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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는 다른 삶, 사회적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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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는 다른 삶, 사회적 경제

익명 (미확인) | 화, 2017/01/17- 11:25

시장과 사회적 경제라는 제목을 정해 놓고는 한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칼럼이라는 제약된 공간에 다루기에 주제가 너무 큰 탓도 있지만, 양자 간의 성격과 역할을 어떻게 설정하는 할 지 한동안 망설였다. 단순하게 현재의 시장기능이 갖는 비인간적인 탐욕을 비판하고 대안으로 사회적 경제를 설정하고 소개하는 수준에서 글은 쓴다면 쉽게 해결될 일이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과연 사회적 경제가 문제투성이지만 인간의 삶에 풍요를 가져온 시장경제를 대체할 수 있는 주류적 대안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본제적 시장경제의 폐해를 보안하는 장식물 수준으로 머물 것인지, 양자가 병립하면서 각자의 영역을 유지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상호작용을 하는 것인지, 대립적으로 충돌하면서 역사의 사건을 통하여 결국 한축이 실질적으로 소멸해갈 것인지 등 쉽지 않은 의문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결국 필자 스스로 구한 타협은 ‘인간이 왜 사냐’는 질문에 대답이 없듯이, 본 주제 역시 결국은 ‘인간에 대한 탐구’이고 따라서 산술문제처럼 명쾌한 정답이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편하게 글을 시작해 본다.

시장의 발전과 자본주의

일단 시장경제는 개인을 생존본능적 탐욕과 편함을 추구하는 존재로 파악하고 개인적 욕망이 시장을 움직이는 기본 동력으로 파악한다. 반면 사회적 경제는 인간과 인간사이의 협동과 가치를 중심으로 활동 영역을 설정한다. 따라서 인간의 외양적 존재양식으로 개인과 사회, 그리고 내면적 형질로서 탐욕적 이기심과 협동적 이타주의라는 상반된 주제를 함께 마주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시장이 본격적으로 인류사회에 도입된 시대는 중국의 송대(宋代)라고 알려져 있다. 중국미술사의 3대 보물로 알려져 있는 청명상하도(淸明上下圖)는 송대를 묘사한 그림으로 길이가 50미터가 넘는 비단폭에 당시의 화려한 도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는 대로변에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고 곳곳에 다양한 물산을 만들고 판매하는 모습을 정밀하고 화려하게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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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상하도의 일부.

이후 중국사회는 시장이라는 놀라운 기제를 통하여 서구의 산업혁명이 본격화되기 직전인 청의 건륭제 시대까지 인류사에서 물산이 가장 풍요로운 사회를 형성해 왔다. 이러한 역사적 유전인자가 굴욕적인 근대 역사를 극복하고 굴기하는 현대의 중국에서 재현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필자의 앞선 칼럼 ‘한국, 자유주의 결핍인가, 과잉인가’에서도 언급했듯이, 중세 말 자유도시의 출현과 함께 태동한 상업주의 기반 위에 증기기관의 발명 등 과학기술과 결합한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생산의 역사는 그간 완만한 산술적 속도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기 시작하였다.

수렵에서 농업의 시대로부터 정착된 수 만년의 긴 세월 동안 생산력이 두 배 정도 증가하는데 천년이라는 기간이 필요하던 시대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18세기 이후에는 같은 생산력의 증가를 수 십년 단위로 이루어내는 시대로 급작스레 진입하게 된다.

이러한 기하급수적 생산력 증대를 가져온 삼백 여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인류사회는 생물적 존속에 필요한 식량과 의복을 포함한 기초재의 해결을 넘어서서 대중적으로 풍요를 즐길 수 있는 대량생산과 유통이 가능한 경제력과 기반시설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왕성한 생산확장과 경제활동에는 역시 시장이라는 기제가 중심적으로 작동하여 왔다. 전통적으로 자신이 만들어낸 물건 또는 역할을 생활에 필요한 타인의 물건과 역할로 교환하고 매매하던 시장이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성격과 기능이 변하기 시작한다.

C-M-C’ (C:물건, M:화폐)로 표현할 수 있는 물물중심의 거래방식이 상업주의 시대에는 화폐가 중심매체가 되어 M-C-M’ 로 대체되고, 다시 산업혁명을 거치는 동안 M-P(N,L,T,,…)-C-M’ (P:생산과정, N:자연-토지와 원료, L:노동, T:기술,….)으로 바뀌어 가면서 M’ -M = ∆M, 즉 자본의 자기증식이 시장의 주요한 목적으로 변질되었다.

18세기이후 합리적 이성과 과학주의가 사구사회에 전면적으로 등장하면서 상기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려는 학문적 노력이 다양한 시각에서 이루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또한 실천적 노력의 과정이다. 문제는 이를 자신의 탐욕을 실현하는데 악용한 지배집단의 이데올로기 작동방식이었다.

경제학의 탄생…인간행위에 대한 수리적 도식화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건 푸줏간 주인, 술도가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생각 덕분이다”라는 이야기로 잘 알려진 아담 스미스(1723-1790)만큼 우리에게 잘못 소개된 인물도 드물다.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그동안 윤리학에 속하여 있던 경제라는 영역을 별도로 분리하여 독립된 학문으로 개척한 아담 스미스는 단순히 분업론만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노동가치설, 자본축척론, 특혜와 독점에 대한 비판 등을 주창하였다.

또 주연구 분야인 윤리학 분야의 저작 ‘도덕감성론’을 통하여 인간사회의 도덕과 정의, 질서 등 광범한 주제를 다루었다. 또한 그 역시 가난한 이웃을 위해 평생 동안 상당한 기부를 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수공업적 가내공업에서 공장제 대량생산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었고, 다수의 가내수공업적 공급체계라는 조건 속에서 이상적인 분업과 시장적 균형이론이 실제적으로 잘 적용되었으며, 우리에게 잘못 알려진 가공의 ‘스미스’와는 반대로 그는 미래로 다가오는 공장제적 대량생산이 가져올 독점적 특혜를 예측하며 매우 걱정을 했다고 한다.

시장에 대한 가장 심각한 왜곡은 자연과학의 성과로부터 시작되었다. 뉴턴의 역학을 중심으로 현상세계에 대한 물리학적 설명이 가능해지고, 이를 뒷받침하는 대수학적 이론이 발달하면서 시장과 경제현상 역시 물리학과 대수학적 방식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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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학파의 주요 인물들 (이미지 출처: https://www.progress.org/articles/austrian-economics-explained)

스미스 등에 의해 주창된 고전적 정치경제학에 알프레드 마샬이 시장균형이론을 보태었고, 뒤를 이어 오스트리아의 한계효용학파들은 마침내 ‘개별적 인간=이기적 존재=한계효용 곡선점’ 이라는 대수학적 정의를 도입한다.

이로써 규정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로서 살아있는 인간 개인들이 대수학의 공식을 그대로 복사한 경제학의 논리를 위하여 ‘경제적 동물’라는 상수조건으로 규정당하고, 수학공식과 같은 죽은 사물처럼 취급된다.

약육강식 정당화한 사회진화론

아담 스미스만큼 잘못 와전된 또 다른 인물이 찰스 다윈(1809-1882)이다. 위대한 그의 진화론은 생명과 자연생태계를 상호관계와 작용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실천적 방법론이고, 완성된 이론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화두(話頭)였다.

