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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잠’에 대한 생각 : 표현의 자유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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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잠’에 대한 생각 : 표현의 자유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익명 (미확인) | 목, 2017/01/26- 15:41

이 글은 국제앰네스티의 공식 입장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며, 앰네스티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나의 생각.
국회에 걸린 <더러운 잠>이 여성비하적이라고 비판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가? ( X )
국회에 걸린 <더러운 잠>을 자칭 ‘박사모’가 와서 물리적으로 훼손하고 뜯어낸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가? ( O )


<더러운 잠>을 둘러싼 일련의 소란은 무척 혼란스럽다. 여성사회단체와 페미니스트를 필두로 한 사람들은 이것이 여성비하적이라고 한다. 예술계에서는 풍자이며 표현의 자유라고 한다. 야권 지지자들은 이것이 시국비판이며 소수자가 아닌 박근혜라는 최고권력자 비판이지 어떻게 여성비하냐고 한다. ‘박사모’는 그림을 물리적으로 뜯어내고 훼손했다. 그걸 본 어떤 야권 지지자들은 이것을 ‘여성혐오적이라고 하는 것은 박근혜를 두둔하는 것’이라고 하는 괴상한 결과에 도달한다. 한국 페미니즘의 적이라고 할만한 박근혜를 묘사한 것을 두고 “여성비하”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페미니스트는 ‘박사모’와 같은 취급을 받는 억울한 지경에 이르렀다. ‘일베’는 원래 이미지 합성을 통해 모독하는 것을 장기로 삼는 곳이니만큼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었다. 이를 놓칠리 없는 박근혜는 탄핵심판과 전혀 관련 없는 이 사안을 두고 끌어다가 ‘세월호 7시간 행적 의혹은 여성비하’라는 기적의 논리를 펼쳤다. 물론 야권 지지자이며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페미니스트인 남성인 나 같은 사람도 있다. 단체 안에서도 이것에 대한 시각은 개인마다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얘기할 수 있는 논점과 고려해야할 맥락은 너무 다양한데 사람들은 저마다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주장하고 있다. 정말 혼란스럽다.

