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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는 다른 삶, 사회적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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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는 다른 삶, 사회적 경제

익명 (미확인) | 화, 2017/01/17- 11:25

시장과 사회적 경제라는 제목을 정해 놓고는 한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칼럼이라는 제약된 공간에 다루기에 주제가 너무 큰 탓도 있지만, 양자 간의 성격과 역할을 어떻게 설정하는 할 지 한동안 망설였다. 단순하게 현재의 시장기능이 갖는 비인간적인 탐욕을 비판하고 대안으로 사회적 경제를 설정하고 소개하는 수준에서 글은 쓴다면 쉽게 해결될 일이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과연 사회적 경제가 문제투성이지만 인간의 삶에 풍요를 가져온 시장경제를 대체할 수 있는 주류적 대안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본제적 시장경제의 폐해를 보안하는 장식물 수준으로 머물 것인지, 양자가 병립하면서 각자의 영역을 유지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상호작용을 하는 것인지, 대립적으로 충돌하면서 역사의 사건을 통하여 결국 한축이 실질적으로 소멸해갈 것인지 등 쉽지 않은 의문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결국 필자 스스로 구한 타협은 ‘인간이 왜 사냐’는 질문에 대답이 없듯이, 본 주제 역시 결국은 ‘인간에 대한 탐구’이고 따라서 산술문제처럼 명쾌한 정답이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편하게 글을 시작해 본다.

시장의 발전과 자본주의

일단 시장경제는 개인을 생존본능적 탐욕과 편함을 추구하는 존재로 파악하고 개인적 욕망이 시장을 움직이는 기본 동력으로 파악한다. 반면 사회적 경제는 인간과 인간사이의 협동과 가치를 중심으로 활동 영역을 설정한다. 따라서 인간의 외양적 존재양식으로 개인과 사회, 그리고 내면적 형질로서 탐욕적 이기심과 협동적 이타주의라는 상반된 주제를 함께 마주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시장이 본격적으로 인류사회에 도입된 시대는 중국의 송대(宋代)라고 알려져 있다. 중국미술사의 3대 보물로 알려져 있는 청명상하도(淸明上下圖)는 송대를 묘사한 그림으로 길이가 50미터가 넘는 비단폭에 당시의 화려한 도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는 대로변에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고 곳곳에 다양한 물산을 만들고 판매하는 모습을 정밀하고 화려하게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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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상하도의 일부.

이후 중국사회는 시장이라는 놀라운 기제를 통하여 서구의 산업혁명이 본격화되기 직전인 청의 건륭제 시대까지 인류사에서 물산이 가장 풍요로운 사회를 형성해 왔다. 이러한 역사적 유전인자가 굴욕적인 근대 역사를 극복하고 굴기하는 현대의 중국에서 재현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필자의 앞선 칼럼 ‘한국, 자유주의 결핍인가, 과잉인가’에서도 언급했듯이, 중세 말 자유도시의 출현과 함께 태동한 상업주의 기반 위에 증기기관의 발명 등 과학기술과 결합한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생산의 역사는 그간 완만한 산술적 속도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기 시작하였다.

수렵에서 농업의 시대로부터 정착된 수 만년의 긴 세월 동안 생산력이 두 배 정도 증가하는데 천년이라는 기간이 필요하던 시대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18세기 이후에는 같은 생산력의 증가를 수 십년 단위로 이루어내는 시대로 급작스레 진입하게 된다.

이러한 기하급수적 생산력 증대를 가져온 삼백 여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인류사회는 생물적 존속에 필요한 식량과 의복을 포함한 기초재의 해결을 넘어서서 대중적으로 풍요를 즐길 수 있는 대량생산과 유통이 가능한 경제력과 기반시설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왕성한 생산확장과 경제활동에는 역시 시장이라는 기제가 중심적으로 작동하여 왔다. 전통적으로 자신이 만들어낸 물건 또는 역할을 생활에 필요한 타인의 물건과 역할로 교환하고 매매하던 시장이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성격과 기능이 변하기 시작한다.

C-M-C’ (C:물건, M:화폐)로 표현할 수 있는 물물중심의 거래방식이 상업주의 시대에는 화폐가 중심매체가 되어 M-C-M’ 로 대체되고, 다시 산업혁명을 거치는 동안 M-P(N,L,T,,…)-C-M’ (P:생산과정, N:자연-토지와 원료, L:노동, T:기술,….)으로 바뀌어 가면서 M’ -M = ∆M, 즉 자본의 자기증식이 시장의 주요한 목적으로 변질되었다.

18세기이후 합리적 이성과 과학주의가 사구사회에 전면적으로 등장하면서 상기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려는 학문적 노력이 다양한 시각에서 이루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또한 실천적 노력의 과정이다. 문제는 이를 자신의 탐욕을 실현하는데 악용한 지배집단의 이데올로기 작동방식이었다.

경제학의 탄생…인간행위에 대한 수리적 도식화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건 푸줏간 주인, 술도가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생각 덕분이다”라는 이야기로 잘 알려진 아담 스미스(1723-1790)만큼 우리에게 잘못 소개된 인물도 드물다.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그동안 윤리학에 속하여 있던 경제라는 영역을 별도로 분리하여 독립된 학문으로 개척한 아담 스미스는 단순히 분업론만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노동가치설, 자본축척론, 특혜와 독점에 대한 비판 등을 주창하였다.

