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역사의 진실을 찾아가는 제주4.3평화여행

지역

역사의 진실을 찾아가는 제주4.3평화여행

익명 (미확인) | 수, 2016/11/16- 16:00
역사의 현장을 평화와 인권의 관점으로 해설하는 평화길라잡이 회원들의 조금은 특별한 여행
작년에 이어 올해로 두번째,

지금까지와는 다른 제주!
역사의 진실을 찾아가는 제주4.3 평화여행.
눈물겹게 아름다운 제주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일정 : 11월12일(토)-13일(일) 1박 2일
-1일차 : 4.3평화기념관. 낙선동 4.3성터. 반못굴. 북촌너분숭이 기념관. 순이삼춘비
-2일차 : 큰넓궤. 잃어버린마을(무동이왓). 헛묘. 섯알오름 학살터. 알뜨르비행장. 백조일손지묘.



제주 4.3사건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이 가능할까?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로 사람이 죽었고,
이에 대해 사과와 책임 요구를 묵살!
3월 10일 경찰, 법원, 행정 조직 등 도민의 95%가 참여한 총파업
이때부터 레드아일랜드 '빨갱이섬'으로 낙인찍혀 대대적인 구금 검거 작전이 일어난다.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350명의 무장봉기!
5.10단독선거. 단독정부 반대! 통일정부 수립촉구!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탄압 중지!
무장대는 이렇게 주장하며 경찰지서, 우익단체 요인들의 집을 습격하며 봉기를 시작했다.
5월10일 단독선거! 제주도의 세개 선거구 가운데 두개 선거구에서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무효처리되면서,
남한에서 제주도가  유일하게 5.10선거를 거부한 지역이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이승만 대통령은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제주 사태를 인식하고
'해안선으로부터 5㎞이상 들어간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배로 간주해총살하겠다'는
포고문 발표, 그 후 포고령은 소개령으로 이어졌다.  
11월 게엄령을 선포하면서 중산간마을에 이른바 '초토화작전'을 벌인다.
1948년 11월 중순부터 약 4개월 동안, 중산간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집단 학살했다.
해안마을 주민들은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1949년 한라산 더 깊은 곳으로 피신해있던 주민들에게 사면정책을 발표해 산을 내려오게했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예비검속"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되었다.
1954년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되면서
무장대와 토벌대사이의 무장충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사건이 마감되었다...



4.3사건으로 희생된 사람은 13,000~30,000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경우도 허다하고, 죽음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것도 여전하다.
왜 이렇게 많은 희생이 있었을까...?
누가 죽었을까..? 어디에서 죽었지...? 왜 죽어야 했을까..?
4.3은 왜 그토록 오랜시간 잠들어있었을까..?
제주는 이 모진 세월을 어떻게 버티고, 견디고 있었을까...?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였던 제주.
제대로 울지도 못했던 제주.
어딜가더라도 붉은피로 물들었던 고통스러운 제주
제주가 기억하고 있는 4.3의 현장. 우리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가로세로 500m 크기의 선흘리 낙선동 성터.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폐허가 된 마을을 복원하면서 쌓은 성으로
주민들과 무장대간의 연계를 차단하고 주민들을 효율적으로 감시. 통제하기 위한 전략촌이다.
이미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기에 성을 쌓고, 보초를 서는것은 노약자와 여성들의 몫이 되었다.
낙선동성에서 천여명의 사람들이 집단생활을 했다고 한다.
좁은 곳에 수많은 사람을 수용하니 짐승우리같은 곳에서 비참한 생활을 이어갔다.
수많은 성터는 모두 허물어지고, 이곳은 최근에 복원되었다.
초소도, 통시(화장실)도, 함바집도  깨끗하게 단장했다. 그래서 살만한 곳인가?
고통스러웠던 현장이 새돌로 다시 만들어져 말끔해졌다. 그래도 아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을이 초토화되자 일부 주민들은 해안마을로 피난했지만,
기르던 가축과 수확한 곡식을 두고갈 수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임시 피난처를 찾았다.
'며칠만 숨어 있으면 사태가 끝나겠지'하는 생각으로 찾아든 곳이 숲이 우거진 천연동굴이었다.
선흘곶 지역의 반못굴(도틀굴), 주변의 목시물굴, 다랑쉬굴 등등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토벌대를 피해 조마조마 숨죽이며 지내던 동굴들이 여기저기 그대로다.



안덕면 동광리 주민들이 은신 생활을 했던 큰넓궤. 이곳은 영화 '지슬'의 촬영지로도 잘 알려졌다.
낮은 자세로 기어서 입구를 들어가면 갑자기 넓고 높은 공간이 나온다. 서서 다닐 수 있을 정도!
청년들은 물론, 노인에서 아이들까지 토벌대를 피해 이곳에서 숨어살아야했다.

토벌대의 습격에 대비해 망을 보기도 하고 식량이나 물을 나르기도 했다.
아직도 동굴에는 항아리 파편 등 당시 생활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짧게는 5일에서 길게는 50일이 넘도록 동굴생활을 했다고한다.
굴이 발각되면 한라산 더 깊은 곳으로 도망을 가기도 했지만,
대부분 총살당하거나 무자비한 고문을 받았다.
큰넓궤에서 생포된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정방폭포에서 대부분 학살되었다.
길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숲풀을 헤치며, 겨우 도착해야 만날 수 있는 곳.