honran
표현의 자유는 여러 가지의 법리적 이론이 있으며, 이론마다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의 한계와 그 근거가 분분하다.1) 권리로서 표현의 자유의 출발은 국가가 개인의 사상과 표현을 이유로 탄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지만, 최근에 이르러서는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는 혐오표현 등은 명백히 제한해야 한다는 식으로 논의가 더 촘촘해지고, 확장되고 있다. (그래서 복잡해지고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표현의 자유는 다른 자유권과 마찬가지로 신성 불가침의 권리가 아니며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사상을 어떠한 형태로 나타내거나 발표한다고 해서 공권력에 의해 억압 당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비평,비난 받지 않을 자유’나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을 자유’가 아닌 것이다. 다른 사람의 권리, 특히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표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는 마법의 언어처럼 오남용 되고 있다.2) 게으르고 저급한 예술적 성취나 타인을 모독하는 등의 저열한 의도로 제작한 창작물을 만들어놓고 “표현의 자유니까 존중해달라”고 말한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한계와 그것을 법적, 규범, 윤리적으로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 공유되는 사회적 합의선이 부재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혼란으로 보인다. 표현의 자유가 다른 가치와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억지에 불과하다. 자유는 일반적으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향유되는 것을 자유라고 부른다.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타인의 주거에 무단침입해서 원래 살던 사람을 쫓아내는 것을 거주 이전의 자유라고 하지는 않는다. 길을 걸어다니며 아무 곳에나 침을 뱉고 담뱃재를 날리며 피해를 준 사람에게 지나가던 다른 행인이 항의했다고 해서 ‘이동의 자유’가 침해 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더러운 잠>에서 예술품에서 발견하길 기대되는 어떤 새로운 미학적인 쾌감이 있는가? 아니, 이 그림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 그렇다면 풍자로서 대통령 박근혜의 실정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통찰이 있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박 대통령의 정치인으로서의 특징이나 그가 저지른 수많은 정치·사회적인 실패는 방기한 채 오로지 여성성만을 부각시키고 벌거벗겨 모욕하는 방식은 다분히 여성비하의 결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싸드와 세월호를 그려넣었다고 하지만 이것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에 적절한 방식이 아니며 그저 박근혜를 비난하기 위해 세월호를 가져다 썼다고 보여진다) 혹자는 <더러운 잠>이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박근혜를 풍자하고 있는데 이것이 왜 여성 전체에 대한 모독이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 혹자는 높은 확률로 남성이다) 그러나 거기에 누드로 묘사된 것이 박근혜라고 해서 박근혜만 불쾌감을 느껴야한다는 주장은 인간의 인지능력에 대한 굉장히 빈곤한 이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전혀 모르는 여자의 외설적인 사진을 그저 보여주기만 해도 성희롱이 성립할 수 있다. 원치 않는 성적 당혹감과 모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이미지가 메세지를 재현하고 생산해내는 방식에 기인하는 것이지, 거기에 그려진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고 해서 희석될리 없다. 더군다나 일평생에 걸쳐 여성의 외모와 몸을 평가하고 대상화하는 이 사회, 이 문화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성이 아니면 이것이 모독인지 아닌지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뿐만 아니라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그 그림에서 성적 모욕감과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그 불편함을 작품이 의도한 것인가? 그렇다면 그 불편함을 비평하고 표현하는 것 또한 관람자의 것이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느껴지는 모욕감은 박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엉뚱하게도 박근혜 대통령과 전혀 관련 없는 다른 평범한 여성들과 문제 의식을 공유하는 시민들의 것이기도 하다. 선출 공무원, 정치인, 대통령으로서의 박근혜가 저지른 정치적 비위가 아닌 대통령의 성별에만 매달려 여성 박근혜를 공격한 결과는 결국 역설적으로 박근혜를 젠더 뒤에 숨게끔 만드는 역효과를 낳았기 때문에 결국 실패한 비판이 될 수 밖에 없다. 여성 일반을 모욕하려는 창작자의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은 그저 <더러운 잠>이 박근혜 혹은 정치를 비판하려는 방식이 게으르고 나태했다는 자기고백에 불과할 뿐이다.3) 같은 맥락에, 광화문 광장에서 “미친년”이라는 피켓을 보고 불쾌감을 느끼거나 “미스 박”을 호출하는 DJ DOC의 노래를 광장에서 듣길 원치 않았던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평소에 정치비판에는 전혀 무관심했던 힙합씬은 왜 갑자기 혁명가 흉내를 내는 것이고 그 가사는 왜 꼭 여성성 공격으로 귀결되는가)

젠더 권력은 여성의 몸을 볼거리로 전락시키고, 남성의 시선에 권력을 부여해왔다. ‘일베’나 ‘박사모’를 비롯한 박근혜의 지지자들이 ‘반격’을 하기 위해 이 전시의 당사자인 표창원 의원이나 이구영 작가를 모독하지 않고, 표 의원의 부인과 딸의 사진을 합성하는 방식으로 공격했다는 점을 잘 생각해보면 이 작품에 왜 여성비하적이며 박근혜와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이 모욕감을 느끼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방증이 될 것이다. 심지어는 새누리당 여성의원들조차 “표창원 네 마누라를 벗겨주마”라는 여성비하와 성적 괴롭힘을 담은 피켓을 들어(음주운전을 비난하는 음주운전자 같다) 표 의원이 아닌 그의 부인을 타겟으로 모욕의 매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는 지난 몇 년간 “표현의 자유”를 엉뚱하게 갖다 쓰는 이들이 사회 공동체가 지켜야할 최소선을 위협하는 저열한 공격들을 봐왔다. 그것은 우리가 가지는 존엄에 대한 공격이었다. 진실규명을 위한 단식농성을 벌이는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앞에서 “폭식투쟁”을 했던 사람들은 어떤가? 평소에 광화문 광장에서 뭘 먹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그들은 그 상황, 그 맥락에서 약자이고 피해 당사자인 사람들을 조롱하기 위해 굳이 거기서 피자를 ‘폭식’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것이 보호받아야 할 “표현의 자유”라고 말할 수 있을까? 트럼프의 대두로 공공연하게 미국 사회에서 발화되는 무슬림, 성소수자, 백인이 아닌 사람들에 대한 위협과 비하처럼 타인을 공연히 공격하거나 사회가 공유해야 할 가치를 저해하는 표현도 보호받아야 하는가?

