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근현대사아카데미] 5.18 진실과 기억, 광주에 다녀왔습니다.

지역

[근현대사아카데미] 5.18 진실과 기억, 광주에 다녀왔습니다.

익명 (미확인) | 금, 2016/05/27- 15:32
근현대사에 등장하는 도시 답사를 통해
도시를 이해하고, 그 안에 녹아있는 역사를 배우는
서울KYC 2016 근현대사아카데미 "도시를 둘러싼 역사의 기억"

첫 답사인 5월 21일, 5.18 진실을 살펴보고 기억하기 위해 광주를 다녀왔습니다.
5.18 기록관, 전남도청 주변 금남로 일대, 망월동 묘역을 돌아보았습니다.

답사는 2년 전에도 함께했던 오월지기 신호숙 선생님의 안내로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7, 80년대 한국 사회를 되돌아보며, 부마항쟁과 5.18을 간략히 살펴보았습니다.
오랫동안 박정희 독재정권, 유신 체제에 반대해온 시민들!
부마항쟁은 79년 유신정권에 반대하며 부산과 마산 등지에서 일어났습니다.
부마항쟁은 사망자가 없었고, 연행된 수는 500여명 이었지만
5.18민주화운동은 공식 사망자만 165명, 400명 이상이 행방불명되었고, 조사받은 사람은 3,000여명에 이릅니다.
 
박정희 사망 후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대학생들이 이에 반대하여 시위를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휴교령을 내립니다.
공수부대가 투입되어 전남대에서 최초 충돌이 일어나고 시위는 시내로 확산되었습니다.
5월 20일에는 차량 시위 등 학생 뿐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함께하게 됩니다.
5월 21일, 시민들이 도청 앞에 운집해 있던 오후 1시
도청 앰프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오며 시민들에게 발포를 하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시민들이 무장하고 5월 26일까지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하였으나
5월 27일 새벽, 도청, YMCA, YWCA 등에 남아 있던 시민군은 군인들에 의해 1시간 반만에 진압됩니다.



사람이 있었음에도 속도를 줄이지 않은 장갑차가 거세게 밀고 들어온 거리,
불탄 방송국이 있던 건물, 전화를 통해 광주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서점 주인... 
광주 거리 이곳저곳에는 5.18에 얽힌 사연을 가지고 있는 건물과 자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길을 걸어가 도착한 옛 전남도청은 새로이 페인트칠을 더해 옛 모습을 찾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발포 순간에, 마지막 진압에도 중심에 있었던 도청.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았던 시민군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마침 당시 시민군이었던 분이 구 도청을 관리하고 계셔서 짧게 말씀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열아홉살 때 5.18을 겪었던 이 분은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광주 시민 모두가 유공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발포와 진압에 희생된 시신들이 임시로 안치되었던 상무관도 도청에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줄지어 분향하며, 넋을 기리고 공분했던 곳입니다.
80년 5월, 가장 가까이에서 광주 시민들을 바라보았던 분수대와 시계탑은
그날의 진실과 기억을 품고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도청과 시계탑을 뒤로 하고 금남로에 있는 5.18 기록관에 도착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의 시작과 끝, 무고하게 희생된 시민들의 사연,
광주에서 일어난 참담한 일을 외부로 알리기 위한 노력들,
주먹밥을 만들어 서로 나누어 먹고, 헌혈하기 위해 병원으로 간 시민들,
검열을 거쳐 지워진 신문, 당시의 사진과 영상,
다른 나라들의 민주화운동 사례까지.
다양한 기록을 통해 5.18 운동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도청을 지키다가, 관이 부족해 버스를 타고 나가다가, 헌혈을 하고 병원을 나서다가,
어머니가 사준 고무신을 가지러 되돌아갔다가, 집에서 창문을 가리다가
단지 그때 광주에 있었기 때문에 희생된 시민들.
또 그들을 두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사연 하나하나가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그리고 되묻게 됩니다. 그때, 광주에 내가 있었다면?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희생된 분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았습니다.



