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한국 불교의 죽비소리, 현각 스님

지역

한국 불교의 죽비소리, 현각 스님

익명 (미확인) | 목, 2016/08/11- 12:25

“돈만 밝히는 한국 불교 떠나겠다.”

하버드대 출신의 푸른 눈의 수행자 현각 스님이 지난달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 불교를 비판하는 글을 올린 데 따른 파장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본인은 “형편없는 한국어 실력 때문에 생긴 오해”라며 조계종을 떠날 뜻을 밝힌 게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파문은 더 커지고 있다.

1
현각 스님은 숭산 스님을 통해 부처를 만났고, 먹물 옷을 입고 한국에 왔다. 그런 그가 최근 “한국 불교는 너무 돈만 밝힌다”며 한국을 떠날 의사를 밝혔다. (사진 출처: http://news.joins.com/article/20392068)

불행히도 현각 스님을 향한 조계종 주류의 비판은 “한국 불교에서 상위 1% 대접을 받아놓고 25년이 지난 이제서야 왜 비판에 나선 것이냐”로 모아지는 모양새다. 소모적 논쟁 속에 과도한 기복문화와 수행정신의 퇴락, 완고한 민족주의라는 현각 스님이 던진 화두는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조계종 종권 다툼 한창이던 1998년 ‘푸른 눈 수행자’로 주목

현각 스님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소개된 건 지난 1998년 부처님오신날을 즈음해 방영된 KBS 특집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다. 연이어 그 해 11월 KBS 일요스페셜 만행(卍行) 2부작이 방영되자 대중의 관심이 폭발했다.

미국 예일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과 미 하버드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한 ‘스펙’부터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하버드대를 나온 34세 푸른 눈의 수행자가 오직 깨달음을 위해 진리를 찾아 명산고찰을 돌며 용맹정진 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신선했지만, 총무원장 선출을 앞두고 조계사 점거 사태가 재발하는 등 종권(宗權)을 차지하기 위한 이전투구가 벌어지던 당시 조계종 종단의 실상과 대비되며 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측면도 있다.

경호 용역 회사 직원, 물대포까지 동원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던 조계종 승려들의 모습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던 그 때, 한국불교는 “따뜻한 할머니의 품 같다”는 현각 스님의 말씀은 우리사회에 큰 울림을 전했다.

종단 사태 폭력-
1998년 11월, 조계종 총무원장 3선공방 다툼과 종단내부 갈등은 스님들 간의 물리적 폭력으로 비화됐다. 사진은 당시 폭력 사태 모습. (사진 출처: http://cluster1.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GzOU&fldid=L…)

이듬해 출간한 책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가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현각 스님도 스타덤에 오른다. 책이 인기를 끌면서 대표적 TV 아침 프로그램인 ‘아침마당’에도 나가고, 라디오도 나가고 특강도 해야 했다.

외모가 출중하다는 점은 인기를 더하는 요인이었다. 현각 스님은 2010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그래서 창피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수행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되어야 하는데, 자신의 겉모습은 사람들에게 유혹만 주었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에 아름다운 비구니 스님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보면 사랑에 빠지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러자 비구니 스님이 칼로 자신의 얼굴을 난도질했다. 내가 그 비구니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 말라. 비슷한 심정이었다는 얘기다”라고 설명했다.

여자친구 청혼 뒤로 하고 입산… “죽을 때까지 한국서 수행 정진”

현각 스님(속명 폴 뮌젠)은 1964년 미국 뉴저지주 라이웨이에서 아홉 형제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부모는 자녀 모두를 카톨릭 중ㆍ고교에 진학시켰고, 현각 스님은 형제들 중에서도 유독 가톨릭 신부가 되리라는 부모의 큰 기대를 받고 자랐다.

하지만 1983년 예일대에 진학한 현각 스님은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을 함께 지켜보며 자란 동시대 대학생들과 다르지 않았다. 중남미에 무기를 수출하고 뒷돈을 대주며 전쟁을 부추기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반대를 외쳤고, 인종차별정책으로 비난을 받던 남아프리카공화국 기업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얻던 예일대 총장을 향해 투자 중단을 요구하며 퇴진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파티와 여흥이 넘쳐나는 자유로운 미국 젊은이의 전형적 생활도 즐겼다. 현각 스님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지만,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또 찾아 헤매야 했다”며 “전도 양양한 미래도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은 늘 허전했다”고 20대 시절을 설명했다.

현각 스님은 1987년 대학을 졸업한 뒤 철학의 본고장인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철학과로 진학했고, 이후 프랑스 아일랜드 영국 등 14개국을 유랑하며 방황의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1989년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월스트리트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일했지만, 맞지 않는 옷이었다.

25세의 현각 스님은 물질주의의 최전선인 월스트리트의 삶에 절망을 느껴 자살을 결심했다. 미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에서 투신 직전까지 갔던 그를 돌려세운 건 한 흑인 노숙자였다. 남은 돈을 모두 털어 건네자 그 노숙자는 “오늘이 며칠인지 알아? 오늘은 네 생일이야. 나중에 내가 한 말을 떠올리면 이해하게 될 거야”라며 축가를 불러줬다고 한다.