 

“표현의 자유”는 수준 낮은 창작물을 변명하는 방패가 아니며 ‘악’으로 상정되는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허용될 수 있는 절대선은 더더욱 아니다. <더러운 잠> 전시로 비롯된 것과 같은 논란과 논쟁을 통해 “표현의 자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사회적 합의선을 찾아가는 것은 바람직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성별/나이/외모/신체/학력/지역/인종/성적지향/장애를 도구로 누군가를 비난하는 일은 멈춰야 한다. 다른 누군가를 상처주는 방식이 아닌, 더 예리하고 더 세련된 비판과 풍자를 원한다. 지금은 2017년이고, 이제는 좀 그럴 때가 되었다.

 

꿀곰,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간사


1) 홍성수 숙대 법과대학 교수의 ‘표현의 자유와 인권’ 강좌를 정리한 포스팅에 표현의 자유에 대한 법학계의 몇 가지 이론과 국내와 미국의 9가지 판례 사례가 잘 정리되어 있다.

2) 정작 진짜 표현의 자유가 필요한 부분에서는 위축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해야 하는 앰네스티의 웹사이트에 표현의 자유가 제한받을 수 있다고 쓰는 것이 조심스럽다. 다른 권리와 가치와 충돌하여 현저한 해악을 미치는 경우에 한한 것임을 다시 한 번 명확히 한다.

2-1) 정말 표현의 자유가 공격 받고 제한 당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경우라고 본다.

시위를 취재했다는 이유로 고문하고 재판 없이 무기한 구금되어 있는 이집트의 사진기자 샤칸

가상의 왕국을 다룬 연극을 공연한 것이 ‘왕실모독죄’라며 징역형을 선고한 태국 정부

정부 비판적인 블로그를 운영했다는 이유로 벌금 약 10억, 채찍질 1000대, 징역 10년형을 선고 받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라이프 바다위

트위터에 인권침해 우려를 표현했다는 이유로 투옥시키는 바레인 정부

정부 비판적인 방송 채널에 방송 금지 처분을 내린 파키스탄 정부

3) 2016년 5월에 홍대에 ‘일베’ 회원을 인증하는 손가락 조형물이 작품으로 등장해 당시에도 표현의 자유에 대해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일베’는 피해자인양 굴었다. 홍대 ‘일베 조형물’에 대한 내 생각은 일단 너무 게으르다는 것. 어떠한 해석이나 변형 없이 그 자리에 그저 재현하는 것이 예술로서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는가. 하물며 재현의 대상이 아름다운 것도, 소외된 것도 아닌 고작 일베 인증이라면.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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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2021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폭력에 대항하는 여성들: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Women Against ViolencE》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여성 작가 8명과의 협업을 통해 파도가 되어 여성 폭력에 대항하는 다양한 일상의 목소리를 담아봅니다. 아래의 작품은 앰네스티 캠페인에 함께 한 작가 이지님의 작품입니다.

 

국제앰네스티 X 작가 이지

국제앰네스티 X 작가 이지

국제앰네스티 X 작가 이지

국제앰네스티 X 작가 이지

작가명

작가 이지

참여 소감

3월 여성의 날을 맞이해 이렇게 뜻깊은 캠페인에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불과 몇년 사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를 보며 아, 그래도 변하고 있구나! 싶으면서도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더이상 여성의날 캠페인이 특별한 프로젝트가 되지않을 그런 날이 오길 바라며,

 

작가 이지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심볼

월, 2021/03/08-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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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사회 곳곳에서 큰 충격이 발생했습니다. 첫째, 기존 질서와 완전히 다른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이고 둘째,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점입니다. 전자는 변화된 질서 속에서 새로운 문제 발견과 대안 발굴이 요구되지만, 후자는 기존에 있었던 문제를 그간 제대로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게 느껴집니다.

특히 지난해 벌어진 인천 용현동 화재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이미 과거부터 엄연하게 존재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가시화된 사건입니다. 아동 방임 및 학대와 취약계층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 문제는 충분히 사회적 관심을 기울이고 지원할 수 있었으나 부족했던 게 현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정인이 사건’ 등 아동학대 및 방임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고, 아동학대 사실과 부모에 대한 처벌 문제에 대중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특정 사건에 분노를 표하고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분노를 넘어 왜 이러한 일이 반복해 발생하는지 돌아보고 해결 방안을 찾는 쪽으로 확장해야 합니다.

