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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1] 영국 복지 체험기: 자유주의 복지국가의 국민기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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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1] 영국 복지 체험기: 자유주의 복지국가의 국민기초선

익명 (미확인) | 금, 2016/07/01- 16:19

영국 복지 체험기: 자유주의 복지국가의 국민기초선

 

김형용 ㅣ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높은 생활 비용, 더는 시장에 맡길 수 없는 최소한의 복지

어찌 보면 영국은 사회 전반이 비용 문제를 두고 매일 전쟁을 치른다. 뉴스에서는 연일 높은 주택 가격과 에너지 요금, 대학등록금 인상, 국민건강서비스(NHS) 재정 적자와 서비스 축소, 캐머런 정부의 환상적인 긴축재정 등이 헤드라인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정점에 이른 브렉시트 국민투표 논쟁도 탈퇴요구 측이 이민자로 인한 공공서비스 부담 등 경제적 손실을 강조하고 나오자, 잔류요구 측이 유럽연합 탈퇴시 발생할 수 있는 추가 비용이 가구당 연 4300 파운드(약 7백만 원)에 달한다며 싸우는 식이다. 모든 것이 비용으로 계산되는 이기심과 공공선, 가히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의 나라이다.

 

나에게도 영국 생활의 관건은 일단 높은 비용 문제였다. 1년 체류 계획을 가지고 집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그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일은 이사하자 마자 날라오는 각종 고지서였다. 수도요금이 450 파운드 (78만 원), 텔레비전 수신료 145 파운드 (25만 원), 그리고 무엇보다 놀란 것은 카운슬텍스, 즉 거주하는 순간 지방정부가 주택자산에 부과하는 주민세 1,068 파운드 (183만원)이었다. 도모지 믿을 수 없는 금액에,  나는 곧바로 카운슬 (지방정부)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세금이 제대로 부과된 것 인지부터 확인하였다. 나의 경우 20평 규모의 작은 플랏 (연립주택)이라 아주 낮게 책정된 것 (B band)이며, 뒷마당이 있는 좋은 집에  사는 경우(G, H band)는 2,744 파운드 (470만 원) 정도는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10년 무사고인 나에게도 자동차 보험료 1300 파운드(223만 원), 한 달 전기료 120 파운드 (20만 원) 고지서를 받은 후에야 이 모든 비용을 체념하듯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 이후로부터는 비용을 줄이기 위한 영국식 생활 습관을 무의식적으로 배우게 되었다.

 

비용 문제는 가계를 넘어 국가 차원에서도 매우 절실한 문제이다. 영국은 2009년 국가 부채가 GDP의 65.8%에 달하자, 국민들은 복지보다는 어려운 국가 재정 문제부터 해결하자는 보수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보수-자민당 연정은 2010년 집권한 후 1500억 파운드(270조원)가 넘는 정부 부채를  2019년까지 흑자로 전환하기 위해 과감한 긴축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 공공부문 일자리 수는 2009년 637만1천 명에서 2015년 12월 기준 534만7천 명으로 급격히 감소하였다. 불과 6년 만에 100만 명 이상의 공공 일자리가 줄어든 것이다. 각종 복지는 마가렛 대처 시대보다도 급격히 축소되어, 복지 예산은 지난 5년간 150억 파운드(25조7천억)나 줄었다. 영국재정연구소 (IFS)의 부처별 예산분석에 따르면, 소득보장과 복지급여 업무를 총괄하는 고용연금부의 예산은 이 기간 동안 35%가량 감소하였고,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지방행정부 예산은 46%나 감소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자민 연정이 집권 초기부터 긴축에 포함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한 사회정책이 있는데 바로 교육과 건강이다. 캐머런 정부는 2010년에서 2015년 사이 다른 정부 부처의 예산은 평균 20.6%나 삭감한다고 하면서도, 교육과 건강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실제로 사회보장의 핵심인 NHS의 예산은 같은 기간 6.2% 증가하였고, 일반 공립학교 예산은 3.0% 증가, 그리고 무상보육 확대 정책에 따라 미취학아동 예산이 39.1%나 증가하였다. 물론 교육과 건강 부문 예산이 충분하였던 것은 아니다. 교육부의 시설 투자 등 자본지출 예산은 41.2%나 줄어들었고, 16 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투자도 크게 감소하였다. 특히 대학등록금 상한선을 9천파운드로 인상한 2010년 이후 영국 대학생은 졸업시 평균 4만 파운드 빚을 지고 있다. NHS는 증가하는 수요에 훨씬 못 미쳐 잉글랜드만 올해 벌써 23억 파운드 적자가 발생하였고, 가디언지 등 많은 언론들이 재정문제로 인한 환자 조기퇴원, 불충분한 정신보건 서비스, 의료 인력의 낮은 처우 문제 등의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심지어 장애인과 빈곤 아동의 생계 급여 마저 대폭으로 삭감하는 캐머런 정부가 정부 예산의 가장 거대한 부문을 차지하고 있는 교육과 건강 만큼은 건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영국민의 소비지출 구조를 통해 살펴보면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영국통계청에서 실시하는 가계동향조사를 보면(2014), 영국민이 교육과 건강에 지출하는 비용은 가계소비지출의 단지 2%와 1%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영국민이 가장 많은 소비지출을 하는 분야는 교통(14%), 주택에너지(14%), 여가(13%) 순이다. 노동당 당수 제레미 코빈이 철도와 에너지 기업을 다시 국유화 하자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영화 이후 교통요금과 전기 가스 요금이 가계 지출의 약 30%나 차지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국가가 주민 생활에 필요한 일반적인 서비스를 시장에 맡긴 결과, 가계가 파탄난 것이다. 반면 여전히 지방정부가 그 책임을 맡고 있는 교육 분야는 단지 주당 9.8파운드(1만6천원) 그리고 중앙정부의 NHS가 책임지는 건강 및 의료에는 7.1파운드(1만 3천원) 밖에 비용이 들지 않는다. 자녀교육에 많은 비용이 예상되는 30~49세 가구주 가구의 경우도 교육비는 주당 10.2 파운드에 불과하며, 학생가구 비중이 높은 30세 미만 가구의 경우가 주당 25.7 파운드를 지출할 뿐이다. 한국의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교육은 소비지출의 10~13%, 그리고 건강의료는 6% 내외를 차지하고 있다. 대다수 시민들이 자녀교육비와 그리고 건강의료비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것과는 비교되는 지점이다. 보편적 복지와 생계의 관계는 이렇게 분명하다.

