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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보다 사망률 높은 환경미화원, 위험하다" (현대건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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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보다 사망률 높은 환경미화원, 위험하다" (현대건강신문)

익명 (미확인) | 금, 2016/05/20- 10:33

"소방관 보다 사망률 높은 환경미화원, 위험하다" (현대건강신문)

대부분 야간에 이뤄지는 청소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환경미화원들의 근무 환경이 시급히 개선돼야 할 것으로 드러났다.

원진녹색병원 작업환경의학과 김규연 전공의가 18일 건강세상네트워크 주최로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프라자 아트컬리지에서 열린 '서울시 환경미화원의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 할 권리보장을 위한 토론회'에서 환경미화원의 높은 사망률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래 주소에서 기사 전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출처 http://www.hnews.kr/news/view.php?no=35425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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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환경미화원 생계비 지원 신청 안내

 

서울시 환경미화원 생계비 지원 신청

 


재활용 및 음식쓰레기가 증가함에 따라 환경미화원 1인당 작업량도 과중해지는 추세입니다.


환경미화원은 날카로운 물체에 베이거나, 무리한 동작으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 등 유해한 환경 및 근무조건으로 직간접적 위해를 받고 있습니다.


정확한 실태조사는 아직 미흡하지만, 2009년 산재처리를 한 재해가 환경미화원 100명당 5.7건으로 평균 재해율(0.7%)8배에 해당하였고 공상(산재보험으로 처리하지 않고 사업주 또는 사업장과 민사합의 등을 하는 것)까지 포함한 재해율은 11%입니다.


질병치료로 어려움을 겪고 계신 환경미화원분들의 부담감을 덜어드리고자 서울시 환경미화원 근무 중 재해자 생계비 지원사업을 실시하오니, 관심가져주시고 신청해주시기 바랍니다.


궁금하신 사항은 건강세상네트워크 홈페이지, 전화, 이메일로 문의바랍니다.


 홈페이지  www.healthright.kr

□ 전화  02-2269-1904

이메일  [email protected]

 


┃ 서울시 환경미화원 생계비 지원신청 바로가기 [클릭]


 

환경미화원지원사업절차안내.hwp
[신청서]2016환경미화원지원사업.hwp 개인정보수집이용동의서.hwp

 



 

유나윤아 변화사업국 사업배분팀조윤아 간사

특별한 나눔으로 이어진 너와.나의.연결.고리♬ 도움을 주고 받는 든든한 연결고리가 되고싶습니다. 



   


화, 2016/01/0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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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딘 산재 판정에 고통받는 환경미화원 (한겨레)

경기도 고양시의 한 청소용역업체에서 10년간 일해온 50대 환경미화원이 지난해 폐암 진단을 받은 뒤 1년이 훨씬 넘도록 산업재해 판정을 기다리다 ‘치료 빚’만 떠안은 채 사경을 헤매고 있어 세밑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산하기관인 직업성폐질환연구소에 업무관련성 전문조사를 의뢰했으나 연구소는 1년4개월이 지나도록 판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직업성폐질환연구소는 직업으로 인한 호흡기질환과 산업재해 관련 역학조사를 수행하는 준정부기관으로, 연구진 10여명이 연간 1000여명의 산재 신청 건을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래 주소에서 기사 전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24056.html

수, 2015/12/30-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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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박석운 일과건강 운영위원장

 

두번의 커다란 직업병 투쟁,

이제는 노동자와 지역주민이 힘을 합쳐 싸워야 할 때

 

정리 : 한선미 (일과건강 미디어팀장)

 


문송면 추모제.jpg

지난 628() 마석 모란공원에서 2015년 산재사망 노동자 합동추모제가 진행됐다. 한해도 빼먹지 않고 그를 만났을 박석운 (일과건강 운영위원장)도 이날 함께 자리했다. 그는 고 문송면 군 사건, 원진레이온 집단 이황화탄소 중독 사건 등 커다란 직업병 투쟁이 지나갔지만 여전히 안전을 위한 투자를 아까워하는 기업들이 많다며 한탄했다. 이어 노동자와 지역주민들이 함께 힘을 합쳐 안전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유난히도 햇볕이 뜨거웠던 지난 628, 필자는 처음으로 고 문송면 군을 만났다.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그랬듯,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이제 막 일과건강에서 활동을 시작한 터일까.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좀 더 무뎌질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도 안된다. 여전히 노동현장에서 수많은 죽음을 마주하고 있으니아마 27년 전 문송면 군과 처음 마주했고, 7월이면 거르지 않고 그를 만났을 박석운(일과건강 운영위원장)의 마음은 더 무거웠을 것이다.

