때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세부적 운영 방침도 있다. 가정위탁이나 시설에서 자란 아동이 보호종료 후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왔을 때 수급자인 1촌의 혈족이 있으면 부양의무자가 되는 것은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모호한 경계는 사람들의 복잡한 삶을 담아내는 합리적 기준이 결코 되지 않는다. 부양의무자기준이 완화됐다지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다시 제외된다.

 

<표1-4> 여전히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권을 주장할 수 없는 사람들https://lh6.googleusercontent.com/pMiFFa1a5jIWmPrFMkCq-O7PLFvYTgcHDk_Xbf... /> 

 

복잡한 기준완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뿐만 아니라 지난여름 관악구에서 아사한 한씨 모자의 경우처럼 사회보장제도의 신청 단계에 ‘보증인’을 요구하거나, 부양의무자의 임대차계약서나 월급명세서처럼 구하기 어려운 서류들을 일방적으로 요구받는 경우가 빈번하다. 부양의무자의 금융정보제공동의서나 관련 서류를 준비하지 못해 신청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조사나 계측조차 되지 않지만 여전히 많다. 정부는 실제 부양 받지 못하는 경우 지방생활보장위원회를 통해 적극적으로 보장을 실시하고 있다지만 지방생활보장위원회에 판정을 의뢰한다고 수급신청을 접수해도 ‘지생보위 판정은 본인이 원한다고 의뢰할 수 있는게 아니다’라고 판정의뢰를 거절하거나, 신청서를 접수하지 않고 동주민센터의 초기상담을 통해 구두로 수급신청을 거절, 탈락시키는 일은 지금도 빈번하다.

 

성북 네 모녀, 그리고 인천에서 모녀와 친구가 사망하고, 강서구에서 부양의무자에 의한 가족 살해가 일어났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대책은 오히려 반대로 향했다. 구체적인 계획은 나오지 않았지만 보건복지부장관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여러 차례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했으며, 2차 종합계획안에 싣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느린 속도와 뿌연 계획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단체와 당사자들이 믿고 기다린 것은 오로지 2020년 발표되는 2차 기초생활보장제도 종합계획안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9월 이 2차 종합계획에 대한 언급이 수정됐다. ‘생계급여’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논의를 한정시켰다. 보건복지부는 뒤늦게 이에 대해 ‘생계급여 등’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억지를 부리지만 국민들을 기만하는 일일뿐이다. 약속에 대해 계획으로 답해야 하는 보건복지부는 교묘히 일정과 약속을 후퇴시키는 것으로 자신의 책임을 저버리고 있다.

 

지난 10월 17일,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공약 이행 의지에 대해 대통령에게 다시 물으며 청와대 앞에서 농성에 들어갔던 이유는 바로 보건복지부의 계획 후퇴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공약 당사자인 대통령에게 질의를 했으나 돌아온 것은 ‘재정적 뒷받침’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답변이었다. 농성 64일 만인 12월 19일, 청와대 농성은 마무리되었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가난으로 인한 죽음과 빈곤의 대물림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

당황스러운 것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가 대통령의 공약이었다는 점이다. 공약하고 선출된 대통령이 공약 이행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올해 11월 CBS의 의뢰로 진행된 리얼미터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55.5%의 찬성이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수행 지지도보다 높은데, 어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인가? 국민의 가장 마지막에 변화하겠다는 정치는 누구도 대표할 수 없다. 문재인정부는 가장 가난한 국민들의 요구에 어떤 의지나 책임감도 보이지 않았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위한 청와대 농성단은 청와대에 총 4차례 공개서한을 보냈다. 두 달 여간 아무런 답변이 없어, 지난 12월 5일 열린 <제5차 포용복지포럼>1) 입구에서 보건복지부장관과 청와대 김연명 사회수석에게 서한을 전달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은 경찰의 봉쇄 속에 진행됐고, 서한문 전달을 위해 이동하는 길은 경찰 방패에 가로막혔다. 결국 서한은 전달했지만 이렇게 전달된 서한에 대한 청와대의 공식적인 답변은 없었다.

 

“아버지와 나의 미래는 양립할 수 있을까?”

치매에 걸린 49세 아버지의 보호자가 된 조기현씨는 아빠의 발병과 간병에 대한 기록,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책으로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아버지와 나의 미래는 양립할 수 있”을 것인지 묻는다. 어린 시절 이혼한 뒤 아버지의 형제라야 남 같은 사이인 이들 부자에게 법적 권한을 비롯한 최종적 ‘보호자’는 서로가 된다. 일용직 노동과 대체복무를 위한 공장일에 매진하면서도 치매 아버지를 간병해야 했던 그의 삶은 전장이었다. 이 책에서 그는 박능후 장관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약속했고, 곧 ‘나를 괴롭힌’ 제도가 사라질 것이라 전망했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증도의 치매라 할지라도 이는 중증장애가 아니고, 치매를 앓고 있지만 그는 노인도 아니다. 조기현씨 역시 중증장애인이나 노인이 아니기 때문에 조기현씨에게 기준 이상의, 그러니까 그의 상황을 기준으로 2019년 기준 월 170만 원 이상의 소득이 생기면 ‘부양능력이 있는’ 부양의무자가 되며, 252만 원 이상2)의 소득이 생기는 순간 그의 아버지는 수급에서 탈락한다.

 

우리 사회는 가족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짐 지우고 있다. 사회가 함께 해야 하는 양육을 비롯한 돌봄은 가족들, 가족 안에서도 낮은 위계의 성별이나 신체를 가진 사람들에게 돌봄의 책임은 전가된다. 최종적으로 빈곤의 위기에 빠졌을 때 최저생계비 이하의 빈곤층이 된 사람의 소득에 대한 ‘의무’가 가족들에게 생긴다. 가난한 이들의 현실에서 보면 부양의무자기준은 부양능력이 있는 부양의무자가 되는 순간 오히려 서로의 삶이 양립할 수 없는 조건이 된다.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를 요구하는 1인시위 피켓을 들고 있는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https://lh4.googleusercontent.com/kt0KKhZp9Zf-5zew_dGR09NpTTQardRNipvIXB... />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를 요구하는 1인시위 피켓을 들고 있는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사진 = 빈곤사회연대>

 

시효만료, 정상가족 중심 복지

우리나라의 가족부양의 원칙은 가장 가난한 가족들에게 가장 엄격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부양의무자기준이 아니더라도 가장 힘든 가족들이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가장 어려운 상황에 빠지고 있다. 주지하듯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며 가장 시급한 조치다. 이조차 이행하지 못하는 정부가 빈곤문제 해결이나 포용을 운운할 자격 없다.

