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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391] ‘미스터 불확실성’ 트럼프의 미국은 어디로? : 환율 전쟁 불똥, 한국은 어떻게 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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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391] ‘미스터 불확실성’ 트럼프의 미국은 어디로? : 환율 전쟁 불똥, 한국은 어떻게 피하나

익명 (미확인) | 목, 2017/02/09- 17:31

‘미스터 불확실성’ 트럼프의 미국은 어디로?

환율 전쟁 불똥, 한국은 어떻게 피하나

조성대 한신대학교 교수

 

대통령직에 취임하자마자 트럼프는 지난달 21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폐기 발표, 23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선언, 24일 '키스톤 XL' 등의 송유관 건설을 허가하는 행정명령, 25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라는 행정명령, 27일 무슬림 7개국 국민들의 입국과 비자발급을 중단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데 이어 31일 중국, 독일, 일본 등과의 환율 전쟁 선포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이 돈키호테식 행보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2016년 미국 대선에서부터 현재까지 차례로 짚어보자.

 

트럼프 현상의 버팀목은 중하층 백인들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공화당으로 엑소더스를 시작했는데, 흑인 대통령에 대한 인종적 편견과 함께 다음의 정치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우선 1990년대 이래 미국 경제가 월가로 상징되는 금융자본주의로 재편되어온 것에 대해 냉소적이었다. 미국의 양대 정당이 월가 자본가의 이익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WTO와 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해 생산직 일자리가 멕시코 등 제3세계로 빠져나가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남은 일자리도 중남미 국가들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히스패닉 이민자들이 다 앗아갔다고 생각했다. 특히 그 안의 불법 이민자들이 남은 복지마저 약탈해갔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당연히 자유무역을 옹호하고 불법 이민에 관대했던 공화당의 주류들이 마음에 와 닿을 리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시선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란 슬로건 아래 "해외로 이전한 공장들을 되돌리고", "불법 이민자들을 즉시 추방하며", "멕시코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세우며", "모든 무슬림의 입국을 거부할 것"이라 외치는 트럼프에게로 향했다. 즉 트럼프는 미국 사회가 ‘갈색화’되어가고 있음을 우려하는 인종적 우파와 세계화와 양극화로 삶의 방향을 잃은 블루칼라 백인들을 대변하는 하나의 시대 현상이었다.

 

이런 배경 아래 취임 이후 트럼프가 보인 일련의 막무가내 행보는 블루칼라 백인 중심의 "미국 우선(America First)"주의에 입각한 일방주의, 중상주의(현실주의, 보호주의), 인종주의적 반이민주의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취임사에서 트럼프는 첫 번째 정책 목표로 50조 달러어치로 추정되는 셰일가스 및 유전의 적극적인 개발로 에너지 독립 국가를 건설할 것을 제시했다. 에너지 수입 감소로 물가를 잡고 생산 확대로 생긴 이윤을 공공 인프라를 구축에 투자하면 고용 확대도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향후 10년 동안 2500만 개 일자리와 4%의 성장을 약속했다. 또 소득세와 법인세도 감면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감세와 동시에 공적 지출의 확대 때문에 발생하는 재정 압박을 어떻게 감당할지 잘 모르겠다. 심지어 트럼프는 네 번째 정책 목표로 미국 패권과 힘에 의한 평화를 위해 압도적인 군사력을 유지할 것임을 천명했다. 그러나 국방비 증액은 당연한 결과로 재정 압박이 더욱 부추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군비 경쟁을 부추길 위험도 다분하다. 

 

트럼프는 이러한 재정 팽창의 위험을 일방적 중상주의로 돌파하려는 듯하다. 그래서 여섯 번째 정책 과제에서 “강하고 공정한(tough and fair)” 무역협정을 강조했다. 혹자는 FTA 폐기 및 TPP 탈퇴를 고립주의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다 정확히는 미국 노동자 제일주의에 입각한 미국 우선의 무역 강화가 정답일 것이다. 중국이 일차 표적이 될 것이 분명하다. 무역 불균형에 대한 보복 관세와 달러 약세를 위한 환율 전쟁 선포 등이 예상된다. 심지어 트럼프는 하나의 중국 정책도 부정하고 있다. 모든 분야에서 중국과 한판 뜰 기세이다. 그러나 이 역시 잘 먹힐지 의문이다. 중국의 상당히 발달한 내수 시장과 역대 최고급으로 보유하고 있는 달러 및 미국 국채는 공격에 버틸 체력과 언제든 반격할 무기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트럼프의 인종주의적 반이민 정책도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당장 중동 지역의 평화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란의 반발이 두드러진다. 특히 이란과의 대형 계약의 연이은 무산과 핵개발 재장전 가능성은 엄청난 복병이 될 수 있다. 국내 저항도 만만치 않다. 전국적인 시위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지난 1월 30일 국무부 관료 100여 명이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을 비난하는 연판장을 돌리기도 했다. 급기야 연방법원이 소매를 걷어붙였다. 지난 3일 시애틀 연방 지방법원은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이 자유권을 명시한 수정헌법 1조를 위반했으며 미국 전역에서 그 시행을 잠정 중단하라고 판결했다. 물론 법적 다툼의 최종 결론은 연방대법원에서 내려지겠지만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은 출발부터 삐걱거리게 되었다. 

