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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는 다른 삶, 사회적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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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는 다른 삶, 사회적 경제

익명 (미확인) | 화, 2017/01/17- 11:25

시장과 사회적 경제라는 제목을 정해 놓고는 한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칼럼이라는 제약된 공간에 다루기에 주제가 너무 큰 탓도 있지만, 양자 간의 성격과 역할을 어떻게 설정하는 할 지 한동안 망설였다. 단순하게 현재의 시장기능이 갖는 비인간적인 탐욕을 비판하고 대안으로 사회적 경제를 설정하고 소개하는 수준에서 글은 쓴다면 쉽게 해결될 일이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과연 사회적 경제가 문제투성이지만 인간의 삶에 풍요를 가져온 시장경제를 대체할 수 있는 주류적 대안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본제적 시장경제의 폐해를 보안하는 장식물 수준으로 머물 것인지, 양자가 병립하면서 각자의 영역을 유지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상호작용을 하는 것인지, 대립적으로 충돌하면서 역사의 사건을 통하여 결국 한축이 실질적으로 소멸해갈 것인지 등 쉽지 않은 의문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결국 필자 스스로 구한 타협은 ‘인간이 왜 사냐’는 질문에 대답이 없듯이, 본 주제 역시 결국은 ‘인간에 대한 탐구’이고 따라서 산술문제처럼 명쾌한 정답이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편하게 글을 시작해 본다.

시장의 발전과 자본주의

일단 시장경제는 개인을 생존본능적 탐욕과 편함을 추구하는 존재로 파악하고 개인적 욕망이 시장을 움직이는 기본 동력으로 파악한다. 반면 사회적 경제는 인간과 인간사이의 협동과 가치를 중심으로 활동 영역을 설정한다. 따라서 인간의 외양적 존재양식으로 개인과 사회, 그리고 내면적 형질로서 탐욕적 이기심과 협동적 이타주의라는 상반된 주제를 함께 마주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시장이 본격적으로 인류사회에 도입된 시대는 중국의 송대(宋代)라고 알려져 있다. 중국미술사의 3대 보물로 알려져 있는 청명상하도(淸明上下圖)는 송대를 묘사한 그림으로 길이가 50미터가 넘는 비단폭에 당시의 화려한 도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는 대로변에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고 곳곳에 다양한 물산을 만들고 판매하는 모습을 정밀하고 화려하게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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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상하도의 일부.

이후 중국사회는 시장이라는 놀라운 기제를 통하여 서구의 산업혁명이 본격화되기 직전인 청의 건륭제 시대까지 인류사에서 물산이 가장 풍요로운 사회를 형성해 왔다. 이러한 역사적 유전인자가 굴욕적인 근대 역사를 극복하고 굴기하는 현대의 중국에서 재현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필자의 앞선 칼럼 ‘한국, 자유주의 결핍인가, 과잉인가’에서도 언급했듯이, 중세 말 자유도시의 출현과 함께 태동한 상업주의 기반 위에 증기기관의 발명 등 과학기술과 결합한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생산의 역사는 그간 완만한 산술적 속도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기 시작하였다.

수렵에서 농업의 시대로부터 정착된 수 만년의 긴 세월 동안 생산력이 두 배 정도 증가하는데 천년이라는 기간이 필요하던 시대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18세기 이후에는 같은 생산력의 증가를 수 십년 단위로 이루어내는 시대로 급작스레 진입하게 된다.

이러한 기하급수적 생산력 증대를 가져온 삼백 여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인류사회는 생물적 존속에 필요한 식량과 의복을 포함한 기초재의 해결을 넘어서서 대중적으로 풍요를 즐길 수 있는 대량생산과 유통이 가능한 경제력과 기반시설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왕성한 생산확장과 경제활동에는 역시 시장이라는 기제가 중심적으로 작동하여 왔다. 전통적으로 자신이 만들어낸 물건 또는 역할을 생활에 필요한 타인의 물건과 역할로 교환하고 매매하던 시장이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성격과 기능이 변하기 시작한다.

C-M-C’ (C:물건, M:화폐)로 표현할 수 있는 물물중심의 거래방식이 상업주의 시대에는 화폐가 중심매체가 되어 M-C-M’ 로 대체되고, 다시 산업혁명을 거치는 동안 M-P(N,L,T,,…)-C-M’ (P:생산과정, N:자연-토지와 원료, L:노동, T:기술,….)으로 바뀌어 가면서 M’ -M = ∆M, 즉 자본의 자기증식이 시장의 주요한 목적으로 변질되었다.

18세기이후 합리적 이성과 과학주의가 사구사회에 전면적으로 등장하면서 상기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려는 학문적 노력이 다양한 시각에서 이루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또한 실천적 노력의 과정이다. 문제는 이를 자신의 탐욕을 실현하는데 악용한 지배집단의 이데올로기 작동방식이었다.

경제학의 탄생…인간행위에 대한 수리적 도식화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건 푸줏간 주인, 술도가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생각 덕분이다”라는 이야기로 잘 알려진 아담 스미스(1723-1790)만큼 우리에게 잘못 소개된 인물도 드물다.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그동안 윤리학에 속하여 있던 경제라는 영역을 별도로 분리하여 독립된 학문으로 개척한 아담 스미스는 단순히 분업론만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노동가치설, 자본축척론, 특혜와 독점에 대한 비판 등을 주창하였다.

또 주연구 분야인 윤리학 분야의 저작 ‘도덕감성론’을 통하여 인간사회의 도덕과 정의, 질서 등 광범한 주제를 다루었다. 또한 그 역시 가난한 이웃을 위해 평생 동안 상당한 기부를 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수공업적 가내공업에서 공장제 대량생산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었고, 다수의 가내수공업적 공급체계라는 조건 속에서 이상적인 분업과 시장적 균형이론이 실제적으로 잘 적용되었으며, 우리에게 잘못 알려진 가공의 ‘스미스’와는 반대로 그는 미래로 다가오는 공장제적 대량생산이 가져올 독점적 특혜를 예측하며 매우 걱정을 했다고 한다.

시장에 대한 가장 심각한 왜곡은 자연과학의 성과로부터 시작되었다. 뉴턴의 역학을 중심으로 현상세계에 대한 물리학적 설명이 가능해지고, 이를 뒷받침하는 대수학적 이론이 발달하면서 시장과 경제현상 역시 물리학과 대수학적 방식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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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학파의 주요 인물들 (이미지 출처: https://www.progress.org/articles/austrian-economics-explained)

스미스 등에 의해 주창된 고전적 정치경제학에 알프레드 마샬이 시장균형이론을 보태었고, 뒤를 이어 오스트리아의 한계효용학파들은 마침내 ‘개별적 인간=이기적 존재=한계효용 곡선점’ 이라는 대수학적 정의를 도입한다.

