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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신입회원님들, 무지무지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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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신입회원님들, 무지무지 반갑습니다!

익명 (미확인) | 수, 2017/01/18- 11:58

여성환경연대 문을 두드려주신 고맙고 반가운 신입회원님들,

어떤 분들인지, 여성환경연대는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새해 소망은 뭔지 궁금궁금해서 두 분께 

이메일로 짧은 인터뷰를 청했습니다. 역시나 우리 회원님들은 멋진 분들이라는 게 인터뷰의 결론! 

권세현, 정숙희 회원님을 소개합니다. 큰 박수로 맞아주세요 !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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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년 12월부터 여성환경연대 후원을 시작한 권세현이라고 합니다.

전 자연을 사랑하고 노을 보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노을이 질 때 마다 사진을 찍거나 감상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제가 찍은 사진 중에 자연 사진, 노을 사진이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요.ㅎㅎ

걷는 것도 정말 좋아해서 이곳저곳 혼자 열심히 쏘다니며 사진을 많이 찍습니다. 인스타에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올리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낍니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 일상생활에서 실천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손으로 이것저것 무언가 하는 것을 즐겨하고 끄적끄적 낙서 같은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글쓰기를 좋아해서 거의 매일 일기를 쓰고, 아주 가끔 시 비스무리 한 걸 끄적일 때도 있답니다. 밀가루보다는 쌀을 좋아하고, 고기보다는 나물을 좋아하고, 마요네즈 보다는 고추장, 된장을 좋아하는 아주 평범한 한국 사람입니다:)

사실 여성환경연대를 알게 된 건 정말 얼마 안 되었어요. 작년 9월 즈음 평화재단이라는 곳에서 주최하는 ‘청년학교’를 신청하게 되었는데 10강으로 구성된 강의 중 환경이 주제였던 날 EBS에서 방영한 ‘플라스틱인류’ 라는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 영상을 보면서 이것저것 메모를 해 두었는데 청년학교가 끝날 때 까지 그 페이지는 다시 열어보지 않고 덮어두었습니다. 그러다가 12월 말에 무심코 그 때 메모해 둔 페이지를 펴보니 여성환경연대 라는 단어가 적혀 있더라구요. 그래서 ‘한번 검색해볼까?’ 하고 검색해 봤는데 저의 관심사와 가치관과 맞는 부분이 정말 많았습니다.

환경문제에 대한 이야기,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중요성, 생태적인 삶, 같이 하는 삶,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아닌 나만의 속도로 사는 삶 등 여러 가지 면이 제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어서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얘기를 더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구요. 그래서 ‘이거다!’ 싶어 바로 후원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기웃거릴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

2017년 다짐은 여성환경연대 덕분에 방향성이 많이 잡힌 것 같습니다. 12월 후원자에게 보내주신 선물 중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읽고 1월부터 플라스틱 최대한 안 쓰고 살아보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거든요. 마음 맞는 친구와 둘이서 하면서 이런저런 정보들도 공유하며 나름 재미나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시작한지 일주일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매일 기록해 가면서 열심히 하고 있답니다.

또 여성환경연대에서 보내주신 ‘Redbook’ 을 읽고 나서 면 생리대를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나한테도 좋은 게 결국은 환경에게도 좋은거니까요.그래서 올해는 더 푸르게 사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에 거는 희망은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한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작지만 큰 바램?! 국민이 주인인 나라, 이웃과 서로 웃으며 인사 할 수 있는 나라, 아이들이 받은 교육이 사회에서도 통하는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¼¼­¿ï=´º½Ã½º¡½Á¶¸í±Ô ±âÀÚ = 10ÀÏ ¿ÀÈÄ ¼­¿ï Á¾·Î±¸ ±¤È­¹®±¤Àå¿¡¼­ ¹Ú±ÙÇý ´ëÅë·É ÅðÁøÀ» Ã˱¸ÇÏ´Â Á¦7Â÷ ¹ü±¹¹Î ÃкÒÁýȸ°¡ ¿­¸° °¡¿îµ¥ Âü°¡ÀÚµéÀÌ Ã»¿îµ¿ »ç¹«¼Ò ¾Õ¿¡¼­ ÃкÒÀ» µé°í ÀÖ´Ù. 2016.12.10. mkcho@newsis.com안녕하세요. 저는 50대 중반 워킹주부이자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딸 정숙희입니다. 저는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여성환경연대 페이지를 보고 가입하게 되었어요.

우리세대는 많은 정보를 접하며 살고 있으므로 몸에 해로운 먹거리는 먹지 않아야 하고, 몸에 해로운 생활용품은 사용하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신 부모님은 ‘물건 아까운 것’만을 고집하고 다 드시거나 사용하거나 쌓아둡니다. 무척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소통이 어려워서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았어요.
애초 생산단계부터 이런 우리 몸에 해로운 것들은 생산가능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페이스북에서 여성환경’연대’를 만나게 되었죠. 나 혼자  호소하는 것보다는 연대해서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새해에도 다름없이 내가 먹을 건 내가 일해서 벌 테니 국가는 자영업자들 등골 빼는 제도 좀 줄여주면 좋겠습니다. 정치인들은 제발 나라 살림과 백성 안위만을 위해 일해주면 좋겠습니다. 덕망있고 능력있는 대통령이 뽑혀서 평안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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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참여팀] 참여연대의 자원활동가는 상근 활동가들과 손발을 맞춰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10대 청소년부터 일흔이 넘으신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학생, 주부, 직장인, 은퇴자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원활동가들의 숨은 활약을 자원활동가 인터뷰를 통해 알려드립니다.

 

"참여연대가 많은 위안을 줬어요."

 

사회복지위원회 자원활동가 류민하님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류민하

사회복지위원회 자원활동가 류민하님

 

 

자원 활동을 그만둔 사람인데 인터뷰를 해도 되는지, 준비된 말이 아니면 말주변이 없어 어려운데 괜찮은지 이런 저런 고민이 들었다는 류민하 자원활동가. 인터뷰 약속을 잡을 때 보여줬던 발랄함은 뒤로하고 잔뜩 긴장한 모습을 내비치며 한마디, 두 마디 말을 이어가는 그의 태도가 참 신중하고 진실해보였다.

 

Q.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참여연대에서 했던 일을 설명해주세요. 
A. 대학교 4학년, 입학한지 7년 만에 4학년이 되었어요. 전공은 미디어커뮤니케이션과 정책 이렇게 2개이고요. 학교에서 학번을 밝히면 이제 굉장히 놀라게 되는 그런 상황입니다. 기자 지망생이구요, 대학 생활이 거의 끝나가서 학교생활을 재밌게 누리는 것보다는 자기소개서 쓰고 스터디하고 그런 조금은 재미없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아, 동아리는 아직 하고 있어요.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에서 자원활동을 했어요.

 

Q. 사회복지위원회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A. 사회복지위원회에서 하는 일은 정확히 다 알지는 못하는데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굉장히 많은 일을 조세담당하시는 분, 복지를 담당하시는 분 이렇게 2명의 간사님이 하시는 것 같았어요. 제가 맡은 일은 <복지동향>이라는 잡지에 실릴 인터뷰의 녹취를 푸는 일이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녹음된 걸 풀어내면 되는 거였는데 자택근무였어요. 집에서 일을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편하고 좋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기왕 시작한 자원 활동인데 뭔가 더 저에게 남는 일을 하고 싶어서 간사님께 일주일에 한 번 출근할 테니 나에게 시킬 일이 없느냐고 여쭤봤었어요.
간사님이 처음에는 조금 당황하셨어요. 저를 그런 식으로 써먹는 걸 생각하지 않으셨으니까. 그래서 저를 위해 일을 따로 만드셨죠. (웃음) 도로명으로 바뀐 주소를 고쳐 쓰는 일도 하고 중복된 복지들이 효율적으로 바뀌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맡았었습니다.

 

Q. 참여연대는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A. 자원활동을 지원하기 전부터 이름을 알고는 있었어요. 워낙 큰 단체이기도 하고 유명하기도 해서. 본격적으로 알게 된 건 공익활동가학교 16기를 통해서였습니다. 학교에서 학보사 기자 활동을 함께했던 친구가 15기를 했는데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다고 추천을 해줘서 지원하게 되었어요. 16기 활동을 하면서 참여연대 회원으로 가입도 하고, 청년참여연대 후원도 하게 되었고, 16기가 끝나고 나서도 뭔가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자원활동도 지원했어요. 간사님 졸라서 일을 더 하기도 했고. 
 기자를 꿈꾸는 학생으로서 공익활동가학교는 정말 좋은 활동이었어요. 참여연대 안에 계신 분들만 뵙게 될 줄 알았는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을 직접 만나고, 강연도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생기고. 기자를 준비하면서 ‘시민사회란 이런 곳이다’라고 체험할 수 있는 입문코스 같은 느낌이었어요.

 

Q. 어렸을 때부터 기자가 꿈이셨어요? 
A. 그렇지는 않아요. 전공을 선택하고, 심지어 학보사에 들어갈 때까지도 기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대학생활에 뭔가 남기고 싶어서 시작한 활동이었는데 일을 하면서 적성에도 맞는 것 같고 흥미가 생기게 되었어요.
기자라는 직업이 분명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무언가를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리면서, 내가 직접 활동가로 살지는 않지만 나의 본분에 맞는 일을 하면서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Q. 학내의 기자로 활동하며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는지.
A. 한겨레 안수찬 기자를 만났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단순히 기자를 직업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사명의식만 가지고 밀어붙이는 분 같지도 않았어요. 균형이 참 잘 잡혀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분이 했던 말이 너무 좋아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기자는 직업이 아닌 삶의 방식이다”라는 말을 하셨는데 정말 공감이 되는 말이었어요. 
또 수습기자 시절에 교직원들이 파업을 했던 일이 있었는데 그런 집회나, 점거나, 시위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단순히 그냥 수업만 듣고 다녔으면 보지 못했을 법한 장면들을 목격한다는 것을 넘어서 그런 행위들이 무언가를 다 알리려고 하는 것들이잖아요. 좋은 기자는 이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언론이 갖고 있는 스피커의 힘으로 멀리 퍼뜨리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앞선 생각들을 하는데 참여연대 활동이 좋은 영향을 주었나요?
A. 일단 토론하는 분위기가 분명해서 좋았어요. 학교 수업에서는 다들 눈치 보기 바쁘고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질문하거나 혹은 토론하는 학생이 적었는데 활동가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이 있고 또 그걸 말로서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던 것 같아요.
또 이런 활동을 하기 전에는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부분들이 눈에 보이면서 문제를 대하는 자세도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그저 신문이나 뉴스에서 사건을 접하는 느낌이었는데 활동하시는 걸 보니까 이런 것들을 알리기 위해 이렇게 까지 노력하시는 구나, 이런 것들을 중점적으로 다뤄주길 바라는 구나, 그런 생각이 커졌어요.
사회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치권 욕하고 뭐 그런 행동을 하겠지만 분명 그것만 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부채의식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럴 때 참여연대 같은 단체에 후원을 하든가, 아주 조그마한 일이라도 하는 일이 큰 위안이 되요. 꼭 참여연대가 아니더라도 좋겠지요. 최근에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어요. 같이 신문 스터디 하는 친구들이랑 기사를 읽으면서 토론을 하는데 정말 거국적인 이야기가 오갔어요. 재분배가 무엇이고, 사회가 어떻고, 어떤 원리가 있고 등등 거대하고 원론적인 이야기를 한참 하고 스터디를 마쳤어요. 집에 갈 준비를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하는데 그 때 마침 학교에서 총학생회가 장학금 삭감 관련해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걸 보면서 친구들이랑 참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대화를 나눴어요. 여태까지 사회가 어떻고, 시국이 어떻고 대단한 얘기들을 나눴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현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각자 ‘스펙쌓기’ 바쁜 사람들이었다는 죄책감이 들더라구요. 그런 죄책감이 들 때 참여연대가 많은 위안을 줬어요. 아 맞다, 난 그래도 참여연대에 후원도 하고 자원활동도 하고 그랬지, 하는 생각이 위로가 되더라구요. 그런 면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이런 일에 관심을 갖고 사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Q. 마지막 질문, 민하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이 있잖아요. 꿈은 아니더라도 흥미가 있는 일은 다들 분명 있겠죠.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노력한다면, 혹은 아주 큰 노력은 꼭 아니더라도 원한다면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것만 하더라도 충분히 보람이 있고 먹고 살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또 정치에 꼭 엄청나게 관심을 갖지 않더라도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하면 사회를 살아가는데 크게 무리가 없는 사회였으면 좋겠어요. 너무 유토피아 같나요?(웃음)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그는 종종 민망한 듯 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게 민망하시냐고 물으니 그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자신이 지금 내뱉은 말들을 과연 얼마나 지키고 있는지 걱정이 되며 부끄럽다고 표현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부끄러워하는 건 참 좋은 일이에요’ 라고 답했지만 나는 생활 속에서 얼마나 부끄러움을 느끼고 사는지 그를 보며 또 다른 부끄러움을 떠올렸다. 집에 가는 길에 들은 바로는 언론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대략 2000명 정도라고 한다. 광화문 근처에 있는 언론사가 대략 20개라고 한다면 100명의 청춘을 이겨야 겨우 합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그가 꼭 기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부끄러움을 아는 그가 좋은 기자가 될 때까지 응원을 아끼지 않고 싶다. 민하님, 신문에서 꼭 봤으면 좋겠습니다.

 

작성 자원활동가 박영민 (활동가를 위해 활동하고 싶은 대학생)

월, 2016/03/0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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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자기 소개부터 시작할까요?

 

오윤식 저는 연수원 34기로 12년차 변호사로 법무법이 공간의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권리구제의 공간, 사회기여의 공간’이라는 법무법인 공간 명함을 파서 다니고 있는데요, 변호사로서 저의 지향점이 그 말에 녹아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변호사들이 권리구제를 통해서 사회기여를 해야 한다는. 그런 명함 파가가지고 다니니까 ‘사회기여’라는 말을 빼고 돈 많이 벌어라고 핀잔 주던 후배도 있었는데, 생활의 기반이 되는 물적 토대도 매우 중요하죠. 성현(聖賢)이신 맹자도 항산항심(恒産恒心)이라고 했으니까요. 그런 물적 토대가 튼실하지 못한 것이 좀 아쉽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변호사들이 추구해야 할 가치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신이 받은 재능을 공동체에 돌려줌으로써 사회기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늘 부족하지만, 이런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김지미 처음부터 이런 말씀 드리기가 좀 뭣하지만(웃음) 73년생이라고 하기엔 중후한 외양의 소유자시잖아요. 그런 말씀 많이 들으셨죠?

 

오윤식 머리만 흰데..저는 제가 동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김지미 조금 더 지나서 이덕우 변호사님처럼 완전 백발이 되면 더 멋있으실 거 같아요.

 

오윤식 그럴 수도 있죠. 지금 이거는 아주 자연스럽게 된 상태니까.

 

김지미 몇 년 안에 더 멋있어진 오변호사님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이제 오변호사님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볼까요?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오셨네요.

 

오윤식 네. 고향은 전북 남원이고 지금도 부모님은 남원에 계세요. 고등학교는 유학을 간 거죠.

 

김지미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하셨는데 역시 법조인의 꿈을 가지고 진학을 하신 거겠죠?

 

오윤식 네. 어렸을 때 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김지미 어떤 면에서 판사가 멋있어 보였을까요?

 

오윤식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어떤 사안에 대해 판정을 해주는 것이 멋있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 장래희망을 판사로 쓴 기억이 있고, 국민학교 때는 미술시간에 그림으로 그린 적도 있어요.

 

김지미 그래서 연수원 34기로 합격을 하셨잖아요. 고향에 플랭카드 좀 붙었겠는데요(웃음)

 

오윤식 시골이라서 붙었어요. 잔치도 했습니다.(웃음)

 

김지미 보통 변호사가 된 첫 해에 민변에 가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변호사님은 그런 케이스는 아니죠? 언제 가입을 하셨나요?

 

오윤식 제 기억으로 2008년, 그때 정도에 입회를 했어요. 변호사 생활을 한 게 2005년부터인데 바로 입회한 건 아니고 촛불 집회가 한창일 때 입회를 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제가 변호사를 안산에서 시작했어요. 그 다음에 고양시에서 하다가 서울로 들어왔거든요. 별 생각 없이 지내다가 촛불집회 보고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입회를 했습니다.

 

김지미 그럼 2008년 당시 민변 신입회원이셨는데 촛불집회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고, 2009년에 용산사건진상조사단 활동도 하셨고, 그것 때문에 모범회원상도 받으셨죠?

 

오윤식 그 때가 정권 교체된 직후라 여러 가지 일이 많았고 열심히 해야 될 시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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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모범회원상을 받으면 기분이 어떤가요?

 

오윤식 제가 입회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큰 상을 받아서 영광이었죠(웃음).

 

김지미 제가 오변호사님을 처음 뵌 것도 촛불 집회 한창일 때였던 걸로 기억해요.

 

오윤식 목동 쪽에서 봤잖아요. 그 때 집회 방송 차량을 김종웅 변호사랑 제가 인천에서부터 타고 왔어요. 근데 목동부터 제지를 당한 거죠. 방송 차량이 집회 현장으로 가지 못하게 경찰이 막은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도와달라고 지원요청을 했었는데 김변호사님이 가까이 있어서 왔던 것으로 기억이 나요. 경찰하고 한창 실랑이를 해서 결국 가져갔죠.

 

김지미 네. 집이 목동이어서 주말에 쉬고 있는데 갑자기 불려 나갔었죠.(웃음) 그 당시에 제가 오변호사님이 굉장히 지적이어서 멋있다고 사람들에게 말했었어요~모르셨죠?

 

오윤식 한때 지적으로 보였나보죠?(웃음).

 

김지미 보니까 언론에 기고도 많이 하시고, 글 쓰는 걸 잘 하시고,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오윤식 2008년, 2009년 그 즈음에는 프레시안이나 민중의 소리에 기고를 좀 했는데 요새는 많이 안하는 편이에요.

 

김지미 당시 기고하셨던 글들을 보면 ‘방패로 시위대를 공격하는 것은 위법이다.’, ‘권력검찰을 혁파해야 된다’, 미네르바 구속이나 신영철대법관 사퇴해야 되는 이유 등등 현안에 대해 법률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글들을 많이 쓰셨던 것 같아요.

 

오윤식 네. 검찰 권력을 혁파해야된다는 글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후에 쓴 글이예요.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한때는 신영철 징계해야 한다 이런 주장도 하고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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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2009년에는 용산철거민사망사건진상조사단이 민변 안에 꾸려지게 되는데 당시 조사단장이 장주영변호사님이셨고, 오변호사님이 법률지원팀장을 하셨어요. 갓 입회한 신입회원이나 다름없는 입장에서 중책을 맡으셨는데, 이때 활동에 대해서 잠깐 소개를 해주세요.

 

오윤식 그때 용산 사건에서 발화가 어떻게 됐는지, 사망자들이 어떻게 돌아가시게 됐는지 주로 그 부분을 중점으로 원인 규명을 하려고 했고 보고서를 발간했어요.

 

김지미 그 당시 검찰이 수사기록을 끝까지 내놓지 않았잖아요. 진상조사를 한다고는 하지만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오윤식 유가족 인터뷰를 하고 그랬는데 사실 자료가 많지 않아서 어려움이 있었어요.

 

김지미 이외에도 언소주(언론소비자주권캠페인) 관련 소송도 하셨는데 이 사안도 촛불집회 와 연관이 있고 그러고보면 오변호사님은 민변 차원의 활동엔 적극적으로 결합하시는데 비해 의외로 위원회 활동은 잘 안하시는 거 같아요.

 

오윤식 노동위 소속이긴 한데 제가 촛불 때 즈음해서 민변 활동을 하다보니까 그런 사건 위주로 활동을 한 거죠

 

김지미 검찰혁파 얘기도 하셨고, 신영철대법관 얘기도 하시는 것 보니까 사법위원회가 제격일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이건 순전히 사심을 채우려는 의도로 질문 드리는 겁니다.(웃음)

 

오윤식 저도 그런 생각은 있습니다.

 

김지미 네. 매월 3번째 목요일 회의입니다(웃음).

 

오윤식 당장 하겠다는 말씀은 못 드리겠어요. 사실 언론위 활동을 해볼까 이런 생각이 있어요. 책 쓰는 것하고 연결이 돼서.

 

김지미 표현의 자유 쪽에 관심이 있으신 거죠?

 

오윤식 네. 선거법이 말과 글을 통제하는 시스템이거든요. 표현의 자유 측면 또는 국민의 선거의 자유, 선거 참여의 자유를제약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언론위 활동을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죠.

 

김지미 말이 나온 김에 최근에 ‘후보자와 정당을 위한 공직선거법 해설’이라는 책을 내셨어요. 책이 굉장히 두꺼워요. 천 페이지 가까이 되는데, 이걸 변호사님이 혼자서 쓰셨잖아요, 이게 몇 년 동안 작업을 하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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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식 몇 년은 아니고요, 재작년이죠. 2014년 11월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김지미 1년이 안 걸린 거네요.

 

오윤식 작년 10월 초반에 최종 탈고를 했어요. 그런데 선거법이 12월에 두 번인가 바뀌었어요. 그래서 고치고 해서 제가 최종 넘긴 것은 12월 20일 정도에 넘겼거든요. 그런 것까지 하면은 1년은 넘게 걸렸죠.

 

김지미 이 책을 저술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오윤식 제가 2014년 지방선거 때 박원순시장님 캠프 법률팀에서 일을 했었죠. 선거자문을 주로 했어요. 캠프에 들어가서 선거운동을 하는데 문제가 많이 생길 수 있거든요. 그래서 그 때 서류로 써 놓은 것이 있었어요. 선거 끝나고 6월 말 정도에 생산한 문서를 보니까 300장정도 됐거든요. 그게 책에 반영은 많이 안 되었지만 이 책에 보면 선거운동 할 때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전팁이 들어가 있거든요. 그 부분은 참고가 많이 됐습니다.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죠. 처음엔 300쪽 되는 문서를 묵혀 놓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거를 활용해볼까 이런 생각도 있었는데, 조금 쓰다보니까 선거법이 워낙 조문이 많거든요. 그래서 쉽게 책 쓰는 거는 초중반에 쓰다가 포기하고 전문서적으로 나가게 된 거예요. 제가 사실은 처음에는 책 쓰는 기간을 3개월 정도 예상했었어요. 저도 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거에만 매달릴 수가 없어서 3개월 정도 예상을 했었는데, 쓰다보니까 엄청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시간이 늘어지면서 양이 많아지고 그리고 기록화 되는 거니까 신경 안 쓸 수가 없어요. 그리고 쓰다보면 욕심이 많이 생겨요. 그래서 수정도 하고 이것저것 논문도 많이 보고 독일 선거법 참고 하면서 그러다보니까 점점 늦어지다 10월 달에 탈고를 했죠.

 

김지미 말씀하신 것처럼 생업을 유지하면서 틈틈이 쓰신 거잖아요.

 

오윤식 대충 시간 계산을 해봤어요. 1주일에 토·일요일 쉬는 날 빼고 한 2-3일정도를 쓴 것 같아요. 사실은 힘들었어요. 일주일에 2-3일을 9시에 나와서 9시에 퇴근했거든요. 고시공부하듯이 책을 썼어요. 그래서 나중에 힘들다이런 생각 많이 했어요.

 

김지미 이 책 머리말에도 쓰셨지만 선거법이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에게도 어려운 정도로 많은 조문을 담고 있다. 이게 사실이거든요. 그렇다면 이 책의 장점을 한마디로 표현하신다면? 책에는 실전지침서와 이론서를 다 지향했다 이렇게 쓰셨는데, 내 책은 깊이 있는 이론도 담고 있으면서, 실전에도 강하다 이런 건가요?(웃음)

 

오윤식 실전팁, 그러니까 선거운동을 하면서 선거지침으로 삼을 만한 부분을 뽑아서 실전팁이라고 해서 30개 정도 들어가 있거든요. 그 부분을 따로 목차를 잡아 놓을까 이런 생각도 있었는데, 그걸 얘기하니까 누가 그것만 카피한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어서 목차를 안 잡았어요. 그런 부분은 선거 관계자들, 후보나 선거운동원이나 이런 분들한테 실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선거법 전문서로는 가장 최근법에 맞는, 충실한 내용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아까 독일법 얘기 잠깐 하셨는데 저희 정치관계법TF 방에도 변호사님이 독일법 올리신 게 있었잖아요. 직접 번역을 하신 거죠?

 

오윤식 네. 제가 직접 했습니다.

 

김지미 독일어는 언제 또 공부를 하신 거예요?

 

오윤식 독일어는 사시 준비할 때부터 했고요, 잘하는 수준은 아니에요. 그런데 독일어 번역할 때 법조문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해야 하는데, 독일연방선거법은 2009년도에 중앙선관위에서 번역을 해놓은 것이 있어요. 그래서 많이 참고를 하기는 했는데, 번역이 잘못된 것이 더러 좀 있어요. 독일연방선거법 부속법령 중에 선거심사절차법이 있는데, 그건 번역본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다 번역을 한 건데, 그래서 번역노트도 100페이지가 넘게 있어요. 일일이 찾아가면서 했기 때문에 그것도 대단히 힘들게 했습니다.

 

김지미 사시의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공부했다고 해도 누구나 이렇게 번역을 할 수 있는 건 아닐 텐데요.

 

오윤식 제가 번역만 하는데 한 달 가까이 걸렸거든요. 독일에서만 쓰는 전문적 용어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독일법령용어집이 있고, 사전 같은 게 2권 있는데 그런 책도 많이 참고해가면서 한 거죠.

 

김지미 내가 직접 번역을 해보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대단한 것 같아요.

 

오윤식 독일 논문을 읽고 논문을 써봐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지금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그 전에 논문을 한 10편 정도 썼는데 그거는 독일 논문은 참고 못하고 법조문 정도는 참고 했는데, 저도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오고 그래서 해석을 하고 그러면서 시간이 걸려요.

 

김지미 논문을 많이 쓰셨네요. 보면 분야를 넘나들고 있어요. 공직선거법 관련된 것도 있지만, 노동법에 관련 된 것도 있고.

 

오윤식 지금 쓰고 있는 논문은 선거구획정에 관한 것이에요.

 

김지미 역시 지적이시군요. 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어요(웃음).

 

오윤식 지적인 것보다 제가 스스로 학자변호사를 지향하고 있어요. 꼭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아요. 변호사는 원래 사건을 많이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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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평생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 변호사다 라는 말이 있는데 관련해서 보면 변호사님이 민변에 발전전략TF에서도 정책연구소 얘기를 많이 하셨잖아요.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되는 건가요?

 

오윤식 그렇죠. 저는 우리가 법률가이기 때문에 법적 영역 또는 정책적 영역으로 사회에 기여를 해야 한다, 사회에 영향 미쳐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민변 기존의 활동 흐름을 보면 그게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TF할 때도 그런 얘기를 많이 했었는데, 민변 내부에 연구센터라든지 아니면 별도로 연구소를 차리게 되면 기존 위원회 중심의 활동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거든요. 그래서 공익변론센터가 우선 설립되게 된 걸로 이해를 하고 있는데 장기적으로는 연구소 형태의 정책연구소 이런 것을 만들어서 위상을 높여야 한다 이런 생각을 좀 하죠.

 

김지미 당장의 현안들이 너무 많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당장 성과가 없더라도 쭉 밀고 나가야 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러기에는 민변이 예산이나 인력이 부족한 게 사실이잖아요. 변호사님이 생각하기에 민변에서 이런 것들은 공부를 해봤으면 좋겠다 하는 주제나 분야가 있을까요?

