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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가 또 찾아오면, 들었던 촛불을 기억하자 – 한상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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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가 또 찾아오면, 들었던 촛불을 기억하자 – 한상균 인터뷰

익명 (미확인) | 금, 2017/03/17- 14:17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2015년 11월에 있었던 대규모 집회 주최자라는 이유로 실형 3년과 벌금 50만원을 선고받고 수감중입니다. 그가 수감되고 일년 사이 대한민국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접견과 서신을 통해 한상균 전 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아래는 한상균 전 위원장의 서면 인터뷰를 요약/편집 하였습니다.


 

 

출소하면 백남기 농민을 찾아뵙고, 어르신의 투쟁이 세상을 깨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며 곡차를 올리고 싶습니다

2016년 12월 13일, 그로부터 일년 전 있었던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이하, 민중총궐기)를 두고 ‘집시법과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시위대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고 법질서를 지키기 위한 차벽과 물대포는 정당하다’는 항소심 재판이 있었습니다.

항소심 법원은 검찰과 1심 재판부를 비호한 판결을 내렸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습니다. 대법원이 항소심 판결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관심과 지지가 필요합니다.

민중총궐기가 폭도로 마침표 찍힌 지 1년만에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고 들불처럼 타올랐습니다. 1년 전과 같았던 집회신고 행진코스에 대해 법원은 정당한 권리라며 주권자들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토록 내어주지 않았던 광화문 광장과 청와대 턱밑까지 말입니다.

출소하면 백남기 농민을 찾아뵙고 어르신의 투쟁이 세상을 깨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며 곡차를 올리고 싶습니다.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민주노총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한국사회의 한 축이 아니라
정치적 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IMF이후 20년 동안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노력 끝에 노동삼권단결권, 단체권, 단체행동권이 무력화되었고,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 힘의 균형은 완전히 기울어졌습니다. 비정규직은 늘어만 가고,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월 200만원 이하 노동자가 500만 명이나 되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입니다.

노동자라면 누구나 노동조합으로 단결하여 교섭하고, 사측의 부당한 대우에 파업이라는 유일한 무기로 맞서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라고 국제노동기준에도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고 파업권을 행사하면서 해고나 구속뿐만 아니라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ILO(국제노동기구) 협약 비준, 노동 삼권의 완전한 회복, 최저임금 만원과 더불어 주 40시간 이상 초과 노동할 수 없도록 해야하고, 위험하든 안전하든 상시적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바꾸기 위해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현실 문제에 대한 진단과 대책은 넘쳐납니다. 실제로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단결이 필수적입니다.

2016년 11월 @Amnesty International

아빠의 무등을 타고 끝없이 파도치는 위대한 촛불
맑은 눈망울 속에 담은 아이들이 이 나라의 주인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분노와 절망이 우리 스스로를 이 땅의 주인임을 깨닫게 했습니다. 앞으로도 위기는 또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촛불을 들었던 경험이 앞으로 닥칠 위기에서 또 큰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화석처럼 굳어있던 정치신념의 뿌리가 전 세대와 지역에서 허물어졌습니다. 아빠의 무등을 타고 끝없이 파도치는 위대한 촛불을, 맑은 눈망울 속에 담은 아이들이 이 나라의 주인으로 성장할 것이기에 대한민국이 이 절망 속에서도 희망찬 이유입니다.

 

@Amnesty International

동료와 가족들의 죽음을 멈춘 것은 연대의 손길이었습니다

저는 쌍용차 해고자이자 28명의 동료와 가족들을 하늘로 보낸 상주입니다. 해고는 살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죽음이 멈추기 시작했습니다. 저항은 ‘살고 싶다’는 절규였고, 함께 아파하고 도움의 손길, 연대의 손길은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유엔, ILO, OECD, 국제노총, 국제노동단체, 앰네스티, 인권운동가, 석학 등 국제적 연대는 잔혹한 자본독재에 맞서 당당히 싸워갈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외국에서도 한국 대사관을 찾아 항의하며 야만 국가로 남을 것인지, 노동자 민중의 편에 설지를 선택하라 압박해 주셨습니다.

민주노총도 국제사회와 연대를 더욱 강화하고, 노동이 존중되는 윤리적 소비자 운동 등 실천활동을 강화하려 합니다.

 

그리고 국제앰네스티의 따뜻한 연대와 지지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80만 민주노총 전 조합원의 마음을 담아 뜨거운 동지애를 전합니다. 한국사회 민중의 봄을 함께 만들고 있는 앰네스티는 영원한 동지입니다.

