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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72시간만에 사형수를 구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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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72시간만에 사형수를 구한 이야기

익명 (미확인) | 목, 2017/02/09- 17:17
오사리아키

오사리아키

2014년 3월 저녁 7시, 국제앰네스티 말레이시아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가족이 72시간 후에 사형당한다는 내용이었다!

사형수는 나이지리아 국적의 오사리아키(Osariakhi Ernest Obayangbon)였다. 그는 18년 전에 저지른 범죄로 유죄를 선고받았고 2007년 항소심이 있기 전에 정신분열을 호소해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와 공범이라고 지목된 사람은 재심에서 혐의가 뒤집어졌는데, 판단을 하기 힘든 상태인 오사리아키는 항소심에서 관용을 호소하지도 못했다.

국제법에서는 정신적인 건강 문제를 겪는 사람에게 사형 집행을 하는 것은 금지한다.


오사리아키가 공정한 재판을 받았는지도 심각하게 의심됐다. 2013년, 말레이시아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의 50% 이상이 외국인이었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의 범죄가 국제법상 “가장 심각한 범죄”에는 전혀 해당하지 않는 범죄였다.

국제앰네스티는 즉각 긴급행동에 나섰다. 72시간의 행동으로 사형집행은 시행되기 직전에 중단됐다. 사형집행 당일, 그는 이미 집행실로 가는 중이었고 집행 준비가 한창일 때 중단하라는 지시가 있던 것이다. 그로부터 3년 후, 말레이시아 왕이 오사리아키를 사형에서 종신형으로 감형하며, 그는 마침내 사형을 피하게 됐다.

긴박했던 72시간의 행동으로 한 남자가 생명을 찾은 것이다!

오사리아키의 형제 커티스(Curtis)가 이 기쁜 소식과 함께 국제앰네스티에 감사 인사를 보냈다.


샤미니(Shamini) 국제앰네스티 말레이시아지부 국장님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누군가의 삶을 구하는 활동을 하시느라 바쁘시리라 생각됩니다. 국제앰네스티 활동에 경의를 표합니다.

2014년 저희 형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무작정 국제앰네스티에 찾아가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시간조차 우리 편이 아니었음에도 여러분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저와 만난 후에 전담팀이 꾸려졌고, 런던에 있는 헤이즐과 말레이시아의 팀이 함께 나서 형을 구해줬어요. 여러분은 저희 형만 구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사형당하면 의미를 잃고 산산이 조각나버릴 우리 가족 모두를 살린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형제 폐지를 위해 계속 싸웠습니다. 형이 사형에서 종신형으로 감형된 오늘 이 순간을 축하할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노력의 결과입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곧 신의 목소리입니다. 국제앰네스티가 사형반대에 목소리를 내왔고, 신이 그 뜻을 오사리아키에게 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뜻은 전 세계에도 전해질 것입니다.

국제앰네스티가 없었으면 우리 가족은 슬픔과 눈물 속에 살고, 삶이 황폐해졌을 것입니다. 저는 분명히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도, 오늘처럼 웃으면서 맞이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형 뿐만 아니라 그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국제앰네스티 같은 단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번 승리로 여러분은 사형 종결의 종소리를 울렸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창조하고 빼앗을 수 있는 권한은 인간이 아니라 오직 신에게만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습니다. 무엇보다 여러분은 어떤 대가도 없이 이런 훌륭한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형을 대신해, 다시 한번 우리들에게 희망을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가족은 여러분과 국제앰네스티가 자랑스럽습니다. 앞으로의 활동도 응원하겠습니다.

커티스 오바앙봉(Curtis Obayangbon) 드림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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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동안 전 세계 약 700만 명에 이르는 국제앰네스티 지지자들은 시위와 편지쓰기, 탄원서명 등 다양한 활동으로 세계 각지의 인권을 옹호하고 향상시켰다.

우리의 활동은 엄청난 효과를 일으켰다. 부당하게 감옥에 갇혔던 사람들은 풀려나고, 법이 바뀌었으며 전 세계의 용기 있는 사람들이 연대하고 행동에 나선 것이다!

연말을 맞아 2018년 한 해 동안 이룩한 놀라운 인권 성과를 정리했다.

2월

2월에는 엘살바도르에서 징역 30년이라는 터무니없는 형을 선고받았던 테오도라 델 바스케스가 법원의 감형으로 마침내 감옥에서 풀려났다. 그녀는 사산한 후 낙태 혐의로 고발되어 유죄까지 선고받았고, 이미 감옥에서 10년을 보냈다. 엘살바도르에서는 낙태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탄원서명부터 항의 시위까지, 국제앰네스티는 2015년부터 테오도라의 석방을 위해 다양한 캠페인 활동을 벌였다. 노르웨이 지부에서는 테오도라 사건을 알리기 위해 방송을 통해 조난신호를 보내기까지 했다. 앰네스티는 앞으로도 테오도라와 같은 여성들이 재생산권을 보호받기보다는 오히려 처벌받는 일을 막기 위해 엘살바도르의 낙태 비범죄화 캠페인을 계속할 것이다.

테오도라 바스케스(Teodora Vasquez )

멕시코에서는 세르지오 산체스가 감옥에 갇힌 지 8년 만에 풀려났다. 그는 일관성 없는 증거로 허술한 재판을 받았다. 살인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수감되어 있었다. 세르지오의 변호인단은 거리 행진과 시위에 참여하는 등 앰네스티 지지자들이 보여준 활동이 세르지오가 석방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석방된 후의 세르지오 산체스

또한 에티오피아에서 구금되었던 활동가, 기자, 블로거 등이 석방되기도 했다. 그 중에는 국제앰네스티 양심수인 에스킨더 네가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국제앰네스티 지지자들은 에스킨더를 위해 엄청난 양의 편지를 보냈고, 이러한 노력은 결국 결실을 거뒀다.

가족들을 통해 국제앰네스티에서 보낸 지지 편지를 받아보았습니다. 이 편지들 덕분에 저는 용기를 잃지 않았고, 가족들도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에스킨더 네가Eskinder Nega

2018년 2월 14일, 에티오피아의 에스킨더 네가는 아디스아바바의 칼리티 감옥에서 풀려난 뒤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사상 최초로 인권 구성요소가 포함된 초등학교 교육과정이 승인됐다. 국제앰네스티 우크라이나 지부의 끊임없는 옹호 활동과 교육과정 수립 실무단 참여 덕분에 이처럼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베냉에서는 국제앰네스티의 결연한 노력 덕분에 사형수 14명이 감형되었다. 앰네스티는 교도소와 법무부, 국회의장 등의 관계자들을 방문해 사형을 감형할 것을 촉구했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탄원서명을 모았다. 이에 앞서 감비아에서도 사형집행 유예를 선포하는 긍정적인 진전을 보였다.