그의 자연(환경)선택론은 여전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대상이 생물계의 개체에서 군락으로, 그리고 인간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역사로 영역을 확장되고 있는 주제이다.

그러나 동시대의 스펜서 등 일군의 학자들이 진화론을 ‘적자생존’과 ‘약육강식’ 같이 저급하고 잘못된 이론으로 축소 해석하면서, 자본제 생성시기에 맞불려 살인적 노동자 수탈구조를 정당화하는데 악용되었다.

성장기에 있는 유소년들을 하루 18시간 이상 장기간 노동시키는 것도 약육강식의 논리로 정당화되었고, 뼈골이 빠지도록 일을 해도 가난을 못 벗어나는 것은 적자생존이라는 설명을 통하여 전적으로 자신이 못난 탓으로 돌려졌다. 19세기 초반에 입법화된 영국의 신빈민구제법은 이러한 논리위에서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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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왼쪽)과 허버스 스펜서. 스펜서는 찰스의 진화론은 인간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면서 인간사회 내의 약육강식을 정당화했다.

‘경제적 동물’과 ‘약육강식’이라는 단순한 규정과 천박한 이론이 자본증식의 탐욕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등장해 시장과 결합되면서, 과학기술과 산업혁명으로 찬란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던 인류의 역사가 오늘날까지 끝없는 수탈과 처참한 전쟁과 고통스런 빈곤 그리고 인간소외로 점철되는 역설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자본의 탐욕과 이를 정당화한 논리가 실제적으로 작동하는 시장이라는 기제가 함께 맞불려, 칼 폴라니가 표현했듯이, 악마의 맷돌로 변질되면서 지속적으로 우리 삶의 현실을 지배하게 된다.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구호는 실상 잘못된 현실을 은폐하고 기존의 기득권 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강력한 지배의 이데올로기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시장은 기본적으로 중립적이고 도구적 기제일 뿐이다. 문제는 사악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괴물 같은 논리와 제도로서의 체제인 것이다.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노력들

이러한 수탈적 자본제적 시장논리를 극복하자고 실천해 온 역사의 과정을 크게 세가지로 분류해 본다.

첫째는 마르크스를 중심으로 한 과학적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방식,

둘째로는 사적 소유와 시장의 기능을 인정한 바탕위에서 정치적 합의와 제도개선에 방점을 둔 사회민주주의 방식,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중심으로 한 인문적 사회주의 흐름, 그리고 여기에 기초하여 발전해온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운동을 열거해 볼 수 있다.

사회주의 방식은 20세기를 경과하면서 소비에트가 해체되는 등 명백하게 실패하였다. 현존하는 북한은 더 이상 사회주의가 아니라 세습된 전제적 병영체제이다. 중국은 계획적 사회주의의 한계를 명백히 인정하고 자본제로 방향을 전환하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인민집중적 권력의 통제를 받는 이중적 시장경제체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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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사회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맑스, 엥겔스, 레닌

쿠바는 위의 세가지 방식이 혼재된 이행과정 또는 방향을 모색중인 국가이다. 사회주의 실패의 주요 원인은 개별적 인간에 대한 이해접근 다시 말하면 고전적 자유주의를 제대로 수용하여 소화해 내지 못한 탓이다.

두 번째의 사민주의 방식은 19세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1-2차 세계대전이후, 반성과 성찰을 통해 ‘존엄과 정의와 연대’를 철학적 토대로 삼고 유럽대륙을 중심으로 강고히 뿌리를 내렸다. 신격화된 시장의 허구적 논리를 폭로하고 정치적 합의의 과정을 거쳐 시장을 본래의 기능적 수단으로 되돌려 합리적으로 규제하고 관리하며 인간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정책적 노력을 지속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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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사민주의의 선구자인 베른슈타인. 그는 무장폭력없이, 정치적 수단을 통해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인류의 미래를 향한 좌표로 평가받던 사민주의는 최근에 영국에서 노동당이 실패하고, 연이어 프랑스 사회당이 고전하며, 북유럽에서조차 진보세력이 우익세력에 밀려나는 현실에서 보듯이, 매우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것은 분명하다.

위기의 원인이 아직 분명하지 않으나, 유럽통합과정에 나타나는 후유증, 중국의 부상과 난민유입 등 세계적 흐름이라는 외적인 조건의 충격,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투항적 절충, 그리고 대의 민주주의가 갖는 취약점 노출과 함께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가 겹친 것으로 판단한다.

특히 트럼프 등장으로 새로운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날 ‘미국우선’의 국수적 시장만능주의에 대응한 유럽사회의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유럽에서 사민주의가 부활을 간절히 여망한다.

수탈적 자본제를 비판하는 또 다른 흐름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인간해방 또는 인본주의이라는 관점에서 형성되어왔다.

생시몽, 푸리에 등 중심이 되여 경제논리보다는 인간이라는 주제를 핵심적 관점으로 삼고 자유와 해방을 중심 주제로 사회를 해석하려는 일단의 그룹이 형성되었고, 이러한 맥을 이어 영국의 사업가 로버트 오웬은 자신이 책임지고 운영하던 방적사업체를 통하여 ‘뉴라나크’에서 인본주의적 산업실험을 이십여 년 간 진행한다.

그러나 밀어 닥친 방적산업의 불황과 주주간의 불화로 영국에서의 실험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하모니’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재개하였지만 오래지 않아 실패로 끝난다. 오웬은 죽기 전에 ‘다만 자신이 세상에 너무 일찍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남겼다고 한다.

‘사회적 경제’의 출현

상기의 인본적이고 진보적인 사상운동이 한때 공상적이라고 조롱을 받고, 특히 오웬의 헌신적이고 실천적 실험이 좌절한 과정과 배경을 살펴보는 것은 현재 시점에도 우리에게 매우 유용한 연구주제가 될 것이다. 이들 일단의 노력은 당시에는 일시적으로 실패하였으나 20세기 이후 복지국가의 출현과 기본소득논쟁 그리고 협동조합 등, 현대적 경제사상과 사회적 경제의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왼쪽부터 생시몽, 푸리에, 오엔. 이들의 비전은 맑스로부터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비난받았다.

사회적 경제는 공공적 영역과 시장적 영역을 벗어난 제3의 섹타에 속한다. 기본적으로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어 자발적 결사형태로 진행되고 발전되어 온 영역이다.

물론 사회적 경제라는 용어와는 무관하게 인류의 역사를 통하여 개개인과 한정된 조직들이 스스로 자조하고 공제하기 위하여 다양한 형태의 모임과 결사가 형성되어 왔다. 한국사회에서는 계와 향약이라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나타났고 유럽에서도 수공업자 중심의 길드나 이해를 공유하는 공동체 등 형태로 발전되어 왔으나, 사회의 주류적 형태로 발전하기 전까지는 이를 사회적 경제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전통적으로 경제보다는 인간과 사회를 강조해 왔던 프랑스에서 1840대에 사회적 경제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같은 시기에 영국의 로치데일 공장노동자들이 공동적으로 구매와 소비를 시작한 것으로 협동조합역사가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사회적 경제의 흐름이 형성되는 것은 제1-2차 세계대전과정에서 국가체계의 전반적 기능이 약화되면서 시민사회 스스로 자조하는 다양한 활동들이 주로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발전하고, 1970대 이후 ‘에너지위기’ 이후 서구의 경제와 복지체계가 위기를 맞이하면서 무력해지는 공공 시스템을 대신하려는 대안적 조직들이 시민사회 속에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였다.

