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심포지엄] 물대포를 금하라 (한겨레 21 기사)

지역

[심포지엄] 물대포를 금하라 (한겨레 21 기사)

익명 (미확인) | 목, 2016/07/07- 15:42

지난 6월 26일 영국과 독일에서 특별한 분들이 한국을 방문하셨습니다. 영국에서 집회 진압 무기로 물포가 도입되는 것을 반대하는 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권단체 '리버티' 활동가 샘 호크 씨와 독일에서 전직 판사를 지내신 디이터 라이헤르테 씨이신데요, '집회에서의 물대포 사용과 관련한 국제 심포지엄' (다산인권센터도 공동주최 단체로 참여했습니다.)에 참여하기 위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셨습니다. 


청운동 주민센터 앞 세월호 가족들의 기자회견과 서울대 병원 앞 백남기 농민 대책위 방문 등 3일간의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자신들의 경험과 느낌을 많은 분들에게 나눠주셨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며 고국으로 돌아가면 한국의 현실, 특히 백남기 농민을 이렇게 만든 물포사용에 대해 최대한 알리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한겨레 21의 박수진 기자님이 디이터 판사님과 만나 나누 인터뷰와 물포 관련 기사를 공유합니다. 



물대포를 금하라

집회 중 경찰의 살수로 실명한 독일의 바그너와 의식불명에 빠진 한국의 백남기씨… 독일에선 경찰청장 처벌받고 ‘살수 위법’ 판결… 한국에선 경찰이 국회자료 제출조차 거부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에 참석했다가 경찰이 쏜 직사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백남기씨(위). 2010년 9월30일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를 안구에 맞고 피를 흘리는 디트리히 바그너(아래). 오마이뉴스 제공, EPA 연합뉴스


“물대포는 제 삶의 4분의 3을 빼앗아갔습니다. 마치 삶에서 떨어져나간 느낌입니다.”


독일의 은퇴한 엔지니어 디트리히 바그너(72)의 삶은 2010년 9월30일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바그너는 그날 ‘슈투트가르트21’ 사업에 반대하는 집회 참가자 1천여 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슈투트가르트21 사업은 독일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주도인 슈투트가르트 중앙역 및 기차 선로를 57km의 지하 터널로 재배치하고 그 자리에 교외지구를 건설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이 사업으로 인해 슈투트가르트에선 보존 가치가 있는 오래된 건물을 부수고 공원에 있는 나무 수백 그루를 베어야 했다. 시민 6만7천여 명이 이에 반대하는 청원을 지방정부에 넣었지만, 사업은 그대로 진행됐다.


‘보통의 삶’은 그렇게 무너졌다


시민들은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월요일마다, 혹은 중요한 공사가 있을 때마다 반대집회를 벌였다. 9월30일 목요일은 그 여러 날 가운데 하루였다. 경찰은 슈투트가르트라는 도시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살수차’를 배치했다. 살수차는 물대포를 쐈고 시민 1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이었던 디트리히 바그너의 두 눈에선 선연하게 붉은 핏물이 흘렀다. 눈꺼풀은 찢어졌고, 안구는 손상됐다. 여섯 번의 수술을 거쳤다. 왼쪽 눈은 완전히 실명됐다. 오른쪽 시력은 5%만 남았다. 바그너는 2014년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자전거를 탈 수도 없다. 오토바이를 몰 수도 없다. TV를 볼 수도 없고, 책을 읽을 수도 없다. 처음에는 스스로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70년 가까이 영위해온 ‘보통의 삶’은 이렇게 무너졌다. 독일에서 2010년 9월30일은 ‘검은 목요일’로 불린다.


그로부터 5년 뒤인 2015년 11월14일. 한국의 서울 종로구 종로구청 사거리. 전남 보성군 농민 백남기(69)씨가 경찰이 배치한 살수차가 쏜 물대포에 맞고 뒤로 넘어졌다. 물대포에 맞아 코뼈가 부러졌고 안구는 손상됐다. 2800rpm에 달하는 직사 물대포의 수압에 밀려 뒤로 넘어지면서 대뇌의 절반 이상과 뇌뿌리까지 손상됐다.


백남기씨는 이날 전국 각지의 농민들과 함께 ‘쌀값 정상화’를 요구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선거에서 ‘80kg당 17만원 하던 쌀값을 2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2015년 당시 쌀값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뒤에도 매년 떨어져 15만원대가 됐다. 공약이 지켜지기는커녕 농민의 삶이 더 팍팍해진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한 ‘민생집회’였다.


