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거부당한 기득권 정치인, 힐리러 클린턴

지역

거부당한 기득권 정치인, 힐리러 클린턴

익명 (미확인) | 수, 2016/11/16- 12:31

“언젠가는 곧 누군가가 유리천장을 깨길 바란다.”

미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패배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힐러리의 패배는 여러 가지 충격을 남겼지만 무엇보다 여성들의 좌절이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그랬겠지만 한국 여성들에게도 커다란 상실감을 안겼다.

161109123504-01-hillary-clinton-concession-1109-large-169

트위터 이용자들은 이런 말들을 남겼다. “아마 지구상에서 살아있는 정치하는 여자들 중 가장 대단한 여자일 텐데 그런 여자가 어디에나 있는 쓰레기 강간범 남자한테 진다.”

왜 패배했을까?

그런데 이상하다.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 투표자들 역시 힐러리에게 열광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2012년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55%의 지지율을 보였던 여성들은 힐러리에게는 54%만 지지를 보냈다. 근소하지만 오히려 떨어진 셈이다. 반면 여성 비하 발언을 일삼고 성폭행과 성추행 혐의까지 받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여성 유권자 지지율(42%)은 2012년 공화당 미트 롬니 후보(44%)와 별 차이가 없었다.

백인 여성은 아예 반대였다. 53%가 트럼프를 찍었고, 43%가 힐러리를 찍었다.

1
CNN 출구조사 자료. 파란색은 힐러리, 붉은색은 트럼프 지지를 의미한다. (이미지 출처: CNN)

여성뿐만이 아니다. 힐러리는 애초에 지지받을 것으로 예상했던 18~29세의 젊은층, 연소득 5만 달러 이하 저소득층, 흑인과 히스패닉 유권자층에서 오바마 때마다 지지율이 더 떨어졌다.

미국의 진보 성향 매체 <뉴리퍼블릭>은 이런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트럼프의 여성 비하보다 가정형편을 더 걱정하는 극빈층 여성들에게 힐러리의 셀리브리티 페미니즘은 들리지 않았다. 레이디 가가, 케이티 페리, 레나 던햄, 셰릴 샌드버그를 내세웠지만 이런 유명 인사들 때문에 노동 계급 여성들이 힐러리에게 투표하러 가지는 않았다. 유리천장을 깨는 것이 가족을 먹여 살리지는 못한다.”

패배에 대해 각종 분석과 말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힐러리는 지난 12일 대선 패배 원인을 뒤늦게 미 연방수사국(FBI)의 e메일 재수사 공개 탓으로 돌리고 나섰다.

수 많은 경합주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었지만 e메일 재수사 때문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힐러리의 지지자들은 트럼프 당선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선거인단 투표에서 트럼프 표를 힐러리로 바꾸자는 청원까지 하고 있다. 힐러리 패배의 진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흙수저 출신의 우등생

힐러리는 1947년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영국 웨일즈 출신 이민자였던 아버지는 작은 사업체를 운영했다. 편견에 가득 찬 인물로 부인과 자식들에게도 매우 가혹하고 비정한 인물이었다고 전해진다.

힐러리는 딸에게 “겁쟁이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힐러리가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 대법원 판사가 될 것이라고 믿기도 했다.

1
Her dad, Hugh, was a World War II Navy veteran—and a lifelong Republican who worked hard and wasted nothing. He ran a business where he designed, printed, and sold draperies.

힐러리는 어렸을 때 우주비행사를 꿈꾸기도 했다. 그녀가 미 항공우주국(NASA)에 ‘어떻게 하면 우주비행사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보냈지만 ‘여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본래 힐러리는 1964년 대선에서 ‘급진적 보수주의자’로 유명한 배리 골드워터를 지지하기도 하는 등 공화당 지지 성향이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등에 회의를 느끼면서 민주당 지지 쪽으로 돌아선다.

명문 웰즐리 여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힐러리는 학생회장으로 당선돼 졸업식 때 학생 최초로 연설을 맡기도 했다. 상투적인 졸업 연설 대신 여성·흑인 민권 문제 등에 진보적인 입장을 피력하면서 라이프지에 소개되는 등 주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인생의 멘토라 할 수 있는 매리언 라이트 애들먼을 만난다. 애들먼은 미시시피 주 최초 흑인 여성 변호사가 된 인물이다. 클린턴은 애들먼을 본받아 평생 아동 권익 옹호에 관심을 쏟게 됐다고 한다.