3월

3월에는 우크라이나에서 연대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열린 여성 인권 시위에서 위협과 폭력을 사용하는 반대 단체에 경찰이 영합했고, 일부 시위 참여자들이 “선동적인” 현수막을 들고 있었다는 이유로 공공집회에 관한 규칙을 위반했다며 시위 주최자 중 한 사람인 올레나 셰브첸코를 부당하게 고발했다. 3월 15일 올레나가 법원에 출석할 무렵, 소셜미디어를 통한 앰네스티 우크라이나 지부의 호소가 수천 명에게 전달되었고 해당 법정은 기자와 지지자, 외국 대사관 관계자들 등으로 가득 들어찼다. 법원은 올레나에게 혐의가 없다고 판결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4월

4월에는 미얀마에서 보기 드문 좋은 소식이 있었다. 새로 취임한 윈 민 대통령의 특별 사면으로 8천여명에 이르는 양심수들이 석방된 것이다. 그 중에는 앰네스티가 석방 캠페인을 벌였던 덤다우 나웅 랏, 랑자우 감 셍, 라파이 감 등 미얀마 소수민족 카친의 목사 세 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4월 초,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헌법재판소는 전시 강간피해자 및 민간인 피해자의 보상 요구가 기각됐을 경우 이들에게 소송비용을 청구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앰네스티는 트라이얼 인터내셔널(TRIAL International)과 함께 이러한 사건의 비용 청구 폐지를 위해 오랫동안 활동을 벌여 왔으며, 이러한 운동은 다른 생존자들 역시 정의와 보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힘을 북돋울 수 있었다.

5월

아일랜드에서 국민투표를 거쳐 헌법의 낙태 금지 조항을 폐지하게 된 놀라운 결과는 여성인권의 커다란 성과로 기록되었다.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수많은 활동가들이 수 년에 걸쳐 헌신적인 활동을 벌였던 덕분에 이룬 쾌거였다. 앰네스티는 2015년 발표한 보고서 <아일랜드: 그녀는 범죄자가 아니다 – 아일랜드 낙태금지법이 미치는 영향>에서 여성들의 개인적인 증언을 바탕으로 낙태와 관련된 장벽과 낙인을 기록했다. 2018년에는 해외 거주 국민까지 아일랜드로 돌아와 국민투표에 참여하며 의견을 표현하는 등 민중의 힘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주목하게 되었다.

아일랜드 국민투표 결과 찬성표 우세로 낙태금지법 개정이 통과됐다

이번 캠페인은 희망이자, 여성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이를 소중히 여기는 활동이었습니다. 이 캠페인 자체가 놀라운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카트리나 그래험 아일랜드 여성인권 캠페이너Catriona Graham

말레이시아에서는 총선에서 나지브 라자크 전 총리가 그의 정치적 스승인 마하티르 모하마드에게 패배하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온 이후 야당 지도자이자 양심수인 안와르 이브라힘이 석방되는 기쁜 소식이 있었다. 안와르 이브라힘의 석방은 말레이시아 인권의 기념비적인 순간이었으며 덕분에 앞으로의 개혁에 대한 희망이 현실로 다가오게 되었다.

5월 말, 부르키나파소 국회에서는 형법상 사형을 폐지하는 형법 개정안을 채택했다.

몰도바 교육부는 국제앰네스티 몰도바지부에서 마련한 인권교육과정을 초등학교 및 고등학교 정규 교육과정으로 채택했다. 이는 해당 지역에서 처음으로 거둔 성과였으며, 그보다 앞서 진행된 시범 계획에는 22개 학교에서 약 700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6월

시리아 문제에 관해 집중적으로 활동을 벌인 끝에, 미국 연합군은 마침내 민간인 사상자 발생 의혹과 관련해 이미 종결된 사건을 재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미국 연합군은 라카 지역에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앰네스티의 조사 결과를 부인하고 비난했으나, 조사 결과 새로운 증거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7월 말, 연합군은 6월 발표한 앰네스티 보고서에서 기록한 79개 사례 중 77개를 사실상 인정했으며, 라카 지역에서 발생한 민간인 사상자 수를 300% 높였다. 앰네스티는 이것이 여전히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보고, 새로운 암호 해독 프로젝트인 “Strike Tracker”를 발족했다. 또한 에어워즈(Airwars) 등의 단체와 협업해 연합군 공격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한 경위를 더욱 포괄적으로 파악할 예정이다. 분석 결과는 2019년 초 공개된다.

국제앰네스티는 미얀마의 로힝야를 상대로 자행되고 있는 반인도적 범죄의 책임에 관해 기념비적인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특정 군부대와 관계자 13인을 반인도적 범죄의 유력한 가해자로 지목했다. 보고서가 발표되기 2일 전 EU는 미얀마 보안군 관계자 7인에 대한 제재 조치를 발표했는데, 그 중 6인이 앰네스티가 선정한 유력 가해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7월

7월에는 중국의 아티스트 류샤가 근 8년간의 불법 가택연금 끝에 마침내 독일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류사는 지난 2010년 남편 류샤오보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이후 지금까지 자택에 감금되어 있었으며, 그 동안 공안요원의 집중적인 감시를 받으며 제한적인 상황 외에는 전화를 사용할 수 없었다. 올해 초, 국제앰네스티와 PEN은 류샤의 석방을 요구하며 유명 작가들이 그녀의 시를 발췌해 읽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류샤가 헬싱키 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17세 활동가 아헤드 타미미가 8개월간의 징역형을 21일 일찍 마치고 석방됐다. 아헤드는 중장비로 무장한 군인에게 위협을 가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점령 서안지구 오페르 군사법원에서 부당하게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모리타니아에서는 노예제에 반대하는 활동가 2명이 3년간의 형기 중 2년을 채우고 석방되었다. 압달라히 마탈라흐 세크와 모사 비람은 앰네스티에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여러분의 지지로 모리타니아의 정의를 위한 이 싸움에서 우리가 외롭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비람의 말이다. “모든 앰네스티 회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모리타니아 반노예제 활동가의 석방을 위해 멋진 활동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불의에 맞서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활동이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의 지지로 모리타니아의 정의를 위한 이 싸움에서 우리가 외롭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모사 비람Moussa Biram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는 스릅스카 공화국 국회가 전시 고문피해자 보호법을 채택했다. 마침내 내전 당시 자행된 강간 등의 성폭력 피해자를 인정하고 보상과 지원을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앰네스티는 전시 성폭력 생존자들의 사법제도 접근과 보상을 보장하는 이러한 법이 제정되기까지 지역 파트너 단체들과 협업해 오랫동안 캠페인을 벌여 왔다.