대통령의 선언 이후 이행되지 않은 복지제도 아래 빈곤층이 고사하고 있다.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에서 탈락한 뒤 친구가 자살했다며 빈곤사회연대로 전화를 건 여성은 대통령이 약속만 지켰어도 내 친구는 살았을 것이라고 분노했다. 과연 문재인 대통령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 할 수 있는가? 내년 7월 마련될 2차 종합계획에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위한 로드맵을 마련하는 것은 사회와 정치가 약속한 최소한의 목표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각별한 관심과 싸움이 필요하다.


1) 제5차 포용복지포럼: 해외석학과의 만남 – 소득분배 흐름과 혁신적 포용국가의 과제(한국보건사회연구원 주관, 서울 포시즌스 호텔)

 

2) 수급가구와 부양의무자가구가 각각 1인가구일 때, 더불어 수급자가구의 가구원이 전원 근로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을 때 부양의무자의 판정소득액에 따른 수급탈락 기준선

화, 2020/01/07-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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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제정은 사회복지사의 과제다

- 사회정의 실현을 약속한 사회복지사들께 드리는 요청의 글

 

김지혜 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 교수

 

청소년 성소수자에 관한 연구의 수상한 단절

2006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당시 한국청소년개발원)의 연구과제로 ‘청소년 성소수자 생활실태 조사’를 공동으로 수행한 적이 있다.1) 당시 135명(동성애자 126명, 양성애자 9명)이 설문조사에 참여했고 이 중 6명을 인터뷰했다. 연구결과, 당시 청소년 성소수자는 평균 13.8세에 성정체성을 인지하였고, 부모나 교사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리는 일이 매우 적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괴롭힘 당한 경험이 많고 우울 수준이 높았으며 응답자 중 47.4%가 자살시도를 경험하는 등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도움을 요청할 곳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결과를 토대로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서비스와 제도개선 등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하나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수행된 연구였던 만큼, 후속 연구가 나왔다면 본격적으로 청소년 성소수자에 관한 서비스와 제도들이 발전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후 더이상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정책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반복해서 한국사회의 청소년 성소수자가 겪는 차별 문제를 지적하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하도록 권고했지만, 이 역시 정책연구로 이어지지 않았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른 정부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2009년부터 매년 ‘아동·청소년 인권실태조사’를 시행하는데, 여기에도 성소수자에 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연구용역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국책연구기관에서 정책의 대상으로 청소년 성소수자를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 주제에 관심 있는 연구자가 없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이 있기도 하다. 2015년경 정부출연연구기관에 ‘청소년 성소수자에 관한 국제적 연구 및 정책 동향’을 연구하고자 과제를 제안했다가 선정에서 탈락된 적이 있다. 물론 연구계획의 부족함도 있었겠지만 그 결정과정에서 나온 검토내용이 놀라웠다. 당시 관계 부처에서 이 제안에 대해 ‘무분별한 국제동향에 대한 도입’으로 ‘정책기조에 부정적인 혼선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정책연구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보냈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국제동향’이라니, 국내외의 동향을 검토하는 것은 연구의 기본인데 제안을 거절하는 이유로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다. 

 

마치 청소년 성소수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청소년 성소수자에 관한 이 이상한 연구의 단절은 2007년 차별금지법안 훼손사태와 상관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정부발의로 준비된 차별금지법안이 차별적으로 훼손되고 결국 폐기되는 과정에서 성소수자 이슈가 중심에 있었다. 보수기독교계가 성소수자 차별금지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자, 정부가 ‘성적지향’을 비롯해 학력, 병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언어, 출신국가,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 등의 차별금지사유를 삭제한 것이었다. ‘성소수자를 차별해야 하므로 차별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반대한다’는 주장을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차별금지법은 제정할 수 없는 법이 되었다. 

 

규범적으로 생각하면 차별을 옹호하는 주장이나 특정 종교의 교리를 국가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다원주의에 기반한 민주주의를 채택한 헌법에 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성소수자를 차별하라’는 주장을 수용했다. 그 구체적인 실천은 성소수자에 관한 내용을 정책에서 삭제하는 것이었다. 교육부는 2015년 발표한 ‘국가 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서 ‘성적지향’이라는 용어와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내용을 삭제하도록 하였다. 성소수자에 관한 언급을 불온하거나 정치적인 것처럼 취급함으로써, 성소수자를 실존하는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정책의 대상에서 배제해 버리는 고의적인 차별을 행해왔다.  

 

당연히도, 국가가 청소년 성소수자를 외면한다고 이들이 현실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삶은 계속되고 있었고 또 죽음도 있었다. 2009년에는 한 동성애자 청소년이 집단괴롭힘으로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청소년은 또래로부터 ‘여성스럽다’며 놀림 받고, “걸레년” 등의 욕설과 “스치기만 해도 더듬더라”는 등 소문에 시달렸으며, 수업 도중 지우개 가루와 감기약 시럽을 뿌리는 일을 당하는 등 폭력을 당했다. 심리검사에서도 우울상태가 심각하고 자살충동을 보였지만 학교에서는 오히려 피해자인 청소년에게 전학을 권했던 상황이었다.2)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괴롭힘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구용역으로 수행된 조사에서도 나타났다. 설문에 참여한 청소년 성소수자 중 54.0%가 다른 학생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했고, 20.0%가 교사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차별과 괴롭힘을 경험한 응답자의 58.1%가 우울증을 호소하고 19.4%가 자살시도를 한 경험이 있었다. 혐오발언과 차별, 아웃팅의 두려움, 교사의 자퇴 종용, 트랜스젠더의 경우 성별이 드러나는 학교환경 때문에 학교생활이 어려워 학교를 그만 둔 사례 등도 보고되었다.3)

 