희망제작소는 지난 2020년 12월부터 아동 돌봄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5명의 전문가(종합사회복지관/지역아동센터/우리동네키움센터/장애통합어린이집/우리동네키움센터-융합형)를 직접 만났습니다. 아동 돌봄 문제와 취약계층 사회안전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전문가의 시선으로 아동돌봄과 취약계층 사회안전망의 현재를 짚어보고, 향후 필요한 지점은 무엇인지 살펴봤습니다.

[아동돌봄/기획①] 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의 시선
[아동돌봄/기획②] 지역아동센터의 시선
[아동돌봄/기획③] 우리동네키움센터의 시선
[아동돌봄/기획④] 장애통합어린이집의 시선
[아동돌봄/기획⑤] 우리동네키움센터(융합형)의 시선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차상위계층’을 위한 안전망 절실해

인터뷰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에서 놓치기 쉬운 차상위계층을 위한 복지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일정 수준’을 충족하는 취약계층의 경우 생활보호대상자로서 사회안전망 내 들어와 있습니다. 물론 취약계층 지원금액과 지원 정책을 좀 더 보완해야 한다는 등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정부에서 행정망을 통해 취약계층을 모니터링하고, 법적 보호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점은 사회안전망을 누릴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일정 수준’에 벗어난 차상위계층도 매우 많습니다. 최저임금 수준의 소득과 불안정한 비정규 노동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부모의 수입으로 생활을 영위하기가 불가능한데도 국가나 지방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차상위계층은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셈입니다. 우리 사회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아동만이 아닌 부모의 상황까지 살피는 모니터링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및 방임 문제를 다룰 때 아동 위주가 아닌 가정 전체를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아동학대 및 방임은 친부모에 의해 이뤄집니다. 상황이 발생하자마자 아동을 가정으로부터 분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나 방임이 발생하는 가정의 대부분은 부모의 건강 및 심리상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부모의 건강 및 심리상태가 온전하지 않은 상황은 가정의 안정뿐 아니라 육아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문제적 상황에 놓인 취약계층 및 차상위계층 가정을 빠르게 발굴해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부모에 대한 심리상담 및 육아 상담을 제공해 아동학대 및 방임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가정 발굴 및 모니터링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육아 주체를 바라보는 관점을 짚어봐야 합니다. 현재 육아 주체는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습니다. 국가에서 아동수당 등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부모들은 생계 부담에 더해 육아 부담도 온전히 짊어져야 합니다.

생계와 육아 양립하는 부모를 위한 아동돌봄의 역할

‘부모의 육아 전담은 당연하지 않나’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부모가 생활과 육아를 양립하는 데 있어 부모가 육아를 전담하기 어렵습니다. 이 지점에서 아동돌봄의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마을공동체가 아이들의 양육을 보조하고 가정을 도와주는 형태로 발전돼야 합니다. 또 아동 중심으로 마을공동체가 형성되고 나아가 생활과 육아를 양립하는 과정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형태가 만들어진다면 아동학대 및 방임에 관한 우려는 크게 낮아질 수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여러 지방정부에서는 공동체를 통해서 육아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울특별시의 경우 ‘우리동네키움’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각 동네에 우리동네키움센터(일반형)을 운영하고, 이를 규모별로 체계적으로 구성한 상위조직인 우리동네키움센터(융합형)을 만들어 동네의 아동돌봄 조정 역할을 맡기고 있습니다. 지역별로 돌봄 조정관을 배정하고, 공적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단순히 아동을 돌보는 것을 넘어서 돌봄 수요 파악, 돌봄 정책 건의 등을 통해 돌봄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또 부천시에서는 의료체계를 중심으로 다기관 협력체계를 구성해 사례 발굴에 나서고 있습니다.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에 놓인 가정일수록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못한 경우에 주목한 것입니다. 아동 주치의 제도를 통해 아동의 건강 상태를 정기적으로 검사하면서 가정환경도 함께 모니터링한다면 아동 돌봄을 위한 사회안전망 모델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동 돌봄 현장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및 방임 문제를 지나치게 아동에 국한에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환기했습니다. 아동돌봄은 공동체의 씨앗으로 그저 가정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의 문제입니다. 마을공동체의 회복을 통해서 아동과 가정을 돌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앞으로도 아동돌봄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처한 문제들을 단편적인 시각이 아닌 다각도로 살펴보며 정책을 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글: 김세진 연구사업본부 연구원 [email protected]

금, 2021/04/23-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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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유스 하이라는 뜻앰네스티 유스 모임입니다!
코로나가 종식된 세상을 그린 그림을 들고 있는 앰네스티 유스 멤버들

코로나가 종식된 세상을 그린 그림을 들고 있는 앰네스티 유스 멤버들

 

유스 모임은 만 14~24세 유스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모임입니다. 매달 첫 째주 토요일 진행되는 정기 모임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유스 모임은 유스대표와 코어 멤버를 중심으로 운영됩니다.

