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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강산애 산행 / 안내] 뜨거운 마음을 모아 북한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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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강산애 산행 / 안내] 뜨거운 마음을 모아 북한산으로

익명 (미확인) | 화, 2016/11/29- 18:56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강산애’는 희망제작소 후원회원들의 산행 커뮤니티입니다. 우리 사회 다양한 분야의 소셜디자이너들이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산에 오르며 희망을 노래합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건강한 모임 강산애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출처 : 북한산국립공원 홈페이지(http://bukhan.knps.or.kr)

출처 : 북한산국립공원 홈페이지(http://bukhan.knps.or.kr)

12월 강산애는 북한산으로 떠납니다.

북한산의 정기를 가득 담아 광장에 있는 시민의 뜨거운 마음에 전달할 것입니다. 희망제작소 후원회원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습니다. 많은 참가를 기다립니다.

○ 산행일정

○ 일시 : 2016년 12월 3일(토) 오전 9시 30분
○ 모이는 장소 : 불광역 9번 출구

– 일시 : 2016년 12월 3일(토) 오전 9시 30분
– 모이는 곳 : 불광역 9번 출구

○ 산행코스안내

– 산행코스 : 불광역 9번 출구 → 불광시장 → 족두리봉 → 향로봉 → 비봉 → 구기분소
※ 산행코스는 현지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 준비물

– 참가비 1만 원, 과일, 간식, 물 및 산행에 필요한 복장과 장비
※ 점심식사는 하산 후 할 예정입니다.

○ 참가신청 및 문의

– 나은중 강산애 회장 010-6343-4995
– 이원혜 희망제작소 후원사업팀 팀장 02-2031-2186
※ 산행에 관심 있는 후원회원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 보험 안내

– 안전사고를 대비해 레저보험에 가입하실 분들은 별도로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보험가입비는 개인부담입니다

강산애 카페 바로가기 ☞ 클릭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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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지역에 살고 계신 후원회원님들을 만나러 가는 KTX 열차 안에서 한 통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죄송해요. 오늘 급한 일이 생겨 서울에 가게 되었어요. ‘감사의 식탁’ 참석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희 때문에 자리가 없어 다른 분들이 참석을 못하게 된 건 아닌지 걱정이 되네요. 여러모로 많이 아쉽고 죄송합니다.”

7월 부산에서 진행되는 지역으로 가는 감사의 식탁(이하 ‘감사의 식탁’)에 참여하기로 하셨던 유선미 후원회원님의 연락이었습니다. 다음 번에는 꼭 오시겠다고, 부산 날씨가 좋지 않다고 희망제작소 연구원 걱정도 잊지 않으셨지요.

후원회원님들의 따뜻한 격려와 메시지로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은 항상 힘을 얻습니다. 3년 만에 찾는 부산에서도 그 따뜻함은 여전했습니다. 후원회원님들은 어제 만난 친구처럼 반갑게 인사하고 환영해주셨습니다. 이런 게 정인가 봅니다.

저녁 7시가 다 되었을 무렵, 감사의 식탁이 진행되는 콘텐츠코리아랩에 후원회원님들과 지역의 청년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살짝 서먹서먹했지만, 인사를 나누고 시간이 지나자 금세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준비된 김밥과 샌드위치로 저녁식사를 한 후 대화가 무르익을 즈음, 희망제작소 이원재 소장님께서 만남의 반가운 마음을 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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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회원님들을 만나 뵙기 위한 준비를 하며, 어떻게 하면 감사의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희망제작소가 지금까지 가장 잘해온 것, 시민들과 함께해서 가능했던 것, 소소하지만 의미있는 변화를 만드는 희망제작소의 혁신활동이 떠올랐습니다.

그중 하나인 휴먼라이브러리를 부산/경남지역 후원회원님들과 직접 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같이 읽고 나눌 두 권의 사람책도 준비했지요.

1권. 희망제작소 연구원
- NGO 입성, 사실 큰 뜻은 없었어요.
- 월급쟁이에서 활동가되기
- 희망제작소 5년차 연구원으로

2권. 부산 여자 사람
- 경상도=보수, 그 말이 지금도 통할까요?
- 경상도 여자의 서울 살이, 잘 지내고 있나요?
- 거칠거나 혹은 애교가 많거나, 둘 다 아닌 듯

사람책 두 권을 열람하고 자연스레 희망제작소에 대한 이야기와 부산 지역, 성별에 대한 생각들도 나누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나누며 우리가 가진 편견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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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뒤풀이 자리에서 희망제작소의 활동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2016년 10주년을 맞이하며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말씀드렸습니다. 이에 대한 후원회원님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고요.

“희망제작소와 지역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있으면 좋겠어요.”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 갈지 지역에서 고민할 수 있도록 함께 해주세요. 계기를 만들어 주세요.”
“이제까지의 활동들도 좋지만, 앞으로는 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프로그램들도 기대합니다.”

후원회원님들과 지역 청년들의 기대와 제안, 애정 어린 충고를 귀담아 들었습니다. 희망제작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후원회원 분님들과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 할 수 있어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후원회원님들과의 만남은 무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바닷바람과도 같았습니다.

