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몸통은?

지역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몸통은?

익명 (미확인) | 금, 2016/04/29- 13:28

IMG_0569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몸통은 산업통상자원부다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장재연([email protected])

가습기 살균제 유사사건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회사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유가족의 아픔을 생각하면 ‘살인 기업’이라는 규탄도 감정적으로는 이해가 된다. 더구나 2011년 원인미상의 폐손상 환자 집단발생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에도, 해당 기업들이 빠르게 사과하고 수습할 생각은 없이 반박자료와 논리를 만들기 위해 유력 로펌과 함께 전방위 노력을 기울인 것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늦었지만 검찰 수사가 활발해지면서 언론, 정치권이 관심을 갖게 되었고, 박근혜 대통령도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다니 책임이 분명히 밝혀지고 피해자 및 가족들도 보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caption id="attachment_159504" align="aligncenter" width="640"]IMG_0569 4월 28일 오후 1시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환경보건시민센터,환경운동연합은 옥시가 입주해 있는 서울 여의도 IFC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현직 외국인 대표이사 소환조사 촉구와 범국민 옥시제품불매 참여를 호소했다. ⓒ환경운동연합[/caption]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근원적인 문제가 해소되어야 하고, 그래야 피해자들의 고통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깃털이 아니라 몸통을 찾아야 한다. 혹시라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몇몇 비윤리적인 기업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성격을 규정하고 그것을 징벌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다른 물질로 인한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또 재발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발생한 원인, 특히 정부의 화학물질 관리체계가 왜 막지 못했는지를 명확하게 규명하고 그것을 해결해야만 한다. 상당수 전문가들이나 환경부 등 정부부처, 그리고 이 문제에 관심이 많은 국회의원들도 그 문제점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의 한계가 있는지 그 문제가 어물쩍 넘어가고 있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

공산품에 함유된 유해화학물질 관리

유해화학물질로부터 국민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화학물질의 생산, 수입, 유통, 판매, 폐기 등 전 생애를 거쳐 관리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화학물질 관리가 환경부, 노동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여러 부처에 분산되어 있어 전문가들이 오랜 기간 화학물질 관리의 일원화와 선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가장 큰 구멍은 산업통상자원부가 관할하는 공산품 등 완제품의 유해물질 관리 문제다. 타 부처는 그래도 화학물질을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보건과 독성 관점에서 관리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품질경영및공산품안전관리법’에 따른 유해화학물질 관리는 건강영향이나 독성을 다루기보다는 제품의 구조, 재질, 사용방법으로 인한 안전사고가 주요 관점이다. 가습기 살균제가 포함된 ‘생활화학가정용품’은 소비자가 생활 속에서 쉽게 접촉하기 때문에 건강이나 독성 측면에서는 중요하게 관리가 되어야 하는 제품 분류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의 관점에서는 크게 위험하지 않은 제품들이어서 제조사가 자율적으로 안전을 확인하는 ‘자율안전확인대상공산품’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실질적인 정부의 관리를 전혀 받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카페트 세척용으로 개발됐다는 화학물질을 제조사가 가습기 살균제로 용도를 바꿔서 사용해도 아무도 모르고 있었고, 어떤 제지도 받지 않은 이유다. 만일 유해화학물질을 원래 허가된 용도 이외의 용도로 사용하려고 할 경우 신고해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 간단한 규제 절차라도 있었다면, 담당 공무원에 의해 제지를 받았을 것이다. 약간의 독성학 지식을 갖춘 담당자라면 흡입독성 자료를 확인하지 않고 살균제를 공기 중에 하루 종일 분사하는 제품의 성분으로 그냥 허가해 주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공산품 등 완제품의 유해물질 관리를 제대로 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으면 타 부처로 업무를 이관해서 통합관리하면 좋을 텐데, 공산품에 대한 관할권을 계속 쥐고 있다. 오래전부터 유해화학물질의 관리를 기업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로 인식하고, 자기들이 관할권을 쥐고 있어야 기업들의 규제를 받지 않고 이익을 보호할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화학물질관리 선진화를 막아온 산업통상자원부

[caption id="attachment_159511" align="aligncenter" width="640"]산업통상자원부 홈페이지 산업통상자원부 홈페이지[/caption] 2007년 '유해화학물질 등 환경 유해인자로부터 국민의 건강과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환경보건법이 제정되었다. 환경부는 제품 생산단계에서부터 사용·폐기 단계에 이르기까지 제품 내 유해물질을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법안을 만들었지만, 2008년 관계부처 협의과정에서 제품의 유해물질의 종류·함량 표시, 제품의 유해성을 알기 쉽게 도안으로 표시하는 것, 제품의 유해성이나 위해성이 기준을 초과하는 경우 사용을 제한 또는 금지하는 조항, 건강에 중대하고 급박한 위해를 미치거나 미칠 우려가 있는 제품에 대한 판매중지 등 제품과 관련된 규제조항이 모두 삭제되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산업자원부가 업계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완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고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제품에 대한 관할권은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데 환경부가 또 제품 규제 정책을 내면 기업들이 혼란스러워하기 때문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경제논리와 동떨어지는 환경부 안대로 유해물질 규제가 강화되면 기업이 살아날 수 없다"고도 했다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기업을 걱정하는 동안 사람들이 병들고 죽어갈 수 있다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당시는 공산품 등 완제품의 유해물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을 경우에 발생할 위험을 미처 몰라서 그랬다고 하자. 그 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알려지고 연이어 발생한 불산 등 화학물질 유출 사고, 그리고 EU의 강력한 화학물질 규제 시스템인 REACH 등에 기업이 적용해야만 하는 국제 무역 환경의 변화 등의 요인에 의해 화학물질 관리 강화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를 반영해 ‘화학물질등록및평가등에관한법률’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이 법률의 제정 과정에서도 산업통상자원부는 여전히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다고 강력 반대하여 결국 완제품에 관한 조항은 또 다시 삭제되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몸통

산업통상자원부는 알고 그랬건 모르고 그랬건, 그동안 기업들이 유해화학물질을 일단 한 가지 용도로 허가를 받기만 하면 다른 용도의 제품으로 얼마든지 바꿔 사용할 수 있는 길을 보장해 주는 역할을 해온 것이다. 결국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근원이며 몸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국민들의 비판에서는 완전히 비켜나 있다. 정말 황당한 일인데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피해자나 가족들은 이런 저런 일로 환경부나 질병관리본부에 서운한 게 있었을지 모르나 이들 부처는 산업통상자원부와 비교해서 고생은 하고 욕만 먹은 경우라고도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메르스 사태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질병관리본부나 이명박 정부 이후 ‘환경파괴합법부’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환경부를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이들 부서에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발생과 관련해서 책임을 묻기는 무리라고 생각된다. 2011년 8월 31일,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는 그해 봄에 신고 된 급성호흡부전 등 원인미상 폐손상 환자 집단발병 역학조사를 통해 발병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로 추정되니,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지 말라는 발표를 한다. 그 후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인 것이 최종 확정되자 보건복지부는 그해 12월 30일에 가습기살균제를 약사법에 의한 의약외품으로 지정하였고, 다음해 11월에는 가습기 살균제가 포함된 생활화학용품 안전관리가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환경부로 이관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이들 부서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발생할 당시에 책임부서가 아니었음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자기들 책임인 세균 등에 의한 감염병인줄 알고 조사에 임했다가 다소 얼떨결에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물질인 것을 밝히는 성과를 냈던 것이다.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는 공산품과 관련된 문제이어서 환경보건위원회에서 환경사안이 아니라고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처들이 서로 미루다 보니, 정부부처 합동회의에서 피해자에 대한 역학조사와 보상 등에 대한 책임은 떠맡은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몸통일 뿐 아니라 책임도 회피하고 비난도 타 부처에 떠넘긴, 정부 부처 안에서도 대단한 ‘갑중의 갑’이다.