 

보편적 복지는 우리가 얼마나 비용을 부담할 것인지와 우리가 얼마나 기본적인 혜택을 받을 것인지의 밸러스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영국재정연구소(IFS)도 사회정책의 재정건전성이란 국민의 욕구가 재원에 의해 제약되는 것을 의미함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사실 보편적 복지에 재정건정성 기준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왜냐면 국가가 보장하는 공공서비스는 서비스를 판매해서 수익을 올리는 비지니스가 아니라 매년 결정되는 국가 예산에 의해 그 양과 질이 조정되는 것이다. 즉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선택에 속한다. 영국인들은 공공서비스에 대한 비용과 혜택에 대한 명확한 연관 고리를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때문에 시민들은 교육과 건강까지 재정건전성 기준을 적용하거나 시장에 내맡긴다면 그들의 삶은 더욱 더 고위험과 고비용이 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비근한 예로, 2015년 NHS에 대한 국민만족도는 60%로 나타나 5년 전 70%에 비해 크게 떨어졌고 일반의(GP)에 대한 만족도는 1983년 서베이가 시작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였다. 주목할 부분은 39%나 되는 응답자가 정부의 불충분한 재정지원을 불만족의 이유로 꼽았다는 것이다. 영국인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사회정책인 NHS에 대한 공격은 상당한 정치적 위험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교육 : 카운슬텍스의 변명?

도대체 지방 정부가 나에게 무엇을 해주길래? 이러한 질문을 갖게 한 카운슬텍스는 불과 한 달 만에 ‘이 정도는 부담해야지’  라는 비용으로 바뀌었다. 일단 모든 서비스에 비용이 붙은 사회에서, 쓰레기 수거와 각종 공원 이용 만으로도 내가 거주하는 카운슬 공공기관의 이름을 끊임없이 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두 자녀가 다니는 공립 초등학교의 경험이 그 비용을 충분히 상쇄하였기 때문이다.

 

지방정부는 쓰레기 수거, 교통, 경찰 서비스 등 주민 생활에 밀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 중에서도 지방정부의 주요 세출기능은 교육(34%), 주택(19%), 사회서비스(16%)이다. 이 비용의 약 80%는 중앙정부의 보조금이지만, 자체세입인 카운슬텍스는 지방정부에 납부하는 유일한 세금으로 지방정부마다 그들이 정하는 주민 편익의 수준에 따라 다른 금액을 독자적으로 부과할 수 있다. 따라서 영국민은 지역의 카운슬텍스가 자신이 받는 공공서비스 혜택과 직결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는 세금과 편익의 인과관계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는 정부간 사무구분이 불명확하고 지방정부의 과세자주권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국 공교육에 대한 만족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결코 교육 수준이 높거나 시설이 좋아서가  아니다. 특히 부모들은 학업 성취도 측면에서 영국 공교육의 붕괴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반면 만족의 이유는 지방정부 공립학교인 커뮤니티 학교에 다니는 모든 아이들이 적절한 관심과 보호를 받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특수한 교육적 욕구, 장애, 학업발달 수준, 부모 참여 등에 대한 교육의 기본선은 각종 법령지침에 의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었고, 학교 현장에서 그대로 체험할 수 있었다. 먼저 외국인인 나의 자녀의 경우 카운슬에서 배정한 학교 측은 일주일 후 등교할 것을 권했다. 그동안 한국어 통역교사를 섭외해 놓겠다는 것이었다. 학교에 적응하려면 선생님들이 아이를 잘 알아가기 위한 과정이 필요한데 따라서 한국어 통역교사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배정된 학급에는 두 명의 담임 교사가 있었고, 이와는 별도로 두 명의 보조 교사가 번갈아 가면서 학생들의 학업을 도왔다. 또한  영어를 못하는 아이들은 언어 교사와 하루에 2시간 이상 분리 수업이 진행되었다. 매일 4-5명의 교사가 있는 셈이라, 걱정하였던 외톨이 시간은 있을 수가 없었다. 하물며 장애 아동은 어떻겠는가 생각해 보면, 한국의 통합교육이 창피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부모와의 소통도 여러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매주 학교 뉴스레터가 이메일로 보내졌고, 정기적 면담 이외에도 각종 부모참여 행사 참여가 거의 격 주로 있었다. 발달장애인, 소아암 아동 등을 위한 자선 행사 뿐 아니라 지역 프로젝트가 교사 학생 부모의 협업 하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외부로 견학 수업의 경우는 돌봄이 필요한 아이의 부모가 동참하게 하였다.

