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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 광주전남지부 총회 그리고 ‘의미가 되고 싶은’ 광주의 공익변호사 활동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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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 광주전남지부 총회 그리고 ‘의미가 되고 싶은’ 광주의 공익변호사 활동 들여다보기

익명 (미확인) | 금, 2017/02/10- 18:02

민변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 광주전남지부 총회 그리고 ‘의미가 되고 싶은’ 광주의 공익변호사 활동 들여다보기

글 정리 : 이혜정 변호사

 

  • 이야기 하나 : 광주전남지부 총회

2017. 2. 8. 쌀쌀한 저녁. 민변 광주전남지부에서 정기총회가 열렸다. 총회에는 대략 30여명의 회원이 참석하였고, 이 날 두 명의 신입회원이 가입하여 총 53명의 성원보고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총회가 시작되었다. 최근 광주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 당선된 최병근 변호사님과 정연순 회장님의 인사말에 이어 2016년 주요 안건과 사업에 대한 보고와 결산 및 세세한 평가가 이어졌다. 광주전남지부 총회를 위해 본부에서는 7명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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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인 것은 신입회원에 대한 가입 승인과정이 본부와 달리 매우 엄격하다는 것이었다. 이 날 승인된 두 명의 신입회원은 가입신청서 제출 후 40여분에 이르는 집행부의 심층 압박 면접을 견뎌야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신입회원에 대한 보증 절차를 거쳐야 했고, 승인 전 표결을 위한 질의를 받은 다음, 6인 이상의 반대가 없으면 그제서야 비로소 광주전남지부의 정식회원이 되는 것이다! 이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는 의미로, 지부에서는 회원임을 인증하는 커다란 벽시계를 선물로 증정한다. 그 시계에는 “민변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라고 쓰여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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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당일 험난한 과정을 거쳐 신입회원 승인을 받고, 인증 시계를 수여받은 길탁균, 김춘호 변호사님

총회자료집에 빼곡하게 자리 잡은 각종의 활동들이 지난 한 해 동안 지부가 얼마나 분주하게 공익을 위해 헌신하였는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각종 사업보고에 이어지는 정량평가와 정성평가는 아주 세심하고 날카로웠다. 가령 2016. 공익소송기획에 대한 정량평가의 경우 5점 만점을 기준으로 공익소송 활동은 4점, 배당은 2점, 사건발굴은 4점을 부여받았는데, 양질의 사건을 발굴한 것이 높게 평가되었다. 회원사업의 보고는 회원 상호간 친목도모의 경우 배점은 7점이나 그 평가에 있어서는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점수를 줄 정도는 아니라고’ 자평. 또한 활동을 하면서 회원들이 자연스레 만나는 과정에서 인생의 동반자가 됐거나, 회원과 지부에 관심이 많은 비회원 간에 곧 결혼할 커플이 있었는데, 이러한 인연 뒤에는 회원사업단이 의미 있는 인과관계를 끼쳤다며 회원사업단의 업적으로 자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다소 억지스러운 자찬을 의식해서인지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인과관계가 없다는 측의 항의를 우려해 각주처리를 하면서, 막연하나마 인과관계에 대한 근거를 곁들이며 설명한 것은 마치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게 하는 나름의 설득력이 있어 어느새 수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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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면서도 따뜻한 정감이 느껴지는 총회자료집만 봐도 광주전남지부의 활동과 분위기가 얼마나 가족적이고 화목한지 추운 날씨 속에서도 절로 훈훈함이 느껴졌다. 6시가 넘어 시작된 총회는 8시로 넘어가자 식사를 위해 뒷풀이 장소로 이동했다. 숨소리마저도 크게 들릴 정도로 근엄했던 총회와 달리 뒷풀이는 웃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즐거웠다. 지부 사회는 총회며, 뒷풀이며 정인기 변호사님 전담으로 보였는데, 진행이 깔끔하고 착착 진행되는 느낌에 감탄스러웠다. 김상훈 지부장님은 귀여운 얼굴을 더 돋보이게 하는 덧니가 매력적이어서 보기만 해도 웃음이 삐져나오곤 했는데, 그 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부장님의 그 덧니 뒤에는 또 다른 이가 숨어있는 게 아니라 익살스러움과 유머스러움이 한가득 자리 잡고 있음을. 특히 본부에서도 시급히 도입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 건배사 전의 지부장님의 호명 3창은 분위기를 흥겹게 달아오르게 하면서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었고, 서 있는 사람으로서는 짧게나마 건배사 멘트 준비시간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친구따라 조건 없는 기부를 거침없이 하시고, 자그마한 얼굴에 우병우와 유재석, 최근 대한변협 회장으로 당선된 그 분의 얼굴까지 두루 가지고 있으면서도 개그맨보다 더 웃겼던 강성두 변호사님, 지부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고 선한 아우라를 가진 임태호 변호사님, 소고기도 아닌데 겉만 익었다 싶으면 마구 먹어치우는 제 앞에서 연신 고기 굽느라 바빴던 박인동 변호사님, 가장 지부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도 부족했다며 활동이 뜸한 회원을 위축시키게 한 송창운 변호사님, 너무도 아름다우신 임선숙 변호사님, 광주지부 여성회원들은 어찌 다 그리 고우신지요. 이름만 접했을 때는 원로변호사님 같은 느낌이었는데 실제는 최강 동안인 이상갑 변호사님. 그가 있어 광주가 낯설지 않은 동기 김정우 변호사님. 지부를 든든히 지키고 있는 두상이 잘생긴 전직 락커 박상희 간사님 등 한분 한분이 그렇게 정겹고 그 시간이 너무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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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 쪽 세 번째가 “웃기려고 하는 게 아닌데 여기저기 빵빵 터트리는 놀랍고 신비로운 일”(박상희 간사)을 일으킨다는 강성두 회원. 광주지부 제공

광주에서 발견한 것은 지부 회원들의 따뜻함만이 아니었다. 그 날 식당은 낙지마을로 예정돼 있었는데 실제는 낙지가 아닌 메뉴에도 없는 생뚱맞은 삼겹살이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낙지전문점인 그 식당에서 맛본 삼겹살은 그 동안 먹어 본 삼겹살 중 가히 최고라 말할 수 있었다. 역시 맛과 멋의 고장 광주는 남달랐다. 전공이나 전문이 아니더라도 최고의 맛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마도 광주지부의 변호사들 또한 그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전문영역뿐 아니라 때로는 낯설고 막막한 공익사건을 마주할 때도 최고의 실력과 헌신으로 준비한다는. 광주는 이런 전통과 습관이 모든 곳에서 자연스레 베어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머와 여유를 잃지 않으면서도 불의 앞에 당당했던 민주화의 성지 광주는 지부 회원의 면면 속에 그대로 담겨있었다. 따듯한 추억 한아름을 선물해 주신 광주전남지부 회원여러분, 정말 감사드리고, 5월 총회에서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겠습니다!

  • 이야기 둘 : 광주전남 지부 속 공익전담 이소아 변호사의 사는 이야기

이혜정 : 오랜만입니다. 모르는 회원들도 있으니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이소아 : 안녕하세요?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의 이소아 변호사입니다. 저희 단체는 수도권을 벗어난 지역, 특히 인권의 도시 광주에서 공익인권 전업으로 법률지원을 하는 비영리단체이구요. “존엄과 권리를 상실한 이들 곁에서 바라보는 귀, 듣는 눈으로 들어 법의 목소리로 세상에 전달하고자“하는 지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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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 서울에서 활동하다 광주로 가셨는데 광주에서의 근황은 어떤가요.

이소아 : 2013년 광주에 내려오면서 개인적으로는 정말 많은 일이 있어서 정신없이 지냈어요. 친정 부모님 두 분이 모두 편찮으셔서 간병을 해야 했고, 지난 가을에는 아빠가 돌아가셨구요. 아이를 낳게 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생활에 있어 변수는 더 많아지는 것이니까요.그래도 뭐 어찌어찌 다~ 어떻게 지내왔어요. 주변 분들의 도움도 컸고, 신랑의 도움도 컸구요.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오히려 미리 걱정하는 버릇이 줄어들었어요. 미리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두더지와 같은 근시안으로 살기로 했어요. 닥친 일을 하나씩 해나가는 걸로. 일적인 측면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지요. ‘동행’이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었으니까요. 처음 이 일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부정적인 전망도 많았어요. 광주는 도시 자체가 생산 도시가 아닐뿐더러 후원에 대한 시민의 인식도 상당히 박하거든요. 또 변호사가 왜 굳이 비영리단체의 상근변호사로 일하냐, 그냥 지금처럼 자신의 사무실에서 좋은 일하면서 지내면 되지 하는…. 그런데 사실 저는(이런 말 하면 겸손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잘될 것 같은, 잘 해낼 것 같은 자신이 있었어요. 제가 광주에 내려와서 계속하여 접촉했던 인권단체들은 법률전문가의 결합에 매우 목말라 하고 있었고, 지역에도 지역 고유의 여러 가지 인권 이슈들이 있었거든요. 저는 서울에서 계속 단체 내 상근변호사로 일을 했었기에 이를 어떻게 하면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고 있고, 이를 잘 엮어낸다면 시민들에게도 후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현재는 약 170명 정도의 후원회원들이 계시고 월 약 300만원 정도의 정기 후원금이 들어오는 단체로 성장했어요. (지역에서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이 정도 규모로 성장한 비영리단체는 없답니다)

이혜정 : 와 대단하시네요. 광주에서 공익전담으로 전업하게 된 과정과 동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소아 : 제가 올해 9년차 변호사인데, 해마루 광주분사무에서 근무했던 1년 반 동안만 로펌에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단체 내 상근변호사로 있었어요. 그러니 해마루에서 공익전담으로 전업을 했다기 보다는, 공익전담으로 다시 복귀를 했다고 보시면 되어요. 저는 연수원을 수료하자마자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성매매피해여성을 위한 ‘다시함께센터’에서 일을 했고 아파서 잠깐 쉬다가 2011년 5월에 민변에 상근변호사로 들어갔었지요. 왜 공익전담으로 일을 하냐고 물으신다면…. 그게 저한테 재미있고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얼마 전에 제가 2004년도에 적었던 일기장을 보고 웃었던 적이 있어요. 당시는 제가 사법시험 1차에 여러 번 떨어지고 마음속으로 굉장히 지쳐있던 상황이었는데, 1년 후, 5년 후, 10년 후, 30년 후, 계획을 써놨더라구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왜 하고 싶은가, 어떻게 이룰 것인가 순으로….5년 후 계획이 단체 상근변호사로 일한다, 10년 후 계획이 뭐더라… 이거랑 비슷한 거였는데… 아무튼 그때 왜 하고 싶은가를 적는 칸에 “의미가 되고 싶어서”라고 써있더라구요. 당시에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상태라 인정욕구가 정말 강해서… 그런데 지금은 이유를 바꾸고 싶어요.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라고.

그리고 광주에서 변호사가 상근하는 비영리단체를 만든 이유는 간단해요. 필요하니까. 그리고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광주에 내려와서 1-2년 동안은 앞에서 말했던 개인사 때문에 돈이 좀 많이 필요해서 로펌에 잠시 있었지만, 광주에 내려오면서부터 제 마음 속에 광주의 공감 같은 단체를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지요. 그래서 광주지역 인권단체 현황을 계속 알아봤었어요. 그냥 먼저 전화하거나 찾아가서 저를 알리고 함께 일할 부분 있으면 함께 하자고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1년 반 이상 네트워킹을 쌓아갔어요. 그러던 중 마침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공익전업변호사 자립지원사업 공모전을 하는 거에요. 2년간 변호사의 급여를 어느 정도 지원해주는 거에요. 기회다 싶어서 바로 단체를 만드는 것을 실행에 옮겼지요. 실질적으로 단체를 만드는 부분은 ‘희망법’이나 ‘감사와 동행’, 법률사무소 ‘보다’, 이주민센터 ‘친구’등에 의견을 구하면서 진행했구요. 결국 저 혼자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이혜정 : 그러면 공익 전담을 결정했을 때나, 현재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어려움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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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 전담을 결정했을 때 어려움은, 제가 광주에서 공익전업을 다시 시작한다고 했을 때 아무래도 신랑이 약간 당황했었어요. 전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엄마 간병비 등 계속 고정적인 목돈이 들어가거든요. 그래도 결국 흔쾌히 받아들여줬고, 이제 시아버님과 시누이도 저희 단체의 든든한 후원자세요.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는 법원에서 실무자가 화난 목소리로 전화해서 변호사를 찾을 때, 제가 변호사라고 했더니 목소리 톤이 바뀐다거나… 하는. 단체의 실무자가 없어서 모든 실무를 제가 직접 하는데, 제가 숫자에 어두워서 홈택스 등 세무 신고에서 오류가 날 때. 뭐 그럴 때.

