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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변 대 담: 선배에게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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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변 대 담: 선배에게 길을 묻다

익명 (미확인) | 금, 2016/08/1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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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변 대 담: 선배에게 길을 묻다

민변 회원이 1,100명에 이르렀다. 누군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라지만 아픈 청춘을 겨우 버텨냈더니 혹독한 청년 변호사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티도 낼 수 없다. 난 변호사니까. 그런데 또 막막하다. 이럴 때 따스한 봄밤의 북두칠성 같은 길잡이가 나타나 길을 헤매지 않도록 안내해주고, 속내도 시원스레 얘기해 주는 선배가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민변 회원이 늘어난 만큼 같은 고민, 같은 궁금증을 가진 후배들이 부쩍 늘어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준비했다. 선후배 대담, “선배에게 길을 묻다”

chapter1. 선배 [先輩] : 지위, 나이, 덕행, 경험 등이 자기보다 앞서거나 높은 사람

태양마저도 녹아버릴 것 같은 타는 여름의 한 가운데에서 선·후배 변호사 4명이 어색하게 마주 앉았다. 류신환, 조숙현(연수원 30기) 변호사와 이 두 선배를 만나러 온 후배 심재섭(연수원 44기), 김경은(변시 5회) 변호사는 민변에 대해서도, 선배들에 대해서도, 변호사의 업무와 일과에 대해서도 궁금한 것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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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섭(이하 심): 저는 홍대 앞에서 사무실을 개업했습니다. ‘법률사무소 단’이라고, 딸 이름을 따서 지었습니다. 임신 중이었던 아내랑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합정동 카페거리 근처까지 갔는데 비가 내려서 거리 분위기가 참 운치 있고 좋더라고요. 그런 동네라면 출근할 맛이 나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아내랑 “여기로 하자”고 결정했습니다.

아직은 철이 없어서 그런지 수입에 대해 크게 마음이 초조하거나 하진 않습니다. 선배 변호사들이 종종 “수임료를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 같은 조언을 해주시는데 아직 수임료나 수입 면에서 그 정도에 미치지는 않습니다. 강문대 사무총장님이 커피를 사주시면서 “자네, 월급 500만 원은 가져가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뭔가 잘못된 거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아직까진 계속 잘못되어있는 거 같습니다(웃음)

류신환(이하 류): 저는 공익법무관 생활을 하고 2004년부터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거든요. 저는 취업을 해서 고용변호사로 시작했어요. 저는 고용이 안 되면 개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내가 개업해서 잘 할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해보면 아니었을 거 같아요. 지금은 내가 개업을 하면 잘 할 것 같은데, 그때는 아니었어요. 이렇게 말하면 조금 미안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사실 개업 변호사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취업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어떤 버팀목 같은 게 있는 것과 같아요. 심 변호사가 나보다 훨씬 더 독립적으로 잘 크고 있는 거지.

김경은(이하 김): 저는 변호사시험 5회 합격하고 대한변협에서 연수를 받다가 지금은 법무법인 향법에서 실무수습으로 3일째 일하고 있어요. 지금 현재로서는 고용으로 취직을 생각하고 있는데 변호사님 말씀 들으니까 저도 개업 쪽으로 생각이 기우는 거 같네요.(웃음)

저는 여성위원회 활동 하면서 조숙현 변호사님을 많이 만나 뵙고 있어요. 그런데 민변의 선배 변호사들을 만나고 대하는 것이 어렵더라구요. 잘못했을 때는 ‘혼나면 어떡하지?’하는 생각도 들고….

조숙현(이하 조): 그럼 혼나면 돼.(일동 웃음)

김: 그게 무서우니까…….(웃음) 아무튼 민변 선배님들과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는지 궁금해요.

조: 그게 어렵지. 여성위 엠티를 안와서 그래요.(웃음) 우리가 힘든 일을 하고 있으니까 마음이 안 좋고, 회의 때 모니터링 하면 이상한 댓글들 읽고 있어야 하고, 그러니까 회의 때는 표정들이 안 좋아져요. 그런데 MT나 송년회 같은 친목 행사 자리에서 후배들을 보면 평소에 사건들을 통해서 만나는 것보다 편하죠. ‘실수하면 어떡하지’ 하는 건…… 실수를 안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실수를 하면 지적도 받고, 선배들도 다들 그렇게 실수하면서 컸어요.

김: 최근에 강남역 사건 관련해서 선배 변호사께서 저한테 경찰에 제출한 서류의 복사를 맡기셨어요. 그런데 제가 컴퓨터에 파일로 저장되어있는 서류를 굳이 복사해서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를 못해서 그걸 안 한 거예요. 그러다가 갑자기 그 분이 경찰에 제출한 서류의 사본이 필요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런 실수를 하고 나면 저 때문에 선배 변호사들의 일이 많아지니까 죄송한 생각이 들어요.

조: 그럼 ‘최종 제출본의 사본을 내가 꼭 갖고 있어야하는구나’라는 사실을 하나 배운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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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사실은 변호사라는 게 사건들이 쌓여가면서 시야가 더 넓어지는 거 같아요. 우리가 이전에 법률공부를 하고 실무공부를 하고 했지만 그건 그야말로 공부 수준에 있는 거고 이게 내 걸로 만들기 위해서는 현실에서의 숙련이 필요한 거죠. 변호사 업무 했을 때 많아봐야 1년에 몇십 건이나 하겠어요? 그 중에는 법률적인 내용이 서로 겹치는 사건도 많고, 변호사가 하는 일 중엔 굉장히 간단하고 단순한 업무도 많잖아요. 사실은 우리가 배웠던 많은 법적 이슈들을 실제로 경험하는 건 많지 않다고요. 제일 좋은 건 내가 사건을 맡아서 깊이 공부하는 거죠. 그 사건과 연관된 다른 판례들을 열심히 공부해보고, 이 사건에서 이 부분을 어떻게 하면 결과가 어떻게 달라질지 스스로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것이 제일 좋은데 또 공부나 경험이 부족하면 그것 자체도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저는 법률신문 추천해요. 판례공보는 판례 자체니까 잘 안 들어오잖아요. 그런데 법률신문은 기사 형식으로 제공하니까 좀 더 실감나고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어요. 법률신문 일주일에 두 번 나오는데 굉장히 많은 사건들이 나오거든요. 그걸 잘 공부하면 베스트지만 이런 사건이 있구나, 이런 법적 문제가 있구나 하는 것만이라도 차곡차곡 쌓아두면 몇 년이 지나면 어느새 자기가 확 달라져있는 걸 느낄걸요.

chapter2. 자랑과 멀미

심: 저는 선배님들 자랑하는 게 되게 듣고 싶어요. 사실 저는 자랑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후배들 만나면 엄청 뻥튀기 하면서 허풍을 치기도 하고요. 가끔 판결 잘 받은 거 있지 않습니까. 그런 거 사무실 책상에 쓱 올려뒀다가 “아니 뭐 이런 걸” 하고 시치미 떼고 그래요(웃음). 저는 아직 젊고, 후배들하고 나이 차이도 많이 안 나는데도 가끔 후배가 어린애처럼 보일 때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민변에서 강연하시는 선배님들은 저한테는 정말 높은 선배님인데 꼬박꼬박 존댓말 해주시고, “원래 그런 사건이고 저는 그저 열심히 했을 뿐”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모두 이렇게만 말씀하시면 어떻게 ‘드라마’가 탄생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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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사건이 잘 마무리되어도 내가 잘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생각은 잘 안 드는 거 같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을 하면서 ‘결과가 잘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좀 더 많이 드는 사건은 ‘내가 뭔가 부족하지 않았을까?’ 라는 걱정이 많이 들고요.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기분 좋은 경험으로 남아있는 건 이혼사건이었는데 4살 정도 되는 아이를 남편이 데리고 있으면서 아이를 못 만나게 하는 상황이었어요. 엄마는 이 아이를 데려오고 싶다는 의지가 굉장히 강했고요.

