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주민참여예산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예산감시운동으로부터 발전해 왔다. 그런데, 예산감시운동을 하던 이들은 ‘감시’운동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이러한 한계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예산감시운동은 기본적으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점이다. 이미 결정 또는 사용된 이후에 대한 감시는 그 잘못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 그러다보니 예산감시운동의 형태는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주로 비판과 반대 등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한계를 성찰한 예산감시운동 주체들은 아예 예산이 편성되는 단계에서부터 주민들이 참여할 필요를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감시’를 넘어 ‘참여’로의 전환을 꾀한 것이다. 이러한 고민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브라질 뽀르뚜 알레그리의 참여예산 사례가 많은 도움이 됐다.
2011년 3월 『지방재정법』 개정으로 주민참여예산제가 모든 자치단체의 의무이행 제도가 됐다. 물론, 그 이전에도 광주 북구 이외에도 울산 동구와 북구 등에서 자율적으로 주민참여예산제를 실시했다. 주민참여예산제를 실시하는 자치단체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자율적으로 주민참여예산제를 도입한 지역과 법의 강제적 규정 등에 의해 의무적으로 이 제도를 도입한 지역이 그것이다.
이 두 지역 간에는 질적으로 큰 차이가 발견된다. 그러한 차이는 무엇보다도 제도운영에 대한 고민의 정도에서 드러난다. 우리나라에 처음 주민참여예산제를 도입한 광주 북구에서는 주민참여예산 운영 방법을 고안하기 위해 관련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 그리고 행정이 머리를 맞댔다. 그 뒤를 이어 이 제도를 도입한 울산 동구와 북구에서도 광주 북구를 벤치마킹했지만, 그러한 고민과 협의의 과정을 거쳤다. 반면, 의무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주민참여예산을 도입한 지역에서는 그러한 고민 과정 없이 다른 지역의 조례 또는 행정자치부 표준안을 그냥 베끼듯이 조례를 제정했다. 당연히 우리 지역에서 운영할 참여예산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었다.
이는 주민참여예산 활성화 정도에 대한 차이로 그래도 드러난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주민참여제도 중 일상적이고 강력한 참여방법이라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각광받는다. 예산은 행정의 정책과 사업에 있어 ‘알파요 오메가’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여는 권한과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권한을 적게 주면 참여도 저조할 수밖에 없고, 권한을 많이 주면 참여도 그에 비례해 활발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민참여예산제는 최소한의 권한만을 주민들에게 주려고 노력(?)한다. 주민들이 권한을 행사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나 그 능력은 권한을 행사하고 평가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길러질 수 있다. 지금 능력이 없으니 권한을 줄 수 없다고 하면, 우리는 100년 후에도 똑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주민참여예산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아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질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최소한 한 가지만 제안하고 싶다. 그것은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혁신적 고민을 하자는 것이다. 행정과 주민들이 동등한 권한을 갖고 평가하고 개선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예산편성 과정 자체에 보다 깊숙이 참여해 보다 포괄적인 권한을 적절히 부여하기 위한 방법 등을 말이다.
그래도 요즘 몇 개 지역의 시도들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주민참여예산제를 별도의 제도로 보기보다, 주민들의 주체적인 지역발전계획 수립에 주민참여예산을 통한 예산결정권을 부여하려는 노력이 그것이다. 이런 흐름이 점차 널리 확대되기를 기대해 본다.
희망제작소는 2016년 창립 10주년 기획연구 ‘시대정신을 묻는다’를 진행했다. 이를 위해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한국사회 오피니언리더 및 분야별 전문가 11인을 인터뷰했으며, 그 전문을 의미연결망분석(semantic network analysis)기법으로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2016년 한국사회가 요구하는 시대정신 키워드’를 도출했다. 그 결과 우리사회가 지향해야 할 미래가치로 <안전한 ‘놀이터’와 지속가능한 삶>이 제시되었다.
지금 우리사회에 시급한 것은, 기득권을 뚫고 제도 변화를 이끌어낼 민주적 정치 리더십, 사회적 대타협이 가능한 구조적 틀이다. 이를 위해 먼저 시민들의 자발적인 결사체, 사회 곳곳에서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단위들이 나타나야 한다.
가장 현실적인 실천영역은 정치다. 막 문을 연 20대 국회가 합의를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줘야 하고, 유권자들은 2017년 대통령선거, 2018년 전국동시 지방선거 등 임박한 선거에서 사회적 타협의 틀을 짤 수 있는 리더를 선출해야 한다.
요즘 어떤 책 읽으세요?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이 여러분과 같이 읽고, 같이 이야기 나누고 싶은 책을 소개합니다. 그 책은 오래된 책일 수도 있고, 흥미로운 세상살이가 담겨 있을 수도 있고, 절판되어 도서관에서나 볼 수 있는 책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같이 볼까요?
