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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 공익인권변론센터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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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 공익인권변론센터 들여다보기

익명 (미확인) | 월, 2016/06/27-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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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인권변론센터 사람들, 이들이 궁금해요!

 

이혜정: 새로운 집행부 뉴스레터에 영광의 첫 손님으로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선정됐습니다. 요즘 인트라넷의 ‘이것이 궁금해요’와 ‘이 주의 변론’ 코너가 아주 인기가 좋고 덕분에 홈페이지 인트라넷도 좀 활성화가 된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이면에 있는 공익인권변론센터에 대해서 잘 모르는 회원들이 많아요. 센터가 어떤 일을 하고, 누가 일하고 있는지, 각자 자기 소개 부탁드릴게요.

송아람: 저는 민변이 첫 직장이고 2014년 10월부터 근무를 했습니다. 사무처에서 변론팀장으로 일을 하다가 이제 센터가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센터로 옮겨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수연: 네 저는 이수연입니다. 입사한지는 4년 5개월 정도 됐구요. 민변에 온 뒤로 제가 인복이 좀 있는 거 같아요. 처음에 이혜정 변호사랑 함께 일을 했는데, 이번에 공익변론센터에서 같이 일 하게 된 구성원들을 보면서 ‘아! 나에겐 인복이 있구나.’, 남자친구는 없지만 인복은 있구나, 그래서 너무 좋습니다.

송상교: 네.센터 소장입니다.(웃음)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동안 사무차장으로 일을 했었구요. 올해 2월부터 다시 또 이번엔 사무차장이 아닌 센터 소장으로, 민변 최초의 소장으로서 일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조영관: 네, 안녕하세요. 조영관이구요, 저는 5월부터 변론센터에서 반상근으로 월요일과 수요일와서 일을 하고 있구요. 주로 이제 회원들한테 보내는 이 주의 변론하고 이것이 궁금해요를 만들고 있고, 그외에 변론센터에서 진행하는 사건들이나 업무들을 나누어서 하고 있습니다.

공인인권변론센터 탄생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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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공익인권변론센터가 만들어지고, 이번 총회에서 소개도 됐는데 아직 공익인권변론센터를 잘 모르는 분들이 더 많아요. 센터가 만들어진 계기나 과정을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송상교: 갑자기 생긴 건 아니고, 사실 몇 년 전부터 민변 안에서 회원 1000명 시대가 되고 민변도 30주년을 맞으니‘뭔가 질적 도약을 해보자’ 이런 논의들이 많이 있었죠. 그 과정에서 ’민변이 제일 잘 하는 건 변론 아닐까, 맨날하는 거니까’, 해서 변론을 특화시켜보자, 변론센터를 일단 가장 먼저 특화시켜서 그걸 통해 시민들과 점점 소통을 해보자, 이렇게 얘기가 됐던 겁니다.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있었어요. 민변이 사실 맨날하는 게 변론인데 갑자기 또 무슨 변론센터냐, 무엇을 위한 것이냐에 대해서 회원들 사이에 논의가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이것은 이 변론센터가 눈으로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어떤 것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아무도 예상하기어려웠던 것 같고, 우리 준비하는 사람들조차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변론을 잘 하자는 것 외에 후배 회원들을 양성해보자는 고민도 오랫동안 있었어요. 공익변론센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민변의 젊은 회원들을 영입해서 양성해보자, 이런 논의도 있었죠. 아직까지는 우리 역량이나 재정이 녹록치 않은 부분이 있어서 약간 보류됐고, 그런 부분들을 장기적인 과제로 놓고, 민변의 변론을 잘 기획하고, 그것으로 시민들과 소통하고, 민변의 변론자료를 잘 축적해보자, 그래서 회원들이 수준 높은 변론을 하도록 지원을 해보자, 이런 걸로 압축이 되는 거죠.

이혜정: 지금 센터가 개설되면서 교육팀이 없어졌잖아요, 신입 회원들과 기존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사업도 중요한데교육사업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계획도 있나요?

송상교: 센터가 만들어지면서 교육업무를 센터가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줄다리기가 좀 있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젊은 회원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민변의 변론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도 그 젊은 회원들, 민변 회원들에 대한 계속 끊임없는 교육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교육도 센터의 중요한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예전 교육팀에서 신입회원 단기연수를 몇 년째 했었는데 오랫동안 변론을 해왔던 변호사들이 실무적인 팁들을 중심으로 강의를 하셨던 것이 반응이 무척좋았던 거 같아요. 민변 회원들이 변론과 관련해서 공익인권의 내용을 법정에서 잘 표현할 수 있는 스킬이나 증거신청의 방법 같은 실무적 지식에 대한 목마름이 많이 있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기적인 교육 외에도 그런 변론교육은 강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제일 큰 고민은 회원에 대한 교육 외에 시민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법률적인 정보를 제공하거나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들 같아요. 그게 참 제일 어려운 부분이더라고요.

구체적으로 공익인권변론센터가 하는 일은?

 

이혜정: 지금 센터가 진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소송은 무엇이 있나요?

송상교: 센터 1호 소송으로 저희가 시민청구인을 모집해서 통신자료 무단수집 헌법소원을 했고, 그게 1호 소송이에요.

송아람: 사실 변론팀이 외부에서 요청받은 것도 많이 하잖아요. 강정마을 구상금 청구 사건하고, 민중총궐기 집회 주최자 손해배상 소송 두 건을 연달아 했고요, 그 외에 우남찬가 사건이라든지… 그 정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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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현재 센터에서 진행 중인 중점사업을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송아람: 일단은 저희가 시민들과의 소통도 중요한 사업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어요. 기본적으로는 센터 이메일로 상담 내용과 자료를 받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고요. 전화 상담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전화상담은 원칙적으로 하지 않고 있어요. 센터가 4월 말에 개소를 했는데 그 뒤에 30건 정도 왔더라고요 그 중에 지금 민생위 공정경쟁팀에서 하고 있는 대한항공 지연발착 손해배상 청구 사건이나,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우남찬가 사건 등을 민변 사건으로 지정을 해서 기금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조영관: 공익변론센터는 민변이라는 회원조직에서 만들어진 공익센터이기 때문에 회원들을 위한 사업들을 같이 고민하고 있어요. 그래서 처음 만들었던 이 주의 변론인데요, 회원들이 변론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공유하고 회원들이 했던 변론을 소개하고 있어요. 또 신입회원들이 많아지면서 예전처럼 선배들이 알고 있는 노하우가 자연스럽게 모임 내에서 공유되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신입 회원들이나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기 위해 ‘이 주의 변론’ 안에 ‘이것이 궁금해요’ 라는 코너도 만들었습니다,

또 다른 중점사업으로는 디지털 도서관 구축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민변이 30년 가까운 시간동안 해왔던 변론 자료들이 회원들한테 충분히 공유되지 못했고, 또 디지털 시대가 됐으니까 지금까지의 자료들을 잘 정리해서 회원들의 변론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에요.올해 안에 런칭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혜정: 민변에 좋은 자료가 참 많아요, 민변 자료를 통해서 저의 시각으로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던 교수님들과 다른 실무진들의 의견을 접하기도 하거든요.

조영관: 저희가 디지털도서관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계속 논의하고 있는데 변론 기록을 가장 우선시 하지만 민변이 가지고 있는 토론회 자료집, 노동위원회에서 발간하는 노동판례비평, 4년에한 번 나오는 개혁입법과제 같은 정기발간물도 변론에 혹은 민변 활동에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기 때문에 그런 자료들 포함해서 이번에 그 디지털 도서관을 구축하려고 합니다.

인트라넷 스타 <이 주의 변론>&<이것이 궁금해요>

 

이혜정: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연재하는 <이 주의 변론>이나 <이것이 궁금해요> 인기가 높다고 하는데, 혹시 회원들로부터 반응이 돌아온 적도 있나요?