근원적 문제 해결의 길

산업통상자원부가 공산품 중 극히 일부인 생활화학용품의 관리를 환경부로 넘겼다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다. 다른 공산품에서 어떤 형태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른다. 카페트 세척제를 가습기 살균제로 변경하는 상상력으로 무슨 일을 못할까 싶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난 일이라고 하지 않는가. ‘기업프렌들리’, ‘규제는 암덩어리·원수’이라는 지침을 내리는 대통령의 인식도 공무원들에게 영향을 미쳤겠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태생적으로 규제에 대한 반감이 매우 강한 부처다.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시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각종 조치들을 항상 불필요한 규제로 몰아 반대해온 산업통상자원부의 존재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시점이다. 규제는 산업을 억제하는 것만은 아니다. 정당한 규제,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야말로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원동력이 된다. 좋은규제 강화와 나쁜규제 완화는 함께 해야 한다. 그러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수는 없다. 산업의 진흥을 주 업무로 하는 부서에서 안전규제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최소한 ‘진흥과 규제의 분리’ 원칙을 지킬 수 있도록 이참에 산업통상자원부는 공산품의 유해성관리만이 아니라 원자력발전소 등 모든 안전과 관련된 업무에서 손을 떼는 것이 필요하다. 안전업무는 모두 환경부나 국가안전처로 옮기면 될 것이다. 늘 그렇듯이 지금 전 국민을 흥분시키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근본적 수술 없이 지나가면 얼마 지나서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 잊고, 유사한 사건은 다시 발생하고 또 흥분하는 사태의 반복이 될 것이다. 끝없이 터지는 대형사건, 한번만이라도 제대로 근본을 바꿔 재발을 막아보자. 국민들도 ‘안전을 무시해도 좋은 경제’와 ‘안전만은 지키는 경제’ 중 어느 것을 원하는지 분명하게 결정하고 의사표현을 해야 한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sphoto_2016-05-07_12-25-02

옥시레킷빈키저는 모든 판매를 중단하고 사죄하라.

GS 25는 옥시 제품 철수시키고, 살균제 생산·판매 전력 사과하라.

[caption id="attachment_159833" align="aligncenter" width="640"]5월 7일 환경운동연합과 가습기피해자와가족모임이 GS25 인사점 앞에서 옥시제품판매 중단과 살균제 생산.판매 전력 사과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환경운동연합 5월 7일 환경운동연합과 가습기피해자와가족모임이 GS25 인사점 앞에서 옥시제품판매 중단과 살균제 생산.판매 전력 사과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환경운동연합[/caption]  

5월 7일 오전 10시 환경운동연합과 가습기피해자와가족모임은 GS25 종로 인사점 앞 에서 '옥시 제품의 즉각적인 판매 중단과 자신들의 과거 제조⋅판매에 대한 사과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습니다.

대형 마트와 온라인 쇼핑몰 등이 옥시 물품의 추가 발주 중단을 선언하고, 동네 슈퍼마켓 등이 참여한 중소상공인회까지 불매 운동 참여를 발표한 상황에서 오직 편의점들만 아무런 입장 표명 없이 옥시 물품에 대한 판매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GS25는 자체 가습기 살균제 PB 제품을 제조⋅판매한 바 있고, 이에 따라 사망 1, 부상 5명의 피해를 발생시켰습니다. 그런데도 GS25GS슈퍼마켓 등을 포함한 GS리테일은 입장 표명은커녕, 옥시 제품의 판매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가피모와 환경운동연합은 GS25를 비롯해 전국의 모든 편의점들이 옥시 불매에 참여할 것을 촉구합니다. 또한 옥시레킷빈키저에 지금 당장 한국에서의 모든 영업활동을 중단하고, 사태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배상 조치를 위해 힘을 쏟기를 요구합니다.

다음은 기자회견 내용입니다.

[caption id="attachment_159838" align="aligncenter" width="640"]IMG_1362 GS 25는 옥시 제품 철수시키고, 살균제 생산·판매 전력 사과하라. ⓒ환경운동연합[/caption] 옥시레킷빈키저가 2001년 이후 벌여 왔던 범죄들이 밝혀지고, 이를 은폐하려했던 그들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이 경악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를 2001년부터 11년에 걸쳐 453만 개나 판매해, 정부가 확인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망자 146명 중 103명에게 책임이 있는 옥시는 원료로 쓴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의 위험성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옥시가 자백한 바에 따르더라도 옥시는 독극물을 원료로 사용하면서 최소한의 안전성도 확인하지 않았다. 이는 자신들의 본사가 있는 유럽에서는 <바이오사이드 제품의 안전 확인 제조사 책임제도(BPR)> 때문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로, ‘한국이니까 괜찮다’는 인종주의적 판단과 부도덕한 이중 기준의 적용 결과라 할 수 있다. [caption id="attachment_159835" align="aligncenter" width="640"]photo_2016-05-07_12-26-03 GS 25는 옥시 제품 철수시키고, 살균제 생산·판매 전력 사과하라. ⓒ환경운동연합[/caption] 옥시는 사고의 원인이 밝혀진 2011년부터도 책임을 회피해 왔다. 사고 원인을 왜곡하기 위한 연구를 조작했고, 전문가들을 매수했으며,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을 고용해 ‘황사나 꽃가루가 원인일 수 있다’는 등으로 물 타기를 하면서 5년의 시간을 끌었다. 정부가 역학조사와 동물실험 등을 통해 명백하게 확인한 사실에 딴지를 걸며 허송한 5년 동안, 옥시 피해자들은 깊은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고, 유명을 달리한 경우도 많았다. 무엇보다 범죄의 공소시효를 낭비함으로서 과실치사의 경우 피해발생 후 7년, 인지 후 3년인 점을 감안하면,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은 물론 처벌조차 어렵게 됐다. [caption id="attachment_159836" align="aligncenter" width="640"]IMG_1302 GS 25는 옥시 제품 철수시키고, 살균제 생산·판매 전력 사과하라. ⓒ환경운동연합[/caption] 옥시는 검찰 수사와 국민적 공분 속에 고개를 숙이기는 했지만, 이는 확인된 범죄를 인정한 것이지 사태의 진상규명과 해결을 위해 태도를 바꾼 것이 아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옥시는 국민들이 분노하고 또 불안해하는 자신들의 제품을 더 이상 판매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의 옥시 불매 운동이 아니라, 스스로 판매를 중단하는 것이 예의다. 한국에서의 모든 영업활동을 중단하고, 사태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배상 조치를 위해 힘쓰는 것이 먼저다. 그래서 국민들의 용서를 구한 이후에, 다시 영업을 해도 되는지 판단을 묻는 것이 순서다. 우리는 옥시의 이러한 상식적 판단을, 최소한의 양심을 촉구하기 위해 옥시 불매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caption id="attachment_159837" align="aligncenter" width="640"]IMG_1332 GS 25는 옥시 제품 철수시키고, 살균제 생산·판매 전력 사과하라. ⓒ환경운동연합[/caption]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과 환경운동연합은 오늘 GS 25에 옥시 제품의 즉각적인 판매 중단을 촉구하기 위해 왔다. 이는 대형 마트와 온라인 쇼핑몰 등이 옥시 물품의 추가 발주 중단을 선언하고, 동네 슈퍼마켓 등이 참여한 중소상공인회까지 불매 운동을 발표하고 있음에도 편의점 업계 1위인 GS25가 지금껏 아무런 지침도 마련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항의다. GS25뿐만 아니라 다른 편의점들 역시, 범국민적인 불매 운동을 외면하고 옥시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이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부당한 이윤추구일뿐더러, 125종에 이르는 옥시 제품을 구별할 수 없어 자신의 의지에 반해 옥시 제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는 소비자에 대한 배신이다. [caption id="attachment_159839" align="aligncenter" width="640"]photo_2016-05-07_12-25-02 GS 25는 옥시 제품 철수시키고, 살균제 생산·판매 전력 사과하라. ⓒ환경운동연합[/caption]   특히 환경운동연합과 가피모가 GS25를 집중하는 것은 GS25 편의점과 GS 슈퍼마켓 등을 포함하는 GS리테일이 자신들의 브랜드로 가습기 살균제 PB 제품을 제조⋅판매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망자 1명을 포함해 6명에게 피해를 끼친 것이 분명함에도, 가해 기업인 GS리테일은 아직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고 책임 인정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GS리테일 역시 옥시와 똑같은 방법으로 억지를 쓰고 있다. 자신들이 원료로 사용한 CMIT/MIT의 독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궤변으로 시간을 끌고 있다. 미국의 환경청과 한국의 환경부가 독극물이라고 밝혔고, 하다못해 국제농약회사인 다우케미컬이 같은 주장을 하고 있음에도 5년을 끌고 있다. 옥시, 애경, 롯데마트, 홈플러스, 이마트 등 관심을 받고 있는 기업들 뒤에 숨어 시간을 보내고 있다. [caption id="attachment_159841" align="aligncenter" width="640"]IMG_1414 GS 25는 옥시 제품 철수시키고, 살균제 생산·판매 전력 사과하라. ⓒ환경운동연합[/caption] [caption id="attachment_159840" align="aligncenter" width="640"]IMG_1408 GS 25는 옥시 제품 철수시키고, 살균제 생산·판매 전력 사과하라. ⓒ환경운동연합[/caption]   GS25는 지금이라도 현명하게 판단하길 바란다. 최소한의 양심, 최소한의 가치조차 지키지 못하는 기업은 들불처럼 타오르는 국민의 분노에 불타 재가 될 수도 있다. 옥시에 대한 분노는 옥시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지만, 이윤추구를 위해 생명을 경시하고, 공동체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에 대한 분노다. 언제든지 GS25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운동연합과 가피모는 GS25의 즉각적인 옥시 제품 판매 중단을 요구한다. 이러한 사회의 요구에 신속한 답변을 바란다.   [caption id="attachment_159844" align="aligncenter" width="640"]IMG_1451 GS 25는 옥시 제품 철수시키고, 살균제 생산·판매 전력 사과하라. ⓒ환경운동연합[/caption] [caption id="attachment_159842" align="aligncenter" width="640"]IMG_1440 GS 25는 옥시 제품 철수시키고, 살균제 생산·판매 전력 사과하라. ⓒ환경운동연합[/caption]  

