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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NECTION X 웹툰] 19화 / 북한의 대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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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NECTION X 웹툰] 19화 / 북한의 대화법

익명 (미확인) | 금, 2016/12/3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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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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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LGBTI활동가 마츠오카 소시

이번 발렌타인 데이에도 전세계 수백만 명이 그들의 사랑을 기념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국가와 사회에서 당신의 사랑을 동등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아시아 각국의 LGBTI 활동가 다섯명이 이번 2월 14일을 어떻게 보낼지와 함께, LGBTI에 대한 모든 차별을 중단시키기 위해 각자가 바라는 점을 전해 왔습니다.

 

마츠오카 소시는 도쿄대학교에서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있는 학생이자 활발하게 활동 중인 작가다. 그는 LGBTI 문제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 학교별 세미나에 참석해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발렌타인 데이와는 꽤 거리가 멀다고 여긴다. 발렌타인데이가 이성애적 관계를 전제로 한 기념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당신의 성적 지향성을 알게 되었나요?

제 성적 지향에 대해서는 청소년기 초반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요. 동성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끌렸죠. 처음에는 정말 남자를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그저 동경일 뿐인지 확신이 없었어요. 전 “아니, 그럴 리가 없어” 라고 생각했죠.

제가 게이라는 걸 깨달은 건 중학교 때였어요. 남자는 여자를 좋아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통념 때문에 조금은 불안했죠. 이제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지? 결혼은 할 수 있을까? 엄마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일본의 LGBTI 활동가 소시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저를 보고 “게이 캐릭터”라며 놀리곤 했어요. 그러다가 “너 진짜 게이야?” 라고 묻기도 했고요. 저는 대답할 수가 없었어요.

나고야에 살던 저는 결국 도쿄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했어요. 도쿄로 떠나기 전인 봄방학 때, 친구들에게 제가 게이라는 사실을 고백했죠. 친구들은 아주 잘 받아들여줬고, 그 중 한 친구는 고맙게도 이렇게 말해줬어요. “게이라는 건 너를 이루는 여러 가지 특징 중 하나일 뿐이야. 나한테 너는 그냥 너야.” 이렇게 멋진 친구를 둔다는 건 정말 행운이었어요. 이전까지는 성 정체성이 저라는 사람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죠.

 

커밍아웃을 했을 때 가족들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대학교 2학년이 됐을 때, 휴일을 맞아 찾아오신 어머니가 여자친구는 없느냐고 물으셨어요. 저는 “아, 또 시작이네”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 때, 어머니가 남자친구는 없느냐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때까지만 해도 가족들이 제 성적 지향성에 대해 알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어머니께서는 알음알음 소문을 듣고 알게 되셨던 모양이에요. 어머니의 함정에 걸려든 거죠!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플 때 옆에 있어줄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중요한 거야. 넌 워낙 허약하니까 그게 제일 걱정돼. 그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신경 안 쓴단다.’ 정말 ‘힙’한 어머니시죠.”

한번은 파트너와 함께 나고야에 있는 부모님 댁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가족들에게 파트너를 소개했더니, 모두들 우리의 성적 지향성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저의 “소중한 사람”으로 대우했어요. 분명 다들 우리의 성적 지향성에 대해서 생각을 안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걸 캐묻지 않았어요. 정말 자연스럽게 우리를 받아들여줬어요.

 

공공장소에서 파트너에게 애정을 표현하나요?

공개된 장소에서는 서로 손을 잡거나 애정을 표현하지 않아요. 저는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타입이라, 그런 건 하지 않아요.

파트너와 만난 지는 이제 2년 반이 됐지만, 우리 사이는 거의 변함이 없어요. 마치 노인 부부 같죠. 사소한 말다툼 외에는 별로 싸운 적도 없어요. 갑작스런 감정의 폭발 같은 것도 없이, 처음부터 아주 잔잔한 관계였어요.

 

발렌타인 데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학생 시절, 발렌타인 데이는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이었어요. 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행사였죠. 그래도 저는 초콜릿을 정말 좋아해서, 초콜릿을 받으면 항상 기분이 좋았어요!

어떤 게이 커플들은 “여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나 “더 여성적인” 사람이 초콜릿을 주기도 하는데, 저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화이트데이(3월 14일: 일본에서는 발렌타인 데이로부터 한 달이 지난 후, 남성이 초콜릿을 준 여성에게 선물을 줘야 함)에는 초콜릿을 준 여자 친구들에게 답례품을 주면서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어요. 파트너에게 초콜릿을 주기도 하고요.

그러니 발렌타인 데이에 대해서는 별로 좋은 추억이 없다고 할 수 있겠죠. 전적으로 이성애적 관계만을 전제로 한 행사였기 때문에, 저는 배제당한 기분이었어요. 제가 초콜릿을 주고 싶은 사람도 있었지만, 초콜릿을 사는 사람은 보통 여자였기 때문에 남자인 저는 그러기가 망설여졌죠.

 

올해 발렌타인 데이는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요?

지금까지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요즘은 친구나 동료들에게 선물을 주는 게 흔한 일이잖아요. 미래에도 발렌타인 데이가 있다면, 그때는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보다는 누구나가 가족, 친구,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날이 되기를 바라요. 사람은 모두 서로 다르잖아요. 사랑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LGBTI를 위해 어떤 변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나요?

LGBTI가 더욱 수면 위로 드러나야 해요. 누구나 성소수자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이들과 친구가 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매체에서는 성소수자와 그 외의 사람들을 완전히 분리시키고 있어요. 그래서 LGBTI에 대해 가장 흔히 알려진 고정관념이 여성적인 행동을 하는 트랜스젠더 여성의 모습이에요. 그 때문에 사람들은 제가 성소수자라고 하면 놀랄 때가 많아요.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남자처럼 생겼거든요.  LGBTI는 사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근본적인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정말 좋을 거예요. 그러면 일자리를 구할 때나 여러 가지 상황에 처했을 때 편견을 마주할 일이 없겠죠. 또, 결혼제도에 대해서는 누구나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겠지만, 저는 이성 커플은 결혼할 수 있으면서 동성 커플은 할 수 없다는 건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동성 결혼도 인정되는 날이 오길 바래요.

