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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하경 변호사, 수성구의 기타리스트가 대한문의 변호사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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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하경 변호사, 수성구의 기타리스트가 대한문의 변호사가 되기까지

익명 (미확인) | 목, 2016/12/29- 16:52

타이틀

민변 자원활동가 작성

공익인권변론센터 김시은, 박지아, 서영우

국제팀 양진희

출판소통팀 이재임

언론연대팀 정원영

지난 밤 너무 기대한 탓일까요, 늦잠을 잔 나머지 서둘러서 서초동의 휴먼사무실로 향했습니다. 다행히 세이프. 여유롭게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준비한 인터뷰 질문지를 눈으로 훑어보았습니다. 민변 자원봉사자들이 준비한 질문들은 대개 ‘현장’과 ‘노동인권’에 대한 것들입니다. 미리 인터넷으로 검색해 찾아본 류하경 변호사는 ‘현장에 익숙한 노동변호사’로 보였습니다. 구글 검색창에 류.하.경.이라는 세 글자를 적어 넣으면 ‘삼성건물 못 들어가는 변호사’라는 기사가 가장 먼저 나옵니다. 삼성건물 경비원마저 익히 알고 있을 정도로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연대하는 분이라고요. 인터뷰가 진행된 날, 류하경 변호사는 ‘대한문 집회’ 무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민변 자원봉사자들은 류하경 변호사가 ‘현장을 중요하게 여기는 노동변호사’가 되기까지 어떤 고민과 실천을 해왔는지 엿보고 왔습니다.

류하경(이하 류) : 뭐 저 같은 사람을 인터뷰하러 먼 데까지(웃음).

박지아(이하 박) : 변호사님, 자신을 한 마디로 소개하신다면 어떻게 하실 수 있을까요?

류 : 한 마디가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길게 쓰라고 한다면 밤새도록 쓸 수 있는데. 저는 강아지를 좋아하고, 기타 치는 걸 좋아하고, 자전거 타는 것도 좋아하고, 운동 좋아하고, 그런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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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 현장에서도 기타를 많이 치지 않으셨어요?

류 : 현장에서도 많이 치죠. 내가 이러려고 기타를 배웠나. (웃음) 기타를 오래 쳤어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치고 있어요. 저는 홍대에서 밴드하려고 신촌-홍대에 있는 대학 가려고 공부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올라오니까 나쁜 선배들이 뭔가 주면서 ‘이거 한 번 읽어볼래?’라고 하고, ‘수요일에 뭐 해?’라고 물어서 ‘별거 없는데요’ 그러면 ‘그럼 정문 앞에서 봐.’ 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정문 앞으로 나가면 투쟁하고 있고.(웃음) 그래서 밴드의 꿈을 접고 이렇게 살고 있죠. 지금은 사무실에서 일렉 기타를 쳐요. (류하경 변호사가 기타를 꺼내 들고 나옴. 일동 함성)

밴드를 꿈꾸던 학생, 학생운동의 현장으로

박 : 학부 때 ‘나쁜’ 선배들이 이리저리 데려갔다고 하셨는데, 그걸 계기로 노동운동에 관심이 생기신 건가요?

류 : 그렇죠. 저는 1학년 때부터 학생운동을 했어요. 집회의 기초를 1학년 때 마스터했죠. 2학년 때는 학교 안에만 있기보다는 진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같이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는 책은 많이 보잖아요. 하지만 책은 종이에만 머무는 거니까 실제로 빈민, 농민, 노동자를 느끼고 싶더군요. 그래서 2학년 때 일산의 아파트촌에서 철거촌 투쟁을 하면서 철거민들과 6개월 정도 살았죠. 그리고 군대 가기 전까지 학회 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정치경제학 학술 동아리.(웃음) 공부도 하고 술도 마시는… 그래서 학점은 이제…(웃음) 저는 늘 그렇게 이야기하거든요. 우리 학교 등록금이 비싼 이유는 정치경제학 동아리를 하라고 그런 거다. 정치경제학 공부를 하지 않고 졸업한다면 대학 등록금비를 헛되게 쓴 것이라는 헛소리를 남기면서. (웃음) 제 대학생활의 절반은 정치경제학 학회였고 절반은 투쟁 현장이었고. 노동조합에서 학생들과 연대하는 활동들을 많이 했어요.

박 : 청소노동자 조합 운동을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류 : 군대 제대하고 복학을 했는데, 학생 사회가 너무 경직되어 있는 거예요. 대학생 운동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학생 운동을 하는 친구들은 공부를 우선으로 해요. 공부도 좋지만 현장 투쟁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진짜 운동이거든요. ‘다 불태워서 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견학 하듯 투쟁 현장 나갔다오길 반복하고, 이렇게 일시적 단편적인 운동만 계속 이어지구요. 그런데 현장 경험이 일천하면 책을 읽어도 한계에 빨리 봉착하게 돼요. 우선 상상력이 그만큼 낮아지고, 똑같은 책을 읽더라도 노동자로서 살아본 사람이 읽는 거랑 대학 와서 마르크스 서적만 보는 사람이 읽는 거랑 그 책의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지요. 또 책을 읽었을 때의 변화도 달라요. 실제로 땀 흘려서 노동하고 내 힘으로 투쟁해서 쟁취해본 사람이 한 권의 책을 읽었을 때 보여줄 수 있는 변화의 폭과 양은, 계속 책만 들고 팠던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삶의 변화와는 천지차이예요.

내가 주체가 되어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가는 운동에 대한 목마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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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학생운동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내 인생의 경험을 쌓기 위한 운동(이었던 것 같아요). 학생운동하면서도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이런 생각을 은연중에 하거든요. 특히나 학생 운동을 하는 시기에는 그런 욕망이 커요. ‘이 운동을 하면서 내가 성장해야지’, ‘내가 여기 가서 뭘 배우고 나중에 좋은 사람이 되어서 사회에 기여를 해야지’, ‘직접 가서 눈으로 목격해야지’와 같이. 매번 학생 운동의 (대상)이 타자화되는 것 같았어요. 우리가 주체가 되는 운동은 등록금 투쟁 밖에 없는데, 매번 그것만 할 수는 없잖아요. 사회적인 연대 투쟁이란 역사와 사회를 크게 바꿀 수 있는 운동이잖아요. 당사자 운동으로서의 등록금 투쟁이나 얄팍한 연대 활동 말고, 우리가 주체가 되어서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게 없을까하는 그런 목마름이 있었어요.

일상과 주변으로 파고들어간 투쟁 청소노동자 어머니, 아버지와 만나다

제대해서 보니까 학교에 비정규직 문제가 이슈가 됐죠. 그때가 2007년이었는데 이랜드 투쟁을 비롯한 비정규직 투쟁은 2000년대 초반부터 계속 있었잖아요. 운동을 운동답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교 안의 경비 노동자와 청소 노동자분들이야 말로 우리 바로 옆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인데 멀리까지 가서 연대할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제 생각에는 우리 곁에서 투명인간처럼 지나가는 어머니들, 아버님들이 열악한 처우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인데, 아직 조직화도 안 되어 있고 최저임금도 못 받고 계셨죠. 이런 분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연대를 해야 하는 사람들은 같은 학교에서 다니는 학생들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분들이 비정규직 된 지가 80년대 후반부터라고 하더군요. 그러면 그동안 ‘20년이 지났는데 대학생들이 뭐하고 있었나?’ 화가 나더라고요. 매일 ‘노동해방, 신자유주의 철폐’와 같은 거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막상 바로 옆에서 청소하시는 어머니들, 학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하기 위해 도와주시는 가족과 같은 분들의 처우에 대해서는 왜 한 번도 학생들이 문제제기 못했을까, 이분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활동들을 왜 다른 분들이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활동을 시작했죠. 거의 수업을 안 들어갔어요. (웃음)

박 : 들어갈 시간이 없었겠네요.

투명인간교내 청소 노동자와의 마주침, 그리고 단 하나의 목표를 세우다.

류 : 학교에 청소노동자 휴게실이 있더라고요. 올라가는 계단 아래를 보면 그 옆에 벽이 있고 문이 하나 달려있죠? 우리는 그 문을 창고라고 생각하잖아요. 그 문을 열면 그 안에 사람이 앉아있어요. 정말 좁아요. 그 문을 열었을 때 무척 충격을 받았어요.

제가 한 번 찾아가겠다고 청소하시는 어머니의 전화번호를 물어봤어요. 그런데 그분들은 학생들이 말 걸면 처음에는 ‘이렇게’(손을 내저었다) 하셔요. 현장 소장이라는 사람이 아주머니들에게는 전두환이나 아이히만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학생들과의 접촉이 발각되면 혼납니다. 미리 싹을 잘라놓는 작업이 있었죠. 그럴 땐 시간이 필요하죠. 인사도 계속하고 음료수도 먼저 갖다 드리고. 그렇게 마음이 열고 난 뒤 찾아갔는데 ‘그 문’이 있었어요. 문을 열어주시는데 어머니가 앉아 계시는 거예요. 들어가니 작지만 예쁘게 꾸며놓으셨어요. 손주들 사진 붙어 있고. 본인 방처럼, 소녀 방처럼 꾸며 놓으셨더라고요. 그걸 보고 대단히 놀랐어요. 누군가의 어머니고 할머니고 부인이지. 이런 말을 할 필요도 없지만, 우리 어머니랑 다른 게 없는 분 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분들을 투명인간처럼 지나쳐 보내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분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거잖아요. 조그만 공간에서 이렇게 생활하시는 거면 ‘임금 수준도 형편없고 복리 후생도 말도 안 되겠다.’ 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죠. 호기심이라기보다는 열정이 많이 생기더군요. 처음부터 노동조합 조직과 같은 계획을 세우고 시작한건 아니에요. 하지만 졸업하기 전에는, 정말 이분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고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가장 밑바닥에 있으니까. 학생들이 일종의 교두보 역할을 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업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 나는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이분들의 삶이 변화된 모습을 내가 봐야겠어.’ 라는 마음으로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진짜 민중을 만나는 시간 청소노동자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울고 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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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건물마다 다 돌아다녔는데 하나같이 사정이 열악했어요. 제가 연세대학교를 나왔는데 건물도 엄청 많고 캠퍼스도 되게 크잖아요. 그래서 제가 스쿠터를 샀어요. 타고 다니면서 점심을 3번, 4번씩 먹었어요. 왜냐면 어머니들이 마음을 열려면 밥을 같이 먹어야 해요. 사람은 옳은 사람이나 옳은 이야기를 안 들어요.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를 듣지. 가르치려고 하면 안 되고 일단 친해져야 해요. 목적의식을 갖고 친해져서도 안 되고. 그냥 이분들과 정말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어요. 운동을 해보니 마음을 얻고, 친구가 되고, 비를 같이 맞고 해야 서로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거예요.

