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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활동가 인터뷰] 민생희망본부 자원활동가 김홍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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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활동가 인터뷰] 민생희망본부 자원활동가 김홍진님

익명 (미확인) | 수, 2016/05/18- 15:16

[시민참여팀] 참여연대의 자원활동가는 상근 활동가들과 손발을 맞춰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10대 청소년부터 일흔이 넘으신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학생, 주부, 직장인, 은퇴자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원활동가들의 숨은 활약을 자원활동가 인터뷰를 통해 알려드립니다.

 

"책상에 앉아서만은 배울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민생희망본부 자원활동가 김홍진님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자원활동가 김홍진

민생희망본부 자원활동가 김홍진님

 

 

 기나긴 휴일이 지나고 홍진님을 만났다. 활짝 웃는 표정, 어딘가 들떠 보이는 분위기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말부터, 인터뷰도 처음이고 참여연대 들어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아서 할 말이 많지 않을 것 같다는 말까지 쏟아내는 그를 보며 재미있는 대화가 될 것 같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는 물론 기대 이상이었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A. 저는 24살이구요, 3학년입니다. 전공은 글로벌리더학부라고, 처음 들어보셨을 거에요. 예전에 법학과로 있다가 로스쿨 생기면서 없어졌거든요. 약간 대체하는 학과 느낌으로 법학과 연계해서 글로벌리더학부가 생겼어요. 전공은 법학이랑 국가정책이에요. (글로벌 리더로 거듭나시려고!) ‘글로벌’까지는 아니고, 대한민국 리더 정도....? 하하하하...
 참여연대에서는 민생팀에서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요. ‘소소권’이라고 해서 작은 권리들을 하나씩 지켜나가는 일을 말하는 건데요. 자료도 찾고 아이디어도 내고 그런 일을 하고 있어요. 아직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서 제가 낸 아이디어로 무언가를 해본 일은 없습니다. 그니까... 아이디어를 내긴 했는데 그게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어가지고...(웃음) 이제 막, 열심히!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Q. 무슨 아이디어를 내셨기에 채택되지 않으셨나요?
A. 대학교 학생회비 같은 경우에 4년 치를 한꺼번에 내고 그런 경우가 있는데 사실 그건 작은 권리가 아닌 큰 권리라서 이미 다른 분들이 다 하셨더라고요. 또, 커피숍 같은 경우에도 가게마다 가격도 다 다르고 용량도 다 달라서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용량이나 이런 것들을 좀 규격화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제가 자영업자분들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포기한 적도 있었습니다.

 

Q. 3학년이면 사실 꽤 바쁜 시기일 텐데, 참여연대 자원활동가는 어떻게 지원하셨나요?
A. 제가 작년에 군대를 제대하고 학교로 돌아오면서 먼저 제대한 친구들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 걸 봤어요. 저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공부하는 것도 물론 중요한데 그것보다 사회에 나가서 더 많은 경험을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책상에 앉아서만은 배울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고 제가 공부를 하는 목적 자체도 사회참여적인 일을 하고 싶어서였거든요. 목적은 분명 학교 밖에 있는데 과정에서 너무 안에만 집중하면 의미가 퇴색될 것 같았어요. 또 제가 이쪽 일과 잘 맞는 사람인지 테스트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Q. 언제부터 공부의 목적을 사회 참여적·기여적인 가치에 두셨던 건가요?
A. 어릴 적 꿈도 변호사였어요. 인권 운동하는 변호사. 군대에 가면서 더 확고해 진 것 같아요. 군대에 있을 때 뉴스를 보는데 김무성 의원이 나와서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었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보여줬던 태도나 언행, 내용까지 너무 터무니없고 심지어 예의까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그런 사람이 대선 후보 중 지지율이 1위였거든요. 정말 당황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선 후보, 심지어 1위를 달리고 있는 걸까. 또 같이 군생활 했던 친구 중에 저와 생각이 비슷한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서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정치가 중요하고 사회문제가 중요한 거구나. 사실 군대라는 사회가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구조기 때문에 자유나 인권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많았다고 생각해요. 

 

Q. 참여연대는 언제 알게 되신 건가요?
A. 군대 가기 전부터 알고 있긴 했어요. 아는 형이 여기서 6개월 정도 자원활동을 한 적이 있어서 그 때는 곧 군대에 가야 하는 상황이어서 부러워만 했었어요.

 예전에는 참여연대가 운동을 엄청 심하게(?) 하는 단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솔직히 조금 꺼려지는 것도 있었고요. 그런데 막상 와보니까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극단으로 치우친 집단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언제 그걸 느끼셨어요?) 일단 간사님들이 인격적으로 너무 잘해주셨고, 어떠한 주장을 하실 때 근거에 정말 많은 공을 들이시는 걸 봤어요. 학술적인 근거부터 책, 논문 할 것 없이 꼼꼼하게 살펴보시는 모습을 보니까 신뢰가 많이 갔어요. TV에 나오는 피켓이나 이런 구호·문구는 자극적이잖아요. 그 구호에 맞는 근거들이 탄탄하다고 딱 느껴지니까 멋있다,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Q. 참여연대에서 하는 자원활동이 고민을 키워나가는데 도움이 되고 있나요?
A. 아무래도 주변의 불합리한 일들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또 발견하려고 한다는 부분에서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최근에 저도 깜짝 놀랄 만한 궁금증이 하나 생겼었는데, 유아들이 차량에 탑승할 때 카시트 사용이 의무화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명백한 재산권 침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런 궁금증을 간사님께 말씀드렸더니, 건강보험도 사실 국가가 돈을 내도록 강제하는 건데 카시트도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볼 수 있냐는 말을 해주셨어요. 그 설명을 들으니까 이해가 가면서 이런 질문이나 고민들이 생길 때마다 여쭤볼 분들이 계신다는 것도 좋았고 명쾌하게 설명해주시는 것도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제가 자원활동하는 것도 이런 일들이 나에게 맞는 일인지 확인해 보고 싶은 측면도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간사님들 일하시는 것 보면 겁이 나는 부분도 있어요. 워낙 많은 일들을 처리하시고 휴식을 취하기도 힘든데 버틸 수 있을지, 남을 위해 일한다는 기분이 들지는 않을지. 고민되는 부분들이 있죠.

 물론 제 성격 때문이라도 그런 생각을 길게, 깊게 하진 않을 것 같아요. 이런 활동을 계속 하고 싶은 이유가 제 스스로한테 있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을 마주한다거나 사회의 부족함·부당함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거나, 뭐 그런 것들이 있으면 저 스스로가 참기 힘든 느낌을 받거든요. 나라는 사람은 아마도 절대 못 참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혼자서 행동하지 않고 있는 시간들이 더 힘들 것 같아요. 

 

Q.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은 생각인가요?
A. 아직 확실하게 결정된 건 아니지만 다음 학기 휴학도 생각하고 있어요. 사회문제 관련한 일들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싶은 생각도 있구요. 물론 참여연대에서 하고 싶긴 한데, 간사님들이 받아주셔야 할 수 있는 거니까. (웃음) 활동하는 건 좋을 것 같은데 참여연대에서 일할 때 사실 조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요. 아무래도 제가 간사님들한테는 손님이다 보니까 갈 때마다 엄청 챙겨주시거든요. 그래서 자주 가고 싶어도 부담될 것 같아서 마음이 쓰이는 것도 있고. 또 사실 참여연대 사무실 채광이 좋잖아요, 낮에 일하면 햇살 때문에 나른해지는 기분도 있어서 졸리기도 하더라구요. (웃음) 빨리 간사님들과도 친해지고 뭐 분위기도 익숙해지고 그러면 더 활기차게 일할 수 있을 것도 같아요. (웃음)

 

Q.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으셨던 것 같다.(웃음) 보통 인터뷰 말미에 꿈을 물어보고 끝내는데 홍진님은 특별히 간사님들께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으시니, 꿈과 함께 간사님들께 하고 싶은 말을 들어보고 싶다.
A. 꿈...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싶은 공간에서 무엇이라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중에 내가 죽었을 때 내 장례식에 올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나에게 대해서 말을 할 때, 그래도 홍진이는 참 여러 일들을 이뤄냈고 사회에 도움이 된 사람이었다고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꿈인 것 같아요. 

 간사님들께 하고 싶은 말은...간사님들 안보시겠죠....? (웃음) 
 항상 고생도 많으시고, 다크서클도 깊게 보이고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먼저 전하고 싶어요. 그럼에도 제가 갈 때 마다 챙겨주시는 것도 정말 감사해요. 이제부터는 좀 막대해 주셔도 좋다, 알아서 커나가겠다, 뭐 이런 말을 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웃음)


 인터뷰가 끝난 후 너무 편하게 대해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 그를 보니 왠지 뿌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무겁고 거대한 이야기만으로 인터뷰가 채워지지 않아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기도 했다. 담론이나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소소권’, 다시 말해 일상의 권리들을 고민하고 실천해나갈 수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한 발자국의 의미를 아는 그가 목적지까지 지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걸어 나갔으면 좋겠다. 꼭 꿈을 이루길 바라요, 간사님들과도 더...!
  

