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절에는 사상 최대 규모의 탄핵반대 집회가 서울 시청광장 일대에서 펼쳐졌습니다. 대체 어떤 분들이 탄핵반대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것일까? 신도수만 20만명에 이르는 은혜와진리교회에서 교인들을 조직적으로 집회에 동원한 현장을 뉴스타파 취재진이 포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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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에 서울 시청광장을 메운 탄핵반대단체들은 사상 최대 규모의 집회였다고 자랑했습니다. 문제는 그 집회 참가자들 중 상당수가 잘못된 사실들을 믿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태블릿피시가 조작됐다거나 8명의 헌재 재판관으로 하는 탄핵심판은 위헌이라는 등 탄핵반대집회에서 나온 주장들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과 대리인단, 그에 동조하는 극우세력은 거짓 주장을 퍼트려 갈등을 키우고 있습니다. 일부 극우단체들은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대행의 주소를 공개하는가 하면 정치인들의 사진을 불태우고 촛불 집회 참가자나 장애인 단체 회원들을 공격하는 등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들의 폭력성은 마치 해방 직후 서북청년단이 설쳐대던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입니다. 누군가 뒤에서 부추기는 게 분명해보이는 이들의 행태는 한편으로는 우리가 빠져나온 어둡고 긴 역사가 어떤 것이었는지 상기시켜주는 한편 좀 더 힘을 내 마저 정리해야 할 잔재가 여전히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지금은 우리 모두 광장에 나가 우리가 이룬 것을 지켜야 할 때입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선고 이전, 이미 민심에 의해 탄핵된 대통령, 박근혜. 뉴스타파는 그가 대통령 후보시절 유권자들에게 약속했던 10가지 주요 공약들과 지난 4년의 행적을 대비했습니다. 법적 탄핵선고가 나기 훨씬 이전부터 그는 이미 윤리적으로도 철저히 망가진 대통령이었습니다.
박근혜 씨가 지난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에 오른 건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앞다퉈 ‘친박’임을 자처한 수많은 정치인들이 기존 보수층 표를 다지기 위해 뛰었고, 이념적으로 거리가 멀었던 인사들이 깜짝 영입돼 부동층과 상대 지지층을 흡수한 결과가 51.6% 득표로 귀결됐습니다. 역사상 최초의 탄핵된 대통령이 된 지금,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던 사람들은 어디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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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씨는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거짓말로 국민을 속여 청와대에 들어갔습니다. 그 책임을 져야 할 부역자들은 오늘 말씀드린 사람들 외에도 더 있습니다. 박근혜 씨와 새누리당의 거짓 변신술을 달콤하게 포장해 국민들을 속인 공영방송과 조중동, 종편의 부역 언론인들은 무한책임을 져야 마땅합니다. 특히 KBS, MBC는 지금까지도 박근혜 진영의 나팔수 역할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MBC뉴스를 편파 왜곡 방송으로 전락시킨 김장겸 씨가 MBC사장으로 선임됐는데 이것이 박근혜 씨의 마지막 인사였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실정입니다. 사실상 MBC를 박근혜 진영의 기지로 만들어 탄핵 이후 상황에 대비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언론 개혁 , 특히 공영방송 개혁이 없이는 또 언제 국민을 속여 대한민국을 수렁에 빠트리는 사태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만은 이 모든 걱정을 떠나 정의와 자유가 흐드러진 새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꿈에 취해보는 것도 좋을듯합니다.
‘SNS 기동대’.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캠프에서 일하던 민주당 보좌진이 결성한 사조직입니다. 선거기간동안 조직적 SNS활동을 펼쳐 ‘사조직 결성’, ‘유사시설 설치’ 혐의로 선거법 위반 판결을 받았던 조직책임자가 다시 문재인 캠프에 참가해 같은 업무를 맡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안희정 후보에게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은 숙명처럼 따라다닙니다. 자신은 과거 대선캠프 회계책임자로서 당을 위해 희생한 사건이라고 하지만, 당시 법원 판결문을 보면 불법으로 받은 정치자금 중 1억원 이상을 안 후보 개인 용도로 유용한 사실이 확인됩니다. 안 후보는 “국민 판단에 맡기겠다”고 말했습니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지역구 보좌관이 작년 총선을 앞두고 한 장애인 단체에 제3자의 기부금을 전달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됐다가 최근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판결문을 살펴보던 중 선거법과는 별도로 단순 전달로 보기 어려운 수상한 기부행태가 포착됐습니다. ‘제3자’는 과연 유 후보와 어떤 관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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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후보에 대한 검증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언론들이 박근혜 씨를 철저하게 검증했다면 그가 3% 차이로 대통령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지 모릅니다.