스물일곱 번째 책 <근시사회>
내일을 팔아 오늘을 사는 충동인류의 미래
원제목 ‘The Impulse Society(충동사회)’ 또는 한국어판 제목인 <근시사회>나 그 부제인 ‘내일을 팔아 오늘을 사는 충동인류의 미래’를 처음 접했을 때는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생각해보니, 아마도 그것만큼 대한민국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제목도 드물기 때문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을 위해 청소년들을 바다에 수장하는 자본의 논리,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투자를 낭비로 호도하는 정치의 논리가 지배하는 한국사회가 대표적인 근시사회가 아닐까?
저자 폴 로버츠(Paul Roberts)는 20세기 중반 자아-공동체, 시장-민주주의가 공존했던 시기와 구별되는 작금의 미국사회를 근시사회로 본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시장과 자아가 적대적 인수합병 형태로 통합되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즉 ‘효율성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시장과 신기술이 순간적 만족과 편협한 사적이익을 추구하는 시민들에 대한 지배력을 높여가면서, 우리(미국)사회가 충동사회로 바뀌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시민사회다운 ‘사회적’ 행동을 실천하기는 어려워지고, 민주주의 작동에 필수적인 “우리에게 공통분모가 있다”는 신념이 약해진다.
저자는 자아실현 강박에 대한 해부부터 시작해서 금융자본에 대한 비판으로 논의를 확대한다. 핵심적으로는 자본과 노동의 불균형, 관념적 좌파와 맹목적 우파라는 나쁜 균형에 빠진 정치를 비판하고 있다. 생산성과 효율성, 혁신에 대한 보상을 자본이 독식하면서 충동사회가 된 미국은 부유층과 나머지 계층이 다른 행성에 산다고 봐도 무방한 경제적 이류 국가로 나간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다른 사회에서도 가능하다. 저자가 ‘결과’의 측면에서 미국사회를 부유층과 그 외의 계층이 다른 행성이 사는 국가로 보았다면, 봄 제솝(Bob Jessop)은 일찍이 영국의 대처주의를 ‘전략’의 측면에서 ‘두 국민 전략(two nation strategy)’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장하성은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서, 산업화와 성장 그리고 분배를 함께 이루던 대한민국이 현재는 세계에서 불평등이 가장 심해진 나라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국가경제 성장이라는 가면을 벗기면, 부자기업과 대비되는 가난한 가계, 임금격차와 고용격차에 기인하는 소득격차의 확대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 대안이다. 저자는 책 분량의 1/7을 ‘건강한 공동체를 위한 공간 만들기’라는 대안논의에 할애한다. 우리 경제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그리고 우선순위와 그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보면서,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시장과 거리를 두어라’ ‘직원교육을 장려하고 은행을 쪼개라’ 그리고 독단적 진보와 보수의 ‘브랜드 정치에 종말을 고하라’고 외친다. 고차원적인 제도변화를 위해서는 시민들이 요구하고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충동사회를 지탱하는 전제 즉 “근시안적이고 자기 몰두적이며 파괴적인 지금의 현실이 한 사회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이라는 개념”을 거부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된다. 장하성은 문제해결의 정치적 주체라는 조금 더 구체적인 지점까지 논의를 밀고 간다. 한국사회의 기성세대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과거 과제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기에, 불평등 해소라는 당면과제 해결의 주체는 청년이라는 미래세대가 되어야 하며, 청년의 정치활동 참여여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도 뜻과 생활양식을 함께 하는 이들의 공동체 운동을 볼 수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 로버츠의 조금은 색다르면서도 재미있는 주장도 있다. 저자는 슬로푸드의 본고장인 포틀랜드 시민들은 근시안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충동사회로부터 벗어나, 심각한 문제가 터져도 도망치지 않고 끈질기게 달라붙어 문제를 해결하면서 하나의 대안사회를 형성하고 있다고 본다. ‘사는 동네도 정체성이다’라는 주장이 거기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과정은 나라 전체의 사회적 결속을 떨어뜨리고, 자신과 견해차가 뚜렷한 사람들과는 교류할 기회마저 차단하기도 한다. 금융의 붕괴와 민주주의의 회복과 같은 사회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옳다고 생각하는 자신만의 생활방식과 삶으로 빠지기보다는 짜증스럽고 비효율적인 상황과 현실사회에 뿌리를 내릴 필요도 있다.
희망제작소는 연구원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다양한 공육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중 ‘슈퍼비전’은 연구원들이 관심 있는 주제 혹은 사업 관련 학습이 필요할 때 관련 전문가를 모시고 강연을 들어보는 프로그램인데요. 지난 4월, 도시 내 사회적 약자들의 주거권을 위해 활동하고 계신 한국도시연구소의 최은영 연구위원을 모시고 ‘도시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강연 내용을 공유합니다.
