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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열 회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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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열 회원님

익명 (미확인) | 금, 2011/10/14- 20:53

이기열 회원님께서 충청투데이와에 인터뷰한 내용이 기사(11.10.13일자 신문)로 실렸습니다.
신문의 한 면이 꽉차도록 생생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는데요
좋은 일 많이 하고 계시는 이기열 회원님께 여러 이야기 들어보시죠~^^

(이기열 회원님 인터뷰)—————————————————————————–

[김승한이 만난 사람] 대한산악연맹 대전산악조난구조대 이기열 대장

사람들 산에서 인생배운 천생 산사람 … “죽을고비 넘기니 삶이 축복”

▲ 이기열 대장이 “산은 나에게 준 가르침이 정말 많았고 등산을 통해 치열한 삶을 배웠기에 지금은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치면서 경험한 것들을 후배들에게 돌려줘야겠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정재훈기자 [email protected]

1993년 겨울, 알프스 아이거 북벽 등반 도중 암벽에 매달려 꼼짝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오로지 로프 하나에 매달린 채 추위, 배고픔, 죽음의 공포 등과 싸워야 했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정신이 혼미해졌다. 안전벨트를 끊으라는 유혹이 몰려들었다. 매듭 하나만 끊으면 600m아래 절벽으로 떨어지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지나온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가족, 친구들에게 하직 인사도 했다.

그 때 아내가 생각났다.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 “집사람에게 짐을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뱃속에 든 아이가 저를 살렸지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자 다시는 산을 보고 오줌도 안 누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의 머릿속은 이미 다음 등정을 구상하고 있었다. 등반 도중 다리를 다쳐 무려 3년간 목발에 의존한 적도 있다. 서울을 오가며 수술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다리 한 쪽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그래도 등반에 대한 미련은 떨칠 수가 없었다. (사)대한산악연맹 대전산악조난구조대 이기열 대장(45)은 천생 산사람이었다.

해발 8012m 티베트 남벽 등반 도중엔 눈사태를 만나 함께 간 셰르파(Sherpa:산악 등반 안내인)가 목숨을 잃었다. 그는 셰르파의 딸을 데려와 자신의 집에서 거처하도록 하는 등 배려했다. 다녀온 산악국가의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봉사활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도 한 때는 비행청소년이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남의 물건을 훔쳐보기도 하고, 싸움질도 많이 했어요. 산을 만나면서 제 인생이 확 바뀌었지요.” 그런 경험이 있기에 비행청소년 계도에도 앞장서고 있다. 사회적 약자, 결손 가정의 아이들과 야영을 하면서 그들의 변화를 이끌어낸다고 했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산보다는 사회활동에 좀 더 가까이 있는 듯 했다.

-영국 산악인 조지 멜러리가 ‘거기에 산이 있어서 오른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진부한 물음 같지만 왜 산에 오르나.

“‘왜 밥을 먹느냐’는 질문과 비슷하다. 산이 있어 오늘의 내가 있다. 산이 나에게 준 가르침이 정말 많다. 등산을 통해 치열한 삶을 배웠다. 지금은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치면서 경험한 것들을 후배들에게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이다.”

-스스로 생명에 위협을 받고, 옆에서 죽어나가는 동료들을 보고서도 등산할 마음이 나는가. 그만한 가치가 있나.

“예를 들어 종교라 치면 수도자의 과정이라고나 할까, 일상생활에서 얻는 경험과는 조금 다르다. 산에서 여러 가지 고난을 이겨내면서 얻은 삶에 대한 깨달음은 ‘사는 것이 축복이며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동료가 사고로 죽고 크게 다쳤지만 저 친구도 여기까지 온 목적이 있고 산에 대한 열정과 꿈이 있었을 테니 ‘동료가 못 다한 삶만큼 파트너로써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렇게 다짐한다.”

-국내에도 설악산, 한라산과 같은 좋은 산이 많은데 굳이 외국에 나가야 성이 차나.

“국내산도 다녀야 하고 국내산에도 분명히 할 역할이 있다. 그러나 산악인이라면 한번쯤 히말라야, 만년산 등을 꿈꾼다. 나는 현장상황을 즐기는 편이다. 해발 7500m, 영하 20~30도의 혹한이 몰아치고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면 시원하면서도 어떤 고통이 느껴지는 것까지 즐긴다. 현장감이 있다. TV에서 보는 풍경과 직접 산을 올라 그 위치에서 보는 풍경은 산악인들만의 특권인 것 같다. 거기서도 매번 질문하고 스스로 느낀다. 위험을 감수하고 왜 산을 오르느냐고? 그런데 나의 대답은 항상 같다. 산이 그곳에 있으니까 가야한다는 것이다.”