1990대에 들어서면서 시장만능주의가 약탈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이에 저항하는 여러 형태의 양심적인 기업들의 활동이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다.

나라마다 편차를 보이고 있지만 2010년 기준으로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사회적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5-11% 수준이며 고용효과는 10-20% 수준을 상회하는 것으로 발표되고 있다.

여기에서 사회적 경제의 정의를 다시 살펴볼 필요성이 발생한다. 예컨대 제1 섹타인 공공의 영역을 대신하거나 공공기관에서 위탁 받아 움직이는 영역을 과연 순수하게 사회적 경제의 영역으로 보아야 하는 지 따져보아야 할 지점이다. 공공의 역할을 성과와 효율성 중심으로 평가하려는 복지서비스전달, 교육, 보건과 환경 등이 주요 영역이다.

또한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적 기업의 주요 목표가, 사회적 기능과 역할이라는 외피를 쓴 채, 구성원의 창의성과 적극성을 유도하여 본질적으로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 핵심 주제라면 이는 제2 섹타의 연장내지는 보완일 뿐이다.

잘못된 기존 질서와 악마의 맷돌에 대항하여 ‘자본이 아닌 인간을 중심으로 하고 사회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사회적 경제의 본질이자 목표라고 한다면, 위에 언급한 영역의 활동, 즉 제1 및 제2 섹타와 연관된 또는 혼재된 조직을 사회적 경제의 범주로 분류하고 포함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공적 영역과 시장적 기능이 없이 사회적 경제가 홀로 존속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오히려 이들 영역과 함께 맞물려 움직여 가며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실제적이며 효과적인 일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현재적 조건과 기능 그리고 미래적 지향과 가치가 타협적으로 충돌하게 된다.

한국의 사회적 경제 현황

한국적 현실로 돌아온다. 사회적 경제가 주요한 이슈로 등장한 것은 1997년 IMF 충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일자리를 잃으면서 실업대책과 극복의 방안으로 사회적 기업의 등장과 자활대책의 방식으로 사회적 경제라는 이슈가 전면으로 등장했을 때다. 

물론 이전에도 매우 중요하고 유의미한 활동들이 내재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예컨대 원주를 중심으로 한 한살림운동, 안산의료조합 등 여러 형태로 협동조합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러한 활동의 준거에는 무엇보다 고달픈 삶의 대안적 해결이라는 현실적 필요를 품고 있었으며, 추가로 시민사회자본의 형성과 공제적 상호부조 그리고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실험이라는 성격이 혼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IMF라는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으로 큰 흐름을 형성하게 된 한국에서의 사회적 경제활동은 이후 전개과정에서 출발점의 한계를 그대로 노출하게 된다. 즉,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가치를 표방하기 보다는 당장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한 궁여지책의 일자리로서 역할이 압도적으로 주류를 이루고 생존수준의 저임구조가 형성되었다. 여기에서 시민자본의 형성과 풀뿌리 민주주의는 이름뿐인 구호로 퇴색할 위험을 항상 지니게 된다.

다행스럽게 국민의 정부를 통해 사회안전망이 체계적으로 구축되고 2007년에 사회적 기업 지원법, 2012년 협동조합 기본법이 시행되면서 제도적 지원속에 사회적 경제의 양적인 성장이 괄목하게 이루어 졌다.

2016년 기준으로 인증된 사회적 기업이 2000개 수준에 육박하며 고용효과도 만여 명에 이른 것으로 발표되었다. 협동조합의 실태는 등록제이여서 정확히 내용파악이 어려우나 등록된 숫자로만 만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기준을 적용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종합적 통계수치로 보면 사회적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부가가치기준으로 0.9%, 고용효과 면에서 4-6%으로 보도되고 있다. 과장된 느낌이다.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에 마을기업과 자활조직 등은 모두 포함된 것으로 보이나, 기존의 농수축산 협동조합과 새마을 금고 등을 포함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필자는 후자 부분을 사회적 경제 영역에 포함시켜서는 아니 된다고 단호하게 주장하고 싶다.

사회적 경제에 대한 오해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써 사회적 경제에 관하여 선진적인 유럽사회의 기준을 열거해 본다.

  • 1) 개인과 사회적 가치의 우선 원칙,
  • 2) 민주적 통제 여부,
  • 3) 실현된 이익(손실)의 공유화,
  • 4) 연대와 책임의 원칙,
  • 5) 지속적 조건여부,
  • 6) 자발성과 개방성,
  • 7) 국가/정부로부터 독립성.

이러한 기준으로 본다면 당연히 정부정책전달 수단으로 자율성과 투명성을 철저히 결여한 각종 조합과 조직들, 사채 집단을 공인해준 새마을금고, 껍데기만 이름뿐인 협동조합들과 사회기업 등은 사회적 경제영역으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 물론 기존의 관행을 버리고 위에 제시한 기준에 합당하게 새로운 출발이 가능하다면, 기준을 충족한 재출범이후 다시 검토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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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jcse.kr/economy/mind.sky?code=mind)

한걸음 더 나가서 보자면, 위에 언급한 기준에 합당하지 못한 사이비 조직과 단체들을 사회적 경제의 영역으로 분류한다는 것은 공공과 시장 그리고 사회적 영역 모두에게 심각한 해악적 폐해를 끼치는 일이다. 앞으로 만들어질 사회적 경제 기본법의 입법과정에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이제는 정치인들의 생색과 치적을 위한 행정적 전시효과를 생각하여 양적 내용과 부풀린 수치만 내세워 일을 추진해서는 안된다.

기후와 토양이 알맞으면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는 것처럼, 제대로 된 제도라는 환경과 조건이 주어지면 사회적 경제활동이 자연스레 뿌리를 내릴 것이다. 농사를 짓는 심정으로 희망이 없는 쭉정이는 버리고, 추진 과정에서 좀비같은 존재를 가려내고, 제대로 된 싹을 키워가는 질적인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지원해야 하는 단계에 진입해 있다고 판단한다.

되풀이 하자면, 현재 시점에서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해야 할 일은 머리수로 채워진 행정적 포장이 아니라, 양질의 사회적 경제의 조직들을 발굴해서 키워나가고, 어렵게 출범한 조직들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도록 주변의 환경과 조건을 마련해 주는 일이다.

이들에게 일정기간 직접적 지원과 혜택을 제공하며, 검증된 조직에게는 할당된 공공구매에 참여자격을 부여하고, 다양한 간접지원( 제도, 환경조성, 교육, 컨설팅 등)을 제공하고, 이들 간에 서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물론 가장 희망적인 것은 스스로 성장하여 가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긴요한 것은 사회적 경제영역에 돈줄 즉 금융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일 것이다. 미소금융의 예처럼 기존의 금융기관에 일정부분의 할당을 의무화하여 사회적 경제영역에 지원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도 방안이다.