 

미국 우선에 입각한 일방주의 및 중상주의는 그렇게 낯선 것은 아니다. 과거 공화당 행정부에서도 보복 관세를 부여하는 수퍼301조 등이 공격적으로 활용되었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강도가 더 세질 것으로 예상될 뿐이다. 사드 배치는 당연한 수순이 될 전망이다. 주한미군 주둔을 위한 한국 정부의 분담금을 증액하라는 요구가 더 강해질 것이다. 한미 FTA의 재협상 요구도 예견된다. 환율 전쟁의 불똥이 우리에게도 튈지도 모른다. 모든 쟁점에서 미국 우선의 공정성이 기준이 될 것이다.  

 

문제는 그 공정성의 잣대가 트럼프만이 아는 고무줄이라는 데에 있다. 눈앞에 닥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실제 대선 기간 중 트럼프는 즉자적인 제안을 쏟아내었다가 철회한 적이 많았다. 김정은은 미치광이라고 했다가 이후 당선되면 김정은과 대화할 것이라고 번복하기도 했다. 그만큼 불확실성이 크다. 이 돌발적 돈키호테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여우의 간교함과 사자의 용기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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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라시옹, 북미 화해무드에도 문 대통령 역할 컸다 -남북 정상회담 결정이 북미 회담으로 이어져 -야당 반대에도 “대화와 압박의 투 트랙” 원칙 -트럼프 역시 남북관계 진전 외면 어려웠을 것 프랑스의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이 최근 북한의 입장이 급변하면서 북미간 화해무드가 조성된 데는 애초부터 대화를 주장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고 보도했다. 루이 팔리지아노 기자는 지난 9일자 인터넷판에 ‘대화의 달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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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2018/03/11-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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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 얼마 전 트럼프와 푸친의 헬싱키 회담을 전후로 국제 언론계 일각에서는 한 가지 소문이 떠돌았다. 즉 미국이 러시아를 끌어들여 중국에 대한 공동전선을 펼칠 것이라는 것인데, 이하는 이에 대한 환구시보의 사설이다.


 

키신저는 트럼프에게 “러시아와 연합하여 중국에 대항”하도록 부추겼는가?

2018-08-02 00:05 (현지시각)

서구 매체와 중국 인터넷에서는 요즘 추측 하나가 떠돌고 있다. 즉 트럼프와 푸친의 헬싱키 회담은 키신저가 건의해 추진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회담은 또한 지난해 6월 키신저가 모스크바에 가서 푸친을 만났다는 소문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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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레디앙미디어

분석하길, 그것은 키신저가 트럼프를 도와 크렘믈린궁에 대한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견해는 더욱 대담한 추측을 낳았는데, 즉 키신저가 트럼프로 하여금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에 대항”하도록 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The daily beast>가 얼마 전 익명의 내막을 아는 사람의 말을 인용해 가장 상세한 관련 보도를 하였는데, 점차 언론계에서는 키신저가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에 대항”하도록 건의했다는 목소리가 많아졌다. 그러나 키신저 본인과 미국 정부는 모두 이에 대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미국 매체의 보도가 “바람 없이 파도는 일지 않는다.”(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라는 뜻-주)라고 간주하는 편이다. 만약 키신저가 정말로 트럼프를 도와 러시아와 관련된 전략 구상을 하였던들 크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키신저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이며 또한 견실한 미국의 애국자이다. 그가 당시 닉슨 정부로 하여금 “중국과 손잡고 소련에 대항”토록 한 것은 미국의 국가이익을 지키기 위해서였는데, 지금 만약 그가 반대로 트럼프 정부로 하여금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에 대항”토록 추동한다면 이 역시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이며, 여기서의 사상과 행위 논리는 모두 일관된다.

문제는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에 대항”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있다. 설령 미·러 관계가 얼마간 개선된다 하더라도, 미국 측이 이 같은 행동에 사치스럽게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에 대항”한다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당시 “중국과 손잡고 소련에 대항”하는 것과 같은 뜻이거나 심지어는 전략적 등가물이라 할 수 있는가이다. 키신저의 수준이 미국 매체의 작은 편집만큼 조잡하지 않으리라 믿으며, 90세가 넘은 그가 다시 ‘국제정치 표시 당’(뭔가 깜짝 놀랄 용어나 개념을 개발하여 남들의 시선을 끌려는 세력을 일컫음-주)을 만드는 선례를 열 정도는 아니리라고 믿는다.