2016.5.7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환경운동연합

※ 문의 : 정미란 팀장 (010-9808-5654, [email protected])

※ 별첨 (클릭하시면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 [사후 보도자료]GS25 등 편의점, 옥시 제품 판매 중단 및 옥시 불매 촉구

홈페이지메인배너

토, 2016/05/07- 13:47
506
0

스크린샷 2017-09-27 오후 8.03.50

스크린샷 2017-09-27 오후 8.03.50

“한국미라클피플사의 ‘은나노 스텝 고급주방세제’입니다. 너무 잘 닦이고 좋은데, 성분 표시에는 계면활성제, 알파올레핀계, 고급아민계 등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야채 과일을 씻어도 된다고 표시되어 있는데, 안심하고 사용해도 되나요?”

‘고급주방세제’, ‘보건복지부 고시 1종 원료 사용’ 제품에 화려하게 표기된 문구만으로 다른 세제와는 달라 보이는데요. 거기에다 용도로 ‘야채, 과일, 식기 및 조리기구, 젖병, 완구 등 유아용품 세척 시’에도 사용 가능하다고 하니, 제품 표시만 보고도 ‘안전하겠구나’라고 판단을 해도 큰 무리는 없어 보입니다. 이 때문인지 해당 제품은 TV홈쇼핑과 블로거들의 입소문을 타고 꾸준하게 판매되고 있습니다.

제품에 포함된 성분이 어떻게 되나요?

제품에 뒷면에 표시된 성분에는 ‘계면활성제 26%[고급알콜계(음이온), 슈가계(비이온), 고급아민계(비이온), 알파올레핀계, 베타인계] 향 등 72%’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표시된 성분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그럼 업체에서 제공해준 성분을 살펴보겠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83814" align="aligncenter" width="664"]스크린샷 2017-09-27 오후 7.30.45 ▲ 해당 제품은 10종의 물질을 함유하고 있으며, 각 물질들은 복지부의 관리 기준에 따라 1종 세척제에 사용가능한 물질로 포함되어 있다. (제공 : 한국미라클피플사)[/caption]

계면활성제, 향으로 구성 성분으로만 표기하기에는 많은 성분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업체에서는 ‘보건복지부 고시 1종 원료 사용’하고 있다고 광고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 채소, 과일 등 식품 뿐만 아니라 아기 젖병과 육아용품도 씻을 정도로 안전한 세제라고 하는데요.

팩트체크가 꼼꼼히 따져보겠습니다. 보통 시중에 판매하는 주방용 세제로 식기는 물론, 채소나 과일을 씻는 데 사용하고 있는데요, 사실 과일, 채소용 세제와 식기용 세제는 명확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83815" align="aligncenter" width="437"]picture_22 ▲ 세처적제의 종류 (제공: 식약처)[/caption]

보건복지부의 ‘공중위생법’에 따라 주방세제는 1종, 2종, 3종으로 구분되는데요. 1종은 과일, 채소 등 식품 세정까지 가능한 세제이고, 2종은 식기, 조리기구 등 식품용 기구를 세척하는데 쓰입니다. 3종은 식품의 제조 및 가공 장치 세척에 사용하게 됩니다. 즉, 1종 세척제는 과일이나 채소 등을 씻는데 사용할 수 있지만, 2종, 3종 세척제는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또, 1, 2종 세척제는 가정용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3종 세척제는 산업용으로 써야 합니다.

복지부의 ‘위생용품 규격 및 기준’에 따라, 세척제 1,2,3종별로 사용할 수 있는 원료 320종 성분을 고시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성분으로는 식품 첨가물이나 식품 성분일 경우에만 사용을 허가하고 있습니다. 또, 1종 세척제에는 효소 또는 표백 작용의 성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문의해주신 해당 제품은 채소, 과일까지 모두 씻을 수 있는 1종 세척제로, 관리 규제에 따라 1종 세척제에 허용하는 성분만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보건복지부 고시 1종 원료 사용’으로 표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1종 세척제'라 무조건 안전한가요?

[caption id="attachment_183816" align="aligncenter" width="670"]스크린샷 2017-09-27 오후 7.38.31 ▲ 독성 정보 확인 결과 모든 건강 유해성 정보는 ‘자료 없음’으로 확인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caption]

물질의 인체 유해성 정보는 어떨까요? 각 유해성 정보에는 ‘자료 없음’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독성의 ‘자료 없음’은 이 물질의 유해성에 대한 정보가 없음으로 즉 안전성 확인됐다고 볼 수 없습니다.

또한 현재 복지부의 세척제 종별로 사용 가능한 물질을 규정하고 있지만,  각 물질들에 함량 규제는 없는 상황입니다. 즉 용도별로 성분 함량 기준치 및 함량 범위를 제시하지 않고 있어, 각 물질들이 과도하게 사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복지부의 안전기준에 따르면 1종 세척제의 경우에도 세척제 용액에 채소 혹은 과일을 5분 이상 담가 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세척제 용액으로 야채, 과일, 조리기구 등을 씻은 후에는 반드시 음용에 적합한 물로 씻어야 하는데, 이때, 세척제가 잔류하지 않도록 흐르는 물에 과일은 30초 이상, 식기류는 5초 이상 씻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주방세제 구입전에 제품 후면에 ‘용도’ 혹은 ‘품명’을 꼭 확인하고, 필요한 용도에 맞게 구분하여 사용하셔야 합니다.

