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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오 시스터즈’ – 오민애, 오현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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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오 시스터즈’ – 오민애, 오현정 변호사

익명 (미확인) | 금, 2017/03/1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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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 대응 TF, 故백남기 농민 변호인단, 세월호 특조위 조사관 공무원 보수 지급 청구 소송, 박근혜 정권 퇴진 특위, 민변 탄핵정국 특별 팟캐스트 <탄캐스트> 등 민변의 굵직한 사업이나 변호인단에는 언제나 ‘오 시스터즈’의 이름이 있다.

그런데 정작 둘 사이 사연은 좀 심심하다. 둘이 ‘오 시스터즈’가 된 건 그냥 공교롭게도 성이 같아서 보시는 분들이 별명 붙이기 좋았던 것 같고, 친해지는데 특별한 계기나 사연 같은 건 없고, 같은 기수, 비슷한 나이,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게 많아서 그런 거라고 한다.

옆에서 가만 보니 오현정 변호사는 말할 때 상대방 눈을 보고 말하고, 오민애 변호사는 자기 얘기하는데 어색해보여도 들을 때는 상대를 잘 쳐다봐준다. 다른 사람 말을 잘 들어주는 오민애 변호사의 장점을 닮고 싶다는 오현정 변호사와, 필요한 순간 필요한 이야기를 자신 있게 하는 오현정 변호사의 장점을 닮고 싶다는 오민애 변호사. ‘오 시스터즈’를 만났다.

법을 공부하면 당연히 차별과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는 건 줄 알았지

20년쯤 전에, 어떤 영화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어린이가 있었다. 그 어린이가 본 영화는 <타임 투 킬(A Time to Kill)>. 아직 KKK단이 횡행하던 시절, 인종차별이 특히 심했던 미국 남부 미시시피의 어떤 흑인 살인자를 변호하게 된 신참내기 백인 변호사 이야기다.

딸을 처참하게 강간한 백인 건달들이 법의 처벌을 벗어나 거리를 나다니는 것을 참지 못한 흑인 아버지 칼리는 법정에서 기관총으로 이들을 살해해버린다. 이 사건 변호를 맡은 백인 변호사 제이크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테러로 살던 집이 완전히 타버리는 상황까지 내몰리면서도 끝내 배심원의 무죄 평결을 받아낸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제이크는 자신의 입으로는 “흑인과 백인은 친구”라 말하면서도 사실은 얼마나 위선적이었는지 깨닫는다. 칼리는 “당신은 내가 어디 사는지 모르지. 우리 아이들은 함께 놀 수가 없어.”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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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임 투 킬(A Time to Kill)> 이야기를 하는 오민애 변호사

이 영화를 감명 깊게 본 오민애 어린이는 변호사가 되면, 혹은 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되면 차별과 사회문제를 조금은 해결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대학에 와서 법을 공부하는 동기들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

사회적 차별과 구조적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빨리 성공하면 그만큼 더 주목받았다. 대학생 오민애는 변호사가 되면 단순히 법으로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공익에 관계된 일이나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오민애 변호사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사연이 아니라서, 재미는 없는 이야기”라면서도, “민변 활동을 하면서 원래 하고 싶었던 활동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어쩐지 전공이 재미가 없다 했더니, 이 길이 내 길이 아니었네

오현정 변호사의 학부 전공은 경제학부다. 어릴 땐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그건 어릴 때 얘기다. 경제학을 전공으로 삼긴 했는데 막연하게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에 들어가 뭘 어떻게 하겠다, 이런 계획엔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다. 오현정 변호사는 “그 전에는 사회에서 실제로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고 말했다.

오현정 변호사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사건은 프랑스 교환학생 경험이었다. “거기 사회에서 제가 처음으로 ‘여성 이민자’라는 소수자적 입장에서 삶을 살아보게 된 거죠. 그 경험이 저에게 미친 영향이 있었어요.” 마이너리티에 대한 경험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목격한 것도 의미가 컸다.