이혜정 : 현재 주로 진행하는 공익 사건은 어떤 사건들인가요.

이소아 : 장애인권 관련해서 근육병 환자가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활동보조서비스를 신청할 수 없게 되어있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활동보조서비스 변경신청 거부처분 취소소송, 성매매 피해 여성에 대한 사건들 중 특히 태국 여성들이 한국에 데려와져서 성매매를 하도록 강요당하는 일들이 생기고 있는데 그 여성들에 대한 지원, 뇌전증 환자 장애등급변경취소소송, 결혼이주여성의 이혼사건, 이주노동자의 난민불인정처분취소소송,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원, 국가보안법 형사변론, 세월호 현장에서 70일간 근무하다가 자살하신 진도경찰분 유족의 유족보상금거부처분취소소송 등…. 뭐 지금 생각나는 건 이 정도입니다. 올해에는 주로 장애인권분야와 이주노동분야에 집중하려고 해요. 농업법률분야도 신경 쓰고 싶은데 아직 여력이 없네요.

이혜정 : 다양한 사건들을 두루 하시네요. 광주에서의 공익사건 현황이나 루트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이소아 : 주로 단체들을 통해서 진행돼요. 성매매피해여성상담소, 성폭력 상담소, 장애인권센터,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발달장애지원센터, 이주노동자 상담소 등. 저희 단체가 상담소처럼 붙박이로 상담하는 인력이 배치될 수는 없는 구조여서 개인이 직접 찾아오시는 경우는 아직은 잘 없어요.

이혜정 :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이소아 : 2014년 겨울 여수의 한 유흥주점에서 여성종업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어요. 이 사건은 원래 조용히 묻힐 뻔했는데, 함께 일했던 동료 여성 9명이 업소를 나와 광주에 있는 언니네 상담소에 제보를 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어요. 보통 다른 성매매 관련 사건의 경우 동료들이 이렇게 증언해주지 않아요. 왜냐하면 어찌 되었건 간에 자신의 생계가 달렸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 9명의 여성 모두가 업주의 끈질긴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고 일관되게 증언해 주었어요. 9명의 여성은 수사과정에서만도 각 2-3회 조사를 받았고, 재판 과정에서도 업주가 혐의를 부인해 모두 법정에서 2-3시간씩 증언을 했었거든요. 그 과정이 언니들에게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증언을 해주었어요. 그래서 업주들도 상당한 처벌을 받았구요.

여수 여성 사망 사건 언니들의 손

‘여수 여성 사망사건’에서 흔들림 없이 증언했던 ‘언니들’의 손. 이소아 변호사 제공

이 사건은 제가 일을 잘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여성들이 용감하게 증언을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사건이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그리고 진도 경찰분 유족보상금거부처분취소소송 1심에서 승소했을 때, 1심만 거의 2년이 걸렸는데요. 당연하고 마땅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심리적 부검이라는 입증방법에 대해서 고민도 많이 하고 여러 가지 자료도 많이 찾아보았던 사건이라 보람이 되는 사건이었어요. 아직 2심이 진행 중이긴 하지만요.

이혜정 : 활동가와 변호사 그 경계선에서 행동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차이가 있나요?

이소아 : 변호사와 활동가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는 거죠. 활동가는 그 문제에 전면적으로 결합하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활동가로서 당사자, 단체 분들과 함께 가며 일을 진행하는 방식이 저와 맞아요. 반면 변호사로써 거리두기가 필요한 경우도 있어요. 그래야지 나의 전문성이 인정받고, 내가 제출하는 서면에 힘이 실리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이 부분의 강약을 조절하기가 참… 힘들어요. 그럼에도 당사자, 단체 분들과 ‘함께’ 가는 것이 좋아요. 법률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거든요. 저는 ‘내가 이 문제 전체를 해결하겠다.’라는 마음으로 일하지는 않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해야 할 부분을 다하는 것일 뿐이지, 그 결과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이혜정 : 광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이소아 변호사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든든하네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혜정 : 저희 단체가 광주에 있긴 하지만 저희가 다루는 인권 이슈들이 단지 광주에만 한정되는 문제들이 아니에요. 장애인권, 이주노동자 인권도 마찬가지로 저희가 다루는 문제들이 결국 관련한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일들이더라, 그래서 인권의 연대의 중요성에 대하여 새삼 깨닫게 돼요. 광주전남지역에 사는 분이 아니더라도 저희 단체가 다루는 문제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후원을 해주시길 바래요. 여러분의 후원이 작지만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낼 원동력이 될 것이거든요. 후원신청은 www.companion-lfpi.org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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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수자인권위원회 활동소식

한상희 교수 초청 동성결혼 변호인단+민변 소수자인권위 간담회
‘헌법문제로서의 동성혼’ 후기

 

기존의 지배적인 법리에 도전하는 소송에는 어떠한 등장인물들이 있을까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존재는 문제 제기를 하고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나눠주는 당사자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와 운동 의제를 잘 연결시키고 관련자들을 조직하여 대중에게 알리는 운동 주체들이 필요합니다. 또 법리를 연구하고 실무를 준비하는 변호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법리를 제공하는 연구자, 학자 여러분들이 계십니다. 물론 이 법리를 수용하는 사법부의 노력이 있어야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겠지요. 역사적인 사법적 결정의 뒤에는 언제나 각자의 역할을 한 다양한 관계자들 사이의 협업이 있었습니다.

지난 9월 10일 소수자인권위원회 28-3차 회의에서 있었던 동성결혼 변호인단+민변 소수자인권위 간담회 ‘헌법문제로서의 동성혼’은 소송 실무를 준비하는 변호사들이 전문가적 법리를 제공하는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한상희 교수님과 견해를 나누고 토론하는 자리였습니다.

차별과 배제의 정당화
지금은 이미 옛날이야기지만 70년대 처음 등장하였던 동성결혼소송에서는 동성 커플의 결혼권리에 대한 원천적 진입 배제는 크게 2가지 이유로 사법적으로 정당화되었습니다. ① ‘원래부터’ 성별특징적이었던(gendered) 결혼의 ‘정의(definition)’상 포함될 수 없다는 논리와 ② 이성커플, 동성커플 두 집단 간 차등대우를 정당화하는 몇 가지 이유들, 특히 ‘생물학적 재생산(procreation)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기반한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기존의 가족법의 태도, 판례를 지켜볼 때, 논리적으로 성립되기는 어려운 지형입니다. 생물학적 재생산이 결혼에서 자주 발생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결혼의 필요조건(sine qua non)은 아닙니다. 불임부부, 노령부부, 옥중결혼의 경우를 보아도, 출산가능성이 적법한 혼인신고의 요건이었던 적은 없습니다. 그 외의 이유에 대해서도 차등 대우에 대한 정당화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예전의 기각 논리에서는 ‘혼인의 정의’가 자주 등장했습니다. 70년대 미국의 1세대 결혼소송 Singer v. Hara, Jones v. Hallahan, Baker v. Nelson 등이 그렇습니다.

항소인이 결혼에서 배제되는 이유는 켄터키주법이나 제퍼슨 카운티의 서기의 거부 때문이 아니라, 결혼이 정의된 방식대로 진입할 수 없는 그들 자신의 무자격 때문이다. It appears to us that appellants are prevented from marrying, not by the statutes of Kentucky or the refusal of the County Court Clerk of Jefferson County to issue them a license, but rather by their own incapability of entering into a marriage as that term is defined.
켄터키 항소 법원Kentucky Court of Appeals: Jones v. Callahan, November 9, 1973

하지만 혼인의 정의는 일의적이지도 않았고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동성 간의 결합(same-sex union)을 법적 문화적으로 인정한 역사는 상당히 많습니다. 따라서 과연 해당 관할의 혼인법상 혼인의 정의가 과연 이들을 배제하고 있는지, 만일 그러하다면 그 정의가 유지되는 것이 헌법적으로 합당한지 하는 헌법적 문제가 등장하는 것이 논리적 귀결입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생각지도 않게 저 2가지 쟁점에 도달하는 것을 막는 장벽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헌법 혼인 조항의 문언을 둘러싼 논의입니다. 비교법적으로 헌법에 혼인의 권리가 등장하는 것은 흔한 예는 아닙니다만, 보통 이렇게 등장하게 된 이유에는 역사적 의미가 있고 대체로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개인의 선택을 보장하는 기본권적인 측면이 강조됩니다. 예를 들면 독일기본법은 독일사회가 나치와 제3제국의 참상을 목도하였던 경험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혼인이 권리가 있는 제6조도 예외가 아닙니다. 나치는 “인종적으로 건강한” 아이들을 재생산하기 위해 사적인 영역인 혼인과 성행위를 적극적으로 제한하였고, 기본법 제6조는 혼인과 가족생활에 대한 이러한 국가의 부당한 개입을 막기 위하여 등장하였습니다. 따라서 제6조는 주로 혼인과 가족생활 안에서의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표상하는 조항입니다.

우리 헌법 제36조 제1항도 독일기본법 제6조의 영향을 받았으며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는 문언을 통하여 결혼의 권리의 자유권적인 측면과 평등권적인 측면을 강조합니다.

이 문언에서 결혼과 가족제도가 절대적으로 이성異性성(dual-gendered)을 갖추어야 한다고 읽는 것은, 문리적으로, 연혁적으로, 기본권 해석 측면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이 논리의 위험한 함의는 ‘헌법의 문언상 안 된다’는 쉬운 결론이 더 이상의 논의를 가로막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한 사람이 동성이라는 이유로 삶을 통째로 부정당하기 일쑤입니다. 관계를 인정받고 사회 속에 받아들여지는 것은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 권리입니다. 이러한 부정의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변호인단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헌법 제36조 제1항의 문언은 사실은 맥거핀(MacGuffin)이 아닐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혼인은 고래부터 이성간의 결합이었고 그렇게 남아야만 한다는 ‘무형적인’ 심리적 저항과 ‘끈질긴 직관’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고, 이를 정당화하는 근거를 ‘유형적인’ 문언에서 애써 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성결혼 비교법례를 소개하는 논문의 결론에서 간혹 보이는 ‘동성결혼은 시기상조이며, 파트너십이 적절하다’는 주장을 볼 때도 이러한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혹시 이러한 결론이 ‘다수의 선호를 반영한’ ‘법감정’의 발현이라면, 사실은 이는 더 이상 다수의 의견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헌법이 부여한 가능성의 현실화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보려하지 않는 것인지 겸허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법제화된 21개국이 주는 교훈이 있다면, 두려워할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불합리한 차별이 구제되는 조금 더 행복한 사회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려하지 않는 것은 수십 년간 서로를 돌보고 의지하며 살아온 법 바깥 커플들의 차별과 고통입니다.

‘성숙한 헌법(a mature constitution)이란 헌신과 협력에 의존하는 것이어야 하지, 배제와 박해에 조력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윌리엄 에스커릿지 교수의 말을 기억합니다.

변호인단의 마음은 하나였습니다. 우리 헌법이 부여한 불평등과 부정의를 구제할 가능성과 의무를 현실화시키는 것입니다. 이 주제에 대하여 한상희 교수님이 곧 발표하실 논문을 기대하며 이날 간담회를 마무리했습니다. 학자님들 파이팅입니다! 한국에도 동성결혼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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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5/09/2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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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부 소식

 

 

안녕하십니까. 대구지부 사무차장 박경찬입니다.

이제 대구도 더운 날씨를 뒤로하고 아침, 저녁으로 제법 차가운 공기가 가을이 왔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지난 뉴스레터를 통하여 저희 대구지부의 3월 통영 야유회를 전해 드렸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대구지부 총회에 대하여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대구지부는 작년 창립10주년을 기념하여 그 동안의 활동을 담은 기념책자 ‘대구민변 10년의 길’을 발간하고,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 인권 – 공감과 포용의 미덕”이란 주제로 좋은 말씀을 듣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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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부는 올해 5월 지역 사회 시민단체와 지역 로스쿨생들을 초청하여 제10차 정기총회를 개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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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호진 지부장님(풍체가 좀 더 좋으신 분입니다)의 인사말로 시작한 총회는 다소 진지한 분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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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이종우 선생님도 참석하시어 좋은 말씀을 전하여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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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교 공익 · 인권법학회 회원분들도 참석하시어 민변 대구지부에 대한 평소 생각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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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인 사업보고를 마치고 술자리를 하면서 분위기는 한층 밝아지고, 화기애애했습니다.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역시 ‘불로막걸리’…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과 대구 전문가단체협의회 소속 회원분들이 함께 한 총회는 대구지부 활동에 동기와 힘을 더하는 자리였습니다.

