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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성 이야기 –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이주여성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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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성 이야기 –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이주여성 인터뷰

익명 (미확인) | 월, 2016/11/07- 17:24

저마다 고향과 나름의 이유를 가진 이주민들이 우리 곁에서 살고 있습니다. 단일한 배경과 같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끼리 사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른바 우리는 문화 다양성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 다양함이 서로 어울려 조화롭게 돌아가는 사회를 ‘다문화 사회’라고 합니다. 다문화는 단일한 문화를 내세우는 것에 대치되는 상태 혹은 그 태도입니다.

1990년대 말, 국제결혼과 외국인 근로자의 이주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한국 역시 문화 다양성의 사회로 진입했습니다. <재한외국인처우개선법>, <다문화가족지원법> 등의 법률이 만들어지고,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설립 등 각종 정책이 쏟아졌습니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다문화정책은 이제 10년이 되어갑니다. 희망제작소는 새로운 시민으로 우리 곁에 찾아온 이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려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다문화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구의 일환으로 지난 10월 말 두 이주여성을 만났습니다.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번역사로 일하고 있는 이주여성 나랑체첵(몽골어 통번역, 6년째 근무) 씨와 주영애(중국어 통번역, 3년째 근무) 씨입니다. 나랑체첵 씨는 2004년에, 주영애 씨는 1997년에 한국에 왔습니다.

우리도 한국인이에요

사람들은 두 사람을 한국인으로 대하고 있을까? ‘혹시’하고 물은 대답은 ‘역시나’였다.

“말을 안 하면 잘 몰라요. 입을 열면 외국인이냐고 묻죠.” (나랑체첵)

유창한 한국어 실력으로 인사를 하던 주영애씨는 외국인이냐는 질문이 난감하다고 했다.

“저는 이미 귀화해서 한국인인데, 중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다들 외국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는 사람은 나쁜 뜻이라고 생각 안 하지만, 듣는 입장에선 상처가 되더라고요.” (주영애)

두 사람은, 요즘 많이 회자하는 다문화 가정, 다문화 아동, 다문화인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많은 듯했다.

“다문화라는 것은 여러 문화가 어우러진다는 아름다운 의미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못 사는 국가의 여자들이 한국에 와서 결혼 못 하는 남자들과 결혼하는 것’이라고 인식되는 것 같아요. 끌어안아야 하는 짐, 부담처럼 보이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저는 20년 가까이 한국에 살고 있고, 또 한국인으로 살고 싶은데 말이에요.” (주영애)

주영애 씨와 나랑체첵 씨는 그동안 진행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지금은 그곳의 직원이 되어 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다문화사업에 대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생긴 지 10년이 되었거든요. 저는 센터가 처음 생길 때부터 이용해왔어요. 센터는, 열악한 환경에서 코리안드림을 위해 한국에 온 사람들을 끌어안기 위해, 그리고 그들을 한국 사람답게 만들기 위한 곳이라고 봐요. 그런데 자국민도 잘 챙기지 못하면서 왜 외국인에게 예산 낭비하냐고, 역차별 아니냐고, 한국인들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데 왜 이주여성 일자리만 지원하냐며 반대의견이 나올 때는 너무 속상합니다.” (주영애)

▲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홈페이지(namyangjusi.liveinkorea.kr)

▲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홈페이지(http://namyangjusi.liveinkorea.kr)


눈치, 성과 압박, 해고의 두려움… 한국의 사회생활

구제대상으로 들어와서 한국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당당한 사회일원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안 보는 것 같다며 주영애씨는 토로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일하게 되면서 왜 외국인에게까지 일자리 주냐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당시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했는데요.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각각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일하는 외국인 직원은 1~2명이지만, 한국인 직원은 더 많다고요. 즉, 우리 같은 사람들 일자리가 한 개 생기면, 한국인들 일자리도 덩달아 더 많이 늘어나는 게 아닌가’라고요.” (주영애)

곱지 않은 시선에다 엄청난 경쟁률까지 뚫고 하게 된 통번역사 일이 할 만한지 물었다. 녹록지 않다는 표정이 두 사람의 얼굴을 스쳤다.

“통번역사 제도는 2009년부터 시작됐어요. 현재 전국에 300여 명의 (이주여성)통번역사가 있는데, 근무 기간이 짧아요. 우선 한국인들 속에서 적응하기가 어려워요. 행정업무 처리하기도 어렵고, 통번역 외에 센터의 다른 사업도 해야 하고요.” (나랑체첵)

‘일자리는 좋은데, 사회생활 자체가 어렵다’고 나랑체첵씨는 표현했다. 더 자세히 말해달라고 했다.

“우리는 눈치 없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주영애)

“그건 저도 인정해요.(웃음)” (나랑체첵)

한국의 사회생활에서 규정이나 매뉴얼보다 중요하다는 ‘눈치껏 잘하기’. 이들에게는 생소하고 어려운 문화인 것이다.

“직장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느껴요. 중국이나 몽골은 수평관계인데, 한국은 수직관계인 거 같습니다. 눈치로 배워야 하는 게 많아요. 이런 부분은 아직도 어렵죠.” (주영애)

“저는 행정적인 부분이 제일 어렵고 힘들었어요. 뭐 하나 하려면 기획서, 보고서 등 써야 할 게 엄청 많아서 처음엔 엄청 어려웠어요. 물론 하면서 엄청 성장했지만요.(웃음)” (나랑체첵)

눈치로 시작된 이야기는 일자리 처우 개선까지 이어졌다. 6년째인데 막내처럼 일해서 답답한 점, 최저임금이 안돼서 8시간에서 7시간 근무로 바뀌었지만 업무량은 여전하다는 점, 그런데도 성과는 전년 대비 늘 좋아야 한다는 점, 평가를 통해 하위 10%는 재계약에서 탈락하기 때문에 압박도 많다는 점 등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꿈에 그리던 ‘사무직’이고, ‘배울 수도 있는’ 일인데 유지하기 어려운 게 안타깝다고 두 사람은 말한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주영애 씨는 출근하는 데만 2시간 남짓 걸린다. 무려 4시간 가까이 걸리는 시간을 감수하며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는 한국 오고 20년 동안 안 해본 일 없을 정도로 고생했다며 눈시울을 붉히더니 대답했다.

“전문직을 선호해서 이곳으로 왔어요. 단순히 경제적인 것만 고려했다면 안 왔을 거예요. 지금까지 일한 곳 중 여기 급여가 제일 적으니까요. 그간 한국 생활을 하며 어려움을 겪은 한 사람으로, 다른 다문화가족에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주영애)

“한국 처음 왔을 때 남편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남편은 좋은 사람 찾아가라고 했지만, 나는 젊었으니 닥치는 대로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느냐 말하고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하지만 어려운 건 어려운 거더라고요. 그러다 통번역사 기회가 와서 정말 기뻤어요.” (나랑체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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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선배로 이끌고 다독여주기

한국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지만 자신들은 그 단계를 넘어 여기까지 왔으니,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갈 이주여성을 돕는 일을 하고 싶고 또 잘할 수 있다고 했다.

“결혼이민자들의 입장을 잘 알고 있고, 시행착오도 먼저 겪었으니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크죠. 또 그들 입장에서도 우리가 다가가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요? 제 도움을 받은 사람이 고마워하거나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저 자신이 쓸모있는 사람으로 느껴져요. 그게 가장 큰 보람이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죠.” (나랑체첵)

“저는 (통번역사 일을 한 지) 만 3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그동안의 저 자신을 평가하자면, 놀랄 만큼 많은 성장을 했다는 거예요. 가장 값진 건 한국에서 직장다운 직장을 처음 가지게 된 거죠. 이전에 15년 일했던 것 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주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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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다문화가정 서포터’ 회의 모습. 서포터들은 이주여성들이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돕는다.