정부투자 또는 공공기금을 기반으로 한 사회투자기금의 대폭 확충, 민간참여를 통한 다양한 시민자본의 형성, 지역내 재투자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금융, 성과측정을 전제로 한 공공투자계약(SIB), 클라우드 펀드조직의 활성화 등 서구의 경험에 기초한 다양한 방식을 깊게 연구해야 한다.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제안

수익이라는 성과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시장기제에는 1주1표라는 주주(자본)중심적 운용방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가치와 역할을 중시하는 제도에는 1인1표라는 인간중심적 협동조합 방식이 매우 소중하고 효과적이다.

그런데 필자의 경험으로 기존의 금융시스템으로는 다수의 인원이 주인으로 존재하는 협동조합에 대해 일반적 대출방식의 지원이 불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스페인의 몬드라곤과 같은 거대한 협동조합은 자체 내에 금융기능을 보유하여 필요한 자회사에 적시적소에 지원할 수 있으나, 현시점의 한국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자본이 필요하다면 조합원 개개인의 출자지분을 증액하는 것이 원칙이나 현실적으로 한계가 분명하다. 이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기존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신용보증기금 등을 활용하였듯이, 협동조합의 활동과 사업전망을 평가하여 대신 보증해 줄 수 있는 가칭 ‘협동조합지원 보증기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정기간 동안 사회적 경제가 궤도에 올릴 때까지 과감한 지원에 따르는 손실을 효과적으로 감당해 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경험이 있는 많은 아이디어를 담아내야하는 영역이다.

일부에서는 정부 부처내에 ‘사회적경제부’ 신설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ICT 산업이 발달하려면 정보통신부를 없애야 하고, 교육이 제대로 되려면 교육부를 없애야 한다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회적 경제는 반드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스스로 연대하여 성장해 나가야 하는 주제이다. 행정적 요소가 제도와 환경조성을 넘어서서 너무 깊이 개입하면 오히려 화근으로 돌아온다. 지난 몇 년간 보여준 사회적 기업의 부실한 활동성과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최소 수준으로 국무총리 산하에 ‘사회적 경제 위원회‘를 두고 지원부처간의 갈등조정과 민간단체들과 협의를 위한 창구를 개설하는 것은 고려해 볼만 하다. 이 경우, 최종결정권을 지닌 위원장은 반드시 민간인이 맡아야 한다.

사회적 경제를 접근하는 데 가장 위험한 것은, 시장경제에서 ‘인간은 경제적 동물’로 규정하는 오류를 범하였듯이, ‘인간은 협동적이고 이타적 존재’라고 규정하는 역선택의 사고를 갖는 것이다.

사회생물학의 연구 성과와 진보적 게임이론을 통하여 인간과 사회가 줄곧 이타적이고 도덕적 방향으로 진보해 왔다는 주장은 대단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필자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는 사회적 경제의 영역을 다시 수학과 도식으로 규정하는 환원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을 규정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로 바라보면서, 현재 인류가 획득한 이성과 지혜로 각 시대에 합당한 제도를 구축하고 점차적으로 자유의 조건을 확대하여 가는 일이다.

대안적 질서, 사회적 경제

여기서 우리는 2009년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서’리는 저서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엘리노어 오스트롬의 조언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공유지를 함께 사용하는 조직에서는 우선 공유지의 조건을 제대로 살펴야 하며 현실적인 활동의 범위와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하고, 이에 따라 정해진 역할과 임무를 확실히 합의해야 한다.

이견과 다툼이 있을 시 이를 해결할 중재적 기능이 있어야 하고, 활동의 성과를 공평하게 분배하면서, 정해진 원칙을 이행하는지 확인하는 감독기능과 원칙이행을 위반할 시 이를 점증적으로 처벌하는 기능이 있어야 하며, 토론과 합의를 통하여 조직을 개선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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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노 오스트롬은 경제학의 오랜 숙제였던 ‘공유지의 비극’을 자율적인 자치거버넌스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다양한 사례분석 등을 통해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이러한 성과로 정치학자로서는 이례적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제도를 주어진 조건에 알맞게 만들어 내고 합의된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을 협동적으로 만들어 간다는 것을 함의한다.

인간사회가 존엄과 자유를 향해 끊임없이 나갈 수 있도록 현재의 정치적 사회적 장치를 끊임없이 개선해 가고, 지난 수백 년간 잘못 적용된 시장기제의 운용방식을 인간을 위한 유용한 수단과 방식으로 재구성해 가는 과정 속에, 사회적 경제의 진행적 실험이 공공과 시장의 영역들과 맞불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진화하고 성장하여 가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비민주적인 정치 상황에서는 사회적 경제가 성장할 수 없고, 수탈적 시장경제가 왕성하게 작동하는 곳에서는 사회적 경제가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닫힌 공간이 아니라 열린 사회속에서, 이기적이지도 않고 이타적이지도 않은, 열정을 가진 평범한 개인들이 ‘사회적 경제’라는 영역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실현해가고 나름대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조성된다면, 제3 섹타로서 사회적 경제는 결함투성인 시장경제를 대체해 가거나 또는 시장경제의 개선을 압박하는 경쟁적 파트너로서 자리를 잡아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래의 일자리를 만드는데 사회적 경제는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로베르토 웅거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진화적 과정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살아가는 유한적 존재이다 (Human is a definite being for indefinite process & purpose)”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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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 한국, 미국의 이란 석유 수입 금지 요청 수용 – 미국에 대한 한국의 현실 반영, 북한문제 해법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 트럼프, 무역흑자 압박 및 통화감시국 추가 등 수시로 한국 압박책 내놔 – 한국 정부, 미국으로부터 석유 수입 늘릴 방안 모색 블룸버그는 9월 10일자 U.S. Wish for Zero Oil Imports From Iran Granted by 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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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2018/09/16-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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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엽서가 아니었다.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고 백두산 천지 앞에 섰다. 그 장면이 실시간으로 우리에게 중계되었다. 그 뿐인가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렇게 상상을 뛰어 넘는 변화를 가져온 원동력은 어디서 왔을까? 여러 가지 요인을 들 수 있겠지만 ‘촛불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24주간동안 광장에 밀집된 민의의 힘은 헌법을 다시 소환했고 국회, 헌법 재판소 등의 국가기관을 깨웠다. 그 질풍노도의 힘이 평화의 물꼬를 열고 있다. 광장만으로 된 것은 아니지만 광장의 힘이 정치제도와 기관을 견인하게 된 것이다. 광장과 제도가 결합될 때 놀라운 역량이 발휘되는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칼럼_180924경향신문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민주공화정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왕정의 역사가 수천 년인 나라가 공화국을 만든다는 것은 지구촌 전체 국가에서 많지 않은 사례이다. 더욱이 헌법 제 1조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하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구체화한 경우도 드물다. 물론 이런 급격한 공화정의 설립이 제도의 도입과 가치의 괴리가 가져오는 ‘역문화지체’의 감기 몸살기를 늘 달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구하는 외침과 ‘민주주의가 밥먹여주는가’라는 냉소가 늘 공존해 왔다. 많은 근대적 가치가 그렇듯 민주주의도 수입된 단어이다.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기본권 개념이 종이 위의 활자에서 외침으로, 그리고 내면화된 가치로 안착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계몽이 필요한 상태이다. ‘공화국’의 개념이 낯설고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데모크라시는 ‘민치’(民治)를 뜻한다. 데모크라시를 민주주의로 번역하면서 민주주의는 필수가 아닌 선택, ‘주의’ ‘주장’ 중의 하나로 인식되었다. ‘이제는 산업화도 성공하고 민주화도 성공했다’는 자화자찬의 성취감 속에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갈등은 일시적으로 봉합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기가 조금만 침체의 기미를 보이면 민주화 탓을 하는 주장이 여전히 여과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역주의 정당논리가 산업화의 성과와 민주화의 성과를 분점하는 방식으로 재구성되면서 민주화와 산업화는 적어도 동일차원 그리고 여전히 민주화가 하위차원인 것 같은 위치설정이 도전받지 않고 있다.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면 민주주의는 유보될 수 있다는 생각은 비서구 지역의 권위주의 정권의 정당성의 논리로 차용되었다. 민의를 억압했던 억압적 국가기구의 동원의 어두운 역사의 그림자는 아직도 지구촌 지도에 짙은 음영을 드리우고 있다. 사회발전, 정치 발전, 경제발전이 나란히 이루어진 서구 국가에서는 순서도 사회발전을 토대로 정치발전과 경제발전이 함께 이루어졌다. 비서구 국가에서는 다른 것을 희생하여 이중의 한 가지만 선택하도록 강요당해 왔다. ‘갑질’과 ‘미투’는 사회발전의 지체가 폭발된 것이다. 우리는 선 경제성장, 저항을 통한 민주화, 그리고 그 힘으로 사회발전과 평화보장을 향한 길 위에 서있다.