우리나라 재판 경향이 이혼소송과 별거 기간 중에 양육하고 있는 측이 주양육자가 되도록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처음에 사전처분 자체에서 굉장히 이례적으로 면접교섭을 길게 하면서 재판 결과 엄마가 양육자 지정을 받았어요. 처음 사건을 시작할 때 이 사람의 모습은 아이를 뺏기고 힘든 결혼생활을 보냈던 것 때문에 너무 핼쑥하고 초췌했거든요. 재판이 애가 5살 때 시작해서 초등학교 입학할 때 끝났어요. 근데 아이를 데리고 오고 나니까 얼굴이 정말 화사하게 피는 거예요. 그 사람 재판 끝나고도 2년에 한 번씩 찾아오고 그랬어요. 어떤 사람의 인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되게 기분 좋았어요.

심: 그러고 나면 자랑하고 싶은 생각 안 드세요? 저는 무죄 판결 받으면 연수원 교수님들한테 자랑하고 그러거든요. 검찰 교수님한테 교수님 어제 누구 검사 장난 아니었다고 위로해달라고, 잘 키웠다고 칭찬해주시라고 그러고. 저희 아내는 법조계가 아니니까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잘 모르거든요.

조: 사건이 하나 끝나고 나면 그 사건 관련 기록을 볼 때마다 멀미가 나요. 사건이 상고심쯤 가면 사건 자료를 보면서도 그렇고요. 가끔 여성위에서 옛날에 있었던 사건을 가지고 월례회를 할 때가 있는데 끝난 지 얼마 안 된 사건을 보면 속이 울렁울렁하고 그래요.

chapter3. 민변은 괴로워(?)

심: 변호사로서 일하면서 민변인 걸 드러내는 게 불편했던 적이 있나요? 전 가끔 관공서를 갈 일이 있거나 그러면 신경 쓰이거든요.

류: 전 직장에 있을 때 큰 기업들이 클라이언트일 때가 많았어요. 그때 우리 사무실이 민변 계열의 사무실, 민변 회원이 많은 사무실이라고 인식되는 게 싫었어요. ‘민변=반 기업’이라고 사회적으로 오인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럴 때는 위축됐죠. 민변이 아니라고 거짓말하지는 않지만 언급을 안 할 때가 많았어요.

심: 요즘은 그냥 검색 같은걸 많이 하더라고요. 작년에는 특히 더 민감했는데, 사건 하나하나가 아쉬운 상황에서 할아버지들이 검색해 보시고 전화하시고 그랬거든요. 최근엔 그런 전화 하시는 분들은 어차피 나한테 사건을 의뢰할 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조: 어차피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민변 관련된 사람만 만나는 건 아니니까요. 나는 민변 활동을 비공개로 하는 회원들도 존중해요. 민변 활동을 공개적으로 하면 직장을 떠나야 할 수도 있으니까.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정도의 활동을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류: 오히려 그런 경우도 있지 않나? “민변 변호산데 이런 식으로 해도 되냐” 라는 식으로.

조: 나는 공익 사건을 무료 혹은 저가로 생각하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공익적인 의미가 있다는 이유로 무조건 무료 변론을 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그 사람이 지불할 만한 능력이 있으면 당당하게 요구해야 해요. 정말 사회적 의미가 있어서, 그 사람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이거나 제도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돈을 받지 않더라도 그 일을 하겠다는 결의가 있다면 하면 돼요. 하지만 나한테 너무 무리가 되면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특히 어느 정도 지불능력이 있는 공익 재단들이 장애, 여성, 아동, 노동과 관련된 일이라는 이유로 긴급한 구조가 필요한 영역이 아닌데도 무료자문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그런 식으로 변호사들의 공익활동이 이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혜정(이하 이): 혹시 공익 사건을 하면서 사람들로 인해 실망하거나 상처받은 적은 없나요? 제가 최근 그런 일이 있어서요. 촛불집회 사건이었는데, 1심에서 유죄 받은 것을 제가 항소심 맡아 정말 열심히 해서 결국 무죄를 받았어요. 그런데 이 사람은 1심이 어떻고, 자기는 집회에 참여 안했다는 등 유독 집착이 심한 분이어서 법정에서도 제 서면과 다른 얘기를 하고…무죄는 받았지만 1심, 2심 모두 그 사람이 집회참여는 증거로 인정했는데 그게 잘못 됐다고 무죄 받고도 언성 높이며 따지는 거예요. 고맙다는 말은커녕 실랑이를 하게 되니 제가 참다 못 해 전화를 끊었어요. 그러고 나니 심장이 막 뛰고 한동안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조: 아니, 그거를 당연하게 생각한 사람이 이상한 거고. 내가 이렇게 엄청난 일을 했다는 걸 알려줘야 돼요.

이: 제가 아직 도량이 안 돼서 그런 사람을 못 다루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류: 그런 사람에게는 보답을 못 받는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 보답은 그 사람이 아니라 이 사회의 다른 사람들이 줄 거예요. 보답을 바라는 건 인지상정이지만, 그 보답을 다른 사람들이 받는 보통의 방식으로 받기를 바란다면 그런 보답은 기다려도 오지 않아요. 대신 다른 방식의 보답은 오죠.

심: 가끔은 너무 화가 나서 욕이라도 하고 싶은데, 상대가 제가 민변 변호사라는 걸 알잖아요. 내가 상대에게 욕하는 게 ‘민변이 일반인한테 욕을 한다’ 이런 상황이 될까봐 고민이 들어요.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어요. 간사님 그 진상 있었잖아요?

김서정: 제가 출근 일주일 쯤 됐을 때였는데, 북한 해외식당 탈북 종업원 사건으로 한창 시끄러울 때였거든요. 야근 할 때는 사실 사무처로 오는 전화 안 받아도 되는데, 혼자 야근하다 무심코 전화를 받은 거예요. 그런데 그 분이 너무 진상인 거죠. 끊으면서 화가 나서 아무도 없는 줄 알고 혼잣말로 욕을 했는데 마침 심 변호사님이 들으셨어요.