이번 조기 대선은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검증이 더욱 중요합니다. 또한 유권자 여러분이 중요하게 보셔야 할 것은 각 후보측이 검증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각 후보들이 언론의 검증에 대응하는 태도는 집권 뒤 언론을 대하는 태도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은 후보 시절부터 언론의 검증에 투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결국 집권 뒤 언론자유를 겁박하는 최악의 권력자가 됐습니다. 언론 역시 투명하게 검증하고 투명하게 보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측근비리로 구설이 끊이지 않았던 이재명 성남시장. 이 시장은 매번 ‘측근이 아니다’는 식의 해명 혹은 침묵으로 대응해왔습니다. 뉴스타파가 판결문 등을 통해 확인한 실상은 달랐습니다. 비리사건 연루자는 전직 지역구 사무국장이었고, 없는 일이라며 맞고소까지 벌였던 후보매수 사건은 사실로 드러나 측근이 처벌받았습니다.
지난 2015년말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홍준표 후보와 맞섰던 박종훈 경남 교육감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를 성사시키기 위해 개인정보를 도용해 가짜 서명부를 조작한 범죄가 적발됐습니다. 모두 홍준표 후보의 최측근이 주도했지만, 홍 후보는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판결문을 확인한 결과 홍 후보 비서 2명도 범죄에 가담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최근 홍준표 캠프에 회계책임자로 합류했습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원내 5개 정당 후보 14명을 대상으로 선관위가 공개한 벌금 100만원 이상의 전과기록을 살펴보니, 6명이 1건 이상의 전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음주운전에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까지 후보들이 신고한 전과 경력도 다양했습니다. 선관위 공개 범위에 포함되지 않은 100만 원 미만의 벌금형 전과도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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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지금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속 될지 모르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아니 많은 시민들은 박근혜 씨가 청와대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세월호가 바다에서 나올 수 있었을 거라 느끼고 있습니다. 그만큼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외면했습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에 극우 성향의 인사들을 파견해 위원회를 마비시킨 뒤 결국 해체해버린 것이 박근혜 정부의 의도를 말해줍니다.
헌법재판소는 세월호 문제를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의 근거로 삼지는 않았지만 국민들에게는 세월호 참사야말로 박근혜 씨를 마음으로 파면한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결국 촛불이 박근혜 씨를 파면했고 세월호도 끌어올렸습니다.
이제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수습하고 도대체 왜 세월호가 침몰했는지 진상을 밝혀야 합니다. 그러면서 이명박근혜 정부가 헤집어 놓은 우리 사회 모든 부문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야 합니다.
반잠수선에 올려진 세월호 선체의 객실부에 있던 돼지뼈가 갑판으로 유출돼 미수습자의 유해로 오인되는 일이 발생하면서 미수습자 유실방지 대책이 제대로 세워졌던 것이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뉴스타파 취재 결과 침몰 과정에서 객실층 일부에 큰 균열이 발생했는데도 유실방지망은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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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 것처럼 세월호 인양은 3년이나 걸렸는데도 졸속 인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가장 큰 책임은 인양을 하겠다는 결정을 참사 후 1년이나 지나서야 내린 박근혜 정부에 있습니다.
정부가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통에 기술력이 뛰어난 업체들은 인양을 포기했고 결국 해외 구난 경험이 없는 중국 업체가 맡았습니다. 게다가 중국 업체는 기술력이 모자라 처음 계획했던 인양방식을 바꿨고 그 과정에서 인양은 무한정 지연됐습니다.