 

오윤식 제 책과도 조금 관련이 되어 있는데, 제가 독일선거법보면서 깜짝 놀란 것이 독일에서는 선거운동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그래서 선거운동 자체를 규제를 안 하는 거예요. 선거 비용 자체도 규제를 안 해요. 선거비용은 금권선거 이런 측면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규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는데 법에서 규제를 안 하고 정당간의 자율협약으로 규제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법에 없어요. 그런 것을 보면 아주 선진적인 선거법 모델이라고 할 수 있죠. 반면에 우리 선거법에는 선거운동에 관한 규제조항이 많아요. 우리 선거법은 일본 시스템이거든요. 이게 일제시대에 성립한 억압적인 선거법 체계거든요. 그게 1958년 정도에 참의원이 선거법 개정하면서 그런 시스템이 들어온 거예요. 그 전까지는 우리 법도 강하게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체계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선거법 자체가 일본 잔재인 측면이 있죠. 그런데 계속 가져가잖아요. 지금 정치권에서는 기득권을 지키는 차원에서 규제하는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선거법을 연구할 때 비교법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김지미 말씀하신 바에 의하면 우리가 선거운동이라든지 선거방법에 대해서 규제를 해 온 것이 50년, 60년 넘었단 말이죠. 그런데도 계속 선거비리, 금권·관권선거 그런 얘기가 나오잖아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규제를 하는데도 이런데, 규제를 풀면 돈 있는 사람, 힘 있는 사람이 결국 이기는 거 아니냐. 독일하고 비교를 해보면 독일은 규제를 하지 않음에도 선거과정에서의 부작용이랄까 그런 것들이 우리나라보다 덜하다면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온다고 보세요?

 

오윤식 우리의 정치문화나 국민의 의식 수준의 차이,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김지미 오히려 시민들 사이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진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런 문화가 덜 발달됐다라고 보시는 건가요?

 

오윤식 네, 그렇게 볼 수도 있어요. 그래서 학자들 중에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많아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 60년 동안 우리가 억압적으로 포괄적으로 강하게 규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비리, 부정선거 이런 게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것은 규제하는 시스템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국민의 자율에 맡기는 시스템 도입을 할 필요가 있다. 저도 그런 생각에 공감을 하는 거지요. 우리 선거법이 강하게 규제를 하는 건 관권선거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3·15부정선거라든지 최근 2012년 대선도 광범위한 부정 관권선거 의혹이 있는데, 그런 것은 규제 안 할 수가 없죠. 저도 전면적으로 선거법 규제를 풀자 그렇게 주장하는 건 아니에요. 공무원의 선거관여 이런 것은 현행 수준 아니면 거기보다 강하게 할 수도 있겠죠. 다만 일반 국민들의, 유권자들의 선거운동의 자유라든지국민의 선거 참여의 자유를 너무 강하게 규제를 하는 게 문제라는 거예요. 선거가 어떻게 보면 국민들의 의사를 표현하는 과정인데 국민들을 구경꾼으로 전락시키는 측면이 있죠.

 

김지미 기존의 규제를 계속 이어가고자 하는 건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세력에 더 유리한 것은 사실인 것 같아요. 앞으로 총선·대선을 앞두고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가 더 위축될 것이다 라는 우려가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같은 연장선상에서 언론위 활동을 하고 싶다 라고 말씀을 하시는 거죠?

 

오윤식 그런 측면도 있죠. 3월 정도 즈음에 선거 분위기가 조성되면 표현의 자유라든지 국민의 선거운동 확대라든지 그런 측면에서 민변이 역할을 일정부분 해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 그때 제가 역할을 좀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김지미 총선이 끝났다고 해서 그런 사건이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어느 정도 마무리 되면 사법위 오시는 걸로(웃음). 변호사님 책상에도 이게 있지만, 따로 물어보려고 했던 것이 이 사건인데요, 종교인 소득세 납부자료 정보공개청구소송에서 일부 승소를 하셨고 이 사건을 맡으셨는데 이게 보니까 원래는 한겨레 21이 국세청에 성직자의 소득세 납부 현황 등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는데, 비공개 결정이 났고 이 기사를 보고 변호사님이 먼저 한겨레 21에 연락을 하신 거죠?

 

오윤식 네. 고나무 기자인데 기사를 읽고 나서 “제가 공감을 해서 무보수 대리를 해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먼저 연락을 했어요. 개인적으로 같은 국민이기 때문에 종교인도 과세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국가 운영의 근본이되는 것이 세금이거든요. 종교인들이 하늘나라에서 봉사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 내에서 봉사하기 때문에 당연하게 세금을 내야 한다. 이런 생각이 강하게 있었어요. 그래서 기사보고 제가 메일을 보냈죠. 제가 1심 중간부터 같이 했는데 2심에서 이겼어요. 그런데 대법원에서는 공개거부처분이 옳다고 해서 졌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져서 아쉬운 측면이 있죠.

 

김지미 성격이 보기보다 적극적이신 거 같아요. 최근에는 민중총궐기 대응 변호인단에 참여를 하고 계시잖아요. 저희가 당시 살수차 영상에 대해서 증거보전신청을 해서 그건 홍성지원에서 기일을 진행했었고 내일 다른 살수차 영상에 대한 증거보전 관련해서 광주를 가시죠?

 

오윤식 백남기 선생님은 분명한 국가폭력의 피해자이시죠, 국가 공권력의 발동, 특히 형사 사법절차에서는 염결성이라고 하잖아요. 적법절차를 준수하면서 공권력이 발동되어야 하는데 그런 걸 준수하지 않는 공권력은 사실은 흉기와 같다고 생각을 해요. 백남기 선생님 같은 케이스가 그런 사례잖아요. 기본적으로 이건 아니다 싶어서 참여를 하게 됐죠.

 

김지미 내일 검증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잠깐 소개를 해주세요.

 

오윤식 홍성지원에서는 충남청 소속 살수차에 달린 영상에 대해서 어떻게 물포를 쏘고 백남기 선생님이 그때 당시에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떻게 피해를 입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검증을 했어요. 이번에 광주지법에서 하는 검증은 백남기 선생님을 피격한 살수차 말고 다른 살수차에 대한 것인데 당시 조준 살수를 했는지, 고의성이 있었는지를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김지미 민변의 열혈 회원으로서 앞으로 민변이 나아갈 방향, 민변의 발전을 위해서 평소에 생각하신 바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오윤식 초반에 말씀드린 부분이기도 한데, 민변이 장기적으로 연구소를 설립해서 정책 역량·연구역량을 강화해야 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대의원회 자료집을 보니까 공익변론센터에서 위원회에서 포섭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연구에 대한 지원 같은 내용이 있던데 그런 계획이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김지미 기승전 정책연구소네요(웃음). 정책연구소 필요하죠. 예를 들면 저희가 정치관계법 TF를 만들기는 했지만 평소에 이런 분야에 대한 연구가 되어 있으면 정치관계법 개혁 논의가 있을 때 민변이 선도적으로 연구 성과물도 내놓고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전문가 단체로서의 성격을 확실히 하려면 그런 쪽에 역량이 좀 투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있어요.

 

오윤식 제가 책 쓰면서도 느낀 건데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어떤 것도 바뀌지 않는다. 사회적·정치적·경제적 미완의 불완전한 개혁에 머무를 것이다. 우리가 법률가인데 가끔 잊어버리는 측면이 있다고 보는 게 정치하는 사람들이민주주의 구현 수단인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고, 그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통해서 법을 만들어 내잖아요. 정치인들이 국민의 선택을 받아서 국회에 들어가서 법을 만들면 그 법에 우리 사회의국민·모든 기관이 지배를 받는 거잖아요. 그래서 민주주의하고 법치주의가 결합이 될 수밖에 없고 저는 그걸 ‘민주법치주의’ 이렇게 표현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 회원이 정치권에 적극 나가서 세력을 형성해서 법을 통해서 사회에 기여를 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편이죠. 그래서 입후보 하신 분들이 제 책을 보시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웃음)

 

김지미 정말 좋은 말이네요. 올바른 정치개혁 없이는 어떤 사회개혁의 성취도, 어떤 경제개혁의 완성도 어렵고, 가능하더라도 불완전한 미완의 개혁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올바른 정치개혁이 가장 중요하다.

 

오윤식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독일의 사민당 정도의 정치세력을 만들어서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려고 했다고 생각하는데 잘 안됐었죠. 그런 것이 좀 아쉽다고 생각하고요, 앞으로 정치혁명, 민주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갈 정치세력 형성의 중요하다. 그 세력 형성에 민변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저도 미약하게라도 그런 역할에 기여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김지미 혁명이나 개혁 이런 말로 회원 인터뷰를 끝맺기는 처음인 것 같아요. 변호사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민변 회원으로서 시대적인 소명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 오변호사님을 자주 뵐 것 같다는 예감도 들구요.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월, 2016/03/1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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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가 12년 만에 마련한 보금자리 희망모울은 단장을 하며 시민연구공간으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 유독 심했던 한파 때문에 일정이 조금 늦춰졌지만, 새 공간에서 시민분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리는데요. 3월의 어느 날, 희망모울을 마련하는데 큰 도움을 주신 이일훈 건축가님과 희망모울 설계와 건축을 맡고 계신 박창현 건축가님(에이라운드 건축 대표)을 만났습니다. 두 건축가님은 어떤 인연으로 희망제작소와 함께하게 되셨을까요? 그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번 글은 이일훈 건축가님과의 대화를 담았습니다.

희망모울을 만드는 사람들 ① 이일훈 건축가
“희망제작소가 더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희망제작소가 12년 만에 마련한 보금자리 희망모울은 단장을 하며 시민연구공간으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 유독 심했던 한파 때문에 일정이 조금 늦춰졌지만, 새 공간에서 시민분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리는데요. 3월의 어느 날, 희망모울을 마련하는데 큰 도움을 주신 이일훈 건축가님과 희망모울 설계와 건축을 맡고 계신 박창현 건축가님(에이라운드 건축 대표)을 만났습니다. 두 건축가님은 어떤 인연으로 희망제작소와 함께하게 되셨을까요? 그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번 글은 이일훈 건축가님과의 대화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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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규(이음센터 팀장, 이하 한) : 희망제작소와 어떻게 인연이 닿으셨나요?

이일훈 건축가(이하 이) : 희망제작소가 수송동에 있을 때부터 제 후배들이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관심이 있었지요. 어느 날, 한 모임을 통해 알게 된 희망제작소 연구원이 사옥 이전 관련하여 자문이 필요하다고 찾아왔습니다. 제 직업이 건축가다 보니, 새 건물 건축 설계를 부탁하려는 줄 알았지요. 대화를 나눠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건물을 매입하려는데, 어떤 것이 좋은지 살펴봐달라는 것이었어요. 열 개 남짓의 건물을 후보로 뽑아서 가져왔더라고요. 그중 어떤 것을 사는 게 좋을지 의견을 구하는 조금은 황당한 이야기였습니다.이건 건축가가 아니라 부동산 중개업자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연구원은 건물을 사서 새 공간으로 만들려면 매매계약서를 잘 써야 하는 것은 물론, 법적·시간적·공간적으로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 많다고 하며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건물 내부를 원하는 공간으로 설계하는 것 역시 부동산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이 부분에 공감하고 도움을 주기로 했습니다.

: 저희 새 보금자리 ‘희망모울’ 마련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는지 궁금했는데, 이런 뒷이야기가 있었군요. 건물을 매입하는 데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약속을 잘못했던 것 같아요. (웃음) 한 마디로 연못에 돌 던지기였어요. 좋은 건물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수 많은 후보를 하나씩 탈락시켜야 했습니다. 그래야 결정이 가능한 상황이었거든요. 선정이 아닌 탈락을 위한 검토는 힘들고 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약속을 했고, 제 재능이 희망제작소의 시민연구공간 조성에 도움이 된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겨울에 후보 건물을 직접 보러 다녔지요. 오래된 건물이라 도면이 없거나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도 있었어요. 추운 날씨에 돌아다니며 건물을 보고 검토하고 의견 내는 작업이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함께 다니던 희망제작소 연구원도 정말 많이 고생했지요.

: 작년 겨울은 정말 추웠는데요. 여러모로 많이 고생하셨을 것 같습니다. 최종 선정된 건물로 결정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 다른 것들을 계속 탈락시키다 보니 그 건물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건축된 지 오래되었다는 우려가 있긴 했지만요. 우선 수명의 한계를 살펴봤습니다. 오래된 건물치고는 튼튼하게 지어졌더라고요. 또 희망제작소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내부변형이 가능한지도 살펴봤는데요. 그 점도 잘 맞았습니다.이 건물은 마포구 성산동에 있어요. 홍대, 합정, 연남동, 성미산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과 인접해 있지요. 물론 소비를 비판하는 시선도 있어요. 그래도 사람이 모이는 곳에 희망제작소가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또 지하철역과 살짝 거리가 있지만, 걷기에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지요. 홍대입구역, 마포구청역, 망원역, 가좌역 등 여러 개의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어떻게 보면 장점이 될 수 있고요.사실 더 좋은 건물도 있었어요. 하지만 형편에 맞지 않았습니다. 재정에 맞춘 적절한 선택과 결정이 필요했습니다. 누구나 좋은 건물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희망제작소도 그랬지요.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었어요. 신축하거나 비싼 건물을 사는 것이 좋은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성산동 건물이 좋겠다고 희망제작소에 의견을 보냈어요. 저는 제 생각을 공유했을 뿐, 결정은 희망제작소에서 했지요.

▲ 희망제작소 새 보금자리 '희망모울'

▲ 희망제작소 새 보금자리 ‘희망모울’ 외관. 현재 내부 공사 중이다.

: 최종 선정된 건물에서 아쉬운 부분은 없었나요?

: 다른 부분은 모두 괜찮았는데, 외관이 제가 생각하는 디자인 건축과 매우 달랐어요. 제 시각에서 보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하지만 내부를 잘 바꿔서 쓰자고 했습니다.

: 여러모로 현실적 측면을 고려한 결정이 아닌가 싶네요. 그래도 건축가라면 양보 못 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요?

: 건축가는 건축에 관해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건축가가 건축하지 않은 건물도 사람들이 잘 사용할 수 있지요. 건축이 건축가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사용자 중심이어야 하지요. 내 고집과 철학에 맞지 않는다 해서 고집을 부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사용자에게는 다를 수 있으니까요.

: 희망모울 설계와 시공을 맡은 박창현 건축가와는 어떤 관계이신지요? 희망제작소에 소개해 주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로 있을 때 제 제자였어요. 졸업한 제자들이 사회에서 다들 좋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나가기는 쉽지 않아요. 박창현 건축가는 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계속 찾아오는 제자였어요.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교류하는 사이가 되었지요. 기특하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제자입니다. 박 건축가는 NGO를 이해할 수 있는 건축가예요. 그래서 이번 일을 함께하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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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현 건축가 : 선생님이 갑자기 연락을 주셨어요. 건물을 설계하라는 말씀은 안 하시고, 어디에 가면 이런 건물이 있으니 한번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마침 근처를 지나던 중이라 바로 가서 볼 수 있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한 인연 같아요. 이후에 다시 최종 결정된 성산동 건물 앞에서 만나 희망제작소와 새 보금자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요. 취지가 좋고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사실 저는 희망제작소와 큰 인연이 없어요. 희망제작소보다 선생님과의 인연이 더 큰 역할을 했지요. 선생님께 배우고 교류하면서 느낀 것은 판단, 행동, 사고를 존경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었지요. 제가 ‘존경’의 의미를 담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유일한 분입니다. 이번 일도 선생님의 권유로 하게 된 것이고요. 이렇게 희망제작소와 인연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집을 함께 만든다는 것은 아주 큰 인연입니다.

: 두 분을 보니 참된 스승과 제자의 모습이 느껴집니다. 희망모울은 어떤 공간이 되면 좋을까요?

: 건축물에서 중요한 것은 ‘사용자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가 실천되었나’입니다. 장애인용 화장실과 엘리베이터가 대표적이지요. 후보 건물 중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 없는 곳도 있었는데요. 그 부분이 마땅치 않더라고요. 최종 선정된 건물에도 엘리베이터와 장애인용 화장실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희망제작소에는 말이지요.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니까 모두에게 편한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희망모울은 모든 시민이 편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사람과 비슷해요. 우리 각자에게는 편한 사람과 불편한 사람이 있습니다. 착한 것과는 다릅니다. 그냥 편한 곳, 누구나 쉽게 와서 머물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또한 앞으로 희망제작소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민과 함께할 때, 그 내용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쉽게 쓰여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 사진 왼쪽부터 희망제작소 한상규 팀장,

▲ 사진 왼쪽부터 희망제작소 한상규 팀장, 이일훈 건축가, 박창현 건축가

: 마지막으로 희망제작소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 희망제작소가 더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는 희망제작소가 하는 활동은 크게 이슈가 되고, 그 반향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희망제작소만큼 잘하는 곳이 많아졌어요.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희망제작소는 역사가 있으니까 분명 더 잘할 수 있는 동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 보금자리 희망모울을 중심으로, 시민의 관심과 삶에 연결되는 일에 큰 역할을 해 주시길 바랍니다. 희망모울에서 시민과 시민이 더 많이 연결될 수 있길 바랍니다.

* 2편에서는, 희망모울 설계와 건축을 담당하는 박창현 건축가의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 글 : 한상규 | 이음센터 연구원 · [email protected]
– 사진 : 조현상 | 이음센터 연구원 · [email protected]

화, 2018/04/03-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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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인권변론센터 사람들, 이들이 궁금해요!

 

이혜정: 새로운 집행부 뉴스레터에 영광의 첫 손님으로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선정됐습니다. 요즘 인트라넷의 ‘이것이 궁금해요’와 ‘이 주의 변론’ 코너가 아주 인기가 좋고 덕분에 홈페이지 인트라넷도 좀 활성화가 된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이면에 있는 공익인권변론센터에 대해서 잘 모르는 회원들이 많아요. 센터가 어떤 일을 하고, 누가 일하고 있는지, 각자 자기 소개 부탁드릴게요.

송아람: 저는 민변이 첫 직장이고 2014년 10월부터 근무를 했습니다. 사무처에서 변론팀장으로 일을 하다가 이제 센터가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센터로 옮겨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수연: 네 저는 이수연입니다. 입사한지는 4년 5개월 정도 됐구요. 민변에 온 뒤로 제가 인복이 좀 있는 거 같아요. 처음에 이혜정 변호사랑 함께 일을 했는데, 이번에 공익변론센터에서 같이 일 하게 된 구성원들을 보면서 ‘아! 나에겐 인복이 있구나.’, 남자친구는 없지만 인복은 있구나, 그래서 너무 좋습니다.

송상교: 네.센터 소장입니다.(웃음)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동안 사무차장으로 일을 했었구요. 올해 2월부터 다시 또 이번엔 사무차장이 아닌 센터 소장으로, 민변 최초의 소장으로서 일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조영관: 네, 안녕하세요. 조영관이구요, 저는 5월부터 변론센터에서 반상근으로 월요일과 수요일와서 일을 하고 있구요. 주로 이제 회원들한테 보내는 이 주의 변론하고 이것이 궁금해요를 만들고 있고, 그외에 변론센터에서 진행하는 사건들이나 업무들을 나누어서 하고 있습니다.

공인인권변론센터 탄생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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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공익인권변론센터가 만들어지고, 이번 총회에서 소개도 됐는데 아직 공익인권변론센터를 잘 모르는 분들이 더 많아요. 센터가 만들어진 계기나 과정을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송상교: 갑자기 생긴 건 아니고, 사실 몇 년 전부터 민변 안에서 회원 1000명 시대가 되고 민변도 30주년을 맞으니‘뭔가 질적 도약을 해보자’ 이런 논의들이 많이 있었죠. 그 과정에서 ’민변이 제일 잘 하는 건 변론 아닐까, 맨날하는 거니까’, 해서 변론을 특화시켜보자, 변론센터를 일단 가장 먼저 특화시켜서 그걸 통해 시민들과 점점 소통을 해보자, 이렇게 얘기가 됐던 겁니다.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있었어요. 민변이 사실 맨날하는 게 변론인데 갑자기 또 무슨 변론센터냐, 무엇을 위한 것이냐에 대해서 회원들 사이에 논의가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이것은 이 변론센터가 눈으로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어떤 것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아무도 예상하기어려웠던 것 같고, 우리 준비하는 사람들조차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변론을 잘 하자는 것 외에 후배 회원들을 양성해보자는 고민도 오랫동안 있었어요. 공익변론센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민변의 젊은 회원들을 영입해서 양성해보자, 이런 논의도 있었죠. 아직까지는 우리 역량이나 재정이 녹록치 않은 부분이 있어서 약간 보류됐고, 그런 부분들을 장기적인 과제로 놓고, 민변의 변론을 잘 기획하고, 그것으로 시민들과 소통하고, 민변의 변론자료를 잘 축적해보자, 그래서 회원들이 수준 높은 변론을 하도록 지원을 해보자, 이런 걸로 압축이 되는 거죠.

이혜정: 지금 센터가 개설되면서 교육팀이 없어졌잖아요, 신입 회원들과 기존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사업도 중요한데교육사업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계획도 있나요?

송상교: 센터가 만들어지면서 교육업무를 센터가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줄다리기가 좀 있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젊은 회원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민변의 변론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도 그 젊은 회원들, 민변 회원들에 대한 계속 끊임없는 교육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교육도 센터의 중요한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예전 교육팀에서 신입회원 단기연수를 몇 년째 했었는데 오랫동안 변론을 해왔던 변호사들이 실무적인 팁들을 중심으로 강의를 하셨던 것이 반응이 무척좋았던 거 같아요. 민변 회원들이 변론과 관련해서 공익인권의 내용을 법정에서 잘 표현할 수 있는 스킬이나 증거신청의 방법 같은 실무적 지식에 대한 목마름이 많이 있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기적인 교육 외에도 그런 변론교육은 강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제일 큰 고민은 회원에 대한 교육 외에 시민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법률적인 정보를 제공하거나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들 같아요. 그게 참 제일 어려운 부분이더라고요.

구체적으로 공익인권변론센터가 하는 일은?

 

이혜정: 지금 센터가 진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소송은 무엇이 있나요?

송상교: 센터 1호 소송으로 저희가 시민청구인을 모집해서 통신자료 무단수집 헌법소원을 했고, 그게 1호 소송이에요.

송아람: 사실 변론팀이 외부에서 요청받은 것도 많이 하잖아요. 강정마을 구상금 청구 사건하고, 민중총궐기 집회 주최자 손해배상 소송 두 건을 연달아 했고요, 그 외에 우남찬가 사건이라든지… 그 정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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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현재 센터에서 진행 중인 중점사업을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송아람: 일단은 저희가 시민들과의 소통도 중요한 사업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어요. 기본적으로는 센터 이메일로 상담 내용과 자료를 받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고요. 전화 상담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전화상담은 원칙적으로 하지 않고 있어요. 센터가 4월 말에 개소를 했는데 그 뒤에 30건 정도 왔더라고요 그 중에 지금 민생위 공정경쟁팀에서 하고 있는 대한항공 지연발착 손해배상 청구 사건이나,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우남찬가 사건 등을 민변 사건으로 지정을 해서 기금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조영관: 공익변론센터는 민변이라는 회원조직에서 만들어진 공익센터이기 때문에 회원들을 위한 사업들을 같이 고민하고 있어요. 그래서 처음 만들었던 이 주의 변론인데요, 회원들이 변론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공유하고 회원들이 했던 변론을 소개하고 있어요. 또 신입회원들이 많아지면서 예전처럼 선배들이 알고 있는 노하우가 자연스럽게 모임 내에서 공유되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신입 회원들이나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기 위해 ‘이 주의 변론’ 안에 ‘이것이 궁금해요’ 라는 코너도 만들었습니다,

또 다른 중점사업으로는 디지털 도서관 구축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민변이 30년 가까운 시간동안 해왔던 변론 자료들이 회원들한테 충분히 공유되지 못했고, 또 디지털 시대가 됐으니까 지금까지의 자료들을 잘 정리해서 회원들의 변론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에요.올해 안에 런칭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혜정: 민변에 좋은 자료가 참 많아요, 민변 자료를 통해서 저의 시각으로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던 교수님들과 다른 실무진들의 의견을 접하기도 하거든요.

조영관: 저희가 디지털도서관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계속 논의하고 있는데 변론 기록을 가장 우선시 하지만 민변이 가지고 있는 토론회 자료집, 노동위원회에서 발간하는 노동판례비평, 4년에한 번 나오는 개혁입법과제 같은 정기발간물도 변론에 혹은 민변 활동에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기 때문에 그런 자료들 포함해서 이번에 그 디지털 도서관을 구축하려고 합니다.

인트라넷 스타 <이 주의 변론>&<이것이 궁금해요>

 

이혜정: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연재하는 <이 주의 변론>이나 <이것이 궁금해요> 인기가 높다고 하는데, 혹시 회원들로부터 반응이 돌아온 적도 있나요?

조영관: 어, 폭발적이죠.(웃음) 정말 ‘이 주의 변론’ 올린 것 중에 조회수가 90 정도 올라간 것들이 있어요. 제가 알고 있기로 민변 회원이 1000명인데 30% 정도가 인트라넷을 사용하신다면 300명이죠? 조회수 90이면 거의 한 1/3이 보셨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원 분들 중에서 아직 인트라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데, 인트라넷에 접속을 하시면 저희 <이 주의 변론> 게시판과 <이것이 궁금해요> 게시판이 있어요. 궁금한 점을 게시판에 올려주시면 저희가 매주 나가는 ‘이 주의 변론’에 소개하고, 내용에 따라서는 저희가 전문가를 직접 찾아서 답변을 받아서 올리기도 하고 있구요. ‘이 주의 변론’은 얼마 전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사건처럼 회원 분들이 진행하지 않았어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들은 회원들의 변론에 도움이 되는 판결이라고 생각이 되면 공유하기도 해요.

민변 회원이 굉장히 많은 소송들을 하고 있거든요. 저희 센터를 통해서 잘 수합이 안 되는 경우들이 있어요. 회원 분들이 진행하셨다가 의미가 있는 혹은 공유하고 싶은 판결이 있다고 하면 저희 민변 공익변론센터 이메일 [email protected]여기로 알려주시면 저희가 엄격한 선별 과정을 거쳐서 회원들에게 소개를 할 예정입니다.

송상교: ‘이 주의 변론’이나 ‘이궁’이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기존의 자료들을 잘 조직해서 소통하게하는 의미가 있죠. 센터가 민변 변론의 허브가 되어야겠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어요. 민변하고 연대 활동을 많이 하셨던 진보넷의 장여경씨 같은 분도 저번 운영위원회에서 “아니 민변에서 이렇게 많은 변론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 중에서 몇 퍼센트나 우리 회원들이 공유가 되고 있을까요? 가만히 살펴보면 너무 많은 땀들이 거기에 응축되어 있는데 이런 것들을 가능한 범위 내에서라도 회원들과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판결이든 나쁜 판결이든 회원들이 한 번 보고 자기가 하는 변론에서 ‘응용해봐야겠다’라고 할 만한 것들이 담겨있는 거면 최대한 소통을 해야겠다고 생각한거죠. 아마 회원들이 그런 자료에 대한 욕구가 있었던 것도 같아요.

이혜정: <이 주의 변론>이나 <이것이 궁금해요>의 선정 기준이 있나요?