그 당시는 아마도 더 찾기가 어려웠을 그런 곳에 위치해있다.
혼자 오면 과연 찾아갈 수 있을까?
큰넓궤, 도엣궤가 있는 땅은 이제 사유지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살았던 동굴.
우리는 그 동굴을 온전하게 지켜낼 수 있을까?
이런 역사의 현장이 방치된채 있는 것이 지금의 4.3의 현실인것인가?



순이삼춘의 무대가 된 북촌리 마을.
북촌초등학교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살인. 집단학살.
이곳은 한때 무남촌이라 불릴 정도로 '무장대가 될지도 모를 남자들'이 모조리 희생된 곳이다.
평생 순이삼촌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오누이를 잃었던 옴팡밭의 기억.
지금 그 옴팡밭에는 [순이삼촌] 문학비가 세워져있다.
붉은 피로 상장되는 송이 위에 눕혀져 있는 비석들은
당시 쓰러져간 희생자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밤에는 무장대가 출몰하고, 낮에는 순경이 출몰하여
“폭도에 쫓기고 군경에 쫓겨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조천읍 북촌리, 학살과 강요된 침묵, 그리고 울음마저도 죄가 되던 암울한 시대
4.3의 참혹함과 고통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순이삼촌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중산간마을 초토화작전으로,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고 마을은 불타고 모든것이 사라졌다.
동광리에서 가장 큰 마을에 속하는 무동이왓마을도 잃어버린 마을이다.  
모든것들이 사라져서, 마을 자체가 무너져서, 잃어버린 마을이 되었다.
무동이왓 주민들은 토벌대를 피해서 큰넓궤로 피신했다.
제주 곳곳에 300여개 정도 '잃어버린 마을'이 남아있다고 한다.
사람의 온기는 사라졌지만 방으로, 부엌으로 사용되었던 흔적에 돌탑이 쌓여있다.
마을이 있던 흔적을 알려주는 대나무와 연자방아터, 학살터..
땅은 그대로인데, 이곳에는 더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다.
4.3의 아픔이 그대로 담겨있어 살 수 없는 땅이라서 그런 것인가...



무등이왓에서 가까운 곳에 지슬밭을 지나가다보면 헛묘가 나온다.
헛묘는 가짜묘다.  봉분은 그대로인데, 그 안에 시신이 없다.
정방폭포에서 사살된 사람들. 시신 수습을 하지 못해서,
그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칠성판위에 입던 옷을 넣어서 묘를 세웠다고 한다.
봉분은 7기인데, 9분이 모셔져 있다고 하니 합장묘인 것도 있다.
시신을 못찾아 행방불명된 억울한 죽음. 유가족들의 피맺은 한이 만들어낸 헛묘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보도연맹원을 체포 구금했다.
제주에서도 4.3때 체포된 사람들, 이른바'불순분자'를 검속한 후
섯알오름에서 집단학살한 사건이 발생한다.
계엄군에 의해 아무런 법적 절차도 없이 한밤중에 무참히 총살.
이름모를 산야에 암매장되거나 깊은 바다에 수정되었다. 섯알오름은 유일하게 남은 학살터이다.
섯알오름은 일본군이 1944년 말부터 대정읍 ‘알뜨르’ 지역을 군사요새화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폭탄 창고 터였다. 주변에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시설, 송악산 해안동굴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
패망후  미군에 의해 오름이 폭파되면서, 절반이 함몰되어 큰 구덩이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구덩이에서 집단학살이 벌어진다.

전쟁이 끝나고도 유족들이 유골을 수습하지 못하다 7년이 지난 1957년에야 현장을 찾았는데
서로 엉킨 유골을 구분할 수 없어서 함께 모아 묘를 만들어
그 억울한 죽음을 추모할 수 있도록 만든 곳이 백조일손지묘이다.
"조상이 다른 132명이 죽어, 뼈가 엉퀴어 하나되었다 "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을 구분할 수 없어 합동제사를 지내기 위한 유족들의 마음이었다.
5.16쿠데타 당시에는, 빨갱이를 처단한다는 이유로 묘비가 훼손되기도 했다.



제주4.3사건으로 붉은색이 덧씌워진 제주도민들은
사건 이후에도 냉전과 정치공작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한다.
각종 조작간첩사건이 만들어지고, 연좌제로 인해 고통이 되물림되었다.
군사독재시절 은폐, 왜곡... 강요된 침묵 속에서 4.3의 진실은 드러낼 수 없었다.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통해 조금씩 4.3이 세상과 만나게 되었고
민주화이후 숨죽여온 유가족들의 절규가 알려지면서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국가기념일이 되었다.

그래서, 잃어버린 마을이 돌아오고, 억울한 죽음이 위로가 되었을까?
아직도 여전히 4.3은 진행중이라고 한다.
'레드컴플렉스'에 시달려온 고통의 시간. 아직도 입밖으로 꺼내는 것이 두려워
4.3의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사람들.
미신고되거나 이름대신 유해번호로 남아있는 미확인 희생자들
국가 예산이 중단되어 유해발굴을 하지 못하는 현장들...
국가가 민간인을 무참하게 학살한 4.3의 진실은 아직도 밝혀지고 있는 중이었다.



