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대체 누구를 위한 긴급돌봄인가?
16시 퇴근하는 양육자가 얼마나 되나?
정부는 할 수 있는 만큼 일하지 말고
국민이 필요한 만큼 일하라!
아이들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요식행위 하지 마라.
교육부는 어제(2일) 오후 16시 전국의 모든 유‧초‧중등학교의 신학기 개학일을 당초 3월 9일에서 3월 23일로 2주일 추가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긴급돌봄이 필요한 유치원, 초등학생을 위해 추가 수요조사를 실시하고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돌봄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등 부처 간 협력으로 유연근무제와 가족돌봄휴가 활용을 적극 지원하고 아이돌봄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가정돌봄’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우선 여가부의 아이돌봄서비스는 평시에도 가장 수요가 많은 등하교 시간에는 공급이 거의 없어 ‘미스매치’에 대한 질타를 받는 사업이다.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에 갑자기 아이들의 등하교 시간을 맡아줄 아이돌봄노동자분들을 정부가 책임지고 대거 수급할 거라는 믿음은 없다.
학교돌봄을 오후 5시까지 제공한다면, 오후 4시에 퇴근할 수 있는 양육자들은 얼마나 될까? 유연근무제나 가족돌봄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대다수 노동자의 경우 ‘공적돌봄’의 사각지대는 누가 어떻게 메울 것인가?
교육당국은 3월 2일부터 6일까지 실시 중인 1차 긴급돌봄 수요를 조사(조사기간 2월 24~26일)하면서 운영 시간 및 신청 대상을 학교장 재량에 맡겨, 학교별·지역별로 중구난방에 엿장수 마음대로 고지하여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아래 사진 참고) 그래서 2월 28일에 부랴부랴 내놓은 것이 ‘기존 일과 시간에 준하여 17시까지 운영’한다는 교육부 방침이었다.
그러나 현재 교육부 권고로 대다수 학원이 휴원 중이기 때문에 17시부터 양육자 퇴근 시까지 ‘사적돌봄’의 역할을 했던 저학년 사교육, 소위 ‘학원 뺑뻉이’가 평시처럼 작동하지 않고 있다. 즉 학교 내 긴급돌봄의 운영시간은 17시가 아닌 19시까지 연장되어야 하며, 신청 대상도 기존 돌봄교실 이용자로 한정하면 안 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유연근무제나 가족돌봄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학교 내 긴급돌봄은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1차 수요조사 시 ~12:00, ~14:30, ~15:00까지 운영한다고 가정통신문을 보낸 학교들이 적지 않다. 갑작스런 개학 연기로 패닉에 빠진 양육자들에게 이런 공문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아이를 12시에 하교 시킬 수 있다면, 출근을 안 하고 말지 긴급돌봄을 왜 사용하나? 이건 긴급돌봄이라고 쓰고 요식행위, 탁상행정, 생색내기라고 읽을 수밖에 없는, 돌봄 위기에 처한 양육자와 피양육자들에 대한 우롱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1차 초등 긴급돌봄 신청자는 전체 6,117개교 중 4,150개교(67.8%)에서 48,656명이 신청하여, 전체 초등학생 2,721,484명 중 단 1.8%가 신청하는 비참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래서 교육부는 부랴부랴 17시까지 운영 방침을 내렸고 긴급돌봄 수요에 대한 재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나, 17시까지 운영해도 지금의 돌봄위기를 해소하기 어렵다. 많은 양육자들이 특히 엄마들이 사직서 제출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상황이다.
반면 어린이집 긴급보육은 통상의 보육시간(~19:30)까지 동일하게 실시하고 이용 사유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심지어 급·간식도 평상시와 같이 제공한다. 자녀가 어린이집·유치원에 다니다가 초등학교에 진학할 때 발생하는 2시간 30분의 돌봄공백이 한국적 고용단절현상을 낳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같은 이유로 코로나19 사태에 직면한 양육자들 특히 엄마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직서를 썼다 지웠다 고뇌하고 있다. 돌봄위기는 곧 고용위기이며 생존과 생계의 문제다. 교육부가 탁상행정 할 때가 아니라는 거다.
물론 고용노동부의 역할과 책임이 누구보다 막중하다. 지금 출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코로나19 확산을 막고 아이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도 ‘가정돌봄’을 우선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부는 가족돌봄휴가를 사용한 노동자에게 지원금(1일 5만원, 최대 25만원)을 한시적으로 지급하고, 재택근무 등 유연근무제를 시행한 사업주에 대해서는 간접노무비(노동자 1인당 주 1~2회 사용 시 주 5만원/주 3회 이상 사용 시 주 10만원, 최대 1년 520만원 한도)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업주 중심의 경직된 한국의 기업문화를 고려할 때, 위와 같은 지원제도가 돌봄의 양극화를 심화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어차피 가족돌봄휴가를 쓸 수 있는 사업장은 정해져있고, 예비비로 지원금이 책정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지적이다. 남녀고용평등법 상 가족돌봄휴가를 허가하지 않은 사업주에게는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는데, 이 경우 노동청에 진정해 가면서까지 돌봄권을 구제 받을 노동자가 대한민국에 얼마나 될 것인가?
따라서 노동부와 교육부에 제안한다.
1. 교육부는 학교 내 긴급돌봄 운영시간을 19시까지로 연장하고, 신청 대상에 제한을 두지 말라.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질병재난 시에는 일상적인 맞벌이 가정의 자녀돌봄 뿐 아니라 다양한 경우의 돌봄 수요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2. 긴급돌봄 신청 대상을 제한하지 않는 대신 구체적인 신청사유를 제출하도록 하라.
3. 위 신청사유를 바탕으로 각급 교육지원청은 노동지청과 협력하여, 학부모가 재직 중인 사업장에 가족돌봄휴가를 허가하지 못할 만한 합당한 사유가 있는지 확인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라.
4. 무엇보다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은 긴급돌봄노동자들 역시 누군가의 양육자일 수 있으므로, 긴급돌봄정책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
대만은 재해관련법 제31조 1항에 의거 방역돌봄휴가를 사업주 100퍼센트 부담의 유급휴가로 실시하고, 방역돌봄휴가를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은 12세 이하의 아동을 양육하는 양육자며, 전국적으로 일괄 휴교령을 내렸기 때문에 증명서 등은 제출할 필요도 없었다고 한다. 방역돌봄휴가 신청을 거부하는 사업주에게는 최소 5만 대만달러(한국 200만원)에서 최대 100만 대만달러(한국 4000만원)의 벌금형을 부과하고, 위반 사례를 적극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재난 시 가정돌봄’ 원칙을 충실히 이행했다.
그 동안 사스 메르스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전염병으로 인한 국가 위기 상황이 닥칠 때마다 돌봄 재난 역시 반복돼 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시민들의 안전한 삶이 위협 받고 유치원 어린이집 학교 학원이 일제히 문을 닫는 이 순간, 법으로 보장된 돌봄휴가는 그림의 떡이고, 사직서를 썼다 지웠다 고뇌하는 엄마들이 한 둘이 아니다. 보여주기식 행정 및 예산 투입으로는 그 누구의 돌봄권도 지킬 수 없다. 신종 전염병으로 더욱 취약해진 양육자들이 돌아갈 일터를 걱정하지 않고 돌볼 권리, 아동청소년들이 엄연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존중받으며 돌봄 받을 권리- 이제는 정부와 국회가 적극적으로 답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20년 3월 3일
정치하는엄마들
#돌봄권 #모두가엄마다 #정치하는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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