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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 6년, 알레포의 Before/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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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 6년, 알레포의 Before/After

익명 (미확인) | 수, 2017/03/15- 11:42

알레포는 한 때 인구 230만 명의 시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로 산업과 경제의 중심지였다. 12-13세기 사원과 유물이 온 도시를 가득채워 1986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보호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세계가 보호하기로 한 알레포는 이제 시리아 내전의 중심지가 되었다. 2012년부터 시작된 시리아 정부군의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어린이를 포함해 수천명이 사망하고, 피난을 떠났다.

이제는 잿더미로 뒤덮혀 시리아 내전의 비극을 상징하는 도시 알레포. 알레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사진 출처: Olympia Restaurant 페이스북 페이지

 

1. 알레포의 거리


2. 우마이야(Umayyad) 사원


3. 사원 앞 광장


4. 우마이야(Umayyad) 사원으로 가는 길


5. 알레포의 전통 시장




6. 쇼핑센터 내/외부




7. 칼튼(Carlton) 호텔


8. 팰리스(Palace) 호텔


9. 다 자마리아(Dar-Zamaria) 호텔


※알레포의 더 많은 사진은 Olympia Restaurant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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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매월 말마다 앰네스티 사무국의 소식을 간략히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앰네스티의 ‘꿀곰’ 간사가 말하는 앰네스티 사무실의 2월은 “소란한 민주주의”입니다.

한국지부 사무실은 헌법재판소와 매우 인접해있어 2월 내내 ‘멸공의 횃불’ 같은 군가를 강제로 듣거나 탄핵을 둘러싼 크고 작은 집회시위를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에도 “국회해산” “탄핵을 탄핵하자” 같은 시위 구호가 사무실로 들려옵니다. 집중하기 힘든 업무 환경이지만 모든 집회시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니까요.

2017년 2월 27일 헌법재판소 앞 사거리. 탄핵 반대 시위가 있었다.

“앰네스티가 박근혜 대통령을 양심수로 선정했다는 가짜 뉴스를 만들어서 퍼트려보면 어떨까”라는 어줍잖은 농담이나 하며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 광장에 나서는 시민들과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 단체 활동가, 그리고 굉장한 피로도가 쌓였을 경찰들도 마찬가지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앰네스티는 2016년의 사업을 정리, 평가하고 새해의 사업을 시작하느라 분주한 2월을 보냈습니다.

3월 11일 예정된 정기총회를 특히 열심히 준비중이구요, 전략캠페인팀은 국회 안행위 소속의 여러 의원실과 공동주최하는 집회시위 국제컨퍼런스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는 새 정부에서 경찰의 집회시위 관리가 보다 인권친화적으로 이뤄지도록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예비작업입니다.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서도 뭔가(!)를 준비중입니다. 지난해에는 김보통 작가의 그림으로 머그&스티커를 준비했었는데요, 올해도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김보통 작가님 더 유명해져도 앰네스티와 계속 함께 해주셔야 해요..

한편, 북한인권을 연구하고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들을 초청해 비공개 포럼을 갖고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대안적인 북한인권 접근법을 모색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연례 인권보고서 발표가 있었고, 또 아놀드 팡 동아시아 조사관이 한국에 들러 몇 가지 사안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아놀드 팡 동아시아 조사관

그 어느 때보다도 이렇게 3월이 기다려진 적이 있었던가요. 유달리 긴 겨울입니다. 다가오는 봄에는 기다리는 좋은 소식이 모두를 찾아가기를 바랍니다. 늘 앰네스티와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월의 안국에서, 안국(安國)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화, 2017/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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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공습 즉각 중단 및 안전한 피난 보장 촉구 주요 대사관 앞 동시다발 1인 시위

일시 및 장소 : 12월 22일(목), 28일(수) 오전 11시 30분 ~ 오후 1시
러시아, 미국, 이란,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프랑스 대사관 및 인천공항 앞


1. 취지와 목적
 - 지난 6년간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45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1천 2백 만 명에 달하는 국내외 난민이 발생한 상황임. 최근 정부군이 장악한 알레포 동부 지역은 간헐적으로 적대행위가 계속되어 주민들의 피난은 수시로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고 있고, 지금 이 시각에도 러시아와 시리아 공군이 쏟아 붓는 미사일과 포탄이 주민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음.
 - 이러한 대규모 인명 피해와 난민 발생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미국, 이란, 터키 등 국가들의 정치·군사적 개입과 무기 판매는 시리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으며 피해는 확대되고 있음. 
 - 이러한 시리아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시리아 내전에 정치적·군사적 개입 해온 국가들 대사관 앞과 주요 도심지역에서 동시다발 1인 시위를 진행하고자 함. 이번 1인 시위를 통해 시리아 전역에 대한 공습 즉각 중단과 알레포를 비롯한 모든 지역 주민들의 안전한 피난 보장, 한국정부의 시리아 난민 인정을 촉구할 예정임. 