키신저는 아마도 트럼프로 하여금 러시아와의 긴장 관계를 완화시켜 미국이 ‘양면 전투‘를 벌이는 상황을 피하도록 격려하였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에 대항”하는 것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먼저, 미·러가 ’연합‘ 하는 일은 매우 곤란하며, 쌍방은 우크라이나·시리아 등의 여러 옭매듭이 있다. 러시아는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이고, 또 미국의 양보는 곧 유럽의 신임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다음으로, 중국에 대한 ’대항‘ 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인데, 러·중은 일찍이 국경문제를 해결하였으며 전면적 전략협력 동반자관계에 있다. 러시아가 중국에 대항하는 것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하는 것에 대해선, 이처럼 손해 보는 전략적 거래를 할 만큼 크레물린궁은 어리석지 않다.

21세기의 세계는 이미 냉전시대가 아니며, 이데올로기적 경계선이 전체적으로 보아 약화됨으로써 어떤 대국도 진정으로 이념외교나 진영외교에 빠져들지는 않는다. 유럽연합은 미국의 현존하는 동맹체이다. 미국이 “유럽연합과 손잡고 중국에 대항”하는 것은 가장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가능한가? 융커와 트럼프가 타협을 이루었지만, 마치 싸구려 남방처럼 이 같은 타협의 질량은 매우 낮아서, 유럽으로 돌아와 물 하나 건넜을 뿐인데도 각종 쟁론 때문에 전혀 딴판이 되었다.

또 미국이 “인도와 손잡고 중국에 대항”하는 일은 매우 그럴 듯해 보이며, 중·인 간의 국경분쟁 때문에 “인-태 전략‘은 단번에 실현될 것만 같다. 그러나 인도 총리 모디는 금년 들어 두 번이나 중국을 방문하였으며, 인도는 서방으로부터 이득을 얻는 동시에 중국과는 안정적인 협력관계를 발전시키는 ’교활한 전략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도는 지금까지 미국에게 전략적인 총알받이가 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유럽 및 인도와 비교할 경우, 러시아와 미국·서방의 관계는 온갖 풍파를 다 겪었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는 충분한 외교적 경험이 있는 대국으로서, 중국과 격심한 이익충돌이 발생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그는 절대 중·러 간 전면적 전략협력 동반자관계를 대항관계로 바꾸는 높은 대가를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투항서’(投名状)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키신저와 트럼프 모두 그것이 러시아에 있어서는 ‘좋은 거래’라고 간주한다면 워싱턴의 자기도취는 정말 구제불능이라 하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냉전시기의 그 같은 대삼각 관계(大三角关系)는 이미 재현되기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 시기의 국가 관계는 진영이 분명하였지만, 지금 각국 관계는 훨씬 복잡하며 미국은 중국과 경쟁하면서도 미소 대결 때와는 다른 방식을 채택할 것이 요구된다. 연합한다거나 대결한다는 이 같은 사고방식은 이미 시대에 뒤처진 것이다.

그럼에도 위에서 언급한 소문은 그래도 우리를 각성시킨다. 중국에게 있어 이후 러시아 및 기타 모든 중요 국가들과의 관계를 안정시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며, 미국의 정치엘리트들이 그들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중국인이 또 생각해볼 일은, 일본은 미국의 동아시아에 있어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데, 중국이 일본과의 긴장관계를 완화시키기 위해 더 많은 조처들을 내놓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미국이 이미 중국을 전략적 경쟁상대로 지명한 이상, 중국은 비록 미국과 첨예하게 맞서 맞대응해서는 안 되겠지만, 워싱턴이 중국을 겨냥해 통일전선의 전략적 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와해시키는 일은 마땅히 힘써야 한다.

  • 2018년 8월 7일 <레디앙미디어> 에 게재된 글입니다. 
금, 2018/08/1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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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차가 북한에 대한 이른바 ‘코피(bloody nose)’ 타격에 관해 우려를 표명한 것 때문에 주한 미국 대사 내정이 철회됐다는 보도가 잇따랐지만 이는 신빙성이 떨어지는 설명이다.

빅터 차(Victor Cha)가 트럼프 백악관과의 논의에서, 북한에 대한 이른바 “코피(bloody nose)” 타격에 관해 우려를 표명했으며 그 결과 주한 미국 대사 후보에서 탈락했다는 내용의 기사와 사설이 한국 주류 언론을 도배하여 왔다.