-국내산과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와 같은 외국의 높은 산과 근본적으로 다른 뭔가가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산은 모두 같지만 기후조건과 환경에 따른 차이가 있다. 히말라야나 계룡산, 보문산이나 계족산은 모두 똑같고 다 힘들다. 산을 오르기 위해선 체력은 물론 정신력, 팀워크가 있어야 한다. 외국의 산에서는 비상시 닥쳐올 수 있는 안 좋은 환경과 상황들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등산은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운명인가 보다.

“평생 다녀야 할 것이다. 이제 나만의 등반이 아니라 다 같이 어울릴 수 있는 등반을 하고 싶다. 최근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콘크리트 속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자연과 접할 기회가 없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다. 내 아이들만이 아니라 동시대 아이들, 다음 세대들까지 자연친화적인 프로그램과 친해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언제 처음 산과 인연을 맺었나.

“산은 어릴 적부터 놀이터였다. 대나무를 잘라서 활도 만들고 TV에 나오는 드라마 흉내도 내고 나무 잘라서 칼로 만들어 칼싸움도 했다. 자연에서 컸다. 본격적으로 산다운 산에 오른 것은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계룡산에 가면서다. 전문등반은 89년도 때 시작했다.”

-이력을 보니 계룡산 자작바위 개척, 대둔산 장군봉 개척 등 개척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개척이란 게 무슨 뜻인가.

“암벽등반 루트에 길을 개척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길을 내는 것이다. 기존 루트에서 새로운 루트를 개척한다. 높은 난이도의 난해한 구간에 루트를 개척할 때면 위험하기도 하다. 하지만 산악인들에게 난이도와 높이 등의 등반정보를 알려줄 수 있어 상당히 의미가 있다.”

-보수작업도 많이 했던데.

“1991년도에 계룡산을 같이 등반하던 친구가 박혀있던 녹이 슨 오래된 피톤(등산용 쇠못)을 잡다가 그것이 부러져서 추락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초보자들이나 등반자들의 대형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보수해야겠구나 마음먹었다. 그 뒤로 시간 날 때마다 올라가서 암장을 보수하고 교체했다.”

-대학졸업 후 계룡산에서 3년간 빠져 살았다고 들었다. 도를 닦으러 간 건가.

“단지 산이 좋아서 들어갔다. 주변에 같이 있던 선후배들이 모여 계룡산 주변에 아지트를 만들어 살았다. 돈이 떨어지면 유리창을 닦았다. 그때는 직장도 없었고 오로지 산만 가지고 인생을 해결하겠다는 시절이었다.”(그는 선후배들과 고층건물의 유리창 닦는 일을 했다. 작업도중 옆에서 줄을 탄 후배가 떨어져 숨지는 사고도 목격했다. 그 후배의 못다 한 꿈을 위해서도 등반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칸첸중가(해발 8586m) 등반을 하다 눈사태를 맞아 죽을 위기에서 엄홍길 대장이 구해줬다고 들었다.

“1999년 10월 중순쯤인데 엄청난 양의 폭설이 내렸다. 그쪽 현지인들 말로는 하루 동안 1m 정도 눈이 내렸다고 한다. 정상에 올라갔는데 눈이 하염없이 내렸다. 눈사태 위험이 있어 주변에서 철수하자는 의견이 나와 8명이 같이 내려왔다. 엄홍길 선배가 맨 앞에 선두로, 나는 중간에 있었다. 앞에 2명, 뒤에 2명 중간에 있던 4명이 눈에 묻혔다. 눈에 휩쓸렸는데 나는 손이 간신히 밖으로 나와 있어 살 수 있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동료와 사지에 갇혀있다고 가정하자. 줄을 끊으면 나는 살고 밑에 있는 동료는 죽는다. 그 순간에 어떤 결정을 내리나.

“사람마다 조금 다르다. 어떻게 교육받고 훈련받는지 그 사람이 자라온 인생 등 철학적인 부분을 같이 접한다고 봐야한다. 분명한건 최선을 다해 동료를 살려야한다. 끈끈한 파트너 관계가 필요하다.”