가장 영향력 있는 퍼스트레이디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로

대학 졸업 뒤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한 힐러리는 빌 클린턴을 만나 교제하게 된다. 1974년 빌 클린턴은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된 닉슨 대통령의 탄핵 조사단에서 일하도록 추천받았지만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여자친구인 힐러리를 대신 추천했다.

탄핵조사단에서 경력을 쌓은 힐러리는 뉴욕이나 워싱턴 DC의 일류 로펌에서 일할 수도 있었지만 빌을 따라 아칸소주로 갔다.

두 사람은 1975년 결혼했다. 빌은 1976년 아칸소 주 검찰총장이 됐고, 힐러리는 아칸소주의 유명한 로펌인 로즈 법률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이 회사의 최초 여성 변호사였다.

x23-campaign-hillary-clinton-arkansas-1982-280px.jpg.pagespeed.ic.XwW1Gh_8H7
1982: Bill and Hillary Clinton celebrate Mr. Clinton’s victory in the Democratic gubernatorial runoff in Arkansas. As first lady of Arkansas, Ms. Clinton was deeply involved in efforts to bolster the rigor of academic offerings in that state’s public school system. (사진 출처: AP)

1982년 남편이 아칸소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힐러리는 그동안 유지하던 자신의 ‘로댐’이란 성을 ‘클린턴’으로 바꾸기로 한다. 아칸소의 일부 유권자들에게 심한 불쾌감을 준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결혼 전의 성을 고집하는 것보다 빌이 주지사가 되는 것이 더 중요했다.

1992년 빌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힐러리는 최초의 석사 학위 이상을 가진 퍼스트레이디가 됐다. 과거 퍼스트레이디들은 보통 백악관 동관(east wing)에 사무실을 뒀지만 힐러리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서관(West Wing)에 집무실을 뒀다. 대통령 선거 때 빌의 캠프는 “하나를 사면 하나는 공짜”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기도 했는데 이후 그녀는 실제로도 가장 영향력 있는 퍼스트레이디로 평가받았다.

1993년 빌은 힐러리에게 국민의료보험 개혁을 맡겼다. 힐러리는 고용인이 피고용인의 의료보험을 보장하는 내용의 건의안을 만들었지만 민주당이 다수당이었음에도 부결됐다. 이 과정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대 이하로 추락했다.

빌의 르윈스키 추문과 탄핵이라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전통적인 퍼스트레이디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여성·육아·보건의료 정책에 관여하는 힐러리에 대해 보수주의자들은 증오에 가까운 반감을 보이기도 했다.

정치인으로서 홀로서기는 빌의 대통령 임기 말인 2000년 뉴욕의 상원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국방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훗날 두고두고 비판거리가 되기도 했다.

Hillary-Clinton08

상원의원 재선에 성공하고 2008년에는 대선 출마를 선언, 유력한 후보로 꼽혔으나 버락 오바마라는 뜻밖의 복병을 만나 경선에서 패하고 만다.

오바마는 새 정부의 국무장관으로 클린턴을 지명한다. 국무장관 시절 공용 업무에 개인 e메일을 사용한 문제는 두고두고 그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2016년 힐러리는 버니 샌더스의 추격을 힘겹게 따돌리고 민주당 대선 후보로 다시 지명된다.

힐러리는 왜 비호감의 대명사가 됐나

힐러리의 정치행보를 돌아보면 오랫동안 대중의 관심밖에 벗어난 적이 없을 정도로 활동한 것 같지만, 그렇다고 눈에 확 띄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딱히 이루어낸 것도 없으면서 내가 여성이니 나를 찍으라고 말하는 것 같다.”