더 오래 함께하지 못해, 더 자주 찾아뵙지 못해 아쉬운 마음 뒤로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습니다. 지치지 않고 응원하며 관심과 애정 보내주신 후원회원님들과 함께해주신 청년들께, 늘 고맙습니다.

글_ 김희경(시민사업그룹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월, 2015/07/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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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이 생겼어” 달이 총총 뜬 밤, 도서관을 나와 친구와 나란히 집으로 걸어가는 길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납니다. 3월의 푸른 봄에 시작했던 <제14기 모금전문가학교>가 총 11번의 수업을 끝으로 지난 6월 막을 내렸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할 때 주저함이 없는 편인데, <모금전문가학교> 수강을 결심하기까지는 참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1년 반의 휴학기간을 보내고 본격적인 취업준비를 해야 하는 4학년 2학기에 접어들었으며, 수입이 없는 학생이기 때문에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수강료가 부담스러웠고, 확신할 수 없는 새로운 분야의 도전이었기 때문이지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몇 날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두려움과 망설임이 있었던 시작이었지만 그 길의 끝에는 돈으로는 바꿀 수 없었던 ‘배움’과 ‘사람’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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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라린 경험이 준 교훈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키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리며,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만의 가치관이 생겼고, 어떤 방향성을 갖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늘 풀리지 않았던 질문은 그것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였습니다. ‘나에게 내재되어 있는 능력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으로 세상을 설득할 수 있을까’. ‘모금’이 답이 될 것 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모금전문가학교> 수강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금전문가학교>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속한 워크숍 조의 모금 마케팅은 고액 기부자를 향한 기부 요청이 필요했고, 강의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고액기부를 요청해봤습니다. 외향적이고 관계적인 성향을 가졌기 때문에 관계를 통한 기부 요청이 뭐 그리 어려울까 생각했던 저의 안일함이 완전히 깨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관계적인 성향이기 때문에 더 두려울 수 있음을, 우리의 모금 명분이 상대방에게는 심드렁한 주제일 수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결국 기부 요청에 실패했습니다. 그날 느꼈던 실망감과 허무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기부 요청을 한다는 것이 왜 그렇게 두려웠을까?, 왜 그렇게 주저했던 것일까? <모금전문가학교> 강의와 필독서를 통해 서서히 그 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모금은 ‘가치교환’이기 때문에, 기부자의 욕구를 충분히 조사한 뒤 그것을 바탕으로 기부자가 누릴 수 있는 가치를 개발하고 기부 요청을 했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느꼈던 두려움도 결국 모금가로서 완벽하게 준비되지 못함에서 오는 ‘자신 없음’이었습니다. 온전히 나의 시선에서 나의 세계관, 나의 가치만을 갈고 닦았던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가진 명분과 가치가 ‘선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상대를 설득하려고 했던 것은 여우가 두루미에게 넓은 접시에 담긴 맛있는 음식을 왜 먹지 못하냐고 강요했던 것과 같았습니다. 진정한 모금가라면 두루미를 위하여 긴 접시에 음식을 담아 주는 부지런함이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쓰라린 실패의 경험이 준 교훈이었습니다.

여전히, ‘같이’!

더불어 ‘같이의 가치’를 알 수 있었습니다. 모금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여럿이 ‘같이’ 함에서 오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다양한 직급, 연령, 분야의 동료들과 함께 하는 일이 대학생인 저는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조금 낯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경험이 많이 부족한 일개(?) 대학생을 온전한 조원, 동료로 인정해주시고, 약점일 수 있는 부분을 강점으로 개발해주시고 격려해주시던 조원들을 통해 ‘아, 나도 저런 선배가 되고 싶다’, ‘나도 좋은 동료가 되고 싶다’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어려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서로 다름에서 비롯되었던 의사소통의 오해, 나의 이기심으로 주었던 상처들, 크고 작은 장애물에 부딪힐 때는 막막했습니다. 그럴 때에는 조용히 나를 들여다보고, 머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의 어떠함으로 누군가를 곤란에 처하게 한 것은 아닌지, 나의 게으름으로 어려운 부분이 생긴 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돌이켜보면, 나를 공부하는 시간이었고 함께하는 조원들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같이’를 공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과정이 결국 이 시간을 있게 했고, ‘같이’이기에 해낼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희망을 보다

우스갯소리로 친구들이 “수강료 아깝지 않아?”라고 물을 때, 고민하지 않고 “그럼!”이라고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은, <모금전문가학교>에서 경험한 배움의 시간들이 제 삶에 다시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료식날 받은 장학금은 제 삶에 또 다른 희망을 주었습니다. 장학금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해달라는 선배들의 따듯한 ‘지원’이었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기분 좋은 영향력을 퍼뜨려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의심될 때, 포기하고 싶을 때, 힘이 되는 희망의 조각이 장학금이라는 나눔을 통해 생겼습니다.

