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을 찾는 시민들에게 역사도시 서울 , 한양도성의 역사와 가치를 해설하는 시민자원활동가, 서울KYC 도성길라잡이 9기가 기본교육을 무사히 마치고 1월07일 발대식을 마쳤습니다.
도성길라잡이 9기 기본교육은 2016년 11월02일 부터 6주간 실내강의14강과 현장교육 5강으로 하여, 한양도성과 서울을 이해하기 위한 강의로 구성되었고, 특히 처음으로 안전교육도 진행하였습니다. 도성길라잡이로서 기본교육을 마친 우리 9기 선생님 17명은, 앞으로 7개월간 선배안내듣기, 매뉴얼쓰기, 시연, 시민안내라는 수습활동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고, 앞으로 함께 할 시간을 상상해보는 발대식! 새로운 출발을 서로 다짐하는 시간, 발대식을 사진으로 한번 보실까요?
발대식을 기다리며 올해의 다짐과 당부의 마음도 담아보았습니다. -지치지 마시고 수료까지 쭉 함께 해요. 어려움이 닥치면 선배들과 함께 해결해 봐요 -아름다운 많은 길이 있지만 그중 가장 아름다운 도성길을 계속해서 함께 걷는 2017년이 되어요 -참여시민이 즐겁고 우리가 행복한 2017년 도성길라잡이가 되어요
본격적인 발대식 시작. 8기 이연정 선생님의 사회로, 2017년을 함께 할 각 구간의 운영진 선생님들의 소개와 지치지 않고 오래 활동할 수 있는 도성길라잡이가 되길 바란다는 오경봉 공동대표님의 말씀. 그리고 지나온 시간들을 되짚어보는 경과보고도 듣고 영상도 보았습니다.
9기 선생님들은 소감나누기를 통해 기본교육 과정의 어려움을 이야기 하기도 하였습니다. 부장님께 저녁 먹고 오겠다고 컴퓨터 그냥 그대로 켜놓고 나왔다가 수업듣고 다시 사무실로 가서 야근을 하기도 하고, 전날 지방출장갔다가 새벽에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2시간자고 현장교육에 참가했던 때도 있었고, 토요일마다 있었던 현장교육은 청와대를 막고 있는 경찰버스와 교통통제로 창의문, 숭례문까지 오는 길이 녹록치 않았다는 우리 선생님들의 6주간 시간들.. 쉽지 않은 과정이었기에 그 과정을 무사히 마친 스스로들이 자랑스런 그런 날이었습니다.
수습활동에 대한 설명을 할때는 당사자인 9기 선생님도 진지하지만, 함께 수습활동을 만들어 줄 기존 도성길라잡이 선생님들도 진지합니다. 앞으로 펼쳐질 7개월간의 수습활동은 한양도성을 찾는 시민들에게 한양도성의 역사와 가치를 알리는 도성길리잡이로 숙성되는 시간들입니다.
발대식은 또하나의 출발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만들어가다보면 더욱 풍성해지는 활동이 도성길라잡이입니다. 참여하고 나누는 활동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는 도성길라잡이9기가 되길 바랍니다.
도성길라잡이 9기라는 새식구를 맞이한 도성길라잡이 ! 한양도성을 통해 살기좋은 도시 서울을 상상하고 꿈꾸는 도성길라잡이 ! 2017년 도성길라잡이의 해가 될 정도로 왕성한 활동 기대합니다.
어느덧 5회를 맞이하는 한양도성 걷기여행은 신한금융그룹 봉사단 50명과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는 친구들 50명이 1:1 멘토와 멘티가 되어 한양도성을 걸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를 응원하는 시간입니다.
올해는 늘푸른 방과후교실, 신상도지역아동센터 그리고 좋은친구지역아동센터 친구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함께 해주셨던 자원활동 선생님들과 사전모임을 통해 동선도 확인하고, 역할도 서로 나누고, 매뉴얼도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행사 당일에는 미리 모여서 다시 한번 교구와 각종 물품을 확인하며 각자의 동선을 점검하며 한양도성걷기여행 출발을 준비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나눠줄 교구와 간식꾸러미를 정리하고 나니, 신한금융 봉사자들이 도착을 하였고, 봉사자를 대상으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였습니다.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이해부터 해서, 아이들에게 [꿈, 희망, 넒은 세상]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많이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몇가지 안전사고에 대한 주의사항까지 당부의 말씀을 하고 나니 아이들이 도착하였습니다. 1:1 멘토와 멘티를 맺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나이와 성별을 고려해서 멘토와 멘티를 맺어주려고 하지만, 생각만큼 의도한 대로 잘 이루어 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사전 신청을 받아서 성인과 아동의 수를 1:1 이 되도록 맞추지만, 행사 당일에는 항상 못오는 친구들이 생기다보니, 아이들이 원하는 멘토를 맺어주는 것이 늘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최대한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순발력있게 멘토와 멘티를 맺어줍니다.