정부는 집회가 열리기도 전에 ‘폭력집회’로 규정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민중총궐기’가 있기 이틀 전인 11월12일 경찰 간부들과 대책회의를 열고 ‘10만 명이 모이는 유례없는 대규모 집회’라며 갑호비상령을 발효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11월14일 오전부터 서울 광화문 일대에 경찰차들이 ‘차벽’을 세웠다. 차에 식용유를 바르는 등 ‘차벽’에는 만전을 기했다. 경찰은 이를 “(청와대 행진에 대비한) 주차”라고 주장했다.


살수차도 동원했다. 이날 하루 사용된 살수차의 물 사용량은 2014년 1년간 사용한 양의 24배였다. 11월14일 오후 6시56분, 충남경찰청에서 동원된 살수차가 쏜 물대포에 맞은 백남기씨는 의식불명 상태로 7월1일 현재 231일째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시력만 잃은 독일의 바그너와 달리 백남기씨는 의식 전체를 잃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말을 표현할 수 없고 움직일 수 없다. 매일 병문안 오는 자식과 아내를 알아볼 수도 없다. 그저 연명만 하고 있다. 농민 백남기씨가 68년간 영위해온 ‘보통의 삶’도 이렇게 여지없이 무너졌다.


‘물대포 피해자’를 폭도로 몰아간 한국·독일


유라시아 대륙을 사이에 두고 1만3천km 떨어진 두 도시에서 벌어진 두 사건은 닮았다. 경찰이 집회 해산을 목적으로 사용한 살수차에 의해 헌법이 보장한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할 시민이 심대한 건강상의 침해를 입었다.


6월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집회에서 물포 사용 문제와 경찰의 집회 대응 개선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바그너의 실명에 대한 경찰 책임을 묻는 활동을 해온 디터 라이헤르터 전 슈투트가르트 지방법원 형사부장판사가 참석했다. 바그너 사건 변호를 맡은 프랑크-울리히 만 변호사는 영상메시지를 보냈다. 백남기씨의 딸 백도라지씨와 백남기씨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을 담당하는 이정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 등도 동석했다. 이들은 두 피해자를 대하는 독일과 한국의 공권력에 대해 증언했다.


바그너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실명하는 사고가 일어난 뒤, 독일 정부와 경찰은 오히려 바그너를 포함한 당시 시위대를 ‘폭도’로 몰았다. 바그너는 ‘범죄인’ 취급을 당했다. 사고 직후 경찰은 상해미수, 물대포에 대한 재물 손괴 혐의 등으로 바그너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주정부는 바그너가 “경찰 명령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부상을 자초했다”거나 “바그너가 거리 포장용 돌을 던진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검은 목요일’ 시위를 언급하며 “시위가 좀더 평화적으로 진행됐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바그너의 변호를 맡은 프랑크-울리히 만 변호사는 “당시 경찰 명령은 불법이었음이 이후 법원 판결로 밝혀졌고, 바그너가 포장용 돌을 던졌다는 주장은 증명할 수 없는 거짓이었다”라고 심포지엄에 보내온 영상메시지에서 밝혔다.


백남기씨를 비롯한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 시위 참가자도 ‘폭도’로 내몰렸다.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민중총궐기 다음날 기자간담회에서 “밧줄을 걸어 차벽을 설치해놓은 차량을 훼손하기 위해 시위대가 밧줄을 걸어 잡아당기기에 살수한 것”이라며 “거기에 그분(백남기)이 끼어 있었다”고 말했다. 구 청장은 “청문감사관을 통해 조사했지만 이번 살수 사용은 규정 위반이 아니”라며 “방법과 시기, 절차 등에서 운용 규정에 맞게 쐈다”고도 주장했다.


사흘 뒤인 11월17일 강신명 경찰청장은 새누리당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대규모 불법·폭력 시위로 경찰관 113명이 부상당하고 경찰 차량 50대가 파손됐다. 배후단체 등을 끝까지 추적해 책임을 묻겠다”며 시위대를 ‘폭력 시위대’로 몰았다. 황교안 국무총리도 11월17일 “이번 불법 집단행동과 폭력행위 책임자에 대해 ‘불법필벌’의 원칙에 따라 단호히 대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독일 “살수 행위는 법적 근거 없다” 판결


‘집회에서 물포 사용 문제와 경찰의 집회 대응 개선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이 6월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위). 물대포에 맞고 실명한 바그너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는 활동을 해온 디터 라이헤르터 전 슈투트가르트 지방법원 형사부장판사, 영국 잉글랜드에서 물대포 도입 불허 결정을 이끈 인권단체 ‘리버티’ 샘 호크 활동가 등이 6월27일 한국을 방문해 백남기씨 딸 백도라지씨와 백남기씨의 상황, 한국 정부의 대응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용일 기자 


백남기 농민의 국가 대상 손해배상소송 등을 진행하는 이정일 변호사는 “피해자를 오히려 범법자로 만드는 공권력의 태도가 독일이나 한국이나 놀랍도록 똑같다”고 지적했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지침에 따르면 보호돼야 할 ‘평화적인 집회’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거나 화나게 하는 행동을 포함하며, 제3자의 행동을 일시적으로 방해하거나 지연·차단하는 행동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며 “백남기 농민의 행위는 당시 설치된 차벽의 위법성에 항의하는 성격으로 이는 ‘평화적인 집회’를 하는 집회 참가자의 행위로서 이 또한 경찰이 보장해야 하는 집회의 자유다”라고 말했다.