저도 많이 울었어요. 만나서 이야기 나누면 대부분 우셔요. 연세가 60대, 70대이신데 한국전쟁 때 태어나셔서 힘든 역사를 거쳐 온 분들이에요. 학생 운동하는 친구들은 자신들이 기억하는 ‘투쟁의 역사’ 같은 역사가 진보적인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 그 역사도 엘리트의 역사에요. 우리도 사실 오만했지요. 학생운동사, 노동운동사의 노동조합이 있는 ‘제조업-대공장’의 남성 노동자는 형편이 그나마 나은 거지요. 그리고 한국 현대사, 정치사, 4·19, 87혁명과 같이 큰 덩어리 중심으로 공부했을 뿐이지, 민중사에 대해서는 굉장히 무지해요. 그런데 청소노동자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자체가 민중사예요. 이분들은 6·25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중산층이 되지 못했어요. 대개는 계속 빈민으로 살아오신 분입니다.

어머니들 우리 이제 큰 물고기가 됩시다” – 청소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조직을 돕다

그 분들의 이야기를 6, 7개월 동안 들었어요. 그런데 그분들은 서로서로는 몰라요. 건물이 다 분리되어 있고, 청소 하시는 동안에는 다른 건물로 가는 게 금지되어 있어요. 그리고 다른 건물 아주머니랑 퇴근할 때도 말하면 안 되고 그게 적발되면 징계를 받게 돼있어요. 현장 소장이 어머님들께 욕도 하고, 성희롱, 성추행, 성상납 등 별 일이 다 있어요. 현장소장이 자기 집, 교회 와서 청소하라고 하면 어머님들이 다 몰려가서 청소해야 했어요. 어머님들 사이에서는 심지어 자기들끼리 싸워요. 서로 단결이 안 되니까 소장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것만 있지, 소장을 상대로 싸우는 건 없어요. 대한민국의 축소판이에요. 그래서 노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설문지를 통해 알아보니 근로기준법 위반, 최저임금법 위반, 폭행, 모욕, 성희롱, 성추행 등이 빈번했어요. 이제 서서히 노동조합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제안했어요. ‘우리는 소장과 1대1로 상대하고 있다. 우리는 소장한테 질 수밖에 없다. 온갖 부당한 행위도 바꿀 수 없다’라고요. 그리고 또 설명을 드렸지요. ‘조그만 물고기가 있는데, 자기보다 엄청 큰 물고기가 나타나면 물고기 모양으로 대형을 짭니다. 그럼 큰 물고기가 겁을 먹고 작은 물고기를 단 한 마리도 못 건드린다.’ 그게 바로 노동조합이라고 말이죠.

오랜 시간 눌려있던 용수철이 튀어 오르다. –노조가 결성되고 청소 노동자가 주체로 거듭나다.

이런 설명의 시간을 가지고, 청소노동자 어머니들을 한 분씩 모셨어요. 건물마다 프락치들을 다 심어 놨는데, 그런 감시의 눈을 피해서 조용히 모임을 시작했죠. 집중적으로 노동조합을 설명 드렸더니 어머님들이 열의가 넘치셨어요. 그동안 눌려있던 용수철이었던 겁니다. 누가 건드려준 사람이 없었던 거지요. 왜냐면 근로기준법이 뭔지, 최저임금이 올해 얼마인지도 모르고, 소장이 ‘툭툭’ 치는 건 넘어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셨던 분들이니까요. 그렇게 간담회를 가질 때마다 어머님들이 성장하시는 느낌이 들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어머님들이 스스로 더 높은 차원의 투쟁을 기획하게 되셨어요. 그때 민주노총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08년 2월,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부 연세대학교 지회 노동조합 출범식을 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습니다. 노동조합은 숨기고 쉬쉬하며 하면 절대로 안 되거든요. 그러면 우리를 더 무시해요.

총학생회와 단과대 학생회장단 명의로 노동조합 출범식 초청장을 교수들에게 보냈어요. 연세대의 한 주체가 (노동조합) 출범식을 한다고 알린 것이죠. 출범식 전날 어머님들이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들을 모아 플래카드로 만들어서 연세대 정문부터 본관까지 걸었어요. 다음날 출범식을 크게 했죠. 그렇게 연세대를 시작으로 홍익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서강대학교로 이어져서 신촌에서 다 같이 집회를 했어요. 노동조합 생기고 불과 한 6개월 만에 이뤄내신 거지요. 학생 한 명을 변화시키는 데는 10년 정도 걸리지만, 청소 노동자분들은 살아온 인생 자체가 이미 노동계급과 투쟁을 체득한 분들이기 때문에, 변화하는 데는 한 순간이었어요.

김시은(이하 김): 정말 짜릿하셨겠습니다.

약자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언덕은 법, 그렇게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하다.

박: 학부 때 이런 활동 하셨으면 아무래도 밖에 나가서도 비슷한 활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셨을 것 같은데, 단체에 들어가지 않고 로스쿨에 진학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류 : 처음에는 노조 조합원처럼 일을 했죠. 그분들 사무실에서 3년 정도 활동을 했어요. 사실 법이라는 게 대단히 중요하죠. 그분들이 배운 사람들한테 가장 기대하는 것도 법이었어요. “이게 불법이야? 소송하면 얼마 받을 수 있어?” 라고 계속 물어보세요. 법이라는 게 존재하는 이유가, 대화의 창구가 없고 그 문턱이 너무 높아서 넘지 못하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지요. 물론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형식적으로는 법원에 누구나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노동부에는 누구나 진정을 제기할 수 있잖아요. 즉, 약자들이 가장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사회적인 장치죠.

그렇기에 ‘배운 사람들’의 조력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아 처음에는 노무사 공부를 했어요. 노무사 공부를 두 달 정도 하는데 계속 교내 투쟁이 터지니까 집중을 못했어요. 시험도 봤지만 공부를 안했으니 될 리가 없죠. 또 그때 제 나이가 스물여덟 살이라, 집에 뭐라도 한다고 말해야 하는데, 노무사 시험을 그 핑계로 삼기도 했고요. 그런데 주위에서 법으로 노동운동을 지원하고 싶으면 로스쿨이 생겼으니까 거길 지원을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노무사보다 할 수 있는 게 더 많고, 소송대리권도 있으니까요.

우리 사회의 제일 취약한 고리인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이 바로 보편적인 민생 향상을 위한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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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전반적으로 노동환경이나 노동문제 개선을 위해서 제정이 필요하거나 개정, 수정이 필요한 제도가 있을 텐데, 근본적으로 무언가 바꿀 수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류 : 입법에서는 간접고용문제 해결이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란 말이 있듯이 가장 고통 받고 열악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환경을 먼저 바꾸는 게 맞아요. 지금은 사회에서 가장 약한 고리가 간접고용 비정규직이에요. 역사가 한 단계씩 진보할 때마다 여러 가지 문제를 모두 해결한건 아니었어요. 물론 68혁명 때는 사회 전반적인 혁명이 일어나긴 했지만, 어떤 시대가 한걸음 더 나가려면 사회에서 가장 약한 고리를 끊어냈을 때 생각보다 큰 변화가 생길 때가 많아요. 그런 것이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운동들이구요.

지금을 사람들은 ‘87년 체제’라고 하지만, 사실상 ‘IMF체제’입니다. 신자유주의 양극화와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때문에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조금 더 좋은 사회로 갈 수 있어요. 저는 지금의 체제로 인해 가장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면 다음 사회로 넘어갈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고 봐요. 지금 가장 고통 받고 있는 계층이 비정규직, 그중에서도 직접고용이 아닌 하청업체 소속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이고요.

노동운동이라 하면 뭔가 매니악하고 투쟁의지가 높고 사나운 사람들이 하는 운동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통계를 보더라도 대한민국 국민 절대다수가 노동자에요. 국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의 운동은 부분적인 운동이 아닌 보편타당한 운동입니다. 노동운동 자체가 민생운동이고, 국민들의 전반적인 복지 향상을 위한 거시적인 운동이고요. 이 보편적인 복지를 위한 운동으로서의 노동운동의 첫 걸음은 ‘노동개혁’에 의해 가장 고통 받고 문제해결이 시급한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해결이라고 봐요. 입법제안은 민변 노동위에서 한 입법제안을 참고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웃음)

할머니 손 붙잡고 시위현장을 누비고, 노천극장에서 늙은 노동자의 노래를 부른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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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영(이하 정) : 학생운동을 열정적으로 하셨는데, 노동자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인생의 첫 순간이 있지 않으신가요?

류 : 87년 혁명 때 5살이었어요. 할머니가 운동권이어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간부를 하셨어요. 할머니 손잡고 집회를 많이 다녔고요. 87, 88년 고향인 대구에서도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집회를 많이 했어요. 할머니랑 손잡고 동성로에 나가면 학생들이 교련복입고 최루탄 때문에 코 막으면서 뛰어다니고 그랬죠. 할머니 따라서 시국집회를 많이 다녔고 노동자들의 거친 투쟁의 모습도 어렴풋이 기억나요. 어린이가 상상 못할 인파가 모인 집회에서 발언도 해봤고요. 그게 나중에 역사책에서 찾아보니까 88년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있었던 전교조 집회였어요. 그때 할머니와 버스타고 가면서 할머니가 ‘늙은 노동자의 노래’를 알려주셨어요. 집회에서 제가 발언하게 됐는데 발언은 안하고 마이크 쥐자마자 ‘나 태어나~’ 라고 노래를 부른 거예요.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함께 소리 지르며 불렀던 기억이 있어요. 그 당시에는 이게 뭔지도 모르고 이 사람들이 왜 싸우는지도 몰랐지만 그 어릴 때의 기억들을 나이를 먹으면서 계속해서 반추해보곤 했어요.