<모금전문가학교>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지금의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생겼어”라고 말했던 3개월 전의 나와 얼마나 다른 모습일까요?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할 때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광고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삶을 바라보는 눈이 세심해진 것을 보면 ‘나 정말 달라진 걸까?’ 싶기도 합니다. 다만, 지금 결론을 내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모금전문가학교>의 기억들이 오래도록 제 삶에 남아 순간순간 빛을 발할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값진 모금 교육을 기획해주신 모금전문가학교 관계자분들과 부족함이 많은 저를 품어주신 14기 동기분들, 장학금을 지원해주신 여러 기관에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모금전문가학교>에서 ‘나눔’을 경험했던 시간들이 성숙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데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꾸준히 공부하는 모금가가 되겠습니다.

글 : 이민형 |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학생

제15기 모금전문가학교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 보기 및 수강신청 ☞클릭

수, 2016/08/2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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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 연구원을 공개 채용합니다.

희망제작소는 시민의 참여를 통한 실사구시 정책과 다양한 사회혁신 방법론을 연구ㆍ실행하는 민간싱크탱크입니다.
희망제작소의 가치와 정신을 기반으로 꿈과 열정을 펼칠 새로운 연구원을 모십니다.

1. 모집분야 및 지원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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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채용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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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류 합격자에게 별도의 과제가 주어지며 1차 면접 시 발표를 진행하오니 일정에 참고해주세요.

3. 근무조건

1) 직위 : 경력에 따라 결정
2) 공통사항
– 급여 ☞클릭
– 복리후생 : 4대 보험, 연차ㆍ여름ㆍ경조사 휴가 등
– 근무시간 : 주 5일, 09시~18시

4. 지원방법 및 제출서류

1) 지원방법 : 지원서 작성 후 이메일 접수 [email protected]
2) 지 원 서 : 첨부양식 이용 (개인정보제공동의서 체크 필수)

희망제작소 입사지원서 내려받기

* 제출된 서류는 반환하지 않습니다.
* 서류접수 뒤 확인 메일이 발송됩니다. 메일을 받지 못하신 분은 연락주세요.

■ 문의 : 경영지원실 (02-2031-2192)

수, 2015/12/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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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허핑턴포스트코리아 공동기획
시대정신을 묻는다⑩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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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 사회라는 점에서 북이나 남이나 공통점이 많다.”, “자유의 측면에서 보면 북한이 더 자유로운 부분도 적지 않다.”

대한민국은 이런 말을 공공연히 했다가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나라다. 테러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보다 흔하게는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북한 가서 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는 그런 데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는 속된 말로 ‘까임방지권'(욕먹지 않을 권리라는 뜻으로 현역 군필 연예인들에게 주로 쓰임)이라 불리는 자격이 있다. “북한 정권의 3대 세습이 싫어 남한으로 왔고 평생 김정은 체제에 맞서 살겠다”고 당당히 밝혀왔기 때문이다.

“기술이 더 발달하면 공산주의, 자유민주주의가 의미 없어진다.”, “창조적 파괴가 주도하는 시대가 되면 후진국이 어느 순간 치고 올라와 한국보다 더 잘 살 수도 있다. 북한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 없다.”

이런 말도 거침없이 했다. 한국 사회에서 당연스레 금지돼 온 것, 알아서 입 닫고 덮어둔 것들이 실제로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나 돌아보게 하는 말이었다.

‘금수저’ 사회는 결국 ‘세습 사회’

희망제작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허핑턴포스트코리아와 공동으로 기획한 ‘시대정신을 묻는다’ 열 번째 인터뷰로 주 기자를 만난 것은 그가 가진 독특한 관점을 공유하려는 것이었다.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온 북한 사회의 엘리트였다가 14년 전 탈북해 남한으로 온 뒤 공채 시험을 거쳐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고 있는 그는 남북한 사회 양쪽에 대해 ‘내부자’와 ‘외부자’의 입장을 가진 흔치 않은 사람이다. 국제부 기자로 일하며 한반도의 외교 및 지정학적 구도, 통일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오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야기를 들어볼 이유가 충분했다.

인터뷰는 이원재 희망제작소장의 진행으로 지난 3월23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스페이스노아에서 이뤄졌다. 주 기자는 첫 번째 질문인 “현재 한국 사회를 진단해 달라”는 데 대해 “강고한 기득권이 통로마다 꽉 막고 있는 사회”라고 답했다. “지금은 한국 사회에서 역사적인 기점”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기득권의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부정적인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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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6‧25 전쟁 이후 산업화 시대를 모범적으로 헤쳐 왔습니다. 문제는 그 성공 신화가 아직까지도 남아 앞을 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새로운 도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인데 모든 분야, 길목마다 기득권이 사회발전을 꽉 막고 있어요. 자연히 극복되기에는 한국 사회의 유연성이 너무 떨어져 있고, 여러 가지 역량이 한계치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기득권이 막고 있다는 ‘모든 분야’에는 정치‧행정‧경제‧교육 등이 망라되지만, 특히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직업들마다 기득권, 즉 ‘금수저 아버지’가 놓여 있다고 주 기자는 지적했다. 재벌만이 아니라 의사, 법조인, 언론인 등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여유가 보장되는 직업들마다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한 개인들의 좌절감이 더 크다고 그는 진단했다.