 

작성 자원활동가 박영민 (활동가를 위해 활동하고 싶은 대학생)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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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인권변론센터 사람들, 이들이 궁금해요!

 

이혜정: 새로운 집행부 뉴스레터에 영광의 첫 손님으로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선정됐습니다. 요즘 인트라넷의 ‘이것이 궁금해요’와 ‘이 주의 변론’ 코너가 아주 인기가 좋고 덕분에 홈페이지 인트라넷도 좀 활성화가 된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이면에 있는 공익인권변론센터에 대해서 잘 모르는 회원들이 많아요. 센터가 어떤 일을 하고, 누가 일하고 있는지, 각자 자기 소개 부탁드릴게요.

송아람: 저는 민변이 첫 직장이고 2014년 10월부터 근무를 했습니다. 사무처에서 변론팀장으로 일을 하다가 이제 센터가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센터로 옮겨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수연: 네 저는 이수연입니다. 입사한지는 4년 5개월 정도 됐구요. 민변에 온 뒤로 제가 인복이 좀 있는 거 같아요. 처음에 이혜정 변호사랑 함께 일을 했는데, 이번에 공익변론센터에서 같이 일 하게 된 구성원들을 보면서 ‘아! 나에겐 인복이 있구나.’, 남자친구는 없지만 인복은 있구나, 그래서 너무 좋습니다.

송상교: 네.센터 소장입니다.(웃음)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동안 사무차장으로 일을 했었구요. 올해 2월부터 다시 또 이번엔 사무차장이 아닌 센터 소장으로, 민변 최초의 소장으로서 일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조영관: 네, 안녕하세요. 조영관이구요, 저는 5월부터 변론센터에서 반상근으로 월요일과 수요일와서 일을 하고 있구요. 주로 이제 회원들한테 보내는 이 주의 변론하고 이것이 궁금해요를 만들고 있고, 그외에 변론센터에서 진행하는 사건들이나 업무들을 나누어서 하고 있습니다.

공인인권변론센터 탄생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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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공익인권변론센터가 만들어지고, 이번 총회에서 소개도 됐는데 아직 공익인권변론센터를 잘 모르는 분들이 더 많아요. 센터가 만들어진 계기나 과정을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송상교: 갑자기 생긴 건 아니고, 사실 몇 년 전부터 민변 안에서 회원 1000명 시대가 되고 민변도 30주년을 맞으니‘뭔가 질적 도약을 해보자’ 이런 논의들이 많이 있었죠. 그 과정에서 ’민변이 제일 잘 하는 건 변론 아닐까, 맨날하는 거니까’, 해서 변론을 특화시켜보자, 변론센터를 일단 가장 먼저 특화시켜서 그걸 통해 시민들과 점점 소통을 해보자, 이렇게 얘기가 됐던 겁니다.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있었어요. 민변이 사실 맨날하는 게 변론인데 갑자기 또 무슨 변론센터냐, 무엇을 위한 것이냐에 대해서 회원들 사이에 논의가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이것은 이 변론센터가 눈으로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어떤 것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아무도 예상하기어려웠던 것 같고, 우리 준비하는 사람들조차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변론을 잘 하자는 것 외에 후배 회원들을 양성해보자는 고민도 오랫동안 있었어요. 공익변론센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민변의 젊은 회원들을 영입해서 양성해보자, 이런 논의도 있었죠. 아직까지는 우리 역량이나 재정이 녹록치 않은 부분이 있어서 약간 보류됐고, 그런 부분들을 장기적인 과제로 놓고, 민변의 변론을 잘 기획하고, 그것으로 시민들과 소통하고, 민변의 변론자료를 잘 축적해보자, 그래서 회원들이 수준 높은 변론을 하도록 지원을 해보자, 이런 걸로 압축이 되는 거죠.

이혜정: 지금 센터가 개설되면서 교육팀이 없어졌잖아요, 신입 회원들과 기존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사업도 중요한데교육사업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계획도 있나요?

송상교: 센터가 만들어지면서 교육업무를 센터가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줄다리기가 좀 있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젊은 회원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민변의 변론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도 그 젊은 회원들, 민변 회원들에 대한 계속 끊임없는 교육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교육도 센터의 중요한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예전 교육팀에서 신입회원 단기연수를 몇 년째 했었는데 오랫동안 변론을 해왔던 변호사들이 실무적인 팁들을 중심으로 강의를 하셨던 것이 반응이 무척좋았던 거 같아요. 민변 회원들이 변론과 관련해서 공익인권의 내용을 법정에서 잘 표현할 수 있는 스킬이나 증거신청의 방법 같은 실무적 지식에 대한 목마름이 많이 있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기적인 교육 외에도 그런 변론교육은 강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제일 큰 고민은 회원에 대한 교육 외에 시민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법률적인 정보를 제공하거나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들 같아요. 그게 참 제일 어려운 부분이더라고요.

구체적으로 공익인권변론센터가 하는 일은?

 

이혜정: 지금 센터가 진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소송은 무엇이 있나요?

송상교: 센터 1호 소송으로 저희가 시민청구인을 모집해서 통신자료 무단수집 헌법소원을 했고, 그게 1호 소송이에요.

송아람: 사실 변론팀이 외부에서 요청받은 것도 많이 하잖아요. 강정마을 구상금 청구 사건하고, 민중총궐기 집회 주최자 손해배상 소송 두 건을 연달아 했고요, 그 외에 우남찬가 사건이라든지… 그 정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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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현재 센터에서 진행 중인 중점사업을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송아람: 일단은 저희가 시민들과의 소통도 중요한 사업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어요. 기본적으로는 센터 이메일로 상담 내용과 자료를 받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고요. 전화 상담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전화상담은 원칙적으로 하지 않고 있어요. 센터가 4월 말에 개소를 했는데 그 뒤에 30건 정도 왔더라고요 그 중에 지금 민생위 공정경쟁팀에서 하고 있는 대한항공 지연발착 손해배상 청구 사건이나,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우남찬가 사건 등을 민변 사건으로 지정을 해서 기금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조영관: 공익변론센터는 민변이라는 회원조직에서 만들어진 공익센터이기 때문에 회원들을 위한 사업들을 같이 고민하고 있어요. 그래서 처음 만들었던 이 주의 변론인데요, 회원들이 변론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공유하고 회원들이 했던 변론을 소개하고 있어요. 또 신입회원들이 많아지면서 예전처럼 선배들이 알고 있는 노하우가 자연스럽게 모임 내에서 공유되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신입 회원들이나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기 위해 ‘이 주의 변론’ 안에 ‘이것이 궁금해요’ 라는 코너도 만들었습니다,

또 다른 중점사업으로는 디지털 도서관 구축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민변이 30년 가까운 시간동안 해왔던 변론 자료들이 회원들한테 충분히 공유되지 못했고, 또 디지털 시대가 됐으니까 지금까지의 자료들을 잘 정리해서 회원들의 변론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에요.올해 안에 런칭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혜정: 민변에 좋은 자료가 참 많아요, 민변 자료를 통해서 저의 시각으로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던 교수님들과 다른 실무진들의 의견을 접하기도 하거든요.

조영관: 저희가 디지털도서관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계속 논의하고 있는데 변론 기록을 가장 우선시 하지만 민변이 가지고 있는 토론회 자료집, 노동위원회에서 발간하는 노동판례비평, 4년에한 번 나오는 개혁입법과제 같은 정기발간물도 변론에 혹은 민변 활동에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기 때문에 그런 자료들 포함해서 이번에 그 디지털 도서관을 구축하려고 합니다.

인트라넷 스타 <이 주의 변론>&<이것이 궁금해요>

 

이혜정: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연재하는 <이 주의 변론>이나 <이것이 궁금해요> 인기가 높다고 하는데, 혹시 회원들로부터 반응이 돌아온 적도 있나요?

조영관: 어, 폭발적이죠.(웃음) 정말 ‘이 주의 변론’ 올린 것 중에 조회수가 90 정도 올라간 것들이 있어요. 제가 알고 있기로 민변 회원이 1000명인데 30% 정도가 인트라넷을 사용하신다면 300명이죠? 조회수 90이면 거의 한 1/3이 보셨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원 분들 중에서 아직 인트라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데, 인트라넷에 접속을 하시면 저희 <이 주의 변론> 게시판과 <이것이 궁금해요> 게시판이 있어요. 궁금한 점을 게시판에 올려주시면 저희가 매주 나가는 ‘이 주의 변론’에 소개하고, 내용에 따라서는 저희가 전문가를 직접 찾아서 답변을 받아서 올리기도 하고 있구요. ‘이 주의 변론’은 얼마 전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사건처럼 회원 분들이 진행하지 않았어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들은 회원들의 변론에 도움이 되는 판결이라고 생각이 되면 공유하기도 해요.

민변 회원이 굉장히 많은 소송들을 하고 있거든요. 저희 센터를 통해서 잘 수합이 안 되는 경우들이 있어요. 회원 분들이 진행하셨다가 의미가 있는 혹은 공유하고 싶은 판결이 있다고 하면 저희 민변 공익변론센터 이메일 [email protected]여기로 알려주시면 저희가 엄격한 선별 과정을 거쳐서 회원들에게 소개를 할 예정입니다.