두 사람은,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한국에 잘 정착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들의 이야기가 다른 이주민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제가 느끼는 보람은, 고통의 시기를 겪고 있는 이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앞에서 줄을 끌어주는 것 같은 느낌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 사람들에게 제가 교훈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어떻게 하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영애)

경기도의 경우, 이주여성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이용률은 18% 정도다. 두 사람은 숨어있다시피 하는 여성들을 발굴해서 연결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은행, 버스 이용 등의 생활 지원을 하고요.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어요. 제일 중요한 건 잘 안아주고 다독여주는 것인데, 제가 결혼이민 선배다 보니 정보도 많이 주려 하고 잘 이해해주니 많이들 따라오시더라고요.” (나랑체첵)

“작년부터 검정고시반을 맡아서 하고 있어요. 15명이 참여해서 11명이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졸업장을 수여했는데요. 다들 마치 대학 학사학위를 받는 것처럼 기뻐하시더라고요. 덩달아 저도 뿌듯했죠.” (주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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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검정고시반’ 주말 스터디


실질적으로 무언가 할 수 있도록

결혼이주여성들이 목말라 하는 정보 대부분은 취업과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 취업도 중요하지만 언어나 한국의 문화를 먼저 익히는 게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에 관해 물었다.

“물론 언어도 중요하죠. 하지만 오셔서 맞벌이해야 하는 분들도 있어요. 빨리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겠죠. 그분에게 중요한 것은 언어보다 돈인 거죠. 이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그 사람의 사정이고 상황이라고 생각했으면 해요. 그리고 돈을 벌다 보면 한국어가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에 결국 언어를 배우러 오게 돼요. 이 지역만 해도 (이주여성의) 50% 이상이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해요.” (나랑체첵)

그렇다고 돈을 달라거나 특별한 것을 지원해달라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무언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이주여성의 가정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데에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주여성이 일자리 찾기는 어렵고, 그렇게 되면 남편이 혼자 돈을 벌어야 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혼자 돈 벌고, 거기에 아이까지 있으면 힘들어요. 가정에 불화가 생길 가능성도 크고요. 이주여성들은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한국 사회에서 일어설 기회가 없어지는 거죠.” (나랑체첵)

“아이가 있는 분들은 긴 시간 일하지 못합니다. 시간 짧은 것, 아르바이트 같은 것을 하고자 해요. 그래서 시간을 탄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봐요.” (주영애)

높은 취업 욕구보다 준비와 노력이 부족한 이주여성들도 물론 있다. 두 사람은, 당장은 아니어도 장기적으로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꾸준한 취업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결혼이민자분들이 아예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에요. 결혼이주여성이 도망가는 사례 등은 좋지 않은 여론을 만들고 큰 화젯거리가 돼요. 하지만 잘하고 계신 분들도 많아요. 저는 모든 게 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몇 년이 지나면 적응하고 한국 사람이 되잖아요. 가끔 다문화정책이 잘 되고 있나 의문이 들 때가 있는데요. 숫자와 실적에만 매몰되기 때문이죠. 실제 도움이 되지 않는 사업을 한다거나, 매번 오는 사람들만 지원받을 때도 그렇죠. 많은 사람이 동등하게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해요.” (나랑체첵)

다문화 체감도 높이고 다름 인정하는 태도 필요해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다문화에 대한 인식은 이중적이다. 인터넷에 난무하는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댓글들이 보여주는 한 면과 공식적으로 나타나는 대체로 신중하고 호의적인 인식조사 결과가 또 다른 한 면이다. 2015년 서울서베이를 보면, 자녀의 외국인과 결혼, 외국인 친구, 외국인 이웃 등에 대한 태도는 종합적으로 60%가 호의적이었고, 결혼이민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해소에는 50.9%가 긍정적이었고, 일자리를 뺏긴다는 우려는 40.5%였다. 여기에 대해 주영애 씨와 나랑체첵 씨는 여전히 낮은 다문화 체감도를 높이고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은 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다름을 인정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결혼이민자들이 이렇다저렇다 이야기하지 말고, 그 상태 그대로 다름을 인정해주고, 다르면 이상하게 취급하는 시선만 아니었으면 해요. 그리고 잘 적응해서 성공하고, 잘 살아가는 본보기라고나 할까, 이런 사례를 자주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주영애)

“저도 예전에는 외국인인 걸 숨기고 싶을 정도로 조용히 지낸 적이 있어요. 시선 자체가 차가워서 자꾸 주눅이 들었어요. 물론 지금은 숨기지 않고 말하죠. 이건 제가 지금 당당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갑자기 당당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에요. (나랑체첵)

주영애 씨는 공교육에 진입하지 못하는 중도입국자녀가 너무 많다며, 이들을 잘 끌어안고 한국문화에 잘 융화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회와 역할을 주고 함께 성장할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옆집에 베트남 사람이 와서 살지만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다문화가 무슨 상관이냐고 하지만 학교와 직장을 살펴보면 다문화가족 출신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출산시대라고 하는데, 다문화가족은 다둥이인 경우가 많아요. 여기에 중도입국자녀들도 있는데, 이 아이들이 적응 못 하는 경우가 수두룩해요. 사람들이 체감을 못 하는 게 이런 것들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 중도입국자녀가 한국사회에 문젯거리로 전락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나만 안전하면 된다고 하지만, 안전지대가 없어질 수도 있어요. 이들이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 않게 하려면 지금 잘 해야 합니다.” (주영애)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차별과 배척의 시선만을 느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제도와 지원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있지만, 무엇보다 따뜻했던 것은 처음 접했던 한국인들의 도움이었다.

“제 아이 역시 중도입국자녀예요. 적응을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지금 같으면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을 이용했겠지만, 10년 전에는 그런 게 없었잖아요. 그러다 한국 아주머니와 대학생들이 외국인 근로자와 학생들에게 한국어 가르치는 행사가 있다고 해서 아들과 함께 갔어요. 열정적으로 가르쳐주는 걸 보고 ‘한국 사람들이 무조건 외국인을 싫어하는 게 아니구나’,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엄마 말은 안 듣던 아들이 그때 한국어 가르치던 누나 말은 잘 들어서, 지금도 연락을 하더라고요.” (주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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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인터뷰가 희망제작소 뉴스레터에 실린다고 하자, 나랑체첵 씨는 어떤 사람들이 독자냐고 물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관심 가진 분들이라고 답하니,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고 했다.

“이주민들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눈치가 없어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한국 사람처럼 행동하길 바라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일률적인 행동을 기대하지는 않았으면 해요. 우리는 다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같아지려 해도 시간이 걸리지만, 같아지려 하는 게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우리 (이주민들의) 문화도 존중해주길 바라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런 한국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랑체첵)

이주민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늘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앞으로 살고 싶은 나라가 어떤 곳인지 먼저 물어야 한다. 이주민들이 한국에서 살면서 많은 시간 고민하는 것은, ‘한국인이냐, 아니냐’보다 ‘쓸모있는 사람이 되는 것, 성장하는 것, 보람을 느끼고 이 사회에서 희망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혼란스러운 시절을 살아가는 여느 한국인의 모습,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뷰 진행 : 이은경 사회의제팀 팀장 · [email protected]
녹취 및 정리 : 이은경 사회의제팀 팀장 · [email protected]
녹취 및 정리 : 최은영 미디어홍보팀 연구원 · [email protected]

* 인터뷰 참여자의 요청으로 개인 사진은 게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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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6/04/1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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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자기 소개부터 시작할까요?