조영관: 입소문이죠.(웃음) 저희가 지금까지는 각 위원회나 저희 변론센터 내에서 알음알음으로 회원 분들이 진행하시는 사건에 대해서 정보를 받아서 소개하고 있고요 간혹 가다가 이 주의 변론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본인의 사건을 소개해달라고 의뢰해오는 경우도 있어요.

회원을 위한 공익인권변론센터 사용설명서!

 

이혜정: 그러면 지부 회원이나 신입 회원들이 ‘나도 민변의 공익변론활동을 접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요?

송상교: 센터가 만들어진 후에 민변의 변론을 배분하고 지원하는 기능은 많이 확대된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해서 상근자가 네 명이 있고 민변의 회원들이 같이 할 만 한 사건들은 최대한 회원공지를 해서 많이 알리고 있거든요. 요즘은 실질적으로 참여하실 분들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때로는 우선지원 순으로 하기도 해요.

그런데 아쉬운 게 사실 개인적으로 말씀을 나눠보면 민변 변론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가 있으셔도 막상 기회가 되면 손드는 건 되게 쑥쓰러워하시는 거 같아요. 민변 변호사들이 샤이하다 이런 평도 예전부터 있었거든요.(웃음)

제 생각에는 이런 사건을 해봐야 어떤 느낌인지도 알고 다음에도 참여할 수 있다고 봐요. 이수연 간사님께서 관리하고 있는 공익인권변호사단이 있습니다. 기존의 민변이 집회라든가 이런 접견 상황이 생기면 변호사 접견을 하고 그랬었는데, 그것을 좀 더 확대하고, 또 간단한 집회 혹은 표현의자유로 인해서 기소된 분들의 변론을 맡는다거나, 이런 일상적인 공익인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틀입니다. 저희가 신청기간을 정해서 신청을 받긴 했지만 언제든 센터로 연락을 하시면 공익인권변호사단에 가입하실 수 있고, 저희가 일상적으로 드리는 사건에 참여하실 수 있는 기회가 있어요.

또 민변의 공익인권 기금이 있어요. 그리고 회원 누구나 자신이 공익인권변론을 하고 싶을 때 내 사건을 민변 사건으로 해다오, 의뢰인이 여러 가지 경제적 어려움이 있거나 한 상황이니 기금을 지원을 해다오하고 신청할 수 있는 제도가 있거든요. 필요한 변론들을 할 수 있는데 요긴한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제가 보기엔 유용한 거 같아요. 총회 자료집에 민변 변론규정이 있구요, 거기에 보면 신청서가 있어요. 그다음에 또 표현의 자유 사건 같은 경우에 표현의 자유 기금 규정과 신청서가 따로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이용하시면 되고 궁금하시면 전화하시면 되죠. 522-7283.

공익인권변론센터의 애로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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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센터가 개소한지얼마 안 됐지만 혹시 애로사항이나 힘든 부분은 없으셨어요?

조영관: 저는 민변에서 처음 일을 하는 거거든요. 상근하시는 분들은 민변에서 일을 하셨거나 오랫동안 해보셨던 분들인데…. 저는 4월달부터 공익인권센터에 월요일, 수요일 들어오는데 정말 깜짝 놀랐거든요. 일이 엄청 많고, 송아람 변호사 같은 경우는 거의 전화를 계속 붙잡고 있고…

사실 변론센터를 만들고 가장 필요한 것들은 공익 변론의 기획인데, 사실 기획을 하려면 일상의 여유들이 좀 있어서 좀 둘러보고, 뭐가 좋을지 고민도 해보고, 같이 머리도 맞대고, 토론도 해보고 해야 하거든요. 지금 공익변론센터가 생긴 지 한 3개월 정도 되는데 당장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차분하게 기획한다거나, 하는 짬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게 제일 아쉬운 부분이죠. 그건 좀 개선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송아람: 사실 조영관변호사님 말씀처럼 공익변론센터의 가장 큰 존재 이유는 기획소송을 활성화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 앉아있는 사람들이 기획소송 거리를 찾아내기는 굉장히 어려우니까 저는 시민들께 공익소송이 될 만 한 것들을 제보 받는 형식을 굉장히 중요시 하거든요. 사실 이메일이나 편지나 전화로 상담을 하다 보면우리 입맛에 맞는 사건은 그렇게 많지 않고, 그렇다고 또 완전히 ‘딱 봐도 상대할 사건이 아니다’ 이런 것도 많지 않고 대부분 사건은 그 어딘가 하나에 걸쳐있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그런 사건은 민변이 해오지는 않았는데, 이제 공익변론센터라는 게 만들어졌으니 회원분들도 그런 사건들을 좀 접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민변에서 약간의 기금이라도 지원해주고 적절하게 사람을 붙여서 공익 사건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분들을 우리 모임을 통해서 도울 수 있다, 이런 느낌을 주고 싶은데 그 매치시키는 작업을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워요.

그리고 저희가 제보하신 사건이 민변이 맡아서 진행하기에 부적절하다고 판단했을 때 그걸 또 말씀을 드려야 하는 것도 굉장히 어렵죠. 사실 시민들 기대에 어긋나는 답변을 드려야 하는 게 어려워요

송상교: 사실 송변호사가 우리 중에는 상담을 제일 많이 하시고, 제일 열정을 가지고 하고 있어요. 시민들하고 소통해서 의미 있는 소송을 기획하는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시민에 대한 인권지원 활동이죠.

센터가 생긴 지 몇 달 안 됐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참 커요. 어쨌든 센터가 만들어지니까 회원들도 거기에 대해서 기대를 하고, 또 시민들도 크게 기대를 하는데, 아직까지는 과도기인 것 같아요.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앞으로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는데 아직 사무처 업무도 함께하고 있는 상황이고, 매우 급하지만 실무적인 일들을 해야 될 게 아직 많이 있어요.

센터가 기본적인 역량 축적 단계를 넘어서 일 년에 서너건 정도 의미 있는 기획소송을 지속적으로 하는 상태가 되면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이 센터가 앞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시민이나 시민단체를 통해 현장에서 나오는 사례들로 소송을 기획할 수 있어야 하고 변호사들끼리 앉아서 신문 본다고 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앞으로 더 시간을 내서 시민들을 만나고 현장에도 가보고 단체들도 방문해보려고 합니다.

회원들도 자그마한변화지만 ‘이주의 변론’ 같은 게 생기면 좋잖아요. 회원들이 변론에 대해서 평소에서 생각들을 많이 하세요. 술자리 같은 데서 ‘이런 변론 해보면 어떨까’,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시는데 그런 것들을 센터로 주시면 저희가 그런 것들을 고민하고 기획하는데 큰 힘이 될 거 같은데 아직까지는 ‘쌍방향 소통이라는 게 쉽지 않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민변의 공익인권변론센터, 그 의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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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공익변론을 하는 곳이 공감도 있고, 희망을 만드는 법도 있고, 회원들은 아니지만 변협에 이런 공익재단도 있죠. 이런 곳들이 요즘 많이 늘어나는 추세인 것 같아요. 민변의 공익변론센터가 다른 곳과 차별화된 지점은 무엇일까요?

송상교: 기존의 공익 전담 변호사 그룹들과는 서로 상호보완, 상호협력관계인 것 같아요. 기존의 공익전담변호사그룹은 다양한 분들이 모여서 구체적인 공익인권의 주제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시잖아요.민변은 하나의 시민사회단체, 인권단체로서 특정한 주제에 집중하기보다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인권을 위해서 역할을 하는 것이고, 민변에 가장 많은 정보가 축적되고 가장 많은 변론이 여기를 중심으로 이뤄져요.

그래서 민변에 공익인권변론센터가 만들어짐으로 해서 기존의 공익인권전담 변호사 그룹들에게는 변론의 정보를 제공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민변이 자체적으로 센터에서 특정 주제를 특화를 해서 할 것인지도 우리가 면밀히 살펴봐야 할 거 같아요. 공익변론의 공백 부분이 있다면 일이 잘 시작될 수 있도록 초기 세팅을 할 것인가 이런 고민이 우리한테 놓여있는 과제인 것 같아요.

이혜정: 변론센터가 회원, 시민과의 접점에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계획은 어떤가요?

개인적인 아이디어로는, ‘이주의 변론’을 반기별로 묶어 회원들에게 배포하거나, ‘이궁’도 계속 자료를 축적해 ‘변론팁’이라는 소책자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송상교: 지금은 낮은 단계의 축적을 하는 상황인 거 같고요. 이런 축적들이 지금 당장은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쌓이면 대단히 큰 자산이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주의 변론’ 같은 코너도, 예컨대 민변이 연말이 되면 ‘올해의 판결’ 이런 거 하잖아요 좋은 거, 나쁜 거. 사실 예전에는 민변 11월쯤 되어서 뭐가 있지 막 찾아보고 이랬는데 <이주의 변론>이 3월부터 계속 쌓이면 매주 올라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제대로 된 판결을 선정할 수 있을 거예요.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가 ‘이궁’ 이런 것 중에 궁금한 변론의 팁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모아서 변론 매뉴얼을 만들어볼 생각이에요. 형사, 민사, 각 주제별로 했던 거.

그런 것들이 일정 단계가 되면 의미 있는 매뉴얼이 되고 매년 업데이트가 되겠죠. 디지털도서관도 이번에 처음으로 틀이 만들어지는 건데 사실 틀만 만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자료가 계속 쌓여야죠. 이주의 변론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거기로 들어가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민변이 제일 못하는 게 사실 뭔가 알리는 거예요. 활동가들도 민변이 제대로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데 어떻게 하면 시민들에게 ‘아, 민변이 이렇게 많은 활동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끔 민변의 활동을 알리고, 시민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그게 가장 큰 고민이에요.

이혜정: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회원이나 시민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말 등 가볍게 정리하고 마무리 지을께요.

이수연: 소장님 말씀대로 위상도 더 높아지고 일도 더 많아질 텐데 거기 사업들이 원활하게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변호사님들 돕는 제 역할도 많이 무거워질 거 같아요. 역량도 부족해서 굉장히 걱정도 많이 되는데… 변호사님들과 함께 잘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송상교: 제가 사실 다른 인터뷰에서도 정부법무공단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처음에는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계속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괴물같은 조직이 되어버렸고, 대법원 판결도 바꿔내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제 역량 있는 변호사 개인의 힘으로는 돌파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여럿이 모여서 조직화된 활동을 해야 이런 것을 넘어설 수 있는 논리를 만들고 정보를 축적할 수 있다는 거죠. 저는 그래서 센터가 중요하다고 봐요.

그러다 보니까 많은 분들이 센터에 기대를 하시는데, 센터가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서 만들어진 거라서 개인적으로도 부담이 돼요. ‘말아먹으면 안 되는데, 뭔가 좀 성과를 남겨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고 조바심이 많이 나요. 그런데 한 편으로는 ‘성과주의에 빠지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도 되게 많이 해요. 몇 년이 될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센터가 의미 있는 활동이었구나’라고 평가받는 게 중요한 거지 지금 당장 의미 있는 가시적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닌 거죠. 그래서 회원 여러분도 함께 좀 호흡으로 보시고 많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송아람: 저는 회원들께서 좋은 사건이라고 생각이 되시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변론하는데 망설이고 계신다라든지 아니면 민변 회원으로서 좋은 공익활동 해보고 싶다 하시면 언제든지 센터로 전화 주시면 최대한 같이 할 수 있는 방안 찾아볼 테니 언제든 전화 주시면 좋겠습니다.

익명: 서울지방변호사협회 프로보노지원센터가 얼마 전에 생겼는데, 유수의 로펌이 여기에 매달 얼마씩 기금을 후원하는 시스템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조금 더 성장하고 그 기능을 조금 더 충실하게 또 하려면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민변에서 말씀하셨던 신입변호사 교육프로그램 등을 센터에서 진행하려면 예산도 있어야 하고 인력도 충원되어야 해서 간단치만은 않거든요. 지금은 어렵게 빠듯하게 첫발을 떼고 있지만 이런 취지들을 잘 읽어 이해하신다면 훌륭하신 선배님들의 따뜻한 후원과 이런 게 현실적으로 좀 이루어져야 되지 않나, 이런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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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 갑자기 지원이 막 몰려들 것 같은데요(웃음). 이상 오늘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월, 2016/06/27-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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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표지


날이 흐렸다. 가로수 길의 반들반들한 얼굴은 빗물에 화장이 번진 듯 얼룩덜룩했다. 가로수길 입구에 경찰 버스와 앰뷸런스가 늘어서 있었고 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커다란 소방차 두 대가 길을 가로막고 있다. 7월 7일 오전 10시. 골목 안쪽에서 한 무리의 의무경찰들이 우르르 걸어 나온다.

 

가로수길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니 ‘우장창창’이라는 가게가 나온다. 이날 ‘우장창창’이 있는 골목은 시가전이라도 치른 듯 어지러웠다. 검은 옷을 입은 용역직원들이 벽을 치듯 서 있었다. 명도집행이 한 여름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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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기 하나 없는 민낯에 청바지, 운동화 차림. 새벽부터 여러 번 울었는지 눈 주변이 달아올라 빨갛다. “새벽에 왔었어야 돼”라고, 좀 전의 상황이 어땠는지 말하는 목소리가 울먹거린다. 스마트폰을 쥔 주먹으로 눈가를 몇 번 문질러 눈물을 닦는다. 우선 상황이 종료되자 여기저기 바쁘게 전화하고, 상의하다가 한참 지나서야 겨우 파란 나무 평상에 앉아 이제 인터뷰 하자고 말한다. 지난 29차 총회에서 모범회원상을 수상한 김영주 변호사(연수원 34기)를 이 곳에서 만났다.

 

음악을 좋아하던 꼬꼬마, 임차상인의 변호사가 되다

김영주 변호사는 농담처럼 “어릴 때 귀엽다는 말 한 번 못 들어본 게 한이 됐다”고 말했다. 몸이 약하고, 키가 크고, 얼굴이 빼쭉한 ‘꼬꼬마 김영주’는 ‘귀엽다’는 말을 한 번만 들어보고 싶었다. ‘꼬꼬마 영주’의 부모님은 자주 싸웠다. ‘꼬꼬마 영주’는 자주 혼자 남겨졌고, 늘 아파서 겨울이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학교도 자주 빠졌다. 학교를 자꾸 빠지니 성적은 당연히 나빴다. 가장 잘 나온 성적이 ‘수우미양가’ 중 ‘미’ 정도. 뭘 해도 인정받기 어려웠다. 학교 수업에서 시를 쓰면 “네가 쓴 거 아니지?”라는 의심을 받았다. 교사는 ‘꼬꼬마 김영주’에게 교실 바닥에 엎드려 다시 시를 쓰게 했다. 공부를 못하는 애가 이런 시를 썼을 리 없으니까.

 

이런 경험이 반복되자 혼자 상상하기 좋아하는 ‘꼬꼬마 김영주’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자랐다. 늘 혼자 있으니 친구도 거의 없었다. “꼬꼬마 김영주는 되게 시시하고, 재미없고, 좀 우울한 애였다…. 라고 말해놓고 보니 되게 불쌍하네. 그래도 뭐 밥도 많이 먹고 그랬어요. 씩씩하게. “

 

“아파서 집에 누워 있다고 책을 읽는 스타일도 아니고, 그 때부터 음악을 듣기 시작했죠.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 밖에 없더라고요.” 김영주 변호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른 뮤지션은 시규어 로스, 그루브 아르마다, 매시브 어택, 벡 등 1990~2000년대 브릿팝 뮤지션들이다. 얼마 전 작고한 프린스의 추모 영상도 있다. 일렉트로니카, 딥하우스도 좋아하고, 락은 ‘기본이니까 당연히’ 좋아하고, 인디음악을 틀어놓고 혼자 울기도 한다.

 

지금 ‘우장창창’과 대립하고 있는 건물주는 힙합 듀오 ‘리쌍’이다. “음악은 다 좋아해요. 힙합도 좋아합니다만, 리쌍은 오늘부터 안 듣는 걸로.” 뮤지션이 미우면 음악도 꺼려진다. 음악 하는 사람들 같은 감성도 없고, 그런 걸 예술로 풀어내는 능력도 없어서 예술 한다는 사람만 보면 눈이 하트 모양이 된다. 하지만 예술을 하는 사람이 작품으로 표현하는 그 감성이, 분노건 무엇이건 그 속에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중요시하는 마음이 깔려있지 않으면 꺼려진다.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고, 돈이 중요하면 돈만 있으면 되죠.” 그런 사람이 ‘애인이 떠났다’는 이유로 눈물 흘리는 노래를 만드는 건 모순이란다. 사람이 가장 중심이라는 전제가 없으면 예술이 만들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가끔은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게 씁쓸하다.

 

“내가 생각했던 음악, 늘 부러워하고 존경했던 예술가들이 그런 감성까지도 지어낸 거라고 하면 너무 슬프잖아요.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김영주 변호사는 “그 음악이 나를 신나게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임차상인들의 권리금 문제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도 음악 때문이었다. 늘 음악 들으며 놀고 싶었던 차에, 홍대 어디로 상담을 하러 간다는 동료 변호사를 따라 무작정 ‘음악 들으러’ 갔던 게 시작이었다. 이제까지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운동은 꽤 있었지만, 상인들이 만들어낸 상권과 부가가치, 상인들의 생존권을 지키는 운동은 거의 없었다. 이에 대한 법적 조력도, 그런 일을 하는 변호사도 드물었다. 김영주 변호사는 “전통적으로 상인들은 ‘도와주고 싶은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냥 (점포에서) 쫓겨나는’ 게 아니에요. 삶의 터전이 사라지는 거죠. 회사에서 잘못한 것도 없이 해고당하는 것하고 비슷한 수준의 문제더라고요.”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를 대화로 풀기는 대단히 어렵다. 감정적인 대립이 대화를 방해한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내 건물 내 맘대로 하는데 뭘 대화까지 해’ 하고 생각하겠지만, 임차인 입장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나가라’는 말을 들은 거 자체가 화가 나잖아요. 차분히 얘기할 정신도 없고.” 누구에게나 정의롭게 보이는 일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버는 일도 아니고, 심지어 승소율까지 낮다. 이기기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거의 지는 싸움이다. 쫓겨나는 사람에게 돈을 받을 수도 없으니 돈도 못 번다. “사실 변호사 하면 떠올리는 ‘멋진 법리로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그런 이미지하고는 거리가 멀죠. 쉬운 일은 아닌 거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에서 구성한 상가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를 중재하고, 합의를 이끌어낸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김영주 변호사도 조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민생위원회에서는 권리금 문제에 있어서 의견이 조금 달라서 민생위원회 이름으로는 활동하지 못했지만, 임차상인의 권리를 향상시켜야 한다는 점에서는 민변 내에 이견이 없죠.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같이 활동을 하게 될 거 같아요.”

 

변호사가 된 아웃사이더

김영주 변호사의 원래 직업은 회사원, 그 중에서도 공기업 직원이었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을 모아놓고 모르는 문제를 가르쳐주는 걸 꽤 좋아했지만 교사나 선생님이 되지는 않았다. 김영주 변호사는 대학 때 과외 아르바이트도 꽤 했고, 사실 꽤 잘했던 거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선생님이 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저 자신에 대한 자신이 별로 없었던 거 같아요. ‘애들이 (나를 보고) 나처럼 어리바리하게 살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을 했었죠.”

 

IMF 시절, 정리해고 문제로 사무실에서 재떨이가 날아다닐 정도로 갈등과 대립이 심해지자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도 ‘잔심부름’만 하는 계약직들이 있었어요. (정리해고 상황이 되니까) 그런 분들만 해고하려고 하고, 그 문제로 갈등이 심해져서 사무실에서 재떨이가 날아다니고 그랬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낮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쫓겨나야 하는 걸까. “그런 걸 보면서 법 공부를 하고 싶더라고요.”

 

민변에 가입하게 된 계기는 연수원 동기들이었다. 황필규, 송상교 변호사와 함께 인권법학회 1기로 활동했다. 그때도 총무였다. 연수원 수료 이후 자연스럽게 민변에 가입했지만 고용 변호사로 일을 하는 8년 정도는 말 그대로 ‘회비회원’이었다. 그러다 남의 고용 변호사로 일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어느 날 여성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김진 변호사에게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거냐’는 메일을 보냈다. “여성위원회로 오라”는 김진 변호사의 대답 이후 여성위에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개업한 이후 최근 2~3년 민변 활동을 하는 것이 하나하나 새롭고 재미있다고 느낀다.

 

그렇게 뛰어든 민변 활동이 회원들의 인정을 받았는지, 지난 29차 총회에서 김영주 변호사는 ‘모범회원상’을 수상했다. 아동위원회(이하 아동위) 위원들이 ‘아동위의 자랑 민변의 보배’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와 흔들었다. “지난 활동에 대한 평가보다는 앞으로 열심히 하라고 주신 거 같아요. 어쩌다 보니 활동보다 상을 먼저 받은 거죠.” 웃는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묻어난다.

 

‘아동위의 잡일과 개그 담당’ 김영주 변호사는 어디서나 분위기를 띄우고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오바, 육바를 떨어가면서” 열심히 떠든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꼬꼬마 김영주가 남아있다. 우울하고, 작고, 소심한 김영주. 그래서 영화도 ‘엑스맨’ 시리즈, ‘다크나이트’처럼 히어로지만, 아웃사이더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가 좋다.

 

특히 ‘엑스맨’ 시리즈는 보통 좋아하는 수준이 아니다. ‘엑스맨’의 한 장면을 은근슬쩍 언급하니 그 장면의 주인공이 누구고, 어떤 상황인지 술술 나온다. “저한테 ‘엑스맨’의 주인공들 절반만큼의 초능력만 있었어도 저는 신나게 막 살았을 거 같아요. 그런데 ‘엑스맨’ 주인공들은 남들한테 없는 초능력을 자랑스러워하기보다 자기가 남들과 다르다는 걸 고민하잖아요.” 남들한테 배척당하고 자기 스스로도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괴로워하는 주인공들이 끝내 힘을 합쳐 무언가를 이루고, ‘그럼에도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점이 김영주 변호사가 ‘엑스맨’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다.

 

“근본적으로 난 좀 아웃사이더인 것 같아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모두가 옳다고 동의하는 것보다, 시선이 미처 닿지 않은 곳에 더 눈길이 간다. “이미 많은 훌륭한 분들이 조력하고 있는 분야 말고, 아직 목소리가 나오지 못하는 분야들”, 예를 들면 아동 문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같은 쪽에 마음이 쏠린다. “남편이 의사인데, 응급실에서 일할 때 ‘살려주세요!’라고 소리소리 치는 사람보다 구석에서 조용히 있는 사람들을 먼저 찾아 치료했대요. 소리 지르는 사람은 아직 기운이 남아있지만, 정말 조용히 있는 사람들이 정말 위험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는 약자들도 있을 수 있잖아요.”

 

“우린 왜 서로가 좋았을까요?”

김영주 변호사가 여성위원회에서 민변 활동을 시작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무작정 메일을 보냈던 김진 변호사가 마침 여성위원회 위원장이었다. 둘째, 여성 문제에 대한 연구와 참여는 여성으로서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졌다. 여성위원회에서 조금씩 다루던 아동 문제를 위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참여하는 모임이 생기자 김영주 변호사도 참여했다.

 

김영주 변호사는 아동 관련 분야는 온 나라를 다 뒤져도 전문가가 많지 않은데, 그에 비해 다뤄야 하는 주제는 너무 광범위하다고 설명했다. 아동학대, 소년사범, 소년원 관리 문제, 누리과정, 입양, 베이비박스, 청소년의 참정권 행사…… 아기가 차마 살 수 없는 환경에 사는 아이들이 있으니 빈곤 문제, 주거 문제도 아동 문제가 될 수 있다. 빈부격차로 상처받는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월례회 때 모이면 ‘간단히 해, 간단히 해’ 하면서도 모니터링만 두 시간, 세 시간 걸려요.”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문제들이 모두 아동위가 다뤄야 할 문제가 된다.

 

“하여튼 쿵짝이 잘 맞았어요. 누구 하나가 똑똑해서 그런 게 아니고 서로가 좋았다고 해야 하나? 그랬어요. 그런데 우린 왜 서로가 좋았을까요? 그건 잘 모르겠네.”

 

아동위 활동을 하다 보면 ‘꼬꼬마 김영주’를 떠올리게 하는 아이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꼬꼬마 김영주’가 내어놓고 무슨 학대를 당한 건 아니지만, 마냥 환하게 웃을 수 없는 사연을 가진 아이들을 만나면 눈물이 앞선다. 김영주 변호사는 “그런 건 나쁜 점인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아이들에게 마음이 쓰이다 보니 일을 일로서 처리하지 못하고, 냉철하게 수단을 찾고 법조문을 찾아야 할 시간에 울어버린다는 얘기다.

 

“어떤 미혼모가 아이를 어떻게 했다, 이런 소식을 접하면 아동위원회 다른 분들은 ‘미혼모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게 사회적으로 어떤 보호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관련 법조문이 무슨무슨 법 몇 조인데 이러저러하다’라고 논의하시는데 저는 머리를 쥐어뜯고 화를 내는 거죠.”

 

아동의 피해, 아동의 권리는 직접 찾아 나서지 않는 한 부각되지 않는다. 피해자 집단이 형성되어 이들이 스스로 피해를 진술하고, 민변을 비롯한 시민단체가 결합하여 조력하는 과정이 존재할 수 없다. “아기들은 어른들처럼 ‘투쟁!’하고 외치지도 못하고, 두들겨 맞은 걸 경찰이 발견하고 ‘너 어쩌다 이랬니?’ 하면 설명도 못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댈 곳이 없다는 생각에 자기를 보호해주는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잖아요.”

 

이렇게 자신의 피해를 스스로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일들이 재미있고, 한편으로 마음 아프다. 보육시설의 아이들을 잠깐 만나고 돌아오면서 ‘내가 뭐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울면서 일하는 날도 많다. “어떨 때는 권리나 법의 측면으로 사건을 파악하는 게 아니라 나쁜 사람 혼내주고 싶다는 충동도 들어요. 가끔 변호사답지 않은 판단을 하거나 감정에 치우칠 때도 있어요.”

 

김영주 변호사는 김수정 위원장이 균형을 잘 잡고 있는데다 젊은 변호사들의 신선한 의견을 들으면서 자신이 오히려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민변 활동을 하며 어떨 땐 열등감이 느껴질 정도로 똑똑하고 훌륭한 선후배들을 볼 때마다 “어쩜 저렇게 똑똑할까” 하고 감탄하는 것도 낙이었다고. 그러면서도 “저는 저대로 훌륭한 선배들의 생각을 잘 이어받고 후배들한테 전하면 된다고 생각해요”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고맙고 미안하고 귀엽고 예쁜 아동위의 ‘아가변’들

김영주 변호사는 아동위의 젊은 변호사들을 ‘아가변’이라고 불렀다. ‘아가변’들이 그렇게 귀엽단다. “본인들은 다 컸다고 그러는데, 생각하고 논의하고 고민하는 모습이 다 너무 귀엽고 예쁜 거예요.” 김영주 변호사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아가변’은 ‘동물권’을 고민하다 아동위로 온 변호사들이다. 말 못하는 동물의 권리를 고민하다 마찬가지로 자기 권리를 소리 내어 말하고 주장할 수 없는 어린이들의 권리를 고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신기했다.

 

“놀 때도 너무 재미있어요. 확실히 젊은 분들이라 노는 것도 색다르고 귀엽고 재미있어요.” 아동위 워크샵에서 ‘아가변’들이 김현근 간사가 준비한 게임을 하는 모습이 그렇게 신기하고 귀여웠다고 한참을 설명한다. 벽에 현대사 연표를 사진과 함께 쭉 붙여놓고, 사진 속 사건을 맞추고 그 시기에 기억에 남는 일들을 얘기하는 게임이다. “우리 아가변들이 얘기하는 걸 하나도 모르겠는 거 있죠. 구석에서 김수정 위원장이랑 술만 마셨네. 한편으로는 자극도 되고, 젊은 감성에 사는 게 좋더라고요.”