8월

캄보디아의 유명 토지권 및 인권활동가인 텝 바니가 수감 735일만에 마침내 석방되었다. 평화적인 시위만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그녀는 형기 만료를 불과 6개월 앞두고 수많은 인권활동가 및 시위대와 함께 국왕 특별사면을 받아 풀려나게 됐다. 텝 바니의 석방을 요구하는 캠페인에는 전세계 20만명 이상이 참여했다.

석방된 텝 바니

제가 석방되어 아이들, 부모님과 다시 만날 수 있게 캠페인에 참여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악수를 청합니다. 여러분은 제게 큰 위안이었고, 저를 외롭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다정함과 세계 각지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텝 바니Tep Vanny

9월

국제앰네스티가 온라인 액션 진행 소식을 알린 지 불과 며칠 만에 38만명이 액션에 참여했다. 중국 남서부에서 위구르, 카자흐 등 이슬람계 소수민족이 집단으로 구금된 사건에 항의하는 내용이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만난 한 카자흐인은 열세 살 딸이 석방된 것도 앰네스티의 캠페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아랍에미리트연합 국적의 위구르 남성 1명이 중국으로의 강제송환을 막기 위한 앰네스티 캠페인 끝에 석방되었다.

인도에서는 마침내 대법원 결정으로 동성 성인 사이의 합의된 성관계가 비범죄화되었다. 대법원은 또한 성적 지향성을 기반으로 한 모든 차별은 헌법에서 보장한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입장도 덧붙였다.

카타르의 만연한 노동착취 문제를 폭로하기 위한 앰네스티의 조사와 캠페인 활동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9월 카타르 정부는 이주노동자 대부분의 출국 허가 제도를 폐지했다고 밝혔다. 이전까지는 이주노동자들이 고용주의 허락 없이 카타르 밖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는 카타르가 국제노동기구(ILO)의 파트너로서 이행한 첫 번째 주요 개혁이었으며, 2022년 월드컵 경기장 현장을 비롯해 카타르 전역에 만연히 이루어지는 노동 착취를 폭로하기 위한 국제앰네스티의 수년 간의 조사와 캠페인 활동에 따른 결과였다.

유럽 의회는 전자동 무기체계, 일명 ‘살인로봇’을 국제적으로 금지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키며 앰네스티의 요청에 응답했다. 이 결의안은 자동무기체계의 개발과 확산 및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자동무기체계는 스스로 공격 대상을 선정하고 인간의 개입 없이 표적을 살해할 수 있다.

르완다의 야당 대표인 빅투아르 잉가비레와 가수 키지토 미히고가 카가메 대통령의 사면을 받고 감옥에서 풀려났다. 두 사람은 여전히 여러 제약을 받고 있지만, 앰네스티는 이들이 석방된 것만으로도 올바른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간 것이라고 인정한다. 빅투아르 잉가비레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 것과 관련해 유죄가 선고되었는데, 이는 그녀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또한 그녀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역시 침해당했다. 앰네스티는 지난 수년 간 잉가비레 사건을 두고 여러 차례 우려를 제기해 왔다.

빅투아르 잉가비레

10월

세계 사형폐지의 날을 맞아, 신임 말레이시아 정부는 사형을 전면 폐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금은 집권당이 된 전 야당 의원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수년에 걸쳐 사형폐지 옹호 활동을 벌여 온 덕분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워싱턴주에서도 사형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워싱턴주는 미국에서 20번째로 사형을 폐지한 주가 됐다.

베트남에서는 블로거 “버섯엄마”가 2년 반만에 감옥에서 석방됐다. 블로그 필명 ‘메 남(버섯엄마)’로 알려진 응우엔 응고크 누 쿠인은 2016년 10월 10일 체포되어 2017년 7월 20일까지 독방에 구금되었으며, 2017년 7월 29일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국제앰네스티의 니콜라스 베클린(Nicholas Bequelin) 동남아시아 지역국장은 성명을 통해 “이번 굿뉴스 덕분에 수감 2년만에야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됐다. 이 소식은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은 누구나 투옥시키고 있는 베트남의 악화되는 인권상황을 재차 조명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버섯엄마가 더 이상 감옥에 갇혀 있지 않다고는 해도, 그녀의 석방 조건은 망명이었으며 지금도 100명 이상이 공개적으로, 블로그에서, 또는 페이스북에서 평화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11월

수년 간 계속된 캠페인 끝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북 가우텡 고등법원은 남아공 정부가 선주민들의 합의 없이는 졸로베니에서의 티타늄 채광을 허가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는 졸로베니 선주민들에게 크나큰 성과였다. 이들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채굴하는 데 합의할 것인지 아닌지를 사전에 결정하고 상의할 권리를 얻기 위해 오랫동안 투쟁해 왔다.

“우리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지역에서 식량과 토지, 사랑 등 모든 것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권력자들은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알아냈고, 우리에게서 빼앗으려 했다.” 아마디바 선주민 인권활동가인 노늘레 음부타마는 이렇게 말했다. “동료들 중 몇 명은 이미 살해당했고, 나 역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두렵지 않다.”

스위스에서 국내법을 국제법보다 우선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은 최근 진행된 국민투표에서 스위스 국민들이 인권 옹호를 선택하며 결국 무산되었다.

스위스 국민은 기만적인 공약에 넘어가지 않고, 대신 투표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인권이 적용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분명한 신호를 전달했다.

쿠미 나이두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Kumi Naidoo

12월

앰네스티는 ‘충분하지 않은 영향력(Not Enough Impact Report)’을 발표하고, 지난해 이룩한 앰네스티의 성과와 이러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용감한 사람들의 도움을 기렸다. 무엇보다도 아직 남은 과제와, 지금도 불의에 맞서 끈질기게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기회였다.

또한 세계 최대 규모의 편지쓰기 캠페인 Write for Rights을 진행했다. 올해 앰네스티는 인권 활동으로 수감되고, 고문을 당하거나 살해당하기까지 했던 용감한 여성 인권 옹호자들을 주목했다. 이들이 외롭지 않으며, 전 세계 사람들이 그 용기에 힘을 얻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과 연대했고, 이들을 지지하는 편지 수천 통을 작성했다. 여러분의 지지와 캠페인 활동, 편지쓰기 활동에 감사하는 마음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덕분에 정말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목, 2018/12/27-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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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올해 지금까지 일어난 변화


Release

불공정하거나 부당하게 수감된 최소 100명의 사람들이 안전하게 풀려났습니다

엘살바도르 2018년 2월

엘살바도르의 낙태 전면 금지법에 따라 2008년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있었던 테오도라는 2018년 2월 15일 석방되었다.