-고지가 바로 눈앞인데 동료가 죽었다. 계속 등반을 해야 하나, 중단하고 죽은 동료를 데리고 내려와야 하나.

“이것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죽은 동료와 함께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상에 대한 가치도 있겠지만 동료에 대한 가치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추후에 산은 재도전할 수 있다.”

-다리부상으로 3년간 목발신세를 진적이 있는데 어떤 사고였나.

“다리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했었다. 뼈에 염증이 생겼고 새끼손가락만큼 뼈가 벌어져 쇠붙이를 달고 있었다. 8번의 수술과정을 거치는 동안 많이 힘들었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치료비는 계속 나가고 생활비도 걱정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건 아닌지 자학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그런 힘든 과정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등반을 꼽자면.

“엄홍길 대장과 함께했던 칸첸중가 등반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축복으로 느껴졌고 그때부터 인생의 사고방식이 바뀌었다. 그곳에 갔다 온 후부터 외향적으로 성격도 바뀌고 농담과 말도 많아지고, 주변을 좀 더 둘러보게 됐다.”

-등반할 때 무슨 징크스 같은 것도 있나.

“지금이라면 다리다. 다치기 전 다리 기량의 50%밖에 힘을 쓰지 못한다. 전혀 뛰지를 못한다. 다리를 굽히지도 못하고 운동에 한계가 있다. 비록 다쳐서 힘들지라도 한편으로는 잘 다쳤다는 생각도 든다. 비싼 대가의 수업료를 치른 것이라 생각한다. 이 사고를 계기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으니 말이다.”

-고산등반은 위험하다고 가족들이 말릴 것도 같은데. 나만 좋다고 하는 건 극단적인 이기주의 아닌가.

“그럴 수도 있다. 이기주의적인 면도 없지 않아 있다. 지금은 부모님께도 말씀을 드리지만 예전엔 속이고 해외에 갔었다. 집사람은 대학 선후배로 만나서 같이 등산을 했던지라 지지를 해주는 편이다. 다친 후부터는 오히려 아내가 안심한다. 위험하게 많이 올라가진 않을 테니 말이다. 지금은 오히려 마음 편하게 응원해준다.”

-가장 매력 있는 등반 코스 중 국내·외에서 하나씩만 추천한다면.

“국내는 계룡산이다. 계룡산은 마치 어머니 산 같이 푸근하다. 거기서 산을 배웠고 어린 시절 등반기술을 만들어준 것도 계룡산이라 애착이 간다. 외국 산은 칸첸중가이다. 거기서 사고가 나서 동료 2명을 묻고 왔고 나도 죽을 뻔 했다. 두 번 도전해서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다시 올라가고 싶다. 삼세번이라고 하지 않았나. 꿈을 꾸고 있으면 언젠가 될 거라 생각한다.”

-등반도중 셰르파가 사망하자 그의 딸을 데려와 보살펴 줬다고 하던데 진정한 휴머니스트처럼 보인다.

“지난 2007년 티베트 남벽 맨 마지막 봉오리를 우송공업대 산악회와 등반했다. 등반도중 동료 1명과 셰르파가 눈사태를 당해 추락했다. 동료는 다행히 부상만 입고 살아 돌아왔지만 셰르파는 돌에 부딪혀 사망하고 말았다. 이후 팀에서 그의 딸을 초청했고 우리 집에서 보살펴주면서 함께 지내고 있다.”

-산악조난구조대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계룡산 대둔산 등에서 사고접수가 오면 현장에서 도와준다. 주말마다 대원 2명씩 파견 보낸다. 자연정화 활동과 시민들 응급처치 교육 등 여러 가지를 진행한다.”

-등반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나 당부사항은.

“기본적인 매너를 지켜달라고 호소한다. 산에서 술을 먹고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고성방가를 하거나 쓰레기를 버리기도 한다. 이건 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잘 가꾸고 다듬어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산이다.”

-어떤 산악인으로 남고 싶나.