2016년 10월 에콰도르 키토에서 유엔 해비타트(UN-Habitat) 3차 총회가 열렸습니다. ‘유엔 해비타트’는 주거와 지속가능한 도시개발에 관한 유엔 회의로, 통합적이고 지속할 수 있는 세계 개발을 위한 인도적 지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3차 총회에서는 ‘도시에 대한 권리’가 새로운 도시의제로 제시되었는데요. 이는 도시에서 국적이나 성별, 나이 등에 상관없이 누구나 적절한 공간에서 주거하고 활동할 권리가 있으며, 어느 지역에 거주하든 공공 공간이나 서비스에 대한 접근과 이용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강제철거가 허용되는 나라입니다. 용산참사는 사람보다 개발이익이 중시된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입니다. 용산참사로 인해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주대책비 보상이 3개월분에서 4개월분으로 늘어났다는 것뿐입니다. 지금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개발 열풍이 사그라들어 이런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개발 방식과 원리는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과거에는 열심히 일만 하면 집을 사고 중산층으로 편입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비정규직의 증가, 집값의 비정상적 상승으로 인해 노동자가 스스로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 2016년 10월, 에콰도르 키토에서 열린 유엔 해비타트 3차 총회.
이날 총회에서는 ‘도시에 대한 권리’가 새로운 도시의제로 제시되었습니다.
(사진출처 : 유엔 해비타트 홈페이지 / https://unhabitat.org)
모두를 위한 도시, ‘모두’는 누구인가?
‘모두를 위한 도시’에서 ‘모두’는 과연 누구일까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부터 챙길 때 모두를 위한 도시가 될 수 있습니다. 노인과 장애인, 청년들도 고충이 많겠지만 그들은 투표권도 있고 관련 단체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동들은 투표권도 없고 사회적으로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빈곤한 아동들이 거주하는 집에 들어가 보면 난방이 안 되거나 물이 새는 등 주거상황이 열악한 곳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쫓겨나면 달리 갈 곳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그냥 참고 거주합니다. 이런 집들은 외관으로는 별문제가 없어서 들어가지 않는 한 빈곤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가난한 아이들이 도서관이나 공원도 없는, 지역사회마저 가난한 곳에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같은 성남시라고 해도 분당구는 공원과 도서관 등 사회적 기반이 잘 갖춰져 있지만 수정구는 다릅니다. 우리나라의 도시공간이 너무 상품화되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구로공단은 1년 만에 만들어졌지만, 공공은 주거에 무관심했습니다. 그래서 민간에서 쪽방촌을 만들어 공급했지요. 노동자는 그곳에서 거주하고 건물주는 이익을 얻습니다. 성장 위주의 도시 정책으로 인해 집 문제를 전적으로 개인에게 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구로공단에서 디지털단지로 바뀔 때까지도 공간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이제는 외국인노동자들이 쪽방촌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유엔 해비타트 보고서에서는 성장 위주의 정책과 도시에 대한 권리를 함께 추구하기 어렵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2년마다 이사, 지속가능한 공동체는 먼 나라 이야기
주택은 살기 적당하면서도 부담할 만한 수준이어야 하는데, 보통은 살기 좋으면 너무 비싸고 가격이 좋으면 거주하기 부적당한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정책을 통해 사회적 약자의 주거권을 보호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2년마다 이사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 마을만들기와 공동체가 가능할까요?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 제한 없이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일부 빈곤 지역의 경우, 3개월 이상 고시원,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등 집이 아닌 비주택가구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지방자치단체장이 국토부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에 넘기면 연중 임대주택으로 이주할 수 있으나 유명무실한 실정입니다. 비주택가구는 2010년까지 5만 호에 불과했으나 2011년 13만 호, 2015년 40만 호로 급증하여 이들을 위한 정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는 정부에 주거권 보장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좋은 의도를 나열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자본의 자유만 중시할 것 같은 미국도 뉴욕 임대주택 중 3분의 2를 대상으로 임대료 통제 중입니다. 한국에서도 서울과 수도권 대학가 등은 임대료 규제가 필요하지만, 임대료인상률상한제조차 반발하는 실정입니다. 공실률이 5%보다 낮으면 교섭력 자체가 기울어지면서 집주인이 절대적으로 유리해집니다. 이를 막고자 뉴욕 등 미국 대도시도 임대료 제한을 하는 것이지요. 서울의 공실률도 2~3%로 집주인에게 교섭이 유리한 상황인데요. 30년 이상 거주할 수 있는 장기 공공임대주택을 10%로 늘리면서 집주인과 세입자 간 힘의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한국의 집수리 관련 지원 제도는 집주인 위주로 되어 있습니다. 정부는 집주인이 임차인이 살고 있는 집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집수리를 하지 않아도 세입자를 얻기 쉬운 집주인들은 수리 의사가 없습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 저렴한 임대주택의 품질관리책임은 정부에게 있습니다. 이를 위해 공공재정도 투입하지요. 집수리를 하게 되면 집값이 올라가면서 세입자에게 그 부담이 갈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흥시는 자체 예산으로 집주인과 임대료 동결 협약을 체결한 후 집수리를 해주고 있습니다.
▲ 저렴 민간 임대주택의 심각한 품질 문제
중앙, 지자체, 대학, 기업 등 다양한 사회 주체 간 대타협 필요해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방정부에 더 많은 권한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앙정부와 달리 지역 내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중앙정부는 지방정부가 지역의 문제를 자율·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충분한 권한과 재원을 지원해야 합니다. 현재 중앙정부는 정책과 책임만 지방으로 보내고 재원은 거의 부담하지 않습니다.