청소년 복지체계에도 청소년 성소수자는 없다

청소년 성소수자가 가정, 학교, 사회에서 혐오, 차별, 괴롭힘 등으로 상당한 수준의 고통을 겪는 현실이 엄연히 드러났음에도, 공식적인 청소년 복지체계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는 고려되지 않았다. 청소년복지지원법은 가정이나 학교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른바 ‘위기청소년’을 위한 상담, 교육, 의료, 활동 등의 지원을 마련하고 청소년 쉼터와 같은 보호서비스를 두고 있다. 하지만 국가는 그러한 위기 상황이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과 폭력에 의해 초래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대안을 마련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대신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민간이 감당해야 했다. 2013년 5월부터 인권활동가들이 국내외 모금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후원과 민간재단의 지원을 받아 2014년 12월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을 개소했다. 위기 상황에 놓인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해 위기상담, 심리상담, 생필품지원, 의료지원, 법률상담 등을 제공하고,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으로서 쉼터를 제공하며, 다른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모임을 마련하였다. 청소년 성소수자 서비스를 위한 연구사업과 청소년 기관, 교사, 양육자를 위한 교육 및 캠페인 등의 활동도 전개한다. ‘띵동’의 설명대로,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위기에 침묵하는 사회”4)라는 산을 넘어가는 일을 해 온 것이다. 

 

아직까지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공식적인 지원기관은 전국에서 ‘띵동’ 하나다. ‘띵동’을 이용할 수 없는 전국의 더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밝혀도 되는 안전한 공간을 찾지 못한 채 일상적인 혐오와 차별에 노출되어 생활하고 있다. 수많은 청소년 기관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명시적으로 청소년 성소수자를 환대하고 포용하는 안전한 공간임을 표방하며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을 찾기는 쉽지 않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정부가 귀 기울인 지난 14년은, 사회가 청소년 성소수자의 어려움을 빤히 보면서 차별을 방치하고 묵인한 아주 긴 시간이었다. 

 

사회복지사는 사회정의 실현의 의무를 다 하였을까

청소년 성소수자를 비롯해 성소수자에게 가해진 차별에 대해 사회복지사는 책임이 없을까? 모든 사회복지사가 준수할 의무가 있는 ‘사회복지사 윤리강령’에는 차별금지조항이 있다. “사회복지사는 클라이언트의 종교, 인종, 성, 연령, 국적, 결혼상태, 성 취향, 경제적 지위, 정치적 신념, 정신·신체적 장애, 기타 개인적 선호·특징·조건·지위를 이유로 차별 대우를 하지 않는다.”(강조는 필자)고 명시한다. 여기서 ‘성 취향’은 성적지향(sexual orientation)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추측건대 외국의 사례를 참조해 번역하면서 용어가 잘못 사용된 것으로 보이므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복지사로서 차별과 폭력을 당하고 있는 성소수자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회적으로 만연한 편견을 제거하고 평등을 실현하도록 제도적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냈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분명 사회복지사윤리강령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저들과 함께 일하며 사회제도 개선과 관련된 제반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고 선언하고, “사회정의 실현과 클라이언트의 복지 증진에 헌신하며, 이를 위한 환경 조성을 국가와 사회에 요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미국의 경우, 성소수자 차별에 대항하는 일에 사회복지사들이 분명하게 입장을 표명해왔다. 전국사회복지사협회(NASW)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기반한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하는 지역·주·연방·국제적 정책과 법의 채택을 지지한다.”는 공식입장을 채택했다.5) 또 “사회복지사라고 밝히는 사람이나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히는 기관에 의한 성적지향 변화시도 또는 이른바 전환 치료의 사용을 규탄한다.”고 밝혔다.6) 2013년 연방대법원의 동성혼 사건 판결에 관해서도 전국사회복지사협회는 “모든 성소수자와 그 가족의 지위와 복지를 향상시키는 정책과 실천의 발전에 헌신한다.”고 공식적으로 옹호했다.7)

 

지난 15년 동안 ‘차별금지법 반대’의 구호는 어떤 의미에서 ‘성소수자 차별’의 구호이기도 했다. 정부와 국회가 ‘사회적 합의’를 말하며 차별을 묵인하고 동조하는 동안, 그 어느 때보다 노골적이고 광범위하게 성소수자 차별이 이루어졌다. 한국의 사회복지사협회는 그동안 성소수자 차별에 관해 어떤 입장을 표명해 왔는가? “사회복지사는 … 특히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의 편에 서서 사회정의와 평등·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앞장선다.”8)는 원대한 선언 뒤에서 과연 어떻게 행동해왔는지 진지하게 물어야 할 때다. 

 

사회복지사협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를

차별금지법은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이 비로소 평등하게 대우받을 권리를 보장받게 만드는 기초가 되는 법률이다. 현장에서 만나는 클라이언트가 맞닥뜨린 높은 사회적 벽을 한 번이라도 실감한 적이 있다면, 그 벽을 부수는 법이 될 것이다. 더이상 그 벽 앞에서 클라이언트에게 체념하라며 토닥이는 대신, 불합리하게 낙인찍고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를 함께 바꾸자고 말하는 법이다. 사회복지사로서 진정으로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의 편”에 서는 일이며, “사회정의와 평등·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다. 

 

지난 6월 14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청원이 10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시민의 힘으로 차별금지법을 국회의 테이블로 끌어 올렸다. 이어 16일에 이상민 의원 등 24명이 ‘평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표했다. 작년 6월 장혜영 의원 등 10인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에 이어, 여당이 주도가 되어 발의한 법안이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본격적으로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이 논의될 것을 기대한다. 이번에는 누구를 차별하라는 주장보다 어떻게 모든 사람의 권리인 평등을 실현할 것인가에 국회가 고민과 노력을 기울일 것을 바래본다. 

 

이 역사적인 시점에, 나는 사회복지사의 한명으로서 한국사회복지사협회와 전국의 사회복지사와 사회복지분야에서 활동하는 모든 분들께 정중히 요청하고자 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비롯해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발표하기를 바란다. 사회복지 관련 학회와 각종 모임에서도 차별을 철폐하고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법, 정책, 서비스를 채택하도록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면 좋겠다. 이미 곁에서 만나고 있는 사회복지사와 클라이언트 중에 성소수자가 있음을 기억하고, 그 존재를 외면하고 차별을 묵인해 온 이 잔혹한 정치를 멈추도록 사회복지사들이 앞장서기를 희망한다. 