송상교: ‘이 주의 변론’이나 ‘이궁’이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기존의 자료들을 잘 조직해서 소통하게하는 의미가 있죠. 센터가 민변 변론의 허브가 되어야겠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어요. 민변하고 연대 활동을 많이 하셨던 진보넷의 장여경씨 같은 분도 저번 운영위원회에서 “아니 민변에서 이렇게 많은 변론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 중에서 몇 퍼센트나 우리 회원들이 공유가 되고 있을까요? 가만히 살펴보면 너무 많은 땀들이 거기에 응축되어 있는데 이런 것들을 가능한 범위 내에서라도 회원들과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판결이든 나쁜 판결이든 회원들이 한 번 보고 자기가 하는 변론에서 ‘응용해봐야겠다’라고 할 만한 것들이 담겨있는 거면 최대한 소통을 해야겠다고 생각한거죠. 아마 회원들이 그런 자료에 대한 욕구가 있었던 것도 같아요.

이혜정: <이 주의 변론>이나 <이것이 궁금해요>의 선정 기준이 있나요?

조영관: 입소문이죠.(웃음) 저희가 지금까지는 각 위원회나 저희 변론센터 내에서 알음알음으로 회원 분들이 진행하시는 사건에 대해서 정보를 받아서 소개하고 있고요 간혹 가다가 이 주의 변론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본인의 사건을 소개해달라고 의뢰해오는 경우도 있어요.

회원을 위한 공익인권변론센터 사용설명서!

 

이혜정: 그러면 지부 회원이나 신입 회원들이 ‘나도 민변의 공익변론활동을 접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요?

송상교: 센터가 만들어진 후에 민변의 변론을 배분하고 지원하는 기능은 많이 확대된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해서 상근자가 네 명이 있고 민변의 회원들이 같이 할 만 한 사건들은 최대한 회원공지를 해서 많이 알리고 있거든요. 요즘은 실질적으로 참여하실 분들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때로는 우선지원 순으로 하기도 해요.

그런데 아쉬운 게 사실 개인적으로 말씀을 나눠보면 민변 변론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가 있으셔도 막상 기회가 되면 손드는 건 되게 쑥쓰러워하시는 거 같아요. 민변 변호사들이 샤이하다 이런 평도 예전부터 있었거든요.(웃음)

제 생각에는 이런 사건을 해봐야 어떤 느낌인지도 알고 다음에도 참여할 수 있다고 봐요. 이수연 간사님께서 관리하고 있는 공익인권변호사단이 있습니다. 기존의 민변이 집회라든가 이런 접견 상황이 생기면 변호사 접견을 하고 그랬었는데, 그것을 좀 더 확대하고, 또 간단한 집회 혹은 표현의자유로 인해서 기소된 분들의 변론을 맡는다거나, 이런 일상적인 공익인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틀입니다. 저희가 신청기간을 정해서 신청을 받긴 했지만 언제든 센터로 연락을 하시면 공익인권변호사단에 가입하실 수 있고, 저희가 일상적으로 드리는 사건에 참여하실 수 있는 기회가 있어요.

또 민변의 공익인권 기금이 있어요. 그리고 회원 누구나 자신이 공익인권변론을 하고 싶을 때 내 사건을 민변 사건으로 해다오, 의뢰인이 여러 가지 경제적 어려움이 있거나 한 상황이니 기금을 지원을 해다오하고 신청할 수 있는 제도가 있거든요. 필요한 변론들을 할 수 있는데 요긴한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제가 보기엔 유용한 거 같아요. 총회 자료집에 민변 변론규정이 있구요, 거기에 보면 신청서가 있어요. 그다음에 또 표현의 자유 사건 같은 경우에 표현의 자유 기금 규정과 신청서가 따로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이용하시면 되고 궁금하시면 전화하시면 되죠. 522-7283.

공익인권변론센터의 애로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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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센터가 개소한지얼마 안 됐지만 혹시 애로사항이나 힘든 부분은 없으셨어요?

조영관: 저는 민변에서 처음 일을 하는 거거든요. 상근하시는 분들은 민변에서 일을 하셨거나 오랫동안 해보셨던 분들인데…. 저는 4월달부터 공익인권센터에 월요일, 수요일 들어오는데 정말 깜짝 놀랐거든요. 일이 엄청 많고, 송아람 변호사 같은 경우는 거의 전화를 계속 붙잡고 있고…

사실 변론센터를 만들고 가장 필요한 것들은 공익 변론의 기획인데, 사실 기획을 하려면 일상의 여유들이 좀 있어서 좀 둘러보고, 뭐가 좋을지 고민도 해보고, 같이 머리도 맞대고, 토론도 해보고 해야 하거든요. 지금 공익변론센터가 생긴 지 한 3개월 정도 되는데 당장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차분하게 기획한다거나, 하는 짬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게 제일 아쉬운 부분이죠. 그건 좀 개선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송아람: 사실 조영관변호사님 말씀처럼 공익변론센터의 가장 큰 존재 이유는 기획소송을 활성화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 앉아있는 사람들이 기획소송 거리를 찾아내기는 굉장히 어려우니까 저는 시민들께 공익소송이 될 만 한 것들을 제보 받는 형식을 굉장히 중요시 하거든요. 사실 이메일이나 편지나 전화로 상담을 하다 보면우리 입맛에 맞는 사건은 그렇게 많지 않고, 그렇다고 또 완전히 ‘딱 봐도 상대할 사건이 아니다’ 이런 것도 많지 않고 대부분 사건은 그 어딘가 하나에 걸쳐있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그런 사건은 민변이 해오지는 않았는데, 이제 공익변론센터라는 게 만들어졌으니 회원분들도 그런 사건들을 좀 접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민변에서 약간의 기금이라도 지원해주고 적절하게 사람을 붙여서 공익 사건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분들을 우리 모임을 통해서 도울 수 있다, 이런 느낌을 주고 싶은데 그 매치시키는 작업을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워요.

그리고 저희가 제보하신 사건이 민변이 맡아서 진행하기에 부적절하다고 판단했을 때 그걸 또 말씀을 드려야 하는 것도 굉장히 어렵죠. 사실 시민들 기대에 어긋나는 답변을 드려야 하는 게 어려워요

송상교: 사실 송변호사가 우리 중에는 상담을 제일 많이 하시고, 제일 열정을 가지고 하고 있어요. 시민들하고 소통해서 의미 있는 소송을 기획하는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시민에 대한 인권지원 활동이죠.

센터가 생긴 지 몇 달 안 됐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참 커요. 어쨌든 센터가 만들어지니까 회원들도 거기에 대해서 기대를 하고, 또 시민들도 크게 기대를 하는데, 아직까지는 과도기인 것 같아요.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앞으로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는데 아직 사무처 업무도 함께하고 있는 상황이고, 매우 급하지만 실무적인 일들을 해야 될 게 아직 많이 있어요.

센터가 기본적인 역량 축적 단계를 넘어서 일 년에 서너건 정도 의미 있는 기획소송을 지속적으로 하는 상태가 되면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이 센터가 앞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시민이나 시민단체를 통해 현장에서 나오는 사례들로 소송을 기획할 수 있어야 하고 변호사들끼리 앉아서 신문 본다고 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앞으로 더 시간을 내서 시민들을 만나고 현장에도 가보고 단체들도 방문해보려고 합니다.

회원들도 자그마한변화지만 ‘이주의 변론’ 같은 게 생기면 좋잖아요. 회원들이 변론에 대해서 평소에서 생각들을 많이 하세요. 술자리 같은 데서 ‘이런 변론 해보면 어떨까’,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시는데 그런 것들을 센터로 주시면 저희가 그런 것들을 고민하고 기획하는데 큰 힘이 될 거 같은데 아직까지는 ‘쌍방향 소통이라는 게 쉽지 않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민변의 공익인권변론센터, 그 의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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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공익변론을 하는 곳이 공감도 있고, 희망을 만드는 법도 있고, 회원들은 아니지만 변협에 이런 공익재단도 있죠. 이런 곳들이 요즘 많이 늘어나는 추세인 것 같아요. 민변의 공익변론센터가 다른 곳과 차별화된 지점은 무엇일까요?

송상교: 기존의 공익 전담 변호사 그룹들과는 서로 상호보완, 상호협력관계인 것 같아요. 기존의 공익전담변호사그룹은 다양한 분들이 모여서 구체적인 공익인권의 주제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시잖아요.민변은 하나의 시민사회단체, 인권단체로서 특정한 주제에 집중하기보다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인권을 위해서 역할을 하는 것이고, 민변에 가장 많은 정보가 축적되고 가장 많은 변론이 여기를 중심으로 이뤄져요.

그래서 민변에 공익인권변론센터가 만들어짐으로 해서 기존의 공익인권전담 변호사 그룹들에게는 변론의 정보를 제공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민변이 자체적으로 센터에서 특정 주제를 특화를 해서 할 것인지도 우리가 면밀히 살펴봐야 할 거 같아요. 공익변론의 공백 부분이 있다면 일이 잘 시작될 수 있도록 초기 세팅을 할 것인가 이런 고민이 우리한테 놓여있는 과제인 것 같아요.