이로써 규정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로서 살아있는 인간 개인들이 대수학의 공식을 그대로 복사한 경제학의 논리를 위하여 ‘경제적 동물’라는 상수조건으로 규정당하고, 수학공식과 같은 죽은 사물처럼 취급된다.

약육강식 정당화한 사회진화론

아담 스미스만큼 잘못 와전된 또 다른 인물이 찰스 다윈(1809-1882)이다. 위대한 그의 진화론은 생명과 자연생태계를 상호관계와 작용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실천적 방법론이고, 완성된 이론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화두(話頭)였다.

그의 자연(환경)선택론은 여전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대상이 생물계의 개체에서 군락으로, 그리고 인간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역사로 영역을 확장되고 있는 주제이다.

그러나 동시대의 스펜서 등 일군의 학자들이 진화론을 ‘적자생존’과 ‘약육강식’ 같이 저급하고 잘못된 이론으로 축소 해석하면서, 자본제 생성시기에 맞불려 살인적 노동자 수탈구조를 정당화하는데 악용되었다.

성장기에 있는 유소년들을 하루 18시간 이상 장기간 노동시키는 것도 약육강식의 논리로 정당화되었고, 뼈골이 빠지도록 일을 해도 가난을 못 벗어나는 것은 적자생존이라는 설명을 통하여 전적으로 자신이 못난 탓으로 돌려졌다. 19세기 초반에 입법화된 영국의 신빈민구제법은 이러한 논리위에서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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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왼쪽)과 허버스 스펜서. 스펜서는 찰스의 진화론은 인간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면서 인간사회 내의 약육강식을 정당화했다.

‘경제적 동물’과 ‘약육강식’이라는 단순한 규정과 천박한 이론이 자본증식의 탐욕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등장해 시장과 결합되면서, 과학기술과 산업혁명으로 찬란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던 인류의 역사가 오늘날까지 끝없는 수탈과 처참한 전쟁과 고통스런 빈곤 그리고 인간소외로 점철되는 역설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자본의 탐욕과 이를 정당화한 논리가 실제적으로 작동하는 시장이라는 기제가 함께 맞불려, 칼 폴라니가 표현했듯이, 악마의 맷돌로 변질되면서 지속적으로 우리 삶의 현실을 지배하게 된다.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구호는 실상 잘못된 현실을 은폐하고 기존의 기득권 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강력한 지배의 이데올로기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시장은 기본적으로 중립적이고 도구적 기제일 뿐이다. 문제는 사악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괴물 같은 논리와 제도로서의 체제인 것이다.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노력들

이러한 수탈적 자본제적 시장논리를 극복하자고 실천해 온 역사의 과정을 크게 세가지로 분류해 본다.

첫째는 마르크스를 중심으로 한 과학적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방식,

둘째로는 사적 소유와 시장의 기능을 인정한 바탕위에서 정치적 합의와 제도개선에 방점을 둔 사회민주주의 방식,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중심으로 한 인문적 사회주의 흐름, 그리고 여기에 기초하여 발전해온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운동을 열거해 볼 수 있다.

사회주의 방식은 20세기를 경과하면서 소비에트가 해체되는 등 명백하게 실패하였다. 현존하는 북한은 더 이상 사회주의가 아니라 세습된 전제적 병영체제이다. 중국은 계획적 사회주의의 한계를 명백히 인정하고 자본제로 방향을 전환하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인민집중적 권력의 통제를 받는 이중적 시장경제체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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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사회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맑스, 엥겔스, 레닌

쿠바는 위의 세가지 방식이 혼재된 이행과정 또는 방향을 모색중인 국가이다. 사회주의 실패의 주요 원인은 개별적 인간에 대한 이해접근 다시 말하면 고전적 자유주의를 제대로 수용하여 소화해 내지 못한 탓이다.

두 번째의 사민주의 방식은 19세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1-2차 세계대전이후, 반성과 성찰을 통해 ‘존엄과 정의와 연대’를 철학적 토대로 삼고 유럽대륙을 중심으로 강고히 뿌리를 내렸다. 신격화된 시장의 허구적 논리를 폭로하고 정치적 합의의 과정을 거쳐 시장을 본래의 기능적 수단으로 되돌려 합리적으로 규제하고 관리하며 인간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정책적 노력을 지속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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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사민주의의 선구자인 베른슈타인. 그는 무장폭력없이, 정치적 수단을 통해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인류의 미래를 향한 좌표로 평가받던 사민주의는 최근에 영국에서 노동당이 실패하고, 연이어 프랑스 사회당이 고전하며, 북유럽에서조차 진보세력이 우익세력에 밀려나는 현실에서 보듯이, 매우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것은 분명하다.

위기의 원인이 아직 분명하지 않으나, 유럽통합과정에 나타나는 후유증, 중국의 부상과 난민유입 등 세계적 흐름이라는 외적인 조건의 충격,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투항적 절충, 그리고 대의 민주주의가 갖는 취약점 노출과 함께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가 겹친 것으로 판단한다.

특히 트럼프 등장으로 새로운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날 ‘미국우선’의 국수적 시장만능주의에 대응한 유럽사회의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유럽에서 사민주의가 부활을 간절히 여망한다.

수탈적 자본제를 비판하는 또 다른 흐름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인간해방 또는 인본주의이라는 관점에서 형성되어왔다.

생시몽, 푸리에 등 중심이 되여 경제논리보다는 인간이라는 주제를 핵심적 관점으로 삼고 자유와 해방을 중심 주제로 사회를 해석하려는 일단의 그룹이 형성되었고, 이러한 맥을 이어 영국의 사업가 로버트 오웬은 자신이 책임지고 운영하던 방적사업체를 통하여 ‘뉴라나크’에서 인본주의적 산업실험을 이십여 년 간 진행한다.

그러나 밀어 닥친 방적산업의 불황과 주주간의 불화로 영국에서의 실험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하모니’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재개하였지만 오래지 않아 실패로 끝난다. 오웬은 죽기 전에 ‘다만 자신이 세상에 너무 일찍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남겼다고 한다.

‘사회적 경제’의 출현

상기의 인본적이고 진보적인 사상운동이 한때 공상적이라고 조롱을 받고, 특히 오웬의 헌신적이고 실천적 실험이 좌절한 과정과 배경을 살펴보는 것은 현재 시점에도 우리에게 매우 유용한 연구주제가 될 것이다. 이들 일단의 노력은 당시에는 일시적으로 실패하였으나 20세기 이후 복지국가의 출현과 기본소득논쟁 그리고 협동조합 등, 현대적 경제사상과 사회적 경제의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왼쪽부터 생시몽, 푸리에, 오엔. 이들의 비전은 맑스로부터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비난받았다.

사회적 경제는 공공적 영역과 시장적 영역을 벗어난 제3의 섹타에 속한다. 기본적으로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어 자발적 결사형태로 진행되고 발전되어 온 영역이다.