 


  1. 강병철·김지혜 (2006). 청소년 성소수자 생활실태 조사. 한국청소년개발원. 




  2. 한가람 (2014). “동성애혐오성 집단괴롭힘으로 인한 학생 자살의 학교 측 책임”,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제104호 하반기. 




  3. 장서연 외 (2014).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 




  4.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연혁, https://www.ddingdong.kr (2021. 6. 16. 방문).




  5. National Association of Social Workers. (2008). Transgender and Gender Identity Issues. In Social work speaks (9th ed., pp. 337-345). Washington, DC: NASW Press (National Association of Social Worker (2015). National Committee on Lesbian, Gay, Bisexual, and Transgender Issues Position Statement: Sexual Orientation Change Efforts (SOCE) and Conversion Therapy with Lesbians, Gay Men, Bisexuals, and Transgender Persons 에서 재인용) 




  6. National Association of Social Workers. (2014). Lesbian, Gay, and Bisexual Issues. In Social work speaks (10th ed.). Washington, DC: NASW Press (National Association of Social Worker (2015). National Committee on Lesbian, Gay, Bisexual, and Transgender Issues Position Statement: Sexual Orientation Change Efforts (SOCE) and Conversion Therapy with Lesbians, Gay Men, Bisexuals, and Transgender Persons 에서 재인용)




  7. NASW statement on Supreme Court’s same-sex marriage rulings, Jun 26, 2013, https://www.socialworkers.org/News/News-Releases/ID/268/NASW-statement-o... (2021. 6. 18. 방문).




  8. 사회복지사 윤리강령.



금, 2021/07/02-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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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1)의 3대 사회보험 현황 및 정책 제언

 

김기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

 

들어가며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칠 수 있다. 또 실직하고, 늙을 수 있다. 이와 같은 개별적인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사회보장제도가 있다. 물론 사회보장제도가 내국인에게 한정될 이유는 없다. 국내에 들어와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산재와 실직 등의 문제는 언제든 닥칠 수 있다. ‘국민국가 성원 자격의 위계에서 가장 아래쪽에 머무는’(설동훈, 2017) 이주노동자들은 사회적 위험에 대한 노출 수준이 더 높을 수도 있다. 

 

이주노동자를 위한 사회보장제도를 점검하기 위해서는 비전문취업(E-9), 방문취업(H-2) 노동자들의 독특한 법적 지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사회보장기본법 8조는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사회보장제도를 적용할 때, 상호주의의 원칙에 따른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여기서 상호주의란, 흔히 국가 사이의 사회보장협정의 기초가 되는 원칙인데, 상대편 나라에서 우리나라 국민이 대우받는 수준과 동일하게 우리나라에서도 이주민을 대우한다는 의미이다(조성혜, 2020). 한국인이 태국에서 고용보험에서 배제된다면, 한국의 태국 노동자에게도 고용보험을 적용할 이유는 없다는 의미다. 물론 이와 같은 원칙을 한국의 이주노동자에게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이른바 고용허가제를 통해서 한국땅을 밟은 이주노동자 집단의 특수성 때문이다. 이들은 산업현장에서 일손이 부족한 한국의 필요에 따라 한국을 방문해 일정 기간 고용이 됐다. 바꾸어 말하면, 한국의 필요에 따라 기한을 정해서 유입된 인구들이다. 본국보다 근로소득 수준이 높은 한국의 일터를 찾는 이주노동자들의 경제적인 이해도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호주의의 원칙을 이들에게 적용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이들에 대한 사회보장제도 운용은 제도의 원칙, 이들의 독특한 법적 위상, 한국 사회의 수용성 등을 골고루 반영하는 수밖에 없다. 이글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산재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을 둘러싼 현황을 간단히 짚고, 관련한 정책 제언을 시도한다. 

 

이주노동자 산업재해보험   

 

우리나라의 산업재해보상제도는 적용 대상을 ‘국민’으로 한정하지 않고, ‘근로자’(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조)로 정하고 있어 이주노동자를 배제하지 않는다. 한국의 사회보험 가운데 유일하게 내외국인의 구분이 거의 없이 적용되는 법이다(조성혜, 2020). 그렇지만, 이주노동자가 체감하는 산재보험의 적용 수준은 낮은 편이다. 이주노동자 가운데 본인의 사업장이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다고 답한 비율이 46.9%였다 (김기태 외, 2020). 통계청 공식통계에서는 그 비율이 높다. 2019년 이주민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의 결과를 보면, 비전문취업 노동자의 경우, 본인 사업장이 산재보험에 가입됐다고 답한 비율이 91.9%였다. 미가입이 5.2%, 모름이 2.9%였다. 물론, 두 조사 모두에서 사업장의 실제 산재 가입 여부를 확인한 것은 아니다. 이주노동자가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산재 가입 여부를 물어본 것이므로, 사업장의 실제 산재 가입률이 더 높을 수 있다. 

 

이주노동자의 취약한 노동여건을 고려하면 산업재해보험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인구는 최근 늘어나는 추세다 (<그림 3-1> 참고). 이들의 산업재해 현황은 통계의 수치보다도 더 심각할 것으로 추정된다. 외국인 산업재해의 경우 은폐율이 높기 때문이다. 이유는 두 가지로 풀이된다(김기태 외, 2020). 첫째,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일하는 사업장들이 대부분 상대적으로 영세한 작업장이기 때문이다. 둘째, 이주노동자들이 안전에 관해 소통하는 데 내국인 노동자보다는 미숙한 탓도 있다. 이주노동자의 경우, 업무상 질병인정률도 낮다. 지난 2016년 내국인 노동자의 경우 업무상 질병 인정률이 평균 44.1%였다. 반면, 이주노동자는 2016년 인정률이 38.6%로 내국인보다 낮다(박선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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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에도 이주노동자들의 몸은 계속 훼손되고 있다. 지난 2020년 1월~2021년 6월 중대재해 사망자 1113명 가운데 135명(12.1%)이 외국인이었다(이상서, 2021). 이주노동자의 전체 국내 노동자 대비 비율(3.9%)을 고려하면, 이주노동자의 사망비율은 3배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를 막기 위한 정책은 국내 취약 노동자를 위한 산업재해 방지 정책과 대부분 일치한다. 내국인 저임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다수 일하기 때문이다. 산업재해 방지 정책은 국적을 가라지 않고 모든 저임노동자에게 적용된다. 이를테면, 사업장 작업 환경 개선, 산업안전 교육 내실화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주노동자에 한정한 산업재해 관련 정책을 한가지만 제시하자면, 현행 이주노동자 배정 과정에서 점수제에 대한 조정이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지난 2012년부터 점수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싶은 사업장들은 일정한 기준에 따른 점수를 부여받은 뒤, 이에 따라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지를 통보받게 된다. 