감요된 침묵의 시대, 울음도 토해내지 못했던 시대.
군경 토벌대에 학살당한 사람, 무장대에 학살당한 사람....
제주는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과 그들의 유가족들이 얼굴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그날의 기억을 지우고 못하고 있다.

우리는, 제주4.3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 것인가?
도대체 왜 이 비극적인 사건에 4.3이라는 무장봉기 날자를 붙이게 되었을까?
그 날짜에 가려진, 긴긴 고통의 시간들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이 아픔의 치유와 해결을 오로지 제주의 몫으로 남겨둬서는 안될 것이다.
비참한 4.3의 역사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본다.
그동안 너무 외롭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다.
아름다운 제주 곳곳에 남아있는 4.3의 흔적
제주의 속살을 제대로 보지않고, 제주가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방문했던 4.3유적터에서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다.
사람이 찾지 않는 곳은 곧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4.3의 흔적이 지워지게 해서는 안되겠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더 자주, 앞으로도 계속 그곳에 가야겠다. 사람들과 함께!

우리는 역사의 '진실'을 찾는 것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고,
더이상 국가폭력으로 비참하게, 억울한 죽음이 생기지 않도록
4.3의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려고 한다.

폭도, 산사람들, 무장대, 빨갱이라 불렸을 그들을 제대로 알아주기까지.
제주4.3의 제대로된 이름을 찾는날까지!!  우리들의 여행은 계속 될 것이다.



11월 12일 박근혜퇴진! 백만촛불이 타올랐던 광장에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은
함덕해수욕장에서 우리들만의 '함성'으로 달랬습니다.


평화여행에 함께해주신 회원님들 고맙습니다.






Creative Commons License

댓글 쓰기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근현대사 아카데미 6월 현장답사는
이시우 선생님과 함께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던 고양시 금정굴을 시작으로
장준하선생의 묘역이 있는 통일공원을 지나 오두산전망대, 임진각을 다녀왔습니다.
전쟁과 분단의 현장을 단비를 맞으며 다녀왔습니다.

첫번째 장소는 고양시 금정굴입니다.
수직으로 만들어진 굴로 한국전쟁당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던 곳 입니다.
최근 금정굴 사건에 대한 법원이 인정한 내용을 살펴보면,
- 이 사건의 희생자들은 우익 치안대등에 의하여 부역혐의로 연행되어 경찰에 인계되어 조사를 받다가
희생자들의 주거지 인근 금정굴에 끌여가 경찰의 조준사격에 의하여 사망하였다.
그 과정에서 희생자들은 부역자 여부나 부역의 정도에 관한 적법한 조사를 받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굶은 상태에서 고문을 당하다가 결국 부역자에 대한 불법처리 금지지시를 어긴 경찰에 의하여 살해당했다.(이후생략)
공권력에 의해 민간인 학살이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현장이 바로 이 금정굴입니다.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가뭄끝에 내리는 비여서 달게 느껴지는 단비를 맞으며
장준하선생의 묘역이 있는 통일공원에 도착하였습니다.
독립운동을 했던 장준하 선생, 그리고 해방이후 언론인과 정치인으로써의 삶과
아직도 풀리지 않는 그의 죽음.
해방 후 그의 삶을 살펴보면, 진정한 보수의 삶이 어떤 삶인지를 모범적으로 보여준다고 하였습니다.



비속을 다니는것은 많은 체력소모가 필요합니다. 금정굴과 장준하선생 묘역을 다녀오니,
당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임금님께 진상했던 장단콩으로 만든 두부로 떨어진 당을 그득그득 보충하고 오후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이어 오두산 통일전망대로 이동하였습니다.
이 곳 통일전망대는 임진강 너머로 북한의 황해도 개풍군 주민들의 생활을 망원경으로 볼수 있는 지역인데,
이날은 비가 와서 주변을 살펴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남북분단 이후,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햇빛정책이 우리 경제에 미쳤던 선순환적 기능과
지금은 중단된 6자회담을 통한 집단안보체제에서주도권 확보를 통한 통일의제 선점등
평화적 관점으로 한반도를 너머 유라시아 대륙으로 뻣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장소는 임진각으로 갔습니다.
이곳에서는 해방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부터  
한국전쟁당시의 미국과 소련의 개입, 한반도의 분단상황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실향민들이 명절때 고향을 향해 절을 하는 망배탑을 지나 자유의 다리로 이동하였습니다.
자유의 다리는 임진강에 놓인 남과 북을 잇는 통로로, 원래는 경의선의 철교였던것이 한국전쟁때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휴전협정이 조인된 후 공산군의 포로가 되었던 국군과 유엔군이 이 다리를 건너와서
판문점의 돌아지 않은 다리와 함께 남북분단의 비극을 상징하는 다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소는 임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퇴계 이이가 관직을 물러난 후에
이곳에서 제자들과 함꼐 여생을 보냈다는 화석정입니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고 저희는 품이 아주 넉넉한 느티나무 아래서
6월 근현대 답사를 정리하였습니다.