민의를 전면에 등장시키는 것은 아직도 요원하다. 민의는 ‘ 대의’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 민의’를 드러내는 것은 정당을 통한 ‘대의원’을 선출하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다. 오랜 왕정의 전통 때문에 ‘ 대의원’은 대의된 권한을 위임받은 자 이상의 ‘ 권력’을 행사하고 ‘ 특권’을 누리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 대의’가 결정권의 독점 또는 특권으로 잘못 인식되면서 잘못된 결정에 대한 저항과 청원이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ìº´ À§ÇèÀ¸·ÎºÎÅÍ ¾ÈÀüÇÏÁö ¾ÊÀº ¹Ì±¹»ê ¼è°í±â ¼öÀÔ¿¡ ¹Ý´ëÇÏ´Â ½Ã¹ÎµéÀÌ 7ÀÏ Àú³á ¼­¿ï ÅÂÆò·Î ´ö¼ö±Ã ¾Õ¿¡¼­ Àü¸é ÀçÇù»óÀ» Ã˱¸Çϸç ÃкÒÀ» ¹àÈ÷°í ÀÖ´Ù.

‘직접민주제’를 이야기 하면 고대 아테네에나 가능했던 제도라고 이야기 한다. 직접민주제를 제도화하고 있는 스위스를 이야기하면 인구수가 적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그들의’ 이야기로 밀어 놓는다. 미국의 절반에 해당하는 주에서 채택했다고 말해도 ‘아직 우리는’이라고 하면서 민주발전단계론 뒤로 숨는다.

직접민주제는 현대와 같이 복잡하고 그리고 유권자의 수도 많은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제도라고 응수한다. 그리고 이어 파퓰리즘을 말한다. 민치의 전면적인 등장을 강조하는 이태리의 오성운동, 스페인의 포데모스의 등장을 ‘파퓰리즘’이라는 개념으로 가두고 있다. ‘경제 성장의 걸림돌’ ‘ 파퓰리즘’ ‘혼란과 질서회복’ 모두 민의의 전면적 등장을 가두기 위해 사용하는 박스들이다. 민주주의가 안착하기도 전에 ‘중우정치’에 대한 우려가 앞선다. 직접민주제를 말하는 순간 그것이 대의제의 보완제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대의제의 모든 특권에 도전하는 것으로만 인식한다. 직접 민주제를 이야기 하면 정당을 발전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도 한다.

한국에서는 정당 명부식 비례 대표제가 선진적인 제도로 소개되곤 했다. 정작 그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에는 정당 관료제 과잉의 문제에 대응하는 ‘ 더 많은 ’ 민주주의 활동가들이 있다. 히틀러가 국민 투표로 당선되었다는 트라우마 때문에 독일에서는 정당 중심의 대의제가 발달하고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하였다. 저항을 통해 민주화를 이룩해 온 역사적 배경을 가진 나라가 직접민주제의 제도화보다 정당 명부제를 강조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아직도 ‘좋은 제도 수입’으로 좁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정당 발전보다 사회운동의 역사가 긴 우리의 민주화의 역사에서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은 광장의 민심을 직접민주제라는 제도로 수렴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더 많은 민주주의’ 활동가들은 독일이 이제는 직접민주제를 도입할 만큼 민주시민 훈련이 되었고 정당 관료제가 민의를 대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함부르크 주에서 ‘더 많은 민주주의’ 운동을 하고 있는 맘포드 박사는 자신이 직접민주제 운동에 뛰어들게 된 이유를 설명하였다. 스위스에서는 사회기반 시설 공사비가 적게 들지만 더 내구성이 있는데 반하여 왜 독일에서는 공사비도 더 많이 들고 공사 내용은 부실한가를 질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해답으로 스위스에서는 큰 공사비가 드는 사안은 주민 투표로 결정되기 되기 때문에 예산 집행이 투명하고 더 많은 공론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는 추론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맘포드 박사는 모든 정당은 대의제의 특권 방어라는 측면에서 카르텔을 구성한다고 하면서 사민당이 집권하고 있는 함부르크 주 의원실의 귀족정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의원휴게실을 보여주었다. 함부르크에서 녹색당 의원들이 오랜 보존 녹지에 항공기 제조사를 건립하는 안에 찬성하는 상황도 설명해 주었다. 그는 시민의 직접 참여를 통한 견제가 없이는 의사결정권의 독점권이 가져오는 폐해를 막기 어렵다는 점을 거듭 설명하고 있다. 사민당이 집권하고 있는 함부르크에서 당초 예산 보다 10배가 넘는 예산을 소요되는 하펜시티 개발의 문제, 올림픽 유치의 문제가 주민들의 공론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올림픽 유치의 정당성에 대해 대대적인 홍보를 한 연후에 주 정부는 요식행위 차원에서 주민투표에 부쳤는데 소요예산을 따져 본 주민들이 올림픽 유치를 부결시켜 주정부 관계자를 놀래게 한 일 도 설명해 주었다. 올림픽 유치 찬반에 대한 주민투표 결과가 발표되기도 전에 언론은 올림픽 유치를 기정사실화 했지만 ‘유치 반대’라는 투표 결과에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올 여름 학생들과 도시재생을 주제로 함부르크를 방문했을 때 맘포드 박사가 들려준 이야기들이다.

직접 민주제적 방식의 의사 결정이 도입되면서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는 소요 예산의 문제, 환경문제에 대한 고려 때문에 정치인과 행정부가 밀어붙이는 큰 대회 유치가 번번이 주민투표에 의해 부결되고 있다고 한다.