“더불어 살아야한다. 가지고 있는 경험들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쓰고 싶다. 한 부모 가정과 조손가정 아이들을 돕고 있다. 이게 씨앗이 돼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티끌이 모아져 태산이 되듯 16개 시도에 확산되는 그런 모델을 만들고 싶다. <논설실장>

정리=충청투데이 박주미기자 [email protected]

<프로필>

△청소년 히말라야 오지마을 문화탐사대장
△대전 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
△대전·충남적십자사 산악구조대장
△대한산악연맹 대전산악구조대장
△완주 희망캠프연구소 사무국장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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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회원입니다.
여기에다 주소변경 사항을 알리는것 이 맞는지 잘모르겠습니만 ~~^^

변경후 주소: 대전시 서구 월평동 301 누리아파트 106-507

부탁드립니다. 꾸벅^^

화, 2009/07/07- 06:14
25
0

교육센터운영위원이신 이기열 회원님의 장인어른께서 7월 2일 소천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금, 2009/07/03- 18:09
21
0

안도현 회원님 요즘 공부하시느라 정신없으시답니다.
7월말 중요한 시험이 있으신데요
준비하실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셔서 좀 걱정이시라네요.
좋은 결과있으시길 바라겠습니다.
화이팅!!!

화, 2009/06/30- 20:55
159
0

존경하고 사랑하는 환경운동연합 가족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서울광장에서 아침부터 조마조마 가슴 졸이며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환경운동연합 격정의 세월을 떠올리며 그립고 그리운 회원님들을 기다렸습니다.
‘동강에서처럼, 새만금에서처럼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나 그 역동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시시각각 다가오는 약속의 시간, 저만치서 낯익은 모습들이 다가옵니다.
저쪽에서도 손짓을 하며 반가운 얼굴들이 달려옵니다.
전국 각지에서 흩어져 있던 우리 동지들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서울광장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습니다.
살을 태울듯 내리쬐는 뙤약볕도, 민주주의를 압살하려는 차벽도, 금세라도 곤봉 휘두르며 달려올 것 같은 권력도 우리들의 발걸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힘차게 펄럭이는 환경운동연합 깃발 아래 다시 만난 우리들은 회한을 삼켰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목소리로 외쳤습니다.
4대강사업은 강을 죽이는 사업이라고 외쳤습니다.
4대강사업은 생명과 평화를 부정하는 사업이라고 외쳤습니다.
국민을 귀머거리, 당달봉사, 반벙어리로 만들려는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자고 외쳤습니다.
민주주의를 농락하고, 국토를 거덜 내는 이명박 독재정권을 물리치자고 외쳤습니다.

오늘 아침 이명박 정권은 라디오연설을 통해 ‘대운하의 필요성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임기 중 대운하사업은 하지 않겠다. 4대강사업은 꼭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독재대통령의 마음속에 대운하가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누가 감히 독재자의 마음을 거스르겠습니까?

4대강사업은 대운하사업이라는 것을 스스로 실토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처럼 이명박 정권은 국민과 국토를 무지막지하게 속이고 있습니다.
국민의 눈과 귀와 입과 민주주의를 암매장하고 있습니다.

이번 라디오연설은 오로지 정권퇴진운동만이 국토와 생명을 지키는 길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해주었습니다.

급히 계획된 대회임에도 전국 각지에서 많은 회원님들이 참가해 주셨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의 역동성을 거침없이 보여주셨습니다.
6월27일, 비로소 거듭나는 환경운동연합의 첫발자국을 보여주신 모든 분들께 엎드려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더한 열정으로 현장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2009. 6. 29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김석봉 올림

월, 2009/06/29- 21:51
35
0

지난 주 교통사고를 당하셨다고 합니다.
가벼운 사고인줄 알았는데 후유증이 생겨 한의원을 다니고 계십니다.
빠른 쾌유를 바랍니다^^

토, 2009/06/27- 01:35
63
0

22일 새벽, 아빠가 되셨습니다~
건강한 아들을 출산하셨다고 하네요.
축하드리고요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길 바랍니다.

민재야! 세상에 나온 걸 축하해^^

토, 2009/06/27- 01:33
15
0

.

월, 2009/06/22- 20:52
13
0

서울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주말부부로 지내시다 합치면서 서울로 가셨는데요. 서울에서도 행복하게 사세요.

목, 2009/06/18- 02:17
11
0

이정용 회원님
선화동 골목에 슈퍼를 오픈 하셨습니다.
대형유통업체와
골목까지 들어오는 대형유통업체 체인점들로
동네 슈퍼가 경쟁력을 잃고 있는데요.
그런 동네 슈퍼들이 가격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들을 찾고 계신다고 합니다.
개업 축하드리고,
번창하시길 바랍니다.