비정상적인 주택가격과 그로 인한 수입이 생계 일부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주거문제를 해결하고 도시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중앙과 지방정부뿐만 아니라 대학, 기업 등 다양한 주체 간의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합니다. 주택을 ‘산업’으로 보는 부동산정책이 아니라 주거정책으로 관점을 전환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임대료 자체가 낮아지거나, 소득수준과 연동하여 부담 가능한 선에서 임대료가 결정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공공임대주택 외에도 비영리단체, 종교단체, 노조 등 다양한 주체가 사회주택을 만들어 공급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지역시민사회가 공원, 놀이터, 도서관 등 다양한 도시 공공공간을 확대하고자 노력하는 것도 도시권 실현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 Why! 왜 이 주제를 선택했나요?
– 돌봄 및 방과후학교의 수요자가 증가함에 따라 현재의 시설과 운영이 어떤지 살펴보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 Who! 어떤 분이 읽으면 좋을까요?
– 교육(지원)청 및 학교 돌봄 및 방과후학교 운영 담당 실무자
– 돌봄 담당 교사 및 돌봄 전잠사
– 지역자치단체 마을공동체 및 사회복지/교육복지 담당 실무자
– 지역아동센터 운영자
– 초등학교 저학년 학부모
– 돌봄 및 방과후학교 관련 사회적기업/협동조합 운영 실무자
* When! 언제 읽으면 좋을까요?
– 학교와 마을공동체가 연계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할 때
– 돌봄 및 방과후학교 운영과 관련된 이해관계자가 누구인지 궁금할 때
* What! 읽으면 무엇을 얻을 수 있나요?
– 해외의 돌봄 및 방과후학교 마을협력 사례
– 지역 특성 및 인프라 구축 정도에 따른 학교와 마을의 협력 사례
* 요약
◯ 돌봄 및 방과후학교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찾기 위해 이해관계자들을 인터뷰하고, 관련 자료 조사를 병행하여 국내와 해외의 성공적으로 돌봄 및 방과후학교 마을협력을 실행한 사례를 분석하였다.
◯ 국내에서는 학교시설 복합화에 근거해 학교라는 공간을 지역 주민의 공공 공간으로 확장시킬 수 있으며, 지역사회는 이러한 공간을 지역사회 활성화를 위한 마을교육공동체의 거점으로 삼음으로서 돌봄 및 방과후학교 마을협력을 도모할 수 있었다. 또한 이미 마을교육공동체, 공립형 지역아동센터, 학교 협동조합과 같은 형태로 마을협력 모델들이 싹트고 있는 사례를 통하여 운영모델과 학교시설 복합화가 결합될 때 지역사회의 공동체 의식, 인적자원 인프라 구축 등의 효과와 학교는 질 높은 학습 계획 및 운영을 제공하는 등 효율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해외사례로서 미국, 영국, 일본 사례를 살펴보았으며, 세 개 국가의 공통적인 성공 요인은 첫째, 방과후학교 지원을 위한 명확한 법률적 근거를 기반으로 이미 이러한 형태의 돌봄 및 방과후학교 마을협력이 이루어졌다. 둘째, 현장에서는 학교와 지역사회 간 연계 프로그램의 절차를 표준화하여 체계적으로 운영함으로서 여러 주체의 참여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 마지막으로, 마을 학교 간 협력 연계를 위한 별도 프로그램 예산을 지역사회 차원에서 마련하여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 돌봄 및 방과후학교의 이해관계자인 교육청, 지방자치단체, 학교, 학부모, 민간의 지역아동센터와 사회적협동조합 관계자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마을협력 연계방안을 적용하는 데 있어, 교육(지원)청은 지방자치단체와 소통장벽, 기존 돌봄 및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운영 인력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학교는 공간 공유시 발생하는 시설관리 비용과 안전문제를, 학부모는 참여가능한 시간부족의 어려움이 존재했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학교 및 교육(지원)청과 소통장벽을, 지역 내 기관(지역아동센터 및 사회적기업 등)은 운영 자율성 침해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초기 성공사례를 구축하고 있는 현장 관계자들을 인터뷰하여 돌봄 및 방과후학교 마을협력 모델 운영시 필요한 공통점 및 구성요소를 도출하였다. 공통점은 일단 자발적인 마을 사업을 통해 마을 주체가 드러나고 자원이 연계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는 점과 핵심 이해관계자가 학교라는 점이이다. 그러나 각 지역 특성과 상황에 따라 마을협력모델의 구축 과정과 성공의 양태는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마을협력 모델을 도출하기 위한 구성요소로서 인적자원, 지역인프라, 공동체 문화, 학교 개방성,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및 협력 5가지 요소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지역 별로 각 구성요소의 수준에 따라 적합한 마을협력모델 유형을 사회적경제조직 및 비영리기관 중심 모델, 마을 중심 모델, 학교 중심 모델 등 세 가지를 도출하여 제안한다.
