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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지부] 광주전남지부 창립 17주년 기념식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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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지부] 광주전남지부 창립 17주년 기념식 외

익명 (미확인) | 수, 2016/11/23- 16:39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광주전남지부입니다. 최근까지 우리 지부 사무처와 각 단이 주도하여 진행한 우리 지부 사업과 활동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1. 사무처

가. 지부 임시총회 및 민변 광주전남지부 창립 17주년 기념식 (2016. 9. 7.)7h3Ud0151vkrkhgq13uty_zi5dvs 33hUd015libzpc171rtg_zi5dvs 61eUd0151jjdk5bti5f5f_zi5dvs 72aUd0159f40hzplfjxt_zi5dvs

1999. 9. 3. 11명의 변호사가 모여 창립한 우리 지부가 올해로 17번째 생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지역에서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달려온 지난 17년 역사를 되돌아보고, 지부 회원 50명 시대를 맞아 더욱 비약하는 지부의 미래를 다짐하고자 9. 7. (수) 지부 임시총회와 겸해 우리 지부 창립 17주년 기념식(이하 ‘지부 창립기념식’)이 있었습니다.

먼저 지부 임시총회에서는 우리 모임에 가입을 신청한 안현주 변호사(연수원 34기,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와 전경인 변호사(변시 1회, 대한법률구조공단 광주지부)의 신입회원 가입 승인 안건이 통과되었습니다. 이어 지부 창립기념식에서는 김용채 변호사님(연수원 13기)에 대한 공로패 증정, 지부 활동 영상 상영, 기념촬영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나. 11월 지부 임시총회 (2016. 11. 2.)20161102_184123 20161102_184347

올해 4번째 지부 임시총회를 아래에 적을 2016 민변 소개마당 & 변론경험 나누기 행사 전에 진행하였습니다. 지부 임시총회에서는 우리 모임에 가입을 신청한 김수지 변호사(변시 5회, 변호사 장정희 법률사무소)에 대한 신입회원 가입 승인 안건이 통과되었습니다.

다. 2016 민변 소개마당 & 변론경험 나누기 (회원사업단과 공동 주관, 2016. 11. 2.)DSC09108 DSC09111 b72Ud01514mqr20tujd2m_o74us3 bg4Ud0151hzafbji6pb3_o74us3 DSC09104

지역에 있는 신입 변호사들에게 우리 모임을 알리고, 선·후배간 변론활동 경험을 공유하고자 2014년부터 진행한 ‘민변 소개마당 & 변론경험 나누기’ 행사가 열렸습니다. 변시 5회 출신 신입 변호사 11명과 함께 진행한 이 행사에서는 민변 활동 소개, 선·후배 변호사들의 인사말, 변론경험에 대한 질의와 응답의 순으로 진행하였습니다.

라. 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路 9월의 쌩쌩파티 ‘辯’ (2016.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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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지역 공공정책 연구와 토론을 목적으로 발족한 지역 싱크탱크 조직인 「광주路」 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이 단체에서는 매월 1회 단체 소속 회원 탐방을 통해 단체간 교류와 함께 지역 의제 발굴의 통로를 마련하고자 ‘쌩쌩파티’ 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번 9월은 광주路와 우리 지부가 함께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습니다.

30여 명이 모여 진행한 쌩쌩파티에서는 광주路와 우리 지부에 대한 소개를 비롯해 다양한 토론을 통해 민변을 알리고, 지역 문제에 대한 서로간의 생각을 나누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2. 공익소송기획단의 주요 소송사건 경과

가. 한전 직접활선공법 관련 공익소송

앞선 지부 보고에서 자세히 적었듯 한전의 직접활선공법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전기원 노동자들을 대리해 소제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 남영전구 수은유출 관련 피해 근로자 공익소송

역시 앞선 지부 보고에서 적었듯 남영전구의 수은 유출로 인해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을 대리해 국가와 남영전구를 상대로 위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다. 5·18 명예훼손 관련

현재 우리 지부에서 대리해 진행하고 있는 5·18 명예훼손 관련 소송은 뉴스타운 호외 발행 금지 가처분 사건, 세 차례의 고소사건(형사), 관련 손해배상 청구(민사)입니다. 그런데 지만원 측에서 최근 「5·18 영상고발」 이라는 책을 500부 발행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소위 ‘광수’ 로 지목당한 4명의 광주시민이 가처분, 소송, 고소 관련 5·18 기념재단에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지부에서는 관련 소송팀을 구성해 이 달 말 안으로 고소사건 접수를 비롯해 정식으로 사건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3.법률구조단의 주요 법률구조 사건 경과

가. 이00 목사 유신 집시법 관련 위헌제청 심판 인용

우리 지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이00 목사의 긴급조치 9호에 따른 재심 및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사건을 위한 선결적 쟁송인 유신 집시법 관련 위헌제청 심판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 결정되었습니다. (2014헌가3)

4. 회원사업단

가. 회원사업단 주최 제2차 선배변호사와의 대화 (2016. 7. 15.)7geUd015rd03gptfza9u_zi5dvs 37gUd015jbg5e3zp6tor_zi5dvs 058Ud0151b68qnppxeybf_zi5dvs 177Ud01511bc5d7v69sr5_zi5dvs

회원사업단 주최 두 번째 선배변호사와의 대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행사는 우리 지부 7대 지부장을 역임하신 임선숙 변호사 (연수원 28기, 법무법인 이우스 대표변호사)를 모시고 19년차이자 여성 변호사인 임선숙 변호사님에 대해 여성변호사로서 처리해야 하는 다양한 문제, 자녀 육아문제, 기타 개업 변호사로서 겪는 실무상의 문제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후배변호사들의 질의와 임선숙 변호사의 답변 등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임선숙 변호사는 먼저 “사람을 만나는 것은 때가 있으며, 만나는 사람과 만나는 자체가 가치가 있으므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고 후배 변호사들에게 당부했습니다. 또한 임 변호사는 “먼저 궂은 일, 힘든 일을 맡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임선숙 변호사는 “여러 봉사, 학회, 경영자 과정 등 만들어진 조직을 포함해 자신이 관심있는 것들에 대해 적극 활용하며 참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 을 강조했습니다. 변호사에 대해서는 “변호사란 분쟁해결사이기 때문에 일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법원에서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의뢰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고 덧붙였습니다.

나. 지부 여름 야유회 (2016.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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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부 여름 야유회가 2016. 7. 23. 담양 파라다이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무척이나 더운 여름날 지부 회원들과 회원들의 가족이 모여 스피드 게임, 족구, 단체 게임 등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5. 지부 내 연구 모임 활동

가. 농업법 연구회

1) 「맛있는 식품법 혁명」 의 저자 송기호 변호사와 함께하는 농업법 이야기 (2016. 7. 22.)4b1Ud01511cgwtxhl6az_zi5d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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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법 연구회 주최 「맛있는 식품법 혁명」의 저자 송기호 변호사와 함께하는 농업법 이야기 행사가 7.22. (금) 18:00 지부 사무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농업법, 통상 관련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님은 농업법 관련 법률가들이 할 수 있는 영역과 업무를 중심으로 본인이 진행한 변론 사례와 본부에서 연구한 농업 관련 법체계 자료 등을 가지고 2시간 넘게 조용하지만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이어주셨습니다. 무엇보다 대표적인 농도 광주전남에 있는 법률가들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하였습니다.

2) GMO 작물 개발이 우리 농업에 미치는 영향 및 법/제도의 문제점 (2016.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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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법 연구회에서 지난 7월 송기호 변호사의 농업법 강연에 이어 두 번째 강연이 있었습니다. 이번 강연은 우리 지부 포함 14개 시민사회단체 공동으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GMO 작물이 우리 농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고, 법과 제도상 문제는 없는지에 대해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은진 교수를 모시고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601호 강의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나. 미국인권판례연구회 (약칭 ‘미인회’)90cUd015pvtjoulrafmz_1qy7ma

상반기 주 1회 모임을 진행한 미국인권판례연구회가 하반기 모임을 진행하고,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 젠더법 케이스 스터디 모임KakaoTalk_20161123_135539977

젠더 이슈 관련 사건의 법률지원 과정을 공유하고, 연구하기 위해 젠더법 케이스 스터디 모임이 구성되어 10. 10. 1차, 11. 14. 2차 모임을 진행하였습니다.

6. 연대투쟁

가. 故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책임자 처벌! 살인정권 규탄 광주투쟁본부20160927_100556 20161005_121133 20161005_121151 20161005_121214

지난해 11. 14. 민중총궐기에 참석했다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300일 넘게 의식 불명 상태로 서울대학교 병원 중환자실에 있었던 백남기 농민 (전남 보성) 이 9. 25. 영면하였습니다. 지역에서는 9. 27. 5·18 민주광장에 故 백남기 농민 광주시민 분향소를 설치하고,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한 것을 시작으로 「故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책임자 처벌! 살인정권 규탄 광주투쟁본부」를 구성해 활동하였습니다. 우리 지부 역시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위 투쟁본부에 결합하는 한편 10. 5. 월례회와 겸해 5·18 민주광장에 설치된 분향소에 합동 조문을 하였습니다.

나. 박근혜 정권 퇴진 광주시민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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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실세 최순실 일가의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현 사태는 박근혜 정권의 헌정질서 파괴로 확대되어 100만이 넘는 국민들이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지역에서는 1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박근혜 정권 퇴진 광주시민운동본부」를 11. 9. 결성하였습니다. 우리 지부 역시 현 시국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함께하기 위해 위 시민운동본부에 결합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부 자체적으로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민변 광주전남지부 비상시국회의」를 11. 7.부터 매주 월요일 17:00에 지부 사무실에서 열고 논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11. 12. 서울 광화문에 우리 지부 9명의 회원이 상경해 촛불집회에 참여하였고, 지난 11. 19. 광주에서 열린 10만 시국촛불대회에는 지부 회원과 가족을 포함해 20여 명이 참여하였습니다.

다. 5·18 최후의 항쟁지 옛 전남도청 보존을 위한 범시도민대책위원회20160930_133502

광주광역시와 시의회, 시교육청, 5·18 단체 등 25개 단체가 참여한 옛 전남도청 복원과 보존을 위한 범시민대책위원회가 지난 10. 4. 결성되었습니다. 최근 옛 전남도청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민주평화교류원으로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총탄 흔적 등 역사 현장이 훼손되는 등의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5월 단체 등이 옛 전남도청 원형 보존을 위한 천막농성을 지난 9. 7.부터 무기한 진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 지부는 위 대책위원회에 참여하는 한편 관련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상 광주전남지부 소식이었습니다.h24Ud0151i9xq6oqnjuo1_wv2xao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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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위원회 활동소식

#. 감동의 문제작, “불안한 외출” 민변 상영회 

지난 7월 23일 저녁, 하주희 변호사님이 민변 대회의실에서 눈이 빨갛게 충혈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과연, 누가 그녀를 울린 것일까요?
바로 통일위 주관 영화 “불안한 외출” 민변 상영회에 등장하는 주인공 윤기진-황선부부와 그들의 두 딸 민이와 겨레 때문이었지요…
영화 ‘불안한 외출’은 1999년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장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10여 년 간의 수배생활과 5년 동안의 감옥 생활을 해야 했던 한 청년과 그 가족들의 삶을 다룬 다큐영화인데요, 수배 중에 결혼 해 두 딸을 낳았지만 한 번도 딸들과 같이 살아보지 못했던 아빠가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살면서 겪게 되는 일상을 담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저 매일 매일 반복되는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이 이들 가족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꿈같은 일상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자꾸 묵직하게 만들었지요…
특히 출소 하루 전 감옥에서 쓴 편지를 이유로 검찰은 다시 그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하고, 출소와 함께 재판이 시작되고, 1년만에 다시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요,,,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한 개인과 그 가족구성원들이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를 깊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통일위원회 설창일, 이광철 변호사님은 영화 속 주인공들의 변호인으로 지금까지도 활약을 하고 계신데요, 그래서인지 영화 후 이어진 간담회와 뒤풀이에서도 영화의 진한 여운이 늦도록 이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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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산으로 찾아가자, 우리들의 백두산으로!”

8월 21일(금) 부터~8월 24일(월)까지 3박 4일동안 우리 민족의 성산 “백두산”으로 제3회 백두산 통일기행을 떠납니다.

통일위원회 백두산 통일기행은 1997년 1회 통일기행에 이어 지난 2013년 16만에 두 번 째 백두산 통일기행을 진행하였고, 올해로 3회 통일기행을 맞이하게 되었는데요, 아무쪼록 이번 백두산 통일기행이 막혀있는 남북관계에 작은 통일의 물꼬가 되길 바라봅니다.

백두산 통일기행 참가단은 통일위 꽃미남 7인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원조 꽃미남 천낙붕 변호사님과 그 계보를 잇는 설창일, 김용민, 양승봉, 이광철, 양창영 변호사님이 함께 하시고, 통일위원회 신입회원 서중희 변호사님은 통일위 점심모임에서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말에 감명을 받아 이번 백두산 기행을 결심하게 되었답니다.

그 7인방이 들려주는 대망의 백두산 여행기는 다음 뉴스레터를 기대해 주시구요, 앞으로 통일위원회는 백두산 뿐만 아니라 분단의 역사를 가진 독일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통일기행의 역사를 이어갈 야심찬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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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출신의 동아일보 기자가 들려주는 통일이야기”

통일위원회에서는 광복 70돌을 맞이하여 이번 8월 월례회에 아주 특별한 분을 모시려고 합니다.
김일성 종합대학교를 졸업하고 2002년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북한 관련 세계 최다 방문 사이트인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를 운영하고 있는 주성하 기자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마침 지난 5월 민변 공부모임에서도 주성하 기자가 지은 『남쪽에서 보낸 편지』를 함께 읽으며 북한 주민의 눈으로 바라 본 남과 북의 실상을 통해 다양한 생각과 토론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특히 객관적인 북한전문가로 평가되는 주성하 기자의 강연은 최근의 북한상황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전하면서 향후 남북관계의 전망과 방향을 제시하는 시간이 되어줄 거라 기대되는데요, 민변 역사상 처음으로 동아일보 기자가 민변에서 강연하는 이색(?)적인 자리에 회원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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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출생
김일성 종합대학 졸업
2002년 남한 입국
2003년 동아일보 공채 입사
2015년 현재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북한전문기자)로 활동
저서 : 《서울에서 쓰는 평양 이야기》《주성하기자의 북한 바로보기》
《외국특파원들이 본 두 개의 코리아(번역) 《세계의 명문 직업학교를 가다》
《김정은의 북한 어디로 가나》

 

화, 2015/08/1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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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상위 워크샵 소식

 

국제통상위는 2015. 7. 17.∼18. 경기도 용인 파운타운에서 워크샵을 가졌습니다. 다들 업무로 바쁘신 가운데에도 준비를 많이 해 주셔서 1박 2일의 일정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워크샵 발제를 나누는 과정에 발제부분보다 참가자가 많은 초유의 사태가 벌어져 사다리타기를 통한 엄정한 분배로 발제를 맡지 못하신 분들을 위로할 수 밖에 없는 뒷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우선 워크샵의 꽃인 발제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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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 제도론중에서 김종우 변호사님께서 ISDS 분쟁해결절차 일반론을, 임영환 변호사님께서 ICSID 중재절차에 관한 연구 부분을, 오현정 변호사님께서 ISDS와 최종성의 원칙 부분을, 차명심 변호사님께서 ISDS와 투명성 확보를 위한 국제적 논의 부분을 맡아서 발제를 해 주셨습니다.

 

다음으로 ISDS 비교 및 사례연구와 관련하여 박삼성 변호사님께서 우리나라가 체결한 국가별 투자협정에 포함된 ISDS 규정의 비교, 분석 부분을, 노주희 변호사님께서 미국투자자들이 세금 부과한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ISDS 사례 분석 부분을, 박일지 변호사님께서 사법작용에 관한 ISDS 사례 분석 부분을 발제하여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송기호 변호사님께서 TPP의 현황과 대응과제를 발표하시면서 워크샵 1부의 막을 내렸습니다.