월, 2018/02/2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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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 취소 규탄

 

대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미국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 규탄한다

 

어제(5/24)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개서한을 통해 6월 12일로 예정되어 있던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한미정상회담과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직후였다. 이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각고의 노력과 전 세계가 보내는 지지에 명백히 역행하는 무례한 행위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미국의 갑작스러운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를 규탄하며, 미국이 정상회담을 비롯한 대화의 장으로 돌아올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최근 발언에 나타난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을 회담 취소의 이유로 들었지만, 미국 역시 ‘리비아 방식’, ‘선 핵 포기 후 보상’ 등을 언급하며 사실상 북한을 자극해왔다. 북미 간의 적대적인 수사는 무엇보다 진정성 있는 정상회담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했다. 

 

남북 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을 두 팔 벌려 환영했던 한반도의 주민들은 최근의 한미연합공중훈련과 남북 고위급 회담 취소, 그리고 갑작스러운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에 깊은 실망을 느낀다. 우리는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대화의 힘을 확인했으며,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갈등을 해소하고 한반도의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이룩할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대화와 협상뿐이라고 믿는다. 대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성명 [원문보기/다운로드]

 
금, 2018/05/25-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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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여년간 이른바 ‘먼저 온 통일’라고 불리워온 북한출신 주민들이 한국사회에서 겪었던 선행 통일경험은 오늘날 평화체제 이행을 앞둔 한국사회에 시사점을 주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한국사회를 야반도주하다시피 떠났던 탈북민들의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2016년 통일연구원 탈북민 조사결과에 의하면 응답자의 16.2%가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응답하였다.

다큐멘터리영화 ‘북도 남도 아닌’ 탈남하여 유럽으로 간 탈북인들이 본 한국사회에 대해 담담하지만 솔직한 목소리를 제공한다. 그들은 단지 ‘부적응’하거나, ‘선진국 복지를 찾아’, 단순히 ‘차별 때문에’ 대한민국을 떠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국가권력의 정치적 동원, 공안기관의 지속적인 감시, 탈북자라는 낙인과 배제 등으로 한국사회에 희망이 없기에 떠났다고 말한다. 2017년 현재 한국에서 거주하는 탈북인들 역시 탈북자라는 낙인 그리고 배제로 마치 유리벽에 갇혀 있는 것처럼 답답하다고 심정을 토로한다. 한 탈북청소년이 최중호 감독에게 썼다는 쪽지, “탈북자는 언제까지 탈북자예요?‘라는 질문은 곧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우리는 얼마나 정상국가인가’ 라는 질문으로 평화이행기를 앞둔 우리에게 되물어지고 있다.


 

따뜻한 남쪽 나라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2016과 2017년에 잇달아 개봉된 두 개의 다큐영화는 탈북민 연구를 십 수년간 해온 나로서는 부끄럽고 놀랍도록 우리 사회 탈북민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잡아낸 영화이다. 뉴스타파 최승호감독의 ‘자백’과 최중호감독의 ‘북도 남도 아닌’ 다큐멘터리 영화는 ‘먼저 온 통일’이라고 불리워왔던 탈북민들이 경험한 대한민국 국가권력의 뒷모습과 한국사회의 민낯을 담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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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감독의 ‘자백’ 영화(왼)와 최중호 감독의 ‘북도 남도 아닌’ 다큐멘터리 영화(오) (사진: 영화 ‘자백’ 포스터 엣나인, 북한인권국제영화제)

한국에 온 탈북민들에게 국가권력은 야누스와 같은 존재였다. 탈북인들에게 국가는 국내취약계층보다 한단계 높은 수준의 물질적 보상을 제공하였지만 그것은 절대로 공짜가 아니었다. 입국시에는 6개월까지(현재는 3개월로 줄임) 구금이 허용되는 국정원에서 전쟁포로보다 열악한 ‘간첩 골라내기’ 실험장에 놓여 북한 내부 정보를 제공하였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간첩으로 조작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지난 10여년간 국가권력에 의해 국정원 댓글사건, 반 세월호집회 알바시위 등 불법적이고 반민주적인 행위를 수행하도록 그들은 동원되었으며, 집단교육시설인 하나원에서 3개월간 숙박교육을 거쳐 세상에 나온 이후에도 ‘신변보호’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감시상황에 놓였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 북한을 떠났던 식량난민의 일부가 한국에 입국하면서 국내에 정착하는 북한이탈주민의 수는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북한주민의 대한민국 입국이 연 1,000명을 넘어서기 시작한 시기는 2001년부터이다. 그 이후 북한이탈주민 입국자 수는 2008년에 2,914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래 점점 감소하여 2018년 9월 말 현재 입국자 수는 808명에 불과하다. 향후에도 이 정도의 감소세가 지속된다면 북한이탈주민 입국은 10년 내아니 5년 내로라도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된다. 국내 입국 북한이탈주민의 감소 원인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북한의 경제적 정치적 상황 개선, 김정은정권이 탈북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는 점은 북한주민 입국자 수 감소의 주된 요인이 된다. 그러나, 한국의 척박한 정착여건 역시 북한출신주민 입국자 수 감소의 중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입국한 탈북주민들은 ‘먼저 온 통일’이라고 불리우면서 이질적인 탈북주민들과 남한주민과 어울려 사는 과정 그 자체가 일종의 ‘통일실험’이자 ‘사람의 통일’이라고 미화되었지만 그들이 겪은 현실은 아름답지도 녹록하지도 않았다. ‘먼저 온 통일’이 대한민국에서 겪은 선행 통일경험은 무엇이며 평화체제 이행을 앞둔 한국사회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되짚어보자.