수, 2009/06/17- 09: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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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한때는 미워도 했습니다. 그로인해 더 마음이 아픕니다. 미움은 애정으로부터 나온다는 것. 마지막 저의 변명입니다. 미안해하지 말라던 말씀. 더 열심히 살라는 말씀으로 가슴에 깊이 새기겠습니다.』

코피노라고 들어 보셨나요?
필리핀은 여러 세기동안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반세기의 미국 지배 그리고 지리적인 위치로 인해 다양한 인종들과 혼혈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특히나 스페인 식민지 시절 카톨릭 종교의 영향으로 피임과 낙태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서 인종이 훨씬 다양해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영어 열풍이 아시아 최대의 영어 사용국인 필리핀에 또 하나의 혼혈인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코리아+필리핀의 “코피노” 입니다. 현재 수만 명의 어학연수생들이 필리핀에 있으며 이들이 와서 필리핀의 여성들과 사귄 후 생긴 아이들이 바로 코피노 입니다. 다들 어린나이에 연수를 와서인지 아이가 생기면 무책임하게 갑자기 사라져버리고 이들 미혼모가정만 남아 어렵게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연유에서 대전 외국인 노동자센터에서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후원을 받아 1년간의 코피노 가정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고 사업이 잘 진행되면 앞으로 지속적이 후원이 이루어 질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왜곡된 교육 현실이 필리핀 사회에까지 영향을 주었다는 게 참으로 민망하고 어떻게 해서든 이러한 현실을 거두어들여야 하는 것도 우리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지원 사업에는 코피노 미혼모들의 한글교육, 한국요리교육, 컴퓨터교육, 미용교육, 연2회의 의료지원 사업이 있으며 이는 취업이 어려운 필리핀에서 취업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해주며 또한 고임금까지 보장해 줄 수 있어서 미혼모들의 자립에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저희는 이 지원사업중 1차 의료지원사업의 일환으로 5월1일부터 5일까지 필리핀 퀘존시티(필리핀 3대 대학이 위치해 교육도시로 유명하며 현재 3000여명의 코피노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에서 의료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저와 가정의학과 신현정선생님(현대연합의원) 그리고 대전외국인노동자센터의 지원팀, 언론재단 관계자의 부자(초등생 동반) 이렇게 참여하였고 현지에서 치과의사 한 분과 치과대학생 두 명이 합류하였습니다.
치과의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린 학생들의 영구치를 뽑아야 한다는 현실이 정말 안타까웠으며 그렇게 평생을 지내야 한다는 게 너무 슬펐습니다. 마지막 날 근교 여행에서 본 필리핀 현지인은 20대중반임에도 불구하고 전악치아가 상실되어 흔히들 말하는 합죽이의 안모를 하고 있었고 내가 뽑은 어린학생도 10년 후엔 혹시나 저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라는 후회도 들었습니다. 과연 일회성 의료봉사에 의한 영구치 발치가 적절한 선택인가의 의문이 지금까지도 듭니다.
잠시 쉬는 시간에 그곳 어린이들과 함께한 손가락 씨름으로 그곳 어린이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너무 세게 때려서 미안했지만..^^) 함께한 농구에서는 다들 공을 빼앗아서 서로 나에게 주려는 모습을 보니 웃음도 났습니다. 함께 간 초등학생은 비타민 몇 알에 일일 골목대장에 등극하여 온 동네 꼬마들은 이끌고 다니면서 마지막에는 서로 귓속말까지 나누어서 참 신기했습니다. 나중에 어떤 말을 나눴냐고 물어보니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고 그냥 비타민 하나만 더 줘서 보냈답니다. 과거 전후에 미군들이 던져주는 초콜릿에 따라 다녔던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좀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그럭저럭 진료를 모두 마치고 남은 약은 투약 방법과 주의사항 그리고 좋은 곳에 잘 쓰일 것이라는 믿음을 함께 거기에 남겨두고, 코피노 가정에 한번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대로변을 지나 골목길로 그리고 쓰레기수집공장들을 지나니 쓰레기 산으로 둘러 싸여있는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난지도에 가보지 않았지만 과거 난지도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십 년간 버려진 쓰레기들이 이 마을을 둘러싸면서 산이 되었고 지금도 계속 쌓이고 있는 중입니다. 때론 쓰레기 더미들이 마을로 굴러 떨어져 마을 주민들이 죽거나 다치곤 한답니다.
그 쓰레기 냄새가 진동하는 마을에 네슬리와 4개월 된 민우가 살고 있었습니다. 민우의 아버지는 강원도에서 비즈니스 때문에 필리핀에 왔는데 머물러 있는 동안 네슬리와 만났다고 합니다. 아기 아빠는 넉 달 전부터 연락이 끊어지고 그녀 혼자서 제왕절개로 힘들게 아기를 낳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2평 남짓한 좁은 방 텔레비전 위에는 아이 아빠의 사진이 액자에 담겨 있었습니다. 필리핀 일반노동자들의 한 달 월급은 10만원인데 분유 값은 4만원이나 해서 키우기가 굉장히 힘들텐데 얼굴만은 항상 웃으면서 생활하고 있고 현재는 지원센터에서 한글교육과 요리교육에 참여하면서 자립을 하려고 준비 중이랍니다.