 

단순히 나이가 어려서 귀여운 게 아니다. 김영주 변호사에게 사람은 누구든 다, 자기는 모르지만 저마다 하나씩 예쁘고 귀여운 구석이 있는 존재다. 자세히 뜯어보면 다 예쁘고 다 귀엽다. “회의 때 발언하면서 하는 손짓, 낙서하는 것만 봐도 귀여운 변호사님도 있어요. 사람은 다 예쁘고, 다 귀엽고, 다 똑똑하고 그래요.” 이렇게 얘기하면 바보 같아 보일까 걱정하면서도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단어 사이사이의 웃음에 묻어난다.

 

아동위 위원들에게는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이다. 아동위가 다뤄야 하는 스펙트럼이 넓다보니 일도 많고 해야 할 공부도 많다. “뭔가에 대해 결론이 나있고, 자료가 축적되어 있고 논문 쫙 나와 있고 이러면 어떤 사안에 대해 판단만 하면 되는데, 아동 문제는 그런 게 거의 없어요.” 이런 일이 왜 생기는지, 어떻게 해야 이런 일을 막을 수 있을지, 매번 새로 공부하고 처음부터 만들어나가야 한다. 각자 직장을 다니고 생업을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늘 숙제 내주듯 해야 할 일을 만들어주다 보니 미안해진다.

 

“아동위 자랑 좀 써 주세요. 일도 잘 하고, 무슨 문서 내고 이럴 때 늦은 적도 없어요. 미리미리 어쩜 그렇게 잘 해주는지…. 이쁘고 고맙고 그렇죠.”

 

김영주가 꿈꾸는 ‘발로 뛰는 변호사’

요즘 김영주 변호사의 고민거리는 아들이다. 정확하게는 아들에게 너무 신경을 못 써주는 것 같아서 고민이다. “아동학대 중에 방임이 있거든요. 나가서 ‘아동학대다, 방임이다’ 라고 소리 지르면서 집에 가면 우리 아들은 널브러져 자고 있고 그런 거죠.” 아이한테는 부모가 온 세상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가끔은 아들을 혼내야겠다 싶지만 제 풀에 웃겨서 포기한 적도 많다. “거짓말하고 숨기는 행동도 귀여워 죽겠어요. 좀 커서 수염 나고 대들고 이러면 쥐어박고 싶을 수도 있겠죠? 그 때는 무서우려나.”

 

가끔은 아들의 눈에 보일 세상의 모습이 이상하다는 것도 걱정이다. 친구와 주먹다짐 정도만 해도 ‘싸우면 안 된다’고 혼내지만, 정작 아이에게 ‘싸우면 안 된다’고 가르치는 어른들의 세상은 온통 싸움판이다. “당연히 법을 지켜야 하지만 꼭 저렇게 해야 하는지 싶고, 서글프기도 해요. 사람들은 왜 다 같이 웃으면서 잘 살지 못할까 하는 의문도 들고.” 재판도 결국은 법으로 하는 싸움이요, 법원의 모든 사건이 하나하나 다 싸움이니까.

 

또 다른 고민거리는 건강 문제. 어릴 때도 많이 아팠고, 지금도 그렇게 건강한 편이 아니다. 엄마가 아프면 나중에 아들이 힘들어질까 걱정이다. 몸이 아프면 웃고 살 수도 없으니 웃으며 살려면 건강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아들 따라다니면 많이 뛰게 되니까 건강해질 거 같아요. 아들한테 물어보고 싶었어요. 넌 왜 걸어도 되는데 뛰어다니니?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들 따라 열심히 뛰어다닐 걸 그랬어요. 그랬으면 많이 건강해졌을 텐데.”

 

인터뷰를 위해 가로수길로 찾아갔던 그 날 ‘우장창창’에는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다녀갔다. 제 의원은 뉴스 인터뷰에서 “변호사도 울고 있더라”고 말했다. 김영주 변호사는 새벽부터 가게 안에 소화기를 뿌려대는 용역직원의 폭력이 너무 심해서 울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변호사도 울고 있더라”는 그 말이 어쩌면 그 말이 김영주 변호사를 요약하는 문장일지도 모른다. 눈물이 앞서는 현장의 변호사. 故 신영복 교수는 비가 내릴 때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비를 함께 맞는 것이 진정한 연대라고 말한 적 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고 하지만 소리조차 못 내는 사람들은 전혀 보호를 못 받아요. 소리 내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좀 찾고 싶어요.”

 

그러면서 김영주 변호사는 ‘변호사’라는 직업 자체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약자들을 찾아내기에 쉽지 않은 직업이라고 말했다. 변호사는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 그의 말을 듣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변호사님, 제가 이만저만한 사정이 있는데요……”라고 찾아와 말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만, 김영주 변호사는 ‘변호사’라는 직업이 그마저도 못하는 사람들 곁에 있어야 하는 직업이라고 믿는 것 같다. 김영주 변호사는 인터뷰를 하던 중 자연스럽게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은지 말했다.

 

“법조문에서 느끼고, 판례에서 느끼는 것도 있죠. 멋진 이론을 제시하고 연구하는 것도 당연히 멋있어요. 그런데 어린이를 보호해야 하는 아동학대 현장이나, 철거 현장 같은 곳에서 느끼는 게 많아요. 젊은 변호사들이 이런 현장의 느낌 속에서 일을 하면 더 잘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저는 발로 뛰고 싶고, 너무 똑똑하지 않은 변호사가 되고 싶어요. 너무 똑똑해서 의뢰인이 한 마디만 해도 ‘내가 다 아니까 됐다’고 하지 않고, 내가 모르는 게 많기 때문에 현장에서 함께 느끼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는 그런 변호사가 되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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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위해 가로수길로 찾아갔던 그 날 ‘우장창창’에는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다녀갔다. 제 의원은 뉴스 인터뷰에서 “변호사도 울고 있더라”고 말했다. 김영주 변호사는 새벽부터 가게 안에 소화기를 뿌려대는 용역직원의 폭력이 너무 심해서 울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변호사도 울고 있더라”는 그 말이 어쩌면 그 말이 김영주 변호사를 요약하는 문장일지도 모른다. 눈물이 앞서는 현장의 변호사. 故 신영복 교수는 비가 내릴 때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비를 함께 맞는 것이 진정한 연대라고 말한 적 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고 하지만 소리조차 못 내는 사람들은 전혀 보호를 못 받아요. 소리 내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좀 찾고 싶어요.”

 

그러면서 김영주 변호사는 ‘변호사’라는 직업 자체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약자들을 찾아내기에 쉽지 않은 직업이라고 말했다. 변호사는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 그의 말을 듣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변호사님, 제가 이만저만한 사정이 있는데요……”라고 찾아와 말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만, 김영주 변호사는 ‘변호사’라는 직업이 그마저도 못하는 사람들 곁에 있어야 하는 직업이라고 믿는 것 같다. 김영주 변호사는 인터뷰를 하던 중 자연스럽게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은지 말했다.

 

“법조문에서 느끼고, 판례에서 느끼는 것도 있죠. 멋진 이론을 제시하고 연구하는 것도 당연히 멋있어요. 그런데 어린이를 보호해야 하는 아동학대 현장이나, 철거 현장 같은 곳에서 느끼는 게 많아요. 젊은 변호사들이 이런 현장의 느낌 속에서 일을 하면 더 잘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저는 발로 뛰고 싶고, 너무 똑똑하지 않은 변호사가 되고 싶어요. 너무 똑똑해서 의뢰인이 한 마디만 해도 ‘내가 다 아니까 됐다’고 하지 않고, 내가 모르는 게 많기 때문에 현장에서 함께 느끼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는 그런 변호사가 되려고 해요.”

화, 2016/07/12-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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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돌봄으로 가기위한 한걸음

 

인터뷰 : 김남희(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
패널 : 이경민(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윤지영(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배연희(전국요양보호사협회 협회장)
정리 : 이경민(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된지 올해로 8년이다. 그러나 제도 도입 초기, 공공 인프라 구축 없이 시행됨에 따라 서비스 공급에 대한 민간기관 의존도가 높았는데 장기요양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열악한 기관은 소멸될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과는 다르게 민간기관이 난립하는 등 불법운영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였다. 또한 국가 및 지자체의 관리감독 미흡으로 요양보호사의 노동환경 및 처우는 열악했고, 이는 결국 대상자의 서비스 질 저하 문제로 나타나게 되었다.
고령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수혜자는 늘어날 것이며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우리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최근 우여곡절 끝에 장기요양에 대한 국가책임강화, 요양보호사의 처우개선, 기관의 회계기준 마련 등을 골자로 한 노인장기요양보험법 개정안 통과를 이끈 숨은 주역들이 있었다. 그들을 통해 현재 장기요양제도를 진단하고, 좋은 돌봄을 위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았다.

 

자기소개 부탁한다.

배연희 : 현재 전국요양보호사협회 협회장을 맡고 있다. 전국요양보호사협회는 2008년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되면서 당사자가 주축이 되어 운영하고 있다.

윤지영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윤지영이다. 공감에서는 주로 노동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불안정한 노동자, 청소년, 이주노동자, 중고령 노동자의 노동문제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경민 :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다. 주로 보건의료, 돌봄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된지 벌써 9년째이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무엇이 있는가?

배연희 : 법과 제도가 여전히 미흡하다. 특히 방문요양 같은 경우, 임금가이드라인이 없어 시급이 다르고 최저임금 수준도 안 된다. 또한 처우개선비가 있지만 여전히 요양보호사에게 지급하지 않은 곳이 많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상자가 사망하거나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요양보호사는 실직하게 된다. 이처럼 요양보호사의 노동환경 및 처우는 굉장히 열악한 실정이다.

윤지영 :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사회보험으로 운영된다. 즉, 노인에 대한 요양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처음 제도를 설계할 때, 민간에 위탁하면서 민간장기요양기관이 필요이상으로 늘어나고 사회보험 누수현상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요양보호사 같은 경우 불안정한 고용의 형태, 강도 높은 노동 등 노동환경과 처우가 매우 열악하며, 전문가임에도 전문가로 능력을 발휘한다기 보다 국가공익파출부같은 처우를 받고 있는데 이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시행 이후,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지만 앞서 얘기한 것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19대 국회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법 개정을 추진했었다. 그 과정에 대해 설명해 달라.

윤지영 :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될 때, 정부는 경쟁을 통해 질을 높이겠다고 했으나그 예상은 빗나갔고 민간기관들의 난립, 그로 인한 부정행위, 요양보호사의 처우문제가 발생하는 등 제도가 엉망이 되었다, 그래서 당사자인 요양보호사협회, 여성단체, 노조 등이 모여 제도의 전면개편을 요구하고자 공대위를 2011년에 꾸렸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무엇보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의 전면개정을 주장했다.

 

처음 제안한 개정안과 통과된 개정안의 내용이 많이 다르다고 하던데...

윤지영 : 개정안을 만들기 전에 요양보호사 및 당사자, 공단, 기관의 이야기를 들으면 상황을 이해하려고 했으며 설명회도 진행했다. 그리고 1년 가까이 법안을 만들었고 마침내 의원을 통한 입법발의를 했다. 처음 개정안에는 기관 설립 허가제, 국가와 지자체 책임 강화, 요양보호사 및 대상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기관장과 대상자의 책무 강화 등의 내용을 담았었다. 그러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많은 내용들이 빠졌다.

이경민 : 김성주, 오제세 의원이 발의한 기관의 회계기준 마련에 대한 내용과 조정하면서 빠진 듯하다.

윤지영 : 회계기준 마련 안은 좋다고 생각한다. 공대위가 제시한 안 이외 정부가 발의한 내용이 먼저 통과되면서 조정된 것 같다.

 

개정안이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을 때, 참여연대가 결합했다.

이경민 : 작년 초 노인장기요양보험법 개정안 통과를 위한 연대 요청이 있었고, 그 때부터 참여연대 적극적으로 결합했다. 공대위에서는 일부 반대하는 의원실 및 지역사무실을 찾아다니며 면담을 하고, 피켓팅을 하였고, 참여연대는 입법로비 및 대중운동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것은 작년 5월 1일 법사위에 안건이 상정되었는데 노동절 행사에 나가서 계속 법사위 결과를 주목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일부 의원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하고, 그 이후 일 년 넘게 법사위에 상정조차 안됐었다. 의견서를 발표하고 법사위 및 보복위 의원들에게 의견서를 보내고, 홍보물을 만들어 의원들 트위터 및 페이스북에 게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19대 국회 마지막 법사위를 앞두고 반대하는 의원의 실명을 거론한 성명까지 발표하기도 했다.

윤지영 : 민간기관들의 반대가 엄청났다. 개정안이 통과 되지 않을 것 같아 의원들에게 편지를 썼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이며 모든 국민의 이해관계가 달려있는 사안을 특정집단의 반대로 법안 통과를 주저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배연희 : 참여연대가 함께 결합해서 의견서도 내고, 기자회견도 하는 등 더 힘을 모을 수 있었다.

이경민 : 개정안이 통과되기 위해 이 전부터 노력한 요양보호사분들과 공대위의 공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한다.

 

실질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의 노동 현실은 어떠한가?

배연희 : 인터뷰 전에도 요양보호사들과 상담을 했었다. 요양보호사의 노동환경과 처우는 문제가 많다. 최근 최저임금이 높아지면서 요양보호사의 시간은 줄고 노동일수는 늘어 토요일에도 근무를 하게 되었다. 평균적으로 임금이 5~8만 원정도 줄었다고 한다. 요양보호사들의 평균임금 55만 원인데 여기서 더 줄었다는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누가 요양보호사에 대한 직업을 전문직업으로 여기겠는가. 이와 같은 일은 대부분 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요양보호사의 처우 등에 대해 기관의 재량에 따라 운영되는 대표적인 사례인 것이다. 그리고 요양보호사의 처우와 노동환경이 열악하고 기관의 이익추구는 결국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인권침해 사례도 많다고 들었다.

배연희 : 방문 요양은 좁은 공간에 여자든 남자든 어르신과 함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장기요양등급 3급 같은 경우, 혼자 목욕을 시킬 경우가 있는데 그 때 성희롱이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일에 대해 기관에 건의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왜냐면 대상자가 끊기면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일을 하면서 발생하는 일에 대해 요양보호사를 보호하는 창구가 없다.

윤지영 :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사회에서 여성의 돌봄과 헌신을 당연히 여기고 있다. 제대로 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허드렛일이라고 생각한다. 시설에 근무하는 요양보호사들은 장시간 노동을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재가는 근무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임금이 보장되지 않는다. 현재 시간당 수가가 정해져 있는 바우처 방식이 문제인데, 노동에서 호출형 노동이라고 표현한다. 기관은 공급자로서 안정적인 노동 유지, 그에 대한 대가 지불 등을 해야 하는 책임이 있지만 이에 대해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대부분 요양보호사에게 책임을 떠맡게 된다.

이경민 : 그 뿐만이 아니라 인권문제,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심각하기 받아들여야 한다. 예를 들면, 사회복지사가 방문상담을 할 때, 특히 남자인 경우 2인 1조가 되어 움직이는 경우가 많은데, 요양보호사에게는 그런 가이드라인이 없다, 성폭력, 성희롱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배연희 : 이런 환경에서 좋은 돌봄이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좋은 돌봄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윤지영 : 시설 같은 경우, 24시간 맞교대 근무가 많은데, 밤은 휴게시간으로 잡아 임금으로 주지 않는다고 들었다. 사실 밤에도 대상자의 상태를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업무를 하고 있는데 말이다.

배연희 : 업무도 굉장히 강도가 높다. 어르신들의 몸무게가 70-80kg인 경우가 많은데, 체위변경을 하려면 50대 이상의 요양보호사가 온몸으로 노동을 한다. 그래서 요양보호사들이 근골격계질환을 비롯한 산재직업병 등이 많이 발생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요양보호사의 출퇴근시간을 체크하는 RFID를 적용하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이 아닌가 싶은데, 이것은 위치추척이고, 통신비 2000원도 요양보호사가 지불해야 한다. 동의를 받고 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설명과 숙지 없이 하는 것이 문제이다.

윤지영 :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이나 노인복지법도 그렇고 요양보호사의 책무는 얘기하면서 그들을 보호하는 제도는 미비하다. 그나마 이번 개정안을 통해 일부 요양보호사를 보호하는 제도가 시행 될 것인데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여전히 미흡하지만 개정안이 통과되었는데, 앞으로 우선적으로 보완되었으면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윤지영 : 법이 애매하게 통과된 부분이 있어 아쉽다. 그래서 앞으로 기관장의 책무, 난립하는 민간기관의 통제,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강화 등의 내용 등을 다시 정리해서 제안해야 할 것 같다.

배연희 : 요양보호사협회 협회장이기 때문에 요양보호사의 노동환경과 처우개선을 위해 제안할 수밖에 없다. 임금가이드라인을 통해 적당한 노동과 합당한 임금을 요양보호사들이 받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요양보호사의 책무 이외 업무를 명확히 하여 요양보호사가 전문가로써 사회적으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국가 및 지자체에서 업그레이된 교육을 하고 양질의 서비스를 대상자에게 제공할 수 있길 바란다.

이경민 : 이번 개정안이 여전히 미흡한 부분은 있지만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씩 바꿔나가길 바라며 많은 인내심이 필요할 것 같다. 무엇보다 재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각 구마다 공공재가서비스센터가 설립되어 운영의 본보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바우처 방식의 문제 등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 부분의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좋은 돌봄은 무엇일까?

윤지영 : 좋은 돌봄은 누군가의 희생을 기반하면 안된다. 돌봄의 가치를 인정하고 정당한 보상이 주어져야만이 성립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요양보호사 및 대상자를 존중하는 가운데 좋은 돌봄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배연희 : 고령화 시대에 요양보호사들이 어르신들의 삶을 돌봐주고 있다. 핵가족화되는 사회 속에서 요양보호사의 역할은 크다고 본다. 따라서 그들의 전문성을 인정할 때, 대상자에 대한 서비스 질도 높아지고 좋은 돌봄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요양보호사의 노동이 귀하게 여겨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경민 : 늙는다는 것은 절망과 좌절이 아니다. 늙음을 자연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이에대한 책임을 사회가 함께 져야 한다. 그래서 사회보험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되고 있지만 제도만 있을 뿐 내용은 여전히 허접하다. 돌봄은 누군가의 희생이 아님을 우리가 인식해야 하며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이 더 강화되어야 할 것 같다.

금, 2016/07/0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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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변 대 담: 선배에게 길을 묻다

민변 회원이 1,100명에 이르렀다. 누군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라지만 아픈 청춘을 겨우 버텨냈더니 혹독한 청년 변호사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티도 낼 수 없다. 난 변호사니까. 그런데 또 막막하다. 이럴 때 따스한 봄밤의 북두칠성 같은 길잡이가 나타나 길을 헤매지 않도록 안내해주고, 속내도 시원스레 얘기해 주는 선배가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민변 회원이 늘어난 만큼 같은 고민, 같은 궁금증을 가진 후배들이 부쩍 늘어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준비했다. 선후배 대담, “선배에게 길을 묻다”

chapter1. 선배 [先輩] : 지위, 나이, 덕행, 경험 등이 자기보다 앞서거나 높은 사람

태양마저도 녹아버릴 것 같은 타는 여름의 한 가운데에서 선·후배 변호사 4명이 어색하게 마주 앉았다. 류신환, 조숙현(연수원 30기) 변호사와 이 두 선배를 만나러 온 후배 심재섭(연수원 44기), 김경은(변시 5회) 변호사는 민변에 대해서도, 선배들에 대해서도, 변호사의 업무와 일과에 대해서도 궁금한 것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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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섭(이하 심): 저는 홍대 앞에서 사무실을 개업했습니다. ‘법률사무소 단’이라고, 딸 이름을 따서 지었습니다. 임신 중이었던 아내랑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합정동 카페거리 근처까지 갔는데 비가 내려서 거리 분위기가 참 운치 있고 좋더라고요. 그런 동네라면 출근할 맛이 나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아내랑 “여기로 하자”고 결정했습니다.

아직은 철이 없어서 그런지 수입에 대해 크게 마음이 초조하거나 하진 않습니다. 선배 변호사들이 종종 “수임료를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 같은 조언을 해주시는데 아직 수임료나 수입 면에서 그 정도에 미치지는 않습니다. 강문대 사무총장님이 커피를 사주시면서 “자네, 월급 500만 원은 가져가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뭔가 잘못된 거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아직까진 계속 잘못되어있는 거 같습니다(웃음)

류신환(이하 류): 저는 공익법무관 생활을 하고 2004년부터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거든요. 저는 취업을 해서 고용변호사로 시작했어요. 저는 고용이 안 되면 개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내가 개업해서 잘 할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해보면 아니었을 거 같아요. 지금은 내가 개업을 하면 잘 할 것 같은데, 그때는 아니었어요. 이렇게 말하면 조금 미안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사실 개업 변호사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취업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어떤 버팀목 같은 게 있는 것과 같아요. 심 변호사가 나보다 훨씬 더 독립적으로 잘 크고 있는 거지.

김경은(이하 김): 저는 변호사시험 5회 합격하고 대한변협에서 연수를 받다가 지금은 법무법인 향법에서 실무수습으로 3일째 일하고 있어요. 지금 현재로서는 고용으로 취직을 생각하고 있는데 변호사님 말씀 들으니까 저도 개업 쪽으로 생각이 기우는 거 같네요.(웃음)

저는 여성위원회 활동 하면서 조숙현 변호사님을 많이 만나 뵙고 있어요. 그런데 민변의 선배 변호사들을 만나고 대하는 것이 어렵더라구요. 잘못했을 때는 ‘혼나면 어떡하지?’하는 생각도 들고….

조숙현(이하 조): 그럼 혼나면 돼.(일동 웃음)

김: 그게 무서우니까…….(웃음) 아무튼 민변 선배님들과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는지 궁금해요.

조: 그게 어렵지. 여성위 엠티를 안와서 그래요.(웃음) 우리가 힘든 일을 하고 있으니까 마음이 안 좋고, 회의 때 모니터링 하면 이상한 댓글들 읽고 있어야 하고, 그러니까 회의 때는 표정들이 안 좋아져요. 그런데 MT나 송년회 같은 친목 행사 자리에서 후배들을 보면 평소에 사건들을 통해서 만나는 것보다 편하죠. ‘실수하면 어떡하지’ 하는 건…… 실수를 안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실수를 하면 지적도 받고, 선배들도 다들 그렇게 실수하면서 컸어요.

김: 최근에 강남역 사건 관련해서 선배 변호사께서 저한테 경찰에 제출한 서류의 복사를 맡기셨어요. 그런데 제가 컴퓨터에 파일로 저장되어있는 서류를 굳이 복사해서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를 못해서 그걸 안 한 거예요. 그러다가 갑자기 그 분이 경찰에 제출한 서류의 사본이 필요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런 실수를 하고 나면 저 때문에 선배 변호사들의 일이 많아지니까 죄송한 생각이 들어요.

조: 그럼 ‘최종 제출본의 사본을 내가 꼭 갖고 있어야하는구나’라는 사실을 하나 배운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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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사실은 변호사라는 게 사건들이 쌓여가면서 시야가 더 넓어지는 거 같아요. 우리가 이전에 법률공부를 하고 실무공부를 하고 했지만 그건 그야말로 공부 수준에 있는 거고 이게 내 걸로 만들기 위해서는 현실에서의 숙련이 필요한 거죠. 변호사 업무 했을 때 많아봐야 1년에 몇십 건이나 하겠어요? 그 중에는 법률적인 내용이 서로 겹치는 사건도 많고, 변호사가 하는 일 중엔 굉장히 간단하고 단순한 업무도 많잖아요. 사실은 우리가 배웠던 많은 법적 이슈들을 실제로 경험하는 건 많지 않다고요. 제일 좋은 건 내가 사건을 맡아서 깊이 공부하는 거죠. 그 사건과 연관된 다른 판례들을 열심히 공부해보고, 이 사건에서 이 부분을 어떻게 하면 결과가 어떻게 달라질지 스스로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것이 제일 좋은데 또 공부나 경험이 부족하면 그것 자체도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저는 법률신문 추천해요. 판례공보는 판례 자체니까 잘 안 들어오잖아요. 그런데 법률신문은 기사 형식으로 제공하니까 좀 더 실감나고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어요. 법률신문 일주일에 두 번 나오는데 굉장히 많은 사건들이 나오거든요. 그걸 잘 공부하면 베스트지만 이런 사건이 있구나, 이런 법적 문제가 있구나 하는 것만이라도 차곡차곡 쌓아두면 몇 년이 지나면 어느새 자기가 확 달라져있는 걸 느낄걸요.

chapter2. 자랑과 멀미

심: 저는 선배님들 자랑하는 게 되게 듣고 싶어요. 사실 저는 자랑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후배들 만나면 엄청 뻥튀기 하면서 허풍을 치기도 하고요. 가끔 판결 잘 받은 거 있지 않습니까. 그런 거 사무실 책상에 쓱 올려뒀다가 “아니 뭐 이런 걸” 하고 시치미 떼고 그래요(웃음). 저는 아직 젊고, 후배들하고 나이 차이도 많이 안 나는데도 가끔 후배가 어린애처럼 보일 때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민변에서 강연하시는 선배님들은 저한테는 정말 높은 선배님인데 꼬박꼬박 존댓말 해주시고, “원래 그런 사건이고 저는 그저 열심히 했을 뿐”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모두 이렇게만 말씀하시면 어떻게 ‘드라마’가 탄생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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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사건이 잘 마무리되어도 내가 잘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생각은 잘 안 드는 거 같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을 하면서 ‘결과가 잘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좀 더 많이 드는 사건은 ‘내가 뭔가 부족하지 않았을까?’ 라는 걱정이 많이 들고요.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기분 좋은 경험으로 남아있는 건 이혼사건이었는데 4살 정도 되는 아이를 남편이 데리고 있으면서 아이를 못 만나게 하는 상황이었어요. 엄마는 이 아이를 데려오고 싶다는 의지가 굉장히 강했고요.

우리나라 재판 경향이 이혼소송과 별거 기간 중에 양육하고 있는 측이 주양육자가 되도록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처음에 사전처분 자체에서 굉장히 이례적으로 면접교섭을 길게 하면서 재판 결과 엄마가 양육자 지정을 받았어요. 처음 사건을 시작할 때 이 사람의 모습은 아이를 뺏기고 힘든 결혼생활을 보냈던 것 때문에 너무 핼쑥하고 초췌했거든요. 재판이 애가 5살 때 시작해서 초등학교 입학할 때 끝났어요. 근데 아이를 데리고 오고 나니까 얼굴이 정말 화사하게 피는 거예요. 그 사람 재판 끝나고도 2년에 한 번씩 찾아오고 그랬어요. 어떤 사람의 인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되게 기분 좋았어요.

심: 그러고 나면 자랑하고 싶은 생각 안 드세요? 저는 무죄 판결 받으면 연수원 교수님들한테 자랑하고 그러거든요. 검찰 교수님한테 교수님 어제 누구 검사 장난 아니었다고 위로해달라고, 잘 키웠다고 칭찬해주시라고 그러고. 저희 아내는 법조계가 아니니까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잘 모르거든요.