물론 사회적 경제라는 용어와는 무관하게 인류의 역사를 통하여 개개인과 한정된 조직들이 스스로 자조하고 공제하기 위하여 다양한 형태의 모임과 결사가 형성되어 왔다. 한국사회에서는 계와 향약이라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나타났고 유럽에서도 수공업자 중심의 길드나 이해를 공유하는 공동체 등 형태로 발전되어 왔으나, 사회의 주류적 형태로 발전하기 전까지는 이를 사회적 경제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전통적으로 경제보다는 인간과 사회를 강조해 왔던 프랑스에서 1840대에 사회적 경제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같은 시기에 영국의 로치데일 공장노동자들이 공동적으로 구매와 소비를 시작한 것으로 협동조합역사가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사회적 경제의 흐름이 형성되는 것은 제1-2차 세계대전과정에서 국가체계의 전반적 기능이 약화되면서 시민사회 스스로 자조하는 다양한 활동들이 주로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발전하고, 1970대 이후 ‘에너지위기’ 이후 서구의 경제와 복지체계가 위기를 맞이하면서 무력해지는 공공 시스템을 대신하려는 대안적 조직들이 시민사회 속에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였다.

1990대에 들어서면서 시장만능주의가 약탈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이에 저항하는 여러 형태의 양심적인 기업들의 활동이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다.

나라마다 편차를 보이고 있지만 2010년 기준으로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사회적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5-11% 수준이며 고용효과는 10-20% 수준을 상회하는 것으로 발표되고 있다.

여기에서 사회적 경제의 정의를 다시 살펴볼 필요성이 발생한다. 예컨대 제1 섹타인 공공의 영역을 대신하거나 공공기관에서 위탁 받아 움직이는 영역을 과연 순수하게 사회적 경제의 영역으로 보아야 하는 지 따져보아야 할 지점이다. 공공의 역할을 성과와 효율성 중심으로 평가하려는 복지서비스전달, 교육, 보건과 환경 등이 주요 영역이다.

또한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적 기업의 주요 목표가, 사회적 기능과 역할이라는 외피를 쓴 채, 구성원의 창의성과 적극성을 유도하여 본질적으로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 핵심 주제라면 이는 제2 섹타의 연장내지는 보완일 뿐이다.

잘못된 기존 질서와 악마의 맷돌에 대항하여 ‘자본이 아닌 인간을 중심으로 하고 사회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사회적 경제의 본질이자 목표라고 한다면, 위에 언급한 영역의 활동, 즉 제1 및 제2 섹타와 연관된 또는 혼재된 조직을 사회적 경제의 범주로 분류하고 포함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공적 영역과 시장적 기능이 없이 사회적 경제가 홀로 존속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오히려 이들 영역과 함께 맞물려 움직여 가며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실제적이며 효과적인 일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현재적 조건과 기능 그리고 미래적 지향과 가치가 타협적으로 충돌하게 된다.

한국의 사회적 경제 현황

한국적 현실로 돌아온다. 사회적 경제가 주요한 이슈로 등장한 것은 1997년 IMF 충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일자리를 잃으면서 실업대책과 극복의 방안으로 사회적 기업의 등장과 자활대책의 방식으로 사회적 경제라는 이슈가 전면으로 등장했을 때다. 

물론 이전에도 매우 중요하고 유의미한 활동들이 내재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예컨대 원주를 중심으로 한 한살림운동, 안산의료조합 등 여러 형태로 협동조합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러한 활동의 준거에는 무엇보다 고달픈 삶의 대안적 해결이라는 현실적 필요를 품고 있었으며, 추가로 시민사회자본의 형성과 공제적 상호부조 그리고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실험이라는 성격이 혼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IMF라는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으로 큰 흐름을 형성하게 된 한국에서의 사회적 경제활동은 이후 전개과정에서 출발점의 한계를 그대로 노출하게 된다. 즉,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가치를 표방하기 보다는 당장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한 궁여지책의 일자리로서 역할이 압도적으로 주류를 이루고 생존수준의 저임구조가 형성되었다. 여기에서 시민자본의 형성과 풀뿌리 민주주의는 이름뿐인 구호로 퇴색할 위험을 항상 지니게 된다.

다행스럽게 국민의 정부를 통해 사회안전망이 체계적으로 구축되고 2007년에 사회적 기업 지원법, 2012년 협동조합 기본법이 시행되면서 제도적 지원속에 사회적 경제의 양적인 성장이 괄목하게 이루어 졌다.

2016년 기준으로 인증된 사회적 기업이 2000개 수준에 육박하며 고용효과도 만여 명에 이른 것으로 발표되었다. 협동조합의 실태는 등록제이여서 정확히 내용파악이 어려우나 등록된 숫자로만 만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기준을 적용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종합적 통계수치로 보면 사회적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부가가치기준으로 0.9%, 고용효과 면에서 4-6%으로 보도되고 있다. 과장된 느낌이다.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에 마을기업과 자활조직 등은 모두 포함된 것으로 보이나, 기존의 농수축산 협동조합과 새마을 금고 등을 포함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필자는 후자 부분을 사회적 경제 영역에 포함시켜서는 아니 된다고 단호하게 주장하고 싶다.

사회적 경제에 대한 오해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써 사회적 경제에 관하여 선진적인 유럽사회의 기준을 열거해 본다.

  • 1) 개인과 사회적 가치의 우선 원칙,
  • 2) 민주적 통제 여부,
  • 3) 실현된 이익(손실)의 공유화,
  • 4) 연대와 책임의 원칙,
  • 5) 지속적 조건여부,
  • 6) 자발성과 개방성,
  • 7) 국가/정부로부터 독립성.

이러한 기준으로 본다면 당연히 정부정책전달 수단으로 자율성과 투명성을 철저히 결여한 각종 조합과 조직들, 사채 집단을 공인해준 새마을금고, 껍데기만 이름뿐인 협동조합들과 사회기업 등은 사회적 경제영역으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 물론 기존의 관행을 버리고 위에 제시한 기준에 합당하게 새로운 출발이 가능하다면, 기준을 충족한 재출범이후 다시 검토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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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jcse.kr/economy/mind.sky?code=mind)

한걸음 더 나가서 보자면, 위에 언급한 기준에 합당하지 못한 사이비 조직과 단체들을 사회적 경제의 영역으로 분류한다는 것은 공공과 시장 그리고 사회적 영역 모두에게 심각한 해악적 폐해를 끼치는 일이다. 앞으로 만들어질 사회적 경제 기본법의 입법과정에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이제는 정치인들의 생색과 치적을 위한 행정적 전시효과를 생각하여 양적 내용과 부풀린 수치만 내세워 일을 추진해서는 안된다.

기후와 토양이 알맞으면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는 것처럼, 제대로 된 제도라는 환경과 조건이 주어지면 사회적 경제활동이 자연스레 뿌리를 내릴 것이다. 농사를 짓는 심정으로 희망이 없는 쭉정이는 버리고, 추진 과정에서 좀비같은 존재를 가려내고, 제대로 된 싹을 키워가는 질적인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지원해야 하는 단계에 진입해 있다고 판단한다.