처음 만나 사이, 아무리 성인과 아동이더라도, 서로의 이름을 묻고 나면 사실 그 다음 말이 생각 안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때는 몸으로 친해질 수 있는 놀이를 시작합니다.
먼저 몸으로 인사하기 놀이를 합니다. 진행자의 지시대로 서로의 신체를 이용해서 하는 인사입니다. 서로 손도 잡아야 하고, 이마도 맞대야 하고, 발도 마주치면서 서로의 벽 하나를 허물어 갑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멘토와 멘티가 한몸이 되어 발로 하는 묵찌빠 놀이를 하면서 기차놀이도 했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도록, 문열기 놀이도 했습니다. 물론 만난 곳이 흥인지문, 즉 동대문이다보니, 한양도성도 설명하고 성문도 설명하면서 동동동대문을 열어라, 남남남대문을 열어라 ~ 노래에 맞춰 짝꿍과 함께 성문을 통과 하는 놀입니다. 문지기에게 잡히면 다시 문이 되어서 점점 더 큰 문을 만드는 놀이였습니다. 큰 문이 어느순간 하나의 큰 원이 되면 이 놀이는 끝이 납니다. 모두들 백미터 달리기 하듯 전속력으로 성문을 통과하는 사이, 느슨하게 잡았던 손을 더욱 꽉 잡게 되고, 어색했던 사이가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하면서 큰 원이 만들어졌고, 마지막으로 오늘 하루 즐겁게 지내자는 약속을 하고, 본격적인 한양도성 탐방에 들어갔습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아침식사를 거르고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인이든 아동이든 말이죠. 그래서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는 간식을 준비하게 되고, 간식으로는 과일과 견과류 그리고 초코바 정도를 준비합니다. 간식을 먹으며 한양도성에 누가 살았었는지를 알아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도성길라잡이 선생님들의 설명을 들으며 캐릭터 스티커를 옛지도에 붙여보기도 하고, 빈칸이 있는 옛지도를 채워보기도 합니다. 일명 한양도성 도전 골든벨입니다. 외부활동과 고학년의 학습력을 필요하다보니, 참가대상을 초등 3학년이상으로 제한을 두고 있지만, 대부분의 지역아동센터를 형제,자매가 함께 다니다 보니,저학년 친구들도 함께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양도성에 대한 맛을 보았으니 이제 본격적인 한양도성 탐방을 시작해야겠죠?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에 하나인, 낙산구간을 걸었습니다. 이화마을을 지나, 낙산 성곽길을 걸었습니다. 이화마을 꽃그림은 아쉽게 사라졌고, 물고기 계단만 남아 있어서 그쪽으로 동선을 진행했습니다. 사전답사때, 물고기계단 옆에 붙여있었던 호소문을 이미 보았기에, 이 이화마을을 지날 때 다시 한번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용히 지나갈 것을 말씀드리고 지났습니다. 낙산성곽길로 접어드니, 노랑꽃, 하얀꽃 그리고 연두연두한 새싹들이 한양도성과 어우러진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전날 미세먼지가 '매우나쁨'이어서 급하게 준비한 마스크가 필요없을 정도로 날씨가 맑았습니다. 계속 기상예보를 확인하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아침에 보니 [보통]으로 예보가 변경되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이렇게 푸른 날에 아이들과 풀피리 배우기와 나만의 에코백도 만들어보았습니다. 풀피리는 늘 인기가 많습니다. 김완식 선생님의 멋진 연주는 모두를 압도합니다. 풀피리는 단계별로, 풍선, 필름 그리고 풀피리 순으로 눈높이 교육이 시작됩니다. 성인, 아동 모두 집중하고 재밌어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풀잎으로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 자체를 신기해 합니다.