또 주연구 분야인 윤리학 분야의 저작 ‘도덕감성론’을 통하여 인간사회의 도덕과 정의, 질서 등 광범한 주제를 다루었다. 또한 그 역시 가난한 이웃을 위해 평생 동안 상당한 기부를 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수공업적 가내공업에서 공장제 대량생산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었고, 다수의 가내수공업적 공급체계라는 조건 속에서 이상적인 분업과 시장적 균형이론이 실제적으로 잘 적용되었으며, 우리에게 잘못 알려진 가공의 ‘스미스’와는 반대로 그는 미래로 다가오는 공장제적 대량생산이 가져올 독점적 특혜를 예측하며 매우 걱정을 했다고 한다.

시장에 대한 가장 심각한 왜곡은 자연과학의 성과로부터 시작되었다. 뉴턴의 역학을 중심으로 현상세계에 대한 물리학적 설명이 가능해지고, 이를 뒷받침하는 대수학적 이론이 발달하면서 시장과 경제현상 역시 물리학과 대수학적 방식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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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학파의 주요 인물들 (이미지 출처: https://www.progress.org/articles/austrian-economics-explained)

스미스 등에 의해 주창된 고전적 정치경제학에 알프레드 마샬이 시장균형이론을 보태었고, 뒤를 이어 오스트리아의 한계효용학파들은 마침내 ‘개별적 인간=이기적 존재=한계효용 곡선점’ 이라는 대수학적 정의를 도입한다.

이로써 규정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로서 살아있는 인간 개인들이 대수학의 공식을 그대로 복사한 경제학의 논리를 위하여 ‘경제적 동물’라는 상수조건으로 규정당하고, 수학공식과 같은 죽은 사물처럼 취급된다.

약육강식 정당화한 사회진화론

아담 스미스만큼 잘못 와전된 또 다른 인물이 찰스 다윈(1809-1882)이다. 위대한 그의 진화론은 생명과 자연생태계를 상호관계와 작용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실천적 방법론이고, 완성된 이론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화두(話頭)였다.

그의 자연(환경)선택론은 여전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대상이 생물계의 개체에서 군락으로, 그리고 인간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역사로 영역을 확장되고 있는 주제이다.

그러나 동시대의 스펜서 등 일군의 학자들이 진화론을 ‘적자생존’과 ‘약육강식’ 같이 저급하고 잘못된 이론으로 축소 해석하면서, 자본제 생성시기에 맞불려 살인적 노동자 수탈구조를 정당화하는데 악용되었다.

성장기에 있는 유소년들을 하루 18시간 이상 장기간 노동시키는 것도 약육강식의 논리로 정당화되었고, 뼈골이 빠지도록 일을 해도 가난을 못 벗어나는 것은 적자생존이라는 설명을 통하여 전적으로 자신이 못난 탓으로 돌려졌다. 19세기 초반에 입법화된 영국의 신빈민구제법은 이러한 논리위에서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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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왼쪽)과 허버스 스펜서. 스펜서는 찰스의 진화론은 인간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면서 인간사회 내의 약육강식을 정당화했다.

‘경제적 동물’과 ‘약육강식’이라는 단순한 규정과 천박한 이론이 자본증식의 탐욕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등장해 시장과 결합되면서, 과학기술과 산업혁명으로 찬란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던 인류의 역사가 오늘날까지 끝없는 수탈과 처참한 전쟁과 고통스런 빈곤 그리고 인간소외로 점철되는 역설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자본의 탐욕과 이를 정당화한 논리가 실제적으로 작동하는 시장이라는 기제가 함께 맞불려, 칼 폴라니가 표현했듯이, 악마의 맷돌로 변질되면서 지속적으로 우리 삶의 현실을 지배하게 된다.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구호는 실상 잘못된 현실을 은폐하고 기존의 기득권 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강력한 지배의 이데올로기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시장은 기본적으로 중립적이고 도구적 기제일 뿐이다. 문제는 사악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괴물 같은 논리와 제도로서의 체제인 것이다.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노력들

이러한 수탈적 자본제적 시장논리를 극복하자고 실천해 온 역사의 과정을 크게 세가지로 분류해 본다.

첫째는 마르크스를 중심으로 한 과학적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방식,

둘째로는 사적 소유와 시장의 기능을 인정한 바탕위에서 정치적 합의와 제도개선에 방점을 둔 사회민주주의 방식,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중심으로 한 인문적 사회주의 흐름, 그리고 여기에 기초하여 발전해온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운동을 열거해 볼 수 있다.

사회주의 방식은 20세기를 경과하면서 소비에트가 해체되는 등 명백하게 실패하였다. 현존하는 북한은 더 이상 사회주의가 아니라 세습된 전제적 병영체제이다. 중국은 계획적 사회주의의 한계를 명백히 인정하고 자본제로 방향을 전환하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인민집중적 권력의 통제를 받는 이중적 시장경제체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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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사회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맑스, 엥겔스, 레닌

쿠바는 위의 세가지 방식이 혼재된 이행과정 또는 방향을 모색중인 국가이다. 사회주의 실패의 주요 원인은 개별적 인간에 대한 이해접근 다시 말하면 고전적 자유주의를 제대로 수용하여 소화해 내지 못한 탓이다.