2월, 우리 모두가 수 년 간 기다리던 소식을 들었습니다. 테오도라Teodora del Carmen Vasques가 30년형을 감면받아 마침내 석방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테오도라는 유산을 한 뒤 엘살바도르에서 불법인 낙태 혐의를 받아 철창 뒤에서 이미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후였습니다. 우리는 테오도라의 자유를 위해 2015년부터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멕시코2018

여러분과 같은 앰네스티 지지자들이 그의 석방에 근본적인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맥시코에서는 세르지오 산체스Sergio Sánchez가 조작된 증거와 불공평한 재판에 의한 살인 혐의로 8년을 감옥에서 보낸 뒤 풀려났습니다. 그의 변호인단은 ”여러분과 같은 앰네스티 지지자들이 그의 석방에 근본적인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고 밝혔습니다.

중국2017

중국에서는 구금된 인권변호사 왕 쿠안장Wang Quanzhang의 부인 리 옌주Li Wenzu가 1000일 넘게 연락이 불가능했던 남편을 찾기 위해 그녀를 돕는 사람들과 함께 베이징에서 동쪽으로 120km 떨어진 톈진으로 행진하던 중 위협을 받고 베이징으로 강제 호송되었습니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온 뒤 30명이 넘는 인원이 밖을 지키고 있어 이동의 자유를 제한받았지만, 그들이 떠난 후에는 그녀를 찾아온 방문객을 맞이할 수 있었고 더 이상의 괴롭힘은 없었습니다. 리Li는 앰네스티의 국제적인 지지에 감사를 느끼며, 덕분에 그녀와 그녀의 아들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2017년 11월

북한에서는 2017년 11월에 중국에서 북한으로 강제송환되어 수용소에 갈 것으로 예상되었던 구정화씨가 풀려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남한에 있는 구정화씨의 남편은 앰네스티를 포함한 국제적 압력이 가능성이 희박했던 그녀의 석방에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미얀마2018년 4월

또, 우리는 4월달에 미얀마에서 새로운 대통령 윈 마인트Win Myint의 사면으로 8,000명의 양심수가 석방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앰네스티는 미얀마 카친Kachin 지역의 목회자 덤다우 나응 랏Dumdaw Nawng Lat, 랑자우 감 셍Langjaw Gam Seng, 그리고 라파이 감Lahpai Gam의 석방을 위해 캠페인을 진행해 왔습니다.

에티오피아2018년 2월

같은 달, 에티오피아에서는 7년 만에 석방되었다가 다시 몇 주만에 체포되었던 국제앰네스티 양심수 에스킨더 네가Eskinder Nega를 포함한 활동가, 언론인, 블로거들이 풀려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기자인 에스킨더 네가는 정부를 비판하고 언론의 자유를 지지하는 기사를 썼다가 ‘테러’ 혐의를 뒤집어쓰고 징역 18년형을 선고 받았었습니다.

수단2018년 2월

2월, 수단에서는 물가 급등에 항의하는 반정부시위 도중 체포된 140명 중 80명이 국제앰네스티와 시민들의 강력한 캠페인으로 풀려났습니다. 이어 4월에는 야당 인사를 포함한 인권옹호자와 활동가 등 56명이 무혐의로 석방되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인 아메드 파리드 엘 타옙Amjed Farid El-Tayeb은 “여러분의 연대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시간과 노력, 활동은 우리의 자유를 회복해 주었고 구금 상황을 개선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라며 앰네스티에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터키2018년 3월

제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의 노력과 더불어 여러분들이 기여해주신 덕분에 제가 감옥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컴후리예트Cumhuriyet 신문사의 기자 아흐멧 식Ahmet Şık

3월, 터키에서는 컴후리예트Cumhuriyet 신문사의 구금된 세 명의 직원들 중 무라트 사분쿠Murat Sabuncu편집장과 기자 아흐멧 식Ahmet Şık이 각각 494일, 435일만에 풀려났습니다. 앰네스티의 ‘터키 미디어 해방(Our Free Turkey Media campaign)’ 캠페인은 2016년의 실패로 끝난 쿠데타 이후 부당하게 수감된 다른 많은 미디어 종사자와 언론인의 석방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아흐멧 은 앰네스티에 “제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의 노력과 더불어 여러분들이 기여해주신 덕분에 제가 감옥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라며 메세지를 전해왔습니다. 그리고 무라트 사분쿠는 “제 가족과 변호사들을 통해서 국제앰네스티가 어떻게 국제사회에 목소리를 높였는지 보았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터키와 전 세계의 언론인들의 자유를 원합니다. 연대는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길입니다. 저희와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인사를 전합니다.” 고 덧붙였습니다.

카자흐스탄2018년 4월

4월 28일, 인권옹호자 탈갓 아얀Talgat Ayan이 카자흐스탄 북서쪽 아타이라우Atyrau에 있는 유형지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는 밤새 기차를 타고 그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를 기다리는 가족들, 친구들, 그리고 인권옹호자들은 “집으로 돌아온걸 환영해요!” “탈갓 은 우리의 영웅이예요!” 라며 그를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필리핀2018년 3월

필리핀 지부는 제림의 가족들과 함께 제림을 접견했다. 전 세계에서 온 연대 편지와 선물을 전달한 모습. 잘 찾아보면 한국지부 인권친화학교 어린이들이 보낸 엽서 뭉치를 발견하실 수 있어요!

버스기사 제리메 코레Jerryme Corre가 2012년 필리핀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당한 뒤, 마침내 3월에 석방되었습니다. 제리메의 사례는 앰네스티의 2014년 Write for Rights캠페인과 고문중단 캠페인의 일환이었습니다. 제리메를 고문한 경찰 한 명은 2018년 3월 유죄를 선고 받았지만 다른 사람은 아직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기니2018년

적도 기니에서는 만화가이자 활동가인 라몬 이발레Ramón Esono Ebalé가 5개월이 넘는 재판 끝에 석방되었습니다.