현각 스님은 “어쩌면 관음보살의 현신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저서를 통해 고백했다.

다운로드
1999년 출간된 현각 스님의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미국 최고 엘리트였던 그가 번뇌의 고리를 끊는 진리를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한국 불교에 귀의했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사진 출처: http://koridol.tistory.com/4379)

현각 스님은 가톨릭 신부가 될 생각에 그 해 하버드 대학 신학대학원 비교종교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강연을 위해 하버드대를 방문한 숭산 스님을 만나 한국 불교와 인연을 맺으면서 인생의 항로도 달라진다.

1992년 대학원 졸업 후 여자친구의 청혼까지 뒤로 한 채 입산한다. 선종(禪宗)의 개창자인 육조 혜능 대사가 모셔진 중국 조계산 남화사에서 계를 받고 출가했다. 1996년 경남 양산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비구계를 받았고, 2001년 8월 화계사에서 숭산 스님에게 공식 인가를 받았다.

현각 스님은 1999년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혜능 스님 선 수행의 전통이 가장 잘 이어져 훌륭한 고승이 많은 것은 한국불교의 자랑”이라며 “나는 죽을 때까지 한국에서 수행에 정진할 작정”이라고 말했다.

한국 불교의 배타성ㆍ상업화가 ‘깨달음’ 방해

한국 불교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던 현각 스님이 돌연 한국을 떠난 건 지난 2008년의 일이다. 유럽에서의 ‘만행’이 명분이었지만, 스승인 숭산 스님이 입적(2004년)한 날부터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고 한다. “수행이 아니라 그야말로 ‘쇼’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했다.

1
숭산 스님은 평생 ‘세계일화(세상은 한송이 꽃)’을 강조하며 한국불교를 세계에 널리 알렸다. 그래서 2004년 충남 수덕사에서 열린 그의 다비식에는 그를 따라 한국불교에 귀의했던 푸른눈의 스님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오른쪽, 사진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17295)

유럽으로 떠난 그는 2009년 독일 레겐스부르크에 ‘불이(不二)선원’이라는 선방을 개원하며 독일에 정착했다. 물론 한국에서의 ‘동안거’(冬安居) 만큼은 거르지 않는 등 한국 불교와의 인연은 이어왔다.

숭산 스님의 가르침이 좋아 출가했고, 그 때문에 한국도 좋아하게 됐다던 그는 지난 3월 언론 인터뷰에서“한국 불교는 나 같은 외국인이 보기엔 아직 너무 배타적이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국 불교가 지나친 상업화의 길로 가는 현실도 번뇌를 불러왔다. 현각 스님은 특히 ‘한국 불교 세계화’를 표방하며 사찰음식 박람회와 같은 이벤트성 행사에 주력하는 조계종 종단을 향해 죽비를 세게 내리쳤다.

2014년 미주 한국일보와의 영문 인터뷰에서 “조계종 지도부는 문화상품을 ‘수출’하려 애쓰고 있다”며 “진정한 영적 진리를 알고자 하는 마음의 허기를 충족시킬 수 없는 순전히 문화상품에 불과한 이것에 너무 많은 돈이 쓰여지는 게 나를 슬프게 한다”고 밝혔다.

그는 “박람회에서 홍보하는 사찰음식 메뉴를 보면 거개가 사찰에서 비구나 비구니가 먹는 음식도 아니다. 일년에 한번쯤 어떤 대사 때가 아니면 결코 구경도 할 수 없는 진수성찬 채식요리”라며 “부처님은 승려들에게 거리에서 걸식을 하라고 가르치셨다”고 일침을 가했다.

현각 스님은 지난 2013년 현대불교 창간기념 인터뷰에서는 한국 불교가 주목하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 대해 “불교를 ‘깨달음’에서 단순한 문화차원에서의 ‘관광 상품’으로 변화 시켰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템플스테이는 중요한 경제적 기회와 대중 매체 속에서의 기회를 가져다 줄 수 있어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매우 위험하다”며 “모든 것을 돈 중심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상업화의 부작용을 경계했다.