 

오윤식 저는 연수원 34기로 12년차 변호사로 법무법이 공간의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권리구제의 공간, 사회기여의 공간’이라는 법무법인 공간 명함을 파서 다니고 있는데요, 변호사로서 저의 지향점이 그 말에 녹아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변호사들이 권리구제를 통해서 사회기여를 해야 한다는. 그런 명함 파가가지고 다니니까 ‘사회기여’라는 말을 빼고 돈 많이 벌어라고 핀잔 주던 후배도 있었는데, 생활의 기반이 되는 물적 토대도 매우 중요하죠. 성현(聖賢)이신 맹자도 항산항심(恒産恒心)이라고 했으니까요. 그런 물적 토대가 튼실하지 못한 것이 좀 아쉽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변호사들이 추구해야 할 가치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신이 받은 재능을 공동체에 돌려줌으로써 사회기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늘 부족하지만, 이런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김지미 처음부터 이런 말씀 드리기가 좀 뭣하지만(웃음) 73년생이라고 하기엔 중후한 외양의 소유자시잖아요. 그런 말씀 많이 들으셨죠?

 

오윤식 머리만 흰데..저는 제가 동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김지미 조금 더 지나서 이덕우 변호사님처럼 완전 백발이 되면 더 멋있으실 거 같아요.

 

오윤식 그럴 수도 있죠. 지금 이거는 아주 자연스럽게 된 상태니까.

 

김지미 몇 년 안에 더 멋있어진 오변호사님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이제 오변호사님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볼까요?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오셨네요.

 

오윤식 네. 고향은 전북 남원이고 지금도 부모님은 남원에 계세요. 고등학교는 유학을 간 거죠.

 

김지미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하셨는데 역시 법조인의 꿈을 가지고 진학을 하신 거겠죠?

 

오윤식 네. 어렸을 때 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김지미 어떤 면에서 판사가 멋있어 보였을까요?

 

오윤식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어떤 사안에 대해 판정을 해주는 것이 멋있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 장래희망을 판사로 쓴 기억이 있고, 국민학교 때는 미술시간에 그림으로 그린 적도 있어요.

 

김지미 그래서 연수원 34기로 합격을 하셨잖아요. 고향에 플랭카드 좀 붙었겠는데요(웃음)

 

오윤식 시골이라서 붙었어요. 잔치도 했습니다.(웃음)

 

김지미 보통 변호사가 된 첫 해에 민변에 가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변호사님은 그런 케이스는 아니죠? 언제 가입을 하셨나요?

 

오윤식 제 기억으로 2008년, 그때 정도에 입회를 했어요. 변호사 생활을 한 게 2005년부터인데 바로 입회한 건 아니고 촛불 집회가 한창일 때 입회를 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제가 변호사를 안산에서 시작했어요. 그 다음에 고양시에서 하다가 서울로 들어왔거든요. 별 생각 없이 지내다가 촛불집회 보고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입회를 했습니다.

 

김지미 그럼 2008년 당시 민변 신입회원이셨는데 촛불집회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고, 2009년에 용산사건진상조사단 활동도 하셨고, 그것 때문에 모범회원상도 받으셨죠?

 

오윤식 그 때가 정권 교체된 직후라 여러 가지 일이 많았고 열심히 해야 될 시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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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모범회원상을 받으면 기분이 어떤가요?

 

오윤식 제가 입회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큰 상을 받아서 영광이었죠(웃음).

 

김지미 제가 오변호사님을 처음 뵌 것도 촛불 집회 한창일 때였던 걸로 기억해요.

 

오윤식 목동 쪽에서 봤잖아요. 그 때 집회 방송 차량을 김종웅 변호사랑 제가 인천에서부터 타고 왔어요. 근데 목동부터 제지를 당한 거죠. 방송 차량이 집회 현장으로 가지 못하게 경찰이 막은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도와달라고 지원요청을 했었는데 김변호사님이 가까이 있어서 왔던 것으로 기억이 나요. 경찰하고 한창 실랑이를 해서 결국 가져갔죠.

 

김지미 네. 집이 목동이어서 주말에 쉬고 있는데 갑자기 불려 나갔었죠.(웃음) 그 당시에 제가 오변호사님이 굉장히 지적이어서 멋있다고 사람들에게 말했었어요~모르셨죠?

 

오윤식 한때 지적으로 보였나보죠?(웃음).

 

김지미 보니까 언론에 기고도 많이 하시고, 글 쓰는 걸 잘 하시고,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오윤식 2008년, 2009년 그 즈음에는 프레시안이나 민중의 소리에 기고를 좀 했는데 요새는 많이 안하는 편이에요.

 

김지미 당시 기고하셨던 글들을 보면 ‘방패로 시위대를 공격하는 것은 위법이다.’, ‘권력검찰을 혁파해야 된다’, 미네르바 구속이나 신영철대법관 사퇴해야 되는 이유 등등 현안에 대해 법률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글들을 많이 쓰셨던 것 같아요.

 

오윤식 네. 검찰 권력을 혁파해야된다는 글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후에 쓴 글이예요.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한때는 신영철 징계해야 한다 이런 주장도 하고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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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2009년에는 용산철거민사망사건진상조사단이 민변 안에 꾸려지게 되는데 당시 조사단장이 장주영변호사님이셨고, 오변호사님이 법률지원팀장을 하셨어요. 갓 입회한 신입회원이나 다름없는 입장에서 중책을 맡으셨는데, 이때 활동에 대해서 잠깐 소개를 해주세요.

 

오윤식 그때 용산 사건에서 발화가 어떻게 됐는지, 사망자들이 어떻게 돌아가시게 됐는지 주로 그 부분을 중점으로 원인 규명을 하려고 했고 보고서를 발간했어요.

 

김지미 그 당시 검찰이 수사기록을 끝까지 내놓지 않았잖아요. 진상조사를 한다고는 하지만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오윤식 유가족 인터뷰를 하고 그랬는데 사실 자료가 많지 않아서 어려움이 있었어요.

 

김지미 이외에도 언소주(언론소비자주권캠페인) 관련 소송도 하셨는데 이 사안도 촛불집회 와 연관이 있고 그러고보면 오변호사님은 민변 차원의 활동엔 적극적으로 결합하시는데 비해 의외로 위원회 활동은 잘 안하시는 거 같아요.

 

오윤식 노동위 소속이긴 한데 제가 촛불 때 즈음해서 민변 활동을 하다보니까 그런 사건 위주로 활동을 한 거죠

 

김지미 검찰혁파 얘기도 하셨고, 신영철대법관 얘기도 하시는 것 보니까 사법위원회가 제격일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이건 순전히 사심을 채우려는 의도로 질문 드리는 겁니다.(웃음)

 

오윤식 저도 그런 생각은 있습니다.

 

김지미 네. 매월 3번째 목요일 회의입니다(웃음).

 

오윤식 당장 하겠다는 말씀은 못 드리겠어요. 사실 언론위 활동을 해볼까 이런 생각이 있어요. 책 쓰는 것하고 연결이 돼서.

 

김지미 표현의 자유 쪽에 관심이 있으신 거죠?

 

오윤식 네. 선거법이 말과 글을 통제하는 시스템이거든요. 표현의 자유 측면 또는 국민의 선거의 자유, 선거 참여의 자유를제약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언론위 활동을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죠.

 

김지미 말이 나온 김에 최근에 ‘후보자와 정당을 위한 공직선거법 해설’이라는 책을 내셨어요. 책이 굉장히 두꺼워요. 천 페이지 가까이 되는데, 이걸 변호사님이 혼자서 쓰셨잖아요, 이게 몇 년 동안 작업을 하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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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식 몇 년은 아니고요, 재작년이죠. 2014년 11월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김지미 1년이 안 걸린 거네요.

 

오윤식 작년 10월 초반에 최종 탈고를 했어요. 그런데 선거법이 12월에 두 번인가 바뀌었어요. 그래서 고치고 해서 제가 최종 넘긴 것은 12월 20일 정도에 넘겼거든요. 그런 것까지 하면은 1년은 넘게 걸렸죠.