 

점수의 배점 항목을 보면, 성폭행은 10점, 폭행, 폭언, 성희롱은 5점, 임금체불 및 근로조건 위반 및 기타 사업주 귀책사유는 3점의 감점을 받게 된다. 그러나, 사망 재해 2년 연속 발생에 대한 감점은 2점에 불과하다(고용노동부, n.d.). 주의할 점은 일반 재해에 대한 감점은 없고, 사망 재해에 한정해서 감점이 있다는 점이다.2) 또 산재 은폐 또는 보고의무 위반 사업장에 대한 감점 역시 1~2점이다. 특히 이주민에게 자주 발생하는 산재의 특성을 고려해서 산업재해에 대한 감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주노동자의 국민연금

 

국민연금은 상호주의가 적용된다. 한국과 맺은 사회보장협정의 내용에 따라 국민연금의 적용여부가 달라진다. 중국,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등 3개국은 사업장과 지역 모두 당연가입이 적용된다. 사업장은 당연가입이 적용되지만, 지역은 제외되는 나라는 키르기스스탄, 몽골, 인도네시아, 태국, 라오스 등 5개국이다. 사업장 가입 및 지역 가입이 모두 적용 제외되는 나라는 7개국으로 베트남, 캄보디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미얀마, 티모르 등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국내에서 장기체류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동남아 출신 비전문취업(E9) 노동자들은 수급대상이 되기 힘들다. 가입기간이 10년 이상이고 연령이 60세 이상이라는 일반적인 수급요건을 충족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국민연금으로부터 배제할 이유는 없다. 연금수급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가입자에게는 출국할 때 반환일시금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반환일시금의 액수는 가입자가 낸 연금보험료 총액에 일정한 이자를 더한 액수다. 어차피 낸 만큼만 돌려받는다면 이들을 굳이 국민연금에 가입할 이유가 적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국민연금 보험료는 사업주가 보험료의 절반(4.5%)를 납부한다. 따라서 외국인노동자가 국내 체류를 마치고 반환일시금으로 받는 액수는 본인이 납부한 보험료의 총액의 두배를 넘게 된다. 이주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들을 국민연금에서 포괄할 필요가 있다. 이들을 국민연금에서 배제한다면, 이는 외국인 고용법상 차별금지 원칙에 어긋난다(조성혜, 2020). 

 

국민연금과 관련해서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는 사업주가 국민연금을 미가입하거나 체납한 경우다. 이에 따라 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이 본인이 납입한 국민연금 보험료의 원금도 돌려받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간다(국민권익위원회, 2013). 이와 같은 문제점은 해당 사업장에 대한 제재의 강화를 통해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국민연금법 128조에서는 이와 같은 사업장에 대해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규정이 집행된 사례는 드물다(김기태 외, 2020). 현재는 연금보험료 체납 사업장에 대해서 독촉고지 및 체납업무 안내 등의 조치만 이뤄질 뿐이다. 

 

이주노동자의 고용보험

 

일부 국내거주(F2) 및 영주(F5)자격을 제외한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고용보험 실업급여의 임의적용의 대상이 된다. 즉, 본인이 신청한 경우에만 실업급여 수급 대상이 된다. 이주노동자들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50%에 이르지 못한다(김기태 외, 2020). 이에 따라, 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자 변경 기간 동안에 소득 단절에 따른 어려움을 겪게 된다. 2013년 이전에는 이주노동자의 전용보험인 출국만기보험제도가 회사를 떠나는 이주노동자의 퇴직금 구실을 했다. 2014년 법 개정 및 시행에 따라서 이주노동자들은 출국한 다음에야 출국만기보험금을 받게 됐다(윤지영,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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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를 위한 고용보험제도의 개선 방향으로, 고용보험이 이주노동자를 포괄하는 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3) 지난 2020년 고용보험법 10조의 2가 개정되어 비전문취업(E9)과 방문취업(H2) 이주노동자는 고용보험 가운데 고용안정·직업능력개발사업 가입이 의무화된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고용안정 및 직업능력개발 부분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을 포괄하면서, 고용보험의 주요한 축인 실업급여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배제할 이유는 적다. 상대적으로 작업장 선택이 자유로운 H2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최대 3개월 동안의 구직 기간이 보장된 E9 노동자들도 실업 시에 소득 단절이라는 문제를 겪는 것은 내국인 노동자들과 다르지 않다. 

 

또한, 고용보험에 이미 임의가입된 비전문취업(E9) 노동자들에 대한 구직급여 지급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이 연구의 분석 결과를 보면, 고용보험 보험료를 낸 이주민 구직자 가운데 구직급여를 받은 비율은 13.5%에 불과했다(김기태 외, 2020). 

 

나가며

 

지금까지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장제도를 건강보험을 제외한 3대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3대 사회보험은 실업, 산업재해, 노령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보장제도이지만, 그 안에서도 이들은 일정한 배제의 대상이 됐다. 이들을 포괄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한가지 첨언하겠다.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의 개선과 아울러, 이들의 작업 및 주거 환경 개선에 대한 노력도 필요하다. 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최저보다 낮은’ 노동조건에서 일하고, ‘최저보다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이주와 인권 연구소, 2019). 지난해 12월에는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 속헹씨(31)가 숙소인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작업현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부당해고, 폭행, 성폭력 등의 극악한 관행들은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 (<그림 3-3> 참고). 기본적인 인권 보장의 토대 위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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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에서는 비전문취업(E-9), 방문취업(H-2), 재외동포(F-4) 체류자격을 지닌 이주노동자로 대상을 한정한다. 참고로, 비전문취업 노동자는 대부분 동남아 노동자들이며, 방문취업 및 재외동포 노동자

들은 중국동포들이다.