조영관: 어, 폭발적이죠.(웃음) 정말 ‘이 주의 변론’ 올린 것 중에 조회수가 90 정도 올라간 것들이 있어요. 제가 알고 있기로 민변 회원이 1000명인데 30% 정도가 인트라넷을 사용하신다면 300명이죠? 조회수 90이면 거의 한 1/3이 보셨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원 분들 중에서 아직 인트라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데, 인트라넷에 접속을 하시면 저희 <이 주의 변론> 게시판과 <이것이 궁금해요> 게시판이 있어요. 궁금한 점을 게시판에 올려주시면 저희가 매주 나가는 ‘이 주의 변론’에 소개하고, 내용에 따라서는 저희가 전문가를 직접 찾아서 답변을 받아서 올리기도 하고 있구요. ‘이 주의 변론’은 얼마 전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사건처럼 회원 분들이 진행하지 않았어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들은 회원들의 변론에 도움이 되는 판결이라고 생각이 되면 공유하기도 해요.

민변 회원이 굉장히 많은 소송들을 하고 있거든요. 저희 센터를 통해서 잘 수합이 안 되는 경우들이 있어요. 회원 분들이 진행하셨다가 의미가 있는 혹은 공유하고 싶은 판결이 있다고 하면 저희 민변 공익변론센터 이메일 [email protected]여기로 알려주시면 저희가 엄격한 선별 과정을 거쳐서 회원들에게 소개를 할 예정입니다.

송상교: ‘이 주의 변론’이나 ‘이궁’이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기존의 자료들을 잘 조직해서 소통하게하는 의미가 있죠. 센터가 민변 변론의 허브가 되어야겠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어요. 민변하고 연대 활동을 많이 하셨던 진보넷의 장여경씨 같은 분도 저번 운영위원회에서 “아니 민변에서 이렇게 많은 변론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 중에서 몇 퍼센트나 우리 회원들이 공유가 되고 있을까요? 가만히 살펴보면 너무 많은 땀들이 거기에 응축되어 있는데 이런 것들을 가능한 범위 내에서라도 회원들과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판결이든 나쁜 판결이든 회원들이 한 번 보고 자기가 하는 변론에서 ‘응용해봐야겠다’라고 할 만한 것들이 담겨있는 거면 최대한 소통을 해야겠다고 생각한거죠. 아마 회원들이 그런 자료에 대한 욕구가 있었던 것도 같아요.

이혜정: <이 주의 변론>이나 <이것이 궁금해요>의 선정 기준이 있나요?

조영관: 입소문이죠.(웃음) 저희가 지금까지는 각 위원회나 저희 변론센터 내에서 알음알음으로 회원 분들이 진행하시는 사건에 대해서 정보를 받아서 소개하고 있고요 간혹 가다가 이 주의 변론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본인의 사건을 소개해달라고 의뢰해오는 경우도 있어요.

회원을 위한 공익인권변론센터 사용설명서!

 

이혜정: 그러면 지부 회원이나 신입 회원들이 ‘나도 민변의 공익변론활동을 접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요?

송상교: 센터가 만들어진 후에 민변의 변론을 배분하고 지원하는 기능은 많이 확대된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해서 상근자가 네 명이 있고 민변의 회원들이 같이 할 만 한 사건들은 최대한 회원공지를 해서 많이 알리고 있거든요. 요즘은 실질적으로 참여하실 분들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때로는 우선지원 순으로 하기도 해요.

그런데 아쉬운 게 사실 개인적으로 말씀을 나눠보면 민변 변론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가 있으셔도 막상 기회가 되면 손드는 건 되게 쑥쓰러워하시는 거 같아요. 민변 변호사들이 샤이하다 이런 평도 예전부터 있었거든요.(웃음)

제 생각에는 이런 사건을 해봐야 어떤 느낌인지도 알고 다음에도 참여할 수 있다고 봐요. 이수연 간사님께서 관리하고 있는 공익인권변호사단이 있습니다. 기존의 민변이 집회라든가 이런 접견 상황이 생기면 변호사 접견을 하고 그랬었는데, 그것을 좀 더 확대하고, 또 간단한 집회 혹은 표현의자유로 인해서 기소된 분들의 변론을 맡는다거나, 이런 일상적인 공익인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틀입니다. 저희가 신청기간을 정해서 신청을 받긴 했지만 언제든 센터로 연락을 하시면 공익인권변호사단에 가입하실 수 있고, 저희가 일상적으로 드리는 사건에 참여하실 수 있는 기회가 있어요.

또 민변의 공익인권 기금이 있어요. 그리고 회원 누구나 자신이 공익인권변론을 하고 싶을 때 내 사건을 민변 사건으로 해다오, 의뢰인이 여러 가지 경제적 어려움이 있거나 한 상황이니 기금을 지원을 해다오하고 신청할 수 있는 제도가 있거든요. 필요한 변론들을 할 수 있는데 요긴한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제가 보기엔 유용한 거 같아요. 총회 자료집에 민변 변론규정이 있구요, 거기에 보면 신청서가 있어요. 그다음에 또 표현의 자유 사건 같은 경우에 표현의 자유 기금 규정과 신청서가 따로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이용하시면 되고 궁금하시면 전화하시면 되죠. 522-7283.

공익인권변론센터의 애로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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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센터가 개소한지얼마 안 됐지만 혹시 애로사항이나 힘든 부분은 없으셨어요?

조영관: 저는 민변에서 처음 일을 하는 거거든요. 상근하시는 분들은 민변에서 일을 하셨거나 오랫동안 해보셨던 분들인데…. 저는 4월달부터 공익인권센터에 월요일, 수요일 들어오는데 정말 깜짝 놀랐거든요. 일이 엄청 많고, 송아람 변호사 같은 경우는 거의 전화를 계속 붙잡고 있고…

사실 변론센터를 만들고 가장 필요한 것들은 공익 변론의 기획인데, 사실 기획을 하려면 일상의 여유들이 좀 있어서 좀 둘러보고, 뭐가 좋을지 고민도 해보고, 같이 머리도 맞대고, 토론도 해보고 해야 하거든요. 지금 공익변론센터가 생긴 지 한 3개월 정도 되는데 당장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차분하게 기획한다거나, 하는 짬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게 제일 아쉬운 부분이죠. 그건 좀 개선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송아람: 사실 조영관변호사님 말씀처럼 공익변론센터의 가장 큰 존재 이유는 기획소송을 활성화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 앉아있는 사람들이 기획소송 거리를 찾아내기는 굉장히 어려우니까 저는 시민들께 공익소송이 될 만 한 것들을 제보 받는 형식을 굉장히 중요시 하거든요. 사실 이메일이나 편지나 전화로 상담을 하다 보면우리 입맛에 맞는 사건은 그렇게 많지 않고, 그렇다고 또 완전히 ‘딱 봐도 상대할 사건이 아니다’ 이런 것도 많지 않고 대부분 사건은 그 어딘가 하나에 걸쳐있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그런 사건은 민변이 해오지는 않았는데, 이제 공익변론센터라는 게 만들어졌으니 회원분들도 그런 사건들을 좀 접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민변에서 약간의 기금이라도 지원해주고 적절하게 사람을 붙여서 공익 사건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분들을 우리 모임을 통해서 도울 수 있다, 이런 느낌을 주고 싶은데 그 매치시키는 작업을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워요.

그리고 저희가 제보하신 사건이 민변이 맡아서 진행하기에 부적절하다고 판단했을 때 그걸 또 말씀을 드려야 하는 것도 굉장히 어렵죠. 사실 시민들 기대에 어긋나는 답변을 드려야 하는 게 어려워요

송상교: 사실 송변호사가 우리 중에는 상담을 제일 많이 하시고, 제일 열정을 가지고 하고 있어요. 시민들하고 소통해서 의미 있는 소송을 기획하는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시민에 대한 인권지원 활동이죠.

센터가 생긴 지 몇 달 안 됐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참 커요. 어쨌든 센터가 만들어지니까 회원들도 거기에 대해서 기대를 하고, 또 시민들도 크게 기대를 하는데, 아직까지는 과도기인 것 같아요.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앞으로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는데 아직 사무처 업무도 함께하고 있는 상황이고, 매우 급하지만 실무적인 일들을 해야 될 게 아직 많이 있어요.