안에는 정말 다양한 유스가 있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 미성년자,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지역 거주, 난민 유스… 유스 모임은 이러한 차이를 인지하며 차이가 차별로 변질하는 것을 막고자 합니다. 약속문을 함께 만들어 모임마다 읽고, 피드백 창구인 ‘주머니’ 를 통해 혐오 없고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앰네스티 유스 약속문

 

유스 모임에서 어떤 활동이 진행되었나요?

유스 모임에선 6월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코어 멤버 워크숍, 세 번의 정기 모임과 유코(운영 회의), 준비 모임 등을 진행했습니다! 준비 모임은 다가오는 정기 모임 주제에 대한 스터디와 기획을 준비하는 모임으로, 코어 멤버뿐만 아니라 모든 유스가 참여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와 인권, 인권 전반, 기후위기와 비거니즘 등 코어 멤버가 선정한 주제로 정기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첫 온라인 모임이었던 9월 정기 모임은 기후위기와 비거니즘을 주제로 다양한 활동을 함께 했습니다. 기후 위기 영상을 시청하고 이와 관련된 퀴즈를 시작으로 축산업과 환경 파괴의 연관성을 다룬 다큐멘터리 <카우스피라시cowspiracy>에 대한 발제, 비거니즘 키워드 사다리와 편견 Q&A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느낀 점과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며 메시지 피켓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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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 모임에서 앞으로 어떤 활동이 진행되나요?

성소수자, 인종차별, 페미니즘을 주제로 남은 2020년 정기 모임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10월 정기 모임은 성소수자를 주제로 진행됩니다. 정기 모임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기획 중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다음 “웰컴투유스” 시리즈 2편도 기대해주세요!

 

수, 2020/09/23-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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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음완갈라 마타칼라Mwangala Matakala 국제앰네스티 남아프리카 지역 사무소 캠페이너가 Mail & Guardian에 게시한 기고글입니다.
차량을 탄 여성이, “모든 여성과 연대한다”는 푯말을 들고 여성 인권을 옹호하고 있다.

차량을 탄 여성이, “모든 여성과 연대한다”는 푯말을 들고 여성 인권을 옹호하고 있다.

1962년 7월, 범아프리가 여성기구PAWO가 설립된 지 올해로 59년이 되었다. 해당 기구는 현 아프리카연합Africa Union의 전신인 아프리카 통일기구Africa Unity의 소속기구로 설립된 곳이다. 매년 7월 31일마다 기념하고 있는 범아프리카 여성의 날은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서 이루어진 여성 해방 운동을 되새기는 중요한 날이다. 그와 더불어 8월 9일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여성의 날로, 1956년 남아공의 인종차별적인 통행증법에 항의하며 유니언 빌딩으로 행진했던 여성들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세대가 두 번 바뀌었지만, 남아공의 현재 상황은 그때와 다를 바가 없다. 여성과 소녀들은 여전히 자신의 인권과 안전을 위해 싸우고 있다. 코로나19의 출현은 기존의 구조적인 젠더 불평등과 차별을 드러내 주었고,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한 피해가 젠더화되어 있음을 재차 일깨워주었다.

국제앰네스티 조사 결과 남아공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완화하기 위해 시행한 정책들은 여성과 소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팬데믹 이전부터 젠더 기반 폭력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 결과, 제한 조치의 수립 및 시행은 젠더 기반 폭력 사건이 급증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실제로 관련 폭력 사건은 코로나19 확진자 및 사망자가 여러 차례 급증함에 따라 함께 증가했다.