그나마 3년 만에 인양을 하고 있습니다만 오늘 보신 이해할 수 없는 잘못들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과연 미수습자를 찾을 수 있을지 가족과 국민은 걱정 가득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책임은 박근혜 씨와 정부, 특히 해양수산부가 져야겠습니다만, 지금부터라도 미수습자 수습과 진상규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치밀한 인양을 하기 바랍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최측근인 최윤수 국정원 2차장이 특검 구성에 개입을 시도했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박영수 특검에게 현직 검사 명단을 전한 뒤, 이들을 파견검사로 받으라고 요구했다는 겁니다. 박영수 특검이 이를 거부하자, 최 차장이 전화와 문자로 항의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2015년, 문체부의 감사담당관이었던 백승필 씨는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의 말 한마디에 굴욕적인 조사를 받아야 했고, 좌천성 인사에 징계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특검 수사기록을 보니, 백 씨 등에 대한 우병우의 권력 남용은 한 동아일보 기자의 청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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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관련해 가장 의문스러운 부분은 그가 청와대에 있는 동안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건 수사에 개입했느냐하는 것입니다. 정윤회 사건 수사나 우병우 자신의 비위사실에 대한 수사,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가 대표적인 것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밝히기 위해서는 우 수석과 일상적으로 전화통화를 해온 김수남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에 대한 수사가 필요합니다. 김수남 총장은 우 수석이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조사를 받을 당시 여러차례 장시간 우 수석과 통화를 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검찰은 일반적인 행정상의 전화였다고 말하고 있지만 의혹은 커지고 있습니다.
검찰이 자기 자신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등 검찰 조직을 수사할 수 있는 다른 기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병우 수사를 검찰이 제대로 해내느냐, 못해내느냐, 그것이야말로 새 정부 출범 후 검찰개혁의 정도와 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세월호가 3년 만에 인양되자 대선후보들은 미수습자 수습과 진상규명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난 3년간은 어땠을까요? 세월호 문제에 가장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였던 후보는 누구일까요?지난 3년간의 후보들의 세월호 관련 말과 행동을 되짚어봤습니다.
2) ‘세월호 입법 활동’으로 본 대선후보
세월호 3주기를 앞두고 모든 후보가 이른바 ‘세월호 벼락치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에게 얼마나 진정성이 있냐는 겁니다. 뉴스타파는 이들의 입법활동에 주목했습니다. 보여주기식 행동은 쉽지만 정치인의 본분으로 돌아가 세월호의 핵심의제를 고민하고 법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3) 비정규직 공약 평가..심>유>문>안>홍
현재 한국 사회에는 1100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습니다. 노동자 2명 중 한 명입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동질성을 파괴하고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노동 전문가 7명과 함께 유력 대선 후보들이 밝힌 비정규직 관련 공약을 평가했습니다.
4) 비정규직 입법 실적.. 1강 1중 3약
대선후보들과 소속 정당이 19대와 20대 국회에서 벌인 비정규직 관련 입법 활동을 전수 조사해 분석, 평가했습니다. 그 결과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가 압도적인 1강이었고, 더불어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1중, 나머지 세 후보가 비슷한 수준으로 3약으로 분류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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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마도 약속이라는 말의 신뢰도를 가장 많이 떨어트린 사람일 것입니다. 경제민주화 등 온갖 화려한 공약을 해놓고, 심지어 나는 신뢰의 정치인이니 지킬 것만 공약한다고 해놓고 집권해서는 정반대로 역주행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대선에서는 후보들의 공약보다 각종 폭로에 더 관심이 집중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도덕성도 따져봐야겠습니다만 후보들이 어떻게 대한민국을 경영할지에 대한 청사진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인지, 과거 그의 행동과 일관되는 정책인지도 함께 저울질하면서 말입니다.
19대 대통령 선거가 이제 3주도 남지 않았지만, 이번 선거에서도 여론조사의 공정성, 언론의 정파적 보도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체 여론조사는 어떻게 진행되고,그 과정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뉴스타파가 한국 여론조사의 현실을 철저히 해부했습니다.