심: 그 사람이 다시 전화를 했길래 제가 받아서 욕을 좀…… 했었나? 근데 끊고 고민이 되는 거예요. ‘아, 이게 내 사무실이 아니었는데……’ (일동 웃음) 그리고 몇 주 뒤에 채희준 위원장님이 탈북자들, 납북자 가족들과 인신구제청구소송 건으로 면담을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저는 분명히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민변의 선배 변호사님들은 ‘허허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 이런 경우에 일일이 대응하며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어요. ‘전화 끊겠습니다’ 하고 끊으면 돼요. 시민들이 진보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도덕적 너무 높아요. 사소한 걸로 트집이 잡혀서 이상하게 내가 사랑하는 조직에게 피해를 줄 수 있거든요. 그런 상스러운 말에 똑같이 대꾸를 해봐야 나만 힘들어요. 우리가 왠지 상대방 말이 안 끝났는데 끊으면 안 될 것 같잖아요? 그럴 필요 없어요. 욕하면 끊으면 돼요.

chapter4. 우리 서로 친해지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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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사실 민변에 있는 변호사님들은 되게 훌륭하다는 선입견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생각도 사실 편견이죠, 편견. 막연한 존경심 같은 것으로 선배들을 대하다 보니까 어려웠던 것 같아요. 저 선배들이 기대하는 후배가 되고 싶은데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나를 까발려놓고 보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거지. 아직도 그런 사람이 아니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할 것 같고. 뭔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인 것 같고. 그래서 자꾸 회피하고 싶고, 그런 것들이 관계를 더 어렵게 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 돌아보면, 민변에서 민변 회원으로 활동을 한다는 게 꼭 정해진 객관적 기준을 충족해서 인격적으로나 업무적으로 훌륭한 사람들만 하는 것은 아니에요. 어느 면에서나 훌륭하신 분들도 있지만, 꼭 그런 분들만 있는 건 아닌 거죠.

조: 어떤 면에선 다들 훌륭하신 분들이에요. 그런데 그게 어떤 이상향의 존재는 아니라는 거죠. 사람에 대해서 어떤 이상향을 상정해놓고 그 사람을 바라보면 그 사람이 가진 인간적인 부족함이나 그 분이 잘 모르는 어떤 부분에서 갖고 있는 잘못된 생각에 굉장히 큰 배신감을 느끼고 그 사람의 모든 걸 다 부정할 수도 있거든요. 그 선배들은 하나하나가 훌륭한 점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모든 부분에서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 거죠.

류: 솔직하게 소통하는 게 참 중요한데, 예를 들면 지금 우리 사이에 나이나 경험의 차이가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소통할 준비가 되어있어요. 나이든 세대가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런데 이건 일방적인 열림이고 (젊은 후배들한테) 어떻게 다가가는 게 좋은지 잘 모르죠. 생각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마음 터놓는 게 다르기 때문에 조금 더 노력해야 하는 게 분명하지만 어쨌든 민변 선배들도 후배들이 먼저 다가와주기를 원할 수 있어요. 그걸 알아차려준다면 선배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열쇠를 얻은 것과 다름없죠. 우리의 마음을 알아차려준다면. 알아줬으면 좋겠네.(웃음)

조: 어떻게 하면 ‘꼰대’ 소리 듣지 않으면서 후배들하고 친해질 수 있을까. (선배 변호사들도) 그게 고민이죠.(웃음)

심: 저는 선배 변호사 분들이 어려워서, 카톡하시면 사무실 직원 통해서 지금 선배님 통화 가능하신지 여쭤보고 답장하고 그랬거든요. 뭔가 먼저 말씀드리는 게 어렵기도 하고, 또 제가 그 분들이 얼마나 바쁘신지 눈에 보이는데 그냥 연락드리기가 죄송스럽기도 하고요.

조: 후배들이 ‘다나까’ 말투로 이야기하고 경직되게 대하면 좀 거리감을 느끼고, 나한테 다가오지 말라는 메시지로 느껴져요. ‘저 친구는 나이 많은 우리랑은 어울리고 싶지 않구나’(웃음) 하는 마음도 있고.

내가 생각하는 민변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랑 일상적인 이야기까지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점이에요.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사실 많지 않거든요. 그런데 민변에서 말 통하는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만나서 내가 만난 진상 의뢰인들이나 잘못된 정부정책도 욕하고, 아이 키우다 아이랑 싸운 이야기도 하고요, 정기적으로 만나 정말 모든 걸 다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기는 거죠. 최근 들어 후배들이 특히 깍듯하게 대하는데, 내가 나이가 들었나 싶기도 하고 불편해요.

가끔 그냥 무작정 찾아와서 제가 하는 일을 물어보는 친구들이 있어요. 로스쿨 학생이 찾아온 적도 있고, 중학생이 찾아온 적도 있었고. 제 친구 아이들이 중학생 쯤 되면서부터 직업 탐방을 할 때 저를 찾아오는 친구 아이들이 많았거든요. 그게 아니더라도 대개는 부모님을 통해서 찾아오는데. 그 아이는 그냥 나를 검색을 해서 나한테 메일을 보낸 게 너무 기특한 거지. 사실 메일 내용이 다짜고짜 자기가 언제 언제는 연락이 안 되고 문자로만 연락할 수 있다고 그러는데…(웃음) 그런데 그게 너무 예쁜 거예요. 보통 다른 아이들은 부모의 소개로 만나서 면담을 했었지만 직접 알아서 메일을 보내는 그 용기가 너무 좋다고 생각해서 그 친구를 만났었죠.

두 분도, 저희 둘보다 더 위의 선배들에게도 아 저 선배님하고 밥 한번 먹어봤으면 생각이 들면 그냥 메일을 보내요. ‘인사드리고 싶어요’라고 하면 정말 바쁘면 ‘나중에 연락해라’ 라고 하시지 그냥 거절하지는 않으시니까 너무 어려워할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이: 사실 오늘 후배님들이 선배님 만난다고 많은 질문을 준비했는데 한정된 시간 때문에 이쯤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아요. 아쉽긴 하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마지막으로 각자 소감 한 마디 부탁드릴게요.

류: 저는 언론위원회에서 초년차 후배님들과 얘기를 나눌 기회는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후배들과는 그럴 기회가 없었거든요. 오늘 해보니까 ‘소통의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이제 민변 회원이 많으니까 그런 소통이 좀 어려울 수는 있지만 오늘 얘기를 나누고 나니까 ‘나오길 잘했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좋았어요.

조: 선배 자격으로 인터뷰 섭외 연락을 받았을 때 ‘훌륭한 사람들이 많은데 왜 굳이 나를…?’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민변 회원들 중에 중간에서 조금 아래, 이 정도의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 정도가 조금 더 편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오늘 이야기 해보니 ‘후배들이 생각보다 어려워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십년 차는 별로 멀게 느끼지 않고 있었거든요. ‘내가 조금 더 편하게 다가가야 되는구나’ 싶고요, ‘후배들이 생각보다는 나를 더 어렵게 여기는구나’ 하는 반성도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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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저는 민변 활동도 열심히 하고 싶고 선배 변호사 분들하고도 가까워지고 싶긴 한데 선배 변호사 분들을 대하는 데 약간 부담감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두 분 말씀을 들으니까 ‘내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구나, 먼저 다가가야 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 저는 제가 두 분 선배님 년차가 될 때까지 민변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다지 큰 재미도 없고요.