 

노주희 변호사님의 국민MC급의 사회로 발제를 마치고 드디어 바비큐 시간이 되었습니다. 한우를 가져오신 임영환 변호사님께서 직접 요리까지 담당해주시는 멋진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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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샵 뒷풀이의 메인 음료는 역시 요즘 대세남인 백종원표 수박소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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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과 음료가 있는 베란다에서 신입 이연지 변호사님, 오현정 변호사님의 소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뒷풀이가 시작되었고, 밤 깊은 시간까지 멋진 음악을 배경으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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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가볍게 아침을 먹고 산책을 하며, 다음 워크샵을 기약하면서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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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08/1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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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문법』, 『인권과 인권들』 독서 토론 후기

 

이하나(민변 13기 자원활동가)

 

7월 월례회는 『인권의 문법』과 『인권과 인권들』 두 책에 대한 독서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각자 발제를 분담해 책을 정리하고 논점을 뽑아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두 책 모두 인권 관련 담론을 비교적 포괄적으로 다루는 이론서이고, 그 분량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월례회 때까지 다 읽어 오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참여자들 모두가 성실히 발제를 해왔기 때문에 전반적인 책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토론까지 이어갈 수 있었다.

조효제 선생님의 『인권의 문법』은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인권 이론 전반을 개괄하고, 인권에 대한 비판이론을 분야별로 충실히 소개한 뒤, 인권 민주주의의 모색을 결론으로 제시하는 종합적인 인권이론서였다. 저자의 논지는 후반부로 갈수록 뚜렷하게 드러나지만 그 전까지는 다양한 인권담론들을 일별하고 있어서, 처음 인권을 접하는 이들에게 친절한 길잡이가 되어 주기에 충분했다. 반면 정정훈 선생님이 쓴 『인권과 인권들』은 인권에 대한 저자의 입장을 보다 전면에 내세운 책이었다. 『인권의 문법』이 포괄적인 인권 개설서에 가깝다면, 『인권과 인권들』은 저자의 논지를 중심으로 인권에 관한 철학적 논점을 재구성한 정치철학 저술이었다. 나는 두 책 중 『인권과 인권들』을 맡았는데, 책에서 전개되는 논의가 다소 사변적이어서, 보다 생생한 토론을 이끌어내고자 최근에 있었던 이주노조 합법화 판결 사례와 책 내용을 비교하는 발제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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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문법』과 『인권과 인권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바는 바로 인권이 ‘정치적’이라는 점이었다. 이 주장은 인권이 흔히 정치와는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합의 가능한 도덕적 권리처럼 여겨지는 통념에 정면으로 반한다. 인권운동을 하는 측에서도 인권보장에 소홀한 정부와 정치권을 비판하기 위해 ‘인권은 정치적 합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인권에 정치적 계산을 대입하지 말라’는 수사를 구사하는 마당에, 위 저자들은 어떤 근거로 저런 도발적인 테제를 제시하는 것인가? 내가 맡은 책 『인권과 인권들』에서는 근대 인권이 등장한 역사적 배경과 그 이후 전개된 일련의 철학적 논쟁들로부터 인권의 근본적인 정치적 성격을 도출하고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근대 인권은 애초에 그것이 본격적으로 현실화되기 시작한 프랑스 혁명기에 현실의 공동체를 변혁하고 재조직하는 ‘정치’의 원리로 제시되었으며, 그 후 이어진 일련의 인권 비판 및 대안 담론들은 모두 정치와 분리된 인권 개념의 위험성을 줄곧 지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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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인권에 비판적인 이들은 주로 현실에서 인권이 결코 보편적이지 않다는 점에 주목한다. 실제로 인권은 특정 국민국가에 의해 ‘시민’으로 인정된 이들에게만 제한적으로 보장되어 왔기에, 시민에서 배제되거나(비시민) 열등한 시민으로 규정된(2등 시민) 이들은 권리의 사각지대로 내몰리는 결과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그에 따라 인권 비판론자들은 ‘시민 아닌’ 인간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최소한의 권리로 부여되는 탈정치적 인권 개념이 무용할 뿐만 아니라 현실의 억압을 은폐하는 기만적 역할까지 한다고 공격한다. 이에 맞서 인권을 옹호하는 입장은 바로 그 ‘시민 아닌’ 인간이 인권을 주장함으로써 기존 체제를 변혁하는 저항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인권은 기존 체제에서 배제된 이들로 하여금 그저 ‘살아있게만 하는’ 권리가 아니라,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그 이상에 비추어 부당한 현실을 비판하고 변혁할 수 있게 하는 정치적 주체화의 언어라는 것이다. 정정훈은 바로 후자의 관점을 채택하여, 인권이 근본적으로 정치적 권리임을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과제는 인권을 정치와 무관한 도덕적 규범으로 고착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존엄과 평등자유를 선언한 인권의 이상을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권력관계를 변화시키는 ‘인권의 정치’가 되어야 한다. 『인권의 문법』 또한 ‘인권 민주주의’를 제시하면서 비슷한 결론으로 책을 끝맺고 있다. 인권이 그 자체로 최고선을 보증할 수 없는 개념인 만큼, 치열한 토론과 정치적 과정을 거쳐 인권이 민주주의와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점에서, 『인권의 문법』은 『인권과 인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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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를 나눈 뒤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쟁점을 뽑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 번째 쟁점은 인권을 보장해야 할 필요성, 두 번째 쟁점은 신자유주의와 인권 간의 관계였다. 우선 인권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받으려면 각자의 생명 및 존엄을 존중하기로 다른 이들과 약속해야 하므로.’라는 입장과, ‘우리는 홀로 살 수 없고, 언제나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므로’라는 두 가지 의견이 제시되었다. 전자에 대해서는 그 내용이 사회계약론과 유사하기 때문에, 사회계약론의 전제인 ‘자연상태’나 ‘전쟁상태’가 현실과 동떨어진 의제적 개념이라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실제로 무권리 상태에 처하는 경우, 예컨대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아 죽는다거나, 난민 혹은 이주노동자들이 어떠한 제도적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므로, 그러한 무권리 상태를 끔찍한 ‘전쟁상태’에 비유해 인권 보장의 필요성을 도출할 수 있지 않느냐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두 번째 쟁점인 신자유주의와 인권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제법 팽팽한 의견 대립이 전개되었다. 특히 『인권과 인권들』의 저자가 지나치게 신자유주의를 인권의 ‘적’으로 악마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신자유주의가 그 특성상 인권과 대립할 수밖에 없다는 반대 의견이 제시되었고, 신자유주의를 인권 친화적인 개념으로 재구성할 수 있지 않느냐는 재반론이 오고갔다. 그러나 토론 자리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정의가 합의되지 않아 제대로 된 논의가 진행되기는 힘들었다. 보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토론이 이루어졌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짧은 시간동안 상당한 양의 발제와 각자의 소견을 나눈 것만으로도 7월 월례회는 알찬 시간으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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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독서 토론을 통해 기존에 내가 인권에 대해 갖고 있었던 파편적인 생각들을 정리해 볼 수 있었다. 나아가 여전히 인권이 정치적·사회적으로 유의미할 수 있음을 확인하는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자칫 전문적인 법적 담론에 갇힐 수 있는 인권 개념을, 피억압자들의 생생한 저항의 언어이자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는 정치적 상상력으로 살려내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 지금도 현장에서 분투하는 수많은 변호사들 및 인권운동가들의 활동이 바로 위 두 책이 힘주어 주장하는 ‘인권의 정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권의 이상을 제약하고 후퇴시키려는 잔혹한 현실에 맞서서, 보편적인 존엄과 평등자유를 요구하며 싸우는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나 또한 그러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사회인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화, 2015/08/11-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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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데이

- 추억찾기-

 

- 김의지 회원

지난 8. 20.은 여성위원회의 호프데이였습니다! 저는 이제 막 민변에 가입한 신입회원이기에 호프데이 준비위원에 자발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워낙 소극적인 성격 탓에 절대 자원하지 않고 있었지만, 애타게 열정적인 신입회원을 찾는 선배 변호사님들의 마음의 소리가 들렸던 것 같습니다.

 

준비위원장이신 이선경 변호사님께서 이전 호프데이에서는 한강에서 유람선 타기, 세계맥주파티 등을 하였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올해는 무엇을 할지를 같이 고민하면서, 호프데이의 심오한 취지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그 취지는 격무에 시달리느라 쌓인 스트레스를 1년에 딱 하루라도 같이 모여 즐겁게 놀면서 날려버리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뻘줌해서 여성위에 참여하지 못했던 신입 회원님들을 위한 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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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참여하게 된 준비과정에서는 현지현 변호사님의 활약이 두드러졌습니다. 유람선 타기, 노래방 가기, 바비큐 파티 등등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으나 현실적인 제약에 걸려 실현되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아이디어 고갈에 시달리던 중에 현지현 변호님께서 ‘추억’이라는 컨셉을 제시해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일사천리로 컨셉에 맞게 프로그램이 정해졌습니다. 게임은 ‘공기놀이’, ‘지우개 따먹기’, 음악은 ‘8090 인기가요’, 음식은 ‘옛날 치킨’, ‘옛날 과자’ 등.

 

대망의 호프데이 저녁 6시 30분. 준비위원들은 조금 일찍 모여 음식을 접시에 나누어 담고, 음악을 틀고, 미리 공기도 해보는 등 만만의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지현 변호사님께서 주문해주신 추억의 옛날 과자들을 보니 심쿵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초등학생 때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아폴로, 쫀쫀이, 숏다리, 오부라이트(옛 테이프)를 보는 것은 참 오랜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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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둘씩 변호사님들이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녁 시간이 살짝 지난 시간이었기에 모두 허기진 상태였습니다. 눈앞에 놓인 치킨, 떡볶이, 순대 등에 시선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시작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각자 자리에 앉아 이번 여름휴가에 있었던 일,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판결 등 여러 가지 주제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던 중 조숙현 위원장님께서 도착하였고, 정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습니다. 야심차게 준비한 공기놀이부터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박순덕 변호사님의 승리였습니다. 초반부터 무서운 기세로 모두를 놀라게 하시더니 결국은 ‘유일한’ 적수였던 이한본 변호사님까지 꺾으셨습니다. 이한본 변호사님은 이 날 참석한 회원 중 유일한 남자로서 섬세한 손놀림을 보여주셨습니다. 거북이 손을 가진 저로서는 뒤에서 수줍게 빅매치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릴 때 더더욱 공기놀이에 매진하지 않은 것이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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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놀이로 한껏 흥겨워진 상태로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와 담소를 이어갔습니다. 한 동안 얼굴을 못보던 반가운 회원, 새로운 얼굴들을 여럿 볼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그 동안 있었던 근황 등을 이야기하다보니 어느덧 10시가 다 되어 아쉽게 자리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내년 호프데이를 기약하였습니다. 3시간여 동안 골치아픈 회사일이나 어려운 세미나 주제는 잊고  호프데이 취지에 걸맞게 유쾌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 진행되지 못했던 지우개 따먹기를 위해 준비된 지우개 10개 중 제 마음에 쏙 드는 지우개 하나도 기념품으로 챙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편안한 분위기에서 선배 변호사님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신 여성위 변호사님들께 감사드리고, 특히 호프데이를 준비하면서 저를 살뜰히 챙겨주신 이선경 변호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어느 곳에서나 ‘신입’은 어렵고 힘든 처지인데, 이런 처지를 잘 헤아려 주시는 선배 변호사님들 덕에 큰 위로를 얻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 역시 선배가 되면 제가 받은 배려와 위로를 후배들에게 베풀며 살도록 노력하겠고, 그 일환으로 내년 호프데이 역시 자발적으로(!) 준비위원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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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08/2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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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문제연구위원회 활동소식

1. 9회 평화교류회, 오키나와 이시가키 섬으로!!

2007년 10월,  설레임과 수줍은 인사로 시작했던 평화교류회가 매년 특별한 감동과 추억을 선사하며 어느덧 그 아홉 번째 가을, 아홉 번째 만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와 자유법조단 오키나와지부는 매년 교류회를 통해 서로의  과거와 현재를 보듬고, 한국과 오키나와의 평화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이어 오며 돈독한 연대의 정을 쌓아왔습니다. 또한 민변 소속 변호사의 징계청구에 대한 연대 항의성명 발표 및 한국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결정에 대한 연대 항의성명 발표까지 이어지며 보다 질높은 일상적 연대로의 도약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미군1   <사진 : 이시가키 섬 풍경>

이번 9회 평화교류회는 오키나와 최남서단에 위치한 ‘이시카키’ 라는 아름다운 섬에서 진행되며, 2015년  동북아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 신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과  SOFA 민사청구권을 중심으로 열띤 발제와 토론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또한 교류회 장소인 이사가키섬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본토의 방어진지 역할을 했던 곳인만큼 섬 곳곳에 자리한 전쟁의 상흔과 ‘위안소’ 등은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와 고민을 전달해 줄 것으로 기대되구요, 방문지 중 하나인 타케토미 섬은 아오이 유우 주연의 “아오이 유우의 편지”(원제 : ニライカナイからの手紙) 촬영지로 하얀모래와 빨간지붕, 잿빛돌담이 신비로운 곳이라 벌써부터 참가단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아울러 9월 미군위 월례회에서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하고 제주대학교 SSK 전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영신 박사님을 초청하여 “오키나와 현대사”에 대한 특강을 들을 예정이니 회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도 요청드립니다.
 

2. 탄저균 반입, 그 후….

치명적인 생물무기인 탄저균이 살아있는 채로 오산 미공군기지에 반입된 사건이 발생한 지 석 달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7월 23일, 미 국방부는 ‘미국 국방부의 의도하지 않은 살아있는 탄저균 포자 배달’이라는 제목의 조사보고서를 공개했는데, 조사 결과의 내용을 요약하면, 탄저균이 왜 살아있었는지와 관련하여 그 ‘근본원인(Root Cause)’를 밝힐 수 없었으며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완벽한 탄저균의 비활성화 처리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울러, 미 국방부는 미국 내에 탄저균을 통제하기 위한 일관된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미 국방부의 조사 결과 공개 직후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은 쥬피터 프로그램 등 한미간의 생물무기 방어 협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백승주 국방부 차관 역시 북의 생물무기에 대응하기 위한 시험과 연습을 필요하며 이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탄저균 비활성화에 대한 과학적 근거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와 같은 한미 군당국의 입장과 태도는 많은 국민들에게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고 있으며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11일, 한미 당국은 탄저균 반입사건의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한・미 합동실무단(Joint Working Group : JWG)’을 구성하고 살아있는 탄저균이 반입된 오산 미공군기지에 대한 현장조사까지 실시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장조사가 이루어진지 20여일이 지났으나 아직도 조사 결과와 관련한 아무런 내용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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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에서는 탄저균 불법 반입‧실험 규탄 시민사회대책회의 및 시민 8704명을 대리하여 주한미군 사령관과 주한 미7공군(오산기지)사령관에 대해 국민 고발장을 제출하여 사건을 진행하고 있으며, 민변 내에 구성된 탄저균 대응팀과 함께 생물무기금지협약(Biological Weapons Convention) 관련 모니터링 및 국내법 모니터링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천주교 수원교구 신부님들과 함께 실험중단 및 실험실 폐쇄 가처분, 형사고소를 추진하고 있으며, 올 가을 국정감사를 적극 활용하여 탄저균 반입․실험사건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계기를 마련코자 합니다. 
 

화, 2015/08/2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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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겨울에 자란 나무처럼소라미 변호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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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겨우내 뿌리를 보존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합니다. 그 힘으로 나무는 움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선선한 바람마저 서운한 여름의 끝자락. 13기 자원활동가들이 종로구 창덕궁길 공감사무실에서 소라미 변호사님을 마주했습니다. 12년 동안 공익변호사로 길을 걸어온 소라미 변호사님의 이야기는 겨울나무처럼 단단했습니다. 그리고 그 단단함은. 법의 테두리에서 밀려난 이주민. 여성 등 수많은 이들에게 움을 틔워낼 공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람의 귀함’을 법의 언어에 담아내기 위해 쉼 없이 걸어왔던 소라미 변호사님. 그 단단하고, 따뜻한 발걸음 만나보시죠.

 

이우균 : 일단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소라미 변호사 : 저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올해로 12년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소라미라고 합니다. 공감에서 잔소리를 맡고 있고요, (웃음) 황필규 변호사님은 저를 마님이라고 하시죠. (웃음)

 

우 : 간단하지만 간단하지 않은 질문부터 드려볼게요. 왜 법조인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셨나요?