저를 포함해 노동탄압에 맞서 싸우다 구속된 많은 동지들은 감옥에서, 법정에서, 노동자답게 싸우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주권자 스스로 지켜내지 않는다면,
위임 받은 권력은 언제든지 스스로를 주인이라 생각한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건강하십시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투쟁!

 

2017년 2월23일
춘천교도소에서 한상균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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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21일 가석방된 후, 아놀드 팡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은 아래와 같이 논평했다.

한상균 전 위원장의 석방은 한참 전에 이뤄졌어야 할 일이다. 그의 구속은 처음부터 부당했다. 그가 주도한 집회는 전반적으로 평화로웠으며 그는 어떤 폭력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소수의 참가자들의 행동으로 한상균 전 위원장이 부당하게 처벌받았다.”

“한 전 위원장이 감옥에서 보낸 894일은 평화적 집회시위의 자유를 완전히 보장하도록 관련 법률을 즉시 개정하도록 한국 정부에 보내는 경종이다.”

“문재인 정부는 집회시위 중 일어나는 몇몇 개인의 폭력을 이유로 집회 주최자를 처벌한 전 정부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국제앰네스티는 한 전 위원장과 거의 똑같은 혐의로 아직 수감중인 이영주 전 사무총장을 위한 정의를 요구한다. 그가 개인적으로 폭력적인 행동을 일으키거나 선동하지 않는 한 그는 즉시 석방되어야 한다.”

아놀드 팡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

끝.

월, 2018/05/2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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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LGBTI활동가 마츠오카 소시

이번 발렌타인 데이에도 전세계 수백만 명이 그들의 사랑을 기념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국가와 사회에서 당신의 사랑을 동등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아시아 각국의 LGBTI 활동가 다섯명이 이번 2월 14일을 어떻게 보낼지와 함께, LGBTI에 대한 모든 차별을 중단시키기 위해 각자가 바라는 점을 전해 왔습니다.

 

마츠오카 소시는 도쿄대학교에서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있는 학생이자 활발하게 활동 중인 작가다. 그는 LGBTI 문제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 학교별 세미나에 참석해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발렌타인 데이와는 꽤 거리가 멀다고 여긴다. 발렌타인데이가 이성애적 관계를 전제로 한 기념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당신의 성적 지향성을 알게 되었나요?

제 성적 지향에 대해서는 청소년기 초반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요. 동성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끌렸죠. 처음에는 정말 남자를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그저 동경일 뿐인지 확신이 없었어요. 전 “아니, 그럴 리가 없어” 라고 생각했죠.

제가 게이라는 걸 깨달은 건 중학교 때였어요. 남자는 여자를 좋아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통념 때문에 조금은 불안했죠. 이제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지? 결혼은 할 수 있을까? 엄마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일본의 LGBTI 활동가 소시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저를 보고 “게이 캐릭터”라며 놀리곤 했어요. 그러다가 “너 진짜 게이야?” 라고 묻기도 했고요. 저는 대답할 수가 없었어요.

나고야에 살던 저는 결국 도쿄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했어요. 도쿄로 떠나기 전인 봄방학 때, 친구들에게 제가 게이라는 사실을 고백했죠. 친구들은 아주 잘 받아들여줬고, 그 중 한 친구는 고맙게도 이렇게 말해줬어요. “게이라는 건 너를 이루는 여러 가지 특징 중 하나일 뿐이야. 나한테 너는 그냥 너야.” 이렇게 멋진 친구를 둔다는 건 정말 행운이었어요. 이전까지는 성 정체성이 저라는 사람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죠.

 

커밍아웃을 했을 때 가족들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대학교 2학년이 됐을 때, 휴일을 맞아 찾아오신 어머니가 여자친구는 없느냐고 물으셨어요. 저는 “아, 또 시작이네”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 때, 어머니가 남자친구는 없느냐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때까지만 해도 가족들이 제 성적 지향성에 대해 알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어머니께서는 알음알음 소문을 듣고 알게 되셨던 모양이에요. 어머니의 함정에 걸려든 거죠!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플 때 옆에 있어줄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중요한 거야. 넌 워낙 허약하니까 그게 제일 걱정돼. 그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신경 안 쓴단다.’ 정말 ‘힙’한 어머니시죠.”