뉴스타파는 2014년 지방선거부터 2016년 총선까지 기간에 국내 여론조사기관들이 내놓은 선거 예측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조사 오차가 평균 9.6%에 이르렀고 전체 여론조사 중 36%는 당선을 맞추지 못하는 수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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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총선 때 대부분의 여론조사 기관들은 새누리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그러고도 여론조사 업체들은 전혀 사과를 하지 않았고 다시 대선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보신 것과 같은 엉터리 여론조사, 그리고 그것을 인용한 부풀려진 언론보도들에는 정치적 의도까지 엿보입니다.
여론조사기관들의 이런 행태는 우리 사회의 여론을 왜곡할 위험성을 안고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이번 대선 후 여론조사기관들이 한 예측이 얼마나 정확한지 다시 평가하겠습니다. 여론조사기관 역시 시민들의 신뢰가 사라지면 자신들의 비즈니스도 사라진다는 점을 고려해주기 바랍니다. 여론조사 결과를 무분별하게 받아 쓰거나 과장 보도하는 언론도 마찬가집니다.
19대 대선후보 캠프를 보면 촛불 시민들이 바라던 적폐 청산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흠결이 있는 ‘그때 그사람’이거나 새시대에 맞지 않는 인물이 많았습니다. 캠프에서는 시간이 짧아 일일이 검증할 수 없다고 하지만 이대로라면 차기 정부에서도 인사파동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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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한창인데 한편에서는 대선 이후 공직 인선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이번 대선의 특징입니다.
이명박근혜 정부는 두 달 간의 인수위 기간을 거쳤는데도 첫 조각에서부터 국민을 실망시킴으로써 국민의 에너지를 결집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첫 공직 인선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부디 이번만큼은 촛불을 든 국민들의 꿈을 이뤄줄 수 있는 좋은 인물들을 제대로 검증해 기용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캠프 내부 인사들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2016년 10월 29일 광화문. 5만여 명의 시민들이 처음으로 촛불을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주말 촛불집회는 100만을 넘어서 230만명까지 늘어났고, 4월 29일 23차 집회까지 연인원 천 7백만 여명이 참가했다.
이 많은 국민들이 광장에 모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헌정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와 떨어진 국격,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상처입은 자존감 때문이었다. 촛불의 염원과 국민적 분노는 박근혜 탄핵과 구속,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 , 그리고 5월 9일 조기 대통령 선거를 이끌어냈다. 특권과 반칙으로 대표되는 적폐를 청산하고 나라다운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라는 임무가 정치권에 부여됐다.
그런데 대통령 선거는 시대착오적인 이념논쟁과 편가르기, 색깔론으로 오염되고 말았다. 지상파 방송 등 주요 언론들도 정치 세력의 확성기 노릇을 하며 이번 대선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주권자는 국민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번 대선의 의미를 명확히 하는 것, 다시금 광장에서 외쳤던 염원과 새로운 국가 건설의 희망을 되살리는 것, 그것은 바로 투표다. 이제 투표가 곧 촛불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7년이 흘렀다.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이 원했던 건 정의와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였다. 그런데 전두환의 생각은 다른 듯 하다. 그는 지난 4월 3일 출간한 자신의 회고록에서 80년 광주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에는 자신의 책임은 없고 5.18을 폭동으로 규정했다.
5·18 사태는 폭동이란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전두환 회고록>, P. 539
광주에서 양민에 대한 국군의 의도적이고 무차별적인 살상행위는 일어나지 않았고
<전두환 회고록>, 서문
▲ 지난 4월 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본인을 둘러싼 역사적 논란에 대한 입장을 담은 회고록을 출간했다.
전두환이 낸 회고록의 내용을 접한 한 5.18 유족은 취재진에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놈 좀 데려다주면 좋겠어. 그놈을 내가 내 손으로 꼭 죽여야 내 가슴이 터지겠는데 못 죽이니까 이렇게 한이 돼요. 내가…
이근례 / 5.18 시민군 故 권호영의 어머니
이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계엄군의 총탄에 잃었다. 당시 아들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아들은 수많은 민간인 학살 희생자 중 한 명이다.