9월 26일부터 29일까지 로마에서는 세계 직접민주주의 대회가 열린다. 2008년 스위스 아라우를 시작으로 2009년 서울, 샌프란시스코, 몬테비데오, 튀니스, 상 세바스챤을 거쳐 말 그대로 글로벌 포럼의 면모를 갖추었다. 2000년대 초입에 세계경제 포럼인 다보스 포럼과 세계 사회포럼인 포르토 알레그레 포럼이 같이 출발하였다. 2008년에 세계직접민주주의 포럼이 시작된 지 10년이다. 2018년에서는 오성운동의 결과 당선된 로마시장의 적극적 유치로 500여명이 넘는 전 세계 직접민주주의 활동가가 함께 한다. 광장의 도시 로마에서 전 세계 직접민주주의 활동가들과 함께 광장의 민의를 제도로 수렴하는 방법을 더 많이 고민하고 돌아오고자 한다. 촛불 민의의 역량을 담는 실질적 그릇을 만드는 도공의 심정이다. 직접민주제는 일정 수 이상의 유권자가 요청하면 투표를 통해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이다. 청원과는 차원이 다르다. 결정권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월, 2018/09/24-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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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구글세, 해외사업자세금 제대로 내고 있나?”

-“전자적 용역”에 대한 세제의 대상과 범위를 확대하고 현행법에 명확하게 규정해야-

-국세청은 해외 ICT 기업들에 대한 부가가치세 및 법인세 과세실적을 국정감사 때 공개하라-


○ 일시장소 : 2018.9.28(금) 오전 10-12시,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
○ 공동주최 : 국회의원 박영선·김성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 사 회 : 박 훈 경실련 재정세제위원장 (서울시립대 세무대학원 교수)
○ 발 제 : 방효창 경실련 정보통신위원장 (두원공과대학교 스마트IT학과 교수)
○ 토 론 :
– 김빛마로 /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조세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
– 차 재 필 /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실장
– 안 창 남 / 강남대학교 경제세무학과 교수
– 김 정 홍 / 기획재정부 국제조세제도과 과장
– 박 준 영 / 기획재정부 부가가치세제과 사무관


 

1.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나는 놈 위엔 구글이 있다.” 과연 해외 글로벌 ICT 기업들은 얼마나 세금을 제대로 내고 있을까? 최근 디지털 경제의 확대로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 등 해외 다국적 기업들이 제공하는 온라인 유료 서비스나 모바일 플랫폼을 누구나 한번쯤은 접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국경 없는 글로벌 시장경쟁 속에서 국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ICT 기반의 가용자원들을 활용하여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음악, 동영상, 게임 등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수조 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이에 대한 적절한 과세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누군가는 해외로부터 국내로 전자적 용역을 제공하여 영업이익을 얻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누군가가 이를 소비함으로써 창출되는 부가가치가 있길 마련인데, 도대체 왜 국세청은 무엇을 하고 있었길래 세금징수는커녕, 기재부는 세제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문제는 국내 ICT 기업들은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다는 점이다. 법인세의 경우만 하더라도 지난 2016년 네이버는 4,231억여 원, 반면 구글코리아는 약 200억원 이내로 납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세 역차별. 이 세상엔 죽음과 세금, 그리고 서러움과 두려움을 빼면 확실한 것은 없다.

 

2. 이러한 우려 속에서 경실련은 국회 박영선・김성수 의원들과 함께 <디지털 부가가치세 문제진단 및 개선방안 토론회>를 공동 개최하고 그 대안을 찾아보는 자리를 가졌다.

이번 토론회의 발제를 맡은 방효창 교수는, “국외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공평 과세 문제는 세원의 확보 차원에서도 중요하지만, 건전한 기업 경영 환경을 올바로 조성하고, 나아가 문화산업을 지키는 일임,”을 강조하면서 「부가가치세법」 제4조(과세대상) 및 동법 제53조의2와 시행령 제96조의2(전자적 용역을 공급하는 국외사업자의 용역 공급과 사업자등록 등에 관한 특례) 조항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동법 제4조(과세대상)에 누락되어 있는 ‘용역의 수입’을 과세의 대상으로 추가하고, ▲동법 제53조 2와 시행령 제96조의2에 열거된 전자적 용역의 과세대상에 대해서도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열거해야 함은 물론, ▲ICT 기업들이 제공하는 무형자산과 용역의 범위에 대해서도 OECD 및 EU가 제시한 부가가치세 가이드라인처럼 보다 폭넓게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외 사업자의 과세대상의 경우 OECD와 일본처럼 일정기준(threshold) 이상으로 정함으로서 스타트업이나 중소벤처를 보호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전자적 용역의 경우 동법 제20조(용역의공급장소) 제1항에 규정된 “역무가 제공되거나 시설물, 권리 등 재화가 사용되는 장소”가 과연 어딘지 그 실체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하면서, 공정한 과세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용역이 실제로 소비되는 장소’로 기술함으로써 보다 명확하게 개정할 필요성이 있음을 언급했다. OECD(2017)의 지침과 같이, “과세지국은 해당 공급이 물리적으로 수행된 곳으로 하되, 단 공급의 수행 장소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 소비자의 주된 거소가 속한 국가,” 실제 용역이 소비된 장소를 현행법에 명시함으로써 소비지국 원칙에 대한 기준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발제를 마치면서, 국외 사업자들에 대한 공평 과세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당부했다. 전자적 용역의 부가가치세제에 있어, 국세청이 “간편사업자등록(SBOR, *동법 제53조의2, 동법 시행령제96조의2,동법 시행규칙 제66조의2)”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B2B의 대리납부제도와는 달리 B2C의 경우 OECD(2015)의 말처럼 개별 소비자에게 “자발적으로 부가가치세를 신고하도록 협조를 유도”하는 것은 실효성을 기대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EU의 경우 해외 ICT 사업자로부터 2015년에 30억 유로(3조 9천억원)를 징수하였으며, 이에 우리 과세 당국도 해외 ICT 사업자로부터 약 4,000억 원의 이상의 부가세를 징수할 수 있음을 주장했다. (*참조: 방효창, <해외 글로벌 인터넷 기업은 세금을 제대로 내고 있나?> PPT, 2018.09.28., <#.별첨2>의 슬라이드 31면.)