센터가 기본적인 역량 축적 단계를 넘어서 일 년에 서너건 정도 의미 있는 기획소송을 지속적으로 하는 상태가 되면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이 센터가 앞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시민이나 시민단체를 통해 현장에서 나오는 사례들로 소송을 기획할 수 있어야 하고 변호사들끼리 앉아서 신문 본다고 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앞으로 더 시간을 내서 시민들을 만나고 현장에도 가보고 단체들도 방문해보려고 합니다.

회원들도 자그마한변화지만 ‘이주의 변론’ 같은 게 생기면 좋잖아요. 회원들이 변론에 대해서 평소에서 생각들을 많이 하세요. 술자리 같은 데서 ‘이런 변론 해보면 어떨까’,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시는데 그런 것들을 센터로 주시면 저희가 그런 것들을 고민하고 기획하는데 큰 힘이 될 거 같은데 아직까지는 ‘쌍방향 소통이라는 게 쉽지 않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민변의 공익인권변론센터, 그 의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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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공익변론을 하는 곳이 공감도 있고, 희망을 만드는 법도 있고, 회원들은 아니지만 변협에 이런 공익재단도 있죠. 이런 곳들이 요즘 많이 늘어나는 추세인 것 같아요. 민변의 공익변론센터가 다른 곳과 차별화된 지점은 무엇일까요?

송상교: 기존의 공익 전담 변호사 그룹들과는 서로 상호보완, 상호협력관계인 것 같아요. 기존의 공익전담변호사그룹은 다양한 분들이 모여서 구체적인 공익인권의 주제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시잖아요.민변은 하나의 시민사회단체, 인권단체로서 특정한 주제에 집중하기보다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인권을 위해서 역할을 하는 것이고, 민변에 가장 많은 정보가 축적되고 가장 많은 변론이 여기를 중심으로 이뤄져요.

그래서 민변에 공익인권변론센터가 만들어짐으로 해서 기존의 공익인권전담 변호사 그룹들에게는 변론의 정보를 제공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민변이 자체적으로 센터에서 특정 주제를 특화를 해서 할 것인지도 우리가 면밀히 살펴봐야 할 거 같아요. 공익변론의 공백 부분이 있다면 일이 잘 시작될 수 있도록 초기 세팅을 할 것인가 이런 고민이 우리한테 놓여있는 과제인 것 같아요.

이혜정: 변론센터가 회원, 시민과의 접점에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계획은 어떤가요?

개인적인 아이디어로는, ‘이주의 변론’을 반기별로 묶어 회원들에게 배포하거나, ‘이궁’도 계속 자료를 축적해 ‘변론팁’이라는 소책자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송상교: 지금은 낮은 단계의 축적을 하는 상황인 거 같고요. 이런 축적들이 지금 당장은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쌓이면 대단히 큰 자산이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주의 변론’ 같은 코너도, 예컨대 민변이 연말이 되면 ‘올해의 판결’ 이런 거 하잖아요 좋은 거, 나쁜 거. 사실 예전에는 민변 11월쯤 되어서 뭐가 있지 막 찾아보고 이랬는데 <이주의 변론>이 3월부터 계속 쌓이면 매주 올라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제대로 된 판결을 선정할 수 있을 거예요.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가 ‘이궁’ 이런 것 중에 궁금한 변론의 팁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모아서 변론 매뉴얼을 만들어볼 생각이에요. 형사, 민사, 각 주제별로 했던 거.

그런 것들이 일정 단계가 되면 의미 있는 매뉴얼이 되고 매년 업데이트가 되겠죠. 디지털도서관도 이번에 처음으로 틀이 만들어지는 건데 사실 틀만 만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자료가 계속 쌓여야죠. 이주의 변론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거기로 들어가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민변이 제일 못하는 게 사실 뭔가 알리는 거예요. 활동가들도 민변이 제대로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데 어떻게 하면 시민들에게 ‘아, 민변이 이렇게 많은 활동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끔 민변의 활동을 알리고, 시민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그게 가장 큰 고민이에요.

이혜정: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회원이나 시민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말 등 가볍게 정리하고 마무리 지을께요.

이수연: 소장님 말씀대로 위상도 더 높아지고 일도 더 많아질 텐데 거기 사업들이 원활하게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변호사님들 돕는 제 역할도 많이 무거워질 거 같아요. 역량도 부족해서 굉장히 걱정도 많이 되는데… 변호사님들과 함께 잘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송상교: 제가 사실 다른 인터뷰에서도 정부법무공단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처음에는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계속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괴물같은 조직이 되어버렸고, 대법원 판결도 바꿔내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제 역량 있는 변호사 개인의 힘으로는 돌파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여럿이 모여서 조직화된 활동을 해야 이런 것을 넘어설 수 있는 논리를 만들고 정보를 축적할 수 있다는 거죠. 저는 그래서 센터가 중요하다고 봐요.

그러다 보니까 많은 분들이 센터에 기대를 하시는데, 센터가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서 만들어진 거라서 개인적으로도 부담이 돼요. ‘말아먹으면 안 되는데, 뭔가 좀 성과를 남겨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고 조바심이 많이 나요. 그런데 한 편으로는 ‘성과주의에 빠지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도 되게 많이 해요. 몇 년이 될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센터가 의미 있는 활동이었구나’라고 평가받는 게 중요한 거지 지금 당장 의미 있는 가시적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닌 거죠. 그래서 회원 여러분도 함께 좀 호흡으로 보시고 많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송아람: 저는 회원들께서 좋은 사건이라고 생각이 되시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변론하는데 망설이고 계신다라든지 아니면 민변 회원으로서 좋은 공익활동 해보고 싶다 하시면 언제든지 센터로 전화 주시면 최대한 같이 할 수 있는 방안 찾아볼 테니 언제든 전화 주시면 좋겠습니다.

익명: 서울지방변호사협회 프로보노지원센터가 얼마 전에 생겼는데, 유수의 로펌이 여기에 매달 얼마씩 기금을 후원하는 시스템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조금 더 성장하고 그 기능을 조금 더 충실하게 또 하려면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민변에서 말씀하셨던 신입변호사 교육프로그램 등을 센터에서 진행하려면 예산도 있어야 하고 인력도 충원되어야 해서 간단치만은 않거든요. 지금은 어렵게 빠듯하게 첫발을 떼고 있지만 이런 취지들을 잘 읽어 이해하신다면 훌륭하신 선배님들의 따뜻한 후원과 이런 게 현실적으로 좀 이루어져야 되지 않나, 이런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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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 갑자기 지원이 막 몰려들 것 같은데요(웃음). 이상 오늘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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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참여팀] 참여연대의 자원활동가는 상근 활동가들과 손발을 맞춰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10대 청소년부터 일흔이 넘으신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학생, 주부, 직장인, 은퇴자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원활동가들의 숨은 활약을 자원활동가 인터뷰를 통해 알려드립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사회를 꿈꿔요.

갑질하는 용이라면 모두가 용이 아니었으면 해요."

 

아카데미 느티나무 자원활동가 이수종님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이수종

아카데미 느티나무 자원활동가 이수종님

 

 

평일 오전이라 한가할 줄 알았던 종로였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그 어느 때보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였고, 카페 한가운데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우리를 제외한 카페 안의 모든 사람이 너무나 친밀한 분위기에서 수다를 나누고 있어, 처음 본 사이였지만 괜한 마음에 수종님과 친구처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Q. 간단한 자기소개
A. 지금 대학에서 경제학과와 정치외교학과를 공부하고 있는 22살 이수종이라고 합니다.
(그게 다인가요) 네! 간단하게. (웃음) 참여연대 공익활동가학교 16기, 정의당 경희대학교 학생위원장, 대학연석회의 간사,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자원활동. 아, 그리고 학교에서 하고 있는 일 중에 하나는 임기가 끝났어요. 내일이면 끝나요. 정말 기쁩니다.
 