 

북도 남도 아닌세상을 찾아 나선 이명준의 후예들

 

김일성수행 기자출신의 엘리트 이수근은 귀순직후 1967년 4월 1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에는 ‘사색의 자유’마저 없다”고 말했다. 북한 탈출직후 “이 세상에 지옥이 있다면 북한이 바로 지옥이다” 라고 말했던 이수근은 다시 한국을 탈출하려다 공항에서 잡혀 위장귀순으로 몰리게 된다. 그는 “남쪽도 틀렸다. 자유도 없고, 독재이고 해서 스위스 같은 중립국에 가서 살려고 했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최인훈이 쓴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처럼 이수근이 꿈꾸었던 세상은 “북도 남도 아닌” 세상이었다.

그러면, 49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북한을 떠나 따뜻한 남쪽 나라로 온 탈북인들이 오늘날 겪는 현실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신예 최중호 감독은 북도 남도 아닌 유럽으로 떠난 오늘날 이명준들이나 이수근들의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가 가난한 호주머니를 털어 갓 설흔의 싱싱한 감성으로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 ‘북도 남도 아닌’에서 비추어주는 탈북민 인권현실은 49년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유럽 현지에서 탈남한 탈북인을 만나 가진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이 영화는 한국에 정착했던 탈북민들이 겪었던 삶과 그들이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육성으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한국에 5년간 정착했다 영국으로 떠나 살고 있는 새동네지 편집인 최승철 씨 등 한국에 정착했다 해외로 나간 이들과 2018년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민 김 씨 등이 지적하는 탈북인의 현실은 다음 네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국가권력의 정치적 동원, 공안기관의 감시, 사회의 낙인과 차별, 분리와 배제, 한성무역 사기피해사건.

 

탈남한 탈북민들은 대한민국을 어떤 나라라고 말하는가?

 

한국을 떠난 탈북민들이 보는 한국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국가권력이 입맛에 따라 탈북민을 동원하는 사회이고 유리벽이라는 차별에 탈북민을 가두어 놓는 사회이고 낙인을 찍어서 감시하는 사회이다. 한성무역 사기피해사건에서 보듯이 국가권력은 보호라는 이름으로 감시를 하지만 막상 위험에 부딪히면 정작 보호받지 못한다. 모든 탈북민들이 잠재간첩으로 의심받고 때로 간첩으로 조작되며 궁극적으로 간첩을 필요로 하는 사회이다.

 

값싸고 충성스럽게: 국가권력이 탈북민을 동원하는 사회

 

유럽에서 망명을 신청한 최승철씨는 한국에서 경험한 국가권력의 관제시위 동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탈북자들이 원해서 데모를 하는게 아니고 데모 같은 거 가면 돈 줘요. 보수단체에서 돈 줘요. 거기 가면 뭐 주니? 한국사회가 나쁜 게 뭐냐면 뒤에서 조정하는 사람 있어. 관변단체, 국가에서 하라면 하라는대로 하는 거야. 행사 동원하면 돈 주니까. 대표적인 관변단체, 그 다음에 통진당 반대한다.. 교통비로 2만원씩. 그 다음에 탈북자들 댓글 알바 잘해. 자. 이제부터 무슨 사건 생겼으니까. 부화뇌동으로 탈북자들 희동시켜 놨으니까.

 

이같은 탈북자들의 증언은 그간 jtbc언론보도에서 밝혀진 바와 같다. 공식적인 선거운동이 아니라 국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을 조작하고 반대파를 음해하기 위해 은밀하게 진행되어온 범죄행위에 탈북민들이 연루되거나 시민적인 공감대가 큰 사안을 반대하기 위해 지난 정부에서 동원되었다. 예를 들어 세월호사건 등의 반대집회의 경우에는 5개월 동안 39회에 걸쳐 연인원 1,259명이 동원되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위동원시 탈북인 1인당 2~3만원의 수당이 제공되었다. 한 탈북인은 하나원에서 나온 직후에 다른 탈북자를 통해 국정원 댓글을 달게 되었는데 그때 그가 받은 돈은 한 달에 5만원이었다. 그들이 동원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국사람이라면 고액을 받고서도 꺼려했을 더러운 일들을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알고 적은 돈으로 하는 저렴하고 어리숙한 노동력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태의 가장 근본적이고 무거운 책임은 국가권력에게 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유리벽에 갇히다: 분리하고 배제하는 한국사회

 

내가 ‘북도 남도 아닌’ 다큐멘터리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본 등장인물은 한국 거주 7년차의 한 탈북남성이다. 영상은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을 비추고, 그는 자신들이 유리벽에 갇혀 있다고 절규한다. 그는 탈북민이 유리벽에 갇혀있는 현실이야말로 10만명당 OECD 국가 최고의 자살률을 자랑하는 한국 사람보다 몇 배나 높은 자살율을 초래한 이유라고 주장한다.

 

“탈북자들은 유리벽 속에 살아. 숨 막히게 숨 못 쉬게 유리벽 속에 가둬놨거든. 유리벽이라는 차별에 우리를 유리벽 속에 탈북자들을 가둬 놨거든. 그래서 한 유리창 깨고 나가면 또 유리창이 있어.”

 

그가 말하는 유리벽은 무엇인가? 그것은 공안기관의 감시에서 한국사회의 배제 나아가 분단체제까지를 포괄한다. 그들이 느끼는 절망감은 자살관련 데이터로도 증명되는데 사망자자가 많았던 2015년 상반기에는 사망자 대비 자살률이 한때 15.2%에 달했다(원혜영 의원실, 통일부자료).