첨부자료 :

물질안전보건자료_은나노스텝주방

[은나노주방] 피부자극시험 - KATRI

[은나노주방] 품질관리용시험성적서(비소, 납) 2016년 - KTR

[은나노주방] 품질관리용시험성적서 2016년 - KTR

※ 문의 : 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팀 정미란 팀장 (전화 : 02)735-7068, [email protected]) ※ 시민의 안전을 위해 제품의 성분과 안전성 등 관련 자료를 공개해 주신 한국미라클피플사에 감사드립니다. ※ 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 캠페인은 노란리본기금의 후원으로 진행됩니다. 노란리본기금   팩트체크 후원배너
수, 2017/09/27- 20:05
503
0

그림1

헨켈홈케어코리아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책임기업이다. [caption id="attachment_184109" align="aligncenter" width="500"]헨켈이 한국시장에서 판매하는 주요 제품들  ⓒ 네이버 지식백과 ▲ 헨켈이 한국시장에서 판매하는 주요 제품들 ⓒ 네이버 지식백과[/caption]

헨켈홈케어코리아(이하 헨켈)가 판매 제품들의 성분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헨켈은 살충제 ‘홈키파’, ‘홈매트’ 와 세제 ‘퍼실 persil’ 등으로 생활화학용품으로 유명한 독일계 글로벌 다국적 기업이다.

2016년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한국 사회의 뜨거운 이슈가 되었을 때, 처음으로 헨켈이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헨켈은 자사 브랜드인 ‘홈키파 가습기 한번에 싹’이라는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책임기업이다.

지난달, 헨켈은 환경운동연합에 “제품들의 성분을 웹사이트를 통해 현재 공개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헨켈 홈페이지(http://www.henkelhomecare.co.kr) 상단의 해당 제품 브랜드 로고를 선택한 후, ‘제품 구매하기’ 영역에 제품 이미지를 클릭하면 각 제품에 포함된 성분과 기능을 확인할 수 있다.

[caption id="attachment_184110" align="aligncenter" width="606"]지난 29일, 헨켈은 공문을 통해 전성분 공개하고 있음을 환경운동연합에 알려왔다.  ⓒ 헨켈홈케어코리아 ▲ 지난 29일, 헨켈은 공문을 통해 전성분 공개하고 있음을 환경운동연합에 알려왔다. ⓒ 헨켈홈케어코리아[/caption]

헨켈이 파는 제품으로 한국 소비자들에게 제법 알려진 제품들로는 우선 모기살충제 홈키파, 홈매트 그리고 바퀴벌레약 컴배트(Combat)와 유럽주방세제 시장점유율 1위라는 프릴(Pril)등이 있다. 또한, 최근에 한국 시장에 들어와 인기를 누리는 섬유유연제 버넬(Vernel)과 변기 세정제 브레프(Bref), 샴푸인 사이오스(Syoss), 그리고 비누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다이얼(Dial) 고체 및 액상 비누제품들이 있다.

[caption id="attachment_184111" align="aligncenter" width="731"]파워젤 ▲ 헨켈의 액체세제인 퍼실 파워젤에 포함된 성분과 각 성분의 기능을 확인할 수 있다 ⓒ 헨켈홈케어코리아[/caption]

환경운동연합은 지난해부터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했거나 판매했던 기업을 대상으로 생활화학제품 전성분 공개를 요구하는 활동을 진행해왔다. 지난해 11월, 환경운동연합의 전성분 공개 요청에 무시와 무응답으로 일관했던 헨켈은, 여론이 악화되자 ‘상반기까지 성분을 공개하겠다’는 입장으로 바꿨다. 이후, 또다시 시민들의 관심이 멀어지자, 헨켈은 상반기가 지나서도 공개하지 않고, 환경부의 전성분 공개 가이드라인이 마련될 때까지 보류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결국, 정부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려는 헨켈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고, 헨켈은 다시 입장을 번복해 올해 내에 성분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공개 의사를 밝힌 지 10개월만에 , 헨켈은 홈페이지를 통해 제품의 전성분을 공개하게 되었다.

헨켈의 전성분을 끌어낼 수 있었던 힘은, 시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압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해 전국적인 옥시 불매 운동을 통해, 기업들은 시민들의 불신이 기업의 존폐 위기로까지 처할 수 있음을 경험했다.

기업은 소비자인 시민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시민들의 견제와 감시만이 맹목적인 이윤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기업에 대해 제동을 걸 수 있으며, 기업들을 높은 사회적 책임과 윤리 의식을 함양시키는데 진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 시민의 안전을 위해 제품의 성분을 공개해 주신 헨켈홈케어코리아에 감사드립니다. ※ 문의 : 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팀 정미란 팀장 (전화 : 02)735-7068, [email protected]) ※ 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 캠페인은 노란리본기금의 후원으로 진행됩니다. 노란리본기금   팩트체크 후원배너  
목, 2017/10/12- 17:18
501
0

s페브리즈

페브리즈, 수상한 냄새가 난다!

언론광고와 기자단 현지 설명회가 아니라  

유해화학물질의 흡입독성 평가자료를 제출하라!

  한국피앤지가 수상하다. 유해성 원료 함유 문제로 논란이 된 페브리즈 등 생활화학제품을 생산하는 한국피앤지가 기자단을 구성해서 미국 현지 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언론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피앤지는 지난 629일 국내 주요 일간, 경제지에 자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광고를 실은 데 이어, 오는 711일 한국 기자단을 미국 본사로 초대해서 설명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전했다. 이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 ""으로 언론을 통제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한국피앤지는 페브리지 등 자사가 판매하는 생활화학제품에 인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유해물질이 함유되어 있다는 논란이 발생하자 5월 17일 환경부와 홈페이지를 통해 성분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성분에는 DDAC(디데실디메틸암모니움클로라이드)와 BIT(벤조이소치아졸리논)라는 유해물질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피앤지와 환경부는 함유된 유해성분 함량이 낮고, 해외에서 안전성 평가를 거친 제품이라며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환경부 관계자는 이날 공개된 DDAC와 BIT의 흡입독성 평가자료가 없다고 했다. 페브리즈는 공기탈취제, 섬유탈취제로 사용되어 스프레이형 제품으로서 흡입노출이 가능한 생활화학제품이다. 그런데 해당제품에 사용된 주요 유해성분의 흡입독성 평가자료가 없다. 한국피앤지가 제출하지 않았고, 환경부는 해당평가 없이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페브리즈는 시장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상식적인 기업이라면, 해당 성분에 대한 흡입독성 평가자료를 정부에 제출/공개해야 한다. 만약 독성평가가 미흡하다고 판단된다면 안전한 물질로 대체하거나 판매중단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것이 자신들이 광고에서 소비자분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겠다고 약속한 기업의 합당한 태도다. 이런 조치 없이 언론사에 광고를 게재하고 기자에게 해외관광을 제공하는 것은 명백한 언론통제며 소비자 기만행위다. 환경부는 지난 6월 8일 LG생활건강ㆍ한국피앤지 등 생활화학제품 업체 48곳과 11번가ㆍ다이소 등 7개 유통업체와 ‘위해우려제품 안전관리 협약’을 맺었다. 공산품으로 관리되다가 가습기살균제 참사 이후 환경부로 이관된 소독제, 탈취제, 세정제 등 생활화학제품 15종이 대상이다. 협약을 맺은 기업들은 위해성 평가를 위해 25일까지 정부에 제품 내 모든 화학물질 함량, 기능, 유해성 검사 자료 등을 제출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내려지는 처벌은 시장에서 퇴출이 아니라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뿐이다. 기업은 돈으로 언론의 입을 막고, 정부는 솜방망이 처벌로 빠져나갈 빈틈을 만들고 있다. 기업이 해야 할 일은 안전한 제품을 만들고,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달려있는 안전성 정보를 숨김없이 공개하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 신체의 안전에 관한 기본권을 보호 할 구체적인 헌법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 기업의 이익이 우선이 아니다. 사전예방 원칙, 과소보호금지 원칙, “No data, No market” 원칙에 따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우선이다.  