 

구체적인 활동이나 성과 보고보다 그저 한잔의 술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민변활동을 하기에는 지역기반이 어려운 대구이지만, 대구지부는 뜻을 같이 하는 지역 사회 분들, 미래 민변회원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면서 즐겁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월, 2015/10/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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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노동정책 : 개혁인가 재앙인가?

‘을’들의 국민투표가 시작되었습니다!

[국민투표 소개]

- 8월 6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고 “이제는 우리의 딸과 아들을 위해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결단을 내릴 때가 되었다”며 임금피크제와 직무성과급제 도입, 그리고 더 많은 노동유연화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정부는 여러 수단과 비용을 들여서 하반기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직결된 결정과 정책들이 우리와 무관한 곳에서 벌어집니다. 그런데 박근혜표 노동개혁이 실현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요?

- 이제 국민들에게 묻겠습니다. ‘국민투표’는 전국에 1만개의 투표소를 설치해 2,000만 노동자와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이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 주권운동이자 직접 민주주의 운동입니다.

- 노동조합, 사무실, 성당, 교회, 생협 매장, 거리 등 전국 곳곳에 1만개의 투표함이 설치되며, 동시에 인터넷에서도 투표가 동시에 진행됩니다.

- 국민투표 기간 : 10월 7일(수)부터 11월 12일(목) 자정까지!

- 투표하러 가기(아래 링크 클릭)

http://cpmadang.org/?q=story/44671

월, 2015/10/1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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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합의 부당성 지적 기자회견 및 광화문 야행을 다녀와서

 

- 김병욱 회원

 

아직은 신입 변호사로서 업무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지만, 노사정 합의를 규탄하는 민변의 9. 17. 기자회견에는 꼭 참석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노사정 합의가 부당하다는 것이 너무나도 명백하였기 때문에 그에 대하여 반대의 목소리를 꼭 내고 싶었고, 기자회견 당일부터 광화문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비상시국 노숙농성을 시작하신 같은 사무실의 권영국 변호사님께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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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 수습 중 다뤄본 사건 가운데 해고무효 또는 징계무효 확인 소송의 사실관계를 들여다보면, 현행 근로기준법 하에서도 사용자들은 오랜 기간 자신들이 묵인해오던 업무상 관행을 갑자기 근로자의 비위행위라며 문제 삼아 징계를 하거나, 근로자를 생소한 보직으로 발령하고서 성과를 문제 삼아 불이익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징계의 정당성을 엄격하게 판단한다는 근로기준법 제23조나 같은 취지의 여러 판례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는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가려 하였고, 열악한 지위에 있는 근로자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징계의 부당성을 입증하기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너무나도 커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노사정 합의는 사실상 실적 부진자에 대한 일반 해고를 도입하고, 임금 등 근로조건에 관한 취업규칙의 내용을 근로자의 동의절차 없이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등으로 고용불안정을 더욱 심화시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것은 사용자가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하고, 마음대로 근로조건을 악화시킬 수 있도록 하여 열악한 노동자의 지위를 더욱 나락으로 빠뜨리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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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부당한 합의를 좌시할 수 없었던 민변의 여러 변호사들과 활동가들이 9월 17일 파이낸스 빌딩 앞에 모였고, 서른 명 남짓의 인원은 대오를 이루어 계단에 늘어섰습니다. 그리고 노사정합의의 부당성에 대하여 차례로 규탄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권영국 변호사님은 노숙농성으로 인해 다소 쉬긴 했지만 힘이 실린 목소리로 절규하듯이 발언하셨습니다. “노사정 합의가 관철된다면 단순히 노동조건의 후퇴나 임금의 삭감이 아니라 사용자가 근로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노동자는 서로를 적으로 돌리는 무한 경쟁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권영국 변호사님의 발언에 남다른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은 그의 현실인식의 정도가 그만큼 무겁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부터가 현실을 다소 안일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보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 노동현실의 문제는 다른 누군가의 문제가 아닌 바로 나의 문제이고, 다른 이의 행동을 그저 뒤에서 돕겠다는 생각은 결국 책임전가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하고 말입니다. 9. 22. 저녁 광화문 야행을 마치고 모인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그 날로 6일째 비상시국 노숙농성 중이셨던 권영국 변호사님께서 다시 마이크를 붙잡고 “여러분은 누구를 지원하고 도우러 오신 게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거죠?”라고 물으셨을 때에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뜨끔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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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100여명의 광화문 야행 참석자들은 9. 22. 저녁 7시 비상시국 농성장 앞에 모여 장그래운동본부 박점규 활동가의 진행에 따라 촛불을 들고 가두행진을 시작하였습니다. 행진 대열이 처음 도착한 곳은 농성장 근처 국가인권위원회 건물로 그 건물 옥상에서는 기아차 비정규직 최정명, 한규협 씨가 고공농성을 하고 있었습니다. 높은 건물 광고판 위에서 외로이 투쟁해야만 하는 힘겨움과 절실함을 가늠조차하기 어렵지만, 두 분 노동자는 벌써 100일이 넘도록 그 싸움을 해내고 있었습니다. 저와 참가자들은 다만 촛불을 높이 들고 그들이 하루 빨리 내려올 수 있기를 바라며 지지와 응원의 함성을 질렀습니다.

광화문 야행의 다음 행선지는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이 투쟁을 하고 있는 삼표 그룹 앞으로 미국 대사관 부근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동양시멘트는 불법 파견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라는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해고하였고,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은 멀리 삼척에서 서울까지 건너와 최근 동양시멘트를 인수한 삼표 그룹 본사 앞에서 직접 고용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어둑한 가운데 가로등불 아래서 구호를 외치며 일행을 맞아준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은 언제나 그랬듯 아버지의 묵묵함과 든든함이 느껴지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속지 않겠다”는 한 조합원의 결의처럼 힘찬 기운과 뚝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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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행렬에는 동양시멘트 동지들이 합류하여 인원수가 불었고, 사람들은 “노사정위 야합 원천 무효”등 구호를 힘차게 외쳤습니다. 앞장서는 한 명만 구호를 외치고 다른 사람들은 따라하는 방식이 아니라 연대 단위 별로 한 명씩 자기소개를 하고, 서툴지만 각자가 직접 만든 구호를 따라하는 방식은 참여하는 사람들 모두가 행사의 주체가 되게끔 하는 작지만 의미 있는 시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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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스 센터 부근의 여러 투쟁현장들을 돌아 다시 비상시국 농성장에 이르자 시간은 이미 9시를 넘어서고 있었지만, 그곳에서 다시 자그마한 집회가 열렸습니다. 하이디스 지회장님을 포함한 몇몇 분들의 발언을 듣고 난 후 노래(제목은 기억이 안납니다..)에 맞추어 율동을 하였는데, 함께 촛불을 들고 야행을 했던 사람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기차를 만들며 하나 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인권은 스킨십이라는 어느 교수님의 말씀이 다시금 떠오르는 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노동의 문제는 바로 우리 주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이를 직접 부딪치고 경험해보지 않으면 문제의식이 금세 무뎌지고 맙니다. 안일한 현실인식을 조금이라도 가다듬는 방법은 다름이 아니라 현장과 조금이라도 더 친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며 부족한 후기를 마칩니다.

월, 2015/10/12-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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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인권위원회 소개 및 소식

 

어느 날 아침 평소처럼 출근하는 길에 읽은 끔찍한 아동학대 뉴스에 심장이 떨리신 경험은 없으신가요.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채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들 소식에 차라리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알 수 없는 씁쓸함과 불편함에 애써 생각을 멈춘 적이 없으신가요. 어두운 퇴근길 오늘도 학교를 가지 않았음이 분명한 한 무리의 청소년들을 보면서 차마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그저 저들의 미래를 답답해하신 일은 없으신가요. 엄마, 아빠와 잠들고 싶을 시설의 아이들 생각이 스치면서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라는 급한 결론을 내리고 고단한 잠을 청한 기억은 없으신가요.

 

아동인권위원회는 이런 안타까운 마음을 모으고 아동의 인권을 지켜보겠다는 의지로 충만한 변호사들이 모여서 만든 위원회입니다. 평소 왜 아동인권은 별개의 분야로서 논의되지 못하는가, 왜 아동인권은 중요성만큼의 운동이나 투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져왔던 변호사들이 모여 민변 내부에서 아동인권을 담당하는 독립적인 위원회의 필요성에 대해서 논의가 있었고, 그 첫 모임은 2014. 12. 10. 민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사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도 없고 피해자들의 권리구체요청이나 피해회복을 위한 도움요청도 없지만, 그저 아동에 대한 사랑과 열정만으로 뭉친 변호사들이 아동들의 문제와 최상의 이익에 대해서 스스로 공부하고 각종 이슈들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매달 모여 연구하고 토론하고 단체 및 기관들과 연대활동을 이어오면서 드디어 올해 9월 아동인권위원회는 민변에서 정식 위원회로 승인되었습니다.

 

이처럼 정식 위원회로 출범하기까지 약 9개월 간 우리 위원회 준비팀은 아동청소년의 인권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논문 연구 및 토론, 유엔아동권리협약 및 우리나라의 이행실태, 관련 이슈 등에 대한 공부,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어린이집 CCTV문제)에 대한 의견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 등 준비 및 제출, 아동복지법에 따른 제1차 아동정책기본계획 관련 대응 논의, 아주아동권리보장법 제정에 대한 입법촉구 논의, 매월 입법, 판례, 언론 모니터링 등을 진행하였습니다. 또한 각종 아동인권단체들과 연대하여 활동하면서 성착취 십대여성 살해사건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행동, 체벌금지 법제화, 유니세프, 세이브더칠드런 등과 함께 아동인권보호전달체계 및 원가정양육원칙이 반영된 아동복지법 개정안 준비, 국가인권위와 함께 아동권리협약과 관련된 연구용역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위원회가 이처럼 회의와 공부만 하는 곳은 아닙니다. 우리 위원회는 그 어느 위원회보다 변호사들 간의 친목과 사랑이 넘치는 곳이며, 특히 젊은 변호사들의 에너지가 가득한 위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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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지난 2015. 8. 26. 김차연 변호사 순산기원 및 신입회원 환영 단합대회 1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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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지난 2015. 8. 26. 김차연 변호사 순산기원 및 신입회원 환영 단합대회 2차

 

우리 위원회는 앞으로 아동인권과 관련한 각종 법률 – 민법, 아동복지법, 아동학대범죄 등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가족관계등록 등에 관한 법률, 학교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 소년법, 이주아동권리보장법 등을 상세히 공부하면서 법 자체의 문제점, 관련 이슈들에 대해서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의할 예정이며, 아동학대, 입양, 이주아동, 소년사법, 청소년미혼모, 학교밖 청소년 등 각종 이슈에 대해서 인권적 측면에서 강력한 목소리를 내고 잘못된 관행, 법률, 제도를 바로잡기 위해 열심히 뛸 예정입니다.

 

시민단체 혹은 당사자들에 의해 주어진 방향에 따라 수동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닌, “내 권리가 이것이다”, “나의 인권을 지켜달라.”라는 외침조차 어려운 아동들을 위해서 능동적으로 활동해보실 생각이 있으신 변호사님, 반드시 한번은 아동이었던 경험이 있는 우리가 느꼈었던 부당함을 미래세대를 위해서 고쳐나가고 싶으신 변호사님, 울고 웃으면서 활동하고 서로를 격려해주고 감싸줄 따뜻한 회의시간이 있는 위원회를 찾으셨던 변호사님, 여기 이제 갓 출범한 아동인권위원회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동들의 인권을 지키고 우리의 미래를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관심있는 변호사님들의 많은 연락을 기다립니다. 저는 아동인권위원회의 친목, 개그,잡일을 담당하고 있는 간사변호사 김영주입니다(010-9881-5363).