 

고 문송면 군은 198712월 중학교 졸업식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친구들과 함께 양평동 협성계공에 취업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낮에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산업체특별학급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공장은 온도계와 압력계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한지 2달도 채 되지 않아 수은과 유기용제에 중독되었다.

 

소아병동에서 치료받는 15세 소년, 수은 중독 이라는 직업병으로 사망

 

- 고 문송면 군의 사망 사건은 당시에도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그때 나이가 만 15세 밖에 안됐었거든. 실제 나이는 조금 더 많았다고는 하지만. 송면이는 서울에서 두달 일하고는 다시 시골로 내려갔어요. 갈수록 몸이 안좋아지고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지요. 그러니까 시골 동네 병원에도 가봐도 그 원인을 모르고, 고대 구로병원까지 갔었는데도 몰랐지요. 결국 가족들이 송아지 팔아서 서울대병원에 입원하게 됐는데, 15세이니까 소아병동에서 진찰을 받았어요. 당시 진찰하던 의사가 박희순 선생이었거든. 그래도 다행히 박 선생이 직업병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어서 송면이한테 무슨 일을 했는데?’하고 물어봤다는 거에요. 그래서 온도계와 압력계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한 것도 알게 되고 그제서야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했어요. 그래서 수은과 유기용제에 중독된 것을 알 수 있었지요. 그때는 가족들은 , 이제 됐구나하고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그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문송면 군이 얼마 일하지도 않았다며 수은중독 등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노동부는 회사의 날인이 없다는 이유로 산재신청서 접수도 받지않고 반려해버렸다. 회사측은 도리어 직업병을 진단한 의사선생을 찾아가 항의하고 행패를 부리는 일도 발생했다.

 

- 당시 어떻게 고 문송면 군과 만나게 되셨나요?

 

그때는 고 조영래 변호사 등이 운영하는 변호사 사무실 안에 있는 시민공익법률상담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부당해고나 산업재해 등을 상담하는 역할을 했었지요. 그때 구로의원 산업보건상담실 김은혜 선생이 먼저 문송면 군을 알았는데, 해결책을 찾아달라고 부탁을 해오면서 처음 만나게 됐지요. 아마 4월 말쯤이었을 꺼에요. 송면이 큰형(문근면)이랑 이종사촌 형이랑 와서 처음 상담을 했는데, 그때 송면이 큰형이 군대도 가기 전이니까, 스무살 쯤 됐을 때였을 거에요. 그때 형 문근면이의 눈물은 아직도 잊을 수 가 없어요

 

박석운(일과건강 운영위원장)은 잠시 깊은 생각에 빠진 듯 보였다. 어쩌면 감정을 가다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동아일보 신문기자로 일하던 학교후배에게 연락해서 취재를 부탁했어요. 당시는 한겨레신문도 창간하기 전이었거든. 실제로는 긴 기사였는데 1단 기사로 짧게 소개가 됐어요. 신문에 보도되니까 노동부에서 부랴부랴 가톨릭의대에 의뢰해서 역학조사를 진행했어요. 4~50일이 걸렸으니까 아마 6월 말쯤이었을 거에요. 그래서 수은 중독으로 판명이 나고 그 이후에 산재 처리가 되었어요. 그런데 어이없게도 국립서울대병원은 산재보험 지정 의료기관이 아니어서, 산재 치료를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여의도 성모 병원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지요

 

하늘도 무심하게 여의도 성모 병원으로 옮기고 이틀만에 고 문송면 군은 세상을 떠났다.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겠구나 희망을 갖게된 찰나였다.