 

김지미 이 책을 저술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오윤식 제가 2014년 지방선거 때 박원순시장님 캠프 법률팀에서 일을 했었죠. 선거자문을 주로 했어요. 캠프에 들어가서 선거운동을 하는데 문제가 많이 생길 수 있거든요. 그래서 그 때 서류로 써 놓은 것이 있었어요. 선거 끝나고 6월 말 정도에 생산한 문서를 보니까 300장정도 됐거든요. 그게 책에 반영은 많이 안 되었지만 이 책에 보면 선거운동 할 때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전팁이 들어가 있거든요. 그 부분은 참고가 많이 됐습니다.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죠. 처음엔 300쪽 되는 문서를 묵혀 놓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거를 활용해볼까 이런 생각도 있었는데, 조금 쓰다보니까 선거법이 워낙 조문이 많거든요. 그래서 쉽게 책 쓰는 거는 초중반에 쓰다가 포기하고 전문서적으로 나가게 된 거예요. 제가 사실은 처음에는 책 쓰는 기간을 3개월 정도 예상했었어요. 저도 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거에만 매달릴 수가 없어서 3개월 정도 예상을 했었는데, 쓰다보니까 엄청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시간이 늘어지면서 양이 많아지고 그리고 기록화 되는 거니까 신경 안 쓸 수가 없어요. 그리고 쓰다보면 욕심이 많이 생겨요. 그래서 수정도 하고 이것저것 논문도 많이 보고 독일 선거법 참고 하면서 그러다보니까 점점 늦어지다 10월 달에 탈고를 했죠.

 

김지미 말씀하신 것처럼 생업을 유지하면서 틈틈이 쓰신 거잖아요.

 

오윤식 대충 시간 계산을 해봤어요. 1주일에 토·일요일 쉬는 날 빼고 한 2-3일정도를 쓴 것 같아요. 사실은 힘들었어요. 일주일에 2-3일을 9시에 나와서 9시에 퇴근했거든요. 고시공부하듯이 책을 썼어요. 그래서 나중에 힘들다이런 생각 많이 했어요.

 

김지미 이 책 머리말에도 쓰셨지만 선거법이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에게도 어려운 정도로 많은 조문을 담고 있다. 이게 사실이거든요. 그렇다면 이 책의 장점을 한마디로 표현하신다면? 책에는 실전지침서와 이론서를 다 지향했다 이렇게 쓰셨는데, 내 책은 깊이 있는 이론도 담고 있으면서, 실전에도 강하다 이런 건가요?(웃음)

 

오윤식 실전팁, 그러니까 선거운동을 하면서 선거지침으로 삼을 만한 부분을 뽑아서 실전팁이라고 해서 30개 정도 들어가 있거든요. 그 부분을 따로 목차를 잡아 놓을까 이런 생각도 있었는데, 그걸 얘기하니까 누가 그것만 카피한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어서 목차를 안 잡았어요. 그런 부분은 선거 관계자들, 후보나 선거운동원이나 이런 분들한테 실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선거법 전문서로는 가장 최근법에 맞는, 충실한 내용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아까 독일법 얘기 잠깐 하셨는데 저희 정치관계법TF 방에도 변호사님이 독일법 올리신 게 있었잖아요. 직접 번역을 하신 거죠?

 

오윤식 네. 제가 직접 했습니다.

 

김지미 독일어는 언제 또 공부를 하신 거예요?

 

오윤식 독일어는 사시 준비할 때부터 했고요, 잘하는 수준은 아니에요. 그런데 독일어 번역할 때 법조문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해야 하는데, 독일연방선거법은 2009년도에 중앙선관위에서 번역을 해놓은 것이 있어요. 그래서 많이 참고를 하기는 했는데, 번역이 잘못된 것이 더러 좀 있어요. 독일연방선거법 부속법령 중에 선거심사절차법이 있는데, 그건 번역본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다 번역을 한 건데, 그래서 번역노트도 100페이지가 넘게 있어요. 일일이 찾아가면서 했기 때문에 그것도 대단히 힘들게 했습니다.

 

김지미 사시의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공부했다고 해도 누구나 이렇게 번역을 할 수 있는 건 아닐 텐데요.

 

오윤식 제가 번역만 하는데 한 달 가까이 걸렸거든요. 독일에서만 쓰는 전문적 용어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독일법령용어집이 있고, 사전 같은 게 2권 있는데 그런 책도 많이 참고해가면서 한 거죠.

 

김지미 내가 직접 번역을 해보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대단한 것 같아요.

 

오윤식 독일 논문을 읽고 논문을 써봐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지금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그 전에 논문을 한 10편 정도 썼는데 그거는 독일 논문은 참고 못하고 법조문 정도는 참고 했는데, 저도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오고 그래서 해석을 하고 그러면서 시간이 걸려요.

 

김지미 논문을 많이 쓰셨네요. 보면 분야를 넘나들고 있어요. 공직선거법 관련된 것도 있지만, 노동법에 관련 된 것도 있고.

 

오윤식 지금 쓰고 있는 논문은 선거구획정에 관한 것이에요.

 

김지미 역시 지적이시군요. 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어요(웃음).

 

오윤식 지적인 것보다 제가 스스로 학자변호사를 지향하고 있어요. 꼭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아요. 변호사는 원래 사건을 많이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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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평생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 변호사다 라는 말이 있는데 관련해서 보면 변호사님이 민변에 발전전략TF에서도 정책연구소 얘기를 많이 하셨잖아요.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되는 건가요?

 

오윤식 그렇죠. 저는 우리가 법률가이기 때문에 법적 영역 또는 정책적 영역으로 사회에 기여를 해야 한다, 사회에 영향 미쳐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민변 기존의 활동 흐름을 보면 그게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TF할 때도 그런 얘기를 많이 했었는데, 민변 내부에 연구센터라든지 아니면 별도로 연구소를 차리게 되면 기존 위원회 중심의 활동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거든요. 그래서 공익변론센터가 우선 설립되게 된 걸로 이해를 하고 있는데 장기적으로는 연구소 형태의 정책연구소 이런 것을 만들어서 위상을 높여야 한다 이런 생각을 좀 하죠.

 

김지미 당장의 현안들이 너무 많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당장 성과가 없더라도 쭉 밀고 나가야 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러기에는 민변이 예산이나 인력이 부족한 게 사실이잖아요. 변호사님이 생각하기에 민변에서 이런 것들은 공부를 해봤으면 좋겠다 하는 주제나 분야가 있을까요?

 

오윤식 제 책과도 조금 관련이 되어 있는데, 제가 독일선거법보면서 깜짝 놀란 것이 독일에서는 선거운동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그래서 선거운동 자체를 규제를 안 하는 거예요. 선거 비용 자체도 규제를 안 해요. 선거비용은 금권선거 이런 측면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규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는데 법에서 규제를 안 하고 정당간의 자율협약으로 규제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법에 없어요. 그런 것을 보면 아주 선진적인 선거법 모델이라고 할 수 있죠. 반면에 우리 선거법에는 선거운동에 관한 규제조항이 많아요. 우리 선거법은 일본 시스템이거든요. 이게 일제시대에 성립한 억압적인 선거법 체계거든요. 그게 1958년 정도에 참의원이 선거법 개정하면서 그런 시스템이 들어온 거예요. 그 전까지는 우리 법도 강하게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체계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선거법 자체가 일본 잔재인 측면이 있죠. 그런데 계속 가져가잖아요. 지금 정치권에서는 기득권을 지키는 차원에서 규제하는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선거법을 연구할 때 비교법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김지미 말씀하신 바에 의하면 우리가 선거운동이라든지 선거방법에 대해서 규제를 해 온 것이 50년, 60년 넘었단 말이죠. 그런데도 계속 선거비리, 금권·관권선거 그런 얘기가 나오잖아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규제를 하는데도 이런데, 규제를 풀면 돈 있는 사람, 힘 있는 사람이 결국 이기는 거 아니냐. 독일하고 비교를 해보면 독일은 규제를 하지 않음에도 선거과정에서의 부작용이랄까 그런 것들이 우리나라보다 덜하다면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온다고 보세요?