 
1945년 일제식민지로부터 해방되었고,
38선을 중심으로 소련군과 미군이 주둔하면서 남북으로 분단되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합니다.
전쟁은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에게도 참혹하고 비극적입니다.

분단의 현장을 걸으며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의 역사를 다시 한번 짚어보았습니다.
분단의 역사를 극복하는 방법은 평화와 통일입니다.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북한땅을 지나 유라시아 국경을 넘는 상상을 해봅니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그날, 남과 북이 평화라는 손을 맞잡는 그날을 다시 상상해봅니다.

6월의 근현대사 아카데미 현장답사는 분단의 현장에서 평화를 생각하며 마무리 하였습니다.

[근현대사 아카데미] 7월에도 이어집니다.
7월 근현대사 아카데미는 남북관계의 현실과 대안을 살펴보고,
비무장지대에서 평화와 통일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자세한 사항과 신청은 => http://seoulkyc.or.kr/blog/admin/3424

Creative Commons License

댓글 쓰기

화, 2015/07/07- 14:21
314
0
세월호가 1081일만에 뭍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겨우내 들었던 우리의 촛불은 국정농단과 헌법 파괴자 박근혜를 구속시켰고,
세월호를 들어올렸습니다.

세월호 미수습자 남현철, 박영인, 조은화,허다윤 학생 (단원고 2학년)  고창석, 양승진 단원고선생님
그리고 이영숙씨와 권재근 권혁규 부자가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고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4월15일 서울KYC 회원들과 [진실을 향한 걸음 서울KYC 봄순성]을 하였습니다.

지난 겨울 매주 토요일 촛불을 들고 만났던 광화문 광장은 이제 봄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 봄기운이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며, 세월호 분향소에서 추모의 시간을 갖고
진실을 향한 걸음을 시작하였습니다.

세월호의 진상규명!   모든 책임자 처벌!  국민의 권리인 안전사회 건설! 을 생각하며,
숭례문을 거쳐 한양도성의 남쪽 자락인 목멱구간으로 접어드니,
목멱자락도 완연한 봄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걷는 동안 도성길라잡이 정창영 선생님의 해설도 있었습니다.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세월호의 아픔처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짚어주셨습니다.

벚꽃과 연두빛으로 둘러쌓인 목멱을 걸으며, 지난 겨우내 들었던 촛불이 생각났습니다.
국정농단과 헌법파괴를 한 박근혜 정권을 몰아내며 들었던 촛불들...
그 촛불들의 힘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봄을 맞이한다는 생각에 감격스럽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 세월호 희생자들을 생각하니, 이 봄을 함께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미안함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걸으며 생각을 합니다.
세월호의 진실을 반드시 밝혀져야 하고,
또 미수습자분들이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끝없는 계단, 가파른 언덕...숨도 차고 땀도 흐르고...
그럴때 나도 모르게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노래를 흥얼흥얼, 몇차례 부르고 나면, 어느덧 정상
그렇게 오르고 내리고 걷고 또 걷고 하니, 남산에서 시작한 봄순성은 낙산을 돌아 백악까지 무사히 마쳤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봄순성을 마치고 회원분들과 광화문 광장으로 갔습니다.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수습과 철저한 선체조사, 책임자 처벌,
박근혜 철저한 수사와 처벌, 공범자 구속 그리고 적폐청산을 위한
[세월호 3주기 22차 범국민행동의 날]에 참여했습니다.


그곳에서 반가운 얼굴도 만났습니다.
하준태 선생님의 2세 하사과군을 만났습니다.
우리 하사과군이 살아갈 세상은
사람이 먼저인 세상, 정의와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진실을 향한 걸음 서울KYC 봄순성]은 이렇게 세월호 추모문화제까지 함께 하였습니다.
세월호 미수습자가 가족품으로 돌아오고,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 처벌 더불어 안전한 대한민국이 될때까지
[진실을 향한 걸음]은 계속 될 것입니다.

함께 걸어주신 서울KYC회원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Creative Commons License

댓글 쓰기

화, 2017/04/25- 18:18
306
0
<성명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활동가에 대한 과잉수사와
경찰의 불법적 압수수색을 강력히 규탄한다.   

- 전국시민단체의 상설연대기구에 대한 과잉수사와 압수수색은 공권력 남용이며 전체 시민운동과 유권자운동에 대한 정치적 억압이다.  
- 불법적으로 무더기로 압수해간 연대회의 재산들을 즉각 반환해야 한다.


1. 어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실이 압수수색했다. 전국 500여개 주요 시민단체들을 대변하는 상설연대기구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실에 공권력이 들이닥친 것은 이 기구가 발족한 2001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압수수색은 총선넷 주요 간부들과 몇몇 소속단체들에 대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연대회의 이승훈 사무국장의 자택과 연대회의 사무실도 압수수색을 당한 것이다. 경찰은 선거법 위반 혐의를 수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나 이는 명백한 과잉수사로서 표현의 자유와 유권자 권리에 대한 정치적인 탄압이다.