연말의 어느 날, 오현정 변호사는 유명 서점으로 책을 사러 몰려든 사람들 틈에 끼어있던 참이었다. 계산대마다 사람이 수십 명씩 장사진을 쳤다. 그런데 기다리는 사람들을 놓아두고, 계산대 직원이 “근무시간이 끝났다”며 그대로 떠나버렸다. 줄 서있던 사람들 중 누구도 직원을 비난하거나 불만을 토하지 않았다. 그냥 다른 줄로 옮겨갔을 뿐이었다.

“일상적인 거긴 한데, 여기는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의 시간과 욕구를 존중받으면서 사는구나,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우리나라였으면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거 같고, 욕을 하지 않더라도 투덜거리면서 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정도는 있었을 거 같거든요.” 한국에서 본 적 없는 장면이었다. 프랑스에서 돌아와 4학년이 되자 사회문제에 관심이 생겼다. 이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관심을 갖게 되자 자연스럽게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로스쿨에 진학한 뒤에도 오현정 변호사는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공적인 규범을 다루는 일을 하고 싶어 로스쿨에 진학했는데, 정작 로스쿨에서는 “경쟁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하는 삭막한 교육 현실”이 오현정 변호사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면서 여러 이슈를 다루는 민변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싶다는 맘이 많이 들었죠.”

오민애 변호사와 오현정 변호사가 처음 만나 것도 그 즈음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게 된 계기는 미군문제연구위원회 위원장 하주희 변호사 덕분이다. 하주희 변호사가 자신이 강연 등으로 인연 맺은 로스쿨 학생들을 모아 만나는 자리를 만들었다. 그때 오민애 변호사는 6개월 실무 수습 기간 동안 <민중의 소리>에서 법조전문 기자 활동을 병행하고 있던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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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정 변호사의 이야기를 듣는 오민애 변호사

대학 졸업 후 바로 로스쿨 진학한 과정이 비슷하고, 같은 공간에서 일하면서, 관심과 고민도 비슷하고, 민변 활동도 같이 한다. 여기에 기수도 같고, 나이도 한 살 차이로 비슷하다. 어떤 게 힘든지, 일이 잘 안 풀릴 땐 무엇이 고민되는지, 일이 잘 됐을 때 얼마나 성취감을 느끼는지, 특별히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금방 알아준다. 초코파이도 아니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같은 사이다.

오현정 변호사는 오민애 변호사에 대해 “당사자 앞에서 말하려니 좀 부끄럽지만, 언니가 정말 착하다”고 칭찬했다. “제가 징징거리면 따뜻하게 받아줘요. 언니가 더 힘든 일이 많을 거 같은데, 저로서는 감사할 뿐이죠.”

서로 다른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오민애 변호사가 말을 꺼내기 전에 한참을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 타입이라면 오현정 변호사는 반대로 필요한 말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곧 잘 하는 성격이다. 서로 정확하게 반대되는 특징이라, 오민애 변호사는 오현정 변호사를 부러워하고, 오현정 변호사는 오민애 변호사를 부러워한다.

오현정 변호사는 “제가 철이 없는 거 같기도 하고, 성격인 거 같기도 하다”며 신중한 오민애 변호사를 칭찬했다. 대학 때는 동아리 선배들이 “쟤는 신입생인데, 하고 싶은 말 다 한다”는 얘기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반대로 오민애 변호사는 “생각을 많이 해야 말이 나온다. 그게 저한테는 단점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며 “해야 할 이야기를 못하고 놓치면 피해가 제가 아니라 제가 변호하는 분한테 간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아찔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바로바로 필요한 말을 하는 오현정 변호사의 장점을 배우고 싶다고.

변호사로 살면서 잊을 수 없는 순간들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꼽은 건 故백남기 농민의 부검 영장 집행을 끝내 저지했던 그 날이다. 첫 영장이 기각된 후 조건부 영장이 나왔을 때, 오민애 변호사는 “조건이 해석하기에 따라 난점이 좀 있지만, 결국 경찰이 밀고 들어오면 부검이 강행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했다. 영장 집행 기한 마지막 날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으로 ‘태블릿 PC’와 국정농단에 대한 해명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때서야 ‘아, 영장 집행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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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정 변호사는 대화할 때 가끔 놀랄 정도로 상대의 눈을 또렷하게 쳐다본다.