 

 

 

 

월, 2015/10/12-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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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상위 활동소식

제1회 동북아 국제통상 전문가 교류회에 회원여러분을 초청합니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이 주도한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 협정)이 타결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TPP에 한국이 제외되어 하루빨리 TPP에 가입해야 한다는 정부 고위당국자의 전언도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한미 FTA의 선례에서 보았듯이 통상체결론자가 주장한 실익은 증명되지 않았고, 우려했던 ISD(투자자국가중재제도)는 이어지고 있으며 농업분야의 피해는 막대하다. 국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지만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빈약하고 정부 일방적이다. 이렇듯 단일 국가에서의 전문가의 목소리만으로는 부족하고 동북아 주변국가의 전문가들과의 연대와 교류가 필요하다. 민변 국제통상위는 최초로 일본 TPP를 전문으로 다루는 법률가 모임과 함께 제 1회 동북아 국제통상 전문가 교류회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 TPP 전문 법률가들과 함께 TPP가 어떠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향후 어떻게 진행이 될지, 진행과정에서 일본과 한국의 법률전문가가 어떠한 활동을 해야 할지 등을 논의할 예정이고, 이 교류회에 관심있는 많은 민변 회원들을 모시고자 한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와 첨부된 교류회 기획안을 참고해 주시고, 많은 민변 회원들의 참여를 기대한다.

 

 


 

제1회 동북아 국제통상 법률가 교류회 기획안

 

 제안: 민변 국제통상위 위원회

 개요 및 취지

 

한국, 중국, 일본, 북한, 러시아 5개국이 동북아 지역에서의 평화와 번영의 경제 협력 틀을 모색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역내 국제통상 분야 법률가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함. 이에 민변 국제통상위원회는 5개국 국제통상 분야의 법률가들의 지속적이고 호혜적인 교류의 틀을 주도적으로 짜고자 함.

■ 이를 위해 먼저 시민사회 간 대화가 가능한 일본의 국제통상 분야 법률가들과 제1회 동북아 국제통상 교류회를 개최하려고 함.

■ 이번 교류회에서의 일본 측 파트너는 일본의 「TPP교섭저지와 위헌소송 모임」임. 이 단체는 일본과 미국의 TPP 교섭이 일본의 사법주권을 위협한다는 문제의식에서 TPP의 문제점을 연구하고 위헌소송을 제기한 단체로, 이와츠키 코오지(岩月 浩二) 변호사가 변호단 공동대표를, 와다 히로이토(和田 聖仁) 변호사가 부대표를 맡고 있음.

 

2. 내용

 

  • 명칭: 제1회 동북아지역 국제통상 법률가 교류회
  • 일시: 2015. 11. 14.(토) ~ 11. 17.(화), 3박 4일
  • 장소: 일본 동경 일대
  • 주관: 일본 TPP교섭저지와 위헌소송 모임, 민변 국제통상위원회
  • 프로그램
  • 시간 세부내용 비고
    1일차 :2015. 11. 14. (토) 오전 출국 및 일본 도착
    15:00~18:00 【TPP 설명회: 일본의 TPP교섭현황】 장소
    - 참가단 소개 및 상호인사
    일본 측 발제: 「TPP교섭저지와 위헌소송 모임」 부대표, 와다 히로이토 변호사
    참석자 상호 토론
    18시~20시 환영만찬
    20시~ 휴식
    2일차 :11. 15.(일) 전일 개별일정 및 휴식
    3일차 :11. 16.(월) 10:00~12:00 【토론회: 한미FTA 4년의 경험과 TPP】일본 측 발제: 이와츠키 코오지(岩月 浩二) 변호사

    한국 측 발제: 차명심 or 김종우 변호사

    상호간 토론 1명씩

    12:00~13:00 점심식사
    14:00~17:00 【일본 TPP 위헌 소송 재판 방청】
    18:00~20:00 환송 만찬
    20:00~ 휴식
    4일차:11. 17.(화) 오전 귀국

 

 

3. 예산안

항목 세부항목 예상금액 비고
항공료 서울(인천/김포)-도쿄(나리타) 왕복 300,000 1인당
숙박비 도쿄시내 2~3성급 호텔 300,000 1인(100,000)*3일
식비 호텔 조식, 점심+저녁 비용 60,000 1인(10,000)*6끼
교통비 도쿄 내 이동 60,000 1인(약 15,000)*4일
통역비 1일차, 3일차 행사통역 600,000 1일(4시간) 300,000*2일
인쇄비 자료집 250,000  
기타잡비 플랭카드, 현지 선물 등 200,000 행사플랑 2개+단체 선물
예비비 기타 예비비 350,000  
총계 1인당 (약)800,000 한국 10명 참석 예상

 

4. 참가 신청 및 기타 문의

 

월, 2015/10/12-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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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편지

월, 2015/10/1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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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위원회 활동소식

1. ‘성매매위헌제청’ 워크숍 개최

 여성인권위는 지난 9월 월례회에서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오정진 교수님을 모시고 성매매위헌제청과 관련하여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자리를 가졌습니다. 오 교수님은 여성주의의 대표적인 상징이자 디딤돌이었던 ‘성적 자기결정권’이 최근에 성매매를 옹호하는 근거로 주장되는 원인이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그간의 이해와 작동이 다분히 사사화(私事化)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현재 법적 권리로서 논의되는 ‘성적자기결정권’은 단순한 교환체계를 넘어서는 특이성으로서의 섹슈얼리티와 친밀성을 담아내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성매매특별법 제정 때부터 반성매매 활동에 함께해온 여성인권위에게 이번 워크숍은 그간의 관련 활동을 진단하고 ‘성적 자기결정권’ 재구성을 위한 열띤 토론과 깊은 고민을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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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성성소수자궐기대회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 공동주최

 최근 여성가족부의 보수화된 성평등 행정에 항의하고 우리사회 성평등의 확장을 요구하는 문화제로 기획된 여성성소수자궐기대회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 궐기대회가 2015. 10. 10. 오후 6시 대한문 앞에서 열렸으며, 여성인권위는 민변 소수자위와 위 대회에 한국여성단체연합, 행동하는 성소수자연대 등과 공동주최로 함께하였습니다. 그 전에는 2015. 10. 7. 오전 9시 20분 광화문 정보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성소수자-여성단체와의 면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여성가족부를 규탄한다’는 기자회견을 공동주최하였고, 여성인권위 조숙현 위원장이 발언하기도 하였습니다.

'성평등에서 성소수자 배제한 여가부 규탄한다!'

 

3. 2015년 정기국회 대응을 위한 여성인권분야 법률안 의견서

2015. 11. 중에 예정하고 있는 민변 법률안 의견서 발표를 앞두고, 여성인권위는 10월 월례회에서 여성인권분야 법률안에 관하여 각 팀별로 작성한 검토의견서 초안을 점검하고 여성인권위의 검토의견서를 논의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가족법 분야의 2개 법안(가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 및 군인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에 관하여는 ‘입법촉구’ 의견을, 빈곤과 여성노동 분야의 2개 법안인 ‘차별․성희롱 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과 감정노동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들에 관해서는 ‘입법촉구’, ‘보안 후 입법촉구’ 의견을 각 확정하였습니다. 그 외 법률안에 대해서도 추가적으로 검토 중입니다.

4. 차기 월례회

 여성인권위 11월 월례회는 2015. 11. 19. 목요일 늦은 7시 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립니다. 송년회를 제외하면 올해의 마지막 월례회 자리인 만큼,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올 한해 여성인권위 활동을 짚어보고 의견 나누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또한 재밌고 알차기로 유명한^^ 여성위 송년회는 12월 17일 저녁에 있을 예정이며, 언제든 열려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화, 2015/10/2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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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음을 바라며 – 민변 월례회 후기

- 최경아 회원

 

미세먼지가 이어지던 가운데, 유난히 맑아 다행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골목을 만나고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중간고사가 끝나고 바로 다음날이었네요. 끝난 게 끝이 아니라지만 그 해방감이 도드라지는 날이었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중간고사라는 단어를 오래간만에 듣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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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맑은 날에 모여서는, 걸었습니다. 정성어린 간식 봉다리와 민변 에코백을 받아들고 세 시간 가량 부암동을 걸었습니다. 골목길 해설사 선생님들은 그 공간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공간은 그 이야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오랜 기운을 내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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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리고 그 가운데를 걸어나갈수록 매력적인 공간입니다. 소위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아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오갑니다. 한편으론 걱정도 슬며시 드는 것이 근래 “ㅇㅇ길”이라는 호명과 발길이 이어지면 젠트리피케이션이 따라오기 마련인지라 이 공간은 부디 더 버텨주었으면, 하는 걱정과 감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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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신 분들 소개를 들어보니 가족 혹은 가족예정(!)이신 분들이 그득하셨습니다. 가족예정인 분들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좋은 추억이 되실 것 같네요. 이 동네에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올수록,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으로서의 공간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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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과 땅을 구획 짓는 경계가 건물의 마천루가 아니어서 너른 시야가 펼쳐진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었느냐는 소감들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듯합니다. 곳곳에 빠알갛게 익은 감이 달린 감나무도 많고요. 하수구라고 생각한 철망 아래, 하수가 아닌 맑은 물이 흘러서 놀랐습니다. 물소리에 놀라 보니 물이 갇혀있는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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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빡빡한 도시와 빡빡한 삶 속에서 이런 맑음이 좀 더 가득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산책과 식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하루였습니다. 함께 골목을 걷자는 월례회 안내 문자를 받고도 참 맑아졌었습니다. 수줍게 저도 가도 될지 여쭈는 답장에 환하게 답장을 주시고 또 이런 만남을 준비해주신 회원팀 분들에게 큰 감사를 드리며, 파란 하늘 아래 청자켓이 멋드러져 인상 깊은 어느 분의 사진을 동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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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10/2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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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쫄지마, 형사절차’ 김지미 변호사님 강연후기

– 14기 자원활동가 장현경

 

14기 자원활동가가 되어ㅡ 각자의 사연을 안고 편지를 통해 민변의 문을 두드리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강압적인 수사였노라고 호소하시는 분들, 교도소 내에서의 부당함을 호소하신 분들 등 많은 이야기를 접하며, 수사와 재판, 집행의 일련의 절차에 관해 많은 의문들 또한 생기던 중이었습니다. 이런 적절한 시기에(!) 민변에서 형사절차에 관한 강연을 마련해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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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동안 국선 변호사로서 근무하셨던 김지미 변호사님께서 이번 강연을 맡아주셨습니다. 변호사님께서는 차분한 목소리로, 일련의 형사절차 과정을 세세히 짚어주셨습니다. 먼저, 불심검문과 임의동행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공무 중이니 당연히 응해야 하겠거니 라고 생각했었는데, 거절할 수도 있으며 임의동행 시에 경찰관이 본인의 소속 및 성명, 동행 이유와 장소를 밝혀야 한 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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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와 관련한 문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카톡 대화는 실시간으로 수집되는 것이 아니기에, 감청의 대상이 아니라 압수 수색의 대상임에도 수사의 편의성을 위한다는 이유로 감청 영장으로 수집해 왔었습니다. 이를 카카오가 거부하자, 1년 동안 세무조사 및 아동 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을 들이대며 카카오의 옥줄을 죄어왔고, 결국 카카오는 최근 이에 굴복했습니다. 1년 동안 과연 무얼 한 것인가, 입법의 흠결이 아쉬웠습니다. 변호사님께서는 현재 발의된 법안 중에 격론을 벌이고 있는 두 가지 법안에 관해서도 설명해주셨습니다. 구금서신에서도 많이 봤던 내용인 수사 과정에서의 강압, 허나 이를 실질적으로 피의자가 입증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에 녹음 정도는 필요하지 않냐는 주장과 그럴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녹음 정도는 꼭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서는 수사관이 들은 내용을 정리해가며 적는 것이기 때문에, 녹음파일이 있다면 이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약식명령에서 정식재판을 청구할 때의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을 폐지하자는 법안도 발의되었다고 합니다. 상위의 재판부에 청구 할 때 적용되는 불이익변경금지를 약식명령에서의 정식재판 청구에도 적용, 정식재판 청구률이 높아져 법원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덜어주자는 것이 발의의 배경입니다. 법원의 업무경감이 필요하다는 측과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중시해야 한다는 측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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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님의 개괄적인 설명이 끝나고, 자원활동가들의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국민참여재판, 플리바게닝, 검경의 수사권 공조 문제 등 평소 궁금했던 사안들을 변호사님께 다 늘어놓았고, 변호사님께서 그 많은 질문에도 다 답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형사 재판 과정에 관해 정리할 수 있었으며, 형사 문제에 관한 전반적인 궁금증 역시 해결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유익한 시간을 만들어주신 김지미 변호사님, 그리고 강연을 준비해주신 사무처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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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10/2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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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편지

화, 2015/10/2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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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오키나와 평화교류회 참여 후기

-김소리, 오현정 회원

   

교류(交流) : 근원이 다른 물줄기가 서로 섞여 흐름

처음 오키나와에 가기로 했을 때에 이 기회는 제게 ‘교류’보다는 ‘여행’의 의미가 컸습니다. 저는 푸른 바다와 빛나는 햇살, 따뜻한 공기와 순박한 사람들의 가무잡잡한 얼굴… 이런 ‘풍경’을 상상했습니다. 조금은 숨가쁜 일상을 떠나 작은 섬으로 도망하는 여행자와 같은 마음으로 오키나와 행 비행기에 탑승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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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풍경’은 분명 거짓이 아니었고, 오키나와 – 이시카키라는 신비한 산호섬과 바다는 그동안 여행하며 보았던 세계의 많은 아름다운 바다들 중에서도 인상적으로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그 풍경 속에서 오키나와 사람들과 5일을 보내고 돌아와 되새겨보니 그 무엇보다도 ‘만남’이라는 말이 마음에 깊게 남았습니다. 친구에게 오키나와에 다녀온 일을 이야기할 때 저는 바다보다는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한 9년의 시간 속에 촘촘히 쌓은 마음들이 만들어 낸 따뜻한 공기 – 밝고 맑은 웃음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성취를 이루면 이루는 대로 아낌 없이 용기를 북돋아 주어 온 그 모든 시간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흐르고 있었고, 그 물결은 막연히 아름다운 여행지를 꿈꾸며 처음 오키나와를 찾은 낯선 이방인이었던 제게도 밀려왔습니다.