 

오윤식 우리의 정치문화나 국민의 의식 수준의 차이,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김지미 오히려 시민들 사이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진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런 문화가 덜 발달됐다라고 보시는 건가요?

 

오윤식 네, 그렇게 볼 수도 있어요. 그래서 학자들 중에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많아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 60년 동안 우리가 억압적으로 포괄적으로 강하게 규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비리, 부정선거 이런 게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것은 규제하는 시스템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국민의 자율에 맡기는 시스템 도입을 할 필요가 있다. 저도 그런 생각에 공감을 하는 거지요. 우리 선거법이 강하게 규제를 하는 건 관권선거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3·15부정선거라든지 최근 2012년 대선도 광범위한 부정 관권선거 의혹이 있는데, 그런 것은 규제 안 할 수가 없죠. 저도 전면적으로 선거법 규제를 풀자 그렇게 주장하는 건 아니에요. 공무원의 선거관여 이런 것은 현행 수준 아니면 거기보다 강하게 할 수도 있겠죠. 다만 일반 국민들의, 유권자들의 선거운동의 자유라든지국민의 선거 참여의 자유를 너무 강하게 규제를 하는 게 문제라는 거예요. 선거가 어떻게 보면 국민들의 의사를 표현하는 과정인데 국민들을 구경꾼으로 전락시키는 측면이 있죠.

 

김지미 기존의 규제를 계속 이어가고자 하는 건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세력에 더 유리한 것은 사실인 것 같아요. 앞으로 총선·대선을 앞두고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가 더 위축될 것이다 라는 우려가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같은 연장선상에서 언론위 활동을 하고 싶다 라고 말씀을 하시는 거죠?

 

오윤식 그런 측면도 있죠. 3월 정도 즈음에 선거 분위기가 조성되면 표현의 자유라든지 국민의 선거운동 확대라든지 그런 측면에서 민변이 역할을 일정부분 해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 그때 제가 역할을 좀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김지미 총선이 끝났다고 해서 그런 사건이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어느 정도 마무리 되면 사법위 오시는 걸로(웃음). 변호사님 책상에도 이게 있지만, 따로 물어보려고 했던 것이 이 사건인데요, 종교인 소득세 납부자료 정보공개청구소송에서 일부 승소를 하셨고 이 사건을 맡으셨는데 이게 보니까 원래는 한겨레 21이 국세청에 성직자의 소득세 납부 현황 등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는데, 비공개 결정이 났고 이 기사를 보고 변호사님이 먼저 한겨레 21에 연락을 하신 거죠?

 

오윤식 네. 고나무 기자인데 기사를 읽고 나서 “제가 공감을 해서 무보수 대리를 해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먼저 연락을 했어요. 개인적으로 같은 국민이기 때문에 종교인도 과세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국가 운영의 근본이되는 것이 세금이거든요. 종교인들이 하늘나라에서 봉사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 내에서 봉사하기 때문에 당연하게 세금을 내야 한다. 이런 생각이 강하게 있었어요. 그래서 기사보고 제가 메일을 보냈죠. 제가 1심 중간부터 같이 했는데 2심에서 이겼어요. 그런데 대법원에서는 공개거부처분이 옳다고 해서 졌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져서 아쉬운 측면이 있죠.

 

김지미 성격이 보기보다 적극적이신 거 같아요. 최근에는 민중총궐기 대응 변호인단에 참여를 하고 계시잖아요. 저희가 당시 살수차 영상에 대해서 증거보전신청을 해서 그건 홍성지원에서 기일을 진행했었고 내일 다른 살수차 영상에 대한 증거보전 관련해서 광주를 가시죠?

 

오윤식 백남기 선생님은 분명한 국가폭력의 피해자이시죠, 국가 공권력의 발동, 특히 형사 사법절차에서는 염결성이라고 하잖아요. 적법절차를 준수하면서 공권력이 발동되어야 하는데 그런 걸 준수하지 않는 공권력은 사실은 흉기와 같다고 생각을 해요. 백남기 선생님 같은 케이스가 그런 사례잖아요. 기본적으로 이건 아니다 싶어서 참여를 하게 됐죠.

 

김지미 내일 검증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잠깐 소개를 해주세요.

 

오윤식 홍성지원에서는 충남청 소속 살수차에 달린 영상에 대해서 어떻게 물포를 쏘고 백남기 선생님이 그때 당시에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떻게 피해를 입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검증을 했어요. 이번에 광주지법에서 하는 검증은 백남기 선생님을 피격한 살수차 말고 다른 살수차에 대한 것인데 당시 조준 살수를 했는지, 고의성이 있었는지를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김지미 민변의 열혈 회원으로서 앞으로 민변이 나아갈 방향, 민변의 발전을 위해서 평소에 생각하신 바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오윤식 초반에 말씀드린 부분이기도 한데, 민변이 장기적으로 연구소를 설립해서 정책 역량·연구역량을 강화해야 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대의원회 자료집을 보니까 공익변론센터에서 위원회에서 포섭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연구에 대한 지원 같은 내용이 있던데 그런 계획이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김지미 기승전 정책연구소네요(웃음). 정책연구소 필요하죠. 예를 들면 저희가 정치관계법 TF를 만들기는 했지만 평소에 이런 분야에 대한 연구가 되어 있으면 정치관계법 개혁 논의가 있을 때 민변이 선도적으로 연구 성과물도 내놓고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전문가 단체로서의 성격을 확실히 하려면 그런 쪽에 역량이 좀 투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있어요.

 

오윤식 제가 책 쓰면서도 느낀 건데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어떤 것도 바뀌지 않는다. 사회적·정치적·경제적 미완의 불완전한 개혁에 머무를 것이다. 우리가 법률가인데 가끔 잊어버리는 측면이 있다고 보는 게 정치하는 사람들이민주주의 구현 수단인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고, 그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통해서 법을 만들어 내잖아요. 정치인들이 국민의 선택을 받아서 국회에 들어가서 법을 만들면 그 법에 우리 사회의국민·모든 기관이 지배를 받는 거잖아요. 그래서 민주주의하고 법치주의가 결합이 될 수밖에 없고 저는 그걸 ‘민주법치주의’ 이렇게 표현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 회원이 정치권에 적극 나가서 세력을 형성해서 법을 통해서 사회에 기여를 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편이죠. 그래서 입후보 하신 분들이 제 책을 보시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웃음)

 

김지미 정말 좋은 말이네요. 올바른 정치개혁 없이는 어떤 사회개혁의 성취도, 어떤 경제개혁의 완성도 어렵고, 가능하더라도 불완전한 미완의 개혁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올바른 정치개혁이 가장 중요하다.

 

오윤식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독일의 사민당 정도의 정치세력을 만들어서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려고 했다고 생각하는데 잘 안됐었죠. 그런 것이 좀 아쉽다고 생각하고요, 앞으로 정치혁명, 민주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갈 정치세력 형성의 중요하다. 그 세력 형성에 민변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저도 미약하게라도 그런 역할에 기여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김지미 혁명이나 개혁 이런 말로 회원 인터뷰를 끝맺기는 처음인 것 같아요. 변호사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민변 회원으로서 시대적인 소명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 오변호사님을 자주 뵐 것 같다는 예감도 들구요.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월, 2016/03/1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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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선물꾸러미 물품보기
수, 2016/04/2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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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 그 사람 이 물품 

 

국화꽃 한 송이에 담긴 지극한 정성,
그윽한 향기, 생기로운 시간
국화차

 

남탑산방 박문영 생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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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남탑산방 박문영, 조소순, 박정식 생산자

 

음력 6월 1일부터 9월 11일까지 국화를 수확해 차를 만드는 100일 동안 남탑산방 박문영 생산자의 하루는 새벽 3시 30분에 시작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시간에 일어나 꼬박 1시간 동안 다관에 국화차를 5차례 우려 1.3리터 가량 음미한다. 생산을 위해 가장 좋은 맛과 향을 찾는 그만의 방법이다. 다도 시간이 끝나고 4시 30분부터는 풀베기를 시작한다. 가끔 풀 베는 것이 싫증나면 차밭을 둘러 달리기를 하기도 한다.