전두환의 기억과 달리 5월 광주에서는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수많은 살상행위가 일어났다. 잔혹행위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는 2007년 처음 실시됐지만 주남마을의 미니버스 총격사건 1건 만을 조사하는데 그쳤다. 이마저 일부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수많은 민간인 학살의 진상규명은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 당시 국민학교를 입학한 지 2개월 만에 계엄군의 총을 맞고 죽은 행방불명자 이창현의 령. 이 군의 시신은 끝내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묘비에는 ‘령’으로 돼 있다.
속속 드러나고 있는 역사적 자료의 증거는 광주 학살의 가해자가 누구인지, 그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보여주고 있다. 1980년 광주 진압 상황이 담겨있는 ‘광주권 충정작전간 군 지시 및 조치사항’에는 ‘전 각하’라는 존칭과 함께 , ‘초병에 대해 난동 시 군인복무규율에 의거 자위권 발동 강조’ 라는 메모가 적혀있다. 전두환이 자위권 발동을 강도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 국방정보국 비밀자료에도 계엄군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전두환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 1980년 광주 진압 상황이 담긴 ‘광주권 충정작전간 군 지시 및 조치사항’이다.
무자비한 유혈진압 후 전두환 등 신군부는 그들만의 훈장 잔치를 벌였다. 1980년 12월과 이듬해인 1981년 4월 모두 101명이 훈포장을 받았다. 훈장 수여자 명단 계엄업무와 국가안보를 잘했다는 것이 훈장의 사유였다. 이들 중에는 광주에 진압군으로 투입됐던 부대 지휘관도 다수 있었다. 3공수 11명, 7공수 1명, 20사단 4명, 전투교육사령부 2명 등이다. 훈장 서훈의 종류는 대부분 무공훈장, 적과 싸워 전공을 세웠다는 의미다. 광주 시민을 적으로 규정했던 것이다.
▲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집 앞. 여러명의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다.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인사들은 여전히 반성이나 참회가 없다. 취재진은 전두환 회고록을 정리한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에게 광주 학살의 책임을 물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아니 그럼 돌 던지고 구타했다 그러면 전 (두환) 대통령이 광주에 내려가서 구타를 했습니까, 그 사람들을? 그러니까 그건 현장에 있던 사람들한테 물어봐야지. 왜 전 대통령한테 그걸 물어요?
민정기 / 전두환 전 대통령 전 비서관
이경남 목사는 80년 5월 당시 11공수여단 소속으로 광주 진압작전에 투입됐다. 그의 계급은 일병 이었다. 실탄 560발을 지급 받았다고 고백했다. 560발은 실전에 투입될 때 지급받는 실탄의 숫자라고 말했다. 그는 군인들이 그토록 폭력적이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고 나서부터 데프콘3 발동 하에서 군 생활이라는 것은 말도 못하게 긴장의 연속 두려움의 연속. 고달픔의 연속이었어요. 분풀이한 거예요, 쉽게 말하면. 군인들이요 그냥 몇 달을 그렇게 그냥 긴장 가운데서 살다가 광주 시내 나가서 군인들이 시위대가 저항하는 모습보고 투석하는 모습하고 군인들이 그 잠재돼 있던 분노가 폭발된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무자비하게 때린 거고 잔인하게 그렇게 시민들을 학대한 겁니다.
이경남 / 목사, 5.18 당시 11공수여단 소속
이경남 목사는 계엄군 중 유일하게 518 현장을 기록해 1999년 <당대비평>에 기고했다. 광주 계엄군으로서 첫 양심고백이었다. 1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를 마칠 무렵 그는 “엄정한 심판의 부재”야말로 가해자들의 참회없는 뻔뻔한 현실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가해자들이 사람들이 자기가 무슨 일을 하면서도 그것이 무슨 일인지를 모르고 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어떤 진상규명이라든지 일어나고 그리고 거기에 따른 엄정한 처벌이 이루어질 때에 그 사람들이 비로소 자기들이 인식하고 있지 못하던 것을 깨닫게 되면 자기가 얼마나 잘못한 거지 또 자기들의 잘못된 판단과 행동으로 말미암아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고 어떤 피해가 생겼는지를 인식하게 되는데. 그 엄정한 그런 심판 과정이 없다 보니까 그 사람들이 여전히 자기들 자신에 대해서 착각하고 있고 잘못을 시인할 줄 모르고 있고 오히려 자기 자신을 정당하게 생각하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고요.