교류(交流)는 사귀다 그리고 흐른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근원이 다른 물줄기가 서로 섞이어 흐름을, 문화나 사상 따위가 서로 통하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왠지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교류’가 이렇게 멋진 말이라는 것을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진심으로 교류한다는 것 – 차이를 넘어 평화를 생각하는 마음의 결을 확인하고, 연대한다는 것 – 이 아름다운 작업에 동행할 수 있게 되어 기뻤습니다. 내년에 더 많은 분들이 이러한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후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첫째 날 – 이시카키 섬

이번 교류회에 민변 측은 21명이 참가했습니다. 대부분 민변 변호사들이지만, 너무나 훌륭한 통역사이자 교류회를 통해 사랑을 꽃피우신 김영환 선생님, 법무법인 이공에서 일하고 계신 민숙님, 김인숙 변호사님 사무실에서 일하고 계신 영수님, 김인숙 변호사님 지인이신 이명숙 화가님도 함께하여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번 교류회의 장소는 이시카키 섬입니다. 첫 날 우리는 나하 공항에 도착하여 다시 이시카키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저도 교류회에 앞서 있었던 정영신 박사님의 강연에서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오키나와라고 구획된 섬들의 범위는 상당히 넓었습니다. 오키나와 섬들 전체가 일본 본토보다는 대만과 가깝고, 심지어 본섬에서 이시카키 섬은 대만 방향으로 비행기로 1시간이나 더 가야 닿을 수 있을만큼 상당히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외양도 일본보다는 동남아시아 사람들처럼 까무잡잡하고 자그마한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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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 공항에서 오키나와 교류회 분들을 처음 만나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시 이시카키 섬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오키나와 교류회 분들은 대부분 오키나와 본섬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이시카키 섬에 처음 가본다는 분도 많았습니다. 때문에 함께 수학여행을 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시카키 공항에 내려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면서 이시카키 섬에서 태어나신 나카야마 센세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나카야마 센세는 오키나와 자유법조단의 큰 어른 같은 분으로, 권정호 변호사님과 함께 민변-오키나와 교류회를 만든 분이십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변호사가 되신 대 선배이십니다만, 가무잡잡한 얼굴에 가득히 상냥하고 다정한 미소를 머금은 분이셔서, 첫 인상부터 굉장히 따뜻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시카키 섬이 있는 곳을 ‘아에야마 지역’이라고 하는데, 사탕 수수와 파인애플 농업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전통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데, 신을 모시는 춤이나 노래가 많이 전승되고 있습니다. 1700년대에 거대한 쓰나미로 사람들이 다 죽고, 주변에서 이주하여 재건한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태풍 피해로 유명(?)하기 때문에 근래에 건축한 집들은 대부분 콘크리트 집입니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중국이나 대만과 많이 교류하고, 삼국의 어민들이 공동 어장에서 어업을 하고 있습니다. 본섬과는 달리 미군기지도, 자위대 기지도 없는 평화로운 곳입니다만, 최근 일본 정부가 자위대 기지를 들여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에야마 제도는 일본의 국경선 역할을 하고 있지만, 공동 어장에서의 어업 분쟁 한 번 발생하지 않았을 만큼 우호와 연대의 정신으로 삶을 꾸려 왔습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의식적으로 만들어 낸 분쟁의 불씨가 자라고 있어 안타깝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설명을 들으며 숙소인 미야히라 호텔에 도착하여 잠시 짐을 풀고 근처의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사람도 차도 많지 않은 거리와 띄엄 띄엄 있는 건물들은 굉장히 조용하고, 한적하고, 평화로운 시골의 느낌이 물씬 났습니다. 식당에서 삼삼오오 둘러 앉아 더듬 더듬한 일본말, 한국말, 영어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재일동포인 백충 변호사님의 진행으로 교류회에 처음 참가한 사람들, 두 번째 참가한 사람들, 주니어 변호사들, 선배 변호사들, 사무원들 등 몇 명씩 그룹을 지어 앞에 나가서 간단히 자기 소개를 했습니다. 교류회는 변호사들 뿐만 아니라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무원들, 지인들까지 포함하여 다같이 어우러지는 자리였습니다.

특히 오키나와 사무원 분들의 활발한 참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 사람들과 교류한다’는 생각에 가볍게 참여하기 시작했다가, 미군기지와 평화 문제에 관하여 진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나, 마리상의 유창한 한국어 자기소개에 교류회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겨 있었습니다. 더듬더듬한 일본어, 한국어,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아직은 어색하고 서먹하기도 했지만 웃음이 멈추지 않았던 시간이었습니다.

둘째 날 오전 – 다케토미 섬 투어

둘째 날 아침에는 호텔 바로 앞의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20분 정도 거리의 다케토미 섬으로 향했습니다. 다케토미 섬은 전통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 작은 섬마을입니다. 선착장에서 작은 버스를 타고 5분을 달려 마을로 들어서자 나카야마 센세가 어릴 적에 몰았다는 물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물소가 끄는 차를 타는 것으로 다케토미 섬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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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가 이끄는 차를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물소를 모는 할아버지가 다케토미 섬에대한 이야기를 조근조근 해주셨습니다. 대만 사람들이 이주해 오면서 농경용으로 사용하던 물소를 가지고 오면서 물소가 이 지역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나카야마 센세도 어릴 적에는 물소를 매일 모셨다고 합니다. 우리를 태워준 물소는 피이스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하루에 네 번씩 사람들을 태우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케토미 섬은 문화재 보존 지역으로 집집마다 전통식 지붕을 설치하고 부엌을 따로 짓고 있습니다. 집에 차를 들여 놓으려면 국가에 허가를 받아서 마당을 넓혀야 한다고 하는 등 불편함이 많지만 전통 보존에 따라 국가가 제공하는 혜택은 없다고 합니다. 다케토미 섬에는 우타키라는 자연신을 믿는 전통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전쟁 이후 일본식 신사와 도리이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 살던 아름다운 아사도야를 도시의 한 관리가 첩으로 들이려고 유혹하였으나 섬 사람으로 살겠다며 지조를 지켰다는 설화도 있습니다. ‘아사도야노 우타’라는 노래가 전하여져 오는데, 할아버지가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모두 함께 불러보았습니다. 이쪽 지방 사람들은 같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11월에는 이틀 밤을 새워서 춤을 추는 축제도 열린답니다. 그 동안 마시는 술은 모두 공짜라고 합니다.

아주 천천히 마을을 둘러 본 뒤에는 자유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슬아슬한 좁은 계단 끝 전망대에서 마을 조망도 내려다보고, 한적한 골목 골목을 걷다가 쉬기도 하다가 식사 장소로 갔는데, 근처 해변에 다녀온 사람들이 감탄사를 쏟아 내서 저와 소리, 민숙씨는 점심을 포장하기로 하고 15분간 열심히 걸어 해변에 다녀왔습니다. 사실상 처음 보는 이시카키의 바다였는데, 투명하리만치 맑은 민트색 물빛과 희고 보드라운 모래가 이루는 신비로운 바다 풍경에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2일차 오후 –세미나

한적하고 여유롭던 다케토미 섬의 잔상에 푹 빠져 있는 상태에서 세미나 장소로 향했습니다. 학교 교실 같은 아담한 공간에서 제9회 평화교류회 세미나가 진행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세미나가 잘 될까 싶기도 했는데, 김영환 선생님의 동시 통역이 너무나 훌륭해서 무리 없이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이 놀랍기까지 했습니다. 양국의 치열한 현안들 때문인지 세미나는 상당히 열띤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미일 신 가이드라인과 안보법제, 그리고 한반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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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세션은 하야시 치카코상 변호사님이 <미일 신 가이드라인의 개요와 안보법제>에 대해 발표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최근 일본 젊은 층들의 활발한 집회 시위 참여로도 주목을 받고 있는 이슈입니다. 미일 가이드라인의 법적인 성격을 검토하고 그 동안의 개정의 흐름에 비추어 2015년 가이드라인의 기본 전제와 주요 내용, 당시 국회 심의를 통과했던 안전보장 법제와의 관련성 및 내용을 조목조목 짚어 주셨습니다. 이어서 심재환 변호사님이 2015 미일방위협력지침과 안보법제가 한반도 평화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해 주셨습니다.

토론에서는 일본의 안보법제 반대 운동에 대한 논의, 일본 우익 정치인들의 움직임, 변호사로서 무엇을 할 것인지 등 다양한 내용들이 다루어졌습니다. 여러 가지로 우리 나라의 상황과 상당히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일본은 전후 군대가 아니라 경제번영에 방점을 찍는 요시다 시게루의 비무장 노선이 큰 흐름을 이루고 있었는데, 반면 키시노 고스케는 전쟁 전의 모습을 회복하여 무력 행사가 가능한 보통 군대를 주장하여 왔습니다. 아베는 이러한 입장을 계승하여 평화 헌법을 ‘미국이 강요한 헌법’으로 규정하는 한편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의 시스템으로 만들어 일미간의 공동 군사 대응력을 강화하고 군사 대국화를 도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우익 교과서 장려 활동을 통해 전쟁에 찬성하는 국민의식을 만드는 ‘국가 만들기’ 작업에 한창입니다.