 

박문영 생산자가 풀을 베고 달리기를 하는 남탑산방은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국화향길에 자리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생산하는 곳이 없던 품목인 국화를 관행농이 대부분인 지역에서 유기농법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박문영 생산자의 유기국화차 재배는 지역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고 지역 생산자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이를 인정받아 지번에서 도로명으로 주소 체계가 바뀔 때 남탑산방은 국화향길이라는 뜻 깊고 아름다운 주소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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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향길’이라는 주소명은 국화가 만발한 가을 남탑산방 모습을 꼭 닮았다. 수확을 기다리고 있는 금빛 꽃송이가 가득한 11월 국화밭에는 바람이 크게 불면 짙은 꽃향기가, 바람이 잔잔히 불면 은은한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왔다. 그 그윽하고 풍요로운 풍경은 “차를 마시며 세속을 씻는 시간이 좋았다”며 차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밝힌 생산자의 말과 닮아 있었다. 박문영 생산자는 1992년 봉정사에 딸린 암자에서 국화차를 법제하던 돈수 스님과 인연을 맺으며 국화차를 처음 접했다. 스님은 박문영 생산자에게 국화차 법제를 모두 전수하고 참선에 들어갔다. 안동 시내에서 젓갈과 생굴을 팔던 그는 법제를 전수 받고 2000년 가족과 함께 귀농했다. 2001년부터는 차 가공을 시작했고 2002년에는 정부 허가를 획득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국화차 판매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경황이 없었어요. 어차피 한 5년은 손해를 볼 것이다, 생각하고 시작한 귀농이에요.” 하지만 뜻밖에도 박문영 생산자의 남다른 삶과 그때만 해도 드물었던 국화차를 언론이 주목했다. 귀농하고 처음 7년 동안은 소비자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그 뒤 국화차 가공생산자들이 여럿 생기고 국화차를 싼값에 유통시키면서 처음 예상과 다르게 농사나차 가공 모두 손에 무르익어 갈수록 상황이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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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과 함께 일하게 된 것은 한살림 녹차 생산자인 임승용 생산자 덕분이었다. 임승용 생산자는 같은 차 생산자로서 박문영 생산자의 뜻을 높이 보고 한살림에 그를 소개하였다. “한살림을 이용하면 다른 곳보다 우리 국화차를 더 좋은 값에 살 수 있어요. 그렇다고 한살림에 울며 겨자 먹기로 물품을 싸게 내는 것은 아니에요”라며 이제는 한살림 생산자답게 중간 유통과정이 없는 직거래 방식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좋은 거래를 할 수 있음을 막힘없이 설명한다. “한살림이 까다로운 것은 사실이에요. 한살림과 공유할 것들이 많은데 저는 컴퓨터에 익숙지 않아서 아들이 같이 일하지 않았으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아내 조소순 생산자, 아들 내외와 딸까지 온 가족이 함께 일하고 있다. 서로 도움을 많이 주고받겠다는 말에 “풀 베거나 험한 일에는 아내 힘을 빌리지 않아요. 대신 우리 아내는 물품 개발하 는 일을 잘 해줘요”라고 답한다. 실제로 조소순 생산자는 여건이 어려워지면서 야산도 팔고 가구점도 팔게 되자 양파즙이나 고추장, 편강 등을 개발해 남탑산방을 꾸리는데 한 축을 담당해 주고 있다.

 

남탑산방은 국내 국화차 중에서 최초로 유기가공인증을 받은 곳이다. “우리가 직접 만들지 않은 것은 전혀 쓰지 않아요.” 농약, 화학비료, 제초제 등은 쓰지 않고, 퇴비는 칡, 숯가루, 쌀겨, 게 껍데기, 깻묵, 풀, 볏짚, 효소 찌꺼기 등 180가지를 섞어 자체적으로 만든다. “유기농으로 하다 보니 꽃송이가 적어요. 관행농 2,000평에서 거두는 만큼 수확량이 되려면 유기농으로는8,000평 농사를 지어야 해요.”

 

11월 초의 남탑산방은 햇차를 가공하기 위한 수확이 한창이었다. 적은 인력으로 빠듯한 일정이었음에도 생산자들은 모두 꽃꼭지 5mm 밑에서 꽃을 따야 한다며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차를 끓였을 때 꽃의 형태를 생생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박문영 생산자는 생산부터 가공까지 모든 순간마다 정성을 놓치는 법이 없고 철학이 흐트러지는 법도 없다. “제가 신념을 가지고 만든 물품이에요. 믿고 아무 걱정 마시고 드세요.” 국화차는 11월에 수확한 뒤 2~3개월 숙성했을 때 가장 맛과 향이 좋다고 한다. 이제 곧 국화차를 마시기에 가장 좋은 시기가 돌아온다.

 

글ㆍ사진 정연선 편집부

 

 

알고 마시면 더 그윽한

국화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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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한 한살림 국화차

 

집 마당의 국화를 말려 차를 만들 수 있을까요?

주변 여기저기 피어 있는 국화가 모두 국화차로 이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국화차로 쓰이는 국화는 소국 중에도 꽃 가운데 열매를 맺게 하는 심이 없고 솜털처럼 부드러워 씨가 맺히지 않는 종류로 만듭니다.

 

남탑산방 국화차는 중국 국화차와 어떻게 다른가요?
중국에서는 국화를 말려 그대로 마시지만 그러면 독성이 남습니다. 남탑산방에서는 인삼, 대추, 감초 등 한약재 달인 물에 국화를 살짝 데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렇게 하면 독성이 사라지고 국화차의 찬 성질이 완화되어 체질에 관계없이 누구나 마실 수 있게 됩니다.

 

국화차와 잘 어울리는 물품은 어떤 것이 있나요?
녹차나 발효황차를 우려 국화를 띄워 마셔도 잘 어울립니다. 차는 냉성과 열성이 있는데 발효차는 열성, 녹차는 냉성을 지닙니다. 국화차는 본디 냉성이지만 제조과정에서 중성으로 만들어 어느 차에나 잘 어울립니다. 꿀을 함께 넣어 드셔도 맛이 좋습니다.

 

 

목, 2016/12/22-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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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 광주전남지부 총회 그리고 ‘의미가 되고 싶은’ 광주의 공익변호사 활동 들여다보기

글 정리 : 이혜정 변호사

 

  • 이야기 하나 : 광주전남지부 총회

2017. 2. 8. 쌀쌀한 저녁. 민변 광주전남지부에서 정기총회가 열렸다. 총회에는 대략 30여명의 회원이 참석하였고, 이 날 두 명의 신입회원이 가입하여 총 53명의 성원보고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총회가 시작되었다. 최근 광주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 당선된 최병근 변호사님과 정연순 회장님의 인사말에 이어 2016년 주요 안건과 사업에 대한 보고와 결산 및 세세한 평가가 이어졌다. 광주전남지부 총회를 위해 본부에서는 7명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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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인 것은 신입회원에 대한 가입 승인과정이 본부와 달리 매우 엄격하다는 것이었다. 이 날 승인된 두 명의 신입회원은 가입신청서 제출 후 40여분에 이르는 집행부의 심층 압박 면접을 견뎌야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신입회원에 대한 보증 절차를 거쳐야 했고, 승인 전 표결을 위한 질의를 받은 다음, 6인 이상의 반대가 없으면 그제서야 비로소 광주전남지부의 정식회원이 되는 것이다! 이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는 의미로, 지부에서는 회원임을 인증하는 커다란 벽시계를 선물로 증정한다. 그 시계에는 “민변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라고 쓰여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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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당일 험난한 과정을 거쳐 신입회원 승인을 받고, 인증 시계를 수여받은 길탁균, 김춘호 변호사님