이경남 / 목사, 5.18 당시 11공수여단 소속
2017년 5월, 대다수 국민은 광주학살의 온전한 진실을 원한다. 학살 책임자들이 지금까지 감춘 진상을 명확히 들춰내고, 그들에게 역사적 단죄가 엄중히 이뤄지길 바란다. 그래야만 5월의 광주, 민주항쟁의 그 숭고한 역사는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취재작가 : 박은현 편집 : 정지성, 박서영 촬영 : 권오정, 신영철 취재 : 남태제, 이보람 연출 : 남태제
2015년, 미국의 전직 검사 마티 스트라우드가 한 신문사에 사과문을 보냈다. 30년 전 자신이 사형을 구형한 사건에 대해 반성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자신의 잘못된 수사로 3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고,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출소한 뒤 병마와 싸우고 있던 피해자를 직접 찾아가 사과했다. 그리고 그의 모습에 미국 사회는 박수를 보냈다. 권력기관으로만 알고 있던 검찰의 반성과 사과. 우리에겐 그저 낯선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 사법피해자를 찾아간 미국 전직 검사 마티 스트라우드(왼쪽)
이명박 박근혜 정권 9년은 한마디로 혼란과 불신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사건이 의혹만 남긴 채 사라졌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검찰이 있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손에 쥔 대한민국 검찰은 자의적인 판단으로, 때로는 정치권력과 손을 잡고 수많은 사건을 조작하거나 왜곡했다. 수많은 간첩조작사건, 국정원 선거개입사건,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을 초래한 검찰 수사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잘못된 수사임이 드러난 뒤에도 검찰은 반성하지 않았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다. 재심사건을 주로 맡았던 박준영 변호사는 스스로 잘못을 반성하고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검찰개혁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검찰개혁을 한다고 하잖아요. 앞으로 잘하겠다는 얘기죠. 그런데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요.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죄없는 검찰개혁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박준영 변호사
▲ 정연주 전 KBS 사장
정연주 전 KBS 사장. 그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 6개월만인 2008년 8월, 사장 자리에서 쫓겨났다. 감사원, 국세청이 동원된 각종 조사에 시달렸던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해임된 직후 검찰에 체포됐다. 겉으로 드러난 혐의는 국세청을 상대로 한 세금환급 소송을 포기해 KBS에 천억원 대 손해를 끼쳤다는 것. 하지만 실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공영방송 KBS를 장악하기 위한 정치권력의 공작이었다. 검찰은 정치권력의 요구에 철저히 복무했다.
이명박 정권의 KBS 장악 작전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감사원이 해임의견을 통보한 지 6일 만에 이명박 대통령이 해임을 결정했고, 다음날 검찰은 정 전 사장을 체포했다. 그러나 이후 4년 간 진행된 재판에서 검찰은, 단 한번도 그의 유죄를 입증하지 못했다. 법원은 정 전 사장에 대해 1,2,3심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정 전 사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인 최시중씨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되자마자 바로 KBS 이사장을 불러서 ‘정연주 사표 받아내라’고 압박을 했습니다. 정연주와 KBS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릴수가 없다고 했다는 거예요.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감사원 특별감사가 이뤄졌고, 동시에 정치검찰이 저에 대한 배임죄 수사를 시작했습니다.
정연주 전 KBS 사장
모두 무죄가 났지만 수사검사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명동성 씨는 퇴직 후 대형로펌 대표가 됐고, 수사책임자였던 최교일 당시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여당의 국회의원이 됐다. 반면 정 전 사장은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다.
그 사건은 저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습니다. 재판을 진행하는 내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재판받으러 가는 서초동이 정말 싫었어요. 지금도 서초역을 지날 때면 아픈 기억이 자꾸 납니다.
