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걷기여행은 신한금융그룹 봉사단과 지역아동센터 친구들이 1:1 멘토-멘티가 되어 한양도성에서 신나고 재밌게 놀면서 역사도 배우고, 한양도성을 걸으면서 서로 친구가 되어, 청소년들의 사회적 성장을 지원하는 활동입니다.
올해로 벌써 4년째 진행하게 되며, 올해는 성북구와 동작구에 있는 지역아동센터 친구들과 함께 흥인지문에서 낙산을 거쳐 혜화문까지 함께 걸었습니다.
5월16일 아침, 한양도성 걷기 여행 시작 시간보다 일찍 준비팀들이 모였습니다. 지난 준비회의와 답사를 통해 정리한 동선과 역할, 그리고 프로그램장소 등등 확인을 하고 나니, 신한금융 봉사단들이 속속 도착을 했습니다.
신한금융 멘토들에게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했습니다. 프로그램 소개와 우리가 만날 친구들에 대한 소개, 그리고 주의사항등을 멘토들에게 알리고 나니, 바로 아이들이 도착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친해져야 그날 하루가 좋은 추억을 자리합니다. 사실, 참가한 성인도, 어린이도 서로 처음 만나는것이니 얼마나 어색하겠어요? 그래서 아이스브레이킹은 서로가 쉽게 친해질 수 있도록 몸을 부대끼며 서로를 알아갈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합니다. 명찰로 짝꿍도 직접 찾고, 짝꿍과 함께 할 수 있는 기차놀이, 우리집에 놀러와 놀이도 하였고, 이번엔 처음으로 [세탁기]라는 단체놀이를 해보았습니다. 세탁기 속 빨래의 모습을 상상하며, 빨래처럼 엉킨 팔을 서로 풀어보는 놀이였습니다. 엉킨 빨래가 하나하나 정리가 되듯 꼬여있는 우리자신도 서로 도와가며 큰원을 만들어갔습니다.
어색함이 이제 조금 사라질 정도가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한양도성을 알아볼까요?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으니, 한양도성을 살짝 예습하고 가봅니다. 옛지도를 보며 한양도성에 대한 소개도 하고, 캐릭터스티커를 붙이며 이곳에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흥인지문 가까이에 있는 한양도성 박물관에도 가보았는데, 저희말고도 다른 탐방객이 많아서 만족할 만큼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숭례문 퍼즐은 늘 재밌습니다.
그림으로 만나보던 한양도성을 드디어 직접 걸어봅니다.
가는동안 그늘에 앉아 내가 보고 온 한양도성을 생각하며 [나만의 부채]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어떤친구는 흥인지문을 멋지게 그린 친구도 있었고, 장난스레 짱구캐리터를 그린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 부채를 사용할때마다 오늘 하루 있었던 좋은 기억들을 생각해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적어도 오늘 다녀온 곳이 한양도성이라는 것도 기억하면서 말이죠.
뜨거운 햇빛정도는 이제 부채로 가리면 됩니다. 다시 신록이 우거져가는 한양도성길을 멘토-멘티가 손을 잡고 걷습니다.
걸어가는 동안 서로의 대화도 점점 자연스럽게 깊어 집니다. 멘토는 걸으면서 멘티의 꿈도 묻고 자신의 꿈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표현하지 않은 사랑은 너무 힘들듯, 이런 서로의 마음을 표현해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중에 이쁜 글씨로 곱게 써준 [김구]친구의 마음을 소개해봅니다. -백범선생님께, 선생님 오늘 함께 해서 정말 즐거웠어요. 이따 헤어지니 너무 아쉽네요. 가면서 제 이야기 들어주시고, 말도 걸어주시고 적극적이어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선생님 만났으면 좋겠어요. 처음 백범 선생님을 만나러 찾을때 설렜는데, 이제는 헤어지네요. 슬프지만 재밌고 즐거웠어요. (김구 올림) 매년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지속적인 만남에 대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언제가는, 한양도성걷기여행을 함께 했던 모든 멘토-멘티들과 함께 한양도성을 온전하게 걷고 싶다는 바람도 함께 가져봅니다. 그리고 , 참여한 모든이들이 서울에 아직도 6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문화유산, 역사책에서만 존재하는것이 아닌, 살아있는 문화유산인 역사문화도시 서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한양도성을 기억하고 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함께 했던 멘토-멘티와의 좋았던 추억도 함께 기억했으면 합니다.