그러나 지극히 기본적인 조사만 해 보아도 이런 설명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드러난다. 또한 빅터 차가 세련되고 신망 높은 북한 전문가라는 주장 역시 타당하지 않다.

우선 그는 지난 1년간 완전히 침묵을 지켰다. 미국이 먼저 도발 당하지 않더라도 북한을 (핵무기를 포함하여) 공격할 수 있다고 트럼프가 공언하고, 자신의 외교 방식에 따라 여러 조치를 취하면서 국무부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대다수 고위 외교관의 사직 혹은 해고를 불러왔던 지난 1년간 말이다. 또한 그는 트럼프가 내뱉은 노골적인 인종주의적 발언과 법무부 권한의 불법적 행사에 관해서도 침묵해왔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이전에,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넘도록 주한 미국대사를 임명하지 못했다는 사실의 중대성을 따져보도록 하자. 일부 전문가들은 여전히 공석으로 남아 있는 여타 대사직도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사실상 동아시아와 세계 주요국의 대사직은 채워졌다.

더군다나 트럼프가 거의 매주 북한을 언급하며 이를 가장 중요한 안보 이슈라고 말해 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무례함이 명백하다.

대사를 임명하지 않았음은 물론 상원 외교위원회의 지명 절차도 시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대단한 모욕이라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불가사의하게도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모독 행위에 침묵하고 있다. 한국 주권을 소리 높여 옹호해야 할 보수는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에 맹목적으로 충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보를 공격한다.

에드윈 모건(Edwin Morgan)을 워싱턴으로 돌려보낸 이래, 한국에 미국 대사가 이렇게 오랜 기간 부재했던 적이 없었다.

잠깐! 에드윈 모건이 누구인가?

이전에 미국 대사의 교체가 이렇게까지 지연되었던 경우는,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가 고종의 대한제국이 일본에게 합병되는 상황을 외면하고 엘리후 루트(Elihu Root) 국무장관에게 명령하여 1905년 11월 24일 에드윈 모건 대사에게 전문을 보내 “철수하여 미국으로 복귀하라”는 지시를 내렸을 때이다. 이후 차기 미국 대사로 한국에 부임한 사람은 존 무치오(John Muccio)였다. 그로부터 45년 후의 일이다!

이번에는 한국이 식민지가 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로 인하여 미국과의 관계는 명백하게 격하되었다. 한국을 참으로 정중한 방식으로 박대하고,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며, 심지어는 한국이 아무런 목소리도 낼 수 없는 미국의 안보정책을 따르라고 요구까지 하는데도 충실한 동맹국으로 행동하도록 강요되는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은 “코리아 패싱”을 끝내겠다는 트럼프의 번드르르한 언사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런데 대사직을 위해서라면 많은 것을 기꺼이 감내하려는 빅터 차를 외면한 배후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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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차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한국 담당 디렉터로 활동하며 자신의 이름을 많이 알렸다.

이 상황에 대한 가장 섬뜩한 설명은 군부의 어떤 파벌이, 누가 어떤 생각을 하건, 군사 충돌을 강제하려고 계획 중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누군가가 이 절차를 공개적인 논의에 부쳐 방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위험성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현재 시점에서 이것이 불가피한 결론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설명은 트럼프를 반대하는 행정부 안의 누군가가, 트럼프에게서 물러나도록 할 만큼 강력한 메시지를 빅터 차에게 전달했고 이에 따라 후보 이야기가 끝났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정부 전체의 군사화 추세

큰 틀에서 보자면, 빅터 차의 지명 실패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에 대한 민간 통제가 끝났음을 의미하며, 이는 연방정부 전체의 군사화라는 커다란 추세의 일부이다.

실제로 외교의 군사화는 중동과 중앙아시아 및 여타 지역에서 상당 기간 진행되어 왔다. 중동 주요국의 미국 대사들이 연회에 사용할 새우를 튀길지 아니면 삶을지를 제외하고는 발언권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트럼프 내각과 연방정부에 임명된 전례 없이 많은 숫자의 전직 군인을 통해서 군사화 과정이 최고점에 이르렀음을 목도하고 있다. 예컨대 연방정부의 경우 육군 장군 출신의 마크 인치(Mark Inch)가 연방교도국(Federal Bureau of Prisons) 책임자에 임명되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난 11월 미국 최고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장으로 해병대 장군 출신의 존 알렌(John Allen)이 임명된 것을 보라. 브루킹스연구소의 전임 소장은 스트로브 탤벗(Strobe Talbott)으로, 그는 (그의 견해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최고의 교육을 받은 유능한 민간인이었다. 탤벗의 전임 소장은 유능한 외교관이었던 마이클 아마코스트(Michael Armacost)였다.