 

소 : 어렸을 때 막연하게 법조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이유는 대단한 건 아니었고, 아버지가 주입시켜준 꿈이기도 했어요. (웃음) 제가 공부를 곧잘 하니까, 여자가 차별받지 않고 사회생활을 하는 데 좋은 직업이 법조인인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중학교 때부터 해주셨어요. 이태영 변호사님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했고요. 사실 대학에 들어갈 때 법대를 가진 않았어요. 다른 과를 선택했고, 공부보다는 동아리나 학생회 활동을 했죠.

 그렇게 졸업할 때가 되어서 다시 진로고민을 했을 때, 막연하게 생각했던 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그리고 ‘그 일을 하면서 내가 보람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딱 두 가지밖에 없었어요. 공부를 너무 안 해서 전공을 살려서 뭘 하기는 어렵겠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있었고요. (웃음) 아무튼 의미 있는 일, 보람 있는 일, 그리고 ‘내가 어렸을 때 법조인이 되고 싶었지!’ 이런 막연한 생각들이 일치되면서, ‘아 그래 지금부터라도 내가 고등학교 때처럼 공부를 하면 사시에 합격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굉장히 무모한 생각으로 뒤늦게 학사편입을 해 다시 법대 3학년으로 돌아가서 사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렇죠, 간단하지 않아요. (웃음)

 

우 : 더 간단하지 않은 질문을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웃음) 졸업하시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게 지금 하고 계신 공익변호사라는 직업과 연관이 될 것 같아요.

 

소 : 제가 연수원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만 해도 공감 같은 단체가 없었어요. 그래서 당장 공익활동을 전담하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구체적인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고, 다만 좀 보람 있는 일도 할 수 있는, 좋은 선배님들이 많이 계시는, 예를 들면 민변 활동도 많이 하시는 변호사님들이 계신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 나중에 공감과 같은 단체를 만들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침 제가 수료한 2003년 12월, 연수원 2년차 마지막 겨울에 ‘낮은 곳에 임하는 용기로 소외된 희망을 되살린다’라는 엄청난 문구로 공채 공지가 뜬 거예요.

 당시 아름다운재단 안에 공익변호사 팀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변호사를 공채한다는 공지였는데, 그 문구가 너무 멋있는 거예요. 그런데 아무리 읽어봐도 뭘 하는 곳인지는 잘 모르더라구요. (웃음) 어떻게 할지 고민을 많이 하다가 그곳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사실 연수원 수료하고 바로 공익활동을 전담하는 변호사로 일을 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내가 일정 기간 변호사로서 실무 경험도 쌓고 트레이닝을 받고 그 다음에 돌아와서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죠. 몇 분 선배님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의견이 반반인 거예요. “하고 싶은 일이면 바로 시작하는 게 좋다, 나중에 돈맛을 알면 돌아오기 되게 힘들다” 조언해주시는 선배 변호사님도 계셨고, “지금 당장 가서 네가 과연 뭘 얼마나 할 수 있겠느냐, 일정 정도 실무를 쌓고 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조언해 주시는 분도 계셨어요.

 그런데 당시 제가 아름다운재단에는 선발이 되었고, 다른 데는 다 선발이 안 되었어요. (웃음) 그래서 뭐 필연적으로, 공감 창립 멤버로 일을 시작하게 된 거죠. 저로서는 당시에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 확신이 있는 상황에서 공감 활동을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 조상님이 3대 덕을 쌓았나 보다, (웃음) 제가 공감을 창립하는 멤버로 같이 일할 수 있었던 게 매우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우 : 왜 행운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소 : 왜냐하면 우리가 많이 자랑하듯이 (웃음), 공감이 한국사회에서 최초로 설립된, 공익활동을 전담해 비영리로 운영하는 변호사 단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받은 장점이 많죠. 저희 실력이나 능력에 비해 과분하게 인정도 받고, 주목도 많이 받고. 그래서 공감이 빠른 기간 안에 안착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게다가 지금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공익활동 전담으로 일하고 싶다는 후배들이 굉장히 많이 생겼죠. 후배들 만나서 공감 이야기를 해줄 때마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요. 그리고 이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게 다 창립 멤버로서 일을 해왔기 때문이라는 걸 아니까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우 : 공감이 국내 최초의 공익인권법단체라서 유리한 점이 많았다고 하셨지만, 저는 민변에 와서, 공익변호사 활동이 참 쉽지 않다는 점을 많이 느꼈습니다. 민변 소수자위원회에서 진행하는 일들이 계획대로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민변처럼 규모가 큰 변호사단체도 잘 안 되는 일이 많은 것을 보면, 공익변호사로서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활동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 어떤 게 있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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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 제가 최근에, 곧 다음 주 월요일에 국회에서 있을 정책세미나 발표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너무 맥이 빠지는 거에요. 인신매매 피해자 식별을 위한 제도개선 관련 세미나인데, 사실 그 이슈에 대해서 제가 공감 활동 시작하면서 거의 한 10년 동안 이야기를 해왔거든요. 그런데 하나도 바뀐 게 없어요. 실태도 바뀐 게 없고, 법제도개선하자고 이야기하는 것도 계속 똑같아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또 해달라고 요청이 온 거에요. 해야죠. 해야 하는데, 너무 이야기하기가 싫은 거야. (웃음) 지난 10년 사이 어쩜 이렇게 하나도 바뀔 수가 없을까 싶은 거죠.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늘어난 것도 아니에요. 여전히 소수의 사람들, 소수의 단체, 소수의 변호사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런 게 힘들어요.

 공감에서 일하는 다른 변호사님들도 마찬가지지만, 하나의 제도를 바꾸고, 실태를 바꾼다는 게 변호사 한 명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국회에서 그런 제도를 개선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외부 시민단체와 함께 해야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왜 이런 걸 국회에서 안할까 의구심을 갖고 제도 개선에 대해 지지를 해주어야 국회도 관심을 가질까말까 하는데.. 그렇지 못한 이슈가 굉장히 많거든요. 그런 현실의 벽을 느낄 때가 많죠. 내가 열심히 법안 만들고, 내가 열심히 기자들에게 이야기하고, 발표문 쓰고, 국회 가서 토론하는 것만으로 되지 않는 구나를 느낄 때가 많아요. 그럴 때 많이 힘들죠.

 

우 : 그런 허탈함을 극복하시는 방법이?

 

소 :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지만, 개중에 한 두 개씩 바뀔 때가 있어요. (웃음) 그 힘으로 하는 거죠. (웃음) 예를 들면, 제가 입양인들과 함께 입양법 바꾸는 활동을 한 적이 있어요. 한국사회에서는 입양을 막연하게 좋은 것,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아이들 혹은 부모가 양육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새 가정을 찾아주는 아름다운 것, 사회적으로 선한 것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있었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런데 저희 사무실로, 20~30년 전에 해외로 입양되었다가 돌아오신 분들로 구성된 입양인 당사자 운동 단체 분들이 찾아오셨어요. 그 분들이 한국의 입양제도가 얼마나 입양인의 인권, 아동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인지, 본인들이 30년 전에 입양될 때 얼마나 불법적인 방식으로 입양되었는지, 그리고 현재 입양인들이 한국으로 돌아와서 친부모를 찾는 데 얼마나 어려움이 많은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그 분들은 “한국에서 입양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고 말씀하셨죠.

 저는 굉장히 충격이었어요. 제가 가졌던 입양에 대한 생각과 그 분들이 들려주시는 입양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다른 거예요. 그래서 입양에 대한 법을 다시 보게 되었고, 애초에 아이들이 한국에서 살 수 있게, 출생한 가정에서 살 수 있게 돌보지 않았던 우리 한국사회의 현실, 그동안 아동복지정책의 잘못된 점을 알게 되어서 같이 활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 결과 2011년도에 법이 통과되었어요. 이게 그나마 제가 했던 여러 가지 활동 중 변화를 이끌어냈던 점이고

 재미있었던 건 당시가 이명박 정부였는데, 이명박 정부가 저희와 같은 입장을 취하기가 되게 어렵잖아요, (웃음) 그런데 입양 이슈에 대해서는 의외로 정부가 약간 비슷한 입장을 취한 거예요. 당시 정부가 입양 문제에 대해 굉장히 수치스러워했어요. 한국이 여전히 해외에, 미국으로 입양 보내는 아이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등 이런 수치에 대해서 정부가 부끄러워했고, 국제사회로부터 지적도 많이 받았던 거예요. 그래서 ‘아 이건 좀 바꿔야 한다’는 정부 입장이 있었던 데다가 다행히 당사자 분들이 목소리를 많이 높여주셨고, 거기에 저희가 같이 끼어서 법적인 언어로 바꾸어서 일하니까 빠른 시간 내에 급속도로 제도 개선이 일어났던 거죠. 굉장히 재미있게 일을 했어요. 그런 한 두 가지 사례들이 힘이 되는 거죠. 당장은 아니어도 여러 가지 상황 변화에 따라서 언젠간 또 바꿀 수 있겠구나 희망을 가지는 거죠.

 

이하나 : 현재 주력하고 계시는 여성인권과 아동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소 : 공감에서 2004년에 활동을 시작할 때 멤버가 변호사 4명이었는데, 남성변호사님 세 분과 저였어요. 그래서 ‘여성인권은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선점을 했어요. 제가 여성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특별한 게 있는 것 같진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제가 스스로 여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여대 다니면서 학교에서 여성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고, 다른 이슈보다 조금 더 ‘이건 내 문제다’라고 생각이 든 부분이 있었죠.

 공감 활동을 시작할 당시에 사무실로 이주여성단체와 성매매 피해 여성 지원 단체들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저희가 맨 처음에 변호사를 파견하는 활동을 했는데, 제가 거의 첫 해에 성매매 피해여성 지원하는 단체로 일주일에 이틀 출근을 하고, 이주여성단체는 일주일에 하루 출근하는 방식으로 단체들과 같이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굉장히 자연스럽게 공감에서 여성인권이슈를 제가 계속 맡아서 활동해 오게 되었죠.

 아동인권 관련해서는.. 저희가 처음부터 아동인권이슈를 한 건 아니었고, 조금 전에 말씀드린 입양 이슈 관련 활동을 한 것이 계기가 되었어요. 입양이 결국에는 한국의 아동복지체계 안에 그 위치가 있거든요. 부모가 돌볼 수 없는 아이들을 어떻게 공적으로 돌볼 것인가의 문제를 다루는 법이 아동복지법이고, 입양과 관련된 특별법이 있는 건데, 아동복지법을 보니까 제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공백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입양의 문제를 통해 아동복지법 체계의 문제점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아동이슈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지금도 저희가 아동인권을 다 하는 건 아니에요. 입양 문제, 그 다음에 이주 아동의 문제. 제가 공감에서 이주 이슈나 이주 여성 쪽을 다루니까 이주 아동과 관련된 사례도 지원 요청이 들어오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미혼모 이슈와도 연결이 되고, 아동학대 문제 등과도 관련해서 활동을 조금씩 넓혀 온 게 있죠. 게다가 최근에는 제가 4살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들의 문제가 더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하 : 다양한 이슈와 분야들에서 활동해오셨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의뢰인이나 사건은 무엇이었나요?

소 : 아동인권에 관해서는 앞에서 말씀 드린 입양 문제였고요, 여성과 관련해서는.. 많이 있을 수 있겠는데, 최근에 지원했던 사례로 말씀드릴게요. 잘 안 된 사건이에요. 캄보디아 여성 두 분이 비닐하우스 농장에서 일하다가 농장주로부터 거의 1년간 지속적으로 성폭행 당했던 사건이에요. 저희 사무실로 지원 요청이 왔을 때에는 이미 검찰 불기소 결정이 난 다음에 항고하는 과정이었어요. 너무 억울한 사건이었어요. 제가 봤을 때에는, 당사자들과의 면담, 신고 경위나 여러 가지 상황을 보면 농장주가 잘못한 게 맞는데, 처벌해야 되는데, 우리가 항고심부터 결합해서 결국에는 항고 기각, 재정 신청마저 기각되어서 결국 잘 안 됐어요. 그 분들이 너무나 많이 우셨고..

성폭력 사건은 초기 사건 대응이 중요하거든요.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 신빙성 하나로 가해자를 처벌해야 하는데, 이 분들이 초기 대응을 잘 못하셨어요. 갑작스럽게 농장에서 구출되어 바로 2~3일 동안 경찰에서 수사를 받았는데, 수사 과정에서 대략적으로 특정했던 사건 발생 시점이 나중에 검찰로 가면서 다 뒤집힌 거예요. 결국 진술이 일관적이지 못해 이 분들은 완전히 못 믿을 사람들로 결론이 난 거죠. 당시 검찰 기록을 보면, 제가 조서만 읽어봤는데도 검사가 막 화를 내는 게 느껴질 정도였어요. 피해 여성분들은 자기들이 피해를 인정받고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쭉 조사를 받았던 건데, 검사가 엄청 다그치니까, 마지막 검찰 조사 받을 때에는 통역해주었던 분이랑 같이 울어버렸대요.

그렇게 꼬인 사건을 항고부터 하려니까 쉽지는 않더라고요.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이분들이 쓰신 진술서 중에, 자기는 한국에 와서 돈 벌어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왜 자기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고, 자기는 여기 와서 완전히 다 망가졌다고 표현하신 내용이 있었어요. 그 진술서도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이 사건이 최근에 기억에 남아요.

농업 이주 여성들 사건을 할 기회가 많지는 않아요. 이런 사건들이 드러나기가 쉽지 않거든요. 보통 이주 여성이 고소고발을 하면 계속 일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고, 다른 농장으로 사업장을 변경해줄 가능성도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잘못하면 한국에서 일할 기회만 없어진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고용허가제 구조 하에서는 농장주, 사장 등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이주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말하기가 어려워요.

비록 많진 않지만, 들어온 사례들을 보면 피해 여성의 입지가 굉장히 취약해요. 일단 비닐하우스 농장은 밀폐되어 있고 외부로부터 차단된 공간이죠. 게다가 피해 여성분들한테 농장주는 하느님 같은 존재였대요. 농장주가 자기들을 고용하겠다고 해서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는 거죠. 한국에서 버는 한 달 100만 원 정도의 월급이 캄보디아에서는 1년 치 임금보다 높아요. 그러니까 이 분들한테는 한국에서 일하는 게 엄청난 일이고, 또 처음 한두 달은 농장주가 친절하게 대해주니까, 농장주 이름을 무슨 아버지라고 핸드폰에 입력해놓을 정도로 믿고 신뢰했던 사람인거죠. 그런 구조적인 취약함, 경제적인 취약함, 고용허가제 하에서 사업장 변경이 어려운 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거죠.

이 분들이 한 일을 보니까, 성적 착취뿐만 아니라 농장주 집에 가서 설거지하고 빨래하는 게 일상적인 일인 거예요. 그런 식으로 1년 넘게 지속적으로 피해를 당해 오신 거죠. 이런 피해가 사실은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한 두 사람의 문제는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놀랐어요.

2

하 :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들에 대한 혐오가 점점 심해지고 조직화되어가고 있어서, 이주민 관련 활동을 하시는데 어려운 점이 많을 것 같아요. 이런 혐오 문제를 해결하고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소 : 이주민에 대한 혐오라..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까요? 저는 이자스민 의원실과 ‘이주아동권리보장법’을 제정하는 활동을 몇 년 동안 해왔어요. 그리고 작년 2014년 12월에는 의원실에서 법안 발의를 했고요. 그런데 그 후에 이 법안에 반대하시는 분들이 조직적으로 이자스민 의원실에 전화로 항의하고, 팩스를 보내고, 홈페이지에 댓글 다는 등의 반대운동을 했어요. 이로 인해서 이자스민 의원실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죠.

사실 저는 반대운동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보지는 않았어요. 맘 상할까봐. (웃음) 주위에서 하시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던 건, 예전에는 이런 반대운동을 하는 분들이 소규모였거든요. 예를 들면 국제결혼 피해자 모임에 속한 남성분들 정도요. 이분들의 모임이 있어서 결혼이주여성의 인권을 보장하자는 국회의원들 활동이 있으면 조직적으로 오셔서 피켓팅도 하고, 공적으로 발언도 많이 하시고 그랬어요.