다시 말하면 한국은 상당 부분 ‘세습 사회’라는 것이다. 그의 ‘세습’ 언급은 남다른 느낌을 준다. 앞서 설명한 대로 자기 삶의 터전을 바꿨을 만큼 ‘북한 정권의 3대 세습’에 비판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여기 살면서 깨달은 것은 “북한은 권력자 혼자서 다 가지고 세습하는 사회라면 남한은 한 100명쯤이 나눠서 세습하는 사회”라는 것이었다.

“직장 스트레스는 남한이 열 배 크다”

남한에 와서 크게 깨달은, 북한이 더 나은 측면은 또 있다. 일하는 환경에서의 자유에 대한 부분이다.

“남한에 온 탈북민 대부분은 공통적으로 ‘자유를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탈북자들 중에 정말 자유롭게 사는 사람을 거의 못 봤습니다. 과거 사회주의 노선을 걸을 때 북한에는 분명 이동의 자유가 없었고, 경제활동의 자유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남한보다 자유가 큰 부분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일하는 환경 안에서의 자유예요. 직장 생활에 스트레스라는 게 거의 없거든요.”

북한은 100% 고용제 사회이고, 직장 내에서 사장이나 상사의 권한이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그냥 다른 직장으로 옮기면 된다고. 한국에서와 같이 ‘윗사람에게 잘못 보이면 해고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은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상당히 평등한 직장문화가 자리 잡혀 있다고 주 기자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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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국가 권력자를 욕하면 ‘그길로 잡혀가서 죽는’ 사회인 것도 분명하다. 그게 더 심각한 자유의 억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주 기자는 “기독교 모태신앙인 사람이 하나님 욕 못 해서 고통스럽지 않듯이, 북한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권력자 욕을 안 하는 것으로 배우기 때문에 그 점을 심각하게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대통령 욕 마음껏 한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잖습니까?”라면서.

한국 직장에 잘 적응 못 하는 탈북민들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라고 했다. 못마땅한 점이 있을 때 억누르지 못 하고 표출하기 때문에 한 직장에 오래 못 다닌다는 것이다.

“살면서 받는 스트레스 대부분은 사실 주변 관계에서 오는 것이잖아요? 한국은 일터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밥줄’과 직결된다는 위기감이 있어 자유롭지 못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직장 내 스트레스로 인한 불만은 한국이 북한보다 열 배 이상 큰 것 같아요. 여기도 천국은 아닌 거죠.”

꼭 기득권 때문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개인의 능력을 인정하는 사회라면 경쟁에서 도태되는 사람도 나오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것도 어느 정도 당연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 기자는 “정말 능력에 따른 결과라면 모르지만 실제로는 왜곡이 심하다”고 했다.

“북한 김정은에게 무슨 능력이 있는지 모르지만, 주위에서 ‘뛰어난 인물’로 만들어 주니까 그 사회에서 그렇게 통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사장 자리 물려받은 사람은 가만히만 있어도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경영자로 포장해 줍니다. 반면에 가난하게 태어난 사람은 제 능력만큼 인정받을 기회도 없죠. 그런 왜곡이 점점 고착화되기 때문에 ‘금수저’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 아니겠습니까?”

빠른 기술발전은 후진국에 오히려 기회다

한국 사회에서 ‘흙수저‧금수저’ 논의는 최근 들어 대두됐다. 주 기자가 한국에 온 14년 전만 해도 불평등에 대한 인식은 크지 않은 편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처음 한국에 와서부터 이런 점들을 느꼈다고 했다.

“제가 어쩌면 너무 기대가 컸는지, 유달리 예민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배고파서 탈북한 사람들은 여기 와서도 그런 점들이 안 보일지 모르겠는데, 저는 그 사회의 불평등, 불공평함, 퇴행적인 것들이 싫고 신물 나서 온 것이기 때문에 더 잘 보이는 것 같아요.”

이쯤 되면 아무리 ‘까임방지권’이 있어도 “도로 북한 가라”거나 “다른 나라 가서 살라”는 비난 댓글이 예상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어차피 이상적인 나라는 없습니다. 현실의 문제를 인정하고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시켜 가는 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노력하면서 살아가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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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되지 않을 경우, 이대로 가면 한국 사회는 어떻게 될까? ‘시대정신을 묻는다’ 인터뷰의 두 번째 질문에 그는 “기득권 장벽이 더 공고해지고 변화해야 할 시기를 놓치면 결국 세계적 경쟁에서 심각하게 뒤처지는 후진국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고비를 넘지 못하면 후손들에게 ‘선조들은 왜 저렇게 한심했을까?’하고 평가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소 독특한 시각이 보였는데, 주 기자는 “나는 과학기술 신봉자”라면서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미래 사회의 변화에 대한 예측을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으로 말했다. 그런데 그 예측의 범주가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 혹은 북방 지역과 중국까지 연결된다는 점이 달랐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 로봇 등의 영향으로 어차피 지금 있는 직업 대부분이 사라진다”는, 요즘 자주 제기되는 주장은 “미국 알래스카 주, 북유럽처럼 기본소득이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연결되는데,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 단위로 자원을 공평하게 나눠주면 결국 공산주의 체제와 비슷해지는 것이므로 이념이니 남북이니 하는 논의가 의미 없게 된다”는 전망으로 이어진다. 그것도 “반세기 안에 그런 시대가 온다”는 주장이다.