2. 우선, 총선넷이 지난 20대 총선에서 진행한 기억 심판 약속 운동은 합법적이고 정당한 유권자 행동이다. 시민단체들과 유권자들이 선거에 비판적으로 개입하여 정당과 후보자에게 정책적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그 당락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민주사회의 기초이고, 우리 헌법과 선거법의 근본 목적에 해당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특히 총선넷에 진행한 부적격후보에 대한 낙천낙선운동(기억심판운동), 정책검증 및 제안운동(약속운동), 기타 국정원 등 공권력의 불법선거개입에 대한 감시 및 선관위의 중립적 감시 독려활동은 선거법에 보장된 합법적인 활동이다. 더구나 총선넷의 활동은 법조항만으로 형성될 수 없는 유권자 주도의 민주적인 선거제도를 정착시키고 선거제도에 정치개혁의 동력과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적극 장려할 지언정 불온시하거나 금기시해서는 결코 안될 활동이었다.

3. 둘째, 공권력의 압부수색의 근거로 삼고 있는 총선넷이 행한 옥외 낙선기자회견과 워스트 정책과 후보에 대한 온라인 설문 역시 선거법의 테두리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설사 선관위나 검찰이 보기에 선거법 상 불법으로 간주될만한 행위가 일부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이는 총선넷의 공개적이고 투명한, 그리고 선관위와 수시로 의사소통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법적 논란으로서 총선넷 전체의 활동을 은밀하고 조직적인 범죄행위로 취급하여 주요단체 사무실과 간부들을 압수수색하는 것은 명백한 과잉수사며 공권력 남용이다. 이런 먼지털이식 수사를 국정원과 군, 그리고 보훈관련 정부관계기관과 보훈단체들의 선거개입 같이 중대한 범죄행위에도 적용했었는지 의문이다. 균형을 잃은 표적수사다.

4. 셋째, 경찰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를 압수수색하면서 수사와 관련 없고, 영장에도 특정되지 않는 정보들을 무더기로 압수해갔다. 총선기간 동안 전혀 사용하지 않은 하드디스크와 외장하드를 통째로 압수해갔고,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의 사업관련 통장 4개를 역시 기간을 특정하지 않고 무더기로 압수했다. 이승훈 사무국장의 태블릿 PC도 파일을 특정하지 않고 통째로 압수해갔다. 이는 영장이 정한 범위를 넘어선 부당한 강탈이다. 이들 정보를 별건수사 형식으로 시민운동을 탄압하는데 악용할 가능성도 높다.

5. 모든 면에서 이번 총선넷과 연대회의에 대한 선거법 위반 수사와 압수수색은 선거 시기 유권자 행동의 권리를 제약하고 억압하기 위한 과시적이고 과잉된 수사이고, 시민운동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다. 나아가 영장이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난 불법적 압수수색이다. 전국시민사회단체의 공익적 활동을 대표하고 대변하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전혁직 임원과 활동가, 그리고 모든 소속단체와 회원의 이름으로, 공권력의 남용과 유권자 권리 억압을 강력히 규탄한다. 검찰과 경찰은 총선넷과 연대회의, 그리고 유권자운동에 대한 정치적 탄압과 과잉수사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경찰이 불법적으로 압수해 간 자료 중 수사와 상관없고 영장이 허용하지 않은 모든 정보를 연대회의에 즉각 반환해야 한다.  

2016. 6. 17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전현직 임원과 활동가, 소속단체 일동


Creative Commons License

댓글 쓰기

금, 2016/06/17- 16:17
287
0
대통령 선거일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광장에 모인 촛불의 힘으로 만들어 낸 조기 대선이지만,
정작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선거에서 목소리를 높일 자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새로운 전환과 개혁의 목소리는 여전히 높지만, 이러한 목소리를 무대에서 밀려나고 있습니다.

이번 19대 대통령 선거는 단순한 ‘장미대선’이 아니라 촛불이 만들어 낸 ‘촛불대선’입니다.
촛불의 외침과 열망을 받아,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비전 경쟁, 정책 경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참여의 문턱은 낮추고 더 많은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야 합니다.

청년은 이번 ‘촛불대선’을 만들어 낸 주역입니다.
청년실업 문제는 노인빈곤 문제와 함께 우리 사회의 양대 급소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이고 전격적인 조치가 필요합니다.
생애 전반에 퍼져버린 불안을 걷어내기 위한 청년정책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2017 촛불대선 청년유권자 행동을 시작하며,
“선거다운 선거를 위한 3가지 약속”을 제안하고, 2017 청년대선정책요구안을 발표했습니다.





청년정책 대선 요구안

I. 고용

1. 구직활동지원 청년수당 전국화
-정책목표
노동시장 진입 촉진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고용 정책을 전면적으로 개혁
독자적 사회정책의 대상으로서 청년 니트에 대한 구직활동 지원 시스템 구축
청년 구직자에 대한

-정책내용
청년수당(구직활동 지원수당) 전면 도입
취업성공패키지 개혁 (진로모색, 사회참여 역량 교육 대폭 강화)

2. 고용보험 개혁
-정책목표
실업의 공포로부터 기초적인 고용안전망을 제공
현행 고용보험 가입률 제고하고 실업급여 수혜 대상을 확대함

-정책내용
수급자격을 박탈하지 않는 정당한 이직사유 규정의 실효성 확보 (입증책임과 행정절차)
자발적 이직에 대하여 일정 기간의 유예를 설정하고 실업급여 지급
30세 미만에 대한 소정급여일수 차별 폐지
프리랜서, 초단시간 노동자 등 21세기 워킹푸어의 노동현실을 포괄하는 고용보험 전면개혁

3. 청년고용할당제 확대
-정책목표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 상황에서 고용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고, 청년이 겪는 고용절벽 상황을 해소함.