도청 앞 발포에 의해, 군인들의 무차별 사격에 의해, 구타에 의해 희생된 시민들,
무명 열사의 묘, 행방불명이 되어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 이들까지..
하나하나, 가지각색의 빛을 담고 있었으나 냉혹한 국가가, 권력에 대한 욕망이 그 빛을 모두 꺼뜨려 버렸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사연을 들으며 모두 눈물을 훔치고 숙연해집니다.


36년이 지났지만, 5.18은 아직 현재진행형입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아픈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발포 명령을 누가 했는지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책임을 질 사람은 발뺌하고, 오히려 피해자인 듯 말합니다.





노동열사들이 잠들어 있는 구 묘역도 돌아보고 나오며, 잊지 않겠다는 약속만 되풀이해봅니다.
많은 이들의 희생에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 오히려 퇴행하고 있는 듯한 사회이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아내는 것이 우리들의 책무일 듯 합니다.


이렇게 5월, 더운 광주에서 근현대사아카데미 첫 번째 답사는 마무리되었습니다.
더운 날, 바쁜 일정에도 열성으로 어려운 안내해주신 신호숙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근현대사 아카데미는 9월까지 매달 계속됩니다.
6월에는 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린 반골의 도시, 진보의 도시
대구를 방문해서 대구가 안고 있는 역사를 찾아갑니다.


참가신청 http://goo.gl/forms/UYIq1BxzGu
Creative Commons License

댓글 쓰기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2017년 새로운 도성길라잡이 한 해를 위해
대표와 부대표를 선출해야 하는 기간입니다!

올해 대표에는 인왕 4기 장수정 회원님이,
부대표에는 목멱 6기 김창섭 회원님이 입후보하셨습니다.

두 분이 도성길라잡이 선생님들께 전하는 마음을 함께 나눕니다.






2017년 도성길라잡이 대표와 부대표 선출을 위한 투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투표권은 도성길라잡이 1기 ~ 8기에게 있으며, 구글 설문지를 이용한 온라인 투표로 진행됩니다.
2017 도성길라잡이 성공적인 한 해를 위해 투표해주세요!

-투표기간: 2016년 12월13일(화) ~ 12월 16일 (금) 오후 6시
-투표결과 발표 : 12월16일 (금) 오후 7시 (카페 게시 및 문자알림)

-
Creative Commons License

댓글 쓰기

수, 2016/12/14- 15:45
328
0
KYC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http://seoulyg.net)를 통해 두 가지 청년모임을 열고 있습니다.
하나는 2017대선정책연구소, 다른 하나는 한국청년상 기획단 인데요,

지난 6일 대선정책연구소 첫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번 대선정책연구소는 내년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청년이 바라는 정책을 정치권에 제시해서
청년의 목소리를 반영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총선 과정에서 청년이 소모되거나 이용되기만 하고
정책적으로는 충분히 논의되지 못한 점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이번에는 미리미리 정책안을 준비하면서 바꿔보자는 취지입니다.

대선정책연구소에는 KYC에서 기존 체인지리더로 함께해온 친구들을 포함해 모두 12명이 모였습니다.
첫 모임에서는 간단한 자기소개와 모임 소개, 그리고 자신이 요즘 고민하고 있는 문제와
앞으로 이 모임에서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갓 직장인이 된 분, 학교에 다니고 있는 분, 새로운 활동을 모색하고 있는 분 등 다양한 분들이 있었지만,
우리 사회 문제를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고 공부해보고 싶다는 면에서는 공통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즘 고민하거나 생각하고 있는 문제로는
최저임금이 안 지켜지거나 대학에서 인문학 관련 과가 없어지고 있다는 경험에서 나온 문제를 이야기하기도 했고,
구의역 사고로 인해 생각하게 된 비정규직 문제, 강남역에서 있었던 살인으로 촉발된 여성혐오 문제 등
사회 문제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청년 문제라고 했을 때 우리가 좁은 문제에만 매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어
이 모임에서는 여러 가지 주제를 넓은 범위에서 다뤄보려고 합니다.
참가자들의 관심사에 따라 주제를 정하고 공부해온 후 토론합니다.