이란2018년

이란에서 양심수 모하메드 나자리Mohammad Nazari가 UN 특별조사위원의 주목을 받은 뒤 감옥에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수감자들이 처벌로써 의료 조치를 받지 못했던 것을 바꾸기 위한 앰네스티의 꾸준한 노력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중국2018년 1월

1월 중국에서는 우리의 캠페인의 결과로 세 명의 인권옹호자가 석방되었습니다. 작가 리 슈옌Li Xuewen과 쟝 후이동Zhan Huidong은 류 샤오보Liu Xiaobo의 추모식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구금되었고,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인권변호사 왕 유Wang Yu의 18살 아들 바오 쥬오슈안Bao Zhuoxuan은 2015년 7월부터 중국을 떠나려는 여러 번의 시도 끝에 호주에 안전하게 도착했습니다.

티벳2017년 12월

작년 12월 말, 티벳의 영화 제작자이자 전 양심수인 돈덥 왕첸Dhondup Wangchen이 미국에 있는 그의 가족과 다시 만났습니다. 그가 티벳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죄로 중국에 구금된 지 10년만이었습니다.


Governments

정부가 자신들의 행동에 책임을 지게 만들었습니다

아일랜드2018년 5월

2015년 9월 26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낙태금지법 개정을 요구하며 사람들이 모여 행진했다. ⓒAmnesty international

안전하게 낙태를 받을 권리에 대한 오랜 캠페인의 결실을 맺고 있는 국제앰네스티 아일랜드 지부에 축하를 전합니다.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상의 낙태 금지를 뒤집는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냈고 이는 여성들의 큰 승리로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은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이며, 이 과정에서 국제앰네스티 아일랜드 지부가 한 중대한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총 투표 인구 중 66.4%인 1,429,891명이 낙태법 폐지에 찬성했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몇몇 문제들에 대해 전통적으로 매우 보수적이었던 사회도 진보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습니다.

에티오피아2018년 4월

4월, 에티오피아의 새로운 총리 아비 아흐메드Abiy Ahmed는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사건과 구금조치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호주2018년 4월

같은 4월, 호주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에 참여하여 자칭 ‘이슬람국가(IS)’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민간인을 살해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사할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이는 앰네스티가 해온 활동에 대한 작지만 큰 한 걸음입니다.

이라크2018년

앰네스티는 이라크에서 IS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여성과 어린이에게 행해지는 연좌제에 대한 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이는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고, 이라크 당국이 해당 사건들을 조사하기 위해 정보 수집을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멕시코2018년

멕시코에서는 연방법원은 당국에 강제실종된 희생자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내용의 헌법 보호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는 멕시코의 사법 체계 안에서 드문 일이며, 앰네스티가 2017년 보고서를 통해 제기한 권고사항이 수용된 사례입니다.

스페인2018년 3월

3월, 스페인 트위터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앰네스티의 ‘감히 트윗할 수 있다면 해보세요’가 유행했습니다. 스페인에서 “테러리즘을 찬양”한다며 표현의 자유와 예술적 표현을 억압했기 때문입니다. 이 메시지는 스페인을 넘어 국제적으로 큰 관심을 받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용감하게 트윗’을 했습니다. 3일 후, 스페인 정당연합은 앰네스티의 브리핑을 길게 인용하여 해당 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제의를 상정했습니다.

나이지리아2018년 2월

2월, 나이지리아 공군이 집단폭력 발생을 “경고”하는 의미에서 마을에 무장 전투기를 파견한 것을 앰네스티가 찾아낸 것에 대해 법무부와 공군이 조사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차드2018년 4월

차드 운동가인 마하딘 바부리가 감옥에서 석방된 후 앰네스티 회원들로부터 연대 편지를 들고 있다.받은 것을 보여준다.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감사하고,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마하마트 바부리Tadjadine Mahamat Babouri

차드에서는 또 다른 Write for Rights 캠페인 사례 중 희망적인 뉴스가 들려왔습니다. 차드 법무부가 마하딘Mahadine을 은자메나Ndjamena 감옥으로 이송하고 사건을 더 신속하게 처리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마하딘은 2016년 9월 30일부터 구금되었다가 4월 석방되었습니다.

필리핀2018년 2월

2월 8일, 국제사법재판소는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초기 조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앰네스티는 이 사건의 정의와 책임을 요구하기 위해 조사, 캠페인, 검찰의 수사 착수를 촉구하는 로비 등을 진행해 왔습니다. 이런 진전은 필리핀 정부가 주도한 군사작전에서 희생당한 가난하고 차별받는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러시아2018년 1월

앰네스티가 2017년 10월에 발표한 러시아의 비인도적인 수감자 이송에 대한 보고서는 대중의 우려와 당국의 개혁 의지를 이끌어 내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올해 초, 러시아 교도소 시스템은 휠체어가 필요한 수감자들을 앰네스티가 비판한 “특별한” 객차을 이용해 이송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이것은 수감자 인권 개선을 위한 중요한 한 걸음입니다.

우크라이나2018년

우크라이나에서는 처음으로 인권 관련 요소가 포함된 새로운 초등 교육과정을 승인했다는 좋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것은 앰네스티 우크라이나 지부의 교육과정 개발에 대한 꾸준한 지지와 참여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몰도바2018년

몰도바 교육부는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 앰네스티 몰도바지부가 개발한 인권 교육 커리큘럼을 채택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최초인 몰도바의 인권교육은 이번 학기부터 시범적으로 운영, 22개 학교의 700명이 넘는 학생들이 교육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2018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예멘 공격으로 발생하는 인권침해에 대한 우려 때문에 앰네스티와 다른 NGO들은 사우디로의 무기 수출을 중단하라는 캠페인을 벌여왔습니다. 그 성과로 노르웨이는 지난 1월 3일 예멘 분쟁에 사용될 것을 우려하여 아랍에미리트에 무기 공급을 중단했습니다. 독일도 같은 달 19일에 이 분쟁에 관여하는 모든 국가에 대한 무기 공급을 “즉각”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말레이시아2018년

말레이시아의 현직 대통령 나지브 라자크Najib Razak의 정치적 스승인 마하티르 모하메드Mahathir Mohamad의 예상치 못한 선거 승리로 인해 말레이시아의 야당 지도자이자 양심수인 앤워 이브라힘Anwar Ibrahim이 석방되었다는 좋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의 석방은 말레이시아 인권의 획기적인 순간이자 이제부터 일어날 더 많은 개선의 신호탄입니다.