한번은 파트너와 함께 나고야에 있는 부모님 댁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가족들에게 파트너를 소개했더니, 모두들 우리의 성적 지향성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저의 “소중한 사람”으로 대우했어요. 분명 다들 우리의 성적 지향성에 대해서 생각을 안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걸 캐묻지 않았어요. 정말 자연스럽게 우리를 받아들여줬어요.

 

공공장소에서 파트너에게 애정을 표현하나요?

공개된 장소에서는 서로 손을 잡거나 애정을 표현하지 않아요. 저는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타입이라, 그런 건 하지 않아요.

파트너와 만난 지는 이제 2년 반이 됐지만, 우리 사이는 거의 변함이 없어요. 마치 노인 부부 같죠. 사소한 말다툼 외에는 별로 싸운 적도 없어요. 갑작스런 감정의 폭발 같은 것도 없이, 처음부터 아주 잔잔한 관계였어요.

 

발렌타인 데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학생 시절, 발렌타인 데이는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이었어요. 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행사였죠. 그래도 저는 초콜릿을 정말 좋아해서, 초콜릿을 받으면 항상 기분이 좋았어요!

어떤 게이 커플들은 “여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나 “더 여성적인” 사람이 초콜릿을 주기도 하는데, 저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화이트데이(3월 14일: 일본에서는 발렌타인 데이로부터 한 달이 지난 후, 남성이 초콜릿을 준 여성에게 선물을 줘야 함)에는 초콜릿을 준 여자 친구들에게 답례품을 주면서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어요. 파트너에게 초콜릿을 주기도 하고요.

그러니 발렌타인 데이에 대해서는 별로 좋은 추억이 없다고 할 수 있겠죠. 전적으로 이성애적 관계만을 전제로 한 행사였기 때문에, 저는 배제당한 기분이었어요. 제가 초콜릿을 주고 싶은 사람도 있었지만, 초콜릿을 사는 사람은 보통 여자였기 때문에 남자인 저는 그러기가 망설여졌죠.

 

올해 발렌타인 데이는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요?

지금까지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요즘은 친구나 동료들에게 선물을 주는 게 흔한 일이잖아요. 미래에도 발렌타인 데이가 있다면, 그때는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보다는 누구나가 가족, 친구,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날이 되기를 바라요. 사람은 모두 서로 다르잖아요. 사랑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LGBTI를 위해 어떤 변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나요?

LGBTI가 더욱 수면 위로 드러나야 해요. 누구나 성소수자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이들과 친구가 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매체에서는 성소수자와 그 외의 사람들을 완전히 분리시키고 있어요. 그래서 LGBTI에 대해 가장 흔히 알려진 고정관념이 여성적인 행동을 하는 트랜스젠더 여성의 모습이에요. 그 때문에 사람들은 제가 성소수자라고 하면 놀랄 때가 많아요.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남자처럼 생겼거든요.  LGBTI는 사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근본적인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정말 좋을 거예요. 그러면 일자리를 구할 때나 여러 가지 상황에 처했을 때 편견을 마주할 일이 없겠죠. 또, 결혼제도에 대해서는 누구나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겠지만, 저는 이성 커플은 결혼할 수 있으면서 동성 커플은 할 수 없다는 건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동성 결혼도 인정되는 날이 오길 바래요.

월, 2018/02/2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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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여덟 명의 여성에게 2018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이야기하고 싶은 여성 인물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한국 대중문화 속 여성혐오에 대한 책 [괜찮지 않습니다]의 저자 최지은님은 송은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여성이 대중을 웃기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던, 팟캐스트 [송은이 & 김숙의 비밀보장]이 시작되었던 2015년은 말 그대로 암흑기였다. 데뷔 20년을 훌쩍 넘긴 두 베테랑 방송인조차 고정 프로그램을 모두 잃고 “애하고 시어머니가 없어서 방송 못 한다”는 자조적인 농담을 던지는 환경 속에, 수많은 여성 예능인들이 점점 더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눈에 띄는 자리는 모두 남성들의 것, 새로 생긴 자리도 거의 남성들의 몫이었다. 여성이 웃길 기회조차 씨가 말라 버린 원인에 대해, 인기 예능 작가 A는 말했다. “여성 시청자들은 남자를 좋아한다. 남성 시청자들은 예쁜 여자가 아니면 무관심하고, 나이 든 여자나 똑똑한 여자는 싫어한다.” 그를 비롯한 여러 제작진들은 시장의 관성, 시청자의 이중잣대, 여성 예능인 간의 네트워킹 부재 등을 언급했다. A는 덧붙였다. “이 모든 압력을 버틸 수 있는 여성 스타가 나타나면 달라질 수도 있다” 물론 그가 도저히 수행 불가능해 보이는 복잡한 조건들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의 얘기였다.