한양도성 걷기여행이 4년째 이어질수 있었던 것은 신한금융과 서울KYC와의 신뢰도 중요한것 같습니다. 그 신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한양도성 걷기여행 프로그램이 매해 다양해지고,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좋은 변화는 함께 만들어주신 도성길라잡이 준비팀 선생님들이 안계셨더라면 있을수 없었겠지요. 다양한 경험을 함께 나누고 참여해주신 도성길라잡이 준비팀 선생님들께도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4. 참가비 : 1인당 10,000원 (입금계좌 : 신한은행 100-024-876626/ 예금주 :서울KYC)
- 참가비 입금이 되어야 신청이 완료 됩니다. - 신청 후 일주일 이내에 입금해주셔야 합니다. - 동반참여시 참여인원에 맞게 참가비 입금해주세요. - 계좌이체 시 신청서 작성자 이름으로 입금해주세요.
- 입금확인 후 [입금확인]문자는 다음날 정오(12시)에 보내드립니다.
6. 신청서 작성 시 유의사항
- 성함과 주민번호는 정확하게 기재바랍니다.
상해보험 가입 시 신청자의 오타로 인해 불이익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동반신청 시 동일 적용)
- 연락처 : 입금확인 및 신청완료 통지, 안내 통지등의 문자발송이 몇차례 이루어집니다.
- 개인정보 및 고유식별정보 수집. 이용 및 제3자 제공에 동의해주세요.
87년 6월 항쟁을 기억하기 위해 지난 6월13일 [이한열 기념관]과 박종철고문치사사건의 현장인[남영동 대공분실]을 다녀왔습니다. [남영동 대공분실]안내는 평화길라잡이의 새로운 활동 장소로 이날 첫 시범안내가 있었던 역사적인 날입니다.
1980년 광주민주항쟁을 총칼로 진압한 전두환은 간접선거에 의해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87년은 전두환 이후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있는 해이기도 합니다. 그해 1월 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독재타도, 호헌철폐 그리고 대통령직선제를 외치는 시위가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납니다.
그해 6월 대학생이한열은 경찰이 쏜 SY-44 직격 최루탄을 뒷머리에 맞고 쓰러집니다. 이때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내일 시청가야 하는데..."였다고 합니다. 만화동아리에서 활동을 했고, "혁이"라고도 불리었던 젊은 대학생은 그렇게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후 27일간 중환자실에서 투병을 하다가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시작된 87년 민주화 열기는 이한열 최루탄 피격 및 치사 사건을 정점으로 대통령 직선제와 국민투표로 지금의 헌법으로 개정이 됩니다.
87년 6월 항쟁을 기억하며,첫번째 장소로 신촌에 있는 이한열 기념관을 방문하였습니다.
계단을 오르자 모자이크 속 청년은 민주주의라는 나무를 가꾸고 그 건너편에 그가 좋아했던 "시"가그 청년 가슴에 맺힙니다. 그리고 입구에 붙어있는 많은 사람들의 애도의 글들...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글귀가 있었습니다.
이경란 관장님의 안내로 2층 전시실로 들어섰습니다. 2013년에도 서울KYC민주올레를 통해 방문했었는데, 그때와 다른 전시물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6월9일 부터 9월25일까지 한시적으로 기존의 전시물을 잠시 교체하여, [운동화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기획전시가 진행중이었습니다. 이 운동화는 87년 당시 이한열이 쓰러지면서 떨어뜨린 '운동화'를 최대한 당시의 상태에 가깝게 복원하여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 복원된 운동화는 3층 전시장에 보존처리된 의복, 가방등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고, 2층 전시장에는 복원과정과 과정에서의 어려움들을 이경란 관장님을 통해 알수 있었습니다.
이한열이 남긴 한 짝의 운동화는 오른발입니다. 전시회에는 이한열이 남긴 오른발에 자신의 왼발 운동화를 나란히 놓은 코너가 마련되어 이었습니다. 이한열의 어머니, 동아리 선배, 쓰러지는 이한열을 부축했던 친구, 그리고 현재 이한열장학금을 받는 학생 등 각자의 왼발에는 자신의 소감이 적혀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6월이 왔다. 운명처럼 마주칠 그 날, 나는 무슨 생각을 할까? 친구, 미안하다. 나는 올해에는 더 밝고, 더 즐거운 얘기를 우리의 청년들과 해보려 한다." -경제학과 동기 우석훈
이한열 기념관을 나오면서 지금 우리는, 87년 아스팔트위의 청년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숨으로 일궈낸 그 민주주의가 지난 8년간 꼼짝도 못하고 있는 현실이 무겁게만 느껴졌습니다.