Q. 참여연대는 언제 처음 알게 되었나.
A. 공익활동가학교 16기를 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인턴이라고 불렀던 프로그램인데 청년 중에 공익활동가를 꿈꾸는 사람들을 모아서 인권이나 공익활동과 연결된 민생이나 그런 부분에 대한 강연도 듣고, 방학 1달 동안 교육을 받고 자기가 직접 접해보고 싶은 활동을 준비해보는 프로그램입니다.

 

Q. 그 중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이 어느 것이었나
A. 저는 일단.. 술 마시는 것이 가장 좋았구요 (웃음)
(공익 활동 중에 여쭤 본 건데, 사익활동이 아니라) (웃음) 공익 활동 중에는 인권활동가 박래군 선생님이 세월호 추모집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잡혀가시기 바로 직전에 저희한테 강연을 하시고, 그 다음날 바로 잡혀가셨어요. 학교에서도 박래군 선생님 강연을 듣기도 했었는데 그게 참 기억이 남아요. 또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는 김만권 선생님 강의가 되게 열정적이에요. 학교에서 정치철학을 배울 때는 교수님이 철인정치를 좋아하시는 분이라 안 맞는 부분이 많았는데 김만권 선생님 강연을 들으니까 되게 재밌더라구요. 그렇게 2가지 강연이 기억에 남았던 것 같아요. 

 

Q. 이런 문제(공익)에 대해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나?
A. 원래 관심을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에 들어와서 선배들 따라 집회에 나가보기도 하고 교지에 글을 쓰기도 하고, 학회를 맡아서 하기도 하고. 계속 관심을 갖고 있다가 3학년쯤 되니 여유가 생기더라구요. 이제 학교에서 해야 할 일은 상대적으로 줄어들다 보니 외부활동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친구 중에 한명이 저번 겨울에 참여연대 활동을 했었어요. 친구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것도 재밌겠다 싶은 마음에 하게 되었습니다. 
계기가 되었던 건 2008년 광우병 집회 때 인 것 같아요. 그 때는 정말 누구나 다 나가는 분위기였잖아요.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고.
(22살이시면 그 때는..) 네, 중 2때였어요. 그 때는 다 나가는 분위기라서 저도 그랬어요. 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노동문제나 청년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어요. 저도 기숙사에 살고 있는데 이게 한 학기씩 등록하는 거라서 당장 다음 학기에는 어디에 살아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될 수도 있고. 내 삶과 바로 직결되는 문제이다 보니까 더 관심이 많이 갔던 것 같아요. 

 

Q. 정의당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A. 학교에서 학생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어요. 
(조직 활동인가요?) 그렇게 볼 수도 있는데 가까운 곳에서 사람들은 만들어나가고 뭐 그런..조직활동 맞네요. (웃음) 경희대 학생위원회가 따로 있어요. 10~14명 정도? 다들 어떻게 관심을 갖고 와주셔서..주변 사람들이 저보고 정당계에 은수저라고 하더라구요. (웃음) 조직활동을 따로 안 해도 사람들이 가입을 알아서 한다고.
(경희대 정도면 은수저 맞는 것 같아요. 성공회대 같은 곳은 금수저이고) (웃음) 학교 자체에 관심을 갖고 다니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요. 교양수업에도 이런 것들을 강조하는 수업도 많고. 이런 활동을 하러 나가라고 말하는 수업들도 있어요. 시민활동 같은 것들. 학생회가 목소리가 큰 편이기도 하고, 교양수업에서 인문학이나 시민교육을 강조하는 부분이 잘 형성이 되어있어서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있는 것 같아요. 

 

Q. 왜 하필이면 정의당을 선택하셨는지.
A. 일단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는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겠다고 생각했고, 원외에 정말 훌륭한 정당들이 있지만 그래도 원내에서 이런 목소리를 총화하고 관철시킬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느릴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조금씩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잘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답답한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 당연히 그런 부분은 있죠. 노동당 같은 정당은 색이 확실하고 사안에 대해 뚜렷하게 입장을 가지고 가는 것들이 있는데 그에 비해 정의당은 어떻게 보면 좀 희석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시민들과 더 가까워졌다고 볼 수도 있는 거라서요. 저는 후자에 방점을 찍지만 아무래도 관심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전자에 무게가 쏠리는 경우가 많아서 설명하는데 힘이 들 때가 있어요. 좀 더 많은 단어를 붙여야 한다는 것. 그런 부분이 항상 고민이 되요. 또 학교에 학생회부터 노동당, 청년좌파, 알바노조, 청년유니온 이런 곳에서 정말 훌륭하게 활동하고 계신 분들이 많아서 그런 분들과 내가 다른 것이 무엇일까, 차별성이 있나 하는 고민도 많이 되요. 그럼에도 약간은 애매할 수 있는 부분이 달리 보면 확장성이 있다는 말일 수도 있으니까 그 부분을 넓혀나가는데 집중하고 싶어요.
(저도 알바노조 조합원이에요) 저도요. 생각을 곰곰이 해봤어요. 정의당에 10000원, 알바노조에 11000원, 청년유니온에 5500원, 민달팽이 유니온에 5000원, 참여연대에 5000원, 청년좌파에 5000원. 계산을 해보니까 3-4만원 나오더라구요. 아, 어디서 돈이 세나 했더니. (웃음) 어느 순간 도움이 되겠죠, 뭐.
일종에 보험이 아닌가 싶어요. 내가 알바를 할 수도 있고 자취를 할 수도 있고 그냥 막연히 부당한 일을 당할 수도 있는데 이 사람들이 그 때 나와 함께해주겠지 하는 그런 마음입니다. 

 

Q. 개인적으로 ‘당사자성’을 획득하는 게 참 힘들었다. 당사자성이 없을 때 하는 고민과 행동은 한계가 느껴지더라, 한계에 탁, 하고 부딪히면 바로 앞에 한 계단을 못 오르겠는 그 느낌. 수종님은 그 부분을 잘 획득하고 계신 느낌이 든다. 
A. 1학년 때는 그런 부분에 부딪힌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이렇게 해서 세상이 바뀌나’하는 고민도 들었구요. 선배들한테 그런 얘기를 많이 하기도 했고. 시위하고 농활가고 이렇게 해서 세상이 바뀔 것이었다면 진즉에 바뀌지 않았을까, 안 바뀐다면 이건 정말 철옹성 같은 건데 철옹성의 경계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고 세상을 바꿔야 하지 않나, 또 그걸 누그러뜨릴 수 있는 건 ‘당사자성’에 있지 않나. 내 문제가 되는 순간 경계 밖에 있던 사람이 넘어오게 될 테니, 그럼으로써 경계가 흐트러지고, 또 그럼으로써 세상이 느리지만 조금씩 바뀌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저도 예전에는 내 문제도 아니고, 세상도 안 바뀌고, 선배들은 안 그런 척 하지만 지쳐 보이고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런 고민을 정말 많이 했었거든요.

 

Q. 그런 고민들이 들 때쯤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훨씬 편했을 것 같은데.
A. 어찌 보면 지금이 도망자의 모습일 수도 있어요. 원래 하던 일들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이게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고 내 알바, 내 자취방, 내 일자리에 관한 문제이고 또 더 많은 사람들을 쉬운 단어로 설득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이것 역시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이전에는 비정규직이나 신자유주의나 큰 문제를 다뤘었어요. 그것들이 같은 맥락에 일들이지만 단어 자체가 비정규직과 알바를 비교해봤을 때 저조차도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너무 거대하게 느껴지거든요. 피부에 와 닿는 단어로 설명하다보면 관심이 간다, 공감이 간다, 가입을 하고 싶다는 친구들이 생기기도 하더라구요.
(결국은 가입이 하고 싶다는 말로 끝나다니, 정말 대단한 당원이시네요) (웃음) 학기 초에 6명으로 시작했는데 이렇게 해서 14명이 넘게 되었으니, 하하. 가입을 한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현실적으로 공무원을 준비하는 친구나, ROTC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가입을 하라고 하기가 힘드니까. 그래도 내 편이 생기는 건 정말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해요. 관심이 생긴다는 말로 힘이 되어주는 일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다양한 고민을 하는데 있어서 참여연대가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A. 네, 16기 공익활동가학교에서도 다양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 사람들의 고민을 하나씩 듣고 이 고민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강연을 들을 때도 강연자 분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물음표가 항상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 물음표를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 그 고민을 25명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저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서로에게 참 의지가 되는 존재였어요.