또한 ‘이 문제는 이전부터 고착화되어온 사회구조적 문제다.’라는 추상적인 내용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도록
문제점에 대해 충분히 공감한 후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제도적인 관점에서 해결할 수 있을지
토론하고 대안을 만들어나가려고 합니다.

참가자들이 같이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 주제로는 병역, 여성 정책, 기본소득, 대학 문제 등이 있었는데요,
우선 다룰 첫 번째 주제는 ‘병역’입니다.
군대내 인권문제, 사병처우와 복지, 대체복무제, 나아가서는 징병제 자체까지 다뤄보려고 합니다.

많은 청년이 당사자로 직접 겪고 있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분야의 특수성 때문인지 청년 문제로,
나아가서는 전반적인 사회 문제로 다루어지지는 못해왔었는데요.
이번 모임을 통해 성별에 상관없이, 때로는 경험에 기반해서, 때로는 법을 찾아가며
병역 문제에 대한 의견을 충분히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대선정책연구소는 내년에 있을 ‘대선’이라는 정치적 이벤트를 목표로 두고 활동하지만
결국 우리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우리는 앞으로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를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도대체 우리 사회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되어 있는지 아득해지는 시점에,
다시 큰 그림을 그려나가면서 '헬조선'이라는 자조에서 벗어나 긍정과 의지를 회복해보려 합니다.



대선정책연구소와 동시에 한국청년상 기획단 모임도 진행됩니다.

한국청년상은 우리 사회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청년들의 사례를 발굴해 시상함으로써
그들을 사회적으로 드러내고, 동료로서 지지하고 응원을 보내는 행사인데요.
2010년 이후 이어져오지 못했지만, 올해는 가을에 다시금 행사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이번 한국청년상 기획단은 청년 당사자들이 모여 한국청년상을 기획하고 
다양한 청년들을 만나면서 사례를 발굴하는 데 함께합니다.


앞으로 두 청년 모임 소식 꾸준히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Creative Commons License

댓글 쓰기

수, 2016/06/15- 10:53
321
0

2017년 서울KYC 근현대사 아카데미 "광장민주주의를 찾아서"
첫번째 현장답사는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온 목포신항을 찾았습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의 아픔은 여전히 우리 모두의 아픔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의 아픔이기도 하지만, 또 우리 모두가 위로해야 할 세월호의 아픔이 목포에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제법 먼곳에 위치한 목포이지만,
이곳에 3년 넘게 계신 세월호의 가족분들이,우리가 기억하고 함께 행동하겠다는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목포로 출발했습니다.

5월20일 아침 7시 20분 서울역앞에서 출발한 버스는 12시가 넘어 목포시내에 도착했습니다.
목포시내 가로수 사이사이에 걸려있는 세월호 추모 현수막을 보는 순간 코끝이 찡해왔습니다.


목포신항에 도착해, 4.16가족협의회의 경빈이 어머니이신 전인숙님의 도움으로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 시간을 가졌고,
김건우 학생의 학생증을 가슴에 달고 계신 아버님과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습니다.

세월호참사 후 세월호가 인양되기 직전까지 동거차도에서 세월호를 지속적으로 감시했던 이야기,
정부가 수사를 미루고, 진실을 은폐하는 동안, 유가족분들은 진실을 알기위해 선박과 해양사고에대해
박사급이 되었다는 농담 섞인 말씀에 가슴이 아프기도 했지만,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동거차도에 계셨던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분들은 세월호가 인양된 후 이곳 목포신항으로 와서
매일 아침 7시부터 세월호 참사를 알리기도 하고, 또 매일 정해진 시간에 세월호가 거치된 곳에서
발굴작업과 선체 조사 과정을 참관하는 일 등등,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간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러다 문득문득 내 아이가 보고 싶으면 하늘을 올려다 보며, 별이 된 내 아이를 다시 한번 떠올리신다합니다.  
그 말씀을 듣는데 건우 아버님 가슴에 있는 건우의 학생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2017년 5월9일 새정부가 바뀌고 무엇이 달라졌는지도 여쭈어 보았습니다.
해양수산부 직원들의 태도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말씀에 지난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였던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분들이 받은 정신적 상처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정신적 치유가 필요한 것은 다 느끼지만, 거기까지 신경쓰실 여력이 없는 듯 했습니다.