두 번째의 사민주의 방식은 19세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1-2차 세계대전이후, 반성과 성찰을 통해 ‘존엄과 정의와 연대’를 철학적 토대로 삼고 유럽대륙을 중심으로 강고히 뿌리를 내렸다. 신격화된 시장의 허구적 논리를 폭로하고 정치적 합의의 과정을 거쳐 시장을 본래의 기능적 수단으로 되돌려 합리적으로 규제하고 관리하며 인간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정책적 노력을 지속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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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사민주의의 선구자인 베른슈타인. 그는 무장폭력없이, 정치적 수단을 통해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인류의 미래를 향한 좌표로 평가받던 사민주의는 최근에 영국에서 노동당이 실패하고, 연이어 프랑스 사회당이 고전하며, 북유럽에서조차 진보세력이 우익세력에 밀려나는 현실에서 보듯이, 매우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것은 분명하다.

위기의 원인이 아직 분명하지 않으나, 유럽통합과정에 나타나는 후유증, 중국의 부상과 난민유입 등 세계적 흐름이라는 외적인 조건의 충격,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투항적 절충, 그리고 대의 민주주의가 갖는 취약점 노출과 함께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가 겹친 것으로 판단한다.

특히 트럼프 등장으로 새로운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날 ‘미국우선’의 국수적 시장만능주의에 대응한 유럽사회의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유럽에서 사민주의가 부활을 간절히 여망한다.

수탈적 자본제를 비판하는 또 다른 흐름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인간해방 또는 인본주의이라는 관점에서 형성되어왔다.

생시몽, 푸리에 등 중심이 되여 경제논리보다는 인간이라는 주제를 핵심적 관점으로 삼고 자유와 해방을 중심 주제로 사회를 해석하려는 일단의 그룹이 형성되었고, 이러한 맥을 이어 영국의 사업가 로버트 오웬은 자신이 책임지고 운영하던 방적사업체를 통하여 ‘뉴라나크’에서 인본주의적 산업실험을 이십여 년 간 진행한다.

그러나 밀어 닥친 방적산업의 불황과 주주간의 불화로 영국에서의 실험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하모니’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재개하였지만 오래지 않아 실패로 끝난다. 오웬은 죽기 전에 ‘다만 자신이 세상에 너무 일찍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남겼다고 한다.

‘사회적 경제’의 출현

상기의 인본적이고 진보적인 사상운동이 한때 공상적이라고 조롱을 받고, 특히 오웬의 헌신적이고 실천적 실험이 좌절한 과정과 배경을 살펴보는 것은 현재 시점에도 우리에게 매우 유용한 연구주제가 될 것이다. 이들 일단의 노력은 당시에는 일시적으로 실패하였으나 20세기 이후 복지국가의 출현과 기본소득논쟁 그리고 협동조합 등, 현대적 경제사상과 사회적 경제의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왼쪽부터 생시몽, 푸리에, 오엔. 이들의 비전은 맑스로부터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비난받았다.

사회적 경제는 공공적 영역과 시장적 영역을 벗어난 제3의 섹타에 속한다. 기본적으로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어 자발적 결사형태로 진행되고 발전되어 온 영역이다.

물론 사회적 경제라는 용어와는 무관하게 인류의 역사를 통하여 개개인과 한정된 조직들이 스스로 자조하고 공제하기 위하여 다양한 형태의 모임과 결사가 형성되어 왔다. 한국사회에서는 계와 향약이라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나타났고 유럽에서도 수공업자 중심의 길드나 이해를 공유하는 공동체 등 형태로 발전되어 왔으나, 사회의 주류적 형태로 발전하기 전까지는 이를 사회적 경제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전통적으로 경제보다는 인간과 사회를 강조해 왔던 프랑스에서 1840대에 사회적 경제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같은 시기에 영국의 로치데일 공장노동자들이 공동적으로 구매와 소비를 시작한 것으로 협동조합역사가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사회적 경제의 흐름이 형성되는 것은 제1-2차 세계대전과정에서 국가체계의 전반적 기능이 약화되면서 시민사회 스스로 자조하는 다양한 활동들이 주로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발전하고, 1970대 이후 ‘에너지위기’ 이후 서구의 경제와 복지체계가 위기를 맞이하면서 무력해지는 공공 시스템을 대신하려는 대안적 조직들이 시민사회 속에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였다.

1990대에 들어서면서 시장만능주의가 약탈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이에 저항하는 여러 형태의 양심적인 기업들의 활동이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다.

나라마다 편차를 보이고 있지만 2010년 기준으로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사회적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5-11% 수준이며 고용효과는 10-20% 수준을 상회하는 것으로 발표되고 있다.

여기에서 사회적 경제의 정의를 다시 살펴볼 필요성이 발생한다. 예컨대 제1 섹타인 공공의 영역을 대신하거나 공공기관에서 위탁 받아 움직이는 영역을 과연 순수하게 사회적 경제의 영역으로 보아야 하는 지 따져보아야 할 지점이다. 공공의 역할을 성과와 효율성 중심으로 평가하려는 복지서비스전달, 교육, 보건과 환경 등이 주요 영역이다.

또한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적 기업의 주요 목표가, 사회적 기능과 역할이라는 외피를 쓴 채, 구성원의 창의성과 적극성을 유도하여 본질적으로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 핵심 주제라면 이는 제2 섹타의 연장내지는 보완일 뿐이다.