 

낙인찍는 사회, 감시하는 국가

 

탈북민들은 자신이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밝히기를 꺼려한다. 동정하거나 얕보거나. 혹은 양쪽 다이다. 영국에 거주하는 최승철씨는 사업실패이후 회의에 빠져있을 때 자신의 친구가 “너 여기(한국) 와서 아무리 해봤자 너는 탈북자 아니냐? 거긴 진짜 다르다”는 말에 영국행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한 탈북여성도 아무리 한국 사람들을 흉내내고 살아도 자신들이 한국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동조한다.

 

북한사람들은 불쌍해요. 한국에서도 편견이죠. 왜 여기 와서 절망감을 느끼는가. 외형적으로 누가 죽이는 사람 없어. 이 사람들 아무리 한국 사람들을 흉내 내고 살아도. 한국에 오니까 자유스럽잖아요. 그게 다가 아니더라구요.(국내 거주, 40대 탈북여성)

 

사회에 나온 이후에도 계속 따라붙는 국가 공안기관들의 감시는 그들에게 말 못할 고통이다. 한 탈북민은 어느 정도 보안기간이 끝나면 그 탈북자라는 멍에를 없앴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늘 자신의 뒤에 그림자가 따라다니는 격이라는 것이다. 보안기간은 한계가 명확하지 않다. 많은 탈북민들은 수년은 물론 십년이 넘어도 계속 경찰이나 기무사가 연락하고 체크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한다. 유럽으로 떠난 한 군인출신의 한 탈북자는 그는 ‘감시’라고 할 정도의 관심을 받아야 했으며 결국 그가 한국을 떠나는 한 이유가 되었다.

 

“근데 그게 다 감시거든. 어디로 이제 가고 하는거 다 보고하라는 거야. 자기는 보호차원에서 그렇게 한데, 말은 그런데 감시차원이지. 그런 것들.”

 

신변보호경찰관은 공식적으로 말하는 보호의 이유는 북한의 테러 등 탈북자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상에서 탈북여성은 다음과 같이 신변보호의 본질을 간파한다. ‘감시’이지 보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우리 진짜 살아가면서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되거나 우리 살아가는데서 이 사람들이 도움을 주거나 그런 것은 없어.”

 

 

영화 자백에 나타난 국정원식 정치: 간첩이 필요한 대한민국

 

2017년 12월 박주민 의원실 주최로 열린 합동신문시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법률 개정안 설명회에 참석한 한 탈북민은 ‘국정원 앞의 탈북민은 마치 횟집 수족관의 물고기와 같은 운명이다’ 라고 말했다. 필요에 따라 국가기관이 횟감으로도 매운탕꺼리로도 골라 쓰는 게 탈북자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최승호 감독은 영화 ‘자백’에서 유우성의 여동생 유가려가 합동신문과정에서 어떻게 자신의 손으로 오빠를 간첩으로 고발하게 되었는지 과정과 심리를 자세히 보여준다. 그녀는 170일동안이나 고립된채 독방에서 수감된 채 합동신문을 거치면서 오빠인 유우성을 간첩이라고 자백하기에 이른다. 간첩이나 위장탈북인을 가려낸다는 명분으로 행하는 이러한 과정에서 탈북인은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며 폭력과 감시를 당하게 되며, 심리적으로 수사관에게 순응하고 굴복하며 심지어 감사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탈북자는 언제까지 탈북자인가요? ”

 

“탈북자는 언제까지 탈북자인가요?” 영화감독 최중호는 한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의 청소년에게 이같은 질문을 받았다. 대답은 명확하다. 현행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법률에 의하면 북한이탈주민의 지위는 입국후 5년간으로 한정되어 있어 2013년도 입국자부터 2017년까지 입국한 북한이탈주민(탈북민) 수는 6,731명이다. 탈북자는 5년까지만 탈북자이다. 그러나 법은 국가의 안보라는 현실 앞에 언제나 가볍게 무시된다. 통일부는 탈북민 3만2천명을 호명하여 이들을 별도의 분리된 정착지원체계로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얼마나 정상국가인가? 나는 이 두 개의 영화가 그려낸 탈북민의 현실에 깊이 공감한다. 이같은 현실은 가장 앞섰다는 탈북민 정착지원정책의 뒤에 숨어 가려졌던 대한민국의 민낯이라고 본다. 분단체제 국가권력이 언제까지 탈북민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그들을 일반사회에서 격리하여 별도로 관리할 것인가? 국정원 합동신문 6개월(2018년부터 3개월로 단축), 통일부 하나원 3개월 이어지는 각종 적응교육과 제2 하나원으로 불러들여 행하는 직업훈련 등. 별도의 교육, 별도의 행정체계, 별도의 취업지원체계. 분리는 통합을 역행한다. 새로운 전달체계는 별도의 조직과 인력을 필요로 한다. 별도의 분리체계가 과연 누구를 위해 필요한 지도 근본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남북한의 통일은 단지 두 개의 국가의 통합의 문제가 아니라 폭력체제의 희생자들을 사회로 통합시켜 내는 일이며 남한 내의 통합과 평화에서 시작되어야(김동춘, 2013)”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단체제의 경계인들에게 어느 편인지 더 이상 묻지도 말고 분리하지도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분단체제가 아닌 평화로운 세상. 탈북자라는 이유로 낙인찍거나 배제하거나 분리하지 않고 감시하지 않으며 간첩으로 만들지도 않는 사회, 노동에 대한 존중이 있는 사회. 평화체제는 일부 주류사회에 속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소수자들을 인정하고 통합하는 포용국가의 건설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한 탈북청소년이 물었던 “탈북자는 언제까지 탈북자인가요? ” 이 질문은 “탈북민에게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우리는 얼마나 정상국가인가?” 라는 질문으로 이 사회를 끌어가는 어른들에게 다시 되물어져야 한다. 이 질문은 탈북민을 위해서만 필요한 질문이 아니라 평화체제 이행을 앞둔 시민 모두를 위한 질문이다. 우리 안의 국정원식 정치와 분단체제의 뒤틀린 모습을 청산하고 대한민국이 정상국가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도정에서 꼭 풀어가야 할 질문일 것이다.