그때는 떠올리지 못했다. 송은이가 그 ‘초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로운 여성 스타가 나타나길 기대했지만, 개편 시즌마다 남자들이 숨만 쉬어도 방송 아이템이 되는 프로그램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며 체념하기도 했다. 그러나 송은이는 계속 만들어냈다. 유료 광고 대신 ‘지인 광고’로 팟캐스트를 시작해 제작사 ‘콘텐츠랩 비보’를 설립했고, 2017년 가장 핫한 예능 [김생민의 영수증]을 성공시킨 뒤, 방송 경력 합산 100년에 달하는 여성 예능인들을 모아 ‘셀럽 파이브’를 결성하며 웹 예능 [판벌려]의 막을 올렸다. 뛰어난 기획자이자 올라운드 플레이어인 송은이, 독보적 캐릭터와 비범한 감각의 소유자 김숙이 비춘 조명과 함께 이영자, 최화정, 박소현, 황보, 안영미, 김신영, 박지선, 신봉선, 이지혜 등 수많은 여성 예능인들의 존재감도 다시금 선명해졌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하게 웃길 줄 아는 여자들이 많다는 것, 게다가 그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여자들이라는 것은 그들을 배제해 온 시스템의 편향성과 게으름을 확인시킨다. 오랫동안 여성들을 끼워주지 않았던 ‘남성 예능’들은 요즘 앞다투어 ‘송은이 사단’을 초대한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아주 적은 기회만이 주어지고, 남성보다 몇 배의 능력을 증명해내지 못하면 문은 금세 닫힐 것이다. 하지만, 이미 흐름은 바뀌고 있다. 여성의 존재를 외면한 채 만들어지는 웃음이 얼마나 지루한지 깨닫지 못하는 세계는 계속 도태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이제 더 재미있는 세계가 있다. ‘나이 들고 똑똑한 여자’ 송은이가 그 문을 열었다. 아니, 만들어냈다.

글. 최지은
그림. 구자선

목, 2018/03/0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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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현대가 만난 사람] 조형수 참여연대 본부장

주거·통신·교육비 이슈 전문가…서민 가계부담 완화에 앞장서다!

2016.04.01. 주간현대

 

▲ 참여연대 조형수 민생희망본부 본부장     © 주간현대

 

<전략>


-15년간 민생관련 활동을 하셨는데 가장 바꾸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일단 주거비나 이런 부분 관련해서는 서민들이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낮추고 참여연대에서도 주거비에 집중 제기할 방침이다. 임대금, 전세금에 폭등해서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고 임차인들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진행됐으면 하는 게 바램이다.
 
통신비는 기본요금 폐지부분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각 요금제에는 기본요금 1만1000원이 포함돼 있다. 이것은 예전에 피쳐폰 쓸 때 이야기고 그때는 만이천원 정도였을 거다. 그런데 정액제 요금에도 기본요금이 포함돼있는데 그걸 없애야 된다는 거다. 그걸 없애도 마케팅비나 이런 것을 줄여서 나름대로 영업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정도의 수익을 거두고 있다.

 

<후략>

 

기사 원문 보기 >> (클릭)

금, 2016/04/0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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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활동가들이 젊은 세대에게 보내는 메시지

1948년 12월 10일 유엔 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UDHR)이 채택됐다. 세계인권선언은 인종과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성 또는 신체적, 정신적 장애만을 이유로 170만명이 학살당했던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되풀이하지 않고자 마련되었으며, 국적과 성별, 피부색 또는 종교와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인권을 인류 역사 최초로 제시한 문서다.

총 30개 조항으로 구성된 세계인권선언에는 고문 받지 않을 권리, 표현의 자유, 교육 받을 권리, 비호를 신청할 권리 등을 비롯해 생명권, 자유권, 사생활권, 사회보장권, 건강권,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와 같은 시민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

세계인권선언은 오늘날까지 모든 인권 기준의 근간이 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인권 문서이기도 하다.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역사적인 순간으로부터 70년째를 맞는 올해, 국제앰네스티는 1948년 전후 태어난 활동가 4인을 만났다. 이들에게 세계인권선언이란 무엇인지, 오늘날에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물었다.