아이들의 마지막 사진이 있는 곳에서 흐믓한 얼굴로 내 아이와 그 친구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건우 아버님의 모습을 보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별이 된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세월호에는 아직 미수습자가 남아 있습니다.
그곳 목포 신항에도 미수습자의 가족과 유가족이 함께 있습니다.
사고 후, 세월호에서 내 아이를 발견했을 때, 아직 찾지 못한 가족들에겐 미안하고,
그럼에도 내 아이의 주검이라도 찾아서 감사하고..
당시의 이 묘한 감정은 무엇으로도 설명하기 어렵다는 건우 아버님의 말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7년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온지 며칠 되지 않아,
미수습자로 남아 있던 9명의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학생, 그리고 고창석, 양승진 선생님, 권재근 권혁규, 이영숙님..
이분들 중 고창석 선생님들 시작으로 허다윤, 조은화 학생이 가족품으로 돌아왔고,
얼마전 이영숙님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DNA감식까지 마친 상태라고 합니다.  
아직 다섯분의 미수습자가 세월호에 있습니다.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건우 아버님께서 해주셨던
"여러분들 때문에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오히려, 이렇게 버텨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세월호를 바라보며 우리가 잊기 않겠다고했던 약속,
그리고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자가 죄값을 받고,
또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함께 행동하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6월 "광장민주주의를 찾아서" 근현대사 아카데미는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알아봅니다.
자세한 내용 => http://seoulkyc.or.kr/blog/admin/3664
Creative Commons License

댓글 쓰기

수, 2017/06/07- 17:56
321
0
근현대사 아카데미 "광장민주주의를 찾아서"
7월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주제로 했습니다.

방송대학교 변은진 선생님과 함께
3.1운동 전후, 조선을 둘러싼 국제정세의 변화와
근대적 변화에 대한 민중들의 열망을 살펴보며
1919년, 3.1운동은 무슨 목적으로,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 이야기 나눈 실내교육!

세계만방에 조선인의 독립의지를 알리고
학생, 농민, 노동자 등 그야말로 "민중"들의 집단적 참여로
독립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공화주의"를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고
만주와 연해주 무장독립운을 촉발하고,
"정부"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임시"정부! 최초의 공화제 정부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서울에서도, 천안에서도, 광주에서도 3.1운동이라고 하면 좀 어색합니다.
실제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것은 3월1일이었지만,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지속되어온 것은 그 이후로도 계속이기 때문이죠.
3.1운동이라는 명칭은 분명한 한계가 보입니다.

3.1운동 이후, 우리 스스로 어떤 나라를 만들것인가?라는 질문에
왕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공화주의"에 기초한 근대 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이 모두의 염원이었습니다.
독립운동이기도 하면서, 새로운 나라 만들기에 대한 절절한 외침!
거리로 쏟아져 나온 국민들의 참여와 외침이 지금 대한민국을 만든 기본임을 확인합니다.



3.1운동을 주제로하는 답사는 온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천안!
그리고 당시 무자비한 학살이 벌어진 화성 제암리 입니다.
답사에 함께했던, 김예경 회원의 후기를 공유합니다.


광장 민주주의를 찾아서 - 김예경 회원(도성길라잡이)


#작년에 이어 한국의 근현대사를 배우러 ‘역사를 둘러싼 도시의 기억’을 찾아다닌다.
올해는 도시가 이룬 '광장 민주주의'를 배우기로.
이 땅엔 시민이 이뤄낸 민주주의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지난 겨울 ‘한 촛불’로 살았던 감동은 주체적인 시민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5월은 촛불혁명의 시작 세월호가 있는 목포, 6월은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정읍,
7월은 임시 정부를 낳은 3.1운동의 흔적을 찾아 천안과 화성제암리를 찾았다.