그런데 이게 굉장히 확산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일반 주부들이 모여 있는 엄마들 카페에서도 이 법안 이야기를 하면서, ‘아니 우리 아이들에게 지원할 것을 어떻게 세금도 안 내는 이주 아동들에게 지원할 수 있느냐’는 식의 논리로 반대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뭘까. 좀 고민이 되더라고요. 제가 보기에 이 논리는 결국 일베의 논리와 같거든요. 일베들이 무임승차한다는 취지로 소수자 인권, 여성 인권 이야기하는 데마다 반대하는 논리거든요. ‘왜 우리가 낸 세금으로 그들에게.’ 이런 논리가 의외로 확장력을 가지면서 그냥 일반 사람들도 가만히 듣고 보면 뭔가 억울한 느낌을 받는 거죠. 거기에 삶이 경제적으로 각박해지고 박탈감이 전반적으로 팽배한 현실에서, 내 것을 뺏긴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또 이게 사회 전반적 분위기와 맞물리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신은미·황선 통일토크콘서트에 한 고등학생이 사제폭탄을 던진 사건 같은 경우에 나왔던 반응들이요. 그 사건은 사실 굉장히 무서운 것이잖아요. 그런데 사회적으로 그 행동을 잘했다고 영웅시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이에 대한 정부의 코멘트도 이상하게 나왔어요. 이 현상을 문제적으로 바라보고 이것을 사회적 문제로 인지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애초의 종북 콘서트가 문제였다는 방식으로 말이죠. 마치 이런 관점을 허용하고 묵인하고 방조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혐오는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기보다, 전체적인 인식의 문제, 그런 논리를 확산시키고 조장하는 정권과 언론의 태도가 바뀌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하 : ‘왜 내 세금으로 저 사람들을 지원해주어야 해?’라는 논리는, 이 나라의 ‘시민’에 이주민들을 포함하지 않는 논리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가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생각했던 것은 ‘시민’ 개념이 좀 더 확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변호사님께서는 시민 개념이 어떤 식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소 : 그런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데요. 이주민들이 정말 세금을 안낼까요? 직장을 다니게 되면, 일단 근로소득세를 내죠. 그리고 우리나라의 세금 부담 비율이 직접세보다 간접세가 더 높아요. 간접세가 한 70% 정도를 차지하거든요. 이주민들이 마트에 가서 장을 본다든지, 생필품을 산다든지 하면 거기에 다 부가가치세가 붙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한국에서 사는 이주민은 직접, 간접의 세금을 부담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공동체 개념을 확장할 필요가 있는 거죠. 예전의 국적·민족 중심의 공동체 개념에서 벗어나, 어쨌든 한국에서 같이 주민으로 살아가고 있고 세금 부담도 같이 하고 있는 사람들을 국적과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배타적으로 대해야 할 것인가 재고할 필요가 있어요. 이러한 배타적인 시각은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이거든요. 이 부분은 사실 국회나 정부도 크게 입장이 다르지 않아요. 예를 들어, 저희가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을 제정할 때의 일이었어요. 사실 이 법은 너무 당연한 것이거든요. 아이들은 자신들의 부모나 태어날 곳을 선택한 게 아니잖아요. 한국에서 태어나고 보니까 부모가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것이죠. 그런데 그 이유로 아이들은 신분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공교육이나 의료보험 등에서 계속해서 배제되죠. 결국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은 아이들만이라도 우리가 비준한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따라서 건강하게 발달·성장하고, 교육받을 수 있고, 병원에 갈 수 있게 보호해주자는 취지의 법이거든요. 너무나 당연한데, 이게 왜 통과가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이 법의 제정에 대한 반대 논리가 법무부에서 나왔어요. 법무부는 아이들을 보호하면, 그들의 부모까지 보호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모든 불법체류자들이 다 아이를 낳고 한국에 정착하려하지 않겠는지 우려해요. 이런 악용 가능성을 이유로 이 법의 제정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하죠.

 법무부는 이 법의 제정이 ‘공익’과 충돌한다고 말해요. 여기서 법무부가 말하는 공익은 출입국관리를 말하는 것이거든요. 공익과 사익이 충돌한다는 말인데, 저는 이게 너무 충격적이에요.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사익이고, 출입국관리를 제대로 하는 것은 공익이기 때문에 공익이 앞선다는 논리가 저는 너무 무서운 논리라고 생각해요. 출입국관리법을 준수하는 것이 이주아동의 권리를 보장해야하는 것보다 앞설 수 있을까? 이런 법무부의 인식이 외국인 혐오를 조장하고, 또 묵인한다고 생각해요. 초과 체류나 미등록 체류이기 때문에 인권보장도 안 된다는 법무부의 입장은 외국인 혐오 세력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저는 법무부가, 정부가 이런 입장을 견지하는 한 외국인 혐오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3

 

하 : 변호사님께서 ‘법적인 관점의 해결이 어려워도 인권적 관점의 해결을 도모한다.’라는 말씀을 하신 인터뷰를 봤어요. 법적인 관점과 인권적 관점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또 양자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소 : 제가 그런 말을 했다고요? (웃음) 저는 공익 변호사, 인권 변호사, 공감이나 민변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인권의 문제를 법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양자의 균형을 맞춘다기보다는, 기존의 법에 담겨있지 않은, 혹은 기존의 법에 충분히 담겨있지 않은 목소리, 예컨대 소수자의 인권이나 입양인의 인권 등과 같은 관점을 법에 새롭게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존의 법은 현재의 소수자들의 인권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거나 침해할 수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보면 법과 인권이 충돌한다고 말할 수 있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가 일을 시작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궁극적으로 법과 인권이 충돌하는 것은 아니에요. 인권의 문제가 법에 반영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활동해야 하는 거죠.

 

하 : 공감의 10년 기록이 담긴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가 출간되었는데요. 그동안 공감이 이뤄낸 성과와 가장 큰 보람은 무엇일까요.

 

소 : 공감이 계속 존재해왔다는 것?(웃음) 사실 저희가 맨 처음 시작을 했을 때, ‘몇 년이나 가겠어?’하고 반신반의했거든요. 왜냐하면 후원금으로 운영비와 사업비를 충당한다는 것이 굉장히 생소했고, 거기다 일반적으로는 ‘돈을 잘 버는’ 변호사가 후원을 받는다는 것도 낯설었거든요. 다른 가난한 인권시민단체처럼 후원금으로 보수를 받으면서 활동한다는 것이 가능할지 의심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공감의 성과는 문 안 닫고 12년 동안 잘 해오고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그리고 최근 2, 3년 사이에 저희가 제일 보람을 느끼는 것은 공익법 활동을 하는 후배들이 많아졌다는 것이에요. 희망법도 생겼고, 어필도 생겼고, 또 공익활동을 전담해서 일하겠다는 변호사들이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했거든요. 시민단체의 상근 변호사가 된다든지, 홀로 단체를 꾸리는 변호사님도 생기고. 예전에는 ‘민변 방식’의 공익법 활동밖에 없었다고 하면, 공감이 생기면서 새로운 방식의 공익법 활동이 등장했고, 지금은 더 다양해진 것이죠. 또 공익법 활동이 사회적으로 점점 확산되는 상황에서 공감이 선배 역할을 하고 있구나, 우리가 후배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고 있구나 하는 것에서 굉장히 큰 보람을 느끼고 있죠.

 

하 : 한국 사회에서, 특히 젊은이들이 ‘공감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한국 사회의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소 : 저는 공감하는 일이 굉장히 어려운 일 같아요. ‘공감’이라는 이름을 가진 단체에서 일하고 있는데, 일을 하면 할수록 이 공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달아 가는 것 같아요. 우리가 정말로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겠어요?

4

 실제로 제가 일하면서 마주하는 사람들, 관계 맺는 사람들에게 제가 정말로 공감하고 있는가 되물었을 때 한계를 많이 느끼거든요. 변호사라는 직업은 의뢰인의 사건을 법적으로 검토해야 하기에 의뢰인에게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변호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100%의 공감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도 계속해서 확인하는 거죠. 저 분이 정말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구나, 내가 쉽게 접근하거나 생각할 문제가 아니구나 하는 점을 깨닫는 것이죠.

 저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문제가 자신만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할 일, 해야 하는 일을 열심히 하시되, 내 문제가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는 보는 정도의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지시고, 학교에서 그런 활동을 하거나, 신문을 보시거나 하면서요. 이런 것들을 보면서 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덜 지치게 되지 않을까, 좀 더 길게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하 : 마지막 질문입니다. 민변 회원 분들께 한마디만 해주세요!

 

소 : 제가 돌아보니까 연차가 낮았을 때에는 선배들이 저를 도와주고 챙겨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많이 했는데, 어느새 제가 선배 변호사가 되었더라고요.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후배 변호사님들과 많이 친해지고 싶어요. 제가 공감에서 하는 일에 대해 궁금하거나 같이 하고 싶으시면 언제든 연락을 주시고, 찾아도 주십시오!

화, 2015/08/2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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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민변사람들

 

처서(處暑)가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민변 본부로부터 지부 소식글을 올리라는 명령(?)을 받고 불현듯 이 시점에 부산 민변사람들은 누구일까 하는 생뚱맞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산지부의 월례행사나 밀양 송전탑반대투쟁 관련 형사재판 활동 등은 다들 잘 알고 계실 것이기에 무언가 참신한 내용이 없을까 하는 삐딱한 생각도 이러한 호기심을 일으킨 하나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산 민변사람들의 행적을 알아보고 현재 누가 활동하고 있는지를 말씀드리는 것으로 이번 부산지부 소식에 갈음하고자 합니다.

 

먼저 제가 한 일은 변호사회 도서관을 찾아가 책장 구석에 꽂혀 있는 오래된 부산법조지를 살펴본 일입니다. 부산 민변사람들 모두의 족적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그곳에서 변영철 회장, 정재성, 강동규, 김외숙, 권혁근 회원 등 부산 민변사람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지부 1

(1991년 부산노련 조직국장으로 활동하던 변영철 회장)

지부2

  
(2002년 부산법조지에 소개된 정재성 회원)

              지부3

 (2003년 부산법조지에 소개된 강동규 회원)

지부4

(여성평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활동 시절의 김외숙 회원)

이외에도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와 함께 열심히 활동하시는 최성주 회원을 비롯하여 이재호, 이덕욱, 조성제, 김동진, 이한석, 이호철, 최현우, 문덕현, 이철원, 김용규, 노성진, 류제성, 이정민, 배경렬, 정판희, 박중규, 김해영 회원이 인권이 무엇인지, 그리고 부산 민변인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고민하여 왔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부5

(인권상을 수상한 권혁근 회원)  

지부6

       (이한석 회원)    

지부7        (이철원 부회장)            

지부8

(이호철 회원)

   

지부9

     (이정민 회원)          

지부10

  (김해영 회원)
 

한편 부산 민변사람들 중 젊은 세대는 서은경, 조형래, 조민주, 이미현, 김지현, 이경민, 변현숙, 정상규, 조애진, 김지은 회원으로 부산 민변의 손과 발이 되어 열심히 활동하고 있고, 실무수습중인 김현철 수습변호사도 조만간 정식 회원이 될 예정입니다.

지부11

        (서은경 회원)   

  

지부12      (정상규 회원)         

  

지부13

(조애진 회원)

지부14

           (김지현 회원)           

지부15

(김현철 회원)
 
 

끝으로 미국의 유명한 변호사이자 정치가인 대니얼 웹스터(Daniel Webster)가 남긴 “최선의 법률가는 바르게 살고, 부지런히 일하며, 가난하게 죽는다”는 법언처럼 부산 민변사람들도 최선의 법률가가 되고자 고민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이만 부산 민변사람들에 관한 글을 마칠까 합니다. 민변 회원님들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화, 2015/08/2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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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변호단 2차 워크숍

- 강제동원, 홋카이도를 가다

 

 2015년 8월 그 해, 홋카이도의 여름은 뜨거웠다.

 

 <첫째 여정>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한 서린 홋카이도, 아직도 서러운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 이선경

 

 나에게 있어 홋카이도라는 지역은 겨울에 눈이 많이 오고 온천시설이 잘 되어 있는, 겨울 관광지로 좋은 장소 정도의 의미만 있었다.

 

그 홋카이도에 강제징용되어 희생된 분들의 유골이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남아있다는 소식도 이번 워크숍 준비 모임에서 처음 알게 되었을 정도로 나는 홋카이도와 우리 민족의 과거사에 대해 무지하고 또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그런 상태로 비행기에 올랐던 나에게, 창 밖에 펼쳐진 삿포로의 풍경은 다소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그것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다. 반듯하게 정리된 논과 밭 사이에 빨갛고 파란색 지붕을 가진 집들이 늘어서 있는 한적한 농촌 풍경은, 그곳이 그 끔찍한 강제징용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렵게 만들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에 오르자, 이번 워크숍의 가이드 김영환 선생님이 버스가 이동하는 동안 간단히 강제징용 희생자들의 유골반환 운동의 경과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1997년부터 시작하여 한국과 일본, 중국 등 여러 동아시아 지역의 학자와 시민단체가 모여 10여 차례의 학술대회를 거치면서 공동으로 유골발굴을 해왔고, 이는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평화를 모색하기 위한 활동들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방문할 장소들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현장들이라고 하였다.

16일  삿포로별원 - 강제징용 간담회

 

버스로 한참을 달려 101구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는 본원사 삿포로 별원 납골당에 들어서니 가장 안쪽 구석에 초라한 유골함 3개가 놓여있었다. 본래 일본의 장례절차에 따르면 한 사람의 유골이 하나의 유골함에 담겨 있어야 하는 것이므로, 삿포로 별원에 101명의 유골이 있으면 총 101개의 유골함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1997년도에, 일제시대 강제징용 노동자들에게 노동을 시켰던 지자키 공업의 요청에 따라 삿포로 별원은 무연고 유골이라는 이유로 유골을 모두 합골해 버렸고, 그 때문에 현재 3개의 유골함 안에 101명의 유골이 섞여있다고 하였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최소한의 예우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강제징용 희생자들의 서글픈 상황들이 담담히 다가왔다. 부디 고국으로 돌아가서 햇볕 잘 드는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묵념을 하고 돌아섰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2003년 유골 발굴 당시 발굴된 유골이 강제징용 희생자 유골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근거 중 하나가 유골의 발을 감싸고 있던 발싸개 때문이었다는 것인데, 신발이 아닌 천으로 된 발싸개를 신고 있는 것을 보고 이것은 일본인이 아니라 강제징용 희생자의 유골임을 확인하였다고 하니, 당시 강제징용 희생자들에 대한 처우가 얼마나 열악하였는지 짐작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16일  삿포로별원 - 납골당 2

 

반가운 소식은 현재까지 홋카이도에 남아있는 미봉환 유골 150구 중(삿포로 별원과 사루후쓰, 비바이 탄광 등에 흩어져있다고 한다) 120구가 올해 9월 한국으로 봉환된다고 한다. 무엇보다 올해 유골봉환은 9. 11.부터 9. 20.까지 9박 10일 동안 진행되는데, 당시 강제징용자들이 끌려왔던 3,500km를 되짚어 서울까지 가는 여정이라고 하였다.

 

이번 유골봉환은 역사적인 의미가 큰 행사이므로 당연히 한국과 일본 양국 정부가 주최가 되어서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정부와 전혀 관계없이 순수 민간 차원에서만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2004. 12. 노무현 정부 때 고이즈미 총리에게 유골봉환을 요청한 이래 정부차원에서 유골봉환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나, 이명박 정부로 바뀌면서 정부가 유골봉환에 의지를 보이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현재에는 부득이 순수 민간 차원에서만 유골봉환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였다.

 

물론 유골봉환의 최대 걸림돌은 강제징용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정부의 태도라고 하겠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이 일본 정부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진행되었음을 입증할 수많은 자료 앞에서도 끝내, 강제징용은 민간기업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이루어진 일이므로 일본 정부는 유골봉환을 비롯하여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일본 정부만을 탓하고 있을 수 있는지… 힘이 없어 자국민이 이 혹한의 땅에 강제로 끌려와 노예처럼 일하는 것도 막아주지 못했던 우리나라는,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서도 그 유골을 봉환해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것이 국가의 존재이유일 것인데, 과연 우리 정부는 강제징용 희생자들을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둘째 여정>

차별은 조선인만의 몫이 아니었다. 홋카이도의 자연인 아이누를 만나다.

 

- 성춘일

 

8월 17일, 홋카이도 이튿날이 밝았다. 워크숍의 설렘과 고단함을 채 풀기도 전에 오타루 외곽, 해안가에 위치한 청어 잡이 박물관에서 둘째 여정을 시작했다. 가파른 언덕을 굽이굽이 두어 번 올라가자 오래된 낡은 집 한 채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청어 잡이 어부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던 집을 박물관으로 꾸며서인지 박물관 내부와 외부에 전시된 물건은 화려하거나 형식에 치우치기 보다는 100여년 전 어부들의 소박한 삶의 모습을 들려주고 있었다. 박물관 옆에는 해안가 절벽으로 이어지는 아담한 뜰이 펼쳐져 있고 바닷바람에 살랑거리는 풀밭 위, 녹슨 크고 작은 닻과 낡은 고기잡이 도구들이 어부들의 고단한 일상을 전하고 있었다.