-정책내용
300인 이상 대기업과 공무원, 공공기관을, 의무고용 비율 5%로 현행 제도를 확대
불이행 기업에 대한 고용부담금 부과 등 검토


II. 주거

1. 계약갱신청구권
-정책목표
세입자에게 계약 갱신의 유무를 부여해 비대칭적인 임대차관계 개선
세입자의 거주 기간 및 계약 안정성 보장
임대료 폭등 방지 및 갑작스러운 상승 억제

-정책내용
주택임대차보호법에 계약갱신청구권 조항 신설, 임대인은 임차인이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 사이에 계약갱신을 요구할 경우 이를 거절하지 못하도록 함.
동일한 조건 또는 법이 정한 임대료 상승률 5% 이내로 계약이 갱신되므로 임대료 상승이 억제됨.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 등 임대료 수준이 임차인이 부담할 수 있는 합리적인 범위에서 조정될 수 있는 기반이 됨.

2. 주거바우처
-정책목표
보증금이 없어 선택하는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 비주택 진입 차단 (디딤돌 주거바우처)
월세 보조로 주거비 경감할 수 있는(민달팽이 주거바우처)
청년들의 실질적인 소득 증가로 다양한 삶의 기회 보장

-정책내용
디딤돌 주거바우처 : 2000만원 이하 소액 보증금 대출과 동시에 이자 지원, 최저주거기준 충족하는 주택에만 지원해 정책 효과성 담보
민달팽이 주거바우처 : 월 임대료 80%까지, 최대 30만원씩 최대 1년간 지원, 최저(준)주거기준 충족 주택에만 지원하고 임대인에게 갱신 1회 약정, 거주 기간 보장 포함 정책 효과성 증대


III. 부채
※ 추후제출



IV. 노동


1. 체불임금 지급보장기구 설립

-정책목표
체불임금으로 대표되는 노동법 준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고, 근로빈곤 청년의 생계를 위협하는 임금 체불에 대한 제도적 구제를 강화함.

-정책내용
소액 임금체불 피해 사건에 대한 국선노무사 제도 도입 및 법률지원 서비스 확대
피해자의 정보접근성을 바탕으로 진정절차 접수가 이루어지는 ‘임금체불 포털사이트’ 개설
고용노동부 소속 근로감독관 증원 및 지방정부 소속 유관부서에 근로감독 권한 부여
자질 미달(집무규정 위배) 근로감독관에 대한 임금체불 피해자의 변경요청권 적극 인정
임금체불 피해자의 생활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임금지급 보장기구’ 설립 (체불임금확인원 발급시 선지급하고 구상권 청구)

2. 최저임금 1만원
-정책목표
월 평균 실태생계비를 반영하여 최저임금 인상, 최저임금 1만원 달성
최저임금 지급여력 부족 영세사업자에 대한 지원 강화

-정책내용
최저임금 인상, 최저임금 1만원 달성
29세 이하 단독가구에 대한 근로장려세제(EITC) 적용
평균 생계비 보장을 목표로 근로장려세제(EITC) 수급 소득구간 및 지급금액 인상

3. 청년의 노조할 권리
-정책목표
노동인권에 대한 인식을 제고
노동조합 결성과 활동에 대한 현실적 제약을 적극 해소
일터에서의 노동인권 보호를 위한 사회적 주체 형성

-정책내용
중․고등학교 정규교육과정에서의 노동3권 교육 의무화
5인 이상 사업장 작업장평의회(종업원평의회) 설치 제도화
노동조합 결성 부당해고 신속구제 방안 마련
비전형노동자 보호를 위한 직종별 협동조합 결성 지원


V. 교육

1. 진짜 반값등록금 및 고등교육비 인하 (교육공공성 확대)
-정책목표
고등교육의 공공성 확대라는 국가적 ‧ 장기적인 목표와 비전을 바탕으로 완전한 반값등록금 정책의 도입, 입학금 폐지 등의 고등교육비 인하, 국공립 대학 확충 및 용도가 불분명한 적립금 규제, 사학 비리 엄벌 등 사립대학에 대한 정부의 관리 ‧ 감독 ‧ 책임을 강화

-정책내용
실질적 반값등록금 정책에 필요한 정부 예산 확충 (2017년 국가장학금 예산 3조 9000억 원 → 7조까지 확대), 그 때까지 현재 시행 중인 국가장학금 제도의 선정기준 등 개선
고등교육법 개정을 통한 입학금 ‧ 졸업유예 등록금 등 폐지 또는 기타 교육비 산정 기준을 실비만 받도록 명문화
고등교육법 개정을 통한 등록금심의위원회의 실질화·권한 강화 및 학생 참여 확대
사립학교법 개정을 통한 적립금 규제 및 공익이사제도 강화 등 사립대학 관리 ‧ 책임 강화
국공립대 확충 방안 마련 및 고등교육 공공성 강화를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


