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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다반사] #4. 얼굴 없는 동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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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다반사] #4. 얼굴 없는 동거인

익명 (미확인) | 목, 2017/03/23- 00:00
나는 옆집 남자의 얼굴을 모른다. 인사 한 번 해본 적 없다. 하지만 그의 여자친구 이름은 안다. 그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술버릇을 가졌는지도 알고 있다. 방음이 되지 않는 원룸의 건물 구조 때문이다. 그도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살짝 오싹해진다.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얼굴 없는 동거인’이다. 칸과 칸 사이, 분리된 듯 분리되지 않은 생활이 매일 계속된다.
‘희망다반사’는 희망제작소 연구원이 전하는 에세이입니다. 한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시선이 담긴 글을 나누고, 일상에서 우리 시대 희망을 찾아봅니다. 뉴스레터와 번갈아 격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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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옆집 남자의 얼굴을 모른다. 인사 한 번 해본 적 없다. 하지만 그의 여자친구 이름은 안다. 그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술버릇을 가졌는지도 알고 있다. 방음이 되지 않는 원룸의 건물 구조 때문이다. 그도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살짝 오싹해진다.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얼굴 없는 동거인’이다. 칸과 칸 사이, 분리된 듯 분리되지 않은 생활이 매일 계속된다.

부실한 건물에 사는 현실이 슬프지만, 벽간소음 덕분(?)에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진부한 격언을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삶의 많은 부분에서 사람들과 끊임없이 마주한다. 가족, 학교, 친구, 직장 등을 넘어 거리에서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나와 많은 것을 공유하는 ‘사회적 동거인’인 셈이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나에게 ‘함께 사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불쾌한 일의 연속이기도 하다. 얼마 전, 건물주에게 단체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청소 아주머니가 힘들어하시니 쓰레기 분리수거에 신경 써달라는 내용이었다. 출근길 무심코 지나쳤던 건물 앞 쓰레기더미가 생각났다. 악취로 코를 틀어막았던 것도 기억났다. 마침, 실제 많은 원룸촌에서 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기사가 화제였다. ‘조금만 신경 쓰면 될 텐데…’ 공중화장실에서, 극장에서, 버스정류장에서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일부 사람들 때문에 눈살을 찌푸렸던 적도 떠올랐다. 동시에 나 역시 누군가에게 알게 모르게 불쾌함을 줬을 거라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의 행동과 삶이 다른 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작년에 읽었던 한 책의 내용을 떠올렸다.

“수도권과 대도시의 전기공급을 위해 지방 소도시에 핵발전소와 송전탑을 짓는다. 소도시 사람들은 방사능과 전자파 위험에 노출된다. 콩고의 어린아이들은 스마트폰의 배터리 원료인 코발트를 채굴하며 학대를 당한다.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사 먹을 수 있는 생수는 수원지 오염과 고갈, 페트병 양산 등의 문제를 일으킨다.”

내가 누리는 생활의 많은 것들이 다른 누군가의 비합리적인 희생 위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이 누림은 당연하지도 않을뿐더러 어쩌면 불필요하거나 과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장 내 손으로 송전탑을 없애거나 편의점의 생수를 판매 금지할 수는 없었다. 대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보기로 했다. 쓰지 않는 가전제품의 플러그를 빼고, 주전자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사실 별것 아닐지도 모른다. 번거롭고 불편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작은 행동이 모이면 누군가의 불쾌한 감정을 지우고, 또 다른 누군가의 눈물을 거둘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내가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이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의 삶이 누군가의 비합리적인 희생과 눈물이 아니라, 조금씩 모인 불편함과 번거로움 위에 피어나길 바란다.

글 : 최은영 | 미디어홍보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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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7일부터 2017년 4월 24일까지 총 61분이 희망제작소의 든든한 후원회원이 되어 주셨습니다.
후원회원님의 응원 한마디가 희망의 씨앗이 됩니다.
잊지 않고 늘 기억하겠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희망모자

김민영 후원회원님

바르고 좋은 활동을 응원하고 기대합니다.

희망모자

명재범 후원회원님

건강한 시민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게 앞장서서 노력해주시길 바랍니다.

희망모자

정라온 후원회원님

깨어있는 시민의 꺼지지 않는 등대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희망모자

김도요 후원회원님

가치있는 곳에 가치있게, 효율적으로 후원금을 사용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희망모자

송지나 후원회원님

고등학생 때 희망제작소를 처음 알게 됐어요. ‘대학교 가서 돈 벌면 후원해야지’라고 생각한 걸 이제 실천하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희망모자

김준영 후원회원님

더 큰 희망이 필요한 사회입니다.