코로나19 격리병동에서 병상이 가득 차고 산소가 부족해진 것 처럼, 여성 젠더 기반 폭력 생존자들을 위한 쉼터 역시 수용공간이 급속히 부족해졌다. 남아공의 광산 도시 러스텐버그에 위치한 그레이스 지원 센터Grace Help Centre 역시 이런 보호시설 중 하나다. 첫 번째 봉쇄 조치가 시작된 2020년 팬데믹 초기 단계부터, 이미 이곳은 수용 인원 30명이 모두 찬 상태였다. 남아공의 다른 보호시설들 역시 몰려드는 여성들을 수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은 폭력적인 배우자 및 가족들과 격리된 상태에서, 그리고 지역사회의 지원망이 붕괴된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여성들이었다.

지역적, 국제적 수준의 여성인권 보호 조치가 마련되어 어느 정도 진전이 있긴 했지만, 아프리카 전역에 있는 여성과 소녀들은 유독하고 폭력적인 관계 속에 여전히 갇혀 있는 상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여성 인권에 관한 아프리카 인권헌장 선택의정서Protocol to the African Charter on Human and Peoples’ Rights on the Rights of Women in Africa, Maputo Protocol, 이하 마푸토 의정서에서는 여성과 소녀에 대한 젠더 기반 폭력 및 모든 형태의 착취를 금지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여성과 소녀의 안전에 해를 끼치는 유해한 관습이 포함된다. 그러나 마푸토 의정서(및 다른 조약)의 이행은 여전히 요원하다. 아프리카 지역 전역의 사법제도가 젠더 기반 폭력 생존자의 필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가 (이를 개선할) 정치적 의지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성과 소녀가 처음부터 폭력 행위를 신고하기 어렵게 만드는 사회문화적 태도, 유해한 젠더 고정관념, 습관, 관습 등 역시 의정서의 이행을 요원하게 만들고 있다.

젠더 기반 폭력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의 무덤 위에 그들의 나이와 사망 이유가 작성되어 있다.

젠더 기반 폭력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의 무덤 위에 그들의 나이와 사망 이유가 작성되어 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 때문에, 마다가스카르의 여성은 봉쇄 기간 동안 가정 폭력을 당해도 신고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신고를 한다고 해도 필요한 필수적인 보호 조치나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다가스카르에서 가장 최근인 2018년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여성 4명 중 1명이 현재 또는 전 배우자가 저지르는 신체적 폭력의 피해자였다. 2019년 12월 13일, 마다가스카르 의회는 젠더 기반 폭력 근절을 위해 새로운 법을 채택했지만, 정부가 코로나19 제한 조치로 인한 피해를 경감하지 못하면서 이에 대한 의지는 약해졌고 법적인 조치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젠더 기반 폭력 사건은 더욱 증가하게 되었다.

한편, 아프리카 지역의 다른 국가도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2020년 6월 중순까지 여성과 어린이 21명이 여성의 배우자에 의해 살해되었으며, 경찰 기록에 따르면 2020년 4월 봉쇄 첫 주 동안에만 성폭력 사건이 37% 증가했다. 체고팟소 풀레Tshegofatso Pule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사건은 임신 8개월차인 28세 여성이 2020년 6월 4일 실종되었다가 4일 후, 요하네스버그에서 흉기에 찔려 나무에 매달린 채 발견된 사건이다.

짐바브웨의 경우, 가정폭력 피해 여성에게 보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체인 무사사 프로젝트Musasa Project의 기록에 따르면, 전국적인 봉쇄 직후 11일 동안 764건의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코로나19 이전까지 월간 500건으로 기록되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증가한 수치다.

모잠비크에서는 지역 비정부단체인 공공청렴센터 Center for Public Integrity가 마푸토의 은들라벨라 여성 교도소에서 이루어지는 여성에 대한 끔찍한 폭력과 착취에 대해 공개했다. 2021년 7월 법무부가 설치한 조사위원회는 성착취, 고문, 그 외의 부당대우를 포함한 교도관들에 대한 의혹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남아프리카 국가들은 여성인권 보호를 말로만 논하지 말고 최우선과제로 삼아야 한다. 그보다 조금이라도 부족한 조치는 용납할 수 없다.