VI. 정치

1.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정책목표
청년들이 성적지향, 학력, 용모, 성별 등을 이유로 사회에서 받는 차별과 혐오를 실효성 있게 예방하고 시정하기 위한 제도 마련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 보장함으로써 헌법에서 보장된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제반 영역에서의 평등 실현

-정책내용
학력, 용모, 인종, 장애,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임신, 출산 등을 포함하여 모든 차별금지사유를 명확히 명시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
간접차별 개념으로서의 '괴롭힘'포함
사회적 소수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차별 선동을 규제하는 조항 포함

2. 만 18세 투표권 보장
-정책목표
법에 의한 병역의 의무, 공무담임권, 혼인, 운전면허 취득 등의 기준 연령은 만 18세
많은 권리가 부여되는 연령 기준이 만 18세인데, 뚜렷한 이유 없이 선거권을 다른 기준으로 제한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남    
OECD 34개국 가운데 선거권 연령이 만 19세 이상인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고, 전 세계 140여 개 국 이상에서 만 18세 이하의 국민에게도 투표권을 인정하고 있음. 세계적인 추세에 맞게 참정권 확대

-정책내용
18세 국민들이 각종 공직선거 및 주민조례개정, 주민투표 등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공직선거법 및 지방자치법 등 선거연령을 하향 조정해야 함.


2017. 4. 12.
공동주최 : 민달팽이유니온, 청년유니온, 청년참여연대, 광주청년정책네트워크, 수원청미래충전소, 시흥청년아티스트, 시흥나눔자리문화공동체, 심심한청년들(전주), 작은자유(남원), 제주청년네트워크, 청년고리(대전), 천도교청년회, 청년감자(시흥), 청년광장, 청년이 바라는 복지(전주),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한국청년연합(KYC), 함께가자 청년들(전주), 흥사단 전국청년위, 경기청년유니온, 경남청년유니온, 대구청년유니온, 부산청년유니온, 인천청년유니온, 청소년유니온, 광주청년유니온 등 (4월 11일 오후 3시 기준)




*출처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Votefor2017&document_srl=149…

Creative Commons License

댓글 쓰기

금, 2017/04/14- 13:11
284
0
도성길라잡이 교육답사-겨울, 종묘와 창덕궁을 다녀왔습니다.

도성길라잡이에게 매년 1월과 2월은 3월에 시작하는 정기시민안내를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이 기간에 답사, 워크숍, 스터디와 같은 활동이 이루어집니다.

올해는 1월과 2월에 종묘와 창덕궁을 각각 답사하였습니다.  

한양도성과 관련하여 태조실록 6권에 의하면
종묘는 조종을 봉안하여 효성과 공경을 높이는 것이요,
궁궐은 국가의 존엄성을 보이고 정령을 내는것이며,
성곽은 안팎을 엄하게 하고 나라를 곧게 지키려는 것으로,
이 세가지는 모두 나라를 가진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한다 라고 합니다.

조선을 상징하는 종묘,궁궐, 성곽을
현재 한양도성과 종묘 그리고 궁궐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홍순민 교수님을 모시고, 답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종묘답사는 1월30일 오전 10시부터외대문 앞 광장부터 시작하였습니다.
궁궐과 다른 종묘의 삼도 그리고 시대별로 종묘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옛지도를 들고 하나하나 확인해보며 내내 진지하고 유쾌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도성길라잡이 8기 권혁준 선생님의 후기로 그날의 생생한 기억을 더듬어보겠습니다.

권혁준 (도성길라잡이 8기 ) :
10시에 시작된 외대문에서부터의 종묘답사.
감동적이었고 열정적으로 설명해주신 홍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납작엎드려서 가야만 하는 문부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왕의 권위도 발휘될 수 없는 곳이지요.
몸과 마음을 모두 깨끗이 하고 들어가야 하는 곳. 전날 불금을 보낸 찌그러진 몸뚱아리가 부끄러웠습니다.

정전의 동쪽에서 바라본 신실,
반복된 단순한 구조들이 소실점을 향해 멀어져 가는 풍경은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아찔했습니다.
회랑은 그저 대청마루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담장과 성벽이 안과 밖, 피아를 물리적으로 구분하고 경계하는 시설이라면
회랑은 안과 밖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구조물입니다.
그 회랑을 신들을 초대하여 성과 속, 이승과 저승, 혼과 백이 교차하는
아름다운 장소로 탈바꿈시킨 지혜에 감탄하였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잡지에 기고한 <파사쥬 프로젝트>라는 글이 있습니다.
19세기의 파리에 근대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등장한, 아케이드(독일어로 파사쥬)를 방대하게 분석하였습니다.
봉건제가 성벽을 쌓음으로써 피지배자를 배척하고 제압하는 사회구조였다면,
근대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 생긴 회랑은 피지배자를 '소비자'로 인식하여 유혹하고 불러들이는 구조입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 외부와 내부의 경계가 사라진 공간, 투명한 유리안에는 상품들이 진열되면서,
봉건제 안에서는 성 '밖'에 있던 사람들이 회랑(파사쥬)에서는 끌어들여야 할
'평등한' 아니 어쩌면 더 상위에 위치한 '고객'으로 초대받게 되는 구조인 것이죠.