 

최승호 감독의 ‘자백(Spy Nation)’. 뉴스타파. (정재홍 극본. 2016. 106분 다큐멘터리)

최중호 감독의 ‘북도 남도 아닌(Why I Left Koreas)’ (최중호 극본. 2017. 90분 다큐멘터리)

화, 2018/11/1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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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여덟 명의 여성에게 2018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이야기하고 싶은 여성 인물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한국 대중문화 속 여성혐오에 대한 책 [괜찮지 않습니다]의 저자 최지은님은 송은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여성이 대중을 웃기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던, 팟캐스트 [송은이 & 김숙의 비밀보장]이 시작되었던 2015년은 말 그대로 암흑기였다. 데뷔 20년을 훌쩍 넘긴 두 베테랑 방송인조차 고정 프로그램을 모두 잃고 “애하고 시어머니가 없어서 방송 못 한다”는 자조적인 농담을 던지는 환경 속에, 수많은 여성 예능인들이 점점 더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눈에 띄는 자리는 모두 남성들의 것, 새로 생긴 자리도 거의 남성들의 몫이었다. 여성이 웃길 기회조차 씨가 말라 버린 원인에 대해, 인기 예능 작가 A는 말했다. “여성 시청자들은 남자를 좋아한다. 남성 시청자들은 예쁜 여자가 아니면 무관심하고, 나이 든 여자나 똑똑한 여자는 싫어한다.” 그를 비롯한 여러 제작진들은 시장의 관성, 시청자의 이중잣대, 여성 예능인 간의 네트워킹 부재 등을 언급했다. A는 덧붙였다. “이 모든 압력을 버틸 수 있는 여성 스타가 나타나면 달라질 수도 있다” 물론 그가 도저히 수행 불가능해 보이는 복잡한 조건들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의 얘기였다.

그때는 떠올리지 못했다. 송은이가 그 ‘초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로운 여성 스타가 나타나길 기대했지만, 개편 시즌마다 남자들이 숨만 쉬어도 방송 아이템이 되는 프로그램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며 체념하기도 했다. 그러나 송은이는 계속 만들어냈다. 유료 광고 대신 ‘지인 광고’로 팟캐스트를 시작해 제작사 ‘콘텐츠랩 비보’를 설립했고, 2017년 가장 핫한 예능 [김생민의 영수증]을 성공시킨 뒤, 방송 경력 합산 100년에 달하는 여성 예능인들을 모아 ‘셀럽 파이브’를 결성하며 웹 예능 [판벌려]의 막을 올렸다. 뛰어난 기획자이자 올라운드 플레이어인 송은이, 독보적 캐릭터와 비범한 감각의 소유자 김숙이 비춘 조명과 함께 이영자, 최화정, 박소현, 황보, 안영미, 김신영, 박지선, 신봉선, 이지혜 등 수많은 여성 예능인들의 존재감도 다시금 선명해졌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하게 웃길 줄 아는 여자들이 많다는 것, 게다가 그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여자들이라는 것은 그들을 배제해 온 시스템의 편향성과 게으름을 확인시킨다. 오랫동안 여성들을 끼워주지 않았던 ‘남성 예능’들은 요즘 앞다투어 ‘송은이 사단’을 초대한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아주 적은 기회만이 주어지고, 남성보다 몇 배의 능력을 증명해내지 못하면 문은 금세 닫힐 것이다. 하지만, 이미 흐름은 바뀌고 있다. 여성의 존재를 외면한 채 만들어지는 웃음이 얼마나 지루한지 깨닫지 못하는 세계는 계속 도태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이제 더 재미있는 세계가 있다. ‘나이 들고 똑똑한 여자’ 송은이가 그 문을 열었다. 아니, 만들어냈다.

글. 최지은
그림. 구자선

목, 2018/03/0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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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북한의 청년들은 장마당세대로 불리워 왔지만 기실 장마당에만 존재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편견이다. 8090년대에 출생한 북한청년들은 공장과 기업소, 대학 등 사회 곳곳에 있으며, 실리에 밝아 정치에는 무관심하지만 그래도 당간부는 되고 싶어하는 청년들이다.


한 세대 만에 열리는 남북청년회담을 기다리며

장마당세대 담론과 그들의 삶

장마당의 꽃제비 강민은 어쩌다 장삿꾼이 되었나

장마당세대, 타자화된 프레임을 넘어 김정은 개혁시대의 동반자로 떠오르다

일탈과 실험, 유행과 실리를 추구하는 장마당세대

이불 속에서 세계를 본다

8090 북한 청년들의 초상

북한사회를 주도할 엘리트: 종합대학출신 청년

-90년대생, 식량난의 타격으로 출생이 줄어들다

-“정치는 무관심하지만 당간부는 되고 싶어

남북의 8090: 평화로운 한반도를 맞이할 첫 청년세대

 

