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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발바닥으로 읽는 환경부정의_ 북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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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발바닥으로 읽는 환경부정의_ 북촌

익명 (미확인) | 화, 2016/10/11- 11:15

발바닥으로 읽는 환경부정의_ 북촌 편

독립운동 기운 서린 북촌,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위기 맞다

 

발바닥으로 읽는 환경부정의(이하 발바닥) 네 번째 여정은 북촌이었습니다. 청계천을 기준으로 남촌과 북촌이 나뉘었는데, 가난한 양반이나 하급관리들이 주로 살던 남촌과는 달리 북촌에는 조선시대 때 여덟 명의 판서가 살았다 하여 팔판동(八判洞)이 있고 주로 고위관료와 당시 실세가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남주북병(南酒北餠). 남산 밑은 술을 잘 빚고 북촌은 떡을 잘 만들었다고 하여 붙여진 말입니다. 술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남촌과 그 당시 쌀밥도 귀하던 곳에 쌀이 남아서 떡을 해 먹던 부자 동네, 북촌의 양극화된 모습은 지금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권력과 부가 존재하던 북촌 안에서도 돈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는 양상입니다. 바로 지역이 유명해지면서 지대rent가 높아지고 임대료가 높아지면서 임차인들이 쫓겨 나가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그것을 방증합니다.