◯ 결론으로, 현재의 아동 돌봄 현황에서 초등학교 돌봄 및 방과후학교 마을협력 연계방안이 필요하다. 이는 학교의 유휴 공간 활용과 돌봄을 지역사회의 과제로 인식한 지자체와 마을공동체 주체 및 모든 이해관계자의 구체적인 협업 프로세스 구축, 정책 및 제도의 개선과 적용을 통해서 가능함을 알 수 있다. 정책 이해관계자는 정책 개선 기본계획 로드맵 구축을 추진하고, 실행 이해관계자는 협업을 위한 소통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노동자의 권리 부정하는 이언주 의원의 천박한 인식 다시 드러나
국민의당, 공당으로서 원내수석부대표의 이번 발언과 자당의 임금체불 관련 대선공약에 대한 입장 밝혀야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인 이언주 의원은 오늘(7/25) 제34차 원내대책회의에서 임금체불을 노동자가 감수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goo.gl/KonuPm). 2016년 신고사건과 근로감독을 합쳐 50만 명에 육박하는 노동자가 임금체불을 겪었다. 누구보다도 노동자의 권리 보장에 힘써야 할 국회의원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포기하는 것이 공동체의식이라고 발언했다. 마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임금체불 관행을 정당화해주는 것 같아 듣고도 믿기 어려우며,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임금은 노동자에게 생존이다. 노동자가 임금체불을 감내해야 하는 공동체는 더 이상 정의롭지 않다.
이언주 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비판받자, 임금체불은 법적으로 대응할 실익이 없다는 점,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2018년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된 것은 비정규직의 확대와 극심한 사회적 양극화로 인한 빈곤층의 증가와 내수 감소를 해결하기 위해 취약계층의 소득 증대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도출된 것이다. 이언주 의원의 발언은 사회적 양극화 해소에 관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기존의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으로,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다.
우리 사회에서 임금체불은 매우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이다. 또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에 대한 저임금 문제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을 만큼 분배정의를 왜곡하고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훼손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지난 대선에서 최저임금법, 근로기준법 위반 사업주에 대한 처벌과 제재를 강화하고, 임금체불 예측시스템을 구축하며, 체불임금에 대한 부가금 및 지연이자제 도입, 체불임금 국가 우선지급 및 체당금 지급대상 확대 등 임금체불과 관련한 각종 공약을 발표하였다. 임금체불과 관련한 국민의당의 대선공약이 공약(空約)이 아니라 매년 수십만 명의 노동자가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박탈당하는 현실을 진심으로 해결하고자 만든 국민과의 약속이었다면, 국민의당은 불과 3개월 전 공개한 임금체불과 관련한 자당의 공약과 원내수석부대표인 이언주 의원의 발언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인 이언주 의원은 7/25, 제34차 원내대책회의에서 임금체불을 노동자가 감수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goo.gl/KonuPm). 이에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는 발언에 대한 논평을 발표(https://goo.gl/q6hAbk)한데 이어, 오늘(7/26) 이언주 원내수석부대표의 발언에 대한 당 차원의 입장과, 임금체불 관련한 정책방향 등을 묻는 질의서를 국민의당에 발송했다고 밝혔다.
임금체불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문제라는 인식 하에 지난 몇 년간 국회와 노동시민사회계에서는 임금체불을 근절하기 위한 각종 법안, 정책들을 꾸준히 논의해 왔다. 국민의당 또한 3개월 전에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임금체불과 관련하여 다양한 공약을 낸 바 있다. 이언주 원내수석부대표가 임금채권보장제도와 자당의 공약을 숙지하고 있기만 했어도 어제와 같은 발언과 해명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언주 원내수석부대표는 어제(7/25) 발언이 문제가 되자 “저의 경험에 비춰 사장이 망하니 월급 달라고 할 때가 없고 법적으로 대응을 해도 실익이 없다”다고 해명했는데, 이는 마치 사업체가 도산 혹은 폐업하면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을 받을 방법이 전혀 없다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미 20년 전인 1998년, 임금체불을 사업주와 노동자의 채권채무 관계로만 바라보는 것을 넘어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의 차원에서 체불 문제를 바라보는 임금채권보장법이 제정되었다. 기업의 도산으로 인하여 임금을 지급받지 못하고 퇴직한 노동자에게 국가가 임금채권보장기금을 활용하여 일정범위의 임금 등을 미리 지급하는 임금채권보장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현재 일반체당금 제도와 더불어 2015년부터는 가동중인 사업장에서 퇴직한 근로자에게도 제도가 적용되도록 하는 ‘소액체당금’ 제도가 도입되었고 바로 얼마 전인 7/1(토)에는 소액체당금의 지급액 수준을 300만 원에서 400만 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고시가 시행되었다.