희망모자

이찬영 후원회원님

평범한 사람이 웃으며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면서… 그리고 실천을 위해서..

희망모자

이두수 후원회원님

평소에 관심이 많았다가 기회가 되어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희망모자

오승원 후원회원님

희망제작소에 후원을 하게 되어 기쁩니다.

월, 2017/04/24-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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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는 2015년 5월부터 학교와 청소노조, 민간연구소인 희망제작소가 ‘사다리포럼’을 만들어 학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경희모델’을 추진해 왔다. 처음엔 대학이 청소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안이 제시됐지만 곧 난관에 부닥쳤다. 노동자 대부분이 60대 중반이지만 대학 정년은 60세였기 때문. 서울시립대처럼 일부 노동자만 직접 고용하고 정년이 넘은 직원은 계약직으로 둬 또 다른 갈등을 부르는 분열도 피해야 했다.

* 기사 저작권 문제로 전문 게재가 불가합니다. 기사를 보기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 링크를 눌러주세요. ☞ 기사 보러가기

금, 2017/01/0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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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과 젓가락.
후라이팬과 뒤집개.
또, 나란히 신발 한 켤레.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혼자보다는 함께 할 때 더욱 좋은
두 가지, ‘더블’이 참 많습니다.

우리 사회 희망을 두 배로,
<희망제작소x더블더홉캠페인 SNS 이벤트>
“당신의 ‘더블’을 찾아주세요!”

‘더블’에 관한 사진이나 그림을 공유해준 참여자 중,
매주 최고의 ‘더블’ 두 명을 선정해
아주 멋진 두 가지 선물을 한꺼번에 드립니다.

‘더블’ 아이템을 찾아라

● 이벤트 기간 ●
– 2016년 1월 9일(월) ~ 2016년 2월 3일(금)

● 당첨자 발표 ●
– 매주 금요일 (페이스북 게시 및 개별 메시지 드립니다.)

● 이벤트 경품 ●
– 희망키트 + 2017년 더블캘린더 세트(매주 2명씩 추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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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방법 ●
① 희망제작소 페이스북에 접속한다.(https://www.facebook.com/hopeinstitute)
② 직접 찍은 ‘더블’ 아이템 사진을 이벤트 게시물(http://bit.ly/2iXWMhZ)에 댓글로 올린다.
③ 희망제작소를 소개시켜 주고 싶은 세 명의 친구를 소환(태그/@친구)한다.

2017년에도 우리 함께, 희망합시다!
> 희망제작소 더블더홉 캠페인 바로가기 (클릭) <

※ 문의 : 후원사업팀 박다겸 연구원(02-2031-2170, [email protected])

월, 2017/01/09-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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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은 23명의 청소년들이 OO실험실에 모여 다양한 사회혁신 프로젝트를 실험해봤습니다. 어떤 청소년들이 모여서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했는지 궁금하시죠? 그들의 활동을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화, 2016/01/1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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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27일 희망제작소는 ‘21세기 실학운동’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출발했다. 순수한 민간재정으로 움직이며 남이 잘 하고 있는 일보다는 아무도 관심이 없거나 소홀히 다루는 일들을 먼저 하는 시민의 싱크탱크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을 굳게 다지며 첫 걸음을 시작했다.

그 후로 3년, 2009년 연례보고서에 당시 박원순 상임이사는 ‘이름을 잘못지어 웬 고생이람!’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글을 썼다.

“처음 희망제작소라는 이름을 지을 때는 신이 났다. 그냥 OO연구소나 OO재단이라고 했으면 얼마나 따분했을까. 이제 ‘희망’의 ‘제작’은 우리의 운명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대한민국의 희망을, 시민의 희망을 제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름이 운명을 결정한다고 하니 이제 어쩔 수 없이 그 운명을 따를 수밖에.”

2009년 ‘희망’이 위기를 만났을 때

3년 동안 희망제작소는 끊임없이 좌충우돌하면서도 조금씩 성과를 쌓으며 시민의 싱크탱크로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불만합창단, 시민창안대회 등 시민이 중심이 되는 사회혁신을 실험하고, 작은 기업을 지원하고 청년 사회적기업가를 발굴하며 사회적경제의 기반을 만들었으며, 지역 활성화를 위해서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서 활동했고, npo경영학교, 소셜디자이너스쿨 등 시민사회가 체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다양한 전문교육을 진행했다.

애초에 작정한 대로 ‘남이 하지 않은 일’만 골라서 하느라 고생이 심했지만 이런 것이 바로 희망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고 굳게 믿으며 달려갔다.