음완갈라 마타칼라, 국제앰네스티 남아프리카 지역 사무소 캠페이너

안타나나리보부터 마푸토까지 여성과 소녀들이 겪어 온 일들을 보면 이들을 위한 정의 구현 과정에 수많은 장벽이 가로막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가는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에 대응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여성의 권리와 안전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 헌신하는 시민사회단체는 필수적인 서비스 제공자로 인정되어야 하며 이들에 대한 적절한 자금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여성 주도 시민사회단체와 여성인권옹호자가 논의에 함께 참여하여 아프리카의 인권 의제에 여성과 소녀의 권리 및 요구사항이 포함되고 반영되도록 보장해야 할 때이다.

이 모든 내용을 돌아보면, 갇혀 있는 우리 자매, 국가의 외출 금지 명령으로 폭력적인 관계 속에 감금된 조카, 쉼터로 몸을 피하려는 숙모, 딸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어머니들이 마땅히 누려야 했을 보호와 평화를 얻었을 때 범아프리카 여성의 날도 축하할 명분이 생길 것이다. 남아프리카 국가들은 여성인권 보호를 말로만 논하지 말고 최우선과제로 삼아야 한다. 그보다 조금이라도 부족한 조치는 용납할 수 없다.

목, 2021/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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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인구집중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에게 피로감을 준다. 2021년 5월 기준, 대한민국 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50.3%가 산다.

높은 인구 밀도로 삶의 질은 낮아지고, 실업이나 주거빈곤 최저주거기준 미달 또는 주거비가 소득의 30% 이상 차지하는 주거비 과부담 중 하나 이상에 해당하는 경우를 ‘주거빈곤’1)도 증가한다. 남은 49.7%의 인구는 수도권 이외의 곳에서 흩어져 있다. 이 중에는 10년 후의 모습을 장담할 수 없는 지역소멸 지역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지역소멸의 위협이 목전에 다가온 몇몇 지역에서는 ‘청년’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동안 청년은 젊다는 이유로 정책 대상에서 배제되곤 했지만,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미래세대의 유입과 안착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인식한 것이다.

몇몇 지방정부는 이미 선도적 청년정책을 추진해오고 있었고, 이제 막 청년정책을 시작하는 후발주자도 많아졌다. 청년이 지역소멸 위기극복의 키워드가 된 지금, 지방정부가 청년정책을 ‘잘’ 추진하기 위한 방안을 짚어보고자 한다.

종합적 접근을 위한 전담부서 위상 강화

청년문제는 삶의 질 전반에 걸쳐진 구조화된 문제라는 점에서 그 원인과 접근이 매우 복합적이다. 그러나 많은 지방정부에서 청년전담팀은 일자리과 내에 설치하고, 그 외 다양한 부서에서 개별적으로 청년사업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 부서에서 따로 운영하는 청년 사업은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내는데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청년정책은 종합적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여러 부서를 망라할 수 있는 위상 강화가 있어야 지역의 변화를 견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단체장이나 부단체장 직속으로 전담 조직을 두거나, 기획실 등의 산하에 설치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지역의 비전과 청년정책의 융합

청년정책이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지역에서 젊은 청년을 지원하는 것에 공감대가 낮은 것이 현실이다. 지역의 청년정책이 개별 사업으로 추진되는 것도 이러한 한계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청년으로부터 얻고자 한다면, 청년을 지역의 비전과 엮어내고 융합시켜 추진력을 높여야 한다.

지방정부는 지역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하여 미래먹거리를 발굴하고, 사회서비스, 문화, 교육 등을 강화하여 기존 주민의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과정에 청년이 결합할 수 있는 연결점과 방식은 매우 다양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소멸을 행정이 혼자 고민하지 말고, 역량과 실행력을 가진 청년의 역할을 찾아내는 것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다.

지역에 안착하고 싶은 청년, 청년이 필요한 지역

여러 지역의 청년을 만나본 결과, 청년은 현재 사는 곳에 계속 머물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수도권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청년들에게도 달갑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청년에게도 삶의 선택지가 많아질 필요가 있다.

현재 청년을 설명하는 핵심 단어는 ‘다양성’일 것이다.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무궁무진한 청년들에게 지역이 별 다섯 개를 받을 수 있는 기회의 땅이 되길 바란다.

각주
1) 최저주거기준 미달 또는 주거비가 소득의 30% 이상 차지하는 주거비 과부담 중 하나 이상에 해당하는 경우를 ‘주거빈곤’에 처한 것으로 정의한다.

– 글: 이다현 연구사업본부 연구원·[email protected]

목, 2021/09/02-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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