2016년에만 50만 명의 노동자가 임금체불을 겪었다. 현재 있는 제도를 국민에게 널리 알리고 임금체불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여야 할 국회의원이 권리가 침해당하여도 참는 것이 미덕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보여주었다. 또한, 관련한 현행 제도에 대한 몰이해에 바탕하여 국민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였다. 임금체불과 관련한 이언주 원내수석부대표의 발언은 의원 개인의 해명으로 마무리 될 사안이 아니다. 이언주 원내수석부대표의 발언에 대한 당 차원의 입장과 임금체불 근절에 대한 국민의당의 명확한 정책방향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희망제작소는 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와 ‘사회혁신가성장아카데미 in 대구 – 사회혁신가의 길을 찾는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회혁신가 성장아카데미는 함께 배우고 성장하기 위한 교육과정이며, 새로운 시각과 방법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우리 사회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여정을 응원해주세요.
지난 8월 1일, ‘사회혁신가성장아카데미’의 5회차 교육이 진행됐습니다.
우리는 지난 4번의 교육에서 사회혁신에 대한 개괄적인 이야기부터 구체적인 방법에 관한 디자인씽킹, 디자인과 사회혁신을 접목하는 방법, 서울의 혁신사례 탐방, 그리고 직접 기획을 준비하는 활동까지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이번 회차 교육에서는 팀별로 실행계획을 짜는 데 필요한 대구의 자원을 탐색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른 지역과 가장 큰 차별점인 대구 내의 네트워크를 알아보고 대구의 사회혁신을 위해 힘써온 대구시민센터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대구의 사회혁신가들이 어떤 맥락 속에서 활동해 왔는지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둘 도착해 자리에 앉는 참가자들의 책상 위에 지난 교육 때 작성했던 기획 내용이 적힌 종이가 올려져 있습니다. 육아와 교육, 활동가 건강, 놀이, 청년주거, 사소한 꿈 함께 이루기, 마을공동체 만들기 등 다시 한번 읽어보며 함께 아이디어를 나눕니다. 이곳은 각자의 상상이 모여 현실이 되는 공간입니다.
5회차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우선 ‘사회혁신을 위한 대구시민센터의 도전’이라는 주제로 대구시민센터 윤종화 이사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윤종화 이사는 사회혁신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그 성격상 한마디로 정의할 필요도 없다”고 말하며 “참여 주체가 굉장히 다양하며, 문제해결 수단이 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대구사회의 필요와 충족, 해소, 해결해야 할 문제로 “극심한 정치독점 상황의 지속”을 꼽았습니다.
윤 이사는 ‘사회혁신이란 일시적인 유행인가, 그저 무언가 열심히 했다는 알리바이인가?’, ‘사회혁신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사회혁신가의 역량은 어떻게 해야 성장하는가?’ 라는 고민을 던지며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고민과 함께 작은 인연들이 또 다른 열정과 결심을 만들어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는 마지막 이야기가 기억에 남네요.
이어 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 우장한 팀장의 ‘사회혁신가들이 사용할 자원’ 강의가 진행됐습니다. 교육 참가자들이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 꼭 필요한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우 팀장은 공간, 돈,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한 개괄부터 구체적인 이름, 키맨에 대한 정보까지 알찬 내용을 쉽게 풀어 설명해주었습니다.
또한 그는 “서울의 playground는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익공간으로 시작했지만 그 후 주변 땅값이 너무 오르고 소상공인들이 쫓겨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기업의 자산만 증식시킨 이 사례에서 시사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국가의 보조금 사업도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단점이 뚜렷하다.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앞서 진행된 두 개의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조별 기획을 맵핑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조별로 기획을 추진하는 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조력자 혹은 조력공간을 찾는 과정인데요. 사회혁신, 공공시설, 중간지원조직, 공동체, 시민활동 등 분야별 조력자를 책자와 강연내용을 바탕으로 찾아보고 연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 회차 교육 주제는 ‘삶의 방식 전환’입니다. 참가자들이 직접 현장을 설계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획서를 실행하는 시간입니다. 각각의 상상이 어떻게 구체화될지 기대되네요.
현대철학자 화이트헤드는 평소 자신의 철학을 철학과 종교와 과학을 융합한 유기체 사상philosophy of organism이라고 불렀습니다. 좀 더 자세히 그의 철학을 들여다보면 그는 자신의 과정철학을 현대의 존재론ontology으로 주창하였음과 동시에 유기체적 세계관을 새로운 우주론 cosmology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철학자 화이트헤드
한편 우주론을 논하는 경우에 존재론을 같이 거론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우주의 근거와 작용인 및 목적인을 설명하는 우주론을 구축함에 있어서 반드시 우주의 구성원인 개별적 존재의 성격을 설명하는 존재론이 전제되어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주는 개체들의 산술적 합이 아니라 그 이상의 속성을 발현하는 창발성을 갖는 복잡계이기때문에 단순히 대수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만, 일단 존재론이 제시하는 존재의 속성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우주론이 전개되기때문에 같이 논할 수밖에 없지않나 생각합니다.
즉, 현대철학은 개체의 주체성과 공동체로의 귀속성과 연대성을 같이 논하지않을 수없기 때문에 존재론과 우주론을 같이 설명할 수밖에 없다할 것입니다!