조: 그게 재미있는 거예요.(웃음) 이만한 재미가 있는 데가 없어요.

류: 다른 재미있는 게 없어요, 변호사 활동에.(웃음)

심: 그래서 ‘재미있게 해야지, 노력을 더 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 두 분과 말씀 나누면서 보니 크게 부담 갖지 말고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너무 초조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신입회원들이 늘어나면서 민변도, 회원도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소통이 필요함을 느낀 차에 서로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오늘의 자리를 마련했다. 처음의 어색함은 온데간데없이 쏜살같은 시간이 얄미울 정도로 민변의 선후배는 살가웠고, 서로 간의 할 말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후배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다음 날 너무도 좋은 자리에 참여하게 되었다며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서로를 위해 한 걸음 다가가려는 노력, 이것이 진정한 소통이 아닐까 한다.

혹시 또 다른 소통의 자리나 참여의 기회를 원하는 회원이 있다면 출판소통팀에 문의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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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브리서 11:1)’라는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탄핵이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은 사실 탄핵을 믿는 사람들이 소망하는 어떤 것의 실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가령, 탄핵 이후 우리는 반드시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모두가 평등한 그야말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울 수 있다는 소망 말이다. 또한,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우리가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함께 만들어낸 일들은 ‘한국 사회가 적어도 비정상적이었던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내고 다시금 환한 민주주의의 빛을 밝힐 역량이 있었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사실의 증거가 되어있지는 않을까. 탄핵 과정에서 민변이 했던 수많은 활동에 수많은 회원이 함께 하며 지난겨울을 보냈다. 분홍빛 벚꽃 피는 봄을 목전에 둔 3월, 추운 겨울과 함께 했던 수많은 회원 중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했던 세 사람의 회원에게 지난 ‘겨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첫 번째 이야기: ‘2017 민변 탄핵버스킹과 광화문 본무대 발언에 참여했던 김도희 변호사

민변 박근혜 정권 퇴진과 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퇴진특위’) 특검대응팀과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 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 법률팀에 참여했던 김도희 변호사. 퇴진특위 활동과 회사 일을 병행하다 보니 점점 바빠져서 “아침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두세 시간 바짝 퇴진특위 논평이나 성명을 쓰고 업무를 시작”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김도희 변호사는 그래도 지난겨울이 재미있었던 것 같은 얼굴이었다. 김도희 변호사는 민변이 지속적으로 성명과 논평을 발표하고, 때로 특검에 고발하기도 하는 일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검찰과 특검이 헌정유린의 주범과 비리 재벌을 수사하는 과정에 대해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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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김도희 변호사는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겨울 김도희 변호사는 방송 출연, 팟캐스트 출연, 길거리 버스킹, 광화문 본무대 발언 등 유난히 시민들 앞에 서서 몸을 드러내고 입을 벌려 말해야 할 일이 많았다.

두 차례 광화문 본무대에 올라갔던 일을 두고 김도희 변호사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제가 사실 앞에 나서서 이슈를 만들고 사진을 찍고 그러는 걸 정말 싫어하고, 잘 못해요.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말이 안 나오는 그런 스타일이거든요.”

김도희 변호사가 처음 광화문 본무대에 올라갔을 때는 ‘반올림’에서 활동 중인 삼성반도체 산업재해 피해 노동자와 그 어머니, 현대자동차 노조원까지 네 사람이었다. 김도희 변호사는 “너무 떨려서 겨우 1분 이야기하는 건데, 원고 볼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후로도 계속 다른 사람 앞에 나설 일이 생겼다. 민변 탄핵 정국 특별 팟캐스트 ‘탄캐스트’에도 출연했고, ‘김어준의 파파이스’에도 출연했다. 라디오 인터뷰도 있었고, 눈이 펑펑 내리던 1월의 어느 토요일 ‘2017 민변 탄핵 버스킹’의 두 번째 버스커로 시민들 앞에서 길거리 버스킹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탄핵 전날에는 두 번째로 광화문 본무대에 올랐다.

 

“두 번째 올라갔을 때는 혼자 올라가서 5-6분 정도 발언했어요. 정말 달달달달 외워서 올라갔죠. 그래도 그 때는 좀 흥분하긴 했지만 틀리지는 않았어요. 잠깐 얼어서 말을 못 하는 순간도 있었는데, 보시는 시민 분들이 환호를 해주시면서 괜찮다고 격려해 주시더라고요.” 광화문 촛불집회 본무대만큼 거대한 객석을 마주보는 무대도 없을 텐데, 신기하게도 격려해주고 호응해주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다 들렸다. 그날 김도희 변호사는 “내일 탄핵 인용이 결정되면 박근혜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검찰 앞까지 데려다주고 싶다”고 말해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대면 의사소통에서 언어의 뜻으로 전달되는 정보는 7%밖에 되지 않는대요. 나머지는 전부 눈빛, 표정, 제스쳐, 목소리, 억양 같은 비언어적 정보라는 거예요. 제가 전달하는 정보의 93%가 ‘난 지금 당황했다, 난 지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잊어버렸다’는 메시지를 ‘뿜뿜’ 내뿜고 있는데, 보시는 분들이 모를 수가 없죠.” 이 이야기를 하면서 김도희 변호사는 광화문 본무대에 섰던 자신의 모습이 다시 생각해보면 민망한 듯 웃었다.

그러면서도 “적성에 안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모두가 탄핵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뛰는데 ‘저랑 안 맞아서 못 하겠어요’라는 말이 안 나오더라”고 말했다. 상황에 떠밀렸다고 할 수도 있지만, 김도희 변호사 스스로의 의지인 동시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이런 경험이 저의 내성적인 성향도 극복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지 않았을까요?”

퇴진특위는 해단식을 치렀지만, 김도희 변호사의 활동은 끝나지 않는다. 특검대응팀은 앞으로도 박근혜에 대한 검찰 수사를 모니터링하고, 필요할 경우 논평과 의견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번 퇴진특위 활동을 계기로 재벌개혁 문제에도 관심이 생겼다. “재벌을 포함한 국정농단 세력이 얻은 그 재물들을 뺏어 와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고,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유신 세력이 권력과 돈의 힘으로 뭐든 해결하려는 행태는 계속 남아있을 것”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이상 지난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돈으로 흥한 자는 돈으로 응징해줘야” 하고, 범죄수익이 환수되어 “그들이 빼돌린 돈까지 탈탈 털어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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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희 변호사는 “탄핵이 된다는 것에 대해 별로 의심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범죄 수익을 환수하고 재벌의 권력을 해체하는 것도 언젠가 이뤄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탄핵 직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진행자가 집요하게 ‘탄핵이 몇 대 몇으로 인용될 것 같냐’고 묻자 “8:0, 최소 7:1”이라고 말했던 김도희 변호사다. 주변에서 “다들 입 조심하는데 8:0을 이렇게 질렀다”고 놀렸지만, 그게 현실이 되었다는 것이 기쁘기만 하다. 그러니까 재벌과 유신 세력의 범죄수익환수도 언젠가 반드시 될 것이라도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

“제 세대에서는 안 될 수도 있지만, 이것도 믿고 가는 거죠. 되어야 하니까. 믿지 않으면 안 되는 거 같아요. 믿고 시작하지 않으면…….”