2016년 7월 4일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권태선 박재묵 장재연 사무총장 염형철

문의: 중앙사무처 생활환경TF 황성현 부장 ([email protected]) 첨부파일: 논평_한국피앤지_기자해외_방문항의 20160704
월, 2016/07/04- 19:08
495
0

ss사본 -L1050571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 - 단재 신채호 -

 

장하나 환경운동연합 권력감시팀장 ([email protected])

[caption id="attachment_176127" align="aligncenter" width="640"]사본 -L1050224 제주4.3유적지 한수기곶.ⓒ김은숙[/caption] 제주4.3이 뭐죠? 어쩌면 당연한 질문입니다. 제주4.3을 모르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역사를 빼앗긴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역사교과서는 점점 얇아져 가고, 역사를 몰라도 입시와 진학이 가능한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민의 힘으로 국정교과서를 사실상 백지화시켰고 이제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을 때입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6103" align="aligncenter" width="640"]ⓒ SA Yunsoo 4월 3일 제 69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이 4.3평화공원에서 열렸다. ⓒ SA Yunsoo[/caption] 4월 3일은 69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일입니다. 저 유명한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을 오늘 되새기며, 제주사쩜삼이 아닌 제주사삼을 아는 것은 제주4.3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한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일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03년 10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확정한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더라도 당시 제주 인구의 9분의 1에 달하는 3만 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당시 이승만 정부가 주도한 강경진압작전으로 제주도 중산간 마을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으며, 가옥 3만9285동이 소각됐다고 합니다. 왜 이런 대량학살이 일어났을까요? 어떻게 이런 엄청난 비극이 잊혀질 수 있었을까요? 이런 의문을 품은 채 4.3의 자취를 따라가 보았으면 합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6104" align="aligncenter" width="640"]제주4.3평화재단에 마련된 4.3백비 “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 4.3백비, 이름짓지 못한 역사. 백비(白碑), 어떤 까닭이 있어 글을 새기지 못한 비석을 일컫는다. ‘봉기.항쟁.폭동.사태.사건’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온 ‘제주4.3’은 아직까지도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얻지 못하고 있다. 분단의 시대를 넘어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통일의 그날, 진정한 4.3의 이름을 새길 수 있으리라.ⓒ김은숙 “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 4.3백비, 이름짓지 못한 역사. 백비(白碑), 어떤 까닭이 있어 글을 새기지 못한 비석을 일컫는다. ‘봉기.항쟁.폭동.사태.사건’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온 ‘제주4.3’은 아직까지도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얻지 못하고 있다. 분단의 시대를 넘어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통일의 그날, 진정한 4.3의 이름을 새길 수 있으리라.ⓒ김은숙[/caption] 1945년 8월 우리 민족은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 국권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미군과 소련군이 남과 북에 들어와 38도선을 경계로 주둔함으로써 원치 않는 분단 상황이 조성되고 말았죠. 미군이 제주도에 진주한 것은 1945년 9월 28일, 실질적인 군정 업무를 담당할 제59군정중대가 도착한 것은 11월 9일이었습니다. 제59군정중대는 인력 부족과 정보 부재로 원만한 통치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영향력이 강했던 인민위원회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민위원회란 어떤 조직일까요? 광복 직후 자주 독립적인 국가를 세우기 위한 건국준비위원회(약칭 : 건준)가 전국적으로 조직되었고, 제주에서도 45년 9월 10일에는 제주도 건준이 결성되었습니다. 9월 23일 건준은 인민위원회로 개편되었고 이를 계기로 45년 말까지 청년동맹・부녀동맹・농민위원회・소비조합 등 각종 사회단체가 속속 조직되었죠. 제주도인민위원회가 가장 주력한 것은 치안 활동이었습니다. 일본군 패잔병의 횡포를 막는 일, 토지・산업체 등 적산(敵産) 및 군수물자를 감시하는 일에서 지역별로 초등학교・중학원 등을 설립하여 자치교육을 실시하기까지 인민위원회는 실질적으로 도내 행정을 주도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미군정에 의해 행정이 실시되었지만 여러 마을에서 인민위원장이 이장이 되었고, 인민위원회는 주로 마을 향사를 사무실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6105" align="aligncenter" width="640"]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 직후 상황을 표기한 미군 보고서 1948.4.9. ⓒ김은숙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 직후 상황을 표기한 미군 보고서 1948.4.9. ⓒ김은숙[/caption] 그러나 미군정이 인민위원회를 공식적인 행정기관이나 통치기구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미군정은 도청과 경찰의 요직에 일제 때의 관리를 그대로 앉혔으며, 서서히 우익인사들을 조직화시켜 인민위원회에 대항할 세력으로 키워갔습니다. 1946년 말부터 미군정은 인민위원회를 노골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제주4.3의 근본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47년 3월 1일은 해방 후 두 번째 맞이하는 3・1절로서 앞선 2월 17일에 관공서를 비롯한 사회단체・교육계・유교계・학교단체 등 각계각층이 망라 된 ‘3・1투쟁기념행사제주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전도적인 기념행사를 치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미군정은 3・1절 행사 때 시위는 절대 불허한다는 방침과 집회 사전 허가원칙을 정하였고, 미군정 당국과 수차례 협상하였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3・1절 행사는 시민주도로 강행될 수밖에 없었죠. 큰넓궤2 [caption id="attachment_176106" align="aligncenter" width="640"]큰넓궤(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산90번지 일대) 큰넓궤는 제주4.3당시 동광리 주민들이 2개월 가량 집단적으로 은신생활을 했던 곳이다. 1948년 11월 중순 중산간 마을에 대한 초토화 작전이 시행된 이후 주민들은 야산을 흩어져 숨어 있다가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40여일 후 토벌대의 집요한 추적 끝에 발각되었다. 주민들은 한라산을 바라보며 무작정 산으로 들어갔으나 인근 볼레오름 지경에서 토벌대에 총살되거나, 상포된 후 정방폭포나 그 인근에서 학살됐다.ⓒ김은숙 큰넓궤(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산90번지 일대)