한편, 현대의 존재론은 서구의 실체론을 과감히 폐기하고 생성론(이를 과정론,사건론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습니다!)을 과감히 받아들여야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간단히 다시 말씀드리면 생성론은 존재는 동일성을 지닌 실체substance가 아니고 단지 시공간상의 인과적 사건의 연속적 과정을 생성하는 것이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실체론에 터잡은 우주론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확인해봅니다!
실체론에서 상정하는 우주는 2가지 요소(1개의 원인과 1개의 조건)로 이루어져있다는 단순계를 모델로 하고있기때문에 그 인과율은 선형인과 linear causality또는 단순인과라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태양계안의 지구의 운행을 설명할 때 태양과 지구만을 변수로 고려하고 나머지 다른 행성들을 고려대상에서 배제시켜버립니다. 따라서 역학관계를 2개의 변수로 단순화시키기에 설명의 유용성은 있으나 실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이는 무지의 유용성이라는 주제로 나중에 따로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체론의 가장 큰 문제는 선형인과율을 따르다보니 결정론과 목적론 또한 계서적인 지배,피지배관계를 본질로 한다할 것입니다. 이에따라 인간의 자유의지는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제1원인의 작용인과 목적인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뭇 존재는 선행원인으로부터 유래하였기 때문에 모사된 후행존재는 선행존재인 원본보다 열등하다할 수밖에 없으므로 선행원인이 제시하는 작용인과 목적인을 거부할 수가 없어 그가 제시하는 담론에 예속되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하여 실체론에 비롯한 우주론은 선행 제1원인에 의해 작동되는 기계론적 세계관을 지니지않을수 밖에 없습니다!
즉, 기계의 모든 구성요소는 기계를 작동시키는 제1원인의 지시에따라 움직이는 부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할 것입니다. 이러한 기계론적 세계관에 의하면 강자만이 선행원인이 되어 후행원인인 약자는 그에 종속되는 계서적 질서를 받아들일수 밖에 없습니다.
(이에따라 니이체는 절대적인 진선미는 존재하지않으며 진리의 척도는 오로지 힘Macht, 즉 진리에의 의지밖에 없다고 도덕계보학에서 밝히고 있는데 이를 기계론적 세계관에 적용하면 오로지 제1원인의 힘에의 의지가 진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미의 기준은 강자인 성형자본의 힘,의지가 만들었기에 결국 힘의 의지,즉 강자의 힘에 의해 현대 진리는 만들어진다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특히 실체는 서로 내재적인 생성관계가 없는 독립된 존재들이기에 자신들의 생존은 반드시 강자가 약자를 약탈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어 결코 지배와 피지배라는 이분법적인 도식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자아를 끊임없이 강자에 복종시키며 타자화하는 소외를 근원적으로 벗어날 수없으며 결국 강자의 일방적 지배와 약탈만 있을 뿐 강자와 약자의 순환성을 상실하게됨으로써 종국에는 호환적 생태계는 유지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편 생성론에 근거한 우주론은 화이트헤드가 말했듯이 유기체적 세계관이라 할 것입니다!
여기서의 유기체란 생명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와 구성요소가 또는 구성요소와 구성요소가 정합적으로 꽉 짜여있으면서 상호 내재적인 생성작용을 멈추지않는 실재를 의미한다할 것입니다. 하여 세포단위의 유기체이던 우주 차원의 유기체이던 그들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서로 시공간상 분리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내재적으로 분리되지않고 생성에 같이 참여하는 존재이기때문에 모든 요소가 생성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주체로 동등하고 평등하게 참여하는 전체로서의 하나a single totality인것입니다. 하여 유기체적 세계는 단순계가 아니라 최소한 3개이상의 구성요소가 상호영향을 미치는 복잡계이기에 상호인과율 또는 복잡인과율을 따르게 됩니다. 이는 불교의 연기법과 같다할 것인데 이러한 비선형 인과는 결정론이 아닌 확률론을 따르게 되어 있어 구성요소들의 자유의지도 인과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시말하면 구성요소는 강약,대소,선후를 불문하고 똑같은 확률적 가치를 지니기에 모두 평등한 존재로 생성에 등가적으로 참여한다는 사실을 존재론적으로 보여준다할 것입니다.
그러면 유기체 사상의 과학적 근거를 알아봅시다!
우선 양자역학에서 찾아보면 양자얽힘quantum entanglement현상을 들 수있습니다. 이 이론은 아인쉬타인이 사물의 실재성과 국소성(분리성)을 증명하기위해 EPR패러독스라는 사고실험을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는데 결국 1982년 아스팩의 실험에 의해 우주는 비국소적이고 비실재적이라는 것이 밝혀졌으며 이를 양자얽힘이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하면 우주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고 영속적으로 생성변화하는 존재라는 것임을 물론 또한 우주는 분리된 것처럼보이나 실제는 분리된 것이 아니기에 분리되었으나 분리되지않은 하나! the devided undevidedness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밝힌 것입니다.