조: 사건이 하나 끝나고 나면 그 사건 관련 기록을 볼 때마다 멀미가 나요. 사건이 상고심쯤 가면 사건 자료를 보면서도 그렇고요. 가끔 여성위에서 옛날에 있었던 사건을 가지고 월례회를 할 때가 있는데 끝난 지 얼마 안 된 사건을 보면 속이 울렁울렁하고 그래요.

chapter3. 민변은 괴로워(?)

심: 변호사로서 일하면서 민변인 걸 드러내는 게 불편했던 적이 있나요? 전 가끔 관공서를 갈 일이 있거나 그러면 신경 쓰이거든요.

류: 전 직장에 있을 때 큰 기업들이 클라이언트일 때가 많았어요. 그때 우리 사무실이 민변 계열의 사무실, 민변 회원이 많은 사무실이라고 인식되는 게 싫었어요. ‘민변=반 기업’이라고 사회적으로 오인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럴 때는 위축됐죠. 민변이 아니라고 거짓말하지는 않지만 언급을 안 할 때가 많았어요.

심: 요즘은 그냥 검색 같은걸 많이 하더라고요. 작년에는 특히 더 민감했는데, 사건 하나하나가 아쉬운 상황에서 할아버지들이 검색해 보시고 전화하시고 그랬거든요. 최근엔 그런 전화 하시는 분들은 어차피 나한테 사건을 의뢰할 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조: 어차피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민변 관련된 사람만 만나는 건 아니니까요. 나는 민변 활동을 비공개로 하는 회원들도 존중해요. 민변 활동을 공개적으로 하면 직장을 떠나야 할 수도 있으니까.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정도의 활동을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류: 오히려 그런 경우도 있지 않나? “민변 변호산데 이런 식으로 해도 되냐” 라는 식으로.

조: 나는 공익 사건을 무료 혹은 저가로 생각하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공익적인 의미가 있다는 이유로 무조건 무료 변론을 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그 사람이 지불할 만한 능력이 있으면 당당하게 요구해야 해요. 정말 사회적 의미가 있어서, 그 사람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이거나 제도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돈을 받지 않더라도 그 일을 하겠다는 결의가 있다면 하면 돼요. 하지만 나한테 너무 무리가 되면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특히 어느 정도 지불능력이 있는 공익 재단들이 장애, 여성, 아동, 노동과 관련된 일이라는 이유로 긴급한 구조가 필요한 영역이 아닌데도 무료자문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그런 식으로 변호사들의 공익활동이 이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혜정(이하 이): 혹시 공익 사건을 하면서 사람들로 인해 실망하거나 상처받은 적은 없나요? 제가 최근 그런 일이 있어서요. 촛불집회 사건이었는데, 1심에서 유죄 받은 것을 제가 항소심 맡아 정말 열심히 해서 결국 무죄를 받았어요. 그런데 이 사람은 1심이 어떻고, 자기는 집회에 참여 안했다는 등 유독 집착이 심한 분이어서 법정에서도 제 서면과 다른 얘기를 하고…무죄는 받았지만 1심, 2심 모두 그 사람이 집회참여는 증거로 인정했는데 그게 잘못 됐다고 무죄 받고도 언성 높이며 따지는 거예요. 고맙다는 말은커녕 실랑이를 하게 되니 제가 참다 못 해 전화를 끊었어요. 그러고 나니 심장이 막 뛰고 한동안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조: 아니, 그거를 당연하게 생각한 사람이 이상한 거고. 내가 이렇게 엄청난 일을 했다는 걸 알려줘야 돼요.

이: 제가 아직 도량이 안 돼서 그런 사람을 못 다루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류: 그런 사람에게는 보답을 못 받는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 보답은 그 사람이 아니라 이 사회의 다른 사람들이 줄 거예요. 보답을 바라는 건 인지상정이지만, 그 보답을 다른 사람들이 받는 보통의 방식으로 받기를 바란다면 그런 보답은 기다려도 오지 않아요. 대신 다른 방식의 보답은 오죠.

심: 가끔은 너무 화가 나서 욕이라도 하고 싶은데, 상대가 제가 민변 변호사라는 걸 알잖아요. 내가 상대에게 욕하는 게 ‘민변이 일반인한테 욕을 한다’ 이런 상황이 될까봐 고민이 들어요.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어요. 간사님 그 진상 있었잖아요?

김서정: 제가 출근 일주일 쯤 됐을 때였는데, 북한 해외식당 탈북 종업원 사건으로 한창 시끄러울 때였거든요. 야근 할 때는 사실 사무처로 오는 전화 안 받아도 되는데, 혼자 야근하다 무심코 전화를 받은 거예요. 그런데 그 분이 너무 진상인 거죠. 끊으면서 화가 나서 아무도 없는 줄 알고 혼잣말로 욕을 했는데 마침 심 변호사님이 들으셨어요.

심: 그 사람이 다시 전화를 했길래 제가 받아서 욕을 좀…… 했었나? 근데 끊고 고민이 되는 거예요. ‘아, 이게 내 사무실이 아니었는데……’ (일동 웃음) 그리고 몇 주 뒤에 채희준 위원장님이 탈북자들, 납북자 가족들과 인신구제청구소송 건으로 면담을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저는 분명히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민변의 선배 변호사님들은 ‘허허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 이런 경우에 일일이 대응하며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어요. ‘전화 끊겠습니다’ 하고 끊으면 돼요. 시민들이 진보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도덕적 너무 높아요. 사소한 걸로 트집이 잡혀서 이상하게 내가 사랑하는 조직에게 피해를 줄 수 있거든요. 그런 상스러운 말에 똑같이 대꾸를 해봐야 나만 힘들어요. 우리가 왠지 상대방 말이 안 끝났는데 끊으면 안 될 것 같잖아요? 그럴 필요 없어요. 욕하면 끊으면 돼요.

chapter4. 우리 서로 친해지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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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사실 민변에 있는 변호사님들은 되게 훌륭하다는 선입견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생각도 사실 편견이죠, 편견. 막연한 존경심 같은 것으로 선배들을 대하다 보니까 어려웠던 것 같아요. 저 선배들이 기대하는 후배가 되고 싶은데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나를 까발려놓고 보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거지. 아직도 그런 사람이 아니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할 것 같고. 뭔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인 것 같고. 그래서 자꾸 회피하고 싶고, 그런 것들이 관계를 더 어렵게 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 돌아보면, 민변에서 민변 회원으로 활동을 한다는 게 꼭 정해진 객관적 기준을 충족해서 인격적으로나 업무적으로 훌륭한 사람들만 하는 것은 아니에요. 어느 면에서나 훌륭하신 분들도 있지만, 꼭 그런 분들만 있는 건 아닌 거죠.

조: 어떤 면에선 다들 훌륭하신 분들이에요. 그런데 그게 어떤 이상향의 존재는 아니라는 거죠. 사람에 대해서 어떤 이상향을 상정해놓고 그 사람을 바라보면 그 사람이 가진 인간적인 부족함이나 그 분이 잘 모르는 어떤 부분에서 갖고 있는 잘못된 생각에 굉장히 큰 배신감을 느끼고 그 사람의 모든 걸 다 부정할 수도 있거든요. 그 선배들은 하나하나가 훌륭한 점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모든 부분에서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 거죠.

류: 솔직하게 소통하는 게 참 중요한데, 예를 들면 지금 우리 사이에 나이나 경험의 차이가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소통할 준비가 되어있어요. 나이든 세대가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런데 이건 일방적인 열림이고 (젊은 후배들한테) 어떻게 다가가는 게 좋은지 잘 모르죠. 생각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마음 터놓는 게 다르기 때문에 조금 더 노력해야 하는 게 분명하지만 어쨌든 민변 선배들도 후배들이 먼저 다가와주기를 원할 수 있어요. 그걸 알아차려준다면 선배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열쇠를 얻은 것과 다름없죠. 우리의 마음을 알아차려준다면. 알아줬으면 좋겠네.(웃음)

조: 어떻게 하면 ‘꼰대’ 소리 듣지 않으면서 후배들하고 친해질 수 있을까. (선배 변호사들도) 그게 고민이죠.(웃음)

심: 저는 선배 변호사 분들이 어려워서, 카톡하시면 사무실 직원 통해서 지금 선배님 통화 가능하신지 여쭤보고 답장하고 그랬거든요. 뭔가 먼저 말씀드리는 게 어렵기도 하고, 또 제가 그 분들이 얼마나 바쁘신지 눈에 보이는데 그냥 연락드리기가 죄송스럽기도 하고요.

조: 후배들이 ‘다나까’ 말투로 이야기하고 경직되게 대하면 좀 거리감을 느끼고, 나한테 다가오지 말라는 메시지로 느껴져요. ‘저 친구는 나이 많은 우리랑은 어울리고 싶지 않구나’(웃음) 하는 마음도 있고.

내가 생각하는 민변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랑 일상적인 이야기까지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점이에요.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사실 많지 않거든요. 그런데 민변에서 말 통하는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만나서 내가 만난 진상 의뢰인들이나 잘못된 정부정책도 욕하고, 아이 키우다 아이랑 싸운 이야기도 하고요, 정기적으로 만나 정말 모든 걸 다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기는 거죠. 최근 들어 후배들이 특히 깍듯하게 대하는데, 내가 나이가 들었나 싶기도 하고 불편해요.

가끔 그냥 무작정 찾아와서 제가 하는 일을 물어보는 친구들이 있어요. 로스쿨 학생이 찾아온 적도 있고, 중학생이 찾아온 적도 있었고. 제 친구 아이들이 중학생 쯤 되면서부터 직업 탐방을 할 때 저를 찾아오는 친구 아이들이 많았거든요. 그게 아니더라도 대개는 부모님을 통해서 찾아오는데. 그 아이는 그냥 나를 검색을 해서 나한테 메일을 보낸 게 너무 기특한 거지. 사실 메일 내용이 다짜고짜 자기가 언제 언제는 연락이 안 되고 문자로만 연락할 수 있다고 그러는데…(웃음) 그런데 그게 너무 예쁜 거예요. 보통 다른 아이들은 부모의 소개로 만나서 면담을 했었지만 직접 알아서 메일을 보내는 그 용기가 너무 좋다고 생각해서 그 친구를 만났었죠.

두 분도, 저희 둘보다 더 위의 선배들에게도 아 저 선배님하고 밥 한번 먹어봤으면 생각이 들면 그냥 메일을 보내요. ‘인사드리고 싶어요’라고 하면 정말 바쁘면 ‘나중에 연락해라’ 라고 하시지 그냥 거절하지는 않으시니까 너무 어려워할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이: 사실 오늘 후배님들이 선배님 만난다고 많은 질문을 준비했는데 한정된 시간 때문에 이쯤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아요. 아쉽긴 하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마지막으로 각자 소감 한 마디 부탁드릴게요.

류: 저는 언론위원회에서 초년차 후배님들과 얘기를 나눌 기회는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후배들과는 그럴 기회가 없었거든요. 오늘 해보니까 ‘소통의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이제 민변 회원이 많으니까 그런 소통이 좀 어려울 수는 있지만 오늘 얘기를 나누고 나니까 ‘나오길 잘했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좋았어요.

조: 선배 자격으로 인터뷰 섭외 연락을 받았을 때 ‘훌륭한 사람들이 많은데 왜 굳이 나를…?’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민변 회원들 중에 중간에서 조금 아래, 이 정도의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 정도가 조금 더 편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오늘 이야기 해보니 ‘후배들이 생각보다 어려워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십년 차는 별로 멀게 느끼지 않고 있었거든요. ‘내가 조금 더 편하게 다가가야 되는구나’ 싶고요, ‘후배들이 생각보다는 나를 더 어렵게 여기는구나’ 하는 반성도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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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저는 민변 활동도 열심히 하고 싶고 선배 변호사 분들하고도 가까워지고 싶긴 한데 선배 변호사 분들을 대하는 데 약간 부담감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두 분 말씀을 들으니까 ‘내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구나, 먼저 다가가야 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 저는 제가 두 분 선배님 년차가 될 때까지 민변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다지 큰 재미도 없고요.

조: 그게 재미있는 거예요.(웃음) 이만한 재미가 있는 데가 없어요.

류: 다른 재미있는 게 없어요, 변호사 활동에.(웃음)

심: 그래서 ‘재미있게 해야지, 노력을 더 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 두 분과 말씀 나누면서 보니 크게 부담 갖지 말고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너무 초조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신입회원들이 늘어나면서 민변도, 회원도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소통이 필요함을 느낀 차에 서로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오늘의 자리를 마련했다. 처음의 어색함은 온데간데없이 쏜살같은 시간이 얄미울 정도로 민변의 선후배는 살가웠고, 서로 간의 할 말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후배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다음 날 너무도 좋은 자리에 참여하게 되었다며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서로를 위해 한 걸음 다가가려는 노력, 이것이 진정한 소통이 아닐까 한다.

혹시 또 다른 소통의 자리나 참여의 기회를 원하는 회원이 있다면 출판소통팀에 문의해주시길!

금, 2016/08/1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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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9일(금), 법무법인 동화 사무실에서 서중희 변호사를 만났다. 민변에 가입한 지 만 10년 차가 다 되어가는 그는 현재 과거사청산위원회(이하 과거사위)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가끔 평소에 수줍음 많던 사람이 카메라 앞에서 180도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서글서글하고 순한 인상에 스스로를 ‘수줍음이 많다’고 소개한 서중희 변호사도 비슷했다. 처음에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고개를 내젓다가 이내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과거사위가 주력하고 있는 ‘위안부’ 문제와 긴급조치 등에 관한 뼈 있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대화 사이사이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연방 울리는데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신입 회원들에 대한 조언의 말과 과거사위 홍보 뒤에는 친절하게도 사진을 찍으라며 사무실 책상에 앉아 골무를 끼고 짐짓 포즈도 취해주었다.

지금부터 ‘수줍지만 친절한 카메라 체질’ 서중희 변호사를 만나보자.

 

인터뷰/정리_자원활동가 이재임(출판소통팀)

 

백면서생서중희 변호사, 입을 열다

김서정(이하 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직업과 민변 이야기는 빼고요. 혹시 본인과 가장 닮은 소설, 희곡, 영화, 만화, 드라마 속 캐릭터가 있을까요?

서중희(이하 서): 직업과 민변에 대한 이야기를 빼고 나니까 생각나는 단어가 없더라고요. 이런 데에 감이 별로 없어서. ‘백면서생’, 이 정도가 어울릴 거 같아요. 조용하고 말수가 많지도 않고 수줍음이 많아서 ‘백면서생’, 저한테 이게 딱 맞는 단어 같아요. 아내에게 저와 닮은 캐릭터를 물어봤더니 <아기공룡 둘리>의 ‘고길동’을 말하더라고요. 어떤 점에서 닮았는지는 모르겠어요. 또, 사무실 직원 한 명한테 물어봤더니 고양이 ‘가필드’를 이야기하더라고요.

: 생김새가 닮으셨어요.(웃음)

서: 아무튼 저는 수줍음이 많고, 나서는 것보다는 뒤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 저희가 오늘 인터뷰를 위해 ‘고급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다음 세 가지 질문에 3초 안에 답해주세요. 첫 번째, 조영선 변호사는 나한테 술로 안 된다, 내가 민변 최고 주당이다! O, X, 하나, 둘, 셋!

: (망설임 없이)X입니다. 조변님은 날마다 술이에요. 쉬지 않고 먹어요. 새벽까지 먹어요. 그리고 다음날 눈 퉁퉁 불어서 와요. 같이 마시면 제가 힘들어요.(웃음)

: 워크숍 때 소주병을 품에 안고 돌아다니셨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 아, 물론 술 좋아합니다. 좋아하지요.(웃음) 공부할 때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 별다른 게 없어서 주말이면 작정하고 폭음을 했죠. 술을 마셔보니 먹을 만 한 거 같아서 계속 마시다 보니 막걸리를 마시면 취하기 전에 배가 부르고, 소주를 마셔야 적당히 취할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산에 갈 때도 조그만 소주(팩 소주)를 사서 혼자라도 올라갑니다.

: 두 번째 질문입니다. 나한테 조영선 변호사란? 하나, 둘, 셋!

: …아따 거시기하네.(웃음) 만난 지 오래됐어요. 사법고시 공부할 때 신림동에 ‘약수사’라는 절에서 처음 만났거든요. 조 변호사를 처음 만났을 때는 얼굴이 시커먼 양반이 호리호리해서,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호리호리했습니다. 술도 좋아하시고 해서 친해지게 됐고. 조 변호사가 먼저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저는 조 변호사보다 늦게 합격한 뒤에 둘이 사무실도 같이 하게 됐죠. 전생에 질긴 무엇이 있나, 채권채무 관계였을까?(웃음) 아무튼 인연이 오랫동안 이어진 것 같습니다. 아까 답한 ‘거시기’에는 온갖 것이 포함된 겁니다. 예를 들면 ‘애증’이라든가.(웃음)

: 마지막입니다. 나한테 ‘마눌님’이란? 하나, 둘, 셋!

서중희-변호사

: (인터뷰 전체에 걸쳐 가장 크게 웃음)이분도 참 대단한 분이에요. (황급히)제가 몸과 마음을 바쳐 사랑하는 분입니다. 무서워요. (웃음)

특히 애 낳고 무서워졌어요. 아들이 연년생 둘이거든요, 쌍둥이는 오히려 고만고만해서 괜찮은데, 연년생은 동생이 형한테 절대 안 지려고 해요. 연년생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는 아이들한테 순서를 잡아줘야 하고 아이들 대장 노릇을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애들 키우면서 목소리가 커지고. 아무튼 제가 사랑하는 분으로 정리할게요. 매우 매우 사랑한다고.

과거사청산위원회, 역사를 새로 만들어나가다

김: 비교적 조용한 회원으로 활동하시다가 최근에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며 과거사청산위원회(이하 과거사위) 위원장까지 되셨어요. 위원장으로서 과거사위를 자랑한다면?

서: 과거사위의 역사가 일단 좀 오래되었죠. 다른 위원회는 잘 모르겠지만 과거사위는 2003년에 만들어져서 올해 13년 차입니다. 사회의 굵직굵직한 이슈에 대해서, 특히 과거사와 관련된 이슈에 대해 변호사님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긴급조치와 ‘위안부’ 이슈에서는 소기의 성과를 보이고 있죠.

과거사위 활동을 하다 보면 국가와 국민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시간적 흐름을 이해하게 되고, 역사적 안목을 키우게 돼요. 과거사 문제라는 게 단순하게 “이게 아닌데요!”하고 외친다고 해결이 되는 문제가 아니고, 안목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과거사위, ‘위안부문제 관련 소송을 제기하다

김: 이제 최근 과거사위에서 활발하게 대응하고 있는 ‘위안부’ 이슈에 대해 여쭤볼게요. 현재 과거사위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제기한 소송은 정보공개청구 소송 2건, 헌법소원 1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1건으로, 총 4건입니다. 이 중 헌법소원은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임을 확인하는 12.28 한일합의가 위헌임을 확인해달라는 소원인데요. 12.28 한일합의에 어떠한 헌법적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서: 일단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과거에 헌법재판소 판결이 하나 있죠. 일본의 기본적 입장은 ‘1969년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라는 입장이에요.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청구권 협정 당시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봤어요. 그리고 청구권협정 중 3조는 분쟁해결조항인데, 내용을 보면 ‘이 협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외교적으로 해결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분쟁을 통해서 해결하고, 이 결과에 대해서는 승복하자’는 거예요. 그러니 청구권 협정 3조에 의해 국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외교적으로 다시 협상을 하고 분쟁 해결절차를 나아가야 하는 ‘작위 의무’가 있다는 것이죠.

‘위안부’ 강제 동원은 일본군이 위안소를 운영하면서 조선 식민통치기구를 통해 위안부를 모집하고, 이들을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성폭행한 국가 범죄적 행위예요. 국가는 그런 범죄행위에 대한 손해 배상 책임을 져야 하고, 이것을 해결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요. 그리고 국가가 ‘위안부’ 강제 동원으로 인한 피해 보상 협의를 하려 한다면 피해자들의 절차적 참여권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12.28 합의에서는 이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이게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어요.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에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나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신체적 자유에 대해 회복을 구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할 것인데, 국가와 개인은 분명히 법인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이를 대신해서 행사할 수 있는지도 문제고요. 국가가 외교적으로 재외국민을 보호해줘야 하는데, 외교적 조치를 다 했는지도 살펴봐야 해요. 기본적으로 국가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요구하고 있는, 일본 정부와 이 문제를 외교적으로 잘 해결해야 할 작위 의무가 있음에도 12.28 한일합의를 통해 부작위를 선언해버렸던 것도 위헌적인 행위이죠.

김: 헌법소원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각각 ‘위헌’ 판결과 원고 승소 판결을 받을 경우 현실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부분에서 도움이 된다고 보시나요? 또 ‘대한민국’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손해를 배상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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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간중간 질문을 메모하는 서중희 변호사의 손.

: 이번 12.28 합의가 헌법적으로 위헌 무효라고 한다면 합의 자체가 아무런 효력이 없는 거죠. 국가는 여전히 2011년 헌법재판소 판결대로 일본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외교적 협상과 분쟁 절차에 나서야 할 의무를 다시 지게 됩니다. 12.28 한일합의를 통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분쟁 절차에 나가지 않고 ‘해결됐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불법행위라는 것이거든요. 민사상으로도 국가의 행위는 불법행위라는 것이고, 불법 행위라면 당연히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것이고요. 어쨌든 헌법소원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에서 각각 ‘위헌’ 판결과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내면 ‘12.28 한일합의는 무효다. 국가는 다시 분쟁해결을 위한 협상에 나아가야한다’는 것을 사법적으로 확인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손해보상을 한다는 건 이번 합의가 잘못되었다는 뜻입니다. 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국가가 이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을 위해서 본 정부와의 협상에 성실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기본적으로는 그런 의미인 것 같아요. 박근혜 정부의 일본 협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사법적으로 확인하는 의미가 있는데, 이번 정부에서는 판결이 쉽지 않을 것 같네요.

배상청구권에 대해서도 헌법 재판소가 2011년에 언급해놓은 게 있어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배상청구권은 재산권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침해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신체의 자유에 대한 사후적 회복의 의미를 가진다.” 단순히 배상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잃고 인권을 침해당한 소녀들의 고통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라는 뜻이겠죠. 인간의 존엄과 가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에 대해 늦게나마 회복해준다는 의미고요. 한 많은 인생에 대한 보상입니다.

: 나의 신체가 국가의 소유가 아니고, 나의 권리와 존엄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굳이 한국의 정부가 ‘나’를 멋대로 대표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더라고요.

: ‘국가가 나서서 개개인의 권리를 처분할 수 있는가’하는 부분에서 견해의 차이가 있어요. 국가가 외국과 협상할 때 ‘국가 일부를 이루는 개인의 권리 일부를 처분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어요. 하지만 국가와 개인의 법인격은 서로 다르거든요. 법률의 관점에서는 똑같은 인격체이기 때문에 개인이 동의하지 않은 이상 타인의 인격, 타인의 권리를 함부로 처분할 수 없어요. 이런 관점에서는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권리에 대한 부분을 합의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관점이 있어요.

‘나의 신체 권리가 국가에 소유되지 않는다’는 분석은 나와 국가를 동등한 인격체에서 보는 관점 같고, 또 이게 맞겠죠. 어차피 피해는 내가 입었는데 제삼자가, 일부 관료가 나서서 나의 피해에 대해 ‘더는 묻지 않겠다’고 합의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식으로든 피해자 본인이 스스로 나서서 결정하고 참여하는 절차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번 협상이나 과거의 협상은 그런 것이 전혀 없었죠.

과거사위 긴급조치 변호인단’, 여기까지 왔다

: 그 외에도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및 성폭력 문제, 긴급조치 문제 등 다양한 과거사 문제가 있습니다. 과거사위에서 이제까지 해왔던 활동 중 ‘긴급조치 변호인단’은 오랫동안 이어져온 활동이지만 그만큼 신입 회원들은 잘 모르고 있을 것 같아요.

: 과거사위는 특정 과거사 이슈가 마무리되지 않는 이상 그 이슈에 대해 계속해서 활동하는 거니까요. 긴급조치 변호인단은 벌써 10년 동안 활동하고 있습니다. 긴급조치는 아시다시피 유신독재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항거하는 민주 인사들과 유신 정부에 대한 저항을 탄압하기 위한 조치들이죠. 형사소송법을 거의 무력화시켜버리는 초법적인 조치였어요. 국왕이 칙령으로써 통치할 수 있는 그런 정도예요.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시면서 폐지되었고 피해자들이 ‘억울하다, 무죄로 만들어달라’ 했더니 형벌법이 폐지되었기 때문에 면소 판결을 내려 끝내버렸습니다. 유죄도 아니고 무죄도 아닌 어정쩡한 판결이 면소 판결입니다. 여전히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남아있는.

기본법 보장 규정에도 어긋나고 형사소송법 제반 법칙도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지금 헌법에 비춰 봐도 위헌이고, 유신헌법에 비춰 봐도 위헌이에요. 그래서 재심을 청구하게 된 거죠. 헌법재판소에서도 위헌 무효 소송을 제기했고요. 2010년 10월경 대법원에서 최초로 긴급조치 1호에 대한 위헌 결정을 내렸어요. 그때까지 법원들은 긴급조치 재심 사건에 대해 계속 면소 판결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긍정적인 판결이 나온 겁니다.

위헌 결정 뒤로 구금된 기간 형사 보상을 청구하고, 민사 소송으로 손해 보상 청구까지 들어갔어요. 사실 법리상으로는 대법원의 면소 판결이 형사법에 규정이 되어 있거든요. 법원은 형사소송법에 맞게 판결했고, 형식적 법치주의만 따지면 그게 맞긴 하죠. 하지만 ‘긴급조치가 위헌 무효인가’라는 판단을 이제까지 안 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던 거예요. 긴급조치가 무효라는 것에 사법부의 판결을 끌어냈다, 변호사가 사회를 발전적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방향으로 일조했다, 그런 흥분감으로 계속 끌고 오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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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질문에 답하는 서중희 변호사의 뒷편으로 긴급조치 관련 재심판결 모음집이 책장 한 칸을 채우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한 뒤로 대법원이 긴급조치가 위헌 무효 판결을 받은 것에 대응하는 새로운 논리를 개발했습니다. ‘과거의 긴급조치가 위헌 무효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긴급조치를 발령한 논리는 유효하다. 긴급조치에 기초해서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기소하고, 유죄판결을 내리고, 수감생활을 시킨 공무원이 뭘 잘못했냐.’ 이런 거죠. 그러면 ‘대통령이 위헌무효인 긴급조치를 내린 것은 잘못 아닌가요?’ 하니까 ‘그것은 대통령이 통치권 행사의 목적으로 한 것이고 정치적인 책임을 질 문제이지, 개개인에게 행해진 불법행위에 대해 법률적 책임을 질 일이 아니야.’라고 주장해요. 긴급조치는 위헌무효인데, 그에 따른 법률적 행위는 정당하다는 이상한 논리가 되어버렸어요. 지금의 대법원은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를 펴고 있고. 그게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예요. 성과와 아쉬움을 함께 가지고 있죠. 이 부분은 판례 변경이 필요한 사항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재임(이하 이): 그런 대법원의 입장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고, 여기에 대해 반박할 논리는 아직 없나요?

: 이런 논리를 반박하는 논리를 개발하려고 여러 변호사가 노력하고 있는데, 대법원이 아니라고 막고 있으니까 상당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대법원의 구성을 진보적으로 바꾸거나 적절하게 조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서울대학교를 나오시고 판사를 하신 남성분들, 기본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분들이 대법관이 되거든요. 대법원이 사회의 다양성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자기 구미에 맞는 사람을 대법원장에 앉힐 가능성도 있고요. 여러 가지 점에서 과연 우리 사법제도가 정당한 건지 의문이 있어요.