현각 스님이 최근 논란이 된 페이스북 글에서 “누구나 자기 본성을 볼 수 있는 열린 그 자리는 그냥 기복 종교로 귀복시켰다. 왜냐하면 기복= $”라고 썼던 고민의 뿌리를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1
‘기도발’ 좋기로 소문난 대구 동화사 갓바위 앞에서 기도하는 신도들의 모습(왼쪽). 그리고 그곳에 적힌 문구. 종교가 사바대중의 근심을 덜어주고, 작은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다면 좋은 것이지만, 현각은 그것이 부처가 말한 진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511-33/12369745)

조계종은 최근의 논란과 관련해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중앙승가대 교수인 자현 스님은 페이스북 글과 불교신문 기고문 등을 통해 “현각 스님이 주목 받은 것은 깨달음이 있어서가 아니다. 출가하자마자 무슨 깨달음이 있었겠는가? 그것은 단지 하버드를 졸업한 미국의 백인이라는 측면이 작용한 결과였을 뿐”이라고 현각 스님을 향한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현 스님은 특히 “2015년 총 수입이 가장 많은 사찰은 서울 강남 봉은사인데 총 수입이 210억8,700만원에 불과하다”며 “봉은사는 수 조원의 자산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바른불교재가모임 상임대표인 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현각 스님이 한국 불교 비판 소식이 전해진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현각 스님이 느낀 여러 모습에 대해 (재가모임도) 같은 문제점을 지적해왔다”며 “그가 굴종의 신앙을 유지하는 신도들과 욕심을 채우려는 종단 승려들에게 많은 실망을 느낀 것 같다”고 섰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던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아무런 합의문 없이 끝났다. 지난 싱가포르 합의 이후, 교착국면을 이어가던 북미관계가 이번 회담으로 무언가 돌파구를 찾고,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새 역사의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라던 낙관적 전망은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또 한번 밀고 당기기의 오랜 긴장이 지속될 것인지 아니면 극적인 합의점을 찾고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젖힐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국가간 협상에서 합의와 결렬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때론 협상이 합의에 이르면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결렬이 되면서 두 국가의 불편한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강대국과 약소국의 입장에서 협상 결렬이 미치는 충격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강대국과 약소국의 협상에 임하는 자세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강대국의 입장에서 약소국과의 협상은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여타의 대외적인 관계의 단지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약소국의 입장에서 강대국과의 협상은 때론 자신의 모든 국가적 역량을 다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이자 동시에 그 결과의 충격은 전 국가적인 것이 된다. 따라서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때론 강대국과 약소국의 협상에서 모든 힘을 다한 약소국이 강대국에 비해 더 많은 결과를 얻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논의는 강대국과 약소국이 모두 협상에 성실히 임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무엇보다도 합리적인 협상의 원칙을 기켰을 경우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만일 강대국이 자신의 힘을 믿고 비-합리적이며, 약소국의 뒷통수를 치는 협상을 해 왔을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두고 여러 분석과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비판하는가 하면, 북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기도 하고, 애초부터 미국은 판을 뒤집으려고 했었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 미국 국내정치의 영향까지 다양한 각도에서의 분석과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분석과 평가를 뒷받침하는 여러 가지 근거들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무리한 요구에서 원인을 찾는 입장은 북미간 불신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이 주장하는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접근을 거부하는 미국의 논리가 전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고, 북의 비핵화 진정성을 문제삼는 측에서는 북이 처음부터 비핵화에 관심이 없고 시간을 끄는 것에 불과했다고 평가한다.

여기에 정상회담 기간 중에 미국 사회를 달구었던 코헨의 의회 청문회 등의 미 국내정치의 영향력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입지의 약화 때문에 합의문에 서명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중 북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문제삼는, 어쩌면 북에 대한 근본주의적 시각을 제외하면 결국 결렬의 요인은 미국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도 협상의 문제를 둘러싼 것이 아니라 미국의 무리한 요구 혹은 자신들의 내부적인 요인 때문에 협상을 결렬시킨 것이다.

흔히 협상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도 없고, 모두를 실망시키지도 않는다고 한다. 즉, 협상은 서로가 마주 앉아 무언가를 주고받는 것이며, 따라서 이득과 양보의 함수인 것이다. 그런데 이를 거부하고 자신의 일방적인 요구만을 앞세우는 즉, 자신이 상대방보다 더 많은 것을 일방적으로 얻기만을 요구한다면 이는 공정한 협상이라 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상대방보다 힘의 우위에 있는 점을 이용하여 비-합리적이고, 무리한 요구를 일삼는 말과 행위를 ‘갑질’이라고 한다. 사회에 갑질이 넘친다면 그 사회는 힘 있는 자와 힘 없는 자로 구분되는 말 그대로의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 될 것이며, 그 사회의 법과 질서는 껍데기만 남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 제2차 북미정상회담은 어쩌면 전형적인 강대국의 ‘갑질’이라 할 것이다. 이를 ‘제국의 갑질’이라 이름붙일까 한다. 사실, 강대국 미국의 갑질은 새삼스럽지 않다. 1994년 모두의 기대를 모았던 ‘제네바 합의’의 일방적인 파기부터 시작하여, 2002년 소위 특사 방북을 통한 ‘고농축우라늄 문제’를 제기하면서 제2차 ‘북핵위기’를 촉발시켰고, 2005년에는 ‘9.19 공동성명’에도 불구하고 ‘BDA’ 사태를 일으켜 협상을 뒤로 돌리고자 했던 것까지…..