미국에서 힐러리를 싫어하는 정서는 퍼스트레이디 시절부터 있었지만, 올해 대선 출마를 즈음해서는 더욱 심해졌다. 힐러리와 트럼프를 두고 ‘비호감 후보의 대결’이라 칭하거나 “근래 들어 이렇게나 미움 받은 민주당 대선 후보는 없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hillary-clinton-falling-fav-qpoll-92415 (1)
(이미지 출처: https://www.americarisingpac.org/)

힐러리에 대한 비호감은 그의 어중간한 정책이나 태도 때문일까? 배우 수잔 서랜든은 선거 직전 힐러리의 정책 때문에 그를 지지하지 않으며 녹색당 질 스타인 후보의 당선을 지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서랜든은 “난 여자란 이유로 대통령을 뽑지 않는다. 그보다 생각해야할 것들이 훨씬 많다”면서 힐러리의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힐러리는 최저 임금 15달러를 지지하지 않는다. 힐러리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지지한다. 힐러리는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에 대한 입장이 없다. 힐러리는 GMO 표기에 반대한다. 힐러리는 대형 은행 해체에 반대한다. 힐러리는 로비스트들에게 선거 자금을 받는다. 힐러리는 구속력 있는 기후 조약에 반대한다. 힐러리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 군사 지원을 지지한다.”

처음 퍼스트레이디로 백악관에 들어갔을 때 힐러리는 자신감 넘치는 진보주의자였지만 1994년 중간선거에서 패한 뒤 지나치게 조심하고 과도하게 타협하는 캐릭터로 점차 변모해갔다. 빌 클린턴 시절 주춧돌을 놓은 신자유주의 노선은 월가의 금융자본을 살찌우고 실리콘밸리를 풍요롭게 만들었을지는 모르지만 서민과 노동자들의 삶은 더 피폐해졌다.

그런 와중에 힐러리는 골드만 삭스에서 막대한 강연료를 받고, 기업들이 뭉칫돈을 쥐어주는 ‘슈퍼팩’으로 선거를 치렀다. 그런 반감은 여지없이 부메랑이 됐다.

올해 대선에서 저소득층, 시골과 소도시 유권자들의 지지율은 2012년 오바마 때보다 현저하게 낮아졌다. 저학력 백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버려진 폐공장들이 즐비한 미국의 전통 공업지대인 ‘러스트 벨트’ 5개 주들은 모두 트럼프를 선택했다.

힐러리에 대한 사람들의 반감은 단지 어중간한 정책 때문만은 아니다. 무언지 모르게 의뭉스스러워 보이는 그의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의 지위 향상을 일군 대표 선수라고는 하지만 때론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을 했다. 힐러리는 1992년 빌이 대선에 나섰을 때 “집에서 쿠키 굽고 차 마시는 대신 경력을 택했다”고 발언해 많은 전업주부들의 원성을 샀다.

30여년 전 변호사 시절에 여아 성폭행범을 유죄인 걸 알면서도 감형시켜준 걸 자랑하는 육성 테이프가 공개돼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오랜 기간 아동과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운동을 해 왔다는 그녀의 경력에 먹칠을 하는 꼴이었다.

말도 자주 바꿨다. 힐러리는 동성결혼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동성결혼이 화제가 되자 2013년 이후로 지지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TPP 역시 찬성하는 입장이었지만 뒤늦게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e메일 논란에서도 사건 그 자체도 문제였지만, 거짓말이 자주 들통 나 신뢰성을 잃었다. 힐러리가 대선 경선 기간 동안 ‘좌클릭’ 행보를 보였지만, 샌더스 돌풍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변화의 아이콘에서 안정과 기득권의 표본으로

미국 대선이 트럼프의 승리로 끝나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뉴욕타임스에 한탄의 기고를 내놓았다. “사실 우리가 사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우리는 동료 시민들이 고위직에 앉을 자격이 없고, 성격적으로 건강하지 않고, 너무 무섭지만 우스꽝스러운 후보에게는 결국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몰랐을까?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를 궁지에 몰아넣기까지 했던 샌더스 돌풍, 공화당의 유력 주자들을 거의 패대기치다시피 하며 대선 후보 자리를 손에 넣은 트럼프의 돌풍은 둘 사이의 먼 거리만큼이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도무지 반응 없는, 답답한 기존 정치체제를 뒤집을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오바마는 2008년 대선에서 변화에 대한 희망을 보여줬지만 지금와 돌이켜 보면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 반대로 공화당이 상하원을 잡도록 해 주기도 했지만 나아진 건 없다. 결탁한 정치 엘리트와 자본가들은 세상을 바꿀 마음이 없다.

“워싱턴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실현되지 않았다. 미국의 국민들은 본인들을 그토록 경멸하는 소수 특권층에게 조국을 빼앗겼다고 느끼고 있으며 양극화는 점점 더 심화되고, 중산층의 근심은 날로 깊어만 간다.”