법률이 정당하고 정의에 부합하는지 고민하는 변호사 집단이 있었다

: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당대사, contemporary history)’라는 말이 있죠. 과거사위의 활동은 지금의 인권 관점에서 과거의 사건을 평가하고 정의를 회복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100년, 200년 뒤의 누군가가 현재의 역사를 연구하고 어떤 사건의 역할과 의의를 평가할 때 과거사위 활동이 어떤 평가를 받기를 원하시나요? 혹은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 같으신가요?

: 어렵습니다. 어쨌든 저희가 정치를 하는 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부국강병’ 이런 건 정치인들이 이야기하는 관점인 것 같고요. 법조인으로서 ‘당대사’를 말한다면 과거의 권력행사가 정당한 이유와 절차에 따른 것인지에 중점을 두고 보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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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위는 여러 과거사 사건에서 인권이 정당하게 지켜졌는지, 인권침해가 일어났다면 그것이 정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것인지를 따지고, 부당한 인권침해가 일어났다면 침해된 인권을 회복하는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요.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자의적이고 독재화된 권력에 의해 일어났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죠. 과거사위의 활동은 그런 권력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고, (정의를) 회복하려는 법률적 시도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긴급조치가 당시에는 권력에 의해서 시행되었고 검사와 판사들이 기소하고 유죄판결을 했지만, 이제는 긴급조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이것이 위헌 무효였다는 것이 사법적으로 밝혀진 거잖아요. 잘못을 밝혀냈다는 것에 의의가 있어요.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법률이 정당하고 정의에 부합하는지 고민해보는 변호사 집단이 있었고, 그것이 과거사청산위원회였다.’, 이런 정도의 평가를 받지 않을까요? 어떻게 평가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좌빨’이니 어쩌니 욕을 하더라도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필요한 조직 활동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무언가’, 그것을 해라

: 2006년 10월 30일에 가입하셨고, 한 달 지나면 만 10년차가 되시네요. 축하의 박수! (웃음) 10년을 활동해보니 이제 가입하는 신입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 민변 가입할 때 어떤 특별한 활동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건 아닌 것 같아요. 처음엔 우리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며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고, 저는 이분들의 보이지 않는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 정도가 제가 생각한 행동반경이었어요. 그런데 민변을 들락날락하기 시작하니까 달라지기 시작했죠.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하루를 보낼 수 있어요. 그렇지만 ‘내일 뭘 하지’ 생각하면서 하루를 보낼 수도 있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도 나이는 계속 먹겠지만, 저는 익숙하던 대로만 지내면 인생이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거나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사회적으로 부조리가 드러나거나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말만 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나중에 내 삶을 반추해봤을 때 내 살아온 모습에 대해서 나름의 자긍심이 생기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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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변호사들에게 조언한다면…… 일단은 뭔가를 해라. “네 가슴속에서 우러나와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그 ‘뭔가’를 일단 해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이왕이면 과거사위를 하면 더 좋고요. 과거사위 활동은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워주고, 좋은 선배 변호사들도 만날 수 있고, 여러 시민단체와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생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 같아요. 역사적 관점도 얻을 수 있고, 사서나 역사적 서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특히나 좋아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과거사위 선배들은 술을 사달라고 하면 분명 좋아할 겁니다.

화, 2016/09/13-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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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술을 좋아하고, 누구는 먹는 걸 좋아하고, 누구는 ‘멍 때리기’를 좋아한다. 저마다 제각각인 사람들이 민변에서 만나 “아무것도 없이, 우리 돈 내 가면서” 공익인권변호사모임을 만들었다.

그게 벌써 5년, 6명이 모여 시작했던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이하 희망법)이 어느덧 변호사 8명에 상근자 2명까지 10명의 식구를 꾸렸다. 이제 집회와 표현의 자유 팀을 새로 꾸려 한 번 더 발돋움을 준비하고, 이를 위해 후원주점도 열었다. 지난 10월 22일 열린 희망법 후원주점 ‘바람막이’ 현장에서 만난 8명의 민변 회원들에게 각자의 ‘희망법’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희망법을 만든 것 자체가 사건

처음 시작했을 때는 이렇게 멀리 달려올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특정 인권 영역에 집중하는 단체도 아니고, 특별히 오래 버틸만한 탄탄한 기반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한가람 변호사는 “민변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는 자체, (희망법을) 만들었던 과정 자체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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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선영 변호사

희망법 구성원들에게 희망법은 직장 혹은 활동의 베이스캠프 이상의 의미다. 한가람 변호사는 희망법이 “월급 주는 데이기도 하고, 내 새끼이면서 분신”이라고 말했다. 서선영 변호사는 ‘1차 집단’이라고 표현했다. 가족, 친구 등 1차 집단은 비교적 영구적이고, 친밀하며, 개인의 성격과 개성에 깊이 관여한다. 그런 면에서 서선영 변호사의 표현은 가장 적절한 말 같아 보였다. “보통 직장이 가족 같다는 말은 되게 안 좋은 말이잖아요? 그런 말이 아니고, 저의 정서, 감정, 고민, 생각, 이런 것들이 다 들어있는 곳이 희망법인 것 같아요.”

김동현 변호사는 구성원들에게 낯 간지러운 애정표현을 자주 한다. 그에게 희망법은 “정말 제가 존경하는, 함께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그런 분들”과 함께 일할 수 있게 해 준 공간이다. 희망법을 처음 만들고 3-4년 쯤 지난 어느 날, 목욕탕에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단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 이렇게 존경스러운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알고 나와 같이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래서 술 마시다가도 갑자기 “저는 여러분이 너무 사랑스러워요”라고 고백한다고.

숨가쁘게 달려왔네 희망법IMG_7791

후원주점 벽에 붙어있던 희망법의 활동 모습을 담은 사진들

희망법은 장애, 성별지향·성적 정체성(SOGI), 기업과 인권 분야에 대해 팀을 구성해 집중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장애 분야에서는 장애인의 선거 참여 기회 확대를 위해 장애인 기표소 개선 등을 요구하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하는 시각장애인이 독서확대기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축소본 시험지를 제공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광주광역시 교육청이 교원임용고시에 응시한 뇌병변장애인에게 충분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은 채 부적격 판정을 내리고 불합격 처리한 일을 중심으로 공무원 시험에서 장애인 응시자에게 충분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개선하려는 일련의 소송도 진행 중이다.

SOGI 팀은 국내법 중 유일하게 동성애를 처벌하는 규정인 군형법상 ‘추행’죄(제92조의 6)를 폐지하기 위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이 규정에 대해 세 번째 합헌 판결을 내렸지만, 한가람 변호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 결정의 문제점을 국내뿐만 아니라 유엔 인권기구 등에 알리고, 제20대 국회에서의 폐지운동과 함께 헌법소원을 다시 제기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동성결혼 신청을 계기로 동성결혼 인정을 요구하는 소송도 진행 중이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지난 7월 1심에서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혼인신고 불수리처분 불복신청을 각하 처분했다. 류민희 변호사를 포함한 변호인단은 앞으로 한 퀴어 부부의 혼인신고 불수리처분 불복신청이 각하될 때마다 2배수의 새로운 퀴어부부를 원고로 소송 당사자들을 늘려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희망법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퀴어 이슈와 관련해 가장 첨예한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 법률가 조직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기업과 인권 분야에서는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일터 괴롭힘’을 정리하고 정의했다. 서선영 변호사는 일터 괴롭힘을 “일터에서 조직적이거나 개인적으로 당하는, 과로나 모욕적인 말 등으로 신체와 정신의 건강을 해치고 존엄을 침해하는 문제”라고 정의했다. <일터 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이라는 책도 내놓았다. 여러 인권단체와 1년간 세미나를 통해 연구하고 공부한 내용을 서선영, 이종희 변호사와 인권연구소 ‘창’의 류은숙 활동가가 함께 정리했다. 국내사례로 일터 괴롭힘을 정의하고 제시하는 첫 번째 책이다.

포털사이트 ‘Daum’이 운영하는 컨텐츠 크라우드 펀딩 ‘스토리펀딩’을 통해 연재된 일터 괴롭힘의 사례에 시민들은 너도나도 공감을 표시했다. 이종희 변호사는 “민변 총회에서 서선영 변호사님이 <일터 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 책을 팔았는데, 100권 다 팔렸다고 한다”며 감사를 전했다.

사람은 적지만 캐릭터는 제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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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법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맑음’과 ‘무엇을 맡을지 찾고 있다’고 밝힌 김재왕(좌), 최현정(우) 변호사

희망법 구성원들에게 각자 자신이 희망법에서 하고 있는 역할이 무엇인 것 같냐고 물었다. 대답은 저마다 제각각이라, 김재왕 변호사는 ‘해맑음’을, 이종희 변호사는 ‘모범’을 담당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최현정 변호사는 김재왕 변호사를 보며 “나는 아직 희망법에서 무엇을 담당할지 찾고 있어.”라고, 조곤조곤하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조그만 모임에서 많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일하지만 캐릭터는 제각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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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맞이로 분주하게 일하는 이종희(위), 조혜인(아래) 변호사

이종희 변호사는 정해진 ‘매뉴얼’을 잘 지킨다. 후원주점 티켓을 팔라면 팔아오고, 서류에 무언가를 기록하고 기입해두라고 시키면 그대로 한다. 꿈도 모범적이다. “변호사로서 좀 더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또 단체 활동가로서 기획이나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는 업무를 더 잘 이해하고 싶다”는 꿈이라니. 꿈이 재미없기로는 조혜인 변호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SOGI 팀 업무에 대해 변호사들이 해야 하는 일을 좀 더 잘 담당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앞으로 이 분야에서 후배 변호사들이 어떻게 하면 잘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별명이 ‘잔더’, 사실 ‘한잔더’라고 밝힌 서선영 변호사의 꿈은 희망법에 있는 동안 한 번이라도 ‘혼돈의 카오스’ 상태인 책상을 깨끗하게 치우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김재왕 변호사는 “제발 좀 그랬으면 좋겠다”고 맞장구쳤다. 스스로를 ‘시리어스 앤 볼링 맨(Serious and Boring man)’이라고 소개한 김동현 변호사는 “제가 올해 대표를 맡고 있는데, 다시는 대표를 하고 싶지 않다”며 “대표 아닌 구성원으로 계속 있고 싶다”고 말했다.

희망법의 발돋움, 후원주점

희망법은 앞으로 집회의 자유팀을 신설하여 운영할 계획이다. 서선영 변호사는 “희망법에서 집회 관련 업무를 계속 하고 있었는데 관련 팀이 없다 보니 다른 업무처럼 집중적으로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며 앞으로 집회의 자유를 변호하는데 좀 더 역량을 투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민변에서 공식 모임은 아니지만 집회의 자유 연구 모임이 생겨서 함께 연구할 계획”이고, 앞으로 소송과 연구들을 모아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계획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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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주점을 찾은 희망법의 친구들

장애와 인권 영역을 전담하는 변호사 한 사람과 사무국 상근자 두 사람이 새로 희망법의 식구가 됐다. 팀을 신설하고 구성원을 확충하는 과정에서 재정적 어려움은 피할 수 없는 문제다. 김재왕 변호사는 “대외적으로는 ‘든든한 둥지’이지만, 속마음으로는 언제 망할지 모르는 불안한 둥지”라고 농담했다. 한가람 변호사 역시 “희망법에서 이루고 싶은 꿈은 월급날 돈 걱정 없이 월급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게 꿈”이라며 “사실 (아직까지) 그런 날이 없었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아슬아슬한 재정에 새 식구와 새 사업은 큰 부담이 된다.

그래서 새 식구로 합류한 김광민 모금사무국장이 희망법 창립 후 첫 후원주점을 기획했다. 늦가을이지만 아직 단풍은 그저 그런, 대신 날이 선선해 잔디밭에 테이블 깔고 좋은 사람들과 맥주 한 잔이 참 잘 어울리는 토요일. 희망법이 입주해 있는 서울 불광동 서울혁신파크에서 희망법 후원주점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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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변호사

옛 질병관리본부가 있었던 이 자리는 박원순 시장의 주도 하에 2013년부터 다양한 사회적 혁신을 실험하는 ‘서울혁신파크’로 변신했다.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한 북한산 등산객들의 ‘핫 플레이스’였던 이곳에 청년들이 하나둘씩 드나들기 시작했다. 희망법도 지난해 이곳으로 둥지를 옮겼다.

커다란 대강당 전체에 테이블을 놓고 분홍 체크무늬 테이블보를 깔았다. 주문벨은 없지만 흔들면 빛이 반짝거리는 잭오랜턴을 테이블마다 두었다. 호스트인 희망법 구성원들과 서빙을 담당한 자원활동가들은 모두 머리에 하얀 물방울무늬가 박힌 커다란 리본 머리띠를 썼다. “없는 게 메리트라네 난, 있는 게 젊음이라네 난”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어디 유명한 맛집 같은 메리트는 없지만 사랑스러움과 센스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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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하게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있는 최현정 변호사

4시쯤 아직 한산했던 후원주점이 오후 5시를 넘기자 슬슬 손님으로 바글바글해진다. 대강당 실내와 쪽문 너머 잔디밭이 모두 손님으로 꽉꽉 들어찼다. ‘입추의 여지가 없다’고 할 것까진 아니지만 빈 테이블은 없다. 머리에 리본 머리띠를 쓴 자원봉사자들이 잭오랜턴이 반짝일 때마다 테이블 사이를 바쁘게 누빈다. 희망법 구성원들도 호스트로 손님을 맞고 함께 술을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사람, 음식 준비와 서빙으로 정신없는 사람, 제각각이다. 재미난 점은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은 주방에서 일하는 것이 편해 보이고, 호스트 역할을 맡아 손님들과 어울리는 사람은 그게 더 편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하루 후원주점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수많은 일 중 각자 자기가 가장 편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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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를 돌이켜보는 한가람 변호사

희망법의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어울려 술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짧아진 가을 해가 저문다. 으슬으슬 춥다는 사람도 많지만 민변 사무처 식구들도 뒤늦게 합류하는 친구들을 기다리며 밤이 늦도록 자리를 지켰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 얼굴은 계속 바뀌지만 모두 민변 식구들이다.

후원주점이 문을 닫는 10시를 넘기자 희망법 구성원 모두가 무대 앞으로 나와 감사인사를 전했다. 새 구성원 김광민 사무국장도 희망법의 친구들 앞에 소개했다. 이날 하루를 즐겁게 보낸 손님들이 저마다 작별인사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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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말한 류민희(좌), 한가람(우) 변호사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행사였다. 류민희 변호사는 “희망법은 회원 커뮤니티가 끈끈한 조직이 아니라 이벤트의 성공 가능성 자체를 좀 회의적으로 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희망법의 후원주점은 마음만으로는 대성공인 듯하다. 날이 점점 쌀쌀해지는 밤까지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술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현정 변호사는 “‘안 오지 않을까’, ‘오기 힘들 거야’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왔던 게 가장 마음에 남는다”며 “광주에서 여기까지 와준 로스쿨 친구가 있었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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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과 이야기 나누는 류민희 변호사

류민희 변호사는 “희망법은 한 가지 권리에 집중하는 단체가 아니라서 특정한 권리에 집중해서 활동하는 단체보다 회원 커뮤니티가 약하다”며 “저희가 일하는 영역에서 함께하는 동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거 자체가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결산 결과를 떠나서 오늘 행사는 성공이라고도 평가했다. “너희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 말이 많이 고마웠다”고 한다. 한가람 변호사 역시 “수지는 좀 더 계산해봐야 할 것 같지만 이것 자체로 행복하다”는 류민희 변호사의 말에 “완전히 똑같은 생각”이라고 공감을 표시했다.

후원주점에 처음 들어섰을 때, 손님을 맞고 있던 김광민 사무국장이 명함을 건넸다. 엠보싱 후가공으로 점자 표기가 붙어있다. 반사적으로 ‘엠보싱 후가공 비용 장난 아닐 텐데’라는 생각부터 든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해서는 명함 등에 점자를 표기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형압 가공이든 엠보싱이든 인쇄물에 점자를 표기하는 후가공 방법은 인쇄물 제작비용을 두세 배로 늘려버리기 일쑤다. 어쩌면 이 명함이 희망법을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꼭 가야 하지만 좁은 길, 남들 가는 길보다 두 배 세 배 어려운 길일지도 모르는 길을 즐겁게 가는 사람들과 이들의 즐거운 친구들. 읽지도 못하는 점자를 오랫동안 만지작거려본다.

목, 2016/10/2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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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고향과 나름의 이유를 가진 이주민들이 우리 곁에서 살고 있습니다. 단일한 배경과 같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끼리 사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른바 우리는 문화 다양성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 다양함이 서로 어울려 조화롭게 돌아가는 사회를 ‘다문화 사회’라고 합니다. 다문화는 단일한 문화를 내세우는 것에 대치되는 상태 혹은 그 태도입니다.

1990년대 말, 국제결혼과 외국인 근로자의 이주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한국 역시 문화 다양성의 사회로 진입했습니다. <재한외국인처우개선법>, <다문화가족지원법> 등의 법률이 만들어지고,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설립 등 각종 정책이 쏟아졌습니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다문화정책은 이제 10년이 되어갑니다. 희망제작소는 새로운 시민으로 우리 곁에 찾아온 이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려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다문화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구의 일환으로 지난 10월 말 두 이주여성을 만났습니다.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번역사로 일하고 있는 이주여성 나랑체첵(몽골어 통번역, 6년째 근무) 씨와 주영애(중국어 통번역, 3년째 근무) 씨입니다. 나랑체첵 씨는 2004년에, 주영애 씨는 1997년에 한국에 왔습니다.

우리도 한국인이에요

사람들은 두 사람을 한국인으로 대하고 있을까? ‘혹시’하고 물은 대답은 ‘역시나’였다.

“말을 안 하면 잘 몰라요. 입을 열면 외국인이냐고 묻죠.” (나랑체첵)

유창한 한국어 실력으로 인사를 하던 주영애씨는 외국인이냐는 질문이 난감하다고 했다.

“저는 이미 귀화해서 한국인인데, 중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다들 외국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는 사람은 나쁜 뜻이라고 생각 안 하지만, 듣는 입장에선 상처가 되더라고요.” (주영애)

두 사람은, 요즘 많이 회자하는 다문화 가정, 다문화 아동, 다문화인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많은 듯했다.

“다문화라는 것은 여러 문화가 어우러진다는 아름다운 의미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못 사는 국가의 여자들이 한국에 와서 결혼 못 하는 남자들과 결혼하는 것’이라고 인식되는 것 같아요. 끌어안아야 하는 짐, 부담처럼 보이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저는 20년 가까이 한국에 살고 있고, 또 한국인으로 살고 싶은데 말이에요.” (주영애)

주영애 씨와 나랑체첵 씨는 그동안 진행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지금은 그곳의 직원이 되어 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다문화사업에 대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생긴 지 10년이 되었거든요. 저는 센터가 처음 생길 때부터 이용해왔어요. 센터는, 열악한 환경에서 코리안드림을 위해 한국에 온 사람들을 끌어안기 위해, 그리고 그들을 한국 사람답게 만들기 위한 곳이라고 봐요. 그런데 자국민도 잘 챙기지 못하면서 왜 외국인에게 예산 낭비하냐고, 역차별 아니냐고, 한국인들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데 왜 이주여성 일자리만 지원하냐며 반대의견이 나올 때는 너무 속상합니다.” (주영애)

▲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홈페이지(namyangjusi.liveinkorea.kr)

▲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홈페이지(http://namyangjusi.liveinkorea.kr)


눈치, 성과 압박, 해고의 두려움… 한국의 사회생활

구제대상으로 들어와서 한국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당당한 사회일원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안 보는 것 같다며 주영애씨는 토로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일하게 되면서 왜 외국인에게까지 일자리 주냐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당시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했는데요.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각각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일하는 외국인 직원은 1~2명이지만, 한국인 직원은 더 많다고요. 즉, 우리 같은 사람들 일자리가 한 개 생기면, 한국인들 일자리도 덩달아 더 많이 늘어나는 게 아닌가’라고요.” (주영애)

곱지 않은 시선에다 엄청난 경쟁률까지 뚫고 하게 된 통번역사 일이 할 만한지 물었다. 녹록지 않다는 표정이 두 사람의 얼굴을 스쳤다.

“통번역사 제도는 2009년부터 시작됐어요. 현재 전국에 300여 명의 (이주여성)통번역사가 있는데, 근무 기간이 짧아요. 우선 한국인들 속에서 적응하기가 어려워요. 행정업무 처리하기도 어렵고, 통번역 외에 센터의 다른 사업도 해야 하고요.” (나랑체첵)

‘일자리는 좋은데, 사회생활 자체가 어렵다’고 나랑체첵씨는 표현했다. 더 자세히 말해달라고 했다.

“우리는 눈치 없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주영애)

“그건 저도 인정해요.(웃음)” (나랑체첵)

한국의 사회생활에서 규정이나 매뉴얼보다 중요하다는 ‘눈치껏 잘하기’. 이들에게는 생소하고 어려운 문화인 것이다.

“직장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느껴요. 중국이나 몽골은 수평관계인데, 한국은 수직관계인 거 같습니다. 눈치로 배워야 하는 게 많아요. 이런 부분은 아직도 어렵죠.” (주영애)

“저는 행정적인 부분이 제일 어렵고 힘들었어요. 뭐 하나 하려면 기획서, 보고서 등 써야 할 게 엄청 많아서 처음엔 엄청 어려웠어요. 물론 하면서 엄청 성장했지만요.(웃음)” (나랑체첵)

눈치로 시작된 이야기는 일자리 처우 개선까지 이어졌다. 6년째인데 막내처럼 일해서 답답한 점, 최저임금이 안돼서 8시간에서 7시간 근무로 바뀌었지만 업무량은 여전하다는 점, 그런데도 성과는 전년 대비 늘 좋아야 한다는 점, 평가를 통해 하위 10%는 재계약에서 탈락하기 때문에 압박도 많다는 점 등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꿈에 그리던 ‘사무직’이고, ‘배울 수도 있는’ 일인데 유지하기 어려운 게 안타깝다고 두 사람은 말한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주영애 씨는 출근하는 데만 2시간 남짓 걸린다. 무려 4시간 가까이 걸리는 시간을 감수하며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는 한국 오고 20년 동안 안 해본 일 없을 정도로 고생했다며 눈시울을 붉히더니 대답했다.

“전문직을 선호해서 이곳으로 왔어요. 단순히 경제적인 것만 고려했다면 안 왔을 거예요. 지금까지 일한 곳 중 여기 급여가 제일 적으니까요. 그간 한국 생활을 하며 어려움을 겪은 한 사람으로, 다른 다문화가족에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주영애)

“한국 처음 왔을 때 남편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남편은 좋은 사람 찾아가라고 했지만, 나는 젊었으니 닥치는 대로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느냐 말하고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하지만 어려운 건 어려운 거더라고요. 그러다 통번역사 기회가 와서 정말 기뻤어요.” (나랑체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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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선배로 이끌고 다독여주기

한국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지만 자신들은 그 단계를 넘어 여기까지 왔으니,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갈 이주여성을 돕는 일을 하고 싶고 또 잘할 수 있다고 했다.

“결혼이민자들의 입장을 잘 알고 있고, 시행착오도 먼저 겪었으니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크죠. 또 그들 입장에서도 우리가 다가가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요? 제 도움을 받은 사람이 고마워하거나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저 자신이 쓸모있는 사람으로 느껴져요. 그게 가장 큰 보람이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죠.” (나랑체첵)

“저는 (통번역사 일을 한 지) 만 3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그동안의 저 자신을 평가하자면, 놀랄 만큼 많은 성장을 했다는 거예요. 가장 값진 건 한국에서 직장다운 직장을 처음 가지게 된 거죠. 이전에 15년 일했던 것 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주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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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다문화가정 서포터’ 회의 모습. 서포터들은 이주여성들이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돕는다.

두 사람은,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한국에 잘 정착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들의 이야기가 다른 이주민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제가 느끼는 보람은, 고통의 시기를 겪고 있는 이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앞에서 줄을 끌어주는 것 같은 느낌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 사람들에게 제가 교훈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어떻게 하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영애)

경기도의 경우, 이주여성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이용률은 18% 정도다. 두 사람은 숨어있다시피 하는 여성들을 발굴해서 연결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은행, 버스 이용 등의 생활 지원을 하고요.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어요. 제일 중요한 건 잘 안아주고 다독여주는 것인데, 제가 결혼이민 선배다 보니 정보도 많이 주려 하고 잘 이해해주니 많이들 따라오시더라고요.” (나랑체첵)

“작년부터 검정고시반을 맡아서 하고 있어요. 15명이 참여해서 11명이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졸업장을 수여했는데요. 다들 마치 대학 학사학위를 받는 것처럼 기뻐하시더라고요. 덩달아 저도 뿌듯했죠.” (주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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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검정고시반’ 주말 스터디


실질적으로 무언가 할 수 있도록

결혼이주여성들이 목말라 하는 정보 대부분은 취업과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 취업도 중요하지만 언어나 한국의 문화를 먼저 익히는 게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에 관해 물었다.

“물론 언어도 중요하죠. 하지만 오셔서 맞벌이해야 하는 분들도 있어요. 빨리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겠죠. 그분에게 중요한 것은 언어보다 돈인 거죠. 이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그 사람의 사정이고 상황이라고 생각했으면 해요. 그리고 돈을 벌다 보면 한국어가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에 결국 언어를 배우러 오게 돼요. 이 지역만 해도 (이주여성의) 50% 이상이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해요.” (나랑체첵)

그렇다고 돈을 달라거나 특별한 것을 지원해달라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무언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이주여성의 가정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데에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주여성이 일자리 찾기는 어렵고, 그렇게 되면 남편이 혼자 돈을 벌어야 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혼자 돈 벌고, 거기에 아이까지 있으면 힘들어요. 가정에 불화가 생길 가능성도 크고요. 이주여성들은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한국 사회에서 일어설 기회가 없어지는 거죠.” (나랑체첵)

“아이가 있는 분들은 긴 시간 일하지 못합니다. 시간 짧은 것, 아르바이트 같은 것을 하고자 해요. 그래서 시간을 탄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봐요.” (주영애)

높은 취업 욕구보다 준비와 노력이 부족한 이주여성들도 물론 있다. 두 사람은, 당장은 아니어도 장기적으로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꾸준한 취업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결혼이민자분들이 아예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에요. 결혼이주여성이 도망가는 사례 등은 좋지 않은 여론을 만들고 큰 화젯거리가 돼요. 하지만 잘하고 계신 분들도 많아요. 저는 모든 게 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몇 년이 지나면 적응하고 한국 사람이 되잖아요. 가끔 다문화정책이 잘 되고 있나 의문이 들 때가 있는데요. 숫자와 실적에만 매몰되기 때문이죠. 실제 도움이 되지 않는 사업을 한다거나, 매번 오는 사람들만 지원받을 때도 그렇죠. 많은 사람이 동등하게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해요.” (나랑체첵)

다문화 체감도 높이고 다름 인정하는 태도 필요해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다문화에 대한 인식은 이중적이다. 인터넷에 난무하는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댓글들이 보여주는 한 면과 공식적으로 나타나는 대체로 신중하고 호의적인 인식조사 결과가 또 다른 한 면이다. 2015년 서울서베이를 보면, 자녀의 외국인과 결혼, 외국인 친구, 외국인 이웃 등에 대한 태도는 종합적으로 60%가 호의적이었고, 결혼이민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해소에는 50.9%가 긍정적이었고, 일자리를 뺏긴다는 우려는 40.5%였다. 여기에 대해 주영애 씨와 나랑체첵 씨는 여전히 낮은 다문화 체감도를 높이고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은 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다름을 인정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결혼이민자들이 이렇다저렇다 이야기하지 말고, 그 상태 그대로 다름을 인정해주고, 다르면 이상하게 취급하는 시선만 아니었으면 해요. 그리고 잘 적응해서 성공하고, 잘 살아가는 본보기라고나 할까, 이런 사례를 자주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주영애)

“저도 예전에는 외국인인 걸 숨기고 싶을 정도로 조용히 지낸 적이 있어요. 시선 자체가 차가워서 자꾸 주눅이 들었어요. 물론 지금은 숨기지 않고 말하죠. 이건 제가 지금 당당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갑자기 당당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에요. (나랑체첵)

주영애 씨는 공교육에 진입하지 못하는 중도입국자녀가 너무 많다며, 이들을 잘 끌어안고 한국문화에 잘 융화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회와 역할을 주고 함께 성장할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옆집에 베트남 사람이 와서 살지만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다문화가 무슨 상관이냐고 하지만 학교와 직장을 살펴보면 다문화가족 출신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출산시대라고 하는데, 다문화가족은 다둥이인 경우가 많아요. 여기에 중도입국자녀들도 있는데, 이 아이들이 적응 못 하는 경우가 수두룩해요. 사람들이 체감을 못 하는 게 이런 것들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 중도입국자녀가 한국사회에 문젯거리로 전락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나만 안전하면 된다고 하지만, 안전지대가 없어질 수도 있어요. 이들이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 않게 하려면 지금 잘 해야 합니다.” (주영애)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차별과 배척의 시선만을 느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제도와 지원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있지만, 무엇보다 따뜻했던 것은 처음 접했던 한국인들의 도움이었다.