 

2. 개요
○ 일시 : 12월 22일(목), 28일(수) 오전 11시 30분 ~ 오후 1시
○ 장소 : 러시아, 미국, 이란,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프랑스 대사관 및 인천공항, 광화문 일대 
○ 공동주최 : 경계를넘어, 나눔문화,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평화교육프로젝트 모모, 평화바닥, 헬프시리아, 혁명기도원 

○ 문의 :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02-723-4250, [email protected])

수, 2016/12/2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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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여덟 명의 여성에게 2018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이야기하고 싶은 여성 인물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SF 칼럼리스트 심완선님은 한국의 여성 문인 지하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Amnesty International X 자선

지하련(池河蓮)은 1940년대 일제 말기에서 해방 직전까지 작품을 발표한 한국 여성 문인이다. 짧은 활동 기간과 적은 작품 수에도 불구하고, 워낙 문예 창작이 어려웠던 시기에 탁월한 글을 써서 이름이 남았다. 지하련의 대표작 <도정>(1946)은 뛰어난 완성도와 당대 지식인을 묘사한 작품 중 유일하게 양심의 가책을 다뤘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지하련의 소설은 여성주의적 측면에서 특히 의미가 깊다. 그녀의 글에서는 자유연애와 ‘신여성’이라는 개념이 새로이 전파된 근대 조선에서 실제 여성들이 겪었던 혼란과 내적 투쟁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지하련은 결혼제도를 둘러싼 허위의식과 그 붕괴, 새로운 자아를 향해 꿈틀거리는 여성들의 내적 욕구와 갈망, 이를 절망적으로 감내하거나 암시적으로 갈무리해야만 했던 시대상 등을 단편 안에 담았다.

한편 지하련은 임화의 부인으로 더욱 유명하다. 아내의 이름은 종종 남편에게 부수되는 것처럼 취급되기 때문에, 지하련 역시 임화의 유명세로 덩달아 이름을 알린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유명한 남편 때문에 지하련이 제 평가를 못 받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하련을 마냥 수동적으로 희생한 아내로 보기는 어렵다. 집안의 강경한 반대를 무릅쓰고 배우자를 택하고, 그에게 인생을 걸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지하련은 도쿄 유학을 거친 신여성으로, 남편과 함께 월북한 사회주의자로, 여성을 관찰하고 여성에 대해 쓴 여성 예술가로서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지하련의 인생을 살펴보는 것은 지난 격동의 세기에 삶을 마친 뛰어난 여성을 다시금 알리는 일일 뿐만 아니라, 한국문학사가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여성 소설의 여백을 재발견하는 일이다.

파시즘과 해방: 시대적 배경

지하련의 작품 수가 적은 이유는 그녀가 늦게 등단한데다 오로지 한국어로만 작품을 발표하길 고집했기 때문이다. 지하련이 등단한 1940년대는 익히 알려졌다시피 식민 통치가 가장 엄혹하던 시절이었다. 조선총독부는 1941년 조선사상범 예방 구금령을 내려 ‘사상범’으로 지목된 사람을 강제 수용했다. 그리고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노동력을 강제로 징용하며 집단 학살을 자행했다. 그 해 12월에는 태평양전쟁이 발발했고, 전쟁으로 인해 1944년에는 수많은 이들이 군인으로 강제 징집되고 여자정신대 근무령을 받았다.