되풀이 하자면, 현재 시점에서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해야 할 일은 머리수로 채워진 행정적 포장이 아니라, 양질의 사회적 경제의 조직들을 발굴해서 키워나가고, 어렵게 출범한 조직들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도록 주변의 환경과 조건을 마련해 주는 일이다.

이들에게 일정기간 직접적 지원과 혜택을 제공하며, 검증된 조직에게는 할당된 공공구매에 참여자격을 부여하고, 다양한 간접지원( 제도, 환경조성, 교육, 컨설팅 등)을 제공하고, 이들 간에 서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물론 가장 희망적인 것은 스스로 성장하여 가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긴요한 것은 사회적 경제영역에 돈줄 즉 금융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일 것이다. 미소금융의 예처럼 기존의 금융기관에 일정부분의 할당을 의무화하여 사회적 경제영역에 지원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도 방안이다.

정부투자 또는 공공기금을 기반으로 한 사회투자기금의 대폭 확충, 민간참여를 통한 다양한 시민자본의 형성, 지역내 재투자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금융, 성과측정을 전제로 한 공공투자계약(SIB), 클라우드 펀드조직의 활성화 등 서구의 경험에 기초한 다양한 방식을 깊게 연구해야 한다.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제안

수익이라는 성과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시장기제에는 1주1표라는 주주(자본)중심적 운용방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가치와 역할을 중시하는 제도에는 1인1표라는 인간중심적 협동조합 방식이 매우 소중하고 효과적이다.

그런데 필자의 경험으로 기존의 금융시스템으로는 다수의 인원이 주인으로 존재하는 협동조합에 대해 일반적 대출방식의 지원이 불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스페인의 몬드라곤과 같은 거대한 협동조합은 자체 내에 금융기능을 보유하여 필요한 자회사에 적시적소에 지원할 수 있으나, 현시점의 한국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자본이 필요하다면 조합원 개개인의 출자지분을 증액하는 것이 원칙이나 현실적으로 한계가 분명하다. 이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기존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신용보증기금 등을 활용하였듯이, 협동조합의 활동과 사업전망을 평가하여 대신 보증해 줄 수 있는 가칭 ‘협동조합지원 보증기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정기간 동안 사회적 경제가 궤도에 올릴 때까지 과감한 지원에 따르는 손실을 효과적으로 감당해 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경험이 있는 많은 아이디어를 담아내야하는 영역이다.

일부에서는 정부 부처내에 ‘사회적경제부’ 신설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ICT 산업이 발달하려면 정보통신부를 없애야 하고, 교육이 제대로 되려면 교육부를 없애야 한다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회적 경제는 반드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스스로 연대하여 성장해 나가야 하는 주제이다. 행정적 요소가 제도와 환경조성을 넘어서서 너무 깊이 개입하면 오히려 화근으로 돌아온다. 지난 몇 년간 보여준 사회적 기업의 부실한 활동성과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최소 수준으로 국무총리 산하에 ‘사회적 경제 위원회‘를 두고 지원부처간의 갈등조정과 민간단체들과 협의를 위한 창구를 개설하는 것은 고려해 볼만 하다. 이 경우, 최종결정권을 지닌 위원장은 반드시 민간인이 맡아야 한다.

사회적 경제를 접근하는 데 가장 위험한 것은, 시장경제에서 ‘인간은 경제적 동물’로 규정하는 오류를 범하였듯이, ‘인간은 협동적이고 이타적 존재’라고 규정하는 역선택의 사고를 갖는 것이다.

사회생물학의 연구 성과와 진보적 게임이론을 통하여 인간과 사회가 줄곧 이타적이고 도덕적 방향으로 진보해 왔다는 주장은 대단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필자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는 사회적 경제의 영역을 다시 수학과 도식으로 규정하는 환원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을 규정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로 바라보면서, 현재 인류가 획득한 이성과 지혜로 각 시대에 합당한 제도를 구축하고 점차적으로 자유의 조건을 확대하여 가는 일이다.

대안적 질서, 사회적 경제

여기서 우리는 2009년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서’리는 저서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엘리노어 오스트롬의 조언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공유지를 함께 사용하는 조직에서는 우선 공유지의 조건을 제대로 살펴야 하며 현실적인 활동의 범위와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하고, 이에 따라 정해진 역할과 임무를 확실히 합의해야 한다.

이견과 다툼이 있을 시 이를 해결할 중재적 기능이 있어야 하고, 활동의 성과를 공평하게 분배하면서, 정해진 원칙을 이행하는지 확인하는 감독기능과 원칙이행을 위반할 시 이를 점증적으로 처벌하는 기능이 있어야 하며, 토론과 합의를 통하여 조직을 개선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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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노 오스트롬은 경제학의 오랜 숙제였던 ‘공유지의 비극’을 자율적인 자치거버넌스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다양한 사례분석 등을 통해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이러한 성과로 정치학자로서는 이례적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제도를 주어진 조건에 알맞게 만들어 내고 합의된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을 협동적으로 만들어 간다는 것을 함의한다.

인간사회가 존엄과 자유를 향해 끊임없이 나갈 수 있도록 현재의 정치적 사회적 장치를 끊임없이 개선해 가고, 지난 수백 년간 잘못 적용된 시장기제의 운용방식을 인간을 위한 유용한 수단과 방식으로 재구성해 가는 과정 속에, 사회적 경제의 진행적 실험이 공공과 시장의 영역들과 맞불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진화하고 성장하여 가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비민주적인 정치 상황에서는 사회적 경제가 성장할 수 없고, 수탈적 시장경제가 왕성하게 작동하는 곳에서는 사회적 경제가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닫힌 공간이 아니라 열린 사회속에서, 이기적이지도 않고 이타적이지도 않은, 열정을 가진 평범한 개인들이 ‘사회적 경제’라는 영역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실현해가고 나름대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조성된다면, 제3 섹타로서 사회적 경제는 결함투성인 시장경제를 대체해 가거나 또는 시장경제의 개선을 압박하는 경쟁적 파트너로서 자리를 잡아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래의 일자리를 만드는데 사회적 경제는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로베르토 웅거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진화적 과정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살아가는 유한적 존재이다 (Human is a definite being for indefinite process & purpose)”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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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에코페미니즘 학교 웹자보

 

2017 에코페미니즘 학교

“우리는 어떻게 행복하게 일하고 살아갈까”

 

우리는 왜 열심히 일하는데 왜 여유롭지 않을까

감정, 돌봄노동은 왜 ‘보이지 않는’ 노동일까

행복하게 일하고 살아가기 위한 대안이 있을까

‘개인’과 ‘선택’을 넘어 ‘노동’과 ‘경제’를 바라보다

 