오전 이한열 기념관을 나와 간단한 점심을 먹고 다시 남영동대공분실로 이동하였습니다.
남영동대공분실은 1976년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만들어졌습니다. 1985년 김근태의원의 고문사건으로 세계언론에 실체가 알려지게 되었고,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및 은폐사건으로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곳입니다. 1991년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경찰청 보안분실로 변경된 후 2005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지금의 모습으로 갖추게 되었습니다.
본 건물은 건축가 김수근에 의해 설계된 건축물입니다. 건축주가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를 정확히 파악한 영리한 건축가의 영민한 작품(?)입니다. 외관은 멋진 일반 건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외부로 들어가면 건물의 용도가 무엇인지 잘 알려줍니다. 지금은 하얀 대문으로 바뀌었지만, 얼마전까지 두꺼운 철제 대문으로 소리만으로도 공포감을 주는 대문 몇층으로 가는지 알수없는 원형계단, 빛만 들어오도록 하여 조사자의 자살을 막는 좁은창문 등등 이 건물이 어떤 용도로 사용될 것인지를 설계자는 충분히 이해하고 설계한 것임을 곳곳에서 알수 있었습니다.
오늘 남영동 대공분실은 서울KYC에게는 특별한 날이기도 합니다. . 그동안 평화길라잡이 선생님들이 준비한 [남영동 대공분실 시민안내]를 인권과 민주주의의 관점으로 시민들에게 (물론 우리 회원분들이시만요) 소개하는 날이기때문입니다. 이날의 안내는 안은정 선생님이 해주셨습니다.
원형계단을 따라 5층 조사실로 가보았습니다. 5층 조사실 509 호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있었던 장소이고. 이곳은 현재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당시의 고문치사 사건후 은폐과정을 소개하였고, 같은층 515호에서는 김근태의원의 고문과정을 통해 고문은 고문피해자를 파괴하여 반대세력에게 국가에 저항하지 말라는 분명한 메세지를 학습하는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고문피해자 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까지 힘들게 만들며, 고문피해자가 고문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그때 가졌던 트라우마로 여전히 일상생활을 하는것이 어렵게 된다는 것을 해설을 통해 알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놀라운 사실은 최근까지 이 공간이 조사장소로 사용이 되었고, 작가 조정래 선생도 이곳에서 조사를 받았었다고 합니다.
5층에서 4층으로 내려오면 [박종철 기념전시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시대의 아픔에 걱정을 했고, 정의롭게 살려고 노력한 대학생 박종철의 평범한 일상과 고문치사와 은폐조작 그리고 이사실이 세상밖으로 나오게 된 과정을 이곳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군사정권시대에는 월북자, 납북어부, 재일교포 등 사회적 약사들이 고문으로 간첩이 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서울시 공무원간첩조작사건처럼 탈북자가 이용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고문피해에 대한 체계적인 실태조가나 치유대책, 고문방지법, 고문피해자구제지원법안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인재근 의원이 발의한 '고문방지와 고문피해자 보상 구제법안'은 국회에 계류중인 상태입니다. 헌법12조 2항에는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라고 나옵니다. 이 법은 박정희 정권에 재정되었던 부분이라고 하는데, 참 아이러니한 현실입니다. 자유로운 사람들이 자신의 판단과 책임으로 사회를 운영하는것이 민주주의라고 합니다. 고문은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간성을 파괴하여 공동체를 위험 빠뜨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헌법 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이렇게 훌륭한 헌법을 가진 우수한(?) 대한민국입니다.
이 헌법에 나온대로 우리의 기본권이 누군가에 의해 침해되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잘 만들어 가는것이
살아있는 우리가 해야할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7년 6월 항쟁을 기억하며 서울KYC 회원들과 함께 했던 [이한열 기념관]과 [남영동 대공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될 평화길라잡이의 [남영동 대공분실]시민안내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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