 

Q. 가지고 있는 꿈은 무엇인지.
A. 공정한 기회, 공정한 경쟁, 충분한 패자부활전. 제일 마지막에 방점을 찍고 싶어요. 뭐 어찌 해서 공부하고 열심히 살고 대학을 가고 하는 부분은 꽤 많이 가능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한 번 밀려났을 때 다시 돌아오는 건 아직도 정말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지쳐서 세상의 주변부를 맴돌다 그대로 살아지는 그런 분위기. 여전히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는데 아직 까지는 사회구조가 그들을 다시 경쟁으로 이끌어줄 뒷받침을 못해주는 것 같아요. 아, 그리고 ‘탈조선’ 안 해도 되는 사회! 죽창을 안 들어도 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웃음)

 

인터뷰를 마치고 한참을 더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각자의 활동과 경험, 그 안에서 느낀 이야기들을 나누다보니 수종님이 얼마나 이성적이고 동시에 감수성이 깊은지 느껴졌다. 적절한 열정을 가지고 변화를 꾀하려고 하는 그를 보니 ‘평생을 그저 편하게 살기는 글렀다’ 싶은 생각이 피식, 하는 웃음과 함께 스쳤다. 약속을 해야 하고, 행동에는 이유가 있어야 하고, 사람을 생각해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가야하고.. 그가 숱한 고민들 속에서 정해 놓은 그만의 방법들 중 무엇 하나 쉬워 보이는 것이 없었던 탓이기도 하고 그가 참 꾸준할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앞으로 몇 년간 방황할 예정인 나에게 수종님 같은 사람은 참 중요한 사례이다. 그가 지치지 않고 살아남아 나를 포함한 누군가에게 죄책감과 채찍질로 다가오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수종님.

 

작성 자원활동가 박영민 (활동가를 위해 활동하고 싶은 대학생)

수, 2015/12/30-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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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위원회 활동 소식

2016. 10. 25. 15개 사립대학의 10,000명의 학생들이 재학중인 각 사립대학들을 상대로 입학금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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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내는 입학금이지만 수업료 외에 왜 내는지, 어디에다 쓰는지 누구도 모르는 거라. 여러 가지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특히 사립대학교의 평균 입학금이 77만원인데, 이는 등록금의 약 10%에 해당되는 금액이고, 학교별로도 천차만별이라 가장 비싼 고려대학교의 경우 103만원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입학금은 법령상 ‘수업료’와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입학에 소요되는 비용으로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적인 청구원인입니다. 고등교육법상 ‘수업료’와 ‘그 밖의 납부금’은 문언적으로 구별되고, 입학금은 ‘그 밖의 납부금’에 해당합니다. 대학등록금에 관한 규칙에서 입학금에 대해서 추가로 규정하고 있는데, 입학금의 징수방법, 징수시기, 반환시기, 반환금액에 있어서 수업료와 전혀 다르게 취급됩니다. 「대학등록금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수업료는 학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학점별, 학기별 또는 월별로 징수하나, 입학금은 입학시에 전액을 징수하고, 수업료는 학기 개시일 이후에 반환 사유가 발생하였을 때 일정 비율의 금액이 반환되지만, 입학금은 입학일 이후에는 어떠한 사유로도 반환되지 않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 역시 2013년 ‘입학금 산정근거 및 사용기준의 불명확성’에 관하여 제도개선 권고를 하면서 입학금에 대해서 “각 학교는 통상적으로 오리엔테이션, 학생증 발급 등 신입생 관리 시 별도로 소요되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입학금을 징수”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즉 수업료가 교육일반에 사용가능하다면, 입학금은 ‘입학’이라는 특정의 목적을 위해서만 징수되고 사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근거도 없이 책정되는 금액을 신입생들에게 일괄적으로 징수하고 납부하지 않으면 등록을 할 수 없게 하는 것은 부당이득이자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여 이익제공을 강요하는 불법행위입니다. 또한 수원대학교의 등록금 환불 사건에서 법원이 “등록금의 부당 과잉징수가 객관적으로 보아 현저할 뿐만 아니라, 원고들이 위 대학교를 선택하여 입학금을 납부할 당시의 기대나 예상에 현저히 미달함으로써 원고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하였”다는 판시(서울고등법원 2016. 7. 8. 선고 2015나14473 판결)에 근거하여 입학금의 현저한 과다징수에 대한 위자료도 청구하였습니다.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헌법이 보장한 ‘권리’입니다. 그럼에도 대학등록금은 너무 비싸고 이에 따라 교육의 기회는 공정하지가 않습니다. 입학금 반환청구가 대학등록금 부담을 경감시켜 보다 ‘교육’에 충실할 수 있는 등록금에 접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월, 2016/11/2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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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돌봄으로 가기위한 한걸음

 

인터뷰 : 김남희(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
패널 : 이경민(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윤지영(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배연희(전국요양보호사협회 협회장)
정리 : 이경민(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된지 올해로 8년이다. 그러나 제도 도입 초기, 공공 인프라 구축 없이 시행됨에 따라 서비스 공급에 대한 민간기관 의존도가 높았는데 장기요양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열악한 기관은 소멸될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과는 다르게 민간기관이 난립하는 등 불법운영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였다. 또한 국가 및 지자체의 관리감독 미흡으로 요양보호사의 노동환경 및 처우는 열악했고, 이는 결국 대상자의 서비스 질 저하 문제로 나타나게 되었다.
고령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수혜자는 늘어날 것이며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우리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최근 우여곡절 끝에 장기요양에 대한 국가책임강화, 요양보호사의 처우개선, 기관의 회계기준 마련 등을 골자로 한 노인장기요양보험법 개정안 통과를 이끈 숨은 주역들이 있었다. 그들을 통해 현재 장기요양제도를 진단하고, 좋은 돌봄을 위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서로의 의견을 나누어 보았다.

 

자기소개 부탁한다.

배연희 : 현재 전국요양보호사협회 협회장을 맡고 있다. 전국요양보호사협회는 2008년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되면서 당사자가 주축이 되어 운영하고 있다.

윤지영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윤지영이다. 공감에서는 주로 노동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불안정한 노동자, 청소년, 이주노동자, 중고령 노동자의 노동문제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경민 :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다. 주로 보건의료, 돌봄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된지 벌써 9년째이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무엇이 있는가?

배연희 : 법과 제도가 여전히 미흡하다. 특히 방문요양 같은 경우, 임금가이드라인이 없어 시급이 다르고 최저임금 수준도 안 된다. 또한 처우개선비가 있지만 여전히 요양보호사에게 지급하지 않은 곳이 많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상자가 사망하거나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요양보호사는 실직하게 된다. 이처럼 요양보호사의 노동환경 및 처우는 굉장히 열악한 실정이다.

윤지영 :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사회보험으로 운영된다. 즉, 노인에 대한 요양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처음 제도를 설계할 때, 민간에 위탁하면서 민간장기요양기관이 필요이상으로 늘어나고 사회보험 누수현상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요양보호사 같은 경우 불안정한 고용의 형태, 강도 높은 노동 등 노동환경과 처우가 매우 열악하며, 전문가임에도 전문가로 능력을 발휘한다기 보다 국가공익파출부같은 처우를 받고 있는데 이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시행 이후,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지만 앞서 얘기한 것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19대 국회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법 개정을 추진했었다. 그 과정에 대해 설명해 달라.