이에 반대하며 최근 일본에서 일어난 대규모 집회 시위와 관련하여, 오키나와 변호사들은 주부나 젊은이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데 큰 역할을 한 SEALs의 운동의 성격과, 정부 친화적 헌법학자조차도 입헌주의 위반을 지적하는 등 학계의 적극적인 반발이 성공 요인이었다고 분석했습니다. 1960년대의 안보 투쟁은 조직된 사람들이 위주였던 것에 반하여 지금은 조직되지 않은 사람들이 평화 국가에서 군사 국가로 전환한다는 위기 의식을 느끼고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에 평화 헌법이 상당히 뿌리 내렸고,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통해 시민의 생활을 위협하는 국가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인식이 퍼졌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2008 촛불집회의 경험이 있지만, 일본은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의 대규모 공동 행동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이는 고무적이지만, SEALs에 대해 우익 미디어의 공격이 계속되는 등 시민들을 개인 개인으로 분열시키려는 시도들이 있어 법률가의 문제제기가 중요하다고 느낀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한국의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고 연대 활동을 계속하자는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SOFA 민사청구권

한국의 박진석 변호사님께서 한미SOFA의 민사청구권에 대해 발제를 해주셨고 이어 오키나와의 기타지넨 변호사님께서 미일지위협정의 민사청구권에 관하여 발제를 해주셨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민사청구권의 내용의 대체로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공무중 행위에 의한 손해가 발생한 경우 한국/일본 정부와 미군 당국간의 배상금 분담비율이 불공평하다는 점(미군 단독 책임인 경우에도 한일 정부는 25%를 부담), 비공무중 행위에 의한 손해가 발생한 경우 미군 당국에 보상금 지급을 청구하거나 미군 개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해야 하는데 미군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 등 여러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한국에서는 비공무중 행위에 대하여 미군 당국에 보상금 지급을 신청하는 경우 “배상금이 청구를 완전히 충족시킨다”는 내용의 “배상신청 결정 동의서”를 제출해야만 보상금을 지급한다고 하는데, 매우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송보고(한국)

하주희 변호사님께서 지난 5. 28. 오산 주한미군기지에 탄저균이 반입된 사건에 대하여 보고해주셨습니다. 주한미군 측은 폐기확인서를 질병관리본부로 제출하였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고, 이를 규율할 수 있도록 한미SOFA를 개정하는 등 재발방지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김종귀 변호사님께서는 ‘미군기지 잔류 승인처분 취소소송’에 대해 보고해주셨습니다. 2014. 10. 23. 미국 워싱턴 D.C 펜타콘에서 한미 Security Consultative Meeting(SCM)이 개최되었는데, 이 때 서울 용산 소재 한미연합군사령부 본부 및 경기도 동두천에 위치한 210화력여단을 잔류하기로 하는 내용을 공동성명 형식으로 발표하였고, 이에 민변 대리인단은 미군기지 잔류를 승인하고 공표한 국방부장관의 행위를 행정법상 처분으로 보아 취소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법원은 국방부장관의 행위가 통치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 보여 걱정되지만, 꼭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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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본 변호사님께서는 지난 해 가장 뜨거운 사건이었던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에 대해 발표해주셨습니다. 오키나와 변호사님들께서 여론은 어땠는지 물어보셨고, 이에 한국측 변호사님들은 ‘종북’프레임으로 보도하는 언론 때문에 일반인들의 여론은 좋지 않았으나, 지식인층에서는 잘못됐다는 인식이 대부분이었다고 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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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석 변호사님께서는 김인숙, 장경욱 변호사님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징계개시신청과 법무부가 권한 없이 변협 변호사징계위원회의 징계개시신청 기각결정을 취소하고 징계개시결정을 한 사건에 대하여 보고해주셨습니다. 오키나와 가토 변호사님께서는 일본에서는 법무성에 변호사 징계에 관한 권한이 일절 없다고 하며, 한국 법무부에 변호사 징계와 관련하여 권한이 있는 것이 매우 이상하다고 하셨습니다. 민변은 곧 법무부 징계위원회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다고 하는데, 꼭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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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기 기치로 변호사님이 헤노코 신기지 건설 저지 투쟁에 대해 발표해주셨습니다. 오나가 지사가 헤노코 매립승인처분을 취소하였으니 오키나와의 현재 가장 뜨거운 현안입니다. 나하로 돌아온 뒤에 일부는 헤노코 투쟁 현장을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신기지 건설 저지 투쟁 과정에서 섬전체회의 발족, 헤노코기금의 창설, 35,000명이 참가한 현민대회, 손에 손을 잡고 기지 건설에 저항하는 비폭력 저항운동 등 ‘All-Okinawa’라는 구호 하에 연대한 현민들의 활동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토론에서는 이러한 연대가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해서 논의했습니다. 이데올로기보다는 ‘오키나와 사람’으로서의 정체성과 인간의 존엄에 관한 강조가 이러한 운동을 가능하게 했다는 의견도 있었고, 그보다는 평화의 보편적 가치에 방점을 찍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우에하라 토모코 변호사님은 기지소음소송 중 아쓰기 4차 판결을 중심으로 발표해주셨습니다. 특히 자위대기의 비행금지 청구를 기지가 이전하는 2016. 12. 31.까지 ‘매일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어쩔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일부 인용하였는데, 수면방해 등으로 인한 인격적 이익 손상을 강조하는 판시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미군기에 대해서는 존재하지 않는 행정처분의 금지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각하하였습니다. 토모코 상은 소음 소송의 추세에 비추어 상당히 높은 기준의 배상을 받아낸 판결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 비결(?)에 대해 묻자, 조용한 환경에서 사는 것의 가치를 강조하고 정밀한 생활에 관한 인격적 평가가 높아졌다는 점이 설득되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변호인단은 2,30년 전에 비하여 정신적 손해의 위자료가 상승한 반면 폭음소송은 30년 전에 인용되었던 위자료 액수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폭음소송만 금액이 올라가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는 점을 부각하였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2일차 저녁 – 공식만찬

열띤 세미나를 마치고 호텔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공식 만찬을 가졌습니다. 다양한 오키나와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엄청 고급스러운 식당이었는데, 저는 돼지 귀 요리가 기억에 남습니다. 해파리냉채인줄 알고 맛있게 먹었는데, 요리사님께서 돼지 귀 요리라고 하셔서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ㅠㅠ).

이 날은 먼저 아키후미 마츠자키 변호사님, 하야시 치카코 변호사님 등 전날 환영 만찬에 참석하지 않았던 분들의 소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양측의 선물교환식이 있었습니다. 오키나와측에서는 티셔츠와 핸드폰 고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티셔츠와 핸드폰 고리 모두 디자인이 너무 귀여웠고, 종류도 한가지가 아니라 다양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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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측에서는 공식 선물로 한과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심재환 변호사님, 장경욱 변호사님, 이명숙 선생님은 따로 선물을 준비하셨습니다. 심재환 변호사님은 아내인 이정희 변호사님이 만드신 쿠키를, 장경욱 변호사님은 아내가 만드신 비누를, 이명숙 선생님은 자신의 북아트 작품을 오키나와측에 선물로 드렸습니다. 오키나와 교류회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식사 때는 일부러 한국, 오키나와 사람들을 섞어 앉았습니다. 저는 처음 참여하는 거였기 때문에 사실 오키나와 분들이 매우 어색해서 자꾸만 저와 친한 사람들과 앉으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이한본 변호사님께서 제재하셨습니다.ㅋㅋ 덕분에 오키나와 분들과 조금이나마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날 이시가키 섬이 고향이신 나까야마 변호사님, 마리상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었는데, 나까야마 변호사님은 일본어만 가능하셔서 소통에 애를 먹었습니다. 그래도 마리상이 한국어를 조금 하고 저도 일본어를 아주 조금 해서 어찌어찌 소통은 되더군요. 중간에 나까야마 변호사님이 소통에 힘겨움을 느끼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시는 건 아닌지 걱정됐는데, 끝까지 저와 함께 식사를 해주셔서 감동받았다는..ㅋㅋ

중간에 식당 측에서 노래와 춤 공연을 해주어 다같이 춤추며 이야기하는 흥겨운 분위기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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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로 간 곳은 노래 공연도 해주고 손님도 노래 부를 수 있는 술집이었습니다. 아저씨 두분이 오키나와 노래를 불러주셨는데, 나중에 아리랑을 불러주시기도 했습니다. 장경욱 변호사님과 김자연 변호사님께서 오키나와 노래를 직접 부르기도 하셨습니다. 한국 변호사들의 공연에 감동을 받은(?) 옆 자리 손님들이 저희에게 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노래와 춤이 끊이지 않았던 술자리였고, 오키나와의 “흥”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3일차

셋째날에는 이시가키 섬의 북쪽을 둘러봤습니다. 이시가키 섬의 주민들은 주로 남쪽에 많이 살고 북쪽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시점부터는 신호등도 없었습니다. 가장 처음으로 간 곳은 세계 평화의 종이 있는 시네이 공원이었습니다. 세계 평화의 종은 유엔 본부를 비롯해 여러 도시에 있는데요, 평화와 비폭력을 염원하며 매년 유엔 총회 개최일인 국제 평화의 날에 울린다고 합니다.

세계 평화의 종 옆에는 평화헌법 9조 ‘전쟁을 포기하고,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를 새긴 비석이 있었습니다. 뒤에 비둘기가 바치고 있는 형상이었는데, 비둘기는 민중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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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이 공원을 떠나 말라리아 희생자비에 갔습니다. 이시가키 북쪽은 오키나와 전쟁때 크게 공습을 당한 지역은 아니지만 말라리아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합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를 ‘전쟁 말라리아’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당시 일본군들이 식량 확보를 위해 주민들을 유병지역인 산으로 강제로 보냈기 때문입니다. 국가에 의한 폭력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후 이에 대한 보상운동이 일어났으나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희생자비 앞에서 함께 묵념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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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반나 공원 전망대에 가서 이시가키 섬을 내려다 봤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조금 아쉬웠습니다.

점심으로 샤브샤브를 먹고, 식당과 붙어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쇼핑도 조금 했습니다. 나까야마 변호사님께서 한국 변호사님들에게 별도로 또 선물을 주기도 하셨습니다.

오후에는 야이마무라라는 이시가키 전통마을을 구경하고 산호초를 볼 수 있는 글래스 보트를 타러갔습니다. 화려한 산호초들과 열대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들 니모 찾기에 열심이었습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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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는 자유 일정을 가졌습니다. 호텔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거나 바닷가에서 수영이나 스노쿨링을 했습니다. 저는 김인숙 변호사님, 장경욱 변호사님 등과 바다에서 수영하며 놀았습니다. 여기서 세월호 노래인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플래시몹을 하자는 제안이 있어 오키나와 변호사님들과 함께 해변에서 노래와 동작을 연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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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류회의 마지막 만찬은 소고기 식당(?)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나까야마 변호사님께서 특별히 저희를 위해 소고기 집으로 고르신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만찬인 만큼 참가자 전원이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했습니다. 사이토 변호사님과 기타 지넨 변호사님은 한국 노래를 부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나까야마 변호사님과 심재환 변호사님의 발언(? 아니면 연설?)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나까야마 변호사님은 이시가키섬에서 자라면서 부모님께서는 사람이 성공하면 고향을 버리기 때문에 나까야마 변호사님이 너무 성공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민변 분들과 고향을 찾아 고향에 대한 짐을 내려놓게 된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ㅠㅠ그리고 이어서 평화교류회 모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같이 계속 노력하자는 취지로 이야기하셨습니다(정말 감동적이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이 안나네요ㅠㅠㅠ). 심재환 변호사님께서는 통합진보당이 해산된 이유에 대해서 궁극적으로는 통합진보당이 민심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뼈아픈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해주신 것 같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이렇게 전 참가자의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 만찬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저는 이후 호텔로 돌아가 쉬었지만, 2차까지 가신 분들도 많이 계셨던 것 같습니다.^^

넷째 날 – 세월호 플래시몹과 헤어짐

이시카키를 떠나는 날입니다. 전날 해변에 갔던 몇몇이 배웠던 세월호 율동을 마지막날 아침 호텔 앞 잔디밭에서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연습했습니다. 결국 나하 공항에서 세월호 플래시몹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래를 크게 틀거나 율동의 의미와 노래의 가사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없었기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공항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플래시몹을 지켜보았습니다. 부끄럽기도 했을 텐데, 조금도 빼지 않고 동참해 준 오키나와 교류회 분들께 다시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공항에서 공식적으로 작별 인사를 하였습니다. 내년 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요 ^^ 오키나와 분들은 바로 일터로 가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한창 바쁜 시기에 끝까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공항에서 각자 선택한 대로 갈라져 일부는 오키나와 변호사님들과 함께 헤노코 신기지 건설 반대 투쟁 현장으로, 일부는 츄라우미 수족관으로, 일부는 자유여행을 택하여 각자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츄라우미 수족관 팀에 합류했는데, 박진석 변호사님께서 차 렌트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 주셔서 정말 편하고 즐겁게 다녀왔습니다.

나하로 돌아와서 박진석 변호사님이 항상 가신다는 재키스 스테이크에서 맛있는 저녁을 얻어먹고 돌아와 오키나와 변호사님들과 함께 하는 간소한 뒷풀이에 참여했습니다. 나카니시상과 케이타상과는 처음 인사했는데, 처음 만났지만 마치 오래 된 친구처럼 작은 펍에서 다트 게임도 하고 서로의 일상에 대해 도란 도란 이야기도 나누며 편안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내년에 한국에서 봐요’하는 인사로 작별을 나누었습니다.

5일차

다섯째날 오전은 그야말로 자유일정이었습니다. 자녀 장난감 선물을 사러 가는 엄마팀, 츄리성 관광팀, 국제거리 관광팀 등 다양하게 무리지어 오키나와를 관광했습니다. 호텔에서 일하는 변호사님도 계셨습니다…..