국내 문학계도 암흑기였다. 1939년에 일제의 명으로 만들어진 조선문인협회의 취지는 문인들이 군국주의적 정책에 이바지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수두룩한 잡지가 폐간되어 글을 발표할 곳이 마땅찮아졌고, 이름 있는 문인들이 전쟁을 찬양하는 글을 썼다. 당시 평론가들은 신인들의 소설이 내용보다 기교 중심으로 발전했다고 평했다.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 추상적으로 침잠하며 암시와 은유 위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지하련의 소설에서도 과거가 없어 정체가 불분명한 지식인들이 조소, 방관, 윤리적 결벽증을 내보인다. 그러나 지하련의 <도정>은 유일하게 당대 지식인의 양심의 문제를 다뤘다는 평을 받는다. 소설의 화자는 옥살이를 했을 정도로 충실한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소 부르주아’라고 결론짓는다. 지하련 작품집 [도정]에 신간평을 쓴 정태용은 화자가 이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심리적으로 동요하는 과정의 묘사가 극히 정확하며 지하련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지하련의 냉정한 관찰력은 식민지 지식인의 무력한 고뇌를 꿰뚫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녀의 작품에는 남성의 허위의식을 간파하는 여성의 시선이 공존한다. 지하련이 발표한 단편소설 6편 중 3편은 당시 ‘아내’로 살아야 했던 여성들을 조망한다. 그럼에도 지식인의 초상만이 문학사적으로 가치 있는 주제라는 양 바라보는 것은 식상한 일이다.

아내의 서사

지하련이 그린 여성들의 초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남녀관계의 양상을 알 필요가 있다. ‘연애’는 국내에서는 1920년대에 만들어진 개념이다. 1910년대 일본 메이지 문학의 ‘고상하고 신성한 연애’가 유입되고, 자유연애를 칭송하는 20세기 초 연애담론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통설이다. 시인 노자영이 엮어 1923년 출간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연애서간집 <사랑의 불꽃>은 사회와 가족이 맺어주는 중매결혼에 맞서 자신의 영혼과 마음에 충실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여성의 자유연애는 여성 자신이 근대인이라고 자각하고 구시대적 관습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했다. 신여성 문인들은 마음으로 교류하는 평등한 관계를 공개적으로 추구했다. 나혜석의 일생은 물론이고, 잡지 <신여성>의 편집자였던 김원주는 “정조는 사랑이 있을 때만 존재하는 것”이라며 평생 지키는 게 아니라고 선언하는 글을 발표했다. 경성에는 분명 뾰족구두를 신고 모피를 두르고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여성들이 존재했으며, 이러한 문화적 변화는 정치 및 사회 변화와도 궤를 같이 했다.

신여성과 교육, 자유연애의 조합은 구여성 및 중매결혼과 대척점에 서는 것처럼 보인다. 배명훈의 소설 [고고심령학자](2017)는 근대 조선에 있었던 일본 여성 인물을 묘사하며 이런 말을 한다. “신식 교육을 받은 구식 여자가 되거나, 신식 교육을 받은 못돼먹은 여자가 될 수 있을 따름이었다”. 신여성과 구여성 같은 이분법은, 성녀와 창녀, 개념녀와 된장녀라는 비교에서 보이듯 실제로 여성 집단을 둘로 나눈다기보다는 여성에게 부과되는 이중의 역할을 대비시킨 것에 불과했다. 오히려 신여성과 구여성의 모습을 조합한 이상적인 ‘양처’와 같은 개념이 등장하며 여성에게 이중의 족쇄를 씌웠다. 여성과 똑같이 근대적 개념을 받아들인, 구습에서의 해방을 추구하는 남성 지식인들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아동을 존중하여 어린이라 부르자던 방정환은 은파리라는 필명으로 통속소설을 연재하며 신여성의 ‘괘씸함’을 탓했다. 여성 작가 김명순의 독신주의는 처녀가 문란한 생활을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더군다나 연애 개념은 남성의 외도를 합리화하는 핑계로 작용하기도 했다. 도시로 상경한 여러 남성 지식인이 고향에 본처를 두고 신식 여성을 첩으로 맞이했다.