윤지영 :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될 때, 정부는 경쟁을 통해 질을 높이겠다고 했으나그 예상은 빗나갔고 민간기관들의 난립, 그로 인한 부정행위, 요양보호사의 처우문제가 발생하는 등 제도가 엉망이 되었다, 그래서 당사자인 요양보호사협회, 여성단체, 노조 등이 모여 제도의 전면개편을 요구하고자 공대위를 2011년에 꾸렸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무엇보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의 전면개정을 주장했다.

 

처음 제안한 개정안과 통과된 개정안의 내용이 많이 다르다고 하던데...

윤지영 : 개정안을 만들기 전에 요양보호사 및 당사자, 공단, 기관의 이야기를 들으면 상황을 이해하려고 했으며 설명회도 진행했다. 그리고 1년 가까이 법안을 만들었고 마침내 의원을 통한 입법발의를 했다. 처음 개정안에는 기관 설립 허가제, 국가와 지자체 책임 강화, 요양보호사 및 대상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기관장과 대상자의 책무 강화 등의 내용을 담았었다. 그러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많은 내용들이 빠졌다.

이경민 : 김성주, 오제세 의원이 발의한 기관의 회계기준 마련에 대한 내용과 조정하면서 빠진 듯하다.

윤지영 : 회계기준 마련 안은 좋다고 생각한다. 공대위가 제시한 안 이외 정부가 발의한 내용이 먼저 통과되면서 조정된 것 같다.

 

개정안이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을 때, 참여연대가 결합했다.

이경민 : 작년 초 노인장기요양보험법 개정안 통과를 위한 연대 요청이 있었고, 그 때부터 참여연대 적극적으로 결합했다. 공대위에서는 일부 반대하는 의원실 및 지역사무실을 찾아다니며 면담을 하고, 피켓팅을 하였고, 참여연대는 입법로비 및 대중운동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것은 작년 5월 1일 법사위에 안건이 상정되었는데 노동절 행사에 나가서 계속 법사위 결과를 주목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일부 의원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하고, 그 이후 일 년 넘게 법사위에 상정조차 안됐었다. 의견서를 발표하고 법사위 및 보복위 의원들에게 의견서를 보내고, 홍보물을 만들어 의원들 트위터 및 페이스북에 게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19대 국회 마지막 법사위를 앞두고 반대하는 의원의 실명을 거론한 성명까지 발표하기도 했다.

윤지영 : 민간기관들의 반대가 엄청났다. 개정안이 통과 되지 않을 것 같아 의원들에게 편지를 썼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이며 모든 국민의 이해관계가 달려있는 사안을 특정집단의 반대로 법안 통과를 주저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배연희 : 참여연대가 함께 결합해서 의견서도 내고, 기자회견도 하는 등 더 힘을 모을 수 있었다.

이경민 : 개정안이 통과되기 위해 이 전부터 노력한 요양보호사분들과 공대위의 공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한다.

 

실질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의 노동 현실은 어떠한가?

배연희 : 인터뷰 전에도 요양보호사들과 상담을 했었다. 요양보호사의 노동환경과 처우는 문제가 많다. 최근 최저임금이 높아지면서 요양보호사의 시간은 줄고 노동일수는 늘어 토요일에도 근무를 하게 되었다. 평균적으로 임금이 5~8만 원정도 줄었다고 한다. 요양보호사들의 평균임금 55만 원인데 여기서 더 줄었다는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누가 요양보호사에 대한 직업을 전문직업으로 여기겠는가. 이와 같은 일은 대부분 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요양보호사의 처우 등에 대해 기관의 재량에 따라 운영되는 대표적인 사례인 것이다. 그리고 요양보호사의 처우와 노동환경이 열악하고 기관의 이익추구는 결국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인권침해 사례도 많다고 들었다.

배연희 : 방문 요양은 좁은 공간에 여자든 남자든 어르신과 함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장기요양등급 3급 같은 경우, 혼자 목욕을 시킬 경우가 있는데 그 때 성희롱이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일에 대해 기관에 건의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왜냐면 대상자가 끊기면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일을 하면서 발생하는 일에 대해 요양보호사를 보호하는 창구가 없다.

윤지영 :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사회에서 여성의 돌봄과 헌신을 당연히 여기고 있다. 제대로 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허드렛일이라고 생각한다. 시설에 근무하는 요양보호사들은 장시간 노동을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재가는 근무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임금이 보장되지 않는다. 현재 시간당 수가가 정해져 있는 바우처 방식이 문제인데, 노동에서 호출형 노동이라고 표현한다. 기관은 공급자로서 안정적인 노동 유지, 그에 대한 대가 지불 등을 해야 하는 책임이 있지만 이에 대해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대부분 요양보호사에게 책임을 떠맡게 된다.

이경민 : 그 뿐만이 아니라 인권문제,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심각하기 받아들여야 한다. 예를 들면, 사회복지사가 방문상담을 할 때, 특히 남자인 경우 2인 1조가 되어 움직이는 경우가 많은데, 요양보호사에게는 그런 가이드라인이 없다, 성폭력, 성희롱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배연희 : 이런 환경에서 좋은 돌봄이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좋은 돌봄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윤지영 : 시설 같은 경우, 24시간 맞교대 근무가 많은데, 밤은 휴게시간으로 잡아 임금으로 주지 않는다고 들었다. 사실 밤에도 대상자의 상태를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업무를 하고 있는데 말이다.

배연희 : 업무도 굉장히 강도가 높다. 어르신들의 몸무게가 70-80kg인 경우가 많은데, 체위변경을 하려면 50대 이상의 요양보호사가 온몸으로 노동을 한다. 그래서 요양보호사들이 근골격계질환을 비롯한 산재직업병 등이 많이 발생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요양보호사의 출퇴근시간을 체크하는 RFID를 적용하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이 아닌가 싶은데, 이것은 위치추척이고, 통신비 2000원도 요양보호사가 지불해야 한다. 동의를 받고 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설명과 숙지 없이 하는 것이 문제이다.

윤지영 :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이나 노인복지법도 그렇고 요양보호사의 책무는 얘기하면서 그들을 보호하는 제도는 미비하다. 그나마 이번 개정안을 통해 일부 요양보호사를 보호하는 제도가 시행 될 것인데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여전히 미흡하지만 개정안이 통과되었는데, 앞으로 우선적으로 보완되었으면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윤지영 : 법이 애매하게 통과된 부분이 있어 아쉽다. 그래서 앞으로 기관장의 책무, 난립하는 민간기관의 통제,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강화 등의 내용 등을 다시 정리해서 제안해야 할 것 같다.

배연희 : 요양보호사협회 협회장이기 때문에 요양보호사의 노동환경과 처우개선을 위해 제안할 수밖에 없다. 임금가이드라인을 통해 적당한 노동과 합당한 임금을 요양보호사들이 받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요양보호사의 책무 이외 업무를 명확히 하여 요양보호사가 전문가로써 사회적으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국가 및 지자체에서 업그레이된 교육을 하고 양질의 서비스를 대상자에게 제공할 수 있길 바란다.

이경민 : 이번 개정안이 여전히 미흡한 부분은 있지만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씩 바꿔나가길 바라며 많은 인내심이 필요할 것 같다. 무엇보다 재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각 구마다 공공재가서비스센터가 설립되어 운영의 본보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바우처 방식의 문제 등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 부분의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좋은 돌봄은 무엇일까?

윤지영 : 좋은 돌봄은 누군가의 희생을 기반하면 안된다. 돌봄의 가치를 인정하고 정당한 보상이 주어져야만이 성립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요양보호사 및 대상자를 존중하는 가운데 좋은 돌봄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배연희 : 고령화 시대에 요양보호사들이 어르신들의 삶을 돌봐주고 있다. 핵가족화되는 사회 속에서 요양보호사의 역할은 크다고 본다. 따라서 그들의 전문성을 인정할 때, 대상자에 대한 서비스 질도 높아지고 좋은 돌봄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요양보호사의 노동이 귀하게 여겨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경민 : 늙는다는 것은 절망과 좌절이 아니다. 늙음을 자연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이에대한 책임을 사회가 함께 져야 한다. 그래서 사회보험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되고 있지만 제도만 있을 뿐 내용은 여전히 허접하다. 돌봄은 누군가의 희생이 아님을 우리가 인식해야 하며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이 더 강화되어야 할 것 같다.