공권력의 책임을 묻는 사법처리 과정 역시 두 나라 모두 지난하다. 독일의 ‘검은 목요일’ 집회 피해자들은 경찰에 대해 형사소송을 제기했지만, 제대로 처리되지 않거나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처리됐다. 사건 발생 3년이 지난 2013년 3월, 바그너 등은 경찰 지휘관 2명에 대해 형사소송을 제기했다. 7개월 뒤 법원은 공동원고인단에 아무 언질도 없이 3천유로의 돈을 내는 것을 전제로 경찰에 대한 기소 절차를 중지했다.


이는 ‘부담과 지시를 전제하는 절차중지’라는 독일 형법상의 제도를 적용한 것인데, 죄가 경미하다고 판단할 경우 처벌하는 대신 ‘비형벌적 제재’에 해당하는 금전 부담을 제안하고, 변호인이 이에 동의하면 법원이 수용하는 방식으로 처리된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디터 라이헤르터 전 판사는 “이런 절차가 변호인단에 아무 언질 없이 갑자기 진행돼 소송이 마무리됐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경찰의 경고에 따라 정해진 시간 내에 공원을 떠날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부상자들이 이 사건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등 당시 형사재판소는 경찰 입장에 서 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물대포 살수 행위 자체의 위법성을 확인하는 행정소송은 사고 발생 5년 뒤인 지난해 11월에야 겨우 판결이 이뤄졌다. 비록 오래 걸리긴 했지만, 슈투트가르트 행정법원은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는 영역에선 집시법이 배타적으로 적용돼야 하므로, 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경찰의 퇴거명령은 집회에 대한 적법한 해산명령이 없었다는 점에서 위법하다”며 “경찰의 퇴거명령이 위법한 이상, 이를 강제하기 위한 (물대포 살수를 포함한) 직접 강제 집행 역시 위법”하다고 판결 내렸다. ‘살수 행위에 합법적 근거가 없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슈투트가르트 행정법원은 “바그너에 대한 직접 강제 수단인 물포 살수가 비례성 원칙에 합치하는지에 상당한 의구심이 있다”는 견해도 표명했다.


백남기씨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백남기씨 가족은 사고가 있은 지 4일 뒤인 지난해 11월18일 강신명 경찰청장, 구은수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을 비롯한 경찰 지휘부와 당시 현장 지휘관·실무자 등 경찰관 7명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검찰은 고발한 지 7개월이 지난 6월16~17일에야 살수경찰 등 경찰관 4명만 조사했다. 강신명 경찰청장 등 경찰 지휘부에 대한 조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물대포 쏜 경찰 고발 사건 감감무소식인 한국


경찰은 국회가 진상 파악을 위해 요청한 자료 제출에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이어서 제출이 어렵다”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6월29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경찰청 업무보고에 출석한 강신명 경찰청장은 박남춘·박주민·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야당 국회의원들이 요구한 ‘백남기씨 사건에 대한 경찰 청문감사 보고서’, 2015년 11월14일 사용된 살수차의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 등에 대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제출할 수 없다”고 답했다. 경찰력 집행으로 생명이 경각에 달린 시민과 그 가족에 대한 사과 표명에 대해서도 “재판 중인 사안이고 사건에 대한 극명한 시각차가 존재해서 법적인 사과는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한국 경찰·검찰의 철저한 ‘무대응’ 방침과는 조금 다르게 독일에선 사고 6개월 뒤 담당 경찰관 문책이 있었다. 2011년 3월 살수차 운용에 관여한 한 실무 경찰관이 120일 구류에 해당하는 벌금 6천유로를 선고받았다. 2년 뒤인 2013년 8월에는 또 다른 살수차 운용 경찰관 1명이 120일 구류에 해당하는 벌금 4800유로를 선고받았다. 중간 지휘관에 해당하는 경찰 2명은 징역 7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2015년 3월, 지그프리트 스툼프 경찰청장이 과실치상 혐의에 대해 구류 120일에 해당하는 벌금 1만5600유로(당시 환율로 약 2천만원)를 선고받았다. 결국 바그너의 실명으로 고발된 경찰관 7명 가운데 5명이 경미하지만 법적 처벌을 받은 것이다.