북촌을 가기 전 우리는 성북동에서 그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발바닥 프로그램으로 북촌을 선택한 이유는 환경부정의로써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을 만날 수 있는 부분과 역사적으로 독립의 기운을 북촌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북동에는 만해 한용운의 옛 집인 심우장이 있습니다. 만해 한용운은 이 곳에 터를 잡고 북향집을 지었습니다. 북향 산비탈에 남향이 아닌 북향으로 지은 까닭은 만해 선생이 조선총독부가 있는 남쪽을 향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이 집은 만해가 3.1 운동으로 3년 동안의 옥고를 치르고 나온 후 지은 집입니다. 심우장을 향해 가는 길목에는 만해 선생의 결기를 느낄 수 있는 문구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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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장에서 가까운 소설가 상허 이태준 선생이 사셨던 수연산방에 들렸습니다. 이 수연산방은 현재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탐방객들이 그 가옥을 마음 편히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이태준 선생은 한 때 월북 작가로 언급조차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학교 정규 수업에서 「돌다리」, 「달밤」과 같은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태준 선생이 쓴 「복덕방」에 보면 1930년대에도 부동산 투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배경이 바로 북촌 근방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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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장을 나와 북정마을 쪽으로 방향을 잡고 올라가다 보면 아주 좁은 골목과 옛집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날 함께 한 초등학생은 집들이 왜 이렇게 생겼냐고 아빠에게 묻더군요. 서울에서는 이제 이런 집을 보기가 힘든데다가 재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천편일률적인 아파트가 들어서 버리기 때문이겠지요. 동네 주민들만이 지나다닌다는 풀이 가득한 곳을 지나쳐서 서울성곽에 도착했는데 서울성곽을 배경으로 바라보는 서울의 가을하늘은 높고 또 높았습니다. 비가 온 뒤라 그 청명함이 더해져 우리의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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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다랗게 나 있는 산길을 내려가니 드디어 북촌에 다다랐습니다. 감사원 옆에 있는 중앙고등학교 안으로 진입했는데, 학교라서 주말에만 통행이 가능하다는 점, 기억해 주세요. 서울 종로구 계동에 있는 중앙고등학교는 일제강점기에 학생들이 3.1운동, 6.10만세운동, 광주학생항일운동을 벌인 전통 사학입니다. 중앙고등학교의 본관, 서관, 동관 모두 사적에 등록되어 있을 정도로 역사적 가치가 높습니다. 중앙고등학교의 남동쪽 앞마당에는 3.1운동의 책원지가 된 중앙고보 숙직실이 현재 삼일기념관으로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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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고등학교 정문을 나와서 조금 걸으면 왼쪽 편에 석정보름우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지금은 폐정이 된 채 한길가에 방치되어 있는데, 마침 버려진 쓰레기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습니다. 차와 쓰레기에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는 그곳을 설명을 들으며 보고 있노라니 외국 관광객들도 하나 둘씩 구경을 하더군요. 이 보름우물은 초기 천주교 역사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최초의 외국인 사제 주문모 신부는 1795년 ‘북촌 심처’에서 이 샘물을 성수(聖水)로 조선땅 첫 미사를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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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가희동주민센터 근처에 있는 근대 한옥의 양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백인제 가옥을 방문했습니다. 토요일에는 시간대별로 해설사가 약 1시간 가량 가옥의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의 속속들이 설명을 해 주더라고요. 사전신청 방식인데 꽤 인기가 높은 듯 보였습니다. 답사를 위해 개인적으로 방문했을 때는 그 외형만 봤다만 설명을 들으면서 돌아다니니 가옥의 외부와 내부 모두 의미 없는 것들이 없었습니다. 이 가옥은 동시대의 전형적인 상류주택과 구별되는 여러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사랑채와 안채를 구분한 다른 전통한옥들과는 달리 두 공간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어, 문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 있습니다. 또한 안채의 일부가 2층으로 건축되었는데, 이는 전통한옥에서는 유래를 찾을 수 없는 형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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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을 나와 큰 길을 건너기만 하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쫓겨나게 된 ‘장남주우리옷’과 ‘씨앗’ 농성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사실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다면 많은 관광객으로 인한 분주함과 화려한 가게들 사이에서 조금 이상해 보일 뿐이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잡지는 못하는 상황이어서 안타까웠습니다.
두 가게가 입주한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로 2층짜리 건물주인 삼청새마을금고는 올해 8월 22일 오전 7시쯤 철거용역 40여 명을 동원해 강제집행(철거)했습니다. 당시 두 사장은 건물주인과 명도소송 중이었습니다. 건물 주인은 계약기간이 만료되자 두 가게 자리에 프랜차이즈 카페를 들이겠다고 했고 두 김 사장은 퇴거 조건으로 ‘권리금(영업가치를 인정해 이전 상인에게 지급하는 돈) 7000만원을 보장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지난해 5월 13일 개정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통과되면서 상가 양도양수 과정에서 권리금 보장이 제도화된 바 있지만 이 법이 통과되기 불과 한 달 전 건물주와의 계약기간이 만료된 상황이어서 건물주는 ‘권리금 없이 나가라’며 명도 소송을 시작했고 소송 중인 건물을 새마을금고가 사들였습니다. 지난 2월 두 가게는 명도 소송에서 패했습니다. 임차인들은 삼청새마을금고가 당시 명도 소송 때문에 유리한 조건으로 건물을 매입했고 세금 감면 혜택까지 받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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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삼청새마을금고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서 임차인들을 내모는데 거리낌이 없어 보였습니다. 답사를 갔을 때는 그 곳을 지키는 분들이 계셨는데 이날은 작은 텐트 안에서 잠시 쉬고 계셔서 차마 이야기를 청해 듣지는 못했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서울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환경정의 사무실이 있는 망원동에도 망리단길(망원동+경리단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만큼 세련된(?) 가게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안을 더 들여다보면 어떤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있을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여정을 마치기 전에 헌법재판소 안에 있는 백송(흰 소나무)과 북촌전망대로 알려져 있는 맹사성 집터엘 들렸습니다. 북촌전망대는 현재 두 군데인데 맹사성 집터는 길찾기 앱에서 ‘북촌동양문화박물관’을 찾으면 됩니다.

이로써 발바닥으로 읽는 환경부정의, 북촌 여정을 마치고 함께 했던 회원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다음은 어디로 떠나고, 또 어떤 세상을 만날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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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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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5.9) 오전 11시 김포시의회에서 <국립환경과학원 김포 환경피해지역 토양샘플 재분석 결과발표에 따른 김포시의 의혹 해소 조치 촉구 기자회견>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기자회견은 국립환경과학원이 김포 거물대리·초원지리일원의 2차 환경역학 본 조사(책임연구원 임종한, 2014.5 ~ 2015.10)에 사용되었던 토양 샘플을 분석한 결과, 역학조사팀 결과와는 상당히 일치한 반면 김포시에서 의뢰한 교차분석기관의 결과와는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김포시에 교차분석기관 토양오염조사 결과에 대한 의혹을 해소할 것을 촉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토양샘플 재분석은 환경정의가 우원식 국회의원에게 요청하여 국립환경과학원에서 진행되었으며, 토양 샘플 분석결과는 역학조사기관인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 보관 중인 2차 역학조사에서 사용되었던 전체 15개 토양 샘플 중 분석 가능한 13개 샘플을 재분석한 결과입니다. 그 결과 13개의 모든 토양 샘플에서 구리, 비소, , 아연 등 각각 5~6개의 중금속이 검출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결국 한국산업기술시험원이 어떤 중금속도 검출 되지 않았다고 했던 12개 샘플에서 모두 구리, 비소, , 아연 등 5~6개의 중금속이 검출된 것입니다