역사적으로 제국의 갑질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남북의 관계 개선을 막아왔고, 우리에게 더 많은 인내를 강요해왔다. 그렇다면, 갑질에 대처하는 길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의 갑질에 대해 ‘을들의 반란’이라는 말이 있듯이, 갑질에 대처하는 유일한 길은 ‘연대와 협력’일 뿐이다. 남북의 연대와 협력, 지금 당장 미국의 갑질에 불편해하는 주변 국가들과의 협력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북미간 문제해결을 위한 중재자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가 당사자이자 한반도 미래의 설계자여야 하고, 남북의 연대와 협력의 힘을 통해 문제 해결의 선도자가 되어야 한다.

다행스럽게 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렬 이후에도 북미가 서로에게 결렬의 책임을 묻기는 하지만 협상의 파국을 선언하지는 않고 있고, 여전히 협상의 기대감을 밝히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이미 신년사 분석에서도 밝혔듯이, 우리 정부가 또 다시 무거운 짐을 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제국의 갑질’에 부응하는 것이거나 그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앞으로의 갑질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과감한 ‘을들의 반란’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핵심은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듯이 바로 ‘남북의 연대와 협력’일 것이다.

 

통일뉴스, 2019년 3월 11일에 게재된 글입니다(필자가 공동게재에 동의하여 실린 것임).

화, 2019/03/12- 15:45
21
0

편집자 주:

시장가치 평가액이 1천억 불이라는 우버는 2018년 현재 아직도 경상이익을 실현하고 있지 못하다. 신용과 투명성이 생명인 기존의 화폐시장에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가 등장하면서 신뢰는 사라지고 투기광풍이 휩쓸고 지나 갔다. e-Platfrom이 주는 공유재적 편익을 일방적으로 취해 FAANG로 상징되는 26명의 초거대부자들이 인류 절반인 36억 명의 몫보다 많은 재산을 모으고 있다. 분명히 잘못되었고, 이대로는 반드시 큰 재앙이 닥쳐온다.

다른백년은 기술혁신이 가져오는 긍정적 전망과 무서운 화근을 명명백백히 따지고 가릴 것을 제안한다. 미래의 ICT기술과 가상의 세계가 인류를 멸망으로 이끄는 악마의 손길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보다 희망찬 자유의 영역으로 안내하기 위해서는 이제 무엇인가 국제적인 합의와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수십만 명의 운전 기사들의 생계를 협박하는 카카오 택시앱은 정당한 것인가? 아래의 글은 수 주전에 파이낸스타임즈(FT)에 실린 칼럼을 번역한 것이다.


우리는 신용 순환의 후기에 있으며, 현재 너무 많은 돈을 실제적으로 너무 적은 가치에 쏟아 붓고 있다.

몇 주전에 있었던 세계 경제 포럼과 현실세계 사이에는 크나큰 간극이 있었다. 가장 주목받은 점은 많은 사람들이 기술적 낙관주의를 표명했단 점이다. 그러나 시장이 기술 분야에서 기대하고 있는 바는 확연히 다르다. 연발되고 있는 신규 상장은 특히나 더 불안해 보인다.

우버의 대표이사인 코스로샤히는 다보스 경제포럼의 유명인사였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신규 상장 이야기를 띄우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선 다급함의 조짐이 느껴졌다. 우버, 리프트와 더불어 슬랙과 에어비앤비 같은 대규모 비공개 기술기업들은 더 늦기 전에 주식을 공개상장 할 것으로 보인다. 변덕스러운 시장의 생리와 다가오는 경기 침체, 그리고 이 회사들이 민간자금에 의지하여 너무나 비대하게 성장한 까닭이다. 시장이 이들 회사의 거대한 가치액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들은 아직 반응이 좋을 때 빨리 현금을 확보하고 싶어한다. 현재의 상황은 21세기의 벽두를 장식했던 닷컴 버블과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하다. 당시 필자는 런던의 벤처 자금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LVMH 그룹의 지원을 받아 난립한 온라인 소매 업체들은 – 이들은 현재는 연기처럼 사라진 유럽의 펫츠 닷컴 같은 기업들이었다 – 수백만 달러를 그럴듯한 광고에 쓰고 있었고, 사업가 지망생들은 쉽게 투자를 유치해 보려고 퍼스트 투즈데이 같은 스타트업 포럼의 친목 행사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런 행사에 가면 으레 보이던, 옷깃에 모두가 달고 있던 투자자용 빨간 뱃지와 창업가용 초록색 뱃지를 기억하는가?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때도 우리는 신용 순환의 후기에 들어서 있었다. 당시에도 너무 많은 돈이 너무 적은 양의 가치에 묶여 있었다. 그리고 그 때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투자자들은 뜨거운 신규 상장이 빈발하던 시장을 믿고, 이미 누가 봐도 과열된 상태였던 시장에 기름을 붓고 있었다. 우리는 그 시절이 어떻게 끝났는지 알고 있다, 그 끝에 서있던 북미와 유럽에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도 함께.