정치적 제스처도 있었다. 사건 발생 6개월 뒤인 2011년 3월 지방선거에서 슈투트가르트21 사업에 대한 주민 반대가 거세지면서, 보수 성향이 강한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 처음으로 기독민주연합이 아닌 녹색당에서 주지사가 나왔다. 주지사가 바뀌고 한 달 뒤인 2011년 4월, 슈투트가르트 경찰청장인 지그프리트 스툼프가 물러났다. 라이헤르터 전 판사는 “(지그프리트 스툼프가) 물러나면서 바그너에게 직접 사과하지는 않았지만, ‘검은 목요일’ 시위 진압에 대한 책임성 사퇴인 것은 분명했다”고 말했다.


한 시민이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집행으로 실명했고, 그 결과 슈투트가르트 지방경찰청장은 6개월 뒤 사퇴했다. 사퇴 4년 뒤 약식명령 형태지만 유죄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강신명 경찰청장은 2004년 경찰청장 임기제 도입 뒤 처음으로 오는 8월까지 임기를 채우는 경찰청장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눈앞이 캄캄한 백남기씨 가족


백도라지씨는 6월28일 열린 심포지엄 마무리 발언에서 “독일에서 살수 행위의 위법성에 대한 법적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5년이 걸렸다는 얘기에 한국에서는 도대체 몇 년이 걸릴지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말했다. “경찰이 (우리) 가족을 한 번도 찾지 않고, 모든 자료 제출 요구에 대해서도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묵묵부답인 가운데 지난 6월1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에는 경찰관 3명을 파견해 한국 경찰의 입장을 설명했다고 들었다. 그 에너지를 왜 이런 사고가 발생했는지, 사고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히는 데 썼으면 한다”고 백도라지씨는 말했다.


디터  라이헤르터  전  독일  부장판사  인터뷰

“그날  공권력  집행은  부당했다”

정용일 기자
디터 라이헤르터(69)는 35년간 독일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 판·검사 생활을 했다. 2010년 ‘검은 목요일’이 있기 한 달 전 정년퇴임했다. 9월30일, 퇴임한 동료 판사를 만나기 위해 슈투트가르트를 방문해 ‘검은 목요일’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그는 평범한 퇴직 판사의 삶을 보냈을지 모른다. 그날 이후 그의 삶은 ‘전환점’을 맞았고, 급기야 독일의 바그너와 유사하게 공권력이 집행한 살수차에 의해 의식불명 상태로 누워만 있는 백남기씨와 그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6월27일 한국에 왔다.

2010년 9월30일,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그날 처음으로 시민으로서 무력감을 느꼈다. 동료 판사를 만나기 위해 슈투트가르트에 갔다. 라디오를 통해 ‘슈투트가르트21’ 사업 반대집회가 있을 거라는 소식만 들은 터였다. 그동안 법정에서 경찰 관련 사건을 많이 다뤘다. 경찰이 실제 어떻게 대응하는지 현장에서 볼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전까지 나는 한 번도 집회에 참여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1천 명 정도 있었는데 내가 있던 곳에선 폭력행위가 전혀 없었다. 나 역시 경찰이 가지 말라는 곳에 가지 않았고 집회 중심부에서 꽤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물대포가 아무 경고도 없이 내 쪽을 향했고 물을 뿌렸다. 다치지는 않았지만 온통 젖었다. ‘쏘지 말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저 물대포를 피해 나무 뒤로 숨을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바그너가 물대포를 맞는 것을 직접 봤나.


바그너를 직접 보진 못했다. 뉴스를 통해 바그너가 심각한 안구 손상을 입었고, 내 옆에 있던 젊은 여성 역시 눈을 다쳤다는 사실 등을 알게 됐다. 더불어 내무부 장관이 9월30일 저녁 뉴스에 나와 “집회 참가자들이 도로포장용 돌을 던지는 등 폭력시위를 했다”고 말하는 것을 봤다. 폭력시위로 거짓 보도되는 것에 화가 났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해 바로 그 자리에서 내무부 장관, 국회의원,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주지사 등에게 편지를 썼다. 이 편지가 보도되면서 ‘검은 목요일’ 집회와 관련해 유명인사가 됐다.


당신이 주로 전했던 메시지는 뭔가.


그날의 공권력 집행이 부당했고, 슈투트가르트 경찰청장은 물론 슈투트가르트 주지사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경찰청장은 물대포 발포 당시 집회 현장인 공원에 있었지만, 끊임없이 그 사실을 부인하다가 나중에 그가 현장에 있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거짓이 밝혀졌다. 당시 경찰 대응의 적법성 등에 대한 조사를 사건을 책임져야 할 슈투트가르트 경찰청장실과 검찰청의 정치부장검사가 이끈 점도 매우 유감스러웠다. 이런 점들을 언론 기고, 대중 연설 등을 통해 끊임없이 알렸다.