“제 아이 역시 중도입국자녀예요. 적응을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지금 같으면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을 이용했겠지만, 10년 전에는 그런 게 없었잖아요. 그러다 한국 아주머니와 대학생들이 외국인 근로자와 학생들에게 한국어 가르치는 행사가 있다고 해서 아들과 함께 갔어요. 열정적으로 가르쳐주는 걸 보고 ‘한국 사람들이 무조건 외국인을 싫어하는 게 아니구나’,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엄마 말은 안 듣던 아들이 그때 한국어 가르치던 누나 말은 잘 들어서, 지금도 연락을 하더라고요.” (주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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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인터뷰가 희망제작소 뉴스레터에 실린다고 하자, 나랑체첵 씨는 어떤 사람들이 독자냐고 물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관심 가진 분들이라고 답하니,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고 했다.

“이주민들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눈치가 없어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한국 사람처럼 행동하길 바라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일률적인 행동을 기대하지는 않았으면 해요. 우리는 다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같아지려 해도 시간이 걸리지만, 같아지려 하는 게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우리 (이주민들의) 문화도 존중해주길 바라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런 한국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랑체첵)

이주민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늘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앞으로 살고 싶은 나라가 어떤 곳인지 먼저 물어야 한다. 이주민들이 한국에서 살면서 많은 시간 고민하는 것은, ‘한국인이냐, 아니냐’보다 ‘쓸모있는 사람이 되는 것, 성장하는 것, 보람을 느끼고 이 사회에서 희망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혼란스러운 시절을 살아가는 여느 한국인의 모습,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뷰 진행 : 이은경 사회의제팀 팀장 · [email protected]
녹취 및 정리 : 이은경 사회의제팀 팀장 · [email protected]
녹취 및 정리 : 최은영 미디어홍보팀 연구원 · [email protected]

* 인터뷰 참여자의 요청으로 개인 사진은 게재하지 않습니다.

월, 2016/11/0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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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브리서 11:1)’라는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탄핵이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은 사실 탄핵을 믿는 사람들이 소망하는 어떤 것의 실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가령, 탄핵 이후 우리는 반드시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모두가 평등한 그야말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울 수 있다는 소망 말이다. 또한,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우리가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함께 만들어낸 일들은 ‘한국 사회가 적어도 비정상적이었던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내고 다시금 환한 민주주의의 빛을 밝힐 역량이 있었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사실의 증거가 되어있지는 않을까. 탄핵 과정에서 민변이 했던 수많은 활동에 수많은 회원이 함께 하며 지난겨울을 보냈다. 분홍빛 벚꽃 피는 봄을 목전에 둔 3월, 추운 겨울과 함께 했던 수많은 회원 중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했던 세 사람의 회원에게 지난 ‘겨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첫 번째 이야기: ‘2017 민변 탄핵버스킹과 광화문 본무대 발언에 참여했던 김도희 변호사

민변 박근혜 정권 퇴진과 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퇴진특위’) 특검대응팀과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 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 법률팀에 참여했던 김도희 변호사. 퇴진특위 활동과 회사 일을 병행하다 보니 점점 바빠져서 “아침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두세 시간 바짝 퇴진특위 논평이나 성명을 쓰고 업무를 시작”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김도희 변호사는 그래도 지난겨울이 재미있었던 것 같은 얼굴이었다. 김도희 변호사는 민변이 지속적으로 성명과 논평을 발표하고, 때로 특검에 고발하기도 하는 일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검찰과 특검이 헌정유린의 주범과 비리 재벌을 수사하는 과정에 대해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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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김도희 변호사는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겨울 김도희 변호사는 방송 출연, 팟캐스트 출연, 길거리 버스킹, 광화문 본무대 발언 등 유난히 시민들 앞에 서서 몸을 드러내고 입을 벌려 말해야 할 일이 많았다.

두 차례 광화문 본무대에 올라갔던 일을 두고 김도희 변호사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제가 사실 앞에 나서서 이슈를 만들고 사진을 찍고 그러는 걸 정말 싫어하고, 잘 못해요.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말이 안 나오는 그런 스타일이거든요.”

김도희 변호사가 처음 광화문 본무대에 올라갔을 때는 ‘반올림’에서 활동 중인 삼성반도체 산업재해 피해 노동자와 그 어머니, 현대자동차 노조원까지 네 사람이었다. 김도희 변호사는 “너무 떨려서 겨우 1분 이야기하는 건데, 원고 볼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후로도 계속 다른 사람 앞에 나설 일이 생겼다. 민변 탄핵 정국 특별 팟캐스트 ‘탄캐스트’에도 출연했고, ‘김어준의 파파이스’에도 출연했다. 라디오 인터뷰도 있었고, 눈이 펑펑 내리던 1월의 어느 토요일 ‘2017 민변 탄핵 버스킹’의 두 번째 버스커로 시민들 앞에서 길거리 버스킹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탄핵 전날에는 두 번째로 광화문 본무대에 올랐다.

 

“두 번째 올라갔을 때는 혼자 올라가서 5-6분 정도 발언했어요. 정말 달달달달 외워서 올라갔죠. 그래도 그 때는 좀 흥분하긴 했지만 틀리지는 않았어요. 잠깐 얼어서 말을 못 하는 순간도 있었는데, 보시는 시민 분들이 환호를 해주시면서 괜찮다고 격려해 주시더라고요.” 광화문 촛불집회 본무대만큼 거대한 객석을 마주보는 무대도 없을 텐데, 신기하게도 격려해주고 호응해주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다 들렸다. 그날 김도희 변호사는 “내일 탄핵 인용이 결정되면 박근혜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검찰 앞까지 데려다주고 싶다”고 말해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대면 의사소통에서 언어의 뜻으로 전달되는 정보는 7%밖에 되지 않는대요. 나머지는 전부 눈빛, 표정, 제스쳐, 목소리, 억양 같은 비언어적 정보라는 거예요. 제가 전달하는 정보의 93%가 ‘난 지금 당황했다, 난 지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잊어버렸다’는 메시지를 ‘뿜뿜’ 내뿜고 있는데, 보시는 분들이 모를 수가 없죠.” 이 이야기를 하면서 김도희 변호사는 광화문 본무대에 섰던 자신의 모습이 다시 생각해보면 민망한 듯 웃었다.

그러면서도 “적성에 안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모두가 탄핵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뛰는데 ‘저랑 안 맞아서 못 하겠어요’라는 말이 안 나오더라”고 말했다. 상황에 떠밀렸다고 할 수도 있지만, 김도희 변호사 스스로의 의지인 동시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이런 경험이 저의 내성적인 성향도 극복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지 않았을까요?”

퇴진특위는 해단식을 치렀지만, 김도희 변호사의 활동은 끝나지 않는다. 특검대응팀은 앞으로도 박근혜에 대한 검찰 수사를 모니터링하고, 필요할 경우 논평과 의견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번 퇴진특위 활동을 계기로 재벌개혁 문제에도 관심이 생겼다. “재벌을 포함한 국정농단 세력이 얻은 그 재물들을 뺏어 와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고,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유신 세력이 권력과 돈의 힘으로 뭐든 해결하려는 행태는 계속 남아있을 것”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이상 지난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돈으로 흥한 자는 돈으로 응징해줘야” 하고, 범죄수익이 환수되어 “그들이 빼돌린 돈까지 탈탈 털어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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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희 변호사는 “탄핵이 된다는 것에 대해 별로 의심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범죄 수익을 환수하고 재벌의 권력을 해체하는 것도 언젠가 이뤄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탄핵 직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진행자가 집요하게 ‘탄핵이 몇 대 몇으로 인용될 것 같냐’고 묻자 “8:0, 최소 7:1”이라고 말했던 김도희 변호사다. 주변에서 “다들 입 조심하는데 8:0을 이렇게 질렀다”고 놀렸지만, 그게 현실이 되었다는 것이 기쁘기만 하다. 그러니까 재벌과 유신 세력의 범죄수익환수도 언젠가 반드시 될 것이라도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

“제 세대에서는 안 될 수도 있지만, 이것도 믿고 가는 거죠. 되어야 하니까. 믿지 않으면 안 되는 거 같아요. 믿고 시작하지 않으면…….”

두 번째 이야기: 국회 탄핵 소추위원 대리인단 전종민, 탁경국 변호사

국회 탄핵소추위원 대리인단에 합류해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떠오른 생각 세 가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재판에 참여하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처음 생각은 ‘역사 앞에 무거운 책임을 지는 재판이니 책임이 무겁구나’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현실적으로 “야, 이거 일이 많겠구나”라는 생각이었다. 마지막은, “민변 회원으로서 탄핵 심판에 참여하게 되었으니 정말 잘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전종민 변호사와 탁경국 변호사가 탄핵소추 대리인단에 합류한 것은 12월 중순이었다. 국회 법사위원장인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이 민주당과 합의하지 않은 채 대리인단을 선임하자 더불어민주당에서 항의했고, 그 과정에서 민변 회원인 두 사람이 9개의 소추 사유 중 언론의 자유 침해 부분을 맡아 합류하게 됐다.IMG_9017

겨울에 시작한 재판이 끝날 때까지 석 달 남짓,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재판이었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엔 사실관계를 두고 다툰 바는 많지 않았지만, 이번엔 반대로 사실관계를 대통령측이 치열하게 다투어서 사실관계를 어떠한 증거조사 방식으로 인정할 것인지, 증인신문, 사실조회, 서증제출을 어느 범위까지 할 것인지에 대하여 대통령 측 대리인단과 치열한 다툼을 벌여야 했다.

전종민 변호사는 “헌재 재판관들도 사실 처음 재판을 시작할 때는 기준을 세우지 못했다”고 전했다. “쉽게 얘기하면 증거를 채택할 때 형사재판에 준하여 채택할 것인가, 아니면 민사재판에 준하여 채택할 것이냐가 문제였거든요, 형사는 굉장히 엄격한 조사방식을 거쳐 증거채택을 하잖아요. 그래서 국회에서는 ‘민사처럼 진행해달라’고 요청했어요,” 형사재판처럼 엄격한 증거 채택 절차를 거친다면 제출된 증거에 대한 피고인의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고,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원 진술자가 재판에 출석하여 진술의 진위를 확인해야 해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재판부는 절충적인 방식을 기준으로 세웠어요, 형사법상 전문법칙을 적용하는 쪽으로 원칙을 세우되, 다만 검찰 기록 중 변호인이 입회하여 진술한 조서는 원진술자가 심판정에 나오지 않더라도 증거로 채택한다는 것 등이지요.” 증거 채택 절차부터 매 순간이 고비였다.

두 번째 고비는 안종범과 정호성의 증인신문이었다. 최순실이 사실대로 증언할 것은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다행이 안종범, 정호성이 사실관계를 인정했다. 안종범은 ‘업무수첩 내용은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 작성된 것이 맞다’고 인정했고, 정호성 역시 ‘청와대 내부 문건을 최순실에게 보낸 것은 맞다’고 증언했다. 전종민 변호사는 “안종범이 수첩을 인정하는 순간 ‘5부 능선을 넘었다’고 생각했고, 정호성을 신문하면서 ‘7부 능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고 돌이켰다.

탄핵소추 대리인단이 겪은 마지막 고비는 태극기 집회가 가열되기 시작한 이후였다. 김평우 변호사 등 원로 변호사들이 대거 대통령 측 대리인단으로 선임되었고, 재판은 전종민 변호사의 표현에 따르면 “법리논쟁보다는 정치적인 싸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탁경국 변호사에게 가장 인상적인 증인은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다. 증인신문에 출석한 유진룡 전 장관은 “2014년 1월 초까지만 해도 ‘장관 소신대로 하라’던 박근혜 대통령이 어느 순간 좌파 척결을 주창하는 김기춘 측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안창호 헌법재판관이 “도대체 어느 시점에 박대통령이 태도가 변한 것 같냐”고 묻자 유 전 장관은 “아마 세월호 참사 이후로 태도가 변한 것 같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고 답했다. 탁경국 변호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탁경국 변호사는 “세월호 참사, 언론 자유 침해, 뇌물죄 부분에 대해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을텐데”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세월호 참사와 세계일보에 대한 언론 탄압은 검찰 등 수사기관의 수사 자료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뇌물죄 역시 국회가 탄핵 사유를 작성할 당시 검찰 공소장에 근거해 박근혜 대통령의 위법행위를 ‘직권남용’과 ‘강요’라고 제시한 상태였다. 특검이 박 대통령을 뇌물죄로 입건했다 한들 재판부에 특검 수사 결과를 증거로 제출하는 그 순간부터 대통령 측에 반박할 시간과 기회를 제공해야 했다. 두 사람은 “안종범이 5부 능선, 정호성이 7부 능선이었다. 조기에 승부를 보자는 대리인단의 전략이 주효했다”면서도 “그러한 전략으로 인해 언론 탄압과 세월호 참사가 탄핵 사유로 인용되게 할 수가 없었다”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부터 “탄핵이 인용되지 않을 거란 의심은 없었다”고 했지만, 탄핵 전날 전종민 변호사는 극도의 긴장감을 느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라의 운명을 헌법재판관 8명한테 맡기다니 가혹하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전 변호사는 “말로는 동네방네 8:0이라고 떠들고 다니면서도 한편으로는 긴장됐다”며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은 이렇게 내기라도 해야 한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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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탄핵 선고를 지켜봤던 사람들 입장에서 가장 궁금했던 건 아마도 그 순간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무슨 생각,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아닐까. 역사적인 재판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탄핵소추 대리인단이 그 순간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지 궁금했다. 전종민 변호사는 “사실 처음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문체부 1급 공무원들에게 사표 받은 것도 배척하고, 세계일보에 대한 언론의 자유 침해도 배척하고, 세월호까지 배척하는 걸 보면서 ‘아 이거 이상한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저버렸다는 것까지 탄핵 사유에서 배척되자 불안감도 느꼈다.

“사실 세월호 참사를 탄핵 사유에서 배척할 때는 좀 불안했죠. 저희는 문체부 1급 공무원들 사표 받은 것까지 두 개는 인정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국정농단과 기업의 자유를 침해한 부분만 인정했으니까요.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게다가 대통령측 대리인단은 그날 하나같이 밝은 얼굴이었다. 전종민 변호사는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채명성 변호사가 날 보면서 씩 웃는 것 같더라고요.”라고 떠올렸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을 마주보고 앉는 국회 소추위원들이 “저쪽은 우리보다 정보가 훨씬 많을 텐데 뭔가 불길한 일이 있는 거 아니냐”는 의심을 했다는 이야기가 방송에까지 회자됐다.

그러나 탁경국 변호사는 “원래 소추사유는 첫 번째가 국정농단이고, 세계일보 언론 탄압과 세월호 참사는 세 번째, 네 번째였다”고 지적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소추 사유가 먼저 등장하는 것을 듣고 선고 도중에 ‘아, 인용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결국 탄핵이 인용되어 “주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문장이 낭독되자 전종민 변호사를 바라보며 웃던 채명성 변호사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고, 이동흡 변호사 역시 급히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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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선고 직전, 탄핵 소추 대리인단 단체 톡방에서는 탄핵이 인용되더라도 웃으면 안 된다는 말이 오갔다. 탁경국 변호사는 “기각되면 웃어도 되죠?”라고 되받았다. “뭐, 저는 워낙에 자신 있었으니까.” 라면서도, “막상 ‘파면한다’는 주문을 듣고 나니까 좀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탄핵을 믿었고, 믿음 그대로의 결과를 만들었지만 감격이 없을 순 없었을 테다. 탄핵 소추 대리인단 중 흡연자들은 담배를 피우러 나간 뒤 서로 치하했고, 탄핵 소추 대리인단에 함께 참여했던 이용구 변호사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울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따로 회포를 풀 만한 여유는 없었다. 전종민 변호사는 “사실 도망간 거죠. 그날 안국역 일대 어땠는지 아시잖아요”라고 웃었다.

인터뷰 말미 전종민 변호사는 “민변에서 치열하게 활동하고 헌신하는 회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며 92년 윤종현, 김선수, 김한주 변호사를 도와 故 조영래 변호사 변론 선집을 준비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사법시험 직후 조영래 변호사 변론 선집 준비를 돕다가 시험 합격 후 판사가 되었던 전종민 변호사가 법원을 그만 두고 나왔을 때, 10년 만에 다시 마주친 김선수 변호사가 “법원 왜 나왔어? 법원에 좀 더 있지, 밖에 나와서 뭐하려고.” 하시던 게 그렇게 서운했다고. “그 후에 민변 활동을 대의원회 참석하는 정도밖에 못 했어요. 변호사 생활이 바쁘더라고요. 민변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지 못한 마음의 빚 같은 게 있어요. 처음 탄핵 심판에 참여하게 됐을 때 그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으려고 정말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민변에서 법조 첫 출발부터 지금까지 치열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변호사님들에게 존경과 격려를 보낸다고, 꼭 적어달라는 당부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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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끝나고 사진을 찍는 동안, 탁경국 변호사는 “잘 생긴 얼굴이 아니”라며 부끄러워 했다. 육아 및 가사 분담에 철저한 가정적인 남편과 아버지로 유명한 탁경국 변호사 얼굴에 웃는 주름이 선명했다. 탁경국 변호사는 지난 2015년 <계란찜 아빠, 꼬막 남편>이라는 에세이집도 냈다. 탁경국 변호사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것이 가정”이라며 “어려운 이론 말고,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 찍었을 때 예쁘게 나오는 얼굴은 따로 있다. 탁 변호사님은 얼굴에 웃는 주름이 잡혀있어서 사진 찍었을 때 근사하다”고 말하자, 탁경국 변호사의 답이 이랬다. “아내한테 사랑받아서 그래요.”

수, 2017/03/29-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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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지류인 중랑천이 흘러가는 성동교 부근. 햇살이 하얗게 들이치는 근사한 사무실이 김종휘 변호사의 사무실이다. 문화계 불공정행위를 조력하다 민변에 가입하고, 가입 1년 만에 신인모범회원상을 수상한 김종휘 변호사. 만화와 웹툰을 추천해주면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 이 사람, 김종휘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부산 소년이 서울에 가기까지

누구나 그를 만나보면 말씨에서 짐작할 수 있듯, 김종휘 변호사의 고향은 부산이다. 25살에 서울로 올라오기 전까지 쭉 부산에서 살았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17살부터 일을 시작해 안 해본 일이 없다. 각종 아르바이트는 물론이고, 친구와 동업으로 음식 장사도 해봤다. 당시 부산에서 유행하던 ‘한판 삼겹살’을 벤치마킹해서 해물탕을 팔았다. “다시는 동업을 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웃음). 사소한 것 하나도 예민해지게 되니 친구사이에 괜히 오해가 생기기도 하더라고요.”

21살에 검정고시를 보고, 22살에 방위산업체 근무로 병역 의무를 이행하고, 방송통신대를 다니다 서울로 올라와 학사편입을 했다. 26살 때 일이었다. “중앙동아리에서 신입생 모집하면서 학생회관 같은 데서 신입생 붙잡고 막 홍보하고 그러잖아요? 혹시 신입생처럼 봐줄까 기대했는데, 지나가는 다른 사람은 붙잡아도 저는 안 붙잡더라고요(웃음). 얼굴에서 확 표가 났나봐요.”

남과 다른 방식으로 대학에 간 후로는 모아놓은 돈과 고시 반 장학금으로 생활했다. “고시 반에 입실하면 먹여주고 재워주는데다 공부를 잘 하면 학비가 공짜잖아요.” 어릴 때부터 생활을 해결하는데 뛰어들면서 겪었던 어려움도 법 공부의 계기가 됐다. “나중에 보니 ‘충분히 형사 처벌 대상인데도 내가 몰라서 당했구나’ 싶은 일이 많더라고요. 집주인의 횡포에 당하기도 하고.” 좀 더 알았다면 내 권리를 지킬 수 있었을 텐데. 뭐든 배워야겠구나. 내 권리를 지키기 위해 단기간에 집중해서 공부하려면 아무래도 법을 공부하는 게 좋지 않을까.

서재 안의 세상은 경이로움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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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불공정 행위에 집중하게 된 것을 김종휘 변호사 스스로는 “우연히 연이 닿았다”고 말하지만, 따지고 들면 그냥 ‘어쩌다보니’는 아닌 듯하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보통 콘텐츠를 많이 소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김종휘 변호사 역시 마찬가지. 만화와 판타지 소설은 안 읽어본 게 없고, 지금도 TV 드라마 기다리듯 연재 웹툰을 요일별로 챙겨 읽는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는 게 좋았다. 김종휘 변호사의 형도 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형이 사다놓은 책을 같이 읽었다. 베란다는 형의 서재였다. 만화책이 꽉꽉 차 있었다. ‘슬램덩크’는 김종휘 변호사가 열 번 넘게 읽은 ‘인생만화’다. 처음 접한 후로 완결이 날 때까지 반복해서 읽었다.

그렇게 읽다 보니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다. “기본적으로 창작자들에 대한 존경심이 있어요. 솔직히 공부는 앉아서 집중하기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창작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에요.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지?’ 하는 경외심이 기본적으로 드는 거죠.”

서재 밖에서 필요한 것은 변호사

로이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는 예능과 드라마에 삽입되는 오리지널 스코어(original score, 작품을 위해 새롭게 작곡되는 음악, 특히 가사가 없는 연주곡)를 제작하는 회사였다. 이 회사의 사장 김한조는 회사에 소속된 작곡가들에게 저작 권리를 영구적으로 양도할 것을 요구하는 불공정 계약을 강요했다. 만들어진 음악은 회사가 헐값에 가져갔고, 작곡가들에게는 월 100만 원도 안 되는 돈만 남았다. 저작권자의 명의까지 회사가 통째로 가져갔으니 작곡가들에게는 경력도 남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가 만든 음악이 어떤 작품에 삽입되는지도 모르는 채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소위 ‘유령작곡가’ 사건이다.

변호사 개업 직후 이 ‘유령작곡가’ 사건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김종휘 변호사는 문화계 내의 불공정행위를 바로잡는데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작은 페이스북이었다. 손아람 작가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고, 함께 일하는 파트너 변호사가 손 작가와 고등학교 동문이라며 ‘이런 문제에 관심이 있느냐’고 물었다. “특별히 소명의식이 있었다기보다는, 그쪽 분들은 어려움에 처해있고 저는 막 개업한 상태라 시간이 많았어요.”

음악은 작품을 완성하는데 중요한 요소다. 공포영화의 고전으로 남은 히치콕의 <싸이코>를 떠올려보자. 신경을 긁는 듯한 바이올린 선율이 만들어내는 긴장과 공포는 영화에서 음악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교과서다. “영화 <죠스>를 생각하면 그 음악부터 생각이 나잖아요? 그게 음악이 중요한 이유인 거죠. 이러한 콘텐츠를 창작하는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처우를 받고 있으니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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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휘 변호사는 로이엔터테인먼트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고 이와 별개로 형사 고소도 진행했다. “형사 고소 건은 검사가 바뀌기 전에는 거의 결론 나기 직전인 상태였는데, 담당 검사가 바뀌면서 정체되고 있어요.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한 것도 이제야 신고서를 검토하고 있고요.” 사건이 이렇게 느릿하게 처리되는 사이 로이엔터테인먼트가 수많은 반대와 문제제기에도 JTBC 드라마 <송곳>의 음악을 맡으면서 사건이 흐지부지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다.

“창작자들이 제대로 보호를 받아야 좋은 문화콘텐츠가 더 나올 수 있는 것이고, 그런 부분에서 미천하게나마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다행히 로이엔터테인먼트에서 한 달 100만 원을 받으며 이름도 빼앗긴 채 음악을 만들던 김인영 작곡가는 지금 KBS 드라마의 음악감독을 하고 있다. “김한조 사장은 원래 예능에 삽입되는 음악을 하다 드라마에 손을 뻗으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였어요. 다행히 드라마 쪽 일은 완전히 끊겼다고 하더라고요.”

최근에는 서울시를 통해 레진코믹스와 만화가 간의 불공정 계약을 개선하는데도 참여했다. 레진코믹스는 작가와 계약을 맺을 때 2차 저작권에 해당하는 해외 판권까지 한꺼번에 양도받는 식으로 계약을 해왔다. 또 주간 연재되는 웹툰에 원고료는 한 달 단위로 지급하면서 4회 연재되는 달이나 5회 연재되는 달이나 똑같은 원고료를 지급하는 것도 문제였다. 서울시가 레진코믹스 측에 시정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해외 판권 문제를 해결하는데 김종휘 변호사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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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는 ‘우연’이라고 말하지만, 서재 안의 세상에 경탄했던 부산 소년은 자라서 이렇게 서재 밖의 창작자들을 변호하는 변호사가 됐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

‘유령작곡가’ 사건은 김종휘 변호사가 민변에 가입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제가 연수원 때 인권법학회 회장을 했어요. 학회를 같이 했던 분들이 민변에 많이 가입했었죠. 저는 ‘언젠가는 가입하겠지만, 지금은 여기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만으로 미뤄왔었고요.” 유령작곡가 사건 대응 회의에서 김종보 변호사와 강신하 변호사를 만났고,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입을 미뤄왔던 민변에도 가입했다. “이 사건을 맡으면서 ‘혼자 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입법운동 차원으로 전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민생경제위원회 공정경제팀에서 한경수 변호사님이 강의하시는 공정거래법 강의도 듣고, 많이 배우는 심정으로 임하고 있어요,”

공정경제팀에서 김종휘 변호사는 문화콘텐츠 쪽 이슈를 주로 분석하고 알리는 일을 맡는다. 팀 간사도 맡았다. “사실 아직 배우는 단계라, 팀 활동을 하면서 여러 변호사님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공정경제팀은 유난히 관여하는 분야가 넓은 팀이라,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바가 크다.

