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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어때?”
“거기는 고라니가 다니는 길목이잖아, 밟히면 어쩌려고 그래!”
“이 울퉁불퉁한 자리는 아무도 안다닐 것 같은데?”
“어떻게 미적 감각이 그것 밖에 안 돼? 그래도 우리 신혼 방인데 거긴 너무 황량하잖아!”
“그럼 이 분위기 있는 강변은 어떨까?”
”생각 좀 해봐, 비가 오면 잠기는 자리잖아!!“
“그럼 여긴?”
“너는 둥지 자리만 보니? 모래톱 전체 상황도 봐야지! 그런 눈으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에서 애들을 낳아 키우겠어?”
모래만 가득하니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 모래톱을 걷다 보면 수달이 물 가장자리에 남긴 발자국, 너구리의 공동화장실, 조개들이 모래 위를 지나간 흔적, 고라니가 모래톱을 가로질러 강을 건넌 발자국 뿐 아니라 거칠거나 곱게 시도한 작은 물새들의 둥지 흔적들이 눈에 띈다. 다양한 모양의 둥지 흔적들에서는 물새들 쌍쌍이 대를 잇기 위해 밀고 당겼을 이런 저런 모습이 그려진다. 모래를 오목하게 파서 프러포즈를 하는 것은 수컷이고, 결정을 하는 것은 암컷이다. 때로는 모래톱 여기저기에 그럴듯한 많은 둥지를 만드는 일이 천적으로부터 사방이 노출된 모래톱에서 종을 보전하기 위한 생존전략일 수도 있어 보인다. 알을 품고 있을 때나 새끼가 껍질을 깨고 나왔을 때 다양한 천적들과 관련된 여러 실제 상황에 대비해서 말이다. 넓은 모래톱의 많은 오목한 곳 중 한 자리에 들어가서 눈 하나 깜박 않는 새끼를 발견하는 일은 먹잇감을 찾기 위해 모래톱을 어슬렁거리는 포유류나 새끼에게 먹일 먹잇감을 찾기 위해 창공에서 뚫어지게 내려다보는 황조롱이 등 맹금류에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성 싶다.
내성천 모래톱에 납작 엎드린 흰목물떼새 새끼 / ⓒ박용훈
모래톱에 새겨진 이런 저런 흔적들은 소소하지만 모두 ‘지구’라는 아름다운 별의 ‘강’이라는 신비로운 공간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의 어떤 이야기를 가만히 들을 수 있는 창이기도 하다. 한편 넓은 모래톱은 작은 물새들이 천적으로부터 둥지를 지키며 대를 이어올 수 있을 만큼 종들 간에 생존의 균형을 유지해주는 역할을 해왔는데 그 균형을 심각하게 훼손한 것은 하천정비사업과 댐건설사업이다. 대표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강행한 4대강정비사업은 ‘강 살리기’라고 선전하였지만 4대강에서 이런 생명의 공간을 남김없이 파낸 채 강의 흐름을 막는 보를 세워 물을 채웠고, 이로 인해 봄이 되면 작은 물새들이 울던 곳곳의 아름답던 강변이 모두 사라졌다.
한편 낙동강을 이루는 중요한 강인 내성천에는 4대강사업으로 1조 1천억 원을 들여서 영주댐을 지었는데, 댐을 지으면서 댐 상류의 모래를 천문학적인 규모로 파냈고, 댐을 짓기 시작한 지 5년이 채 되지 않아서 댐 하류의 모래톱도 눈에 띄게 위축되면서 여뀌, 버드나무 등 식생이 넓게 세력을 확장해갔다. 식생이 모래톱을 장악하면 그 뿌리가 모래를 움켜쥐면서 모래톱의 이동성이 크게 약화되고 이로 인해 결국 육지의 땅처럼 되는 육화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데, 현재 내성천 곳곳이 이런 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한국 하천 경관의 백미이며 명승 제16호인 회룡포도 아름답던 경관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
모래톱이 육화되면 모래 위에 알을 낳는 물새들은 서식지를 잃을 수밖에 없다. 4대강에서 서식지를 잃고 삶터가 크게 줄어든 물새들에게 내성천의 넓디넓은 모래톱이 사라지는 것은 비단 내성천의 물새들에게만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멸종위기종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흰목물떼새의 내성천 서식 조사는 영주댐 건설 후 이런 배경에서 시작되었다.
2009년 12월 영주댐 착공 후 2014년도에 내성천 전 구간 모래톱에 식생이 확산되면서 2015년도에 일부 구간에서 시험조사한 후, 2016년도에 생태지평이 시민 공동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흰목물떼새 29개 둥지가 내성천에서 확인되었으며, 조사 중 확인된 꼬마물떼새 둥지는 100개가 넘었고, 깝작도요 둥지도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내성천이 우리나라 강에서 서식하는 작은 물새들에게 있어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서식지인 것이 확인된 것이다. 2019년도에도 생태지평이 주관하는 여덟 차례의 시민 공동조사 일정이 진행 중이다.
곳곳에 넓디넓은 모래톱이 펼쳐진 내성천은 매우 중요한 흰목물떼새 서식지이다 / ⓒ박용훈
4년간 매년 내성천에서 흰목물떼새 서식 공동조사를 하면서 조사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강의 맥박을 자신의 맥박으로 느끼면서 강이 보여주는 모습에 따라 좋아하거나 안타까워한다. 강이 건강한 것과 사람이 건강한 것이 다르지 않고, 강물이 오염된 곳에서 사람이 건강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편 강의 자연성 회복을 위한 보 철거 논의와 관련한 세간의 시시비비에서는 사람과 강이 따로따로인 것처럼 분리하는 행태가 자주 보인다. 강을 대하는 시야는 왜곡된 채 매우 좁아져서 지구 역사에서 산과 들과 바다를 연결하고 생명과 생명을 이어온 강이 마치 어느 특정 시기, 특정 공간, 특정 사람들의 강인 듯 또는 저수지인 듯 착각하게 된다.
강에서 조사를 하다보면 손바닥만 한 물새들이 그때그때 천적을 대하는 다양한 대응방법에 감탄할 때가 많다. 대를 잇기 위한 여러 모습은 풍요롭고 아름답기도 하다. 지구를 무대로 살아가는 새들의 시야가 보 철거 논란 속에 한걸음을 나가기 어려워하는 이 땅의 사람들보다 많이 넓어 보인다. 지구에서 그리고 이 땅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꾼다면 이 작은 물새들이 전하는 강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면 어떨까?
글과 사진 : 박용훈(초록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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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풍소식'은 초록사진가이자 생태지평 회원이신 박용훈 님이 사진과 글로 강 소식을 전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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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성천과 흰목물떼새 보전을 위해 여러분들의 힘을 보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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