불온서적<>, 그리고 선하고 착한 사람들이 가는 길에 대한 자각

저희 집은 어릴 때부터 책이 많았어요. 삼촌 고모들이 다 학생운동을 해서요. 그때 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집에 있으면 안 되는 책들이 많이 있었어요. 아버지가 장남이어서 할머니 모시면서 대구에 사니까 집으로 불온서적들을 보낸 거죠. 제 방에도 맑스, 엥겔스 이런 책들이 꽂혀 있었고요. <코스모스>,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광주 민중항쟁 다큐멘터리>, <태백산맥> 같은 책들이 있었어요. 또 저희 집은 <말>지를 정기구독했어요. 그래서 한글을 처음 떼었을 때부터 그런 책들을 읽고 자랐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광주민중항쟁 책에서 광주시민들이 칼에 찔리는 사진을 보고 굉장히 놀란 기억이 있어요. 고모 삼촌의 책들이 꽂혀 있는 서가 옆에서 책 제목들을 엮어서 노래를 부르며 놀기도 했고요. 92년에 ‘윤금이 피살 사건’이 있었어요. 윤금이 씨가 미군들에 의해 성폭행 당하고 살해당한 사건인데, 그게 <말>지에 실려 있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읽고 엄청 충격을 받아 할머니한테 여쭤봤죠. 그랬더니 보지 말라고 하셔서, 더 보고 싶어졌고요. 그 이후부터 <말>지를 정독하기 시작했어요. 중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해방전후사의 인식> 같은 현대사책들을 보기 시작했어요. 그런 역사책들을 접하면서 어릴 때 스쳐 지나갔던 거리의 풍경, 할머니가 했던 말들, 고모삼촌들이 울면서 ‘누가 잡혀갔다’ 이런 얘기하던 기억들도 이해되었지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정서적으로, 이렇게 사는 것이 양심적이고 착한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왜 운동을 해야 되는지, 운동의 쟁점이 무엇인지 그런 것들은 자세히 몰랐지만 ‘착하고 선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좋은 일을 하는 거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러다 대학에 입학하니까 불이 붙었고 체질에 맞았지요.

학창시절 수성구의 류하경에서 집회 현장의 기타리스트가 된 지금

저는 학생운동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중학교 3학년 때 락밴드를 처음 시작해서 음악에 미쳐있었어요. 음악과 농구가 인생의 전부였어요. 대학 들어가면 무조건 밴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유명한 밴드를 능가하리라고 다짐하며 중학교 때부터 열심히 준비했죠. 고등학교 2학년 학교 축제에서 밴드 ‘범어동 수퍼하이웨이’를 결성했고. 당시 여고에서 많이 왔었는데 배우 손예진도 왔었죠. “손예진이 뭔데!” 이러면서 락밴드 메탈리카처럼 ‘쎈 척’하고 그랬어요. 고2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고, 제인생의 정점은 고 2 축제에서 공연했을 때였어요. 그때 첫 곡으로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을 연주하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 로 마무리 했었죠. 그때부터 (인생이) 기울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네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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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집회 나가보면 불타오르는 게 있어요. 그래서 ‘수성구의 류하경’이 메이데이 때 가서 ‘바위처럼’을 칩니다. 그때 쌓았던 기타 실력을 농활, 집회현장 그리고 민변 집회에서 발휘하죠. 원래는 락기타, 블루스기타를 치는데 그런 건 민변 변호사님들이 모르시잖아요.(웃음) 그래서 지금 기울고 있는 상태예요.

진지하지만 유쾌했던 인터뷰가 끝나고 류하경 변호사가 말을 덧붙였습니다. 언제 맥주 한 잔 하자고요. 꼭 그러기로 했습니다. 정말이죠? 류하경 변호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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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9일(금), 법무법인 동화 사무실에서 서중희 변호사를 만났다. 민변에 가입한 지 만 10년 차가 다 되어가는 그는 현재 과거사청산위원회(이하 과거사위)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가끔 평소에 수줍음 많던 사람이 카메라 앞에서 180도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서글서글하고 순한 인상에 스스로를 ‘수줍음이 많다’고 소개한 서중희 변호사도 비슷했다. 처음에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고개를 내젓다가 이내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과거사위가 주력하고 있는 ‘위안부’ 문제와 긴급조치 등에 관한 뼈 있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대화 사이사이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연방 울리는데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신입 회원들에 대한 조언의 말과 과거사위 홍보 뒤에는 친절하게도 사진을 찍으라며 사무실 책상에 앉아 골무를 끼고 짐짓 포즈도 취해주었다.

지금부터 ‘수줍지만 친절한 카메라 체질’ 서중희 변호사를 만나보자.

 

인터뷰/정리_자원활동가 이재임(출판소통팀)

 

백면서생서중희 변호사, 입을 열다

김서정(이하 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직업과 민변 이야기는 빼고요. 혹시 본인과 가장 닮은 소설, 희곡, 영화, 만화, 드라마 속 캐릭터가 있을까요?

서중희(이하 서): 직업과 민변에 대한 이야기를 빼고 나니까 생각나는 단어가 없더라고요. 이런 데에 감이 별로 없어서. ‘백면서생’, 이 정도가 어울릴 거 같아요. 조용하고 말수가 많지도 않고 수줍음이 많아서 ‘백면서생’, 저한테 이게 딱 맞는 단어 같아요. 아내에게 저와 닮은 캐릭터를 물어봤더니 <아기공룡 둘리>의 ‘고길동’을 말하더라고요. 어떤 점에서 닮았는지는 모르겠어요. 또, 사무실 직원 한 명한테 물어봤더니 고양이 ‘가필드’를 이야기하더라고요.

: 생김새가 닮으셨어요.(웃음)

서: 아무튼 저는 수줍음이 많고, 나서는 것보다는 뒤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 저희가 오늘 인터뷰를 위해 ‘고급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다음 세 가지 질문에 3초 안에 답해주세요. 첫 번째, 조영선 변호사는 나한테 술로 안 된다, 내가 민변 최고 주당이다! O, X, 하나, 둘, 셋!

: (망설임 없이)X입니다. 조변님은 날마다 술이에요. 쉬지 않고 먹어요. 새벽까지 먹어요. 그리고 다음날 눈 퉁퉁 불어서 와요. 같이 마시면 제가 힘들어요.(웃음)

: 워크숍 때 소주병을 품에 안고 돌아다니셨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 아, 물론 술 좋아합니다. 좋아하지요.(웃음) 공부할 때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 별다른 게 없어서 주말이면 작정하고 폭음을 했죠. 술을 마셔보니 먹을 만 한 거 같아서 계속 마시다 보니 막걸리를 마시면 취하기 전에 배가 부르고, 소주를 마셔야 적당히 취할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산에 갈 때도 조그만 소주(팩 소주)를 사서 혼자라도 올라갑니다.

: 두 번째 질문입니다. 나한테 조영선 변호사란? 하나, 둘, 셋!

: …아따 거시기하네.(웃음) 만난 지 오래됐어요. 사법고시 공부할 때 신림동에 ‘약수사’라는 절에서 처음 만났거든요. 조 변호사를 처음 만났을 때는 얼굴이 시커먼 양반이 호리호리해서,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호리호리했습니다. 술도 좋아하시고 해서 친해지게 됐고. 조 변호사가 먼저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저는 조 변호사보다 늦게 합격한 뒤에 둘이 사무실도 같이 하게 됐죠. 전생에 질긴 무엇이 있나, 채권채무 관계였을까?(웃음) 아무튼 인연이 오랫동안 이어진 것 같습니다. 아까 답한 ‘거시기’에는 온갖 것이 포함된 겁니다. 예를 들면 ‘애증’이라든가.(웃음)

: 마지막입니다. 나한테 ‘마눌님’이란? 하나, 둘, 셋!

서중희-변호사

: (인터뷰 전체에 걸쳐 가장 크게 웃음)이분도 참 대단한 분이에요. (황급히)제가 몸과 마음을 바쳐 사랑하는 분입니다. 무서워요. (웃음)

특히 애 낳고 무서워졌어요. 아들이 연년생 둘이거든요, 쌍둥이는 오히려 고만고만해서 괜찮은데, 연년생은 동생이 형한테 절대 안 지려고 해요. 연년생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는 아이들한테 순서를 잡아줘야 하고 아이들 대장 노릇을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애들 키우면서 목소리가 커지고. 아무튼 제가 사랑하는 분으로 정리할게요. 매우 매우 사랑한다고.

과거사청산위원회, 역사를 새로 만들어나가다

김: 비교적 조용한 회원으로 활동하시다가 최근에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며 과거사청산위원회(이하 과거사위) 위원장까지 되셨어요. 위원장으로서 과거사위를 자랑한다면?

서: 과거사위의 역사가 일단 좀 오래되었죠. 다른 위원회는 잘 모르겠지만 과거사위는 2003년에 만들어져서 올해 13년 차입니다. 사회의 굵직굵직한 이슈에 대해서, 특히 과거사와 관련된 이슈에 대해 변호사님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긴급조치와 ‘위안부’ 이슈에서는 소기의 성과를 보이고 있죠.

과거사위 활동을 하다 보면 국가와 국민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시간적 흐름을 이해하게 되고, 역사적 안목을 키우게 돼요. 과거사 문제라는 게 단순하게 “이게 아닌데요!”하고 외친다고 해결이 되는 문제가 아니고, 안목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과거사위, ‘위안부문제 관련 소송을 제기하다

김: 이제 최근 과거사위에서 활발하게 대응하고 있는 ‘위안부’ 이슈에 대해 여쭤볼게요. 현재 과거사위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제기한 소송은 정보공개청구 소송 2건, 헌법소원 1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1건으로, 총 4건입니다. 이 중 헌법소원은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임을 확인하는 12.28 한일합의가 위헌임을 확인해달라는 소원인데요. 12.28 한일합의에 어떠한 헌법적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서: 일단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과거에 헌법재판소 판결이 하나 있죠. 일본의 기본적 입장은 ‘1969년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라는 입장이에요.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청구권 협정 당시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봤어요. 그리고 청구권협정 중 3조는 분쟁해결조항인데, 내용을 보면 ‘이 협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외교적으로 해결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분쟁을 통해서 해결하고, 이 결과에 대해서는 승복하자’는 거예요. 그러니 청구권 협정 3조에 의해 국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외교적으로 다시 협상을 하고 분쟁 해결절차를 나아가야 하는 ‘작위 의무’가 있다는 것이죠.