두 번째 이야기: 국회 탄핵 소추위원 대리인단 전종민, 탁경국 변호사

국회 탄핵소추위원 대리인단에 합류해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떠오른 생각 세 가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재판에 참여하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처음 생각은 ‘역사 앞에 무거운 책임을 지는 재판이니 책임이 무겁구나’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현실적으로 “야, 이거 일이 많겠구나”라는 생각이었다. 마지막은, “민변 회원으로서 탄핵 심판에 참여하게 되었으니 정말 잘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전종민 변호사와 탁경국 변호사가 탄핵소추 대리인단에 합류한 것은 12월 중순이었다. 국회 법사위원장인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이 민주당과 합의하지 않은 채 대리인단을 선임하자 더불어민주당에서 항의했고, 그 과정에서 민변 회원인 두 사람이 9개의 소추 사유 중 언론의 자유 침해 부분을 맡아 합류하게 됐다.IMG_9017

겨울에 시작한 재판이 끝날 때까지 석 달 남짓,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재판이었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엔 사실관계를 두고 다툰 바는 많지 않았지만, 이번엔 반대로 사실관계를 대통령측이 치열하게 다투어서 사실관계를 어떠한 증거조사 방식으로 인정할 것인지, 증인신문, 사실조회, 서증제출을 어느 범위까지 할 것인지에 대하여 대통령 측 대리인단과 치열한 다툼을 벌여야 했다.

전종민 변호사는 “헌재 재판관들도 사실 처음 재판을 시작할 때는 기준을 세우지 못했다”고 전했다. “쉽게 얘기하면 증거를 채택할 때 형사재판에 준하여 채택할 것인가, 아니면 민사재판에 준하여 채택할 것이냐가 문제였거든요, 형사는 굉장히 엄격한 조사방식을 거쳐 증거채택을 하잖아요. 그래서 국회에서는 ‘민사처럼 진행해달라’고 요청했어요,” 형사재판처럼 엄격한 증거 채택 절차를 거친다면 제출된 증거에 대한 피고인의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고,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원 진술자가 재판에 출석하여 진술의 진위를 확인해야 해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재판부는 절충적인 방식을 기준으로 세웠어요, 형사법상 전문법칙을 적용하는 쪽으로 원칙을 세우되, 다만 검찰 기록 중 변호인이 입회하여 진술한 조서는 원진술자가 심판정에 나오지 않더라도 증거로 채택한다는 것 등이지요.” 증거 채택 절차부터 매 순간이 고비였다.

두 번째 고비는 안종범과 정호성의 증인신문이었다. 최순실이 사실대로 증언할 것은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다행이 안종범, 정호성이 사실관계를 인정했다. 안종범은 ‘업무수첩 내용은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 작성된 것이 맞다’고 인정했고, 정호성 역시 ‘청와대 내부 문건을 최순실에게 보낸 것은 맞다’고 증언했다. 전종민 변호사는 “안종범이 수첩을 인정하는 순간 ‘5부 능선을 넘었다’고 생각했고, 정호성을 신문하면서 ‘7부 능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고 돌이켰다.

탄핵소추 대리인단이 겪은 마지막 고비는 태극기 집회가 가열되기 시작한 이후였다. 김평우 변호사 등 원로 변호사들이 대거 대통령 측 대리인단으로 선임되었고, 재판은 전종민 변호사의 표현에 따르면 “법리논쟁보다는 정치적인 싸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탁경국 변호사에게 가장 인상적인 증인은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다. 증인신문에 출석한 유진룡 전 장관은 “2014년 1월 초까지만 해도 ‘장관 소신대로 하라’던 박근혜 대통령이 어느 순간 좌파 척결을 주창하는 김기춘 측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안창호 헌법재판관이 “도대체 어느 시점에 박대통령이 태도가 변한 것 같냐”고 묻자 유 전 장관은 “아마 세월호 참사 이후로 태도가 변한 것 같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고 답했다. 탁경국 변호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탁경국 변호사는 “세월호 참사, 언론 자유 침해, 뇌물죄 부분에 대해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을텐데”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세월호 참사와 세계일보에 대한 언론 탄압은 검찰 등 수사기관의 수사 자료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뇌물죄 역시 국회가 탄핵 사유를 작성할 당시 검찰 공소장에 근거해 박근혜 대통령의 위법행위를 ‘직권남용’과 ‘강요’라고 제시한 상태였다. 특검이 박 대통령을 뇌물죄로 입건했다 한들 재판부에 특검 수사 결과를 증거로 제출하는 그 순간부터 대통령 측에 반박할 시간과 기회를 제공해야 했다. 두 사람은 “안종범이 5부 능선, 정호성이 7부 능선이었다. 조기에 승부를 보자는 대리인단의 전략이 주효했다”면서도 “그러한 전략으로 인해 언론 탄압과 세월호 참사가 탄핵 사유로 인용되게 할 수가 없었다”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부터 “탄핵이 인용되지 않을 거란 의심은 없었다”고 했지만, 탄핵 전날 전종민 변호사는 극도의 긴장감을 느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라의 운명을 헌법재판관 8명한테 맡기다니 가혹하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전 변호사는 “말로는 동네방네 8:0이라고 떠들고 다니면서도 한편으로는 긴장됐다”며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은 이렇게 내기라도 해야 한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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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탄핵 선고를 지켜봤던 사람들 입장에서 가장 궁금했던 건 아마도 그 순간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무슨 생각,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아닐까. 역사적인 재판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탄핵소추 대리인단이 그 순간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지 궁금했다. 전종민 변호사는 “사실 처음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문체부 1급 공무원들에게 사표 받은 것도 배척하고, 세계일보에 대한 언론의 자유 침해도 배척하고, 세월호까지 배척하는 걸 보면서 ‘아 이거 이상한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저버렸다는 것까지 탄핵 사유에서 배척되자 불안감도 느꼈다.

“사실 세월호 참사를 탄핵 사유에서 배척할 때는 좀 불안했죠. 저희는 문체부 1급 공무원들 사표 받은 것까지 두 개는 인정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국정농단과 기업의 자유를 침해한 부분만 인정했으니까요.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게다가 대통령측 대리인단은 그날 하나같이 밝은 얼굴이었다. 전종민 변호사는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채명성 변호사가 날 보면서 씩 웃는 것 같더라고요.”라고 떠올렸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을 마주보고 앉는 국회 소추위원들이 “저쪽은 우리보다 정보가 훨씬 많을 텐데 뭔가 불길한 일이 있는 거 아니냐”는 의심을 했다는 이야기가 방송에까지 회자됐다.