한국의 백남기씨 가족에게 전하고픈 말은.


백남기씨 두 딸이 공권력의 부당함을 알리는 활동을 벌이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1985년 집회시위에 대한 기념비적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집회 자유에 대한 의미는 집회 금지나 집회 해산을 통해 기본권의 행사가 억제될 경우에도 항상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집회 자유의 권리’를 천명한 이 판결이 한국에서도 반드시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겠다.


박수진 기자 [email protected]

원문보기 

한겨레 21 '물대포를 금지하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

[시민이 나섰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국민동의청원]

평등을 열망하는 한 시민이 국민동의청원을 열었습니다.

30일 내에 10만명이 동의해야 국회 내에서 심사가 이루어집니다.

지난 6월 29일 21대 국회에서 장혜영 의원을 포함한 10명의 의원이 서명한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었지만, 더 많은 의원들이 발의 동참 할 수 있도록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국회를 압박하면 좋겠습니다.

이곳에 모여 국회는 평등할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합시다!

국회가 반대 청원에 밀려 차별금지법 추진을 포기하지 않도록 힘을 모읍시다.

불평등을 참지 않고, 차별에 반대하며,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에겐 차별금지법이 꼭 필요합니다!

● 청원제목 :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 촉구에 관한 청원

● 참여하기 : https://bit.ly/2VFJ1qr

- 입법청원은 본인인증을 해야 합니다(휴대폰, 아이핀 인증)

- 모바일에서는 크롬 앱이 오류가 적습니다

● 국민동의청원은? : 국가에 대해 요구하는 의견을 제출하는 한 방식입니다. 청원 시작 후 30일 이내 10만명이 동의하면 본회의에 보고되고, 절차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 상정됩니다.

#우리에게는_차별금지법이_필요하다

#나중은없다_우리가있다

금, 2020/07/03- 22:28
1
0

오늘 오전 10시 반 경기도의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경기시민사회단체 합동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지난 달 29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을 비롯하여 10명의 국회의원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발의했습니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부에 차별금지법 입법을 권고한지 14년이 지난 2020년, 우리는 나머지 290명의 국회의원도 시대의 흐름인 차별금지법 제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요구합니다.

지난 6월에 발표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여론조사와 국가인권위원회의 국민인식조사 결과 각각 87.7%, 88.5%의 시민들이 대한민국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습니다. 더는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숨지 마십니오. 21대 국회에서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를 요구합니다.

[기자회견문]

우리 모두에게는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지난달 29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하였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도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이하 ‘평등법’을 제정하라고 국회에 의견을 표명했다. 해당 법안은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신분 등과 같은 이유로 차별을 당하는 이들을 실질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법이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부에 차별금지법을 입법하라고 권고한지 14년이 흘렸지만, 차별금지법은 제대로 논의되는 것 조차 험난한 과정 속에 있었다. 지금까지 총 7번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2건이 철회되었고, 5건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처분 되었다. 더욱이 차별금지법을 논의하기 위한, 법률안 발의도 많이 어려웠던 실정이었다. 이번에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발의정족수인 10명을 겨우 채워, 가까스로 국회에서 발의될 수 있었다. 꼭 시정되어야 할 차별을 고치는 기본적인 법이 차별금지법임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그 동안 이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를 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차별금지법은 그동안 수 많은 오해와 왜곡에 시달려왔다. 차별금지법이 입법되면,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고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갈 것이라는 곡해는 이제 익숙한 레퍼토리일 정도이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은 그런 법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은 당사자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던, 무슨 정체성을 가졌든간에 사회 생활을 하는데 있어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지 악의적으로 누군가를 탄압하기 위한 법이 아니다.

오히려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통해 그동안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고, 자신을 숨겨야만 했던 여러 사회적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코로나19의 확산은 우리 사회 곳곳에 숨겨진 차별과 불평등을 드러내고 있는 실정이다. 비정규직은 불안정한 고용형태로 인해 기본적인 생존권마저 위협받고 있다. 또한 자신의 존재가 이주노동자라서, 성소수자라서,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코로나19 대책에서 오해 받고 차별받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받고 있는 차별은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이전보다 더 심해졌고, 코로나19를 핑계로 차별에 면죄부를 부여하려는 모양새까지 나타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차별금지법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다.

더이상 묵과할 수 없는 사회적 차별들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이를 가만히 둔다면 억압받는 사람들은 늘 억압받고, 차별하는 사람은 늘 차별하는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이러한 현상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이자 기본적인 조치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위기에 처한 상황 속에서 차별금지법이라는 손을 잡아주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차별금지법이 없어서 차별받는 사회에 서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차별금지법은 지금이야 말로 즉각 제정되어야 한다.