정연주 전 KBS 사장
▲ 정연주 전 KBS 사장 사건 수사검사
지난 9년 간 정치검찰의 폐해는 일일이 언급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참여연대가 매년 발간해 온 ‘검찰보고서’에는 그 사례들이 빼곡히 들어 있다. 민간인 사찰사건 부실수사, 피디수첩 광우병 사건, 노무현 대통령 서거로 이어진 태광실업 수사, 한명숙 전 총리 사건…하나같이 논란과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사건들이다.
정치검찰의 칼은 일반 시민도 가리지 않았다. 일명 미네르바 사건은 대표적인 사례다. 2009년 1월, 20대 남성 박대성 씨가 검찰에 체포됐다.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에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썼다는 이유였다. 검찰은 사문화된 전기통신법을 통원해 박 씨를 구속기소했다. 그러나 이후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고, 그에게 적용된 전기통신법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이 난 뒤 법조문 자체가 사라졌다.
사건 이후 박 씨의 인생은 완전히 망가졌다. 오랫동안 후유증에 시달리며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고, 결국 잠적했다. 변호인과도 연락이 끊긴 상태다.
그 사건을 거치면서 박대성씨는 몸과 정신이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행방불명 상태입니다.
박찬종 변호사/ 미네르바 박대성 변호인
반면 박 씨를 수사한 검사들은 승승장구했다. 수사와 기소 책임자였던 김수남, 최재경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각각 검찰총장과 청와대 민정수석에 올랐고, 기소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천성관 씨도 검찰총장 후보자로 영전했다. 그럼 당시 정연주 전 사장과 미네르바 박대성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지금 어떤 입장일까.
뉴스타파는 두 사건에 모두 관여한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을 찾아가 입장을 요구했다. 최 의원은 서울중앙지검 1차장 검사로 재직하며 정연주 사장 사건 수사를 책임졌고, 미네르바 박대성 사건의 초기수사를 맡았던 인물. 그러나 정식인터뷰를 거절한 최 의원은 보좌진을 통해 “할말이 없다”는 말만 전했다.
▲ 미네르바 박대성 사건 수사검사
권력의 눈치에 따라 검찰이 전광석화 같이 움직인 사건은 또 있다.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의 뇌물죄 사건은 대표적인 사례다. 안 전 청장은 2009년 말, 이명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의혹을 폭로한 뒤 검찰수사를 받고 구속됐다. 일명 도곡동 땅 실소유 논란 사건이다.
도곡동 땅 문제는 BBK 주가조작 의혹과 함께 2007년 대선 때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표적 약점으로 꼽혀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실소유자라는 의혹이 수차례 제기됐지만, 검찰은 ‘혐의없음’ 결정을 내려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을 도왔다. 도곡동 땅 문제는 BBK사건과 하나로 엮여 있다.
주가조작으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투자자문사 BBK에는 삼성생명, 대양이엔씨 등 여러 기업과 개인이 투자했다.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곳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은씨가 대주주였던 주식회사 다스(190억원)였다. 그런데 BBK에 투자된 다스의 자금은 이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은 씨가 1995년 포스코건설에 매각한 도곡동 땅 매각대금으로 추정된다. 문제의 도곡동 땅은 1993년부터 이 전 대통령의 실소유 논란이 불거졌던 바로 그 땅이었다.