 

영국에서 느낀 보편적 교육은 단지 무상급식이 아니었다(급식은 무상이 아니었으므로), 그 어떤 학생도 교육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고려된 참여의 체계였다. 물론 학교마다 인종 및 계층에 따른 분리 그리고 공교육의 학업 수준 저하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이에 캐머런 정부는 모든 공립 초등학교를 중앙 정부 통제의 효율적 학업중심 아카데미로 전환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더 많은 아이들이 관심에서 멀어지는 우려가 현실화 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이들은 여전히 카운슬텍스를 더 납부하더라도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 유지되기를 희망한다. 지방정부 서비스에서 공교육은 항상 3대 기능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으며, 공교육에 대한 이용자 만족도가 75%로 다른 어떤 서비스보다 높은 수준이다.

 

NHS : 최상이 아닌 최선의 국민건강서비스

영국 복지의 대명사인 NHS에 대해서는 비교적 명료한 두 가지 시각이 존재한다. 하나는 1948년 도입 당시부터 견지 되어 온 3 가지 원칙 즉 국민 모두에게, 지불 능력이 아니라 임상적 필요에 의하여, 의료서비스가 무상으로 제공된다는 점에서 전 세계의 부러움을 받는다. 실제로 진료비, 수술비, 입원비, 앰뷸런스 등 모든 의료서비스가 무상이며, 약제비가 일부 부과되어 현재는 8파운드로 한정되어 있지만 이 또한 노인과 학생은 면제된다. NHS에 대한 다른 시각은 의료 소비자의 불만들로서 긴 대기시간, 상급 접근성 문제, 의료진의 낮은 수준, 일률적 보장성 등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아무리 고열이 나도 감기로는 의사조차 만나기 힘들고, 게이트키퍼인 GP(동네 일반의) 를 만나기 전에는 다른 전문의를 만날 수 없고, 대부분의 의료진은 외국계이며, 값비싼 치료약은 처방되지 않는다 등의 부정적 시각이다.

 

내가 관심이 있었던 것은 그 부정적 내용이 사실인지 아니면 이 또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지였다. 그리고 우연히 영국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운동 중에 손가락을 다쳐서 이 참에 NHS의 현장을 확인해 보려고 하였다. 일단 GP 예약을 위해 전화를 걸었고, 당일 두 시간 후 예약이 잡혔다. 예약한 시간에 찾아가서 곧바로 의사를 만날 수 있었으며, 이 영국계 의사는 병원에서 엑스레이 촬영을 하고 다시 GP에 와서 진료받는 것은 시간이 걸리니 골절이 의심되는 경우 곧바로 종합병원 응급실(A&E)에서 치료까지 마치는 것이 좋다고 제안하고 의뢰서를 써 주었다. 종합병원 응급실을 방문하였을 때 응급환자 말고 가벼운 사고 환자들만 접수하는 곳이 따로 있었으나, 긴 줄을 보고 발길을 돌렸다. 다음 날 아침 다시 방문하였을 때 같은 장소에서 접수 후 곧바로 체크업 그리고 엑스레이 촬영과 진료까지 총 시간은 한 시간이 조금 넘게 소요되었다. 나를 감동하게 한 것은 이 날 걸려 온 GP 의사의 전화였다. 전일 응급실 방문했다가 되돌아 간 사실을 통보 받은 의사는 자기 환자가 미치료된 것으로 알고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즉 게이트키퍼인 GP에서 상급병원 진료까지 환자 치료정보가 공유되고 사후관리까지 책임지는 체계였다. 일단 내 경험으로 보면 NHS를 공격하는 대기시간, 의료진 수준, 상급 접근성 등은 모두 문제가 없었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점은 응급실에서 접수할 때 병원까지 온 교통수단을 확인하면서, 차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경우는 되돌아 가는 길에 무료로 택시를 불러준다는 것이었다.