1

반면 샌더스는 반자본주의 기치를 내걸고, 상위 1%와 월가 자본을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역시 세계화와 자유무역협정, 금융엘리트를 맹렬하게 공격했다.

샌더스는 소액기부를 통해 선거자금을 모집했고, 트럼프도 각종 기업과 로비스트로부터 선거자금을 받은 힐러리보다 훨씬 적은 액수의 선거자금으로 선거를 치렀다.

칼럼니스트 박권일은 이렇게 말한다. “이번 미 대선에서는 여러 지향들이 경합했고, 여러 이유에서 어떤 지향이 제도적 승리를 거뒀다. 그 지향을 한 마디로 말하면 현상유지가 아니라 변화였다.”

트럼프도 힐러리도 이전 대선의 민주당·공화당 후보보다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지만, 힐러리가 훨씬 더 많은 표를 잃었다. 그것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진짜 위험한 정치인은 힐러리같은 정치인”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당신이 미국인이라면 누굴 뽑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얘기한다.

“트럼프요. 저도 트럼프가 무섭습니다. 하지만 진짜 위험은 힐러리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회에는 암묵적인 룰이 있는데, 트럼프는 그걸 깨뜨립니다. 만일 트럼프가 이기면 공화당과 민주당은 모두 기본으로 돌아가서 스스로를 다시 생각해볼 겁니다. 아마도 거기서부터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힐러리 스스로도 많은 변화를 써 왔다. 그녀는 자서전 <살아있는 역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퍼스트레이디나 상원의원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민주당원이나 변호사, 여성 인권 옹호자로 태어나지도 않았다. 나는 20세기 중엽에 한 미국인으로 태어났다. 그 시기에 미국에서 태어난 것은 행운이었다. 과거 세대의 미국 여성들이 얻지 못했고 오늘날에도 세계의 많은 여성들이 감히 상상조차 못하는 선택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hillary-750x400

그러나 힐러리는 어느새 변화보다는 안정과 기득권의 아이콘이 되고 말았다. 변화를 요구하는 오늘날 미국의 시대정신과는 점점 멀어졌다.

오늘날 한국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다음 대선을 두고 모두들 ‘변화의 아이콘’이 되고 싶어 하겠지만, 이미 그들은 시민들의 마음속에서는 ‘그 나물의 그 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는 않는지.

힐러리 캠프의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잘못한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하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그녀는 잘못된 메신저였고, 모두들 얼마나 노동자 계급들이 얼마나 열 받았는지 잘못 판단했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일본 헌법 공포 기념일(문화의 날)인 지난 11월 3일, 약 5만의 일본 시민이 의회를 포위하고 평화헌법 수호를 다짐하는 평화적 시위를 벌였다.

‘아베 9조 개헌 NO! 전국 시민 액션’이 주최한 이날 ‘11.3 국회 포위 대행동’ 모임에는 한국의 김영호 교수(전 유한대 총장, 산업자원부 장관)가 초청을 받아 강연을 했다.

동북아평화센터 이사장이자 주권자전국회의 고문이기도 한 김영호 교수는 ” 한국 촛불혁명의 한 작은 참여자로서 이번  일본 방문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면서 “평화헌법 폐기는 동북아의 긴장을 크게 끌어 올리고 동아시아는 3차 대전의 발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소극적으로  평화헌법을 지키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세계에 확산시켜야 한다”면서 그 방법의 하나로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이나 브라질 세계사회포럼(WSF)을 능가하는 시민판 세계평화포럼(WPF)을 구성할 것을 제창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에도 전문이 보도된 그의 강연은 일본의 지식인들과 사회운동계에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이를 구체화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김 교수의 승낙을 얻어 강연 전문을 소개한다(다른백년).

untitled
일본의 헌법 9조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는 일본 시민들.

 

(1) 세계문제로서의 일본 평화헌법 문제

한국에서 온 김영호입니다. “왜 외국인이?” 하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평화헌법은 안으로 국내용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밖으로 국제용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차 대전 이전 일본 역사의 침략주의 내지 군국주의의 역사를 반성하고 청산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전후 국제적으로 평화적 교류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전제 혹은 약속으로 평화헌법이 제정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일본 평화헌법은 동아시아 평화의 귀한 보배이며 전후 세계평화체제를 지탱해온 기둥의 하나입니다 여기에서 일본 평화헌법 문제는 세계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평화를 사랑하는 외국인이 이 문제에 관한 논의에 참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상황이 간단치 않습니다. 나는 한국 촛불혁명의 한 작은 참여자로서 이번 일본 방문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2) 평화헌법 개정의 프로세스

일본 평화헌법의 핵심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비무장, 부전(不戰)을 규정한 제 9조입니다. 이 9조를 개정하려는 개헌은 우선 개헌 과정 자체가 무섭습니다.