 

16일 간의 장례투쟁, 똑같은 아픔을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사회적인 공감대

 

서울대병원에 있었으면 죽지는 않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아직도 남아요. 72일 새벽 2~3시 쯤 김은혜 선생이 울면서 전화를 해왔어요. 근데 송면이가 죽었다는 거에요. 그때 광명시에 살 때 였는데 택시타고 막 장례식장에 도착하니까 친척들이 모여있었어요. 모두들 기가 막히지 뭐. 그래도 가족들과 의논해서 송면이 사건을제대로 알려서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이 안되게 해야겠다고 의견을 모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투쟁을 시작하게 됐지요

 

16일간 장례투쟁이 진행됐다. 그 투쟁의 결과 일정정도 제도개선이 되었다. 우선 사업주의 확인 도장이 없더라도 산재를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되었다. 그리고 국립 병원인 서울대병원에서도 산재 환자를 진료할 수 있게 된 것은 한참 지난 시점에야 실현되었다.

 

- 고 문송면 군 사건이 큰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당시 참 충격적인 사건이거든요. 15살 밖에 안된 소년이 직업병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그러니까 사회적으로 이슈도 되고, 많은 사람들이 직업병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리고 중요한 것이 송면이 사건으로 인해서 직업병 문제가 본격적으로 언론보도가 되기 시작했어요. 당시 6월민주항쟁과 7-8월 노동자대투쟁 직후라는 시기적 특성도 있었어요. 송면이 장례를 치르고 나니까 그 뉴스를 보고 원진레이온 직업병 환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원진 투쟁도 시작됐지요


국내 최대 직업병 사건인 원진 레이온 직업병 투쟁의 발화점이 돼

 

원진 레이온 직업병 사건은 국내 최대 직업병으로 기록된다. 원진레이온은 당시 국내 유일 비스코스 인견사 생산 공장으로, 1964년 일본 도레이레이온사의 중고 기계를 들여와 가동을 시작했다. 안전 설비 없이 수많은 노동자들이 이황화탄소에 노출되었다. 사지마비, 정신이상, 기억력 감퇴, 콩팥 손상 등이 이황화탄소 중독 증상이다.

 

- 원진 레이온 투쟁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그때는 주로 가족들이 많이 싸웠어요. 거동을 할 수 없는 중증 환자들도 많았거든요. 그래서 원진레이온직업병피해자가족협의회라고 원가협을 결성한 거지. 원진레이온 사건이 언론에도 보도도 되고 그랬지만 처음에는 상당히지지 부진했어요. 근데 88년 올림픽 때 성화 봉송할 때 구리시 교문 사거리를 지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성화 봉송로를 점거하겠다고 선언하고 농성을 시작했지요. 그러니까 정부의 압박을 받은 회사측이 부랴부랴 대화에 나서기 시작했어요

 

박석운 (일과건강 운영위원장)은 당시 협상을 굉장히 성공적이었다고 회상했다. 산재인정과 작업 환경 개선 약속은 물론, 환자의 직업병 여부와 장해등급 등을 판정하는 위원회를 노사동수로 구성했다. 또 피해자에 대한 획기적인 민사 배상금 기준도 마련되었다.

 

“2차 투쟁은 1991년 김봉환(당시 원진레이온장기 근속자)씨가 사망하면서 촉발됐어요. 국과수 부검을 통해서도 이황화탄소 중독 여부를 판단하지 못했지요. 근무부서인 원액과가 유해부서가 아니라는 구실로 직업병 인정을 거부했지요. 그래서 또 137일간의 장례 투쟁을 진행했어요. 그러다 보니 언론에서 집중 보도됐고, 결국 투쟁에 승리하고, 그 결과 산재 전반에 대한 인식을 제고시키는 데에 큰 기여를 했지요

 

1993년 원진레이온은 적자가 계속되자 폐업수순에 들어간다. 825명에 달하는 이황화탄소 중독자를 남긴 뒤였다.

 

폐업 대책 투쟁에 들어갔어요, 고용안정 투쟁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게 원진레이온 3차 투쟁이에요. 그때 법정관리 주체인 산업은행에서 민사배상기금을 추가로 더 내기로 합의했어요. 또 직업병 환자를 위한 병원 설립 기금이 마련된거지요. 그래서 녹색병원이 만들어질 수 있었어요. 그리고 취업 희망자에게는 서울도시철도 등에 취업을 알선하게 됐지요

 

그렇게 원진레이온 투쟁은 긴 싸움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런데 직업병 제조 공장으로 불리던 그 기계는 중국 단둥으로 넘어갔고, 지금은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소식이 들린다. 일본에서 산재 문제가 발생하니까 한국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졌듯이, 다시 중국으로, 또 다른 곳으로 계속 옮겨만 가는 것이다.