김포 환경문제 범대위는 국립환경과학원의 토양샘플 결과에 따라 다음과 같은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첫째,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한국산업기술시험원의 분석이 잘못되었을 가능성 

둘째, 두 기관의 분석 샘플이 동일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

김포 환경문제 범대위는 김포시가 이와 같은 의혹에 대해 즉각 해소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합니다.

월, 2016/05/0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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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석에 달라붙는 먼지 김포시 대곶면 거물대리 주민 집안 곳곳에 날아든 먼지. 주물공장에서 날아온 먼지는 자석에 달라붙는다. 지난 2014년 9월 <오마이뉴스>와 만난 김씨는 이 먼지 때문에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포 초원지리, 거물대리 2차 환경역학조사(책임연구원 인하대학교 임종한, 2014.5 ~ 2015.10)가 끝나고 지역주민들의 건강피해, 환경피해가 확인되었으나 피해주민들에 대한 구제책 없이 8개월여가 지나고 있다.

 

‘제발 어떻게 좀 해달라’ 시에 민원 넣었지만…

김포시(시장 유영록)가 직접 용역 발주한 1차 예비역학조사는 지난 2013년 9월부터 2014년 2월까지 진행되었으며 토양, 농작물, 지하수 등 환경매체를 중심으로 조사하여 중금속 등의 오염여부를 확인했다. 특히 카드뮴과 니켈은 관련 기준을 초과하거나 오염된 환경에서의 중금속농도보도 훨씬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고, 일부 주민을 대상으로 한 인체노출검사에서 니켈수치가 주거지역에 특정하지 않고 높은 농도를 보였다.

2차 환경역학조사는 예비역학조사의 결과에 기초해서 거물대리, 초원3리 지역의 공장이 환경오염을 유발하는지, 그리고 주변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평가하기 위해 1995년부터 2015년까지 운영된 사업장 113곳에 대한 사업장에 대한 정보 분석, 대기조사, 지하수, 토양조사, 지역주민에 대한 건강조사를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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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오염조사 측정위치와 거물대리 및 초원지리 상세 위치

 

(사)환경정의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최종보고서에 의하면 김포 거물대리, 초원지리 지역에 대한 환경피해는 대기오염조사결과에서 잘 나타난다. 조사대상 지역 내 주물공장과 인접해 있는 주민의 옥상, 교회 운동장 등은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김포시청 옥상과 월곶면 민방위 주민대피시설 보다 대기중 중금속량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카드뮴, 크롬, 니켈 등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으며, 그 중 구리, 망간, 아연의 경우는 의미 있는 차이가 있었다.

특히 카드뮴과 같은 성분들이 조사 대상지역에서 높은 빈도로 검출되었다. 카드뮴은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고 주요하게는 제련공장, 카드뮴 화합물제조 공정, 염화비닐 안정제 등 때문에 나타난다. 조사 대상지역에서 이것이 높은 빈도로 검출된 데는 이 지역에 산재한 공장 때문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사실 이 지역은 계획 관리 지역으로 여러 가지 유해물질 배출공장과 주택이 혼재해 있는 등 난개발이 심각한 상황이다. 중금속 항목은 전국측정망과 비교했을 때 크롬과 철성분이 인천과 서울지역에 비해서도 상당히 높게 검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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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포 거물대리, 초원지리 주거지역의 창틀먼지, 청소기 필터와 국내외 다른 지역과의 비교. 김포 거물대리 초원지리 주민의 집에서 채취한 창틀먼지, 청소기 필터속의 먼지와 다른지역의 먼지속의 중금속 비교(2차 환경역학 최종보고서 내용중)

 