빅터 차가 민간의 통제를 옹호한다거나, 미국 헌법과 유엔 헌장을 존중하는 인물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부시 행정부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다수의 불법행위를 거리낌 없이 외면했고, 그 당시부터 북한이 합의를 붕괴시킨 주요 원인 제공자라는 소설을 퍼뜨렸다.

“있을 수 없는 국가 : 북한의 과거와 미래(The Impossible State: North Korea, Past and Future)” 등 빅터 차의 저서들은 북한이 다른 어떤 곳의 어떤 국가와도 다르다고 시사하면서 북한에 관한 공상적인 이미지를 세상에 내놓았다. 노골적으로 환원주의적 관점은 아닐지라도 재미있는 공상과학소설에나 어울릴 법한 이야기다.

더욱이 지난 15년에 걸친 빅터 차의 승승장구는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어 준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위상 하락과 분리할 수 없다.

이 연구소는 한때 국제관계 분야에서 지극히 유용한 정보의 제공자였지만, 이후 국가 기능과 외교 및 안보의 민영화를 관리 감독하는 컨설팅 회사로 축소되었다.

12년 전에는 필자 같은 아웃사이더도 전략국제문제연구소에 발표자로 초대되곤 했다.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인 연구소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의미 있는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곳이었다.

미국 외교정책의 두 거물이 상호작용 함으로써 균형이 이루어졌다.

한편에는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가 있었다. 키신저는 외교와 안보를 사기업화 함으로써 거대한 부를 일군 인물이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를 활용하여 자신의 키신저 협회(Kissinger and Associates)로 계약을 빨아들였다.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냉소적인 정치인 중 하나였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의 친분을 통해 권력, 돈, 더 많은 돈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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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를 미국의 주요 싱크탱크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헨리 키신저(왼쪽)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그러나 이 연구소는 이제 국가 기능과 외교 및 안보의 민영화를 관리 감독하는 컨설팅 회사로 축소돼버렸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가 있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보좌관을 역임한 브레진스키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데 분명 개방적이었지만, 자신을 학자이자 공복으로 여겼고 부나 좇는 사람이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필자가 글을 통해 브레진스키를 옹호할 때면, 일단의 사람들로부터 혹독한 공격을 당하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대실패를 설계한 사람이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러시아를 응징했던 완고한 냉전의 선봉장으로 브레진스키를 바라보는 사람들로부터였다.

브레진스키에 대한 이러한 평가에 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지만, 필자의 경험은 대단히 다른 것이었다. 브레진스키가 정치적 핍박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굳이 나서는 일을 여러 차례 목격했고, 이란과의 전쟁으로 몰아가는 움직임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보았다.

안보정책에서 기후변화의 중요성에 관한 필자의 제안에 대해 브레진스키가 여러 차례 세세한 내용의 답장을 써 보내곤 했다. 그는 자신의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며, 또한 진지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다가서려고 했다.

브레진스키가 병든 이후 그리고 작년에 작고한 이후, 전략국제문제연구소는 엄청난 추락을 경험했다. 군사 분야 계약자들과 외국 정부가 자금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점차 주도하게 되었다. 나아가 연방정부의 안보 및 외교 기능이 이른바 사실상 정치 컨설팅회사의 외주에 점차 의존하게 되었다.

필자는 가끔, 쏟아지는 정책적 혼선의 와중에 트럼프가 부상하게 된 요인이 상당 부분 브레진스키의 사망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빅터 차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가 낳은 인물이고, 아마도 그는 키신저의 지원이야말로 자신이 지닌 비장의 무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제도적 기초는 너무나도 부패한 상태이고, 분파들 사이의 충돌(FBI와 CIA의 충돌이 되었건, 백인 민족주의자들과 국제주의자들의 충돌이 되었건)이 점점 심각해져 이제는 심지어 빅터 차와 같은 인물도 쫓겨나고 있는 판이다.

이는 술집에서의 싸움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모두가 난투에 휩쓸린다. 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여전히 싸움질을 하고 있는 이들은 가장 거칠고도 비열한 자들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결정에 인종주의적 요소가 작용했다고 가정하는 것도 비합리적이지는 않다. 빅터 차는, 만일 자신이 대사직을 차지할 수 있다면, 스스로는 현명치 않다고 생각하는 많은 행위들을 그냥 현명한 것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트럼프에게 여전히 충성스럽고 가장 민감한 결정에 관해 조언하는 군부와 지역 정치의 분파들은 아직도 깊은 외국인 혐오에 빠져 있다.