 

이후에도 사고는 계속 이어져

안전한 노동 환경은, 노동자와 지역주민이 함께해야 가능

 

산재, 직업병 사고는 계속 이어지고 있지요. 하지만 여전히 산재 직업병 추방운동이 노동운동에서 중요한 과제로 자리매김하지는 못하고 있어요.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되었지만 여전히 임금이나 고용 문제가 더 앞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겠지요. 거기다 노동운동의 힘이 많이 약해지고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들기 위한 비용은 당연한 건데 기업들은 여기에 투자를 안하려고 해요. 정부는 기업들 편만 들고 있어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개선의지를 보여주던 정부 정책이 요즘은 이전보다 훨씬 후퇴하고 있어요

 

-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아마 노동운동 자체 동력으로는 상황 돌파가 쉽지 않은 단계가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이 문제가 노동자들에게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요. 각종 화학물질 유출 사건만 해도 지역 주민들까지도 피해를 입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들이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러니까 노동자와 지역주민이 함께 힘을 합쳐서 해결책을 찾아 나가는 방법이 유용한 방향이 될 수 있지요

 

마지막으로 박석운(일과건강 운영위원장)최근 일과건강은 기본적으로 화학물질 알권리에 집중하고 있거든요. 노동자의 단결력과 지역주민의 네트워크가 시너지 효과를 내서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 환경과 주민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일과건강은 전문적인 촉매제 역할을 하도록 지원하고, 네트워크를 활성화 하는데 큰 힘이 되길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


 

어플 시연회.jpg

지난 56() 환경재단에서 열린 우리동네 위험지도앱 공개 시연회에서 박석운 (일과건강 운영위원장)은 노동자와 지역주민의 안전을 위해서 화학물질 관련 알권리 보장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목, 2015/09/0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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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에 무방비로 노출된 노동자들 (YTN)

미세먼지 관련해서 건설 노동자분들이나 말씀하신 환경미화원 분들, 톨게이트 종사자 분들에 대한 조사 결과도 있고요. 그래서 그분들이 보호장구, 우리가 일하는 분들의 안전 보건이 산업안전보건법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법이 있는데요. 그러면 안전 장구나 보호 장구 지급을 사업주가 해줘야 하거든요. 이게 현실적으로는 다 지급이 안 되는 것으로 실체 조사나 국내 토론회 등의 여러 자리에서 여러 번 지적되고 있습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게 문제라고 봅니다.


아래 주소에서 기사 전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출처 http://www.ytn.co.kr/_ln/0102_201701191635020086

금, 2017/01/2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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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는 2016년 창립 10주년을 앞두고 시민 관점의 정책제안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이 시리즈는 ‘좋은 일’의 기준을 찾는 설문조사를 위한 것입니다. 설문결과는 전문가토론을 거쳐 ‘2016 정책제안 보고서’에 반영됩니다.

[희망제작소 ‘좋은 일 찾기 연재 시리즈’ 1회]

‘미생’, ‘송곳’, ‘치즈인더트랩’의 공통점은?

요즘 웹툰을 드라마로 만드는 것이 유행인데, 드라마가 된 웹툰 중 가장 큰 관심을 끈 세 작품 ‘미생’, ‘송곳’, ‘치즈인더트랩’에는 상관관계가 있다. 미생은 정규직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 대기업 신입사원의 이야기고, 송곳은 대형마트의 비정규직 해고에 맞선 투쟁을 그리고 있으니 ‘노동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게 분명하지만, 대학생들의 이야기인 ‘치즈인더트랩’과의 관계는 뭘까? 그 고리를 이해하려면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오찬호)의 한 대목을 인용할 필요가 있다.