큰넓궤는 제주4.3당시 동광리 주민들이 2개월 가량 집단적으로 은신생활을 했던 곳이다. 1948년 11월 중순 중산간 마을에 대한 초토화 작전이 시행된 이후 주민들은 야산을 흩어져 숨어 있다가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40여일 후 토벌대의 집요한 추적 끝에 발각되었다. 주민들은 한라산을 바라보며 무작정 산으로 들어갔으나 인근 볼레오름 지경에서 토벌대에 총살되거나, 상포된 후 정방폭포나 그 인근에서 학살됐다.ⓒ김은숙[/caption] 3・1절 기념대회는 각 읍・면 별로 치러졌고, 제주북국민학교에는 제주읍・애월면・조천면 주민 3만여 명이 모였습니다. 3・1절 행사가 오후 2시에 끝나자 군중들은 곧바로 가두시위에 나섰는데 이 때 관덕정 부근에 있던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여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고, 기마경찰이 다친 어린이를 그대로 두고 지나가자 흥분한 군중들이 돌을 던지며 항의, 무장경찰은 군중에게 발포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구경나온 민간인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입었고, 사망자 중에는 15세 국민학생과 젖먹이 아이를 가슴에 안은 채 피살된 여인도 있었습니다. ‘3.1발포 사건’으로 민심은 극도로 악화되었고, 미군정에 대한 불만 여론은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반면 미군정과 경찰은 사태 수습보다는 시위 주동자를 검거 하는 일에 주력하였고 이것이 결국 제주4.3으로 가는 단초가 되고 맙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6108" align="aligncenter" width="640"]다랑쉬굴. 다랑쉬굴은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길이 30m 인 용암동굴이다. 이곳은 4.3사건으로 피신해 있던 지역 주민 11명이 토벌대에 의해 희생된 현장으로 1992년 발견 당시 유골과 당시 동굴 내부에서 쓰였던 항아리, 가마솥, 질그릇,물허벅,요강 등의 생활용품과 낫, 곡괭이, 도끼 등의 농기구가 발견되었다. 토벌대는 굴 입구에 불을 피워 연기를 불어넣어 입구를 봉쇄했고 굴 속의 주민들은 연기에 질식되어 죽어갔다. 다랑쉬굴은 잃어버린 마을을 조사하던 ‘주제4.3연구소’회원들에 의해 1991년 12월 발견되어 1992년 4월 1일 공개했으며, 11구의 희생자 유해는 45일만인 5월 15일 한줌의 재로 바다에 뿌려졌다. 다랑쉬굴은 유해들이 밖으로 꺼내진 뒤, 나머지 유물들을 그대로 남긴 채 입구는 다시 콘크리트로 봉쇄되었다.ⓒ김은숙 다랑쉬굴. 다랑쉬굴은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길이 30m 인 용암동굴이다. 이곳은 4.3사건으로 피신해 있던 지역 주민 11명이 토벌대에 의해 희생된 현장으로 1992년 발견 당시 유골과 당시 동굴 내부에서 쓰였던 항아리, 가마솥, 질그릇,물허벅,요강 등의 생활용품과 낫, 곡괭이, 도끼 등의 농기구가 발견되었다. 토벌대는 굴 입구에 불을 피워 연기를 불어넣어 입구를 봉쇄했고 굴 속의 주민들은 연기에 질식되어 죽어갔다. 다랑쉬굴은 잃어버린 마을을 조사하던 ‘주제4.3연구소’회원들에 의해 1991년 12월 발견되어 1992년 4월 1일 공개했으며, 11구의 희생자 유해는 45일만인 5월 15일 한줌의 재로 바다에 뿌려졌다. 다랑쉬굴은 유해들이 밖으로 꺼내진 뒤, 나머지 유물들을 그대로 남긴 채 입구는 다시 콘크리트로 봉쇄되었다.ⓒ김은숙[/caption] [caption id="attachment_176118" align="aligncenter" width="640"]빌레못굴(제주시 애월읍 어음2리 706번지) 이곳은 1949년 1월 16일, 토벌대와 민보단이 합동으로 대대적인 수색작전에 의해 동굴이 발각되면서 이 속에 숨어 있던 애월면 어음,납읍,장전리 주민 29명이 집단학살 당하였고 동굴 속에서 나오지 못해 굶어죽은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또 다른 어머니와 딸 4구가 발견된 비극의 현장이다. 토벌대는 전날(1949년1월15일) 봉성리 구몰동이 무장대에 의해 습격을 당한 후 토벌대와 민보단이 대대적인 수색을 벌여 빌레못굴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그 당시는 겨울이어서 김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동굴 입구를 찾은 토벌대는 굴 속에 숨어 있는 주민 29명을 집단총살하였다. 또한 남자 아이의 발을 잡고 휘둘러 돌에 메쳐 죽이는 참혹한 일도 일어났으며 이 아이의 어머니와 젖먹이 여동생은 동굴 안으로 깊숙이 숨어들었다가 어둠속에서 길을 잃어 굶어죽은 시신도 1971년 3월 13일부터 15일까지 빌레몰동굴탐사반에 의해 발견되어 유족에게 인도되었다. 이 빌레못굴은 총 길이 11,749로 세계 최장의 용암동굴이며, 천연기념물 342호로 지정되어 있다. ⓒ김은숙 빌레못굴(제주시 애월읍 어음2리 706번지)
이곳은 1949년 1월 16일, 토벌대와 민보단이 합동으로 대대적인 수색작전에 의해 동굴이 발각되면서 이 속에 숨어 있던 애월면 어음,납읍,장전리 주민 29명이 집단학살 당하였고 동굴 속에서 나오지 못해 굶어죽은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또 다른 어머니와 딸 4구가 발견된 비극의 현장이다. 토벌대는 전날(1949년1월15일) 봉성리 구몰동이 무장대에 의해 습격을 당한 후 토벌대와 민보단이 대대적인 수색을 벌여 빌레못굴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그 당시는 겨울이어서 김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동굴 입구를 찾은 토벌대는 굴 속에 숨어 있는 주민 29명을 집단총살하였다. 또한 남자 아이의 발을 잡고 휘둘러 돌에 메쳐 죽이는 참혹한 일도 일어났으며 이 아이의 어머니와 젖먹이 여동생은 동굴 안으로 깊숙이 숨어들었다가 어둠속에서 길을 잃어 굶어죽은 시신도 1971년 3월 13일부터 15일까지 빌레몰동굴탐사반에 의해 발견되어 유족에게 인도되었다. 이 빌레못굴은 총 길이 11,749로 세계 최장의 용암동굴이며, 천연기념물 342호로 지정되어 있다. ⓒ김은숙[/caption] 제주도민들은 미군정과 경찰의 탄압을 폭로하며 희생자 구호금 모금에 나섰고, 이어 3월 10일에는 제주도청을 시발로 민・관 총파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도청 등 관공서는 물론 은행・회사・학교・운수업체・통신기관 등 도내 156개 기관, 단체, 회사 직원들이 파업에 들어갔고 현직 경찰관까지 파업에 동참하는 전도적인 파업이었습니다. 3월 14일, 미군정 경무부장 조병옥이 제주도에 와서 총파업을 와해시켜 나갔습니다. 미군정은 3월 15일 전남・북 응원경찰 222명, 3월 18일 경기도 응원경찰 99명을 증파하여 총파업에 강경 대응하였고, 조병옥 경무부장은 3월 19일 담화문을 통해 경찰의 발포는 정당방위였으며 3.1절 집회가와 총파업이 북조선과의 통모로 발생했다는 내용을 공표하여 제주도를 ‘빨갱이 섬’으로 조작하였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6119" align="aligncenter" width="640"]3.10총파업이 좌익에 의해 선동되었다고 기술한 미군보고서(1947.3.14.)ⓒ김은숙 3.10총파업이 좌익에 의해 선동되었다고 기술한 미군보고서(1947.3.14.)ⓒ김은숙[/caption] 이 사건 직후 미군정 보고서에는 “제주도는 70%가 좌익정당에 동조적이거나 가입해 있을 정도로 좌익의 본거지”라고 기록되었으며, 미군정은 3월 15일부터 파업 주모자들을 검거하기 시작했는데 3・1발포 사건 이후 1948년 제주4・3 발발 직전까지 1년 동안 2,500명이 검속되었고, 이것이 ‘Red Hunt’ 즉 빨갱이 사냥의 시작입니다. L1050202 사본 -L1050198 [caption id="attachment_176111" align="aligncenter" width="640"]섯알오름 양민학살터 섯알오름 탄약고터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 전국적으로 보도연맹원들을 학살할 때 모슬포 경찰서 관내의 예비검속된 사람들, 모슬포지역 132명, 한림지역 63명을 학살했던 장소이다. 예비검속이란 ‘사건을 일으킬 사람이라 예상하여 미리 잡아놓는다’라는 뜻이다. 섯알오름 탄약고 터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6년 뒤인 1956년에 시신을 수습하여 백조일손지지(조상이 다른 백서른 두명이 죽어 뼈가 엉키어 하나되었다)에 132구, 만뱅듸 공동장지에 62구가 안장되었다. 이분들이 돌아가신 음력 7월 7일에 합동위령제를 이곳에서 올리고 있다.ⓒ김은숙 섯알오름 양민학살터
섯알오름 탄약고터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 전국적으로 보도연맹원들을 학살할 때 모슬포 경찰서 관내의 예비검속된 사람들, 모슬포지역 132명, 한림지역 63명을 학살했던 장소이다. 예비검속이란 ‘사건을 일으킬 사람이라 예상하여 미리 잡아놓는다’라는 뜻이다. 섯알오름 탄약고 터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6년 뒤인 1956년에 시신을 수습하여 백조일손지지(조상이 다른 백서른 두명이 죽어 뼈가 엉키어 하나되었다)에 132구, 만뱅듸 공동장지에 62구가 안장되었다. 이분들이 돌아가신 음력 7월 7일에 합동위령제를 이곳에서 올리고 있다.ⓒ김은숙[/caption] 1948년 1월 남한 단독선거안이 명백해지자 남한 내의 많은 정당과 단체에서 잇따라 반대성명을 발표하면서 격렬하게 반발하였습니다. 한반도 영구 분단에 대한 우려로 단선 반대 대열에는 좌파 진영만이 아니라 우파 일부와 중도파까지도 가세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단독선거 찬반 문제를 놓고 우파 진영도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던 상황이구요. 이런 정치 흐름 속에서 남조선노동당(약칭 : 남로당)은 단독선거를 저지하기 위한 강력한 투쟁계획을 세웠고 48년 2월 7일의 전국적인 총파업 ‘2.7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제주도내 좌익진영은 47년 3월 10일 총파업 이후 이미 핵심 간부들이 대거 검거되었고 궤멸상태에 있었는데, 미군정은 ‘2.7사건’을 구실로 다시 한 번 대대적인 연행과 취조를 실시했습니다. 