 

다만 GP에 엑스레이실도 없다는 것과 한국 동네에 흔한 정형외과 등 전문클리닉이 별로 없어 종합병원까지 간다는 것은 역시 소비자로서 매우 불편한 지점이다. 공공서비스로 의료가 제공된다는 것은 누구나 건강권을 보장받는 확실한 장치이긴 하지만, 동네 슈퍼마켓과 같은 시장 영리의료에 익숙한 나에게는 좋은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신속하고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 의료서비스를 기대하는 이에게 통제된 접근성은 NHS의 가장 큰 불만일 수 밖에 없었다. 이에 영국도 NHS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NHS 헌장은 앞서 설명한 세 가지 원칙에 더불어 의료전문성, 환자중심성, 유관기관 파트너쉽, 재정효율성, 대중책무성이라는 원칙을 추가하였다. 이러한 원칙은 일부 민영화로 나타났고, 현재 민간 병원과 민간 의료보험이 10% 이상의 의료공급을 점유하고 있다. 반면 NHS는 위기에 놓여 있는데 95%의 병원, 80%의 앰뷸런스, 46%의 정신건강센터가 적자상태이다. 캐머런 정부는 NHS 예산을 지킬 것이라는 약속을 지키기만 하였기 때문이다. 보수-자민 연정의 2010-2014 기간 동안 NHS 예산 증가는 연성장률로 바꾸어 보면 0.8%에 불과하고, 이는 1948년 NHS 탄생 이후 가장 작은 증가세였다. 심지어 세계경제위기 시기인 고든 브라운 정부에서도 연 6.7%의 증가세를 보였다. 의료 수요증가에 따른 충분한 재정적 원조가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NHS 성과지표인 ‘98%의 환자를 대기시간 4시간 이내 진료’라는 지표도 95%로 낮추는 방식으로 적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HS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좋은 시스템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 전국민의 의료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NHS 무상의료는 의료서비스 품질, 충족률, 효율성 측면 모두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도 그리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영국은 GDP의 8.5%를 건강 부문에 지출하고 있으며, 이는 OECD 평균 8.9%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참고로 한국은 6.9%은 미국은 15.4%이다. NHS 예산은 2016년 기준으로 1164억 파운드이며, 1인당 2천 파운드(340만 원) 수준이다. 그리고 NHS 예산은 일반조세에서 98.8%, 개인이 1.2%을 부담하고 있다. 모든 국민에게 최선이라고 판단되는 의료가 무상으로 주어지는데, 한국의 의료 비용 지출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은 공공의 효율성을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지점이다.

 

기본적인 삶의 영역에서 확고한 공공서비스

공공서비스는 국민들의 생활에 가장 밀접한 보편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누구나 이러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비용을 공동으로 국가에 내는 것이다. 영국 복지국가의 탄생인 베버리지 보고서는 그 보편적 욕구에 부응하는 정책을 다섯 가지 기둥들 소득, 건강, 고용, 교육, 주거 정책으로 보았고, 개인의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동일한 급여가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을 지향하였다. 가난한 이들에게만 적용되는 복지는 오히려 빈곤 덫을 야기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동일한 혜택에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베버리지가 강조한 원칙은 국가와 개인 간의 협력이었다. 개인은 그 부담의 원칙을 인식하고 있어야 하고, 국가는 개인 부담에 따른 혜택을 책임지는 것이다. 양자에게 모두 관통하는 것은 국가기초선 또는 복지기준선이다. 영국의 복지는 최상의 서비스 또는 최고의  성과와는 거리가 있지만, 아파도 병원에 못 가거나 장애를 이유로 학교에서 소외되는 이들은 없다. 베버리지에서 한참을 후퇴한 현재의 영국임에도 그렇다. 불현듯 한국의 사회서비스 정책이 떠오른다. 삶을 유지하는 기본적 영역에서 기초선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많은데, 각종 여가 및 음악교습까지 유망 사회서비스를 바우처로 발굴한다는 보건복지부 정책은 도대체 왜 계속되는 것일까.

 

 

참고

비용 문제는 경제적 문제보다는 정치적 문제이다. 예를 들어, 한국 보수 언론 대부분은 캐머런 정부의 긴축을 허리띠를 졸라맨 국가 재건이라고 칭송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 언론들은 캐머런 정부가 2009년 -5.9%의 경제성장률을  2%대로 회복시켰고, 1,592억 파운드에 달하던 정부 재정 적자규모를 822억 파운드 수준으로 줄였으며, 실업률도 5% 이하로 떨어지면서 11년 만에 최저치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의도적 왜곡 또는 정치적 선동에 지나지 않는다. 비교 시점이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가 발생하여 과감한 양적완화가 진행되던 때이기 때문이다. 비교 시점을 이전 정권인 신노동당 12년(1997-2009)을 평균으로 볼 때 최근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오히려 낮고 실업률도 높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여 공무원 수가 준 것이 아니라, 알짜배기 국영기업인 로얄메일(우체국), 공립 대학준비과정(sixform college)를 민영화하고, 또한 일부 국유화되었던 로이드뱅크의 일자리를 다시 민간일자리 통계로 바꾼 결과일 뿐이다. 이를 두고 작은 정부 정책으로 인하여 민간 시장이 활성화되었다는 주장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당초 보수-자민 연정은 재정 긴축과 함께 그 해결 방식으로는 공정한 사회 즉 능력 있는 자가 더 많은 부담을 지는 시스템이라고 하였으나(캐머런 총리의 보수당 연설, 2010), 그러나 정작 현실은 서민 부담이 가중되는 부가가치세 20% 인상, 설탕세 도입, 장애인 및 아동복지 급여 삭감, 주택 수당 삭감, 지방정부 돌봄서비스 삭감, 그리고 법인세 대폭 인하  등이었고, 오로지  2020년까지 시간 당 9.35 파운드(약 1만 6천 원)로 인상하는 최저임금 정책만이 그나마 공정한 정책이었다. 재정 긴축은 법인세 인하(28%에서 20%) 등 자유시장에게 줄 선물을 위한 정치적 명분일 뿐이다.