나만의 에코백도 인기 있는 순서입니다. 에코백에 각자의 개성을 담아 수선전도를 만듭니다. 가끔 예술작품을 만드느라 모두를 기다리게 만드는 친구도 있지만, 완성된 가방을 보면 짧은 시간동안 집중력있게 색칠한 모습이 대견합니다.
이렇게 한양도성 걷기여행이 끝날 때가 되면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마무리 시간이 됩니다. 어색해서 말을 많이 못 나눠서 죄송하지만, 오늘 재밌었다고 편지를 써준 친구 오늘 하루 같이 있어줘서 고맙고, 앞으로 맑고 밝은 꿈을 갖기를 바란다는 봉사자 등등 서로의 마음을 조심스레 나누면 어느덧 점심시간입니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헤어질 시간이 됩니다. 늘 이시간이 제일 힘듭니다.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할지 조심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하루 서로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헤어집니다. 각 지역아동센터에서 왔던 친구들은 저희가 준비한 차량을 이용해서 다시 센터도 돌아갑니다. 돌아가는 아이들을 배웅하고 자원활동가 선생님들과 짐정리도 하고, 평가도 합니다. 평가내용은 에코백 만들기 후 친밀감이 형성되었으나, 프로그램을 좀더 단순화 해야 한다는 내용부터 마이크소리 조심, 아동을 고려한 동선에 대한 배려 부족, 팀구분을 좀더 소그룹으로 만들자는 의견까지...
평가시간은 늘 냉정합니다.
이렇게 냉정한 평가를 마치고 나면,
아침의 생생했던 자원활동가 선생님들은 어느덧 떼꾼해져버립니다.
그래도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하고 나니, 마음만은 뿌듯하다고 하시는 선생님들이십니다.
그래서 늘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늘푸른 방과후 교실의 인솔교사 선생님께 감사의 메일도 받았습니다. 자랑도 할 겸 감사메일 소개합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토요일 한양 도성 걷기 여행에 참석했던 늘푸른 방과후 교실입니다.
그날 감사인사도 제대로 못드리고 급하게 돌아온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ㅠ_ㅠ
KYC선생님들이 준비해주신 재미있는 프로그램 덕택에 저희 아이들 오랜만에 콧바람도 쐬고,
좋은 역사 공부도 하였네요.
아이들이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자기 큰 짝궁선생님과 있었던 일,
오늘 프로그램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나누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하였습니다^^
또 저희 교실 밴드에 사진을 올렸더니 부모님들께서 오늘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서 너무 재미있었다고
이야기 하였다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해주시기도 했습니다.
KYC선생님들과 신한금융그룹 선생님들 덕에 저희 아이들이
오랜만에 많은 사랑도 받고 또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아서 감사인사드립니다.
(그리고 저희 장애아동들 덕에 고생하신 선생님들께 정말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항상 좋은 일과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체험 아이들에게 제공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12월 5일 범국민대회 개최 보장과 평화적 진행을 위한 시민사회·종교계·국회의원 공동기자회견
국민들의 목소리는 터져나와야 하고, 정부는 들어야 합니다. 따라서 정부는 평화적 집회를 막지 마십시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지난 11월 14일에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하던 중에 경찰의 무자비한 물대포 공격으로 18일째 사경을 헤매고 있는 농민 백남기 선생이 하루빨리 회복하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지금에라도 정부 당국이 백남기 선생의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합니다.
우리들은, 12월 5일에 평화 집회를 열고 행진하겠다는 국민들의 의지를 정부가 꺾지 말 것을 요구하고, 우리들 스스로도 당일 집회와 행진이 평화적으로 진행되도록 노력할 것임을 밝히고자 기자회견을 열게 되었습니다.
정부 당국은 지난 11월 14일에 벌어진 경찰과 집회 참가 시민들 사이의 충돌을 빌미삼아, 전국농민회총연맹이 신고한 12월 5일자 집회는 물론이거니와, <백남기 농민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신고한 같은 날 집회도 폭력집회가 명백하다고 단정하고 집회개최 금지를 통보했습니다.
그러나 12월 5일에 집회를 개최하고자 하는 단체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평화적 집회로 개최할 것임을 약속했습니다. 종교계를 비롯하여 많은 시민사회단체들과 정치인들도 이 집회에 참여해 평화적 집회가 되게끔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폭력집회가 될 것이라고 단정하고 집회와 행진을 금지하는 것이야말로 폭력입니다.