첫 번째 토론에 나선 김빛마로 부연구위원은 세제 형평성 재고의 관점에서, 동종의 재화와 용역을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에게는 과세되지만 국외 기업에게는 제대로 과세되지 않는 것은 조세형평성 원칙에 어긋난다고 하면서 발제자의 의견에 동의했다. 또한, 현행법상의 전자적 용역의 범위가 다소 모호하고 협소함을 지적하면서, 최근 OECD가 제시한 주요 사업유형인 인터넷 광고 등의 전자적 용역이 과세대상으로서 더 추가되어야 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예를 들면, <2018년 세법개정안>에 클라우드 컴퓨팅이 새롭게 추가된 것처럼, 향후 해외 ICT 기업들의 인터넷 광고도 부가가치세제의 대상이 될 필요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일본의 제도 등을 참고하여 전자적 용역의 범위를 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으로는, 소득세의 경우 물리적 고정사업장을 기준으로 세제를 구분하고 있는 현행법의 과세원칙에 대한 제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두 번째 토론자인 차재필 실장 역시 과세 형평성 제고의 관점에서,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한 과거 역차별의 사례와 해외 ICT 기업들의 부가세 꼼수에 관한 구체적인 예시를 들며 눈길을 끌었다. 예를 들면, 애플의 경우 앱 판매자에게 부가세 3%를 전가시키는 형태로 부당 이익을 챙기고 있는 것으로 들어났다. B2C 간의 거래에 있어, 애플은 부가세를 포함 시킨 총 판매대금을 기준으로 “7:1:2=판매자:부가세:애플”의 판매수익 분배약정을 적용하여 판매자에게 정산해주는 한편, 개인 사업자는 국세청에 부가세를 납부할 때 총 판매수익 중 부가세를 제외한 판매원가 즉 애플에 소비(30% 분배)한 금액 중 실제 원가만을 신고해야 하지만 애플이 부가세를 포함 시킨 정산 금액을 판매 원가로서 신고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전체 판매수익 중 애플에 소비한 30%의 금액에 대한 부가가치세 0.1 만큼 즉 3%씩 손해를 보는 반면 애플은 그만큼 이익을 보게 된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애플은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주지 않고 있다(*참조: <애플, 수상한 세금 계산법 ‘한국은 회피 1순위?’> 기사, 경향게임즈, 2017.02.23.). 한편 싱가포르나 아일랜드 등 해외에 거점을 두고 있는 온라인 광고기반의 기업들은 국내에서 버젓이 광고를 하고 있지만, 결제센터가 해외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세제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며 조세 차별의 실태를 소개하면서, 해외 ICT 기업의 광고에 대해서도 적정한 과세를 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한편으로는, 법인세와 관련하여 국내에서 영업하는 해외 ICT 기업들이 대부분이 유한회사로 등록돼 있어 관련법에 공시의 의무가 명시돼 있지 않아 정확한 매출집계가 어렵다면서, 법인세 징수에 대한 실행력을 담보하는 데에 한계가 따른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이처럼 우리나라만 독립적으로 과세할 경우 국제분쟁으로 확대될 우려가 있으므로, 우리 기업에게 더 큰 보복으로 돌아올 수도 있으니 이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안창남 교수 역시 조세 형평성의 문제를 강력히 언급하면서 발제자의 의견에 첨언했다. “용역의 수입”에 대한 세제의 대상과 범위와 관련하여, 전자적 용역의 경우 「부가가치세법」 제53조의2 제1항의 간주규정을 통해 이를 시행령으로 규정할 게 아니라, 동법 제4조에서 간단명료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동법 제52조(대리납부)의 과세대상 및 제53조의2, 즉 전자적 용역 등에 관한 특례규정 외 나머지 기타 모든 용역에 대해서도 과세를 해야 할 경우, 자칫 잘못하면 방 교수의 주장이 “국외용역거래에 대해서도 우리나라가 과세를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으므로 소비지국 과세원칙에 어긋난다고 조언하면서 주의를 당부했다. 한편으로는 앞선 토론자들처럼, 법인세에 대한 실질과세원칙을 확립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여 참석자들에게 인상을 남겼다. 「국세기본법」 제14조(실질과세) 제3항에 입증책임전환 규정을 명시하여서 역외 탈세 의혹이 있는 국내 기업들의 영업이익과 활동에 대해서 이들 기업들이 과세당국에 스스로 증명토록 하는 한편, 「조세범 처벌법」 제9조(성실신고 방해 행위)와 같이 변호사나 회계사 등 불성실한 조력인들에 대해서도 납세범 못지않게 강력 처벌해야 한다며 그들의 행태를 질타했다. 물론 이같은 징벌규정이나 강학상 세금을 징수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조세제도의 허점을 메우려는 과세당국의 근본적인 노력이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 대안으로, 법인세의 경우 납부를 대리하는 중개기관 즉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원천징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김정홍 과장(국제조세제도)과 박준영 사무관(부가가치세)은 발제자 및 토론자들의 의견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변을 했다. 김 과장은 △법인세의 경우 “고정사업장”의 개념에 대해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실체적인 개념을 규정하기 다소 어렵다고 평가했다. 고정사업장의 개념에 따라 현재 디지털방식의 거래에 대해서는 물리적 실체가 없다고 보고 과세가 안 되고 있으며, 또한 이같은 개념적인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소득 분배의 문제”가 또 남아 있기 때문에 OECD(2020)의 합의 전까지는 미지수라고 봤다. 한편 △부가가치세제에 대해서는 크게 이견이 없었다. “역무의 완료”의 개념을 두고는 서비스나 무형자산에 대한 소비지국 과세 원칙과 국가 간의 정치적 문제로 비화될 우려가 있으므로, 우리의 법제가 OECD(2015) 권고안의 원칙적 합의에 따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기술적, 제도적인 면에서 다소 부족한 점은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조세체계는 국제조세체계에 부합한다고 평가했다.

뒤 이어, 박 사무관은 전자적 용역의 수입이 결국 최종소비자가 부담하여야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옳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영세율이 적용되는 B2B와 달리 B2C의 경우 해외 ICT 기업들의 부가가치세 납부실적과 관련하여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평가하면서, 현행 「부가가치세법」제52조 및 제53조의2에 따른 용역의 수입에 대한 과세대상의 범위가 협소하기 때문에 그만큼 세금이 덜 걷히게 되는 것이지, 우리 조세제도 자체의 실효성이 없기 때문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게임, 동영상, 영화 등은 전자적 용역의 개념에 이미 포함되어 있고, 따라서 부가가치세가 적용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세제의 대상과 범위를 좀 더 보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예정임을 시사했다. △같은 맥락에서, 해외 기업들의 인터넷 광고의 경우 영세율이 적용되는 B2B가 대다수이므로 OECD의 권고안과 같이 B2C 거래까지 세제를 부과하는 것은 국내에선 과세실익이 없기 때문에 다른 전자적 용역들에 비하면 비경제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간편사업자등록제도에 대해서도, OECD나 EU의 권고안 같이 고정사업장이 없는 해외기업의 자발적인 협조를 통해 “납세의 의무를 과도하게 부담시키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한 과세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단이 뭐냐고 묻는다면, 국제적으로도 뚜렷한 방법은 없기 때문에 국내적으로도 어려운 측면이 있으니 양해부탁 바란다며 토론을 마쳤다.