금, 2016/07/0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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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대위 소식

 

1. 월례회의

6.15. 국제연대위 월례회의가 열렸습니다. 장영석위원장을 비롯한 회원들이 참석하여 연대위 활동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 특히, 방서은변호사님이 신입회원으로 참석하셨습니다. 감사드리고, 열정적으로 활동하실 것을 기해합니다.

 

2. 탄저균 대응팀 활동

언론보도로 드러만 미군의 탄저균 배달사고(?)에 대응하기 위한 민변내 대응팀이 미군위, 환경위, 국제연대위 공동으로 결성되고 회의를 가졌습니다. 22일 2차 회의에서 오산공군기지 내 탄저균 반입.실험 대응과 관련한 상황공유, 이와 관련한 타국의 대응, 유엔 및 BWC 국제협약 등의 활용방안, 소파(SOFA)상 검역 문제와 관련한 사항 등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 본 회의에 국제연대위의 회원분들이 다수 참석하셨습니다.

 

3. 베트남 평화기행

아시아인권팀은 이번 여름 7.26.부터 7일간의 일정으로 베트남 평화기행을 떠날 준비에 한창입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 발생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현장과 각종 박물관을 둘러보고 희생자 및 관련자들을 면담하는 등의 주요일정으로 준비중입니다. 이번 평화기행에는 과거사위, 미군위 등 다른 위원회 소속 회원님들도 참여하여 총 15명이 참가할 예정입니다.

 

4. 미얀마 공동세미나

아시아인권팀은 7.23부터 4일간의 일정으로 미얀마 양곤에서 미얀마의 젊은 변호사들과 노동문제, 국제인권메커니즘 활용, 그리고 법률NGO 활동에 있어 어려움과 해결책 등에 대한 세미나를 진행합니다. 본 공동세미나는 미얀마변호사네트워크와 공동으로 주최하고 진행하는 행사로 작년에 이어 두 번째 행사입니다. 아시아인권팀에서는 팀장 성상희변호사를 포함한 세 명의 변호사가 함께 할 예정입니다.

 

5. 탈북자인권감시팀

지난 23일 탈북자(새터민) 인권 모니터링을 위해 작년 말에 결성된 탈북자인권감시팀의 회의를 가졌습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공부모임의 성격으로 운영되고 있고 3~4차례의 세미나를 거쳐 본격적인 모니터링과 활동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6. 자유권위원회 국가심의 준비

국제연대위는 국내인권시민단체로 구성된 국제인권네트워크에 참여중입니다. 현재 자유권위원회 한국심의 대응에 함께 참여하고 있으며 간사단체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올 10월말에 예정된 한국정부에 대한 심의에 대응하기 위해 7월1일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다시 모일 예정이며, 이 때 구체적인 준비일정을 논의하여 확정될 예정입니다.

 

그 밖에 통합진보당 해산과 관련하여 자유권위원회에 제출하게 될 개인청원이 준비중이고, 국정원의 법관임용에 면접을 본 사안에 대해 법관독립을 위한 특별보고관(유엔특별절차)에 진정서를 제출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25일 유엔인권최고대표와 한국시민단체 간의 간담회에 참석하여 질의하고 인권현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금, 2015/06/2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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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평화인권기행

 

– 강성헌 회원

  1. 기행에 앞서

7명의 회원과 함께 2016. 7. 23. ~ 8. 1.까지 ‘2016. 민변 국제연대위 아시아인권팀(팀장 이준형 회원) 캄보디아 평화인권기행 – 한국계 기업의 노동현실 실태 조사’를 마치고 이 글을 쓰는 저는 강성헌 회원입니다. 팀의 ‘활동’을 담은 정식 보고서는 현재 준비 중이고, 이 글에는 팀의 ‘느낌’을 부담 없이 담으려 합니다.

매년 여름 진행되는 아시아 인권기행을 몇 차례 하신 분들도 계시나, 저는 이번이 첫 동행이었습니다. 사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의미 있는 활동 반, 친목과 관광 반 정도가 아닐까 생각하고 동기 회원과 함께 덜컥 합류 신청을 했습니다. 준비회의에 가서 처음 받은 느낌은 ‘내가 너무 순진했구나’ 였지만, 발을 빼기엔 애매해져 버린 터라, 그냥 함께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참 잘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입니다.

  1. 캄보디아의 슬픔, 크메르 루즈

토요일 밤 늦게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는데, 다음 날은 일요일이라 특별한 일정 없이 ‘투얼 슬렝 박물관’을 견학했습니다(김기남, 김남주, 임재성, 배광열 회원은 여독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일요일 새벽, 2016. 7. 10. 살해당한 캄보디아의 정치평론가 켐 레이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오기도 하였고요).

박물관은 크메르 루즈에 의해 세워진(정확히는 학교 시설에서 ‘전용’된) S-21 수용소를 보존하여 당시의 실상을 보여주는 장소로 사용되는 곳이었는데, 한국어 오디오가이드를 들으며 건물과 층마다 옮기는 발걸음이 참 무거웠습니다. 가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인간이 인간을 학살한 자리에 서서 그 상황을 반추하는 일은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처벌 그리고 종국적 치유를 기원하지만, 제3자가 보기에도 진상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모든’ 학살자들이 역사와 현실의 법정에 제대로 세워진 것 같지가 않으며, 무엇보다 캄보디아 시민들 자체가 잊고 싶은 기억으로 밀쳐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어 무척 슬프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놈펜에 가게 된다면 꼭 들러보아야 할 의미 있는 장소라 하겠습니다.

  1. 캄보디아의 인권 및 노동현실 전반을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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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공식일정은 캄보디아 인권센터에서 활동가(케이티 존스, 영국 변호사)로부터 캄보디아 인권상황 전반을 듣는 자리를 가지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활동가 역시 캄보디아 활동을 오랜 기간 하신 분이 아니어서 ‘깊이’는 많이 느끼지 못했으나, 캄보디아의 현재 정세와 인권 전반을 꼼꼼하게 소개해 주어서 현실과 문제점을 어느 정도 알게 된, 의미 있는 간담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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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만나게 된 사람이 ‘조엘’이라는 호주 출신의 변호사였습니다. 2개월 예정으로 왔다가 내리 5년을 캄보디아의 노동과 인권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서, 세 시간 넘게 캄보디아 노동문제와 관련하여 브리핑 및 질문 답변을 해 주었습니다. 조엘은 노조를 조직하고, 그 힘으로 사용자와 맞서 노동기본권을 확보하기 위해 싸우는 형태의 전형적 노조활동가는 아니었습니다. 대신 캄보디아 노동현실 특히 섬유산업의 특성에 맞춰 ‘발주처’인 다국적 기업들에 압력을 행사하는 등의 방식으로 노동문제를 풀어가는 활동을 주로 한다더군요. 조엘로부터 캄보디아의 노동 이슈에 대한 여러 가지 내용을 듣고, 저희는 조금 더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되었습니다.