 

연세가 제법 있어 보이는 부부가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입장표를 사서 신발을 벗고 건물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는데 두터운 가죽장갑과 눈 위에서 신는 신발이 이곳이 겨울왕국임을 실감하게 했다. 남자 성인용 지게, 여자 성인용 지게, 아이들이 메는 지게를 보니 이곳 주민들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생계를 위해 청어 잡이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층에는 당시 주민들의 의상을 걸어 놓고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입어 볼 수 있도록 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갈 무렵, 아이누족인 가와무라 켄니치(아이누 이름 : 신리츠 에오리)씨가 운영하고 있는 아이누민속박물관에 도착했다. 켄니치씨는 아이누 전통복장 입고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 박물관은 켄니치씨의 조부가 만든 것으로, 일본 정부가 세운 학교에서 아이누 아이들의 교육을 맡길 수 없다며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설립했다가 현재는 켄니치 씨가 이어 받아 아이누의 역사, 전통, 풍습을 알리는 민속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아이누들의 배, 의상, 그릇부터 낚시, 사냥도구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켄니치씨는 아이누의 역사, 전통, 풍습 등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주었다. ‘어머니’를 뜻하는 아이누의 ‘하루코노’라는 단어는 원래 식량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아버지’는 돈 버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가족의 호칭에 가족 구성원의 역할이 녹아 있어 신기했다.

17일  아이누민속박물관 1

 

아이누족은 일본 정부가 금지하기 전까지 연어잡이와 수렵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민족이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메이지유신 이후 홋카이도를 점령하더니 홋카이도 전체를 일본 정부의 관할 하에 두면서 아이누족들은 일정한 구역에서만 거주할 수 있도록 하고 아이누들의 생활수단이었던 연어잡이와 수렵을 금지했다.

 

일본 정부는 홋카이도를 다스리기 위해 일본 본토 주민들을 이주시켰다(둔전병으로 근무하는 일본인에게 일정 면적의 홋카이도 땅을 나누어 주어 유인함). 아이누들이 농사를 지으면 홋카이도 땅을 나누어 주겠다고 하였으나,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는 아이누들은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모두 빼앗기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는 아이누들이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아이누 전통의 결혼식을 올리는 것도 금지했다. 또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누족들의 호적에는 출생지역(아이누 거주지역)을 별도로 표기한 결과, 아이누 거주 지역 출신들은 공직 진출을 금지당하거나 교육 기회가 제한되는 등 많은 차별을 받았다고 한다. 현재 출신 지역 표기제는 없어져 눈에 보이는 차별은 사라졌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은 여전하다고 한다.

 

아이누 사람들은 몇 년 전 일본정부를 상대로 본래 자신들이 주인이었던 홋카이도를 돌려달라고 반환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다고 한다. 수렵민족인 아이누들에게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자연을 소유한다는 인식이 희박했고, 문자도 없었던 탓에 땅에 대한 소유관계를 표시한 공부 자체가 없었다. 고도 문명의 발명품인 글자로 표기된 문서를 가지고 다투는 법적 소송에서 이들의 패배는 어쩌면 예정된 결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억센 모기마저도 정겨워진 숲 속 고겐사에서의 깊은 밤

17일  고겐사2

 

점심을 해결한 후, 북쪽으로 한참을 달려 슈마리나이 댐 부근에 위치한 고겐사에 도착했다. 고겐사는 현재 ‘동아시아 공동워크숍’의 개최 장소이자 홋카이도 역사교육의 학습장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고겐사가 평화교류와 역사교육의 장소로 변모한 것은 1976년 도노히라 요시히코 씨가 고겐사 본당에서 죽은 이들의 이름, 나이, 사망 연원일이 적힌 다량의 위패를 발견하면서부터이다. 위패에는 조선인으로 보이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승려로 활동하면서 위패의 주인공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게 되었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의 죽음이 슈마리나이 댐 공사와 철도 공사 도중 희생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학습장 내부 각 벽에는 유골 발굴 작업과 유골 반환을 위한 각종 활동이 담긴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현재 밝혀진 바에 의하면 슈마리나이 댐 공사와 철도 공사로 희생된 이는 210여명 정도인데 그 중 40여명이 조선인이었다고 한다.

 

저녁을 먹기 전 슈마리나이 댐을 둘러보기로 했다. 어둠이 조금씩 밀려오는 시간, 일본 최대의 인공호수인 슈마리나이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여름을 잊게 만들 정도로 제법 매서웠다. 거대한 댐의 수문이 물길을 가로막고 서 있고 1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 탑이 수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탑은 슈마리나이 댐 공사 도중 사망한 수백 명의 희생자를 위로하기 위해 세운 탑인데, 정작 탑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희생자들의 이름 대신 ‘순직자 위령탑’이라는 이름과 댐을 건설했던 우류전력 사장 아다치 다다시 이름만이 새겨져 있다. 슈마리나이 댐 공사로 희생자가 많이 발생하자 이 지역 사람들이 우류전력에 이들을 위로하는 위령비라도 세워 줄 것을 요구했는데, 위령비 세울 돈 조차 아까웠던 아다치 다다시는 자재를 운반하기 위해 건설했던 교각의 기둥을 옮겨와 이 탑을 세웠다고 한다.

 

일본 각지는 물론 우리나라와 중국에서까지 강제로 끌려와 새벽 4시부터 밤 9시까지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죽어간 사람들에게 위령비 세울 돈조차 아까워했으니 이들이 당시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혹독하게 대했을지 상상이 되었다. 슈마리나이 댐 공사의 참혹함은 이 공사장 집단합숙소의 이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당시 사람들은 슈마리나이 댐 공사장 근처에 있는 집단합숙소를 어항에 들어간 문어가 다시 나올 수 없는 것처럼 이 합숙소에 잡혀 들어간 자는 살아서는 나올 수 없다는 의미로 ‘타코베야(문어방)’라고 불렀고, 사람들 사이에서 이 타코베야는 죽음과 공포의 대명사였다고 한다.

 

저녁식사 후, 고겐사에서 위패가 발견된 후 위패의 주인인 유골 발굴 작업과 한‧일 교류를 통해 수십년 동안 유골 봉환운동을 했던 오노데라 마사미(小野寺正巳)교수님과 야마자키 다다시(山崎忠司) 선생님으로부터 슈마리나이 공사 현장의 참혹함은 물론 유골 봉환 운동에서의 에피소드 등 유골 봉환활동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밤이 깊도록 계속 이어졌다.

17일  변호단회의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지팡이를 짚어야 하는 힘든 몸을 이끌고 고겐사에 도착한 직후부터 슈마리나이 댐, 조선인 유골 매장지까지 우리를 안내해 주신 오노데라 교수님, 일흔 셋의 연세에도 유골봉환 운동을 계속하고 계신 야마자키 다다시(山崎忠司) 선생님, 누가 알아주어서가 아니라 살아남은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기에 묵묵히 수십 년 동안 자신들의 활동을 이어가고 두 분의 모습은 마음에 큰 울림을 남겼다. 밤이 깊어가는 것도 잊고 한 잔 한 잔, 비워지는 술잔은 늘어만 간다. 그리고 우리들의 추억도.

 

 

<셋째 여정>

새하얀 메밀밭 한 가운데서 굳은 도약을 외치다.

 

- 이동준

 

고겐사(光顯寺) 조릿대 묘표전시관에서의 숙박. 겨울이면 기온이 영하 41도까지 내려간다는 슈마리나이답게 새벽의 추위가 제법 매서웠다.

 

일본 남자들은 “매일 아침 나에게 된장찌개를 끓여줘요”라고 청혼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어디선가 진짜 일본된장국 냄새가 발길을 이끌었다. 모두들 한솥밥을 떠서 둘러앉아 정겹게 식사하면서 돈독한 정을 나누었다.

 

고겐사를 떠나면서 우리는 9월 본국 봉환 예정인 희생자들의 유골을 살피고 위령의 의미를 담아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70여년의 긴 세월 동안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유골로 남아있는 희생자들의 원혼을 떠올리니 가슴 한 켠이 아파왔다. 이제는 고국으로 돌아가 편히 잠드실 수 있기를 기원하며 다음 달에 돌아오시는 길 또한 밝혀드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18일 아침  유골

 

버스를 달려 슈마리나이(朱鞠內) 호수가에 도착하였다. 동양 최대의 인공호가 보여주는 절경에 감탄사가 나왔지만 잔뜩 찌푸린 하늘과 세찬 물살이 강제징용 희생자들의 슬픔을 담은 듯 느껴져서 이내 숙연해졌다.

 

삿포로 시로 이동하는 길에는 광활한 메밀밭이 계속되었다(농업은 홋카이도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일본의 총 경작 가능한 땅의 4분의 1이 홋카이도에 있다고 한다). 우리는 백은의 언덕이라 명명된 사진촬영지 및 시마다야란 회사의 계약 농장터에서 단체사진을 남겼다. 새하얗게 펼쳐진 메밀밭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한편으로 그들이 가진 풍요로움에 대해 부러운 마음 역시 들었다.

18일  메밀밭2

 

이어서 방문하게 된 곳은 다카도마리의 한 공동묘지였다. 슈마리나이 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후카가와시 다카도마리 공동묘지에는 2명의 조선인을 포함한 5명의 피해자가 묻혀 있었고 그들을 기리기 위한 위령비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들 외에도 더 많은 희생자들이 그 인근에 매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매장 추정지 위로 일반인들의 공동묘지가 들어서 있어 발굴 작업이 어렵다고 하여 몹시 안타까웠다.

 

이어서 이치조지(一乘寺)와 부설 다도시(多度志) 보육원을 방문하였다. 보육원은 이치조지의 주지스님이 서양식 어린이집을 모티브로 하여 만든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모델이었는데, 서양식 종탑과 일본 특유의 견고하고 단정한 목재구조의 건물이 인상적이었고, 해맑은 아이들의 미소는 발길을 돌리기 어렵게 하였다. 벽면에는 매해 어린이들의 졸업 작품으로 공동 제작된다는 대형 판화가 걸려 있어 눈길을 끌었다. 많이 인상적이었는지 보육원을 떠난 뒤에도 동심을 가득 담은 어린이들 특유의 그림체가 자꾸만 머리에 남았다.

 

강제징용이 이루어지던 시절엔 하루가 걸려도 당도하지 못하던 길을 이제는 반나절이면 왕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토록 우리의 문명은 그 외관(外觀)이 눈부시게 진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면(內面)은, 특히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는 한국도 일본도 야만(野蠻)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자꾸만 과거로 회기하려 하고 있다. 수십 년이 지나서도 계속 야만과 대치해야하는 작금의 현실에 맞서 우리는 계속해서 투쟁하고 마침내는 승리할 것을 다짐한다.

 

변호사는 단순히 “타인의 송사(訟事)”만을 대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대리하면서 몇 배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번 워크숍은 보고 듣고 느끼는 시간을 거쳐 우리가 힘이 되어드리고자 하는 그분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보고 듣고 느껴서 담은만큼 무거운 마음을 금할 길 없지만, 변호단이 “일시적인” 부침을 겪고 있는 지금, 단단히 심신을 다잡고 도약할 수 있게끔 해주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화, 2015/08/2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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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가?’

 - 김서영 (14기 자원활동가)

 

 * 본 후기는 주제별로 나왔던 논의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맨 뒤에 제 개인적인 감상을 덧붙이는 형태로 작성하였습니다. 토론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부 자유 토론 (각 20분): 혐오발언 형사처벌해야 하는가? 일베·메갈리아 사이트 폐지해야 하는가?

2부 형식 토론 (40분): 아이유 ‘Zeze’ 음원 판매를 중지해야 하는가?

3부 마무리 발언 (20분): 표현의 자유,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가?

 

 [들어가며]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

표현의 자유(freedom of speech)는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데 가장 근간이 되는 기본권입니다. 인격권의 핵심을 이룰 뿐 아니라 정치적 담론 형성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에, 일반적으로 다른 기본권보다 우월적 지위를 갖습니다. 올해는 계속적으로 늘어나는 인터넷 신조어들로부터 불거진 혐오발언의 정의규명부터 아이유의 노래 ‘Zeze’에 대한 해석까지, 온·오프라인에서 표현의 자유와 그 보장 범위에 대한 논의가 뜨겁게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저희 14기 자원활동가들도 ‘표현의 자유,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가?’에 대한 토론을 해보았습니다.

 

 [주제 1] 혐오발언 형사처벌해야 하는가?

먼저 혐오발언(hate speech)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로 토론의 장을 열었습니다. 각각 제시한 의견들을 종합하면 “인종, 국적, 종교, 성별, 성적 지향과 같은 어떤 속성을 갖는 집단이나 개인에게 그 속성을 이유로 가하는 차별표현” 정도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혐오발언의 예시로는 ‘김치녀’, ‘맘충’, ‘홍어’ 등이 언급되었습니다. 아직까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정의는 없지만, 유엔의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자유권규약), ‘인종차별철폐조약’ 등에는 위와 같은 혐오발언을 막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다음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혐오발언이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한국법제원에 따르면 특정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사적인 혐오발언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로 처벌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두 죄목 모두 피해자가 특정되어야 하기에, ‘김치녀’와 ‘홍어’처럼 특정 집단이나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혐오발언은 처벌하기 어렵습니다.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또한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저희는 특정인을 겨냥하지 않은 혐오발언도 형사처벌 가능케 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춰 논의를 진행해 나갔습니다.

 혐오발언의 형사처벌에 찬성하는 활동가들은 혐오발언이 공동체에 미치는 심각한 악영향을 그 이유로 들었습니다. 혐오발언은 한 개인의 좋고 싫음의 표현을 넘어선, 소수자에 대한 차별 및 폭력을 선동하는 사회적 행위이기 때문에 마땅히 형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혐오발언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추세를 보아, 자정작용을 기대하기 어렵기에 법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 선진국에서 혐오발언자를 무겁게 처벌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혐오발언이 심각한 사회적 범죄로 인식되어 그 수가 줄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영국은 ‘1986년 공공질서법’에 따라 피부색과 인종, 국적, 출신국 의해 구별되는 집단에 대한 혐오발언을, ‘2006년 인종·종교혐오금지법’에 따라 특정 종교에 대한 혐오발언을, ‘2008년 형사사법 및 이민법’에 따라 성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각각 형사처벌하고 있다고 합니다. 독일 또한 형법 제130조1항으로 ‘특정 인구집단을 모욕하거나 악의적으로 비방해 타인의 인간적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를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 또한 특정 집단 및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혐오발언을 형사처벌할 수 있는 법규정을 마련해 혐오발언을 효과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반면, 혐오발언의 형사처벌을 반대하는 활동가들은 형사처벌이 지나친 표현의 자유 제한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한국의 특수한 정치적 경험과 지형을 고려하면, 혐오발언에 대한 형사처벌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개연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현 법체계상의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국가권력이 악용한 사례가 이미 여럿 있는데, 특정 집단 및 불특정 다수에 대한 혐오발언까지 형법 항목에 포함시키면 표현의 자유가 지나치게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혐오발언이 일상이 된 현 사회분위기 대한 문제 의식은 공유하지만, 혐오발언을 규제한다면 형사처벌이 아니라 민사상 손해배상이나 행정적 제재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비록 입법이 몇 차례 좌절되었지만, 뉴질랜드(1993년), 아일랜드(2004년), 프랑스(2008년), 스웨덴(2009)을 따라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여 혐오발언을 규제하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주제 2] 일베·메갈리아 사이트 폐지해야 하는가?