그러나 탁경국 변호사는 “원래 소추사유는 첫 번째가 국정농단이고, 세계일보 언론 탄압과 세월호 참사는 세 번째, 네 번째였다”고 지적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소추 사유가 먼저 등장하는 것을 듣고 선고 도중에 ‘아, 인용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결국 탄핵이 인용되어 “주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문장이 낭독되자 전종민 변호사를 바라보며 웃던 채명성 변호사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고, 이동흡 변호사 역시 급히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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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선고 직전, 탄핵 소추 대리인단 단체 톡방에서는 탄핵이 인용되더라도 웃으면 안 된다는 말이 오갔다. 탁경국 변호사는 “기각되면 웃어도 되죠?”라고 되받았다. “뭐, 저는 워낙에 자신 있었으니까.” 라면서도, “막상 ‘파면한다’는 주문을 듣고 나니까 좀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탄핵을 믿었고, 믿음 그대로의 결과를 만들었지만 감격이 없을 순 없었을 테다. 탄핵 소추 대리인단 중 흡연자들은 담배를 피우러 나간 뒤 서로 치하했고, 탄핵 소추 대리인단에 함께 참여했던 이용구 변호사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울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따로 회포를 풀 만한 여유는 없었다. 전종민 변호사는 “사실 도망간 거죠. 그날 안국역 일대 어땠는지 아시잖아요”라고 웃었다.

인터뷰 말미 전종민 변호사는 “민변에서 치열하게 활동하고 헌신하는 회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며 92년 윤종현, 김선수, 김한주 변호사를 도와 故 조영래 변호사 변론 선집을 준비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사법시험 직후 조영래 변호사 변론 선집 준비를 돕다가 시험 합격 후 판사가 되었던 전종민 변호사가 법원을 그만 두고 나왔을 때, 10년 만에 다시 마주친 김선수 변호사가 “법원 왜 나왔어? 법원에 좀 더 있지, 밖에 나와서 뭐하려고.” 하시던 게 그렇게 서운했다고. “그 후에 민변 활동을 대의원회 참석하는 정도밖에 못 했어요. 변호사 생활이 바쁘더라고요. 민변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지 못한 마음의 빚 같은 게 있어요. 처음 탄핵 심판에 참여하게 됐을 때 그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으려고 정말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민변에서 법조 첫 출발부터 지금까지 치열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변호사님들에게 존경과 격려를 보낸다고, 꼭 적어달라는 당부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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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끝나고 사진을 찍는 동안, 탁경국 변호사는 “잘 생긴 얼굴이 아니”라며 부끄러워 했다. 육아 및 가사 분담에 철저한 가정적인 남편과 아버지로 유명한 탁경국 변호사 얼굴에 웃는 주름이 선명했다. 탁경국 변호사는 지난 2015년 <계란찜 아빠, 꼬막 남편>이라는 에세이집도 냈다. 탁경국 변호사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것이 가정”이라며 “어려운 이론 말고,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 찍었을 때 예쁘게 나오는 얼굴은 따로 있다. 탁 변호사님은 얼굴에 웃는 주름이 잡혀있어서 사진 찍었을 때 근사하다”고 말하자, 탁경국 변호사의 답이 이랬다. “아내한테 사랑받아서 그래요.”

수, 2017/03/29-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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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공주>의 이수진 감독님과의 만남

- 이정선 회원

 

 영화 <한공주>는 2004년 경남 밀양에서 발생한 당시 14세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당시 위 사실을 접하고 미성년 아이들의 잔인함에 분노가 치밀기도, 두렵기도 하였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 생생하여 이를 토대로 한 영화라는 소개만으로 도 선뜻 이 영화을 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우려했던 대로 저는 영화를 보고 난 이후 느껴지는 죄책감과 가슴 저릿한 묵직함으로 한동안 힘들었고, 이러한 느낌이 채 가시기 전에 민변에서 주최한 이 영화의 감독님이신 이수진 감독님과 만남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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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수진 감독님을 뵙기 전까지는 죄송스럽게도 당연히 여성 감독님이실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민변 대회의실에 등장하신 이수진 감독님께서는 멋진 훈남 감독님이셨습니다.^^ 2013년 최고의 화제가 되었던 영화인 만큼 많은 변호사님들과 참석자분들의 영화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고, 감독님께서는 이번 모임이 영화 <한공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마지막 자리라며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공주>는 영화 주인공 이름이자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천우희 배우가 연기한 한공주는 마치 그 순간, 그 시간에 제가 그 상황에 있었던 것처럼 죄책감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있는 공주를 못 본 척하며 자신의 아들(동윤)만 데리고 나오는 동윤 아버지의 모습에서, 왜 내 아들의 탄원서는 써 주지 않느냐며 공주가 꼬셔서 내 아들 인생을 망쳤다고 악다구니 쓰는 가해자 어머니의 모습에서, 웃는 얼굴로 가장 잔인하게 공주에게 탄원서를 받아가던 동윤 아버지의 이기적인 모습에서 소름끼치는 분노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그랬던 적은 없었는지 반성과 두려움, 죄책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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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무엇보다 기존 성폭행을 모티브로 한 영화들과는 달리 성폭행 피해자의 2차 피해상황을 한층 깊이있는 시선으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전 잘못이 없는데요’라는 영화 포스터 문구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공주가 가해자들을 피해 전학을 오는 것으로 시작하여 영화 내내 2차 피해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건 당시보다 사건 이후에 미성년자인 공주가 얼마나 힘들게 그 시간을 혼자 견디는 지를 보여줍니다. 돈 몇 푼에 딸에게 탄원서작성을 종용하는 아버지나 자신의 삶에 흠이 생길까 딸의 상처를 들여다 볼 마음조차 없는 어머니를 둔 공주는 결국 고스란히 혼자 그 아픔을 짊어집니다. <한공주>는 가족도, 법도, 사회도 지켜주지 못한, 아니 지켜주지 않고 외면한 공주의 상황이 너무 아프고 안타까운데, 이런 감정이 영화를 통해 너무 잘 전달되어 오히려 더 아픈 영화입니다.

 

영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만큼이나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에 대해 이수진 감독님이 왜 그렇게 연출하셨는지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공주가 왜 수영을 배우는지, 공주는 왜 후드티를 입었는지, 산부인과에서 공주는 왜 아무런 말없이 불편한 상황을 넘겼는지 등등. 감독님께서는 성심성의껏 답변을 해 주셨고, 결국 예상했던 시간을 훌쩍 넘겨 아쉽게 자리를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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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으며 감독님께 이 영화를 대체 몇 번이나 보셨는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후유증이 큰 영화를 볼때마다 갖게 되는 순수한 호기심인데, 저는 과연 이런 영화를 만드시는 감독님들은 대체 몇 번이나 이런 고통을 감수하실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이수진 감독님께는 ‘셀 수 없이’ 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마주하기 힘든 현실을 수 없이 마주하며 만들어 주신 영화 <한공주>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은 이런 저런 핑계로 외면했던 많은 순간들을 반성하며, 실제로나 영화속에서나 법과 사회가, 우리가 외면한 공주에게 이제라도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2004년이 아닌 2015년 현재에도 ‘우리’는 공주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계속 노력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말입니다. 그때가 되면 <한공주>가 아닌 <공주>라고 조금 더 당당하게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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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5/07/1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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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광주전남지부입니다. 최근까지 우리 지부 사무처와 각 단이 주도하여 진행한 사업과 활동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1. 사무처

 

가. 지부 임시총회 – 신입회원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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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에는 우리 지부 임시총회가 4월과 6월 두 번 있었습니다. 신입회원 가입 승인을 위해서인데요. 4월에는 장효인 변호사 (변시 4회) 가, 그리고 6월에는 이광원 변호사 (변시 5회) 가 가입 승인을 받아 우리 지부 회원의 수는 48명으로 늘었습니다. 가입을 축하드리며, 활발한 활동을 기대합니다.