‘위안부’ 강제 동원은 일본군이 위안소를 운영하면서 조선 식민통치기구를 통해 위안부를 모집하고, 이들을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성폭행한 국가 범죄적 행위예요. 국가는 그런 범죄행위에 대한 손해 배상 책임을 져야 하고, 이것을 해결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요. 그리고 국가가 ‘위안부’ 강제 동원으로 인한 피해 보상 협의를 하려 한다면 피해자들의 절차적 참여권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12.28 합의에서는 이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이게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어요.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에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나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신체적 자유에 대해 회복을 구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할 것인데, 국가와 개인은 분명히 법인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이를 대신해서 행사할 수 있는지도 문제고요. 국가가 외교적으로 재외국민을 보호해줘야 하는데, 외교적 조치를 다 했는지도 살펴봐야 해요. 기본적으로 국가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요구하고 있는, 일본 정부와 이 문제를 외교적으로 잘 해결해야 할 작위 의무가 있음에도 12.28 한일합의를 통해 부작위를 선언해버렸던 것도 위헌적인 행위이죠.

김: 헌법소원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각각 ‘위헌’ 판결과 원고 승소 판결을 받을 경우 현실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부분에서 도움이 된다고 보시나요? 또 ‘대한민국’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손해를 배상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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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간중간 질문을 메모하는 서중희 변호사의 손.

: 이번 12.28 합의가 헌법적으로 위헌 무효라고 한다면 합의 자체가 아무런 효력이 없는 거죠. 국가는 여전히 2011년 헌법재판소 판결대로 일본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외교적 협상과 분쟁 절차에 나서야 할 의무를 다시 지게 됩니다. 12.28 한일합의를 통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분쟁 절차에 나가지 않고 ‘해결됐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불법행위라는 것이거든요. 민사상으로도 국가의 행위는 불법행위라는 것이고, 불법 행위라면 당연히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것이고요. 어쨌든 헌법소원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에서 각각 ‘위헌’ 판결과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내면 ‘12.28 한일합의는 무효다. 국가는 다시 분쟁해결을 위한 협상에 나아가야한다’는 것을 사법적으로 확인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손해보상을 한다는 건 이번 합의가 잘못되었다는 뜻입니다. 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국가가 이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을 위해서 본 정부와의 협상에 성실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기본적으로는 그런 의미인 것 같아요. 박근혜 정부의 일본 협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사법적으로 확인하는 의미가 있는데, 이번 정부에서는 판결이 쉽지 않을 것 같네요.

배상청구권에 대해서도 헌법 재판소가 2011년에 언급해놓은 게 있어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배상청구권은 재산권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침해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신체의 자유에 대한 사후적 회복의 의미를 가진다.” 단순히 배상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잃고 인권을 침해당한 소녀들의 고통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라는 뜻이겠죠. 인간의 존엄과 가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에 대해 늦게나마 회복해준다는 의미고요. 한 많은 인생에 대한 보상입니다.

: 나의 신체가 국가의 소유가 아니고, 나의 권리와 존엄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굳이 한국의 정부가 ‘나’를 멋대로 대표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더라고요.

: ‘국가가 나서서 개개인의 권리를 처분할 수 있는가’하는 부분에서 견해의 차이가 있어요. 국가가 외국과 협상할 때 ‘국가 일부를 이루는 개인의 권리 일부를 처분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어요. 하지만 국가와 개인의 법인격은 서로 다르거든요. 법률의 관점에서는 똑같은 인격체이기 때문에 개인이 동의하지 않은 이상 타인의 인격, 타인의 권리를 함부로 처분할 수 없어요. 이런 관점에서는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권리에 대한 부분을 합의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관점이 있어요.

‘나의 신체 권리가 국가에 소유되지 않는다’는 분석은 나와 국가를 동등한 인격체에서 보는 관점 같고, 또 이게 맞겠죠. 어차피 피해는 내가 입었는데 제삼자가, 일부 관료가 나서서 나의 피해에 대해 ‘더는 묻지 않겠다’고 합의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식으로든 피해자 본인이 스스로 나서서 결정하고 참여하는 절차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번 협상이나 과거의 협상은 그런 것이 전혀 없었죠.

과거사위 긴급조치 변호인단’, 여기까지 왔다

: 그 외에도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및 성폭력 문제, 긴급조치 문제 등 다양한 과거사 문제가 있습니다. 과거사위에서 이제까지 해왔던 활동 중 ‘긴급조치 변호인단’은 오랫동안 이어져온 활동이지만 그만큼 신입 회원들은 잘 모르고 있을 것 같아요.

: 과거사위는 특정 과거사 이슈가 마무리되지 않는 이상 그 이슈에 대해 계속해서 활동하는 거니까요. 긴급조치 변호인단은 벌써 10년 동안 활동하고 있습니다. 긴급조치는 아시다시피 유신독재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항거하는 민주 인사들과 유신 정부에 대한 저항을 탄압하기 위한 조치들이죠. 형사소송법을 거의 무력화시켜버리는 초법적인 조치였어요. 국왕이 칙령으로써 통치할 수 있는 그런 정도예요.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시면서 폐지되었고 피해자들이 ‘억울하다, 무죄로 만들어달라’ 했더니 형벌법이 폐지되었기 때문에 면소 판결을 내려 끝내버렸습니다. 유죄도 아니고 무죄도 아닌 어정쩡한 판결이 면소 판결입니다. 여전히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남아있는.

기본법 보장 규정에도 어긋나고 형사소송법 제반 법칙도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지금 헌법에 비춰 봐도 위헌이고, 유신헌법에 비춰 봐도 위헌이에요. 그래서 재심을 청구하게 된 거죠. 헌법재판소에서도 위헌 무효 소송을 제기했고요. 2010년 10월경 대법원에서 최초로 긴급조치 1호에 대한 위헌 결정을 내렸어요. 그때까지 법원들은 긴급조치 재심 사건에 대해 계속 면소 판결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긍정적인 판결이 나온 겁니다.

위헌 결정 뒤로 구금된 기간 형사 보상을 청구하고, 민사 소송으로 손해 보상 청구까지 들어갔어요. 사실 법리상으로는 대법원의 면소 판결이 형사법에 규정이 되어 있거든요. 법원은 형사소송법에 맞게 판결했고, 형식적 법치주의만 따지면 그게 맞긴 하죠. 하지만 ‘긴급조치가 위헌 무효인가’라는 판단을 이제까지 안 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던 거예요. 긴급조치가 무효라는 것에 사법부의 판결을 끌어냈다, 변호사가 사회를 발전적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방향으로 일조했다, 그런 흥분감으로 계속 끌고 오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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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질문에 답하는 서중희 변호사의 뒷편으로 긴급조치 관련 재심판결 모음집이 책장 한 칸을 채우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한 뒤로 대법원이 긴급조치가 위헌 무효 판결을 받은 것에 대응하는 새로운 논리를 개발했습니다. ‘과거의 긴급조치가 위헌 무효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긴급조치를 발령한 논리는 유효하다. 긴급조치에 기초해서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기소하고, 유죄판결을 내리고, 수감생활을 시킨 공무원이 뭘 잘못했냐.’ 이런 거죠. 그러면 ‘대통령이 위헌무효인 긴급조치를 내린 것은 잘못 아닌가요?’ 하니까 ‘그것은 대통령이 통치권 행사의 목적으로 한 것이고 정치적인 책임을 질 문제이지, 개개인에게 행해진 불법행위에 대해 법률적 책임을 질 일이 아니야.’라고 주장해요. 긴급조치는 위헌무효인데, 그에 따른 법률적 행위는 정당하다는 이상한 논리가 되어버렸어요. 지금의 대법원은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를 펴고 있고. 그게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예요. 성과와 아쉬움을 함께 가지고 있죠. 이 부분은 판례 변경이 필요한 사항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재임(이하 이): 그런 대법원의 입장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고, 여기에 대해 반박할 논리는 아직 없나요?

: 이런 논리를 반박하는 논리를 개발하려고 여러 변호사가 노력하고 있는데, 대법원이 아니라고 막고 있으니까 상당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대법원의 구성을 진보적으로 바꾸거나 적절하게 조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서울대학교를 나오시고 판사를 하신 남성분들, 기본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분들이 대법관이 되거든요. 대법원이 사회의 다양성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자기 구미에 맞는 사람을 대법원장에 앉힐 가능성도 있고요. 여러 가지 점에서 과연 우리 사법제도가 정당한 건지 의문이 있어요.

법률이 정당하고 정의에 부합하는지 고민하는 변호사 집단이 있었다

: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당대사, contemporary history)’라는 말이 있죠. 과거사위의 활동은 지금의 인권 관점에서 과거의 사건을 평가하고 정의를 회복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100년, 200년 뒤의 누군가가 현재의 역사를 연구하고 어떤 사건의 역할과 의의를 평가할 때 과거사위 활동이 어떤 평가를 받기를 원하시나요? 혹은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 같으신가요?

: 어렵습니다. 어쨌든 저희가 정치를 하는 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부국강병’ 이런 건 정치인들이 이야기하는 관점인 것 같고요. 법조인으로서 ‘당대사’를 말한다면 과거의 권력행사가 정당한 이유와 절차에 따른 것인지에 중점을 두고 보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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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위는 여러 과거사 사건에서 인권이 정당하게 지켜졌는지, 인권침해가 일어났다면 그것이 정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것인지를 따지고, 부당한 인권침해가 일어났다면 침해된 인권을 회복하는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요.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자의적이고 독재화된 권력에 의해 일어났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죠. 과거사위의 활동은 그런 권력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고, (정의를) 회복하려는 법률적 시도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긴급조치가 당시에는 권력에 의해서 시행되었고 검사와 판사들이 기소하고 유죄판결을 했지만, 이제는 긴급조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이것이 위헌 무효였다는 것이 사법적으로 밝혀진 거잖아요. 잘못을 밝혀냈다는 것에 의의가 있어요.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법률이 정당하고 정의에 부합하는지 고민해보는 변호사 집단이 있었고, 그것이 과거사청산위원회였다.’, 이런 정도의 평가를 받지 않을까요? 어떻게 평가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좌빨’이니 어쩌니 욕을 하더라도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필요한 조직 활동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무언가’, 그것을 해라

: 2006년 10월 30일에 가입하셨고, 한 달 지나면 만 10년차가 되시네요. 축하의 박수! (웃음) 10년을 활동해보니 이제 가입하는 신입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 민변 가입할 때 어떤 특별한 활동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건 아닌 것 같아요. 처음엔 우리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며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고, 저는 이분들의 보이지 않는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 정도가 제가 생각한 행동반경이었어요. 그런데 민변을 들락날락하기 시작하니까 달라지기 시작했죠.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하루를 보낼 수 있어요. 그렇지만 ‘내일 뭘 하지’ 생각하면서 하루를 보낼 수도 있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도 나이는 계속 먹겠지만, 저는 익숙하던 대로만 지내면 인생이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거나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사회적으로 부조리가 드러나거나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말만 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나중에 내 삶을 반추해봤을 때 내 살아온 모습에 대해서 나름의 자긍심이 생기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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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변호사들에게 조언한다면…… 일단은 뭔가를 해라. “네 가슴속에서 우러나와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그 ‘뭔가’를 일단 해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이왕이면 과거사위를 하면 더 좋고요. 과거사위 활동은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워주고, 좋은 선배 변호사들도 만날 수 있고, 여러 시민단체와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생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 같아요. 역사적 관점도 얻을 수 있고, 사서나 역사적 서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특히나 좋아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과거사위 선배들은 술을 사달라고 하면 분명 좋아할 겁니다.