 

 

■ 개요

일시 : 매주 목 저녁 7시(4.20 ~ 6.1 / 5월 1째 주 휴강)

장소 : 하자작업장학교 마을서당

참가비 : 4만원

주최 : 여성환경연대

문의 : 02-722-7944

 

 

■ 신청 방법

신청방법 : 신청서 작성 및 참가비 입금

신청서 작성 https://goo.gl/forms/546PE8D6G9kFMpev2

참가비 입금 KEB하나 630-004757-375 사단법인여성환경연대

신청 마감 : 입금일 기준 선착순 마감

참가비 할인 : 회원 50% 할인 (참가비 2만원) / 청소년·학생·불안정노동자 25% 할인 (참가비 3만원)

환불 기간 : 4월 17일까지

 

 

■ 2017 에코페미니즘학교 서포터즈 모집

2017년 에코페미니즘 학교를 함께 만들어갈 서포터즈를 모집합니다

 

활동시기 : 17.4~6월

활동내용 : 미니 컨퍼런스 기획 및 실행, 홍보, 언론기고 등

신청방법 : 에코페미니즘학교 신청방법과 동일

 

 

■ 강의 소개

1강. “24시간 멈추지 않는 삶, 나는 왜 불행한가?” (4월 20일)

우리는 왜 24시간 생산하고 소비할까, 왜 열심히 일하는데 삶에 여유가 없을까. 신자유주의 시대의 소비주의와 과로사회에 대해 에코페미니즘을 통해 문제제기하는 시간을 가진다.

김신효정 여성주의 연구자

 

2강. “헬조선에서 일하는 여성이 살아가는 방식” (4월 27일)

지난해 생리대 문제가 대두되며 청소년·청년 여성들이 경험하는 빈곤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2030세대는 성별임금격차·유리천장 등 여성으로써 노동환경에서 직면하는 차별과 함께 알바·비정규직 등 불안정저임금 노동체계의 억압을 이중으로 마주하고 있다. 알바노조가 문제제기한 CGV의 외모규제 등의 사례가 도처에 존재한다. 이에 여성 청년 노동자의 관점에서 청년세대가 직면한 ‘헬조선’의 현실에 대해 질문을 던져본다.

이가현 알바노조 위원장

 

3강.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5월 11일)

좋은 삶이란 어떤 삶일까? 기본소득이 좋은 삶의 실현에 기여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과 함께 한국사회에서 기본소득이 논의될 때 자주 간과되는 젠더·생태적 관점에서 기본소득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한다. 특히,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기본소득이 제시해 주는 의의를 살펴보고 임금노동과 소득이 분리된 대안적 삶의 가능성을 검토해 본다.

박이은실 여성학자 / <여/성이론> 편집주간

 

4강. “보이지 않는 노동” (5월 18일)

돌봄노동·감정노동은 사회에서 주로 여성에게 부여된다. 사회는 여성들이 수행하는 ‘그림자 노동’을 통해서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왜 돌봄·감정 노동은 젠더화되었는가를 살펴봄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왜 여성이 종사하는 노동은 ‘그림자’ 노동이 되는가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돌봄노동과 감정노동 등 젠더화되고 사회에서 비가시화된 노동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사회적 돌봄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5강.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 (5월 25일)

현재 우리 시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되고 있고, 때로 노동은 억압·착취의 굴레로 여겨지기도 한다. 소진·착취 노동이 아닌, 공동체·자급·협업·주체성 등 상생의 가치를 담은 ‘좋은’ 노동은 가능할까? 비영리/대안경제 영역에서의 사례와 함께, ‘좋은’ 노동의 가능성과 그 모습에 대해 함께 상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영롱 사회과학 연구자

 

6강 “대안은 있다, 행복하게 일하고 살아가기” (6월 1일)

미니 컨퍼런스

 

 

* 이 행사는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진행됩니다.

금, 2017/03/2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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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지난 1월 초 한 30대 남자로부터 친형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풀어달라는 제보를 받았다. 제보자는 형이 죽기 몇 시간 전 한국으로 보냈다는 노트북과 외장하드, 그리고 수십여 장의 송금 영수증 등을 갖고 왔다. 제보자는 “이 자료들은 형이 진실을 파헤쳐 달라며 죽기 몇 시간 전 인편으로 한국에 부친 것”이라고 말했다.

형이 동생에게 남긴 자료는 방대했다. 모두 620기가바이트 분량. 각종 전화통화 녹음과 동영상, 회사 대외비 자료가 담겨 있었다.

제보자의 형이 일했던 회사는 오픈 블루. 공교롭게도 지난해 뉴스타파가 보도한 ‘조세도피처의 한국인들’에서 등장했던 회사 가운데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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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도피처에 페이퍼 컴퍼니 ‘오픈블루’를 만든 설렁탕집 류순열 사장. 류 사장은 당시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안 난다. 그냥 동생들과 놀러 가서 어떤 서류에 사인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죽은 허재원 씨가 남긴 자료에는 설렁탕집 사장이 왜 조세도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웠고, 이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어떤 사업을 벌였는지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

오픈블루라는 페이퍼 컴퍼니는 허 씨의 죽음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 비밀을 풀기 위해 취재진은 인도네시아로 향했다.

수도 자카르타의 한 고층 아파트. 이 아파트 29층에 살던 허 씨는 지난해 11월 아파트 옆 공사장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시신은 다리와 골반이 비틀어진 채 엎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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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씨의 사망진단서를 발급한 의사는 사망 원인을 자세히 기억하지 못했다. 당시 사고 현장을 조사한 현지 경찰은 허 씨의 죽음이 자살이라고 단정했다.

경찰은 허 씨의 유서가 발견됐고, 이전에도 허 씨가 자살소동을 벌인 적이 있다며 타살의 가능성을 일축했다. 허 씨는 죽기 수개월 전부터 심각한 재정난을 겪었고, 사기 혐의로 현지 경찰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이처럼 극도의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게 현지 경찰의 분석이다.

그러나 허 씨의 동생은 느닷없는 형의 죽음에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사실 저는 형님을 알아볼 수 없을까 하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형님의 시신이 깨끗했고, 형님이 난간에서 떨어졌으면 지문검식을 해야 되는데, 지문검식도 이루어지지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형이 사망한 당시 CCTV가 작동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허 씨 동생의 말이다.

제가 현장에 도착을 했을 때가 형님 사건이 나시고 이틀 뒤였는데 현장에 갔을 때에는 CCTV가 작동하고 있었어요. 아파트 19층, 29층에서부터 거기까지 다 작동을 하고 있었는데 유독 저희 형님이 사건 당하시기 하루 전부터 사고를 당하신 그다음날까지 CCTV가 작동을 하지 않았단 말이지요.