이제 14년간의 기다림을 끝을 내고 기본적인 평등이 준수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차별금지법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멈출 수 없다. 차별금지법은 올해 내로 반드시 입법되어야한다. 우리는 이를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통과를 위해 이를 지지하는 모든 단체들과 연대해 나갈 것이다.

국회는 이런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외침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공은 이제 국회로 넘어갔다. 특히,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에게 차별금지법 통과라는 열쇠가 달려있다. 이번 국회에서는 차별금지법이 철회되거나 임기만료로 차별금지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 의 국회의원들이 발의와 통과에 적극 협조하여 헌법의 평등가치를 실현시키는 데 동참하기를 바란다. 제21대 국회가 차별금지법을 통과시켜 평등을 위한 진일보한 발걸음에 동참했다는 사실이 역사에 남기를 바라면서, 조속한 차별금지법 입법을 촉구한다.

2020년 07월 10일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경기도본부, 부천시바른기독교인연대, 정의당 경기도당 성소수자위원회, 차별과혐오없는평등한경기도만들기도민행동

수, 2020/07/08- 01:34
1
0

‘수원 4.16활동가워크숍’을 7월 9일(목), 11(토) 양일에 걸쳐 진행했습니다. 4.16 기억운동을 우리가 어떻게 해왔고,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갈지를 상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거대 담론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우리 삶 속에서 서로를 돌보고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모으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사진으로 그날의 활동을 나눕니다.

*수원4.16연대의 후원과 4.16재단의 지원으로 다산인권센터 그리고 4.16기억저장소가 함께 했습니다.

수, 2020/07/22- 00:38
1
0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에 함께 해주세요. 

한국전쟁을 끝내는 Korea Peace Appeal 전 세계 1억 명 서명을 시작합니다. 전세계 시민들의 힘으로 전쟁을 끝냅시다.

아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서명하고 해시태그와 함께 주변에 널리 공유해주세요.

https://endthekoreanwar.net/

1억 명을 채우려면 당신의 서명이 꼭 필요합니다!!

#KoreaPeaceAppeal #EndtheKoreanWar #휴전에서평화로

수, 2020/07/29- 01:07
1
0

'여러분, 의논하고 싶은게 있는데~'

며칠에 한 번 다산인권센터 랄라 활동가가 다른 활동가들에게 건내는 말입니다.

같은 활동가이지만 '저렇게 살면 피곤하지 않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 인권의 감수성을 항상 날카롭게 벼리려 애쓰는 모습을 보면 '나도 본받아야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코로나 19사태가 터졌을 때도 누구보다 먼저 '우리 이거에 대해서 뭐 좀 해야하지 않을까?' 말을 건넸던 랄라 활동가의 이야기, 아래 글을 통해서 자세히 만나보세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69575&CMPT_CD=SEARCH&fbclid=IwAR2jNDnDy7-v4BGRR8lyyELPNj1VZLN6EpqkK2QZqnQx5JMArVwl1UOjfos

이런 멋진 활동가가 일하고 있는 다산인권센터를 후원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bit.ly/다산가입

요기를 클릭하세요!! ^^

안식년에 만난 코로나... 그가 '사회적 가이드라인' 만든 이유

 

안식년에 만난 코로나... 그가 '사회적 가이드라인' 만든 이유

[코로나19와 인권활동가 ③] 랄라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www.ohmynews.com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자주 만난 문장이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전염된다는 말도 두려웠지만,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재난의 고통은 평등하지 않다'는 말도 두려웠다. 이 말이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에 대한 불평등이 재난으로 인해 더욱 가중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국내 첫 번째 사망자가 나온 경북 청도 대남병원의 현실로 이 사실을 무섭게 확인했다. 좁고 폐쇄된 다인실에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며 입원했던 고령 만성질환자, 정신장애인들에게 코로나19는 치명적이었다. 사회적 약자는 재난 상황에서 자신의 위치를 폭력적으로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답하기 어려운 이 질문을 피하지 않고 맞서는 인권활동가들이 있다. 인권활동가들은 코로나19 이후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이어져 온 불평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고민을 계속 이어온 다산인권센터 랄라 상임활동가를 수원 화성행궁 부근 단체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가 대만의 이주노동자 단체를 찾은 이유
  

올해로 다산인권센터에서만 9년 동안 일한 랄라 활동가는 올해 3월까지 안식년을 보내고 활동에 복귀했다. 안식년은 활동으로 지친 활동가들의 쉼과 휴식, 재충전을 위한 단체 내 제도이다. 안식년 기간에 캠핑 짐을 자동차에 싣고 가족들과 함께 한 달간 유럽 여행을 다녔다.