이렇게 오키나와 일정은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총 소감

평화문제에 대해 고민해 본다기 보다 그냥 오키나와라는 도시를 구경한다는 마음으로 생각 없이(;;) 참여했는데, 세미나도 너무나 유익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교류회를 통해 한국과 오키나와가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고 토론한다는 점 자체가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한국 분들과 오키나와 분들이 언어 장벽에도 불구하고 매우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아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저도 지금부터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다음 교류회에서는 오키나와 분들과 더 많이 대화하며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렇게 의미 있는 모임에 함께 하게 돼서 매우 기쁘고, 교류회에 함께 한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화, 2015/10/2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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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유해물질 특별보고관 베스컷 툰칵 한국 공식 조사방문 결과보고서 발표

지난 10월 23일 베스컷 툰칵 유엔 유해물질 특별보고관(이하 특별보고관)은 서울 플라자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에서의 2주간 공식조사방문 결과를 발표하였다.  앞서 특별보고관은 2주간 공식조사방문을 통해서 한국 내 유해물질 및 폐기물 처리 관련 실태를 조사하였으며, 국내 관련단체인 민주노총,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발암물질 없는 사회만들기 국민행동, 일과 건강, 참여연대, 녹색연합, 환경정의, 한국환경회의 등과의 시민단체와 미팅을 가졌고, 민변과도 방한 다음날인 10. 12.(월) 아침에 미팅을 가졌다.

연대1

사진 1. 강남역 삼성전자 본관앞에서 시위중인 반도체 피해자들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는 특별보고관과 유엔지원 인력

또한 특별보고관은 김포, 월성, 당진, 보령 등 유해물질과 폐기물로 인한 피해지역을 직접 방문하여 현장 피해자들과의 미팅을 통한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였다.

연대2그림 2.  보령 공군사격장 피해주민대책위를 방무중인 특별보고관과 단체활동가들(맨 오른쪽 민변 김서영 자원활동가)

2주간의 바쁜 조사일정을 마무리하고 특별보고관은 아래와 같이 사전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이후 2016년 9월 유엔인권이사회 정기세션에서 정식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에 민변을 포함한 참여시민단체는 추가자료 제공 및 의견제시로 한국사회의 현실이 정확히 반영되고 실효적인 권고를 받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바스쿠트 툰작 유해물질 및 폐기물에 관한 UN 인권 특별보고관의 방한결과 정리 기자회견 (방한 일정: 2015년 10월 12 ~ 23일)

머리말

저는 유해물질 및 폐기물에 따른 인권 영향을 조사하는 UN 특별보고관의 자격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초청을 받아2015년 10월 12일부터 23일까지 공식 방한 일정을 마쳤습니다. 이번 방한의 목적은 유해물질과 폐기물 라이프사이클 전반에 걸친 관리가 인권에 미치는 악영향을 막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가 취한 조치들을 감시하고 평가하는 것이었습니다. 

방한 일정을 시작하면서 저는 이번 방문이 예비 조사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인권 측면에서 바라본 대한민국의 유해물질 및 폐기물 관리 실태에 관한 포괄적인 분석과 권고사항을 담은 최종보고서를 작성하여 2016년 9월 UN 인권이사회에 제출할 것입니다.  

먼저 대한민국정부에 방한 초청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지난 2주 동안 저는 외교부, 국방부, 고용노동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의 여러 부서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를 면담했습니다. 또한 원자력환경공단의 협조를 얻어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도 둘러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또한 여러 기업들, 시민사회단체들, 여러 지역의 주민들과 피해자분 들께도 유해물질과 폐기물의 관리에 따른 영향으로부터 모든 측면의 인권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각자의 바램과 어려움들을 말씀해 주신 데 대해 감사 드립니다.  방한 기간 중 저는 김포, 단양, 월성, 보령을 방문해 주물공장, 시멘트 공장, 원자력 발전소, 군부대 인근의 주민들을 만나 뵈었습니다.

또한 삼성전자와 옥시 레킷벤키저의 임원들도 만났고, 삼성전자의 생산 시설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관찰내용

제가 방한 결정을 내리게 된 주요 동기 중 하나는 불과 수십 년 만에 급속한 산업화를 이루어 여타 신흥국들에게 경제발전의 모델이 된 대한민국의 인권실태를 감시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단기간의 산업화 과정과 더불어 가속화된 화학물질의 생산과 그 사용실태, 그리고 그에 따른 문제점을 살펴 보는데 관심이 컸습니다.  

최근 들어 대한민국에서는 몇 가지 긍정적인 발전이 있었음을 확인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방한 기간 중에 저의 주목을 끌었던 몇 가지 사례들을 언급하고자 합니다. 이 사안들을 공식 보고서 발표 이전에 먼저 말씀 드리는 것은, 이들이 비단 대한민국의 상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 다른 나라들에도 교훈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유해물질이 포함된 가습기 살균제를 구매, 사용했던 소비자들 중에서 140여 명이 사망하고 500 명 이상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입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여성과 아이들로, 호흡기 질환을 포함해 다양한 질병들로 고통 받았습니다. 옥시 레킷벤키저는 당시 취약했던 법적 보호기준에 따라 사실상 그 유해성에 대한 정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습기를 통해 살포되는 화학물질의 흡입에 따른 건강상의 위험을 전혀 조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영국에 본사를 둔 옥시 레킷벤키저는 대한민국의 가습기 살균제 시장을 80%를 점유했고 여타 제조사들이 나머지 지분을 나누었습니다. 레킷벤키저는 회사에 법적책임이 있음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전에 제품의 안전성을 확인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제품과 그로 인한 건강 영향 간의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해당 기업은 물론 정부도 피해자들에게 의미 있는 사과를 하지 않았고, 양측 모두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피해자들은 정부와 기업들이 취한 후속 조치들이 유사한 비극의 재발을 방지하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정부는 피해자들의 증상과 살균제 성분간의 인과관계가 명확히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체 피해자 중 약55%에 보상을 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이번 방한 기간 중 유해물질에 대해 작업자들이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 눈에 띄게 드러났습니다. 전자업계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사례가 논의 중 여러 차례 언급되었습니다. 전자업계 종사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비단 그 업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조 공정에서 유해 물질을 사용하는 다양한 산업계의 근로자들이 직면한 문제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안타깝게도 삼성전자의 많은 근로자들이 인권보다 우선시되는 이윤 추구의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피해자와, 사망한 피해자의 남은 가족들로부터 백혈병, 림프종, 뇌종양, 유방암, 갑상선암, 유산, 호르몬 합병증 등 위중하고, 돌이킬 수 없는 질병들에 걸렸다는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이 피해자들은 매일 같이, 어떤 날은 하루 12시간을 한 달에 고작 하루, 이틀 쉬면서 유해물질을 사용하였거나, 그러한 물질에 노출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많은 피해자들이 고등학교 졸업 직후 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던 여성들이었습니다.  제가 들은 많은 증언들에 따르면, 피해자들이 생산 목표 달성에 대한 상당한 압박감에 시달렸으며, 자신이 사용하는 유해물질의 유해성에 대한 교육이나 정보를 거의 받은 바 없고, 유해물질에 대한 노출을 방지하는 충분한 안전 조치들도 없었음을 이야기합니다. 임신한 사실을 모른 채 독성 화학물질을 다루는 작업장에서 일했기 때문에 아들이 기형아로 태어났을 것이라며 자신을 자책한 한 어머니의 증언을 들으며 저도 좌절감과 비통함을 느꼈습니다.

피해자들과 노조,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정부 모두 직업병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으며, 작업자들, 특히, 하청업체 작업자들에게 제공되는 정보의 양과 보호조치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정보의 격차가 얼마나 크던 간에, 본인이 겪고 있는 고통이 작업장에서 사용하는 유해물질의 결과임을 증명해야 할 부담은 피해자들이 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입증책임을 지워 67명의 산재 신청자 중 인과관계를 증명하는데 성공한 3명 (4.5%)만이 유해한 작업환경에 따른 피해에 대하여 정부의 “산재보험”을 통한 어느 정도의 보상을 받을 수 있었으니, 참으로 훌륭한 시스템입니다. 삼성전자에서 일했던 피해자 수는 적게는 90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며, 전자 산업계 전반의 피해자 수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유해한 환경 인근에 사는 주민들을 방문했던 내용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서울에서 몇 시간 떨어진 곳에 있는 김포시에는 경제활성화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 덕분에 과거 조용했던 마을에 영세공장들을 우후죽순 들어서 있습니다.  지금은 주택과 자급농장, 논들이 금속공장과 여타 공장들 사이에 끼어 있는 형국이며, 이들 공장으로부터 날라온 위험한 수준의 중금속과 기타 유해 물질들이 집과 농경지를 뒤덮고 있습니다. 불과 몇 명 안 되는 공무원들이 이 지역에 산재한 약 10,000여 산업시설들의 오염을 감시하는 거의 불가능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피해의 책임이 있는 회사를 찾아내야 할 입증 책임이 있는 지역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증거 정보의 제공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피해와 유해물질 노출 간의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할 필요 때문에 위험한 지역으로부터 이주할 할 수도 없고, 또 자력으로는 이주할 능력도 없다는 비슷한 우려들을 토로한 다른 지역의 주민들과도 많이 만났습니다. 예를 들어, 원전 지역914미터 제한구역 바로 밖에서 사시는 주민들은 이주를 요구하고 있으나 갑상선 암 등의 다양한 질병이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에 의한 것이라는 인과관계가 수립될 때가지 수년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좌절해 있는 지역주민들은 월성 원자력 발전소, 석탄화력발전소, 단양과 당진의 시멘트 공장과 철강 공장, 보령 군기지 인근 주민들이 포함됩니다. 일례로, 보령은 자연 경관이 수려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지만 연구조사 결과 다양한 독성 화학물질들이 안전기준의 세 배를 초과해 검출되었으며, 주민들은 일부 자연사한 분들을 제외한 모든 사망자들이 암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합니다. 제가 방문한 곳들은 위험에 처한 지역들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저는 이들 주민들의 상당수가 연로한 사회경제적 약자이며 효과적인 구제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우려됩니다.
또한, 개인과 주민 대표들에게 살해 위협을 포함한 위협이 있었다는 것도 우려되는 바입니다. 

결론

방한 실태 조사 기간 내내, 지역 주민들과 마을들은 정부와 기업들이 유해물질에 따른 피해를 방지하고 위험을 줄여주기를 바란다는 것이 너무도 명백했습니다. 위험에 처해 있는 주민들은 무력감과 믿었던 기업과 기관들에 대한 배신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유해물질에 대한 노출과 건강 영향에 대한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 대다수 피해자들이 직면한 상당한 장애요인으로 드러났습니다.

대한민국이 비준한 국제인권조약들과 안전하고 건전한 환경에 대한 대한민국 헌법 조항에 따라, 정부는 유해물질과 폐기물의 영향으로부터 인권을 보호하고 실현할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권리에는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는 물론 정보권과 효과적인 구제를 받을 권리 등, 시민적, 정치적 권리들도 포함됩니다. 저는 대한민국 정부에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에 관한 규약”의 선택의정서를 즉시 비준할 것을 촉구합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하여 대한민국은 최근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 (화평법)” 을 제정하여 유해물질의 관리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해왔습니다. 비록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기 전에 필요한 조치들이 취해졌어야 했고, 피해자들은 목숨을 잃거나, 질병에 걸리거나, 사랑하는 가족들의 죽음에 대하여 여전히 그 해답을 받지 못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화평법의 제정은 긍정적인 발전이며 정부가 개선 조치들을 취해온 것을 치하하는 바입니다. 더불어,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용이 질병의 원인으로 인정된 일부 피해자들에게 의료비와 장례비를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일부 소비자 화학 제품의 안전성과 관련하여 취한 조치들이 있지만, 저는 향후 소비자 제품으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유사한 비극의 방지를 위해 정부가 취한 재발방지 조치들이 충분한가에 대해서 여전히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산업화학사고에 대해서도 비슷한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정부에 따르면 2012년 구미 화학사고 이후 (화학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와 부상자 수가 감소했다고 합니다만, 구미 사고 이후 크고 작은 화학사고 건수들은 오히려 증가했을 수도 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저는 상당량의 화학 물질들이 존재하고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산업계에서 이러한 화학물질들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예방이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화평법)” 과 “화학물질 관리법 (화관법)”의 제정 및 이행 등 환경적으로 건전한 화학물질 관리를 위한 새로운 제도적, 법적 근거들이 수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유해 영향을 발현되기 전에 위험을 탐지하는데 필요한 정보시스템과 거버넌스 체계의 수립은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정부와 기업들로부터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기 전에 위험을 탐지하기 위해 현재 수립되어 있는 정보시스템과 거버넌스 체계의 적정성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기를 고대합니다. 모든 사람들, 특히 어린이 등 가장 취약한 사람들, 비정규직 및 이주노동자들을 포함한 근로자들, 최근 산업화된 농촌지역의 주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유해물질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법제와 시행 규정들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방한  기간 중 저는 수백 명의 피해자들이 국내 법률 체계에 따라 (질병/피해와 유해물질/폐기물 노출환경과의)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하는 부당한 입증 책임을 짊어지고 있어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 오랫동안 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부당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결국 효과적인 구제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러한 문제의 해결을 돕기 위해, 저는 2016년 발효될 예정인 “환경오염 피해 배상 및 구제에 관한 법 (환경구제법)”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습니다. 이 법의 정신은 인권 원칙들, 특히 효과적인 구제에 대한 권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 법은 발상의 전환을 의미하며, 적절하게 이행될 경우, 피해자들의 입증책임을 완화할 수가 있습니다. 이 법이 더 많은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임을 낙관하고 있지만, 동시에 과도한 입증책임에 떠안고 있는 훨씬 더 많은 피해자들이 이 법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도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UN 기업과 인권에 관한 지도원칙”에도 명시된 바, 기업들은 인권을 보호할 책임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상당한 주의(due diligence)를 기울여야 할 책임과 효과적인 구제가 이루어지도록 도와야 할 책임도 포함됩니다. 대한민국은 “기업의 인권보호 책임에 관한 국가행동계획 (National Action Plan on the responsibility of businesses to respect human rights)”을 작성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NAP가 유해물질과 폐기물로 야기된 이슈들에도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주기를 바랍니다. 