또 “후진국이 갑자기 치고 올라와 우리보다 더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과학기술이 비약적 발전되면 단계적 산업 기반이 필요 없어지기 때문이다.

“1980년대 한국에서 비디오테이프로 영화 볼 때 중국은 ‘비디오’라는 말을 몰랐습니다. 1990년대 CD가 나왔을 때는 중국에서도 사용했죠. 아프리카 대부분 지역에서는 비디오도 CD도 몰랐지만 지금은 USB에 담긴 영화를 컴퓨터로 봅니다. 선진국이 기득권의 장벽을 넘지 못해 머뭇거린다면 후진국이 언제든지 뛰어넘을 수 있게 된 겁니다.”

이는 “오히려 기득권으로 얽힌 복잡한 구조가 없는 사회가 미래 사회에 맞는 인프라를 구축하기 쉬울 수 있다”는 예측으로 이어졌다. 주 기자는 “3D프린터로 집을 짓고 도로를 놓으면 건설비용이 현재의 20%밖에 안 든다고 한다”면서 “그런 기술은 이미 상용화 돼 있고, 중국이 크게 앞서가고 있다”고 했다. 또 우리가 기존 금융산업의 반대로 ‘엑티브 엑스’도 없애지 못하는 동안 중국에서는 ‘핀테크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도 했다.

“북한‧아프리카처럼 인프라가 없는 나라들에는 그 의미가 엄청나게 큽니다. 이런 나라들이 어느 날 작심하고 외자유치를 해서 무인자동차용 도로를 깔고, 진공고속열차 선로를 깔고, 신산업의 기반을 건설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또, 최첨단 핀테크가 가능한 웹 인프라를 갖추면 어떻게 될까요? 어느 나라에선가 이런 기적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지요.”

이 말 끝에 주 기자는 “북한의 경우 김정은 체제가 무너지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북한도 지금은 김정은 정권이라는 기득권에 가로막혀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형태가 한국보다 단순하다는 점, 토지가 모두 국가 소유인 점 등을 감안할 때 체제 변화만 이뤄지면 비약적 발전이 가능하리라는 의견이었다.

교육‧정치부터 바뀌어야 가능성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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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기자가 북한을 다시 언급한 것은 한국 사회의 통일에 대한 고정관념을 꼬집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현재 한국에는 통일에 대한 생각으로 통일이 되면 북한에 부족한 인프라를 까는 과정이나 북한 주민의 저렴한 노동력 등으로 한국 경제가 기회를 얻을 것’이라는 식의 ‘통일대박’론, 반대로 통일이 되면 북한 사람들이 전부 남한으로 쏟아져 내려와 사회혼란이 야기되리라는 우려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짚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먼저 ‘통일대박’론에 대해서는 “10년 안에 통일이 되면 모를까, 그 뒤라면 그런 과실은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때쯤엔 한국에 중국보다 앞선 경쟁력을 유지하는 산업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중국의 과학기술력 및 경제발전 속도로 볼 때, 그리고 남북 관계가 지금처럼 유지된다고 가정한다면 모든 산업적 기회는 중국이 독차지 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북한 인구의 남한 유입 우려에 대해서는 “사회가 개방되고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면 고향을 떠나 선진국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꼭 남한으로만 온다는 보장은 없다”고 했다. 중국, 서방국가, 연해주를 비롯한 북방 지역으로 갈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면서 “특히 한국 사회가 북한 주민을 ‘저렴한 노동력’으로만 대우하려고 하면 더 안 올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이야기들에는 더 이상 북한과 남한이 멀어져서는 안 된다는 안타까움이 들어 있었다. 주 기자는 “정말 통일을 원한다면 보다 현실을 정확히 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통일 정책의 답은 분명히 정해져 있습니다. 북한이 어떤 상황일 때 통일이 되면 우리가 그 충격을 흡수할 수 있을지 가늠해보고, 충격을 최소화하는 상황으로 북한을 변화시켜 가야 하는 것이죠. 북한이 시장경제 훈련이 안 돼 있고 국민소득이 1,000달러도 안 돼 있기 때문에 감당하기 버겁다면 그 균형을 맞추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북한을 시장경제로 유도해 소득을 높이도록 말입니다. 그러자면 개성공단을 열 개, 스무 개 만드는 것이 올바른 방향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지요. 북한과 통일 문제를 정치적으로만 활용하려는 정치권의 자세가 안타깝습니다.”