“지금 대학생들이 왜 이렇게 고생을 합니까? 정규직이 되기 위한 것 아니겠습니까?”
사회학 강사인 저자가 ‘KTX 여승무원의 철도공사 정규직 전환 요구’를 주제로 진행한 수업에서 한 대학생이 했다는 말이다. 대학생들이 이토록 고생하는 것은 ‘정규직이 되기 위한 것’이므로 ‘계약직인 줄 알고 들어간’ KTX 여승무원들은 “날로 정규직이 되려고 하면 안 된다”는 요지다. 그러고 보면 좋은 학점을 받으려고, 장학금 타려고, 스터디도 하고 학회도 하려고 애쓰는 ‘치즈인더트랩’ 여주인공의 노력은 결국 ‘정규직’이 되기 위한 것이다.(남주인공은 기업 후계자라 입장이 좀 다르다.) 이렇게 우리 삶을 다룬 이야기들마다 ‘일’의 문제가 들어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는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 서럽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해도 늘 빠듯해서 억울하고, 그나마도 쫓겨날까봐 불안하고, 치솟는 집세에 허덕이고, 어느덧 아무리 애써봐야 현상유지조차 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한다. 이런 모든 어려움은 더 나은 일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일까? 일찌감치 더 ‘노오력’ 해서 높은 연봉을 받고 안정된 직장을 찾았으면 될 일일까? 정부는, 정치인들은 늘 ‘고용을 창출’하고 ‘청년 일자리를 만든다’고 하는데, 왜 좋은 일은 점점 더 찾기 어려워질까? 우리는 무엇을 원해야 할까? ‘정규직’이 더 많아지기만 하면 되는 걸까?

우리 사회엔 ‘좋은 일’의 상(像)이 없다

여기,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다. 어떤 일을 찾아야 할지 생각해 보기 위한 것들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 ‘좋은 일’에 대한 상(像)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하나 있는 것이 ‘정규직’이다. “그거면 됐지 우리 현실에서 뭘 더 바라야 하나?”, “비정규직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 ‘정규직’마저 문제 삼는 의도가 무엇이냐?”는 비판도 물론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제안하려고 한다. ‘좋은 일’의 기준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고. 어쩌면 그 기준이 없어서 ‘좋은 일’을 찾지 못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여기, 이 이야기들은 인터뷰 등을 통해 모은 실제 사례를 최소한으로 각색한 것이다. 일부는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지난 6~8월 진행한 20~30대 여성 인터뷰에 기반하고 있다. 이 이야기들로 과연 ‘정규직’이 ‘좋은 일’의 대명사일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20대 후반 남자, “신입 공채 입사하고 보니 비정규직”
중견기업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근로계약서에는 계약기간이 1년으로 돼 있다. 1년간 다양한 경험을 시킨 후 정식 부서 배치가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선배들한테 “제가 비정규직인가요?”라고 물었다. “그건 아니지, 공채 사원인데”라고들 했다. 그렇지만 지식 포털에 물어보니 “근로 기간이 정해져 있으면 비정규직이 맞다”고 했다. 영 찜찜했다. 한 선배는 “예전에는 다 정규직이었다”고 했다. 청소, 경비, 구내식당 직원도 다 정규직이었는데, 조금씩 아웃소싱 돼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탠 얘기가 심각했다. “회사가 몇몇 부서 사업을 분리할 계획이라는데, 재수 없으면 하루아침에 하청업체 직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불안해하는 나를 놀리는 선배를 보면서, 내가 순진한 건지 저 선배가 순진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지식포털에 ‘정규직’이라고 검색해 보면 “이 일이 정규직인가요, 아닌가요?”라는 질문들이 즐비하다. ‘정규직’은 법적 용어가 아니다. 법적으로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이라는 개념만 있다. 그러니까 근로계약에 기간이 쓰여 있지 않으면 ‘정규직’인 셈이다. 김민아 노동법률원 새날 노무사는 “1990년대 이전에는 기간 제한이 없는, 즉 정규직 채용만 있었다”면서 “이후 기간제, 한시근로 등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계약이 생겨났고, 이를 제외한 나머지가 ‘정규직’으로 통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이라고 다 정규직일까? 지식포털에서 많이 보이는 질문 중 하나가 “채용공고에 무기계약직이라고 돼 있는데, 이건 정규직인가요?”다. 대답은 둘로 나뉜다. 노무사‧변호사 등 전문가일수록 “무기계약직은 정규직입니다”라고 딱 잘라 말한다. 그렇지만 현명한 네티즌들은 핵심을 꿰뚫는다. “정규직과 달리 차별받는 직군일 수 있습니다. 잘 알아보고 들어가세요.”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선임연구위원은 “우리 사회에서 정규직은 ‘고용안전이 보장되고, 연공주의에 따른 임금인상, 승급, 승진 및 기업복지의 혜택을 누리는 근로자’라는 인식이 있다”고 했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이미 그와 같은 차이는 희미해져 가고 있다. 다음 사례를 보자.