또한 우주는 그 구성요소가 모두가 내재적으로 연결된 유기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론으로 일반상대성이론을 들 수있습니다.
즉 우주의 시공간 형태는 물질의 분포가 만들고 또한 물질의 분포는 시공간의 모양이 만든다는 것으로 이는 상호연기,즉 유기체의 특징인 상호간 내재적 생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할 것입니다. 또한 극명하게 우주는 하나의 유기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론으로는 조지 가모브 박사가 주창한 빅뱅이론이 있는데 이는 우주는 하나의 특이점singularity에서 빅뱅하였다는 것으로 우주는 유기체로서의 한 몸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나아가 복잡계 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기위해 항상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를 멈추지 않는데 그 과정에 우주의 모든 요소가 창발emergence과정이든 혼돈chaos의 과정이든 되새김feed back의 과정에 모두 구성요소가 참여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하기에 로렌쯔는 아마존의 나비날개짓이 카리브해에 폭풍을 만들 수도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 또한 세계 전체가 내재적으로 생성관계를 맺는 유기체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예라할 것입니다.
또한 현대진화론, 특히 스튜어트 카우프만은 진화를 다윈주의 (자연선택) 와 신다윈주의(돌연변이) 와는 달리 생명체와 환경과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라고 보고 있으며, 특히 칼 세이건의 부인인 린 마굴리스는 공진화co-evolution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진화도 우주라는 유기체 내부의 구성요소들의 상호인과적 생성작용으로 보고있습니다.
한편 인지과학의 제3패러다임인 체화된 인지EM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은 정보처리 시스템으로서 두뇌,몸과 환경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라고 규정하는데 이는 마음이 복잡계이자 유기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한편 불교의 유식사상은 마음을 두뇌,몸과 우주의 상호작용으로 보는데 이에 따르면 우주도 정보처리시스템으로서 한 마음,즉 일심이라할 것입니다). 물론 과학은 아니지만 불교의 연기법도 우주를 유기체로 보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할 것입니다.
그러면 단지 이론적 관점이 아니라 실천론의 입장에서 왜 유기체적 세계관을 받아들여야하는지를 살펴봅시다.
우주가 구성요소들의 정합적인 연결망인 유기체라면 우주안의 모든 존재들은 개체로서 독립성뿐만 아니라 구성요소들간의 관계성도 생득적인 조건이기에 반드시인간들은 생활세계의 공동체를 구성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위한 대안으로 공동체를 제시하기도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이라는 유기체는 개체성과 관계성을 중첩적 속성으로 하기때문에 온전한 삶을 위해서는 소통과 상생의 공동체를 반드시 전제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동체는 영어로 community라고 부르는데 어원을 따지면 선물을 같이 나누는 것이라고 해석하는데 이는 공동체안에서는 모든 존재가 선물이라는 의미도 있는데 유기체에서 타자는 자아의 생성에 내재적으로 이바지하기에 타자는 항상 선물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기체의 속성상 우리는 공동체를 만들지않을 수없는 것입니다)
또한 유기체사상은 자아와 타자가 내재적 생성관계를 맺기에 자타불이라는 불교의 교리가 단순한 종교적 구호가 아니라 실상이라는 것을 밝혀줍니다(한걸음 더 나아가 유기체사상은 우주와의 합일체험을 중시하는 뭇 종교들의 신비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된다할 것입니다). 하여 유기체사상은 사랑과 자비의 존재론적 근거도 되지만 사랑과 자비가 시혜적 동정이 아니라 평등성에 기초한 나눔이라는 것을 제시하며 나아가 사랑과 자비가 개체적 차원이 아니라 구조적 차원의 개혁으로까지 승격시켜야하는 근거가 된다할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 횡행하는 이민족,특히 난민이나 다문화가정에 대해 배척하는 태도도 실체론적 존재론에 근거한 것으로 우주의 생성에 뭇 존재가 모두 평등하게 참여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알게되면 순혈주의는 설 자리가 없다할 것입니다. 하여 예맨난민과 카라반행렬은 바로 우리의 책임이기도한 것입니다.
나아가 오늘날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본과 노동을 고정되고 불변하는 실체로 보는 실체론을 벗어나서 자본과 노동이 동등한 생산성요소라는 생성론의 입장에서 자본과 노동의 일치 또는 호환할 수있는 새로운 생산양식을 반드시 모색해야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위에서 나비효과에서 언급하였듯이 아무리 작은 행동도 되새김을 통해 엄청난 결과를 이끌어내듯이 우리의 작은 행동이 역사를 바꾸는 혁명의 단초가 될 수있다는 것입니다. 하여 니이체는 노예의 도덕에서 벗어나기위해서는 자신의 위치에 맞는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를 키우라고 주문한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되새김에의한 창발효과는 자연법칙일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에도 적용될 수있기에 비록 지금은 초라해보일지 모르지만 지금 여기의 위치에서 참된 진리를 향한 권력의지를 강화하는데 최선을 다해야할 것입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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