2) 점수제 도입 초기에는 산재 발생에 대한 감점이 있었으나 사라졌다. 산재 발생으로 인한 불이익은 산재 은폐로 이어진다는 우려에 따른 결과였다(박선희, 2018).

3) 고용보험의 실업급여를 이주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안에 대한 다른 의견도 있다. 조성혜(2020)는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 변경이 제한되므로 실업의 가능성이 적고, 설혹 이직을 하더라도 구직활동이 가능한 기간이 3개월 이내인 점을 고려해서, 실제로 실업급여를 수급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지적했다. 따라서 이들은 고용보험료만 내고 급여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점을 고려해서, 체류기간이 아직 경과하지는 않았지만 실직 상태에 있는 이주노동자에 대해서 출국만기보험금을 일부 지급하는 안을 제시했다. 이 또한 실업 중인 이주노동자를 위한 소득보장제도로 검토할 여지가 있다. 정책 마련을 위해, 이주노동자의 실업 빈도 등에 대한 현황 파악 및 검토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김기태, 곽윤경, 이주미, 주유선, 정기선, 김석호, 김철효, 김보미 (2020) 사회배제 대응을 위한 새로운 복지국가 체제 개발. 세종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상서 (2021.8.3.) “최근 1년 반 동안 중대재해 사망자 12%는 외국인.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10801059600371?input=1195m에서 인출

설동훈. (2017). 한국 내 이주민의 권리 보장: 동향과 쟁점, 복지동향 12월호 DOI: www.peoplepower21.org/Welfare/1539643에서 2019. 3. 5. 인출.

조성혜 (2020) 외국인근로자의 사회보장법상 지위_외국인고용법이 사회보장법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사회법연구. 40. 35-84.

박선희. (2018). 이주노동자 산업재해 실태. 2018 노동자 건강권 포럼 발표 자료. 95-100 (일과 건강,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주최) 

고용노동부. (n.d.). 고용허가제 정보 가운데 점수제 소개. https://www.eps.go.kr/eo/ScoreInfo.eo?tabGb=03에서 2021.8.23. 인출

국민권익위원회. (2013). 외국인근로자 국민연금 체불방지 방안. 국민권익위원회. 

윤지영. (2014). 이주노동자 퇴직급 출국 후 수령제도의 도입과 문제점. 복지동향. http://www.peoplepower21.org/Welfare/1224831에서 2020. 8.22. 인출.

 

이주와 인권 연구소. (2019). 최저보다 낮은: 2018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주거환경 실태조사. 부산: 이주와 인권 연구소.

 

목, 2021/09/02-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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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진료와 지역의료의 실험

- 집을 찾아가는 의료가 만드는 다른 가능성

 

홍종원 방문의료클리닉 건강의집의원 대표원장

 

바람의 빛깔


"자기와 다른 모습을 가졌다고 무시하려고 하지 말아요. 그대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요."
바람의 빛깔, 포카혼타스OST


 

가을이 되니 자연스럽게 올 한해 지나온 일들이 머릿속에 스친다. 존재감 없이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 삶의 신조인데 겁도 없이 방문진료 전문 의원을 개원해서 여러 사람들의 집을 찾아다니고 있다. 헤매고 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우왕좌왕하고 있다. 집만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배드민턴 치시는 분을 따라가고 하모니카 부는 모임에 간다. 방문을 하는 분들이 중증 장애인이기에 휠체어를 타고 배드민턴을 쳤고, 2층에서 1층으로 까지 하모니카 부는 분의 휠체어를 옮기는 것을 도와드렸다. 운 좋게 인연이 닿아 집을 찾고 있는 종국씨는 척수장애로 전동휠체어를 타고 생활하시는 분이다. 말씀이 많은 분이 아니라 항상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할 지 막막함을 느끼는 분 중 한 분이다. 그래도 차근차근 건강상태를 점검하였고 혈액검사를 통해 당뇨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성질환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려드리고 생활 습관에 대해서 질문하고 또 조언하였다. 집에서 진료 하다보면 의학 상담만하는 것이 아니라 식습관, 음주, 취미 생활, 사회적 관계망 혹은 신변잡기 이야기까지 한다. 그렇게 대화하던 중에 대학로에서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힘들다고 하셔서 몇 번 가다 안 가시려고 하시나 걱정했다. 노래가 어떤 약보다도 좋은 치료라는 생각에 나름대로 지속하시도록 격려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종국씨 집을 드나들었다. 다행스럽게 혈액검사 소견이 호전 되어 서로 기분 좋은 관계를 이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공연 소식을 알려주셨다. 노래 연습이 힘들다고 하셔서 그만두시는 것은 아닐지 조마조마 했는데 공연 소식을 전해주시니 정말 반가웠다. 조심스레 언제, 어디서 하는지 여쭤보았다. 간다고 하면 부담스럽게 느끼실까봐 대단하시다고 잘하실 거라고 격려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공연 날이 되었다. 이 집, 저 집 다니느라 정신없이 살고 있지만 장소와 시간을 수차례 확인하여 공연을 보러 갈 여유를 만들었다. 대학로 이음센터 5층 공연장에 승강기를 타고 딱 내렸는데 마침 종국씨가 있었다. 반갑게 인사드렸다. 종국씨는 깜짝 놀라며 "어떻게 오셨어요." 하신다. "인터넷으로 찾아봤어요. 유명하시던데요." 종국씨가 속한 중창단은 한 장애인자립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문화 프로그램 일환으로 탄생한 팀이었다. 스치듯이 말해준 이야기를 듣고 미리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공연관련 정보를 확인한 터였다. 겸손히 말하였지만 이 팀은 버스킹도 하고 가요제에서 상도 탄 실력파 팀이었다. 종국씨는 뒤 늦게 합류한 팀원이었다. 공연장에 온 아내분과 자녀분도 만나 인사 나누고 조용히 뒷자리에 앉았다.