화, 2016/09/13-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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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연대위원회는 지난 6월에 있었던 제32차 유엔인권이사회에 참가하였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민변은 지난 2001년부터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의 협의지위를 가진 NGO 단체로 국내 인권시민단체와 연대하여 매년 국내 인권이슈를 유엔에 알리는 대응활동을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이번 제32차 유엔인권이사회는 스위스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2016년 6월 13일부터 7월 8일까지 개최되었고, 민변에서는 황필규 국제연대위원회 위원장님과 남세영 국제팀장이 6월 13일부 터 6월 17일까지 참석하였습니다.

 

□ 유엔인권이사회 참가

- 6월 17일에 있었던 인권이사회 회의에서는 “평화로운 집회결사의 자유 유엔 특별보고관”이 지난 1월에 한국을 방문해 조사한 내용에 대한 한국보고서가 공식 발표가 있었습니다.

- 특별보고관은 우리나라의 집회결사의 자유 실태에 대해 실질적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는 집회, 차벽과 물포 사용, 집회 참가자에 대한 민형사상 탄압, 교사와 공무원 등 노조 설립의 어려움, 기업의 노조 무력화 등을 지적하면서 우려를 표명하였습니다.

한국정부에서도 대표단이 참석해 특별보고관의 보고 내용에 대해 물포는 폭력적인 참가자들에만 엄격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사용하고 있고, 백남기 농민 사건은 철저한 수사가 진행 중이며, 합법적 집회의 평화로운 참가자들은 처벌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했습니다.

이러한 한국정부의 답변에 대해 민변을 포함한 한국 인권시민단체 대표단은 백남기 농민의 자녀 백민주화씨를 발표자로 내세워 한국에서는 집회가 범죄로 규정되고 있고, 백남기 농민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반박하는 구두발표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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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 관리에 대한 권고의 국가이행에 관한 비공식 토론회 개최

- 민변 참가단은 또 참여연대, 코쿤, 민주노총 등의 국내단체들, 그리고 CIVICUS, Forum Asia 등의 국제인권단체들과 연대하여 집회결사 특별보고관을 모시고 말레이시아와 한국에서의 집회 실태를 보고하는 비공식 토론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집회결사 특별보고관은 지난 3월 인권이사회에서 자신이 발표한 집회 관리에 관한 실제적 권고를 만들게 된 배경에 관하여 소개하였고, 말레이시아 인권단체 발제자와 국내 시민단체 발제자가 각 나라의 국내 이행이 되고 있지 않는 실태를 발표하며 활용 방안에 대해 토론하였는데요, 유엔 관계자, 각국 대표부, 국제인권단체 등 약 60여명이 참석하여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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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본부 앞 거리캠페인 개최

- 민변 참가단은 또 민주노총, 참여연대, 코쿤과 함께 유엔 본부 앞에서 백남기 농민의 건강 회복을 염원하고 집회 시 물포 사용 금지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포함해 구속된 민주노총 노동자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를 개최하였습니다.

- 유엔 관계자, 제네바 시민 등 많은 분들이 뜻을 함께 하는 연대메세지를 작성해 주었고, IUF, SUARAM, Forum Asia, BWI 등 국제인권단체에서도 동참하여 함께 캠페인을 진행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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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외에도 민변 참가단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OHCHR) 소속 여러 인권 담당관들과 면담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유엔 본부를 방문하는 기회에 가능한 한 많은 인권 담당관들과 직접 만나 국내 인권 현안을 다시 상기시키고 최신 정보를 업데이트 해주면서, 향후 특별보고관의 한국 방문이나 유엔 조약기구/ 유엔 헌장기구의 인권 메카니즘상 한국보고서 작업에도 긴밀하게 연락하며 국내 NGO의 입장을 반영하도록 꾸준한 교류를 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인권옹호자 담당관인 Ms. Elisabeth Andvig, 동아시아 지역 인권담당관인 Ms. Esther Lam, 자의적 구금 실무그룹 담당관 Ms. Margarita Nechaeva, 진실·정의·보상 및 재발방지 담당관인 Ms. Julia Raue,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의장인Mr. Dante Pesce와 담당관인 Ms. Natasha Andrews, 그리고 Mr. Ulrik Halsteen를 만나 한국 인권현안을 상기시키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국내 현안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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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UN 소속 담당관들과의 면담만큼 중요한 것이 다른 국제인권단체들과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민변 참가단은 국제인권단체 FIDH의 Mr. Nicolas Agostini와 Ms. Sonia Tancic, 국제인권단체 Article 19의 Mr. Thomas Hughes와 Ms. Barbora Bukovska, 국제식품관련산업노동연맹(IUF)의 Ms. Sue Longley 국제 담당관 외 5명의 관계자들, 국제인권단체 ISHR의 아시아 지역 담당인 Ms. Sarah M. Brooks를 만나 민변을 소개하고 국내 현안을 공유하고, 앞으로 국내 인권 이슈 전반에 대해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네트워크를 이어나가기로 약속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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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6/07/1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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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술을 좋아하고, 누구는 먹는 걸 좋아하고, 누구는 ‘멍 때리기’를 좋아한다. 저마다 제각각인 사람들이 민변에서 만나 “아무것도 없이, 우리 돈 내 가면서” 공익인권변호사모임을 만들었다.

그게 벌써 5년, 6명이 모여 시작했던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이하 희망법)이 어느덧 변호사 8명에 상근자 2명까지 10명의 식구를 꾸렸다. 이제 집회와 표현의 자유 팀을 새로 꾸려 한 번 더 발돋움을 준비하고, 이를 위해 후원주점도 열었다. 지난 10월 22일 열린 희망법 후원주점 ‘바람막이’ 현장에서 만난 8명의 민변 회원들에게 각자의 ‘희망법’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희망법을 만든 것 자체가 사건

처음 시작했을 때는 이렇게 멀리 달려올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특정 인권 영역에 집중하는 단체도 아니고, 특별히 오래 버틸만한 탄탄한 기반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한가람 변호사는 “민변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는 자체, (희망법을) 만들었던 과정 자체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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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선영 변호사

희망법 구성원들에게 희망법은 직장 혹은 활동의 베이스캠프 이상의 의미다. 한가람 변호사는 희망법이 “월급 주는 데이기도 하고, 내 새끼이면서 분신”이라고 말했다. 서선영 변호사는 ‘1차 집단’이라고 표현했다. 가족, 친구 등 1차 집단은 비교적 영구적이고, 친밀하며, 개인의 성격과 개성에 깊이 관여한다. 그런 면에서 서선영 변호사의 표현은 가장 적절한 말 같아 보였다. “보통 직장이 가족 같다는 말은 되게 안 좋은 말이잖아요? 그런 말이 아니고, 저의 정서, 감정, 고민, 생각, 이런 것들이 다 들어있는 곳이 희망법인 것 같아요.”

김동현 변호사는 구성원들에게 낯 간지러운 애정표현을 자주 한다. 그에게 희망법은 “정말 제가 존경하는, 함께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그런 분들”과 함께 일할 수 있게 해 준 공간이다. 희망법을 처음 만들고 3-4년 쯤 지난 어느 날, 목욕탕에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단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 이렇게 존경스러운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알고 나와 같이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래서 술 마시다가도 갑자기 “저는 여러분이 너무 사랑스러워요”라고 고백한다고.

숨가쁘게 달려왔네 희망법IMG_7791

후원주점 벽에 붙어있던 희망법의 활동 모습을 담은 사진들

희망법은 장애, 성별지향·성적 정체성(SOGI), 기업과 인권 분야에 대해 팀을 구성해 집중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장애 분야에서는 장애인의 선거 참여 기회 확대를 위해 장애인 기표소 개선 등을 요구하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하는 시각장애인이 독서확대기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축소본 시험지를 제공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광주광역시 교육청이 교원임용고시에 응시한 뇌병변장애인에게 충분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은 채 부적격 판정을 내리고 불합격 처리한 일을 중심으로 공무원 시험에서 장애인 응시자에게 충분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개선하려는 일련의 소송도 진행 중이다.

SOGI 팀은 국내법 중 유일하게 동성애를 처벌하는 규정인 군형법상 ‘추행’죄(제92조의 6)를 폐지하기 위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이 규정에 대해 세 번째 합헌 판결을 내렸지만, 한가람 변호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 결정의 문제점을 국내뿐만 아니라 유엔 인권기구 등에 알리고, 제20대 국회에서의 폐지운동과 함께 헌법소원을 다시 제기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동성결혼 신청을 계기로 동성결혼 인정을 요구하는 소송도 진행 중이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지난 7월 1심에서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혼인신고 불수리처분 불복신청을 각하 처분했다. 류민희 변호사를 포함한 변호인단은 앞으로 한 퀴어 부부의 혼인신고 불수리처분 불복신청이 각하될 때마다 2배수의 새로운 퀴어부부를 원고로 소송 당사자들을 늘려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희망법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퀴어 이슈와 관련해 가장 첨예한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 법률가 조직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기업과 인권 분야에서는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일터 괴롭힘’을 정리하고 정의했다. 서선영 변호사는 일터 괴롭힘을 “일터에서 조직적이거나 개인적으로 당하는, 과로나 모욕적인 말 등으로 신체와 정신의 건강을 해치고 존엄을 침해하는 문제”라고 정의했다. <일터 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이라는 책도 내놓았다. 여러 인권단체와 1년간 세미나를 통해 연구하고 공부한 내용을 서선영, 이종희 변호사와 인권연구소 ‘창’의 류은숙 활동가가 함께 정리했다. 국내사례로 일터 괴롭힘을 정의하고 제시하는 첫 번째 책이다.

포털사이트 ‘Daum’이 운영하는 컨텐츠 크라우드 펀딩 ‘스토리펀딩’을 통해 연재된 일터 괴롭힘의 사례에 시민들은 너도나도 공감을 표시했다. 이종희 변호사는 “민변 총회에서 서선영 변호사님이 <일터 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 책을 팔았는데, 100권 다 팔렸다고 한다”며 감사를 전했다.