만약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가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BBK 투자금은 모두 이명박 대통령의 재산임이 확인되는 셈. BBK의 주가조작 책임을 이명박 대통령이 고스란히 져야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에 나서기 전까지만해도 BBK를 본인이 설립한 회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선에 나선 뒤엔 BBK와 도곡동 땅 모두 자신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입장을 바꿨다. 그런데 안원구 전 청장은 이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가 이명박 대통령이었다는 증거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던 것이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 전 대통령에게는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안 전 청장은 자신이 확인한 사실을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대구지방국세청장으로 2007년도에 부임을 했습니다. 그 때 도곡동 땅을 산 것으로 되어있는 포스코건설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는데, 그때 도곡동 땅 실소유주가 이명박이라고 적힌 문서를 보게 됐습니다. 조사를 담당한 직원들이 제 방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저는 직원들에게 보안을 유지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하드커버 안에 서류가 들어 있었습니다. 하드커버 표지에 도곡동 땅 번지수가 몇 개 적혀 있었고, 그 밑에 ‘실소유주:이명박’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검찰이 안 전 청장에 대한 먼지털이식 수사에 착수한 건 안 전 청장이 이 서류를 봤다는 사실이 국세청과 청와대에 알려진 직후였다. 안 전 청장은 “내가 이명박 대통령에 맞서려 한다고 국세청과 국정원이 청와대에 보고를 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얼마 뒤 검찰수사가 시작됐고 검찰은 나를 긴급체포했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안원구 전 청장으로부터 2009년 당시 안 전 청장이 쓰던 개인수첩을 입수했다. 안원구라는 이름이 선명한 이 수첩에는 당시 그가 만난 사람들과 나눈 대화내용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안 전 청장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내용도 다수 확인됐다. 다음은 수첩 내용 중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6월 14일 국세청 간부 안OO과의 대화내용
국정원(국정원이 청와대에 보낸) 자료에 안원구가 BBK와 도곡동 땅문제를 조사했고, 그 내용으로 지금 정부를 협박한다고 적혀있다. SD(이명박 전 대통령 친형)나 국정원장을 움직일 수 없으면 해결이 불가능하다. 국세청을 떠나지 않으면 곤란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6월 18일 국세청 간부 A 씨와의 전화통화 내용
지금이라도 사표내라. 더 이상 국세청이 안원구를 도울 수 없다.
2009년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수첩
당시 검찰은 안 전 청장이 세무조사 대상 기업들을 협박해 가족이 경영하는 갤러리에서 그림을 사도록 했다며 뇌물죄를 적용했다. 그러나 검찰의 뇌물죄 주장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수사검사
정치수사 의혹이 계속 제기됐지만, 안 전 청장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도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승승장구했다. 김주현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대검 차장에 올랐고, 김기동 특수1부장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내내 승진을 거듭한 끝에 현재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 단장을 맡고 있다. 과거 대검 중수부장에 해당하는 자리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안 전 청장은 모든 것을 잃었다.
긴급체포돼 조사를 다 받은 뒤 피의자신문조서에 도장을 찍을 때였어요. 수사책임자였던 김기동 특수1부장이 누구와 전화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엮었다’라고 누군가에게 보고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분명 제 사건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했다고 믿습니다. 본인들 수사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묻고 싶어요. 그 때 도대체 어떤 심정으로 왜 수사를 했는지…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뉴스타파는 안 전 청장 사건의 수사책임자였던 김기동 단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다. 전화를 걸고 수차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대검찰청 대변인실에 문의하라”는 답변만 보낸 뒤 더 이상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개인수첩
인권을 무시하고, 권력과 타협한 정치검찰의 모습은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 때도 달라지지 않았다. 3년 전, 국정농단사건의 예고편이었던 정윤회 문건 파문을 무혐의 종결했던 검찰은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이 모습을 드러낸 뒤에도 수사를 주저했고, 핵심 피의자인 최순실을 방치했으며, 검찰 출신인 우병우 전 민정수석 수사에는 한없이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수사책임자인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수사대상자인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과 돈봉투를 주고받은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검찰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검찰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논란이 된 사건의 수사책임자였던 검사들이 하나둘 검찰을 떠나고 있고, 권력에 맞서다 좌천됐던 검사는 화려하게 복귀했다. 검찰개혁의 목소리도 그 어느때보다 커지고 있다. 그러나 검찰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수뇌부 한두 사람이 바꾼다고 검찰이 정상화될 수 없다는 것. 과거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반성,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검찰이 자신들의 과거를 반성한다고 검찰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국민들이 검찰을 신뢰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책임지고, 또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받을 때 제대로 된 검찰개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뉴스타파가 국정원 댓글사건을 제보한 전현직 직원에 대한 국정원의 ‘감찰 회보’를 입수했습니다. 국정원은 대선에 악용하기 위해 정치권에 줄대기를 시도한 파렴치범으로 제보자들을 매도하면서 전 직원들이 PC를 켜면 바로 볼 수있도록 감찰 회보를 열람시켰습니다. 내부의 추가폭로를 막기 위한 이례적인 조치였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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