48년 3월 학생 박용철이 경찰 고문에 의해 사망, 대정리 출신 양은하씨가 경찰 구타로 사망, 청년 박행구가 서북청년단에 끌려가 구타 후 총살당하는 등 한 달 새 3건의 사망사건이 발생하고, 이는 제주4.3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고 맙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6115" align="aligncenter" width="640"]이덕구 산전, 교래 북받친밭(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산 137-1번지) 1949년 2월 4일 제주읍 동부8리 대토벌을 계기로 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하고 봉개리에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주민들은 당장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더욱 깊은 산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은 은신하기 좋은 곳을 찾아 헤매다 더욱 산속 깊숙이 들어갔으며 이곳 ‘시안모루’,‘북받친밭’까지 와서 은신생활을 했었다. 이곳은 피난 주민들이 귀순한 1949년 봄 이후에는 무장대사령부인 이덕구부대가 잠시 주둔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이곳 일대를 ‘이덕구산전(山田)’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곳엔 당시 움막을 지었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고 음식을 해 먹었던 무쇠솥과 그릇들이 그대로 널려 있다.ⓒ김은숙 이덕구 산전, 교래 북받친밭(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산 137-1번지)
1949년 2월 4일 제주읍 동부8리 대토벌을 계기로 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하고 봉개리에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주민들은 당장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더욱 깊은 산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은 은신하기 좋은 곳을 찾아 헤매다 더욱 산속 깊숙이 들어갔으며 이곳 ‘시안모루’,‘북받친밭’까지 와서 은신생활을 했었다. 이곳은 피난 주민들이 귀순한 1949년 봄 이후에는 무장대사령부인 이덕구부대가 잠시 주둔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이곳 일대를 ‘이덕구산전(山田)’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곳엔 당시 움막을 지었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고 음식을 해 먹었던 무쇠솥과 그릇들이 그대로 널려 있다.ⓒ김은숙[/caption]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한라산 중허리 오름마다 봉화가 붉게 타오르면서 남로당 제주도당이 주도한 무장봉기가 일어났습니다. 350명의 무장대는 도내 24개 경찰지서 가운데 12개 지서를 일제히 공격했고, 경찰과 서북청년회 숙소, 독립촉성국민회, 대동청년단 등 우익단체 요인의 집을 지목해 습격했습니다. 4월 3일 하루 동안에 △경찰=사망 4명, 부상 6명, 행방불명 2명 △우익인사 등 민간인=사망 8명, 부상 19명 △무장대=사망 2명, 생포 1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으니 이 날의 참사는 잊지 말아야 할 비극이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제주4.3은 이 날의 무장봉기를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는 제주4·3에 대해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북청년회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남한의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
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제주4・3은 미군정기에 발생하여 우리나라 건국 이후에 이르기까지 7년여에 걸쳐 지속된, 한국 현대사에서 6・25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사건입니다. 1947년 3・1절 발포사건과 1948년 4・3 무장봉기로 촉발된 제주4.3은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3만여 명의 인명 피해를 가져왔고, 이는 당시 제주 인구의 9분의 1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인원입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6116" align="aligncenter" width="640"]북촌리 너븐숭이 옴팡밭.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 일대는 1949년 4.3사건 당시 443명이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옴팡밭은 ‘오목하게 쏙 들어가 있는 밭’이라는 뜻이다. 4.3사건 당시 최대의 인명피해로 기록되고 있는 1949년 1월 17일 북촌대학살 현장의 한 곳이다. 당시 이 일대는 ‘마치 무를 뽑아 널어 놓은 것 같이’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고 한다. 이 밭의 가운데 작은 봉분도 당시 희생된 어린아이의 무덤이다.ⓒ김은숙 북촌리 너븐숭이 옴팡밭.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 일대는 1949년 4.3사건 당시 443명이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옴팡밭은 ‘오목하게 쏙 들어가 있는 밭’이라는 뜻이다. 4.3사건 당시 최대의 인명피해로 기록되고 있는 1949년 1월 17일 북촌대학살 현장의 한 곳이다. 당시 이 일대는 ‘마치 무를 뽑아 널어 놓은 것 같이’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고 한다. 이 밭의 가운데 작은 봉분도 당시 희생된 어린아이의 무덤이다.ⓒ김은숙[/caption] [caption id="attachment_176117" align="aligncenter" width="640"]너븐숭이 애기무덤. 북촌리 주민 학살 사건 때 어른들의 시신은 살아남은 사람들에 의해 다른 곳에 안장되었으나 어린아이들의 시신은 임시매장한 상태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현재 20여기의 애기무덤이 모여 있는데 적어도 8기 이상은 북촌 대학살 때 희생된 어린아이의 무덤이다. 너븐숭이에서 벌어진 엄청난 사건을 소설가 현기영은 ‘순이삼촌’이라는 소설로 세상에 알렸다. ⓒ김은숙 너븐숭이 애기무덤. 북촌리 주민 학살 사건 때 어른들의 시신은 살아남은 사람들에 의해 다른 곳에 안장되었으나 어린아이들의 시신은 임시매장한 상태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현재 20여기의 애기무덤이 모여 있는데 적어도 8기 이상은 북촌 대학살 때 희생된 어린아이의 무덤이다. 너븐숭이에서 벌어진 엄청난 사건을 소설가 현기영은 ‘순이삼촌’이라는 소설로 세상에 알렸다. ⓒ김은숙[/caption] 48년 5월 10일, 통일정부의 건설을 바라는 여러 정치세력들의 반대 속에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우기 위한 총선거가 실시되었고, 총선거에는 김구와 김규식을 비롯한 남북협상 참가 세력과 많은 중도계 인사들이 참여를 거부함으로써 이승만과 한국민주당, 그리고 일부 중도세력만 출마하였습니다. 초대 국회는 3권 분립과 대통령중심제, 국회의 간접 선거에 의한 대통령 선출 등을 요지로 하는 제헌 헌법을 만들고,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여 마침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6122" align="aligncenter" width="640"]사본 -L1050328 이승만은 7월 20일 국회의원들의 간접선거로 대통령에 선출됐다. 해방된지 3년째가 되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선포식이 열렸다.ⓒ김은숙[/caption] 이승만 정부는 10월 11일 ‘제주도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본토의 군 병력을 제주에 증파시켰습니다. 그런데 10월 19일 제주4.3 진압을 위해 파견하려던 여수의 국방경비대 제14연대가 반기를 들고 일어남으로써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여수순천사건으로 민간인 439명이 경찰과 국군에 의해 집단 희생되었고, 희생자가 2천 여 명에 달할 것으로 조사 보고하였으니 제주4.3과 함께 반드시 기억해야하는 역사일 것입니다. 4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이때부터 제주도 중산간 마을을 초토화시킨 대대적인 강경 진압작전이 전개되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6123" align="aligncenter" width="640"]이승만대통령의 계엄령. 토벌대는 1948년 11월 중순부터 1949년 3월까지 약 4개월 동안 중산간마을에 들이닥쳐 집집마다 불을 지르고 남녀노소 가림없이 무차별 학살하는 ‘초토화작전’을 자행했다. 