다음날은 근처에 관광지를 둘러보았는데 거기서 먹은 필리핀의 음식은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하긴 우리나라처럼 번듯하게 차려놓고 먹는 나라가 드물긴 하지만 그 나라에선 닭고기 튀김 한 조각이나 돼지고기 바베큐 한 조각에 주먹밥 한 개가 기본식사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나라 사람들은 우리가 먹는 것을 보면 양에 놀라고 가짓수에 놀란다고 합니다. 더운 나라여서인지 쉽게 변질되지 않도록 주로 기름에 튀겨서 짜게 먹습니다. 열대지방이라 과일도 많을 줄 알았더니 망고와 바나나가 전부이고 신선한 채소가 부족하다고 느꼈는데 섬나라의 지정학적 특징인 것 같습니다. 물론 맛에 있어서는 여기서 먹는 바나나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당도도 높고 맛있습니다.
먼 거리를 오가면서 라디오를 틀고 운전을 하는데 말소리가 정말 시끄럽습니다. 그 나라의 고유 언어가 따갈로어인데 거의 모든 사람이 따갈로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영어는 정규 교육을 잘 이수한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따갈로어에 센소리가 많아서인지 옆에서 듣고 있으면 꿀벌 한 마리가 계속 앵앵거리고 있는 듯합니다.
더운 나라여서 물놀이가 생활의 일부이어서인지 물가에 수상원두막이 눈에 띕니다. 여기서 더위를 피하는데 강바닥에 대나무기둥을 세우고 한쪽은 방처럼 대나무 평상을 만들어 놓고 한쪽에는 무릎정도까지만 물이 차도록 둥근 자갈을 깔아놓아 발도 담그고 어린이들도 놀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지붕은 바나나 잎으로 올렸고 흐르는 물이 바닥을 지나가서 인지 잠시 대나무 평상에 누웠는데 시원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필리핀은 한국전쟁의 참전국이며 우리나라가 전쟁의 후유증으로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우리나라에 원조를 해줄 만큼 우리나라보다 잘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재는 1인당GNP가 1100불 정도밖에 안 되는 빈국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실업으로 고통을 받고 전인구의 10%인 800여만 명이 주변국으로 일하러 나간다고 합니다.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도 모두들 한국에 가고 싶어 합니다. 이유는 오로지 돈을 벌고 싶어서라는데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현실을 보면 과연 그런 소망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과거 우리나라 국민들도 해외로 외화벌이를 수없이 나갔습니다. 사우디로, 독일로 가진 것 하나 없이 오로지 몸둥이 하나로 일하면서 가족을 위해 조국을 위해 일한 그분들의 노력과 성실함으로 이 정도까지 살게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 그런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육체노동을 기피하는 현실에서 그들이 그 자리를 메워 주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 돼버렸습니다. 우리의 과거모습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을 조금만 더 따뜻하게 대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국내의 잘못된 현실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필리핀의 코피노들에게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습니다.
막말로 애가 뭔 죄가 있습니까?

< 출처-대전시민아카데미>

화, 2009/06/09-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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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막내따님생이라라고 생일잔치를 하신다고 합니다.
생일 축하해요.

월, 2009/06/08-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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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때마다 이곳저곳 바쁘게 행사를 다니신다고 합니다.

월, 2009/06/08-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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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들의 정책교육을 매주 금요일 진행하고 계십니다.
열정적인 강의에 늘 감사드립니다.

월, 2009/06/08-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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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에 귀국하신답니다. 잘 다녀오세요.^^

월, 2009/06/08-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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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프로세서 공부 중이시라고 합니다. ^^
항상 배우는 자세로 열심이신 회원님을 본받아야겠습니다.
열심이셔서 시험도 무난히 통과하시리라 생각됩니다.

금, 2009/05/29-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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