 혐오발언과 이의 범죄화에 대한 논의에서 자연스럽게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 및 메갈리아에 대한 논의로 넘어왔습니다. 먼저 혐오발언이 만연한 일베 사이트를 폐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간략하게 이슈를 소개하자면, 일베는 극우성향 인터넷 사이트로 1분당 동시 접속자 수가 대략 1만7000~2만명, 모바일 기준 한 달 순방문자수만 약 173만명으로 전체 커뮤니티 사이트 중 8위에 해당하는 규모를 자랑한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여성과 특정 지역 및 종교를 폄훼하는 게시글과 댓글들이 하루에 수백 건씩 올라옵니다. 이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아직까지 별 문제없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일베 컨텐츠 자체에 대해서 여러 갈래의 의견이 나왔습니다. 한 활동가는 일베를 무조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접하기보다 ‘무임승차 논리’와 같이 일베를 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논리에 대한 이해가 우선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다른 활동가도 무임승차 논리의 타당성 자체가 일베 문제의 핵심은 아니지만, 무임승차 논리 자체는 꽤 타당한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일베 유저들이 사용하는 많은 표현들은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선을 자주 넘는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른 활동가 또한 일베의 정치적 성향과 논리 자체에는 문제를 제기할 수 없지만, 혐오발언으로 분류될 수 있는 과격한 표현은 심각한 사회적 해악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논의가 일베 사이트를 폐지할 수 있는지, 폐지해야 하는지에 이르자 입장이 둘로 갈렸습니다. 먼저, 사이트 폐지 가능 여부에 대해서는, 변호사님께서 현 법체계에 특정 단체를 해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법조항이 없다는 점을 짚어주시면서 논의가 일단락 되었습니다. 일베에 올라오는 많은 게시물들은 형사상과 민사상 범죄요건에 성립되지만, 일베 사이트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고정적 주체나 조직이 아닌 열린 온라인 플랫폼이기 때문에 폐지하기 더 어려울 것입니다. 설사 운영금지 가처분 신청이 통과되어 도메인이 폐지된다고 해도, 또 다른 유해 사이트인 소라넷이 도메인을 이동하며 계속 운영되듯,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금껏 해왔던 활동을 지속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었습니다.

 폐지해야 하는가, 즉 당위성에 대한 논의에는 여러 입장이 있었습니다. 한 활동가는 혐오가 공기보다 당연한 일베 같은 과격한 사이트는 폐지되었으면 좋겠으나, 근 10년 이내에는 불가능할 것 같다는 입장을 내비췄고, 다른 활동가들은 특정 게시물에 대한 사과나 삭제조치 요청은 할 수 있지만, 사이트 운영을 금지하는 것은 문제가 되는 게시물 뿐 아니라 해당 사이트의 모든 게시물이 제한을 받는다는 점 등에서 과도한 표현의 자유의 침해를 우려했습니다. 특정 사이트를 폐지하기 이전에 형법 개정, 차별금지법 제정 등 혐오발언 자체에 대한 법적 규제를 강화하고 사회적 인식을 개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였습니다.

 다음으로 지나치게 과격한 발언으로 타인에게 불쾌감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몇 차례 삭제된 메갈리아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에 대한 논의를 했습니다. 예전부터 존재해왔던 일베나 김치녀 페이스북 페이지는 멀쩡히 운영되는데 메갈리아만 삭제되는 것은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는 점에는 동의가 있었지만, 메갈리아와 일베가 본질적으로 다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그렇다면 메갈리아의 미러링 전략이 혐오인지, 그 과격성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그리고 메갈리아와 일베를 같은 층위에서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차례로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활동가들은 첫 질문인 ‘메갈리아의 미러링 전략이 혐오인지’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먼저 각각 ‘김치녀’와 ‘삼일한’에 대한 대응어로 탄생한 ‘김치남’과 ‘숨쉴한’ 등의 용어를 남성에 대한 혐오로 보는 입장이 있었습니다. 이 용어들의 탄생 및 사용 목적이 어떠하든 그 안에 담긴 혐오를 부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와 달리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남성 혐오’가 아니라 ‘여성 혐오에 대한 혐오’라고 바라보는 입장이 있었습니다. 즉, 남성을 혐오하기 위해 과격한 표현들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성별을 막론하고 익숙하고 만연했던 여성 혐오적 발언을 거꾸로 뒤집어 낯설게 하여 그 문제성을 지적하기 위해 미러링 전략을 채택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메갈리아의 과격한 표현이 혐오이든 아니든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준다면 그 과격성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행동이 아닌지 등의 의문이 제기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활동가들은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수단마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보았고, 다른 활동가들은 미러링은 혐오발언이 아니기 때문에 그 과격성에도 문제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고인드립이 난무하고 뚜렷한 정치성향을 띄는 일베와 메갈리아는 탄생배경과 활동 목적 및 내용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같은 층위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나왔던 의견을 일일히 옮겨적을 수 없을만큼 논의가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첫 질문인 ‘메갈리아의 과격한 표현이 혐오인지’에서 벌어진 간극을 그대로 유지한 채 양측 모두 같은 말을 반복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아마 그 간극이 혐오발언의 본질 및 정의의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몇십년전에 비하면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 하나, 아직까지 한국은 성차별이 만연한, 여성에게 녹록지 않은 곳입니다. 한국의 여자들은 같은 일을 하는 남자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임금을 받고 있으며, 세계경제포럼이 올해 발표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성평등지수는 세계 최하위 수준입니다. 불평등 뿐만이 아닙니다. 빈번하게 벌어지는 성폭력 및 데이트폭력 사건에서 아직까지도 ‘충분히 조심하지 못한’ 피해자 여성을 질책하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이처럼 한국에서 여성은 수적으로는 인구의 반을 차지할지 몰라도, 비대칭적인 권력 관계의 아래에 놓여 있는 소수이며 약자입니다.

 메갈리아의 거친 표현이 혐오인지, 다음으로 메갈리아와 일베가 다른지에 대해 논하려면 위 맥락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개인의 좋고 싫음의 표현과 달리 혐오발언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대상자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고 선동하여 그를 사회에서 배제시키고 그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게 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상자의 사회적 발언력이 약할수록 그 위험이 더욱 크며, 자칫하면 물리적 폭력을 포함한 차별적 행위까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 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차별적 발언만을 혐오발언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가장 뜨겁게 달아올랐던 일베와 메갈리아에 대한 논의는 이처럼 혐오발언의 정의에 대한 논의로 되돌아가면서 마무리 되었습니다.

 

 [주제 3] 아이유 ‘Zeze’ 음원 판매를 중지해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최근에 가장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던 아이유의 노래 ‘Zeze’에 대한 형식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찬반은 개인적 입장과 상관없이 사다리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간략하게 이슈 소개를 하자면, 아이유의 네 번째 미니앨범 ‘챗셔(CHAT-SHIRE)’에 수록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주인공인 다섯 살 꼬마 ‘제제’를 모티브로 한 노래 ‘Zeze’의 가사에 대하여 학대를 받고 자란 다섯 살짜리 아이를 성적 대상으로 묘사한 것인지, 창작자의 의도를 무시하고 원작을 왜곡한 것인지, 원작 재해석에 대한 문제를 넘어 소아성애ㆍ롤리타신드롬을 자극하는지 등 논란이 일었습니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한국어판을 펴낸 동녘 출판사는 아이유가 원작 속 캐릭터 ‘제제’를 잘못 해석했으며 다섯살 제제를 성적 대상으로 삼아 유감이라며 문제 제기를 했으나, 2차 창작물에 대한 해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해석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아이유 또한 “맹세코 다섯 살 어린아이를 성적 대상화하려는 의도로 가사를 쓰지 않았”지만 가사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사과문을 본인의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에 게재하였습니다. 허지웅, 진중권, 소재원, 윤종신 등 문화 인사들도 자신의 의견을 적극 표명하며 설전을 벌였습니다. 11월 9일 기준, 다음 아고라에서는 ‘Zeze’ 음원 폐기와 보전을 요청하는 서명운동에 각각 3만2천여 명과 1천여 명이 참여했습니다.

 사실 ‘Zeze’의 가사가 소아성애적 표현을 담고 있는지, 컨텐츠 자체에 대한 논의가 주가 되었어야 하지만, 시간상 가사 한 줄 한 줄을 분석할 수 없어 소아성애적 표현이 있다는 전제 하에 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간단하게만 요약을 하자면, “넌 아주 순진해 그러나 분명 교활하지 어린아이처럼 투명한 듯해도 어딘가는 더러워”,“어서 나무에 올라와. 여기서 제일 어린잎을 가져가. 하나뿐인 꽃을 꺾어가”, “발그레해진 저 두 뺨을 봐”에서 나타나는 성적인 은유로 흔히 쓰이는 표현과 함께, 제제가 갖고 있는 (이중적인) 성질을 “섹시하다”고 느꼈고 “제제를 질투하는 모습에서 밍기뉴가 여자로” 느껴졌다는 아이유의 인터뷰, 그리고 핀업걸을 연상시키는 제제 일러스트를 한데 묶어 생각해보면 명백히소아성애적 은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찬성 측은 ‘Zeze’의 소아성애적 표현이 일차적으로 이미 피해를 입었거나 앞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소아들에게 폭력적이며, 이차적으로 사회의 성도덕을 침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정의에는 부합하지 않아도, 가사에 담긴 소아성애적 은유 자체로 충분히 음란하고 부적절하다는 것입니다. (참고: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은 “아동·청소년 또는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여 제4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거나 그 밖의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필름·비디오물·게임물 또는 컴퓨터나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한 화상·영상 등의 형태로 된 것”으로 정의됩니다.)

 반대 측은 창작물 속 제제는 원작 속 제제와 다르게 다뤄져야 하지 않냐고 질문했습니다. 아이유의 노래는 어디까지나 원작 속 제제에 대한 아이유의 해석을 바탕으로한 2차 창작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찬성 측은 아이유의 노래 ‘Zeze’에서의 제제가 원작 속 가난함과 가족들의 폭력 및 몰이해에 상처 받고 사랑에 굶주린 다섯 살 아이이든, 아이유의 이차적 창작물 속 가상의 인물이든 중요하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유의 ‘Zeze’가 주체적인 입장과 목소리를 가지기 힘든 소아에게 성적 은유를 부여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소아는 대리인 없이는 법정에도 서지 못하는 약자이기 때문에 더욱 소아성애적 표현에 문제를 제기하고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으로 반대 측은 현아의 ‘버블팝’, 그리고 비슷한 컨셉을 차용한 수많은 아이돌들의 노래와 아이유의 ‘Zeze’가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에 대해 찬성 측은 현아가 자기 자신에게 롤리타적 컨셉을 입히는 것과, 성인 아이유가 소아인 제제를 성적 대상화하는 것에 차이가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미성년자이더라도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청소년인 아이돌 가수들과 다섯 살짜리 아이를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형법에서 미성년자에 대한 간음과 추행 사건에서 피해자가 13세 미만인 경우 더 엄중히 처벌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 말입니다. 앞서 나왔던 이야기로 돌아가, 13세 미만의 경우, 주체적인 입장과 목소리를 가지기 힘들다는 판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롤리타 컴플렉스’라는 단어를 만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와 아이유의 ‘Zeze’는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찬성 측은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세계적으로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 받은 문학 작품이지만, 아이유의 ‘Zeze’는 소아성애적 컨셉을 상업적인 목적을 위해 소비만 한, 예술성 없이 음란성만 있는 노래라고 평가했습니다. 대법원 2000.10.27. 선고 98도679판결을 근거로 들며 “문학성 내지 예술성과 음란성은 차원을 달리하는 관념이므로 어느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에 문학성 내지 예술성이 있다고 하여 그 작품의 음란성이 당연히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다만 그 작품의 문학적·예술적 가치, 주제와 성적 표현의 관련성 정도 등에 따라서는 그 음란성이 완화되어 결국은 형법이 처벌대상으로 삼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가지고 ‘롤리타’와 ‘Zeze’ 둘 다 소아성애를 다루는 창작물이지만, ‘롤리타’는 소아성애가 작품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소재이며, 작품 자체의 예술적 가치가 매우 뛰어난 반면, ‘Zeze’는 소아성애를 소재로 상업적으로 소비하기만 하기에 예술작품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을 살펴보기 위해선 ‘Zeze’가 예술성이 있는지 없는지 컨텐츠 자체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하는데, 시간 관계상 그럴 수 없어 아쉽게도 예술성과 음란성과 관련된 논의는 여기서 일단락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Zeze’ 음원 판매 중지 방법에 대한 논의를 했습니다. 시간이 부족해 많은 의견이 오가지는 않았지만, 찬성 측과 반대 측 모두 음원 판매 중지를 하는데 있어서 국가권력 혹은 기타 독점적 권력에 의해 제재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음원 불매 운동, 민사 소송,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음원 폐기 서명운동 등에 의해 소속사 및 아이유 측에서 자체 판매 중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모았습니다.

 

[마치며] 표현의 자유,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가?

 토론을 준비하면서, 토론을 하면서, 토론 후에 후기를 쓰면서 생각이 계속 달라졌습니다. 그만큼 새로운 시각들도 많이 접하고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월례회였습니다. ‘표현의 자유,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가?’는 아마 논란이 되는 문제마다 계속해서 던져야 할 질문일 것입니다. 다만, 표현은 사회적 행위이며 헌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행해야 한다는 점은 항상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술가를 비롯한 표현의 주체가 자신의 표현에 폭력이 내재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이에 대해 논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인지한 채 보다 성숙한 비판을 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일 것입니다.

수, 2015/12/2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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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위원회 활동소식

1. 뮤지컬 ‘화순’ 단체관람

 통일위에서는 지난 11월 4일, 미군문제연구위원회, 과거사청산위원회와 함께 뮤지컬 ‘화순’ 단체관람을 진행했습니다.

1. 11월 화순 관람1

 

뮤지컬 ‘화순’은 1946년 8월 15일, 화순탄광 광부들이 광주에서 열리는 해방1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했다가 미군정에 의해 토끼몰이식 진압을 당하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광부들이 죽었던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왜 이 뮤지컬이 왜 한국판 레미제라블이라 불리는지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완성도 높고 웅장한 작품이었습니다. 1월에 앵콜공연을 또 한다고 하니, 회원 여러분들도 꼭 ‘화순’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1. 11월 화순관람2

1. 11월 화순관람3

 

 2. 2015 통일위원회 워크샵

 가을이 깊어가던 11월 6일~7일 통일위원회가 양평으로 워크샵을 다녀왔습니다. 통일위원회의 새내기 이재화, 서중희 변호사님을 중심으로 김용민, 설창일, 심재환, 양승봉, 이광철, 이석범, 천낙붕, 채희준 변호사님, 그리고 사무처 이유진 간사님도 동행을 했는데요,

토닥 토닥 내려앉는 가을비 소리를 들으며 통일위원회의 미래를 이야기 하던 그날 밤은 무척 은은한 밤이었다지요?^^

2. 11월 통일위 워크샵 (2) 2. 11월 통일위 워크샵 (3) 2. 11월 통일위 워크샵 (4) 2. 11월 통일위 워크샵 (5)

 

 3. 재미교포 최재영 목사님 초청강연

 지난 11월 13일 저녁, 통일위원회에서는 미군문제연구위원회와 함께 남북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재미동포 최재영 목사님[NK(New Korea)2020 대표] 초청강연을 진행했습니다.

3. 11월 최재영 목사 (1)

3. 11월 최재영 목사 (2)

 

최재영 목사님은 현재 북한전문통신 ‘NK 투데이’에 생생한 방북기를 연재하고 있는데요, 특히 이번 강연에서는 2015년 북한의 종교와 북한의 법원 풍경, 북한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요, 우리사회에서 북한이 점점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 요즘이라 이번 강연이 더 의미깊게 다가왔답니다.

3. 11월 최재영 목사 (3)

 

 4. 안녕 2015!! 통일위원회-미군문제연구위원회 합동송년회

 12월 22일 절기상 동지(冬至)날,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동지(同志), 통일위원회와 미군문제연구위원회 소속 위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합동 송년회를 진행했습니다.^^

4. 2015 미통위 송년회

 

통일위원회와 미군문제연구위원회는 매년 연말, 합동송년회를 통해 뜨거웠던 한 해를 돌아보고 다가올 한 해의 소망과 의지를 나눠왔는데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자꾸 생기는 것은 바로 함께하는 ‘우리’가 있기 때문 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 송년회에서는 아주 중요한 결정사항이 있었는데요, 바로 내년 여름휴정기인 7월말 8월초에 통일위원회와 미군문제연구위원회 공동으로 “독일통일기행”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1월에 바로 준비단을 구성하고 전체 참가단을 모집할 계획이니 회원 여러분들의 많은 호응과 참여를 요청드립니다.^

수, 2015/12/2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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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인권변론센터 사람들, 이들이 궁금해요!