이들 중에서, 미국에 대한 궁극적 위협이 멕시코인들이 아니라 아시아인과 유대인이라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화, 2018/02/0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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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세계일보)

    “이렇게 잘 나가도 되는 거예요?” 요즘 전화나 sns를 통해 받는 질문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곧 한다더니(3월 6일 평양 발 뉴스), 이제 북미 정상회담도 목전에 왔다(3월 9일 워싱턴 발 뉴스). 질문에 붙는 말이 있다. “갑자기 너무 잘 풀리니까 어쩐지 불안하네요 …” 뒤에 붙은 무언, 침묵이 꽤 심각하게 들렸다.

믿기지가 않아서였겠다. 작년 하반기 내내 북미 간에 오간 그 험악하고 아슬아슬했던 막말들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뿐인가. 평화의 물꼬가 트이는가 싶었던 평창 올림픽 기간에도 펜스 부통령 등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북 대표단에 대해 ‘투명인간’ 취급과 ‘코피(bloody nose) 전략’ 으름장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렇게 바뀔 수 있나. 그렇다 보니 왠지, 뭔가, 불안하다는 것이다.

난 웃으며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 자신을 가집시다”라고 답한다. 분명히 기분 좋게 웃을 일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이따 밝히기로 하고, 우선 놀랄 일 하나를 더 들어보자. 지난 토요일(3월10일) 조선일보는 “트럼프는 북한과 수교하고 김정은은 핵 폐기하라”는 제목의 사설을 올렸다. 특히 마지막 문단은 인용할 만하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북한과 미국·일본의 수교로 북이 국제사회의 정상적 일원으로 나서고 북한 체제 안전은 유엔과 한·미·북·중·러 등 동북아 관련국이 모두 참여하는 안전보장 체제로 푸는 것이다. 북이 핵만 버리면 이 세계에 북을 공격할 나라는 하나도 없다. 이 경우 대북 제재 해제와 국제사회의 경제 지원으로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은 단기간에 크게 개선될 수 있다. 김정은이 핵을 버리고 미·북 수교와 제재 해제를 얻는 것이 살길이라는 전략적 판단을 내리길 바랄 뿐이다.

그 동안 모든 문제에 대해 북에 가장 적대적이었던 조선일보고, 그 사설이다. 그 조선일보가 “북한과 미국·일본의 수교”를 주장하고 “동북아 관련국이 모두 참여하는 북한 체제 안전보장”을 말하다니! 상전벽해로다! 가히 ‘역사적인 사설’이라 치하해주고 싶다.

물론 북이 궁극적으로 핵폐기를 결단할 정도의 확실한 체제보장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두 가지가 분명해야 한다. 하나는 북미, 미중 관계의 장기적 안정이다. 그런데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할까? 남북 양국 간 두터운 신뢰에 기초한 평화공존체제, 즉 한반도 양국체제의 정착이다. 그것이 핵심이다. 그 길로 가는 첫 고리가 대한민국이 주도하여 성사시키는 북미·북일 수교다.

<다른백년>이 출범 이후 줄곧 주장해 온 바다. 이제 조선일보조차 <다른백년>의 합리적 주장에 공감하게 된 것이라고 즐겁게 받아들이고 싶다. 부디 일회성 주장으로 그치지 말고, 조선일보의 사시(社是)로 확정해주기 바란다.

조선일보의 이 입장이 평지돌출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그 동안 ‘한반도 양국체제’는 이미 1991년 남북한 유엔동시 가입에서부터 싹이 트기 시작했음을 밝혀왔다. 그때 한국이 러시아, 중국과 수교한 것처럼 북도 미국, 일본과 수교하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남북기본합의서도 그런 취지에서 채택되었고, 그 정신에서 92년에는 ‘한반도비핵화(남북)공동선언’도 나왔다. 합리적 보수라면 당연히 이 취지를 이어 받아야 한다.

이제 조선일보까지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환영하는 대열에 나섰으니 “지금 세계에 (이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베와 홍준표 딱 두 사람뿐”이라는 모 정치인의 재치있는 코멘트는 정곡을 찌른 말이다. 여러 나라가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자기나라를 제공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단지 북미 간, 남북한 간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평화의 문제임을 온 세계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세계적 경사에 진심으로 일익을 맡고 싶은 것이다. 이제 마지막 남은 아베씨와 홍씨도 속 보이는 쪼잔한 짓을 그만하고 세계적 경사를 환영하는 세계인의 대열에 합류하기를 간곡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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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연합뉴스)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 큰 흐름을 읽어야 한다. 너무 잘 풀리는 것 같아 불안한 이유는 사태의 흐름을 짧은 시각, 짧은 기억 속에서만 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작년 북에서 수폭 규모의 6차 핵실험을 하고, 그 전후로 연이어 ICBM 실험을 감행했을 때, 그리고 미국에서는 정말 금방이라도 전쟁이 벌어질 것처럼 위협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북·미를 향해 대화와 평화를 내세우고 요지부동 밀고나갈 수 있었던 힘, 그 지속성, 일관성은 어디에서 왔을까?