30대 초 남자, “나만 낮은 연봉을 받고 있었다니!”
IT개발자로 몇 차례 이직한 끝에 지금 회사에 들어와 3년째 일하고 있다. 그런대로 만족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다른 직원들 연봉을 알게 됐다. 회사 인사담당자와 매년 1대 1로 연봉계약을 체결하는 완전연봉제에, 비밀유지원칙이 있기 때문에 그동안은 ‘회사가 알아서 정했겠지’ 하고 사인해 왔다. 알고 보니 내 연봉은 평균 이하였다. 황당한 건 IT업체인데 사무직 연봉이 개발자들보다 많다는 것이다.

연차들이 높기는 하지만 야근도 거의 안 하는데 돈을 더 받는다니, 이해할 수가 없다. 아직 그쪽은 호봉제가 적용돼서란다. “어차피 전부 완전연봉제로 전환될 것”이라며 신경 쓰지 말라는 사람도 있었다. 진짜 문제는 내 연봉을 비교할 기준이 없다는 거다. “억울하면 다음 계약 때 높이 불러!” 이런 말도 들었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누가 나보다 많이 받는다”고 말하면 비밀유지원칙을 어겼다고 할 텐데, 무엇으로 연봉을 높여 달라 할지 생각할수록 구차해진다. 그냥 직장을 옮기는 게 나을 것 같다.

이 사람은 나름대로 안정적인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근로계약 상 ‘기간 정함’이 없다는 점에서는 분명 정규직이다. 그렇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생각에 이직까지 고민하고 있다. 문제는 완전연봉제 하에서 개인이 기업에 필적하는 협상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노사가 합의한 연봉테이블이 있거나, 단체협상으로 매년 인상률 기준을 세울 수 없다면 말이다. 기업은 “개인의 실적이 뛰어나면 연봉 인상을 요구할 수 있다”고 하겠지만 한국 문화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또, “회사가 어렵다”는 한마디면 협상 끝이다. 그에 반박할 만한 정보를 개인이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임금은 매년 제자리걸음에, 물가인상률과 비교하면 오히려 깎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다시 호봉제’를 외치자고 할 수도 없다. ‘연공서열’이라는 말은 이미 구시대적인 것이 됐다. ‘능력에 따라 자유롭게 자리를 옮기면서 일하는 세상’이 더 지금 시대에 걸맞다는 인식 때문이다. 더 노력해서 전문적인 능력을 쌓았으면 제도의 보호 따위는 필요 없는 걸까?

30대 후반 여성, “전문직, 공공기관, 그렇지만 계약직”
연봉 4000만 원대. 통역대학원을 졸업하고 정부 기관에서 외신 홍보 담당 업무를 한다. 전문직 대우를 받기 때문에 비슷한 연차의 공무원보다 연봉이 약간 높다. 그렇지만, 매일 ‘계약직 직원’의 한계를 느낀다. 2년마다 팀의 존속 여부가 정부의 예산 배정에 따라 결정된다. 6년간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해 왔다. 심지어 얼마 후에는 나갔다가 시험을 봐서 다시 들어와야 한다. 그 때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전반적으로는 좋은 직장이다. 근무 강도나 환경도 만족스러운 편이다. “공무원이라 좋겠다.”, “공무원연금이 최고지!”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난처한 것도 감내할 수 있는 일이다. 계약직이라 상여금 등에서 전부 제외되는 것도, 그래서 연봉이 높아봐야 실소득은 비슷하다는 것도 치명적인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언제든지 없어질 수 있는 팀에서, 언제든 나가라면 나가야 하는 계약직으로 일한다는 사실은 한 시도 잊을 수가 없다. 승진도 바랄 수 없다. 평생직장을 바라기 어려운 세상이라지만, 공무원들 속에 앉아 이런 불안을 느낀다는 건 분명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 여성은 전문성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전문직 대우’라는 것이 곧 ‘고용 안전을 보장해줄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통한다면, 우리는 왜 많은 비용을 투자하고 노력해서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 것일까? 물론, “사람마다 원하는 게 다른데 어떻게 판단을 하느냐”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김용진 착학경영연구소장은 “아무리 좋은 직장도 바로 위 팀장이 괴롭히면 옮기고 싶은 직장이 된다”면서 “어떤 학력과 경력을 가졌는지, 어떤 업종인지, 지식노동자인지 육체노동자인지 등에 따라 원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좋은 일’의 기준을 세우기란 지극히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좋은 일’을 한다고 답한 인터뷰 대상자도 있긴 있었다.