지역 내 주민의 집에 쌓인 창틀먼지와 청소기 필터 먼지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다른 지역에 비해 중금속 물질들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대기 중 중금속 오염이 거주자들의 주거환경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평가하기 위해 거물대리 및 초원지리 일원의 11가구를 대상으로 창틀먼지와 공기청정기 필터를 채취하여 검사했다. 그 결과 조사대상지역의 평균 농도값이 다른 지역보다 높았다. 이러한 결과는 지역주민들의 주거생활환경이 지역 내 혼재해 있는 공장 등의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역학조사에서는 뚜렷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동안 주민들이 가장 크게 고통을 호소했던 것은 심각한 악취다. 지난 수년 동안 주민들은 지역 내 주물공장 등 유해물질배출공장에서 나오는 매캐하고 시큼한 냄새로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주물공장 등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공장이 가동할 때면 코가 마비되고 목이 아파서 생활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김포시에다 ‘제발 어떻게 좀 해달라’고 민원을 넣어 봐도 별반 달라지는 게 없어 이것저것 포기하고 다른 데로 이사 가는 게 그나마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이러다 보니 이제는 지역주민들보다 공장이 더 많고, 산업단지가 아닌데도 마치 산업단지처럼 공장들만 보이는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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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포시 환경피해 민원접수 및 처리현황(2011-2015).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김포시 환경관리사업소와 환경정책과에 접수된 민원 현황. 김포시는 기존 지역내 공장 지도, 관리 업무를 확대 강화하고자 기존 환경보전과를 확대하여 환경관리사업소를 신설하였다.

악취의 심각성은 주민들의 민원에서도 나타난다. 자료에 의하면 환경관련 부서 중 환경관리사업소와 환경정책과에 접수된 민원해도 2015년 한 해 총 2619건으로 상당히 심각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지역 내 공장의 환경 지도·점검이나 환경관리를 주 업무로 하는 환경관리사업소에 접수된 민원을 보면 2011년 167건에서 2013년 429건, 2015년 1023건으로 크게 늘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서도 민원이 많다. 이중 악취와 관련된 민원은 과거 5년 동안 총 2420건의 민원 중 1122건으로 46.4%정도이고, 지난해 2015년 한해만 보면 전체 1023건 중 598건(58.5%)이 악취 민원이다.

이러한 상황은 김포시 환경문제가 거물대리, 초원지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 지역의 문제이며, 난개발로 들어온 공장들 때문에 주민들이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김포지역에서 환경정의가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주민마다 늘 하는 얘기가 있다.

“김포시 공무원들 여기 와서 일주일만 살아보라고 해, 그러면 아마 못살겠다고 다 도망갈 걸…”

이렇다 보니 지역주민들의 몸에 이상이 없을 리 없다. 김포 거물대리 초원지리의 건강조사의 경우 식도, 위, 결장, 직장 및 항문 등 소화기계 함 표준화 사망비는 2.43(95% 신뢰구간, 1.17 ~ 4,47)이고, 초원지리의 폐암 표준화 발생비는 2.08(95% 신뢰구간, 1.07 ~ 3.63)으로 높게 나왔다. 거물대리, 초원지리에서 암 등으로 죽은 주민이 많다는 주민들의 얘기가 충분히 근거 있는 얘기로 확인된 것이다.

주민들은 공장 이전과 주민 이주, 피해가 확인된 주민에 대한 보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전보다 단속이 강화되고 일부 공장들이 민원발생소지가 적은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주민들은 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집 옆에 공장이 아직 있고, 아침저녁으로 악취는 여전하다.

지금도 건강피해가 있다는 주민들은 그곳에 그대로 살고 있는데 김포시와 환경부는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올해 초 김포시의회 의장과 김포시, 주민대표, 환경정의와 지역단체 등이 참여한 간담회에서 주민들이 ‘민·관 공동 논의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김포시장이 나서서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대책 마련을 위해 조속히 지역사회와 함께 논의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금, 2016/07/1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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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인사-1

새해를 맞이하면서 환경정의만이 할 수 있는 일, 환경정의가 잘 하는 환경운동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그 고민의 결과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언제나 환경정의의 활동을 기대하시고 지지해 주시는 회원님, 시민사회 단체, 시민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새해 福 많이 받으세요!