유럽 여행을 마치고 타이완(대만)의 이주노동자 단체 '타이완국제노동조합'(TIWA)에서 3개월 동안 일을 했다. TIWA는 1999년 최초로 타이완 시민들에 의해 설립된 이주노동자 인권단체이다. '안식년인데 왜 이주노동자 단체에서 일을 했냐'고 물으니 "진짜 큰 가르침을 많이 받았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TIWA에서 3개월간 일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더 고민되게 됐어요. 대만 이주노동자들의 삶과 활동을 볼 수 있었어요. 한국이나 대만은 주로 아시아 국가의 저소득층 이주노동자들을 받아들이는 국가인데, 이들 국가가 이주노동자를 어떻게 소외시키며 '사용'하고 있는지를 좀 더 보게 됐어요.

그리고 한국에서는 이주노동자가 굉장히 어려운 조건과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어서 우리가 한국의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막 싸우는데, 대만에서는 '우리도 한국 같은 고용허가제가 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는 주로 제조업 노동자나 선원으로 일하는데 대만에서 이주노동자는 아동이나 노인을 돌보는 노동을 한다는 것도 다른 점이고요."
  
가족들과 여행하고 타국의 인권 상황도 경험하는 등 안식년을 활발하게 보냈지만,  안식년 초기에는 "바쁘게 사는 관성"을 버리지 못해 힘들었다고 한다. 해가 지고 집에 가만히 있으면 뭔가 큰 잘못을 하는 것 같아 한두 달 정도 문화센터에서 떡 만드는 강좌, 영어 강좌 등을 부지런히 들었다.

그러다 "이렇게 하다가는 이것도 과로하겠다" 싶어,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유럽을 여행하고, 대만의 인권단체에 가게 됐다. 대만 활동가가 한국의 역동적인 사회운동을 경험하고 나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 사회운동의 다채로운 면을 대만 활동가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자극을 받기도 했다. 

대만에서 활동을 마무리하고 올해 초 말레이시아로 이동했을 때 코로나19가 점차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었다. 코로나19가 확산하자 말레이시아에서 다른 국가로 이동하는 것이 어려워져 한국으로 돌아왔다. 안식년이 끝나 활동에 복귀한 3월 한국의 코로나19 확산세는 격심했다.

1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확인된 후 한 달이 지난 2월 20일 확진자가 100명이 넘은 상황에서 청도 대남병원 입원자 중 첫 사망자가 나왔다. 비슷한 시기 대구와 경북 지역에서 확진자가 늘고 있었다. 감염 원인을 확인 중인데도, 대남병원이나 대구 지역 감염 확산에 대한 근거 없는 추측이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 발언과 함께 나돌았다.

인권은 어떤 이야기를 던져야 할까? 

"복귀 후 '코로나19로 인해 침해된 인권과 관련해 뭘 해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인권 단체들하고 함께 성명을 좀 내볼까 했죠. 근데 성명만을 내기엔 사태가 심각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시민사회가 시민들과 함께 정부에 제언하는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다 인권단체 활동가들을 모아 고민을 나눠 보자고 했죠.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의 대장정도 이렇게 시작됐어요.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들이 모여 각자의 영역에 대해 오랫동안 토론을 했어요. 토론이 보고서 집필로 이어졌고요. 집필하며 서로의 글을 확인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어요."  

전례를 찾기 힘든 바이러스의 확산은 모두를 두렵고 불안하게 했다. 정부는 이런 불안을 잠재우고 코로나19의 확산세를 꺾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정부의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긴급조치와 재난지원은 종종 '성공적인 K-방역'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문제점 및 개선점들이 많았다. 
  
랄라 활동가처럼 정부 조치에 대응하며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한 활동가들이 모여 이야기를 시작했다. 방역 당국이 불필요한 확진자 개인정보와 과도한 동선을 공개하고,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집회가 금지되며,  격리되는 장애인들의 생활 지원 대책 없이 격리 건물이 지정되던 시기였다. 이 과정에서 정부, 언론 등은 감염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리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활동가들의 문제의식은 깊었고 토론은 열기가 있었다. 거듭 깊어지고 열기가 집약된 결과, 지난 6월 11일에 보고서 <코로나19와 인권: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이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보고서 첫 페이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기존에 존재해왔던 사회 구조적 문제가 특정한 위험 요소와 결합할 때 위험은 재난이 된다."

보고서를 읽으며 이 문장과 조응하는 수많은 사례, 상황들을 마주하게 된다.