거꾸로, 지금 정부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가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작년과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면 대대적인 반북·종북 소동이 정말이지 요란하게 벌어졌을 것이고, 그 결과 박근혜가 그토록 꿈꾸었던 제2의 유신이 진짜 현실이 될 수도 있었다. 지금과 같은 남북·북미 정상회담은커녕 평창 올림픽의 북한 참가도 전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평창 올림픽의 정상적 개최조차 불투명했을 것이다. 이미 그 때 한반도는 부분적이든, 전체적이든 전화(戰禍)에 말려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국정부 외교 저력의 원천은 촛불혁명

지난 1년여 대한민국 외교는 바른 방향으로 잘 왔다. 길이 멀고 험하더라도 갈 방향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 된다. 좀 돌아가더라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정부가 왜 어떻게 그렇듯 ‘물가에 선 나무처럼’ 흔들림 없을 수 있었던가?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듯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밀고가는, 밀어주는, 거대한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6~2017년 촛불혁명의 위대한 힘이다.

큰 문제일수록 큰 변화를 못 읽을 수 있다. 촛불혁명의 실체적 존재감은 시종 지지부진하다 실패로 끝난 6자회담 5년과 지금 상황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국제관계상 당시와 지금은 여러 기본 변수들에서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결정적인 차이는 단 하나, 대한민국 촛불혁명의 동력이라는 새 변수다. 북의 핵과 발사체 수준이 높아졌다는 점 그리고 미국의 새 정부가 기존의 미국 대외정책 패턴을 어떤 식으로든 바꿔보려고 한다는 점도 물론 달라진 점이다. 그러나 그 변화들은 그 동안 트럼프-김정은 충돌에서 보아 왔듯 긍정적이기보다는 오히려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오직 대한민국 민의의 가히 혁명적 변화, 그리고 그러한 민의를 충실히 받드는 새 정부의 출범만이 이러한 변화를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킬 힘으로 작용했다.

정상회담은 준비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가 더욱 중요할 것이다. 정상회담은 상징적 큰 합의 정도가 나오면 된다. 북이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 등을 요구할 것이라는, ‘미리 재 뿌리기’ 식의 추측 보도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미 94년 북핵 위기 시 김일성과 카터가 만났을 때, 김일성 자신이 그런 주장을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북에서 김일성-김정일의 유훈(遺訓)이란 신성한 것이다. 북미든 남북이든 상호 불신과 의혹을 남길 요구를 들고 나올 이유가 없다. 그보다는 남북·북미 관계가 정상화됨으로써 생기는 장기적 이점에 당사자 모두가 집중할 것이다.

한국정부가 집중해야 할 점은 남북 평화관계를 장기적 구조로 굳히는 데 있다. 남북 간의 깊고 두터운 신뢰의 형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남북 간 신뢰에 균열이 가면 북미·북일 수교는 물 건너간다. 그렇다면 ‘남북 간의 깊고 두터운 신뢰’의 핵심은 무엇일까? 남북 상호의 주권과 존재를 확실히 인정해주는 데 있다. 바로 양국체제다. 양국체제만이 남과 북 주권의 존립을 장기적·안정적으로 보장해준다. 실은 미국의 북 체제보장보다 더 실질적인 요점이다. 양국체제가 확실히 굳혀지고 있다는 믿음이 생길 때 북도 북미·북일 대화에 보다 큰 자신감과 믿음을 가지고 나설 것이다.

남북 평화관계 굳히기와 양국체제

한 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아니 90년대 초반 노태우 정부 북방정책 시 잠깐 반짝했을 때를 빼곤 도대체 제대로 존재했던 적이 없었던, 한국 외교가 갑자기 세계적 각광을 받고 있다. 이어질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치러진다면, 세 나라 정상이 올 노벨 평화상의 공동수상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난 1년간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줄곧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견지했던 쪽은 오직 대한민국 정부였다.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즐거운 변화 속에서 필자는 ‘팍스 코리아나(Pax Koreana)’를 생각해본다. 필경 이 말에 물음표를 다는 분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팍스(Pax)라니? 그건 힘에 의한 평화, 초강대국, 제국들이나 하는 폭력적 평화 아닌가? 우리 코리아가 그런 식의 팍스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팍스

그렇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부터가 그러했다. 그 계열의 팍스 브리태니카, 팍스 로마나(Pax Romana)가 다 그러했다. 모두 힘과 정복을 전제한 평화였다. 제국에겐 평화였으되 약소국엔 지극히 괴로운 세월을 감내해야 했던 팍스였기도 하였다.