총회자료집에 빼곡하게 자리 잡은 각종의 활동들이 지난 한 해 동안 지부가 얼마나 분주하게 공익을 위해 헌신하였는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각종 사업보고에 이어지는 정량평가와 정성평가는 아주 세심하고 날카로웠다. 가령 2016. 공익소송기획에 대한 정량평가의 경우 5점 만점을 기준으로 공익소송 활동은 4점, 배당은 2점, 사건발굴은 4점을 부여받았는데, 양질의 사건을 발굴한 것이 높게 평가되었다. 회원사업의 보고는 회원 상호간 친목도모의 경우 배점은 7점이나 그 평가에 있어서는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점수를 줄 정도는 아니라고’ 자평. 또한 활동을 하면서 회원들이 자연스레 만나는 과정에서 인생의 동반자가 됐거나, 회원과 지부에 관심이 많은 비회원 간에 곧 결혼할 커플이 있었는데, 이러한 인연 뒤에는 회원사업단이 의미 있는 인과관계를 끼쳤다며 회원사업단의 업적으로 자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다소 억지스러운 자찬을 의식해서인지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인과관계가 없다는 측의 항의를 우려해 각주처리를 하면서, 막연하나마 인과관계에 대한 근거를 곁들이며 설명한 것은 마치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게 하는 나름의 설득력이 있어 어느새 수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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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면서도 따뜻한 정감이 느껴지는 총회자료집만 봐도 광주전남지부의 활동과 분위기가 얼마나 가족적이고 화목한지 추운 날씨 속에서도 절로 훈훈함이 느껴졌다. 6시가 넘어 시작된 총회는 8시로 넘어가자 식사를 위해 뒷풀이 장소로 이동했다. 숨소리마저도 크게 들릴 정도로 근엄했던 총회와 달리 뒷풀이는 웃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즐거웠다. 지부 사회는 총회며, 뒷풀이며 정인기 변호사님 전담으로 보였는데, 진행이 깔끔하고 착착 진행되는 느낌에 감탄스러웠다. 김상훈 지부장님은 귀여운 얼굴을 더 돋보이게 하는 덧니가 매력적이어서 보기만 해도 웃음이 삐져나오곤 했는데, 그 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부장님의 그 덧니 뒤에는 또 다른 이가 숨어있는 게 아니라 익살스러움과 유머스러움이 한가득 자리 잡고 있음을. 특히 본부에서도 시급히 도입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 건배사 전의 지부장님의 호명 3창은 분위기를 흥겹게 달아오르게 하면서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었고, 서 있는 사람으로서는 짧게나마 건배사 멘트 준비시간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친구따라 조건 없는 기부를 거침없이 하시고, 자그마한 얼굴에 우병우와 유재석, 최근 대한변협 회장으로 당선된 그 분의 얼굴까지 두루 가지고 있으면서도 개그맨보다 더 웃겼던 강성두 변호사님, 지부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고 선한 아우라를 가진 임태호 변호사님, 소고기도 아닌데 겉만 익었다 싶으면 마구 먹어치우는 제 앞에서 연신 고기 굽느라 바빴던 박인동 변호사님, 가장 지부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도 부족했다며 활동이 뜸한 회원을 위축시키게 한 송창운 변호사님, 너무도 아름다우신 임선숙 변호사님, 광주지부 여성회원들은 어찌 다 그리 고우신지요. 이름만 접했을 때는 원로변호사님 같은 느낌이었는데 실제는 최강 동안인 이상갑 변호사님. 그가 있어 광주가 낯설지 않은 동기 김정우 변호사님. 지부를 든든히 지키고 있는 두상이 잘생긴 전직 락커 박상희 간사님 등 한분 한분이 그렇게 정겹고 그 시간이 너무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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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 쪽 세 번째가 “웃기려고 하는 게 아닌데 여기저기 빵빵 터트리는 놀랍고 신비로운 일”(박상희 간사)을 일으킨다는 강성두 회원. 광주지부 제공

광주에서 발견한 것은 지부 회원들의 따뜻함만이 아니었다. 그 날 식당은 낙지마을로 예정돼 있었는데 실제는 낙지가 아닌 메뉴에도 없는 생뚱맞은 삼겹살이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낙지전문점인 그 식당에서 맛본 삼겹살은 그 동안 먹어 본 삼겹살 중 가히 최고라 말할 수 있었다. 역시 맛과 멋의 고장 광주는 남달랐다. 전공이나 전문이 아니더라도 최고의 맛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마도 광주지부의 변호사들 또한 그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전문영역뿐 아니라 때로는 낯설고 막막한 공익사건을 마주할 때도 최고의 실력과 헌신으로 준비한다는. 광주는 이런 전통과 습관이 모든 곳에서 자연스레 베어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머와 여유를 잃지 않으면서도 불의 앞에 당당했던 민주화의 성지 광주는 지부 회원의 면면 속에 그대로 담겨있었다. 따듯한 추억 한아름을 선물해 주신 광주전남지부 회원여러분, 정말 감사드리고, 5월 총회에서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겠습니다!

  • 이야기 둘 : 광주전남 지부 속 공익전담 이소아 변호사의 사는 이야기

이혜정 : 오랜만입니다. 모르는 회원들도 있으니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이소아 : 안녕하세요?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의 이소아 변호사입니다. 저희 단체는 수도권을 벗어난 지역, 특히 인권의 도시 광주에서 공익인권 전업으로 법률지원을 하는 비영리단체이구요. “존엄과 권리를 상실한 이들 곁에서 바라보는 귀, 듣는 눈으로 들어 법의 목소리로 세상에 전달하고자“하는 지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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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 서울에서 활동하다 광주로 가셨는데 광주에서의 근황은 어떤가요.

이소아 : 2013년 광주에 내려오면서 개인적으로는 정말 많은 일이 있어서 정신없이 지냈어요. 친정 부모님 두 분이 모두 편찮으셔서 간병을 해야 했고, 지난 가을에는 아빠가 돌아가셨구요. 아이를 낳게 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생활에 있어 변수는 더 많아지는 것이니까요.그래도 뭐 어찌어찌 다~ 어떻게 지내왔어요. 주변 분들의 도움도 컸고, 신랑의 도움도 컸구요.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오히려 미리 걱정하는 버릇이 줄어들었어요. 미리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두더지와 같은 근시안으로 살기로 했어요. 닥친 일을 하나씩 해나가는 걸로. 일적인 측면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지요. ‘동행’이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었으니까요. 처음 이 일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부정적인 전망도 많았어요. 광주는 도시 자체가 생산 도시가 아닐뿐더러 후원에 대한 시민의 인식도 상당히 박하거든요. 또 변호사가 왜 굳이 비영리단체의 상근변호사로 일하냐, 그냥 지금처럼 자신의 사무실에서 좋은 일하면서 지내면 되지 하는…. 그런데 사실 저는(이런 말 하면 겸손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잘될 것 같은, 잘 해낼 것 같은 자신이 있었어요. 제가 광주에 내려와서 계속하여 접촉했던 인권단체들은 법률전문가의 결합에 매우 목말라 하고 있었고, 지역에도 지역 고유의 여러 가지 인권 이슈들이 있었거든요. 저는 서울에서 계속 단체 내 상근변호사로 일을 했었기에 이를 어떻게 하면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고 있고, 이를 잘 엮어낸다면 시민들에게도 후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현재는 약 170명 정도의 후원회원들이 계시고 월 약 300만원 정도의 정기 후원금이 들어오는 단체로 성장했어요. (지역에서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이 정도 규모로 성장한 비영리단체는 없답니다)