‘최저임금’과 관련된 내용이 특히 인상 깊었는데요, 우리의 인식과는 다르게 캄보디아는 ‘최저임금’이 사실상 임노동자들의 평균적 임금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그 결정 내역과 파급 효과는 우리 나라의 최저임금과는 아주 다르다 하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저희들의 보고서를 참고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이후 3일 동안은, 한국계 기업의 노동실태를 조사하는 데 오롯이 활동의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1. 캄보디아 내 한국기업의 노동현실을 살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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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CLC 아 톤 대표(캄보디아 노동총연합, 위 사진)를 만나 캄보디아의 노동문제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저희들이 궁금했던 내용들을 성실하게 답변해 주시더군요. 두 시간 가까이 자리에 서서, 꼿꼿한 태도로 쉼 없이 말씀하시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대표님께 들은 이야기 중 놀랍다면 놀랍고, 하등 이상하지 않다면 이상하지 않은 이야기는 우리의 전직인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이었지요. 캄보디아는 원래 무기계약직이 일반적 근로형태였으나, 이 대통령의 ‘조언’으로 ‘단기(2개월 정도부터) 계약직 근로제’가 최근 몇 년 동안 극적으로 활성화되었다는 것. ‘노동 한류’의 위엄과 씁쓸함을 곱씹으며 CLC 대표와의 만남을 마쳤습니다.

이어 한국계 기업 중 5곳의 노조 위원장들과 만나서, 설문조사를 비롯한 여러 분야의 질문/답변을 통하여 한국계 기업의 상세한 노동현실을 조사하고자 노력을 하였습니다. 조사 활동은 회원들마다 분야를 나눠서 진행하였는데요, 임금 및 노동보건 분야는 김남주 회원이, 노동시간 및 고용형태 분야는 박상현 회원이, 결사의 자유 분야는 임재성 회원이, 여성 및 아동노동 분야는 배광열 회원이 맡았습니다. 김자연 회원은 2013~2014 총파업 이후 상황을 정리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그 모든 활동의 중심에는 활동을 기획하고, 일정을 조율하고 혼자 영한 통역까지 도맡은 김기남 회원이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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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위원장들로부터 자신들이 속한 기업의 노동현실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 설명과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개별 기업의 노동자들을 만나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활동을 수행했습니다. 크메르어-영어-한국어 삼중 통역으로 이루어지는 쉽지 않은 의사소통의 과정이었으나, 각자 맡은 분야의 답을 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회원들을 보면서, 구체적 분야 없이 총무와 식사 정도 맡은 제가 송구해지더군요.

  1. 눈으로 본 캄보디아 노동자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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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지대를 돌며 노동자들을 만나다가 퇴근하는 노동자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대중교통이 거의 개발되지 않은 프놈펜에서 노동자들은 위 사진과 같이 트럭을 타고 출퇴근을 합니다. 최근 출퇴근 트럭 두 대가 충돌하여 수 많은 노동자들이 사상당한 사고가 있었는데, 제 눈에 보기에도 참으로 위험해 보이는 풍경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캄보디아에는, 임금과 노동환경의 문제 못지 않게, 트럭 발판에 올라서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출퇴근을 해야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는, 노동자의 전반적 ‘생존’의 문제가 사실상 원초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환경, 교통 등 기본적인 국가 시스템과 인프라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은 것도 분명해 보였고요. 사실 많이 의아했지만, 나중에 한 한국계기업의 노조 위원장이 준 ‘월급 명세서’를 보고, 어느 정도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월급은 약 334달러였는데, 세금 등 공적으로 떼는 돈은 3.75달러에 불과하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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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방문했던 곳 중 인상적인 곳이라면, 노동자들의 집단 숙소(위 사진)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시내에서 적지 않게 떨어져 있는 공장지대의 특성상, 노동자 일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숙소가 공장지대에 많이 있었습니다. 서너 평 정도의 방 하나에 변기, 부르스타 하나로 구성된 숙소에서 4~5명의 노동자 일가족이 생활하고 있었지요. 방 문 앞에는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하는 스티커가 붙어 있고, 밖에는 빨래들이 걸려 있었고요. 양철 지붕은 캄보디아의 살인적 더위를 제대로 막아줄 수 없었지만, 뛰노는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표정은 우리 아이들의 그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1. 프놈펜과 시엠립, 술잔과 이야기를 나누며

견디기 힘든 열대의 무더위 속에서, 에어컨도 없고 선풍기도 시원치 않은 허름한 식당 한 켠에서 조사 활동을 3일 정도 하니 신체적·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모두들 잘 견뎠습니다. 밤마다, 면세점에서 산 ‘좋은 술’과 현지 맥주를 나눠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했고, 현지의 ‘맛집’을 찾아 전통 음식을 먹기도 하였습니다. 캄보디아는 사실 전통 음식이랄 게 많지 않은 나라라고 하지만, ‘아목’, ‘록락’ 등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도 아주 좋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순박한 인상에 친절한 태도를 보여줬고요. 다만, 현지 교통수단인 ‘툭툭’을 타고 가다가 김모 회원이 신상 아이폰을 오토바이 2인조에게 날치기를 당한 것이 아픔으로 남았습니다만, 이후 다들 조심성이 높아져 더 이상의 큰 사고가 없었던 것이 위안이었습니다.

월~목요일 4일간의 공식 일정을 마치고, 금요일에는 현지 국내선을 타고 시엠립으로 향했습니다. 앙코르 와트라 불리는 캄보디아 유적지의 배후도시인데요, 그 규모는 작지만 수도 프놈펜과는 달리 그럴 듯한 국제 관광도시라 하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묵었다는 ‘소카 앙코르 리조트’에 체크인을 하고, 공식 활동을 결산한 후 본격적인 관광에 나섰지요. 펍 스트리트에서 다 함께 피자를 안주로 하여 맥주를 마시고, 야시장에서 소소한 기념품들을 챙기고. 저는 동양 최대의 호수라는 톤레삽 호수로 향했습니다.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여, 그 장관이라는 일몰을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그 자체 만으로 훌륭하고 초현실적인 풍광이었습니다. 영어가 되는 툭툭 기사가 꿈이라는 젊은이의 가이드로 톤레삽 호수의 초입을 돌고, 현지 고아들을 교육하는 수상 학교를 들르면서 캄보디아의 아동문제와 교육문제를 고민하기도 하였습니다.

  1. 맺으며, 짧은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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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전날에는 앙코르 유적지를 들러, 앙코르 와트에서 일출(위 사진)을 보고 바이욘 사원과 영화 툼레이더로 유명한 따 프롬 사원을 거쳐 프놈 바켕에서 일몰을 보는 것으로 마지막 날의 관광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월요일 새벽에 인천에 내려 바로 출근해야 했는데,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이틀을 보내고 좀 정신을 차려서 이 글을 씁니다. 체력 관리를 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네요.

단 며칠 동안의 일정으로 캄보디아를, 그 속의 노동 현실을, 상상할 수 없는 스케일의 유적을 다 보고 느낄 수는 없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받은 느낌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6~70년대 청계피복노조의 노동현실을 국가가 나서서 강제하는 나라, 집단 학살과 전쟁의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못한 나라, 21세기 다국적 노동관계 먹이사슬의 맨 아랫단에서 신음하는 노동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고 친절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사람들.

캄보디아를 다녀 온 많은 이들이 아동들에 의한 구걸 문제를 많이 이야기해주었지만, 실상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몇해 전 다녀온 회원들도, 예전보다 많이 사라진 것 같다고 했고요. 저임금 노동력을 찾아 공장의 국적을 바꾸길 수 차례, 이제 많은 공장들이 캄보디아에 자리를 잡으며 이제 시민들이 급속도로 임노동자로 편입되는 과정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 과정에서 거지나 극빈층이 줄고 있는 것이라면 그 자체로 나쁘지 않은 것이라고 봅니다만,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심각한 노동문제는 또 다른 그늘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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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과 다른 회원들은 몇 달 동안 여러 방면에서 캄보디아와 관련된 내용들을 사전 조사하고, 일정을 조율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 고생과 노력에 숟가락 하나 얹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기행이었기에, 무엇보다 죄송스러운 마음을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노력들이 실개울이 되고, 샛강이 되었다가 종래는 아시아의 노동문제와 인권현실을 조금이나마 개선하는, 메콩강과 같은 도저한 흐름이 될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

애 쓰신 동료 회원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며, 이번 기행에 참가하지 않은 많은 민변 회원님들의 캄보디아와 또 다른 아시아 기행에 대한 관심도 부탁드리며, 짧은 기행문 마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화, 2016/08/2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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