우리들은 정부 당국에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요구합니다. 평화적 집회와 행진을 하겠다는 국민들의 의지를 꺾지 말고, 집회와 행진을 즉각 보장하십시오.
아울러 우리들은 12월 5일에 열릴 집회와 행진이 평화적으로 진행되도록 노력할 것임을 국민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밝힙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도 국민들이 정부를 향해 국민의 요구를 외칠 수 있는 광장은 어떤 경우에도 확보되어야 하고 이를 정부가 봉쇄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이에 이런 광장을 확보하기 위해 어제, <12월 5일 백남기 농민 쾌유 기원과 민주회복 민생살리기 범국민대회> 개최 신고서를 경찰에 제출하였으며, 평화적으로 개최할 것임을 경찰에 전달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한 우리 모두도 같은 마음이고, 이는 미처 오지 못한 많은 이들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정당한 집회와 행진을 경찰이 봉쇄하고, 여기에 집회참가자들이 맞대응하여 충돌이 발생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기를 정말 희망합니다.
우리들은 12월 5일이 평화집회와 평화행진의 날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니 정부 당국이 갈등을 더 조장하고 국민들을 위축시키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면 평화적 집회와 행진을 온전히 보장하십시오.
국민 여러분들도 저희들과 함께 백남기 농민 쾌유기원과 민주회복 민생살리기 범국민대회에 많이 참여해주시고, 범국민대회가 평화집회와 행진으로 진행되게끔 힘을 모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의 요구와 다짐
첫째, 정부는 민주주의 회복과 민생 살리기를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수용하십시오.
둘째, 경찰은 차벽을 비롯해 집회 참가자들을 자극하는 일체의 행위를 중단하십시오.
셋째, 집회 참가자들은 신고된 집회 장소와 행진 경로를 준수해주십시오.
넷째, 우리들은 평화집회가 진행되도록 ‘평화의 꽃밭’을 비롯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하루에 걷는 600년 서울, 순성놀이 지난 2011년부터 시작해서 올해 여섯번째를 맞이합니다.
2017년 한양도성 세계유산 등재를 기원하는 서울KYC 순성놀이! 백악, 낙산, 목멱, 인왕으로 이어지는 18.6km 한양도성길을 걸으며 역사도시 서울의 새로운 매력을 느껴볼까요?
올해 한양도성을 즐기는 3가지 방법 한양도성 18.6km를 하루에 걸어보는 일주코스
한양도성 9km(백악, 낙산)를 걸어보는 반주코스 한양도성 인근마을을 걸어보는 구간코스 총 3가지로 진행되며, 시민들과 함께 한양도성을 만나고 느낄 수 있는 시민 참여부스도 운영됩니다.
하루에 걷는 600년 서울 순성놀이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는!! 일주코스와 반주코스, 구간코스, 한양도성 시민 참여부스를 함께 운영할 서울KYC 자원봉사자를 모집합니다.
한양도성을 만날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시민분들이 역사도시 서울, 한양도성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순성놀이가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모두가 완주할 수 있도록!! 순성놀이 자원봉사자가 되어주세요^^
1. 모집기간 -9월20일(화) ~ 10월10일(월)
2. 활동내용 -순성놀이 참가자 접수대 운영(기념품 및 간식 배포) :순성놀이 참가자를 명단에서 확인하고, 기념품 및 간식을 배포하는 역할입니다.
-시민들과 함께하는 한양도성 시민 참여부스 운영 보조(스탬프 찍어주기, 생수 배포 등) :순성놀이 참가자와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시민 참여부스 운영을 도와주는 역할입니다. 순성놀이 참가자가 도착하면 스탬프를 찍어주기도 하고, 교구로 시민들에게 안내를 할때 옆에서 보조 등을 해주시면 됩니다.^^
-함께 순성하며(일주코스 또는 구간코스) Staff 보조 :서울KYC 도성길라잡이, 그리고 순성놀이 참가자와 함께 순성을 하며 참가자가 이탈하지 않고 완주할 수 있도록 진행을 돕는 역할입니다.
-사진 촬영(일주코스, 구간코스, 시민 참여부스) :2016 하루에 걷는 600년 서울 순성놀이의 진행과정을 사진으로 담는 아주아주 중요한 역할입니다! 많이 지원해주세요~
3. 자원봉사자 혜택 -서울시 자원봉사 인증 -스텝복 및 순성놀이 기념품 지급 -많은 시민에게 한양도성을 알렸다는 보람! -그리고 즐거운 추억...^^
6월 근현대사 아카데미는 한국 근현대사 "광장 민주주의" 시작이라고 하는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했습니다.