필자는 그 당시의 기술 벤처 기업들이 만들어 낸 가치가 전무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며, 지금도 마찬가지다. 닷컴 버블의 붕괴 당시 무너진 애완견 사료 소매업자 혹은 고급 티셔츠 공급자 하나 하나에 들어갔던 돈이 다른 곳에 쓰였다면, 예건데 오늘날 구글 같은 기업들이 자본화 하고 있는 브로드밴드 케이블 같은 인프라를 여러 곳에 준설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시장은 공유경제와 지금껏 존재하지 않던 가상 편익의 서비스가 장악하고 있다.

두 시대 간의 진정한 차이는 자본시장 그 자체에 있다. 2000년 이후 벤처 자본은 무너졌다가, 다시 회복했다가, 또 다시 금융위기 이후에 무너졌다가, 2014년 이후 기록적인 수준으로 다시 회복했다. 새로 개업한 스타트업의 숫자는 급증했다. 그렇지만 신규 상장 건수는 떨어졌다. 이는 업계의 모순에 의한 것이다. 기술발전으로 인해 창업비용은 저렴해졌으나 성공적인 경영을 위한 비용은 비싸졌기 때문이다. 이는 시가총액이 10억 달러를 상회하는, 또 다른 “유니콘(설립 10년 이내, 가치가 10억불 이상인 벤쳐)” 스타트업을 창업해내기 위한 마치 군비경쟁에 의해 일어나는 모순이다.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학자들인 마틴 캐니와 존 지즈만은 “유니콘, 체셔 고양이, 그리고 기업 금융의 새로운 딜레마” 라는 제목으로 스타트업 펀딩 업계의 변화에 대한 연구논문을 집필하면서, “스타트업 기업들은 주체 못할 속도와 적자성장, 그리고 수익성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다시피 한 급속 확장을 통해 승자독식의 역학에 불을 지피려 한다”고 썼다.

지난 5년 정도의 기간 동안, 벤처 자본의 지원을 받은 유니콘들의 숫자는 막대하게 늘어나왔다. 우버, 리프트, 스포티파이, 그리고 드럽박스 같은 회사들은 막대한 손실을 보면서도 평가가치액은 계속해서 늘려나가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특징들은 새로운 사업 역학의 일부이다. 낮은 진입장벽은 많은 경쟁자와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한 최대한의 지출로 이어진다. 이렇게 비생산적인 순환구조 안에서 떠오른 비공개 기업들은 자연히 비대하게 팽창하게 되고, 벤처 펀드 스스로도 그렇게 비대해지고 있다. 과거엔 10억달러 규모의 벤처 펀드라는 말 자체가 없었지만, 지금 그 정도의 규모를 가진 벤처펀드는 즐비하다.

작년 한 해, 세퀘이아는 80억 달러 규모의 종자돈 펀드를 모금했고, 소프트뱅크는 1조 달러라는 경이로운 규모의 펀드를 모금해냈다. 이렇듯 큰 규모는 결국 더 큰 규모를 낳고 만다. 갈수록 더 많은 우량 벤처 자본들이 스타트업 기업들의 가치를 부풀려 버리면, 나머지는 따를 수밖에 없다. 오르거나 퇴출당해야 하는 것이다. 이로써 공개 상장 시장의 새로운 거품이 끼었을 뿐만 아니라, 건실한 수익성을 확보하려는 수 많은 공개 기업들을 평가절하하는 결과가 돌아왔다. 전형적인 예가 택시 업계에 우버가 만들어 내는 교란, 혹은 숙박 업계에 에어비앤비가 끼치는 영향이다.

이러한 상황은 “유니콘” 회사들의 부풀려진 가치를 이용해 더 많은 돈을 끌어 모으고 더 많은 수수료를 챙길 수 있는 일부 벤처 자본들에게는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행태가 전체적인 경제적 가치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수익성 없는 기업들이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 거대한 규모의 부채금융을 동원하는 일은 몇몇 기업가와 투자자들에게 이익을 돌려줄 수 있겠지만, 이는 자본과 노동시장을 왜곡시키는데다 반(反)경쟁적이기까지 하다.

투자자들이 성장을 가치의 척도로 삼는 한, 이러한 행태는 계속 될 것이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학자들이 이야기했듯, “유니콘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동물이다.” 이번 해는 “유니콘”들이 처한 재정적인 현실과 그들이 현재 취하고 있는 자금 조달 모델의 안정성이 매우 중요한 시험대에 오르는 한 해가 될 것이다. 과대평가된 회사들이 내놓는 새 성과물들은 결국 체셔 고양이가 되어 버리고, 버블이 붕괴하기 전 시장에서 빠져 나온 몇몇 이들의 웃음만을 남긴 채 사라져 버릴 것이다.