 

멤버이자, 장애당사자인 장애인자립지원센터 센터장이 사회를 보며 공연을 시작하였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순수 아마추어라고 소개를 하고 노래 중간 중간 "들을만하시죠."하고 겸손하게 말하였다. 실상은 꽤 실력 있는 중창단이었다. 노래를 듣는데 지난 시간이 떠오르며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그들이 장애인이서 특별히 감동을 받은 것이었을까? 우리 사회는 정상과 비정상을 철저하게 갈라 인간 사회에 층위를 만들고 자기와 다른 모습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이 일상이다.1) 나 역시 인지하든 못하든 차별의 시선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실 의사란 직업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나누고 비정상을 정상화 하는 역할을 한다. 중증 장애인들의 집을 찾으며 스스로는 다른 의사가 되고자 했다. “의사가 뭐 이래? 약도 안주고” 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집을 찾아가는 의료는 다른 의료여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8개월 동안 장애인 대상자를 만나며 장애란 단어 자체를 쓰지 않으려 했다. 내가 다시 그들을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으로 호명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치료 대상으로 그분들을 대하지 않고 그저 이웃이자 친구가 되고 싶었다. 치료가 시급한 문제가 있다면 해결하고자 노력하였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정상(normal)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다른 점(비정상성) 덕분에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 덕분에 아픈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

 

공연 사회자는 종국씨의 솔로 공연을 앞두고 소개하며, “이 분이 경추장애에요. 배에 힘을 못줘요. 그런데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합니다.”고 소개하였다. 그랬다. 노래를 정말 잘하였다. 사회자는 노래가 끝나고 “노래 잘 하죠? 배에 힘을 못줘도 이렇게 잘 합니다. 여러 분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노래를 못하는 비장애인인 나에게 희망을 전해주었다.

 


"얼마나 크게 될지 나무를 베면 알 수가 없죠. 서로 다른 피부색을 지녔다 해도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죠. 바람이 보여주는 빛을 볼 수 있는 바로 그런 눈이 필요 한 거죠. 아름다운 빛의 세상을 함께 본다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요."
바람의 빛깔, 포카혼타스OST


 

집을 찾아가는 의사가 된다면

운 좋게 의사가 되었지만 병원이 내가 일해야 하는 공간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의사인 나에게도 병원이라는 공간은 답답하고 지루하며, 삭막하다고 느껴졌다.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든 효율적인 공간 배치 속에 의사와 환자 모두 아늑한 돌봄의 기운을 받기 보다는 차가운 대상화의 시선을 느낀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검사나 기술에 의존하게 되었고 본질적인 만남은 사라졌다. 섬세한 진찰과 손길은 이미 낡은 것이 된 병원은 가지 않을 수 있다면 가지 않는 것이 이득인 곳이 되었다. 의사가 된 후 대형병원에 발을 들이진 않았지만 환자들을 만나고 싶었기에, 또 먹고는 살아야했기에 틈틈이 동네 의원에서 진료해왔다. 큰 열정 없이 반복적으로 진료를 해오며 차라리 나름의 철학으로 병원을 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다. 원체 끈기가 없고 오래 일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사람이라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데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새로운 환경이 다가오고 있었고 이 흐름 속에서 새롭게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학의 기술이 발달하여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통한 건강 관리기술이 유행하고, 유전자 치료를 통해 희귀질환을 정복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완벽히 무르익지 않았는지 연구 자료를 조작해서 국민 건강에 피해를 끼치는 사례도 나타났다.2) 그럼에도 정부는 나서서 원격의료 및 바이오 헬스 산업을 도입하려고 서둘렀다. 오래된 시도들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구체적인 모습을 갖췄고 기업과 정부는 한 편이 되어 장밋빛 전망을 전하고 있다.

 

한편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체계에 대해서 관심이 커졌다. 과거와 다르게 질병의 양상이 만성질환 위주로 변하여 치료(cure)보다는 돌봄(care)의 중요성이 커졌다. 2018년 정부는 커뮤니티케어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지역사회중심의 일차의료와 돌봄 서비스 체계를 만들겠다고 하였다. 방문의료, 재택의료 혹은 왕진 등의 이름으로 의사가 환자의 집으로 찾아가는 진료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그 동안 한국에서는 의사가 환자의 집을 찾는 진료는 활성화 되지 않았다. 오히려 불법으로 인식되었다. 의사의 선의가 환자들을 자신의 병원으로 유인하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될 여지가 컸다. 의료행위를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진행하는 것이기에 안전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방문 진료는 사회에 필요한 진료 방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일본의 경우 왕진은 국가 의료 제도 속에 적절한 지불 체계가 자리 잡았다. 영화, 드라마 등을 봐도 의사가 집으로 찾아가는 것이 문화적으로 익숙한 듯 했다. 왕진을 통해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줄일 수 있고 적절히 처치를 제때 못 받고 응급실을 이용하여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고령사회에 대비해 주기적으로 건강을 확인하여 질병을 예방 할 수 있다. 미국, 싱가포르 등의 국가도 다양한 방식으로 방문 진료를 시행하고 있다. 물론 한국 역시 보건소에서 시행하는 방문진료 및 방문간호 사업이 있고 노인장기요양제도 안에 방문간호 제도가 있다. 그런데 일반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방문 진료를 전문하는 경우는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방문해서 진료를 하는데 대한 수가가 책정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환자가 병원에 와서 진료 받는 경우와 찾아가서 진료하는 경우 받는 비용이 똑같다. 교통비 등을 환자에게 실비로 청구할 수 있다고는 하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병원 내 진료가 의사, 환자 모두에게 익숙하기에 집에서 하는 진료는 서로에게 어색하다. 무슨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서로 모르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가 시작되었다.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는 중증 장애인도 건강할 권리가 있다는 취지로 거동이 불편한 중증 장애인에게 의사가 찾아가서 건강관리를 돕는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제도화된 왕진이다. 이 제도를 통해서 중증 장애 환자에게 의사가 방문해서 진료하고 적절한 처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치료만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상담을 통해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만성질환을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게 2019년 3월 중증 장애인 및 거동 불편자들의 집을 찾고자 건강의집 의원을 개원하였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외래진료는 하지 않는 방문진료 전문 의원이다. 1회 방문당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충분한 진료시간을 갖는다. 가정 방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돌봄 체계에 참여하고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여러 기관 및 관계자들을 만나는 데 충분한 시간을 쏟았다. 지역사회에서 중증장애인과 칩거 노인들을 위해 헌신하는 가족, 이웃, 요양보호사, 활동지원사, 사회복지사, 동주민센터 행정직원, 보건소 방문간호사 및 치료사들을 만나서 고민을 나누고 도움을 서로 주고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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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진료, 그 너머의 가능성