#천안 독립기념관에 조선 총독부가 해체 된 잔해들이 보관되어있다.
조선 총독부가 있었던 남산 구간을 사랑하면서 네거티브 문화유산 문제를 궁금했었는데,
분해된 조선 총독부를 보고 있자니 고민은 여전히 진행형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주역중 한분인 이동녕 선생 생가, 유관순 열사 생가,
유관순 열사가 자란 매봉교회를 차례로 찾았다.
역사의 위인을 단편적, 추상적으로 알다가 현장에서 만나니 실재로 다가온다.
일본 제국주의로 나라를 빼앗긴 백성들은 선교사들을 통해 독립운동의 의지를 함께 꿈꾼다.
종교적 신념으로 목숨건 독립운동에 나선 믿음의 선조들과 만남은 나를 숙연케했다.
기독교인으로나는 사회의 문제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쉽지 않은 물음 앞에 다시 섰다.






#천안에는 ‘망향의 동산'이 있다. 대일항쟁기에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동원되어
망국의 서러움과 고난 속에서 고향을 그리며 숨진 재일동포를 비롯한
해외동포들의 안식을 위해 세워진 곳이다. 위안부 할머님들도 계시다.
수천개의 위패와 묘를 바라보면서 말을 잃었다.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영혼들의 영면을 빌었다.
위안부 문제를 최초로 증언한 ‘김학순 할머님'을 조문한것이 특별한 기억이었다.
이들의 죽음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위해 2년의 답사가 필요했다.



#화성 제암리에서 형성된 기독교와 천도교가 수원, 화성지역 민족운동세력과 제휴하여
만세시위를 모의하며 3.1운동을 주도한다.
이를 알게된 일제는 민족 운동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기독교, 천도교인을 근절하기 위해
제암리교회에 이들을 모아 놓고 학살을 감행한다. 이것이 제암리 학살이다.
이땅에 행해졌던 학살의 현장을 밟는 것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암흑의 역사를 찾아다닌 두해의 시간에서 배운것은 이 땅엔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자유는 수없이 고귀한 목숨과 바꾸었다는 사실,
여전히 자유를 향한 투쟁이 멈추지 않는 나라를 사는 자랑스러움.

#‘천박한 시민'이 되지 않기 위해서 역사를 배운다.



근현대사아카데미에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특히, 강사 섭외에 도움 주신 천안KYC, 수원KYC 고맙습니다.

천안에서 만난, 한마음고등학교 구자명선생님, 매봉교회 목사님 고맙습니다.
천안 지역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 인상적이었습니다.

화성에서 만난, 박대진 선생님! 일부러 일정까지 변경해서 저희를 반갑게 맞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생존자들의 아픔을 기억해야한다" 마음에 담아갑니다.

끝으로! 근현대사아카데미를 사랑하는 우리 회원들과 지인여러분!
역사의 무게에 때론 짓눌리기도 하지만,
담담하게, 온전히 받아들이고자 애쓰는 모습에 늘 감동입니다.
함께 했던 그날의 기억. 잘 저장해두겠습니다.
9월까지 계속계속 함께 만나러 가봅시다.

이제 무더운 8월을 잘 버티고,
8월 23일, 8월 25일에 만납시다.
















Creative Commons License

댓글 쓰기

화, 2017/07/18- 19:32
319
0
근현대사 아카데미 6월 현장답사는
이시우 선생님과 함께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던 고양시 금정굴을 시작으로
장준하선생의 묘역이 있는 통일공원을 지나 오두산전망대, 임진각을 다녀왔습니다.
전쟁과 분단의 현장을 단비를 맞으며 다녀왔습니다.