지하련의 소설은 연애를 다루지만, 연애감정에서는 한 발 물러나 결혼제도라는 틀에서 비어져나오며 불협화음을 내는 여성에게 주목한다. 지하련 전집을 엮은 서정자 교수는 지하련의 소설을 “아내의 서사”라고 말한다. <양>(1942)에서, 여학교를 나왔음에도 신여성 차림을 하지 않고 지내는 정인은 작중 성재가 아니라 양품점 청년과 결혼하겠다는 이유로 “하천한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안심할 수 있다는 것”을 꼽는다. ‘연애’ 담론이 찬양하는 열린 교류나 평등한 관계는 없다. 지하련의 데뷔작 <결별>(1940)의 형예는 남편이 잠든 곁에서 벌레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완전히 혼자라는 것” 깨닫는다. 친구 정히네 부부가 늦게 결혼했어도 연애관계로 맺어진 것과 달리 형예의 남편은 형예를 아내 역할을 할 사람으로 볼 뿐이기 때문이다. <가을>은 반대로 아내의 친구에게 연모를 받는 남편 입장에서, <산길>은 자신의 친구와 남편이 연애관계에 빠진 것을 지켜보는 아내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여성이 보는 여성의 모습이 있다. 행실이 어떠니 살림이 어떠니 하는 남편 입장의 평가가 아니라, 날카로운 농담을 하며 까르르 웃는 새댁들이나 결혼보다 연애를 말하며 곧고 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여자 친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시대를 압도하는 절망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 하 결혼제도로 인한 신산함은 폄하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엄혹한 시기였기에 ‘아내’된 여성의 내적 갈등은 한층 복합적인 양상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한국근대문학사는 이 모두를 중요치 않은 일로 폄하해온 감이 없지 않다. 국어 교과서에서 여성 소설을 보기 힘든 이유가 정말로 여성 문인이 드물었기 때문일까. 여성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졌던 만큼, 우리 세상에 존재했으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들에게 귀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지하련의 삶

지하련은 필명이고 본명은 이현욱으로, 1912년 경남 거창에서 출생해 마산에서 성장했다.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그녀는 부유한 대지주 집안에서 자라 당대 여성으로는 드물게 근방의 학교가 아니라 일본 도쿄에서 학업을 마쳤다. 오빠들이 사회주의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며, 지하련도 일찌감치 사회주의를 접한 것으로 보인다. 임화가 마산에서 요양 중일 때 만나서 1936년에 그와 결혼했다. 아이 딸린 이혼남과 결혼하겠다는 말에 큰오빠에게 뺨을 맞았지만, 혼인신고 4일만에 아들을 낳았다. 1940년에 <<문장>>에 단편 <결별>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임화가 동지 박헌영을 따라서 월북을 결심하자 1947년 고향도 가족도 버리고 임화를 따라 월북했다.

월북한 예술가들의 흔적은 남과 북 양쪽에서 말소됐다. 임화는 그나마 공식적으로 발표한 글 등 비교적 기록이 있지만 지하련의 삶은 그녀가 발표한 작품 일부와 다른 여성 문인들의 기록에 단편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한국전쟁 중에는 만주에 머물러 있었고, 그래서 북에 남았던 임화가 박헌영 계열의 몰락과 함께 김일성 계열에 간첩 혐의로 처형된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지하련은 임화의 사망을 알고 실성하여 헤매다니다 평안북도 희천의 교화시설에 수용당했다가 병사했다고 추정된다.

글. 심완선
그림. 구자선

목, 2018/03/0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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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에서의 민간인 학살 중단과 전쟁 종식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

일시: 2018년 3월 22일(목) 오후 7시,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시리아에서 민간인 학살 중단과 전쟁 종식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참여해주세요

 

따스한 봄 햇살처럼 세상 모든 이들에게도 평화가 깃들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인사드립니다. 

 

2011년 3월 시리아 남부도시 다라에서 15명의 청소년들이 반정부 구호를 담벼락에 쓴 혐의로 체포돼 고문당한 사건을 신호탄 삼아 시리아에서 민주화 항쟁이 시작된 지 어느덧 햇수로 정확히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그 7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자유와 정의, 인간의 존엄을 향한 시리아 국민들의 고귀한 용기와 감동적인 헌신은 어느덧 끝 모를 전쟁과 학살, 굶주림, 질병, 이산이라는 고통으로 변질돼 주민들은 날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선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2월 18일부터 수도 다마스쿠스 동쪽의 반군 장악지역인 동구타(Eastern Ghouta)를 상대로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 공군이 집중적인 공습과 지상전을 벌이면서 2016년 말 불과 한 달여 만에 역시나 정부군의 포위 공격으로 천여 명의 주민들이 완전히 고립된 채 죽어갔던 ‘알레포 사태’의 지옥도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미 과거 100만 명에 달했던 인구가 전쟁으로 인해 40만 명까지 줄어든 동구타의 주민들은 2013년 8월 최소 1,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은 화학무기 공격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매일 100여 회가 넘는 폭격과 전투를 극도의 공포 속에 고스란히 감내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이런 상황을 타개해야 할 책임이 있는 이른바 ‘국제사회’는 무기력하기만 합니다. 2월 2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시리아 동구타 30일 휴전안’을 결의했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잇달아 터져 나오는 폭발음과 비명소리에 묻혀 아무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비극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끝내야 할까요? 불행히 누구도 그 명쾌한 답을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사실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동구타에서, 지금 이 순간 터키군의 집중적인 포위공격을 받고 있는 아프린에서, 그리고 시리아 전쟁 현장 그 어느 곳에서든 간에 이런 비인도적인 살상행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 각국의 시민들이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됩니다. 학살을 중단하라고, 전쟁을 멈추라고 외쳐야 합니다.