의사의 역할은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그런데 의사의 일상적인 진료가 사회의 건강을 증진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병원이라는 건강 생산 공장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가? 수명의 증가라는 근대적 목표 설정은 그 어느 나라보다 빨리 달성을 했으나 한국의 국민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살며, 죽고 싶다는 생각을 언제나 곁에 두고 산다. 실제로 죽음을 시도한 사람도 많다. 그런데 의사는 계속 치료를 강제하고 건강하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건강에 환장한 사회인데, 그것이 어떤 건강인지는 질문되지 않는다. 건강은 생산 가능한 가치인가? 치료기반의 의료가 건강한 사회를 담보하는가? 구매하는 건강, 강제된 건강이 우리가 성취해야할 목표인가? 어떻게 건강의 가치를 재구성할 수 있을까? 가령 고급 분양아파트의 주민들이 임대아파트 주민들과는 어떻게든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건강한 사회일까? 청년들의 불안이 향 정신 약물을 통해 조절되는 것은 장려되어야 하는가? 현재 의료의 제공 방식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제시하는가?

 

의학 기술은 날로 발전하는 것 같은데 역설적으로 건강을 돌보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 어떤 질병도 치료할 준비가 된 사회이지만 여전히 가난한 이들은 죽지 못해 산다. 때론 죄송한 마음으로 사회와 작별한다.4)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조건이 많을 때 우리는 건강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충분한 경제적 여유는 중요한 조건 중 하나이다. 장시간 일해야 하는 노동자는 돈의 많고 적음과 별개로 건강을 돌볼 여유가 없다. 4차 산업혁명의 유행 아래 그럴싸한 이름의 플랫폼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안전망을 가지지 못한 채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경제적 조건이 다소 부족하다면 꼭 갖춰야 할 조건 중 하나는 곁에서 잔소리를 끊임없이 해줄 존재이다. 도시에서 이웃과 관계를 맺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대부분의 관계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구성된다. 일종의 거래로 경제적 이득이 매개되지 않으면 관계가 생기지 않거나 이어지지 않는다. 친구를 사귈 때도 어떤 이득을 줄 것이 기대될 때 흔쾌히 응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만나는데 드는 비용 때문에 집 밖을 나서지 않는다. 게다가 시간은 더욱 귀하기 때문에 아무나 만나서 낭비할 수는 없다.

 

아픈 사람에게는 절대적인 돌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아픈 시간을 함께 견뎌내는 것은 외면하고만 싶은 어려운 일이다. 아픔 속에 있는 사람을 곁에서 바라보는 일은 참 버겁다. 의사이기 때문에 뭔가 해야 한다. 아프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약을 처방하든지 주사를 놓든 뭘 하든 말이다. 그런데 나름의 노력을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 가족과의 관계에서 오는 난감한 문제. 결코 개선되지 않은 통증. 그런 것들이 분명히 있다. 신이 해결해주지 않으면 해결이 되지 않은 상황들.

 

모든 아픔이 치료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치료받아야 할 존재인가? 생명이 있는 이상 아픔은 필연이다. 그런데 아픔을 다루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아픔을 겪을 때 서럽지만 또 그것을 통해서 자신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할 수도 있다. 극복되지 않은 손상도 물론 있다. 아픔과 손상을 극복하는 것 아니라 자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는 것은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손상과 아픔을 ‘함께’ 겪는 것,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손상과 아픔을 누구와 어떻게 대처해나갈 것이냐. 그것이 신체든, 정신이든.

 

건강을 도모하는 일은 대단한 검사와 치료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잠시 기술적 도움 받을 뿐이다. 건강을 홀로 돌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함께 사는 이들이 곁에서 긴 인생을 겪으며 울고 웃으며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 서로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다. 병원의 진료를 집으로 옮겨 놓는 것이 방문 진료의 전부일까? 그저 움직이지 못하기에 움직일 수 있는 쪽이 움직이는 편의성 제공인가? 방문 진료의 가능성을 더욱 생각해보려고 한다. 집이라서 가능 한 것들, 사는 곳이 알려주는 여러 단서들이 분명 있을 텐데 말이다. 방문 진료 전문 의원을 열기 전 나는 ‘집’을 운영했었다. 의사였지만 의료기관이 아닌 삶의 장소에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서 오래된 동네 상가를 얻어 ‘건강의집’이라고 이름 짓고 딸린 방 한 칸에 몸을 뉘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모였고 모일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편히 지내는 모두의 집이 되었다. 집을 구하기 어려운 청년 활동가들이 함께 살았다. 사적공간의 대명사인 집은 해방의 공간이 되었다. 운영했다기보다 문을 열어두었을 뿐이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붙잡으니 여러 사람이 드나들었다. 건강의집 의원을 여는데 계기가 된 이 공간 운영 경험을 통해 집은 관계를 촉진하는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같은 집을 여러 번 찾아가면 그 집의 모양과 냄새가 익숙해진다. 그 곳의 삶이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이후엔 그 너머의 삶을 함께 그려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방문진료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새로운 건강 생산 체계를 모색해볼 수 있지 않을지 작은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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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원 건강의집 의원 대표원장의 모습(=맨 왼쪽) <사진 = 건강의집의원>

 


1)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장애학의 도전, 김도현, 오월의봄

2) 종양유발세포가 들어간 골관절염치료제가 충분한 검증 없이 환자들에게 투여되었다. https://news.v.daum.net/v/20191115204105469 뉴스타파, 인보사를 ‘기적의 신약’으로 만든 언론.

3) 2019-10-20 제1회 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 학술대회, ‘왜 방문진료인가’, 건강의집의원 김창오 원장 발표자료.

 

4) ○○구 N모녀 사건이 반복되지만 정부는 발굴 혹은 색출에만 혈안일 뿐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접근은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렇게 가난한 이들은 조용히 사라진다. http://beminor.com/detail.php?number=14036&thread=03r01 비마이너, 다가오는 ‘디지털 복지 디스토피아의 그림자.

수, 2019/12/04-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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