금, 2016/02/05-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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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30일, 4월의 마지막에 회원님과 함께 서대문에 다녀왔습니다. 첫 번째 프로그램이라서 그런지 아주 많은 분들이 오신 건 아니었지만 환경부정의, 역사, 문화에 관심이 깊은 회원님들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그날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신 분은 도시문화해설가이시고 환경정의의 오랜 회원이신 윤경하 선생님이셨어요. 

  
(출발)서울역사박물관 앞 – 경희궁과 서대문 – 창덕여중 성벽 흔적 – 경교장 – 월암동 바위 – 홍난파 가옥 – 딜쿠샤 – 사직터널과 독립문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옥바라지 골목(구본장에서 주민과의 만남과 대화)
성벽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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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성벽의 옛 터, 현재 창덕여자중학교의 외벽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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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의 일부만 남아 있는 모습

이화여고 서문(西門)에서 오른쪽으로 나와서 농협중앙회와 이화외고 사이 골목길로 들어가면 담장 너머 공간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보면 창덕여중 담장이 다시 나타납니다. 담장에는 ‘서대문 성벽의 옛터’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는데요, 일제의 도시계획에 따라 성벽은 헐리고 성벽의 축대만 남았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네모 반듯한 성돌로 보아 숙종 때 쌓은 성곽으로 추정된다고 하네요. 창덕여중 자리는 개화기에 프랑스 공사관이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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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심이 많은 이하윤 어린이도 열심히 듣습니다

경교장
버스정류장 이름으로만 들어왔던 경교장은 강북삼성병원 입구 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경교장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일본식 주택인데요, 일제 강점기의 금광업자 최창학의 별장이자 1945년 11월 4일부터 1949년까지 김구 선생님의 사저이자 공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청사였습니다. 실제로 1, 2층 걸쳐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김구 선생님의 잠자리는작은 편이었고 다다미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김구 선생님은 그곳에서 총상을 입고 스러져 가셨는데 총알이 창문을 뚫고 지나간 흔적으로 아직도 볼 수가 있어서 마음이 저절로 숙연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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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이 지나간 자리를 볼 수 있는 창문

월암동 바위
다음으로 간 곳은 월암동 글씨가 쓰여 있는 바위를 보러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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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월암동 바위 글씨 (오른쪽) 현재 공사 현장 때문에 글씨를 볼 수 없다

송월동은 1914년 송정동과 월암동이 합쳐져서 생긴 이름입니다. 월암동은 보름달처럼 생겨 월령바위, 달바위라 불렸다고 합니다. 이 글씨는 교남뉴타운 재개발 현장에 방치되어 있는 상황이라서 그곳에 찾아 가 본다고 해도 미세먼지가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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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난파 가옥

 

딜쿠샤로 가기 전, 홍난파 가옥은 반드시 지나치게 되어 있는데요. 이 집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멈춘 듯 하고 홀린 듯 집안으로 들어설 것 같은 아름다움을 간직 한 곳이었어요. 여는 시간이 주로 주중 낮시간대다 보니 일을 하고 계시다면 휴가를 내서라도 언제 한 번 꼭 들려보세요^^

이상향, 행복한 마음의 ‘딜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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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쿠샤의 옛 모습과 현재 모습

딜쿠샤는 힌두어로 ‘이상향’, ‘행복한 마음’이라는 뜻을 지녔대요. 지금도 DILKUSHA 1923이라는 표지석(돌판)을 볼 수 있어요.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2길 17에 위치한 딜쿠샤는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것으로써,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의 서양식 주택이에요. 바깥벽은 붉은 벽돌 쌓기로 마감되어 있고, 창들은 아치형, 지붕은 박공 지붕으로 현재 슬레이트가 덮여 있습니다. 건립연도와 건축양식, 벽돌 사용 방법 등 당대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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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은 3.1운동을 전세계에 알린 금광엔지니어 겸 UPI 통신사 특파원인 알버트 테일러가 1923년에 집을 짓고 1942년 일본에 의해 강제 추방될 때까지 살던 곳인데요, 전쟁 피난민들이 살기도 했으며 저속득층이 강제로 점거하여 사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사실 이 곳을 방문하면 눈앞에 펼쳐지는 광활한 땅은 이미 아파트가 광범위하게 세워질 준비를 하고 있고, 바로 앞 건물은 며칠 전에 완공이 된 꽤 가격이 나가보이는 집이 있어요. 어쩌면 이곳을 강제 점거하여 살던 분들 덕분에 이 소중한 역사적인 건물이 살아 남을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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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쿠샤 앞에 위치한 조선 권율 장군이 심은 것으로 알려진 420년 된 은행나무