경찰이 물러가자 서울대병원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떠나는 경찰을 향해 야유를 퍼부었다. 곧 축제 분위기가 이어졌다. 오현정 변호사는 “경찰이 최종적으로 영장 집행을 안 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과 같이 환호하고 기뻐했던 경험이 저한테 강렬하게 남았다”며 “영장을 막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사람들이 모여서 결국 영장 집행 저지를 가능하게 한 힘이 됐다는 게 좋았다”고 떠올렸다. 오민애 변호사 역시 “사람들이 찬 바닥에서 자면서 몸으로 막아내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꼈다”며 “영장 집행을 결국 저지하고 축제 분위기가 되는 걸 보면서 힘을 얻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민변에서만 배울 수 있는 특별한 이야기

민변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소문 난 두 사람. ‘오 시스터즈’라는 별명까지 붙은 건 사실 그런 적극적 활동에 대한 칭찬의 의미도 없지 않을 테다. 하지만 오현정 변호사는 “사무실에서 민변 활동을 많이 장려해서 저희가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거”라며 “저희가 독특해 보이는 이유는 사실 다른 초년차 변호사들에 비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사무실에 민변 회원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못하거나, 다른 업무에 바쁜 회원들에 비해 여건이 좋기 때문에 유난히 더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라는 이야기다.

선배 변호사들을 보고 배우는 점도 많다. 오현정 변호사는 특히 하주희 변호사에게 배울 점이 많다고 꼽았다. “여성 변호사로서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에서 이슈를 발굴하고, 문제의식을 밀고 나가는 부분이 굉장히 닮고 싶다고 생각한다”며 “그냥 어디 들어가 열심히 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정말 어떤 걸 바꿔보고 싶다”고 말했다. 문제를 제기하는데 얼마나 절실하냐에 따라 도전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마련이고, 자신에게 부족한 바로 그 부분을 하주희 변호사한테 배우고 있다고.

오민애 변호사는 “변호사라고 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한 뒤 그 문제를 사후적으로 해결하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민변과 선배 변호사들을 보며 바꾸게 되었다. “사후적 해결도 중요하지만, 필요한 곳에 가서 ‘어떤 걸 해보자’고 제안도 할 수 있고, 법정에서 서면으로 이야기하는 것 말고도 함께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걸, 선배들이 몸소 보여준다.

오민애 변호사는 민변 활동을 하면서 변호사의 역할과 변호사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다. 오민애 변호사는 “변호사는 법정에서 말 잘 하고 서면 잘 쓰면 된다고들 한다”며 “그건 당연한 일이지만, 민변 활동을 하면서 변호사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발부되던 그 때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며 아이러니를 느꼈다. 법원의 판단 하나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기뻐하거나 이렇게 분노하고 슬퍼할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오민애 변호사는 “변호사가 해야 할 일, 하면 안 되는 일을 딱 잘라 구분 지을 수 없다는 걸 많이 느낀다”며 “다양한 선배 변호사님들을 보면서 어떤 식으로 대응하는 게 가장 적절하고 현명한지 많이 배우게 된다”는 것을 민변 회원이 되기 전과 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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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중인 오민애, 오현정 변호사.

민변에서 다루는 사건은 다른 사건에 비해 훨씬 예민하고 첨예하다. 일반적인 사건이라면 즉각 수사하고 일사천리로 재판까지 이어질 텐데, 故백남기 농민 같은 피해자들은 사건 진행이 유난히 어렵다. 경찰이나 검찰은 수사를 하는 건지 아닌지 알 수도 없고, 평범한 사건에서는 문제되지 않을 사소한 절차 하나를 두고 다투는 부수적인 싸움도 많다. 사람마다 대응하는 방식도 다르다. 어떤 사람은 직설적으로 싸우고, 어떤 사람은 우회적인 협상으로 원만하게 넘기기도 한다. 오현정 변호사는 “민감하고 예민한 상황 속에서 각기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여러 선배님들의 다양한 스타일을 보고 배운다”고 말했다.