취재진은 허 씨가 생전에 살던 아파트를 찾았다. 하지만 사건 현장에는 접근할 수 없었다. 계단의 철문은 굳게 닫혀 있고, 건물 관리 책임자는 경찰의 허가 없이 촬영을 허용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뿐 아니다. 아파트 경비원들은 취재진이 이동하는 곳마다 따라붙으며 촬영을 방해했다.

그때 취재진의 카메라에 이상한 점이 포착됐다.

아파트 3층에 검은색 대리석으로 마감한 테라스. 이 테라스 아래는 지하 주차장으로 연결된 통로가 있다. 이를 감안하면 테라스의 폭은 최소 3미터. 그런데 허 씨의 시신은 이 테라스외벽으로부터 다시 3, 4미터 정도 떨어진 공사장 바닥에서 발견됐다. 즉 허씨가 낙하하면서 도합 6, 7미터 정도를 수평 이동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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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서울대 의대 법의학 교수는 “추락사의 경우 대개 벽에서 2~3미터 내외에 시신이 위치한다”며 “일반인이 달려가는 반동을 이용해 뛰어 내려도 6미터를 이동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허씨가 떨어질 때 아파트 3층 테라스 벽에 부딪혀 튕겨 나갔을 경우라면 6미터 정도 이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사건을 조사했던 인도네시아 경찰은 테라스 외벽에 시신이 부딪힌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1970년대 초 미국에서는 유명한 법의학 실험이 있었다. 고층 아파트 발코니에서 추락한 여인이 스스로 떨어졌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 의해 떠밀려 추락했는지를 규명하는 실험이었다. 법의학자들은 여인의 몸무게와 똑같은 인형을 제작해 반복 실험했다. 발을 헛디뎠을 때와 스스로 몸을 던졌을 때, 떠밀려 추락했을 때,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눠 실험했다. 발을 헛디뎠을 때 인형은 3.2미터, 뛰어내렸을 때는 4.3미터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시신이 위치했던 5미터에는 크게 못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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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실험결과를 바탕으로 경찰은 남편이 10만 달러의 보험금을 타기 위해 아내를 난간 밖으로 밀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아이리스 시거 사건이다.

아이리스 시거 사건의 실험결과에 비춰보면 허 씨의 죽음은 자살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허 씨의 시신은 아파트에서 6,7미터나 떨어져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허 씨의 죽음만큼이나 이상한 의문의 추락 사망 사고는 또 있었다.

허재원 씨가 죽은 5일 뒤 자카르타에 있는 글로라 붕까르노 경기장에서 또 한 명의 한국인이 죽은 채 발견됐다. 이 남자는 바로 죽은 허재원 씨와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던 동료였다. 경찰은 4층 높이의 경기장 옥상에서 한국인 김 모 씨가 투신자살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부검은 하지 않았다. 영안실에서 김 씨의 시신을 목격했다는 한 교민은 김 씨의 온몸에 멍자국이 있었다고 말했다.

붕까르노 경기장은 내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안전 사고 예방을 위해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고, 밤에는 아예 출입이 차단된다. 그런데 경찰은 김 씨가 혼자 몰래 경기장에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단순 자살 사건으로 결론 내렸다.

이상하게도 김 씨의 유가족 역시 진실 규명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사인 조사를 위해 부검을 맡기기는커녕 김 씨의 시신을 서둘러 화장했다. 뉴스타파의 취재도 거부했다.

취재진이 김 씨의 사망 당시의 사진을 입수해 확인해보니 김 씨의 턱 밑에 멍 자국이 보였다. 법의학 전문가는 턱 밑의 상처는 추락으로 인해 발생한 게 아니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김씨의 죽은 모습이다. 사진 속 김씨의 양 손은 가슴에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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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교수는 “추락사일 경우 대부분 즉사를 하는데 이 경우 온몸에 힘이 풀린다”며 “죽기 전 힘을 줘 손을 모은 자세는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한 장의 사진만으로는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인도네시아 경찰처럼 쉽게 자살로 단정하기도 힘들다. 분명한 것은 김 씨가 죽기 전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는 점이다. 김씨는 허씨가 죽은 뒤 한국에 있는 허 씨의 동생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녹음을 부탁했다.

그가 남긴 녹음은 자신이 곧 어딘가로 옮겨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부검을 통해 허 씨가 자살했는지 아니면 타살됐는지 확인하고자 했으나 그럴 상황이 안됐고,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를 보면 자신이 허 씨를 죽였다는 것으로 결론 나고 있어 억울하다고 했다.

김 씨가 숨지기 전, 김 씨를 직접 만났던 허 씨의 동생은 실제로 김 씨가 인도네시아 현지인들로부터 반 감금상태에서 감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허 씨의 동생은 눈시울이 벌개진 김 씨로부터 “나는 어디론가 옮겨질 것 같다. 그리고 죽음을 당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같은 유령회사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2명이 불과 5일 간격으로 사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도네시아 경찰의 말대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까?

취재진은 허씨가 남긴 녹음에서 한 가지 단서를 찾았다.

허 씨는 죽기 하루 전 PT CKA의 실질적 오너는 자신이며, 모든 권한은 김 모 씨에게 넘긴다고 했다. 허재원 씨가 죽기 하루 전 육성 녹음을 통해 자신의 소유라고 밝힌 PT CKA의 광산은 자카르타 서쪽의 한 석회광산이다. PT CKA는 이 광산의 지분 51%를 소유한 페이퍼 컴퍼니다.

PT CKA가 소유한 석회광산의 추정 매장량은 무려 1억7천만 톤. 국내 한 회계법인은 2020년 이후 이 광산에서 매년 300억 원이 넘는 영업이익이 날 것으로 평가했다. 한마디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말이다.

허 씨는 육성 녹음을 통해 광산의 명목상 주주를 현지인으로 만들어놨지만, 실소유주는 자신이고, 그 소유권을 김 씨에게 넘긴다고 말했다. 실제로 페이퍼 컴퍼니 PT CKA의 주주 명부를 살펴보니 허 씨의 생전 증언대로 주주 4명 중 3명이 허 씨 회사의 현지 직원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외국인들의 광산 소유를 제한하는 인도네시아 법망을 피하기 위해 직원들의 이름을 빌려 투자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허 씨로부터 소유권을 이전받은 김 씨도 허 씨가 사망한 지 5일 만에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됐다.

매장량 1억7천만 톤의 석회광산은 대체 누구에게 넘어간 걸까?

취재진은 인도네시아에서 자신이 석회광산의 소유권을 넘겨받았다고 주장하는 한국인을 만날 수 있었다. 리마스 퉁갈이라는 회사의 사업 파트너다. 그는 자신이 소속된 리마스 퉁갈이 파드마 등 허 씨 회사 직원 3명이 갖고 있던 지분을 통째로 넘겨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진술은 허 씨가 죽기 하루 전 남겨둔 육성녹음과는 상반된다. 죽은 허 씨가 실제 소유주는 자신이라며 받아놓은 사실 확인서의 내용과도 배치된다. 그러나 광산의 실소유주로 보이는 허 씨와 김 씨가 모두 죽은 뒤여서 이 광산이 넘어가는 걸 법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어 보인다.