이혜정: 변론센터가 회원, 시민과의 접점에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계획은 어떤가요?

개인적인 아이디어로는, ‘이주의 변론’을 반기별로 묶어 회원들에게 배포하거나, ‘이궁’도 계속 자료를 축적해 ‘변론팁’이라는 소책자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송상교: 지금은 낮은 단계의 축적을 하는 상황인 거 같고요. 이런 축적들이 지금 당장은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쌓이면 대단히 큰 자산이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주의 변론’ 같은 코너도, 예컨대 민변이 연말이 되면 ‘올해의 판결’ 이런 거 하잖아요 좋은 거, 나쁜 거. 사실 예전에는 민변 11월쯤 되어서 뭐가 있지 막 찾아보고 이랬는데 <이주의 변론>이 3월부터 계속 쌓이면 매주 올라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제대로 된 판결을 선정할 수 있을 거예요.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가 ‘이궁’ 이런 것 중에 궁금한 변론의 팁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모아서 변론 매뉴얼을 만들어볼 생각이에요. 형사, 민사, 각 주제별로 했던 거.

그런 것들이 일정 단계가 되면 의미 있는 매뉴얼이 되고 매년 업데이트가 되겠죠. 디지털도서관도 이번에 처음으로 틀이 만들어지는 건데 사실 틀만 만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자료가 계속 쌓여야죠. 이주의 변론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거기로 들어가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민변이 제일 못하는 게 사실 뭔가 알리는 거예요. 활동가들도 민변이 제대로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데 어떻게 하면 시민들에게 ‘아, 민변이 이렇게 많은 활동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끔 민변의 활동을 알리고, 시민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그게 가장 큰 고민이에요.

이혜정: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회원이나 시민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말 등 가볍게 정리하고 마무리 지을께요.

이수연: 소장님 말씀대로 위상도 더 높아지고 일도 더 많아질 텐데 거기 사업들이 원활하게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변호사님들 돕는 제 역할도 많이 무거워질 거 같아요. 역량도 부족해서 굉장히 걱정도 많이 되는데… 변호사님들과 함께 잘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송상교: 제가 사실 다른 인터뷰에서도 정부법무공단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처음에는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계속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괴물같은 조직이 되어버렸고, 대법원 판결도 바꿔내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제 역량 있는 변호사 개인의 힘으로는 돌파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여럿이 모여서 조직화된 활동을 해야 이런 것을 넘어설 수 있는 논리를 만들고 정보를 축적할 수 있다는 거죠. 저는 그래서 센터가 중요하다고 봐요.

그러다 보니까 많은 분들이 센터에 기대를 하시는데, 센터가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서 만들어진 거라서 개인적으로도 부담이 돼요. ‘말아먹으면 안 되는데, 뭔가 좀 성과를 남겨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고 조바심이 많이 나요. 그런데 한 편으로는 ‘성과주의에 빠지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도 되게 많이 해요. 몇 년이 될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센터가 의미 있는 활동이었구나’라고 평가받는 게 중요한 거지 지금 당장 의미 있는 가시적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닌 거죠. 그래서 회원 여러분도 함께 좀 호흡으로 보시고 많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송아람: 저는 회원들께서 좋은 사건이라고 생각이 되시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변론하는데 망설이고 계신다라든지 아니면 민변 회원으로서 좋은 공익활동 해보고 싶다 하시면 언제든지 센터로 전화 주시면 최대한 같이 할 수 있는 방안 찾아볼 테니 언제든 전화 주시면 좋겠습니다.

익명: 서울지방변호사협회 프로보노지원센터가 얼마 전에 생겼는데, 유수의 로펌이 여기에 매달 얼마씩 기금을 후원하는 시스템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조금 더 성장하고 그 기능을 조금 더 충실하게 또 하려면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민변에서 말씀하셨던 신입변호사 교육프로그램 등을 센터에서 진행하려면 예산도 있어야 하고 인력도 충원되어야 해서 간단치만은 않거든요. 지금은 어렵게 빠듯하게 첫발을 떼고 있지만 이런 취지들을 잘 읽어 이해하신다면 훌륭하신 선배님들의 따뜻한 후원과 이런 게 현실적으로 좀 이루어져야 되지 않나, 이런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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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 갑자기 지원이 막 몰려들 것 같은데요(웃음). 이상 오늘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월, 2016/06/27-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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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4일 화요일, 청소년 자원활동 프로그램 <원폭투하 70년, 후쿠시마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자원활동 프로그램은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운동의 의미를 알고 활동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올해 2015년은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지 70년, 평화운동에 대해 직접 보고, 듣고, 나누고, 직접 행동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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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자원활동 프로그램엔 회원 자녀를 비롯해 24명의 중·고등학생 분들이 모였습니다. 서먹한 분위기를 풀기위해 간단한 아이스브레이킹 게임을 하고, 조별로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기소개는 ‘서로 소개해주기’프로그램으로 진행했는데 내가 나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옆자리의 친구를 인터뷰한 뒤, 다른 조원들에게 내가 인터뷰한 친구를 소개해주며 서로를 환영하는 식으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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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소개를 비롯한 국내외 시민단체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진 후 본격적으로 오늘의 주제인 ‘반핵’으로 넘어갔습니다. 핵무기, 원자력 발전소, 핵무기 피해자들 등의 이미지를 보며 느낌을 나누고, 한국인 피폭자의 이야기, 후쿠시마 사람들, 그리고 한국의 밀양 할매들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핵·원전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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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지 70년이 흘렀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는데 피폭된 사람 중 10%는 강제 징용된 조선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사고로 비극은 반복됐습니다. 일본 교과서 부교재에는 ‘원전은 큰 지진이나 지진해일(쓰나미)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고 쓰여 있습니다. 핵발전 안전 신화는 깨졌고, 세계1위 수준의 핵발전소 밀집국가인 한국도 원전사고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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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핵발전소, 석탄화력발전소, 송전탑, 송전선로, 변전소 등을 짓고, 그로 인해 ‘밀양’처럼 마을 공동체가 허물어진 사례를 살펴보며 아무생각 없이 쓰고 있는 ‘전기’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이어서 밀양 할머니들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과 히로시마에 보낼 지지의 현수막 만들기 시간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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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소감 나누기 시간에서 많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내가 그린 그림과 편지가 밀양 할머니, 히로시마에 직접 전달된다는 게 의미 있고, 기뻐요”, “그동안 차타고 무심결에 송전탑을 지나쳤는데 여기에 얼마나 많은 폭력이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하게 되었어요.”, “일본의 핵투하로 인해 우리나라 광복이 이어졌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곳에 우리나라 피해자가 있는지 몰랐어요.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어 좋았어요.”, “기대 안하고 왔는데 핵에 대해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이번 계기로 앞으로도 관심가지고 찾아볼 것 같습니다.”

 

20150804_청소년자원활동프로그램<원폭70년, 후쿠시마에서불어오는바람>

 

처음에는 서먹서먹한 분위기였지만, 같이 고민하고 토론하며 현수막까지 직접 만들고 나니 참가자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갔던 것 같습니다. 따스한 마음이 담긴 청소년 자원활동가들의 현수막, 어떤가요? ^^ 

 

직접 듣고, 보고, 나누고, 행동하며 배우는 <참여연대 청소년 자원활동 프로그램>, 다음 방학 때 또 찾아뵙겠습니다!

 

목, 2015/08/0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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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리본 공작소> 자원활동가 모집

 

"이제 사월은 내게 그전의 사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그전의 바다가 아니다."

 

어느덧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다가옵니다.

많은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외치며, 

같은 마음으로 울고, 슬퍼하고, 분노하였습니다.

세월호로 희생당한 분들을 잊지 않기 위해 시민들과 노란 리본을 만들고자 합니다.
<노란 리본 공작소> 자원활동에 많은 신청 바랍니다.

 

* 일정
- 매주 금(3/25, 4/1, 4/8, 4/15) 오후 2시~6시, 총 4회
- 매주 수(3/30,4/6) 오후 6시~10시, 총 2회 (청소년 자원활동 참여 가능)

 

* 장소 : 참여연대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9길 16)

* 문의 :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 02-723-4251, [email protected]

* 세월호 2주기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노란 리본 공작소를 운영할 예정입니다.