우크라이나2018년

우크라이나에서 열린 앰네스티 주도의 LGBTI 행사를 놓고 살인 협박을 포함한 강제적 방해에 대해 앰네스티 우크라이나지부는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우익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며칠 후 다시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다행히 해당 행사는 보호 속에 이루어졌고 50명이 넘는 참가자들의 성공적인 토론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Corporates

기업들도 자신들의 행동에 책임을 지게 만들었습니다

쉘(Shel)l / 애니(Eni)2018년

우리는 “석유 유출 해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 결과로 <나이지리아 니제르 델타Niger Delta 지역에서 일어난 과실>을 발표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전세계 142개국의 3,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석유 유출과 관련이 있는 석유회사 쉘Shell 과 에니Eni가 발표한 데이터 분석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획기적인 프로젝트는 석유 유출의 심각한 증거를 드러내어 나이지리아를 포함한 다른 국가들의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쉘과 에니는 사건에 대한 연루된 것을 부정했습니다.

르노(Renault)2018년

코발트 채굴 산업에서 아동 노동 착취와 학대를 뿌리뽑기 위한 앰네스티의 노력이 프랑스 자동차 기업, 르노가 공급 받고 있는 코발트 광산 명단을 공개하도록 이끌어냈습니다. 이는 앰네스티 보고서 <재충전할 시간 Time to recharge>에 의한 성과로, 보고서에 언급된 전기차 회사 중 최악의 아동 노동착취 및 학대에 연루된 르노를 대상으로 캠페인을 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르노의 새로운 노력은 인상적이며 환영할만한 변화입니다.

다임러(Daimler)2018년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 회사들과 첨단기업들에 코발트를 공급하는 광산은 콩고민주공화국에 위치해 있습니다. CNN은 이 광산에서 일하는 아동과 성인이 얼마나 위험한 환경에 놓여있는지에 대해 취재했습니다. CNN의 조사는 2016년 발표된 앰네스티의 보고서를 조명한 것으로, 이 보도에 대한 반향으로 메르세데스 벤츠를 소유하고있는 다임러Daimler가 코발트 공급망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Death penalty

사형제 폐지를 위한 더 많은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베닌2018년 2월

지난 2월 사형제와 관련된 좋은 소식이 아프리카에서 있었습니다. 베닌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14명의 사형수들이 우리의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로 감형된 것입니다. 이것은 감비아에서 사형집행을 멈추겠다는 발표와 함께 기니에서 모든 범죄에 대한 사형이 폐지되는 등의 긍정적인 발전에 연이은 성과였습니다.

이란2018년

Write for Rights의 사례 중 한 명이었던 사만 나심Saman Naseem이 사형의 위기에서 벗어났으며 추후 풀려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란2018년

사형을 선고받을 당시 18세 미만이었던 아볼파즐 사라히Abolfazl Chezani Sharahi의 사형집행을 연기하기 위한 국제적인 압박을 가하는 데 큰 역할을 해냈습니다. 이란은 마약 관련 혐의로 수천 명을 처형해 왔습니다. 이란은 마약 관련 범죄에 대한 사형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마약금지법 개정안을 마련했습니다. 개정 이후, 이란 정부는 일시적으로 사형집행을 중지하고 개정된 법에 따라 15,000명의 사형수가 새로 감형 심사를 받을 것을 예고했습니다. 만약 이 법이 잘 정착된다면, 사형집행의 큰 감소에 기여할 것입니다.

부르키나파소2018년 5월

5월 말, 부르키나파소의 입법부는 사형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새로운 형법을 채택했습니다.

월, 2018/12/1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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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활동가들이 젊은 세대에게 보내는 메시지

1948년 12월 10일 유엔 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UDHR)이 채택됐다. 세계인권선언은 인종과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성 또는 신체적, 정신적 장애만을 이유로 170만명이 학살당했던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되풀이하지 않고자 마련되었으며, 국적과 성별, 피부색 또는 종교와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인권을 인류 역사 최초로 제시한 문서다.

총 30개 조항으로 구성된 세계인권선언에는 고문 받지 않을 권리, 표현의 자유, 교육 받을 권리, 비호를 신청할 권리 등을 비롯해 생명권, 자유권, 사생활권, 사회보장권, 건강권,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와 같은 시민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

세계인권선언은 오늘날까지 모든 인권 기준의 근간이 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인권 문서이기도 하다.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역사적인 순간으로부터 70년째를 맞는 올해, 국제앰네스티는 1948년 전후 태어난 활동가 4인을 만났다. 이들에게 세계인권선언이란 무엇인지, 오늘날에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물었다.

아르헨티나의 도라 바란코스(Dora Barrancos, 78)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권운동, 특히 여성인권운동에 참여해왔다. 지칠 줄 모르는 도라는 앞으로도 인권을 위한 싸움을 계속해나갈 생각이다.

“항상 인권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했던 것은 아니지만,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권활동가로 살아왔어요. 특히 1980년대에 페미니스트가 되면서부터 더욱 적극적으로 인권을 위한 실천적인 활동에 나서기 시작했죠.”

도라는 시민적, 정치적 권리와 젠더 정체성에 대한 권리 등 새로운 영역까지 인권의 범위를 확장하기 위한 새로운 플랫폼을 마련하는 것까지, 세계인권선언이 그 기초를 다지는 역할을 해왔다고 믿는다.

우리 세대에게 세계인권선언은 평등과 정의를 요구하는 활동의 원동력이 되어줬어요. 이 모든 난관에 맞서기 위한 신념과 힘, 저항과 위대한 용기를 가지라고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케냐의 기투 와 카헨게리(Gitu wa Kahengeri)는 세계인권선언이 탄생하던 순간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이제 93세가 된 기투는 영국 식민지배 하에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끔찍한 인권침해를 직접 목격했다.

기투는 17세에 일을 그만두고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수용소를 전전하고, 고문과 노역을 견디면서도 그는 독립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이후, 선언에 명시된 권리에 따라 자주권과 존엄, 자유를 요구하던 케냐인들의 모습을 기투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케냐는 마침내 1963년 영국의 지배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 기투는 희생 없이는 아무런 진전도 이룰 수 없음을 강조했다.

젊은 세대들이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독립 국가를 이룩할 수 있으려면,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싸워야만 해요. 가치 있는 행동은 결코 쉽게 해낼 수 없죠.


헬렌 토마스(Helen Thomas)는 세계인권선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았다. 영국인으로서 오랜 시간을 인권활동에 헌신한 그는 1960년대 후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분리 정책, 그리고 인도 마하라시트라의 가뭄으로 수많은 사람의 인권이 부정당했던 처참한 현실을 직접 목격했다.

운명의 장난인지, 헬렌이 태어난 것은 세계인권선언 최종본이 채택되던 바로 그 날 밤이었다. 지금 헬렌에게 세계인권선언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근간이지만, 처음부터 세계인권선언을 잘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오히려 전혀 모르는 쪽에 가까웠다. 헬렌은 세계인권선언에 담긴 이야기와 그 기원, 중요성이 더욱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십 년이 지나고서야 저는 제가 태어나던 그날 밤, 얼마나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어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지만, 우리들은 학교에서 세계인권선언의 존재조차 배우지 않았어요.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자유를 보호할 수 있겠어요?”