 

 


 

참고문헌

Crawford, R & Keynes, S. (2015). Ch.7. Options for futher departmental spending cuts. IFS Green Budget 2015. Institute for Fiscal Studies
Office for National Statistics(2015). A Report on the Living Costs and Food Survey 2014.
Appleby, J & Robertson, R. (2016). Public Satisfaction with the NHS in 2015. The King’s Fund.
The Office of the Deputy Prime Minister(2005). New Localism- Citizen engagement, Neighborhoods and Public Services: Evidence from Local Government.  http://www.theguardian.com/society/2014/jun/17/nhs-health
OECD(2015). OECD Health Statistics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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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김형용 | 월간 복지동향 편집위원장,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다시금 출발선이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6·15 남북 공동선언 때, 이미 우리는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하였다. 더 나아가 그 방법론에 있어서도 남북 각자의 제안에 공통성이 있으므로 상호 협력을 통해 신뢰를 구축해 나가자고 하였다. 그러나 언제나 약속은 쉬웠고 이행은 어려웠다. 정권이 바뀌고, 남쪽의 보수는 권력쟁취를 위해 반공주의와 권위주의를 되살려 내었다. 북쪽은 체제 안정의 수단으로 선군정치를 계승하였고, 위협적으로 미사일과 핵실험 그리고 군사적 도발을 통해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켜왔다. 결국 올해 초만 해도 한반도에서 북미간 군사적 충돌은 현실로 다가오는 듯하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4월 27일 갑작스런 남북의 판문점 선언은 한반도 평화와 번영 그리고 통일을 위한 6·15 선언이 있었던 그 때로 시간을 다시금 되돌려 놓았다. 그리고 6월 12일 드디어 70년의 냉전이 녹아내리기 시작하였다. 역사적 북미회담이 개최되고 미국의 대통령은 이제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남쪽의 운전자가 북한의 비핵화를 테이블에 올려놓았고 세계가 평화체제에 동승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에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평화체제가 정착되면 무엇이 달라질 것인지 상상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면 경계를 허무는 경제 협력이 활발해질 것이다. 경제 협력은 동시에 사회적 체제 통합의 논의를 이끌 것이고, 다시금 분배와 재분배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를 요구할 것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한반도의 새로운 역사적 체제로서 평화복지국가를 기대해 본다. 본 호에서 윤홍식 교수는 그동안 한반도의 남북갈등이 민주주의와 복지국가 발달을 심각하게 저해하였다고 보았다. 근대화 과정에서 반공주의가 복지국가 세력의 성장을 억압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평화체제의 도래는 복지국가 주체를 다시금 사회 전반에 등장시키는 기회를 마련한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경제에서 고통 받는 비정규직, 청년, 여성, 자영업자, 농민 등이 대안 세력으로 등장해야 한다. 이제야 이들이 자유롭게 발언하는 공간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복지국가는 이들의 정치적 참여에 의해 그 모습이 결정된다. 또한 우리는 북한 사회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민기채 교수는 북한의 사회보장제도를 소개하면서 어찌 보면 사회주의 체제에서 복지가 더욱 촘촘한 국가책임 제도를 구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평화복지국가의 구상은 제도의 우열을 떠나 서로 다른 두 체제의 제도와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황규성 연구위원은 통일 독일의 경험에서부터 국가간 통합에 있어 복지국가의 중요성에 주목하였다. 독일은 통일 과정에서 생활수준 균등화 대원칙을 견지하였고 이에 복지가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는 것이다. 김건우 참여사회연구소 간사는 평화복지국가 구상에 있어 북한인이라는 타자의 시민권 뿐 아니라, 시민적 권리의 확대를 적극적으로 상상해 보자라고 제안하였다. 

 

항상 기회는 많지 않았다. 새로운 창이 열린 지금이 한반도의 새로운 비전을 설계할 적기이다.

일, 2018/07/01-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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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김형용 ㅣ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아픔이 오래가면 이 또한 무감해지는가 보다. 내 몸의 피로와 상처도 시간이 흐를수록 익숙해지는 데 남의 아픔인들 안 그렇겠는가. 세월호 참사에 분노하고 절망했던 시간이 희미해져가면서 이제 일자리를 잃는 수많은 노동자들과 헬조선의 청년들 그리고 기본적 생활조차 위협받는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우리 시대 불감증은 그렇게 보편화되었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2015년의 사자성어는 혼용무도(昏庸無道)였다. 즉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로 인하여 나라 상황이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이다. 그러나 암흑의 세상은 보이지 않는 고통보다 보지 않는 고통이 더욱 많은 법이다.