 

파이낸스타임즈(FT) 칼럼

수, 2019/03/13- 13:09
21
0

이 책은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책이다. 샹탈 무페는 이 책을 ‘포퓰리즘 계기가 드러내는 현재 정세의 본질과 도전을 좌파가 시급하게 이해’하고, 지금이 좌파가 신자유주의 우파의 권력독점을 깨고 민주적 권력을 창출하는 최적의 기회임을 알리려 썼다고 밝힌다. 그렇다면 무페는 왜 이토록 시급한 주장을 좌파를 향해 펼칠까? 무페에게 신자유주의가 지배해 온 지난 40여 년간 (무페는 자신의 분석을 서유럽으로 제한한다) 서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정치적 무능력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나아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 변함없이 무능력한 정당들은 권력 장악을 위해 신자유주의 아래 금융 자본주의의 강제적 명령을 수용하면서, 정치를 우파와 좌파 엘리트 집단 사이 ‘중도적 합의’로 축소해 버렸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1985년에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을 쓸 때만 하더라도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대한 무페의 생각은 이 정도로 절망적이진 않았다. 그러나 소비에트 해체 이후 사회민주주의 정당 스스로 신자유주의에 갇혀 대중주권과 평등이라는 민주적 이상 추구를 포기하고, 대중들의 탈정치화를 촉진했을 때, 무페의 생각은 크게 달라졌다.

사진: 한겨레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악화한 신자유주의 맥락에서 변질된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넘어서는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위한 좌파의 새로운 과제를 주장한다. 이 새로운 좌파의 과제는 무능력한 기존 좌파의 회생이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통제불능의 사회경제적 양극화, 불평등 확산, 부채 증가, 나쁜 노동의 확산, 젠트리피케이션 심화 등 이미 자정능력을 상실하고 점점 심화하는 자본주의의 약탈 행위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과제는 또한 우파 포퓰리즘이 외국인 혐오, 인종주의, 사회적 약자 차별 등 반인권적이고 배타적인 가치를 내세워 헤게모니를 장악해 가는 것을 저지하고 민주적 가치를 복원하는 대안 헤게모니 세력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제는 전통적 좌파처럼 노동자 계급을 절대화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이와 달리, ‘노동자 계급’ 정체성은 다양한 가치와 어떻게 접합되는가에 따라 민주적 가치와 부딪힐 수도, 가장 민주적이고 대중적인 주체가 될 수도 있다. 노동자 계급은 모든 세계시민의 수평적 관계를 나타내는 정체성이 되거나, ‘국민’과 결합하여 가장 폐쇄적인 정체성이 되는, 즉 좌·우파 포퓰리즘 어느 특성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좌파의 과제는 신자유주의라는 전 지구적 신조와 헤게모니가 유기적 위기에 처하고, 정치사회적으로 도전받는 ‘포퓰리즘 계기’에 좌파가 전통적 전략이 아닌 새로운 정치전략을 통해 시급히 개입해 들어가는 것이다.

새로운 정치전략은 곧 좌파 포퓰리즘 정치이다. 우선 무페는 포퓰리즘이란 ‘사회를 두 진영으로 분리하는 정치적 경계를 구성하고, ‘권력자들’에 맞선 ‘패배자들’의 동원을 위한 담론 전략’이라는 라클라우의 정의를 따른다. ‘국민’, ‘민족’, ‘인종’처럼 수평적으로 확장될 수 없는 폐쇄적이고 차별적인 정체성과 결합한 우파 포퓰리즘이 정치사회적 배제와 차별화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는 시도라면, 좌파 포퓰리즘은 이에 맞서는 전략이다. 좌파 포퓰리즘은 한가지 정체성이나 가치를 중심으로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경계를 형성하지 않고, 평등주의적 대중주권을 내세운다. 이 정체성은 다른 정체성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서로 등가 관계를 형성하고 이 관계를 보다 다양한 정체성과 민주적 가치로 끊임없이 확산한다. 이를 통해 ‘대중’의 새로운 민주적 정체성이 구성된다. 따라서 좌파 포퓰리즘은 전체주의적 경향의 우파 포퓰리즘과 달리 하나의 정체성을 절대적 대표로 인정하지 않는 반본질주의 입장에서 민주주의의 급진적 확장을 추진한다. 이 새로운 정체성의 ‘이름’이 바로 새로운 헤게모니, 그리고 이 특수한 좌파 포퓰리즘의 이름이 된다. 이렇게 탄생한 새로운 ‘대중’은 소유적 개인주의 및 대의제의 자유주의와 끊임없이 경합하며 탈정치와 과두제의 포스트 민주주의에 저항할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서유럽을 먼저 장악해가는 우파 포퓰리즘이 대중을 사로잡은 공감 방식이다. 이것은 좌파의 무능력이기도 하다. 그간 좌파는 우파 포퓰리즘 정당의 승리를 그 지지자들 탓으로 돌리면서, 우파가 지지자들의 마음을 얻은 방식에서 교훈을 얻기를 꺼려했다. 무페는 ‘자신들의 문제에 신경 써주는 유일한 자들이 우파 포퓰리즘 정당뿐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이 정당들에 마음이 끌리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고 본다. 물론, 혐오와 차별이 보편 가치가 될 수 없기에 우파 포퓰리즘 정당의 수사적 표현은 진리와 충돌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좌파가 평등주의적이고 민주적인 목표를 추구한다면 지금과는 다른 언어적 표현으로 대중과 정서적 공감을 해야 한다.