사람은 적지만 캐릭터는 제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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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법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맑음’과 ‘무엇을 맡을지 찾고 있다’고 밝힌 김재왕(좌), 최현정(우) 변호사

희망법 구성원들에게 각자 자신이 희망법에서 하고 있는 역할이 무엇인 것 같냐고 물었다. 대답은 저마다 제각각이라, 김재왕 변호사는 ‘해맑음’을, 이종희 변호사는 ‘모범’을 담당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최현정 변호사는 김재왕 변호사를 보며 “나는 아직 희망법에서 무엇을 담당할지 찾고 있어.”라고, 조곤조곤하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조그만 모임에서 많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일하지만 캐릭터는 제각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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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맞이로 분주하게 일하는 이종희(위), 조혜인(아래) 변호사

이종희 변호사는 정해진 ‘매뉴얼’을 잘 지킨다. 후원주점 티켓을 팔라면 팔아오고, 서류에 무언가를 기록하고 기입해두라고 시키면 그대로 한다. 꿈도 모범적이다. “변호사로서 좀 더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또 단체 활동가로서 기획이나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는 업무를 더 잘 이해하고 싶다”는 꿈이라니. 꿈이 재미없기로는 조혜인 변호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SOGI 팀 업무에 대해 변호사들이 해야 하는 일을 좀 더 잘 담당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앞으로 이 분야에서 후배 변호사들이 어떻게 하면 잘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별명이 ‘잔더’, 사실 ‘한잔더’라고 밝힌 서선영 변호사의 꿈은 희망법에 있는 동안 한 번이라도 ‘혼돈의 카오스’ 상태인 책상을 깨끗하게 치우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김재왕 변호사는 “제발 좀 그랬으면 좋겠다”고 맞장구쳤다. 스스로를 ‘시리어스 앤 볼링 맨(Serious and Boring man)’이라고 소개한 김동현 변호사는 “제가 올해 대표를 맡고 있는데, 다시는 대표를 하고 싶지 않다”며 “대표 아닌 구성원으로 계속 있고 싶다”고 말했다.

희망법의 발돋움, 후원주점

희망법은 앞으로 집회의 자유팀을 신설하여 운영할 계획이다. 서선영 변호사는 “희망법에서 집회 관련 업무를 계속 하고 있었는데 관련 팀이 없다 보니 다른 업무처럼 집중적으로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며 앞으로 집회의 자유를 변호하는데 좀 더 역량을 투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민변에서 공식 모임은 아니지만 집회의 자유 연구 모임이 생겨서 함께 연구할 계획”이고, 앞으로 소송과 연구들을 모아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계획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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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주점을 찾은 희망법의 친구들

장애와 인권 영역을 전담하는 변호사 한 사람과 사무국 상근자 두 사람이 새로 희망법의 식구가 됐다. 팀을 신설하고 구성원을 확충하는 과정에서 재정적 어려움은 피할 수 없는 문제다. 김재왕 변호사는 “대외적으로는 ‘든든한 둥지’이지만, 속마음으로는 언제 망할지 모르는 불안한 둥지”라고 농담했다. 한가람 변호사 역시 “희망법에서 이루고 싶은 꿈은 월급날 돈 걱정 없이 월급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게 꿈”이라며 “사실 (아직까지) 그런 날이 없었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아슬아슬한 재정에 새 식구와 새 사업은 큰 부담이 된다.

그래서 새 식구로 합류한 김광민 모금사무국장이 희망법 창립 후 첫 후원주점을 기획했다. 늦가을이지만 아직 단풍은 그저 그런, 대신 날이 선선해 잔디밭에 테이블 깔고 좋은 사람들과 맥주 한 잔이 참 잘 어울리는 토요일. 희망법이 입주해 있는 서울 불광동 서울혁신파크에서 희망법 후원주점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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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변호사

옛 질병관리본부가 있었던 이 자리는 박원순 시장의 주도 하에 2013년부터 다양한 사회적 혁신을 실험하는 ‘서울혁신파크’로 변신했다.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한 북한산 등산객들의 ‘핫 플레이스’였던 이곳에 청년들이 하나둘씩 드나들기 시작했다. 희망법도 지난해 이곳으로 둥지를 옮겼다.

커다란 대강당 전체에 테이블을 놓고 분홍 체크무늬 테이블보를 깔았다. 주문벨은 없지만 흔들면 빛이 반짝거리는 잭오랜턴을 테이블마다 두었다. 호스트인 희망법 구성원들과 서빙을 담당한 자원활동가들은 모두 머리에 하얀 물방울무늬가 박힌 커다란 리본 머리띠를 썼다. “없는 게 메리트라네 난, 있는 게 젊음이라네 난”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어디 유명한 맛집 같은 메리트는 없지만 사랑스러움과 센스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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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하게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있는 최현정 변호사

4시쯤 아직 한산했던 후원주점이 오후 5시를 넘기자 슬슬 손님으로 바글바글해진다. 대강당 실내와 쪽문 너머 잔디밭이 모두 손님으로 꽉꽉 들어찼다. ‘입추의 여지가 없다’고 할 것까진 아니지만 빈 테이블은 없다. 머리에 리본 머리띠를 쓴 자원봉사자들이 잭오랜턴이 반짝일 때마다 테이블 사이를 바쁘게 누빈다. 희망법 구성원들도 호스트로 손님을 맞고 함께 술을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사람, 음식 준비와 서빙으로 정신없는 사람, 제각각이다. 재미난 점은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은 주방에서 일하는 것이 편해 보이고, 호스트 역할을 맡아 손님들과 어울리는 사람은 그게 더 편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하루 후원주점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수많은 일 중 각자 자기가 가장 편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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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를 돌이켜보는 한가람 변호사

희망법의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어울려 술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짧아진 가을 해가 저문다. 으슬으슬 춥다는 사람도 많지만 민변 사무처 식구들도 뒤늦게 합류하는 친구들을 기다리며 밤이 늦도록 자리를 지켰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 얼굴은 계속 바뀌지만 모두 민변 식구들이다.

후원주점이 문을 닫는 10시를 넘기자 희망법 구성원 모두가 무대 앞으로 나와 감사인사를 전했다. 새 구성원 김광민 사무국장도 희망법의 친구들 앞에 소개했다. 이날 하루를 즐겁게 보낸 손님들이 저마다 작별인사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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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말한 류민희(좌), 한가람(우) 변호사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행사였다. 류민희 변호사는 “희망법은 회원 커뮤니티가 끈끈한 조직이 아니라 이벤트의 성공 가능성 자체를 좀 회의적으로 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희망법의 후원주점은 마음만으로는 대성공인 듯하다. 날이 점점 쌀쌀해지는 밤까지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술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현정 변호사는 “‘안 오지 않을까’, ‘오기 힘들 거야’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왔던 게 가장 마음에 남는다”며 “광주에서 여기까지 와준 로스쿨 친구가 있었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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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과 이야기 나누는 류민희 변호사

류민희 변호사는 “희망법은 한 가지 권리에 집중하는 단체가 아니라서 특정한 권리에 집중해서 활동하는 단체보다 회원 커뮤니티가 약하다”며 “저희가 일하는 영역에서 함께하는 동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거 자체가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결산 결과를 떠나서 오늘 행사는 성공이라고도 평가했다. “너희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 말이 많이 고마웠다”고 한다. 한가람 변호사 역시 “수지는 좀 더 계산해봐야 할 것 같지만 이것 자체로 행복하다”는 류민희 변호사의 말에 “완전히 똑같은 생각”이라고 공감을 표시했다.

후원주점에 처음 들어섰을 때, 손님을 맞고 있던 김광민 사무국장이 명함을 건넸다. 엠보싱 후가공으로 점자 표기가 붙어있다. 반사적으로 ‘엠보싱 후가공 비용 장난 아닐 텐데’라는 생각부터 든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해서는 명함 등에 점자를 표기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형압 가공이든 엠보싱이든 인쇄물에 점자를 표기하는 후가공 방법은 인쇄물 제작비용을 두세 배로 늘려버리기 일쑤다. 어쩌면 이 명함이 희망법을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꼭 가야 하지만 좁은 길, 남들 가는 길보다 두 배 세 배 어려운 길일지도 모르는 길을 즐겁게 가는 사람들과 이들의 즐거운 친구들. 읽지도 못하는 점자를 오랫동안 만지작거려본다.

목, 2016/10/2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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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활동가 인터뷰

인터뷰/정리: 노우리, 은연지, 이상은, 정태영

 

석면 광산, 반올림 사건, 월성 1호기 원전 사건. 제각기의 사안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국가나 기업이 국민의 건강하게 살 권리를 침해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 좌절하지 않고 모두가 건강하게 살 권리를 위해 부지런히 뛰는 한 공익변호사가 있다. 바로 박애란 변호사다. “부모님 고향의 예쁜 별, 나무, 산을 보며 자랐다”고 소개를 대신한 그는 “그런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을 보장받으며 일할 수 있는 세상”을 자연스럽게 꿈꾸게 됐다고 말했다. 7월 7일 오후, ‘럭키 세븐’이 두 번이나 겹친 날답게 유쾌하고 정감 가는 인터뷰였다.

 

[어릴 적부터 꿈꿔온 공익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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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계기로 공익변호사가 되셨는지 궁금해요

박애란 변호사(이하 박): 맨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게 언제부터인지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인 것 같아요. 저희 집이 대가족이었어요. 부모님, 형제들,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시고 10명이 바글거리며 살았죠. 그중 마르크스 철학을 전공하시고 지금은 교수인 삼촌이 한 분 있어요.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제 기억에 삼촌이 매일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서 운동권 활동 하면서 집에 와서 세미나를 했어요. 노동자, 권리 이런 얘기들을 어려서부터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게 당연히 정의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런데 나중에 보니 굉장히 소수의 사람만 그렇게 생각하고 살더라고요. (웃음) 근데 저는 이미 그런 쪽 일을 해야겠다고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양한 공익인권 분야 중에서도 환경보건이라는 분야를 하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 저희 부모님 고향이 섬이었는데요. 그곳의 예쁜 별, 나무, 산 이런 자연을 보며 자라다보니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게 너무 싫더라고요. 특히 저는 무서운 게 싫고 건강하고 쾌적하게 살고 싶거든요. 그런데 자꾸 개발하면서 환경을 파괴하면 어떤 재해가 생길지 모르잖아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원전 숫자가 단위면적당 세계1위예요. 그런데 앞으로 원전사고가 세계 어디서 일어날지 확률적으로 계산했을 때 한국이 1위래요. 누구나 건강하게 살고 싶지 아프면서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그래서 누구나 건강하게 살 권리에 대해 생각하고 살 것 같고요. 또 민변 환경위원회 분들이 너무 좋기도 하고요.