잘못된 기존 질서와 악마의 맷돌에 대항하여 ‘자본이 아닌 인간을 중심으로 하고 사회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사회적 경제의 본질이자 목표라고 한다면, 위에 언급한 영역의 활동, 즉 제1 및 제2 섹타와 연관된 또는 혼재된 조직을 사회적 경제의 범주로 분류하고 포함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공적 영역과 시장적 기능이 없이 사회적 경제가 홀로 존속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오히려 이들 영역과 함께 맞물려 움직여 가며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실제적이며 효과적인 일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현재적 조건과 기능 그리고 미래적 지향과 가치가 타협적으로 충돌하게 된다.

한국의 사회적 경제 현황

한국적 현실로 돌아온다. 사회적 경제가 주요한 이슈로 등장한 것은 1997년 IMF 충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일자리를 잃으면서 실업대책과 극복의 방안으로 사회적 기업의 등장과 자활대책의 방식으로 사회적 경제라는 이슈가 전면으로 등장했을 때다. 

물론 이전에도 매우 중요하고 유의미한 활동들이 내재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예컨대 원주를 중심으로 한 한살림운동, 안산의료조합 등 여러 형태로 협동조합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러한 활동의 준거에는 무엇보다 고달픈 삶의 대안적 해결이라는 현실적 필요를 품고 있었으며, 추가로 시민사회자본의 형성과 공제적 상호부조 그리고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실험이라는 성격이 혼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IMF라는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으로 큰 흐름을 형성하게 된 한국에서의 사회적 경제활동은 이후 전개과정에서 출발점의 한계를 그대로 노출하게 된다. 즉,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가치를 표방하기 보다는 당장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한 궁여지책의 일자리로서 역할이 압도적으로 주류를 이루고 생존수준의 저임구조가 형성되었다. 여기에서 시민자본의 형성과 풀뿌리 민주주의는 이름뿐인 구호로 퇴색할 위험을 항상 지니게 된다.

다행스럽게 국민의 정부를 통해 사회안전망이 체계적으로 구축되고 2007년에 사회적 기업 지원법, 2012년 협동조합 기본법이 시행되면서 제도적 지원속에 사회적 경제의 양적인 성장이 괄목하게 이루어 졌다.

2016년 기준으로 인증된 사회적 기업이 2000개 수준에 육박하며 고용효과도 만여 명에 이른 것으로 발표되었다. 협동조합의 실태는 등록제이여서 정확히 내용파악이 어려우나 등록된 숫자로만 만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기준을 적용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종합적 통계수치로 보면 사회적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부가가치기준으로 0.9%, 고용효과 면에서 4-6%으로 보도되고 있다. 과장된 느낌이다.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에 마을기업과 자활조직 등은 모두 포함된 것으로 보이나, 기존의 농수축산 협동조합과 새마을 금고 등을 포함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필자는 후자 부분을 사회적 경제 영역에 포함시켜서는 아니 된다고 단호하게 주장하고 싶다.

사회적 경제에 대한 오해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써 사회적 경제에 관하여 선진적인 유럽사회의 기준을 열거해 본다.

  • 1) 개인과 사회적 가치의 우선 원칙,
  • 2) 민주적 통제 여부,
  • 3) 실현된 이익(손실)의 공유화,
  • 4) 연대와 책임의 원칙,
  • 5) 지속적 조건여부,
  • 6) 자발성과 개방성,
  • 7) 국가/정부로부터 독립성.

이러한 기준으로 본다면 당연히 정부정책전달 수단으로 자율성과 투명성을 철저히 결여한 각종 조합과 조직들, 사채 집단을 공인해준 새마을금고, 껍데기만 이름뿐인 협동조합들과 사회기업 등은 사회적 경제영역으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 물론 기존의 관행을 버리고 위에 제시한 기준에 합당하게 새로운 출발이 가능하다면, 기준을 충족한 재출범이후 다시 검토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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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jcse.kr/economy/mind.sky?code=mind)

한걸음 더 나가서 보자면, 위에 언급한 기준에 합당하지 못한 사이비 조직과 단체들을 사회적 경제의 영역으로 분류한다는 것은 공공과 시장 그리고 사회적 영역 모두에게 심각한 해악적 폐해를 끼치는 일이다. 앞으로 만들어질 사회적 경제 기본법의 입법과정에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이제는 정치인들의 생색과 치적을 위한 행정적 전시효과를 생각하여 양적 내용과 부풀린 수치만 내세워 일을 추진해서는 안된다.

기후와 토양이 알맞으면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는 것처럼, 제대로 된 제도라는 환경과 조건이 주어지면 사회적 경제활동이 자연스레 뿌리를 내릴 것이다. 농사를 짓는 심정으로 희망이 없는 쭉정이는 버리고, 추진 과정에서 좀비같은 존재를 가려내고, 제대로 된 싹을 키워가는 질적인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지원해야 하는 단계에 진입해 있다고 판단한다.

되풀이 하자면, 현재 시점에서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해야 할 일은 머리수로 채워진 행정적 포장이 아니라, 양질의 사회적 경제의 조직들을 발굴해서 키워나가고, 어렵게 출범한 조직들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도록 주변의 환경과 조건을 마련해 주는 일이다.