허 씨와 김 씨의 죽음으로부터 누가 부당한 수혜를 봤는지 확정할 증거는 아직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조단위의 가치를 지녔다는 석회광산을, 유령회사를 통해 소유하면서 일확천금을 노렸던 사람들은 허망하게 죽었다는 사실이다.

수, 2017/03/29-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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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두 명의 한국인들은 석탄을 수입해 한전 발전 자회사들에게 납품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정상적인 무역 거래는 아니었다. 서류를 조작하고, 매출을 늘리기 위해 석탄을 높은 가격에 사서 한전에 싸게 납품하는 일이 태반이었다. 이들은 왜 뻔히 손해가 날 장사를 한 걸까.

뉴스타파는 취재과정에서 이들의 사업 이면에 검은 커넥션이 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추락사한 허재원 씨는 숨지기 전 “모든 죄는 이상엽과 허재원에게 있다”는 육성 녹음을 남겼다. 허 씨가 죽은 뒤 닷새 만에 숨진 채 발견된 김 모 씨 역시 “인도네시아 사건은 모두 한국에 있는 이상엽에 의해 초래됐다”는 음성 녹음을 남겼다.

이 녹음에 등장하는 이상엽은 조세도피처인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된 페이퍼 컴퍼니 오픈블루의 실소유주 가운데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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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은 페이퍼 컴퍼니 오픈블루 명의로 석탄 무역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지난 2009년 한국전력의 발전 자회사 입찰서류에는 오픈블루의 대표가 안성구로 기재되어 있다. 안성구 씨는 전 새누리당 부산시당 불교대책위원장. 안 씨는 “자신이 돈을 투자한 만큼 입찰할 때 자신의 이름을 넣은 것일 뿐 오픈블루에 관여한 것은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안 씨는 6,000여만 원을 숨진 허재원 씨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송금받았다. 안 씨는 돈을 송금받은 사실은 인정했지만 단순한 돈심부름이었다고 말했다. 안 씨는 또 딸 유학 비용으로 2만 달러를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 돈은 자신이 투자해 못 받은 3억 원의 일부라고 해명했다.

한국전력의 발전 자회사들이 조세도피처의 페이퍼 컴퍼니와 거래해 탈세를 방조한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 2014년부터 2년 동안 한전 자회사들이 오픈블루 등과 거래한 규모는 4,500만 달러, 우리 돈 500억 원이 넘는다. 오픈블루가 지난 2010년부터 한전 자회사들과 거래해온 점을 감안하면 총 거래 규모는 1천 억 원 대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석탄 무역 실적이 전혀 없는 페이퍼 컴퍼니가 한전 자회사와 고정적으로 거래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뉴스타파는 한전 자회사의 한 간부가 허재원 씨로부터 거액의 뒷돈을 받은 정황을 포착했다. 허 씨가 죽기 전 동생에게 전달한 기록에는 그동안 한국과 미국, 일본 등지로 역송금한 자금 내역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중에는 2014년 5월 환치기상 수마니를 통해 한전 자회사의 한 간부에게 700만 원을 송금한 기록도 나온다. 돈을 받은 사람은 당시 서부발전의 곽명문 팀장. 곽 팀장은 2014년 당시 인도네시아 석탄 수입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허씨가 곽 팀장에게 돈을 건넸다는 기록은 또 있다. 2015년 6월 곽 팀장의 아들 대학 입학금 명목으로 1억4600만 루피아, 우리 돈 천 2백여만 원이 지출됐다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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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팀장은 뉴스타파를 직접 찾아와 아들 유학경비로 사용한 은행 통장 사본을 내밀며 자신은 부정한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통장의 입출금 내역을 따져보면 곽 팀장의 해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허씨가 돈을 보낸 2015년 6월 이후 곽 팀장 아들의 통장에는 인도네시아에서 현금을 인출한 기록이 거의 없었다. 2월부터 5월까지 일주일에 한 번꼴로 수백만 루피아를 현금으로 인출해 사용한 것과 크게 대조된다. 곽 팀장의 아들이 누군가로부터 거액의 현금을 받지 않았다면 5개월 동안 현금을 인출하지 않고 외국에서 유학 생활한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

실제로 곽 팀장은 숨진 허 씨와 무척 친밀한 관계였다. 그는 허 씨에게 아들의 건강을 챙겨봐달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숨진 허재원 씨의 역송금 자료에는 뉴스전문채널 YTN의 임원도 있었다. 허 씨는 2014년 10월에 3천만 원, 2015년 9월 천만 원 등 모두 4천만 원을 환치기상 진광순을 통해 이홍렬에게 보냈다고 적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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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렬 씨는 YTN의 상무. 보도국장과 보도본부장을 역임하고 현재 경영총괄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YTN의 실세다.

취재진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 오픈블루의 사업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오픈블루를 모르며 돈을 받을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상엽 씨 등은 잘 알고 있으며 지난 2014년말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이상엽 등과 함께 코스피 상장기업 고려포리머의 주식 3자 배정에 차명으로 투자한 사실을 털어놨다.

산업용 포장재 업체인 고려포리머는 2015년 1월 이상엽 등에게 주식 3자 배정을 했고, 두 달 뒤 한전 자회사로부터 석탄 수주계약을 따냈다고 공시했다. 이후에도 이상엽 씨는 자신이 실소유주로 있던 오픈블루를 제쳐놓고 고려포리머에 석탄 납품 실적을 몰아줬다. 고려포리머의 주가가 급등하면 그만큼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고, 이 시세차익으로 무역에서 입은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죽은 허재원 씨의 동생은 “이홍렬 상무를 서너 차례 만나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으며, 이상엽 씨는 건배를 하면서 돈을 많이 벌자는 식으로 ‘고상고상’을 외쳤다”고 전했다. ‘고상고상’은 ‘고려포리머 주식의 상한가’를 줄인 말이다.

이 상무는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허재원 씨와는 그 어떤 거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상무는 허재원 씨가 죽기 전 남긴 메모지에 등장한다. 허 씨가 죽기 전 마지막 해야 할 일을 정리하면서 그의 이름을 떠올릴 정도로 둘의 관계는 깊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당인, 한전 자회사 간부, 언론사 임원, 그리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일어난 의문의 죽음. 이들의 관계와 사업 이면에 감춰졌던 검은 커넥션의 전모는 조만간 관계 당국의 수사를 통해 밝혀질 전망이다.