잘못하면 포퓰리즘의 이론적 논쟁은 걸리버 여행기의 달걀 논쟁이 될 수 있다. 지금은 훈고학적 논쟁보다 어떤 이름으로 드러나든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통한 좌파 포퓰리즘 정치의 출발이 시급하다. 그렇지 않으면 배제와 차별의 우파 포퓰리즘의 승리가 분명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살아남은 모든 자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교수신문, 2019년 3월 12일에 게재된 글입니다(필자가 공동게재에 동의하여 실린 것임).

 

이승원

서울대·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월, 2019/03/18- 10:09
21
0

지난 주간에 있었던 대한항공의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당시 회장의 이사직 연임을 부결시킴으로써 한국기업의 경영사에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비록 뒤이어 열린 한진칼(대한항공의 1대주주)의 총회에서 조양호씨의 심복으로 평가받는 인물이 대표이사로 선임되어 그 의미가 반감되었다 하더라도, 박정희 군사정권부터 진행되었던 개발독재 정책의 산물로 탄생한 재벌체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단적 경영지배 구조 속에서 일개 개인과 가문이 대기업 집단을 전횡적으로 마음대로 주물러온 소위 황제경영의 폐습에 일대의 경고를 보내고 현대적 경영의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를 정말 실망시키는 것은 조양호씨를 이사직에서 해임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국민연기금 등 공적 투자기관들과 주무부처 장관들이 보인 애매모호하고 불분명한 태도이다.

현대적 의미에서 상장기업은 결코 개인과 가문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더구나 한국재벌기업들의 성장 뒤에는 수많은 국민들의 피와 땀이라는 희생이 있었고 국민경제의 주요 자원을 일방적으로 집중 지원받아온 특혜라는 정경유착의 역사적 배경이 있었음은 모든 국민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일반 국민들과 연기금들이 투자하는 증권시장에 상장을 허용하고 기업들에 법인격을 부여한 이유는 해당국가가 지닌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가용 가능한 국민경제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경영하고 나날이 혁신하여 해당 국민들의 경제적 생활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어가야 할 책임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칙과 맥락에서 개별 기업이 성취한 경영의 이익을 주주로서 배당을 받고 경영자와 종업원들이 기여에 따라 보상을 받는 것은 마땅하고 건강한 경제운영의 논리이다. 사적 소유의 재산권은 대한민국의 헌법 여러 곳에서 명백히 적시하였듯이 국민경제에 대한 정합적인 역할과 긍정적인 기여 속에서 정당하게 보호받고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사회적이며 국민경제생활에 해를 끼치는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이며 사익추구적 행위조차 사유권의 보호라는 이름으로 묵인하는 것을 결코 용납해서는 아니 된다.

이에 3.1서울민회는 문재인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해당 기관들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하고자 한다.

  1. 대한항공 사례를 계기로 국제적 조롱거리인 한국재벌들의 족벌경영 체제를 해체하고 국민경제에 책임을 다하는 현대적인 전문경영의 시대를 활짝 열어가야 한다.
  2. 국민연기금을 비롯하여 모든 공적 투자기관들은 확고하고 분명한 스튜어드쉽(주주행동 원칙)을 일반화하고 이를 예외 없이 시행해야 한다.
  3. 경제사범으로 예건데 일년 이상의 실형을 받은 자가 상장기업의 책임 있는 경영자리에 역임할 수 없도록 반듯한 윤리지침(Code of Conducts)를 만들어야 한다.
  4. 기업 내에 비리와 특혜가 만연한 현재, 기업의 비리를 밝혀 내는 용감한 내부 고발자들을 보호하고 평생을 보장하는 특별법을 반드시 제정해야 한다.

2019. 04.

 

3.1 서울민회 경제민주화 위원회 일동

월, 2019/04/01- 15:00
21
0

편집자 주:

ICC 국제형사재판소는 유엔 결의와 국제사회의 요청에 따라 대규모 민족학살을 방지하고 전쟁 중에 빈번한 반인권적 비인간적 범죄행위를 추적 조사하고 처벌하고자 하는 목적에 따라 발족된 국제 기구이다. 십 수년 전부터 미국의 아프칸 침공과정에 발생한 수많은 전쟁범죄 행위 중에 몇 명의 피해자가 고발해오면서 ICC는 수 년간 이를 추적 조사하였고 명백한 증거와 문건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볼턴은 작년부터 ICC에게 조사행위를 중단하도록 온갖 협박과 경고를 보내 왔으며, 급기야 지난 주 조사단이 미국의 가해자를 면담하려 입국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폼페이오는 이를 불허한다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중국과 북한 등을 민주주의 원칙과 인권의 이름으로 맹비난해온 미국 자신이 바로 반인권적 비인간적 전쟁범위를 옹호하면서 “미국과 동맹(이스라엘)의 주권과 자국민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또 다른 국가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조폭스런 범죄국가 미국에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기대하는 일은 구걸행위와 다름이 없는 것 아닐까 ?