 

>>자원활동 신청하기 (클릭)

 

월, 2016/03/2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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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변 대 담: 선배에게 길을 묻다

민변 회원이 1,100명에 이르렀다. 누군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라지만 아픈 청춘을 겨우 버텨냈더니 혹독한 청년 변호사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티도 낼 수 없다. 난 변호사니까. 그런데 또 막막하다. 이럴 때 따스한 봄밤의 북두칠성 같은 길잡이가 나타나 길을 헤매지 않도록 안내해주고, 속내도 시원스레 얘기해 주는 선배가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민변 회원이 늘어난 만큼 같은 고민, 같은 궁금증을 가진 후배들이 부쩍 늘어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준비했다. 선후배 대담, “선배에게 길을 묻다”

chapter1. 선배 [先輩] : 지위, 나이, 덕행, 경험 등이 자기보다 앞서거나 높은 사람

태양마저도 녹아버릴 것 같은 타는 여름의 한 가운데에서 선·후배 변호사 4명이 어색하게 마주 앉았다. 류신환, 조숙현(연수원 30기) 변호사와 이 두 선배를 만나러 온 후배 심재섭(연수원 44기), 김경은(변시 5회) 변호사는 민변에 대해서도, 선배들에 대해서도, 변호사의 업무와 일과에 대해서도 궁금한 것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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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섭(이하 심): 저는 홍대 앞에서 사무실을 개업했습니다. ‘법률사무소 단’이라고, 딸 이름을 따서 지었습니다. 임신 중이었던 아내랑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합정동 카페거리 근처까지 갔는데 비가 내려서 거리 분위기가 참 운치 있고 좋더라고요. 그런 동네라면 출근할 맛이 나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아내랑 “여기로 하자”고 결정했습니다.

아직은 철이 없어서 그런지 수입에 대해 크게 마음이 초조하거나 하진 않습니다. 선배 변호사들이 종종 “수임료를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 같은 조언을 해주시는데 아직 수임료나 수입 면에서 그 정도에 미치지는 않습니다. 강문대 사무총장님이 커피를 사주시면서 “자네, 월급 500만 원은 가져가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뭔가 잘못된 거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아직까진 계속 잘못되어있는 거 같습니다(웃음)

류신환(이하 류): 저는 공익법무관 생활을 하고 2004년부터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거든요. 저는 취업을 해서 고용변호사로 시작했어요. 저는 고용이 안 되면 개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내가 개업해서 잘 할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해보면 아니었을 거 같아요. 지금은 내가 개업을 하면 잘 할 것 같은데, 그때는 아니었어요. 이렇게 말하면 조금 미안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사실 개업 변호사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취업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어떤 버팀목 같은 게 있는 것과 같아요. 심 변호사가 나보다 훨씬 더 독립적으로 잘 크고 있는 거지.

김경은(이하 김): 저는 변호사시험 5회 합격하고 대한변협에서 연수를 받다가 지금은 법무법인 향법에서 실무수습으로 3일째 일하고 있어요. 지금 현재로서는 고용으로 취직을 생각하고 있는데 변호사님 말씀 들으니까 저도 개업 쪽으로 생각이 기우는 거 같네요.(웃음)

저는 여성위원회 활동 하면서 조숙현 변호사님을 많이 만나 뵙고 있어요. 그런데 민변의 선배 변호사들을 만나고 대하는 것이 어렵더라구요. 잘못했을 때는 ‘혼나면 어떡하지?’하는 생각도 들고….

조숙현(이하 조): 그럼 혼나면 돼.(일동 웃음)

김: 그게 무서우니까…….(웃음) 아무튼 민변 선배님들과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는지 궁금해요.

조: 그게 어렵지. 여성위 엠티를 안와서 그래요.(웃음) 우리가 힘든 일을 하고 있으니까 마음이 안 좋고, 회의 때 모니터링 하면 이상한 댓글들 읽고 있어야 하고, 그러니까 회의 때는 표정들이 안 좋아져요. 그런데 MT나 송년회 같은 친목 행사 자리에서 후배들을 보면 평소에 사건들을 통해서 만나는 것보다 편하죠. ‘실수하면 어떡하지’ 하는 건…… 실수를 안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실수를 하면 지적도 받고, 선배들도 다들 그렇게 실수하면서 컸어요.

김: 최근에 강남역 사건 관련해서 선배 변호사께서 저한테 경찰에 제출한 서류의 복사를 맡기셨어요. 그런데 제가 컴퓨터에 파일로 저장되어있는 서류를 굳이 복사해서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를 못해서 그걸 안 한 거예요. 그러다가 갑자기 그 분이 경찰에 제출한 서류의 사본이 필요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런 실수를 하고 나면 저 때문에 선배 변호사들의 일이 많아지니까 죄송한 생각이 들어요.

조: 그럼 ‘최종 제출본의 사본을 내가 꼭 갖고 있어야하는구나’라는 사실을 하나 배운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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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사실은 변호사라는 게 사건들이 쌓여가면서 시야가 더 넓어지는 거 같아요. 우리가 이전에 법률공부를 하고 실무공부를 하고 했지만 그건 그야말로 공부 수준에 있는 거고 이게 내 걸로 만들기 위해서는 현실에서의 숙련이 필요한 거죠. 변호사 업무 했을 때 많아봐야 1년에 몇십 건이나 하겠어요? 그 중에는 법률적인 내용이 서로 겹치는 사건도 많고, 변호사가 하는 일 중엔 굉장히 간단하고 단순한 업무도 많잖아요. 사실은 우리가 배웠던 많은 법적 이슈들을 실제로 경험하는 건 많지 않다고요. 제일 좋은 건 내가 사건을 맡아서 깊이 공부하는 거죠. 그 사건과 연관된 다른 판례들을 열심히 공부해보고, 이 사건에서 이 부분을 어떻게 하면 결과가 어떻게 달라질지 스스로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것이 제일 좋은데 또 공부나 경험이 부족하면 그것 자체도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저는 법률신문 추천해요. 판례공보는 판례 자체니까 잘 안 들어오잖아요. 그런데 법률신문은 기사 형식으로 제공하니까 좀 더 실감나고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어요. 법률신문 일주일에 두 번 나오는데 굉장히 많은 사건들이 나오거든요. 그걸 잘 공부하면 베스트지만 이런 사건이 있구나, 이런 법적 문제가 있구나 하는 것만이라도 차곡차곡 쌓아두면 몇 년이 지나면 어느새 자기가 확 달라져있는 걸 느낄걸요.

chapter2. 자랑과 멀미

심: 저는 선배님들 자랑하는 게 되게 듣고 싶어요. 사실 저는 자랑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후배들 만나면 엄청 뻥튀기 하면서 허풍을 치기도 하고요. 가끔 판결 잘 받은 거 있지 않습니까. 그런 거 사무실 책상에 쓱 올려뒀다가 “아니 뭐 이런 걸” 하고 시치미 떼고 그래요(웃음). 저는 아직 젊고, 후배들하고 나이 차이도 많이 안 나는데도 가끔 후배가 어린애처럼 보일 때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민변에서 강연하시는 선배님들은 저한테는 정말 높은 선배님인데 꼬박꼬박 존댓말 해주시고, “원래 그런 사건이고 저는 그저 열심히 했을 뿐”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모두 이렇게만 말씀하시면 어떻게 ‘드라마’가 탄생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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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사건이 잘 마무리되어도 내가 잘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생각은 잘 안 드는 거 같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을 하면서 ‘결과가 잘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좀 더 많이 드는 사건은 ‘내가 뭔가 부족하지 않았을까?’ 라는 걱정이 많이 들고요.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기분 좋은 경험으로 남아있는 건 이혼사건이었는데 4살 정도 되는 아이를 남편이 데리고 있으면서 아이를 못 만나게 하는 상황이었어요. 엄마는 이 아이를 데려오고 싶다는 의지가 굉장히 강했고요.

우리나라 재판 경향이 이혼소송과 별거 기간 중에 양육하고 있는 측이 주양육자가 되도록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처음에 사전처분 자체에서 굉장히 이례적으로 면접교섭을 길게 하면서 재판 결과 엄마가 양육자 지정을 받았어요. 처음 사건을 시작할 때 이 사람의 모습은 아이를 뺏기고 힘든 결혼생활을 보냈던 것 때문에 너무 핼쑥하고 초췌했거든요. 재판이 애가 5살 때 시작해서 초등학교 입학할 때 끝났어요. 근데 아이를 데리고 오고 나니까 얼굴이 정말 화사하게 피는 거예요. 그 사람 재판 끝나고도 2년에 한 번씩 찾아오고 그랬어요. 어떤 사람의 인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되게 기분 좋았어요.

심: 그러고 나면 자랑하고 싶은 생각 안 드세요? 저는 무죄 판결 받으면 연수원 교수님들한테 자랑하고 그러거든요. 검찰 교수님한테 교수님 어제 누구 검사 장난 아니었다고 위로해달라고, 잘 키웠다고 칭찬해주시라고 그러고. 저희 아내는 법조계가 아니니까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잘 모르거든요.

조: 사건이 하나 끝나고 나면 그 사건 관련 기록을 볼 때마다 멀미가 나요. 사건이 상고심쯤 가면 사건 자료를 보면서도 그렇고요. 가끔 여성위에서 옛날에 있었던 사건을 가지고 월례회를 할 때가 있는데 끝난 지 얼마 안 된 사건을 보면 속이 울렁울렁하고 그래요.

chapter3. 민변은 괴로워(?)

심: 변호사로서 일하면서 민변인 걸 드러내는 게 불편했던 적이 있나요? 전 가끔 관공서를 갈 일이 있거나 그러면 신경 쓰이거든요.

류: 전 직장에 있을 때 큰 기업들이 클라이언트일 때가 많았어요. 그때 우리 사무실이 민변 계열의 사무실, 민변 회원이 많은 사무실이라고 인식되는 게 싫었어요. ‘민변=반 기업’이라고 사회적으로 오인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럴 때는 위축됐죠. 민변이 아니라고 거짓말하지는 않지만 언급을 안 할 때가 많았어요.