학살극은 제9연대장 송요찬이 1948년 10월 17일 ‘정부의 최고 지령’에 따라 ‘해안선에서 5km이외에 있는 사람은 이유여하를 불구하고 총살하겠다’는 포고령을 발표하면서 예고됐고, 11월 17일 계엄령이 선포됨에 따라 본격화됐다. ⓒ김은숙 이승만대통령의 계엄령. 토벌대는 1948년 11월 중순부터 1949년 3월까지 약 4개월 동안 중산간마을에 들이닥쳐 집집마다 불을 지르고 남녀노소 가림없이 무차별 학살하는 ‘초토화작전’을 자행했다. 학살극은 제9연대장 송요찬이 1948년 10월 17일 ‘정부의 최고 지령’에 따라 ‘해안선에서 5km이외에 있는 사람은 이유여하를 불구하고 총살하겠다’는 포고령을 발표하면서 예고됐고, 11월 17일 계엄령이 선포됨에 따라 본격화됐다. ⓒ김은숙[/caption] 이와 관련한 미군 정보보고서는 “9연대는 중산간지대에 위치한 마을의 모든 주민들이 명백히 게릴라부대에 도움과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가정 아래 마을 주민에 대한 ‘대량학살계획(program of mass slaughter)’을 채택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48년 10월 당시 9연대 군수참모를 지냈던 김정무는 중산간 마을에 불을 지른 작전을 군 내부에서 ‘초토화작전’이라고 불렀다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제주4・3사건을 완전히 진압해야 미국의 원조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이승만 대통령은 제주도에 대한 가혹한 탄압을 군에 지시했고 이른바 ‘초토화작전’은 미국과의 교감 속에 진행됐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6121" align="aligncenter" width="640"]이승만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제주4.3사건 등에 대해 “가혹하게 탄압하라”고 명령했을 뿐만 아니라, 모슬포 경찰서와 성산포경찰서를 신설했고, 서북청년회 단원들을 경찰과 군대에 편입시켰다.ⓒ김은숙 이승만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제주4.3사건 등에 대해 “가혹하게 탄압하라”고 명령했을 뿐만 아니라, 모슬포 경찰서와 성산포경찰서를 신설했고, 서북청년회 단원들을 경찰과 군대에 편입시켰다.ⓒ김은숙[/caption] ‘초토화작전’에 의해 1948년 10월 말부터 1949년 3월까지 약 5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참혹한 집단 양민 학살이 행해졌으며 4・3사건 전 기간 동안의 희생자 수는 3만여 명으로 추정됩니다. 토벌대는 무장대와 민중의 연계를 막기 위해 중산간 마을 주민들을 해안 마을로 강제 소개(疏開)시키고 100여 곳의 중산간 마을을 불 태웠습니다. 소개령이 내려졌지만 병자・노인・어린이 등을 포함한 일부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도 허다했는데, 이승만 정부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들에 대한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으며 소개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채 방화와 학살이 이뤄진 마을도 많았습니다. 1949년 4월 1일 미군 정보보고서에는 “1948년 한 해 동안 1만 5,000여 명의 주민이 희생되었습니다. 그 중 80%가 토벌군에 의해 사살됐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부터 1949년 봄까지 겨우 몇 달 사이에 군・경 토벌대의 진압작전과 무장대의 보복 살상으로 수만 명의 희생되었고 130여 마을이 소개령 등으로 초토화됨으로써 제주공동체는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6124" align="aligncenter" width="640"]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은 정권의 탄압을 받아 필화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1970~80년대 학살극을 폭로한 소설가와 시인들이 공안당국에 끌려가 고문을 받거나 구속됐다. 이승만의 양아들은 ‘불법 4.3게엄령’을 보도한 언론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1978년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이 발표돼 4.3의 참혹상을 정면으로 폭로하면서 4월 혁명 이후 18년만에 4.3논의의 물꼬를 텄으나 소설은 곧 판금되고 작가는 고초를 겪었다. 1987년엔 이산하 시인이 4.3을 소재로 시를 썼다가 구속됐고, 김명식은1988년 4.3자료집을 펴냈다가 옥고를 치렀다.ⓒ김은숙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은 정권의 탄압을 받아 필화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1970~80년대 학살극을 폭로한 소설가와 시인들이 공안당국에 끌려가 고문을 받거나 구속됐다. 이승만의 양아들은 ‘불법 4.3게엄령’을 보도한 언론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1978년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이 발표돼 4.3의 참혹상을 정면으로 폭로하면서 4월 혁명 이후 18년만에 4.3논의의 물꼬를 텄으나 소설은 곧 판금되고 작가는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1987년엔 이산하 시인이 4.3을 소재로 '한라산'이라는 시를 썼다가 구속됐고, 김명식은1988년 4.3자료집을 펴냈다가 옥고를 치렀다.ⓒ김은숙[/caption] 이것이 제주4.3입니다. 1999년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이 통과되었고, 이에 따라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약칭 : 4・3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2003년 10월 4・3사건의 진상을 담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보고서가 확정되었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주도를 방문하여 진상보고서에 근거해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을 공식 사과했습니다. ‘국가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 사실을 정부가 비로소 인정한 것입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6137" align="aligncenter" width="640"]2003년 10월 15일 '국가 공권력의 인권유린'으로 규정한 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됐고, 10월 31일 노무현대통령은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김은숙 2003년 10월 15일 '국가 공권력의 인권유린'으로 규정한 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됐고, 10월 31일 노무현대통령은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김은숙[/caption] 그리고 지난 2014년부터는 제주4.3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되어 정부가 주관하는 행사로 치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않는 제주4.3은 한없이 처량하고 무의미합니다. 바로 당신이 이 글을 읽는 순간 비로소 제주4.3은 역사가 되고 우리의 내일이 되는 것입니다. 어제는 69주기 제주4.3 추념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일 년 동안 제주4.3 70주년을 준비하려 합니다. 지난 3월 1일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 범국민위원회가 결성되었고 환경운동연합도 뜻을 모았습니다. 국가공권력에 의한 무고한 희생자들의 개별적인 배・보상 문제, 재판도 없이 감옥에 끌려 간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 문제, 생사조차 알 수 없는 4·3 행방불명인 문제, 제주4·3을 폭동이라 주장하고 제주를 '반란의 섬', '빨갱이들의 천국'으로 매도하는 역사왜곡 세력의 문제, 미군정 시기에 발발한 제주4.3에 대한 미국의 책임과 사과 문제 등 제주4.3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환경운동연합은 모든 생명에 평화롭게 공존하는 생태민주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오늘 제주4.3을 이야기합니다. 이 글을 쓴 저는 제주도가 고향입니다. 제주4.3의 이야기를 들어주신 당신께 정말 감사드립니다.(사료 출처 : 제주4.3평화재단 홈페이지) [caption id="attachment_176135" align="aligncenter" width="332"]ⓒ 기억공간 re:born + 벨롱장 ⓒ 기억공간 re:born + 벨롱장[/caption] 후원_배너
화, 2017/04/04- 03:05
49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