30대 초 여자, “무기계약직으로 시작하지만, 좋은 직장”
졸업 후 첫 취직을 했을 때 나름대로 만족했다. 해외 출장 기회도 있고, 전공도 살릴 수 있는 곳이었다. 작기는 했지만 전문성 있는 업종이니 열심히 배워 더 큰 곳으로 옮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사장님이 회사를 두 개로 나눴다. 주 5일 근무제 적용을 피하려고 한 것이다. 제일 싫은 것은 ‘5분 지각하면 월급 1만원 까기’처럼 직원들이 다 싫어하는 규칙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커피숍 프랜차이즈에 입사했다. “아르바이트 하기는 시간이 아깝지 않니?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에 더 집중하지?”하는 말도 꽤 들었다. 아르바이트로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곳과 달리 전 직원 본사 채용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빠르면 2~3년 안에 점장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도전해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학력, 성별 차별이 없다고 했다. 일해 보니 정말 없다. ‘능력’을 요구하기는 한다. 눈치도 빠르고, 체력도 좋고, 의욕적이어야 잘 할 수 있다. 적응 못해서 나가는 사람들도 꽤 된다. 그렇지만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 승진할 수 있다는 건 큰 매력이다.

주변에선 “그럼 정규직이야?” 하고 물었다. 처음에는 ‘무기계약직’이고 부점장이 돼야 진정한 ‘정규직’이 된다고 설명하면 걱정하는 표정도 짓는다. 그렇지만 그 차이가 당장 느껴지지는 않는다. 같은 직급끼리는 계약 형태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같은 일을 하는데 누구는 정규직이고 누구는 아닌 그런 차별은 없다. 연차‧출산휴가‧육아휴직과 같은 처우에도 차등이 없다. 성과급, 보너스도 임금에 따라 비율이 다를 뿐 모두 받는다. 첫 직장에서 분명히 정규직이었지만 이상한 점이 끝도 없이 많았던 것에 비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시작했다’는 데 대한 불만은 없다.

대학 전공과는 다른 업종, 사무직이 아닌 일, 전문성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일,‘정규직’으로 입사하지 않았다는 점 등만 본다면 ‘좋은 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왜 만족한다고 했는지 납득되는 부분들이 있다. ‘정규직’이냐 ‘무기계약직’이냐는 자체가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정부에, 기업에 “어떤 일을 달라”고 할 것인가?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자. ‘좋은 일’의 기준은 무엇일까? 여전히 답하기 어렵다. 어쩌면 ‘좋은 일’의 기준이 없기 때문에 노동 관련법이 바뀐다고 해도, ‘노동 개혁’이다, ‘노동 개악’이다 정치권에서 싸워도 우리는 판단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해고가 쉽고, 임금은 줄어들고, 고용 불안은 커진 일자리, 즉 ‘나쁜 일자리’들이 많아지더라도 우리는 알아차릴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다음 회에서는 ‘정규직’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짚어보려고 한다. 이어서 노동시간‧삶과의 균형‧임금‧노동권‧존중 등, 일의 여러 측면에 대해 하나씩 이야기해볼 것이다. 함께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좋은 일’의 기준은 있는지, 정부가, 기업이 “고용을 창출한다”고 할 때 어떤 일을 달라고 해야 할지를 말이다. 그래야 ‘미생’의 장그래도, ‘송곳’의 이수인도, ‘치즈인더트랩’의 홍설도 행복을 꿈꿀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노동 세계의 새로운 전선은 노동과 자본 사이가 아니라 좋은 노동과 나쁜 노동 사이에 그어져 있다.”
-토마스 바셰크, 『노동에 대한 새로운 철학』 중에서

글_황세원(연구조정실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사진_이우기(사진작가)

*이 글에 실린 사진들은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이 일하는 모습과 사무공간을 찍은 것입니다.

화, 2015/11/24-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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