아르헨티나의 도라 바란코스(Dora Barrancos, 78)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권운동, 특히 여성인권운동에 참여해왔다. 지칠 줄 모르는 도라는 앞으로도 인권을 위한 싸움을 계속해나갈 생각이다.

“항상 인권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했던 것은 아니지만,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권활동가로 살아왔어요. 특히 1980년대에 페미니스트가 되면서부터 더욱 적극적으로 인권을 위한 실천적인 활동에 나서기 시작했죠.”

도라는 시민적, 정치적 권리와 젠더 정체성에 대한 권리 등 새로운 영역까지 인권의 범위를 확장하기 위한 새로운 플랫폼을 마련하는 것까지, 세계인권선언이 그 기초를 다지는 역할을 해왔다고 믿는다.

우리 세대에게 세계인권선언은 평등과 정의를 요구하는 활동의 원동력이 되어줬어요. 이 모든 난관에 맞서기 위한 신념과 힘, 저항과 위대한 용기를 가지라고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케냐의 기투 와 카헨게리(Gitu wa Kahengeri)는 세계인권선언이 탄생하던 순간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이제 93세가 된 기투는 영국 식민지배 하에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끔찍한 인권침해를 직접 목격했다.

기투는 17세에 일을 그만두고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수용소를 전전하고, 고문과 노역을 견디면서도 그는 독립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이후, 선언에 명시된 권리에 따라 자주권과 존엄, 자유를 요구하던 케냐인들의 모습을 기투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케냐는 마침내 1963년 영국의 지배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 기투는 희생 없이는 아무런 진전도 이룰 수 없음을 강조했다.

젊은 세대들이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독립 국가를 이룩할 수 있으려면,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싸워야만 해요. 가치 있는 행동은 결코 쉽게 해낼 수 없죠.


헬렌 토마스(Helen Thomas)는 세계인권선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았다. 영국인으로서 오랜 시간을 인권활동에 헌신한 그는 1960년대 후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분리 정책, 그리고 인도 마하라시트라의 가뭄으로 수많은 사람의 인권이 부정당했던 처참한 현실을 직접 목격했다.

운명의 장난인지, 헬렌이 태어난 것은 세계인권선언 최종본이 채택되던 바로 그 날 밤이었다. 지금 헬렌에게 세계인권선언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근간이지만, 처음부터 세계인권선언을 잘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오히려 전혀 모르는 쪽에 가까웠다. 헬렌은 세계인권선언에 담긴 이야기와 그 기원, 중요성이 더욱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십 년이 지나고서야 저는 제가 태어나던 그날 밤, 얼마나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어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지만, 우리들은 학교에서 세계인권선언의 존재조차 배우지 않았어요.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자유를 보호할 수 있겠어요?”

헬렌은 또한 장기적인 인권 보호를 위해서는 세계인권선언에 대한 교육의 확대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인권 보호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인권에 대해 알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계인권선언이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 내가 가진 인권이 무엇인지 모든 아이들에게 교육해야 합니다.


사회정의 활동가 집안에서 태어난 캐나다의 윌 브라이언트(Will Bryant)에게 국제앰네스티는 언제나 내 집 같은 곳이다.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되던 날 윌은 이제 태어난 지 10주가 막 지난 아기였다.

“저는 불의라면 정말 질색이에요! 국제앰네스티에는 1973년 가입했는데, 캐나다지부가 창립된 지 불과 수개월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세계인권선언의 초안을 작성했던 존 험프리(John Humphrey)가 초대 사무국장을 맡았죠. 개인이 정부에 직접 의견을 전하고, 정의와 변화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점에 큰 자극을 받았어요.”

“살아 있는 동안에 어디서나 인권이 존중받는 세상을 보고 싶어요. 북아일랜드에 평화가 찾아오고, 칠레에서 인권에 대한 존중이 회복되는 모습을 목격했었는데, 이제는 중국이나 미얀마 같은 곳에서도 인권이 존중받고, 미국의 인권 퇴보가 끝나는 날을 보고 싶어요. 난민이 더 환영받는 세상을 보고 싶어요.”

젊은 세대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끊임없이 참여하고, 헌신하고, 앞으로 나서기를 멈추지 말고,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거예요. 현재이자 미래인 여러분이 정의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면 누가 싸울 수 있겠어요?


앰네스티 인권아카데미에서 인권에 대해 알아보세요.

인권 알아보기

수, 2018/12/1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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