 

[가리왕산과 석면광산,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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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소송은 승소하기 어렵다고 들었어요. 혹시 겪으셨던 패소 사건이 있나요?

박: 힘든 일이 많이 있어요. 겪었던 일로는 가리왕산 사건이 있겠네요. 가리왕산은 초년생부터 다년생 주목이 분포하고 있는 아름다운 산이에요. 정부가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2018년 평창올림픽 활강 경기장으로 사흘 사용하겠다고 복원 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 공사를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민변에서 2014년에 공사중지가처분신청을 했었죠. 제가 맨 처음 민변에서 맡은 사건이기도 해요. 그런데 가리왕산 사건에서는 주변 주민들이 가리왕산에서 얻는 환경 상 이익을 입증하지 못해 패했어요.

 

가리왕산 사건에서 문제가 됐던 것은 원고적격이었어요. 외국에서는 자연물에도 원고적격을 인정하고, 일정한 조건을 갖춘 단체가 대리하게 해요. 가리왕산 자체가 소송이 가능했다면 피보전권리에 대한 고민은 필요가 없었겠죠. 이 부분은 앞으로도 생각해봐야할 문제라고 봐요.

 

충남 청양군 폐석면광산 관련해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셨던데, 관련한 얘기가 듣고 싶어요.

박: 일단 우리나라에 석면광산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시죠. 서울 면적의 10배 정도, 전 국토의 6%가 석면광산이에요. 석면광산이 다 충청남도나 강원도에 있다 보니까 그런 사실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석면이 1급 발암물질이거든요. 이것이 최근에야 알려졌고 석면안전관리법도 2011년에서야 제정되었어요. 그 전에 석면광산에서 개발이 이루어진 경우 관리도 안 되고 있죠. 또 주민들에게 지질도 공개도 투명하게 하지 않았고요.

 

참고로 저희는 학교에서 석면마감재를 못 쓰게 한 이후로 학교를 다니게 한 세대거든요. 그래서 석면이 뭔지 제대로 본 사람이 별로 없어서 특히 심각성을 몰랐던 것 같아요.

박: 제가 있는 특위가 맡고 있는 사건은 충청남도 청양군 강정리의 석면광산이에요. 거기는 광산 위에서 폐기물 처리장을 운영하고 있어요. 폐기물 차량이 오가면서 석면이 날리고, 그로 인해 주민들이 석면폐증, 진폐증, 폐암 같은 걸로 고생하시고 계세요. 충남 산하의 특별위원회(충청남도 청양면 강정리 석면 폐기물 문제해결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제가 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죠.

 

거기 주민 분들은 바로 옆에 산에서 그런 일이 있는데, 먼지 날리지 말라고 이 성분들을 바닥에 뿌려놓고 사세요. 나중에야 석면 원석 성분을 바닥에 깔고 썼다, 이렇게 아신 거죠. 이런 것들이 빨리 정리가 되어야 하는데 너무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어 안타까워요.

 

특위가 최근 이 폐기물 처리 업체가 최종처리업 관련해서 청양군수를 상대로 낸 폐기물 처리 사업계획서 부적정 통보 처분 취소 소송에서 기각 판결을 이끌어냈고, 기존에 하던 사업인 중간처리업 관련해서도 청양면에 직무이행명령을 내리도록 권고해서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죠.

 

직무이행 명령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요?

박: 충청남도에서 청양군한테 폐기물처리업이나 석면을 관리하는 것을 위임을 해준 상태에요. 청양군이 석면광산에 대해 실태조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거죠. 지금 몇 년이 지났는데 실태조사 같은 것도 한 번도 못한 상황이에요. 그런데 이번에 충청남도에서 직무이행 명령을 받아줘서 청양군한테 직무를 이행하라고 명령을 내린 거죠. 이걸 청양군이 받아주면 실태조사도 할 수 있고 그곳에 조사목적으로 들어갈 수도 있게 돼요. 사실 이전에 들어가려고 몇 번 시도해봤는데 번번이 막혔어요. 영장이 없었으니까요. 지금 그래서 여러 가지 혐의가 짙을 때는 영장 받아서라도 갈 수 있으니 그런 방법을 검토 중이에요. 이후에 실마리가 조금이라도 풀리기를 바라고 있어요.

 

월성원전 1호기 수명연장무효소송에서 승소하시기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오랫동안 실패만 하면 지속이 안 될 텐데, 한 번씩 이길 수도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생각 들었어요.

박: 네! 월성 원전 사건을 하면서 선배 변호사님들께 많이 배우며 일을 도와드렸어요. 어쨌든 월성원전 1호기 이겼을 때 정말 기분은 정말 좋았습니다. 눈물 흘렸어요. 저는 변호사로 활동한 시기가 길지 않아 아직까지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노동환경과 산업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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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위 활동 외에도 요새 주력하고 있는 일이 있으신가요?

박: 저는 환경쪽에 관심이 많아서 지금 박사과정으로 환경법을 전공하고 있기도 해요. 이제 논문을 써야 하는데, 환경법에 대해 법철학적인 관점에서 검토를 해보고 싶어서 논문주제를 잡고 있어요. 또 노동법에도 관심이 많은데 특히 산업재해에 관심이 많아요. 산업재해가 크게 보면 결국 노동환경이 잘못 되어서 벌어진 일이잖아요?

 

산업재해 관련해서 제가 하고 있는 사건이 반올림과 함께,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다발성 경화증, 유방암을 앓고 계시는 두 분의 대리를 하는 것이에요.

 

다발성 경화증 사건은 언론에도 많이 나왔죠. 다발성 경화증은 뇌에 중추신경에 수초라는 부분이 손상이 되면서 몸에 이상이 나타나는 질병인데 병소의 예측이 어려워요. 손발이 마비될 수도 있고, 실명이 될 수도 있죠. 김미선 님은 17세에 일을 시작해서 3년간 일한 뒤 다발성 경화증에 걸렸는데, 거의 실명이 되셨어요. 산재를 신청하셨고, 1심에서 승소했는데 근로복지공단의 항소로 2심을 진행 중이에요. 유방암 같은 경우는 삼성반도체의 하청업체에서 발생한 사건인데, 현재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에 대해 문서제출이 이루어져 역학조사 보고서와 비교 분석하는 일을 했어요.

 

두 사건을 대리하며 드는 생각은, 노동자들이 최우선으로 제 몸 하나만큼은 지킬 수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런데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제대로 교육도 이루어지지 않아서 어떤 물질이 자신의 몸에 어떻게 유해한지도 모르고, 작업환경 측정자체도 너무 부실하게 일부 물질에 대해서만 되어있고요. 각 기관마다 어떤 유해 물질이 발생하는지 꼼꼼하게 조사해서 안전 장비 등을 제대로 갖추게 해야 하고, 또 그렇게 문제가 터지면 문제 사실을 제대로 공개하고, 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세우고 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그런데 기업 쪽에서는 작업환경 측정 결과가 업무상 비밀이라고 공개를 안 해요. 법원에 문서 제출 명령을 신청하고, 정보공개 청구를 하고 해서 문서를 받아보게 되어도 정작 중요한 화학물질은 다 가려져서 오는 경우가 많고요.

 

특정 상품의 제작과정이 산재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과정이라면, 즉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면 상품화되면 안 되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박: 제가 보니까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LCD사업장 같은 경우에는 클린 룸이라고 해서 먼지가 조금도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방진복 입고 작업을 해요. 그러다 보니까 환기도 안 되고 해서 안 좋은 것들을 자꾸 흡입하게 되죠. 그러다보니 다들 병 얻고 나서 ‘돈 없어서 이렇게 위험한 일 한 게 한이 된다.’고 말씀하세요. 가슴 아프죠.

 

또 이게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아요. 어떤 피해자 같은 경우는 산재 신청할 때 괜히 이러다 회사 망하게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하시고,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마음에 넘어가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래서 노조가 있는 건가보다 생각했죠. 사업장이랑 인간관계 끊기고 싶지 않을 때, 개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이 있을 때 노조가 많은 일을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노조의 관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도 느꼈던 것 같아요.

 

[공익전담변호사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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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전담변호사로서의 삶은 어떻다고 생각하시나요?

박: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소송이나 이런 일들이 너무 좋은 게, 하는 일들이 정말 의미 있게 느껴져요. 또 ‘무슨 사건을 해라’ 위에서 떨어지는 구조가 아니고, 제가 하고 싶은 사건이 있어서 그걸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열정이 더 생기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기분을 느껴요. 어떻게든 이걸 해내야 된다는 생각이 들고요. 공익변호사라는 직업의 단 맛을 봐버린 것 같아요.

 

그래도 공익변호사가 하는 일이라는 게 최전선에서 싸워야 하는 거잖아요. 상대편의 옳지 않은 행동을 보면서 화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화라는 게 에너지도 되지만 오래 가지고 있으면 지치기도 하는데, 일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 무엇일까요?

: 저도 상대편이 밉지만 그 상대편의 실체가 없을 때가 많아요. 구조나 시스템 같은, 보이지 않는 것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대다수라는 거죠. 기업이나 국가는 선의로 벌인 일이라고 해도 그게 나쁜 결과를 일으킨다면 제도적으로 잘라내야죠.

 

그리고 힘든 일이 많이 있지만 맘 맞는 변호사님들끼리 모여서 같이 화내고 술 먹고 이러다가 풀고 힘내고 해요. 특히 민변 환경위에 좋아하는 변호사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제가 맨 처음 가입을 했을 때부터, 권위의식 하나 없이 편하게 대해주시고. 사람들이 너무 좋으니까 같이 만나서 일하는 과정이 전부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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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공익 변호사 쪽을 생각하는 예비 로스쿨생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이 있으신가요?

박: 저는 공익변호사 생활에 되게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물론 이 활동이 지속 가능할까, 이런 고민들은 항상 있어요.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은 계속 안고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만 각오하시면 일은 너무 재밌고 좋은 사람들도 훨씬 많이 만날 수 있어요. 그리고 변호사이기도 하지만 활동가로서도 일하는 셈이니까 성격적으로 그런 것이 맞기만 하면 엄청 재미있을 것 같아요. 추천합니다.