김종휘 변호사가 최근에 관심을 갖는 사례는 임상심리사들의 노동 문제다. 임상심리사들은 수련과정을 3년 거쳐야 자격증이 나온다. 그 3년간의 과정에서 부당노동행위, 성희롱 등의 문제가 많다. 임상심리사의 근무를 관리 감독하는 ‘슈퍼바이저’가 사실상 임상심리사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상태인데, 초과근무를 해도 초과근무수당도 안 나오고, 오히려 성희롱 같은 문제에 노출되어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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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는 어려웠다. 상담을 해준다고 해도 연락하는 사람은 적고, 자세히 듣고 싶어 연락처를 남겨둔 걸 보고 전화해오는 사람은 더 적었다. 최근에는 ‘이슈화 시킬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들어 실태조사를 준비하는 중이다. “이 문제에 관심 갖는 기자가 있어서 실태조사 등을 준비하려고 해요. 민변에서 보고 배운 것들이 있으니까.(웃음) 일단 ‘절차적으로는 이런 순서로 진행해야겠구나’ 하는 걸 알게 된 거죠.”

민변의 신인상신입모범회원

민변에선 흔한 이야기라 진부할지도 모르겠다. 김종휘 변호사는 “남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어” 변호사가 됐고, 앞으로도 연수원 수료할 때 했던 ‘돈만 쫓지는 말자’는 다짐을 지켜가고 싶다. 연수원에서 인권법학회에 들어갔던 것도 ‘내가 어떤 부분에서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공부하고 싶어서였다. 김종휘 변호사에게 민변 활동은 자신이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찾아 나가는 과정이다.

유령작곡가 사건으로 지난해 민변 가입과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김종휘 변호사는 하반기에는 민변에서 급하게 꾸렸던 ‘미르·K스포츠 재단 대응팀’에서도 활약했다. 뉴스가 한창 쏟아져 나오는 틈바구니에서 일을 하려니, 새로운 보도가 나올 때마다 이미 써놓은 고소장 초안을 고쳐야 했단다. “이 팀이 ‘박근혜정권퇴진특위’에 자연스럽게 흡수된 뒤에는 다른 분들보다 열심히 활동하지 못했어요. 매일매일 들어오는 정보를 습득하기도 바빴어요.” 그러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폭로됐다. 김기춘, 조윤선에 대한 고발장을 작성해 특검에 제출했다. “고소장을 제출한 날이 특검이 대치동 사무실에 처음 출근하는 날이었어요.”

“블랙리스트 사건을 맡으면서 ‘아, 이런 게 진짜 이뤄지는구나’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블랙리스트에 오른 당사자들도 진술 과정에서 비슷하게 털어놨다. 농담 삼아 “아, 나 찍힌 거 아냐?” 하긴 했지만, ‘내가 뭔가 부족했던 게 있었겠지’라고 생각했던 문화예술인들이 “혹시 블랙리스트 때문에 떨어진 거 아닐까”하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블랙리스트라고 의심하기보다 ‘위에서 싫어한다’ 차원으로 이해했던 거 같아요. 문체부 직원들이 와서 ‘지원을 포기해 달라’고 사정을 하니까. 그래서 ‘이 정권 하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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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활동을 인정받아 김종휘 변호사는 올해 총회에서 신인모범회원상을 수상했다. 수상의 기쁨보다 ‘나보다 열심히 하시는 회원도 많은데 내가 타도 되는 걸까’하는 망설임이 앞섰다. “신인모범회원상 진짜 부담스러웠어요. 이수연 간사님이 총회 참석 요청했을 때 신혼이라 좀 어려울 것 같다고 했더니, ‘수상자이기 때문에 꼭 오셔야 한다’고 설득하시더라고요.” 원래 총회 참석이 어려웠지만, 당일치기로 짧게 참석해 상을 타고 돌아갔다.

“이런 상을 주시면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겠죠. 그렇게 알고 더 열심히 하려고요. 다음 총회 때는 꼭 뒷풀이까지 참석하려고 해요. 이번에는 상만 받고 가서 좀 아쉬웠거든요.”

목, 2017/06/29-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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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활동가 인터뷰

인터뷰/정리: 노우리, 은연지, 이상은, 정태영

 

석면 광산, 반올림 사건, 월성 1호기 원전 사건. 제각기의 사안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국가나 기업이 국민의 건강하게 살 권리를 침해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 좌절하지 않고 모두가 건강하게 살 권리를 위해 부지런히 뛰는 한 공익변호사가 있다. 바로 박애란 변호사다. “부모님 고향의 예쁜 별, 나무, 산을 보며 자랐다”고 소개를 대신한 그는 “그런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을 보장받으며 일할 수 있는 세상”을 자연스럽게 꿈꾸게 됐다고 말했다. 7월 7일 오후, ‘럭키 세븐’이 두 번이나 겹친 날답게 유쾌하고 정감 가는 인터뷰였다.

 

[어릴 적부터 꿈꿔온 공익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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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계기로 공익변호사가 되셨는지 궁금해요

박애란 변호사(이하 박): 맨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게 언제부터인지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인 것 같아요. 저희 집이 대가족이었어요. 부모님, 형제들,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시고 10명이 바글거리며 살았죠. 그중 마르크스 철학을 전공하시고 지금은 교수인 삼촌이 한 분 있어요.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제 기억에 삼촌이 매일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서 운동권 활동 하면서 집에 와서 세미나를 했어요. 노동자, 권리 이런 얘기들을 어려서부터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게 당연히 정의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런데 나중에 보니 굉장히 소수의 사람만 그렇게 생각하고 살더라고요. (웃음) 근데 저는 이미 그런 쪽 일을 해야겠다고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양한 공익인권 분야 중에서도 환경보건이라는 분야를 하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 저희 부모님 고향이 섬이었는데요. 그곳의 예쁜 별, 나무, 산 이런 자연을 보며 자라다보니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게 너무 싫더라고요. 특히 저는 무서운 게 싫고 건강하고 쾌적하게 살고 싶거든요. 그런데 자꾸 개발하면서 환경을 파괴하면 어떤 재해가 생길지 모르잖아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원전 숫자가 단위면적당 세계1위예요. 그런데 앞으로 원전사고가 세계 어디서 일어날지 확률적으로 계산했을 때 한국이 1위래요. 누구나 건강하게 살고 싶지 아프면서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그래서 누구나 건강하게 살 권리에 대해 생각하고 살 것 같고요. 또 민변 환경위원회 분들이 너무 좋기도 하고요.

 

[가리왕산과 석면광산,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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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소송은 승소하기 어렵다고 들었어요. 혹시 겪으셨던 패소 사건이 있나요?

박: 힘든 일이 많이 있어요. 겪었던 일로는 가리왕산 사건이 있겠네요. 가리왕산은 초년생부터 다년생 주목이 분포하고 있는 아름다운 산이에요. 정부가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2018년 평창올림픽 활강 경기장으로 사흘 사용하겠다고 복원 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 공사를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민변에서 2014년에 공사중지가처분신청을 했었죠. 제가 맨 처음 민변에서 맡은 사건이기도 해요. 그런데 가리왕산 사건에서는 주변 주민들이 가리왕산에서 얻는 환경 상 이익을 입증하지 못해 패했어요.

 

가리왕산 사건에서 문제가 됐던 것은 원고적격이었어요. 외국에서는 자연물에도 원고적격을 인정하고, 일정한 조건을 갖춘 단체가 대리하게 해요. 가리왕산 자체가 소송이 가능했다면 피보전권리에 대한 고민은 필요가 없었겠죠. 이 부분은 앞으로도 생각해봐야할 문제라고 봐요.

 

충남 청양군 폐석면광산 관련해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셨던데, 관련한 얘기가 듣고 싶어요.

박: 일단 우리나라에 석면광산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시죠. 서울 면적의 10배 정도, 전 국토의 6%가 석면광산이에요. 석면광산이 다 충청남도나 강원도에 있다 보니까 그런 사실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석면이 1급 발암물질이거든요. 이것이 최근에야 알려졌고 석면안전관리법도 2011년에서야 제정되었어요. 그 전에 석면광산에서 개발이 이루어진 경우 관리도 안 되고 있죠. 또 주민들에게 지질도 공개도 투명하게 하지 않았고요.

 

참고로 저희는 학교에서 석면마감재를 못 쓰게 한 이후로 학교를 다니게 한 세대거든요. 그래서 석면이 뭔지 제대로 본 사람이 별로 없어서 특히 심각성을 몰랐던 것 같아요.

박: 제가 있는 특위가 맡고 있는 사건은 충청남도 청양군 강정리의 석면광산이에요. 거기는 광산 위에서 폐기물 처리장을 운영하고 있어요. 폐기물 차량이 오가면서 석면이 날리고, 그로 인해 주민들이 석면폐증, 진폐증, 폐암 같은 걸로 고생하시고 계세요. 충남 산하의 특별위원회(충청남도 청양면 강정리 석면 폐기물 문제해결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제가 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죠.

 

거기 주민 분들은 바로 옆에 산에서 그런 일이 있는데, 먼지 날리지 말라고 이 성분들을 바닥에 뿌려놓고 사세요. 나중에야 석면 원석 성분을 바닥에 깔고 썼다, 이렇게 아신 거죠. 이런 것들이 빨리 정리가 되어야 하는데 너무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어 안타까워요.

 

특위가 최근 이 폐기물 처리 업체가 최종처리업 관련해서 청양군수를 상대로 낸 폐기물 처리 사업계획서 부적정 통보 처분 취소 소송에서 기각 판결을 이끌어냈고, 기존에 하던 사업인 중간처리업 관련해서도 청양면에 직무이행명령을 내리도록 권고해서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죠.

 

직무이행 명령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요?

박: 충청남도에서 청양군한테 폐기물처리업이나 석면을 관리하는 것을 위임을 해준 상태에요. 청양군이 석면광산에 대해 실태조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거죠. 지금 몇 년이 지났는데 실태조사 같은 것도 한 번도 못한 상황이에요. 그런데 이번에 충청남도에서 직무이행 명령을 받아줘서 청양군한테 직무를 이행하라고 명령을 내린 거죠. 이걸 청양군이 받아주면 실태조사도 할 수 있고 그곳에 조사목적으로 들어갈 수도 있게 돼요. 사실 이전에 들어가려고 몇 번 시도해봤는데 번번이 막혔어요. 영장이 없었으니까요. 지금 그래서 여러 가지 혐의가 짙을 때는 영장 받아서라도 갈 수 있으니 그런 방법을 검토 중이에요. 이후에 실마리가 조금이라도 풀리기를 바라고 있어요.

 

월성원전 1호기 수명연장무효소송에서 승소하시기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오랫동안 실패만 하면 지속이 안 될 텐데, 한 번씩 이길 수도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생각 들었어요.

박: 네! 월성 원전 사건을 하면서 선배 변호사님들께 많이 배우며 일을 도와드렸어요. 어쨌든 월성원전 1호기 이겼을 때 정말 기분은 정말 좋았습니다. 눈물 흘렸어요. 저는 변호사로 활동한 시기가 길지 않아 아직까지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노동환경과 산업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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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위 활동 외에도 요새 주력하고 있는 일이 있으신가요?

박: 저는 환경쪽에 관심이 많아서 지금 박사과정으로 환경법을 전공하고 있기도 해요. 이제 논문을 써야 하는데, 환경법에 대해 법철학적인 관점에서 검토를 해보고 싶어서 논문주제를 잡고 있어요. 또 노동법에도 관심이 많은데 특히 산업재해에 관심이 많아요. 산업재해가 크게 보면 결국 노동환경이 잘못 되어서 벌어진 일이잖아요?

 

산업재해 관련해서 제가 하고 있는 사건이 반올림과 함께,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다발성 경화증, 유방암을 앓고 계시는 두 분의 대리를 하는 것이에요.

 

다발성 경화증 사건은 언론에도 많이 나왔죠. 다발성 경화증은 뇌에 중추신경에 수초라는 부분이 손상이 되면서 몸에 이상이 나타나는 질병인데 병소의 예측이 어려워요. 손발이 마비될 수도 있고, 실명이 될 수도 있죠. 김미선 님은 17세에 일을 시작해서 3년간 일한 뒤 다발성 경화증에 걸렸는데, 거의 실명이 되셨어요. 산재를 신청하셨고, 1심에서 승소했는데 근로복지공단의 항소로 2심을 진행 중이에요. 유방암 같은 경우는 삼성반도체의 하청업체에서 발생한 사건인데, 현재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에 대해 문서제출이 이루어져 역학조사 보고서와 비교 분석하는 일을 했어요.

 

두 사건을 대리하며 드는 생각은, 노동자들이 최우선으로 제 몸 하나만큼은 지킬 수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런데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제대로 교육도 이루어지지 않아서 어떤 물질이 자신의 몸에 어떻게 유해한지도 모르고, 작업환경 측정자체도 너무 부실하게 일부 물질에 대해서만 되어있고요. 각 기관마다 어떤 유해 물질이 발생하는지 꼼꼼하게 조사해서 안전 장비 등을 제대로 갖추게 해야 하고, 또 그렇게 문제가 터지면 문제 사실을 제대로 공개하고, 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세우고 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그런데 기업 쪽에서는 작업환경 측정 결과가 업무상 비밀이라고 공개를 안 해요. 법원에 문서 제출 명령을 신청하고, 정보공개 청구를 하고 해서 문서를 받아보게 되어도 정작 중요한 화학물질은 다 가려져서 오는 경우가 많고요.

 

특정 상품의 제작과정이 산재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과정이라면, 즉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면 상품화되면 안 되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박: 제가 보니까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LCD사업장 같은 경우에는 클린 룸이라고 해서 먼지가 조금도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방진복 입고 작업을 해요. 그러다 보니까 환기도 안 되고 해서 안 좋은 것들을 자꾸 흡입하게 되죠. 그러다보니 다들 병 얻고 나서 ‘돈 없어서 이렇게 위험한 일 한 게 한이 된다.’고 말씀하세요. 가슴 아프죠.

 

또 이게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아요. 어떤 피해자 같은 경우는 산재 신청할 때 괜히 이러다 회사 망하게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하시고,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마음에 넘어가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래서 노조가 있는 건가보다 생각했죠. 사업장이랑 인간관계 끊기고 싶지 않을 때, 개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이 있을 때 노조가 많은 일을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노조의 관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도 느꼈던 것 같아요.

 

[공익전담변호사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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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전담변호사로서의 삶은 어떻다고 생각하시나요?

박: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소송이나 이런 일들이 너무 좋은 게, 하는 일들이 정말 의미 있게 느껴져요. 또 ‘무슨 사건을 해라’ 위에서 떨어지는 구조가 아니고, 제가 하고 싶은 사건이 있어서 그걸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열정이 더 생기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기분을 느껴요. 어떻게든 이걸 해내야 된다는 생각이 들고요. 공익변호사라는 직업의 단 맛을 봐버린 것 같아요.

 

그래도 공익변호사가 하는 일이라는 게 최전선에서 싸워야 하는 거잖아요. 상대편의 옳지 않은 행동을 보면서 화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화라는 게 에너지도 되지만 오래 가지고 있으면 지치기도 하는데, 일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 무엇일까요?

: 저도 상대편이 밉지만 그 상대편의 실체가 없을 때가 많아요. 구조나 시스템 같은, 보이지 않는 것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대다수라는 거죠. 기업이나 국가는 선의로 벌인 일이라고 해도 그게 나쁜 결과를 일으킨다면 제도적으로 잘라내야죠.

 

그리고 힘든 일이 많이 있지만 맘 맞는 변호사님들끼리 모여서 같이 화내고 술 먹고 이러다가 풀고 힘내고 해요. 특히 민변 환경위에 좋아하는 변호사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제가 맨 처음 가입을 했을 때부터, 권위의식 하나 없이 편하게 대해주시고. 사람들이 너무 좋으니까 같이 만나서 일하는 과정이 전부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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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공익 변호사 쪽을 생각하는 예비 로스쿨생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이 있으신가요?

박: 저는 공익변호사 생활에 되게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물론 이 활동이 지속 가능할까, 이런 고민들은 항상 있어요.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은 계속 안고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만 각오하시면 일은 너무 재밌고 좋은 사람들도 훨씬 많이 만날 수 있어요. 그리고 변호사이기도 하지만 활동가로서도 일하는 셈이니까 성격적으로 그런 것이 맞기만 하면 엄청 재미있을 것 같아요. 추천합니다.

월, 2017/07/2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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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 처우 개선을 위한 10년의 걸음

_곽경인 서울사회복지사협회 사무처장

 

인터뷰 및 정리 |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지난 9월 17일, 제18회 사회복지의 날을 맞아 여러 지자체에서 기념행사가 진행되었다. 1년에 하루, 기념일에 열리는 화려한 행사 뒤에는 365일을 하루 12시간 노동, 저임금, 불안한 고용을 경험하는 사회복지사들이 있다. 수년 전, 사회복지 공무원이 잇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자 사회복지사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처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으나,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회복지사들이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새정부는 사회복지 분야에서 상당한 규모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고 계획하고 있다. 양적인 증가가 예상되는 가운데, 과연 사회복지사 노동의 질적인 개선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회복지사의 처우 개선을 고민하고, 개선에 앞장서 온 곽경인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 사무처장을 만나 문제의 원인과 해결을 위한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참여연대

자기소개 부탁한다

현재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이하 서사협) 사무처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올해가 10년차다. 2010년 7월 결성된 서울시사회복지단체연대회의 사무국장 7년째 맡고 있다. 연대회의는 2010년에 조직한 회의체인데, 현재 서울지역 17개 직능협회가 회원단체로 참여하고 있으며, 서울시민의 복지향상을 위해 사회복지시설 직원 처우개선과 운영보조금 현실화를 위해 협력하고 있는 연대체다.

 

서사협은 어떤 활동을 하는 곳인가?

서사협은 서울지역 사회복지사 약 9천 명이 함께하는 회원조직이다. 사회복지사의 권익향상과 전문성 향상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사회복지시설 단일임금체계 수립, 사회복지정책 제안, 사회복지사 법정 보수교육 실시, 회원조직사업 등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1년에 160회를 진행하고 있는 사회복지사 보수교육은 매년 약 10,000명이 교육을 받고 있으며, 전국에서 교육 잘하기로 소문나 있다. 질 높은 교육을 위해 좋은 강사와 커리큘럼 개발에 노력하고 있다.

사회복지사의 처우개선을 위한 성과로 최근 5년간 서울시와 함께 전국 최초의 사회복지시설 단일임금체계 도입을 마무리했다. 몇 년전만 해도 사회복지의 각 영역, 장애인, 아동, 노인 등이 서로 다른 임금체계를 갖고 있었으나 이를 하나의 임금체계로 통합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아쉬운 점은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가 책임지고 있는 사회복지시설과의 임금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점이다. 전국 어디서 근무하던지 어느 분야에서 근무하던지 교사나 공무원과 같이 하나의 임금체계를 적용받는 것이 꼭 필요하다.

 

서울시 사회복지사의 임금과 처우가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사회복지사는 근로기준법에 의해 특례 업종에 속한다. 사회복지사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근로기준법 제59조 대통령령에 따라 사회복지사업은 특례 업종에 속하고 있어 사회복지시설 직원들의 장시간 노동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관련하여 지난 6월에 서사협은 한국사회복지사협회(이하 한사협)와 함께 사회복지사업을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9월초에 사회복지계가 모두 모여 국회에서 토론회를 진행한 바 있다. 사회복지사업의 근로시간 제외 요구가 많은 만큼 관련 법률이 개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회복지사업은 소규모시설이 많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서울시 1,500개 사회복지시설 중 5인 이하 시설이 약 53%이고, 지역아동센터, 아동그룹홈, 보호작업장, 주간보호센터, 사회복귀시설, 노숙인시설 등이 대부분 2~4명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10인 이하의 시설까지 합산하면 약 70%에 달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그렇다보니 근로기준법을 지키며 좋은 노동환경에서 운영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해결과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

 

노동자로서 사회복지사가 의무와 권리 이행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사회복지 노동조합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직률이 미미하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사회복지사협회 조직 강화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서사협에서는 근로기준법 등이 바뀔 때마다 사회복지시설 노무 가이드북을 만들어서 배포하고 교육을 하고 있다. 2015년에는 노무사를 보수교육 강사로 섭외해서 1년에 60회 정도 근로기준법, 노동권 등의 주제로 의무교육을 편성하기도 했다. 사회복지사를 양성하는 교육계에서도 노동에 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대학교육과정에서 노동권 교육이 너무 부족하게 이뤄지다보니 노동에 대한 이해 없이 복지현장에 투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사회복지 영역을 포함한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과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등의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사회서비스공단은 보육과 요양분야에 꼭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정신건강복지센터와 같이 고용불안에 처해있는 기관들은 광역단위의 공단에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공단이 생기면 임금뿐만 아니라 노동환경의 개선도 함께 이루어질 것이다. 사회서비스공단이 기존시설을 견제할 수 있는 역할을 감당한다면 우리나라 사회서비스 분야의 질적 개선이 가능해 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회서비스공단이 양적인 측면에서의 논의가 아닌 보다 현장중심으로 접근해야함을 강조하고 싶다.

 

활동하면서 겪는 어려운 점 또는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

지난 5년간 서울시와 단일임금체계, 보조금 현실화, 위탁 문제 등의 내용으로 협의 해 왔으며 성과도 있었다. 그 중 서울시 사회복지시설 단일임금체계는 사회복지사의 처우개선 역사에 큰 의미를 가지는 일이며, 앞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되기를 기대해 본다.

9천 명의 회원 확대, 17개 사회복지직능단체와의 의견 조율, 서울시 담당 공무원들과의 협의과정 등이 늘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특히 각자의 입장에서 임금문제를 접근하고 주장할 때,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어려웠다.

 

향후 활동계획은 무엇인가?

전국적인 사회복지시설 단일임금체계를 만드는 게 꿈(?)이다. 서울에 사회복지시설 직원이 1만 3천 명이 있다. 이 중 9천 명은 서울시 단일임금체계 적용을 받는다. 나머지 4천 명은 여전히 적용받지 못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지역아동센터, 아동그룹홈,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있다. 아동그룹홈 관계자들은 현재 광화문 앞에서 2주째 노숙농성 중이다. 지역차별 없이, 영역 상관없이 하나의 임금체계를 적용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리고 서사협에서는 2012년부터 기관방문을 시작했다. 첫해는 약 300곳을 방문하였고 작년에는 700곳을 다녀왔다. 회원들을 만나 복지현장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리고 조직화 하는 것이 회원조직의 가장 기본이라 생각한다. 회원들과 함께 성장하고 회원들의 생각이 협회의 정책이 되는 조직이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일, 2017/10/0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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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장난기 서린 웃음을 가득 담고 누구에게나 성큼 손 내미는 유쾌한 청년’

강산애 산행에서 만난 전귀정 후원회원님의 첫인상입니다. 강산애 총무를 맡고 있기도 했지만, 산행에 처음 참가하는 회원에게 먼저 다가가서 세심하게 챙겨주며 배려하는 친화력이나, 긴 다리로 성큼성큼 산을 오르는 활기찬 모습에서 선뜻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전귀정 후원회원이 직업군인으로 30여 년을 일했고, 곧 퇴직을 앞두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이나 직업의 경직된 그늘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오히려 언제나 자유분방한 청년 같은 에너지를 가득 품은 그가 궁금했습니다.

후원기획팀(이하 후원) : 희망제작소와 언제 첫 인연을 맺으셨나요?

전귀정 후원회원(이하 전) : 2011년 춘천에서 근무할 때였어요. 희망제작소 후원회원 행사인 ‘희망탐사대’가 춘천에 온다고 해서 참가신청을 하고 후원회원이 되었습니다. 두 자녀가 모두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평소 시민단체에 관심이 많았어요. 희망제작소가 어떤 곳인지 자세히 알고 싶어서 신청했던 게 시작이었지요. 그때 전명국 후원회원님도 처음 만났는데요. 강산애를 소개해주셔서 자연스레 산행에 참여하게 됐어요. 그러다 2016년에는 1004클럽 회원이 되었습니다.

후원 : 강산애 활동은 어땠나요?

: 강산애 회원이 늘어나면서 활기를 띠고, 뭔가를 해보자는 기운이 가득 차 있을 때 참여하게 됐어요. 너무 좋았죠. 좋은 사람들과 풍성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헤어지는 시간이 아쉬울 정도였어요. 강산애에는 3무 규칙이 있어요. 나이와 지위, 학벌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을 떠나면 수평적이고 평화로운 관계를 선호하는 욕구가 제 안에 강하게 있어서 강산애랑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강산애를 담고 있는 희망제작소가 더욱 아름답게 보였죠.

지난 연말, 촛불이 뜨겁게 타오르던 광장에서 전귀정 후원회원님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얀 소맷자락을 휘감으며 광장 한가운데에서 평화의 춤을 추는 전귀정 후원회원님의 모습은 마지막 남은 그늘 한 자락까지 다 털어버린 듯 강렬하고 자유로웠습니다.
전귀정 후원회원님은, 광화문광장뿐만 아니라 함께 활동하는 평화의 춤꾼들과 자비를 들여서 광주 5.18 묘역, 제주 4.3 묘역을 찾아서 아픈 역사의 상흔을 위로하는 춤을 추었습니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 그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그래서 용서와 평화를 기도하며 춤을 추었다’는 전귀정 후원회원님. 자신도 그곳에서 마음을 비우고 새롭게 채우는 과정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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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 춤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 올해로 35년 동안 일을 했는데요. 10년 전부터 퇴직을 하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 나름대로 세 가지 원칙을 세웠는데요. 첫 번째는 월급을 받는 직장생활은 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이제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았거나 두려워했던 일에 도전한다, 세 번째는 모든 걸 새로 시작하자는 것이었지요. 춤, 노래 이런 건 제가 두려워했던 거였어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일이 아닌가 해서 용기 내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후원 : 춤출 때 어떤 느낌인가요?

: 나 자신에게 몰입하다 보면 순간순간 느껴지는 감동이 있어요. 부암동에 연습실이 있는데 한번은 수업 시간에 35년 직업을 회고하면서 춤을 추었어요. 그때 굉장히 뭉클하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움직인다는, 자유롭고 깊은 느낌이 저에게도, 주변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먹먹한 울림을 주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전귀정 후원회원님은 내년 2월 퇴직을 앞두고 있습니다. 1년 동안 사회적응 기간을 보내면서 서울시50플러스센터에서 요리를 배우고, 희망제작소 모금전문가학교를 수강하고, 여행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 하는 일을 흔히 ‘업’이라고 합니다. 평생직장의 신화가 사라지고 이직과 전직이 흔해진 세상에서 한 가지 업에 35년이라는 시간을 오롯이 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전역지원서를 수백 번 썼다 찢었다’는 전귀정 후원회원님은 이제 인생 전반기를 마치고, 제2의 인생을 치열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후원 : 앞으로 계획은?

: 일단 내년 2월에 퇴직할 때 기념으로 뭔가 의미 있는 나눔을 하고 싶어요. 인생의 한 매듭을 그렇게 지었으면 좋겠고, 그런 나눔이 나머지 생에서 꾸준하게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싶어요. 장기적으로는 아직 희망사항이지만 고향 인근에서 포도농사를 짓고 싶어요.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준비할 생각입니다.
퇴직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한 것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관한 것이었어요. 일하는 동안은 눈앞에 일들에 얽매여서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거든요. 자유, 희망, 나눔. 앞으로는 이 세 단어를 마음에 품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 글, 사진 : 커뮤니케이션센터 후원기획팀

수, 2017/10/11-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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