심: 요즘은 그냥 검색 같은걸 많이 하더라고요. 작년에는 특히 더 민감했는데, 사건 하나하나가 아쉬운 상황에서 할아버지들이 검색해 보시고 전화하시고 그랬거든요. 최근엔 그런 전화 하시는 분들은 어차피 나한테 사건을 의뢰할 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조: 어차피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민변 관련된 사람만 만나는 건 아니니까요. 나는 민변 활동을 비공개로 하는 회원들도 존중해요. 민변 활동을 공개적으로 하면 직장을 떠나야 할 수도 있으니까.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정도의 활동을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류: 오히려 그런 경우도 있지 않나? “민변 변호산데 이런 식으로 해도 되냐” 라는 식으로.

조: 나는 공익 사건을 무료 혹은 저가로 생각하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공익적인 의미가 있다는 이유로 무조건 무료 변론을 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그 사람이 지불할 만한 능력이 있으면 당당하게 요구해야 해요. 정말 사회적 의미가 있어서, 그 사람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이거나 제도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돈을 받지 않더라도 그 일을 하겠다는 결의가 있다면 하면 돼요. 하지만 나한테 너무 무리가 되면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특히 어느 정도 지불능력이 있는 공익 재단들이 장애, 여성, 아동, 노동과 관련된 일이라는 이유로 긴급한 구조가 필요한 영역이 아닌데도 무료자문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그런 식으로 변호사들의 공익활동이 이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혜정(이하 이): 혹시 공익 사건을 하면서 사람들로 인해 실망하거나 상처받은 적은 없나요? 제가 최근 그런 일이 있어서요. 촛불집회 사건이었는데, 1심에서 유죄 받은 것을 제가 항소심 맡아 정말 열심히 해서 결국 무죄를 받았어요. 그런데 이 사람은 1심이 어떻고, 자기는 집회에 참여 안했다는 등 유독 집착이 심한 분이어서 법정에서도 제 서면과 다른 얘기를 하고…무죄는 받았지만 1심, 2심 모두 그 사람이 집회참여는 증거로 인정했는데 그게 잘못 됐다고 무죄 받고도 언성 높이며 따지는 거예요. 고맙다는 말은커녕 실랑이를 하게 되니 제가 참다 못 해 전화를 끊었어요. 그러고 나니 심장이 막 뛰고 한동안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조: 아니, 그거를 당연하게 생각한 사람이 이상한 거고. 내가 이렇게 엄청난 일을 했다는 걸 알려줘야 돼요.

이: 제가 아직 도량이 안 돼서 그런 사람을 못 다루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류: 그런 사람에게는 보답을 못 받는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 보답은 그 사람이 아니라 이 사회의 다른 사람들이 줄 거예요. 보답을 바라는 건 인지상정이지만, 그 보답을 다른 사람들이 받는 보통의 방식으로 받기를 바란다면 그런 보답은 기다려도 오지 않아요. 대신 다른 방식의 보답은 오죠.

심: 가끔은 너무 화가 나서 욕이라도 하고 싶은데, 상대가 제가 민변 변호사라는 걸 알잖아요. 내가 상대에게 욕하는 게 ‘민변이 일반인한테 욕을 한다’ 이런 상황이 될까봐 고민이 들어요.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어요. 간사님 그 진상 있었잖아요?

김서정: 제가 출근 일주일 쯤 됐을 때였는데, 북한 해외식당 탈북 종업원 사건으로 한창 시끄러울 때였거든요. 야근 할 때는 사실 사무처로 오는 전화 안 받아도 되는데, 혼자 야근하다 무심코 전화를 받은 거예요. 그런데 그 분이 너무 진상인 거죠. 끊으면서 화가 나서 아무도 없는 줄 알고 혼잣말로 욕을 했는데 마침 심 변호사님이 들으셨어요.

심: 그 사람이 다시 전화를 했길래 제가 받아서 욕을 좀…… 했었나? 근데 끊고 고민이 되는 거예요. ‘아, 이게 내 사무실이 아니었는데……’ (일동 웃음) 그리고 몇 주 뒤에 채희준 위원장님이 탈북자들, 납북자 가족들과 인신구제청구소송 건으로 면담을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저는 분명히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민변의 선배 변호사님들은 ‘허허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 이런 경우에 일일이 대응하며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어요. ‘전화 끊겠습니다’ 하고 끊으면 돼요. 시민들이 진보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도덕적 너무 높아요. 사소한 걸로 트집이 잡혀서 이상하게 내가 사랑하는 조직에게 피해를 줄 수 있거든요. 그런 상스러운 말에 똑같이 대꾸를 해봐야 나만 힘들어요. 우리가 왠지 상대방 말이 안 끝났는데 끊으면 안 될 것 같잖아요? 그럴 필요 없어요. 욕하면 끊으면 돼요.

chapter4. 우리 서로 친해지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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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사실 민변에 있는 변호사님들은 되게 훌륭하다는 선입견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생각도 사실 편견이죠, 편견. 막연한 존경심 같은 것으로 선배들을 대하다 보니까 어려웠던 것 같아요. 저 선배들이 기대하는 후배가 되고 싶은데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나를 까발려놓고 보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거지. 아직도 그런 사람이 아니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할 것 같고. 뭔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인 것 같고. 그래서 자꾸 회피하고 싶고, 그런 것들이 관계를 더 어렵게 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 돌아보면, 민변에서 민변 회원으로 활동을 한다는 게 꼭 정해진 객관적 기준을 충족해서 인격적으로나 업무적으로 훌륭한 사람들만 하는 것은 아니에요. 어느 면에서나 훌륭하신 분들도 있지만, 꼭 그런 분들만 있는 건 아닌 거죠.

조: 어떤 면에선 다들 훌륭하신 분들이에요. 그런데 그게 어떤 이상향의 존재는 아니라는 거죠. 사람에 대해서 어떤 이상향을 상정해놓고 그 사람을 바라보면 그 사람이 가진 인간적인 부족함이나 그 분이 잘 모르는 어떤 부분에서 갖고 있는 잘못된 생각에 굉장히 큰 배신감을 느끼고 그 사람의 모든 걸 다 부정할 수도 있거든요. 그 선배들은 하나하나가 훌륭한 점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모든 부분에서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 거죠.

류: 솔직하게 소통하는 게 참 중요한데, 예를 들면 지금 우리 사이에 나이나 경험의 차이가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소통할 준비가 되어있어요. 나이든 세대가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런데 이건 일방적인 열림이고 (젊은 후배들한테) 어떻게 다가가는 게 좋은지 잘 모르죠. 생각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마음 터놓는 게 다르기 때문에 조금 더 노력해야 하는 게 분명하지만 어쨌든 민변 선배들도 후배들이 먼저 다가와주기를 원할 수 있어요. 그걸 알아차려준다면 선배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열쇠를 얻은 것과 다름없죠. 우리의 마음을 알아차려준다면. 알아줬으면 좋겠네.(웃음)

조: 어떻게 하면 ‘꼰대’ 소리 듣지 않으면서 후배들하고 친해질 수 있을까. (선배 변호사들도) 그게 고민이죠.(웃음)

심: 저는 선배 변호사 분들이 어려워서, 카톡하시면 사무실 직원 통해서 지금 선배님 통화 가능하신지 여쭤보고 답장하고 그랬거든요. 뭔가 먼저 말씀드리는 게 어렵기도 하고, 또 제가 그 분들이 얼마나 바쁘신지 눈에 보이는데 그냥 연락드리기가 죄송스럽기도 하고요.

조: 후배들이 ‘다나까’ 말투로 이야기하고 경직되게 대하면 좀 거리감을 느끼고, 나한테 다가오지 말라는 메시지로 느껴져요. ‘저 친구는 나이 많은 우리랑은 어울리고 싶지 않구나’(웃음) 하는 마음도 있고.

내가 생각하는 민변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랑 일상적인 이야기까지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점이에요.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사실 많지 않거든요. 그런데 민변에서 말 통하는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만나서 내가 만난 진상 의뢰인들이나 잘못된 정부정책도 욕하고, 아이 키우다 아이랑 싸운 이야기도 하고요, 정기적으로 만나 정말 모든 걸 다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기는 거죠. 최근 들어 후배들이 특히 깍듯하게 대하는데, 내가 나이가 들었나 싶기도 하고 불편해요.

가끔 그냥 무작정 찾아와서 제가 하는 일을 물어보는 친구들이 있어요. 로스쿨 학생이 찾아온 적도 있고, 중학생이 찾아온 적도 있었고. 제 친구 아이들이 중학생 쯤 되면서부터 직업 탐방을 할 때 저를 찾아오는 친구 아이들이 많았거든요. 그게 아니더라도 대개는 부모님을 통해서 찾아오는데. 그 아이는 그냥 나를 검색을 해서 나한테 메일을 보낸 게 너무 기특한 거지. 사실 메일 내용이 다짜고짜 자기가 언제 언제는 연락이 안 되고 문자로만 연락할 수 있다고 그러는데…(웃음) 그런데 그게 너무 예쁜 거예요. 보통 다른 아이들은 부모의 소개로 만나서 면담을 했었지만 직접 알아서 메일을 보내는 그 용기가 너무 좋다고 생각해서 그 친구를 만났었죠.