 

2016년 총선도 그렇게 다가오고 있다. 2012년 대선과 2014년 지방선거 그리고 또 다시 2년 만에 찾아온 선거에서도 우리는 비참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이미 선거를 앞두고 여러 가지 심판론이 판을 치고 있다. 야당은 정권을 심판하자고 하는 한편, 청와대는 국회를 심판하자고 하며, 혁신세력은 현역을 심판하자고 하고, 진보는 낡은 정치를 심판하자고 한다. 심판을 할 대상은 이렇게나 많은데, 이들을 모두 심판하고 나면 우리는 다시 서로의 아픔에 민감하게 될 것인가? 아니라면 무능함은 통치자나 정치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정치가 그렇게 정치로만 남아있을 때, 나와 타인이 연결되는 사회적 신경세포는 작동하지 않는다.

 

정치란 가치와 권력의 배분과 관련한 것이다. 일단 가치와 권력이 배분되면 그 구성에 따라 세상만사가 자리를 잡게 된다. 그리고 선거는 이 배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하나의 정치행위이다. 따라서 자신이 선택한 가치와 권력이 아무리 바르다고 판단할지라도 지난 동안 세상만사가 어지러우면 그 선택에 대한 스스로의 철저한 반성이 요구된다. 이는 정권이나 정치인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심판하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라는 시대적 과업을 국민들이 선택하였다. 다만 국민이 선택한 권력은 집권 후 그 모든 위임된 권한을 방기하고 약속을 파기하였다. 그럼에도 선택은 옳았는가? 이러한 판단이 쉽지 않은 이유는 대안적 선택이 그렇다고 희망과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도 있지 않아서이다. 즉 어떠한 정치적 선택도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명확성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스스로의 선택을 반성할 기준도 없고 정치적 무능감이 사회적 불감증으로 전이된다.

 

결국 선거 정치가 사회를 바꾸려면 내 한 표에 대한 성찰과, 희망을 제시하는 대안 정치세력의 존재, 두 가지 모두가 중요하다. 각 정치세력은 명확한 인과 관계에서 선거와 정책을 연결시키고, 시민들이 그 선택의 결과를 현재의 고통과 비교하여 상시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이번 복지동향은 이러한 취지에서 ‘선거정치로 한국사회를 바꿀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었다. 총론으로 남찬섭 사회복지위원장은 이번 총선이 한국사회의 전환기적 성격에 대응하여 복지국가를 주도할 정치세력의 등장이 요구되며 또한 복지국가로 대표되는 대안사회 요구가 여전히 유효한데 집권 초기부터 그 민심을 배신한 것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남기철 교수는 현 정부가 보편적 복지국가의 형성과 양립할 수 없음이 분명한 이상 이들에 대한 심판이 없다면 보편적 복지국가의 전망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보영 교수는 이에 더 나아가 심판론은 대안이 없다는 안일함의 표현일 뿐이며 대안의 설득력과 구체성의 싸움을 전개하기 위하여 싱크탱크의 역할을 주문하였으며, 신규철 인천평화복지연대 정책위원장은 지역복지운동단체들이 지역주민들이 공감하는 복지이슈를 총선핵심의제로 부각시키는 대중정치활동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2016년 총선, 한 달 남짓한 기간, 선거정치의 변화를 기대해 본다.