작은 성공의 경험을 더 큰 희망으로 확장하려는 즈음에 뜻하지 않은 시련이 닥쳤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무언의 압력이 희망제작소가 하고 있고, 하려는 일들을 모두 막아섰다. 당시 행안부와 3년간 위탁운영 협약을 맺고 시작했던 지역홍보센터는 1년 만에 하루아침에 협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지방자치단체와 맺었던 여러 사업계획도 모두 취소되었다. 밤샘과 야근을 밥 먹듯이 하던 연구원들은 하나둘 일에서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출범 3년 만에 철저히 고사될 위기에 처했다.

희망을 품고 시작한 실험을 시작한지 3년 만에 좌초할 것인가. 과연 희망제작소는 이대로 사라져도 괜찮은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은 결국 ‘시민’이었다.

‘시민의 힘을 믿고 가자!’

이 위기를 시민의 후원금으로 돌파하자고 결의를 하고 모든 연구원이 후원회원 모집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그 당시 후원회원은 약 5백여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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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투자하실래요?

목표는 시민 후원회원 1만 명을 모으는 것이었다. 시민 1만 명이 후원한다면 어떠한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탄탄한 재정을 확보할 수 있다. 시민참여라는 희망제작소의 취지에도 걸맞은 일이었다.

계획했던 사업이 엎어진 빈 시간은 후원회원을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들로 채워졌다. 선뜻 지원을 약속한 시사 주간 잡지에 매주 다양한 콘셉트로 희망제작소 상황을 알리는 지면광고를 만들어서 실었다. 상임이사와 연구원들은 전국을 돌면서 강연을 하고 후원을 요청했다. ‘희망제작소를 아름드리나무로 키워 주세요!’라는 후원캠페인도 시작하면서 ‘희망’에 투자해달라고 호소했다.

5백여 명에서 시작한 후원회원은 시민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서 2009년 말에는 약 6천여 명에 이르렀다. 계획한 1만여 명에는 한참 못 미쳤지만 연구원들의 마음은 벅차올랐다. 시민과 함께 했던 어떤 사업보다도 시민의 힘을 뜨겁게 느낄 수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더럭 겁이 나기도 했다. 이제 희망제작소 곁에는 우리가 제대로 하는지, 나태하고 방만하지 않는지 지켜보는 6천여 명의 후원회원이 있다. 과연 ‘희망’의 이름값을 제대로 해낼 것인가. 묵직한 책임감이 다시 자세를 바로잡도록 했다.


여전히 희망이 절실하다

2016년이면 희망제작소는 창립 10주년을 맞이한다. 1004클럽HMC, 강산애 등 희망제작소를 지키는 열혈 후원회원 그룹, 희망탐사대, 문화나눔, 감사의 식탁을 통해서 꾸준하게 만나 온 후원회원이 있어서 늘 든든하고 감사하다.

다사다난한 고비마다 시민 후원회원은 희망제작소를 지켜주는 다정한 벗이었고, 바른 길을 가도록 꾸짖는 준엄한 스승이었다. 가장 좌절했던 시련의 시기에 선뜻 손을 잡아주었던 시민 후원회원이 있었기에 지난 10년을 걸어올 수 있었다.

아직도 희망은 불안하고, ‘희망’을 ‘제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때로는 ‘도대체 희망을 어떻게 만든다는 것이냐’며 의문이 날아오고, ‘희망이 없는 시대에 제발 희망을 보여 달라’고 질책받기도 한다.

헤어날 줄 모르는 수렁에 빠진 경제와 불평등하고 불안한 사회는 점점 후원회원들의 발걸음을 돌아서게 한다. 2010년에 8천여 명에 이르렀던 후원회원은 약 5천여 명까지 줄었다. 어떠한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재정 안정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창립 10주년을 맞이하는 희망제작소는 지난 10년이 그랬듯이 시민 후원회원의 힘으로 움직이는 싱크탱크라는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면서 앞으로 10년 동안 걸어 갈 희망의 길을 닦으려고 한다.

희망제작소는 시민 후원회원과 함께 그 길을 꿋꿋하게 걸어갈 것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밝힐 구체적인 정책으로, 더 깊이 있는 시민참여 활동으로, 후원회원과 밀착해서 소통하며 희망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희망은 여전히 절실하다. 밤하늘의 별이 그렇듯이 어둠이 짙을수록 희망은 더 밝게 빛나는 법이다. 희망을 원하는 사회에 답은 여전히 ‘희망’이다.

우리 시대 희망이 간절한 분들께 한번 더 묻고 싶다. 희망에 투자하시겠습니까?

글_ 이원혜(시민사업그룹 연구위원 / [email protected])

화, 2015/08/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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