최악의 인권 유린자들이 자행하는 전체주의적 행태의 냄새가 풍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금요일의 언론 브리핑에서 새로운 비자 발급 제한에 대해 발표했다.(사진: U.S. State Department)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 금요일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국과 주요 동맹국 인사의 전범행위를 조사하거나 해당 혐의로 기소하고자 하는 국제형사재판소(ICC) 인사의 비자를 철회하거나 발행을 거부한다는 내용을 밝히자 인권 보호 운동가들은 분노를 표현했다.

이는 오늘날에도 우리의 의뢰인을 괴롭히고 있고 문서자료 또한 충분한 전범 행위의 재판에 대한 국제적 책임을 우회하려는 전대미문의 시도입니다.” – 자밀다크와르, 미국 시민자유연맹.

금요일 아침 폼페이오가 기자들에게 확인한 이러한 움직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반인권적인 범죄들과 전쟁범죄 혐의를 밝히려는 국제형사재판소의 노력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움직임이었다.

미국 시민자유연맹 인권 프로그램의 감독자인 자밀다크와르는 해당 결정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분명히 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미국 시민자유연맹은 2003년부터 2008년 까지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구금과 고문을 당했던 피해자들인 칼레드 엘 마스리, 슐레이만 살림, 그리고 모하메드 빈 사우드를 대변하고 있다.

다크와르는 “이는 오늘날에도 우리의 의뢰인을 괴롭히고 있고 문서자료 또한 충분한 전범 행위의 재판에 대한 국제적 책임을 우회하려는 전대미문의 시도입니다, 최악의 인권 유린자들이나 자행하는 전체주의적 행태의 냄새가 풍기며, 이는 또한 심각한 인권 유린을 심판할 정의를 원하는 사람들, 검사들, 그리고 판사들을 겁주고 보복하려는 뻔한 노력입니다.”라고 밝혔다.

휴먼라이프 워치의 국제 재판 담당자인 리차드 디커 또한 해당 결정을 “재판소를 괴롭히려는 터무니없는 행동이며 미국의 행위에 대한 정밀한 조사를 방해하려는 공작이다.” 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국제형사재판소의 회원국들에게 “공개적으로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지지”를 호소했다.

국제 앰네스티 미국 지부장 다니엘 발슨은 그저 “인권 보호의 시계를 되돌리는 데에 혈안이 된 행정부가 국제형사재판소와 국제 기구에 가한 또 한 차례의 공격일 뿐이다”고 언급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비자 제한은 “가장 심각한 수준의 인권 유린자들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하는 강력한 도구” 이다.

하지만 국제 범죄자들을 겨누는 대신, 트럼프 행정부는 시선을 국제형사재판소로 돌렸다. 국제 형사재판소는 국제법에 의거하여 창설된 공정한 사법기구로서, 침략, 반인류적 범죄, 전쟁범죄, 학살 등을 증명하고 기소하여 국가적 책임을 확실히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의 조사를 방해하는 것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정의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제법상 범죄의 희생자들과 생존자들을 위한 정의마저 해치는 것입니다.” – 다니엘 발슨, 국제 앰네스티 미국지부.

발슨은 이번 비자 규제가 “인권 침해를 가볍게 여기는 [트럼프 행정부의] 문화를 보여주며, 국제 형사재판소의 조사를 방해하는 것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정의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제법상 범죄의 희생자들과 생존자들을 위한 정의마저 해치는 것.” 이라고 밝혔다.

폼페이오의 발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 안보 보좌관이자 오랫동안 국제형사재판기구를 비판해 왔던 존 볼턴의 재판소 인사에 대한 제재 위협 이후에 나왔다. 볼턴은 지난 9월 이후 국제형사재판소가 미국 민간인 혹은 군인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 계속 조사하는 형사재판기구 인사에 대한 제재를 언급한 바 있다.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한 볼턴의 맹비난에 이어서, 폼페이오는 지난 금요일 미국이 20년 이상, 공화당 정부와 민주당 정부를 막론하고, 국제형사재판소의 회원국이 되기를 거부해 왔음을 밝히며, 그 이유로 “광대하고 무책임한 기소 권한이 미국의 자주권을 위협한다”는 점을 들었다.

폼페이오는 또한 “재판소가 종국에는 정치적인 이유로 미국인을 고소하려고 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며,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과 동맹국의 군인과 민간인들이 우리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한 일에 대해 부당한 기소를 당할 공포 속에 살지 않도록 보호하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고도 밝혔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러한 비자 제한 조치는 국제형사재판소가 이스라엘을 포함한 우리 동맹국의 인원을 쫓지 못 하게 하는데 쓰일 수도 있으며, 해당 정책의 시행은 이미 시작되었다.” 고도 전했다.

 

Jessica Corbett

Common Dreams의 전속작가

화, 2019/03/19- 15:12
2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