목, 2016/03/1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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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xe_content"><h1 dir="ltr">편집인의 글</h1> <p dir="ltr"> </p> <h3 dir="ltr" style="text-align:right;">김형용 월간 복지동향 편집위원장,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h3> <p dir="ltr"> </p> <p dir="ltr">미래학자인 자크 아탈리는 불안을 먹고 사는 두 가지 산업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바로 보험과 오락이다. 특히 보험은 불안정과 위험이 더욱 증가하는 시대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개인의 선택으로 집중되고 있다. 이에 국가보다 민간 보험회사들이 더 큰 위력을 갖게 되는데, 우리나라의 현실이 딱 그러하다. 2017년 기준 국내의 생명보험사 보험료 수입은 114조 원, 그리고 손해보험사는 88조 원 규모이다. 민간 보험회사가 연 202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보험료로 거두어들이는데, 이 규모는 2017년 국세 359조 원의 절반 이상이며, 소득세 75조 원의 2.7배의 규모이다. 즉 우리나라 국민은 자신의 소득명세서에서 국가에 납부하는 세금보다 민간 보험회사에 납부하는 ‘세금’이 거의 세 배 정도인 셈이다.</p> <p dir="ltr"> </p> <p dir="ltr">미래가 불안할수록 민간보험회사의 수익은 늘어날 것인데, 문제는 그 불안함을 조장하는 이도 정부이고 그 대안 선택을 민간 보험회사로 마련한 이도 정부라는 점이다.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정부의 조치는 연금저축에 따른 세액공제이다. 웬만한 직장인들은 개인연금저축에 가입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사실상 먼 미래의 노후보장이 아니라 세액공제 때문이다. 정부는 국민의 노후 준비를 독려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연간 400만 원 한도로 연금저축 납입액의 16.5% 또는 13.2%를 세금에서 빼준다. 최대 66만 원을 세금을 덜 내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 세금을 덜 내서 좋은 것이 아니라 그 몇 배의 돈을 보험회사로 납부해야 한다. 작년 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개인연금저축 가입액은 세액공제 때문에 130조 원 규모로 늘었는데, 정작 수익률은 생명보험사 4.11%, 손해보험사 3.84%로 저축은행의 적금보다 낮은 수익률을 보인다고 한다. 민간보험회사의 연금저축이 막대한 가입을 유치하는 것은 미래의 수익률이 아니라 세액공제 때문인 것은 확실하다. 세액공제가 민간보험회사에 국민 세금을 넘겨주는 꼴이다.</p> <p dir="ltr"> </p> <p dir="ltr">첫 번째 기획글에서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국민이 민간의료보험을 가입하는 이유가 공적보험의 허술함 때문임을 지적하였다. 상병수당이 없고 급여의 보장성이 낮아 실손보험이 공공의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며, 정작 실손보험은 의료공급자의 영리행위를 더욱 강화시켜 공적보험의 적정진료 기능도 위협하고 있다. 결론은 역시 의료와 의료보장을 공적제도로 확립하는 것 밖에 없다. 두 번째 글에서 이은주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정책위원은 노후소득 보장의 다층체계의 주장이 가지는 허점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용돈 수준일 뿐 아니라 기금도 고갈되는 국민연금만으로는 불안하니 조금씩 개인이 더 합리적으로 준비하라는 메시지가 연금의 다층체계이며 사적연금 시장만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적연금은 공적연금보다 더욱 문제인데 보험회사의 운용비용을 제외하면 잘해야 원금을 돌려받는 정도이며, 실상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은 해지율이 높아 노후소득도 되지 못한다. 다층연금체계는 사실상 사각지대 국민연금을 부실하게 하고 중산층 이상의 사적연금만 활성화하자는 소득역진적 제도이므로,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공적보험을 촘촘히 확충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세 번째 글에서 이지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는 민간보험회사가 단지 회사의 영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재벌구조를 지탱하고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생명보험사의 경우 거의 모두 재벌 대기업 계열사인데, 보험계약금이 총수 일가 지배력 강화를 비롯한 각종 사익추구에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생명을 통한 삼성전자 지배가 가능했던 이유는 국가와 금융 감독당국의 협조였으며, 이 과정에서 국민의 보험금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p> <p dir="ltr"> </p> <p dir="ltr">이상의 글을 통해 국민의 불안함은 민간보험시장에 의해서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영리기업에 개개인의 미래를 맡기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공동체가 대안으로 나서야 한다.</p></div>
월, 2019/02/0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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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xe_content"><h1>편집인의 글</h1> <p> </p> <h3 style="text-align:right;">김형용 월간 복지동향 편집위원장,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h3> <p> </p> <p>최근 북미정상회담이 다시 국민적 관심을 받기 전까지 올해 최대 이슈는 분명 드라마 ‘SKY 캐슬’이었다. 이 드라마는 남녀 불문 연령 불문 모두를 텔레비전 앞으로 모여들게 했고, 종영 한 달이 지나가는 지금도 여전히 온갖 방송 프로그램과 광고물에서 등장 캐릭터들을 무한 재생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잔인한 스릴러이면서 동시에 코믹한 드라마가 이렇게까지 성공한 이유는 아마도 허구가 아닌 ‘사실’을 전형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란 ‘아이에게는 잔인하고 어른에게는 코믹한’ 오늘의 아이러니이다. 아이의 행복을 생존으로, 교육을 성공으로, 우정을 경쟁으로 이해하는 어른들의 동상이몽 말이다.</p> <p> </p> <p>한 사회에서 청소년에게 주어진 권리와 의무란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이를 위해 교육받을 권리와 행복할 권리 그리고 동등한 시민으로서 참여할 권리를 누리고자 한다. 그러나 정작 어른들은 청소년을 미래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만 이해한다. 더 나아가 사회적 지위를 선점하는 기회로 청소년기를 상정한다. 문제는 어른들의 이 코믹한 계략이 정작 아이들에게 너무 잔인한 현실이 된다는 점이다. 결국 청소년들은 대부분 시간을 학교와 학원에서 지위경쟁을 하는 데 소모하며, 이 경쟁에 끼어들기조차 어려운 청소년들은 일찌감치 도태된다.