동양에도 팍스가 있었다. 세계사상 가장 영토가 넓었던 팍스는 바로 몽골 대제국 시대, 즉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였다. 몽골제국만이 아니다. 진시황의 통일 이후의 중화제국, 팍스 시니카(Pax Sinica) 역시 그렇다. 한때 일본도 제국을 꿈꾸었으니 팍스 자포니카(Japoinca)였다 부를 수도 있다. 그런 동쪽의 팍스 역시 힘과 정복을 전제한 평화였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럼에도 팍스의 주체가 되었던 나라들, 그리고 그 후예들은 하나 같이 자신들이 인류문명에 큰 기여를 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주변에서 복속해야 했던 나라들에서는 사정이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팍스 시선
한반도 발 세계평화, 한반도가 주도하여 이룩해가는 세계평화, ‘팍스 코리아나’를 기대해 본다. (이미지 출처: 시선 뉴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팍스 코리아나’가 더욱 특별하다. 우선 기존의 모든 팍스가 그랬던 것처럼 ‘팍스 코리아나’도 분명 세계평화를 만들어낸다. 지금 남북·북미 정상회담부터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바가 명백하지 않은가.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반도 양국이 평화공존체제를 이루어, 미중, 중일 간의 긴장과 갈등을 풀어간다면, 이것이 바로 팍스 코리아나의 진면목일 것이다. 한반도 발 세계평화, 한반도가 주도하여 이룩해가는 세계평화다. 더구나 폭력의 절대적 반대명제인 촛불혁명, 즉 순수한 평화의 힘, 위력으로 말이다.

또 하나 ‘팍스 코리아나’가 특별한 것은, 그 ‘팍스’는 코리아 내부의 깊은 폭력적 분열과 적대의 상처를 성숙하게 이겨낸 팍스일 것이기 때문이다. ‘팍스 코리아나’의 시작은 한반도 양국체제다. 한반도 양국체제란 상호 서로를 부정하고 적대하면서 처절한 전쟁을 벌였던 남과 북이 서로 인정하고 공존하자는 것이다. 한반도 내부에서 고난 속에서 싹튼 성숙한 평화의 힘이 세계평화의 밀알이 된다.

한국전쟁(Korean War)은 힘 대 힘의 극한 상황, 극도의 시련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2차대전 이후 3차 세계대전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던 순간이기도 하였다. 다시금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과연 힘 대 힘을 신봉하다 또 다시 세계 3차대전의 불쏘시개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오직 평화의 위력으로 세계평화의 선도자가 될 것인가.

기존의 제국 중심의 팍스(Pax)의 세계사에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진정으로 평화로운 팍스의 시대가 가능한가. 다른 어느 곳이 아닌 바로 이곳, 코리아에서 열어갈 길이 바로 그것 아닌가. 이 길을 필자는 ‘팍스 코리아나’라 부르고 싶다.

화, 2018/03/1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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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영국제방송(CGTN) 2018-06-02 22:40 GMT+


도날드 트럼프는 2017년 1월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래 백악관의 공식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견해를 알리기 위해 트위터를 상당히 자주 사용했다.

현재 트럼프의 트위터 팔로워는 5천2백4십만 명에 달하고 있으며, 백악관 대변인실보다 그의 트위터가 가장 중요한 소식통이 되곤 한다.

중국공영국제방송(CGTN)은 트럼프 취임이래 2018년 6월1일까지 북한에 관한 트위터 내용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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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도표는 2017년 1월 20일 취임이래 트럼프가 북한에 대해 언급한 횟수를 월별로 기록한 내용이다.

그가 북한을 언급할 때 사용한 형용사는 2017년의 ‘나쁜’, ’위험한’이라는 표현에서 지난 2개월간 ‘좋은’, ‘훌륭한’이라는 단어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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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라는 단어가 총 31번 언급되면서 가장 빈번히 사용되었고, 남한이 9번, 러시아가 6번, UN과 일본이 각각 5번씩 사용되었다.

시진핑 주석이 8번 언급되어, 아베 수상 4번, 문재인 대통령 3번보다 많다. 물론 당사자인 김정은 위원장10번으로 가장 자주 언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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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북한을 언급하는 트럼프의 감정 표현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했다. 부정적 표현으로는 ‘나쁜’, ‘불량’, ‘적대적’, ‘위험한’ 등 용어를 사용하였고, 긍정적 표현으로는 ‘대단한’, ‘생산적’, ‘좋은’ 등을 선택하였다. 시진핑 주석을 표현할 때는 언제나 긍정적인 용어들로 ‘ 대단한’, ‘존경하는’, ‘좋은’, ‘생산적인’ 등을 사용하였다.

일, 2018/06/0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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