 

 

나. 임을 위한 행진곡 작곡가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과의 만남 (2016.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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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과 우리 지부 회원들과의 만남 행사가 2016. 4. 20. (수) 진행되었습니다. 김종률 사무처장은 본인이 쓴 곡들을 정리해 출시한 ‘님을 위한 행진곡’ 앨범을 참석한 지부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직접 드리기도 했습니다.

 

다. 5·18 민중항쟁 36주년 기념 망월동 합동참배 (2016.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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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중항쟁 36주년을 맞아 망월동 합동참배를 망월동 제3묘원 (구묘역)에서 진행하였습니다. 구묘역은 항쟁 당시 사망한 사람들이 최초로 안장되었던 상징적 장소라는 점, 비록 신묘역으로 이장되었으나 가묘가 된 광주 희생자들의 묘역도 그들을 기리기 위해 아직 관리되고 있는 점, 5·18 이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산화하신 민족민주열사들이 안장된 장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 날 참배는 5·18 희생자들과 민족민주열사들에 대한 묵념과 함께 참배한 회원들이 5월 정신을 다시금 되새기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참배 이후에는 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 언론인 故 위르겐 힌츠페터의 유품이 안치된 비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라. 5·18 민중항쟁 36주년 맞이 지부 공부모임 (2016.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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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5·18은 지금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너무 일상화되거나 박제화되어 어쩌면 너무 멀리 잊혀진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성에서 다시금 5·18을 이해해보는 의미로 지부에서는 5·18 민중항쟁 36주년 맞이 공부모임을 진행하였습니다. 먼저 “5·16부터 서울의 봄까지 배경”에 대해 우리 지부 정다은 변호사가 발제를, “5·18 직전 ‘서울의 봄’의 정치적 배경”에 대해 김정희 변호사가 발제를, “5·17부터 항쟁기간 전투와 해방구 기간”에 대해 정채웅 변호사가 발제를, “5·18의 현대적 의미”에 대해 박상희 간사가 발제를 진행하고 이후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무엇보다 항쟁 당시 고3이었던 정채웅 변호사의 생생한 설명은 공부모임의 의미를 더해 주었습니다.

2. 공익소송기획단

가. 농업법 연구회 – “뭣이 중헌디? 농업법 연구회가 중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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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리적으로 광주, 전남지역은 농어촌 지역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농민인구가 적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 지역에 산재한 폭넓은 농업의 법적인 문제 – 예컨대 생산에서부터 식품가공, 재해, 농약 피해, FTA 분쟁, 농산물 유통 분쟁, 농가부채 문제 등 – 이 존재하지만, 이 분야를 표방하고 활동하는 변호사 그룹이 없으며 농업법을 전공하는 학자도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전문성을 갖추고 이를 표방하며 새로운 시장개척 및 공익에도 이바지하기 위해 우리 지부에서 ‘농업법 연구회’를 조직하였습니다. 현재까지 농업법 연구회에 함께하는 지부 회원은 총 9명입니다.

 

2) 농업법 연구회는 총 3차례 모임을 진행하였습니다. 세 차례 모임에서는 먼저 농업법 연구회의 목표와 방향을 정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엇보다 민변 활동의 취지와 그 맥을 같이 해야 하고,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공부와 연구에 중심을 두며, 지속가능한 농촌에 대한 고민을 토대로 농민들이 현실적으로 처한 문제에 대한 송무에 기본 방향을 두었습니다. 이에 따라 먼저 ‘한국농업법의 과제’ 라는 논문을 읽고 기초적인 스터디를 진행한 후 최근 지역 또는 전국적인 농업 관련 이슈에 대해 브리핑하고, 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특히 오는 7. 22. (금) 에는 본부 송기호 변호사님을 초청하여, 『“맛있는 식품법 혁명” 의 저자 송기호 변호사와 함께하는 농업법 이야기』 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나. 주요 공익소송사건

 

1) 한전 직접활선공법 관련 공익소송

 직접활선공법은 ‘살아있는 전선(活線)’을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직접 만지면서 작업하는 노후전선 교체 기술 가운데 하나로 2001년 한전이 도입하였습니다. 작업 노동자들은 절연고무장갑만 끼고 작업을 진행하는데 이 활선은 무려 22,900v의 고압전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2014년 한전의 발표에 따르면 문제가 되는 직접활선공법으로 인한 사망자는 13명이나, 건설노조 측의 발표에 따르면 사망자는 대략 5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부상자 역시 2014년 공식 보고된 수가 140명이나 그 이상이 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노동자들이 입은 부상의 정도 또한 심하여 부상 입은 노동자 대다수가 심각한 화상 및 팔, 다리 절단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지난해부터는 이 공법으로 인한 백혈병 발병 문제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6. 10. 한전에서는 보도자료를 통해 직접활선공법을 폐기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비용절감을 위하여 노동자들의 목숨이 담보되는 전형적인 산업재해 사건이며, 피해 규모에 비추어 보아도 대단히 심각한 사안에 해당되기에 우리 지부에서는 이에 대하여 지역 건설노조, 학계 등과 연대하여 공동으로 대응하기로 하였습니다. 이후 진행되는 소식은 계속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 남영전구 수은유출 관련 피해 근로자 공익소송

 전구 및 램프제조를 업으로 하는 (주) 남영전구가 형광등 등에 들어가는 수은 사용이 2020년부터 금지됨에 따라 2015. 3. 부터 생산라인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20여 명의 노동자가 수은 유출로 인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후 이들은 병명도 모르는 채 병원을 전전했고, 2015. 10. 경에야 수은중독 사실이 밝혀져 산재 인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첫째, 피해자들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를 2015. 10. 이후부터 받았고, 그 전 6개월 동안의 치료비는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둘째, 피해자 20명 가운데 9명은 수은중독 후유증으로 인해 현재 일을 하지 못할 정도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후유장애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현재 소변이나 혈액 속의 수은 잔류량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고, 다른 산재처럼 후유장애가 유형화되지 않았으며, 기존의 의학적인 산재 신청방법으로는 후유장애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근로복지공단의 입장입니다.

하여 우리 지부에서는 광주지역 피해자 6명을 대리하여 관련 사건에 대한 공익소송팀을 꾸려 이에 대응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다. 각종 성명 발표

 1) 한국전력공사는 중대재해를 야기하는 직접활선공법을 즉각 폐기하라 (2016. 6. 15.)

앞서 적은 한전의 직접활선공법 문제 관련해 우리 지부와 본부 노동위원회가 공동으로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2) 광주광역시의회의 성소수자 차별 선동 토론회 철회 촉구 공동성명 (2016. 6. 26.)

광주광역시의회의 성소수자 차별 선동 토론회 철회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에 함께 연명하였습니다.