이이화 선생님과 함께했던 실내교육 120여년전, 그 당시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민중들의 항거! "농민들"이 들고일어나, 과거의 폐습을 없애고 부정부패 척결로 사회를 바로잡고,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등 그야말로 아래로부터 시작된 "혁명"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1894년에 동학농민군의 함성과 투쟁은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전쟁, 동학농민혁명, 갑오농민전쟁, 동학난 등등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전국각지에서 일어난 농민군의 봉기, 그 중에서도 우리는, 혁명의 시작을 알린 "정읍"을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동학역사문화연구소 조광환 소장님과 함께 동학농민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봅니다.
마을 언덕 위, 사발통문 서명자 후손자들이 건립한 동학혁명기념탑! 죽산마을, 송두호의 집에서 전봉준 등 20여명이 모여 고부 농민 항쟁을 계획하고 그 결의 내용을 적은 후, 사발을 엎어놓은 모양으로 20여명 참가자들이 서명하여 각리의 집강에게 돌렸다하여 일명 사발통문이라 합니다. 농민들의 봉기는 사발통문으로 작성된 것처럼,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거사 계획은 고부군수 조병갑이 익산군수로 발령되어 보류되었으나, 이듬해 1월 10일 고부 봉기로 점화되었습니다.
19세기 세도정치가 이루어지면서, 중앙정치 기강이 문란해지고 탐관오리가 득세하였습니다. 매관매직이 성행하며 과거제도는 유명무실해지고, 민심이 동요하며 삼정 즉 전정(토지세), 군정(성인나자들이 군대 안가는 대신 내는 세금), 환곡(춘궁기때 관곡을 빌려주고 추수기에 갚도록 한 제도)이 문란해져 농촌사회의 파탄을 가져왔고, 봉건사회의 모순과 수탈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의 불만은 커져만갔습니다.
한편 개항이후, 청일 양국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조선은 일본 식량공급지이자, 일본쌀 수입이 늘어나면서 민중들은 물가고와 식량부족에 허덕이게 됩니다. 이런한 상황에서, 전국 각지에서 농민봉기가 일어나게 됩니다.
고부지역은, 호남제일의 쌀 생산지이며 농산물 집결지로, 봉건적 수탈과 일제의 경제적 침략이 극심한 곳이었습니다. 특히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이 심각해, 전봉준을 중심으로 사발통문 거사계획을 결의 드디어, 고부봉기가 일어납니다. 고부봉기는, 이전의 농민봉기와 전혀 차원이 다른 것으로 전라감영을 함락하고 서울로 곧바로 진격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지역봉기를 넘어, 전국적 혁명을 계획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 "사람이 하늘이고, 밥이 하늘인 세상" 을 만들고자 한 반봉건항쟁 외세의 국권침탈에 맞서 보국안민을 이루고자 했던 반외세 항쟁이 바로 동학농민혁명입니다.
녹두장군 전봉준의 고택은, 찾는이 없이 쓸쓸하게, 뜨거운 해를 맞고 있습니다. 이곳은, 고부 농민 봉기가 일어나기 수년전에 전봉준이 살던 곳으로 훈장생활을 하면서, 고부봉기 전까지 살던 곳이라고 합니다. 전봉준의 유물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입니다.
전봉준은 동학조직을 이용하여, 농민봉기를 전국적으로 확산해가려고 합니다. 고부 동학교도들과 농민군들이 무장하고, 1894년 1월10일 말목장터에 집결합니다. 고부관아를 점령, 감옥을 부수고 무고한 백성들을 석방하였으며, 창고문을 열어 곡식을 주민들에게 나눠줬습니다.
이후, 동학농민군은 백산으로 진을 옮기며 부대로서의 대오를 정비하고 장기전에 돌입하였고, 각지의 창의격문을 발송하는 등 혁명의 전국화를 준비해갑니다.