먼저 일본은 과거 침략과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제대로 한 적이 없습니다. 반성과 사죄는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하는 것이 원칙인데 일본은 국회에서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의결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선생은 일본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을 일으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잃게 했으니 내셔널리즘의 처녀성을 잃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공처녀성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간과했습니다. 역사수정주의사관이 바로 그것입니다. 역사수정주의는 반성과 사죄를 자학사관으로 배격합니다. 오히려 과거를 미화합니다. ‘아름다운 일본’은 전전의 일본입니다. ‘침략의 정의는 학자에 따라 다르다’는 식으로 침략 자체를 부정하려 합니다.

이러한 역사전쟁으로 아시아 여러 나라와 역사불화를 유발합니다. 이것은 ‘적 만들기’의 일환에 불과합니다. 이웃나라와 분쟁섬 만들기로 영토내셔널리즘을 조장합니다. 영토내셔널리즘은 안보내셔널리즘으로 발전시켜 나갑니다.

 

‘內는 善, 外는 惡’이라는 전통적 사고방식이 현대적으로 재생됩니다. 온갖 정보조작, 거리에는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로 요란합니다. 서점에는 헤이트 서적이 넘칩니다. 안보냐 개헌이냐, 악에의 굴종이냐 선의의 개헌이냐, 하는 식의 양자택일이 강요됩니다.

그래서 일본 시민은 1930년대 후반기처럼 파시즘 광기에 휩쓸리게 됩니다. 지금이 그때와 너무나 비슷합니다.

개헌이 이루어지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보통국가”가 됩니까? 아닙니다. “파시즘국가의 재등장“입니다 “전후 레짐으로부터의 탈각”입니까? 아닙니다. “전전 레짐으로의 복귀”입니다.

일본의 국가이미지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의 전쟁국가의 연속선상에 설 가능성이 커지고 “청산되지 않은 과거의 악취”(귄터 그라스)가 넘칠 것입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나치즘은 히틀러 일파만의 범죄가 아니라 독일 시민과 지식인의 책임이라 했습니다. 3차 대전 전야인 지금, 일본 시민이 2차 대전 전야의 일본 시민처럼 평화헌법의 개정을 허용한다면 그것은 일본 시민의 책임입니다. 이것은 일본 시민사회의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다.

지금 일본의 시민사회는 평화헌법수호운동을 통하여 더욱 성숙할 것인가, 실패하여 국가주의 팽배 속에 퇴화할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네루다의 “날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는 시가 절실합니다.

 

PYH2017060318540007300_P4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 반대 집회. (사진 출처:연합뉴스)

(3) 동아시아의 두 개의 길

평화헌법 폐기의 결과는 무서울 것입니다. 평화헌법을 폐기한 군사대국 일본의 등장은 동북아의 긴장을 크게 끌어 올릴 것입니다. 이웃 국가들도 국가주의가 팽배하게 되고 군비를 더욱 확장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국가간 적대적 상호의존의 고도화와 군비경쟁의 악순환이 심화되고, 핵도미노 현상에 빠져 동아시아는 3차 대전의 발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변할 것입니다.

트럼프-아베 헌법 개정의 전쟁노선은 3차 대전으로 가는 첩경입니다. 핵전쟁은 모두가 패자가 되는 길입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들도 방사능 지옥에 살게 하는 길입니다. 일본은 평화헌법의 세계적 전개의 일환으로 평화적 해결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동아시아는 시장경제와 산업화의 결과로 약 14억의 중산층과 16억의 네티즌을 형성한 지역입니다. 이러한 중산층과 네티즌이 동아시아의 시민사회, ‘시빌 아시아(Civil Asia)’로 이어질 것인가? 즉 국가주의가 완화되고 시민주의가 강화되어 국가주의와 시민주의의 투 트랙으로 가게 되면 동아시아는 크게 안정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군비 축소의 선순환이 기대되고 동아시아 비핵지대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만큼 복지의 아시아, 문명의 아시아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의 시민사회가 평화헌법을 수호하여 ‘시빌 아시아’로, 비핵지대화로 갈 것인가. 아니면 평화헌법 개정으로 국가주의의 아시아. 군비경쟁의 아시아, 핵확산의 아시아로 갈 것인가. 지금 동아시아는 두 갈래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북핵에 대해서도 평화헌법 개정으로 3차 대전에 의한 공멸의 길이 아닌, 평화헌법의 세계적 전개에 따른 평화적 공생이라는 훨씬 현명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일본의 시민사회와 동아시아의 시민 혹은 인민이 상호 연대하여야 할 충분조건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 연대가 ‘평화헌법 지키기’로 더욱 확대 강화하게 되면 그 연장선상에서 ‘시빌 아시아’가 가능하게 되겠지요.