 

3. 법률구조단

 가. 소송자료 DB 구축, 법률구조 사업의 지원, 법률구조 당직제 진행

 법률구조단에서는 체계적이고 연속적인 법률구조사업을 위하여 우리 지부에서 진행했던 사건에 대한 소송자료 DB 구축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현재 진행중이거나 지부에 요청한 법률구조 사업에 대한 지원을 수행하고 평일 회원 2인이 순번제로 법률구조 당직제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나. 주요 법률구조 사건 경과

1) 故 진도경찰관 유족보상금 부지급처분취소소송 승소 (2014구합73098)

2014. 4. 16. 발생한 세월호 사고 관련 업무를 수행하던 전남 진도경찰서 경찰공무원 김** 가 세월호 사고 이후 계속된 업무상 과로와 사고 관련해 지속된 업무상 스트레스로 2014. 6. 26. 투신자살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후 망인의 아내인 원고가 공무원연금공단에 공무원연금법에 따른 유족보상금 지급을 청구하였으나 망인의 사망이 공무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위 청구에 대해 부지급 결정 처분을 내려, 이에 대해 위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청구를 진행한 사안입니다. 법원은 망인이 수행한 공무와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여 2016. 6. 23.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습니다.

 

2) 도서지역 인권침해 피해자 법률지원

도서지역 인권침해 피해자 법률지원 관련하여 (1) 2016가단51086 (안**) 사건의 경우 2016. 5. 17. 원고에게 65,000,000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2) 2015가소73649 (나**) 사건의 경우 2016. 5. 9. 원고에게 15,000,000원을 지급하라는 법원의 강제조정결정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4. 회원사업단

가. 제29차 민변 정기총회 참석 (2016. 5. 28. ~ 29.)

 제29차 민변 정기총회에 우리 지부 회원 17명, 가족을 포함 총 36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우리 지부에서는 지부 공익소송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김정희 변호사가 모범회원을 수상하는 경사가 있었습니다.

 

나. 회원사업단 주최 제2차 선배변호사와의 대화 예정 (2016. 7. 15.)

 회원사업단에서 주최한 첫 선배변호사와의 대화 (이상갑 변호사) 이후 두 번째 선배변호사와의 대화를 2016. 7. 15. (금) 진행합니다. 초청 변호사로 우리 지부 제7대 지부장을 역임한 임선숙 변호사 (연수원 28기) 를 모시고 선·후배 변호사들이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다. 지부 여름 야유회 예정 (2016. 7. 23.)

 

우리 지부 여름 야유회가 2016. 7. 23. (토) 진행됩니다.

 

이상 광주전남지부 소식이었습니다.

금, 2016/07/0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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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차 정기총회 감사 인사말

 

- 회장 한택근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제28차 민변 정기총회가 2015.5.30.-31. 양일간에 걸쳐 경주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총회는 132명의 회원과 60여명의 가족들이 참석하여 역대 최다 참석자를 기록하며 성황리에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제28차 정기총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수 있도록 관심과 성원을 보내 주신 모든 회원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총회 식전 행사에서는 모임이 ‘회원 1,000명 시대’를 열게 된 것을 자축하고, 모임의 진로를 모색하는 진지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정기총회에서는 모임의 임원선출에 관한 회칙 규정을 정비하였고, 조직의 중·장기적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발전기금 사용 승인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저희 집행부는 안건을 통과시켜 주신 회원들의 뜻을 받들어 모임의 발전을 위해 배전을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나아가 이번 정기총회는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회원 분들의 뜨거운 열망과 헌신적 활동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참석한 모든 회원들이 일어나 ‘회원 천명 시대를 맞는 모임의 특별결의문’을 함께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민주사회를 향한 회원들의 결의를 서로가 확인할 수 있었던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회원 여러분,

 

우리 모임은 중대한 도전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안으로는 모임의 지속가능성과 발전을 담보할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밖으로는 시대를 역행하는 권력기관에 맞서 사회적 약자와 서민의 인권을 보호할 책무를 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도전을 슬기롭게 풀어나갈 수 있는 희망을 정기총회에서 보여주신 회원 여러분의 열망과 결의에서 찾고자 합니다. 집행부와 사무처는 회원 여러분의 헌신과 지혜가 샘솟을 수 있도록 하는 마중물의 역할에 충실하겠습니다.

 

기본적 인권이 보장되고, 정의가 넘실대는 ‘민주사회’로의 여정은 한시도 늦출 수가 없습니다. 민변의 자랑스러운 선배님, 동료 및 후배 회원 모두 깊은 동지애로 함께 걸어갑시다. 그 길에 함께하는 모든 회원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수, 2015/06/1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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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초청강연 후기

 

- 권오훈 회원

 

6월 25일 열린 민변 6월 월례회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초청강연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민변통일위원회에서 주최한 이번 강연에서는 6. 15. 선언 15주년을 맞이하여 남북 관계의 현황과 과제에 대한 통일 문제 전문가 정세현 전 장관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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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통일부 장관은 1993년 문민정부 당시 대통령비서실 통일비서관, 1998년 국민의 정부 당시 통일부 차관, 2002년 참여 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북한과의 장관급 회담 등 북한 문제에 관한 주요 실무를 직접 담당한 바 있습니다. 이번 강연에서는 장관급 회담 당시 남북 고위급 인사들의 발언 내용을 비롯하여 공동 선언에 대한 협상 과정 등 고위급 회담 당시의 뒷이야기들, 나아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에 대한 향후 예측 등을 정세현 전 장관의 생생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3명의 대통령이 진행한 통일 정책을 모두 수행한 정세현 전 장관은 통일 정책에 있어서는 김영삼 대통령 당시의 정책이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당시의 정책이 큰 차이가 없으며, 바람직한 통일 정책은 결국 북한과의 평화적인 대화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강조 했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통일 정책의 핵심은 모두 6. 15. 선언에 담겨 있으므로, 진보나 보수를 불문하고 6. 15. 선언의 이행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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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통일 정책은 단순히 한반도에 있는 남북한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등 열강들의 치열한 정치, 외교적 대립 안에서 이해되고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은 현재 미국과 G2를 형성하려 하고 있으며, 군사, 경제적으로 중국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로도 외연을 넓히려 하기 때문에, 중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북한의 문제를 쉽사리 미국 및 일본 등에 넘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따라서 남한도 중국, 미국 나아가 러시아, 일본 등 주변 강국들과의 외교적 조율을 통해 통일 정책을 수립해야 하며, 이러한 상황을 배제하다가는 통일 문제에서 주체성을 잃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벌써 6. 15. 선언 15주년을 맞이했지만 통일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한반도 정세는 남북한 통일을 제외하고 논할 수가 없는 만큼, 통일에 대한 한국 정부, 나아가 국내 전문가들의 주체적인 참여가 중요하다는 정세현 전 장관의 강연을 통해, 남북 문제에 대해 다시금 관심을 환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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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변 통일위원회에서는 남북법제팀, 국가보안법 연구모임 등 통일 관련 활동을 통해 북한 및 남한의 관련 제도를 이해하고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통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회원 분들의 많음 참여 부탁 드립니다.

금, 2015/07/1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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