너무 걸어다녀서 너무 힘든 나머지 앉아버렸어요. 참여하신 분들께도 앉으라고 권유했지만 앉지 않으시고… 그저 다들 당분이 필요했는지 하나 둘씩 과자를 꺼내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딜쿠샤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함께 대화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역사의 현장,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이 곳을 가기 전 독립문을 지나치게 되었는데요, 현재 있는 독립문은 실제로 있었던 자리에서 철거되었다가 다시 세워졌는데 개발광풍의 현장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간 곳은 일제시대 때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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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사진을 보면 한 나무는 살아 있지만 그 옆에 있는 나무는 죽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죽어 있는 그 나무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형수의 시신을 옮겨간 곳이었다고 하는데, 나무들도 그런 기운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1907년에 무악재 아래에 감옥을 짓기 시작해서 1908년 12월에 서대문형무소를 개소, 당시의 이름은 경성감옥이었습니다. 3.1운동의 상징인 유관순 열사도 이 곳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고 옥사,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가슴 아픈 근현대사를 겪으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공간입니다. 이 서대문형무소는 1967년에 서울구치소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87년에는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그 자리에 아파트를 건설하려다 시민들의 반대로 그 계획은 백지화가 되었다고 하네요. 1998년, 과거의 아픔과 역사를 교훈 삼고자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개관하였습니다.
하지만 온전히 보전해야 할 건물과 망루, 담장은 그 일부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옥바라지 골목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김구 어머니 곽낙원 여사는 옥바라지 골목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하루에 한두 끼 사식을 넣으며 생활했던 이 곳, 옥바라지 골목은 군부독재정권 시절 민주화인사의 가족들이 머물며 옥바라지를 했던 곳이었습니다.
이 곳은 소설가 박완서가 자란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박완서는 고된 셋방살이를 하면서 서울의 복닥복닥한 생활에 적응해 나갔고 박완서의 자전적 성장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썼습니다.

이 옥바라지 골목은 1930년대 집장사들이 지은 소규모 한옥 구조를 그대로 보존하다가 2000년대 초반 재개발이 추진돼, 지난 2016년 1월부터 철거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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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바라지 골목 철거 전과 후

안타깝게도, 문학과 역사적 가치가 충분히 있는 이 곳은 현재 최은아씨와 구본장여관 이길자 사장님만이 남아 힘겹게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도 반가운 것은 이 두분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중요한 곳이 사라진다는 점, 그 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쫓겨 나가야 한다는 점 때문에 함께 싸우고 계시다니 그나마 다행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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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최은아씨, 오른쪽이 이길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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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바라지 골목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투쟁하고 계신 두 분과의 대화시간

 

우리는 구본장여관에서 옥바라지 골목의 상황, 왜 다른 사람들은 떠나야만 했는지, 그리고 현재 이 곳 뿐만 아니라 피해를 입고 자신이 평생 살아왔던 곳을 떠나야만 하는 여러 경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 곳에서 사시거나 여관을 운영하면서 살던 분들 중 이제는 헌집 주면 새집으로 보답할게..라는 이 말에 속았다며 뒤늦게 후회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말을 들으니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내었습니다. 두 분은 참으로 의연해 보이셨어요. 오히려 그 동안 이러한 사실을 잘 몰랐다는 점과 큰 힘이 되어 드리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이 곳에 계시던 분들은 가슴을 쥐었어요.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연대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움직일 때 한 번이라도 더 움직이고, 또 이러한 사실을 외부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약 10km 정도 걸으면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부정의하게 생태계나 사람이 다치는 경우를 너무 많이 접하면서 이러한 것에 더욱 관심을 두고 이슈가 있을 때마다 공론화 하고 대안을 만들어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어요.

이미 두 집 말고는 다른 곳이 부서셔 내렸지만 이 곳이 문화적, 역사적, 그리고 인간적으로 다시 도시재생지역으로 살아나기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힘 없는 이들이 공권력과 자본 앞에 눈물 짓는 일들은 시민들이 함께 막아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것은 저 사람 문제가 아닌 내 문제이고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월, 2016/05/09-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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