“민변 활동을 통해 적절할 때 잘 싸울 수 있는 변호사가 되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되는 게 목표구요.” 인터뷰가 끝나고, ‘오 시스터즈’는 민변 사무처로 가는 오르막길을 올랐다. 이날도 점심 회의가 ‘오 시스터즈’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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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부터 1박 2일 동안 파주에서 민변 통일위원회 워크샵이 열렸습니다. 워크샵 주제는 “통일위 화합과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바야흐로 문재인 대통령 시대를 맞이하여 통일위의 새로운 비전을 함께 모색하자는 것이었는데 실상은 워크샵을 통한 통일위 단합이 우선이었지요

남한의 최북단 파주에 위치한 ‘착한 펜션’에 저녁 6시까지 모이기로 했는데 4시부터 한 분씩 출발을 알려왔습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천낙붕 변호사님팀이 펜션의 정확한 위치와 그곳의 현황을 알리면서 출발을 독려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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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먼저 도착해 동심으로 즐거운 천낙붕 변호사님❯

 

펜션 주변은 한적한 농촌이어서 번잡한 서울과 달리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기에 좋았습니다. 짐을 풀고 한담을 나누고 있는데 어디선가 계속 음악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동네 잔치가 열렸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음악이 끊이지 않고 약간은 소음이라고 생각될 정도여서 음악소리의 근원을 파악해보니 그 음악소리는 휴전선을 두고 남과 북이 서로에게 보내는 선전선동을 동반한 소음?이었습니다. 서로를 향해 총 대신 음악을 쏘아대는 “음악교전”이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었네요. 씁쓸한 현실이었습니다.

6시를 전후하여 한분씩 도착하였는데 우리에게 배정된 방이 공교롭게도 ‘백두산’과 ‘묘향산’이었습니다. 짐을 풀고 곧바로 식사준비. 풍성한 밥상과 다양한 주류를 맛나게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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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난 저녁식사와 반주로 단합을 다집니다.❯

 

준비성 좋은 채희준 위원장님이 막걸리만 해도 4종류를 준비해오셔서 밤 깊은 줄 모르고 맛나게 마시며 재미난 얘기와 향후 통일위 활동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오영 변호사님의 제안으로 현장 월례회가 제안되어 즉석에서 강화도 교동도에서의 월례회가 결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역시 워크샵의 묘미는 여유있는 식사와 반주, 그리고 주제를 정하지 않고 나누는 대화입니다.

한참을 맛나게 먹고 중간중간 기념촬영도 해가가면서 재미난 시간을 나누었습니다. 다음 날의 일정 때문에 중간에 일어나야하는 변호사님들이 몇 분 있었습니다. 자리를 뜨고 싶지 않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일정상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뜨는 분들을 그냥 보내기엔 너무 아쉬워 각자 노래를 하나씩 불러야 이석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앵콜송까지 하나씩 더 부르고 3분이 먼저 자리를 떴습니다. 3분이 자리를 뜨는 중간에 휴식과 자리 정돈을 하고 다시 뒷풀이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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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 자동차 불빛을 이용하여 한 컷❯

 

다음 날은 반구정과 임진각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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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정 입구에서 ❯

반구정은 잘 알다시피 황희정승이 말년을 보낸 곳입니다. 임진강 바로 옆에 위치해있어 참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이었지만 임진강 주변을 따라 설치된 철책에 본래의 운치가 변질?된 듯했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구질구질한 철책을 두르고 있어야하는지 답답했습니다. 반구정에서 내려다본 임진강은 평화롭게 흐르는데 어찌 우리 민족은 7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는지. 통일위가 앞으로 해야할 일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구정 바로 아래 철책이 설치되어 있고 임진강 건너 편 강둑에도 철책이 설치되어 있어 짧은 시간이나마 강건너가 바로 북한 땅이라는 착각 속에 재미난 얘기가 오갔습니다. 어떤 얘기가 오고갔는지 상상에 맡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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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정 바로 아래 설치되어 있는 철책❯

 

반구정을 구경하고 임진각과 평화누리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임진각은 이른 시간임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망향의 서러움을 조금이라도 달래려 실향민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인데 외국인 관광객도 제법 있었습니다. 임진각 곳곳에 분단과 전쟁 때의 광경을 담은 사진이 있었고 북을 향해 달리고 싶은 녹슨 기차도 있었습니다. 유명한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문구를 확인하였습니다.