 

3. 이번 토론회는, 부가가치세와 관련하여 시민사회에서 최초로 문제 제기를 하고 합의점을 찾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구글세와 관련하여 법인세보다 부가가치세제의 역차별 문제에 보다 집중하여 국제조세제도에서 논의돼 왔던 대안들을 찾아 평가하고, 국내조세체계와 현행법에 만족할만한 합의점을 도출했다. 첫째 ‘용역의 정의’에 있어서 세제의 대상과 범위를 보다 확대하고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둘째 국내 ICT 기업들에 대한 역차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전자적 용역’에 대한 세제의 대상과 범위를 보다 확대하고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클라우드 컴퓨팅이 새롭게 추가된 것처럼 새로운 ICT 사업모델들이 세재 대상으로서 지속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셋째 국내에서 영업하는 해외 ICT 기업들로부터 부가가치세가 잘 걷히지 않는 것은 간편사업자등록제도가 과세의 실효성과 확실성을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4. “나는 놈 위엔 그 실체도 없고, 법은 조잡해져만 가는데, 뛰는 놈은 게으르고, 법은 느려져만 가고.” 물론 기재부 관계자들의 말처럼 정치적 불리함(Political Incorrectness)이나 과세의 비경제적 실익에 대해서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이젠 해외 ICT 거대 기업들의 납세실적을 투명하게 공개할 때가 됐다. 두려움과 서러움, 그리고 역차별. 그런데 국세청은 아직까지도 답이 없다. 기다릴 만큼 기다렸고, 참을 만큼 참았다. 부가가치세 그리고 법인세. 공개하라.

 

※ 문의: 경실련 경제정책팀 02-3673-2143, 국제팀 02-766-5623

#.별첨1 토론회자료집 1부.
#.별첨2 토론회발제 PPT 1부.   /끝/.

월, 2018/10/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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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영국제방송(CGTN) 2018-06-02 22:40 GMT+


도날드 트럼프는 2017년 1월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래 백악관의 공식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견해를 알리기 위해 트위터를 상당히 자주 사용했다.

현재 트럼프의 트위터 팔로워는 5천2백4십만 명에 달하고 있으며, 백악관 대변인실보다 그의 트위터가 가장 중요한 소식통이 되곤 한다.

중국공영국제방송(CGTN)은 트럼프 취임이래 2018년 6월1일까지 북한에 관한 트위터 내용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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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도표는 2017년 1월 20일 취임이래 트럼프가 북한에 대해 언급한 횟수를 월별로 기록한 내용이다.

그가 북한을 언급할 때 사용한 형용사는 2017년의 ‘나쁜’, ’위험한’이라는 표현에서 지난 2개월간 ‘좋은’, ‘훌륭한’이라는 단어로 변했다.

2

‘중국’이라는 단어가 총 31번 언급되면서 가장 빈번히 사용되었고, 남한이 9번, 러시아가 6번, UN과 일본이 각각 5번씩 사용되었다.

시진핑 주석이 8번 언급되어, 아베 수상 4번, 문재인 대통령 3번보다 많다. 물론 당사자인 김정은 위원장10번으로 가장 자주 언급되었다.

3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북한을 언급하는 트럼프의 감정 표현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했다. 부정적 표현으로는 ‘나쁜’, ‘불량’, ‘적대적’, ‘위험한’ 등 용어를 사용하였고, 긍정적 표현으로는 ‘대단한’, ‘생산적’, ‘좋은’ 등을 선택하였다. 시진핑 주석을 표현할 때는 언제나 긍정적인 용어들로 ‘ 대단한’, ‘존경하는’, ‘좋은’, ‘생산적인’ 등을 사용하였다.

일, 2018/06/0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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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원해 촛불 들었던 젊은이들
정권 교체 이뤘지만 좌절에 빠져
공무원 도전은 현실과의 타협안
지레 포기 말고 조직 변화 이끌라


많은 제자가 2년 전 촛불 집회에 참여했다. 그들은 당시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분명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바람대로 정권이 바뀌었다. 그런데 이들이 희망했던 일들이 새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성사되지 못해 큰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가장 큰 문제가 일자리다. 졸업한 제자 대부분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새로운 일자리가 좀처럼 생기지 않은 탓이다. 지난 50여년간 우리 주변에서 경제를 이끌어왔던 한 축인 영세 자영업자들도 속속 폐업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학생이 공무원이 되려고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정년이 보장된 예측 가능한 직업이라 지금 한국의 여러 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조조정의 충격을 겪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내 제자만 봐도 나랏일 자체에 열정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공무원직에서 독창성을 찾기 어렵고 반복적 업무만 하는 따분한 생활을 짐작하면서도 그저 타협하는 셈이다. 

정말 정부 일이 따분하고 활기가 없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용기와 상상력, 그리고 지속적인 노력만 있다면 젊은이들이 촛불 집회에서 원했던 변화를 정부 조직 안에서 얼마든지 실현할 수도 있다. 한국이 창조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정책을 펼쳐온 전통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젊은이들은 알아야 한다. 예컨대 세종대왕의 통치 철학은 도덕적 원칙에 충실한 윤리적 행정 시스템에 기반을 뒀다. 정부를 지루하고 비효율적인 집단이라고 깎아내리기에 앞서 어느 정도 부패가 존재했다 하더라도 본질에서는 공공의 이익에 전념해왔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변화를 갈구하는 일군의 젊은이들이 정부에 들어가면 그들이 빈부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할 수 있도록 공무원 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다. 비록 공무원 사회의 가장 낮은 지위에 있다 해도 적극적이고 잘 조직된 젊은이들이라면 정부의 운영 방식을 바꾸고 쇠퇴한 공동체 정신을 되살릴 수 있다.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불합리한 관행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공무원 사회 전체에 획기적 변화를 부르는 긍정적 압력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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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이뤄지는 데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우선 젊은이들이 국가의 변화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정책 토론에서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정책, 기술, 인구 통계 및 기타 업무와 관련한 주제를 스스로 탐구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다시 말해 윤리학이나 문학 서적을 읽는 것을 포함한 인문학적 교육을 공무원 일과 중 일부가 되도록 배려해야 한다. 젊은 공무원의 업무 시간이 상사인 고위 공무원을 지원하는 업무로 채워져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윤리적 인식과 지적인 정보를 갖춘 인재로 만드는 데 할애돼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게 순환보직제다. 이 제도는 젊은 정부 관료들의 전문성 구축을 방해하는 장치다. 지금이라도 이를 과감하게 없애야 한다. 대신 관심이 있는 주제와 분야를 자세하고 깊이 있게 조사·연구하도록 해 심오한 전문 지식을 개발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경영 컨설턴트나 이해가 충돌하는 다른 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정부가 자체적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젊은 관료들은 우리 시대의 중요한 문제를 토론하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실제로 이를 구현할 수 있는 해결책까지 제시할 수 있는 그룹에 속해야 한다. 정책 수립과 시행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면 그에 상응하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공무원 선발시험도 바뀌어야 한다. 헌법이나 기타 모호한 정책의 세부 내용을 암기하는 건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다. 이보다는 오히려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 조선시대 과거와 같은 전통적 시험방식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수험생들에게 통치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문제를 던지고 여기에 윤리적 원칙을 적용해 해결하는 방법을 물어야 한다는 얘기다. 

오늘날 한국은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 경제관념 탓에 현재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신뢰할 수 없는 정보를 만들어 퍼뜨리는 매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난립한 탓에 미디어 시스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 청년층의 목소리는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제대로 스며들기는커녕 오히려 차단돼 있다. 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은 없다. 하지만 도덕을 앞세우는 새 정부가 젊은 공무원들의 혁신적 잠재력을 일깨울 수 있다면 분명 우리에게 기회는 있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지구경영연구원 원장 

  • 2018년 7월 20일 <중앙일보> 임마누엘 칼럼에 게재된 글입니다. 
금, 2018/07/20-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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