헬렌은 또한 장기적인 인권 보호를 위해서는 세계인권선언에 대한 교육의 확대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인권 보호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인권에 대해 알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계인권선언이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 내가 가진 인권이 무엇인지 모든 아이들에게 교육해야 합니다.


사회정의 활동가 집안에서 태어난 캐나다의 윌 브라이언트(Will Bryant)에게 국제앰네스티는 언제나 내 집 같은 곳이다.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되던 날 윌은 이제 태어난 지 10주가 막 지난 아기였다.

“저는 불의라면 정말 질색이에요! 국제앰네스티에는 1973년 가입했는데, 캐나다지부가 창립된 지 불과 수개월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세계인권선언의 초안을 작성했던 존 험프리(John Humphrey)가 초대 사무국장을 맡았죠. 개인이 정부에 직접 의견을 전하고, 정의와 변화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점에 큰 자극을 받았어요.”

“살아 있는 동안에 어디서나 인권이 존중받는 세상을 보고 싶어요. 북아일랜드에 평화가 찾아오고, 칠레에서 인권에 대한 존중이 회복되는 모습을 목격했었는데, 이제는 중국이나 미얀마 같은 곳에서도 인권이 존중받고, 미국의 인권 퇴보가 끝나는 날을 보고 싶어요. 난민이 더 환영받는 세상을 보고 싶어요.”

젊은 세대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끊임없이 참여하고, 헌신하고, 앞으로 나서기를 멈추지 말고,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거예요. 현재이자 미래인 여러분이 정의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면 누가 싸울 수 있겠어요?


앰네스티 인권아카데미에서 인권에 대해 알아보세요.

인권 알아보기

수, 2018/12/1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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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인 자말 카슈끄지(Jamal Khashoggi)가 피살된 사건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에 다시 한 번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자말 카슈끄지가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 안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한”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오래전부터 인권 침해가 계속 있었으며, 카슈끄지 피살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끔찍한 인권 기록을 가중시키는 최신의 사건일 뿐이다.

1. 예멘의 처참한 내전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연합군은 3년 6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예멘 내전에 상당한 지원을 해왔다. 이 내전으로 예멘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병원, 학교, 주택에 폭격이 가해지면서 어린이를 포함해 민간인 수천 명이 숨졌다. 국제앰네스티는 전쟁범죄를 비롯해 국제인도법 위반 행위가 상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국가들은 계속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무기를 거래하며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

2. 평화적 활동가, 기자, 학자들에 대한 가차 없는 탄압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집권한 이후, 비판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했던 활동가 다수가 평화적으로 표현과 결사, 집회의 자유를 행사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되거나 장기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작은 규모로도 강경하게 항의하는 인권옹호자 집단을 표적으로 삼아, 반테러법 및 반사이버범죄법을 이용해 인권침해 사실을 알리고 이를 해결하려는 이들의 평화적 활동을 억압하고 있다.

3. 여성인권옹호자 체포

사우디 정부의 인권단체와 활동가에 대한 탄압이 계속되는 가운데 올해 초 다수의 주요 여성인권옹호자들이 체포되었다. 루자인 알 하스룰, 이만 알 나프잔, 아지자 알 유세프는 어떠한 혐의도 없이 지난 5월부터 지금까지 자의적으로 구금되어 있다. 세 사람이 체포된 이후, 정부는 이들을 “반역자”라고 비방하며 명예를 훼손하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반테러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장기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위험에 처해 있다.

4. 사형집행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에서 사형을 가장 많이 집행하는 국가로 꾸준히 손꼽히고 있다. 매년 수십 명에게 사형이 집행되며, 그중 다수는 공개 교수형이라는 참혹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사형은 생명권을 침해하는 잔인하고, 비인도적이며 굴욕적인 처벌이다. 또한, 사형이 효과적으로 범죄를 억제한다는 증거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심각한 불공정재판에 따라 피고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하기를 계속하고 있다. 올해들어 지금까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형된 사람은 108명으로, 이 중 절반 이상이 마약 관련 범죄로 유죄가 선고됐다.

5. 잔인하고,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처벌

사우디아라비아 법원은 보통 불공정한 재판을 거쳐, 다수의 범죄에 대해 채찍질형과 같은 처벌을 부과하고 있다. 라이프 바다위는 블로그 글을 작성했다는 이유만으로 채찍질형 1,000번과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신체 절단형은 어떠한 경우에도 예외 없이 고문에 해당하지만, 일부 범죄에 대해 신체절단형이 이루어지고 있다.

6. 구금 중 상습적인 고문

이전 구금자, 재판 피고인 등은 보안군의 고문 및 부당대우가 여전히 일반적으로 만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책임자들이 처벌을 받는 일도 없다고 국제앰네스티에 증언했다.

7. 여성에 대한 제도적 차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은 여전히 뿌리 깊은 차별에 시달리고 있으며, 결혼과 이혼, 양육권, 상속 등 삶의 여러 측면과 관련해 법적으로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다. 후견인 제도에 따라, 여성은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없으며, 그 대신 남성 친인척이 여성을 대신해 모든 것을 결정한다.

8. 뿌리 깊은 종교 차별

사우디아라비아의 소수 종교분파인 시아파에 속한 사람들은 여전히 뿌리 깊은 차별을 당하고 있으며, 공공 서비스 이용과 고용 기회에 제한을 받는다. 2011년과 2012년에는 시아파 활동가 수십 명이 반정부시위에 참여했다는 혐의를 받고 사형 또는 장기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9. ‘사우디에서 있었던 일은 사우디에 묻어두어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평화적 활동가와 피해자 가족들이 국제앰네스티와 같은 독립적 인권단체, 또는 외국 외교관, 기자와 접촉한 경우 사법적 조치를 비롯해 처벌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0. 자말 카슈끄지 피살

자말 카슈끄지가 살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짐에 따라, 국제앰네스티는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카슈끄지의 비사법적 처형과 고문, 범죄 및 폭력이 가해졌을 가능성을 둘러싼 정황에 대해 유엔이 독립적으로 조사할 것을 촉구했다.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사무총장에게 독립적인 수사를 요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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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8/10/23-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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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팡(Arnold Fang)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

동아시아의 인기 휴양지인 아름다운 섬 제주도에 가을이 찾아왔다. 갓 수확된 제주 특산물 감귤이 시장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 시기와 맞물려, 올해 초 제주도에 들어왔던 예멘인 수백 명에 대한 난민 지위 신청 결과 역시 나오고 있다.