</p> <p> </p> <p>이번 호는 청소년의 인권을 다루고자 한다. 기획 글에서 이용교 교수는 청소년 인권 현실을 폭로하고 있다. 안전한 곳이 없다는 것이다. 학교는 교육권을 침해하고, 휴식권을 박탈하며, 성적에 의한 차별이 빈번한 곳이다. 복지에 있어서도 가족단위 복지정책은 청소년에게 무용지물이거나 지속적 보호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학대의 경우도 가해자는 대다수 부모이다. 결국 청소년은 스스로 선거권을 쟁취하거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등 당사자주의 실천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윤나 교수는 청소년의 자살과 관련하여, 청소년 백 명 중 열 명 이상이 자살을, 네 명 이상이 자살 계획을, 그리고 두 명 이상이 자살 시도를 했음을 지적하면서, 청소년에 대한 보호와 지원책을 주문하고 있다. 라형규 청소년상당복지센터 소장은 보호종료 청소년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p> <p> </p> <p>아동양육시설에서 보호종료된 이들의 68%는 어떠한 주거지원 없이 각자 생활터전을 감당하고 있는데 이들의 취업성공도 38.8%에 불과하여, 보호종료 후 30%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기획글 기고자인 튤립연대의 햇살은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의 현실을 고발하였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생존 이상의 꿈을 가질 여유인데, 사실상은 평등은 고사하고 사회에서 생존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은 학교 다닐 권리도, 안전한 의료기관에서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도, 그리고 성별정정 비용문제로 인한 생존권도 위협받는다는 것이다.</p> <p> </p> <p>청소년 인권보장은 법제화뿐 아니라 사회적 규범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지난한 과정 때문에 지금 청소년들의 고통을 지나칠 수는 없다. 복지 영역에서만큼이라도 청소년 인권증진을 위한 정책 현실화 노력이 필요하다. 거의 보이지도 않는 청소년복지 예산이라 더욱 그렇다.</p></div>
금, 2019/03/01-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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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xe_content"><h1 dir="ltr">편집인의 글</h1> <p> </p> <h3 dir="ltr" style="text-align:right;">김형용 월간 복지동향 편집위원장,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h3> <p> </p> <p dir="ltr">컵라면 세 개와 과자를 가방에 넣고, 고장 난 손전등으로 한밤중에 홀로 컨베이어 벨트를 점검하다 숨진 24살 청년 김용균은 하청 노동자였다. 1분도 채 되지 않는 안전교육을 받고 대형마트의 무빙워크를 점검하다가 기계에 끼여 숨진 21살 청년 이명수도 하청의 재하청 노동자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삼 개월 만에 지하철 역사에서 스크린도어를 보수하다 숨진 19살 김군도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였다.</p> <p> </p> <p dir="ltr">우리나라는 아직도 산재사망률이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지난 23년 동안 단 두 해만 빼고 산재사망률 1위를 벗어난 적이 없다고 한다. 산재사망자 수는 연평균 2,365명이므로 주 5일 노동 기준으로 환산하면 매일 9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셈이다. 더구나 이 수치는 산재보험법에 따른 통계만 반영하고 특수고용노동자도 적용하지 않는 통계라서 은폐된 사망자가 많다는 점, 지난 수십 년간 사망률이 줄지 않고 있다는 점, 그리고 노동자 일자리를 빼앗는 산업용 로봇 도입률 1위 국가라는 점에서도 최악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도 바뀌지 않는다. 청년 김용균이 사망한 지역발전소 5곳에서는 2008년부터 2016년까지 9년 동안 산재로 40명이 사망하였고, 이중 하청 노동자가 무려 37명(92%)이었다. 반복되고 예견되는 죽음이었다. 사업장은 바뀌지 않는다. 반대로 더욱더 위험을 외주화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당진의 한 제철공장은 지난 5년간 105억여 원의 산재보험료 감면 혜택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 6명 중 4명이 원청이 아니라 하청 노동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안전 및 보상 비용을 축소하기 위해서라도 위험을 외주화한다.</p> <p> </p> <p dir="ltr">무엇이 필요한가? 본 호에서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이번에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도 아직 많은 쟁점이 남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동안 수천, 수만 명의 억울한 노동자의 죽음들이 모여 산업안전보건법의 전면개정을 이끌었지만, 여전히 사업주 단체와 보수야당의 반발로 핵심적인 조항이 삭제되거나 수정되어 실효성이 상당부분 후퇴했다는 것이다.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를 구축하기 위한 입법 투쟁은 지난한 과제로 남아있다. 반도체 백혈병 이슈를 주도하였던 반올림의 공유정옥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는 산업재해로 제대로 잡히지 않는 노동자들의 질병을 다루고 있다. 그에 따르면 2017년 한 해에 993명의 노동자들이 업무상 질병으로 숨졌는데, 이는 대부분 일터에서 노출된 유해물질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직업병 피해에 대한 저항조차 매우 힘들다는 점인데, 유해물질에 대한 지식은 결국 노동자들의 희생을 통해 쌓이며, 규제를 마련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며, 그리고 규제가 실행되더라도 유해물질을 배출하는 일터가 취약한 국가나 지역으로 옮겨가면 그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원칙을 준수하고 이를 강제하는 노력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아울러 김인아 교수는 산재가 발생함에도 산재보험으로 처리되지 않는 산재은폐가 더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집중되고 있음을 말한다. 이에 산재 신청과 승인에서 노동자들의 신청과 입증책임에 대한 부담을 완화시켜주는데 제도, 의료 전달체계상 산재 전문 공공병원 강화, 사회보장으로서 산재보험의 예방제도 연계 강화와 상병급여 도입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p> <p> </p> <p dir="ltr">아픈 노동자를 다수 양산하는 사회야말로 병든 사회이다. 그런데 그 아픔을 청년과 비정규직 그리고 외국의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사회는 도대체 무엇일까? 청년 김용균이 생전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대표 100인과 만납시다’ 손팻말을 들고 찍은 사진에서처럼, 문재인 대통령에게 묻고 있다.</p></div>
금, 2019/04/0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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