 

이혜정: 새로운 집행부 뉴스레터에 영광의 첫 손님으로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선정됐습니다. 요즘 인트라넷의 ‘이것이 궁금해요’와 ‘이 주의 변론’ 코너가 아주 인기가 좋고 덕분에 홈페이지 인트라넷도 좀 활성화가 된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이면에 있는 공익인권변론센터에 대해서 잘 모르는 회원들이 많아요. 센터가 어떤 일을 하고, 누가 일하고 있는지, 각자 자기 소개 부탁드릴게요.

송아람: 저는 민변이 첫 직장이고 2014년 10월부터 근무를 했습니다. 사무처에서 변론팀장으로 일을 하다가 이제 센터가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센터로 옮겨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수연: 네 저는 이수연입니다. 입사한지는 4년 5개월 정도 됐구요. 민변에 온 뒤로 제가 인복이 좀 있는 거 같아요. 처음에 이혜정 변호사랑 함께 일을 했는데, 이번에 공익변론센터에서 같이 일 하게 된 구성원들을 보면서 ‘아! 나에겐 인복이 있구나.’, 남자친구는 없지만 인복은 있구나, 그래서 너무 좋습니다.

송상교: 네.센터 소장입니다.(웃음)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동안 사무차장으로 일을 했었구요. 올해 2월부터 다시 또 이번엔 사무차장이 아닌 센터 소장으로, 민변 최초의 소장으로서 일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조영관: 네, 안녕하세요. 조영관이구요, 저는 5월부터 변론센터에서 반상근으로 월요일과 수요일와서 일을 하고 있구요. 주로 이제 회원들한테 보내는 이 주의 변론하고 이것이 궁금해요를 만들고 있고, 그외에 변론센터에서 진행하는 사건들이나 업무들을 나누어서 하고 있습니다.

공인인권변론센터 탄생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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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공익인권변론센터가 만들어지고, 이번 총회에서 소개도 됐는데 아직 공익인권변론센터를 잘 모르는 분들이 더 많아요. 센터가 만들어진 계기나 과정을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송상교: 갑자기 생긴 건 아니고, 사실 몇 년 전부터 민변 안에서 회원 1000명 시대가 되고 민변도 30주년을 맞으니‘뭔가 질적 도약을 해보자’ 이런 논의들이 많이 있었죠. 그 과정에서 ’민변이 제일 잘 하는 건 변론 아닐까, 맨날하는 거니까’, 해서 변론을 특화시켜보자, 변론센터를 일단 가장 먼저 특화시켜서 그걸 통해 시민들과 점점 소통을 해보자, 이렇게 얘기가 됐던 겁니다.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있었어요. 민변이 사실 맨날하는 게 변론인데 갑자기 또 무슨 변론센터냐, 무엇을 위한 것이냐에 대해서 회원들 사이에 논의가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이것은 이 변론센터가 눈으로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어떤 것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아무도 예상하기어려웠던 것 같고, 우리 준비하는 사람들조차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변론을 잘 하자는 것 외에 후배 회원들을 양성해보자는 고민도 오랫동안 있었어요. 공익변론센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민변의 젊은 회원들을 영입해서 양성해보자, 이런 논의도 있었죠. 아직까지는 우리 역량이나 재정이 녹록치 않은 부분이 있어서 약간 보류됐고, 그런 부분들을 장기적인 과제로 놓고, 민변의 변론을 잘 기획하고, 그것으로 시민들과 소통하고, 민변의 변론자료를 잘 축적해보자, 그래서 회원들이 수준 높은 변론을 하도록 지원을 해보자, 이런 걸로 압축이 되는 거죠.

이혜정: 지금 센터가 개설되면서 교육팀이 없어졌잖아요, 신입 회원들과 기존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사업도 중요한데교육사업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계획도 있나요?

송상교: 센터가 만들어지면서 교육업무를 센터가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줄다리기가 좀 있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젊은 회원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민변의 변론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도 그 젊은 회원들, 민변 회원들에 대한 계속 끊임없는 교육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교육도 센터의 중요한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예전 교육팀에서 신입회원 단기연수를 몇 년째 했었는데 오랫동안 변론을 해왔던 변호사들이 실무적인 팁들을 중심으로 강의를 하셨던 것이 반응이 무척좋았던 거 같아요. 민변 회원들이 변론과 관련해서 공익인권의 내용을 법정에서 잘 표현할 수 있는 스킬이나 증거신청의 방법 같은 실무적 지식에 대한 목마름이 많이 있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기적인 교육 외에도 그런 변론교육은 강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제일 큰 고민은 회원에 대한 교육 외에 시민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법률적인 정보를 제공하거나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들 같아요. 그게 참 제일 어려운 부분이더라고요.

구체적으로 공익인권변론센터가 하는 일은?

 

이혜정: 지금 센터가 진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소송은 무엇이 있나요?

송상교: 센터 1호 소송으로 저희가 시민청구인을 모집해서 통신자료 무단수집 헌법소원을 했고, 그게 1호 소송이에요.

송아람: 사실 변론팀이 외부에서 요청받은 것도 많이 하잖아요. 강정마을 구상금 청구 사건하고, 민중총궐기 집회 주최자 손해배상 소송 두 건을 연달아 했고요, 그 외에 우남찬가 사건이라든지… 그 정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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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현재 센터에서 진행 중인 중점사업을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송아람: 일단은 저희가 시민들과의 소통도 중요한 사업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어요. 기본적으로는 센터 이메일로 상담 내용과 자료를 받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고요. 전화 상담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전화상담은 원칙적으로 하지 않고 있어요. 센터가 4월 말에 개소를 했는데 그 뒤에 30건 정도 왔더라고요 그 중에 지금 민생위 공정경쟁팀에서 하고 있는 대한항공 지연발착 손해배상 청구 사건이나,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우남찬가 사건 등을 민변 사건으로 지정을 해서 기금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조영관: 공익변론센터는 민변이라는 회원조직에서 만들어진 공익센터이기 때문에 회원들을 위한 사업들을 같이 고민하고 있어요. 그래서 처음 만들었던 이 주의 변론인데요, 회원들이 변론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공유하고 회원들이 했던 변론을 소개하고 있어요. 또 신입회원들이 많아지면서 예전처럼 선배들이 알고 있는 노하우가 자연스럽게 모임 내에서 공유되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신입 회원들이나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기 위해 ‘이 주의 변론’ 안에 ‘이것이 궁금해요’ 라는 코너도 만들었습니다,

또 다른 중점사업으로는 디지털 도서관 구축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민변이 30년 가까운 시간동안 해왔던 변론 자료들이 회원들한테 충분히 공유되지 못했고, 또 디지털 시대가 됐으니까 지금까지의 자료들을 잘 정리해서 회원들의 변론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에요.올해 안에 런칭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혜정: 민변에 좋은 자료가 참 많아요, 민변 자료를 통해서 저의 시각으로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던 교수님들과 다른 실무진들의 의견을 접하기도 하거든요.

조영관: 저희가 디지털도서관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계속 논의하고 있는데 변론 기록을 가장 우선시 하지만 민변이 가지고 있는 토론회 자료집, 노동위원회에서 발간하는 노동판례비평, 4년에한 번 나오는 개혁입법과제 같은 정기발간물도 변론에 혹은 민변 활동에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기 때문에 그런 자료들 포함해서 이번에 그 디지털 도서관을 구축하려고 합니다.

인트라넷 스타 <이 주의 변론>&<이것이 궁금해요>

 

이혜정: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연재하는 <이 주의 변론>이나 <이것이 궁금해요> 인기가 높다고 하는데, 혹시 회원들로부터 반응이 돌아온 적도 있나요?

조영관: 어, 폭발적이죠.(웃음) 정말 ‘이 주의 변론’ 올린 것 중에 조회수가 90 정도 올라간 것들이 있어요. 제가 알고 있기로 민변 회원이 1000명인데 30% 정도가 인트라넷을 사용하신다면 300명이죠? 조회수 90이면 거의 한 1/3이 보셨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원 분들 중에서 아직 인트라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데, 인트라넷에 접속을 하시면 저희 <이 주의 변론> 게시판과 <이것이 궁금해요> 게시판이 있어요. 궁금한 점을 게시판에 올려주시면 저희가 매주 나가는 ‘이 주의 변론’에 소개하고, 내용에 따라서는 저희가 전문가를 직접 찾아서 답변을 받아서 올리기도 하고 있구요. ‘이 주의 변론’은 얼마 전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사건처럼 회원 분들이 진행하지 않았어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들은 회원들의 변론에 도움이 되는 판결이라고 생각이 되면 공유하기도 해요.

민변 회원이 굉장히 많은 소송들을 하고 있거든요. 저희 센터를 통해서 잘 수합이 안 되는 경우들이 있어요. 회원 분들이 진행하셨다가 의미가 있는 혹은 공유하고 싶은 판결이 있다고 하면 저희 민변 공익변론센터 이메일 [email protected]여기로 알려주시면 저희가 엄격한 선별 과정을 거쳐서 회원들에게 소개를 할 예정입니다.

송상교: ‘이 주의 변론’이나 ‘이궁’이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기존의 자료들을 잘 조직해서 소통하게하는 의미가 있죠. 센터가 민변 변론의 허브가 되어야겠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어요. 민변하고 연대 활동을 많이 하셨던 진보넷의 장여경씨 같은 분도 저번 운영위원회에서 “아니 민변에서 이렇게 많은 변론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 중에서 몇 퍼센트나 우리 회원들이 공유가 되고 있을까요? 가만히 살펴보면 너무 많은 땀들이 거기에 응축되어 있는데 이런 것들을 가능한 범위 내에서라도 회원들과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판결이든 나쁜 판결이든 회원들이 한 번 보고 자기가 하는 변론에서 ‘응용해봐야겠다’라고 할 만한 것들이 담겨있는 거면 최대한 소통을 해야겠다고 생각한거죠. 아마 회원들이 그런 자료에 대한 욕구가 있었던 것도 같아요.

이혜정: <이 주의 변론>이나 <이것이 궁금해요>의 선정 기준이 있나요?

조영관: 입소문이죠.(웃음) 저희가 지금까지는 각 위원회나 저희 변론센터 내에서 알음알음으로 회원 분들이 진행하시는 사건에 대해서 정보를 받아서 소개하고 있고요 간혹 가다가 이 주의 변론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본인의 사건을 소개해달라고 의뢰해오는 경우도 있어요.

회원을 위한 공익인권변론센터 사용설명서!

 

이혜정: 그러면 지부 회원이나 신입 회원들이 ‘나도 민변의 공익변론활동을 접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요?

송상교: 센터가 만들어진 후에 민변의 변론을 배분하고 지원하는 기능은 많이 확대된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해서 상근자가 네 명이 있고 민변의 회원들이 같이 할 만 한 사건들은 최대한 회원공지를 해서 많이 알리고 있거든요. 요즘은 실질적으로 참여하실 분들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때로는 우선지원 순으로 하기도 해요.

그런데 아쉬운 게 사실 개인적으로 말씀을 나눠보면 민변 변론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가 있으셔도 막상 기회가 되면 손드는 건 되게 쑥쓰러워하시는 거 같아요. 민변 변호사들이 샤이하다 이런 평도 예전부터 있었거든요.(웃음)

제 생각에는 이런 사건을 해봐야 어떤 느낌인지도 알고 다음에도 참여할 수 있다고 봐요. 이수연 간사님께서 관리하고 있는 공익인권변호사단이 있습니다. 기존의 민변이 집회라든가 이런 접견 상황이 생기면 변호사 접견을 하고 그랬었는데, 그것을 좀 더 확대하고, 또 간단한 집회 혹은 표현의자유로 인해서 기소된 분들의 변론을 맡는다거나, 이런 일상적인 공익인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틀입니다. 저희가 신청기간을 정해서 신청을 받긴 했지만 언제든 센터로 연락을 하시면 공익인권변호사단에 가입하실 수 있고, 저희가 일상적으로 드리는 사건에 참여하실 수 있는 기회가 있어요.

또 민변의 공익인권 기금이 있어요. 그리고 회원 누구나 자신이 공익인권변론을 하고 싶을 때 내 사건을 민변 사건으로 해다오, 의뢰인이 여러 가지 경제적 어려움이 있거나 한 상황이니 기금을 지원을 해다오하고 신청할 수 있는 제도가 있거든요. 필요한 변론들을 할 수 있는데 요긴한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제가 보기엔 유용한 거 같아요. 총회 자료집에 민변 변론규정이 있구요, 거기에 보면 신청서가 있어요. 그다음에 또 표현의 자유 사건 같은 경우에 표현의 자유 기금 규정과 신청서가 따로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이용하시면 되고 궁금하시면 전화하시면 되죠. 522-7283.

공익인권변론센터의 애로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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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센터가 개소한지얼마 안 됐지만 혹시 애로사항이나 힘든 부분은 없으셨어요?

조영관: 저는 민변에서 처음 일을 하는 거거든요. 상근하시는 분들은 민변에서 일을 하셨거나 오랫동안 해보셨던 분들인데…. 저는 4월달부터 공익인권센터에 월요일, 수요일 들어오는데 정말 깜짝 놀랐거든요. 일이 엄청 많고, 송아람 변호사 같은 경우는 거의 전화를 계속 붙잡고 있고…

사실 변론센터를 만들고 가장 필요한 것들은 공익 변론의 기획인데, 사실 기획을 하려면 일상의 여유들이 좀 있어서 좀 둘러보고, 뭐가 좋을지 고민도 해보고, 같이 머리도 맞대고, 토론도 해보고 해야 하거든요. 지금 공익변론센터가 생긴 지 한 3개월 정도 되는데 당장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차분하게 기획한다거나, 하는 짬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게 제일 아쉬운 부분이죠. 그건 좀 개선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송아람: 사실 조영관변호사님 말씀처럼 공익변론센터의 가장 큰 존재 이유는 기획소송을 활성화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 앉아있는 사람들이 기획소송 거리를 찾아내기는 굉장히 어려우니까 저는 시민들께 공익소송이 될 만 한 것들을 제보 받는 형식을 굉장히 중요시 하거든요. 사실 이메일이나 편지나 전화로 상담을 하다 보면우리 입맛에 맞는 사건은 그렇게 많지 않고, 그렇다고 또 완전히 ‘딱 봐도 상대할 사건이 아니다’ 이런 것도 많지 않고 대부분 사건은 그 어딘가 하나에 걸쳐있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그런 사건은 민변이 해오지는 않았는데, 이제 공익변론센터라는 게 만들어졌으니 회원분들도 그런 사건들을 좀 접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민변에서 약간의 기금이라도 지원해주고 적절하게 사람을 붙여서 공익 사건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분들을 우리 모임을 통해서 도울 수 있다, 이런 느낌을 주고 싶은데 그 매치시키는 작업을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워요.

그리고 저희가 제보하신 사건이 민변이 맡아서 진행하기에 부적절하다고 판단했을 때 그걸 또 말씀을 드려야 하는 것도 굉장히 어렵죠. 사실 시민들 기대에 어긋나는 답변을 드려야 하는 게 어려워요

송상교: 사실 송변호사가 우리 중에는 상담을 제일 많이 하시고, 제일 열정을 가지고 하고 있어요. 시민들하고 소통해서 의미 있는 소송을 기획하는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시민에 대한 인권지원 활동이죠.

센터가 생긴 지 몇 달 안 됐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참 커요. 어쨌든 센터가 만들어지니까 회원들도 거기에 대해서 기대를 하고, 또 시민들도 크게 기대를 하는데, 아직까지는 과도기인 것 같아요.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앞으로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는데 아직 사무처 업무도 함께하고 있는 상황이고, 매우 급하지만 실무적인 일들을 해야 될 게 아직 많이 있어요.

센터가 기본적인 역량 축적 단계를 넘어서 일 년에 서너건 정도 의미 있는 기획소송을 지속적으로 하는 상태가 되면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이 센터가 앞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시민이나 시민단체를 통해 현장에서 나오는 사례들로 소송을 기획할 수 있어야 하고 변호사들끼리 앉아서 신문 본다고 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앞으로 더 시간을 내서 시민들을 만나고 현장에도 가보고 단체들도 방문해보려고 합니다.