한 세대 만에 열리는 남북청년회담을 기다리며

남북한의 대학생들이 조만간 한 자리에 만나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할 날이 멀지 않았다. 못할 이유도 없다. 작년 8월에 남북노동자들은 서울 상암 경기장에서 통일축구대회를 열어 정을 나누고 평화통일을 향한 연대의식을 확인했으며, 남북경색기인 2015년에도 남북 노동자 통일축구대회가 열린 바 있다. 만약 2019년 올해에 남북 청년들의 회담이 성사될 수 있다면, 1989년 6월에 전대협 대표로 당시 대학 4학년이던 68년생 임수경 학생이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여 북한 조선학생위원회와 교류를 가진 이후 30년 만에 한 세대(generation)간 단절의 역사를 겪고 겨우 공식 만남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이미 작년 8월 22일에 서울대 총학생회에서 김일성대학 측에 남북 교류를 제안하는 메일을 보냈다. 이 제안에 북한 김일성종합대도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통일조국의 첫 세대는 청년들이 돼야 한다”고 바로 화답하였으나 서로 만나자는 약속을 다짐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올해 2019년도에는 남북 대학생들 사이에 교류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통일부의 교류허가도 받았다. 서울대 총학생회 말고도 서울권 대학언론연합회이 김일성종합대학에 토론회 개최요구를 비롯하여 한반도 평화대장정의 남북대학생 교류, 남북한 청년간의 숙의적 대화 구상 등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올해는 풍성하고 다양한 남북청년 간 교류사업이 기획되어 있다. 남북 청년들이 만날 수 있다면 서로 다른 체제에서 성장한 청년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커다란 기회가 30년 만에 도래한 것이다. 만약 이번 만남이 성사된다면 파워엘리트로 성장하면서 북한을 주도해나갈 남북한 청년들이 서로의 생각을 알고 교류할 중요한 기회가 된다. 이 기회를 꼭 잡아야 한다. 그럼 북한의 청년세대들을 8090년생들을 중심으로 들여다보자.

다큐멘터리 ‘장마당 세대(The Jangmadang Generation)’ 영상 캡쳐. 사진: 한국일보.

 

장마당세대 담론과 그들의 삶

장마당의 꽃제비 강민은 어쩌다 장삿꾼이 되었나

‘장마당세대’란 호칭은 북한의 청년세대가 시장경제를 추동하는 변혁의 동력으로 성장하리라는 기대를 상징한다. 1990년대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 태어난 북한의 ‘장마당 세대’를 북한 사회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으로 조명한 한 개의 다큐멘터리가 공개됐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16일(현지시간) 웹사이트를 통해 북한인권단체인 ‘북한의 자유(LINK)’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장마당 세대’를 공개하며, 이들이 북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전위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북한 장마당 세대를 서구사회의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와 비교하면서 고난의 행군시기 붕괴된 북한의 배급체계가 이들을 자립ㆍ자조의 자본주의 인간형으로 개조했다고 분석한다. 이 영화의 정점은 91년생 주찬양과 87년생 강민의 인생스토리이다. 이들은 일찍부터 시장(장마당)을 활용한 상품거래에 익숙했다. 2010년 탈북한 여성 주양(26)은 다큐멘터리에서 “쌀이 조금 남으면 떡을 만들고, 옥수수가 조금 남으면 옥수수 국수를 만들어 팔았고, 송이버섯을 따다 중국에 팔기도 했다”고 말한다. 9세 때 어머니와 헤어지고 ‘꽃제비’가 돼 소매치기로 생활하던 강민(30)이 장사로 나서게 된 동기는 보다 감성적이다.

아홉 살때부터 죽 장마당의 꽃제비로 살아온 강민이 장삿꾼이 될 용기를 내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어느날 훔치던 중에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음을 의식한다.

“그날도 내가 장마당에서 도둑질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하던 첫사랑이고, 짝사랑이고 그냥 (나의) 모든 것이었던. 그녀가 나를 보고 있는 거예요. 도둑질하는 모습을. 이미 전에 그 애는 제가 꽃제비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런데, 저는 그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어요. 이렇게 내가 살아야하나. 너무 부끄럽고.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그러다가 결심하게 된 게 그래, 내가 이런 식으로 살지 말고, 내 힘으로 한번 떳떳하게 살아보자. 그런 마음을 먹었어요.(강민, 30, 현재 남한 거주 자영업) ”

떳떳하게 내 힘으로 살고자 장삿일에 나선 강민은 그 후 중국으로부터 배터리, 양말을 사들여 내륙의 도매상들에게 팔아 돈을 벌었으며 남한에 온 이후에도 자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장마당세대, 타자화된 프레임을 넘어 김정은 개혁시대의 동반자로 떠오르다

워싱턴포스트(WP)가 이 다큐멘터리를 소개해서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들은 태생적 자본주의자이며 장마당세대들의 목소리는 “정부에서 해주는 것이 없으니 내 미래는 내가 개척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한 장마당의 탈북여성).”로 요약된다. 자본주의가 체화된 이들이 북한 사회의 주역으로 떠오르면, 북한 사회는 램프에서 빠져나온 요정 지니가 다시 램프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불가역적인 사회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라는 이야기이다.

기존에 언론이나 북한인권에서 말하는 ‘장마당세대’라는 프레임은 국가의 무력함과 시장에서 성장하는 개인과 청년들을 대비시킨다. 처음 장마당세대의 호명은 ‘변혁의 주체’로 불러내는 타자적 시각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일관성있게 시장을 허용하는 정책이 지속되면서 이같은 시각의 변화가 엿보이고 있다. 2018. 5.20일 방영된 sbs 드라마 스페셜, <‘84년생 김정은과 장마당 세대>기획의 관점은 장마당세대와 정권을 대립적 시각이 아니라 장마당세대를 84년생에 출생한 김정은 위원장의 통치 내내 함께 가야할 인구학적 동반자로 위치지우면서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민감하게 반영한 기획물이다.

 

일탈과 실험, 유행과 실리를 추구하는 장마당세대

Liberty in North Korea(LINK, 북한의 자유)에서 만든 ‘장마당세대’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장마당에서 살아온 80년대생들과 90년대 탈북청년들이 주인공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장마당을 근거지로 해서 살아가는 발랄한 청춘 87년생 강 민, 91년생 주찬양이 벌이는 자유로운 일탈과 실험, 그리고 실리를 추구하는 장마당 삶의 일단을 드러낸다. 일상속의 작은 반항들.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패션 따라 하기, 장마당에서 의류상을 하던 91년생 장마당세대들의 경험담을 소개한다. 한 여성은 중국과 한국에서 들여온 중고 옷을 팔기 위해 몸매가 예쁜 친구에게 그 옷을 입혀 장마당을 하루에도 열 번씩 입고 왔다 갔다 하면서 유행을 만든다. 그녀는 북한에서는 여자에게 금기시된 오토바이를 직접 운전하는 크러쉬걸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 머리를 만들기 위해 기계를 사서 노력한 끝에 전지현 머리에 성공하는 여성들도 있다. 노력에는 보상이 따른다. 결국 전지현 머리를 만드는데 성공한 그녀의 집앞에 전지현 머리를 해달라는 손님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유행을 선보일 때마다 밀수꾼들은 돈을 벌게 되고, 돈을 벌고 싶은 신세대 밀수꾼은 다시 새로운 유행을 창조해내게 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이불 속에서 세계를 본다