(자료집은 누구나 다운받을 수 있다. https://www.sarangbang.or.kr/writing/73350) 
 

랄라 활동가는 보고서 작업에 '큰 욕심'을 냈다. 스스로 더 잘해야 한다고 말하며 더 좋은 생각, 더 좋은 내용을 담으려 애썼다. 그만큼 심적 부담도 커졌다. 이 모든 게 '인권이 어떤 이야기를 던져야 될까'라는 고민의 연장이면서 코로나19 상황에서 명료하진 않지만 필요한 '인권의 언어'를 함께 찾는 과정이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인권이 어떤 이야기를 던져야 될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전자밴드 부분이나 격리, 강제 행정 조치 등에 대한 이슈가 부각될 때 언론은 인권활동가를 찾아요. '인권단체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그런데 국가 기관은 인권단체에 물어보지 않아요. 이럴 때 우리는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는 게 좋을까', '문제 제기를 위해 어떤 논리를 마련하는 게 좋을까' 그런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게 부담스럽기도 했고요.

이게 '법적으로 명확한 요건이 성립되지 않아서 문제야'라든지 '법적으로 명확한 요건이 성립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실은 기본권 침해야'라는 말은 쉽게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로 인해서 누군가의 삶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 우리 사회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용납할 수 있는지, 우리 사회가 그 사람을 배제한 채 그냥 가는 건 아닌지'는 명료하게 끝나는 말이 아니잖아요."

코로나19로 다산인권센터는 어려움이 없는지 물어봤다. 단체의 주요 사업들이 사람들을 직접 만나 서로 알아 가고, 단체 활동을 소개하며 같이 일하는 방식인데 코로나19로 모두 차단되어 버렸다. 활동의 방식, 후원 모집의 방식이 '멈춤'에 와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최근 비대면 온라인 활동들이 여기저기 소개되고 있지만, 단체 활동을 온라인으로만 할 수는 없다 보니 고민이 쉽사리 풀리지 않기도 했다. 비단 다산인권센터만의 상황이 아니다.  대다수 시민사회 단체도 비슷할 것이다.

단체 활동에 대한 고민은 인권운동이 대규모로 모여 목소리를 내는 방식 말고 다른 방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로 이어졌다. 사회운동이 함께 모여 힘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한데 대규모로 모이기가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비대면 활동을 실험하고 도입하면서도, 비대면 활동이 담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고민을 했다. 결국 앞으로 인권운동이 같이 공동으로 모색해야 하는 과제라 여긴다며 올해 하반기 활동을 계획하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죽음을 애도한다는 것 

인터뷰를 마치고 수원시 연화장을 찾았다. 이곳엔 다산인권센터와 인연이 있는 '오렌지가좋아'라는 필명을 쓴 고 엄명환 활동가가 잠들어 있다.

고 엄명환 활동가는 2015년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당시 동료 활동가들은 치료비로 모은 돈으로 고 엄명환 활동가의 장례를 치르고, 남은 전액을 인권재단 사람에 기부했다. 두 단체는 그의 활동을 기억하고자 고인처럼 특정 단체에 소속되어 있진 않지만, 인권 현장에서 활동하는 개인 활동가에게 '오렌지 인권상'을 수여했다. 다산인권센터와 인권재단 사람은 지난 4년간 '오렌지 인권상'을 함께 진행해왔다. 
  
고 엄명환 활동가가 세상을 떠난 2015년 한국에는 메르스가 확산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장례식장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찾은 곳이 수원시 연화장이었다. 조문객도 조문받는 이들도 조심스러운 장례식이었다. 

"생소한 장례 경험이었죠. 이 친구가 신장질환자였어요. 투병 당시 신장병환우회 모임에서 친해진 친구들이 있었는데 감염될까 봐 엄명환 활동가가 입원한 병원에 와보질 못 했나 봐요. 분주하게 장례를 치르고 있는데 사람이 없는 밤에 친구라는 분이 와서 막 울다가 가셨어요."

수원시 '연화장'에서 오렌지가좋아 활동가를 조문하며, 더불어 코로나19로 먼저 떠나신 분들을 함께 애도했다. 

랄라 활동가는 2015년 메르스, 2020년 코로나로 인한 죽음을 사회가 충분히 애도하고 추모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바이러스는 사회적 재난이지만, 죽음은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려져 개인이나 가족들이 감당하고 있다. 랄라 활동가는 코로나로 인한 죽음을 사회적으로 더 이야기하고 함께 죽음을 추모하는 것이, 바이러스 감염의 불안 때문에 약해진 사회적 신뢰를 복원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코로나 감염자가 급상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그의 목소리와 활동이 더 커질 수 있기를 바라고 응원한다. 
 

[기획 / 코로나19와 인권활동가]
①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 '신의 한수' 뒤엔 그가 있었다 http://omn.kr/1ocvj
② "'배고파 코로나도 먹겠다'는 절규, 홈리스의 설움 보여준 것" http://omn.kr/1omwb

*인권재단 사람은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권단체, 인권활동가를 지원하기 위한 '인권ON' 캠페인(https://www.onhumanrights.or.kr)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함께해주세요.

금, 2020/08/28- 21:04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