‘한국 사회 개선을 위해 지금부터 시급히 해야 할 일’에 대한 세 번째 질문에 주 기자가 내놓은 답은 ‘교육’과 ‘정치’ 시스템을 고치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에 와서 교육과 보육 시스템을 보고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다”면서 특히 교육 시스템은 산업화사회에 맞는 인력을 대량으로 배출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고 짚었다. “학벌을 얻기 위해 학생들이 밤늦도록 학원에서 ‘찍는 기술’을 배우고, 스무 살 때 공부한 성적으로 일생이 결정되는 사회에서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재가 나올 수 있겠느냐?”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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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환경을 바꾸려면 “유아부터 대학생까지 큰 맥락으로 보고 관리하는 교육 정책, 각자 가진 능력을 발현할 수 있도록 단계별로 제대로 키워주는 공교육 시스템이 회복돼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도 기득권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다시 강조했다. 공교육이 무너지고 사교육이 비대해지는 잘못된 방향이 뻔히 보이는데도 그 흐름을 바꾸지 못 하는 것은 결국 교육계의 기득권들이 통로를 막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치에 대해서는 “개인의 이익과 이해관계를 위해 정치 대표자가 되려는 사람들을 용인하는 구조를 뜯어 고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정치 지도자는 기득권의 장벽을 단호하게 부수는, ‘창조적 파괴’로 이끌 지도자”라면서 현재 정치 풍토에선 그런 지도자가 나올 수도, 살아남을 수도 없다고 했다. 따라서 정치 체제를 혁명적으로 바꿔야 미래를 걸고 국민 앞에 나서는 지도자가 나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그는 “북한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북한을 배워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했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 여러 가지 예를 들었을 뿐”이라고. 그렇지만 한국 사람들이 왜 행복하지 않은지 생각하면 평양이 떠오를 때가 있다고 했다.

“평양에 살 때 참 좋았구나 싶은 것은 대동강변이에요. 강변 바로 옆에 도로가 없어서 젊은이들이 자연을 충분히 누리며 노래도 부르고 연애도 하고 그랬지요. 서울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여기 젊은이들은 영화 보고 밥 먹고 차 마시는 것 밖에 누릴 게 없더라고요. 저도 예전에는 외워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300곡도 넘었는데, 지금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사느라고 바보가 된 것 같네요. 평양과 서울의 차이는 고작 그런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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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이야기라고 하면 특이하지만, 누구나 이전 시대에 누렸다가 지금은 잃어버린 것에 대해 떠올리곤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극히 보편적인 이야기였다. 어찌 보면 앞으로만 갈 게 아니라 뒤도 보고 옆도 봐야 한다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정리 : 황세원 | 사회의제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사진 : 이우기 | 사진작가

오는 6월 15일 서울시청 시민청 동그라미방에서, 그동안 진행된 인터뷰를 정리하고 결과해석 및 2016년 시대정신을 제시하는 ‘시대정신을 묻는다 결과 발표 간담회’가 열립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자세한 내용 보기

목, 2016/06/0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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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는 지난 10년간 시민과 함께 사회혁신을 실천하는 ‘싱크앤두탱크’(Think & Do TANK)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희망제작소가 그간 진행해온 혁신활동을 가감 없이 진단하기 위해 ‘#혁신이 뭐길래’를 신설합니다. 연구원들이 직접 과거 사업 담당자, 참여자, 전문가 등을 만나 혁신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매월 정기적으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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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이뭐길래 ① 희망제작소 연구원 7인 7색 토크
제임스본드?! NO, 희한한 도구 만드는 ‘Q박사’ OK!

지난 6일 권기태 희망제작소 부소장과 4개 팀 연구원 6명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호기심이 사회혁신으로 이어지기 쉽지 않듯이 희망제작소는 지난 10년간 유망한 아이디어를 현실에서 끝까지 실행해보고, 전파시키며 시행착오를 겪어왔는데요. ‘혁신이 뭐길래’ 토크에 참여한 연구원들이 직접 희망제작소 혁신의 현주소를 허심탄회하게 짚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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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새로울 게 없다지만, 혁신의 얼굴은?

박정호 : 사업부서에 있다가 경영지원실에서 근무하면서 새로 거듭나는 데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과거에 혁신적이었던 게 지금 시대에는 전혀 혁신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것처럼 희망제작소도 혁신을 거듭하면서 놓칠 수 있는 핵심가치(독립, 참여, 현장, 지역, 실용, 대안, 종합)를 기억하는 게 필요하다는 걸 체감했어요.