벤야민은 그것을 자본주의적 평등한 욕망이 표출되는, 계급없는 사회에 대한 집단적 표상의 저장고라고 불렀습니다.
누구나 돈을 쓸 수 있는 곳. 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유혹하는 곳.
전우용 교수님께서 강의 때 말씀하신 자본주의의 신전, 백화점이 탄생한 것이지요.

그런데 종묘의 그 곳. 아케이드와 똑같이 생긴 그 곳 회랑에서는,
신전이 처음 생겼던 고대보다 더 경건하고 신성한 의식이 치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영혼을 즐겁게 해주는 장소로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그것 참. 점잖은 양반들입니다. 성리학자들 말씀입니다.

신전의 가장 정석적인 기능을 발휘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회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회랑의 '본래적' 기능이 무엇이었는지 더 연구를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또한 맞배지붕이 장엄하게 100미터 이상을 질주한 모습에서도 장엄함과 경건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교수님의 설명 중, 너구리가 (토끼였나요?ㅎ) 정전 뒷마당에서 뛰기 시작하면
백두산까지 도달할 것이라는 설명,
건물이 하나의 세트가 아니라 한양은 도시 자체가 하나의 완벽한 세트였다는 부분에서도
다시 한번 감동했습니다 (자꾸 감동해서 죄송하지만....TT)
부디 백두대간에서 내려오는 지맥이 끊기지 않고 종묘까지 완벽하게 이어지도록 자연,
풍수적인 장치들이 다시 복원되어 기능하기를 빌어봅니다.

그날이 오면,
온통 돌로 구성된 광활한 월대의 자기장 위에서 백두산에서 내려오는 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며 왕가의 조상님들도 기뻐하시겠지요.

아. 또 하나. 종묘제례는 밤새도록 계속되는 아주 힘들고 고된 일이었다는 일.
실용적이지 않고 폐단일 수도 있지만, 편리와 예의라는 것은 동전의 앞뒷면 같은 것.
존경을 표시하는 것은 어찌 보면 불편을 감수하는 일일 것입니다.
편리함만 찾는 요즈음 한번쯤 와서 되새겨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밤새도록 이어지는 강행군에 찬물로 목욕하고 고기와 음식과 제례주를 준비하던 조상들께 경의를 표합니다.-끝-

2월 13일 오후 1시, 설명절을 보내고 다시 한번 창덕궁에 모였습니다.
전날부터 비가 내렸고, 이날은 큰비가 올것이라는 예보로 답사를 진행할수 있을까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비가오더라도 넉넉한 처마밑, 회랑에서 강의를 진행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답사를 시작했습니다.

역시 홍순민 교수님을 모시고 돈화문 앞 소맷돌과 월대를 시작으로
보현봉과 돈화문의 축, 숙장문-진선문 그리고 금천교로 이어지는 축, 그리고 이 축의 복원과 왜곡...
이렇게 창덕궁의 큰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위엄가득한 인정전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는 방법도 알려주셨습니다.
인정전을 둘러싼 나무병풍과 저 너머 인왕 자락 그리고 그걸 가로막은 주변의 빌딩과 집들..
문화유산을 관리보존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역사경관을 어떻게 지킬것인가에 대한 고민거리도 함께 던져주셨습니다.




처마밑으로 해서 다음 장소로 이동하면서,.
모두가 소년, 소녀가 되어 감성촉촉한 눈길로 비에 젖은 선정전의 청기와도 바라보았습니다





1시에 시작한 창덕궁 답사는 서궐내각사의 규장각을 끝으로 6시가 다되어서 마쳤습니다.
왕의 권위만큼 전각에서도 권위가 느껴졌던 인정전,
왕권과 신권의 견제와 균형의 장소 대청과 빈청 , 그리고 일상적 업무공간인 선정전
일제강점기 불타버린 내전을 경복궁의 강녕전과 교태전을 헐어다 다시 세운 희정당과 대조전
각각의 궐내각사의 위상과 의미...
궁궐의 훼손과 복원 그리고 활용의 안타까운 현장들..
그리고.....
궁궐 처마와 낙수물, 그리고 성정각에서 바라보는 인정전과 인왕산자락을 볼수 있는 뷰포인트..
비가 오는 와중에도 무엇하나 빼놓지 않은 홍순민교수님의 꼼꼼한 현장강의..

궁궐은 국가의 존엄성을 보이고 정령을 내는것이라는 의미를 다시한번 느끼고 온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2회에 걸친 종묘와 창덕궁 답사를 통해 배움에 대한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 해주신 홍순민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진지하지만 모두가 흥이 나는 시간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지금 도성길라잡이 활동이 재밌죠? 그 마음이 변치 않고 5년후에도 10년후에도
즐거운 활동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만들어가세요'라는 격려의 말씀도 감사합니다.  
2016년 한양도성 정기시민안내가 3월06일부터 시작합니다.
답사를 통해 얻은 다양한 배움이 한양도성의 역사와 가치를 알리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Creative Commons License

댓글 쓰기

수, 2016/02/17- 19:09
28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