회원들도 자그마한변화지만 ‘이주의 변론’ 같은 게 생기면 좋잖아요. 회원들이 변론에 대해서 평소에서 생각들을 많이 하세요. 술자리 같은 데서 ‘이런 변론 해보면 어떨까’,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시는데 그런 것들을 센터로 주시면 저희가 그런 것들을 고민하고 기획하는데 큰 힘이 될 거 같은데 아직까지는 ‘쌍방향 소통이라는 게 쉽지 않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민변의 공익인권변론센터, 그 의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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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공익변론을 하는 곳이 공감도 있고, 희망을 만드는 법도 있고, 회원들은 아니지만 변협에 이런 공익재단도 있죠. 이런 곳들이 요즘 많이 늘어나는 추세인 것 같아요. 민변의 공익변론센터가 다른 곳과 차별화된 지점은 무엇일까요?

송상교: 기존의 공익 전담 변호사 그룹들과는 서로 상호보완, 상호협력관계인 것 같아요. 기존의 공익전담변호사그룹은 다양한 분들이 모여서 구체적인 공익인권의 주제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시잖아요.민변은 하나의 시민사회단체, 인권단체로서 특정한 주제에 집중하기보다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인권을 위해서 역할을 하는 것이고, 민변에 가장 많은 정보가 축적되고 가장 많은 변론이 여기를 중심으로 이뤄져요.

그래서 민변에 공익인권변론센터가 만들어짐으로 해서 기존의 공익인권전담 변호사 그룹들에게는 변론의 정보를 제공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민변이 자체적으로 센터에서 특정 주제를 특화를 해서 할 것인지도 우리가 면밀히 살펴봐야 할 거 같아요. 공익변론의 공백 부분이 있다면 일이 잘 시작될 수 있도록 초기 세팅을 할 것인가 이런 고민이 우리한테 놓여있는 과제인 것 같아요.

이혜정: 변론센터가 회원, 시민과의 접점에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계획은 어떤가요?

개인적인 아이디어로는, ‘이주의 변론’을 반기별로 묶어 회원들에게 배포하거나, ‘이궁’도 계속 자료를 축적해 ‘변론팁’이라는 소책자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송상교: 지금은 낮은 단계의 축적을 하는 상황인 거 같고요. 이런 축적들이 지금 당장은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쌓이면 대단히 큰 자산이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주의 변론’ 같은 코너도, 예컨대 민변이 연말이 되면 ‘올해의 판결’ 이런 거 하잖아요 좋은 거, 나쁜 거. 사실 예전에는 민변 11월쯤 되어서 뭐가 있지 막 찾아보고 이랬는데 <이주의 변론>이 3월부터 계속 쌓이면 매주 올라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제대로 된 판결을 선정할 수 있을 거예요.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가 ‘이궁’ 이런 것 중에 궁금한 변론의 팁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모아서 변론 매뉴얼을 만들어볼 생각이에요. 형사, 민사, 각 주제별로 했던 거.

그런 것들이 일정 단계가 되면 의미 있는 매뉴얼이 되고 매년 업데이트가 되겠죠. 디지털도서관도 이번에 처음으로 틀이 만들어지는 건데 사실 틀만 만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자료가 계속 쌓여야죠. 이주의 변론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거기로 들어가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민변이 제일 못하는 게 사실 뭔가 알리는 거예요. 활동가들도 민변이 제대로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데 어떻게 하면 시민들에게 ‘아, 민변이 이렇게 많은 활동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끔 민변의 활동을 알리고, 시민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그게 가장 큰 고민이에요.

이혜정: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회원이나 시민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말 등 가볍게 정리하고 마무리 지을께요.

이수연: 소장님 말씀대로 위상도 더 높아지고 일도 더 많아질 텐데 거기 사업들이 원활하게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변호사님들 돕는 제 역할도 많이 무거워질 거 같아요. 역량도 부족해서 굉장히 걱정도 많이 되는데… 변호사님들과 함께 잘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송상교: 제가 사실 다른 인터뷰에서도 정부법무공단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처음에는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계속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괴물같은 조직이 되어버렸고, 대법원 판결도 바꿔내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제 역량 있는 변호사 개인의 힘으로는 돌파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여럿이 모여서 조직화된 활동을 해야 이런 것을 넘어설 수 있는 논리를 만들고 정보를 축적할 수 있다는 거죠. 저는 그래서 센터가 중요하다고 봐요.

그러다 보니까 많은 분들이 센터에 기대를 하시는데, 센터가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서 만들어진 거라서 개인적으로도 부담이 돼요. ‘말아먹으면 안 되는데, 뭔가 좀 성과를 남겨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고 조바심이 많이 나요. 그런데 한 편으로는 ‘성과주의에 빠지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도 되게 많이 해요. 몇 년이 될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센터가 의미 있는 활동이었구나’라고 평가받는 게 중요한 거지 지금 당장 의미 있는 가시적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닌 거죠. 그래서 회원 여러분도 함께 좀 호흡으로 보시고 많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송아람: 저는 회원들께서 좋은 사건이라고 생각이 되시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변론하는데 망설이고 계신다라든지 아니면 민변 회원으로서 좋은 공익활동 해보고 싶다 하시면 언제든지 센터로 전화 주시면 최대한 같이 할 수 있는 방안 찾아볼 테니 언제든 전화 주시면 좋겠습니다.

익명: 서울지방변호사협회 프로보노지원센터가 얼마 전에 생겼는데, 유수의 로펌이 여기에 매달 얼마씩 기금을 후원하는 시스템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조금 더 성장하고 그 기능을 조금 더 충실하게 또 하려면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민변에서 말씀하셨던 신입변호사 교육프로그램 등을 센터에서 진행하려면 예산도 있어야 하고 인력도 충원되어야 해서 간단치만은 않거든요. 지금은 어렵게 빠듯하게 첫발을 떼고 있지만 이런 취지들을 잘 읽어 이해하신다면 훌륭하신 선배님들의 따뜻한 후원과 이런 게 현실적으로 좀 이루어져야 되지 않나, 이런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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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 갑자기 지원이 막 몰려들 것 같은데요(웃음). 이상 오늘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월, 2016/06/27-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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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위원회 활동 소식

 

<학교비정규직 현황 및 파업 관련 워크숍 개최>

 

여성인권위는 지난 5월 월례회에서 전국여성노조 나지현 위원장님을 모시고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과 최근 진행된 총파업’ 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자리를 가졌습니다. 나 위원장님은 학교에서 근무하지만 교사도 학생도 아닌 영양사, 조리사 및 조리보조원 등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태 및 관련 노동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고용안정과 근속인정, 정규직화 등을 통한 개선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참석한 여성인권위 위원들은 학교비정규직의 현실과 문제해결에 대해 깊은 공감을 나타냈으며, 학교비정규직의 신분과 근로조건을 규정하는 교육공무직법이 제정되어 학교비정규 노동자가 학교의 한 주체임을 분명히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데에 뜻을 같이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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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 이제 댄스타임’ 공동 관람과 조세영 감독과의 GV>

 2016년 6월 여성인권위 월례회는, ‘낙태’를 소재로 한 장편다큐멘터리 영화 <자, 이제 댄스타임>의 조세영 감독과의 대화 등으로 이루어진 워크샵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위원들은 워크샵에 앞서 민변 대회의실에 모여 한층 업그레이드된 민변 장비^^를 통해 위 영화를 단체 관람한 후 감독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국내 최초로 낙태 경험자들이 출연하여 대중에 얼굴을 공개한 위 영화를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간 기획·제작·배급하는 과정에서 낙태라는 주제가 갖는 특수성으로 인한 여러 어려움들, 특히 출연자들과의 단계별 소통과정에서의 신뢰/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깊이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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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한국사회의 개혁과 입법과제’ 및 보고대회 -여성인권 분야에 대한 집필과 출간이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민변은 2004년 이후 4년마다 새 국회 개원 즈음에 사법제도, 정치, 민생경제, 여성, 사회, 통일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안에 대한 입법방향을 제시하는 「한국사회의 개혁과 입법과제」를 출간해왔습니다. 올해, 2016년에도 20대 국회 개원에 맞춰 「2016년 한국사회의 개혁과 입법과제」를 출간하기 위한 출간 보고대회 및 토론회가 6. 22.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여성인권위는 위 출간물에 실릴 여성인권의 각 세부분야 – 가족법 분야, 여성의 재생산권(낙태 등), 여성노동 분야, 여성폭력과 성매매방지 분야, 공적분야, 이주여성분야의 원고를 각 팀을 비롯해 여성위 내에서 공동으로 집필하여 제출하였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여성위의 이희영 위원이 준비위원을 맡아 여러 가지를 세심하게 챙기며 원고도 직접 집필하였고, 최종적으로 조숙현 위원장님이 감수를 맡아 마무리해주셨습니다. 여성인권위가 그간 4년간의 활동을 토대로 향후 여성인권의 주요한 이슈와 의제를 선정하고 그 고민을 담은 출간물인 만큼, 앞으로 개원하는 20대 국회에서 많은 국회의원들에게 읽히고 사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성위의, 다음 월례회는?!^^>

여성인권위 7월 월례회는 2016. 7. 21.(목) 늦은 7시, 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립니다. 올해의 중반을 넘어서는 시기인 만큼,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그동안의 상반기 여성인권위 활동을 돌아보고 하반기에 대한 계획을 보다 풍성히 하기 위한 의견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경계성 장애인 성폭력 사건’ 및 일명 ‘하은이 사건’ 변호인단과 함께 월례회 이후에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월, 2016/06/2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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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레/터

안녕하세요, 다시 또 인사드립니다.IMG_0537
사무총장 강문대 변호사입니다.
이제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셨겠지요? 제 개인을 알 필요는 없지만 우리 모임의 총장의 이름과 얼굴은 알아두시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회장님은 선거를 거쳤으니 확실히 알고 있지요?

총장 3-4주차를 거쳤는데요, 이제 조금 익숙해지네요. 상근자들과의 소통도, 여러 가지 일 빨리 빨리 결정하는 것도, 재판하면서 텔방 보는 것도 손과 눈에 많이 익었습니다. 그 끝이 매너리즘이 아닌 능수능란이 되도록 긴장감은 계속 유지해 나가겠습니다.

지난 두 주간 민변에 큰 두 일이 있었는데요, 하나는 ‘탈북 식당 종업원 인신보호 사건’의 심리 개최이고, 다른 하나는 ‘개혁입법과제 출판 보고 대회 및 토론회’ 개최입니다. 전자와 관련해서 일부 단체가 민변 사무실 앞에서 집회를 개최하기도 하였습니다. 단체 명단 중에 ‘어버이연합’은 없더군요. 확실히 자금 지원이 원활치 않은가 봅니다. 위 심리와 관련해서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민변을 물어뜯더군요. 저도 당사자격 지위에 서보니 그런 공격을 무심히 흘리기가 쉽지 않더군요. 그렇다고 무조건 정면 대응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어서 그 대응 수준과 방식을 정하는 것에 고심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변호인단이 일선에서 잘 대응하고 회장님도 전체 지휘를 잘 하셔서 적절한 수준에서 막아낸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 성명(“인신보호법을 무력화시키는 국정원의 행태와 법원의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나온 것 아시죠? 거기에 우리 입장이 잘 나와 있습니다. 궁금하거나 헷갈리는 점이 있으면 그 성명 다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 오늘(6/24) 변호인단이 국정원장을 고발합니다. 이미 알고 계시지요? 이에 대한 보도자료도 홈피에 게재돼 있습니다.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지 않고 소리없이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버섯도 아니고 용각산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명천지에 소리내어 알리면서 활동합니다. 이 건은 다음 레터에서도 더 할 말이 있을 것 같네요.

개혁입법과제 토론회도 잘 마쳤습니다. 회원 의원들은 거의 다 참석해 주셨습니다. 우리 모임의 각 위원회에서도 1-2명씩 참석해서 자리가 영 허전하지는 않았습니다. 아, 자발적으로 동원된 ‘자원활동가’들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직 자료집을 못 보셨을 것인데, 보는 순간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많이 들 것입니다. 예, 딱 고시서적 같이 생겼습니다. 외우고 싶은 본능이 확 일 테지만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냥 한 번 일독해 주시면 됩니다. 거기에 많은 수고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4년 뒤에 어느 총장인가는 이 일을 다시 반복할 것인데, 잘 감당하시기를 미리 당부드립니다. 준비 과정과 종료 이후의 평가를 회의록에 잘 남겨 놓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재명 회원(성남시장)의 단식농성장을 방문했는데, 그 이틀 뒤에 단식농성을 푸셨습니다. 상당인과관계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법률적 양심으로 각자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건강을 더 크게 해하지 않고 단식을 종료해서 다행입니다.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데, 그것도 잘 해결되기를 바라겠습니다. 회원님께서 민변의 성명 발표와 지지 방문에 감사의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전체 공지합니다.

‘전관비리’와 관련된 검찰의 수사가 일단락됐는데, 혹시나하고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역시나라는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한변협도 ‘전관비리’ 근절 대책을 발표했지요? 우리는 성명(“법조비리, 특검으로 수사하라”)을 발표했습니다. 사법위에서 수고를 해 주셨습니다. 사법개혁의 계기와 소재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발굴되네요. 그 때마다 조금씩이라도 진전이 있을 수 있게 잘 대처해 나가겠습니다.

지난 일요일(19일)에는 세월호 고 김관홍 잠수사의 추도식에 회장님과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자식 잃은 부모가 그 구조자의 가족을 위로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이번 주에는 세월호 특조위의 활동 시한을 둘러싼 공방이 가열될 것으로 보이는데, 민변은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적극적인 의사표명과 함께 정부의 일방적 행태를 저지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을 강구해 나가겠습니다.

사무처에도 조금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유진 간사가 출산휴가를 갔고 그 대체근무자로 김서정 간사가 왔습니다. 앞으로 1년 좀 넘게 같이 근무할 것입니다. 민변 페북에 가입해 있는 분은 보셨겠지만, 카드 뉴스 등 기존에 잘 안 보이던 것이 보일 것입니다. 뭔가 소란스럽다 싶으면 김서정 간사에게 혐의를 두시면 거의 정확할 것입니다. 큰 역할 기대합니다. 이유진 간사도 애 잘 낳고 오기를 기원해 주세요.

마지막 소식입니다. 김수영 시인은 사소한 일에만 분개하는 자신을 자책했지만, 저는 사소한 일에 분주해질 때 뿌듯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번에 느낀 뿌듯함은, 남자 화장실 출입문이 강제로 닫히게 만든 일입니다. 화장실 문이 열려 있어서 민망한 때가 좀 있었지요? 그 예방책을 고민한 결과 자동개폐기를 설치하는 것으로 해결했습니다. 그것이 고장나지 않는 한 출입문으로 인한 민망 모드는 재현되지 않습니다. 뭔 말이냐고요? 예, 남자 화장실 출입문 위쪽을 한 번 보시면 됩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아, 정말 마지막 한 소식이 있군요. 이 글을 보고 있는 이 시간에 저는 ‘독일’에 있습니다. 자유여행 아니고 통일기행입니다. 통일위 변호사님들과 베를린의 골목을 함 휘젓고 오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월, 2016/06/27-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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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부 소식 2016. 6. 23.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집시법위반 공익변론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은 2011년 3월11일 후쿠시마 원전4기 폭발 이후,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깨닫고 울산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만든 네트워크 조직으로 민변울산지부도 참가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최근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관련 이슈로 탈핵공동행동이 이에 반대하는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를 울산시청에서 진행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울산시청의 고발로 현재 경찰수사가 진행중입니다. 그동안 동일·유사한 경우에서 일체 형사고소·고발을 당한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탈핵공동행동에서는 사안을 심각히게 보고 대응중이고 민변울산지부에도 변론요청을 하여 왔습니다. 이에 우리지부에서는 수사과정에서부터 함께 대응하고 있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발전()의 광고비등 집행내역에 대한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

울산시민연대와 공동으로 한수원의 “언론홍보비 집행내역등에 대한 정보공개거부처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2015년 6월 9일 제기하여(주심 한정희 변호사님), 2015. 10. 14. 원고 전부승소판결을 받았고, 2016. 5.경 항소심 역시 승소하였습니다. 현재 한수원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로 상고기각을 목표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차원에서 지역시민사회와 공동행동을 한 것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대한변협의 일명 테러방지법안 검토의견서에 관한 울산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공동 성명서발표

2016. 2. 26. “대한변협의 일명 테러방지법안 검토의견서에 관한 울산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였습니다. 본부와 소통을 거쳐 우리 지부 주도로 울산지방변호사회 회원 22명 연명을 받아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2016. 2. 27. 언론에도 보도되었습니다.

월, 2016/06/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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