인은숙 : 어디에선가 ‘혁신은 가죽을 벗기는 고통에 빗댈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희망제작소의 혁신은 공공 영역에서 배제된 ‘부분’을 드러나게 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하고, 그들의 변화를 일굴 수 있는 방법을 시도해보는 게 혁신이라고 봐요. 영화 <007 시리즈>에서 Q박사가 제임스 본드가 사용하는 희한한 도구를 만들어내는 것처럼요.(웃음)

박흥석 : (저는 아직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희망제작소의 혁신을 딱 정의 내리지 못했는데요. 하지만 혁신에도 맥락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희망제작소나 사회가 말하는 혁신은 일정 부분 조금 더 민주화되는 과정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권기태 : 우리 모두 가죽을 벗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죠. 제프 멀건(Geoff Mulgan)은 사회적 요구를 바탕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 방법론의 실행을 혁신이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누구의 관점이냐가 중요하다고 봐요. 희망제작소의 혁신은 시민의 관점에서 공공성의 가치를 담는 게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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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결이 살아있네” 꼽을만한 혁신활동

희망제작소는 창립초기부터 사회창안센터를 만들어 시민들의 생활 아이디어를 정부나 공공기관, 기업과 사회단체에 전달하여 실현하도록 하는 운동을 펼쳐왔습니다. 3,000개가 넘는 아이디어가 접수되었고, 그 중 50여개 이상이 현실화되었습니다. 연구원이 꼽는 희망제작소의 혁신과 아쉬움이 남는 활동은 무엇일까요.

오지은 : 참여워크숍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주민참여예산 사업은 희망제작소의 혁신활동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주민참여예산의 모체가 되는 조례연구소가 2007년에 있었어요. 조례월례포럼, 주민참여클리닉, 주민참여총서시리즈, 주민참여지형도맵구축 등은 지역 곳곳에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벌써 10년 전인데, 희망제작소가 굉장히 이르게 관심을 갖고 시작했던 거죠. 실제 주민과 공무원 대상으로 참여예산 사업을 진행하다보니, 경험과 기회의 유무에 따른 차이가 분명히 존재해요. 제도에 관심을 갖고 참여에 대한 인식을 제공하는 게 일차적 변화이고, 이 과정에서 행정이 변하고, 주민들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모습에서 변화를 느꼈어요.

조현진 : 주민참여예산은 제도의 특성상 주민이 참여하는 게 당연하지만, 제도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주민이 참여하는데 진입장벽이 높죠. 희망제작소가 연결고리처럼 다양한 시도를 벌이는 게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백희원 : 시민의 사회혁신 아이디어를 공모해 시니어와 청년이 함께 참여하는 ‘시니어드림페스티벌’은 혁신에 대한 정의와 부합한 프로젝트였죠. 지난 10년을 돌아보자면, ‘온갖문제 매거진 프로젝트’, ‘불만합창단’ 등은 재미가 더해지고, 다른 지역에서도 얼마든지 해볼 수 있는 프로젝트라서 기억에 남아요. 시민 스스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무언가’를 해볼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한 건 ‘느낌적인 느낌’을 만들기 위한 밑작업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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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어디, 난 누구?!” ‘혁신 맥락화’에 대한 고민

권기태 : 희망제작소가 시민의 가려운 부분을 말랑말랑하게 바꿔내며 잘했던 일도 많지만, 거기에서 멈춘 듯 해요. 한국 사회의 ‘혁신’을 원하지 않는 분위기 탓도 있을 테지만, 희망제작소가 연구소의 정체성을 찾아가느라 시민의 아이디어를 가볍게 풀어내는 데 힘을 덜 쏟게 된 게 아쉬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오지은 : 과거에는 희망제작소가 주도적으로 아이템을 발굴하면서 이슈를 던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는 등 사다리 역할을 하며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재는 지역 내 주체들이 웬만한 워크숍을 스스로 꾸릴 수 있거든요. 여기에서 희망제작소의 역할과 혁신이 무엇이어야 할까에 대한 질문이 남죠.

백희원 : 저는 사회혁신이라면 주변에서 만들어지는 변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희망제작소가 초창기에 사회혁신 어젠다 중심에 있었다면, 지금의 희망제작소는 다른 포지션을 가져가야 할 것 같긴 해요.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주는 것 외 다른 방법론을 찾아봐야죠.

조현진 : 우리 스스로 혁신을 말할 때 새로움에 대한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혁신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보다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불편한 부분은 편하게, 어려운 점은 쉽게 만들어가는 것을 포착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나아가 저변을 어떻게 확장시킬지, 누군가와 함께 할지 등 교차점을 잡아내는 시도도 많아져야죠.

박흥석 : 비슷한 맥락에서 혁신은 익숙함에 대한 도전인데 혁신해야 한다는 무게감 때문에 오히려 주체를 대상화한다든지 하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현장에서 혁신의 지점들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위해서 일상에서 가볍게 변주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생기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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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가 내세우는 혁신은 무엇이어야 할까

오지은 : 중앙에 집중된 언어, 내용, 방법을 실사구시의 방식으로 지역으로, 시민에게 돌려주는 거요. 달리 말하자면 누구나 집중하지 않는, 그러나 공동체를 이루는 데 필요한 주체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방식이요. 그리고 일상에서 놓치면 안 될 중요한 권리를 놀이화하듯 쉽고, 재미있게 풀어 줄 수 있는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봐요.

백희원 : 희망이 100% 밝음으로만 채워지지 않는 것처럼 희망제작소의 혁신도 리스크를 가져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덜한 두려움으로 일을 벌이도록 지지해주는 희망제작소의 조직문화를 잘 활용하는 건 어떨까요.