두 분도, 저희 둘보다 더 위의 선배들에게도 아 저 선배님하고 밥 한번 먹어봤으면 생각이 들면 그냥 메일을 보내요. ‘인사드리고 싶어요’라고 하면 정말 바쁘면 ‘나중에 연락해라’ 라고 하시지 그냥 거절하지는 않으시니까 너무 어려워할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이: 사실 오늘 후배님들이 선배님 만난다고 많은 질문을 준비했는데 한정된 시간 때문에 이쯤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아요. 아쉽긴 하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마지막으로 각자 소감 한 마디 부탁드릴게요.

류: 저는 언론위원회에서 초년차 후배님들과 얘기를 나눌 기회는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후배들과는 그럴 기회가 없었거든요. 오늘 해보니까 ‘소통의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이제 민변 회원이 많으니까 그런 소통이 좀 어려울 수는 있지만 오늘 얘기를 나누고 나니까 ‘나오길 잘했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좋았어요.

조: 선배 자격으로 인터뷰 섭외 연락을 받았을 때 ‘훌륭한 사람들이 많은데 왜 굳이 나를…?’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민변 회원들 중에 중간에서 조금 아래, 이 정도의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 정도가 조금 더 편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오늘 이야기 해보니 ‘후배들이 생각보다 어려워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십년 차는 별로 멀게 느끼지 않고 있었거든요. ‘내가 조금 더 편하게 다가가야 되는구나’ 싶고요, ‘후배들이 생각보다는 나를 더 어렵게 여기는구나’ 하는 반성도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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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저는 민변 활동도 열심히 하고 싶고 선배 변호사 분들하고도 가까워지고 싶긴 한데 선배 변호사 분들을 대하는 데 약간 부담감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두 분 말씀을 들으니까 ‘내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구나, 먼저 다가가야 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 저는 제가 두 분 선배님 년차가 될 때까지 민변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다지 큰 재미도 없고요.

조: 그게 재미있는 거예요.(웃음) 이만한 재미가 있는 데가 없어요.

류: 다른 재미있는 게 없어요, 변호사 활동에.(웃음)

심: 그래서 ‘재미있게 해야지, 노력을 더 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 두 분과 말씀 나누면서 보니 크게 부담 갖지 말고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너무 초조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신입회원들이 늘어나면서 민변도, 회원도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소통이 필요함을 느낀 차에 서로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오늘의 자리를 마련했다. 처음의 어색함은 온데간데없이 쏜살같은 시간이 얄미울 정도로 민변의 선후배는 살가웠고, 서로 간의 할 말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후배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다음 날 너무도 좋은 자리에 참여하게 되었다며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서로를 위해 한 걸음 다가가려는 노력, 이것이 진정한 소통이 아닐까 한다.

혹시 또 다른 소통의 자리나 참여의 기회를 원하는 회원이 있다면 출판소통팀에 문의해주시길!

금, 2016/08/1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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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고향과 나름의 이유를 가진 이주민들이 우리 곁에서 살고 있습니다. 단일한 배경과 같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끼리 사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른바 우리는 문화 다양성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 다양함이 서로 어울려 조화롭게 돌아가는 사회를 ‘다문화 사회’라고 합니다. 다문화는 단일한 문화를 내세우는 것에 대치되는 상태 혹은 그 태도입니다.

1990년대 말, 국제결혼과 외국인 근로자의 이주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한국 역시 문화 다양성의 사회로 진입했습니다. <재한외국인처우개선법>, <다문화가족지원법> 등의 법률이 만들어지고,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설립 등 각종 정책이 쏟아졌습니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다문화정책은 이제 10년이 되어갑니다. 희망제작소는 새로운 시민으로 우리 곁에 찾아온 이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려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다문화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구의 일환으로 지난 10월 말 두 이주여성을 만났습니다.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번역사로 일하고 있는 이주여성 나랑체첵(몽골어 통번역, 6년째 근무) 씨와 주영애(중국어 통번역, 3년째 근무) 씨입니다. 나랑체첵 씨는 2004년에, 주영애 씨는 1997년에 한국에 왔습니다.

우리도 한국인이에요

사람들은 두 사람을 한국인으로 대하고 있을까? ‘혹시’하고 물은 대답은 ‘역시나’였다.

“말을 안 하면 잘 몰라요. 입을 열면 외국인이냐고 묻죠.” (나랑체첵)

유창한 한국어 실력으로 인사를 하던 주영애씨는 외국인이냐는 질문이 난감하다고 했다.

“저는 이미 귀화해서 한국인인데, 중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다들 외국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는 사람은 나쁜 뜻이라고 생각 안 하지만, 듣는 입장에선 상처가 되더라고요.” (주영애)

두 사람은, 요즘 많이 회자하는 다문화 가정, 다문화 아동, 다문화인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많은 듯했다.

“다문화라는 것은 여러 문화가 어우러진다는 아름다운 의미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못 사는 국가의 여자들이 한국에 와서 결혼 못 하는 남자들과 결혼하는 것’이라고 인식되는 것 같아요. 끌어안아야 하는 짐, 부담처럼 보이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저는 20년 가까이 한국에 살고 있고, 또 한국인으로 살고 싶은데 말이에요.” (주영애)

주영애 씨와 나랑체첵 씨는 그동안 진행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지금은 그곳의 직원이 되어 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다문화사업에 대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생긴 지 10년이 되었거든요. 저는 센터가 처음 생길 때부터 이용해왔어요. 센터는, 열악한 환경에서 코리안드림을 위해 한국에 온 사람들을 끌어안기 위해, 그리고 그들을 한국 사람답게 만들기 위한 곳이라고 봐요. 그런데 자국민도 잘 챙기지 못하면서 왜 외국인에게 예산 낭비하냐고, 역차별 아니냐고, 한국인들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데 왜 이주여성 일자리만 지원하냐며 반대의견이 나올 때는 너무 속상합니다.” (주영애)

▲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홈페이지(namyangjusi.liveinkorea.kr)

▲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홈페이지(http://namyangjusi.liveinkorea.kr)


눈치, 성과 압박, 해고의 두려움… 한국의 사회생활

구제대상으로 들어와서 한국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당당한 사회일원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안 보는 것 같다며 주영애씨는 토로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일하게 되면서 왜 외국인에게까지 일자리 주냐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당시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했는데요.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각각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일하는 외국인 직원은 1~2명이지만, 한국인 직원은 더 많다고요. 즉, 우리 같은 사람들 일자리가 한 개 생기면, 한국인들 일자리도 덩달아 더 많이 늘어나는 게 아닌가’라고요.” (주영애)

곱지 않은 시선에다 엄청난 경쟁률까지 뚫고 하게 된 통번역사 일이 할 만한지 물었다. 녹록지 않다는 표정이 두 사람의 얼굴을 스쳤다.

“통번역사 제도는 2009년부터 시작됐어요. 현재 전국에 300여 명의 (이주여성)통번역사가 있는데, 근무 기간이 짧아요. 우선 한국인들 속에서 적응하기가 어려워요. 행정업무 처리하기도 어렵고, 통번역 외에 센터의 다른 사업도 해야 하고요.” (나랑체첵)

‘일자리는 좋은데, 사회생활 자체가 어렵다’고 나랑체첵씨는 표현했다. 더 자세히 말해달라고 했다.

“우리는 눈치 없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주영애)

“그건 저도 인정해요.(웃음)” (나랑체첵)

한국의 사회생활에서 규정이나 매뉴얼보다 중요하다는 ‘눈치껏 잘하기’. 이들에게는 생소하고 어려운 문화인 것이다.

“직장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느껴요. 중국이나 몽골은 수평관계인데, 한국은 수직관계인 거 같습니다. 눈치로 배워야 하는 게 많아요. 이런 부분은 아직도 어렵죠.” (주영애)

“저는 행정적인 부분이 제일 어렵고 힘들었어요. 뭐 하나 하려면 기획서, 보고서 등 써야 할 게 엄청 많아서 처음엔 엄청 어려웠어요. 물론 하면서 엄청 성장했지만요.(웃음)” (나랑체첵)

눈치로 시작된 이야기는 일자리 처우 개선까지 이어졌다. 6년째인데 막내처럼 일해서 답답한 점, 최저임금이 안돼서 8시간에서 7시간 근무로 바뀌었지만 업무량은 여전하다는 점, 그런데도 성과는 전년 대비 늘 좋아야 한다는 점, 평가를 통해 하위 10%는 재계약에서 탈락하기 때문에 압박도 많다는 점 등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꿈에 그리던 ‘사무직’이고, ‘배울 수도 있는’ 일인데 유지하기 어려운 게 안타깝다고 두 사람은 말한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주영애 씨는 출근하는 데만 2시간 남짓 걸린다. 무려 4시간 가까이 걸리는 시간을 감수하며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는 한국 오고 20년 동안 안 해본 일 없을 정도로 고생했다며 눈시울을 붉히더니 대답했다.