이들에게 일정기간 직접적 지원과 혜택을 제공하며, 검증된 조직에게는 할당된 공공구매에 참여자격을 부여하고, 다양한 간접지원( 제도, 환경조성, 교육, 컨설팅 등)을 제공하고, 이들 간에 서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물론 가장 희망적인 것은 스스로 성장하여 가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긴요한 것은 사회적 경제영역에 돈줄 즉 금융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일 것이다. 미소금융의 예처럼 기존의 금융기관에 일정부분의 할당을 의무화하여 사회적 경제영역에 지원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도 방안이다.

정부투자 또는 공공기금을 기반으로 한 사회투자기금의 대폭 확충, 민간참여를 통한 다양한 시민자본의 형성, 지역내 재투자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금융, 성과측정을 전제로 한 공공투자계약(SIB), 클라우드 펀드조직의 활성화 등 서구의 경험에 기초한 다양한 방식을 깊게 연구해야 한다.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제안

수익이라는 성과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시장기제에는 1주1표라는 주주(자본)중심적 운용방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가치와 역할을 중시하는 제도에는 1인1표라는 인간중심적 협동조합 방식이 매우 소중하고 효과적이다.

그런데 필자의 경험으로 기존의 금융시스템으로는 다수의 인원이 주인으로 존재하는 협동조합에 대해 일반적 대출방식의 지원이 불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스페인의 몬드라곤과 같은 거대한 협동조합은 자체 내에 금융기능을 보유하여 필요한 자회사에 적시적소에 지원할 수 있으나, 현시점의 한국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자본이 필요하다면 조합원 개개인의 출자지분을 증액하는 것이 원칙이나 현실적으로 한계가 분명하다. 이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기존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신용보증기금 등을 활용하였듯이, 협동조합의 활동과 사업전망을 평가하여 대신 보증해 줄 수 있는 가칭 ‘협동조합지원 보증기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정기간 동안 사회적 경제가 궤도에 올릴 때까지 과감한 지원에 따르는 손실을 효과적으로 감당해 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경험이 있는 많은 아이디어를 담아내야하는 영역이다.

일부에서는 정부 부처내에 ‘사회적경제부’ 신설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ICT 산업이 발달하려면 정보통신부를 없애야 하고, 교육이 제대로 되려면 교육부를 없애야 한다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회적 경제는 반드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스스로 연대하여 성장해 나가야 하는 주제이다. 행정적 요소가 제도와 환경조성을 넘어서서 너무 깊이 개입하면 오히려 화근으로 돌아온다. 지난 몇 년간 보여준 사회적 기업의 부실한 활동성과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최소 수준으로 국무총리 산하에 ‘사회적 경제 위원회‘를 두고 지원부처간의 갈등조정과 민간단체들과 협의를 위한 창구를 개설하는 것은 고려해 볼만 하다. 이 경우, 최종결정권을 지닌 위원장은 반드시 민간인이 맡아야 한다.

사회적 경제를 접근하는 데 가장 위험한 것은, 시장경제에서 ‘인간은 경제적 동물’로 규정하는 오류를 범하였듯이, ‘인간은 협동적이고 이타적 존재’라고 규정하는 역선택의 사고를 갖는 것이다.

사회생물학의 연구 성과와 진보적 게임이론을 통하여 인간과 사회가 줄곧 이타적이고 도덕적 방향으로 진보해 왔다는 주장은 대단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필자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는 사회적 경제의 영역을 다시 수학과 도식으로 규정하는 환원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을 규정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로 바라보면서, 현재 인류가 획득한 이성과 지혜로 각 시대에 합당한 제도를 구축하고 점차적으로 자유의 조건을 확대하여 가는 일이다.

대안적 질서, 사회적 경제

여기서 우리는 2009년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서’리는 저서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엘리노어 오스트롬의 조언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공유지를 함께 사용하는 조직에서는 우선 공유지의 조건을 제대로 살펴야 하며 현실적인 활동의 범위와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하고, 이에 따라 정해진 역할과 임무를 확실히 합의해야 한다.

이견과 다툼이 있을 시 이를 해결할 중재적 기능이 있어야 하고, 활동의 성과를 공평하게 분배하면서, 정해진 원칙을 이행하는지 확인하는 감독기능과 원칙이행을 위반할 시 이를 점증적으로 처벌하는 기능이 있어야 하며, 토론과 합의를 통하여 조직을 개선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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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노 오스트롬은 경제학의 오랜 숙제였던 ‘공유지의 비극’을 자율적인 자치거버넌스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다양한 사례분석 등을 통해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이러한 성과로 정치학자로서는 이례적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제도를 주어진 조건에 알맞게 만들어 내고 합의된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을 협동적으로 만들어 간다는 것을 함의한다.