고부관아 습격후, 농민군들은 바로 다음날 만석보를 허물어 버립니다. 만석보는 태인천과 정읍천이 만나는 곳에 쌓았던 수리시설로, 고부군수 조병갑이 강제로 농민들을 동원하여 쌓아놓고, 물세를 받아 원성을 자아낸 곳입니다. 태인천과 정읍천 가까이 이평이라 불리는 넓은 평야가 보입니다. 그 비옥한 땅을 많이 가진 사람이, 못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없는 착취가 벌어집니다. 사람들의 분노와 한이 서린 이곳에 오늘도 강물은 유유히 흘러갑니다.
혁명의 지속과 확대를 모색하던 전봉준은, 손화중과 의기투합하여 무장에서 포고문을 공포한 후 북상하여 고부관아 재점령, 김개남 등 지도자들과 함께 백산에 총집결합니다. 당시 농민군 숫자가 8천여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백산에서 농민군의 지휘체계와 조직 정비를 통해 황토현과 황룡촌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전라감영과 서울에서 파견된 관군을 격파한 후 파죽지세로 전주성까지 함락시켰습니다. 전주성 함락에 놀란 정부는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하고, 이에 일본도 조선에 출병을 합니다. 동학농민군은 외국 군대 철병을 위해, 폐정개혁27개조를 보고한다는 것과 해산할때 신변보장을 약속받고 전주화약을 체결, 전주성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조선을 대륙침략 교두보로 삼고자 했던 일본은, 전쟁을 도발하여 조선반도에서 청일전쟁이 일어납니다. 전쟁터로 변한 조선의 치안과 행정 공백을 메꾸기 위해 동학농민군은 '집강소'를 설치합니다. 집강소는 농민스스로 자치하는, 최초의 주체적인 농민통치 기구로서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폐정개혁을 실천에 옮겨갑니다.
정읍 곳곳에는, 동학농민군의 승리를 기념하는 승전탑과 동상이 들어서있습니다. 정치권력은 입맛에 맞게 "동학농민혁명 혹은 운동, 난리"로 해석하였고 민중들의 힘과 승리를 자신의 치적으로 비유하곤 했습니다. 기념탑이나 동상에 그 시대의 특징, 모양, 글귀가 들어있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일본군에 맞서 싸운 전봉준과 농민군을 친일 작가 김경승이 만드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 황토현을 비롯한 동학농민유적지는 전두환 정권에 대대적인 정비가 이뤄집니다. 군부독재정권의 정당성을 "호국유적지" 정화 사업으로 유지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한많은 전라도에서 전두환의 이름은 수없이 지워지고 덧칠해지고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동학농민기념관입니다.
일본군이 철수하지 않고, 경복궁을 무단점련하고 친일내각을 수립하자 동학농민군은 일본군을 내쫓고자 반일항쟁을 기치로 2차 봉기를 단행, 전국에 총동원령을 내리고 서울을 향해 진군해갑니다. 여러 전투를 벌이면서, 농민군의 숫자는 줄어들고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올라갑니다. 일본군과 마지막 전투. 우금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계속 돌진하는 농민군 내 목숨만큼 가치있는 것이 없을텐데... 근대적인 신무기에 맞서, 옛날 총들고 죽창들고 산으로 산으로... 결국엔 관군과 일본 연합군에 맞서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으나 패하게 됩니다.
이 무모한 전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 왜그랬을까요? 농민군들이 목숨걸고 싸웠던 이유.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간절함이 아니었을까요? 나는 어쩔 수 없이 노비로 천대받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나처럼 천대받지 않고 평등한 세상에서 살 수 있는 꿈. 그것이 20-30만명이 죽어간 이유일 것입니다. 억압받는 수많은 사람들의 한과 소망이 모여 분출될 것이 동학농민혁명입니다.
전투에서는 패배했지만, 신분제가 사라지면서 평등한 세상을 열었고 집강소를 통한 직접 민주주의의 실험이 빛났습니다. 제폭구민(폭정을 제거하여 백성을 구함)과 보국안민(나라를 돕고 민중을 편안하게 함)으로 인간존중, 사람이 다시 하늘이 되는 세상을 앞당겼습니다.
자유 평등 자주 민권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이후 3.1운동과 해방후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4.19혁명 등으로 이어져 민주주의를 열매를 꽃피우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광장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 동학농민혁명을 들여다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 민주주의는 동학농민혁명에서 시작된 것을 다시한번 확인한 하루! 광장민주주의 시작은 동학농민혁명입니다.
답사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 전합니다.
7월 근현대사 아카데미는,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전국 봉기.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주제로 합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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