나는 평화헌법 9조 앞에서 동아시아 시민, 아니 세계의 시민들은 단결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4) 일본 평화헌법의 세계적 확대

나는 일본에서 평화헌법 수호에 나선 시민들의 양심과 용기에 경의를 표하면서 한 가지 제의를 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소극적으로 9조를 지키는 차원에 서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적극적으로 공세적 차원에 서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적극적으로 평화헌법의 세계적 전개를 추진해 달라는 것입니다.

일본 국내에서 헌법개정세력의 개헌선 확보라는 비상사태에 직면하여 일본의 시민사회와 동아시아 시민사회는 연대를 강화하여 함께 이 싸움에 세계 시민사회를 적극 끌어들이자는 것입니다.

세계사회포럼운집한대중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이 있습니다. 김영호 교수가 제창한 세계평화포럼(WPF)은 시민들의 평화잔치로 위기에 빠진 평화헌법을 세계적으로 전개해 보자는 것이다. 사진은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

하나의 방법으로 세계 평화시민의 역량을 끌어들여 시민판 세계평화포럼(World Peace Forum)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에는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있고, 경제보다는 사회를 우선하자는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이 있습니다.

여기에 세계평화포럼(WPF)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세계경제포럼은 부자들의 잔치 같습니다만, WPF는 시민들의 평화잔치로 위기에 빠진 평화헌법의 세계적 전개의 한 형태로 WEF보다 더욱 영향력 있게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경비는 시민들의 크라우드 펀딩 형태로 충분히 가능합니다. 한국의 촛불혁명 때 필요한 경비를 크라우드 펀딩으로 조달했는데 목표치를 훨씬 초과하여 감격했습니다. 어떤 분은 돈을 내면서 “시민권력 취득료”라 했다더군요. 동서독 통합 때, 동독 시민들이 외친 “우리가 바로 주권자인 그 국민이다(Wir sind das Volk)”라는 구호가 생각났습니다.

이 WPF에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비롯한 세계 평화운동 지도자들을 모두 모읍시다. 모두 촛불을 들게 해도 좋습니다 세계의 가수들께 “We are the World”가 아닌 “We are the Peace” 합창을 요청해 볼 수도 있습니다. 필요하면 장소를 옮겨 서울에서 북핵 철폐에 초점을 모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할 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평화는 위기 속에서 감동으로 재생합니다.세계 시민이 세계평화체제의 큰 기둥의 하나인 위기의 9조 앞에 모이는 그런 감동의 계기를 도쿄 시민이 만들어 주십사 하는 것이 한국의 촛불시민혁명이 전하는 간절한 메시지입니다. 감사합니다.

 

목, 2017/11/16- 16:43
289
0
(울산 중구), 3선의 홍문종(경기 의정부을), 재선의 조원진(대구 달서병) 의원은 경선에서 승리해 공천을 받았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52개 지역구 여론조사 경선 결과를 발표했다....
토, 2016/03/19- 18:02
289
0
새누리당 관계자는 "이 10개 선거구는 2008년 총선 때 새누리당이 8석을 얻었다가 2012년 총선 때는 1석밖에 건지지 못한 서울의 대표적인 '스윙보터(swing voter·부동층 유권자)' 지역인 만큼 현재까지 여론조사에서 경합을 벌이는...
금, 2016/04/01- 03:05
289
0
반기문 귀국후 대선 출마행보는 이명박계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움직인다 즉 이명박이 움직인다는 뜻. SNS 반응을 정리하여 반기문에 대한 여론를 살펴본다
일, 2017/01/15- 11:25
288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