인간사회가 존엄과 자유를 향해 끊임없이 나갈 수 있도록 현재의 정치적 사회적 장치를 끊임없이 개선해 가고, 지난 수백 년간 잘못 적용된 시장기제의 운용방식을 인간을 위한 유용한 수단과 방식으로 재구성해 가는 과정 속에, 사회적 경제의 진행적 실험이 공공과 시장의 영역들과 맞불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진화하고 성장하여 가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비민주적인 정치 상황에서는 사회적 경제가 성장할 수 없고, 수탈적 시장경제가 왕성하게 작동하는 곳에서는 사회적 경제가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닫힌 공간이 아니라 열린 사회속에서, 이기적이지도 않고 이타적이지도 않은, 열정을 가진 평범한 개인들이 ‘사회적 경제’라는 영역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실현해가고 나름대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조성된다면, 제3 섹타로서 사회적 경제는 결함투성인 시장경제를 대체해 가거나 또는 시장경제의 개선을 압박하는 경쟁적 파트너로서 자리를 잡아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래의 일자리를 만드는데 사회적 경제는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로베르토 웅거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진화적 과정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살아가는 유한적 존재이다 (Human is a definite being for indefinite process & purpose)”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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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재판이라는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 국민들 뿐 아니라 외신에서도 초미의 관심을 보였다. 뜨거웠던 이재용 징역 5년 선고에 대한 SNS반응을 뉴스프로에서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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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7/08/25-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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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지난 미 대선 경선 당시 버니 샌더스 지지 운동을 통해 급성장한 미국민주사회주의자(DSA : Democratic Socialist of America)의 회원수가 4만명에 근접하면서 무서운 정치적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뉴욕 민주당 하원의원 경선에서는 약관 20 대의 젊은 여성 오카시오-코르테스가 차기 원내총무를 예약한 10선의 중진 의원을 물리쳤다. 한국에서도 정치공학에만 빠져있는 기성 정당에 철퇴를 가하는 새로운 젊은 진보그룹이 형성되기를 기대하면서 미국 내 진보포탈에 실린 내용을 소개한다.


지난 5월, 세 명의 젊은 여성 정치인들이 펜실베이니아 주의회 예비선거에서 탄탄한 정치적 입지를 가진 남성 정치인들을 당당히 꺾었다. 이들은 모두 미국민주사회주의자들(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DSA)의 공개적 지지를 받고 있다. 이들 중 30세의 썸머 리(Summer Lee)와 32세의 사라 이나모라토(Sara Innamorato)는 펜실베이니아 정치의 상징과도 같은 코스타 가문의 먼 친척인 돔 코스타(Dom Costa)와 폴 코스타(Paul Costa)의 자리를 차지했다.

올해 37세의 엘리자베스 피들러(Elizabeth Fiedler)는 둘째 아이를 출산한 지 3개월 만에 출마를 선언했고, 필라델피아의 선거사무소에 탁아시설을 설치해 다른 부모들도 유세 전 아이를 맏길 수 있도록 했다. 유권자들과 이야기 하면서는 자신도 아이들 건강보험을 위해 메디케이드(Medicaid)와 아동건강보험프로그램(CHIP)에 의존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보험 소멸 후 2주간 느낀 불안함을 고백했다.

썸머 리는 로스쿨을 졸업한 이후로 계속 그녀를 짓눌러 온 20만 달러 이상의 학자금 때문에 본능적으로 “모두를 위한 양질의 무상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선거인 대부분이 백인인 지역에서 흑인 여성인 그녀는 전체 투표의 68% 득표했다).

이나모라토는 부친의 오피오이드 중독으로 어떻게 그녀와 어머니가 중산층 밖으로 밀려났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녀는 나에게 “우리 선거구가 겪은 그 고난을 내가 다 겪어왔다”고 말했다.

이들의 선거는 현재 미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풀뿌리 시민사회 부흥 운동의 일환이었다. 나는 이것이 이 칠흑 같은 암흑기에 낙관론을 위한 단 하나의 뿌리라고 생각한다. 뉴욕의 뉴스 속에 파묻혀 나는 종종 절망감에 시달리곤 한다. 의심스러운 저의와 부패한 성격으로 설명되는 권위주의적 대통령은 두 번째 연방대법원의 판결과 함께 미국을 수세대에 걸쳐 바꿔버릴 태세다. 연방정부는 절대 처벌받지 않는 부패의 장이 되었다. 내 아이들 또래의 어린 애들은 이민자라는 이유로 부모와 떨어졌다.

그러나 미 전역의 모든 사람들, 특히 여성들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재건하기 위해, 정치적 힘을 발휘할 방법을 찾기 위해 거의 초자연적 힘을 내 노력하고 있다. 반 트럼프의 중추가 되는 중년의 비주류들에게 흔히 이러한 노력은 곧 민주당 지지를 의미한다. 하지만 트럼프의 당선을 썩은 정치와 경제 시스템의 절정으로 보는 젊은이들에게 이러한 노력은 곧 당을 민주적 사회주의의 수단으로 재건하는 것을 의미한다.

리와 이나모라토 그리고 피들러의 승리는 마치 폭풍 전야처럼 느껴진다. 지난 화요일에는 비슷한 양상이 뉴욕이라는 좀 더 큰 무대에서 재현되었다. 28세의 민주적 사회주의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가 19년간 자리를 지킨 민주당의 조셉 크로울리(Joseph Crowley)를 이긴 것이다. 크로울리는 퀸즈 카운티 민주당 의장이자 낸시 펠로시(Nancy Pelosi)의 뒤를 이어 차기 하원 민주당 원내총무로 손꼽히던 인물이었다. 해당 선거가 열리기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크로울리는 자체 여론조사에서 오카시오-코르테즈를 36%p 앞서 있었다. 선거는 결과적으로 오카시오-코르테즈가 15%p 앞서며 끝이 났다.