“전문직을 선호해서 이곳으로 왔어요. 단순히 경제적인 것만 고려했다면 안 왔을 거예요. 지금까지 일한 곳 중 여기 급여가 제일 적으니까요. 그간 한국 생활을 하며 어려움을 겪은 한 사람으로, 다른 다문화가족에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주영애)

“한국 처음 왔을 때 남편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남편은 좋은 사람 찾아가라고 했지만, 나는 젊었으니 닥치는 대로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느냐 말하고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하지만 어려운 건 어려운 거더라고요. 그러다 통번역사 기회가 와서 정말 기뻤어요.” (나랑체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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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선배로 이끌고 다독여주기

한국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지만 자신들은 그 단계를 넘어 여기까지 왔으니,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갈 이주여성을 돕는 일을 하고 싶고 또 잘할 수 있다고 했다.

“결혼이민자들의 입장을 잘 알고 있고, 시행착오도 먼저 겪었으니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크죠. 또 그들 입장에서도 우리가 다가가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요? 제 도움을 받은 사람이 고마워하거나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저 자신이 쓸모있는 사람으로 느껴져요. 그게 가장 큰 보람이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죠.” (나랑체첵)

“저는 (통번역사 일을 한 지) 만 3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그동안의 저 자신을 평가하자면, 놀랄 만큼 많은 성장을 했다는 거예요. 가장 값진 건 한국에서 직장다운 직장을 처음 가지게 된 거죠. 이전에 15년 일했던 것 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주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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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다문화가정 서포터’ 회의 모습. 서포터들은 이주여성들이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돕는다.

두 사람은,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한국에 잘 정착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들의 이야기가 다른 이주민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제가 느끼는 보람은, 고통의 시기를 겪고 있는 이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앞에서 줄을 끌어주는 것 같은 느낌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 사람들에게 제가 교훈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어떻게 하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영애)

경기도의 경우, 이주여성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이용률은 18% 정도다. 두 사람은 숨어있다시피 하는 여성들을 발굴해서 연결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은행, 버스 이용 등의 생활 지원을 하고요.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어요. 제일 중요한 건 잘 안아주고 다독여주는 것인데, 제가 결혼이민 선배다 보니 정보도 많이 주려 하고 잘 이해해주니 많이들 따라오시더라고요.” (나랑체첵)

“작년부터 검정고시반을 맡아서 하고 있어요. 15명이 참여해서 11명이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졸업장을 수여했는데요. 다들 마치 대학 학사학위를 받는 것처럼 기뻐하시더라고요. 덩달아 저도 뿌듯했죠.” (주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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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검정고시반’ 주말 스터디


실질적으로 무언가 할 수 있도록

결혼이주여성들이 목말라 하는 정보 대부분은 취업과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 취업도 중요하지만 언어나 한국의 문화를 먼저 익히는 게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에 관해 물었다.

“물론 언어도 중요하죠. 하지만 오셔서 맞벌이해야 하는 분들도 있어요. 빨리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겠죠. 그분에게 중요한 것은 언어보다 돈인 거죠. 이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그 사람의 사정이고 상황이라고 생각했으면 해요. 그리고 돈을 벌다 보면 한국어가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에 결국 언어를 배우러 오게 돼요. 이 지역만 해도 (이주여성의) 50% 이상이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해요.” (나랑체첵)

그렇다고 돈을 달라거나 특별한 것을 지원해달라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무언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이주여성의 가정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데에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주여성이 일자리 찾기는 어렵고, 그렇게 되면 남편이 혼자 돈을 벌어야 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혼자 돈 벌고, 거기에 아이까지 있으면 힘들어요. 가정에 불화가 생길 가능성도 크고요. 이주여성들은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한국 사회에서 일어설 기회가 없어지는 거죠.” (나랑체첵)

“아이가 있는 분들은 긴 시간 일하지 못합니다. 시간 짧은 것, 아르바이트 같은 것을 하고자 해요. 그래서 시간을 탄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봐요.” (주영애)

높은 취업 욕구보다 준비와 노력이 부족한 이주여성들도 물론 있다. 두 사람은, 당장은 아니어도 장기적으로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꾸준한 취업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결혼이민자분들이 아예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에요. 결혼이주여성이 도망가는 사례 등은 좋지 않은 여론을 만들고 큰 화젯거리가 돼요. 하지만 잘하고 계신 분들도 많아요. 저는 모든 게 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몇 년이 지나면 적응하고 한국 사람이 되잖아요. 가끔 다문화정책이 잘 되고 있나 의문이 들 때가 있는데요. 숫자와 실적에만 매몰되기 때문이죠. 실제 도움이 되지 않는 사업을 한다거나, 매번 오는 사람들만 지원받을 때도 그렇죠. 많은 사람이 동등하게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해요.” (나랑체첵)

다문화 체감도 높이고 다름 인정하는 태도 필요해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다문화에 대한 인식은 이중적이다. 인터넷에 난무하는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댓글들이 보여주는 한 면과 공식적으로 나타나는 대체로 신중하고 호의적인 인식조사 결과가 또 다른 한 면이다. 2015년 서울서베이를 보면, 자녀의 외국인과 결혼, 외국인 친구, 외국인 이웃 등에 대한 태도는 종합적으로 60%가 호의적이었고, 결혼이민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해소에는 50.9%가 긍정적이었고, 일자리를 뺏긴다는 우려는 40.5%였다. 여기에 대해 주영애 씨와 나랑체첵 씨는 여전히 낮은 다문화 체감도를 높이고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은 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다름을 인정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결혼이민자들이 이렇다저렇다 이야기하지 말고, 그 상태 그대로 다름을 인정해주고, 다르면 이상하게 취급하는 시선만 아니었으면 해요. 그리고 잘 적응해서 성공하고, 잘 살아가는 본보기라고나 할까, 이런 사례를 자주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주영애)

“저도 예전에는 외국인인 걸 숨기고 싶을 정도로 조용히 지낸 적이 있어요. 시선 자체가 차가워서 자꾸 주눅이 들었어요. 물론 지금은 숨기지 않고 말하죠. 이건 제가 지금 당당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갑자기 당당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에요. (나랑체첵)

주영애 씨는 공교육에 진입하지 못하는 중도입국자녀가 너무 많다며, 이들을 잘 끌어안고 한국문화에 잘 융화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회와 역할을 주고 함께 성장할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옆집에 베트남 사람이 와서 살지만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다문화가 무슨 상관이냐고 하지만 학교와 직장을 살펴보면 다문화가족 출신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출산시대라고 하는데, 다문화가족은 다둥이인 경우가 많아요. 여기에 중도입국자녀들도 있는데, 이 아이들이 적응 못 하는 경우가 수두룩해요. 사람들이 체감을 못 하는 게 이런 것들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 중도입국자녀가 한국사회에 문젯거리로 전락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나만 안전하면 된다고 하지만, 안전지대가 없어질 수도 있어요. 이들이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 않게 하려면 지금 잘 해야 합니다.” (주영애)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차별과 배척의 시선만을 느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제도와 지원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있지만, 무엇보다 따뜻했던 것은 처음 접했던 한국인들의 도움이었다.

“제 아이 역시 중도입국자녀예요. 적응을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지금 같으면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을 이용했겠지만, 10년 전에는 그런 게 없었잖아요. 그러다 한국 아주머니와 대학생들이 외국인 근로자와 학생들에게 한국어 가르치는 행사가 있다고 해서 아들과 함께 갔어요. 열정적으로 가르쳐주는 걸 보고 ‘한국 사람들이 무조건 외국인을 싫어하는 게 아니구나’,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엄마 말은 안 듣던 아들이 그때 한국어 가르치던 누나 말은 잘 들어서, 지금도 연락을 하더라고요.” (주영애)

damunhwa

우리는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인터뷰가 희망제작소 뉴스레터에 실린다고 하자, 나랑체첵 씨는 어떤 사람들이 독자냐고 물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관심 가진 분들이라고 답하니,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고 했다.

“이주민들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눈치가 없어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한국 사람처럼 행동하길 바라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일률적인 행동을 기대하지는 않았으면 해요. 우리는 다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같아지려 해도 시간이 걸리지만, 같아지려 하는 게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우리 (이주민들의) 문화도 존중해주길 바라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런 한국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랑체첵)

이주민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늘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앞으로 살고 싶은 나라가 어떤 곳인지 먼저 물어야 한다. 이주민들이 한국에서 살면서 많은 시간 고민하는 것은, ‘한국인이냐, 아니냐’보다 ‘쓸모있는 사람이 되는 것, 성장하는 것, 보람을 느끼고 이 사회에서 희망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혼란스러운 시절을 살아가는 여느 한국인의 모습,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뷰 진행 : 이은경 사회의제팀 팀장 · [email protected]
녹취 및 정리 : 이은경 사회의제팀 팀장 · [email protected]
녹취 및 정리 : 최은영 미디어홍보팀 연구원 · [email protected]

* 인터뷰 참여자의 요청으로 개인 사진은 게재하지 않습니다.

월, 2016/11/0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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