첫번째 장소는 고양시 금정굴입니다.
수직으로 만들어진 굴로 한국전쟁당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던 곳 입니다.
최근 금정굴 사건에 대한 법원이 인정한 내용을 살펴보면,
- 이 사건의 희생자들은 우익 치안대등에 의하여 부역혐의로 연행되어 경찰에 인계되어 조사를 받다가
희생자들의 주거지 인근 금정굴에 끌여가 경찰의 조준사격에 의하여 사망하였다.
그 과정에서 희생자들은 부역자 여부나 부역의 정도에 관한 적법한 조사를 받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굶은 상태에서 고문을 당하다가 결국 부역자에 대한 불법처리 금지지시를 어긴 경찰에 의하여 살해당했다.(이후생략)
공권력에 의해 민간인 학살이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현장이 바로 이 금정굴입니다.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가뭄끝에 내리는 비여서 달게 느껴지는 단비를 맞으며
장준하선생의 묘역이 있는 통일공원에 도착하였습니다.
독립운동을 했던 장준하 선생, 그리고 해방이후 언론인과 정치인으로써의 삶과
아직도 풀리지 않는 그의 죽음.
해방 후 그의 삶을 살펴보면, 진정한 보수의 삶이 어떤 삶인지를 모범적으로 보여준다고 하였습니다.



비속을 다니는것은 많은 체력소모가 필요합니다. 금정굴과 장준하선생 묘역을 다녀오니,
당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임금님께 진상했던 장단콩으로 만든 두부로 떨어진 당을 그득그득 보충하고 오후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이어 오두산 통일전망대로 이동하였습니다.
이 곳 통일전망대는 임진강 너머로 북한의 황해도 개풍군 주민들의 생활을 망원경으로 볼수 있는 지역인데,
이날은 비가 와서 주변을 살펴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남북분단 이후,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햇빛정책이 우리 경제에 미쳤던 선순환적 기능과
지금은 중단된 6자회담을 통한 집단안보체제에서주도권 확보를 통한 통일의제 선점등
평화적 관점으로 한반도를 너머 유라시아 대륙으로 뻣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장소는 임진각으로 갔습니다.
이곳에서는 해방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부터  
한국전쟁당시의 미국과 소련의 개입, 한반도의 분단상황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실향민들이 명절때 고향을 향해 절을 하는 망배탑을 지나 자유의 다리로 이동하였습니다.
자유의 다리는 임진강에 놓인 남과 북을 잇는 통로로, 원래는 경의선의 철교였던것이 한국전쟁때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휴전협정이 조인된 후 공산군의 포로가 되었던 국군과 유엔군이 이 다리를 건너와서
판문점의 돌아지 않은 다리와 함께 남북분단의 비극을 상징하는 다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소는 임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퇴계 이이가 관직을 물러난 후에
이곳에서 제자들과 함꼐 여생을 보냈다는 화석정입니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고 저희는 품이 아주 넉넉한 느티나무 아래서
6월 근현대 답사를 정리하였습니다.

 
1945년 일제식민지로부터 해방되었고,
38선을 중심으로 소련군과 미군이 주둔하면서 남북으로 분단되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합니다.
전쟁은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에게도 참혹하고 비극적입니다.

분단의 현장을 걸으며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의 역사를 다시 한번 짚어보았습니다.
분단의 역사를 극복하는 방법은 평화와 통일입니다.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북한땅을 지나 유라시아 국경을 넘는 상상을 해봅니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그날, 남과 북이 평화라는 손을 맞잡는 그날을 다시 상상해봅니다.

6월의 근현대사 아카데미 현장답사는 분단의 현장에서 평화를 생각하며 마무리 하였습니다.

[근현대사 아카데미] 7월에도 이어집니다.
7월 근현대사 아카데미는 남북관계의 현실과 대안을 살펴보고,
비무장지대에서 평화와 통일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자세한 사항과 신청은 => http://seoulkyc.or.kr/blog/admin/3424

Creative Commons License

댓글 쓰기

화, 2015/07/07- 14:21
31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