NEW YORK, NY - JUNE 26: Posters for progressive challenger Alexandria Ocasio-Cortez outside her victory party in the Bronx after Ocasio-Cortez upset incumbent Democratic Representative Joseph Crowly on June 26, 2018 in New York City.  Ocasio-Cortez upset Rep. Joseph Crowley in New York’s 14th Congressional District, which includes parts of the Bronx and Queens. (Photo by Scott Heins/Getty Images)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의 포스터. 그녀는 6월 26일 뉴욕 시에서 민주당 현직 하원의원 조셉 크로올리를 물리쳤다. (사진 Scott Heins/Getty Images)

 

오카시오-코르테즈는 펜실베이니아 여성들과 같은 방법으로 승리했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를 동원했고, 봉사자 1인당 한 명의 유권자와 연결했다.

“전국적 관심이 전혀 없었던 시절부터 몇 달을 계속 지하철역 등에서 유권자들에게 이야기를 거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지난 5월 오카시오-코르테즈를 지지한 뉴욕주 검찰총장 후보인 제피르 티치아웃(Zephyr Teachout)의 말이다.

해당 선거구의 압도적인 민주당 구성비율을 봤을 때, 오카시오-코르테즈의 본 선거 승리는 거의 확실하다. 리와 피들러, 이나모라토 역시 이렇다 할만한 공화당 경쟁자가 없어 의원 선출이 확실시된다.

트럼프는 트위터로 오는 11월 훨씬 더 많은 공화당 의원을 탄생시켜 자신의 통치를 한층 강화할 붉은 물결에 대한 환상을 펼쳤다. 그러나 진짜 붉은 물결은 민주적 사회주의가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늘리는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미국민주사회주의자들(DSA)을 이끄는 마리아 스바트(Maria Svart)는 모두를 위한 메디케어(Medicare for All), 미국이민세관단속국(United State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의 폐지, 연방정부의 일자리 보장 등을 포함하는 코르테즈의 공약을 언급하며 “이런 문제를 가지고 선거운동을 할 수 있고,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오카시오 코르테즈가 속한 DSA는 미국 내 가장 큰 사회주의 단체이다. 2016년 대선 당시, 자칭 민주적 사회주의자인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가 민주당 경선에 뛰어들자 그 회원 수가 7,000명에서 37,000명 이상으로 증가하며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DSA는 선거 때에는 민주당과 일하지만, 정당이라기보다는 외부에서 부정에 맞서 싸우는 운동단체에 가깝다.

오카시오-코르테즈의 공약에 반영된 DSA의 많은 목표가 민주당 진보 진영의 목표와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닮아있다. 다만 DSA는 기꺼이 진보주의자들과 함께 일하지만, 그 회원들은 전체적으로 민주적 사회주의 중 “사회주의” 부분에 진지한 태도를 보인다. DSA의 설립헌장은 “자원과 생산에 대한 민중적 통제, 경제계획, 공평한 분배, 페미니즘, 인종평등, 억압 없는 관계 등 인도적 사회”를 명시하고 있다.

생산 수단의 민중적 통제에 대한 논의는 나이가 많은 민주당원, 심지어는 일부 매우 진보적인 당원들에게도 환영을 받지 못한다. 이는 젊은 당원들과 훨씬 잘 어울리는 주제로 최근 설문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18세~34세의 민주당원 중 61%가 사회주의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경기침체와 치솟는 학자금, 불안한 의료보험, 일자리의 불확실성 증가 등으로 극심한 물질적 불안정을 겪었다. 이들에게 공산주의의 광범위한 실패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자본주의의 실패는 곳곳에 널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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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에 나선 민주사회주의자(사진: 위키백과)

DSA가 지지하는 후보들이 승리했다고 DSA가 그 공을 독차지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포퓰리스트 계열의 브랜드 뉴 콩그레스(Brand New Congress)와 저항단체 인디비저블(Indivisible)의 지역 지부 등 많은 단체가 오카시오 코르테즈를 위해 힘을 합쳤다. 또한, 피들러와 리, 이마모라토의 승리를 DSA가 도왔던 것은 사실이나, 이들 뒤에 DSA만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실제로 민주당원 사이에서 이데올로기 전에 대해 말은 많지만, 그 경계는 생각보다 유연한 듯 보인다. 최근 나는 펜실베이니아에서 이마모라토를 위해 자원봉사를 했고, 민주당의 재활을 돕는 젊은 여성을 지원할 수 있어 감격스러웠다는 한 온건파 저항 운동가를 만났다.

배리 루시(Barry Rush)는 올해 63세로 은퇴 후 삶을 보내고 있는데, 과거 민주당과 공화당을 고루 찍었지만, 트럼프에 놀란 후 이제 Progress PA라는 자유주의 단체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그의 주요 관심사는 민주당원을 찍는 것이다. 그는 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을 이야기하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저는 계속 스머프 버튼을 누를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민주당에 젊은이들이 필요한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이나모라토의 승리 축하 파티에 “젊은 사람들이 500명이나 있었다”라며 거기 모인 밀레니얼 세대들을 보고 힘이 났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손주들을 위한 희망을 얻었다.

한편 DSA의 젊은 회원들은 분석을 통해 트럼프의 재앙을 이해하면서 희망을 잃지 않는다. 이들은 왜 우리 사회가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사회를 재건할 것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때로는 진보주의자들보다도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일들에 놀라지 않는다.