외부에 대한 관심에서 연령은 역시 가장 중요한 변수이다. 나이가 낮을수록 외부의 정보나 접촉을 중시하고 나이가 많을수록 그 반대이다. 반란은 이불속에서도 이루어진다. 이불속에서 노트북을 넣고 불빛을 죽인 채 한류드라마를 보던 경험, 친구들끼리 함께 한국드라마를 보고 정부가 금지한 행위들을 했던 경험들은 이들 청년세대 내부의 결속을 높이는 친밀한 경험들이다. 정부에서 하지 말라는 것을 볼 때 생기는 우정, 우리가 같이 보았을 때 생겨나는 우리는 가까운 친구라는 연대의식. 서로의 뒤를 봐주고, 통제를 피하면서 생기는 친밀감.

그러나, ‘장마당세대’라는 프레임에 가두어 두고 북한의 청년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외눈박이 거인일 수 있다. 장마당을 북한이해의 중심에 두고 청년들의 행태를 굳이 해석해내고자 하는 우리의 시장경제 중심적 시각은 숨겨진 그들의 다른 면을 보지 못하게 하는 함정이자 타자적 시각이다. 중국은 80년대 출생자들을 바링허우(80후)라고 부르고, 90년대 출생자들을 저링허우(90후)라고 부르면서 소비, 주거, 직업 등 다양한 시각에서 그들 고유한 세대적 특성을 보려고 노력한다.

 

8090년대 출생한 북한 청년의 초상

8090세대의 중심에는 <종합대학출신>의 파워엘리트가 있는가 하면, 주변부에는 장마당으로 상징되는 시장세력이 있다. 그런가하면 공식부문에서 조용히 착실하게 당간부를 향해 경력을 쌓으면서 성장하는 청년들도 여전히 있다.

80년대와 90년대에 출생한 세대들은 독자적인 세대의식이나 세대담론이 뚜렷하게 규명되지 않은 채 동일한 역사적 경험을 동일한 시기에 했다는 이유로 하나의 덩어리처럼 인식되어져왔지만, 특정한 세대 담론없이 바라볼 때 오히려 북한 청년들의 실체가 있는 그대로 잘 볼 수 있다. 8090세대의 내부를 들여다 보면 다양한 공식/비공식부문에 자리한 이질적인 집단이 공존함을 알 수 있다. 한 축에는 <종합대학출신>의 파워엘리트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장마당으로 상징되는 시장세력이 있다. 다른 한 축에서는 공식부문에서 착실하게 당간부를 향해 성장을 하고 경력을 쌓는 청년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 중에서 외부에 가장 널리 알려진 집단은 장마당세대이다. 과거 탈북청년들이 북한에서 살아온 삶을 많이 알리고 드러냈기 때문이다. 언론들도 주로 장마당에서 성장한 꽃제비의 이야기를 자주 조명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북한청년들의 한 단면만을 극대화하여 드러내는 것이다. 80년대와 90년대에 출생한 세대는 사실 장마당이라는 특정한 공간에서만 있는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와 공장과 기업소, 농장, 군대에서도 어디서나 발견된다. 일단은 우선 공장이나 기업소에 배치되기 때문에 공장이나 기업소에서 일하는 이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장마당이라는 비공식 부문에서 일하는 이들은 공장이나 기업소를 떠나 사회의 비주류, 내지는 주변부에 온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남성들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장마당에서 일할 수는 없다. 향후에는 남북한 청년들의 공식적인 만남과 현지방문이 봇물을 이루면서 새로운 흐름을 주도해나가야 할 것이다.

 

 

북한사회를 주도할 엘리트 종합대학출신 청년

한국사회를 주도하는 엘리트집단은 주로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 출신들이 공급하듯이, 북한 8090세대의 중심축은 역시 종합대학출신의 청년집단이다. 북한에서 종합대학이나 혁명학원은 특수한 위치를 점한다. 대학생 수는 인구 만명당 2017년도 현재 208명이다. 한국은 596.8명으로 한국의 1/3 정도이다. 2002년 전에서 북한의 대학은 4년제 대학만 치면 134명이었는데, 2003년도 통계부터는 어장대학이나 농장대학, 공장대학까지 포함하여 통계를 낸 결과이다. 북한 역시 교육열이 높아 부모들은 모두 대학을 보내기를 선망한다. 그러기에 고난의 행군기부터 공교육체제는 상당히 훼손되고 부패했지만, 여전히 대학졸업장은 북한사회를 끌어가는 매우 중요한 경력이다.