 

그런 무거운 책임감과 절박함을 함께 공유하는 한국의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이 오는 3월 22일 목요일 저녁 7시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시리아에서의 민간인 학살 중단과 전쟁 종식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엽니다.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부탁합니다. 

 

개요

  • 일시: 2018년 3월 22일(목), 저녁 7시
  • 장소: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 주최: 경계를넘어, 나눔문화, 다른세상을향한연대, 법인권사회연구소, 국제엠네스티한국지부, 반전평화연대(준), 시민평화포럼, 옥바라지선교센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평화바닥, 피스모모, 헬프시리아 등
  • 문의: 나눔문화 02-734-1977,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02-723-4250
월, 2018/03/1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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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네스티는 지난 7월, 오랜만에 <퀴어토크>와 <퀴어문화축제> 등 대중행사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공교롭게 두 행사를 치른 날 모두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는데요, 행여나 사람들이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스태프들의 마음은 침수됐지만, 다행히도 행사는 성황리에 끝이 났습니다. 반가운 얼굴도 많이 만났고요!

이 자리에 아쉽게 함께 하지 못하신 분들은 기사를 통해서라도 꼭 확인해보세요!

퀴어토크 3부 패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손미나, 나비, 봉레오, 지미, 김도훈

퀴어토크 3부 – 「미운 우리 “퀴어” 새끼」

<퀴어토크>  3부 – 「미운 우리 “퀴어” 새끼」 셀프 영상


 

<퀴어문화축제> 이야기 보기 – 허프포스트코리아

올해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부스에서는 하트타투와 스티커, 자선 작가의 일러스트 엽서 그리고 야심 차게 준비한 깃발을 나눠드렸어요. 장대 빗물에 젖어 금세 너덜너덜해졌고, 스태프들의 마음도 추적추적 젖었습니다만, 이후 의외의 곳에서 앰네스티 하트 스티커를 확인하니 만감이 교차하면서도 뿌듯했습니다. //ㅅ//

SBS 『그것이 알고 싶다』작가 노트북에 붙은 여러 스티커 중 우측 상단에 앰네스티 하트 스티커가 떡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페미니즘 교육을 진행하고 계신 한 선생님의 책상에 앰네스티가 나눠드린 일러스트 엽서와 스티커가 붙어있다.

 


 

행사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 자리를 빌려 행사 치를 때마다 스태프들끼리 하는 하소연을 살짝 공개합니다.

해외에서 악명높다는 한국인의 ‘NO SHOW’ 현상은 정녕 NGO 행사도 예외가 아닌가 봅니다. 제한적인 현장 시설과 물품 준비, 행사 진행시간 등의 흐름 때문에 참가자 규모 예측은 행사 진행에 있어 아주 중요한데요, 그런데.. 참가비 없는 행사 신청자의 참석률을 어떤 행사이건 간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50% 내외입니다. 오죽하면 참석률을 높이고자 보증금 형식으로 참가비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일단 신청하고 보자 하신 분들, 참석이 어려울 때는 꼭 취소 연락을 주세요. 다른 누군가에게 그 기회가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

더불어 무작정 찾아오시기 보다는 사전에 꼭 신청을 해주세요!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라는 마음은 좋지만, 이런 상황 역시 당일 행사 진행에서 저희를 난감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감된 행사일 경우에 거절당한 분들도 많으니까요. 가벼운 메일이나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합니다!

그럼 저희는 선선해진 날씨와 함께 더 좋은 행사로 찾아오겠습니다. 또 만나요!

금, 2017/09/0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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