이혜정 : 와 대단하시네요. 광주에서 공익전담으로 전업하게 된 과정과 동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소아 : 제가 올해 9년차 변호사인데, 해마루 광주분사무에서 근무했던 1년 반 동안만 로펌에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단체 내 상근변호사로 있었어요. 그러니 해마루에서 공익전담으로 전업을 했다기 보다는, 공익전담으로 다시 복귀를 했다고 보시면 되어요. 저는 연수원을 수료하자마자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성매매피해여성을 위한 ‘다시함께센터’에서 일을 했고 아파서 잠깐 쉬다가 2011년 5월에 민변에 상근변호사로 들어갔었지요. 왜 공익전담으로 일을 하냐고 물으신다면…. 그게 저한테 재미있고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얼마 전에 제가 2004년도에 적었던 일기장을 보고 웃었던 적이 있어요. 당시는 제가 사법시험 1차에 여러 번 떨어지고 마음속으로 굉장히 지쳐있던 상황이었는데, 1년 후, 5년 후, 10년 후, 30년 후, 계획을 써놨더라구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왜 하고 싶은가, 어떻게 이룰 것인가 순으로….5년 후 계획이 단체 상근변호사로 일한다, 10년 후 계획이 뭐더라… 이거랑 비슷한 거였는데… 아무튼 그때 왜 하고 싶은가를 적는 칸에 “의미가 되고 싶어서”라고 써있더라구요. 당시에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상태라 인정욕구가 정말 강해서… 그런데 지금은 이유를 바꾸고 싶어요.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라고.

그리고 광주에서 변호사가 상근하는 비영리단체를 만든 이유는 간단해요. 필요하니까. 그리고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광주에 내려와서 1-2년 동안은 앞에서 말했던 개인사 때문에 돈이 좀 많이 필요해서 로펌에 잠시 있었지만, 광주에 내려오면서부터 제 마음 속에 광주의 공감 같은 단체를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지요. 그래서 광주지역 인권단체 현황을 계속 알아봤었어요. 그냥 먼저 전화하거나 찾아가서 저를 알리고 함께 일할 부분 있으면 함께 하자고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1년 반 이상 네트워킹을 쌓아갔어요. 그러던 중 마침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공익전업변호사 자립지원사업 공모전을 하는 거에요. 2년간 변호사의 급여를 어느 정도 지원해주는 거에요. 기회다 싶어서 바로 단체를 만드는 것을 실행에 옮겼지요. 실질적으로 단체를 만드는 부분은 ‘희망법’이나 ‘감사와 동행’, 법률사무소 ‘보다’, 이주민센터 ‘친구’등에 의견을 구하면서 진행했구요. 결국 저 혼자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이혜정 : 그러면 공익 전담을 결정했을 때나, 현재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어려움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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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 전담을 결정했을 때 어려움은, 제가 광주에서 공익전업을 다시 시작한다고 했을 때 아무래도 신랑이 약간 당황했었어요. 전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엄마 간병비 등 계속 고정적인 목돈이 들어가거든요. 그래도 결국 흔쾌히 받아들여줬고, 이제 시아버님과 시누이도 저희 단체의 든든한 후원자세요.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는 법원에서 실무자가 화난 목소리로 전화해서 변호사를 찾을 때, 제가 변호사라고 했더니 목소리 톤이 바뀐다거나… 하는. 단체의 실무자가 없어서 모든 실무를 제가 직접 하는데, 제가 숫자에 어두워서 홈택스 등 세무 신고에서 오류가 날 때. 뭐 그럴 때.

이혜정 : 현재 주로 진행하는 공익 사건은 어떤 사건들인가요.

이소아 : 장애인권 관련해서 근육병 환자가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활동보조서비스를 신청할 수 없게 되어있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활동보조서비스 변경신청 거부처분 취소소송, 성매매 피해 여성에 대한 사건들 중 특히 태국 여성들이 한국에 데려와져서 성매매를 하도록 강요당하는 일들이 생기고 있는데 그 여성들에 대한 지원, 뇌전증 환자 장애등급변경취소소송, 결혼이주여성의 이혼사건, 이주노동자의 난민불인정처분취소소송,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원, 국가보안법 형사변론, 세월호 현장에서 70일간 근무하다가 자살하신 진도경찰분 유족의 유족보상금거부처분취소소송 등…. 뭐 지금 생각나는 건 이 정도입니다. 올해에는 주로 장애인권분야와 이주노동분야에 집중하려고 해요. 농업법률분야도 신경 쓰고 싶은데 아직 여력이 없네요.

이혜정 : 다양한 사건들을 두루 하시네요. 광주에서의 공익사건 현황이나 루트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이소아 : 주로 단체들을 통해서 진행돼요. 성매매피해여성상담소, 성폭력 상담소, 장애인권센터,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발달장애지원센터, 이주노동자 상담소 등. 저희 단체가 상담소처럼 붙박이로 상담하는 인력이 배치될 수는 없는 구조여서 개인이 직접 찾아오시는 경우는 아직은 잘 없어요.

이혜정 :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이소아 : 2014년 겨울 여수의 한 유흥주점에서 여성종업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어요. 이 사건은 원래 조용히 묻힐 뻔했는데, 함께 일했던 동료 여성 9명이 업소를 나와 광주에 있는 언니네 상담소에 제보를 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어요. 보통 다른 성매매 관련 사건의 경우 동료들이 이렇게 증언해주지 않아요. 왜냐하면 어찌 되었건 간에 자신의 생계가 달렸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 9명의 여성 모두가 업주의 끈질긴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고 일관되게 증언해 주었어요. 9명의 여성은 수사과정에서만도 각 2-3회 조사를 받았고, 재판 과정에서도 업주가 혐의를 부인해 모두 법정에서 2-3시간씩 증언을 했었거든요. 그 과정이 언니들에게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증언을 해주었어요. 그래서 업주들도 상당한 처벌을 받았구요.

여수 여성 사망 사건 언니들의 손

‘여수 여성 사망사건’에서 흔들림 없이 증언했던 ‘언니들’의 손. 이소아 변호사 제공

이 사건은 제가 일을 잘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여성들이 용감하게 증언을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사건이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그리고 진도 경찰분 유족보상금거부처분취소소송 1심에서 승소했을 때, 1심만 거의 2년이 걸렸는데요. 당연하고 마땅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심리적 부검이라는 입증방법에 대해서 고민도 많이 하고 여러 가지 자료도 많이 찾아보았던 사건이라 보람이 되는 사건이었어요. 아직 2심이 진행 중이긴 하지만요.

이혜정 : 활동가와 변호사 그 경계선에서 행동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차이가 있나요?

이소아 : 변호사와 활동가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는 거죠. 활동가는 그 문제에 전면적으로 결합하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활동가로서 당사자, 단체 분들과 함께 가며 일을 진행하는 방식이 저와 맞아요. 반면 변호사로써 거리두기가 필요한 경우도 있어요. 그래야지 나의 전문성이 인정받고, 내가 제출하는 서면에 힘이 실리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이 부분의 강약을 조절하기가 참… 힘들어요. 그럼에도 당사자, 단체 분들과 ‘함께’ 가는 것이 좋아요. 법률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거든요. 저는 ‘내가 이 문제 전체를 해결하겠다.’라는 마음으로 일하지는 않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해야 할 부분을 다하는 것일 뿐이지, 그 결과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이혜정 : 광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이소아 변호사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든든하네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혜정 : 저희 단체가 광주에 있긴 하지만 저희가 다루는 인권 이슈들이 단지 광주에만 한정되는 문제들이 아니에요. 장애인권, 이주노동자 인권도 마찬가지로 저희가 다루는 문제들이 결국 관련한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일들이더라, 그래서 인권의 연대의 중요성에 대하여 새삼 깨닫게 돼요. 광주전남지역에 사는 분이 아니더라도 저희 단체가 다루는 문제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후원을 해주시길 바래요. 여러분의 후원이 작지만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낼 원동력이 될 것이거든요. 후원신청은 www.companion-lfpi.org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금, 2017/02/1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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