인은숙 : 희망제작소가 제시한 사회혁신의 원형을 한 번 들여다보니 변주하고, 응용할 수 있는 무언가를 던져주면서도 그 다음을 내다봐야 한다고 생각이 드네요. 지난해 희망제작소가 발표한 시민희망지수가 ‘희망’의 원형을 들여다보는 프로젝트였는데 당시 예시가 없어서 연구할 엄두가 나질 않았죠. 그 이후로 자문 요청이 많이 들어와요. 청소년의 꿈지수, 지역주민의 희망측정도구를 만들고 싶다고요. 원형을 만들고, 고민을 던져주지만, 후발주자와 함께 그 길을 가기 때문에 포지셔닝이 중요해요.

박정호 : 희망제작소는 혁신의 주체이지만, 조직 자체로서 보수적으로 굳어질 수 있는 지점을 잘 살펴봐야 해요. 시민에게 최대한 열려있는 곳, 시민과의 접점을 더욱 넓히는 게 중요하죠. 단적으로 3~4년 전 희망제작소와의 접점을 경험한 분들이 최근 들어 채용공고에 지원하시더라고요. 혁신이라는 기치 아래 진행한 프로젝트를 경험/참여한 분들이 이렇게 반응하고 있는 것 자체가 신기했는데 그만큼 조직기반을 다양하게 열어놔야 할 것 같아요.

권기태 : 맞아요. 조직이 오래되면, 관성적으로 변하는 데 이러한 부분을 살펴보되, 대내외적인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희망제작소만의 아이디어를 원형화하는 게 희망제작소와 연구원의 몫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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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석자 : (시계방향으로) 인은숙 지속가능발전팀 팀장, 오지은 지역정책팀 선임연구원, 권기태 부소장(소장권한대행), 박흥석 지속가능발전팀 선임연구원, 조현진 시민사업팀 연구원, 백희원 시민사업팀 연구원, 박정호 경영지원실 연구원

‘희망제작소가 말하는 혁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혁신이 뭐길래> 토크에 참여한 연구원들은 ‘희망제작소만의 색깔’을 찾는 시도와 실패들을 통해 혁신의 밑거름이 무엇인지를 되짚었습니다. 불편한 부분은 편하게, 어려운 부분은 쉽게 풀어내는 일, 여러 주체들이 섞일 수 있도록 장(場)을 마련하는 일, 그리고 혁신의 변주 안에서 본질을 기억하면서 과거-현재-미래의 연결고리가 무엇인지를 찾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진행 및 정리 : 방연주 | 미디어홍보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사진 : 최은영 | 미디어홍보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 대화 도중 언급된 희망제작소의 사회혁신 사례

조례연구소 : 희망제작소는 지난 2006년 조례를 통해 지방분권 및 자치활성화 도모하는 ‘조례연구소’를 창립했다. 조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지방분권 촉진, 지역 활성화 기여 등의 대안을 마련하는 데 방점을 맞췄다.

시니어드림페스티벌 : 시니어의 사회공헌아이디어를 시니어와 청년이 함께 실행해보는 프로젝트로 다양한 사회공헌 모델을 제시하는 성과를 보여줬다. (관련 글 보기)

온갖문제매거진 프로젝트 : 희망제작소는 지난 2013년 시민이 직접 일상의 문제를 연구하고 해결방법을 찾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모두가 궁금해 하지만 아무도 연구하지 않았던 것을 연구하는 시민 연구 수사대’는 주제선정부터 연구까지 전 과정을 직접 주도하고, 시민이 연구자이자 문화생산자라는 측면에서 의미있었다. (단행본 보기)

불만합창단 : 희망제작소는 지난 2008년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이 사소하고 작은 불편, 편견이나 무지에서 오는 고단함과 속상함 등을 노래로 부르는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불만합창단 기획, 조직, 페스티벌 운영 등 그동안의 기록을 생생하게 정리했다. (관련 글 보기)

* 세계를 변화시킨 10대 사회혁신

1. 오픈유니버시티 : 원격수업 모델로 전 세계를 넘나드는 교육을 실시했다.
2. 공정무역 : 1940~8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개척했다.
3. 그린피스 : 시민들이 사회변화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4. 그라민운동 : 공동체에 기반을 둔 마이크로 금융의 새로운 모델을 확산시켰다.
5. 엠네스티인터내셔널 : 인권 신장에 기여하고 있다.
6. 옥스팜 : 인도주의적 구조를 확산시켰다.
7. 여성기구 : 여성단체와 혁신운동이 페미니즘을 이끌었다.
8. 리눅스 : 오픈소스 방식으로 여러 분야를 변화시켰다.
9. 주민참여예산 : 민주적 혁신과 함께 모방되는 모델이다.
10. 내셔널헬스서비스 : 건강과 건강에 관한 지식에 보통 사람도 접근할 수 있다.

– 제프 멀건, ‘사회혁신이란 무엇이며, 왜 필요하며 어떻게 추진하는가’ 발췌

화, 2017/02/1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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