나는 피츠버그 동부 끝의 한 작은 커피숍에서 피츠버그 DSA의 공동의장인 29세의 아리엘 코헨(Arielle Cohen)과 두 명의 다른 지부 지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코헨은 “트럼프의 재앙은 모두가 개별적으로 위협을 느끼고, 트럼프와 싸워야만 할 것 같고, 행정부와 싸워야만 할 것 같이 느껴진다는 것”이라면서 “사회주의자들은 사실 이 상황이 아주 오래 지속되고 있다고 말하죠. 트럼프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란 거죠.”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에서 묘한 위안감이 느껴진다. 사회주의자들은 자신을 현재의 재앙을 피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존재가 아니라 미래에 그들이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드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다.

620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DSA 피츠버그 지부의 코헨과 그 동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들이 지역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쏟아붓는 노력을 알고 놀랐다. 공립학교가 문을 닫는 날이면 DSA의 사회주의-페미니즘 위원회가 온종일 아이들을 돌보고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는 행사를 진행한다. 다른 일부 지부들처럼 피츠버그 DSA도 회원들이 자동차 브레이크 등을 무상으로 교체해주는 자동차 클리닉을 연다든지, 경찰의 불필요한 개입을 피하도록 사람들을 도우면서 지역사회로 조용히 스며들고 있다. 메리라는 이 지역 정비공이 회원들이 자동차에 숙련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DSA 지부들은 꾸준히 회의와 사교모임을 개최해 미국인의 삶 속에 유행처럼 번지는 개인의 고립에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스바트는 “모든 것들이 매우 개인화되었고, 이것이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있다”라며 “사람들은 매우, 매우 외롭습니다. 자살률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했죠.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을 위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겁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정치와 공동체 생활의 융합은 기독교 우파가 지지자들에게 제공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사회적 자본은 어떤 선거자금으로도 살 수 없다.

오카시오-코르테즈의 승리 이후, 펠로시는 사회주의가 민주당의 당론이라는 공화당의 공격을 반박했다. 수세대 간 “사회주의자”는 불명예로 치부되었고, 민주당원 모두를 향한 공격이었으므로 방어적 태세를 취한 펠로시를 비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오카시오-코르테즈 같은 지원자가 많을 것이고, 민주당은 이들을 환영해야 한다. 민주당을 가까이할 수 있는 단체로 재건하기 위한 작업에 이들의 젊음과 열정, 의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민주당 지도부가 원하든 아니든 그 젊은이들은 오고 있다.

다른 주들과 달리 펜실베이니아에서 주의회 의원은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야 하는 아주 힘든 일이다. 썸머 리가 승리한 지 한 달 후 그녀를 만났는데, 리는 주 수도인 해리스버그에 입성해 배워야 할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자신과 동료들이 민주당을 다시 만들 준비가 되었음을 자신했다.

리는 “펜실베이니아에서 우리가 하는 일로 뭔가를 보여준다면, 우리가 민주당을 재건할 수 있다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기득권에 맞서 도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선거운동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선거운동을 펼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실제로 선거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이길 수 있습니다. 펜실베이니아를 넘어 모든 곳에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미셸 골드버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더 네이션(The Nation)의 선임작가로도 활동했다.

 

목, 2018/07/0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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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4일 오전 서울 송파구 가락공판장 모습) 2017.09.0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추석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식품안전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밥상물가도 급등하고 있어 소비심리 위축이...
월, 2017/09/0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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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법인 “다른백년”은 짧은 2-3 년간의 모색과 실험적 기간을 지나오면서, 2018년 가을부터는 열린 시민적 담론과 공론을 형성하기 위한 칼럼과 논평 그리고 토론회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하였습니다.

매 주 단위로 꾸준히 늘어나면서 수 만의 방문 횟수를 기록하고 있는 홈페이지 e-platform, www.thetomorrow.kr을 기반으로, 한국사회의 대안을 찾아서” 라는 주제에 대해 해당 분야 10분 정도 전문인들이 연속적으로 글을 제공하는 기획칼럼과 시대적 현안에 대해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는 시민적 소통의 “열린공간”, 그리고 오프라인 방식으로 연 3-4회 정도 주제가 있는 심포지움을 운용하고자 합니다.

한국사회의 대안을 찾아서”에 참여하는 필진을 다음과 같이 가나다 순으로 소개합니다. 

김봉준 화백, “신화이야기, 원형 공동체를 찾아서”

김정호 박사, ” 중국의 현재, 중국의 시각”

김화순 박사, “북한사람, 북한사회”

박헌권 변호사, “유기체 사상, 동서양철학과 현대과학의 만남”

이래경 이사장, “제3섹타 경제론, 인간의 자유와 해방의 논리”

이병한 교수, “개벽천하, 급변하는 세계”

이재승 교수, “변혁적 실용주의, 웅거Unger를 중심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현안인 민주주의라는 주제에는 이래의 두 분이 수고해 주실 것입니다.

이정옥 교수, 대구가톨릭 대학, “직접민주주의” 주임.

이승원 박사, 경희대학교 “전환과 사회혁신” 센타장.

또한,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싶거나, 오늘의 현안에 대해 진보적인 의견을 가지고 계신 여러분들은 누구나 언제라도 다른백년의 “열린공간”의 기고를 통해서 자신의 의견을 동시대의 이웃들과 소통하고 공론화 할 수 있습니다. 채택된 기고에 대해서는 소정의 수고료를 지급합니다.

 

열띤 참여와 격려를 부탁 드립니다. 이사장 이래경. 2018-09.

기고 연락처 : 박형섭 사무국장 010-5171-8527. [email protected].

금, 2018/08/3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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