한국과는 달리 학생들은 고등중학교를 졸업한 후에 바로 대학으로 가기도 하지만, 군대나 직장을 거쳐 가는 경우도 많다. 북한의 대학생들은 한국의 수능에 해당하는 예비시험과 대학의 면접시험을 거쳐 대학에 가게 되는데, 무엇보다 출신 성분이 좋아야 하고 학교별로 조직되어 있는 청년동맹 활동에서도 우수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일단 이와 같은 조건을 갖춘 학생들은 각 도·시·군에 조직되어 있는 대학추천위원회의 사상검토를 거쳐 추천을 받아야 대학별로 치르는 입학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진다. 입학시험은 구술시험과 필답고사를 치르는데, 경쟁이 치열하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출신성분도 중요하지만, 학부모의 물질적 뒷받침이 더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돈이 많이 들어간다. 등록금은 내지 않지만 대학을 다니기 위해 돈이 만만치 않게 들어가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서 중도에 대학을 다니다 포기하는 경우들이 속출한다. 이제 북한의 대학은 명목상 등록금만 없을 뿐, 돈 없이 다닐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북한의 대입은 재수(再修)가 없다. 입시에서 탈락하면 바로 직장이나 군대로 가야 한다. 그러나, 한국과는 달리 바로 대학을 가지 못하더라도 2~3년간 직장을 다니다가 추천을 받아 대학에 갈 기회가 있고 또, 군대를 마치고 군의 추천을 받아 대학에 갈 수도 있다. 북한사회에서 간부를 하기 위해서는 출신성분, 군대와 더불어 대학졸업장 없이는 안된다. 특히, 종합대학 졸업생은 사회를 주도하는 엘리트로 성장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경력이며 이같은 학위를 통한 실력의 입증은 향후 시장경제가 발전한다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90년대생, 식량난의 타격으로 출생이 줄어든 세대

세대명칭을 구성하는 기준으로 역사적 경험, 나이 혹은 생애주기 단계, 문화적 행태적 특성의 세 가지를 드는데, 특히 세대특성이 청소년기 이후에도 어느 정도 지속될 때 그 세대가 타 세대와 구별된다. 북한의 새 세대라고 불리우는 198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바로 이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5~99년 사이에 배급제도의 붕괴와 죽음, 장마당의 탄생을 겪으면서 십대 전후의 시간들을 보낸 세대이다. 이는 만하임가 말하는, 역사적 사건이 각인되어지면서 세대가 형성되는 나이에 ‘고난의 행군’이라는 역사적 경험이 성층화었다고 하겠다. 그 뒤에 오는 90년대들은 식량난으로 인해 출생율이 감소된 세대이다.

통계청의 북한인구추계에 따르면 2019년, 8090년대 출생자들인 20대와 30대는 북한인구에서 29.8%를 차지한다. 1990년대 출생자들인 20대는 2019년 현재 400만 명으로 이들은 전체 북한 인구 252만명 중에서 12.9%를 차지하며, 80년대에 출생한 30대는 15.8%로서 20대와 30대 인구가 북한 전체인구의 약 29.8%를 차지한다.

인구학자 박경숙이 1993년과 2008년 두 센서스를 근거로 분석한 연구 “북한의 식량난 및 기근과 인구변동”에 의하면, 1993년에서 2008년에 걸쳐 북한인구 감소가 88만 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즉 식량난에 따른 총 인구 손실 88만명 중 약 49만 여명이 사망률 증가에 따른 손실로 추정이라면, 약 29만 여명이 출산율 감소로, 그리고 약 10만 명이 이주와 그에 수반된 출산율 감소의 효과이다.

90년대생은 식량난의 출산율 감소의 영향을 받은 세대이다. 만약, 식량난이 아니었다면 90년대생들은 보다 많이 출생했을 터이니, 외적요인에 의해 강제적인 출생율 감소가 이루어진 세대인 셈이다. 이 점에서 중국의 한 자녀 정책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80년대생 바링허우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이들 8090세대들은 자신들의 지도자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나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정치는 무관심하지만 당간부는 되고 싶어

8090세대가 금단의 영역을 넘어서는 행위나 실리추구를 한다고 할지라도, 북한정권에 대한 반대나 정치적 진보로 민주화로의 열망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화순의 세대연구(박영자 외, 2015, 북한주민의 동력, 통일연구원)에서, 오히려 6070년대에 출생한 세대들이 정치적으로 보다 급진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8090 세대는 정치에 무관심하며 김정은 정권에 호의적이다. 미제척결을 가장 주장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계획경제에 대해 기성세대만큼 비판적이지도 않을 정도다. 한편, 새로운 8090 세대들은 기성세대 보다 개인의 일탈에 너그러우며, 집단주의보다 개인주의를 선호하고 준법의식이나 수령의식도 기성세대보다 낮다. 명분보다 실리와 물질을 중시한다.

8090세대들이 선호하는 북한에서 가장 전망있는 직업이 무엇일까? 돈을 버는 직업인가? 아니다. 이 질문은 북한체제의 안정성이나 미래전망을 북한주민들이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북한사회에서 유망직업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부동의 1위는 역시 당간부로 나타난다. 8090 세대와 기성세대 할 것없이 당간부가 되는 것을 가장 좋은 경력(career)으로 인식한다. 돈보다는 권력이고 권력을 가지면 돈은 따라오는 게 북한의 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주민들은 현재의 북한사회체제가 당권력을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고 앞으로도 이러한 권력체제가 앞으로도 지속되리라고 전망하고 있다.

 

남북의 8090: 평화로운 한반도를 맞이할 첫 청년세대

이제 민족분단의 긴 전쟁을 끝내고 사랑을 나누어야 할 때이다. 남북의 교류가 잦아진다면 남한의 청년들이 북한의 ‘8090 세대’를 만나 함께 비즈니스도 하고 일도 하고 우정을 쌓거나 썸도 타고 연애도 결혼도 함께 살기도 할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서로 무엇을 어떻게 느낄까? 헬조선을 외치던 남한의 청년들이 북한 청년을 만나 의기투합할지 이질적으로 느낄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설사 만남이 갈등으로 이어질지라도 현재보다 더 나은 관계의 출발이 될 것이다.

결국 남북한의 청년세대들은 한반도의 미래와 평화 그리고 통일을 이어받아 갈 세대들이다. 남과 북은 이미 도보다리에서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다. 이제 남북한의 8090들은 평화로운 한반도를 맞이한 첫 청년세대가 될 것이다. 세상은 이들을 어떤 세대라고 부를지, 역사는 이들을 어떤 세대라고 기록할지 궁금해진다.

수, 2019/02/0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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