수, 2017/03/29-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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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뉴스타파는 조세도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오픈블루’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함께 세웠던 허재원, 이상엽, 유순열씨의 사례를 보도한 적이 있다. 당시 이상엽, 유순열 씨는 무역업을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세웠다가 사업이 실패하면서 손해를 보고 페이퍼 컴퍼니를 폐업했다고 해명했지만, 뉴스타파 취재결과 이들 세 사람은 지난 2009년부터 인도네시아와 한국을 무대로 유연탄 무역 사업과 이를 매개로 한 투자사업을 계속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유연탄 무역을 위해 인도네시아에 세웠던 회사는 400억 원이 넘는 손실만을 남겼다. 그런데 허재원 씨와 직원 김 모 씨는 지난해 11월 닷새 만에 연이어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의문사했다. 과연 이 같은 손실은 사업 실패 때문이었을까?

석탄무역 손실 400억원은 어디로? 1. 회사 인수와 주가부양

인도네시아 회사에서 고 허재원 씨를 도와 자금 정리업무를 맡았던 전 직원 A 씨는 한국으로 현금으로만 170억 원 이상이 보내졌고, 이 돈은 기업 인수나 유상증자 자금으로 활용됐다고 말했다. 석탄 무역이나 광산개발을 위해 인도네시아 회사로 투자됐던 자금이 용도와는 다르게 다시 한국으로 보내졌다는 의미다. 이 증언을 뒷받침하듯 이상엽 씨는 2015년 7월 코스닥 등록기업인 아큐픽스에 15억 원을 투자하면서 최대 주주가 됐고, 이후 4차례나 더 증자에 참여하면서 지분을 늘린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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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의 증자시기와 숨진 허재원씨가 국내로 돈을 보낸 날짜를 비교해 보면 최소 3차례에서 시기와 액수가 겹쳤다. 2015년 7월 21일 최초 유상증자 15억 원을 납입하기 2주 전 150만 달러, 약 17억 원이 국내로 보내졌다. 10월 5일 유상증자 6억 원을 납입할 때도 이틀 전에 50만 달러, 6억 원이 들어왔다. 12월 7일 10억원의 유상증자에 참여할 때는 6일 뒤 95만 달러 11억 여 원이 한국으로 보내졌다. 금융당국의 추적을 피해 허재원 씨 등이 거액을 들고 직접 들어왔고, 국내에서 암달러상을 통해 현금화된 것으로 파악됐다. 고 허재원 씨가 숨지기 전에 남긴 자료에는 수표 묶음 사진들이 남아있었고, 허 씨의 동생도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당시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IT기업인 아큐픽스는 이상엽 씨가 최대주주가 된 뒤에는 주력사업이 자원무역으로 바뀌었고, 잇따라 유연탄 공급 체결 공시도 이어졌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비싸게 사서 한국에 싸게 파는 이상한 무역이었다. 이에 대해 인도네시아 회사의 직원으로 있다가 지난해 11월 허재원 씨에 이어 의문사한 김 모 씨는 처음부터 이상엽 씨의 주도로 아큐픽스의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 이 같은 이상한 무역을 감수했다는 통화녹음을 남겼다. 유연탄 무역거래를 통해 수익을 남기려 했던 것보다는 주가를 부양시키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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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무역 손실 400억 원은 어디로? 2. 투기와 주가조작 활용?

심지어 투기 목적으로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거액이 투입된 정황도 발견됐다. 고 허재원 씨가 남긴 역송금 장부에는 2015년 5월 8일 ‘U관련’이라는 명목으로 55만 달러 6억 원이 국내로 보내졌다. 인도네시아 회사의 전 직원이었던 A 모 씨는 투자를 위해 이 돈이 보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15년 1월에는 상장사인 고려포리머 유상증자에 유순열 씨 이름으로 20억 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고 허재원 씨는 이른바 ‘작전’을 통해 당시 900원도 안되는 주가를 2, 3만 원대로 올리려다 실패했다는 녹음을 남겨 이들의 허황된 투기 행태를 증언하기도 했다.

석탄무역 손실 400억 원은 어디로? 3. 호화 사치, 유흥 소비

기업인수와 투기뿐 아니라 사치 호화생활과 유흥에도 거액이 탕진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엽 씨 회사의 전 직원 B 씨는 이상엽, 허재원 씨 등이 한 달에 1억원 이상씩 유흥업소에서 써왔고, 최소 10억 원이 넘는 돈이 유흥으로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이들이 주로 다녔던 유흥업소의 직원은 허재원 씨가 이 거액의 술값을 인도네시아에서 보내줬다고 뉴스타파 취재진에 털어놨다. 취재결과 허 씨는 인도네시아 현지 환치기상을 통해 술값을 결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허씨가 인도네시아에서 현지 환치기상에게 돈을 보내면 환치기상이 관리하는 국내 계좌에서 돈이 입금되는 역송금 수법을 이용한 것이다. 사업상 지출로 해놓고 실상은 유흥과 사치 소비에 돈을 써왔던 사실을 감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과 거래했던 보석상 주인도 이 같은 방법으로 대금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들은 서울 청담동 명품점들과 유명 백화점에서 명품과 보석 등을 한 번에 수천만 원어치 씩 사들인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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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무역 손실 400억 원은 어디로? 4. 투자자 모집, 피해 양산

이상엽 , 유순열 씨 등은 롤스로이스나 밴틀리 등 고가의 자동차를 타고 돈 많은 사업가 행세를 하면서 투자자들을 계속 끌어모은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 강남의 한 유명 학원 설립자는 이들에게 수 십억 원을 빌려줬다가 못 받은 것으로 나타났고, 한 의류업체 대표도 이들의 권유로 거액을 건넸다가 큰 손실을 봤다며 기자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위와 같은 취재 내용에 대해 해명과 반론을 듣기위해 이상엽, 유순열 씨를 지속적으로 접촉했지만 만날 수 없었다. 이런 와중에 이상엽 씨가 관계기관에 불려와 조사를 받는 사실을 파악하고 그를 만나려 했지만, 부하 직원인 듯한 사람들이 완력으로 취재를 방해하면서 이 씨의 해명을 듣지 못했다. 사실상 해명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아큐픽스에는 지난해 말 새로운 투자자들이 참여하면서 이상엽 씨는 대주주 자격을 잃었고 회사 이름도 바뀌었다. 회사 측은 전 대주주의 사업행태는 회사와는 별개이며, 만약 전 대주주의 행동으로 인해 회사에 손실이 입혀진 부분이 확인된다면 거기에 맞는 법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뉴스타파의 보도로 국세청과 금감원 등이 수사에 나섰지만, 진척이 지지부진하다가 최근 허재원 씨가 남긴 비자금 장부 등이 확보되면서 수사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관계기관은 지난달 말 압수수색을 마쳤고, 이 씨 등에 대해 출국을 금지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으며 조만간 수사 결과와 전모를 밝힐 예정이다. 하지만 이들의 투기적 사업행태는 주식시장에서 고스란히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로 이어졌고, 비뚤어진 꾀임에 넘어가 거액을 건넨 투자자들의 감춰진 피해 규모도 수백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취재:현덕수
촬영:최형석
편집: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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