월, 2017/07/2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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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광주전남지부입니다. 최근까지 우리 지부 사무처와 각 단이 주도하여 진행한 우리 지부 사업과 활동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1. 사무처

가. 지부 임시총회 및 민변 광주전남지부 창립 17주년 기념식 (2016. 9. 7.)7h3Ud0151vkrkhgq13uty_zi5dvs 33hUd015libzpc171rtg_zi5dvs 61eUd0151jjdk5bti5f5f_zi5dvs 72aUd0159f40hzplfjxt_zi5dvs

1999. 9. 3. 11명의 변호사가 모여 창립한 우리 지부가 올해로 17번째 생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지역에서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달려온 지난 17년 역사를 되돌아보고, 지부 회원 50명 시대를 맞아 더욱 비약하는 지부의 미래를 다짐하고자 9. 7. (수) 지부 임시총회와 겸해 우리 지부 창립 17주년 기념식(이하 ‘지부 창립기념식’)이 있었습니다.

먼저 지부 임시총회에서는 우리 모임에 가입을 신청한 안현주 변호사(연수원 34기,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와 전경인 변호사(변시 1회, 대한법률구조공단 광주지부)의 신입회원 가입 승인 안건이 통과되었습니다. 이어 지부 창립기념식에서는 김용채 변호사님(연수원 13기)에 대한 공로패 증정, 지부 활동 영상 상영, 기념촬영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나. 11월 지부 임시총회 (2016. 11. 2.)20161102_184123 20161102_184347

올해 4번째 지부 임시총회를 아래에 적을 2016 민변 소개마당 & 변론경험 나누기 행사 전에 진행하였습니다. 지부 임시총회에서는 우리 모임에 가입을 신청한 김수지 변호사(변시 5회, 변호사 장정희 법률사무소)에 대한 신입회원 가입 승인 안건이 통과되었습니다.

다. 2016 민변 소개마당 & 변론경험 나누기 (회원사업단과 공동 주관, 2016. 11. 2.)DSC09108 DSC09111 b72Ud01514mqr20tujd2m_o74us3 bg4Ud0151hzafbji6pb3_o74us3 DSC09104

지역에 있는 신입 변호사들에게 우리 모임을 알리고, 선·후배간 변론활동 경험을 공유하고자 2014년부터 진행한 ‘민변 소개마당 & 변론경험 나누기’ 행사가 열렸습니다. 변시 5회 출신 신입 변호사 11명과 함께 진행한 이 행사에서는 민변 활동 소개, 선·후배 변호사들의 인사말, 변론경험에 대한 질의와 응답의 순으로 진행하였습니다.

라. 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路 9월의 쌩쌩파티 ‘辯’ (2016.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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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지역 공공정책 연구와 토론을 목적으로 발족한 지역 싱크탱크 조직인 「광주路」 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이 단체에서는 매월 1회 단체 소속 회원 탐방을 통해 단체간 교류와 함께 지역 의제 발굴의 통로를 마련하고자 ‘쌩쌩파티’ 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번 9월은 광주路와 우리 지부가 함께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습니다.

30여 명이 모여 진행한 쌩쌩파티에서는 광주路와 우리 지부에 대한 소개를 비롯해 다양한 토론을 통해 민변을 알리고, 지역 문제에 대한 서로간의 생각을 나누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2. 공익소송기획단의 주요 소송사건 경과

가. 한전 직접활선공법 관련 공익소송

앞선 지부 보고에서 자세히 적었듯 한전의 직접활선공법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전기원 노동자들을 대리해 소제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 남영전구 수은유출 관련 피해 근로자 공익소송

역시 앞선 지부 보고에서 적었듯 남영전구의 수은 유출로 인해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을 대리해 국가와 남영전구를 상대로 위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다. 5·18 명예훼손 관련

현재 우리 지부에서 대리해 진행하고 있는 5·18 명예훼손 관련 소송은 뉴스타운 호외 발행 금지 가처분 사건, 세 차례의 고소사건(형사), 관련 손해배상 청구(민사)입니다. 그런데 지만원 측에서 최근 「5·18 영상고발」 이라는 책을 500부 발행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소위 ‘광수’ 로 지목당한 4명의 광주시민이 가처분, 소송, 고소 관련 5·18 기념재단에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지부에서는 관련 소송팀을 구성해 이 달 말 안으로 고소사건 접수를 비롯해 정식으로 사건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3.법률구조단의 주요 법률구조 사건 경과

가. 이00 목사 유신 집시법 관련 위헌제청 심판 인용

우리 지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이00 목사의 긴급조치 9호에 따른 재심 및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사건을 위한 선결적 쟁송인 유신 집시법 관련 위헌제청 심판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 결정되었습니다. (2014헌가3)

4. 회원사업단

가. 회원사업단 주최 제2차 선배변호사와의 대화 (2016. 7. 15.)7geUd015rd03gptfza9u_zi5dvs 37gUd015jbg5e3zp6tor_zi5dvs 058Ud0151b68qnppxeybf_zi5dvs 177Ud01511bc5d7v69sr5_zi5dvs

회원사업단 주최 두 번째 선배변호사와의 대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행사는 우리 지부 7대 지부장을 역임하신 임선숙 변호사 (연수원 28기, 법무법인 이우스 대표변호사)를 모시고 19년차이자 여성 변호사인 임선숙 변호사님에 대해 여성변호사로서 처리해야 하는 다양한 문제, 자녀 육아문제, 기타 개업 변호사로서 겪는 실무상의 문제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후배변호사들의 질의와 임선숙 변호사의 답변 등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임선숙 변호사는 먼저 “사람을 만나는 것은 때가 있으며, 만나는 사람과 만나는 자체가 가치가 있으므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고 후배 변호사들에게 당부했습니다. 또한 임 변호사는 “먼저 궂은 일, 힘든 일을 맡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임선숙 변호사는 “여러 봉사, 학회, 경영자 과정 등 만들어진 조직을 포함해 자신이 관심있는 것들에 대해 적극 활용하며 참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 을 강조했습니다. 변호사에 대해서는 “변호사란 분쟁해결사이기 때문에 일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법원에서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의뢰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고 덧붙였습니다.

나. 지부 여름 야유회 (2016.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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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부 여름 야유회가 2016. 7. 23. 담양 파라다이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무척이나 더운 여름날 지부 회원들과 회원들의 가족이 모여 스피드 게임, 족구, 단체 게임 등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5. 지부 내 연구 모임 활동

가. 농업법 연구회

1) 「맛있는 식품법 혁명」 의 저자 송기호 변호사와 함께하는 농업법 이야기 (2016. 7. 22.)4b1Ud01511cgwtxhl6az_zi5d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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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법 연구회 주최 「맛있는 식품법 혁명」의 저자 송기호 변호사와 함께하는 농업법 이야기 행사가 7.22. (금) 18:00 지부 사무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농업법, 통상 관련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님은 농업법 관련 법률가들이 할 수 있는 영역과 업무를 중심으로 본인이 진행한 변론 사례와 본부에서 연구한 농업 관련 법체계 자료 등을 가지고 2시간 넘게 조용하지만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이어주셨습니다. 무엇보다 대표적인 농도 광주전남에 있는 법률가들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하였습니다.

2) GMO 작물 개발이 우리 농업에 미치는 영향 및 법/제도의 문제점 (2016.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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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법 연구회에서 지난 7월 송기호 변호사의 농업법 강연에 이어 두 번째 강연이 있었습니다. 이번 강연은 우리 지부 포함 14개 시민사회단체 공동으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GMO 작물이 우리 농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고, 법과 제도상 문제는 없는지에 대해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은진 교수를 모시고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601호 강의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나. 미국인권판례연구회 (약칭 ‘미인회’)90cUd015pvtjoulrafmz_1qy7ma

상반기 주 1회 모임을 진행한 미국인권판례연구회가 하반기 모임을 진행하고,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 젠더법 케이스 스터디 모임KakaoTalk_20161123_135539977

젠더 이슈 관련 사건의 법률지원 과정을 공유하고, 연구하기 위해 젠더법 케이스 스터디 모임이 구성되어 10. 10. 1차, 11. 14. 2차 모임을 진행하였습니다.

6. 연대투쟁

가. 故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책임자 처벌! 살인정권 규탄 광주투쟁본부20160927_100556 20161005_121133 20161005_121151 20161005_121214

지난해 11. 14. 민중총궐기에 참석했다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300일 넘게 의식 불명 상태로 서울대학교 병원 중환자실에 있었던 백남기 농민 (전남 보성) 이 9. 25. 영면하였습니다. 지역에서는 9. 27. 5·18 민주광장에 故 백남기 농민 광주시민 분향소를 설치하고,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한 것을 시작으로 「故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책임자 처벌! 살인정권 규탄 광주투쟁본부」를 구성해 활동하였습니다. 우리 지부 역시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위 투쟁본부에 결합하는 한편 10. 5. 월례회와 겸해 5·18 민주광장에 설치된 분향소에 합동 조문을 하였습니다.

나. 박근혜 정권 퇴진 광주시민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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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실세 최순실 일가의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현 사태는 박근혜 정권의 헌정질서 파괴로 확대되어 100만이 넘는 국민들이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지역에서는 1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박근혜 정권 퇴진 광주시민운동본부」를 11. 9. 결성하였습니다. 우리 지부 역시 현 시국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함께하기 위해 위 시민운동본부에 결합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부 자체적으로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민변 광주전남지부 비상시국회의」를 11. 7.부터 매주 월요일 17:00에 지부 사무실에서 열고 논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11. 12. 서울 광화문에 우리 지부 9명의 회원이 상경해 촛불집회에 참여하였고, 지난 11. 19. 광주에서 열린 10만 시국촛불대회에는 지부 회원과 가족을 포함해 20여 명이 참여하였습니다.

다. 5·18 최후의 항쟁지 옛 전남도청 보존을 위한 범시도민대책위원회20160930_133502

광주광역시와 시의회, 시교육청, 5·18 단체 등 25개 단체가 참여한 옛 전남도청 복원과 보존을 위한 범시민대책위원회가 지난 10. 4. 결성되었습니다. 최근 옛 전남도청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민주평화교류원으로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총탄 흔적 등 역사 현장이 훼손되는 등의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5월 단체 등이 옛 전남도청 원형 보존을 위한 천막농성을 지난 9. 7.부터 무기한 진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 지부는 위 대책위원회에 참여하는 한편 관련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상 광주전남지부 소식이었습니다.h24Ud0151i9xq6oqnjuo1_wv2xao

수, 2016/11/2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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