효과적인 구제의 실현은 피해에 대한 보상과 재발방지 대책을 모두 요구합니다. 삼성전자 근로자들의 사례나 가습기 살균제 소비자들의 사례 모두, 피해자들은 보상과 재발방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업들은 재발방지대책에 관한 의미 있는 논의를 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필수 의료 서비스 및 기타 비용에 대해 당장 도움이 절실한 피해자들이, 기업들이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는지, 그리고 보다 안전한 화학물질을 개발하고 사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는지에 대한 증가하는 요구와 관심을 회피하는데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최근 근로자들과 삼성전자 간에 이루어진 조정 과정의 내용은 상당히 우려되는 바입니다. 삼성전자가 재발방지라는 측면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는 시사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자체 “보상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한 결정은 그다지 좋은 결정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삼성전자와 피해자들이 선임한 3명의 조정위원들은 피해자 보상만을 염두에 둔 내부조직의 설립을 권고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정위원들은 재발방지와 보상을 모두 다루는 독립적인 외부조직의 설립을 권고했습니다. 보상위원회는 “기업과 인권에 관한 UN 지도 원칙” 과 분쟁조정에 관한 여타 국제 우수관행에 비추어 결코 “고충처리제도 (Grievance Mechanism)”로 볼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보상은 타당하고, 투명하며 지속적인 학습의 원천이 될 수 있도록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보상위원회”가 국제인권기준에 어떻게 부합하는지에 대한 추가 정보를 기다리겠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불과 몇 십 년 만에 전세계 기술 리더로 부상했습니다. 이러한 성장에는 더 큰 책임과 도전만이 수반되는 것이 아니라, 더 안전한 가정, 더 깨끗한 작업장, 더 건강한 커뮤니티로의 전환을 실현할 수 있는 더 큰 혁신 역량도 함께합니다. 저는 한국 기업들이 이러한 전환과정의 리더로서 부상하기를 바라며 이것이 더 잘 실현될 수 있도록 한국정부가 노력해주기를 고대합니다. 

보다 자세한 분석 결과, 실태 평가 및 권고사항을 담은 보고서를 2016년 9월 인권이사회에 제출할 계획입니다.

다시 한번 방한 초청을 해 주신 대한민국 정부에 감사 드리고 지난 2주 동안 열린 마음으로 솔직한 말씀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화, 2015/10/27-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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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광주전남지부 소식 (2015.06~10.)

 

 올해 5월 민변 정기총회 이후부터 지금까지 광주전남지부가 살아온 주요장면을 보여드리겠습니다.

 

 1. 5.18 역사왜곡 대응 (지만원 고소, 뉴스타운 발행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

8월 31일,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1987년 제작‧배포한 5‧18 사진자료집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을 북한과 내통해 만든 자료라고 주장한 지만원씨를 상대로, 당시 5‧18 사진자료집 제작과 배부에 참여한 신부님 5명이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 등으로 고소하였습니다. 민변 광주전남지부 16명의 변호사님들이 고소대리에 참여하였습니다(총 33명 중). 이후 10월 20일, 지만원씨가 북한군인으로 지목한 당시 시민군 4명을 대리하여 2차 고소를 진행하였습니다.

 

한편, 민변 광주전남지부는 독자적으로 팀(임태호, 이소아, 김현무, 홍지은 변호사)을 구성하여 뉴스타운에서 발행‧배포한 호외 1~3(당시 시민군 사진과 북한 군인의 사진을 비교하면서 5‧18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주장이 실린 신문)에 대해서 9월 22일 발행‧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였고, 인용 결정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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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공동성명서

10월 14일, 광주전남 문화예술인, 전문가, 지식인 405명은 정부의 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한 반대 공동성명서를 5‧18 민주광장에서 발표하였습니다. 이번 공동성명서 발표를 계기로 광주전남지역 변호사, 교수, 의사, 문화예술인 단체들은 앞으로 시국‧지역현안 등에 대해 공동대응활동을 펼치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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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민변 소개마당 & 변론경험 나누기

매년 10월, 신입 변호사분들을 초청하여, 민변을 소개하고 변론경험 노하우도 공유하는 ‘민변 소개마당 & 변론경험 나누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3회째를 맞고 있으며, 10월 21일 저녁에 광주지방변호사회관에서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20여명의 신입변호사 분들과 민변 회원 20여명 총 40여명이 참석하였고, 뒤풀이는 맥주와 함께 즐겁게 마무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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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야구경기 단체관람

7월 1일, 김정호 회원사업단장님 덕분에 민변 회원 20여명이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 스카이박스에서 야구경기 단체관람을 하였습니다. 이 날은 월례회의 및 신입회원 가입승인(장은백 변호사님)을 위한 임시총회의 자리이기도 해서, 모든 회의진행을 마치고 야구관람을 하였습니다. 이날 기아는 한화에 여유 있게 승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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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름 야유회

7월, 상반기에 열심히 각자의 자리에서 활동하신 회원분들을 위해 담양 파라다이스라는 곳으로 떠났습니다. 가족 동반으로 총 35명이 참석하였고, 족구‧발야구‧신발 멀리던지기 등의 체육대회를 통해서 각 회원과 가족분들의 운동실력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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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창립 16주년 기념

매년 9월 월례회의는 1999년 9월 3일 민변 광주전남지부 창립기념일이 있는 달인 만큼 조금은 특별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충장로 소고기 샤브샤브뷔페에서 25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김용채, 임선숙 변호사님의 말씀을 듣고, 홍지은‧문호세 변호사님에게 신입회원 선물증정, 그리고 민변 광주전남지부 4~5대 지부장을 엮임 하셨던 정채웅 변호사님에게는 공로패를 드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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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광주전남지부 소식이었습니다~

목, 2015/11/1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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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위원회 활동소식

강남역 8번출구 앞에서 기다립니다.

 

아침 여섯시가 되면 이내 시끄러워 집니다. 잠이 모자라지만 주변을 지나는 사람과 자동차가 쏟아내는 소음을 이겨내기 어렵습니다. 주섬주섬 일어나 비닐을 걷어내고 밤새 구부정했던 몸을 폅니다. 축축해진 침낭을 넓게 펼치고 농성장 안을 정리합니다.

 

아침 선전전을 합니다. 일터로 향하는 시민들에게 전단을 건네고 직업병 피해자의 사진이 붙은 피켓을 듭니다. 마이크를 잡고 우리가 길바닥에서 먹고 자는 이유를 알리기도 합니다. 인근 도시락 가게에 가서 따뜻한 국이 포함된 도시락을 사 옵니다. 아침을 먹는 동안 낮 지킴이 당번이 도착하면 반갑게 맞습니다. 그들에게 농성장을 맡기고 강남역을 떠납니다. 그날의 일정에 따라 법원으로 혹은 사무실로 갑니다.

 

저녁 시간이 되면 다시 농성장에 옵니다. ‘이어말하기’ 프로그램에 초대된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합니다. 인근 식당에서 배달 주문한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합니다. 농성장에 앉아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와중에 짬짬이 소송 준비도 하고 글도 씁니다(전자소송 시스템은 제게 축복입니다).

 

저는 3년차 변호사이자 3년차 활동가입니다. 사법연수원 졸업 후 바로 ‘반올림’이라는 시민단체에서 상근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주로 산재 피해노동자 상담, 산재신청 대리, 산재소송 대리, 전자산업 노동건강권 관련 연구를 해왔지만, 한달 전 부터는 강남역 8번출구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로써 한달이 지났습니다. (매일 농성장에서 자는 것은 아닙니다. 당번제를 운영하는데 마침 오늘 밤은 제가 당번입니다.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황상기 아버님도 함께 노숙을 하십니다. 영화 ‘또하나의 약속’의 실제 주인공인 그 분입니다. 8년 전,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딸의 영정을 안고 거리로 나섰던 그 분이 이제는 아예 거리에 자리를 깔고 눕습니다. 삼성LCD 뇌종양 피해자인 혜경씨와 어머님도 함께 하십니다. 물론 쉽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아니, 반올림으로서는 다른 선택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렸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삼성은 지금 이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리려 하는데, 삼성의 입만 바라보는 언론들은 마치 이 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보도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 삼성은 일부 피해자들을 개별적으로 찾아가 돈으로 회유하려 했습니다. 산재신청 하지 말 것, 산재소송을 취하할 것, 반올림과 만나지 말 것 등을 조건으로 위로금 명목의 금원을 지급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한 회유를 힘겹게 이겨낸 피해가족들과 활동가들이 모여 반올림이 만들어졌습니다. 반도체 공장의 유해성을 밝혀 냈고, 피해노동자 여덟 분의 산재인정도 이끌어 냈습니다. 세권의 책, 두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삼성이 먼저 반올림에 대화 제안을 하면서,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이 시작되었습니다. 작년 5월에는 삼성전자 권오현 대표가 공개적으로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대책 수립을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9월, 삼성은 교섭 약속을 파기하고 자체적이고 한시적인 보상절차를 강행했습니다. 삼성이 직접 보상 기준과 내용을 정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심사 까지 하겠다고 합니다. 보상 신청자들에게는 합의 내용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황상기 아버님을 처음 대했던 때와 같습니다. 일년 전에는 조정 절차를 강행하며 반올림에게 “조정에 참여해 성실하고 투명하게 논의하길 바란다”고 했던 삼성이, 지금은 그 조정 절차 마저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습니다. 직업병 예방 대책에 대하여도 ‘내부 관리시스템 강화’만을 앞세울 뿐입니다. 결국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알아서 하겠다는 태도입니다.

 

덕분에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둘러싼 최근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언론은 이 문제를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려 애쓰지만, 사실 하나의 질문에 대한 찬/반이 있을 뿐입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오롯이 삼성전자에게 맡겨도 되겠는가, 과연 그것을 문제의 ‘해결’이라고 할 수 있는가.”

 

반올림이 노숙농성까지 벌이며 말하고자 하는 것도 결코 무리한 내용이 아닙니다. 여전히 노동자들의 질병은 회사와 무관하고 자신들의 안전관리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강변하는 삼성에게 직업병 예방 대책을 맡길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삼성 공장에서 건강을 잃고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을 다시 삼성의 보상창구에 세워 또 무언가를 입증하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그들에게 삼성이 일방적으로 정한 보상액을 내밀며 합의를 종용해서는 더더욱 안되다는 것입니다. 결국 지금 삼성이 강행하고 있는 보상절차로는 절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이는 ‘개별적인 회유 절차’ 혹은 ‘문제 은폐 절차’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바라는 이들에게는 그저 상식적인 수준의 주장일 뿐입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분들이 농성장을 찾아 주십니다. 농성장에 필요한 물품이 없는지 묻는 분들도 많습니다. 딱히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미 한달여 를 도심 한복판에서 보내며 가을과 겨울을 나기에 필요한 것들은 얼추 갖춘 것 같습니다.

 

다만 사람이 더 필요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이곳으로 모여 농성장과 황상기 아버님, 김시녀 어머님의 마음이 더 따뜻해 지면 좋겠습니다. 강남역 8번 출구 앞입니다. 기다리겠습니다.

노동

목, 2015/11/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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