예멘인 550명이 올해 모국인 예멘의 처참한 내전을 피해 제주도에 도착했다. 본래 관광객 유치가 목적이었던 제주의 무비자 입국 제도를 이용해 들어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저 안전한 피난처를 찾으러 온 이들은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가 예상보다 훨씬 힘겨운 일임을 체감하고 있다.

부정적인 여론

제주도 사회는 넘쳐나는 외국인 관광객들에 익숙해져 있고, 이미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 온 난민 신청자들도 있다. 하지만 단기간에 수백 명의 예멘인이 들어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국에 온 예멘인들의 강렬한 사연은 호기심 많은 한국 언론의 취재 의욕을 자극했다.

알부카티(Albukhati) 역시 그런 사연을 지닌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가족들의 압박으로 강제 결혼에 내몰려야 했던 예멘 여성들이 유럽과 미국에 정착하도록 지원하는 단체를 공동 설립했다. 가족들의 주선으로 이루어지는 결혼은 예멘에서 매우 수익성이 좋은 사업으로, 특히 중개인들이 이 사업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 이러한 활동으로 권력자들에게도 밉보이게 된 알부카티는 결국 예멘 밖으로 망명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알부카티는 말레이시아에서 3년을 보낸 후 2018년 5월 제주도에 들어왔다.

알부카티와 마찬가지로 많은 예멘인이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한국인들의 난민에 대한 공포를 더욱 부추기는 데만 이용됐다.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인들 중에는 상대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도 있고, 내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좋은 직업군에 종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이전까지 난민과 접한 경험이 거의 없는 일부 한국인들은 이들의 고통을 선뜻 이해하지 못하고 “가짜” 난민이라고 간주하기도 한다.

“난민을 환영하지 않는 것에 대해 한국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들은 예멘인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지 않은가. 우리는 생김새도, 종교도 다르다. 중국인들과는 달리 아주 머나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 아닌가.” 알부카티가 말했다.

언론의 왜곡 보도로 한국에서는 난민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됐고, 이는 예멘인들의 난민 지위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정부 청원에 70만 명이 서명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 일부는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며 외국인 혐오 정서를 표출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예멘을 떠나야 했던 알부카티는 2018년 5월 제주도에 들어왔다.

섬에 갇히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대중의 요구에 응답했다. 지난 6월, 정부는 제주도 무비자 입국 가능 국가에서 예멘을 제외하고, 제주도에 난민 지위를 신청한 사람들이 한국 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도 금지했다. 이는 유엔난민협약을 위반하는 조치였다.

가명을 요구한 캄란은 “예멘인은 제주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결정에 깜짝 놀랐다. 이곳의 물가는 상당히 비싸다. 관광지이기 때문에 일자리도 많지 않다”고 말했다.

제주 현지인들이 모두 난민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아니지만, 예멘인들은 제주에 갇혀 있다는 사실로 인해 더욱 눈에 띄는 집단이 됐다. 사실 제주 현지인들의 태도는 오히려 적대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예멘 난민 신청자 다수가 소지금이 전혀 없는 상태로 노숙을 시작하자, 지역의 시민사회와 종교단체, 외국인 강사들이 모여 제주 난민 인권을 위한 연합을 결성하고 난민들에게 식량과 보금자리, 한국어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예멘인들이 재정적으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나날이 어려워지면서, 한국 정부는 법적 예외조항을 마련해 난민 신청자가 6개월간 체류하지 않아도 구직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이들은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게 됐지만, 이는 어업 계열과 같이 한국인들이 꺼리는 일자리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예멘 북부에서 산간 지역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인 만큼, 예멘인들에게 어업은 생경한 개념이었다. 캄란은 “다들 고기 잡는 법을 모른다. 어업에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다.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일이 맞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일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인기 있는 관광 명소다

인정받지 못한 난민 지위

올해 난민 지위를 신청한 예멘인 481명 중 362명은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았다. 80명은 아직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한편, 30명 이상은 난민 신청이 거절됐다.

“인도적 체류” 허가가 있으면 예멘인들은 제주 이외에도 한국 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지만, 여전히 이들은 한국 정부로부터 난민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며, 한국이 당사국인 1951년 난민협약에 명시된 난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은 것도 아니다.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예멘인들은 여러 가지 새로운 문제를 겪게 된다.
먼저, “인도적 체류” 허가만으로는 가족을 한국에 데려올 수 없다. 제주도에 있는 예멘 난민 중 대다수가 남성인데, 결국 이들의 아내와 아이들은 예멘에 남아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남편, 아버지와 만나지 못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 허가만으로는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학위과정을 마치지 못한 예멘인들은 앞으로도 학위를 획득할 수 없게 된다. 한국에서는 물론 앞으로 예멘에 돌아가서도 장래 직업 전망에 큰 걸림돌이 되는 문제다.
마지막으로, “인도적 체류” 허가는 예멘 내전이 끝날 때까지 매년 갱신해야 한다. 전쟁이 끝나면 체류 허가를 갱신할 수 없으며, 예멘인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언제 한국을 떠나야 할 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예멘인 수백 명은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캄란은 “지금 예멘에 안전한 지역은 없다. 전쟁이 끝난다고 해서, 돌아가도 안전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전쟁이 끝나도 여전히 살인과 암살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역사를 통해 얻는 교훈

예멘인들에게 제주도는 자유와 희망의 섬이었다. 한국 사회의 일부 집단은 여전히 편견을 갖고 있지만, 제주도 주민은 대부분 예멘인들을 친구로 받아들였다.

“어떤 한국인들은 우리를 반대하는 청원에 서명했지만, 그때는 우리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랬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와 직접 만나고 소통하면서, 한국인들은 우리가 본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다르다는 걸 깨닫고 있다. 우리를 끌어안고 청원에 서명한 것을 사과하는 사람도 있다.” 알부카티는 이렇게 말했다.
한반도 역시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빼앗기고 가족들이 헤어져야 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한국인이 세계 곳곳으로 피난을 떠났다. 캄란은 “제주도의 노년 세대가 젊은 세대보다 우리의 상황을 훨씬 잘 이해해주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지역사회와의 잦은 소통과 더 큰 이해가 예멘인들이 한국 사회에 통합될 수 있는 열쇠라고 믿는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무장 분쟁은 여전히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있지만, 한국을 비롯한 세계인들은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고, 가장 도움이 절실한 시기에 자국민이 받았던 보호와 지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월, 2018/11/1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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