1년 전인 2016년 6월 통일위는 “독일통일기행”을 다녀왔는데 당시 독일의 시골마을인 뫼들라로이트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었습니다. 한때는 동서독 분단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동서독 분단을 기억하는 국경박물관으로 남아있었는데 많이 부러웠습니다. 참 아름다운 시골 풍경도 부러웠지만 이제는 분단을 과거로 기념하며 박물관으로 남아있는 것이라 더 부러웠습니다. 임진각 역시 아름다운 곳이지만 분단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우리의 임진각이 하루빨리 통일의 기념관으로, 분단을 과거로 기념하는 곳으로 남기를 가슴깊이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통일위 회원들은 임진각 3층에서 북쪽을 바라보면서 커피를 한잔씩 마시고 2017년도 통일위 워크샵을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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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통일위가 방문한 독일 국경박물관이 있는 뫼들라로이트의 철책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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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임진각에서 북쪽을 바라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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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각 3층에서❯

월, 2017/07/2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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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연일 국민안전처의 폭염경보 안내문자가 울리는 대구입니다. 날씨만큼 그동안 대구지부의 활동도 무척 HOT했습니다.

민변 대구지부 활동 (2016년 하반기~ 2017년 상반기)

1. 박근혜 퇴진요구 대구시국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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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 17. 지부는 자체적으로 시국관련 좌담회를 열어 회원(18명)들이 모여 논의를 걸친 끝에 「박근혜 퇴진 대구시민행동」 소속단체로 활동하기로 결정, 이후 대구촛불집회에 총 17차례 참여하였습니다. 최봉태 변호사님께서는 12. 17. 광주시국촛불대회에 참가하셔서 광주시민들 앞에서 발언을 하셨습니다.

2. 지부 송년회 (2016.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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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소년 선거권 확대를 위한 위한 토론회 및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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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부 봄 야유회 (2017. 4. 29./ 경남 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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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에서 봄 야유회를 오랜만에 개최하였습니다. 4. 29. 회원13명, 가족 17명
으로 해금강, 외도 관광, 옥포해전 기념관 관람 등 알찬 시간을 보냈습니다.

5. 성주 소성리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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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3. 성주 소성리 수요집회 방문에는 지부회원과 함께 이용수 할머니께서 참석했으며, 주민들께서 정답게 맞아주셨습니다. 성주 소성리 주민들께 지부에서 준비한 물품(반찬)을 전달해 드렸습니다.

6. 지부 총회 (2017.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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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창녕 정재형 변호사님 전원주택에서 지부 총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신입회원 백수범(변시 4회), 예현주 변호사님(변시 3회) 환영회도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회원들 간의 덕담이 오가고 멋진 노래가 어우러져 두고 두고 기억에 남는 총회였다지요^^

7.「흉터의 꽃」 김옥숙 작가 북콘서트 개최 (2017.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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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태 변호사님(소송대리인단 단장)께서 중심이 되어 지부에서는 미국 정부와 원폭제조사, 한국 정부를 상대로 오는 8. 3. 대구지방법원에 원폭피해 조정신청서를 제소하고자 합니다.
이에 앞서 원폭피해자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과 공동주최로 여론 확산의 계기를 만들기 위해 지난 7. 6. 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 2층 상상홀에서 이번 조정신청인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흉터의 꽃」 출간을 맞아 작가인 김옥숙씨를 모시고 북콘서트(대담: 예현주 변호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번 조정 신청을 시작으로 원폭피해자들의 치유와 권리구제를 위한 법적 투쟁을 시작하며 종국적으로 원폭 피해자에게 정의가 회복되고 나아가 핵무기 없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하며 전국의 민변회원 분께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이상 민변대구지부의 2016년 하반기~ 2017년 상반기 소식을 마치겠습니다.

월, 2017/07/2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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